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영광

 

1986. 11. 14. 새벽 (금)

 

본문: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자꾸 집에 가거든 읽어보라 했습니다. 읽고 생각하면, 읽고 요게 안에 있는 이 믿는 이치를 생각하면 ‘이제 다 알았다’ 하면 그 사람이 지금 아는 법대로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 요렇다.’ 그라고 나면 또 거게서 ‘아, 요거는 어찌 되나?’ 또 의문이 또 나옵니다. 고거 알고 나면은 그 안에 또 의문이 또 들었습니다. 알고 나면 또 들었습니다. 평생 알아도 또 또 들었습니다.

왜?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무한한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실행할라고 하는 가운데서 경험과 체험이 생겨짐으로 말미암아 알아지게 되고 또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됨으로 알아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자꾸 알아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벌써 이 구약이 기록된 대로 말하면 삼천, 처음에 기록 시작한 거는 한 삼천오백 년 전이고 이 신약으로 말하면 근 이천 년 전에 기록한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으로 지식이 자랍니다. 인격이 자랍니다. 이래도 또 자라고 하나 더 깨달으면 더 자라고 더 깨달으면 더 자라고 더 행하면 더 자라고 자꾸 그래 자라는데 끝이 없습니다.

왜? 그러기 때문에 좋지. 무한하신 하나님의 도기 때문에 그렇지. 그까짓 거 얼마 알고 나면 끝은 밑이 아무것도 없는 것, 이 기독자들이 철학이나 이런 거는 생전 철학 공부 안 한 사람이라도 철학이나 그런 거 보면 벌써 끝이 환하고 끝이 환하고 이래서 더 들어갈 길이 없고 더 들어갈 문이 없어. 그만 그게 마지막이라.

그 종말을 환하게 보기 때문에 거게서는 속지 않습니다. 이 기독교는 종말이 없어. 끝이 없어. 영원해. 왜 그분은, 무한하신 분의 이 인도요 무한하신 분을 닮아가고 자라가기 때문에 끝이 없다 말이오.

땅위에 있는 뭐 철학이니 과학이니 그까짓 거는 끝이 있어. 암만 해 봤자 그것이 내나 물질을 초월하지를 못해. 뭐 컴퓨터가 암만 그게 뭐 컴퓨터 세상이라고 이래 떠들어 쌓아도 그것이 사람이 한번 딱 매겨서 ‘요거는 요거를 알도록 하자’ 하는 고거 기계 만든 것 그것뿐이지, 그게 인제 뭐이냐? 아무리 등신이라도 사람은, 이것만 가르쳐 놨는데, 이것만 가르쳐 놨는데 이거 하는 가운데에서 저것을 추측하고 추론하고 연구해서 알게 돼 나가. 이거는 기계라서 해 놓은 그것만 알지 그 이상을 몰라. 사람은 영물입니다.

그래 자꾸 읽으면 거기서 또 깨달아지고, 또 생각하면 깨달아지고, 실행하면 또 더 깨달아지고, 사람이 변화되면 깨달아지고, 그러면 변화되면 깨달아지는데 깨달아짐이 끝이 없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거 누가 한번 말 들어 봐.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안 돼.

변화되면 깨달아집니다. 변화된 것만치 깨달아집니다. 변화된 대로 깨달아집니다.

그러면 변화된 대로 깨달아지면 변화된 대로 깨달아지는 그것이 끝이 없으면, 무슨 말이요? 끝이 없다 말은 무슨 말이요? 성경을 읽고 자기가 변화된 것만치 깨달아. 변화된 것만치 깨달아. 그랬는데 깨닫는 것도 다 깨달았다 하고 나면 또 깨달을 게 있어.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또 변화되고 나니까 또 변화될 게 있어.

그러면, 변화가 다 됐으면 좋아요, 변화될 것이 앞으로 영원히 가도 자꾸 변화될 게 남아 있으면 좋아요, 다 됐으면 좋아요? 끝이 났으면 좋아요 변화될 게 남아 있으면 좋아요? 여반에 한번 대답 해 봐요. 남아 있으면 좋아? 남아 있으면 좋지.

