하늘나라의 실력

 

1986. 11. 14. 밤 (금)

 

본문: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 알리신바 된 자라 말은 우리를 택할 때에 이분 안에서 택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습니다.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라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벌써 당신이 정하셨습니다.

“말세에” 말세는 신약 교회를 말세라고 합니다.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우리를 위해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신인양성일위로 탄생하셨습니다.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주님은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는 일을 하셨고 죽으시는 일을 하신 그 죽으신 일은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죽으신 일은 우리가 죄로 인해서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 종이되어 영원히 갇혀서 마귀의 종 되고 죄의 종 되고 사망의 종 되어 가지고 그것으로서 영원히 계속될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형벌받아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형벌을 받으셔서 죽으셨습니다.

또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을 이행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이루시는 그 일을 위해서 계속 이루셨는데 악령이 이루지 못하도록 범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고문 고형하다가 지나쳐서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일로 죽으셨습니다. 율법 완전 이행과 하나님과 완전 화친 이것을 계속하다가 육체를 가졌으니까 사탄이 너무 고문 고형으로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공법 순종하는 일은 순종함으로 죽으셨고 화친함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화친과 순종을 완성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죽으셨습니다.

또 살으신 것은 우리에게, 형을 받아 죽으신 것으로서 해방과 자유를 우리에게 주셔서 해방과 자유를 우리가 받아 주님의 것이 됐고 또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 순종과 하나님과의 완전 화친을 완성해서 이것 때문에 죽으신 이 완성을 우리가 받아 하나님의 공심판을 완전 통과한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입고 이 의로 인해서 하나님의 것이 됐습니다.

이것이 죽으심인데 살으심은 이렇게 설정해 놓으신 완전 자유와 완전 공심판 통과의 생명, 완전 생명과 완전 자유 이 두 가지는 예수님이 설정해 주셨지마는 이것을 받아 누리지는 못합니다.

이것을 대속으로 받아 가지기는 가졌지마는 누릴 수가 없는고로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걸 받아 가지고 자유자로 살고 완전 생명을 가진 자로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완전 영감 진리 순종 생애를 이루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이 완전 생애로 인해서 우리는 영생받은 우리로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으심으로 완전 자유, 또 죽으심으로 완전 생명, 또 양성일위의 부활하심으로 완전 영생 이 세 가지를 가진 우리들은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이 세 가지 사활의 대속을 우리가 한 시간도 잊지 안하고 이 대속을 계속 우리가 생각하고 믿고 이 사람으로 살 때에 예수님의 사활로 대속하신 그 효력과 그 능력은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실지로 역사합니다.

이래서, 요새 갈라디아서를 좀 많이 읽으라고 이랬는데 많이 읽는 줄 압니다.

갈라디아서에 읽어보면 믿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요 믿음으로 모든 거 하신다는 것을 잘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살리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 죽을 사자 살 활자, 죽고 사신 이 사활의 대속을 가리켜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러면 죽으심은 예수님이 두 가지 죽음을 당신이 하셨고 살리신 것은 두 가지 죽음을 하시고 당신이 원하시기 때문에 살리셨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은 심한 통곡으로 아버지 하나님에게 간청을 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육체대로 생각해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주시기를 간청을 해 가지고 살아났으니까 예수님은 기도해 가지고 죽어 있으면 거석할 건데 죽어 가지고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까 대단히 참 성공적이요 대단히 기쁜 일이요 행복되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으나 그 육체는 죽으셨고 그 신성은 그 해를 당한 것뿐입니다. 해를 당한 것뿐인데 예수님이 다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시지 아니하시면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영으로 그저 계시고 피조물이라는 그 인성을 입지는 안해도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성을 입고 부활하신 것은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의 대속의 공로나 못지 않는 꼭 중량이 같고 효력도 같은 그런 대속의 희생을 하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살리시고” 살린 것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죽으심은, 죽으시고, 살리심도 예수님께서 원치 안하면 살리지 안하십니다. 이거는 왜? 좋은 거 같으면 권면해 주지마는 예수님이 양성일위로 부활하시는 것은 영원한 희생이기 때문에 이 영원한 희생을 당신이 하실려고, 우리 위해서 희생을 하실려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청해서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할 간청하심을 하나님이 기뻐 들으시고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요것도 여러분들이 잘 좀 깨달아야 되지 자꾸 인간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영광을 주신 하나님이라, 그러면 영광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말은, 영광이라 하는 것은 그 영광 받는 자가 좋은 일을, 영광스러운 일을 했을 때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영광스러운 일을 하지 안했으면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칭찬하는 말이요, 송축하는 말이요, 존귀히 높이는 말이요, 위하는 말이요, 아주 그 공로와 이름을 높이 찬양해서 진정 마음에 감격해서 견디지 못해서 찬양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영광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영광을 주셨는데 이 영광은 만물도 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고,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고, 또 하나님도, 삼위일체 하나님도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려서 예수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모두 감탄하고 모두 찬성하고 높이 드는 이것을 가리켜서 ‘영광을 주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 여러분들이 영광이라는 이 해석도 이 영광이라는 뜻을 알면 그만 ‘영광’ 하면 다 될 터인데 영광 뭐 여러 수백 번 아니라, 수백 번 했지마는 영광의 뜻을 지금도 모릅니다. 영광의 뜻이 뭐인지 모르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영광을 이거 해석할라 하니까 기가 막히고 시간만 걸리고 참 그렇습니다.

영광, 뭐,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줬습니다. 또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에게는 막 모두 다 찬성하고 송축하고 이럴 수가 있냐고 이래 다 높히고 찬양하고 송축하고 이렇게 영광스럽게, 말하자면 심히 존대한다 말이오. 심히 존대한다. 심히 존대한다. 심히 모두가 다 감탄해서 지극히 존귀히 이렇게 모두 다 여기고 다 축하를 한다, 송축을 한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영광을 주신” “영광을 주신” 요게서 여러분들도 요 깨달을 것은 뭐이냐? 왜 예수님에게 영광을 줬습니까? 영광을 줬습니까? 예수님의 영광은 이 우주에도 가득찼고 영계에도 가득찼고 피조물도 다 전부 지옥까지도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또 삼위일체의 하나님도 영광을 돌리는, 영광을 돌리는 이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영광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이 사활로 인해서 성부도 성령도 감탄하고 또 성자 자신도 감탄하고, 자신이 한 일이지마는. 모든 영계에 있는 천군 천사와 모든 것들도 감탄하고 땅위에 있는 우주에 있는 우주 이 물질계라는 이 우주 안에 있는 수많은 것도 다 감탄해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리켜서 “영광을 주시고” 이랬습니다.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 별들도 다 주님에게 영광 돌리고 지금 예수 믿는 것을 핍박하는 사람들 많이 있지마는 몰라 그렇지 이다음에는 영계 것과 물질계의 것 모든 피조물들이 전부 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창조주도 영광을 돌리고 피조물도 다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 영광 돌리는 이것은 뭣 때문에 영광 돌렸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사활 때문에 영광 돌렸습니다. 사활 때문에 영광. 그러면 예수님의 사활이 뭐인데? 예수님의 사활로 이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과 영계에 있는 모든 것과 또 물질계에서 모든 피조물의 대리자로 되어 있는 이 택자들이 아주 비참한 가운데에 영원히 들어 있는 그것을 살려서 만물의 영장인 이 택자들도 구출해 내셨고 또 모든 피조물들도 다 구출해 내신 이 일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 사랑으로 희생해서 사활의 대속의 이 공로를 베푸셨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하나님도 예수님에게 영광을 다 주셨고 모든 천상 천하의 영계와 물질계 모든 피조물들도 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다 드리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 천군 천사들도 많이 있지마는 하나님이 예수님에 영광 주신 것은 사활의 대속 때문에 영광 줬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하늘나라는 영광의 나라입니다. 영광이 없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거지요 영광이 없는 사람은 벌거벗은 사람이요 그 나라에는 전부 영광 입고 살고, 영광 입고 살고, 그 나라에는 전부 영광 입고 살고 그 나라에는 대우는 사은 대우하고, 사은 대우,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 대우, 사은 대우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사은 대우만 있는 나라지 이 세상에서 ‘너는 세계 제일 과학자지 너는 세계 제일 정치가지’ 그따위 그런 썩은 것은 그 나라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쨌든지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 대우의 나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은혜 베푼 것이 없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대우 받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은혜 베푼 것이 많은 사람은 대우 받을 것이 많습니다. 그 나라의 대우는 사은의 대우밖에 없다 하는 요거 단단히 명심하십시오.

