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대한 바른 지식

 

1988. 8. 10. 오후집회

 

본문: 창세기 2장 15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인류 시조에게는 에덴을 그들의 거처할 처소로 주시고 그 자리에서 그저 살라고  그렇게 하시고 그 자리로 옮기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로 옮겨서 옮겼지  스스로 자기네들이 이리저리 그렇게 가고 싶은 대로 간다고 해서 옮기지는  안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상고 시대이기 때문에 그때는 아주 모든 일이 다 어린 때요 또  모든 경험이나 그런 역사들이 없는 아주 상고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가장 알기 쉽고 보기 쉽고 또 깨닫기 쉽고 행하기 쉬운 그런 아주 어린  사람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을 써 가지고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가르치신 그 내용의 진리는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그 구원 방편과 지금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 방편이 꼭 같다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 인도하는  구원 방편을 사람들이 잘 모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 상고 때의  구원이나 지금 구원이나 꼭 같습니다. 또 구원하시는 그 방편도 꼭 같습니다.

다만 어릴 때에 상고 시대는 외부적이 많고 이렇게 육으로 감각할 수 있는 그런  면이 많고 속에 신령한 면은 좀 아주 빈약하고,  또 이 장성한 신약 시대에 인도하는 것은 신령한 면이 강건하고 충만하고  견고하고 또 육안으로 그렇게 감각할 수 있는 면이 빈약합니다. 그것은 차차  그렇게 돼져야 하늘나라로 옮겨지고 자꾸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바꾸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거는 필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과거 상고 때 아주 태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때는 그 알맹이를 잘  몰라서 힘이 들었고 껍데기는 잘 알게 됐고, 또 이제 현 이 현대에 와 가지고는  알맹이는 좀 뚜렷하지마는 껍데기를 잘 몰라서 흐미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래서 신령한 면은 아나 껍데기 이 혈육면 물질면 이 면이 빈약해서 구원이 잘  이루어지지를 안하고 하나의 그만 그 생각, 하나의 감각 그만 이런 것으로서 자꾸  타락해서 그만 변질되기 쉽습니다.

 또 옛날은 신령한면은 아삼아삼하게 보일 정도로 빈약하고 외부가 그때는 거의  전부라고 할 만치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이 그만 차차 차차 신령한 면을 잊어  버리고 그 면이 그만 빈약해져 가지고 구원을 실패하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또  지금은 그 신령한 그런 면은 좀 확실하고 강하고 이렇지마는 외부로 이거 육으로  접촉하고 감각하는 그 면이 빈약해서 구원에 대해서 실패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말로는 다 잘 믿습니다. 또 지식으로는 잘 믿습니다. 또  자기네들이 마음으로는 잘 믿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육안으로,  혈육으로 감각할 수 있는 이 면이 빈약해서 모두 사람들이 행함이 없어서 다  실패한다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 것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전체에 움직여  나가는 것이 그 필연적으로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구약 그 상고 시대에 사람들은 그 신령한 면을 그 좀 강 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했지마는 그 면으로 힘을 쓰는 사람들은 성공을 했고 지금은  이제 외부 육안으로 감각하는 이 면으로 힘을 쓰는 사람들이 성공을 합니다.

 가인과 아벨 그 사이에도 보면은 가인은 외부적인 그 면만을 힘을 썼고 아벨은  그 신령한 면을 좀 생각을 하고 했기 때문에 그분은 승리의 성공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은 자기가 마음으로 믿는 거, 생각으로 믿는 거, 지식으로 믿는 거 이런 것은  다 충족하다 할 만치 하나 외모가 빈약해서 헛일이니까 이 말세에 구원 이루는  일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육안으로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이 외모 면을 아주 힘써서 강하게 하는 그 사람이  구원을 잘 이루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원리가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거게 피동돼서 그렇게 됩니다.

 이래서, 구약을 연구할 때에 신약에서 연구를 하라. 신약을 연구할 때에 구약에서  연구를 해라 이렇게 말하는 것들도 다 그런 뜻에서 말합니다. 그러면, 구약은  신령한 면은 거석하나 육면이 강했고 또 신약 시대에는 신령한 면은 강하고  장성하나 그 육의 면이 빈약하기 때문에 그렇게_되어 있는 성경이니까 신약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구약을 가지고 연구하고 구약을 연구할 때는 신약 성경을  가지고서 연구하면 그 조화가 바로 맞아서 안팎을 다 연구할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것보다도 실지로 해 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주장을  하고 또 그렇게 깨달아져서 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 생활도 신약 교회에 우리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지마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가 하는 것을 그것을 참 바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전이면 그라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성전이 올바른 성전이  되어지는가 하는 그것을 연구하는 데에는 구약 시대에 성막을 연구합니다. 구약  시대의 성막을 연구하고 성막이 이제 그 성전돼 나오고 했으니까 성막과 성전을  연구해서, 성전과 성막에는 보니까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었다. 그러면 우리를  성전이라고 하니까 우리에게 있어서는 성소는 무엇이며 지성소는 뭐인가 이렇게  연구를 하고 거게는 또 떡상도 있고 뭐 세수통도 있고 또 등대도 잇고  이랬으니까 등대는 뭐인가? 또 떡상은 뭐인가? 세수통은 뭐인가? 또 향로는  뭐인가? 또 속죄소는 뭐인가?  이렇게 하면은 신약 시대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는데 그런  면으로 찾아서 '요게 요것이다.' 이렇게 해 가지고서 그것을 그대로 잘 정비하고  구비하게 되면은 그런 가운데에서 자기의 영은 물론이고 영육인 그 심신도  하나님이 내주해 계실 수 있는, 기뻐하실 수 있는 그런 성전이 이루어져 갑니다.

 이래서 그런 것도, 신약에 '너희는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안에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라.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벌하시리라.' 하나님이 벌 해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죽이고 이렇게 했는데, 그러면 그때 구약 때는 성전을 더럽히고 범하면 죽였는데  신약 시대에는 뭐 우리를 성전이라 했지마는 그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다  멸하시리라 이렇게 말했는데 죽이는 일이 없으니 우리에게는 어떻게 그래 되나  이라는 것도 거게서 죽이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죽는 게 뭐인가? 또 그래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죽는 게 있습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즉 시 즉시 사형을  받습니다. 이래서 예수 믿은 지 수십 년이 돼도 다 성전 더럽혀서 벌받아서 다  죽어 버리고 남은 거는 남지 안하고 이러니까 부활할 때에 부활의 능력으로  부활요소가 적고 전부이 다 죽어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하루 종일 죽는 생활했지마는 죽는 줄 몰랐는데 구약에 보니까  딸칵딸칵 범죄했을 때는 죽였으니까 그거 뭐이 죽었는가 또 거게서 자꾸 찾아서  이래 연구를 하면 '오, 신약 시대에 와서 우리가 영은 구원 얻었지마는 우리의  심신은 구원을 얻어 놓은 이것을 지금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해야 이 심신의  기능이 죽지 안하고 사는데 이 심신의 기능이 성전 더럽히는 그런 비신앙적인  행동을 하면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그 시간 즉시즉시 즉사를 하고 마는구나.'  하는 것을 거게서 미루어서 찾아서 연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을 범하면 죽였는데 뭐 지금이야 안식일은 다른 날에 정해 가지고서  주일을 안식일로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예언해 놓으셨는데 주일을 범해도 죽지  안하고 그 사람이 뻔뻔스럽게 밥 잘먹고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주일 범해도  지금은 안 죽는갑다 이라는데 실상은 죽으니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일이 거짓이  없고 또 하후하박이 없고 약속하면 약속하신 대로 그대로 지키는데 우리에게는  주일을 범해서 죽는 것이 뭐인가?' 하는 그것을, 틀림없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자꾸  찾아 보면은 죽는 게 뭐이냐 하면은 우리의 심령의 기능은 죽습니다. 심령은  기능은 그날그날 그만 죽고 맙니다.

