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영원한 처소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23일 주전

 

본문 : 고후5:1-10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절로 3절까지에 처음에는 집이라고 말씀을 했고 그 다음에는 처소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다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하나님께서 발표해 주신 것입니다.

집도 자기가 거처하는 곳이요 처소도 자기가 사는 곳을 처소라그렇게  말합니다.또 집이라고 말하기 전에는 장막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장막이라  집이라 처소라, 장막이라고 말하는 것은 옮겨지는 그런 튼튼치 못한 임시  거처하고 있는 집이라 그말입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는 그말은 땅에 있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집이 무너지면, 잠깐 있다가 없어질 처소와 형편이 끝나면 하는 말씀입니다.

장막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자기가 가진 몸도 하나의  장막집이요 또 세상 이런 형편 저런 형편 모든 자기의 사정들도 이것이 다  장막집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좋은 몸을 입고 있고, 또 좋은  선천 후천의 모든 인간의 지능을 입고 있고, 또 좋은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다  입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또 이것을 보다 좀 잘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몸도 다른 사람보다 좀 강건하고 아름다움을, 또 그 마음의 모든 기능도  다른 사람보다도 유능한 사람으로 마련하려고, 또 자기의 모든 형편과,-말귀를  알아들어야 돼. 말귀를 알아들으면 잠이 안 와 말귀를 알아들으면 잠이 안  오지만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잠이 와요.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좀 더 좋게 해  보려고 사람들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무시하는가? 무시하지 많습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좋은  것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알아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무너집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우리 영은 주격이요 마음의 모든 기능들도 다 영이 가진  장막집이요, 그 몸의 건강도 미도 몸의 기능도 다 영이 입고 있는 장막집이요,  또 그 사람의 형편과 처지가 참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치 좋은 형편 좋은  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도 다 장막집입니다.

 세상에 있는 장막집의 그 가치와 등급 차이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서 보다 좀  더 좋은 것을 마련하려고 사람들이 많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우리가 하나 알것은 이것은 다 조만간에 무너질  장막집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무너질지 내일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좋아도 무너지고 나빠도 무너지고 다 무너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땅에 있는 장막집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것은  장막집이라 언제 뜯어 옮길런지 모릅니다. 언제 이것을 뜯을런지 언제 이것을  뜯어서 옮길런지 모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게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그 처소를 크게 둘로 분리하면 하나는  구더기도 타지 않는 지옥의 처소요 지옥의 기능이요 지옥의 그 심신이요, 또  하나는 하늘나라의 처소요 심신이요 기능입니다. 이 둘은 이 세상 장막집이  무너지면 막바로 영원한 처소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무리 부인해도 갑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을 해도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선악과 먹은 그 사람의 자손은  지금도 다 죽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을  아무도 가감이나 변개를 못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 장막집은 몸 마음 또 자기의 형편 사정 처지 모든  자기와 지위나 권세나 재산이나 영광이나 명예나 모조리 그런 것들이 다 한 말로  말해서 장막집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다 자기 지위에서 살고 있고, 자기 처지에서 살고 있고, 자기 형편에서 살고  있고 자기 권세에서 살고 있고, 자기의 소유에서 살고 있고, 자기의 기능에서  살고 있고, 자기 마음 안에 살고 있고, 자기의 용모 안에, 자기의 신체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말로 말해서 장막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다 옮겨질 것이요 뜯어 없어질 것인 것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 장막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상에 아무리 좋은 장막이라도 오늘인가 내일인가 언젠가  뜯겨지고 없어질 것, 아무리 험하고 나쁜 장막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도 뜯겨지고  없어질 것, 없어질 날이 조만간에 닥쳐온다 하는 것을 우리가 요대로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없어질 것이면 없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만 없어지느냐?  인생이 세상을 떠나서 자기 세상이 다 끝나면 없어지느냐?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영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원한 아주 불편하고 불리하고 고통스럽고 수치 스럽고 심히  고난스러워 참 불 속에 있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의 영원을 맞이합니다.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것 아닙니다. 자살한다고 끝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영원한 처소가 있습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 가운데에 타는 것과 같은  그런 영원한 처소가 인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은 보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보응하시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장막집이 끝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데 이 세상에 우리들이  어떻게 산 그 생애에 보응하시기 위해서 산 그대로 하나님이 갚기 위해서 보응의  것으로 하나님이 홀로 만들어 놓으신 영원한 집, 영원한 처소, 영원한 위치,  영원한 지위, 영원한 권세, 영원한 기능, 영원한 마음, 영원한 몸, 영원한  심신의 미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셔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문에 2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탄식이라 말은 너무  자기 형편이 불쌍하고 가련해서 자기를 두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광의  미래가 있는데 이것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 속에 있는 죄악이 들어서 원하는 이  준비는 되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온갖 이 정욕의 범죄만 행하게 되니 탄식이라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자기와 자기 행위를 인해서 탄식하는 탄식입니다.