그 나라에는 돈의 대우도 없고 권세 대우도 없고 뭐 제가 잘났다고 뭐 지혜니 총명이니 그따위 것은 다 그 나라에는 가지 못합니다. 그 나라에는 그저 사은의, 사은할 것이, 사은할 것이 쌀내끼만치 있으면 그 대우가 쌀내끼만하고, 사은할 것이 집채무더기만 하면 대우할 것이 집채무더기만하고, 사은할 것이 이 우주만하면은 대우할 것이 우주만하고 그 나라의 대우는 사은 대우밖에 없다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지금은 몰라도 기억하고 자꾸 수천 번이든지 수만 번이든지 자꾸 느껴보십시오. 그 나라에는 사은 대우밖에는 없습니다.

돈 대우도 없고, 권세 대우도 없고, 잘난 대우도 없고, 세계를 점령했다 어떻게 했다 하는 그런 대우는 아무것도 없고 사은 대우뿐입니다. 사은 대우인데, 사은 대우인데 그 은혜라 하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이 보시고 인간들이 모든 영원을 다 만물들이 알게 환하게 어두운 것이 벗겨지고 모든 것이 대낮에 벌거벗은 거와 같이 드러난다 하는 것은 지금은 가리워져 모르지만 그때는 환하게 다 압니다.

환하게 다 알게 될 때에, 지금은 뭐 모두 은혜 베푼다 하는 것도 은혜 베풀어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감사하도록 이렇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도록 할라 하는 그런 것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지금도 눈이 밝은 사람들은 ‘은혜가 아니고 완전히 벗겨 먹었구만. 착취해 벗겨 먹었구만.’ 요새 학생들 데모한다고 날뛰는 참 불쌍한 학생들입니다. 사람들을 바로 지도하지 안하고 삐뚤어지게 지도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헛된 생각을 가지고 날뛰도록 하는 그보다도 죄가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 중에, 인간의 죄를 동양에서는 제일 큰 죄 여덟 가지를 말했는데 여덟 가지 말한 가운데에 한 가지 죄는 다른 사람을 삐뚤어지게 지도하는 거. 오인 지도. 오인 자녀, 오인 지도, 다른 사람을 삐뚤어지게 인도하는, 오인, 다른 사람을 삐뚤어지게 인도하는 것이 여덟 가지 죄 가운데에 하나로 들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다 뭐 감사해서 이 사람은 여게 대해서 사은하고 저 사람은 저게 대해서 사은하고 뭐 감사해서 뭐 야단을 지기는데 다 미친 행위요. 똑똑히 알고 보면은 감사할 게 아니라 막 칼을 가지고 내대야 될 만한 그런 모두 다 지금 복수를 해야 될 만치 무서운 착취요, 무서운 착취요 마구 사람을 마구 잡아먹는 그런 것인데 어리석어서 잡아먹히는 줄을 모르고 감사해서 감탄해서 속고 삽니다.

하늘나라는 정말로 하나님의 지혜 지식을 가지고 볼 때에 참 감사하다 할 수 있는 정평 정가, 전지의 지혜로 정평 정가 할 때에 감사가 되는 그런 감사의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이라 말은 은혜를 감사한다 그말이오. 감사 사자 은혜 은 자,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대우, 은혜 감사할 것이 주먹덩이만치 있으면 그만치 대우하고 또 은혜 감사할 것이 이 집채무더기만하면 그만치 감사하고 사은의 대우의 나라라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하늘나라는 사은의 대우의 나라니까, 사은의 대우의 나라니까 나는 가면 누가 나한테 사은할까? 나는 가면 누가 나한테 사은을 할까? 아마 여게 권찰님들, 남녀 권찰님들 하고 또 남녀 반사 선생님들 모두 다 이런 분들은 그들이 가 가지고 ‘하, 우리 집에 그렇게 밤낮 와 가지고 욕 얻어먹고 우리 아버지한테 욕 얻어먹고 쫓겨나면 숨고 이래 쌓으면서 애써서 나를 권고했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의 도리를 알고 이 지옥을 면하고 하늘나라 오게 되었으니’ 하고서 진정 감탄을 할 것입니다.

이래서, 그 나라에 가서 참 인생을 영원히 행복되게 한 진짜 은혜가 되는 거게 대해서만 감사하고 그거 감사의 양 그것이 대우입니다. 그게 하늘나라 대우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사은을 받을 만한 것이 세상에서 마련됐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것이오.

또 그때 가서 갚지는 안하지마는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미끄러지고 실패하게 됐다고 하면 지금은 속았지마는 그때는 압니다. 그때 알면은 그 원수 갚는 복수는 없지마는 그것이 이제 자기의 수치가 됩니다, 자기의 수치. ‘이는 누구로 말미암아 나는 이렇게 피해를 입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 말하기를 지옥에는 내외간에 평생 싸웁니다. 부부간에 평생 싸워. 부자간에 평생 싸우고. 왜? 남편이 있다가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부이 거짓부리로 이래 가지고서 나를 꾀우고 속여 가지고 이용만 해먹었지 내게 대해서 뭐 거석했나? 나를 전부 갉아서 완전히 나를 갉아서 먹은 자는 네다.’ 또 남편은 또 아내에게 그라고, 또 부모도 ‘나를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한 거 같지마는 순전히 나를 그래 가지고 이용해먹었지 내게 대해서 뭐 거석한 게 있느냐’고서. 이래 가지고 그 사은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정말 사은은 인간을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해방시킨 그 일이 조그매 있으면 거게 대해서는 사은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통과한 그 생활을 다소라도 하게 했으면 그것이 참 은혜에 대해서 사은이 있을 것이요, 또 그 사람이 땅위에서 영감과 진리대로의 사는 생애를 다소라도 하도록 협조를 해서 줬으면은 사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영히 행복되게 한 거 외에는 사은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사은의 나라라. 또 하늘나라는 실력은 무슨 실력입니까? 실력은 요 세상에서는 주먹내는 게 실력인데, 주먹 내는 거. 이 교역자들 가운데서도 말이지 주먹 있는 사람, 육체의 힘 센 사람은 막 이랍니다. ‘안 돼 봐라, 내가 주먹으로 막 한번 달라들 거다.’ 이래 가지고 얼마 전에는 우리 총공회 교역자들 모여 놓으면 주먹 큰 사람이 왕이었습니다. 주먹 큰 사람이 왕이라.