 이래서, 우리는 요것을 자꾸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 구원을 참으로 얻어  가질라고 어떻게 하면 얻어 가질까 해서 이렇게 저렇게 자꾸 연구하고 구원이  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는 자에게는 이 구원을 차차 연구해서 알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지마는 이 구원을 이루기를 싫어하는 그자에게는 이 구원을 깨닫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또 행해 지지도 못하게 되는 젓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새사람을 입으라' 또 '사람이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둔다' '네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됩니다.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돼요.

 이래서, 구약과 신약이 하나요. 구약과 신약의 구원도 다른 구원이 아니고 또 이  구원을 이루는 방편도 새것이 아니고 다 옛것이요 꼭 같은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종교들은 진화적으로 자꾸 거게서 거게서 자꾸 이와같이 지금 변화되고 진화되고  자꾸 이렇게 더 추가되고 추산되고 추론되고 이래 나가지마는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 작정해 놓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시는  데에는 그 정도를 따라서 당신이 주시는 것이지 도가 어리고 장성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다만 본인 그 사람들의 자신이 받아들이는 데에 징도를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다른 것이지 하나님의 도는 이 진화의 도는 아닙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계시해서 주시는 계시의 도요 또 사람들은 그 계시를 받아서  순종해서 구원을 이루는 도이기 때문에 일반 모든 그 종교나 그런 거와 다릅니다.

일반 종교는 그것이 다 종교나 철학이나 다 하나입니다. 종교나 철학이나 하나요.

도덕이나 다 하나입니다. 도덕은 인간의 이목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그것이  거게다가 주력을 했고, 또 철학은 뭐를 사색해 가지고서 그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찾아 나가는 그들의 사색에다가 주력을 했고. 종교라 하는 것은  이제 자기가 소망에서 소망으로 자꾸 소망에다 주력을 해서 소망을 하나 찾고 둘  찾고 또 큰 소망으로 또 이와같이 자꾸 소망에서 소망으로 이렇게 주력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종교들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통틀어 말하면 인간의 주관 역사요. 인간의 자기 주관 역사요  자기 주관이 찾아 들어가는데 뭘 찾아 들어가느냐 하면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찾아 들어가는데 종말로는 인간을 찾아  들어가서 인간의 보이는 데서 인간의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찾아 들어가는 그런  것이 이종교들이요 다 철학들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라도 그 철학이나 이종교를 연구하면은 그 연구하는 결과에는 다  자기 속에 그것이 이미 있다 하는 것을 다 알게 됩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깨달은 결론 가진 사람들은 '이 철학은 자기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공부한 사람은 다 이것이 다 내게 있는 것이라, 공통적으로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그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첫 아닙니다. 계시 종교입니다. 이 기독교는 계시의 도라  하는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이 요동을 안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줘서 우리가 아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내가 받아 가지는  것이지 내가 뭐 노력해 가지고 뭐 만드는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수동적으로 하나님이 주실 때 우리는 받아서 가지고 하나님이 알려 주실  때 우리는 이제 배워서 알게 되고 하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기독자의 구원이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것 그것만이가  다 조성되고 또 구비하고 조립되는 그 구원인가? 이 기독자의 구원은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와 가지고서 되어지는 구원인가 삯의 것을 이것을 성장을 시켜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조성한 구원인가? 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인가 땅에서  만들어 가지고서 이거 구원하는 것인가 여게 대해서 제가 신학을 공부할  때까지는 그것이 내가 물어 봤는데 판정이 나지 안했고 그때 학자들은 다 거게  대해서 그저 이렇다 저렇다 말한다고만 말했지 단정을 짓지를 못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이거는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이요 이 땅에서 인간들이  만들어 가지고서 뭐 하는 그런 것은 하나도 하는 것 아니라. 은혜도 전부 무슨  은혜든지 하늘에서 내려 줘서 그저 받은 것이지 땅에서 사람이 만들어 한 것은  아니라 하는 그런 말을 듣지를 못했는데 제가 차차 차차 그 연구하고 성경을  보고 또 실지로 신앙 경험을 하고 할 때에는 어째 보면은 사람이 만들어서 된  것같이 하지마는 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주셔서 은혜로 받은  것이지 하나도, 인간이 만든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고 여겨지는 그런 껍데기를  쓰고 그런 방편을 입은 것뿐이지 실상은 순전히 하나님이 위에서부터 내려 주석  가지고서 땅위에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을 확실히  우리가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이 구원은 처음 말하는 대로 상고 시대와, 자꾸 태초니 상고니 중고니  그때와 지금 이 근대와는 차차 차차 보면은 이게 거게는 알맹이가 빈약하고  껍데기가 강했고 신약 시대에는 알맹이는 강건하고 껍데기는 빈약하고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이 이 성경을 기록해 주신 것도 그러하고 또 인간을 취급해서  이래 관리하시고 양육시키는 것도 그와같이 하는데, 그런 것은 하나님에게 무엇이  미비해서 차차 준비해 가면서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  예정하셨고 완전히 다 이루어 예정해 놓은 것이요 그대로 성취해 나가는 것인데  우리 사람들의 정도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마치 아무리 최고의 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일학년을 가르칠 때에는 부득이 일학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기역 니은 이렇게 가르치는 거와 같은 그런 방식이지, 이제 속에 많이 가지고  있지마는 그 아이의 정도에 맞춰서 그와같이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도가 구약 도리와 신약 도리가 언뜻 보면 좀 다르게 이렇게 보여지는 그것은  구약 시대에 속한 사람들과 신약 시대 속한 사람들의 그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정도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와같이 하신 것이지 하나님 당신에게 그 고장이  있든지 당신의 무슨 문제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순전히 우리 문제를  적합시키기 위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신약 교회가 신약 성경만 보고 구약 성경을 보지 안하면은  신약 성경만 가지고 뭐인지 모릅니다. 또 구약 성경을 가지고서 이렇게 보면은  구약 성경 봐 가지고서 그것의 신령한 면이 뭐인가 구약 성경 가지고는 신령한  면을 알기가 어렵고, 또 신약 성경 가지고서는 이 구체적인 외모의 면을 알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구약은 신약에서 신약은 구약에서, 그러면 신약 성도는 구약  성도의 신앙을 자기가 연구해 가지고 본받아서 이래 나가는 가운데에 구원이 잘  이루 어진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오전에도 말했지마는 하나님이 인류 시조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그러먼  아담은 처음 최초의 신자입니다. 아담은 최초의 신자요, 그러면 그때도 불신자가  있습니다. 거게 가인과 아벨같이 이와같이 이렇게 말하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 가인을 쫓아낼 때에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쳐 죽이겠습니다. 너를  죽이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벌을 칠 배나 더 주겠다 이라니까 사람은 어떻게  가인하고 아벨뿐인데 그때도 아마 아담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가보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서 나한테 그리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녜, 가인과 아벨 외에 많이 있었습니다.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 어떤  사람들인가? 그것은 전부 장기간을 살면서 아담과 해와가 생산한 사람들입니다.

생산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성경에 기록한 가인과 아벨은 그것은 아담의  자손 중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택함을 받은 사람이라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그는 오늘도 가인의 계통이 있는데 오늘도 아벨의 계통인 그  신령한 계통이 있고 또 가인의 계통인 그 혈육적인 계통이 있습니다. 이래서 상고  때도 그렇고 노아 때도 그렇고 언제든지 두 조류로 이와같이 있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아브라함과 롯이 지금 성경에 기록해 있을  때에도 그외에 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사장들도 많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 계통에 아브라함의 계통이 있고 롯의 계통이 있고 두 신앙  조류들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인데 지금도 그 신앙 조류는  그대로 있습니다.

 있는데, 그러면 신령한 면에 속한 그 소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 려워하는  것이 보다 낫고 또 조심하는 것이 낫고 하나님의 심판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면이 낫고 또 육적인 면으로 나가는 그 사람들은 용기도 있고 힘도  세고 말도 잘하고 또 욕심도 있고 또 강하고 재산도 있고 부유했습니다.