 '탄식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는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그 처소를 이 세상 처소를 벗지  안하고 그 처소를 덧입기 위해서 입지 못함을 인하여 탄식하고 덧입기 위해서  간절히 사모한다 했습니다.

 '이렇게 입음은' 이렇게 입는 것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그때에 입지 못하고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요것도 좀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잘 들어야 됩니다.

 우리가 장막집에 거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조만간에 벗을 이 장막을 우리가  가지고 장막 속에 거처를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기능도 장막이요, 몸의  기능도 장막이요, 마음과 몸의 아름다움도 장막이요, 자기 형편, 사정, 처지,  지위, 권세, 명예, 재산, 소유 이 모든 것도 자기가 살고 있는 자기 처지요 자기  형편입니다.

 '그 사람 형편이 요새는 참 말이 아닌갑더라. 그 사람이 형편이 차차  풀리는갑더라. 그 사람은 참 좋은 처지에 살고 있어. 그 사람은 참 사람이  꿈에라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처지를 만나고 있더라.' 그렇게 우리가  사람들이 말 합니다.

 이렇게 장막집 이것을 벗으면 안 됩니다. 벗으면 안 되고, 그러기에 '벗고자  함이 아니다' 이래. 벗으면 안 됩니다. 벗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입어야  합니다. 영원한 처소를 입어야 합니다. 영원한 기능을 입어야 합니다. 영원한  마음의 미를 입어야 합니다. 마음의 기능을 입어야 합니다. 몸의 미를 입어야  합니다. 몸의 기능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분을 바르고 머리를 요래 깎고 조래 깎고 하면 용모가  아름다워집니다. 요새는 얼굴도 무슨 수술해 가지고, 나는 안 가봤지마는 동경  가면 전부 꼭 같은 인물이고 꼭 같은 미인이라고, 전부 이것을 조각으로  만들어서.

 그것은 다 장막집인데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 영원한 집, 영원한 처소, 자기  영이 입고 거처하고 살 영의 처소, 영의 집, 영원한 집, 영원히 변동 없을  자기의 마음의 용모와 기능, 몸의 용모와 기능, 자기의 모든 경제 사업 활동  사회 국가 모든 인류 세계에 살고 있는 자기의 모든 그 처소는 그것은 다 무너질  장막집이요 벗을 없어질 장막집인데 그 장막집이 무너지기 전에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을 덧 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이랬습니다. 벗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것을 입어야 됩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대번에 들어서 이해가 안 되면 새기고 새기고 명상을 많이  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며칠 전에 설교한 데 대해서 그것을 이리도  생각하고 저리도 생각해도 아무래도 그것 해결이 안 돼서 밤새껏 잠도 자지도  못하고 앉아서 그걸 내치 생각해도 이리 맞춰도 안 맞고 저리 맞춰도 안 맞아서  할 수 없어 '이제는 아무래도 내가 목사님한테 가서 물어야 되겠다'하고  왔습디다. 그것을 제가 말을 해줘서 해결을 받고 갔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다 한 진리를 그렇게 아무나따나 생각해서 이렇게 저렇게 판정해 가지고 옳은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 한 진리에 대해서 어떤 것은 하룻밤이 아니라 한  달도 계속 연구 과제가 돼 가지고 한 달 두 달, 어떤 것은 십 년 만에, 십 년  만에 그것의 해결을 받아서 '주여! 아멘! 옳습니다! 요겁니다!' 깨달아질 때에  천하 만인간이 반대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노력하지 안하면 되는 것 아닙니다.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이것을 벗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죽기를, 어서 죽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소용 없으니 세상을  염세로 세상을, 염세주의로 세상을 필요 없는 것, 세상을 없어지고 세상을  버리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덧입기를 원한다'  땅에 있는 마음이 미능이, 아름답고 능력 있는. 마음이 미능이 하늘의 미능을  벗기 전에 덧입을 수 있고, 몸의 미능이 하늘에 있는 미능을 벗기 전에는 덧입을  수 있고, 이 세상에 있는 자기의 어떤 지위, 왕의 지위. 왕의 지위를 왕의 지위  벗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왕의 지위를 덧입을 수가 있고, 땅위에 이런 저런  사회에서 자기의 어떤 영광이나 명예나 이거는 다 벗을 것인데. 이 명예 영광  부강을 벗기 전에 하늘에 명예 영광 부강으로 덧입을 수 있다. 덧입을 수 있다.