이래 놓으니까 뭐 이 백 목사 같은 거는 한 주먹 때리면 그만 저 꼬꾸라질 것이기 때문에 벌벌 맵니다. 막 이래 가지고 주먹 그래 가지고, 이 모두 운동 잘하고 이래 가지고 그때 한창 이 젊은, 이 힘센 젊은 이 가다들이 세력을 크게 부렸습니다. 이랬는데 부렸는데 요새는 하나님께서 바짝 오글트려서 깨트려 지금 바짝 부숴져버렸습니다. 지금 형틀만 남았지 바싹 부숴졌어. 우리 하나님께서 내비두지 안해요.

하늘나라는 그런 세력이 아니라. 과학 세력도 돈 세력도 아니라. ‘우리 남편은 돈이 많으니까, 우리는 큰 회사가 있으니까.’ 그런 것도 아니야. 하늘나라의 실력은 무슨 실력이냐? 사랑의 희생의 실력입니다, 사랑의 희생의 실력.

하늘나라의 실력은 사랑으로 희생하는 실력. 그 사람은 사랑으로 자기가 희생을 해서 다른 사람, 자기가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을 구출하고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고 다른 사람 유익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살아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하고 어쨌든지 자기가 그 사랑의 희생을 해 가지고 그것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많이 끼칠 수 있는 그것이 실력입니다. 하늘나라의 지위는 사랑의 희생의 실력의 지위요 또 하늘나라의 그 등용되는 대우는 그 사람에게 사은의 대우가 얼마나 큰가 그것이 하늘나라의 대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주신 하나님을” 그러면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요거 기억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영광을 주신 하나님이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려” 죽은 것도 주님은 다 시은이요, 죽으신 것도 다 시은이요, 죽으신 것도 다 사랑의 희생이요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원하고 원하신 사랑의 희생이요 또 시은의, 은혜를 베푸는 시은의 부활입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죽고 사신 그것은 전부가 다 은혜요 사랑의 봉사 요 둘뿐이라.

이러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나타나는 광채는 뭘로 나타나느냐 하면은 사은 영광, 사랑의 희생 영광, 이러니까 그 두 가지로 인해서 그 영광으로 나타나서, 그래 “하나님의 영광을 주셨다” 이래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 줄 우리가 알고 상대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우리가 가서 영원히 상대해서 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며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예수님에게 대해서 행하신 것 보면은 우리에게도 꼭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죽고 사신 것, 예수님이 죽으신 것도 사랑의 희생의 은혜요 또 부활하신 것도 사랑의 희생의 은혜요 그래 놓고 댓가를 안 받고 전부 공으로 줬으니까 다 은혜가 됩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여게 “하나님을” 하는 “하나님을” 하는 말은 이 하나님은 자존자 하나님, 전지 전능 주권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예정의 하나님 이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 완전자 하나님, 전지 전능의 하나님, 대주재의 하나님, 이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의 제이위로 도성인신하신, 그는 대속 문제로 대속을 위해서 대속주로 오셨는데 여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 가리켜서 여기 ‘하나님’ 말했습니다. 요거 참 알기 어렵습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하나님을” 이분은 대주재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주권자시요, 절대 불변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완전자시요, 완전 진실이요, 완전 영원 불변자십니다. 이분이, 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그 다음에 우리가 이 축복에 감사를 할 수가 있고 깨달을 수가 있지요.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는 말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사활의 대속을 베푸신 그리스도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내나 그 위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는 말은 사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라 말이나 예수님이라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하는 그 그리스도를 내나 예수님의 그 신성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하나님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하셨느니라” 하셨느니라 했으니 이것은 과거사입니까 미래사입니까? 하셨느니라 했으니까. 과거사입니다. 그저 막 알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래 들으십시오. 그라면 이제 성령이 여러분들 속에 역사하셔 가지고 알게 해야 되지 내가 말하는 거 가지고는 그 천리 만리 거리가 멉니다. 암만 내가 아는 걸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줄라 해도 못 가르쳐 줘요. 인간의 방언으로서는 안 돼요.

영감이 가야 여러분들에게 알려 주시지.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요것도, 요것도 잘 알아야 되니 한번 요것만 한번 그라면 들어서 배웁시다.

“믿음” 믿음은, 믿음은, 우리편의 믿음은, 우리편의 믿음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또 우리가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믿는대로 해 주시는 그것은 또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런 거 저런 것을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이런 거 저런 것을 소망하는데 소망하는 것은 우리가 소망합니다. 소망하는 건 우리가 소망하는데 그러면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믿는 것이, 믿는 것이 어렵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거, 하나님 믿는 거,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뭐 가족 믿고, 과학 믿고, 제 기술 믿고, 뭐 시대 믿고, 권세 믿고, 또 돈 믿고 별것 믿는 게 꽉 찼는데 그러면 세상에 이렇게 여러가지 모두 다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믿는데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믿는 믿음과 우리 믿음이 다른 것이 뭐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피조물을 믿는데 우리는 창조주를 믿으니까 그 믿음이 다릅니까? 세상 사람들의 믿는 것이, 세상 사람들 믿는 것이 사람도 믿고, 자기는 젊으니까 젊음도 믿고, 건강도 믿고, 기술도 믿고, 돈도 믿고, 자기의 모든 온갖 실력도 다 믿고, 사회도 믿고, 나라도 믿고, 뭐 다 선조도 믿고 다 믿습니다.

믿는데 세상 사람들의 그 믿는 것이 그것이, 믿는 그것이 백 년 이내에, 백 년 이전에는 그 효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백 년 이내는 그 세상에 모든 것을 믿는 거 또 그것에 거게 소망을 두는 거, 믿고 소망하는 그것이 효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백 년 이내에는 효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하나도 효력이 없습니까? 효력이 하나도 없습니까 그 효력이 있기는 있는데 백 년 이후에는 효력이 없습니까 처음부터 효력이 하나도 없습니까? 믿고 바라는 효력이 하나도 없습니까 처음에는 효력이 있습니까? 자, 효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처음에는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이 가운데는 뭐 손도 못 들면 멍충이로구만. 내가 멍충이라 한다고 삐꾸지 말아요.

멍충이인데 멍충이라 하지 어째? 멍충이 등신들, 모두 다.

