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기적과 축복이 있다

 

1985. 12. 17 새벽

 

본문:누가복음 17장 5절∼6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과 전화를 했는데, 그 사람도 역연 말하기를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말쟁이가 제일 밉다고, 말쟁이가 제일 밉상이라고, 말만  쩔쩔하고 하나도 이루어지지는 안하는데, 말만하고 이루어지지 안하는 그게 제일  밉상이라고 요새는 전부 말쟁이뿐이라 전부 말로 믿는 사람, 입은 중얼중얼하이  잘 하는데 하나도 기적은 나타나지 안해요. 기적이 나타나지 안하니까 그 우리가  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교회에 내가 그 형편을 물으니까 그 교회는 자꾸 기적이 나타나.

기적이 나타나는 걸 또 알고 있어 본인들도 알고 ‘아, 이런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축복이 나타났다.’ 본인도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 것을 알아서 그것을 교회다가  자랑을 하고 또 다른 사람도, 자랑을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자랑하고 나서 보니까  그 사람에게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 것을 알게 되고, 이래서 기적과 축복 나타나는  것을 온 교인들이 알아.

그런데, 우리 교회는 어짠 일로 말이요 기적과 축복이 안 나타나는지. 나타나는데  숨겨 놓은 그자는 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여기 이거 망해야 돼요! 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는데 왜 이걸 감춰 놓고 말하지 않아요?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뭣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숨깁니까? 그거 안 됩니다. 그거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악령이 이렇게 가득 차서 원수가 많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도 살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런데,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도, 하나님이  줘도 모르고, 그것은 다 제가 잘해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다 말을 암만 말해도 곧이 듣지 안하고 믿지 안하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서부교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에 대해서는 아무 소망이 없어. 소용이 없어. 전부이 제힘  가지고 살라고 하지. 하다 안 되면 거짓말 하는 그런 더러운 그 실력이라도  거짓말 하는 실력이라도 제 실력으로 살라 합니다. 남을 꼬우고 죄를 지어서  드러나면 곧 감옥에 갈 만한 그런 일이라도 제힘으로 해 가지고서 무엇을 해  볼라 하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와야 되지 기적과  축복이 안 오면 안 된다 요걸 믿는 사람들이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먼저 믿는 것이 하나 안 믿으니까 다음 것도 안 믿고 안 믿고 이러고,  모두 다 어짜든지 각각 제 욕심 제 소원대로 제 주장대로 제 꾀대로만 자꾸 하고  나오고 있습니다. 가정에도 그런 것들뿐이고, 교회도 그런 것들뿐이고, 자신도 그  자기 속에, 속에나 밖에나 다 그런 것뿐이고 이러니까 뭐 우리가 예수 믿어  가지고 효력이 날 것입니까? 예수님 믿어서 효력이 안 나면 그거 예수 더럽게  믿는 것입니다. 잘못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만 세상에서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 저 사람 보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기적과 축복이 와서 그  사람을 인간이 할 수 없는 초자연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만들었으면 사람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놀랠 것이고,  행위가 만들어진 걸 보고 놀랠 것이고, 그 사람에게 그 껍데기 무슨 모두 자기의  하는 사업이나 일이나 그런 것이 되어지는 것을 보고 ‘아,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구나. 저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구나.’ 이게 우리에게 나타나야 될  터인데 이게 나타나지 안하고 우리는 전부 말 신자입니다. 말뿐이오. 행동은  하나도 안 고치고 말뿐이니까 뭐이 되겠습니까!

그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과 두  가지뿐이오. 하지 말라는 것은 하면 죄가 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오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면 그것이 의가 되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뭐, 제일 야문 것이 금강석이 제일 야물다 하던가,  금강석이 제일 야물다 하는데 암만 금강석같이 야물고 독하고 모질고 그렇게  아주 강하고 억새고 배짱있고 강퍅하고 미련하다 할지라도 제까짓 게 뭐,  하나님의 징계 한 번 받아 두 번 받아 자꾸 받으면 깨지고 깨지고 망해지고  마지막에는 제가 안 휘여지고 어짤 것이며 안 깨지고 어짤 것입니까? 이러니까  전부이. 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형편인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형편인지 그것을 우리가 스스로 좀 반성을 합시다. 왜 우리가 원치 안하는 일들이  자꾸 닥치며, 왜 우리에게 그 자꾸 남한테 천대받는 그런 일이 닥치겠읍니까?  이것은 전부 우리에 죄 값이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우리 현실마다, 현실마다 하나님의 축복이든지 징계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일 없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든지 축복을 베풀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와 가지고서 징계를 해서 나를 지금 절단내는, 치는 징계하는 치는  멸하는 그런 역사가 있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하고 지나가지 그냥 지나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인서 14장 23절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끝절에 보면, 끝에 보면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은 연고는 다 죄가 됩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안한 것은  다 죄가 됩니다. 「믿음으로」 고 다음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니라’ 한다는 말은  우리는 움직이는 걸 말하지 않습니까? 말한다,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다.

수족으로 움직인다 그거 다 행동 아닙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니라. 그러면 순종으로 움직이지 안하는 것는 다  죄니라.

그러면 우리가 현실마다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까?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까? 송장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현실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감동시키시고, 또  지시하시고 명령하시고, 또 이렇게 하라고 요구하시고 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없는 시간은 없다 하는 것을 요런 성구를 가지고 확정을 지우십시오. 우리의 언행  심사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아니한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라. 죄라 말은 삐뚤어진 것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현실마다 우리의 언행  심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면 의가 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면 믿음을 좇아 하지 안하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면  다 삐뚤어진 것이다. 그러면 삐뚤어지면 적게 삐뚤어진 데는 적게 징계가 있고  크게 삐뚤어진 데는 크게 징계가 있으니까 마치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말한 것같이 하나님 앞에 그저, 그 큰 일은 하지 아니해도 조금씩  조금씩 자꾸 삐뚤어진 것 자꾸 이래 삐뚤어진 것만 하니까 하나님의 징계가 조금  징계 조금 징계 조그만씩한 징계가 자꾸 오니까 이 징계만 해도 사람이 피곤하고  사람이 다 그만 무능해지고 모든 게 지쳐지고 모든 게 절단나집니다.

그러니까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명령 곧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원하시는 것 그것이 없는 시간이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고서 놓지 말아야 됩니다. 저 혼자 앉았든지 뭐 둘이 있든지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든지 또 우리가 자든지, 자는 것도 하나님이 자라 하니까 그거는 자는 거는 또  하나님의 자라 하는 뜻입니다. 자라 할 때는 자고, 또 깨어 있으라 할 때는 깨어  있고 기도하라 할 때는 기도하고, 성경 보라 할 때는 성경 보고, 또 이런 것 저런  것 눈으로 할 것은 하라 또 하지 마라, 입술로 할 것 안 할 것, 자기 생각으로 할  것 안 할 것, 마음으로 할 것 안 할 것, 소원으로 할 것 안 할 것 이 전부  하나님께서 세밀히 우리를 간섭하셔 가지고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와 성신의 감화,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 그것이 없는 시간 없다.