 이래서 노아 시대도 다 유명한 용사라, 네피림이라, 또 그 사람들은 다 아주  유명한 대인이요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이 육적으로, 이  세상적으로 발달을 해서 세상적으로 부유했지마는 그 영적으로 하나님께  대해서나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유하지를 못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도 그랬고, 또 모든 시대 시대의 사람들을 보면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 가운데서도 영적면으로 축복을 받아서 영적면에 속한 그런 조류가 있고  육적면에 속한 조류들이 있으니 언제든지 영적면에 속한 조류들은 영계와  하늘나라의 소망이 더 견고하고 그면으로 주력하고 육적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육면이 강하고 또 육적면을 주력을 합니다. 지금도 그때와 꼭 같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언제 어떤 사람 내가 설교하는 것 들으니까  세상에서 뭐 돈 많고 권세 많고 건강하고 자녀들 많이 낳고 모두 힘센 자녀들  모두 똑똑한 자녀들 이렇게 낳아 놨으면은 그 사람은 참 축복받았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실은 보면은 그 가인의 계통, 또 롯의 계통, 아브라함외 계통, 또  아벨의 계통 그 계통이 있는 걸 쭉 보면은 사람들이 똑똑히는 모르지마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 목사는 아브라함 계통이다 저거는 롯의 계통이다, 저거는 또 가인  계통이다 저거는 아벨 계통이다, 저거는 유명한 사람들이다 저거는 노아 계통이다  이렇게 짐작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쭉 조류로 이렇게 나오면서  사람들을 구원을 하십니다.

 이래서, 이 모든 면을 가지고 우리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선민들을 취급한  그것을 우리가 신약 시대에 하나님이 선민 취급하는 이것을 한테 맞춰 가지고서  이걸 꺼꾸로 맞추면 됩니다. 이 구약 것은 알맹이가 작고 껍데기가 크고 신약은  알맹이는 크고 껍데기는 작으니까 둘을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데 둘을 이래  꺼꾸로 딱 맞춰 버리면은 꼭 같습니다. 같은 게 됩니다. 비유한다면 그래  같습니다.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서 이 신약 시대에 성도들은 그 구약 시대에 성도들에 대한  일을 그거 뭐 남의 일로 볼 것이 아니라 거게다가 관심을 랄이 가지고 연구를 해  가지고서 그면을 좀 주력을 하고 힘을 쓰고 거게서 깨닫고 배워서 가는 것이  그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구약은 옛날 지나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없다' 그  신약만 가지고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들은 그 신앙이 대개는 치우칩니다. 대개는  치우쳐 가지고서 그 사람은 속에 알맹이뿐이고 이제 이 외모가 빈약해서 그 외모  빈약으로 헛일됩니다. 그러면 안팎이 꼭 같아야 되지 그 내부만 가지고도 안 되고  외부만 가지고도 안 되는데 그 신약뿐이지 구약이 필요없다 하는 그런 사람들은  다 신약만 가지고는 그게 어째 되는지도 모르고 자기 주관대로의 해석이 많아서  실패하게 됩니다. 이래서 주관 해석을 버리고 언제든지 신약은 구약에 가서  연구해 가지고 발견하도록 그렇게 하고,  또 구약만 가지고 신약은 필요없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보면 영적면은 없고  육적면으로 자꾸 제도와 의식이라 하는 거 여게다가 자꾸 강조를 해 가지고 또  이상한 신앙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약을 구약에서 구약을 신약에서 이렇게 연구해서 찾고  우리 신약 시대의 성도의 신앙 생활은 구약 성도들이 신앙 생활은 그 신앙을  우리가 연구해서 내가 거게서 배우고 찾고 미비한 것을 갖추어 가지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법입니다.

 이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에덴 동산이라는  이 에덴 동산을 어떤 학자들은, 에덴 동산은 오늘로 말하면 뭐인가?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과 성도들이 교제하는 신인 교제하는 그 교제 위치를 가리켜서  에덴 동산이라 한다. 이거는 무슨 오늘에 무슨 물질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이거는 다만 하나님과 성도들이 신령한 면으로 교제하는 신인 영교, 영교라 하면  신령한 교제인데 신인 영교하는 그 영교하는 그 영교의 위치 그것을 가리켜서  에덴이라 말한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데, 이 에덴은 저는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현실이라, 또  자기의 처지라, 자기의 처소라, 자기의 형편이라, 자기 현실이라. 그런데 먼저 말한  그런 학자들의 해석과는 다른 게 뭐이며 같은 게 뭐인가? 내나 다만 그는  신령면으로만 말하고 물질면을 말을 하지 안했기 때문에 내나 신약에 병든,  신약에 그 단점, 신약의 단점의 꺼풀을 벗지 못하고서 신약 단점의 꺼풀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신령한 면만 많이 말하고 이 육적인 그 면을 빈약하게  말해서 내나 신약적인 그런 것이라 볼 수 있고 구약적인 그 은혜를 입지를  못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 동산은 현실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 현실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영교하는 그 위치가 현실이다. 이 현실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영교해서  내 중생된 영과 하나님이 교제하고 중생된된 영과 또 그 진리와 교제하고 내 이  심신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고, 이제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현실밖에는 없다. 현실 밖에서는 교제하지 못한다. 현실 안에서만  교제하고 현실 안에서만 모든 관계가 맺어지지 현실 밖에는 맺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깨달아서 에덴은 우리에게 준 현실이라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이 해석한 이것이 틀리지 안했다 하는 것으로서 아'주 확신을  나는 가지고 그대로 해 나가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딴걸 다 틀렸다고는 하지  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이거는 나로서는 이게 확정됐기 때문에 용감스럽게  이대로 전력을 기울여서 하지마는 서도 내가 아는 것이 그것이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걸 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효에 가서 검사를 맡을  터이니까 막상 그분에게 가 가지고서 검사를 맡을 새에는 이게 바로 됐나 안  됐나 의문이니까 항상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이게  틀림없다 절대를 붙일 수가 없더라 그말이오.

 그러나, 깨닫는 대로는 '이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에덴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면, 이 내 현실은 하나님의 에덴이다, 하나님이 사람 만드시고 에덴으로  이끌어 주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이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현실에 나를 머물도록  이렇게 하신다. 그거 그럴 때에 조금 얼떨떨해서 마음에 번민을 조금 처음에  깨달을 때에는 가졌던 것입니다.

 왜 가졌느냐? 에덴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는 알지도 못하게 에덴을 딱 만들어  가지고서 끌어다가 '여게 있거라' 거게 둬 버렸는데, 물건 두듯이 막 거게 머물고  딴 데 가지 말고 거게 딱 뒀는데 내야 암만 생각해도 내 현실은 내가 만든 것이  내 현실이고 또 누구하고 합작해서 만든 게 현실이고 이라니까 어떨 때는 내가  현실을 내 욕심대로 만들라고 했는데 그 철실이 잘못되는 누구 때문에 잘못  됐다고 원망할 사람도 많고 시비할 사람도 많고 이렇게 불평할 일들도 많이  있는데 이거는 아무래도 에덴은 이 현실이라고 이렇게 봐 가지고는 틀리겠다  이래서 많은 주저를 가졌던 것입니다.

 많은 뭐 그거 한 달이고 오랫 동안 과제로 두고서 이랬는데 차차 차차 자꾸  그면을 두고 기도하고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실은 내 현실은 내가 만든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내가 만든 것은 하나도 아니고, 그 내가 만든 것이 아닌 것은  뭐이냐 하면은 나는 이 현실을 만들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저래 돼집니다. 그거  내가 힘들어 만들어서 되는 것 같으면 이리 만들라 하면 이게 되고 저리 만들라  하면 저게 되는 것인데 내가 이거 만들라 하는데 이거는 안 되고 저게 될 때도  있고 혹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도 있으니까 되는 거 그거는 열 번 가다가  제 생각대로 하나만 돼도 이거 제가 만들었다 이라는데 안 되는 걸 보니까 다  전부 통계를 맞춰 보니까 안 되는 것이니 제가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거야.