이 모든 피조물 이런 것 저런 것을 모두 다 믿는데 그 믿는 그 효력이 하나도 없습니까 조그매 있다가 그만 일찍 없어져 버립니까? 남편 믿는 효력은 몇 해나 있어요? 스무 살 먹어서 시집갔으면 그 남편이 백 살 살면은 팔십 년 효력이 있겠습니다. 팔십 년 이후에 효력이 있어요? 팔십 년 이후에 효력이 있어요? 없고, 그러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피조물을 믿는 것이나 바라보는 것은 그 효력이 풀과 같고 그 효력이 풀의 꽃과 같기 때문에 다 너무 수명이 짧으니까 효력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그러면, 사람이 세상에서 자기가 사람을 믿는다고, 믿는다고 믿은 대로 다 됩니까 안 됩니까? 바라본다고 바라본 대로 다 됩니까? 자, 그러면 믿는 거,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믿을 때에 믿은 대로 상대방이 응해 주는 것이 그것이 중요합니까? 믿는 게 중요합니까 응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까? 응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암만 믿어봤자 상대방이, 믿어봤자 ‘나는, 나는 안 한다’ 이래 버리면 그만이라. 그러면 소망을 하는 소망이 어렵습니까 소망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 응해 주는 것이 힘듭니까? 이루어지는, 소망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힘들지요? 이런데,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그러면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두 가지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죽으시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통과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또 우리를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하도록 살리기 위해서 또 부활하시고, 이 죽고 사신 이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 가지고,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 가지고 우리에게 무슨 계약이 성취됐습니까? 무슨 계약이 성취됐습니까? 자, 요새 모두 보면 말이지, ‘지금 우리 나라하고 어떤 강대국하고 무슨 계약이 성취됐다’ 또 ‘계약이 성취됐다' 그뭐 이래 가지고 아주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꼼짝도 안 하는데 이쪽 혼자 저 혼자 자꾸 상대방을 믿고 바라는 하는, 믿고 바라고 하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기 혼자, 상대방은 응해 주지도 안하고 상대방은 상관도 없는데 저 혼자 백지 혼자 믿고 바라고 태산같이 믿고 태산같이 바라고, 믿고 바라는데 상대방이 응해 주지 안하면, 응해 주지 안하면 그 사람은 불쌍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 그러면 믿는 거 소망하는 것은, 믿는 거 소망하는 것은 믿는 데에 가치가 있습니까 소망하는 데에 가치가 있습니까 믿는 대로 상대방이 해 주는 데 가치가 있습니까 소망하는 대로 해 주는 데 가치가 있습니까? 자, 그러면, 믿고 소망하는 데 가치가 있습니까 믿고 소망하는 대로 상대방이 해 주는 데 거게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믿고 소망하는 것은 저 혼자 주관적으로 자기 혼자 믿고 소망하는 거,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거, 자기가 혼자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믿고 소망하는 것은 그것은 가치가 많습니까 적습니까 가치가 하나도 없습니까? 어떤 겁니까? 자기 혼자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하는 그거, 자기 혼자 믿고 바라는 그거, 그것은 내가 틀림없이 의심없이 믿고 바라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고, 틀림없이 확실히 믿고 확실히 바랍니다. 그라는데 상대방이 하나도 응해 주지 안한다면은 그 믿음의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내는 남편을 태산같이 믿고 일생 동안 그 바쳐서 믿고 있는데 남편은 아내에게 대해서 ‘제까짓 게 믿거나 말거나, 어리석게.’ 하나도 응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도 응하지 안합니다. 아내는 지금 이렇게 모든 걸 믿고 있는데 남편은 요 눈꼽재기만한 것도 해 줄 생각없이 하나도 상관 없어. 그리되면 어찌 됩니까? 그러면 그 남편 믿고 사는 거 남편 바라고 산 것이 그것이 불쌍합니까 행복됩니까? 불쌍합니까 행복됩니까? 그러면 믿음과 소망이라는 것은 이것은 믿고 소망하는 것의 가치는 어데 있습니까? 믿고 소망하는 것의 가치는 상대방이 응해 주든지 말든지 내가 믿고 소망하는, 똑똑히 믿고, 틀림없이 믿고, 틀림없이 소망하고, 견고히 믿고, 확실히 믿고, 확실히 소망하고, 뭐 밤낮 변동도 없이 믿고 소망하는 거기에 가치가,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그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일 그렇게 믿고 소망하는데, 하나님 믿고 소망하는데 하나님이 제까짓 게 믿거나 말거나 그 믿는 대로 하나도 응해 주지 안한다고 하면은 믿고 소망하는 것의 그것의, 밤낮 쉬지 않고 확실히 반석같은 믿음을 가지고 믿고 소망합니다.

소망하면 믿고 소망하는 그것의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밤낮으로 믿는데 뭐, 틀림없이. 반석같이, 틀림없이 확실히 믿는데, 확실히 믿는데.

‘하나님은 내가 믿는 대로 해 주신다. 내가 믿는 대로 당신은 내가 믿는 대로 해 주신다. 내가 바라보는 대로 해 주신다.’ 이렇게 이걸 확실히 믿는데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우리 믿고 소망하는 데 대해서는 우리 믿는 것과 소망하는 그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믿고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이 응해 주시는 거기에 가치가 있습니까? 어데 가치가 있습니까? 응해 주는 데 가치가 있습니다, 응해 주는 데. 암만 우리가 믿어 봤자 당신이 응해 주지 안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응해 주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데에, 자, 왜 믿는 것도 의심을 하고 소망하는 것도 소망하다가 낙망하고 소망하다가 낙망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해 주실란가 안 해 주실란가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조롱을 합니다. 왜 조롱을 합니까? 조롱하는 이유는 ‘저것들 참, 등신같이 네가 바위돌 앞에 가 가지고서 믿습니다, 내가 믿습니다, 바위돌 당신을 믿습니다 네 평생 해 봐라, 그 바위돌이 요만한 거나 응해 주는가? 또 네가 바위돌, 바위야 나는 소망한다 막 밤낮으로 손을 비벼서 바위 소망하고 소망한다고 해서 바위가 네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 주겠나? 응해 주겠느냐? 이루어 주겠느냐? 네 믿음대로 이루어 응해 주겠느냐? 소망한 대로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 응해 주겠느냐? 어리석은 자야, 네가 바위한테 가서 말하는 거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바란다는 게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인데 이런 등신같은 것들을 꼬와 가지고서 예배당 갖다 놓고 전부 살살 꼬와 먹고 이러니까 이 예수교 이거는 없애야 된다’고서 그렇게 지금 합니다.

‘공연히 너희들이 믿는 데에 상대방이 응해 주느냐 안 응해 주느냐 그게 문제고 소망하는 데 응해 주느냐 안 응해 주느냐 그게 문제인데 뭘 네가 응해 줄 거라고 너희들이 그렇게 믿고 하느냐?’ 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는 그것이 중요하고 힘드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믿는 대로 주먹덩이만치 믿으면 그만치 응해 주시고, 또 요만치 믿으면 그만치 응해 주시고, 또 요거 소망하면 소망한 대로 이루어 주시고, 자, 하나님께 대해서 소망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시고, 소망하면 소망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시고, 믿으면 믿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시고 이렇다고 하면은, 만일 이렇다고 하면은 그 믿음과 소망은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복이 있고 얼마나 큰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믿고 소망한다 해도 하나님이 응해 주시지 안하시면 우리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그것은 불쌍합니까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불쌍합니까 불쌍하지 않습니까? 불쌍합니다.