없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면 그것이 다 의가 되고 기적과  축복이 오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을 따라 하지 아니하고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제 생각 제 속에도 돈 욕심하는 이놈, 돈 욕심내는 이놈도 있고 명예  욕심내는 놈도 있고, 자기 평안하려고 욕심내는 놈도 있고, 자기 주관 감정 뭐  시기 쟁투 이런 더러운 그런 모든 행락 오만 것이 다 우리 속에 가득히 있는데  이놈들이 와 가지고 이게 뭐이냐 하면은 악령, 악성, 악습의 새끼들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의 새끼들인데 이게 우리 속에 가득히 있어 가지고서 우리의 생활을 다  더럽히고 자꾸 징계받는 일만 하라 하니까 우리가 견뎌냅니까? 이러니까, 어떤 현실이든지 혼자 있든지 여럿 있든지 우리가 잘 때는 하나님이  자라 하니까 그만 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자지 안할 때는 하나님께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 뜻 없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인도  없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지도 없는 일이 없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도가  뭐이며 내게 대한 뜻이 뭐인가 요것을 찾아서 하려고 하지 안하고 그 대뜸 다  치워 버리고, 제 욕심대로, 제 욕심대로, 어짜든지 제 욕심대로 제 속에 모든  죄악의, 죄악이 충격 주는, 죄악이 충격 주는 무슨 감정이라든지 원망이라든지  시비라든지, 뭣 때문에 제가 망해 놓고 남을 원망하느냐 그말이오. 남의 죄로서  제가 망하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성경에 말해 놨소, 제게 나쁜 일 오는 것도  제게 망하는 것도 제게 비참 오는 것도 다 제 소행의 결과지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요것만 해도  깨끗해집니다. 그라면 그만 당장 알 수가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뜻이라. 내가  지금 이 일이 하고 싶은데 이거는?’ ‘아, 그거는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또 여기  대해서 누구 사람에게 원망이나 불평이 있다,’`아, 그것도 할 게 아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면 현실마다 있는데 그 하나님의 뜻이 뭐인지 그것을 우리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다 알 수 있느냐? 성경을 몰라도 깊은 거는 모르지마는 대략은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선지들이 말한 그 지도와 예언이 우리 각자  속에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요? 성경 몰라도  있습니다. 성경 몰라도. 아주 크게 딱 들어맞는 거는 없지마는 일반 하나님의  뜻은 다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받고자 한다 말은  남이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내게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그 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하면 대개는 하나님의 법칙에 맞습니다. 저는  그런,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는 그렇게 해 주는 것을 싫어하면서 저는 남에게 그와  같이 하기 때문에 그것이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라. 율법이라 말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오. 하나님의 법이  다 이런 법들이라 그말이오.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다 저렇다 가르쳐 준 것이 다 이런 종류의 것들이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끝까지 딱 들어맞지는 안하지마는 우리 일반 보통 생활에  대해서는 환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내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때는 없으니, 내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현실은 없으니 그 뜻을 행하면, 순종하면, 믿음으로  그 뜻을 순종하면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고, 그 뜻을 어기면 뭐입니까? 뭐이  나타납니까? 징계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는 때가  없다. 또 우리 현실에는 마귀란 놈이 우리를 유혹시키는 유혹이 없는 때도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기적과 축복이 나오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마귀 요놈이  꾀우는 대로 그대로 하면은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마귀의 유혹이 없는 현실이 없다 .

그러기 때문에 내 현실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이냐 하나님의 징계냐 이 둘  중에, 이 둘이 다 내 앞에 있으니까 이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내가 하나  취하고야 말지 안 취하고 말지를 않는다. 제딴에는 아무리 잘되고 싶기를,  사람들이 다 뭐 잘되기를 원하고 원하지마는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분이  자기에게 징계밖에는 줄 수 없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징계 주는데 제가  하나님보다 강합니까? 또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 주시기를 원하고 축복 주시는  일은 내가 하는데 천인 만인이 나를 방해하고 해한다고 그 하나님이 축복이  거두어져 가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보다 강합니다. 무한히 강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얼마 안 남았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과 또 마귀의 유혹하는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 앞에  있으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어데까지 컸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절단나는 것도  얼마 안 가 절단나 버립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위대하고 뭐 어떻게 대성공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절단날려면 대번 절단나요. 아무리 또 불쌍하고 가련하다  해도 그 사람이 커질라면 당장 커져 버립니다. 얼마 안 걸려. 당장 커져.

어제 아침에도 그런 말씀을 했지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과 이 축복을  하시는데 우리에게 하는 것은 제일 귀한 것이 뭐입니까? 제일 귀한 것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바로 되도록 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하고 큰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 사물과 바로 관계가 되도록 하는 것이  둘째로 큽니다. 그라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사람 협조가 오고 물건 협조가  옵니다.

그런데,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적으로 와서 역사하시고 축복으로 역사하시는  자체에 대해서는, 자체에 대한 기적과 축복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그런 거는  무시합니다. 자기 속에 이렇게 했더니마는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자기의 마음이 감화가 되어서 자기의 마음에 회개가 되어지고 자기 마음이  변화가 되어지는 이런 거는 뭐 사소한 걸로 여깁니다. 돈이나 그까짓 것 뭐  몇십만 원이나 몇백만 원 생겨도 ‘하이구, 축복 축복’ 이것은 참 껍데기요, 이것은  진짜 예수 믿는 데는 이것은 예수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것을 주는 것이지  베드로에게 그렇게 고기가 많이 잡힌 그런 일 준 것이 베드로에게 축복으로  줬습니까? 아니오. 그것 보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이것 되는 것 보니 아,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생이 있고 하늘나라의 무궁세계의 부강이 있는데 하룻밤  나그네가 오늘 이사갈지 모르는 이 세상의 것이야 좋아 봤자 그까짓 거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 아니가? 이래서 이 껍데기 이 땅에 속한 것을 인해서 하늘에  속한 것을, 영원한 것을 그것을 가지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의 표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니까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이 있는 이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면 없어지지 안할 영원 완전한 것이 이루어진다 하는 하나의, 볼  수 없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현실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다. 기적과  축복이 있는 데는 그 기적과 축복이 와 가지고서 나로 하여금 아주 참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자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나를 만드는 이  기적과 축복이 있고, 또 그 다음에는 내가 가지고 있을 것들, 가지고 있을 것들  가지고 있을 것 중에는 무궁세계의 가지고 있을 것 그것이 더 귀중하니까 그게  이루어지고, 껍데기는 뭐입니까? 세상에서 잠깐 가지고 있다가서 없어질 것들이나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것을 이용하고 다 이용하는 시간이 지나가면 집어 던져  버리고 갈 그런 것들 마지막으로 껍데기로 준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아셔서 제일 알맹이 내 자체에 대해서 기적과 축복을 주실 그  순서되는 그것 주시고, 또 내가 가져야 할 그런 것들을 주실 것은 그런 것  주시고, 가져야 될 것 중에는 또 세상에서 가져야 될 것 주셔야 될 때에는 또  그런 것 주시고, 이런데 우리가 뭐 전부 제힘으로 제가 하지 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바라지 안하니까 무슨 기적과 축복이 올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와도 언제든지 껍데기 없어질 것 제일 껍데기만 원하고 있으니까  껍데기 원하는 것은 한 번 두 번 껍데기 원하는 것을 주지요. 주는데, 알맹이 안  된 것이 껍데기가 되면 어찌 됩니까? 사람 안 된 그것이 권세 가져 보십시오. 그  권세로 망하지 안하는가? 사람 안 된 것이 돈을 가져 보이소, 그 돈으로 망하지  안하는가? 이러니까 제일 문제가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오. 그 다음에는 이제  자기에게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영원 무궁세계에서 영원히  자기에게 필요한 그런 것들을 마련해야 되겠고, 그런 걸 마련하기 위해서 또  껍데기 이 세상에서 잠깐 이용하고 갈 그런 것들도 또 우리에게 마련이 돼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반드시 내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뜻만 있으면 고대로 나가면 되겠는데 마귀란 놈이 또 꾀웁니다. 자꾸 요래라  요래라 마귀의 유혹이 있으니까 마귀의 유혹이 또 없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서 기적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내  앞에 있고, 또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므로서  하나님에게 징계받아 가지고 망하는 일이 내게 있다. 요 둘이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현실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의 뜻을  따라서 행하면 반드시 기적과 축복은 틀림없이 준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제가 언제     교회에 그 테이프를 누가 하나 갖다 줘서 내가 들으니까 거기  그게 있읍디다. 서로 앉으면서 인사할 때에, 인사할 때에 ‘반드시 오늘도 기적과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게 인사라.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그러면서 그 교회가 뭐 오십만이 얼마 모인다  하니까 알지도 못하는 것 그 근방에 신 벗어 놓고 따라 가지도 못할 것들이  말이요, 그래 가지고서 에, 뭐     교회 이단이다 뭐이다 이단이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줘? 그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바라는 사람이라. 그래 기적과  축복이 자꾸 오니까 거기 가서 믿을 맛이 있다 그거야.

알지도 못하고 그저, 옛날 칼빈이 말한 것, 칼빈은, 칼빈은 그 시대만 감당하지  지금 시대는 필요가 없어. 안 돼. 그것 가지고는 안 돼. 그 줄기는 그 줄기를  가지고 있지마는 지금은 나무 둥치에서 무슨, 나무 둥치에서 꽃이 피요 열매가  맺소? 둥치에 새 움이 나야 된다 그거야. 그것 모양으로 이 현시대는 또 현대에  해당된 하나님의 깨달음이 와야 그걸 가져야 되는데 그것은 가지지 안하고  엉뚱한 과거만 가지고 자꾸 날뛰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노래를  그래 지었어. ‘말라진, 말라진 교리만 붙들고 있고 생명된 신앙은 저 버렸도다.’ 그  노래가 있는 걸 내가 언제 들은 일이 있어.