 그래서, 그 뒤에 인제 성경을 이렇게 보면은 모두 다 자기가 자기 된 것이  하나님이 만드셨고 또 인간이 자기의 모든 이런 처지든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든 걸 볼 때에 제가 만든 것 같지마는 실은 뚝 되고 보니까 영원 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정하사 그 경륜하신 대로, 예정하시고 경륜하신 그대로  이루어지지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때 전부터 이루어진 구원이라 하는 것을  말씀해 놨고 또 사람의 행함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이런 말씀을 자꾸 이와같이 비춰 보니까 확신이 든다 말이오. '아하,  요거 현실은 하나님이 과연 만드신 것이로구나,'  이래서,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현실을 만들어질 때에 내가 보면은 나는  이러는데 내 생각과 달리 현실은 따로 만들어지고 또 나는 내게 좋은 것만  만들라 했는데 좋은 거는 만들어지지 안하고 싫은 것만 만들어질 때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요 면을 눈을 띄운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래요. '아이구, - 깨닫기를 -  이제 내가 좋은 것이 됐으니, 내가 좋아하는 집이 됐으니 아이구 또 이사가겠다.'  또 뭘 제게 좋은 것만 있으면 '아이고, 하나님이 또 이거 내놓고 또 딴 데로  보낸다.' 그래 자기 좋은 대로 하나님은 하나도 안 해 준다 하는 것을 그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좋은 대로는 하나님이 하나도 안 해 주신다.

 보면 꼭 '요거는 내가 싫어하는데' 하면 싫어하는 그거는 아예 싫어하는데, '어라  싫어하지 말자. 싫어한다 하면은 하나님이 기어코 그게 되게 할 터이니까 어라  싫어하지 말자.' 이래 쌓아도 나중에 싫어하는 것 하나님이 아신다 말이오. 그거  외식으로 한 것 모릅니까? 싫어하는 그놈 딱 만들어 주거든. 이래서, 나중에 자꾸  이렇게 널리 범위 넓게 이렇게 세상 볼 때에 아, 하나님이 이것은 참 우리  현실이라 하는 개인개인의 현실은 하나님이 주권적 의지로 정하셨고 주권적  능력으로 이것을 성취해서 만들어 놓은 현실이다 하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깨달아질 때에 이 구약에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신 것이 우리 오늘 현실이라  하는 것이 차차 믿어지고 알아질 때에는 이제 배짱이 나옵니다. '하, 하나님이  만들었으니 내가 여게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뭐 염려 걱정이 없이 그대로 나갑니다.

 그래 내가 어제 우리 저 옆에 골짜기지, 이거는 장생골이고 그거는 기린골이라  하는 골이라, 기린골. 기린골이라 하는데 기린골에서 밥 사먹고 기린골에 올라가  가지고 그래 됐어. 그 기린골입니다. 기린꼬래기라 하는 거 내나 기린골이라요.

이상한 그 지방 이름이오.

 기린이라 하는 것은 짐승의, 기린이 나는 것은 성자가 나기 전에 기린이  먼저난다 이랍니다. 기린이 먼저 나고, 기린은 짐승인데 기린이 먼저 나고서 그  다음에 성자가 난다 그래서 거게서 기런이 난다고 기린골이라.

 기린골이고 또 여게는 또 하필 또 장생골이라 이거, 이거 누가 만들었는지  장생골이라. 또 이쪽에는 왕승이라고 왕골이요, 이거 왕골, 요 옆에는 왕골이라.

그래 내가 그것도 이거 하나님이 보면, 구약에도 보면 이름 지은 것도 인간이  제가 지었지마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뭐 짓는 거야.

 이런데 여게는. 참 장생골이 맞다, 맞기를. 장생골이 맞는데 이 물이 자꾸 나빠서  뭐 오염이 되고 해서 그거 곤란하다 이래서 이거 이거 물이 없으면 탈이겠다  이라는데 우리 대구기도원에 그 물을 줘서 아주 요번에 오월달 집회에는  우리에게 힘을 줬습니다. 하나님이 이 우물을 주시고 이 또 산을 주시고 도로를  이렇게 편리하게 하시고 어쩌든지 크고 작고 간에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하는 그것이  움싹만치라도 싹수가 보일 때는 제가 배짱이 나온다 말이오 그러면 그거  교만하기 쉬워. 하, 하나님 같이 하신다 해서 뭐 기쁘고 즐겁고 담력이  생겨집니다.

 이랬는데, 이제 이 거창은 이거 거석할 때에 '그 거창에 우물은 지금 , 구기도원,  이 거창기도원 둘이 있지마는 나는 대구기도원이나 거창기도원이나 둘을 꼭 같이  생각하고 있고 그 입장이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있지마는 이래 생각하고  있지마는 이래 보면 어떤 사람은 대구기도원에 속해 가지고 그 기도원을  주력하고 어떤 사람은 또 거창기도원에 속해 가지고 거창기도원을 주력하고 또  어떤 사람은 또 여게 대해서 별 재미없이 여기고 뭐 별별 사람들이 있다 그거요.

있는데, 그래도 아무래도 보면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라든지 모든 거 보면은  거창기도원이 큰 기도원이고 대구기도원이 그 다음에 제이차 기도원이 돼야  되겠는데 이거 우물을 파는데 대구에서는 이렇게 물이 펌프 안 대도 풍풍 솟아  올라와 버리고 이제 거창서는 물을 파기는 파지마는 만일 물이 안 솟아 나오고  저 밑에 쨀쨀쨀쨀 나오는 날이면은 대구기도원을 중요시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교만이 생겨져 가지고 뒤로 저뻥할 것이고 이제 저거는 '대구기도원은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거창기도원은 하나님이 우리만치 같이 안 하신다' 이래 가지고 이  고장이 생길 것이라 말이오,  이래서 나는 그 면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무래도 대구보다는  거창이 사람이 많기 때문에 물이 좀 더 나야 되지 그거 만일 여게는 이래 났는데  거게는 안 나는 날이면 대구 있는 사람들 교만해 가지고서 손해 볼 것이고 또  거창 있는 사람들은 '우리는 하나님이 그만 버린 자식 모양으로. 버리는가배?  대구는 함께 하시고 거창은 함께 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 또 고장이 날  터이니까 이거 문제입니다. 그래 가지고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해 가지고 난  다음에 말하기를 물이 거게서 그 대구 것보다는 뭐 얼마? 두 배나 돼요? 호오스  크기가 두배나 돼? 두배를 되는데 그 물이 풍풍 솟아 오른다 해. 땅에서 얼마나  올라와요, 펌프 안 대고? 아니 위에 파이프 없이 올라온 게 얼마인고? 그렇츰 막  공중에 솟아? 아니라. 그거는 너무 과장이다. 파이프를 대면 십 미터 올라가겠지?  과장 아니야?  그래 가지고서 올라오니까 됐다 이랬는데 요 위에 또 어데 팠는 데는 그거는  아예 안 된다고 안 된대요. 안 된다고 하는데 그래 안 된다고 이래서 우리가 거게  파다 그만 말고 이랬는데 그래 또 거게 대해서도 하나님께 '그거는 물 안 난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땅 위에 있는 물을 주권하고 계시는데, 바닷물도 딱 막아  놓으니까 몇천 년이 와도 그거는 그만 꼼짝 못 하고 그대로 막혀 가지고 있는데  당신이 수로를 요리조리 끌면 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끌면 될 터이니까 거게도  좀 되게 할 수 없습니까?' 또 이래 떡 기도를 허다 말이오. 기도했더니마는  거게도 그렇게 큰 걸 박아 가지고 이렇게 했는데 그래 말을 내가 들으니까 펌프  안 대고 파이프 위에 올라오는 것이 한 한 뼘 올라온대요. 이게 아마 정직한 말  같애. 한 뼘 솟아올라 온대요. 한 뼘 솟아오른다 해. 그게 아마 정직한 말 같애.