변화가 됐는데 요만치 됐는데 또 보니까 또 변화되고 변화되고 끝이 없어. 왜? 하나님을 향하여 닮아가고 배워가기 때문에 그분은 무한하신 분이요 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암만 해 봤자 영원히 가고 가도 앞으로 갈 길이 있고, 또 만들어져 갈 길이 있고, 고쳐져 갈 길이 있고, 닮아 갈 길이 있고, 배워 갈 길이 있으니까 그게 좋아요 끝이 난 게 좋아요? 영원히 남아 있는 게 좋지. 그렇지 안해요? 여게 가르친 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이거 뭐, 이걸 할라면 가르칠라면 몇 달을 가르쳐야 될 건데 이거는 자기가 연구해서 깨달아야 되지지 그걸 말로 해 가지고는, 또 말로는 속에 있는 걸 발표 못 합니다. 인간의 말이 오늘 많이 발달이 돼서 과거 성경 원어 히브리어나 헬라어 그때 요량하면 지금 뭐 몇십 배 단어가 증가됐습니다. 그건 더 세밀히 발표하기 위해서 자꾸 발달이 돼 증가됐다 말이오.

증가된 오늘의 방언으로서도 이것을 다 발표 못 해요.

못 하니까 자꾸 같은 말 하는 거는 같은 말 하는 가운데에 그 속에 뭣으로서 알아져요? 자꾸 그말을 자꾸 하는 가운데서 알아지는 것이 뭐이요? 영감으로서 알아지게 된다 그거요.

자기가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도 자꾸, 사랑을 자기 마음을 쓰고 양심을 쓰고 사랑에 대해서 깨달을라고 사랑을 말하고 나니까 한번 말하고 생각하니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또 한번 더 말하고 알라고 연구하고 실행하고 보니까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사랑을 말하는 것은 그보다 아주 많이 성장된 사람이 말할 때에 ‘그것도 사랑이지마는 거게만 가지고는 요면으로 요리 미혹이 있다, 요면으로 모자란다, 요면으로 모자란다.’ 하는 것을, 사랑도 그것도 내나 형체라면 형체와 같고 공간이라면 공간과 같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사랑은 ‘아, 조거는 지금 몇 자 평방미터다, 저건 공간이 몇 자 공간이다.’ 우리가 이 물질은 알 수 있지 안해요? ‘저 사람은 저거 불하하는 거는 몇천 척 공간이다’ 크고 작은 걸 볼 수 있지 안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것도 ‘저 사람의 사랑의 범위는 좁다, 저 사람보다는 요 사람이 좀 넓다, 요 사람보다 조 사람이 좀 사랑이 더 크다, 클 뿐만 아니라 요 사람의 사랑이 저 사람의 사랑 요량하면 좀 힘이 강하다.’ 이렇게 알 수 있다 그거요.

이해가 돼요? 사랑은 공간과 같다, 무슨 형체와 같다 하는 비유의 말인데 조금 이해가 됩니까? 이거 말 못 알아들으면 안 돼. 자꾸 알아야 돼요.

그런데, 여게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자꾸 연구를 해서 알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 이걸 말했는데 그라고 또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없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런데, 사람들이 육체로 사는 것은 그것은 암만 좋고 대단한 것 같지마는 그거는 끝이 있고 나중에는 아주 흉하고, 꽃이 아름답지만 좀 있으면 쭈굴쭈굴하고 좀 있으면 썩고 더럽지 안해요? 냄새 나지 안해요? 이거 모양으로 그렇게 돼진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것은 영원하다 이랬는데, 사람들이 육체로 사는 것은 뭘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없어지고 흉해지고,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뭘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아니하고 갈수록이 자꾸 높이 평가되고 그렇게 보존되는가? 뭘로 살아 그런가? 육체로 사는 것은 그것이 다 사망이기 때문에 사망해서 풀도 말라 썩어버리고 꽃도 시들어 떨어져서 썩어버리고 주의 말씀은 썩지 않는다.

왜 육체의 것은 죽어지고 썩어지고 주의 말씀은 그렇지 안하게 되는가? 육체로 사는 그 속에는 사망이요 말씀으로 사는 그 속에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육체로 사는 그 속에는 왜 그게 사망이 됐을까? 사망 속에는 뭐이 들어 있습니까? 사망 속에는 뭐이 들어 있소? 죄가 들어 있습니다. 사망 속에는 죄가 들어 있어. 또 생명 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법이 사망법이 있고 생명법이 있는데 사망법은 뭣입니까? 사망법은 그 성질이 뭐입니까? 사망법의 성질은 무엇입니까? 사망법의 성질은 무엇이지요? 사망법의 성질은 자기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망법의 성질은 그것은 미움입니다. 또 생명법의 성질은 사랑입니다. 왜 사랑이 되고 왜 미움이 됐는가? 사랑이 되고 왜 미움이 됐는가? 된 이유는 사랑은 하나님 중심이기 때문에 사랑이 됐고 미움은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미움이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 심신의 생각으로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되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왜 복된가? 그것은 사랑이기 때문에 복되다. 자기 중심으로 살면 미움이기 때문에 그것이 화가 된다.