그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하기를 ‘아, 오늘도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축복이라 말은 내가 몰라도 ‘하나님의 기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라던가  뭐 그런 걸 말해요. 그래 내가 그말 듣고서 깜짝 놀랬어. ‘아, 참 이분은 이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고 온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도록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도록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을 해 주셨고 기적을  바라니까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뭐 우리는 그런 것을 이 백 목사가 디디해 가지고서 여러분들에게 기적과 축복을  받으라는 그말을 자꾸 노래 삼아 하지를 못했어요. 못 한 그게 틀렸어. 인제  기적과 축복이라야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기적이라 하고, 또 축복은 뭐이라 했습니까? 축복은 뭐이라  했소? 축복은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서  직접 역사하시는데 역사하셔서 나를 만드는 게 있고 축복이라 하는 것은 내가  모든 사물과 사람과 관계를 가질 때에 그게 잘 되도록 해 주신다 그거야.

기적과 축복을 그 사람들은 자꾸 자꾸 인식을 시켜요. 인식을 시켰는데 나는 그걸  인식을 그렇게 시키지 안하고 가끔 가다가만 말했어. 그거 내가 내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집사로 있을 때에 나타난 것 내게 대해서 내가 내게 내타난 것,  내가 경험한 것, 내게 하나님이 역사한 것을 그걸 여러분들에게 자꾸 말하니까  ‘저 또 제자랑한다’ 이 미친 소리라. 내게 좋은 게 있는 걸 자랑하면은 왜 미친  소리입니까? 좋은 걸 자랑하면은 그것은, 좋은 것 있어도 자랑했으니까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칭찬 받았으니까 그만 그건 하늘의 상급이 없어지는 것, 또 그거  그래 가지고 또 잘못하면 교만해져 가지고 또 실패하는 것, 또 남한테 제자랑한다  욕 얻어 먹는 것, 아무 유익이 없어 뭣 때문에 하느냐? 그것을, 이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간증해 가지고서, 이러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도 이와같이 믿어서 이런  기적과 축복을 받아라 하는 것으로서 자꾸 그것을 말한다 말이오. 말하는데  듣기도 싫어 그래요.

우리 집회에서는 육백여 명이 백 삼십여 종류가 병을 나았는데 그 병을 나은  이것은 다 잊어 버리고 있어 그 어떤 장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누가 가니까 우리  서부교인들은 전부 다 전부 병인들이라고서, 그말은 그 장로가 잘못했다 말이오.

그거 무슨 말하느냐 하면은 그거는 이 서부교회 많은 병자들이 와 가지고서  고치고 갔다 하는 하나의 상술로 하는 말이지 믿음으로 하는 말은 아니라  그말이오. 알겠어? 병을 얼마나 고쳤어? 예수 믿어 가지고서. 자기가 예수 믿어  가지고 무슨 의학으로 고친 게 아니고 예수 믿어 가지고 예수님의 그 기적과  축복으로서 고기덩어리의 병 고친 사람,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들 손들어 봐요.

병 고침 받은 사람? 안 받은 사람 하나도 없네. 나도 받았어. 왜 이런데 이분이  계시는데 왜 이분을 우리가 무시합니까?  이래 가지고서, 이 기적과 축복을 이 교역자 회에서도 말하니까 ‘아이구 기적  축복, 기적 축복 자꾸 그라면 나중에 가서   교회 따라갑니다.   교회  따라갑니다.’ 나는   교회 따라가면 좋겠어. 우리 교회도 교인들이 한 오십만 명  모여 가지고서 돈도 많고 해 예배당도 크게 짓고 좀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상을  주겠어. 왜 따라가는 게 나빠.

그들이 티를 뜯을라고 하는데, 제사에 대해서 말했다고서 그 제사 지내도 좋다  했다고서 그것 가지고 떠들고 말하는데 제사 나도 지내라합니다. 나도 지내라 해.

제사 제사를 지내라 해요. 왜? 어떤 사람에게? 안 믿는 사람이 ‘나는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 지내고 예수 믿으십시오.' 나는 그래 전도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제사를 지내야 됩니까?’ 제사는 후퇴적으로 지내면 안 되고  전진적으로 지내면 괜찮습니다.’ 그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그때     선생이  그때 집사가 안 됐을 때인데   교회 와서 나한테 묻기 때문에 그때 그걸  말했어요. 그 남편이 여기 와서 앉았네, 보니까, 이랬는데 그거는 무슨 말인고  하니, 제사를 열 번을 지내던 사람은 아홉 번 지내고, 아홉 번 지내면 여덟 번  지내고 자기가 대번에 못 하니까 그렇게 하면서 앞으로 전진적으로 말이오. 자꾸  차차차차 줄어지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제사 하나 지내던 게 둘  지내고 둘 지내던 게 셋 지내고 이것은 하나님이 용납지 않는다. 그러면, 회개가  대번에 안 되기 때문에 회개 차차 하는 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 더  해라. 회개해 봐라, 야. 또 하나 해 봐라.’ 이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제사 지내는 그것도 그런 것이고, 또 뭘 하나 티를 뜯느냐 하면은 죽은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보고 살았다고 한다고서. 살았다고 그래 뭐 어째  한다고. 그거야 우리가 그런 소리 많이 있지요. 병도 이래 낫을 걸 기도해 놓고,  기도해 놓고 나중에 낫아 주실 것을 믿어라. 또 나았다고 믿어라. 그래 가지고 그  믿음이 없으니 자꾸 믿으라고 믿음 가지라 이래 가지고서 그 낫는 수도 있고  이러니까 그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그걸 뭐 티라고, 주름이라고 잡았으니까  네게는 뒤집어 보면은 그런 것 억억만 배도 더 되게 꽉 죄투성이다. 그런 것이  무슨 일을 벌리고 있노? 밉상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내가 그런 거 신문에 난 걸 보고서 내가 생각은, 그걸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는지 몰라도 이     목사의 전화를 물어 가지고 이 전화로 말해 주면서  ‘그런데 대해서 용감을 내라. 뭣 때문에 제재를 받느냐? 용감을 내라.’ 그 제사에  대해 그 이야기를 좀 해 줄라고 하다가 생각을 가졌는데 내가 못 해 주고  말았어요. 그러나 그 뒤에 그분도 발표하는 것 보니까 그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전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거 뭐 내가 지금은 ‘나는 제사는  안 지낸다’ 자기가 안 지내니까 안 지내는 걸 옳다고 하기 때문에 안 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짜든지 시기심이 들어 가지고서 남 옳은 것이면 자꾸 끌어 내려  가지고 정죄하려고.

뭣 때문에 서부교회 백 목사를 이단이라 말하느냐 말이오. 자기네들보다 앞서  깨닫고 있어. 이단이 아니야. 바로 깨닫고 있는 거라. 어데 보니까 누가 하더라?  ‘아, 지금도 중생된 영이 죄를 안 짓는다 한다.’ 안 짓지. 앞으로 하나님 앞에 가  봐. 중생된 영이 죄를 짓는다 하는 그 주장이 회개를 하고 벌을 받는지 안  받는가, 징계를 받는가 안 받는가? 공연히, 똥도 제 똥은 좋다 하고서 남의 것은,  남의 것은 정금이라도 더러워하고 싫어하는 것 모양으로 이거 순, 그게 뭐이요?  자기 중심 아니요? 그게 내나 원죄라, 원죄.

그런 소리를 듣지 말고 어짜든지 우리도 기적과 축복이라야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도 기적과 축복이 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 징계냐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이냐?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과 축복으로 내게 와 가지고 해  주시는데 당신이 뭐 어떨 때는 내 자체에 대해서 해 주실 때도 있고, 하늘의 또  소유를 내게 또 해 주실 때도 있고, 땅의 소유를 해 주실 때도 있으니까 당신이  잘하지 나는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소리도 못 한다 그말이오.

어느 게 순서요 뭘 주시는 게 좋은지 모르니까 ‘주여, 당신이 내가 당신의 뜻대로  그 믿음을 지킬 때에는 산 믿음을 지킬 때에는’ 산 믿음은 뭐이 산 믿음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산 믿음 아니라. 그게 죽은 믿음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자기 현실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나님의 뜻을  영감으로 가르쳐 주시는 고것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에 전부, 구약에 있는 구약 교회가 죄 지은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죄입니다. 행하는 죄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서 ‘말씀이 이렇지 않느냐?’ 말씀을 근거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미워했던 것도  다 그것이오. 선자자를 대적했던 것도 성경 말씀을 인용해 가지고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인용해 가지고 대적했으나 자기에게 그 시간 하나님의  성령님이 요래라 조래라 가르쳐 주는 고대로는 행하지를 안 했다 그거요. 고대로  행하는 거라야 돼. 그러니까, 요한 1서 2장 27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네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거하나니, 기름 부음이 거하나니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너희는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주 안에 살라 그랬어.