 덧입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보응시켜 주시려고, 행한 대로 보응 하려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인데 그것은 무엇으로 덧입는가? 덧입는 것은 자기의  현실에서 하나님이 그때에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히는 그 방편을 덧입히는  수속을, 덧입히는 그 절차를 자기에게 명령하는 것이 자기가 왕자리에 앉았을  때에 왕에게 명령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니,  그때에 그 왕의 지위를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대로 자기가 왕 지위를,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왕 지위를 감당하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왕 지위를 감당할 때에 그 왕 지위가 하나님 명령대로 법칙대로  감당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어떨 때는 그대로 감당해도 그 지위가 유지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왕의  지위와 권세자 바싹 뽀사지는 때도 있습니다. 뺏겨지는 수도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과 하나님 명령을 저버리는, 보이는  것을 제가 뺏기지 안하고 잡고 있으나 잠시 후면 장막집이기 때문에 무너질  것이요,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땅에 있는 이 처소 장막집을  하늘의 것으로 바꾸게 하는, 덧입게, 하늘의 것을 덧입게, 하늘의 왕권을  덧입게, 하늘의 사장을 덧입게, 하늘의 그 기능을 덧입게, 영원한 무궁한 하늘의  것으로써 덧입게, 이것 벗기 전 하늘의 것을 덧입도록, 하늘의 것울 힘입도록,  영원한 것으로 변화시키도록 요렇게 하실 때에 그렇게 덧입기 위해서,  덧입는 방편을 주님이 주시는데 그 방편대로 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진리가  짓고 영감이 지은, 진리의 왕권 영감의 왕권, 진리의 기능 영감의 기능, 진리의  부자, 영감의 부자 그것을 입게 되는데 그걸 입으려고 하면 이 세상 것이  빼앗겨지게 되기 때문에 세상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 입는 유일의 방법을  물리칠 수도 있고 또 그 방법을 자기가 입어도 땅에 있는 것을 아무도  가져가지도 못하면 그대로 자기가 입고 있습니다.

 있으면 하늘의 것을 입음으로 끝장나는 것도 있고, 하늘의 것을 입음으로  끝장나지 안하고 아직까지 미결되어 남은 것이 있는 것도 있고, 입음으로  끝났으면 그것은 영원 무궁에 완전한 하늘의 처소로, 하늘의 왕의 지위로,  하늘의 자기의 영광의 지위로, 하늘의 총리, 다니엘 총리직으로, 다니엘은  무궁세계의 총리 지위를 그는 지금 입고 있습니다. 하늘의 처소를 입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에 있는 것은 하늘에 없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의 그림자와 같이, 실상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하늘의 것은 실상이요  땅의 것은 그림자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실상이요 땅위의 고생이라 하는 것은  지옥의 그림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보다. 그것은 확실하고 더 견고하고 더  실상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으면 덧입음으로써 그것이 끝나는 것도  있고 덧입어도 그대로 남은 것이 있습니다. 있으면, 덧입은 것은 덧입었고 남은  것은 아직까지 덧입은 것 아닙니다. 남은 것은 덧입은 것 아닙니다. 남은 것은  그 다음에 현실에 또 그 왕위를 영감과 진리대로 그 왕위를 행할 때에 행한  그거는 덧입게 됐고 남아 있으면 그 남은 것은 또 앞으로 덧입어야 될 그 미결의  것이고 덧입음으로써 끝이 나 버렸으면 완전히 덧입은 것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장막집이든지 그것이 하늘의 것을 덧입음으로서 그것이  끝이 났으면 다 덧입은 게 됐고 그 현실에서 덧입었는데 아직까지 남아서 다음  현실을 접촉해야 될 것이 있으면 다음 현실에 벗을런지 입을런지 모릅니다.

그거는 아직까지 남은 부분은 미완성의 미결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흘 깨달읍시다.

 그러기에 땅에 있는 모든 자기 처소를, 이제 처소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자기  처소를, 자기 집을, 처소라 말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라 말이오. 집이라 말은  더 좁은 범위에서 함축해서 바로 자기가 살고 있는 그 건물 아닙니까? 또 자기는  숙소로 말하면 자기는 그 방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땅에 있는 장막집이  이것이 끝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끝나는 것은 그 장막집을 영원한  처소를 덧입는 사람도 있고 그 장막집을 또 영원한 처소로 덧입되 아주 못쓸  영원한 처소로 덧입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처소는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것으로서 하늘에서 오는 그 처소를 덧입기도 하고 저 깜깜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오는 그 처소를 자기가 덧입기도 하고 여기에서 자기의  처소는 영원을 덧입는 이것으로 현실 현실은 지나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들이 탄식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덧입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이 장막집 이것을  영원한 처소로 덧입는 것,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처소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처소로 덧입는 것, 이것 벗기 전에 영원한 처소로 덧입어서 이제는 이 처소가  영원한 처소를 입어 영원한 처소가 된 것 영원한 처소를 입어 영원한 처소가 된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처소로 우리에게 덧입히는 것은 어떤 것으로  덧입히는가? 그 처소를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요것 좀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하나님께서 자기의 권세든지 지위든지 그것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과거도 자기 지위라는 그것이 자기에게는 상관 없고 미래도 상관 없습니다. 현재  그 지위를 어떻게 하느냐? 현재 그 기능을 어떻게 하느냐? 현재에 자기의,  자기의 처소를 어떻게 하느냐? 현재만이 자기의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하늘에서  오는 처소로 덧입어라. 하늘에 오는 처소를 네가 장막집 벗기 전에 하늘에 오는  처소를 덧입어 이제 이 장막집이, 장막집 이것이 하늘에 있는 처소로  바꾸어져서, 바꾸어져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바꾸어지는 이렇게  덧입는 것,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입고 있는 그 처소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그 처소는 다 그 처소가 그대로는 무궁세계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  처소를 무한하신 영감과 진리로 이것을 변화시켜 버립니다. 변화시킵니다.