그러면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은 그것이 공통된 단일 진리, 공통된 자유의 진리, 완전 이치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망하게 된다. 이거는, 진리는 이거는 조물주와 모든 피조물의 그 뜻이 하나이기 때문에 이거는 생명이 되어진다.

그러면, 육체의 생각과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생활, 육체의 생활과 순종하는 생활의 알맹이가 어떠냐? 육체의 생활의 알맹이는 그것은 미움이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생활의 알맹이는 사랑이다.

그러면 어찌해서 육체의 생각으로 사는 건 미움이 되는가? 그것은 자기 중심, 자기 주관, 인간 자기 중심 자기 생각 자율이기 때문에 고거는 범위가 좁고 하나님 중심 위주는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이신 그분의 뜻에 맞기 때문에 그분과 그분의 지으신 모든 만물과의 그 뜻이 딱 들어맞는다. 그것은 옳고 바르기 때문에 맞고 이것은 개인 개인마다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범위도 좁을 뿐만 아니라 사람은 그 자체가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중심이라는 그런 것은 다 삐뚤어지고 만다.

그러면, 중심은 다 한가지지 왜 인간은 자기 중심으로 살면 악이 되고 왜 하나님은 자기 중심으로 살면은 악이 안 되고 선이 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 자체가 완전이기 때문에 그 중심으로 살면 그리 되고 인간은 자체가 완전이 못 되어 있기 때문에 자체가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하면 삐뚤어지게 되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으로 살라고 애를 써야 된다. 또 그러면 사랑으로 살라고 애를 쓰면은 사랑보다 밑에 토대는 뭐이냐? 사랑보다 밑에 토대,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될라고 하면 사랑의 사람이 되기 전에 뭣이 돼야 되느냐? 사랑의 사람이 되기 전에 뭐이 돼야 되느냐? 요게 뭐이 되야 된다고 말해 놨지요? 고거 누가?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했습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기 전에 영혼이 깨끗해져야 됩니다. 영혼이 깨끗해진다 말은 우리 심령이 깨끗해진다 말인데, 영육이 깨끗해져야 된다 말인데 영육이 깨끗해져야 된다 말은 영육의, 영은 깨끗해져 있지마는 그 육이라 하는 것은 심신으로 된 육인데 그 심신이 깨끗해져야 된다. 심신이 깨끗해져야 된다 말은 알기 쉽게 하나면 표시한다고 말하면 마음에 못쓸 것이 들어 있지 안해야 된다.

마음에 나쁜 것이 들어 있지 안해야 된다.

그러면, 그 사람 마음 속에 아주 나쁜 게 들어 있습니다. 나쁜 게 들어 있습니다.

남을 속인, 물질을 속였다든지 사건을 속였다든지 거짓부리가 들어 있으면 거짓부리 들어 가지고 있는 것만치 그 사람의 마음은 깨끗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은 자연히 거짓부리 들어 있는 그 중심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루도, 피부까지도, 피부까지도 이렇게 변하고 저렇게 변하고 그 모든 눈동자도 이렇게 변하고 저렇게 변하고 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하면은 자기 속에 마음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처음 보면 그 사람이 뭐인지 모르지마는 그 사람에게 아주 기쁨이 충만한 사람 있고, 또 그 사람 가운데에 걱정이 가득히 차 가지고 있는 것이 바깥에 나오는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걸 지금 뭣을 근심 걱정 뭘 세밀히 생각하고 근심 걱정하는 사람 그것이 피부에 나와 있고, 어떤 사람은 뭐 그렇지 않고 아무 생각 없는 그런 마음이 비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게 일생 동안 사는 가운데에 그 사람의 용모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위대로 갑니다.

천주교와 이 불교가 비슷한데 그렇기에 신부의 얼굴과 중의 얼굴이 용모가 같습니다. 그는 거게서는 하기를 무아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속에 아무것도 없어야 된다. 아무 생각이 없어야, 그 뭐이든지 없어져야 된다 하니까 그 사람들은 공을 들이기를 아무것도 생각 안 하기를, 무아주의로 아무것도 생각 안 하기를 지금 힘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 안 하기를. 안 하기를 힘을 쓰고 있으니까 ‘음’ 아무것도 그저,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음' 이래 가지고 있기를 거석하니까 그라다가 보면은 부처가 됩니다. 부처나 비슷합니다. 부처 만들어 놓은 것 아니요? 만들어 놓은 거. 그와같이.