그러니까, 우리가 산 믿음으로 행하는 데는 산 믿음은, 여기 겨자씨 믿음을  말하는 것은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요 하나라도 바로 해석을 가져야 될 터인데 이걸 시시하게 여긴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바깥에 나가면은 전부 거짓부리 가지고서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가 소용없어. 산 믿음이라야 되지 죽은 믿음은  소용없어. 야고보서에 말 안 했습니까? ‘이거는, 그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죽은 믿음은 소용없어. 산 믿음은 뭐이 산 믿음이요? 산 건 뭘 살았다  합니까? 하나님과 연결. 산 믿음. 하나님과 연결. 산 행동, 하나님과 연결 행동. 산  말, 하나님과 연결된 말. 산 생각. 하나님과 연결된 생각. 산 마음 하나님과  연결된 마음. 산 욕심, 하나님과 연길된 욕심. 이거 뭐, 산 것만 가지면 되는  것인데, 산 믿음을 가지면 반드시 기적과 축복이 옵니다.

기적과 축복이 오는데, 오늘 아침에 기적과 축복이 오는데 몇 가지 온다고  했습니까? 첫째? 자체에 대해서. 자체를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지는  거라. 또 두번째 귀한 거는 뭐입니까? 무궁세계에 우리의 기업이라 말이오.

무궁세계에 기업, 무궁세계에 자격, 무궁세계에 실력, 무궁세계에 지위,  무궁세계에 영광, 또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꼼뱅이로 제일 꼼뱅이 제일 천한 거는  뭐입니까? 세상의 있을 때에 이용하고 세상 떠날 때는 다 잘있거라 하고서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가는 그런 것들이라 그거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과 축복을 해 주시는데, 그러면, 어제 아침에  말했는데 우리가 산 믿음 지키는 것, 산 믿음 지키는데 뜨문뜨문 있는 것 있고  제일 많이 있는 것 있는데 자주 있고 많이 있는 것은 뭘로, 무슨 믿음이라? 뭘로  지키는 거라 했소? 마음, 마음으로 지키는게 제일, 계속 있어요, 이거는. 또 그  다음에는? 눈으로 지키는 것, 또 그 다음에는? 입으로 지키는 것, 또 그  다음에는? 손으로 지키는 것, 또 그 다음에는? 발로 지키는것. 이런데 사람들이  이 표준하기를 발로 지키는 것이나 요 손으로 지키는 것은 거석하지 말로 하는  것도 무시합니다. 말한 것 금방 말해 놓고 그만 눈에 안보이거든. 이래 놓으니까  말이면은 말 그것이,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중요하고 손으로 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3장에는 보면은 이 말이  얼마나 권위 있는 걸 말했습니다. 배가 아무리 큰 배라도 그 키 가지고 오고 가고  하는 것 모양으로 자기 말한 대로 그대로 때라간다 그말이오. 말 굴레, 말 굴레  고삐 가지고 굴레 이래 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는 고삐 가는 데로 그놈은  끌려 갈 수밖에 없는 거라. 인간이 말한 대로 그대로 돼진다 하는 그것을  엄격하게 말해 놨어.

이런데, 말로 죄 짓는 거는 죄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눈으로 죄 짓는 거는 죄  아니라고, ‘아, 눈으로 뭐 잘못 볼까?’ 안 볼 걸 봤다 말이오. 제가 삐뚤어지게  봤어. 어떤 목사가 술집에 가 가지고서 전도를 지금, ‘아이구 술집에도 전도 해야  되겠다.’ 가서 술집에서 전도하고 나오는데 어떤 자가 말하기를 ‘야, 목사가  술집에 술 먹고 나오더라.’ 이라니까 `아, 참 이상하다. 나도 보니까 술집에서  나오더라.’ 고만 반거짓말을 누가 했는데 그 눈으로 잘못 봤다 말이오. 똑똑히  보기는 봤지마는 왜 잘못 봤느냐? 고 눈으로, 술집에 갔다가 나오는 거는  맞았지마는 그거 술, 먹으러 간 게 아니고 전도하러 갔는데 고걸 잘못 증거했기  때문에, 눈으로 본 걸 잘못 이용을 했기 때문에 용도가 틀렸어. 잘못 용도했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눈으로 본 거는 상관이 없어, 눈으로는. 또 마음으로 범죄한  거는 그거는 상관하지 안해. 마음으로 범죄한 거는. 하나님께서 뭐라 했습니까?  ‘내가 사람의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나니’ 그라고 나서 뭐라 했습니까?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는 자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을, 마음을  행동이라 했는데 인간들은 마음의 행동은 도무지 무시해 버리니까 전부, 약대는  그대로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큰 죄는 삼킨다 말이오. 이거 마음으로 범한  죄가 큰 죄 아닙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기적과 축복 그걸 꼭, 우리도 이제     교회 따라가야  되겠어. 뭐 그걸 반대하는데 나는 반대 안 해요. 조금 보면은 처음에 어리니까  자꾸 땅의 것을 말해서 땅의 복음을 많이 말했는데 지금은 내가 또 이래 약간  들어 보니까, 내가 들어 본 게 아니라. 뭣을 내가 신문에 뭐이 하나 났던가, 이래  보니까 아주 지금 설교하는 방편이 달라. 아주 달라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근거해  가지고 하려고 지금 노력하는데 또 그 사람 말씀만 근거하면 또 앞설 거라  그러니까 우리는 거게 따라가야 되겠어. 우리는 기적과 축복을 못 받았으니까  기적과 축복을 받아야 되겠어. 우리 시간시간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반드시 이 시간에 내가 산 믿음을 지키면, 이 시간에 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산 믿음이 내게 와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은 산  믿음이 되고 하나님의 뜻은 저버려 버리고 신구약 성경에 있는 구구절절이라고  해 가지고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영감은 치워 버리고 성경대로 그것은 다 죽은  믿음이라. 죽은 믿음은 교만하기만 교만해지고, 망하기는 망하는 게 큰 소리만  뻥뻥하고 밉상스러운자 되고 만다 말이오.

그래 어제 어떤 사람이 내게 딱 맞아. 요새는 내 자신을 봐도 말쟁이가 어떻게  미운지, 말만 쨀쨀 하고서 말만 하고 있지 하나님의 뭐 기적과 축복이 와야지.

삐쩍 개가죽 모양으로 자꾸 타서 오그라지는 것이 입술로만 자꾸 큰소리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한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는 전부이 다  망해 가면서도 그래도 어짜고 저짜고 하나님이 저와 동행한다고. 그런  미치괭이들이 여기 많이 오더니마는 요새는 지금 뭐 좀 시짐해 버려요. 인제 자꾸  나는 매일 기도해요. 미치괭이 정신 좀 고쳐 달라고서. 마귀 좀 몰아내 달라고.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는 이 사실을 확신합시다.

내 현실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다. 내가 산 믿음 지키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내게 와 가지고 틀림없이 역사한다. 이거는 뭐 백의 하나도 틀림없어.

절대라.

그런데 기적과 축복이 오는데, 우리에게 와 가지고 크게 말하면 몇 가지로  역사한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한번 쭉 높이 들어봐 저  뒤에는 하나도 모르는 모양이네. 추워도 손가락 한번 들어 봐요? 모르면  헛일이라. 그래 다 요렇게 손가락 세 개를 드네요. 맞았어. 하나는,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를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과 깨끗함같이 하는 것,  또 둘째로는, 하늘의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영원한 축복, 또 세째로는 , 잠깐 임시  사용하고 세상 떠날 때에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갈 그것, 이렇게 주시는 것이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이게 필요한지 저게 필요한지 고것을 요렇게 조렇게, 내가 산  믿음 지킬 때에 필요한 순서대로 주실 터이니까 그것도 내가 요거 조거 달라 할  필요가 없어. 그거하는 것도 하나님 믿지 못하는 것이라. 그저 나는 산 믿음  지키기만 하고, 산 믿음만 지키고 주님이 내게 대해서 ‘야, 어느 것 줄꼬?’ `아,  당신이 알지 내가 뭐 알겠습니까?' 그러면, ‘일호를 주시든지 이호를 주신든지  삼호를 주시든지 그거는 마음대로 주십시오. 그저 나는 어쨌든지 산 믿음 지킬  터이니까 산 믿음 지킬 수 있는 이 사람만 되게 해 주옵소서.’ 그것만 우리가  요구하고, 욕심도 거게 있어야 되겠고, 가치도 거게 있어야 되겠고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거게만 기울여야 하겠다 그거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과 전화를 했는데, 그 사람도 역연 말하기를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말쟁이가 제일 밉다고, 말쟁이가 제일 밉상이라고, 말만  쩔쩔하고 하나도 이루어지지는 안하는데, 말만하고 이루어지지 안하는 그게 제일  밉상이라고 요새는 전부 말쟁이뿐이라 전부 말로 믿는 사람 입은 중얼중얼하이  잘 하는데 하나도 기적은 나타나지 안해요. 기적이 나타나지 안하니까 그 우리가  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교회에 내가 그 형편을 물으니까 그 교회는 자꾸 기적이 나타나.