 그래서 이 물을 하나님이 많이 주시니까 그것만 해도 하나님이 이거 참 같이 해  주시니 좋다 안심이 된다 그거요. 그래서, 우리가 무슨 표적을 볼라 하는 것은  무슨 하나님의 그 능력이 있나 없나 하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볼라 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자기를 권고하시고 자기에게 함께 하시고 자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오. 자기에게 비록 이래 와 가지고서 무좀이 나아도, 자기도 기도했더  니마는 무좀이 나아. 무좀 나은 그거야 약 바르면 무좀 낫지 안 낫아요? 낫지요.

 이래도 자기가 기도하고 해서 하나님이 무좀을 낫아 주셨으니 하나님 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내 무좀을 낫아 주셨으니 무좀 나은 게 문제가 아니라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 창조주 주재자이신 이 지극히 크신 전능자시요  주권자이신 이분이 내 기도를 들어 줬다는 거 이거 놀랄 것 아니요? 이거 자꾸  감사하면 되는데,  그래서, 제가 시편 136편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설교를 제가  세 시간, 금년에 세 시간인가 했는데 두 시간을 하는데도 그 딱지도 몌자 못해요.

딱지도 떼지 못했어. 거게 대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일반 주석들이, 다는, 못  봤지만 내가 본 대로의 주석들이 깨달은 거와는 달라요.

 이래서, 이제 감사하면 하나님이 자꾸 은혜를 주십니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하는 것은 감사를 하면 자꾸 인자를 또 계속 주시고 주시고 자꾸  그래 주시는 것입니까 그 은혜는 영원 계속되도록 이미 불변적으로 돼 가지고  있는데 네가 깨닫고 가치를 알면은 아이구 감사하다 하고 귀중히 여기고.

 이래서 네가 알고 그 가치를 알고 사용만 하면은 무진장의 것을 네가 다 사용할  수 있다 하는 그 약속 그 선포의 계시입니까? 네가 자꾸 감사해라. 한번 감사하면  그만치 주고 백 번 감사하면 그만치 주고 감사하는 데 따라서 양을 주신다는  그런 말입니까? 이제 그 무진장의 은혜는 영원히 있는데 네가 그것을 깨닫고  사용만 하면은 얼마든지 네것 된다 하는 말씀이요? 어느 것이요? 어느  해석입니까? 후자요 전자요? 후자입니까 전자입니까, 저게는? 후자인데 요래  말하니까 후자인데 성경 학자들이 다 이 후자라는 것을 모른다 그거요. 알겠소?  그래 내가 주석을 몇 권을 봤어요. 보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인자하시니까 참  얼마나 좋으냐 감사하냐 이렇지 그렇게 감사하는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그  가치를 깨닫고 소중히 여겨서 이제 자기가 어떤 은혜이든지 이미 은혜받은 그걸  자기가 은혜인 것을 깨닫고 가치를 알고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 은혜를 사용할 줄 알면 자꾸 고 방식으로 사용하면은 은혜는  무진장으로 있어, 무진 장으로.

 어데 말하다가 지금 나갔어? 신인 교제의 장소로 에덴을 삼았는데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과의 관계나 만물과의 관계나 이제 그 관계는 꼭 현실에서만  돼지지 현실이라는 범위를 넘어가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꼭  현실에서만 그 모든 관계는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에덴이라는 것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의 현실이라, 내 처소라, 내가 살 곳은 어데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현실 거게가 나 살 곳이요 또 그거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곳이라,  그곳에서 하나님 섬길 곳이고 하나님의 축복도 거게서 받아야 되는데 그래  이것을 공부를 했다 말이오. 이번에 그만 그 일이 나 가지고서 떡 그래 됐는데  모두 이 모두 걱정이 돼 가지고서 뭐이래 호독거리고 하는데 나는 그래 잠깐 좀  눈을 감고서 하, 보자. 이거는 뭐꼬? 아, 이게 에덴 아니가? 이게 에덴 아니가?  그러면 이걸 누가 만들었노? 주님이 만들었지 뭐할라고 만들어? 나를 사랑하셔서  내 구원에 유익하도록.

 이제, 나는 되니까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 구원에 유익하도록 만들어 주셨지.

그러면, 여게 대해서 어째야 돼? 여게 대해서는 나는 이 현실을 도피할라고 하지  말고 이 현실에서 내가 있으면서 나 할 일은 뭐이야?' 여게서 살아야 돼. 사는  것은 그 현실에 어짜는 게 살아요? 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게 사는 거라?  하나님이 살라 하는 대로 사는 것이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게 거게 사는 것이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거기서 도피해  딴 데로 가는 것이라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맞아요?  이러니까, 할 일이 뭐일까? 그 할 일을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 그라는 데에는 그  뭐 이것 저것 말할 것 없이 시신을 건져야 되겠다.' 그래 '건져야 되겠다'이라는데  그뭐 그거 내 생각에는 '그거 뭐'내 생각하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이 벌써 건져  버렸어. 그 줄을 매 가지고 줄을 매고 이리저리 하면은 그래 나올 거 아닌가  이랬는데 나한테 아이디어를 줘, 그래 내 아이디어인지 그대로 했는지 다른  사람이 또 이래 했는지 이래 가지고서 이라니까 그래 나왔다 말이오.

 인제 건질 것, 그 다음에 또 인제 본가에 알릴 것, 그래 또 법적으로 우리는 이  국민이기 때문에 또 할 것, 그라고 난 다음에 장사할 것 그것만 나 할 일이지  걱정할 것도 없고 조급할 것도 없고 날뛸 것도 없고 그거 왜 이런가 의문을 가질  것도 없고 낙망이나 근심이나 할 것도 아니고 '햐,-마귀란 놈 있다가-야, 너거  그러니 이 집회 헛일이다. 하나님이 봐라. 벌써 은혜 주지 안하고 징계 주지  않느냐?' 이라는 것도 그것도 아니라 말이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그래서,'오늘 공부한 말씀을 내가 또 오늘 써먹게 되는구나'그 공부한 말씀을 써  먹으니까 그만 평안이 돼져. 아주 평안이 돼져요. 평안이 돼져서 그뭐 여러 사람  접촉하는데 다른 사람은 저 목사님은 왜 저런고 이랬을 거라. 내 마음은 아주  평안하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거 무엇을 좋게 할라고 이렇게 하셨는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거는  내가 뭐 지금 알라 하면 조급해서 실수하기 쉬울 것이고 분명히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니까 어떻게 좋든지 그거 결과적으로 반드시 좋다 하는 그것을,  그라다가 오전 설교할 때 좋은 걸 내가 생각하니까 이 청년들 지금 청년들 이  교만한 청년들 겸손하라고 지금 하는 것이구나. 그 청년 그 월요일날 집회 오자  하니까 집회는 안 오고 저 딴 데로 돌아다니고 그만 도망쳐 가지고 딴 데 가  가지고, 월요일날 나가, 월요일 집을 나가 가지고 이래 돌아다니다. 가 이제 잠깐  또 들어가 있다가 또 이리 또 쫓아와 가지고서 그래 오후 뭐 우리 예배 다  마치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난 다음에 저 기런골로 갔어. 기린골로 가 가지고  거게서 밥 한 그릇 얻어먹고 그만 바로 그 연못으로 가 가지고서 그만 그래 돼  버렸어. 이라는데, 그래서 이 청년들에게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이거 지금 주신  계시이니까, '너거 젊지마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꼭 물에만 빠져  죽습니까? 물에만 빠져 죽어요? 달 리는 죽는 것 없어요?  내가 고려신학에 있을 때에 학생들 둘이 그 친구가 참 친해요. 이래 놓으니까  저거 한방에 있으면서 그저 꼭 한자리에 여기 눕고 여기 눕고 이래 가지고서  그때는 방이 솔아서 네 명씩 자는데 그 두 명은 딱 붙어 요래 가지고 자는  사람인데, 같이 누워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새벽기도 가자고 자꾸 깨울라  보니까 안 일어 나더래요. 그만 가 버렸어 그 건강한 사람인데, 모른다 그거요.