보면 중의 용모와 과학자의 용모와 기독자의 용모가 다릅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처음에는 볼 줄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마는 보면, 이 보면 그 사람 보면은 ‘이 사람은 속이 튕 비어 가지고 아무 무사주의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라면 그 사람은 아무 용모에, 피부에 각이 없습니다. 피부에 요런 각 조런 각이 없고 뚜렷하이, 보름달 모양으로 뚜렷하이 그래 있고, 또 과학자는 그 속에 물질적인 그런 각이 많이 져 가지고 있습니다. 요런 거 조런 거 생각하고 자꾸 다각적으로 생각하는 그 생각이라는 것이 피부에 나와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또, 기독자로서의 이렇게 자꾸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자꾸 이래 생각하니까 하나님의 속성이 새겨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을 세상에 무슨, 이 세상에 무엇으로써도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자꾸 돼 간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저 사람은 이런 거 같은가?’ 이 세상에 뭐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안해요? ‘그러면 그 사람 같은가? 그 사람도 같지 않다. 저 사람 같은가? 저 사람 같지도 않다.’ 아무 땅위에 있는 세상 사람하고 다 비유해야 꼭 그 사람 같은데 하고 자세히 보면 그 사람 같지 않습니다. 행동도 그 사람의 본질과 본성은 ‘그렇게 산다’ 했는데 나중에 또 일을 만나 보면 또 영 정반대입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 사람으로서 아무리 형용을 할라 해도 형용할 수 없는 사람, 세상의 사람과는 다른 사람. 그러기 때문에 볼 줄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볼 줄 아는 사람은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자꾸 닮아 가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닮아가기 때문에, 자꾸 하나님과 같아지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은 이 세상에 사람들이 모두 공자니 뭐 톨스토이니 뭐 석가모니니 모두 이런 사람들 다 위인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들과 하나님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같이 생겨졌습니까? 어찌돼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같이 됐어요? 하나님의 형상은 어데 그런 사람들과 같겠습니까? 하나님의 용모가 말이요, 하나님의 용모는 형체가 없어요. 형체가 없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신성, 신격성, 신격성은 사람에게 인격성이 있는 거와 같이 하나님의 신격성이 있다 말이오. 그 신격성과 이 세상에 모두 성인 군자라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신격성과 형상이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달라요. 알겠습니까? 달라요.

그러면 하나님의 그 신격성을 세상에 사람들이 압니까 모릅니까? 모릅니다.

하나님의 신격성이 어데 나타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격성이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격이 제일 잘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신격과 꼭 같은 사람 하나 세상에 왔다 갔는데 그 사람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해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아버지와 꼭 같은 그 신격성을 가졌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신격성, 예수님의 신격성을 닮아갈라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있으니” 베드로후서 1장에 지극히 큰 소망이 있으니 그 소망이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신격성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지극히 큰 소망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 닮은 것은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닮습니다. 닮으면 그거는 용모를 이 세상에서 모른다 그거요.

이래서, 우리가 자꾸 하나님화될라고 애를 쓰고 완전을 향하여 갈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하늘나라는, 하늘나라는 말하면 하늘나라는 사은의 나라라. 그것도 하나 하늘나라에 말하자면 대우,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우를 하는데 이 세상에는 대우가 뭐입니까? 아무리 김일성이는 잔인무도한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을 이북에서는 누구를 제일 대우합니까? 누구를 제일 대우하고 있소? 김일성이를 대우하고 있다 말이오.

김일성이가 악과 독과 기만 술책을 뭐 그보다 훨씬 뛰어나 가지고 이라니까 모두 다 눌려서 억지로 눌려서 꼬여서 속아서 지금 가치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자유로 해방을 주면 대우를 하겠습니까? 거게서는, 잔인과 악독을 대우하는 데도 있고, 또 이 사람은, 인격은 말이요, 인격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격이란 전혀 없습니다. 인격이란 전혀 없고 뭐 사랑도 없어도 그 사람이 기술이 아주 세계에 제일 되는 과학자기 때문에 한 달에 월급을 말하자면 아주 수천 불 뭐, 수천 불인지 뭐 한 달에 수천 불 월급을 받습니다. 이러면 그 사람 그거 가지고서 대우를 받습니다. 그거 가지고 대우를 받아요.