요게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믿음이 하나님께 있게 했다”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했다” 하나님께 있게 했다는 것은 우리 주관이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그런 믿음을 있게 했다는 말입니까, 우리 주관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그렇게 됐다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는 대로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이 낱낱이 조금도 어김없이 그대로 응해 주시기로 이렇게 작정됐다는 말입니까 요 말은 무슨 말이지요?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그로 말미암아” “그로 말미암아”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됐는데, 돼서 하나님을 믿는 자니 이제부터는 “너희들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하는 이 말씀은 뭣을 가리킨 것이지요? 뭣을 가리킨 것입니까? 여게 대해서 뭣을 가리킨 것이지?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 네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그분은 창세 전부터 알리신바 되었다가 말세에 너희들을 위해서 나타나셔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이제는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셨느니라”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요? 그 해석을 하는 것보다도 그 본문으로 자꾸 여러분들이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하셨느니라” 그러면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이 있게 하셨느니라” 하는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도록 이제 됐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는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에게 과거에는 소망 안 뒀는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 주관으로 하나님 믿고 하나님 소망하는 우리가 됐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는 우리가 되도록 하셨다 그말이라고 깨닫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뭐이야?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들이 천번 만번 믿어봤자 하나님께서 내몰라라 하면 그만이라. 천번 만번 믿고 천번 만번 소망하고 암만 소망해 봤자 공연히 저 혼자 믿고 저 혼자 소망하면 하나님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저 혼자 믿고 저 혼자 소망하는데 하나님이 무슨 거게 대해서 뭐 응해 주지 안하면 뭐 소용이 있습니까? 알겠습니까? 응해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어.

소용 없는데, 그러면 우리 편에서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도록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게 되는 이 일이 이루어졌다는 그 말을 가리켜서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한 것은 우리 주관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그렇게 됐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제는 너희들이 믿는 대로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이 다 응해 주기로 계약 성립이 됐다는 그말입니까? 어떤 말입니까? 어떤 말이요? 그러면, 한번 읽어볼 터이니까 읽어 봐요.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저를” “너희는 저를” “저를” 하는 건 예수님입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이거는 사활, 사활 대속 아닙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사활 대속,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예수님의 사활로, 사활을 하나님은 제일 가치 있어서 영광을 줬다. 사활을 제일 영광스럽게, 영광으로 이와같이, 영광을 주셨다. 사활에 대해서 영광을 주셨다.

사활이 뭐인데? 사활이 뭐인데? 사랑의 희생이요, 사랑의 희생이요, 죽음으로, 죽음과 부활하신 사활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사활의 대속의 은혜 이것을 하나님이 제일 고귀한 영광으로 봤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예수님의 천상 천하의 제일 영광스럽다 하는 이 영광과 존귀를 주셨습니다.

“주신 하나님을” 이 하나님을, 이 하나님을, 너무 이 속에 책으로 쓸라 하면 뭐 여러 권을 써야 될 터인데 요 간단하게 해 놓으니까 어떻게 깨닫기가 어려운지.

잘못 깨달으면, 자꾸 읽으십시오. 읽고 깨닫고 나면, 깨닫고 나면은 또 ‘아니다' 또 깨닫고 나면 또 `아니다' 자꾸 넓어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깊어지고 이제 그러면 제가 요 깨닫는 데에 책을 쓸라 하면 책을 수십 권을 써도 해석은 다 못 합니다.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러면 여게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사랑의 희생의, 사랑의 희생을 가치로 또 은혜를 베푼 시은을 가치로 그래 삼는 하나님이로구나,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 하나님이 가치로 여기시는 거, 하나님이 대우하시는 거 그것을 여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하여 믿는 자니, 대속으로 인하여 믿는 자니, “믿는 자니” 하는 이 말은 우리의 주관에서 하나님을 믿게 됐다 하는 말입니까, 우리가 우리 주관으로서 하나님을 믿게 됐다는 이 말입니까 우리가 우리 주관으로 믿을 때에 하나님이 믿는 대로 다 응해 주시기로 되었다 하는 말입니까? 뭐이요? 응해 주시기로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게 큽니까 응해 주시는 게 큽니까? 그러면 이 응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믿기를 잘 믿어 응해 주십니까 응해 주시는 건 뭣 때문에 이런 계약이 됐습니까? 하나님은 믿는 대로 당신이 다 해 주시고 바라보는 대로 다 해 주시고, 믿는 대로 다 해 주시고 바라보는 대로 다 해 주시도록 이런 뭐 조건부가 뭐 있소? 어떻게 그분이 우리 믿는 대로 다 해 주시고 바라보는 대로 다 해 줍니까? 여러분들, 자, 믿는 게 어렵습니까 믿는 대로 다 해 주는 게 어렵습니까? 소망에, 바라본다 말은 소망한다 말인데 소망하는 거, 바라보는 것이, 소망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소망한 대로 해 주는 것이 어렵습니까? 소망하는 것과 소망한 대로 해 주는 것은, 소망하는 것과 소망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은, 소망하는 것에 소망한 대로 해 주는 것은 몇 배나 어렵습니까? 한 이 배나 어렵습니까? 몇 배나 어렵겠습니까? 몇 배나 어렵습니까? 좀 계산해 많이 푹 한번 말해 보지. 한 두 배 어렵겠습니까? 한 삼 배나 어렵겠습니까? 얼마나 어렵겠소? 저 ○○○목사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얼마나 어렵겠지? 한 이 배 될까? 왜 대답 안 하노? 많이 어려워? 얼마나, 그러면? 많이 어려우면. 오륙 배 어려워? 십 배나 어려울까니? 얼마나 어려워? 많이 어렵겠다 하나? 무한히 어렵다? 우리가 이거 무한이라 한번 생각해 보지도 안하고 자꾸 무한 무한 써먹는데 맞기는 맞았어. 무한히 어렵지마는, 끝이 없이 어렵지. 무한히 어렵지마는 우리가 그걸 모르고 말해요. 믿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믿는 대로 이루어 주는 그거 참 기가 차는 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자, 우리가 믿는 대로, 해 봐요. 자기 밑에 자식이 말이요, 자식이 ‘야야 네가 나한테 소망하는 대로 내가 다 해 주마’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준다 하면은 그 아이가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줄라 하면은, 그 아이 소망하는 거 자기가 다 해 줄라 하면은 부자면 다 해 줄 수 있겠소? 부자면 다 해 줄 수 있어요? 자, 아들이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자기는 못 해 주지마는 부자는, 이병철씨 같은 그런 이로 말하면 아들이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줄 수 있으리라, 다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다 해 줄 부자 있어요? 다 해 줄 부자 있어요? 아들이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줄 수 있어요? ○○○목사님 한번 말해 봐요. 다 해 줄 수 없어? 이병철 그 부자도 다 못 해 줘요? ○대통령은 해 줄 수 있어요? 소망하는 대로 다 못 해 줘요? 허, 참.