기적이 나타나는 걸 또 알고 있어 본인들도 알고 '아, 이런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축복이 나타났다.' 본인도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 것을 알아서 그것을 교회다가  자랑을 하고 또 다른 사람도, 자랑을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자랑하고 나서 보니까  그 사람에게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 것을 알게 되고, 이래서 기적과 축복 나타나는  것을 온 교인들이 알아.

 그런데 우리 교회는 어짠 일로 말이요 기적과 축복이 안 나타나는지. 나타나는데  숨겨 놓은 그자는 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여기 이거 망해야 돼요? 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는데 왜 이걸 감춰 놓고 말하지 않아요?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뭣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숨깁니까? 그거 안 됩니다. 그거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악령이 이렇게 가득 차서 원수가 많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도 살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데,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도, 하나님이  줘도 모르고. 그것은 다 제가 잘해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다 말을 암만 말해도 곧이 듣지 안하고 믿지 안하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서부교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에 대해서는 아무 소망이 없어. 소용이 없어. 전부이 제힘  가지고 살라고 하지. 하다 안 되면 거짓말 하는 그런 더러운 그 실력이라도  거짓말 하는 실력이라도 져 실력으로 살라 합니다. 남을 꼬우고 죄를 지어서  드러나면 곧 감옥에 갈 만한 그런 일이라도 제힘으로 해 가지고서 무엇을 해  볼라 하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와야 되지 기적과  축복이 안 오면 안 된다 요걸 믿는 사람들이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먼저 믿는 것이 하나 안 믿으니까 다음 것도 안 믿고 안 믿고 이러고,  모두 다 어짜든지 각각 제 욕심 제 소원대로 제 주장대로에 꾀대로만 자꾸 하고  나오고 있습니다. 가정에도 그건 것들뿐이고, 교회도 그건 것들뿐이고, 자신도 그  자기 속에, 속에나 밖에나 다 그런 것뿐이고 이러니까 뭐 우리가 예수 믿어  가지고 효력이 날 것입니까? 예수님 믿어서 효력이 안 나면 그거 예수 더럽게  믿는 것입니다. 잘못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만 세상에서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 저 사람 보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기적과 축복이 와서 그  사람을 인간이 할 수 없는 초자연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만들었으면 사람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놀랠 것이고,  행위가 만들어진 걸 보고 놀랠 것이고, 그 사람에게 그 껍데기 무슨 모두 자기의  하는 사업이나 일이나 그런 것이 되어지는 것을 보고 '아,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구나. 저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구나.' 이게 우리에게 나타나야 될  터인데 이게 나타나지 안하고 우리는 전부 말 신자입니다. 말뿐이오. 행동은  하나도 안 고치고 말뿐이니까 뭐이 되겠습니까?

 그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과 두  가지뿐이오. 하지 말라는 것은 하면 쥐가 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오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면 그것이 의가 되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뭐, 제일 야문 것이 금강석이 제일 야물다 하던가,  금강석이 제일 야물다 하는데 암만 금강석갈이 야물고 독하고 모질고 그렇게  아주 강하고 억새고 배짱있고 강퍅하고 미련하다 할지라도 제까짓 게 뭐.

하나님의 징계 한 번 받아 두 번 받아 자꾸 받으면 깨지고 깨지고 망해지고  마지막에는 제가 안 휘여지고 어짤 것이며 안 깨지고 어짤 것입니까? 이러니까  전부이. 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형편인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형편인지 그것을 우리가 스스로 좀 반성을 합시다. 왜 우리가 원치 안하는 일들이  자꾸 닥치며, 왜 우리에게 그 자꾸 남한테 천대받는 그런 일이 닥치겠습니까?  이것은 전부 우리에 죄 값이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우리 현실마다, 현실마다 하나님의 축복이든지 징계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일 없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든지 축복을 베풀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와 가지고서 징계를 해서 나를 지금 절단내는, 치는 징계하는 치는  멸하는 그건 역사가 있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하고 지나가지 그냥 지나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인서 14장 23절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끝절에 보면, 끝에 보면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은 연고는 다 죄가 됩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안한 것은  다 죄가 됩니다. '믿음으로' 고 다음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니라' 한다는 말은 우리는  움직이는 걸 말하지 않습니까? 말한다,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다. 수족으로  움직인다 그거 다 행동 아닙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니라. 그러면 순종으로 움직이지 안하는 것는 다 죄니라.

 그러면 우리가 현실마다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까?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까? 송장 외에는 움직이지 않는 현실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현실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감동시키시고, 또  지시하시고 명령하시고, 또 이렇게 하라고 요구하시고 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없는 시간은 없다 하는 것을 요건 성구를 가지고 확정을 지우십시오. 우리의 언행  심사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아니한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라. 죄라 말은 삐뚤어진 것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현실마다 우리의 언행  심사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면 의가 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면 믿음을 좋아하지 안하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면 다  삐뚤어진 것이다. 그러면 삐뚤어지면 적게 삐뚤어진 데는 적게 징계가 있고 크게  삐뚤어진 데는 크게 징계가 있으니까 마치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말한 것같이 하나님 앞에 그저, 그 큰 일은 하지 아니해도 조금씩 조금씩 자꾸  삐뚤어진 것 자꾸 이래 삐뚤어진 것만 하니까 하나님의 징계가 조금 징계 조금  징계 조그만씩한 징계가 자꾸 오니까 이 징계만 해도 사람이 피곤하고 사람이 다  그만 무능해지고 모든 게 지쳐지고 모든 게 절단 나집니다.

 그러니까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명령 곧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원하시는 것 그것이 없는 시간이 없다 하는 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고서 놓지 말아야 됩니다. 저 혼자 앉았든지 뭐 둘이 있든지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든지 또 우리가 자든지, 자는 것도 하나님이 자라 하니까  그거는 자는 거는 또 하나님의 자라 하는 뜻입니다. 자라 할 때는 자고, 또 깨어  있으라 할 때는 깨어 있고 기도하라 할 때는 기도하고, 성경 보라 할 때는 성경  보고, 또 이런 것 저런 것 눈으로 할 것은 하라 또 하지 마라, 입술로 할 것 안  할 것, 자기 생각으로 할 것 안 할 것, 마음으로 할 것 안 할 것, 소원으로 할 것  안 할 것이 전부 하나님께서 세밀히 우리를 간섭하셔 가지고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와 성신의 감화,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 그것이 없는 시간  없다.