 마치, 그걸 뭣으로 말을 할꼬?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서 변질시키는 것,  변화시키는 것 모양으로 이것이 있는데 하늘에 있는 처소가 와 가지고 이것을  변질시켰습니다. 요것 없애는 게 아니고. 요걸 없애는 게 아니고 요것을  변질시키고 변화시켰습니다.

 마치 하늘에 처소로, 이 베조각에 물들이는 것처럼 변할 수 있는 장막을 이것을  하늘에 있는 처소로 감연시키고 변화시키고 변질시키고 변성 시켜서, 요것이  없어지고 딴것이 생겨진 게 아니라 요것이 영감과 진리로 변화됩니다. 영감과  진리로 변화돼서 마치 흰베조각에 검정물 들이면 새카맣다가 검정물을 다 빼는  탈색을 하고, 이걸 가리켜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또 '새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입어서 새카맣던 것과 같이 영감과 진리로 감염되어서 영감과  진리화돼 가지고, 완전 영감화되고 진리화돼서 이것이 변화되는 것, 이것을  가리켜서 하늘에 있는 처소로 덧입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덧입힐 때에는 뭘로 덧입히느냐? 하늘에 있는 처소는 전부 영감과 진리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로 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을 하늘로서 오는 영감과  진리로 되어 있는 그 처소가 자기의 왕위에 왔을 때에는 왕위의 처소를, 왕위의  그 처소 자기의 지위, 그게 자기 살고 있는 곳인데.

 왕위의 처소를 하나님의 영감대로 진리대로의 그 왕위의 처소로 자기가 그  현실에서 행동할 때에 그 왕위와 자기 왕위의 처소는, 왕위의 지위는 진리화됐고  영감화됐고, 진리로 감염됐고 영감으로 감염돼서 영감화됐고 진리화돼서 그거는  완전 영감화로 변질됐고 진리화로 변질된 그것을 가리켜서 성화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변화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늘에 있는 처소가 우리에게 와서 장막집  이것을 하늘에 있는 처소로 변화시켜서, 덧 입어서, 덧입는다 말은 이것은 일차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처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근거해 가지고 하늘의 처소가 마련된다. 이러기 때문에  그 처소를, 우리가 염세주의 아니다.

 이 처소를 근거해 가지고 이 처소를 다만 지옥에 속했던 것이 하늘에 속한  것으로써 변화되고 변질돼서 베조각을 다시 붉은 물 들이면 붉은 것 되고 검은  물 들이면 검은 것 되는 것 마찬가지로 이것을 벗고 하늘의 것을 입으면 된다.

그러면 진리화된다. 영감화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기능을 영감화 진리화 시킬 수 있고  네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권세를 영감화시킬 수 있고 진리화시킬 수 있는 것이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영감화 진리화 되어 그거는 하늘에서 영원 무궁토록  그는 영원히 살고 있고 그 나라에서 입고 살게 된다. 그 나라의 네 처소가 된다.

 그러나 이것을 이 현실에서 영감화시키지 못하고 진리화시키지 못 하고 하늘의  것을 덧입지 못하고 이것을 영감과 진리로 변화시킨 요걸 입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를 버리면 썩은 장막 그대로 있던 것이니까 무너지면 그때는 어떻게 되느냐?  무너지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새롭게 하는 하늘의 처소를 덧입힐 때에 덧입지  아니하면 악령이 주는 영원한 지옥의 처소를 입게 된다. 너는 지옥에 가서  영원한 지옥의 왕위를, 지옥의 부요를, 지옥의 권위를 그걸 네가 입고 있다.