 그러니까, 내일 자은 알지 못하는데 이 젊은 사람들이 자꾸 살았으니까 살  연구만 착고 안 죽는다는 그런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하니까 이걸 한번  경고시켜서 경성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제 크게 일을 하나 내 놨다,  그러니까, 그 청년이 이제 여게 여러분들에게는 큰 경고의 경종을 울려 줬어.

'봐라. 나도 지금 이 떠나니까 너거도 언제 떠날지 모른다 아예 그러니까 단단히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라.' 하는 그것을 그래 한번 써먹었어. 한번 써먹은  건 '하, 이런 유익을 줄라고 이래 했는가?' 해서 그래 그 말씀을 한번 했어요.

그라고 또 하나는 뭐이냐? 거게 지금 못이 그래 물이 깊은데 거게 가 가지고서,  보니까 그 사람들이 오던 길로 그리 가는 것 보니까 그전에 아마 거기 목욕하러  더러 갔던 모양이라. 이런데 갔으면 앞으로 사람이 얼마나 죽을란지 모르는데 그  사람이 이제 거게 사람 죽었다 하면은 이다음에 그 표막을 쓰기를 여기는 위험한  곳이라, 여게는 사람 죽은 곳이라 이래 놓으면은 그 다음에 사람 죽지 안해.

그분이 이미 죽는 죽음 가지고서 그거 아주 필요하고 요긴하게 그렇게 됐다  그거요. 그래 나는 오전에'뭐할라고 하필 그래 왔을까?' 이거 의문을 가지고  이랬는데 또 좀 생각해 보니까 또 좋은 게 나와. 이래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찾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들이 요 공부한 요것을 놓지 말아요. 우리 현실은 꼭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전지의 지혜와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서 내게 필요하도록 우리 현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천인 만인의 형편이 있지 마는 내게 대해서는 제일  좋은 형편이 뭐입니까? 내게 대해서는 제일 좋은 형편이 뭐이요? 자기 현실이  자기에게는 제일 좋은 형편입니다. 뚜드려 맞는 것도 그러하고 모든 것 다 그래요,  그 사람도 또 그날 익사한 그것이 자기에게는 제일 좋은 현실이라 알겠습니까?  세일 좋은 현실. '하 그거 어데 그럴 수가 어데 있겠느냐?' 제일 좋은 현실이야. 그  제일 좋은 현실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어.

 이러니까 이제 우리는 자기 현실을 자기가 만들라고 노력하는 그것 때문에 모든  것 다, 우리는 정력 시간 전부 재료는 거게다가 투자해 가지고 전부 헛일만 다  하고 있어. 헛일하는 것이, 그러면 자기 현실을 자기가 만들라 하는 데에 자, 자기  소유의 대략 몇분지 일이나 투자 되다고 생각합니까? 몇분지 일이나 투자돼요?  명분지 일? 백분지 일? 뭐라 하노? 전부야, 전부. 전부. 이러니까, 이 전부  헛일하는 일을 우리가 지금 이걸 해방 받아서, 이게 뭐이냐 하면은 생활 변화라  말이지. 이게 생활 변화되는 거라. 이 전부 어쑥 데에 투자해서 자기 망하는 일만  자꾸 하나님 앞에 죄짓는 일만 자꾸 하던 걸' 이거 안 하니까 자본 남아 있으니까  자본 다른 데 유효하게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전부 헛일되는 이것을 이제 깨닫고 난 다음에, 다시는 이제는  나는 내가 내 현실은 내가 만들라고 내가 하는 그런, 내가 내 현실을 내가  행복되게 만들라고, 좋게 만들라고 내 욕심대로 나는 요런 현실 만들었으면  좋겠다, 저런 현실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대로 만들라 하는 요거는 완전히  포기다.' 그라면 그 사람이 그 생활을 얼마나 고친 것입더까? 얼마나 고친  것이요? O씨? 전부 다 고친 거라. 전부. 자, 생활 고치면 뭐 고쳐요? 행동  고쳐져요. 생활 고치면 행동 고쳐졌지. 생활 행동 고쳐졌으면 뭐 고쳐져요? 사람  고쳐지지. 이게 사람병 고치는 거라. 하나님이 사람병 고치는데 이 치료를 어째  할란고 나는 그게 의문 돼서 자꾸 나에게 알려 주기는 사람병 고친다고 해서 '이  사람병을 고쳐 주시는데 어떻게 고칠란고?' 이래서 그래 나는 그런 기도했어.

사람병이 뭐인지 사람병을 낱낱이 알리고 사람병을, 나도 지금 속으로  기대를 하고 왔었어요. 기대하고 온 것은 '사람병을 고친다. 그러면 주님이  사람병은 이것 저것이라고 그걸 이제 가르쳐 주실라고, 사람병을 똑똑히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그렇게 기도냈어. '사람병을 똑똑히 가르쳐 주십시오. 나도 똑똑히  알고 나도 고치도록 똑똑히 가르쳐 주십시오.' 이랬는데, 사람병을 고치도록 해도  나는 또 그걸 모르고 뚱딴지같이 내가 그냥 나팔 모양으로 자꾸 이래 소리만  냈지 나. 는 또 깨달음이 없었다 말이오.

 깨달음은 자꾸 그거 지금 자기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상관하지 말아라. 또 현실을 지금 하나님이 끌어다 놓는 대로 을 일이지  제가 뭐이리 저리 돌아다니지 안하고 하나님이 끌어다가 여기 갖다 놔. 하나님이  끌어다가 여기 갖다 놨다 이랬다 말이오. 이라니까 이 둘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그것만 강조했지 '이게 사람병 고치는 일이라'하는 것을 인제 이 시간에  깨달았다 말이오. 이 시간에 내가 깨달았어요. 이 시간에.

 아, 이게 그라면 자, 이게 생활의 전부를 고치는 거라. 이걸 고친다 하면 생활  전부 고치는 것 아니겠소? 그렇지? 생활 전부 고치는 것이지! 생활 전부 고치는  것이라면 뭐 고치는 거라요? 행동 전부 고치는 것이지. 생활과 행동 다 고쳐  버렸으면 사람은 고쳐져요 안 고쳐져요? 고쳐졌어요. 고쳐졌어요. 이게 사람병  고치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면서도 스피카 노릇만 하지 아무 거게서  독단적인 연구하니까 몰랐는데 이제 이 시간에 알려 줘서 이 시간에 알았어. '아,  이게 사람병 고치는 거로구나.' 이 사람병 고치는 것. 사람병 고치는 것 맞아요?  이거 사람병 고치는 것 맞습니까? 아, 깨닫고 나니 참 좋습니다. 이게 사람병  고치는 거라. 이게 사람병 고치는 것. 이라니까 그거 작정해요. 그거 작정하고,

 그래 그랬는데, 거게서 이끌어 놓고 하나님께서 뭐를 하셨느냐? 동산을 다스리라,  다스리라 말은 지배하라 말입니다. 다스리라 말은 동산을 다스리라는 건 동산을  지배하라 말이오. 동산을 지배하라 말은 내가 뭐이든지 상대하면 그것에게 지배를  받든지 그거를 지배를 하든지 반드시 거게는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투쟁이  있어요. 투쟁이 있는데 동산을 다스리는 것은 뭐를 다스려요? 현실을 다스려요.

현실을 다스리는 것은 현실을 어떻게 하는 것이라요. 현실을 지배하는 것이라요.

그러면 현실을 제 주장대로 합니까 현실 주장대로 따라갑니까? 현실에게 피동을  합니까 현실을 제가 주장을 합니까? 그라면 현실을 나에게 피동시키는 것이고  내가 현실에게 피동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현실을 다스리면, 현실을 다스리는데 현실을 다스리면 주장하는 것이고  이거 통치하는 것인데 현실을 다스릴라면 어떻게 해야 다스려요? 현실을  다스릴라면 뭘로 다스릴 수 있지? 요거 알면 O집사 요거 알면 대신학자 된다,  참말로. 현실을 다스릴라면 누가 다스리요? 새사람은 현실을 다스리요.