 없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면 그것이 다 의가 되고  기적과 축복이 오는 것이고, 그것을 하나님을 따라 하지 아니하고에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제 생각 제 속에도 돈 욕심하는 이놈, 돈 욕심내는 이놈도 있고 명예  욕심내는 놈도 있고, 자기 평안하려고 욕심내는 놈도 있고, 자기 주관 감정 뭐  시기 쟁투 이런 더러운 그런 모든 행락 오만 것이 다 우리 속에 가득히 있는데  이놈들이 와 가지고 이게 뭐이냐 하면은 악령, 악성, 악습의 새끼들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의 새끼들인데 이게 우리 속에 가득히 있어 가지고서 우리의 생활을 다  더럽히고 자꾸 징계받는 일만 하라 하니까 우리가 견뎌냅니까?  이러니까, 어떤, 현실이든지 혼자 있든지 여럿 있든지 우리가 잘 때는 하나님이  자라 하니까 그만 자는 그것이 하나니의 뜻이고, 자지 안할 때는 하나님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다, 뜻 없는 일이 없다, 하나님라 인도  없는 일이 없다, 찬나님의 지도 없는 일이 없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도가  뭐이며 내게 대한 뜻이 뭐인가 요것을 찾아서 하려고 하지 안하고 그 대뜸 다  치워 버리고, 제 욕심대로, 제 욕심대로, 어짜든지 제 욕심대로 제 속에 모든  죄악의, 죄악이 충격 주는, 죄악이 충격 주는 무슨 감정이라든지 원망이라든지  시비라든지, 뭣 때문에 제가 망해 놓고 남을 원망하느냐 그말이오. 남의 죄로서  제가 망하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성경에 말해 놨소, 제게 나쁜 일 오는 것도  에게 망하는 것도 제게 비참 오는 것도 다 재 소행의 결과지 다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요것만 해도  깨끗해집니다. 그라면 그만 당장 알 수가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뜻이라. 내가  지금 이 일이 하고 싶은데 이거는?' '아, 그거는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또 여기  대해서 누구 사람에게 원망이나 불평이 있다,' '아, 그것도 할 게 아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면 현실마다 있는데 그 하나님의 뜻이 뭐인지 그것을 우리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다 알 수 있느냐? 성경을 몰라도 깊은 거는 모르지마는 대략은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선지들이 말한 그 지도와 예언이 우리 각자 속에 있다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까? 있다 말이요 없다 말이요? 성경 몰라도 있습니다. 성경  물라도. 아주 크게 딱 들어맞는 거는 없지마는 일반 하나님의 뜻은 다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받고자 한다 말은  남이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내게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그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하면 대개는 하나님의 법칙에 맞습니다. 저는 그건,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는 그렇게 해 주는 것을 싫어하면서 저는 남에게 그와 같이  하기 때문에 그것이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라. 율법이라 말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오. 하나님의 법이 다 이런  법들이라 그말이오.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다 저렇다 가르쳐 준 것이 다 이런 종류의 것들이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끝까지 딱 들어맞지는 안하지마는 우리 일반 보통 생활에 대해서는  환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내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이었는 때는 없으니, 내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이 없는 현실은 없으니 그 뜻을 행하면, 순종하면 믿음으로  그 뜻을 순종하면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고, 그 뜻을 어기면 뭐입니까? 많이  나타납니까? 징계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는 때가  없다. 또 우리 현실에는 마귀란 놈이 우리를 유혹시키는 유혹이 없는 때도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기적과 축복이 나오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마귀 요놈이  꾀우는 대로 그대로 하면은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는 하나님의 인도요 마귀의 유혹이 없는 현실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내 현실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이냐 하나님의 징계냐 이 둘  중에, 이 둘이 다 내 앞에 있으니까 이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내가 하나  취하고야 말지 안 취하고 말지를 않는다. 제딴에는 아무리 잘되고 싶기를,  사람들이 다 뭐 잘되기를 원하고 원하지마는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분이  자기에게 징계밖에는 줄 수 없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징계 주는데 제가  하나님보다 강합니까? 또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 주시기를 원하고 축복 주시는  일은 내가 하는데 천인 만인이 나를 방해하고 해한다고 그 하나님이 축복이  거두어져 가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보다 강합니다. 무한히 강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얼마 안 남았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과 또 마귀의 유혹하는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 앞에  있으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어데까지 컸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절단나는. 것도  얼마 안 가 절단나 버립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위대하고 뭐 어떻게 대성공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절단날려면 대번 절단나요. 아무리 또 불쌍하고 가련하다  해도 그 사람이 커질라면 당장 커져 버립니다. 얼마 안 걸려. 당장 커져.

 어제 아침에도 그런 말씀을 했지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과 이 축복을  하시는데 우리에게 하는 것은 제일 귀한 것이 뭐입니까? 제일 귀한 것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바로 되도록 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하고 큰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과 사물과 바로 관계가 되도록 하는 것이  둘째로 큽니다. 그라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사람 협조가 오고 물건 협조가  옵니다.

 그런데,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적으로 와서 역사하시고 축복으로 역사하시는  자체에 대해서는, 자체에 대한 기적과 축복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그런 거는  무시합니다. 자기 속에 이렇게 했더니마는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자기의 마음이 감화가 되어서 자기의 마음에 회개가 되어지고 자기 마음이  변화가 되어지는 이런 거는 뭐, 사소한 걸로 여깁니다. 돈이나 그까짓 것 뭐  몇십만 원이나 몇백만 원 생겨도 '하이구, 축복 축복' 이것은 참 껍데기요, 이것은  진짜 예수 믿는 데는 이것은 예수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것을 주는 것이지  베드로에게 그렇게 고기가 많이 잡힌 그런 일 준 것이 베드로에게 축복으로  줬습니까? 아니오. 그것 보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이것 되는 것 보니 아,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생이 있고 하늘나라의 무궁세계의 부강이 있는데 하룻밤  나그네가 오늘 이사갈지 모르는 이 세상의 것이야 좋아 봤자 그까짓 거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 아니가? 이래서 이 껍데기 이 땅에 속한 것을 인해서 하늘에  속한 것을, 영원한 것을 그것을 가지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의 표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니까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이 있는 이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면 없어지지 안할 영원 완전한 것이 이루어진다 하는 하나의, 볼  수 없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표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현실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다. 기적과  축복이 있는 데는 그 기적과 축복이 와 가지고서 나로 하여금 아주 참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자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나를 만드는 이  기적과 축복이 있고, 또 그 다음에는 내가 가지고 있을 것들, 가지고 있을 것들  가지고 있을 것 중에는 무궁세계의 가지고 있을 것 그것이 더 귀중하니까 그게  이루어지고, 껍데기는 뭐입니까? 세상에서 잠깐 가지고 있다가서 없어질 것들이나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것을 이용하고 다 이용하는 시간이 지나가면 집어 던져  버리고 갈 그런 것들 마지막으로 껍데기로 준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아셔서 제일 알맹이 내 자체에 대해서 기적과 축복을 주실  그 순서되는 그것 주시고, 또 내가 가져야 할 그런 것들을 주실 것은 그런 것  주시고, 가져야 될 것 중에는 또 세상에서 가져야 될 것 주셔야 될 때에는 또  그런 것 주시고, 이런데 우리가 뭐 전부 제힘으로 제가 하지 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바라지 안하니까 무슨 기적과 축복이 올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와도 언제든지 껍데기 없어질 것 제일 껍데기만 원하고 있으니까  껍데기 원하는 것은 한 번 두 번 껍데기 원하는 것을 주지요. 주는데, 알맹이 안  된 것이 껍데기가 되면 어찌 됩니까? 사람 안 된 그것이 권세 가져 보십시오. 그  권세로 망하지 안하는가? 사람 안 된 것이 돈을 가져 보이소, 그 돈으로 망하지  안하는가? 이러니까 제일 문제가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오. 그 다음에는 이제  자기에게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영원 무궁세계에서 영원히  자기에게 필요한 그런 것들을 마련해야 되겠고, 그런 걸 마련하기 위해서 또  껍데기 이 세상에서 잠깐 이용하고 갈 그런 것들도 또 우리에게 마련이 돼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반드시 내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뜻만 있으면 고대로 나가면 되겠는데 마귀란 놈이 또 꾀웁니다. 자꾸 요래라  요래라 마귀의 유혹이 있으니까 마귀의 유혹이 또 없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서 기적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내  앞에 있고, 또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므로서  하나님에게 징계받아 가지고 망하는 일이 내게 있다. 요 둘이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현실에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의 뜻을  따라서 행하면 반드시 기적과 축복은 틀림없이 준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제가 언제 OOO교회에 그 테이프를 누가 하나 갖다 줘서 내가 들으니까 거기  그게 있습디다. 서로 앉으면서 인사할 때에, 인사할 때에 '반드시 오늘도 기적과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게 인사라.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그러면서 그 교회가 뭐 오십만이 얼마 모인다  하니까 알지도 못하는 것 그 근방에 신 벗어 놓고 따라 가지도 못할 것들이  말이요, 그래 가지고서 에, 뭐 OOO교회 이단이다 뭐이다 이단이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줘? 그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바라는 사람이라. 그래 기적과  축복이 자꾸 오니까 거기 가서 믿을 맛이 있다 그거야.

 알지도 못하고 그저, 옛날 칼빈이 말한 것, 칼빈은, 칼빈은 그 시대만 감당하지  지금 시대는 필요가 없어. 안 돼. 그것 가지고는 안 돼. 그 줄기는 그 줄기를  가지고 있지마는 지금은 나무 둥치에서 무슨, 나무 둥치에저 꽃이 피요 열매가  맺소? 둥치에 새 움이 나야 된다 그거야. 그것 모양으로 이 현시대는 또 현대에  해당된 하나님의 깨달음이 와야 그걸 가져야 되는데 그것은 가지지 안하고  엉뚱한 과거만 가지고 자꾸 날뛰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노래를  그래 지었어. '말라진, 말라진 교리만 붙들고 있고 생명 된 신앙은 저 버렸도다.'  그 노래가 있는 걸 내가 언제 들은 일이 있어.