 혹 그러면 '야 지옥에 가도 왕권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람들이 또  미련하게 생각하도록 마귀란 놈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에서 천대를 받아서 항상 구박받는 나사로와 같은 그런 처지에 살았더라면  지옥에 가 가지고 물 한방울 얻지 못하는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울분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츰 고통이 심 하지는 안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홍포  입은 부자로 살았기 때문에 그 음부에 자기에게 부딪히는 그 음부의 고통이 배나  커졌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있어서 악의 자유로 자유하는 것만치 그거는 부자유의  이제, 부자유의 양이 클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만치 거기에는 수치스러움이 커  질 것이고, 편리한 것만치 그 나라에서 불편함이 심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  보응의 자기 자체의 여하에 따라서 그 모든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2절에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는 '벗고자 함이 아니요' 그 다음에도 있습니다. 이는 하늘의  것으로 입,어서, 하늘의 것으로 입어 영원한 세계에서 입지 못한 자로 나타나지  않으려 함이라.

 그러면 덧입기를 원한다. 이거는 비유가 안 됩니다마는 이 다섯 손가락 있는 이  형체를 만들어 가지고 금으로 여기다가 입혀서 금을 입혀서 멕기한다면 내나  다섯 손가락이 금 다섯 손가락 금손이 될 것입니다. 네 손가락을 입혔으면 네  손가락 될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도 없는 이런 주먹을 다시 그 멕기라든가 뭐  입혔으면 그것이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이런 저런 지위 처지 그것을 무시하지 마라. 그것이  전부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을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형체다. 아담에게 속한  그 형체인데 그 형체를 하늘의 것으로 덧입는 것, 영원 무궁한 것으로 덧입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것이 없이는 덧입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덧입는 것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만 덧입지 죽으면 덧입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좋은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지위를  가졌었는데 좋은 지위를 하늘에 그 지위로 덧입었습니다. 하늘의 지위로  변화시켜서 승격시켜서 하늘의 지위로 완전히 변질시켜서 영원한 하늘의 지위가  된 그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주 누구보다도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그  세상 처지에 있었습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에 있으면서 하늘에 오는 처소를  덧입었습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불쌍하고 가련한 그 처지에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혀서 하나님께서 영원한 처소를 덧입혀서 영원한 그는 하늘나라에서  불쌍하고 가련하고 그 비참한 거기에서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어 영감과  진리대로 그대로 만족하고 그대로 거기에서 기뻐하고 하늘에 오는 처소를 일어  영원함을 입었으니까 그것은 아마 참 희귀한, 골동품이라고 할까요, 기이한  괴물이라고 할까요, 기이한 조각물이라고 할까요?  하늘나라에 그 사람은 높은 권세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아 그 사람은 높은  권세를 영감과 진히의 것으로 변화받아, 하늘나라에도 높은 권세의 영감과  진리의 것을 하늘에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 대신을 하늘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그 다음에 4절에 보면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덧입고자  함이니' 요것 벗지 안하고 덧입는다는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합시다. 벗지  안하고 덧입는다는 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러기에 이 하늘나라는 별개의 나라가 아닙니다. 별게 아니라. 땅에  하나님께서 일차 아담에게 준 우리의 형체를 영원한 형체로 덧입혀서 영원한  형체로 변화시킨 것, 변질시킨 것, 그러기 때문에 다 환하게 봅니다. 서로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처소가 어떤 사람은 이 세상 것으로 평가하기를 그 사람의  가치가 높다 낮다 이것으로써 평가하는데, 높다 낮다, 높은 사람은 영광이 있을  것이고 낮은 사람은 천할 것입니다. 이런데 높은 자는 높은 데에서 하늘에서  오는 그것을 입었습니다. 높은 거기서 하늘에서 오는 높은 것을 입었습니다. 그  높은 것이 하늘의 진리와 영감으로 변화시키는 변화시키는, 그 높은 것이 변화가  됐으니까 하늘의 높은 것으로 변화가 됐습니다  하늘의 높은 것으로 변화가 됐으니까 우리가 이 다 이제 부활해 가지고 갈 때에  그 사람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산 사람 그것을 다 자기 처소를 가지고  하늘의 것을 입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다 벗 어버렸고 그게 다 벗어버렸으니까  그것이 없습니다. 없고, 어떤 사람은 있는 그것을 다 하늘의 것으로 덧입혀  가지고 이것을 변화시켜 가지고 변질시켜 가지고 하늘의 것으로써 완전히  변화시켜 가지고 무궁세계에 내나 그 지위 그 권세 그 영광 가지고 있고,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이게 문제가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것은  그렇게 그것을 하늘의 것으로 덧입어 가지고 가서 살면 좋겠는데 아주 나쁜 천한  것 그런 것은 하늘의 것을 덧입어 가지고 있으면 어 떻느냐? 세상에서도 천한 자  된 것이 분개한데, 참 불쌍한데 이 천한 그것이 하늘에 가 가지고도 천한 것이  되어 있으면 좋을 게 뭐 있느냐?'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가지겠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면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다른 면으로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전부 하나님과 하나님의 활동 영감, 또 영감이 나온 그 진리,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를 중심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거기에서도, 천한 자리 거기에서도 하늘에서 오는 그  하늘의 처소를, 하늘의 처소를 자기가 덧입는 것,  그러면 이 세상에서 천한 그 현실 형편 사정 처지 천한 처소를, 천한 형편에서  살고 있는 천한 형편, 이 천한 형편에서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천한 형편을  그이에게 입힐 때에 천한 형편을 입었습니다. 그거는 천한 형쐰에서 하나님이  영감으로 천한 형편 노릇을 하라 진리로 천한 형편 노릇을 하라 할 때에 그는 그  천한 형편 그 사정을 천하게 여기지 안하고 천한 형편 사정 그것을 만족히  여기고 천한 형편 사정 거기에서 영감과 진리를 고수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그  천한 형편 사징에서 살았으니 그것은 무궁세계에 '이는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세상에서 제일 천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형편에 살면서 거기에서 영감과 진리를,  불만 불평 없이 영감과 진리대로 이 천한 형편 사정 생활을 했다. 이 천한  형편과 처지의 자기의 형편 사정 생애를 불만 불평하지 안하고 불쌍하고 가련한  형된과 처지에 그 생애를 영감대로 하고 진리대로 그대로 했다.' 요것이  없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갑니다.