소망하기는 쉽고 소망하는 대로 해 주기는 그렇츰 힘드는가배? 믿는 거는 쉽고 믿는 대로 해 주기는 그렇츰 힘드는가배? ‘뭐 믿는 대로 해 준다 하고 안 해 주면 되지 뭐. 믿는 대로 해 준다 하고 안 해 주면 되지. 소망하는 대로 해 준다 하고 안 해 주면 되지.’ 여게는 계약은 되기는 됐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계약 성립은 됐는데, 계약 성립은 됐어. 하나님하고 하나님이 책임진 자들, 하나님께서 공심판에 완전 통과자,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완전히 승리하고서 죄와 사망과 마귀와 상관 없는 자유자, 공심판 통과자, 영원히 하나님을 향하여 완전 영감 진리에 복종 생활 하는 자 이자에게, 이자에게 하나님께서 이 계약을 성립했습니다. 이자에게 계약을 성립해서 이제 계약의 조인을 꽉 찔렀습니다. 도장을 꽉 찍었소. 도장을 꽉 찍었어.

이 도장을 꽉 찍었는데,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이제 “믿는 자니”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을 나는 믿고, 나는 믿기만 하고, 나는 믿기만 하고 나는 바라보기만 하고, 나는 믿기만 하고 나는 바라보기만 하고, 당신은 뭐하고? 나는 믿기만 하고 바라보기만 하고, 하나님은 어짜고? 나는 믿기만 하고 바라보기만 하고 하나님은 어짜고? 자, 그라면 하나님은 어째요? ○○○집사 한번 말해 봐. 나는 믿기만 하고 하나님은 어짜고? 나 믿는 대로 다 해 줘? 나는 소망하기만 하고, 소망하기야 소망하는 데 돈 들어요? 아무것도 안 들지 뭐. 나는 소망만 하는데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이 다 해 줘요? 다 해 줘? 나는 믿기만 하고 나 믿는 대로 그러면 하나님이 다 해 주시고 내가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주는 그 계약이 됐다 말이야? 그 계약이 됐다 말입니까? 내가 믿으면 믿는 대로 나는 믿기만 하고 당신이 믿는 대로 응해 주시고, 다 이루어 주시고, 나는 소망만 하고 당신은 소망을 다 이루어 주시고 이 계약이 정말 됐다 말입니까? 이 계약이 된 걸 믿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이 계약을 믿으면 막 풀풀 뛸 건데 정말로. 몰라. 이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계약이 이루어졌소.

그러면, 내가 믿는 대로 이루어 주시고 소망하는 대로 이루어 주시는 이것이 믿는 것의 몇 배나 어렵습니까? 한 백 배 어려울까? 백 배 어려울까요? 천 배 어려울까? 억억억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어렵습니다. 우리 믿는 거는 뭐인데?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게 믿는 것이지. 알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그것에 하나님은 계약한 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은 억억억억만 배도 더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디 선생이 말하기를 ‘믿음보다 더 많은 수입 가지는 거는 없다’ 하나님이 이 계약에 조인을 딱 했어. 계약을 딱 하고서 계약에 인을 탁 쳐 버렸어. 하나님이 계약의 인을 딱 쳤어. 이러기 때문에 믿는 그대로 하나님은 다 응해 주셔야 돼.

믿는 그대로 하나님은 다 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기만 믿으면, 요만치 믿으면 요만치 응해 주시고 요만치 믿으면 요만치 응해 주시고, 또 하나 소망하면 하나 이루어 주시고 열 소망하면 열 이루어 주시고 백 소망하면 백 이루어 주시고,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그 조건, “믿는 대로 이루어 주마” 하는 그 조건, 성경에도 “소망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마” 하는 그거, 그 종류는 하나도 상관 없어. 믿으면 돼. 믿으면 다 이루어졌어. 이러기 때문에 ‘믿음보다 더 큰 수입 오는 게 없다. 믿음보다 더 큰 수입을 취하는 방편은 없다.’ 무디 선생이 그렇게 자기는 외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미국이 꺼꾸러졌을 때에 미국을 살려냈습니다. 지금도 미국을 살려낼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 얼마 전에 척 스미스 목사 그분의 테이프를 들어 봤는데 그분이 혹 미국을 살릴란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을 살려낼 사람은 지금 아직 나오지 안했습니다. 그분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자꾸 이래 복음 전해 가지고서 뭐, 미국 교회는 조그만한테 몇천 명 몇만 명 교회가 자꾸 뭐 불일듯 자꾸 일어난다 하니까 그분이 혹 무디 선생과 같이 미국을 여기에서 궁지에서 살려낼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 없으면 미국 망합니다.

그런 분 없으면 미국 망해요.

이거 지금 나올 건데, 뭐. 이거 가서, 뭐 그 뭐꼬?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도 좋아요.

지금 미국을 믿음으로 홱 돌이켜서, 하나님과 이 큰 계약이 돼 가지고 있는데 이 계약한 대로, 계약한 조건 내에서는 믿으면 다 이루어 준다, 소망하면 이루어 준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이요 이것이 큰 보배인데 이걸 다 뺏겨 버리고 지금 그 나라에서는 칠십이 과학 노벨 수상자들이 말하기를 ‘천지 창조를 엿새 동안 창조했다는 이런 허무맹랑한 설을 말한 이런 거는 법적으로 조처를 해야 된다’ 하는 그런 사람들이 그 나라에 자꾸 여게서 저게서 일어나고 있으니 참 두통거리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뭐 그거나 무신론 공산주의 나라나 같지 별게 뭐 있습니까? 하나님 없다고 무시하고 가는데, 성경 거짓말이라 하는데 하나님이 거기 복 줄 이유가 뭐입니까?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이말은 너희들은 믿고 소망하면 믿고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은 다 응해 주시기로 계약이 조인됐다 그말이오.

계약이 조인됐다. 뭣 때문에 이런, 하나님께서 믿는 대로 다 해 주고 소망하는 대로 다 해 준다는 이게 어렵소 쉽소? 이렇게 어렵고, 성경에 약속한 대로는 다 믿는 대로 다 이루어지고 소망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 계약이 조인됐는데 이 계약이 어떻게 해서 조인됐어요? 어떤 자를 한해 조인됐습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통과자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자요, 하나님과 완전 친밀자요, 죄가 하나도 없는 자요, 죄와 사망과 마귀를 다 깨뜨리고 완전히 거게서 해방과 자유를 얻은 자요,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생을 하는 영생자요. 공심판 이긴 자, 자유자, 영생자, 이자에게 이 계약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자에게 계약했어.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입으면 이 계약 상대자가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 계약 상대자, 하나님과 나와의 계약 상대자가 되고 이 공로를 벗으면 그만이오. 이 공로를 입으면 계약 상대자가 되고 이 공로를 벗으면 이 계약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 데에서 우리는 우주와 영계의 모든 걸 모두 다, 전부를 다 내 주먹에 가질 수 있고 쥘 수가 있습니다. 믿을 때. 왜? 이로 인해서 계약이 됐어. 하나님과 이 공심판 통과자, 또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돼서 자유자,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자 이자에게 이 계약이, 이 계약이 선포됐습니다. 이 계약이 선포됐어.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갔어. “나를 잡지 말아라” 부활하고 난 다음에 마리아가 거머쥘라 하니까 “나를 붙들지 마라. 나의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희 아버지께 아직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나를 잡지 말아라.