알겠습니까? 새사람은 현실을 다스릴 뿐 아니라 현실 다스리는 이것을 연습해  가지고 우주와 영계를 막 통치할 거야, 이다음에. 현실은 새사람으로 살면  다스리요. 새사람이 얼마나 잘났는데? 새사람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새사람은 얼마나 잘났어요? 하나님만치 잘났다? 새사람은 뭘로 잘났어?  OOO목사님? 새사람은 진리로 잘났어요, 진리로. 진리의 힘으로 새사람 힘이  됐어요. 새사람의 힘이 뭐이요? 새사람의 힘은 진리가 새사람의 힘이라. 그러면  새사람이 그 힘 세요 안 세요? 진리로 살아났거든. 진리로 살아났으니까 진리의  힘으로 살아났다 그말이오. 진리의 힘으로 살아났어. 또 무슨 힘으로 살아났어?  성령의 힘으로 났어. 성령은 누구라요? 하나님이오. 하나님의 힘으로 또 살아났다  말이오. 참 잘났다. 참으로 잘났어. 실력 있어. 이거야 뭐 세상을 통치하지, 우주와  영계도 다 통치하지. 이랬는데 또 뭘로 살아났어요? 피. 예수님은 사죄, 칭의,  화친의 완료한 것이라. 죄에 대해서 완료했지, 하나님의 공심판에 대해서  완료했지, 대주재와 친교 맺은 것이 완성이 돼 가지고 있지, 배짱 있어요 없어요?  배짱이 있어요 없어요? 그라면 현실이 이 사람에게 지배를 받아요 그놈이 앙성을  해요?  이 현실은 사람도 들었고 대통령도 들었고 왕도 들었고 장관도 들었고 사장도  들었고 다 들었는데 그 현실은 별별 것이 다 들어 있을 거라 말이오. 그런데 그  현실을 자, 진리의 능력을 가졌지, 성령의 능력을 가졌지 또 죄 없는 능력을  가졌지,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의 의로운 능력을 가졌지, 하나님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완전 결합해서 같이 동행할 수 있는, 신인 양성 일행을 할 수 있는, 예수님은  신인 양성 뭐이라요? 일위고, 우리는 일위는 안 되지마는 신인 양성 일행을 하는  이 동행하는 이거 됐다 말이오.

 그러면 노아가 동행했거든. 에녹이 동행하니까 동행하는데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동행하는 동행은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저 집사님? 안 죽었어? 그래  알아 가지고 소용없어 눈감아 가지고 이래 대답만 하면 소용 있는가? 대답만  가지고 안 돼. 이러니까, 현실에 말이요, 자기 현실에 대왕이 들어앉았습니다. 자기  현실에 대왕이 들어 앉아 있어. 자기 현실에 대왕이 들어앉았으면 '아이구 이거  대왕이 들어앉았기 때문에 여게서는 내가 지배를 받아야 되지 여게는 지배를 할  수는 없겠다.' 이랬는바 그 사람이 중생된 자기를 아는 사람이요 모르는  사람이요? 자기를 아는 사람이요 모르는 사람이요? 아는 사람이면 그거 왕이  자기 현실에 필수의 요소로서, 구비 요소로서 하나 들어 가지고 있다면은 들어  가지고 있는 왕과 자기와 비교하면은 누가 커요?  누가 커? 참말로 자기가 큰 줄 압니까? 커요, 커요. 얼마나 커? 무한히 커요,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이렇지 배짱은  굉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이런 일이 있으면 웃소 이제 모두 다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 위해서 백지, 내가 두려워하고 떨고 내가 약했노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  구원 위해서 백지 벌벌벌 떨고 이라고 있지 정말로 속으로는 배짱이 굉장한  것이요, 배짱이 굉장해.

 저 위천 있을 때에 위천교회 있을 새에 막 공습이 와 가지고 이라는데 그때  빨갱이들이 와 가지고서 지금 점령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내려가고 점령지인데  거게서 자꾸 부흥회 했어. 거게서 하루 세 번씩 종치고 그러니까 두 달 동안 꼭  부흥회 했어. 두 달 동안 계속해서 부흥회 했어. 이러니까 그들은 만날  사형한다고서 오늘 죽인다 내일 죽인다 해도 그래도 부흥회 했어.

 부흥회 한 거는 그거는 뭐이냐? 믿으면 말이지. '내가 중생됐는데' 이라면' 에헴'  하고 '이놈들' 이라면 이 되지마는 또 잊어버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나는  중생했다, 중생했다.' 네까짓 놈이 무슨 실력있노?' '아! 나는 진리의 능력이 있다,  진리가 내 능력이다. 영감이 내 능력, 하나님이 내 능력이다, 나는 죄 없는 능력을  가졌다, 죄를 전부 멸한 죄를 전멸시킨 능력을 가졌다,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롭다고 통과한 능력을 가졌다, 하나님하고 밀접하게 단둘이 똘똘 뭉쳐서 단합이,  친밀 단합이 돼 가지고 있다.' 이라고 나면은 그만 문제가 없어. 문제가 없는데 또  안 생각하면 그만 약해지고 더러워져.

 그래 가지고서 그때 뭐 공습이 오는데 공습이 오니까 와르르 하니까 그 안  믿어도 그 사람들이 알기는 아는 모양이라. 내가 위천 있을 때에 요 집에는  그때에 인민군 시대에 통장이요, 이거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 사람들은 또  제일 무식하고 그런 아주 천한 사람 그런 사람을 자꾸 고관대작을 시켜요. 그래  그 사람이 통장이 돼. 통장이 이게 만날 나한테 잡으러 오지. 요 옆에 집에는  보도연맹에 가 가지고 또 공산주의라고 억울하게 보도연맹에 잡혀 가 죽었지, 또  요 뒤에 요것도 보도연맹에 잡혀 가 죽었지, 또 요 옆에도 그렇지. 이래 또 그  통장이야. 그 사이에다 하나님이 끼워 놨는데 이걸 그때는 잘 깨닫지를 좀 못  했어요.

 그거 그것도 깨달았으면 '요것은 에덴 동산이다' 이것만 깨달았으면 좋을 건데  그걸 깨닫지 못하니까 만날 그 사람들은 인민군만 만나면 저놈들 원수  풀어달라고서, 인민군만 오면 우리를 죽여서 원수 풀어 달라 하요.

 자꾸 이라니까, 이래 쌓으니 그저 가슴이 도근거리다가 또 안심하다가 자꾸  이랬는데 한번은 공습해 가지고 막 우르르 하고 이 뭐 탕탕거리고 이래 뚜드리고  이래 야단을 지기니까 온 그 동리 이웃 사람들이 다 기어들어 와. 우리 집으로 다  기어들어와. 그때 그 사택도 뭐 조그만한 그런 사택인데. 다 기어 들어와, 다 기어  들어와. 들어와서, 아이고 이 집에 가야 피난한다고서, 그 사람들도 알기는 아는  모양이라. 되게 급하면 '하나님' 찾는 것 모양으로. 그래 와 가지고 그래서 내가  있다가 그래 웃으면서 '하, 오십시오. 이 모두 이리 오십시오. 이리 들어오십시오.

이 부엌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부엌에 여름에 얼마나 더울 거라? 통풍도 없는데.

부엌으로 들어오라 하니 막 부엌으로 밀쳐 들어와 빡빡하도록, 처마 밑에도 빡빡,  처마 밑에도 들어오면 살겠다고서 말이오.