보면 저거는 뭐 저런데, 저거는 아무것도 없는데 막 처녀들이 결혼을 할라고 야단을 지긴다고. 이래서 처녀들의 그 심리의 공통점을 매겼는데 언제는 처녀들이 어떤 사람에게 다 시집가기를 원하느냐? 전부 ‘회사에 들어가 가지고 사원 노릇하는 그 사람에게’ 이라더마는, 또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는 ‘학교 교편을 잡은 사람들에게’ 신청이 거기 또 많고, 또 어떤 때는 또, 그뒤에는 또 ‘정치가 정권자에게’ 이라다가 그뒤에는 조금 발달이 되니까 정권은 그거 험하니까 그 다음에 모두 ‘의사에게’ 또 의사에게 지금 지원을 잘 해요.

또, 요새는 지금 내가 뭐인지 몰라. 요새는 사람들이, 봤어요? 요새는 지금 처녀들이 통계가 어떤 것을 제일 자기의 구혼자로 삼고 있다고 요새 제일 통계 높은 게 뭐이요? 그거 누가 봤어요? 돈 많은 사람. 돈 많은 사람 갈라 하는데 돈 많은 사람 갈라 하는 그것이 제일 숫자가 많다고 하면은 그 사람도 아직까지 미개한 사람이오.

이래서, 사람마다 자기의 됨에 따라서 뭐 권세 돈 그러나 이제 사람이 발달되고 발달되고 다 자꾸 발달되고 나면은, 발달이 되면은 그 다음에 어떤 것을 가치로 삼겠습니까? 땅위에서는 그런 게 없지마는 하늘나라에서는 가치로 삼기를 사은의 나라라. 하늘나라에서 대우하는 것은 뭣을 대우하느냐? 하늘나라의 대우는 전부 사은 대우라, 사은 대우.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감사를 받을 만한 그런 시은의 일이 됐든지, 감사에 대해서는, 감사는 어떤 댓가가 되겠습니까? 감사는 은혜의 댓가가 됩니다. 자기에게 은혜 끼친 게 있어야 거기서 감사를 하지 은혜 끼친 게 없으면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이 세상은 뭐 이런 것들이 다 없는, 거기는 먹을 거 입을 거 없어 가지고서 야단지기는 그런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나라에서는 돈 많은 그런 것은 아주 그걸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러니까, 그 나라에서는 사은의 나라라. 자기가 은혜를 끼쳐서 은혜 끼친 것만을 대우하고 있다. 이러니까 모두 그 나라의 대우는 전부 사은할 것이 적으면 대우가 적고, 사은할 것이 많으면 대우가 크고, 사은 할 것이 크면 대우가 크고, 그 나라의 대우는, 인간을 대접하는 대우는 전부 사은의 대우더라.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과학자, 돈 많은 사람 뭐 이런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사은을 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면 그 나라에는 아무 대우가 없다 말이오.

또,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가치로 삼는 거, 그 나라에 가치로 삼는 것은 뭘로 가치로 삼는가? 그 나라에, 가치로 삼는다 말은 실력으로 삼는다 말인데, 가치로 삼는다, 실력으로 삼는다 말이 달라요 같아요? 가치로 삼는다는 말과 실력으로 삼는다는 말이 다른 말입니까 같은 말입니까? 같은 말이요 다른 말이요? 같은 말입니다. 가치가 실력이요 실력이 가치입니다. 똑똑히 들어가 보면 한가지 말이라.

이런데, 그 나라의 가치와 그 나라의 실력은 뭣이라고 했습니까? 사랑의 희생이 가치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는 실력이 누가 있느냐? 실력이 누가 있느냐? 실력이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주먹덩이가 실력인 그런 지역도 있고, 주먹덩이가 실력으로 되어 있는 그런 단체도 있고, 또 돈이 실력으로 되어 있는 그런 단체도 있고, 과학이 실력으로 되어 있는 그런 단체도 있고, 또 사랑의 희생이 실력으로 되어 있는 그런 단체도 있고, 여러분들은 어느 나라 가 살고 싶습니까? 주먹이 가치로 실력으로 되어 있는 나라에 가고 싶소, 돈이 실력으로 되어 있는 그런 나라에 가고 싶소, 과학이 실력으로 되어 있는 나라를 가고 싶소, 사랑의 희생이 실력으로 되어 있는 그 나라에 가고 싶소, 어떤 나라에 가고 싶습니까? 마지막에 종말은 그 나라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사은으로만 인간을 대우하고 있고 사은 받을 게 하나도 없으면 하늘나라 대우가 하나도 없어. 알겠습니까? 하늘나라는 사은 받을 게 하나도 없으면 대우가 하나도 없어. 또 자기가 사랑으로 봉사할 봉사의, 사랑으로 희생할 봉사할 그 실력이 없으면 하나도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어떤 게 사랑이냐? 사랑은 여게 있으니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 그것이 사랑이라 말이오. 사랑은 뭐이냐?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땅위에 오셔서 우리를 완전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시고, 또 영원히 대속하기 위해서 살으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말이오.