아직까지 내가 영광을 보지 못했다.” 올라가, 잠시 올라가서 다 계약 조인 딱 하고 난 다음에 다시 오셔 가지고 “이제는 내 옆구리를 만져 봐라. 나를 먼저 봐라.” 여러분들,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요것이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이 사활의 대속이 우리 것이 돼서, 내것이라 말이오. 이 사활의 대속은 내것 됐고 사활의 대속을 내것 삼은 나는 뭣 됐습니까? 주님의 것 됐고. 요걸 자꾸 하루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해.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내것, 사활의 대속을 나에게 주신 나는 주의 것.’ ‘너는 뭐인데?' `나는 사활의 대속을 가진 자야. 나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갈 수 있어.’ “휘장 가운데 열어 놓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담대히 나아가.

담대히 나아가라.” 왜? 이거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나는 가진 자라. 사활의 대속을 주신 주님 앞에 사활의 대속을 가진 나는 주님의 것이라’ ‘사활의 대속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맞습니까? ‘사활의 대속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틀렸어.

‘사활의 대속은 내것 사활의 대속을 가진 나는 주님의 것’ 알겠습니까? 대속을 벗고는 주님의 것이 못 됩니다. 대속을 내가 입어야 주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요자에게 한해서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했습니다.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 말은 우리 주관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하는 그걸 말한 것입니까 우리가 믿고 소망할 때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응하시고 소망하는 대로 응하시는 그 계약이 성립됐다는 말입니까? 우리 주관 행위입니까 객관 행위입니까? 객관 행위를 말합니다, 객관 행위. 이러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그렇게 하셨다 이말이오.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셨느니라” “하셨느니라” 이거는 내가 한 거요 하나님이 했습니까? 내 주관의 믿음과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 주관의 믿음과 소망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응하시는 것을 말한 것입니까? 응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벌써 시간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이제 따까리만 뗐어. 여러분들 얼마든지 가 읽어보십시오. 참 뭐 기가 막힐 만치 우리는 참 얼마나 뭐 감사하고 얼마나 찬송을 해야 될란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 오늘 교역자들 가서 자꾸 읽어봐요.

“하셨느니라”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신 말씀이 곧 너희에게 전한 이 복음이니라” 요 말씀을 자꾸 읽으면서 자꾸 깊이 새겨 보십시오.

이제 내일 아침에 나오면 요다음을 지금 계속해 가르쳐 주겠는데, 오늘 저녁에 배운 거는 뭐이요? 오늘 저녁에 다른 건 다 못 배워도 그것만 아십시오.

믿음과 소망은 믿는 게 문제가 아니고, 믿는 게 문제가 아니고 소망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믿고 소망하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믿는 대로 응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 뒤에 가서 가슴 치지요. 자, 세상에서 모두 저 나는 공동묘지를 매일 지나가는데 그 공동묘지에 모두 다 울음 모두 다 한박지기씩 다 눈물 박지기는 다 흘렸겠는데 그 눈물 흘린 거는 무슨 눈물입니까? 믿었더니마는 헛일했다. 소망했더니마는 헛일했다. 믿었더니마는 믿은 대로 응해 주지 안하고 소망했더니만 소망한 대로 응해 주지 안하고서 그래 지금 비관하고 가슴을 치고 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믿는 게 문제 아니라. 믿는 게 문제 아니고 이 말씀은 우리가 믿고 소망하는 대로 하나님이 낱낱이 틀림없이 믿기만 믿고 소망하기만 소망하면 믿는 대로 소망한 대로 그대로 하나님이 응해 주시기로 계약에 조인을 했습니다. 계약에 조인을 했습니다. 이 계약 조인이 큽니까 적습니까? 이 계약 조인이 어떻소? 이 계약 조인이 크요 작소? 자, 이 계약 조인이 큽니까 작습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마음에? 여러분들 마음에 어떻소? 지금 세계의 강대국 미국이나 소련이나 그런 사람들이 지금 그런 양국에서 서로 이렇게 하자고 조인한 것, 온 세계 유엔에서 조인한 것, 조인한 그게 큽니까 이 조인이 큽니까? 어느 게 큽니까? 이 조인이 큽니까 작습니까? 자, 그 조인이 힘듭니까 이 조인이 힘듭니까? 이 조인이 힘듭니까? 이 조인, 거게 도장 찍었다 말이오. 여게 도장 찍은 거 말이요.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계약하고 도장 탁 찍었어. “네가 믿는 대로 내가 다 해 주겠다. 소망한 대로 다 해 주겠다.” 신구약 성경에 조건이 있는 데 종류, “이런 걸 믿어라 내가 소원대로 해 주마. 이런 것 바라봐라 내가 소원 해 주마.” 성경에 조건 있는 이 외의 거는 안 돼, 그 외의 거는. 그 외의 거는 우리가 암만 믿어도 소용 없어. 나쁜 거 믿어도 소원대로 해 주면 안 될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성경에 있는 것은 “믿는 대로 다 해 준다” 하는 이 계약의 조인을 탁 찍은 것이, 하, 이걸 말이요 깨닫고 말이요, 어떤 사람은 말이요, 깨닫고 ‘세상에, 세상에 이런 조인의 대상이 우리가 되다니.’ 뭐 암만 해 봐야 입이 째지도록 해도 그것 가지고 안 되고 뭐뭐 뛰어도 안 되고 이 조인이 얼마나? 자, 이 조인을 받은 자가 염려가 뭐이요? 이 조인 받은 자보다 더 큰 행복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 조인 받은 자보다 더 행복된 자가 없어. 이 조인 받았으니까 이보다 더 큰 게 어데 있어? 이보다 더 복된 게 어데 있고 이보다 권위 있는 게 어데 있어? 이 조인이 어떻게 왔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으로 왔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이 내것 된 사람은, 내것 된 사람은 나는 주님의 것 됐습니다. 그러면 사활의 대속을 내것으로 사활의 대속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것 됩니다.

사활의 대속을 받아 가지고, 사활의 대속을 받아 가지고 사활의 대속은 우리 농 안에 꽁꽁 싸 넣어 놓고 이제 나만 주님에게 내 주면 주님의 것 됩니까? 됩니까? 돼요? 사활의 대속을 내것 삼아 사활의 대속을 내것 삼은 자만이 주님의 것이 될 수 있어요? 알겠습니까? 요 비밀을, 자꾸 외워요. 자꾸 외우고 하루 몇백 번이든지 외워요. 외우면, 외우면 그 능력이 와서 역사합니다. 믿음이 제일이라.