 그대로 가니까 하늘나라에서, 이는 영광의 처지와 형편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꽝의 처지의 형편을 네가 하늘에 있는 영광의 처지의 형편을 덧입어라. 하늘의  영광의 처지의 형편을 덧입는 것은 그것이 땅에 마귀화돼 있고 죄악화돼 있는 네  권세가 이제는 진리화되고 영감화되고 하나님화되는 그것이 영원한 처소요  영원히 네가 가질 지위인데 그렇게 바꾸어 가지라 해서 바꾸어 가진,  어떤 사람은 높은 왕의 그 장막을 벗기 전에 하늘의 처소로, 왕의, 하늘에 있는  왕의 처소로 덧입은 사람이 하나 떡 나오고, 하나는 땅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그 처지에서 그 처지를 불만하지 안하고 그 처지에서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를 그대로 영접해서 그 불쌍하고 가련한 그 처지를 영감대로 했고 진리대로  해서 이래 나섰으니까 이것은, 아주 후자는 볼 것이 없는 조그만한 것이고 이제  전자는 아주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인데,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평가될 때에 그  하나는 작고 하나는 큰데 그 평가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가를 하실까?  어떻게 평가를 하실까?  네 그 평가가, 그 평가를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때, 이다음에 우리가 그걸 볼  때에, 보고 우리가 평가를 할 때에, 그 대우를 할 때, 그 가치를 대우할 때  평가할 때에 어떻게 평가할까? 왕으로 된 큰 것을 높이 평가할까? 그 제일 천한  것으로 하늘나라의 것을 덧입어서 천한 그것이 영감과 진리화된 것과 존영한  것이 영감과 진리화된 그 둘이 나타났을 때에 하늘에서는 평가를 어떻게 할까?  우리의 양심으로서는 평가를 어떻게 할까? 모든 존재들이 평가할 때는 어떻게  평가할까? 어느 것을 크다 어느 것을 작다, 어느 것을 영광되다 어느 것을 좀  영광이 덜되다. 그렇게 평가를 어떻게 할까?  자, 여러분들이 평가하십시오. 같이 동등으로 평가할까 차이점 있게 평가할까?  하나는 작고 하나는 큰 것으로, 하나는 가치가 크고 하나는 가치가 작고, 하나는  대우가 크고 하나는 대우가 작은 것으로, 크다 작다 이렇게 평가할까? 오히려  꺼꾸로 작은 것을 크다 하고 큰 것을 작다 하고 이렇게 꺼꾸로 평가할까? 둘 다  동등으로 평가할까? 어떻게 평가할까? 하늘나라 가서는 어떻게 평가되리라고  여러분들이 생각이 돼집니까? 한번 대답을 한번 해 보십시오. 어떻게  평가되겠습니까?  예? 동등하게 평가한답니다. 동등하게 평가한답니다. 자, 동등으로  평가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한번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한번 손 들어 봅시다.