그게 사랑이라. 그거는 끝까지 생각해 보면 그것밖에는 사랑이 없어요.

이 세상에 신혼 부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은 파고 들어가면 그게 사랑입니까, 진찰을 깊이 분석해 가지고서 분석해 보면 그게 사랑입니까 착취입니까? 사랑입니까 착취입니까? 착취야, 착취. 알겠어? 여게 꽃이 있으니까 꽃이 있으니 서로 꺾어다가서 내 방에 내 병에 꽂을라 하는, 꺾어다 꽂을라 하는 그게 사랑이지 그걸 잘 길러서, 더 잘 길러서 자체도 얼마든지 미향을, 아름다운 향기를 품도록 잘 길러주고 또 이거 미향을 나만 맡을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이렇게 하려는 그 성이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무식할 때는 그렇지마는 이북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권세에 눌려 그렇지 이 이남에 있는 지식을 가지고 가면 그 나라 가면 못 살 거라 그거요.

이거 모양으로 어떤 사람이 입신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같이 가다가서 같이 이래 가는데 그 사람이 보니까 천국 들어가는 문이 열렸는데, 그 사람에게 그래 보여 준 거라 말이오. 천국 들어가는 문이 열렸는데 저 보니까 껌껌한 데 있는데 사람이 오디마는 문을 열고 들어갈라고서 ‘여기 천국이라’ 하니 문 열고 들어갈라고 확 들어가니까 안에 환하게 빛이 있으니까 막 도망을 치더라고서. 도망을 쳐 가지고서 저는 깜깜한 데로 가더라고서, 깜깜한 데로.

사람의 본질과 본성에 따라서 어두운 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밝은 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이거는 물질이 어둡고 밝은 그걸 말하는 것인데 하늘나라는 물질의 밝은 그런 게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평가적으로 비판적으로 다 밝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보니까 문을 열고 오더니만 막 좋아서 뛰어 들어오고 어떤 사람을 문을 열고 빛이 확 나오니까 도망을 치더라고서. 어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죽을 때에, 잠깐 기절했을 때에 그 세계를 자기가 봤어. 그래 가지고 그것 말하니까 뭐 야단을 떠들어 쌓고 모두 또 야단을 지긴다 그말이오.

그러면 여러분들, 미국에서 등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그 등을 이거는 모기가 좋아하는 색깔이 있어서 오면 전기에 닿아서 택택거리면서 다 죽어요. 다 죽는데 모기 죽는 것이라고 그것을 돈을 많이 주고 사서 보냈어. 보내서 이거 바깥에다 달아 놓으면 아침에 보면 저 오층에 달아 놓으면 버러지가 밑에 쓸면 어북 이 한 옴큼 돼요. 자잔한 거 막 떨어져 죽어.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를 ‘이거 모기는 그놈이 밤에 속한 놈이 돼 놔서 어두운 걸 좋아하지 밝은 데는 안 가는데?’ 그라고 ‘그 미국 모기는 다른가? 이거 뭐 이거는 죽는가?' 싶어 암만 해 봐야 그런 버러지만 죽지 모기는 안 와요. 모기 그놈은 불을 끄면 옵니다. 요새는 인제 내가 방장을 치고 자요, 그놈이 어떻게 달라들어 쌓는지.

이랬는데, 몸이 좀 조금 거석할 때는 이거 자꾸 체질을 바꿔야 된다고 이라니까 체질을 바꿀라 하면은 영양 모자라는 거 먹어야 되고 이러니까 모기는 덜 날아오는데 기운이 없어 안 돼요. 이러니까 부득이 이거 뭐 해롭다는 거 그것만 자꾸 먹어야 된다 말이오. 그라면 몸에는 영양이 있어 좀 강해지고 모기는 많이 달라들어. 이래 놓으니까 이거 가만히 모기 잡을라 하면 그랍니다. 불을 끄고 가만히 있으면, 요새 모기는 또 왱 소리 안 해요. 안 하고 와서 물어요. 무니까 물면 딱 요래 정했다가 요래 가지고서 불을 탁 켜면 그놈이 먼 데 못 가고, 불이 갑자기 탁 켜졌으니까 가까운 데 가 붙어요. 그러면 붙어 있거든 그래 인제 파리채로 잡습니다.