 그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하기를 '아, 오늘도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축복이라 말은 내가 몰라도 '하나님의 기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라던가 뭐 그런 걸 말해요. 그래 내가 그말 듣고서 깜짝 놀랬어. '아, 참 이분은  이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고 온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도록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도록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을 해 주셨고 기적을  바라니까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뭐 우리는 그런 것을 이 백 목사가 디디해 가지고서 여러분들에게 기적과  축복을 받으라는 그말을 자꾸 노래 삼아 하지를 못했어요. 못 한 그게 틀렸어.

인제 기적과 축복이라야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것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기적이라 하고, 또 축복은 뭐이라 했습니까?  축복은 뭐이라 했소? 축복은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서 직접 역사하시는데 역사하셔서 나를 만드는 게 있고 축복이라 하는  것은 내가 모든 사물과 사람과 관계를 가질 때에 그게 잘 되도록 해 주신다  그거야.

 기적과 축복을 그 사람들은 자꾸 자꾸 인식을 시켜요. 인식을 시켰는데 나는  그걸 인식을 그렇게 시키지 안하고 가끔 가다가만 말했어. 그거 내가 내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집사로 있을 때에 나타난 것 내게 대해서 내가 내게 내타난  것, 내가 경험한 것, 내게 하나님이 역사한 것을 그걸 여러분들에게 자꾸  말하니까 '저 또 제자랑한다' 이 미친 소리라. 내게 좋은 게 있는 걸 자랑하면은  왜 미친 소리입니까? 좋은 걸 자랑하면은 그것은, 좋은 것 있어도 자랑했으니까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칭찬 받았으니까 그만 그건 하늘의 상급이 없어지는 것,  또 그거 그래 가지고 또 잘못하면 교만해져 가지고 또 실패하는 것. 또 남한테  제자랑한다 욕 얻어 먹는 것, 아무 유익이 없어 뭣 때문에 하느냐? 그것을,  이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간증해 가지고서, 이러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도  이와같이 믿어서 이런 기적과 축복을 받아라 하는 것으로서 자꾸 그것을 말한다  말이오. 말하는데 듣기도 싫어 그래요.

 우리 집회에서는 육백여 명이 백 삼십여 종류가 병을 나았는데 그 병을 나은  이것은 다 잊어 버리고 있어 그 어떤 장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누가 가니까 우리  서부교인들은 전부 다 전부 병인들이라고서, 그말은 그 장로가 잘못했다 말이오.

그거 무슨 말 하느냐 하면은 그거는 이 서부교회 많은 병자들이 와 가지고서  고치고 갔다 하는 하나의 상술로 하는 말이지 믿음으로 하는 말은 아니라  그말이오. 알겠어? 병을 얼마나 고쳤어? 예수 믿어 가지고서. 자기가 예수 믿어  가지고 무슨 의학으로 고친 게 아니고 예수 믿어 가지고 예수님의 그 기적과  축복으로서 고기덩어리의 병 고친 사람,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들 손들어 봐요?  병 고침 받은 사람? 안 받은 사람 하나도 없네, 나도 받았어. 왜 이런데 이분이  계시는데 왜 이분을 우리가 무시합니까?  이래 가지고서, 이 기적과 축복을 이 교역자 회에서도 말하니까 '아이구 기적  축복, 기적 축복 자꾸 그라면 나중에 가서 OOOOO교회 따라갑니다.

OOOOO교회 따라갑니다.' 나는 OOOOO교회 '따라 가면 좋겠어. 우리  교회도 교인들이 한 오십만 명 모여 가지고서 돈도 많고 해 예배당도 크게 짓고  좀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상을 주겠어. 왜 따라가는 게 나빠.

 그들이 티를 뜯을라고 하는데, 제사에 대해서 말했다고서 그 제사 지내도 좋다  했다고서 그것 가지고 떠들고 말하는데 제사 나도 지내라 합니다. 나도 지내라  해. 제사 제사를 지내라 해요. 왜? 어떤 사람에게? 안 믿는 사람이 '나는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 지내고 예수 믿으십시오.' 나는 그래 전도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제사를 지내야 됩니까?' 제사는 후퇴적으로 지내면 안 되고  전진적으로 지내면 괜찮습니다.' 그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그때 OOO선생이  그때 집사가 안 됐을 때인대 OO교회 와서 나한테 묻기 때문에 그때 그걸  말했어요. 그 남편이 여기 와서 앉았네, 보니까, 이랬는데 그거는 무슨 말인고  하니, 제사를 열 번을 지내던 사람은 아홉 번 지내고, 아홉 번 지내면 여덟 번  지내고 자기가 대번에 못하니까 그렇게 하면서 앞으로 전진적으로 말이오. 자꾸  차차차차 줄어지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제사 하나 지내던 게 둘  지내고 둘 지내던 게 셋 지내고 이것은 하나님이 용납지 않는다. 그러면, 회개가  대번에 안 되기 때문에 회개 차차 하는 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 더  해라. 회개해 봐라, 야. 또 하나 해 봐라.' 이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제사 지내는 그것도 그런 것이고, 또 뭘 하나 티를 뜯느냐 하면은 죽은  사람을 보고, 죽은 사람을 보고 살았다고 한다고서. 살았다고 그래 뭐 어째  한다고. 그거야 우리가 그런 소리 많이 있지요. 병도 이래 낫을 걸 기도해 놓고,  기도해 놓고 나중에 낫아 주실 것을 믿어라. 또 나았다고 믿어라. 그래 가지고 그  믿음이 없으니 자꾸 믿으라고 믿음 가지라 이래 가지고서 그 낫는 수도 있고  이러니까 그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그걸 뭐 티라고 주름이라고 잡았으니까  네게는 뒤집어 보면은 그런 것 억억만 배도 더 되게 꽉 죄투성이다. 그런 것이  무슨 일을 벌리고 있노 그 밉상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내가 그런 거 신문에 난 걸 보고서 내가 생각은, 그걸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는지 몰라도 이 OOO목사의 전화를 물어 가지고 이 전화로 말해 주면서  '그런데 대해서 용감을 내라. 뭣 때문에 제재를 받느냐? 용감을 내라.' 그 제사에  대해 그 이야기를 좀 해 줄라고 하다가 생각을 가졌는데 내가 못 해 주고  말았어요. 그러나 그 뒤에 그분도 발표하는 것 보니까 그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전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거 뭐 내가 지금은 '나는 제사는 안  지낸다' 자기가 안 지내니까 안 지내는 걸 옳다고 하기 때문에 안 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짜든지 시기심이 들어 가지고서 남 옳은 것이면 자꾸 끌어 내려  가지고 정죄하려고.

 뭣 때문에 서부교회 백 목사를 이단이라 말하느냐 말이오. 자기네들보다 앞서  깨닫고 있어. 이단이 아니야. 바로 깨닫고 있는 거라. 어데 보니까 누가 하더라?  '아, 지금도 중생된 영이 죄를 안 짓는다 한다.' 안 짓지. 앞으로 하나님 앞에 가  봐. 중생된 영이 죄를 짓는다 하는 그 주장이 회개를 하고 벌을 받는지 안  받는가, 징계를 받는가 안 받는가? 공연히, 똥도 제 똥은 좋다 하고서 남의 것은,  남의 것은 정금이라도 더러워하고 싫어하는 것 모양으로 이거 순, 그게 뭐이요?  자기 중심 아니요? 그게 내나 원죄라, 원죄.

 그런 소리를 듣지 말고 어짜든지 우리도 기적과 축복이라야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도 기적과 축복이 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 징계냐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이냐?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과 축복으로 내게 와 가지고 해  주시는데 당신이 뭐 어떨 때는 내 자체에 대해서 해 주실 때도 있고, 하늘의 또  소유를 내게 또 해 주실 때도 있고, 땅의 소유를 해 주실 때도 있으니까 당신이  잘하지 나는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소리도 못 한다 그말이오.

 어느 게 순서요 뭘 주시는 게 좋은지 모르니까 '주여, 당신이 내가 당신의  뜻대로 그 믿음을 지킬 때에는 산 믿음을 지킬 때에는' 산 믿음은 뭐이 산  믿음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산 믿음 아니라. 그게 죽은 믿음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은 자기 현실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나님의  뜻을 영감으로 가르쳐 주시는. 고것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에 전부, 구약에 있는 구약 교회가 죄 지은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죄입니다. 행하는 죄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서 '말씀이 이렇지 않느냐?' 말씀을 근거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미워했던 것도  다 그것이오. 선자자를 대적했던 것도 성경 말씀을 인용해 가지고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인용해 가지고 대적했으나 자기에게 그 시간 하나님의  성령님이 요래라 조래라 가르쳐 주는 고대로는 행하지를 안 했다 그거요. 그대로  행하는 거라야 돼. 그러니까, 요한 1서 2장 27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네게.