안 드네. 나도 동등으로 평가되리라 나는 확신합니다. 왜? 그거나 이거나 하늘의  것을 덧입는 것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긴 것이,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그것이나  이것이나 둘 다 어려움이 같을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같고 다르지 안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대우는 동등으로 대우하지 그것을 차별 대우를 못 할  것입니다. 네,그렇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가 보면, 제가 언제 한번 어데 저 꽃집에 갔습니다. 여러 해  됐어. 꽃집에 이래 떡 가니까, 꽃집에 갔던가 저 어데 전시회에 갔던가 어데  갔던가 모르겠습니다. 어데 갔었는데 가니까 분재가 하나 있었습니.다. 분재,  동이 분(盆)자, 이래 심어 놓은 것. 분재가 하나 있었는데 아주 조그만한 그  소나무입니다. 조그만한 소나무인데 그 가격을 기록했는데 보니까 얼마나  많은지? 그 가격이 몇백만 원이라. 몇백 원을 그 가격을 몇백만 원으로 내가  기억하고 있어. 뭐 이래 아름되는 소나무도 그렇 가격이 그렇게 안 되는데  그렇게 얼마되지도 안한데 몇백만 원이라 가치가 쓰여 있고, 저쪽에는 보니까  소나무들이 미꿈 미꿈하이 뭐 이런 것도 인제, 뭐 꽃나무 이런 것 미꿈미꿈한데  그런 것은 모두 몇만 원 몇천 원 그렇습디다.

 그래서 그래 나는 이상하다 해 가지고 다시 되돌아갔어. 되돌아가 가지고 그  소나무를 봤습니다. 보니까 볼수록 보니까 또 보이고, 보니까 또 보이고, 보니까  또 보이고 암만 봐도 새것이 나오고, 암만 봐도 권태 안 나고, 또 보이고 또  보이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것 참, 하나 하나가. 그래, 이다음에 세상에서  제일 천한 자가 하늘에 처소를 입은 자는 그 소나무같이 그렇게 가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치 있는 것.

 이러기 때문에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을 때에 홍포 입은 부자는 그를  옛날같이 심부름꾼으로 하려 했지마는 그의 영광은 지금도 천하에 복음 전하는  데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오전에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이 세상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의 자체, 우리의 심신의 기능, 이 모든 세상에 속한 이 모든  것, 우리의 처소, 이것은 장막집이라 이것은 무너질 것이라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라. 그런데 이것을 영원한 것으로 덧입을 수 있다. 하늘의 것으로 덧입을  수도 있고 영원한 지옥의 것으로 덧입을 수도 있다. 영원히 덧입을 수가 있다.

 덧입을 수 있으면 이것을 벗고 입느냐? 아니야, 벗지 안하고 그걸 그 형태  그대로 거기다가 멕기만 한다. 거기다가 이제 염색만 한다. 진리와 영감화만  시킨다. 진리와 영감화시켜서 그는 영원히 산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 작은 것이 만족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필요해서 당신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서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셨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주샀고 내 형편을 당신이 만들어 주셨으니 내가 당신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것만이 내 소망이요 내게 본분이지 딴게 뭐 있나?  이러니까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줄 알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하신 것을 자기가 깨닫고 감사하면서 그 위치 그 처지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단마음으로 순종해서 영감화 진리화 시켰다면 그것을 뭐라고  말할까? 그걸 보물이라고 할까, 그걸 골동품이라고 할까, 그걸 무슨 기이한  신비한 것이라고 할까? 이제 그렇게 돼서 될 것이기 때문에,  큰 데서 자기가 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든 백성들이하나님 말씀대로 하려  하니까 안 되고 마구 이래 하는데 그 왕권에서도 권리는 있기는 있지마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왕권을 내놔야 되겠고 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강제하며 이러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거기에도 왕권에서도 꼭 같은 어려움,  장관 위치에서도 꼭 같은 어려움, 사장에서도 꼭 같은 어려움, 동장에도 꼭 같은  어려움, 시장에서도 꼭 같은 어려움, 구청장에서도 꼭 같은 어려움, 호주에도 꼭  같은 어려움, 주부에게도 꼭 같은 어려움, 누운뱅이도 꼭 같은 어려움, 거지에도  꼭 같은 어려움, 이런데 어데서든지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그를 섬기는,  그를 숭배하는 그 숭배심, 그를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 요게서 가치가 있고 그  다음은 진리대로 되는 그 형태에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 세상에 있는  형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입는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 모든 죄악으로 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진리와 의로 되어 있는 새사람을 입으라' 뭣이?  우리의 심신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 심신은 악한 것 아닙니다. 우리 심신은  죄악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심신을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써 물을 들이기  때문에 이거 순전히 죄악의 것이 됐지 그것만 벗어서 탈색시켜서 없애버리면  이것은 아무 죄도 의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를 입어서 영감과  진리화되면 이것은 의로운 것이요 완전한 것이요 깨끗한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 자기의 모든 처소를 이것을 벗는 것으로 알지  말고, 이것을 벗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인 줄로 알지 말고, 이걸 벗고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이 세상에 보기에 좋은 것은 좋게 여기고 나쁜 것은 나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는 자기 처지에서, 훌륭한 자리 올라가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낮은 처지에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 안 하는, 그 둘의 가치는  낮은 처지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 어려움이나 훌륭한 가운데서  감사하는 그 어려움이나 경중이 꼭 같습니다. 꼭 같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요대로 하늘의 것으로 도금해서, 성전에 보면 금으로  입혔다 이랬어. 하늘의 것으로 도금해서, 진리로 도금하고, 진리로 입히고  영감으로 입혀서 이제 이 다섯 손가락을 진리로 입으면 다섯 손가락이 진리 입어  가지고 있을 것이고 하나면 하나 입고 있을 것이고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  형태를 그대로 벗지 안하고 하늘에 오는 처소를 덧입는 이것이 영원한 우리의  처소가 되어지는 것이니까 벗지 않는다는 것, 요것이 하늘의 처소로 덧입어야  된다는 것, 그렇게 하늘의 처소로 덧입지 안하면 지옥의 처소로 덧입게 됩니다.