잡는데, 모기는 말이요, 모기는 언제든지 어두운 걸 찾아다녀요. 또 이래 하루살이니 뭐 이런 낮을, 버러지 가운데서도 빛을 좋아하는 버러지가 있고 어두움을 좋아하는 버러지가 있고, 또 곤충 이런 무슨 곤충 가운데서도, 그것도 곤충은 곤충이지마는 빛을 좋아하는 곤충 또 어두움을 좋아하는 곤충 그게 있습니다. 또 새도 빛을 좋아하는 새 어두움을 좋아하는 새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 물질의 광선뿐이지요.

사람은 그것보다 인격이기 때문에 사람도 옳은 것을 좋아하고 틀리는 걸 좋아하는 것입니다. 가 가지고 거기서 죄짓는 말이나, 뭐 간교한 말, 이간 붙이는 말, 남을 훼방하는 말, 거짓말 이런 거는 들으면 막 기분이 나고 재미가 좋아도 이제 어떤 사람은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의 그 말씀이라야 또 좋은 사람이 있다 말이오.

그러면, 사람도 여러가지 질이 있는데 하늘나라에는 그 나라를 좋아하는 그런 인질로 자기가 바꿔야 되지, 인성으로 바꿔야 되지 자기가 그것을 변화시키지 안하고 가면은 그 나라에 가서 살지를 못하게 된다 말이오. 살지 못하니까 거기 살라 해도 도망 다 쳐 버려요.

그러니까 자기의 모든 심신의 기능을 다 깎아서 치워버리고 하늘나라 가는 건 얼마 안 돼. 이러니까 이것도 참 배울라면,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짜든지 자기의 인간성을 이것을 변화시켜야 됩니다. 인간성을 변화시키고 속성을 변화시켜야 되지 이 변화 안 되면 안 돼요.

변화돼야 되는데, 그 나라는 사은의 나라요 사랑의 봉사의 나라기 때문에 자기가 자, 사랑을 기르는 것이 그 나라의 뭐 기르는 것입니까? 그 나라의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자기가 희생력을 기르는 것이 뭘 기르는 것입니까? 그 나라의 실력을 기르는 거라. 그 나라의 실력은 희생력이요 그 나라의 실력은 사랑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한정이 있는데 희생을 해 버리면 어찌 됩니까? 희생을 하면 그 다음에 남아 있어요 없어요? 희생을 하면은 무한히 할 수 있습니까? 희생을 하면 무한히 할 수 있어요? 우리 ○집사님? 많이 할 수 있어? 무한히 할 수 없어? 무한히 할 수 없어? 그러면 밑천이 떨어져 버리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 할라 하지. 희생을 하고 나면은, 희생하고 나면 밑천이 똑 떨어지는데 할 사람이 있는가? 그러니 다 사랑을 안 할라 하는 거라. 사랑은 희생인데. 사랑은 자연히 희생돼요.

어머니가 며느리한테는 가면 ‘아야 다리야 다리야’ 하며 `내가 뭐 잠을 못 자고 다리가 어짜고’ 이라는데, 어머니를 저 딸네집에다 데려다 놓으면 기어가면서도 자꾸 뭐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소? 왜 그렇습니까? 여게는 사랑이 덜하고 여기는 사랑이 많아 그렇다 그거요. 사랑은 필연적으로 희생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희생이니까 희생을 하면 그러면, 다 사람들이 왜 안 하느냐 하면은 사랑은 희생이니까 희생하면은 자기 밑천이 줄어져요 늘어져요? 늘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줄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들어 봐요, 들면. 줄어지니까 모두 안 할라 하지. 줄어지니까 안 할라 하거든. 사랑의 희생을 하면 자꾸 줄어지니까 자기 자녀에게나, 사랑하는 자에게 하지 그리 안 하면 안 할라 하거든.

그런데, 성경에는 사랑의 희생을 하면은, 희생을 하면은 자기의 사랑과 희생할 그 실력이 자꾸 커진다 했습니까 줄어진다 했습니까? 커져요, 커져. 이걸 모르기 때문에 안 돼. 이걸 몰라. 이걸 안 믿는다 말이오. 누가 믿을 수가 있는가? 해 보면 알지. 해 보면 알아.