믿음이 이 계약 조문이 있기 때문에 조문 범위 내에서 믿는 것은 이거는 만능이라. 자꾸 믿어요.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내것, 사활의 대속을 입은 나는 주님의 것.’ 이러니까 뭐이 와서 우리를 침노하겠소?

이런데, 내일 아침에 이렇게 나오고 싶어서 다 하지마는 죽은 사람들이라. 내일 아침에 나오고 싶지마는 하루 아침도 자유를 못 해. 하루 아침 새벽기도 나오려는 것도 나오겠다고 밥도 굶기로 뭐 손도 들고 했지마는 내일 아침에는 피이 자빠져 버려. 피이 자빠져.

오늘 저녁에 ‘내일 새벽에는 새벽에 나온다’ 이래 약속하고 손을 들면은 벌써 마귀는 ‘네까짓 놈의 새끼가 암만 그래 쌓아도 소용 있나, 그까짓 거? 너는 뒈진 것 한가지인데. 암만 그래 봐라. 오늘 저녁에 내가 너거 아내를 꼽짝꼽짝하면 그만 너거 아내가 말하면 그만 너는 새벽기도 갈라고 작정해도 그만 헛일이라.’ ‘에, 치워 버려라, 그까짓 거 그만.’ 헛일이지.

또 ‘오늘 저녁에 너거 남편을 꼽작꼽작해 내가 꼬우면 당장 꼬일 터인데 네까짓 게 새벽기도가 뭐꼬? 아무것도 못 해. 또 너거 전주, 너거 또 사장, 너거 상관, 너거 자녀, 아이만 내가 아프게 해 가지고 고뿔이 나서 꼴막꼴막거려도 그만 너 새벽기도 헛일이라. 네까짓 거 새벽기도 갈라 하는 것이야 통시에 앉아 가지고 개 부리기 모양으로 그까짓 거야 네 마음대로 자유로 하는데 네까짓 게 무슨 새벽기도 나갈 그 능력이 있어?’ 이렇게 마귀는 조롱합니다.

이놈이 우리를 조롱하는 요것을 알고 ‘이제는 죽어도 내가 새벽기도 나가지.

내일 새벽에는 뭐, 모래는 못 나가지만 내일 새벽에는 내가 나가겠다.’ 하루라도 자꾸 나오고 ‘못 나오면 내가 밥을 굶기겠다.’ 자, 못 나온 사람은 아침 굶고 또 점심 굶고 저녁 굶고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오고 난 다음에 아침 먹고, 이 새벽기도 안 나오면 밥 굶기로 하고 세 끼만 굶고 새벽기도 나갈라 하면 그놈이 얼른 순종합니다. ‘새벽기도 안 나가면 또 인제 오늘 아침도 굶으면 네 끼 굶으면 내가 죽을 지경이니까 안 되겠다.’ 그만 기어나가요. 자기 몸을 자기가 쳐서 복종시킬 줄 알아야 되지 그놈 시키는 대로 하면 뭐이 됩니까?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못 나오면 밥을 굶길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인제 좀 덜 든다. 하도 들었다가도 거석이 없으니까. 여기는 하나도 안 드네? 여기는 안 들면 짜다라 뭐 거석할 사람들이가? 꼴 좋게. ○○○집사님은 아프니까 못 나오지 싶어도 아파도 나와요. 기어나와요, 기어나와. 기어나오면 낫아 주시지.

그전에 저 ○○○이 모친이라고 ○집사님 그분은 내가 여기 처음에 부임하고 오니까 그때 눈이 막 어떻게 왔든지 이렇게 왔어요. 왔는데 아무도 안 와. 보니까 뭐 어떤 사람이 하나 허여이 개 모양으로 이래 가지고 오는데 보니까 그 눈이 오는데 기어서 네 발로 기어 가지고서 혼자 와요. 그래 그러니까 그분의 그래도 아들이 경북 기독교 방송국 국장으로서 그래 지내다가 지금은 또 딴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 안 들이고 뭐이 됩니까? 자, 내일 새벽에 이제 새벽기도 나오기로 하고 못 나오면, 여러 끼 굶을라 하면 뭐 손을 못 드는 모양이라. 한 끼만 굶읍시다. 내일 새벽기도 못 나오면 아침 한 끼 굶을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인제 좀 쉽게 잘 안 든다. 뻐뜩 들어 봐.

저기도 좀, ○○○권사님 구역에 뻐뜩 들어 봐. 여기도. 인제 내일 아침에 인제 한 끼 굶어라 하니까 손 드는 사람이 좀 많구만. 왜 그리 약해요? 좀 강건해요.

내일 새벽에는, 이렇게 봐, 오늘 저녁에 온 것만 해도 한 이천 한 칠팔백 명 되는데 이 사람 오면 될 터인데 새벽기도 이래 작정하고 못 나와. 자, 내일 새벽에는 아무래도, 새벽기도 나올라면 새벽기도 준비는, 준비는 밤에 해야 됩니까 새벽에 해야 됩니까? 밤에 자기를 일찍 자요, 함부래. 기도하고. 일찍 잘라고 애를 써야 되지, 일찍 잘라 하면 아들이 테레비도 틀고 뭣도 틀고 자꾸 거석하고, 남편도 또 늦게 놀다가 또 늦고 오고 이 야단을 해. 어짜든지 ‘내일 새벽에 내가 안 나오면 내가 그만 죽을 요량하고 내가 간다’ 이래 가지고, 좀 그래 좀 뭘 속에 뼉따구가 있어서 뭐 하는 게 있어야 되지.

인제 내일 새벽에 나와서, 이것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해요. 하늘나라는, 하늘나라 대우는 뭐입니까? 하늘나라 대우는 뭐이요? ○○○씨? 속에 빛이 안 나가는데, 빛이 안 나가. 그라면 못 써. 대답만 까짓 거 하면 소용 있는가, 앵무새 모양으로.

하늘나라는? 하늘나라 대우는? 자, 한목 말해. 하늘나라 대우는? 녜, 사은의 대우.

여러분이 한목 대답해요. 하늘나라의 실력은? 대답하라 하니까. 하늘나라의 실력은 뭐이요? 하늘나라의 실력은? 하늘나라의 실력은? 하늘나라의 대우는? 녜, 이것만 해도 돼요.

그라는데, 자, 믿음과 소망, 믿음과 소망은 우리가 믿고 소망하는 우리편을 말한 것입니까 우리가 믿고 소망한 대로 하나님의 응해 주실 믿음의 상대를 말한 것입니까, 우리편을 말하는 것입니까, 쌍방을 다 말한 것입니까? 쌍방을 다 말한 것이오. 하나님이 우리를 믿도록도 만들고 믿은 대로 응해 줄라 하고 이렇게 쌍방을 다 해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내일 새벽에 나와. 나오면 이거 또 가르쳐 줄 터이니까. 또 나와요. 먼데 있어도 나와요. 택시 타고 나와요. 자, 또 한번. 내일 새벽에 나올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인제 내일 새벽에 여게 꽉 차겠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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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하루를 하나님 경배로 시작/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1984. 1. 6.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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