하늘의 처소로 덧입어야 된다는 것,  덧입을 때에 세상 형편의 사정이 요 모양 조 모양, 조 모양 요 모양인데 요  모양에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고 섬겼고 진리와 영감대로 했고 저  모양에서, '세상에 저런 형편은 꿈에도 생각 못 하겠다' 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고 만족하고 그저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의  기쁨의 뜻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만족하고 여기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나는 섬기겠다 하는 그것은 기이한, 말한 소나무  모양으로 가치 있는 것,  높은 지위 권세에서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냐? 그것도 자기를 부인해야 높은  지위에서도 하늘에 오는 처소를 덧입을 수 있고, 아주 천한 자리에서도 자기를  부인해야 거기에서도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을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는 당신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당신의 존귀히 섬기는 거기에서만 가치의  근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알고 이 세상 처지를 불만 불평하지 말고  거기에서, 하늘의 처소는 현실에서만 입는 것이니까 하늘에 오는 처소를 그  자리에서 입어서, 자기 현실 그것이 그대로, 현실 그것이 변동되지 안하고  현실의 처지 모양 그것이 그대로 그대로에서 진리화 영감화 되는 그것이 우리의  하늘 나라의 처소라 하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러기 때문에 그  가치는 꼭 같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런 것을 대번에 선뜩 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자기에게 지식으로는 알아도  속에 느껴짐이 문제입니다. 느껴짐이. 이것 여러분들이 느끼면, 여러분들이  느끼면 적어도 하룻밤은 통곡을 할 것이오. 느끼면 하룻밤은 통곡할 것이요  견디지를 못할 것이오. 그저 껍데기로 이렇게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초신자를 위한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악령의 강한 쇠사슬과 깊은 사망의 감옥 속에서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역사하사 건져 해방시켜 주님 앞에 돌아와 자유하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은 영원 전 주의 것이 흑암에 삼키워 있다가  주의 품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사오니 영원히 주의 것이요 주님이 간섭하시고  주관하시고 안보하시고 은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희들에게 영감의 은혜와 진리의 은혜와 주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와 모든  존재 순서가 다 저희 구원 위해서 있는 이 어마어마한 광대한 사실을 믿는  믿음을 저희에게 더하여 주셔서 전심을 기울여 주님을 감사하며 기뻐하고  두려워하고 섬기며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주님에게 의논하여 주님의 돕는 은혜로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영육의 강건을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 믿음이  날로 연한 순같이 자라가게 하시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뇌심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께서 위로와 축복 주셔서 앞으로 더욱 자타의 구원에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76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1절-25절/ 1985. 3. 30.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275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1985. 4. 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274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4절-27절/ 1985. 3. 31. 주새벽 선지자 2016.01.11
273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1985년 7 공과 선지자 2016.01.11
272 하늘나라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1. 5.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271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2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270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9.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9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20.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8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16절/ 1981. 11. 20.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7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8.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266 하늘나라의 가치관/ 마태복음 18장 1절-5절/ 1985. 10 29.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65 하늘나라의 가치와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3.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4 하늘나라의 실력/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3 하늘나라의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2 하늘의 소망으로 일하라/ 고린도전서 15장 29절-58절/ 1988. 4. 10.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 하늘의 영원한 처소/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1983. 10.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260 하라, 하지 말라/ 신명기 28장 1절-6절/ 1986. 10. 29.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259 하라는 것, 하지말라는 것/ 신명기 28장 1절-15절/ 1985. 2. 26.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58 하루를 하나님 경배로 시작/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1984. 1. 6.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57 하와의 실패 원인 세 가지/ 창세기 3장 1절-4절/ 1980. 1. 2. 수저녁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