여러분들, 자꾸 사랑하니까 사랑의 밑천이 떨어집니까 사랑이 커집니까? 우리 ○집사님? 왜 커지는데 왜 아까는 없다 했어? 각도가 달라 그렇겠지. 커집니다.

사랑의 희생을 하면은 그 희생이 자꾸 적어집니까 자꾸 자라갑니까? 사랑의 희생을 하면 자꾸 자라갑니까 적어집니까? 자라갑니다.

‘그거 이상하다, 쓰면 없어지는데?’ 쓰면 없어지는 것이 저주의 세계입니다.

알겠습니까? 쓰면 없어지는 게 저주의 세계인데 자꾸 옳게 바로 쓸수록이 자꾸 많아지고 커지고 충만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 세계입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요만치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제 이만한 사랑을 주시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주먹덩이만치 했으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한아름 되는 당신이 희생해 주시고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이 밑천이라 말이오. 하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밑천이기 때문에 열매를 자꾸 많이 열수록이 자꾸 뿌럭지에서 자꾸 영양을 많이 자꾸 보급해 줘요. 요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는 자가 복이 있고 받는 자는 불쌍한 사람이오. 주는 자가 복이 있어. 주는 자가 복이 있으니까 자꾸 주고 주고 이래 하면 된다 하지마는 사람들이 다 이 지식이, 첫째 아담의 지식이 다, 마귀의 지식이 꽉 들어 가지고서 주면 손해가는 줄 아는데 주는 사람 있습니까? 없는데, 이러기 때문에 믿어보라 그말이오.

믿어보라.

믿는 거는, 하나님 말씀대로 해 봐라. 해 보니까 되거든. 해 보니까 되니까 이것을 다른 거 물질 이런 걸 해 보니 되니까 이제 ‘사랑과 희생하는 것도 해 보면 되겠다’ 한번 해 보니까 되거든. 그래 해 본 사람은 자꾸 사랑 희생하고, 마지막에는 소유와 몸과 생명까지 다 사랑으로 주어서 희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요것이 기독자의 성공이라 그말이오.

요걸 많이 읽어요. 지금 뭐 봉지만 떼고 자꾸 이라고 있는데 이거 속의 걸 환하게 다 알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기를 하늘나라의 대우로 실력으로,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완전히 인간성을 성화시켜야 됩니다. 성화되기 전에는, 성화 안 된 거는 못 가요. 성화 안 된 거는 그곳에 가는 것이 제일 고통이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얼마나 들어야, 얼마나 들어야 변화가 되고 얼마나 실험하고 경험해야 변화가 될 터인데 듣기도 싫어하고 새벽기도 나오지 안하니까 이 사람들이 언제 성화돼 가지고서 하늘나라에 가서 참 행복된 사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성화되기 전에는 하늘나라가 제일 고통입니다. 마귀는 하늘나라가 제일 고통이오.

우리가 성화돼야 하늘나라가 행복되지.

그러고 윤홍렬씨가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그래 여게 있는데, 세상 떴는데 이제 본가에다가 기별해 가지고서 장례를 할 것입니다. 오늘이 금요일이요? 오늘 금요일인데 세상을 언제 떴는고? 오늘 떴는가 어제 떴는가? 어? 어제 몇시? 뭐라 하노? 오늘 새벽에 봤으면 오늘 떴는지 어제 저녁에 떴는지 모를세? 그거 누가 똑똑히 본 사람 있으면, 어제 언제 봤는데? 그래 잘 갔어. 잘 준비하는 것 같애요. 아주 그 사람이 믿음이 좋았습니다. 몰라, 그 사람의 세계와 우리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그래요. 내가 어제 아침에 들여다 보니까, 좀 건드리니까, 인제 다른 사람이 좀 이래 좀 거석하니까 ‘왜 이래? 지금 나 하나님하고 지금 교제하는데?’ 그란다고 이래 똑똑하게 이라는데 그분이 신앙 좋았어.

그런데 우리가 거기 있어도 미안해서 그래 그래도 어제 ○○○집사님이 그거 이래 합판을 만들어 가지고 이래 합판으로 이래 만들고 이래 또 조그만하게 집을 만들고 또 안에다가 창호지로 도배를 하고 그래서 그래 놨는데 그래 그만 세상 떴습니다. 어제 세상 뜨기 전에 그거 했지요? 그래.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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