가르칠 필요가 없다.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거하나니, 기름 부음이 거하나니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너희는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주 안에 살라 그랬어.

 그러니까, 우리가 산 믿음으로 행하는 데는 산 믿음은, 여기 겨자씨 믿음을  말하는 것은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요 하나라도 바로 해석을 가져야 될 터인데 이걸 시시하게 여긴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바깥에 나가면은 전부 거짓부리 가지고서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가 소용없어. 산 믿음이라야 되지 죽은 믿음은  소용없어. 야고보서에 말 안 했습니까? 이거는, '그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죽은 믿음은 소용없어. 산 믿음은 뭐이 산 믿음이요? 산 건 뭘 살았다  합니까? 하나님과 연결. 산 믿음. 하나님과 연결. 산 행동, 하나님과 연결 행동 산  말, 하나님과 연결된 말. 산 생각. 하나님과 연결된 생각. 산 마음 하나님과  연결된 마음. 산 욕심, 하나님과 연결된 욕심. 이거 뭐 산 것만 가지면 되는  것인데, 산 믿음을 가지면 반드시 기적과 축복이 옵니다.

 기적과 축복이 오는데, 오늘 아침에 기적과 축복이 오는데 몇 가지 온다고  했습니까? 첫째? 자체에 대해서. 자체를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지는  거라. 또 두번째 귀한 거는 뭐입니까? 무궁세계에 우리의 기업이라 말이오.

무궁세계에 기업, 무궁세계에 자격, 무궁세계에 실력. 무궁세계에 지위,  무궁세계에 영광, 또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꼼뱅이로 제일 꼼뱅이 제일 천한 거는  뭐입니까? 세상의 있을 떼에 이용하고 세상 떠날 때는 다 잘있거라 하고서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가는 그건 것들이라 그거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과 축복을 해 주시는데, 그러면 어제 아침에  말허는데 우리가 산 믿음 지키는 것, 산 믿음 지키는데 뜨문뜨문 있는 것 있고  제일 많이 있는 것 있는데 자주 있고 많이 있는 것은 뭘로, 무슨 믿음이라? 뭘로  지키는 거라 했소? 마음, 마음으로 지키는게 제일, 계속 있어요, 이거는. 또 그  다음에는? 눈으로 지키는 것, 또 그 다음에는? 입으로 지키는 것, 또 그  다음에는? 손으로 지키는 것 또 그 다음에는? 발로 지키는것. 이런데 사람들이 이  표준 하기를 발로 지키는 것이나 요 손으로 지키는 것은 거석하지 말로 하는  것도 무시합니다. 말한 것 금방 말해 놓고 그만 눈에 안보이거든. 이래 놓으니까  말이면은 말 그것이,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중요하고 손으로 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3장에는 보면은 이 말이  얼마나 권위 있는 걸 말했습니다. 배가 아무리 큰 배라도 그 키 가지고 오고 가고  하는 것 모양으로 자기 말한 대로 그대로 따라간다 그말이오. 말 굴레, 말 굴레  고삐 가지고 굴레 이래 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는 고삐 가는 데로 그놈은  끌려 갈 수밖에 없는 거라. 인간이 말한 대로 그대로 돼진다 하는 그것을  엄격하게 말해 놨어.

 이런데, 말로 죄 짓는 거는 죄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눈으로 죄 짓는 거는 죄  아니라고, '아, 눈으로 뭐 잘못 볼까?' 안 볼 걸 봤다 말이오. 제가 삐뚤어지게  봤어. 어떤 목사가 술집에 가 가지고서 전도를 지금 '아이구 술집에도 전도 해야  되겠다.' 가서 술집에서 전도하고 나오는데 어떤 자가 말하기를 '야, 목사가  술집에 술 먹고 나오더라.' 이라니까 '아, 참 이상하다. 나도 보니까 술집에서  나오더라.' 고만 반거짓말을 누가 했는데 그 눈으로 잘못 봤다 말이오. 똑똑히  보기는 봤지마는 왜 잘못 봤느냐? 고 눈으로, 술집에 갔다가 나오는 거는  맞았지마는 그거 술 먹으러 간 게 아니고 전도하러 갔는데 고걸 잘못 증거했기  때문에, 눈으로 본 걸 잘못 이용을 했기 때문에 용도가 틀렸어. 잘못 용도했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눈으로 본 거는 상관이 없어, 눈으로는. 또 마음으로 범죄한  거는 그거는 상관하지 안해, 마음으로 범죄한 거는. 하나님께서 뭐라 했습니까?  '내가 사람의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나니' 그라고 나서 뭐라했습니까?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는 자기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을, 마음을  행동이라 했는데 인간들은 마음의 행동은 도무지 무시해 버리니까 전부, 약대는  그대로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큰 죄는 삼킨다 말이오. 이거 마음으로 범한  죄가 큰 죄 아닙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기적과 축복 그걸 꼭, 우리도 이제 OOO교회 따라가야  되겠어. 뭐 그걸 반대하는데 나는 반대 안 해요. 조금 보면은 처음에 어리니까  자꾸 땅의 것을 말해서 땅의 복음을 많이 말했는데 지금은 내가 또 이래 약간  들어 보니까, 내가 들어 본 게 아니라. 뭣을 내가 신문에 뭐이 하나 났던가, 이래  보니까 아주 지금 설교하는 방편이 달라. 아주 달라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근거해  가지고 하려고 지금 노력하는데 또 그 사람 말씀만 근거하면 또 앞설 거라  그러니까 우리는 거게 따라가야 되겠어. 우리는 기적과 축복을 못 받았으니까  기적과 축복을 받아야 되겠어. 우리 시간시간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반드시 이 시간에 내가 산 믿음을 지키면, 이 시간에 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산 믿음이 내게 와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은 산  믿음이 되고 하나님의 뜻은 저버려 버리고 신구약 성경에 있는 구구절절이라고  해 가지고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영감은 치워 버리고 성경대로 그것은 다 죽은  믿음이라. 죽은 믿음은 교만하기만 교만해지고, 망하기는 망하는 게 큰 소리만  뻥뻥하고 밉상스러운자 되고 만다 말이오.

 그래 어제 어떤 사람이 내게 딱 맞아. 요새는 내 자신을 봐도 말쟁이가. 어떻게  미운지, 말만 쨀쨀 하고서 말만 하고 있지 하나님의 뭐 기적과 축복이 와야지.

삐쩍 개가죽 모양으로 자꾸 타서 오그라지는 것이 입술로만 자꾸 큰소리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한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는 전부이 다  망해 가면서도 그래도 어짜고 저짜고 하나님이 저와 동행한다고. 그런  미치괭이들이 여기 많이 오더니마는 요새는 지금 뭐 좀 시짐해 버려요. 인제 자꾸  나는 매일 기도해요 미치괭이 정신 좀 고쳐 달라고서. 마귀 좀 몰아내 달라고.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는 이 사실을 확신합시다.

내 현실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있다. 내가 산 믿음 지키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내게 와 가지고 틀림없이 역사한다. 이거는 뭐 백의 하나도 틀림없어.

절대라.

 그런데 기적과 축복이 오는데, 우리에게 와 가지고 크게 말하면 몇 가지로  역사한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한번 쭉 높이 들어봐 저  뒤에는 하나도 모르는 모양이네. 추워도 손가락 한번 들어 봐요? 모르면  헛일이라. 그래 다 요렇게 손가락 세 개를 드네요. 맞았어. 하나는,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를 하나님의 온전함과 거룩함과 깨끗함같이 하는 것,  또 둘째로는, 하늘의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영원한 축복, 또 세째로는, 잠깐 임시  사용하고 세상 떠날 때에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갈 그것, 이렇게 주시는 것이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이게 필요한지 저게 필요한지 고것을 요렇게 조렇게, 내가 산  믿음 지킬 때에 필요한 순서대로 주실 터이니까 그것도 내가 요거 조거 달라 할  필요가 없어. 그거하는 것도 하나님 믿지 못하는 것이라. 그저 나는 산 믿음  지키기만 하고, 산 믿음만 지키고 주님이 내게 대해서 '야, 어느 것 줄꼬?' '아,  당신이 알지 내가 뭐 알겠습니까?' 그러면, '일호를 주시든지 이호를 주신든지  삼호를 주시든지 그거는 마음대로 주십시오. 그저 나는 어쩌든지 산 믿음 지킬  터이니까 산 믿음 지킬 수 있는 이 사람만 되게 해 주옵소서.' 그것만 우리가  요구하고, 욕심도 거게 있어야 되겠고, 가치도 거게 있어야 되겠고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거게만 기울여야 하겠다 그거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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