 그때 또 청년들 많이 있어요, 청년들 많이 있는데 이 청년들 말 잘 안 듣거든. 안  듣는데 그래 '이 파편 오면 너거 맞으면 죽는다 이러니 파편 안 맞을라면 그  한이불로 덮어야 된다.' 한이불을 여름에는 저 시골에는 뭐 방바닥이 뜨겁지  안해요? 거게 다가서 엎쳐 놓고서 한 이불 위에 덮어놓고서 위에 기도하면서,  나는 앉아서 기도하면서 가만 있거라 이라니까 막 그때는 불이 나요. 주여! 주여!  아버지여! 아버지여! 막 그래 살려 달라고 이 야단을 지기는데 그래 기도하면서  그럴 때는 참 좋아요. 그래 좋아서, 그래 나중에 거석하고 난 다음에 보니까  목욕을 했어, 모두. 얼마나 땀을 냈든지.

 그래. 우리는 진리로 중생됐지, 하나님으로 중생됐지, 사죄, 칭의 화친의 완전  완성의 힘으로 중생됐어. 우리는 완성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오. 우주와  영계를 시공한 그 시공자의 능력인 진리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오.

하나님이신 영감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오.

 이러니까, 이 사람들은 동산을 다스릴 수가 있어. 동산을 다스릴 수가 있어.

이러니까 동산을 다스리라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을 했으니까 속에 ' 있는 깊은 그  신령한 은혜는 빈약하게 그래 하고 껍데기는 동산을 이래 만들어 놓고서  이와같이 했지마는 오늘에는 그것이 우리에게는 뭐이냐 하면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면서 현실을 다스리라 하는 건 현실을 다스릴 자는 중생된 자만이 다스리지  딴 자는 다스리지를 못해요.

 현실을 다스릴 자는 새사람으로 살라 그말이오. 새사람으로 살면 이제 현실을  다스리고 있어요. 자기가 자, 그 사죄받아서 죄 안 지을라 하면은 현실 다스려져요  안 다스려져요? 사죄 받았으니까 사죄를 입고 살라 하면은 죄를 지어야 돼요 안  지어야 돼요? 죄 없이 살라 하면은 현실을 다스리게 돼져요 안 돼져요? 죄 없이  살라 하다 보니까 현실 다스려져요. 또 의롭게 살라고 하다 보니까 현실을  다스리게 돼져 버렸어요. 또 하나님하고 둘이 단짝이 돼 가지고 살라 하다 보니까  현실은 저절로 다스려졌어. 또 진리의 힘으로 살라 하다 보니까 다스려졌어.

영감으로 살라 하니다. 스려졌어. 첩첩이라. 현실을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리고.

이제 '현실을 다스리라'

 또 '동산을 지키라' 지키라 말은 이것은 보호하라 말이요 방어하라 말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보호하고 원수가 오는 것은 방어하라 그말이오.

 그러면 현실을 네가 다스리고 네것을 삼아 가지고 네 현실을 네것 만들어  가지고서 네가 그것을 잘 보호하는 동시에 원수가 적이 와서 행하지 못하도록  그걸 단단히 방어해야 된다. 그 방어하는 방법이 뭐이요? 그것을 보호하는  방법이? 보호하는 방법 다른 것 없어. 내가 진리로 살다 보면 보호되고 영감으로  살다 보면 보호되고 예수님의 피의 사죄로 살다 보면 보호되고 그저 칭의로 살다  보면 보호되고 또 하나님과 친교의 화함으로 살다 보면은 보호돼 버리고 말아요.

 그러면 이렇게 지키고, 그라고 나면은 뭐인고 하니 '임의로 먹으라'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임의로 먹어요, 임의로.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임의로 먹어요 임의로. 고거  조심할 것은 선악과 그것만 먹지 말지 다른 거는 임의로 먹어요. 이러면 모든  은혜는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네가 매인 데서 나오라. 또 흑암에서? 드러나라. 그라면 뭐라 했어? 어데서  먹어요? 길에서 먹어? 집에 찾아 들어갈 게 있어야지? 걸어가는데 길에서 입에  먹여 주는데 뭐. 길에서 먹지. 이렇게 먹기 좋고 꾀 편리해요. 그러니까 신앙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이거는 참 그저 항상 다른 사람 구원 때문에 걱정이 돼  찡찡거리지 자신에게 대해서야 항상 평강이요 즐거움이라.

 인제 선악과는, 어제 선악과 여게서 물었는데 선악과 말을 많이 했는데 선악과는  어떤 게 선악과이냐? 선악과는 먹으면 안 돼요. 선악과는 뭐이 선악이냐? 선과  악의 결과를 맺어지는 것을, 먹으면 제것 되지 안해요? 선악과 먹으면 제것되지  않아요? 선악과를 먹었으니까 선악과가 제것되지 안했어요? 선악과가 제것됐어.

선악과는 네것 만들면 안 된다 그말이오. 선악과는 네것 만들면 안 된다.

 선은 하나님 중심이 선이요 악, 피조물 중심 자기 중심이 악입니다. 하나님  중심이나 피조물 어떤 것의 중심이나 중심은 너는 손대지 말아라. 알겠습니까? 고  중심이 이루어지는 그것은 네가 손대지 말아라. 손대면 너는 죽는다 그말이오.

손대지 말아라. 하나님 중심에게 붙어서 속해서 살 일이지 제가 하나님 중심은 못  돼. 안 돼.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 중심이나 피조물 중심이나 그 중심은 너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것은 네가 네것 삼지 말아라. 너는 중심은 네것 삼으면 안 된다. 중심은  제것 삼으면 안 돼요. 제 중심을 삼아도 안 돼요. 하나님 중심이라는 그것도 제것  삼으면 안 돼요. 피조물 중심도 제것 삼으면 안 돼요. 중심은 하나님 중심은 내가  거게 따라저 속해서 살아야 되고 피조물 중심은 그것을 피해서 멀리 물리치고 다  다스려서 없애버려야 되지, 이러니까 그것은 취하면 안 돼요.

 이래서, 그 다음에 3장에 보면은 3장 22절에 보면은 그래 놨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했으니까 배암이 와 가지고서 그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아서, 선악을 아는 게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아서 그와 같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 했다 하는 그 말이, 그러면 선악과 먹으면 그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이 그게 틀린 말이요 참말이요? 틀린 말입니까 참말입니까?  참말이야, 참말.

 참말인데 참말한 동기가 다르고 참말하는 목적이 다르고 참말한 그 말한 결과가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은 참말이라. 말은 참말. 그대로 돼 버렸어. 그대로 돼  버렸어. 이것 먹고 난 다음에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돼 버렸어. 돼  버렸는데 그 동기와 목적과 결과는 이것은 어리석은 인간을, 인간의 지식 인간의  심리, 인간의 지식 정도 인간의 심리 정도, 인간의 지식 정도 인간의 심리 정도 또  인간이 보는 그 시야의 정도 요것을 요 배암이란 놈이 딱 알고 그것을 이용을  해서 그 심리를 이용하고 지식을 이용하고 그의 시야를 이용해 가지고서 그  이용을 해서 아주 거짓말 아닌 그런 말을, 참말 그대로 되는 참말을 하면서 그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서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 요 아담 해와는 멸망을 딱 받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 이것이 배암의 계교입니다. 배 암의 궤휼이오. 알겠습니까?  이것이 배암의 꾀라. 이것이 배암의 꾀. 알겠습니까?  오늘도 배암의 꾀는 이런 방식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여게서 생각해 가지고서  제가 알아야 되지 뭐 신약 성경에는 가 봐야 이런 것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요렇게 교묘하게 요렇게 됐다는 요것은 신약 성경에는 뭐 이런 말만 말로는 해  놨지마는 거게는 요렇게 똑똑히 축소해서 우리들에게 알도록 해 놓은 것이 없어  고거 말은 바른 말이오 말은 옳은 말이오. 그대로 됐거든. 그대로 됐어.

 이랬는데 그 해와가 벌써 해와의 속에는 뭐이 들었어요? 비었어 비어. 해와의  마음 속은 비었다 말이오. 맞아요? 비었어. 뭐이 있다가 나가서 비었어요?  하나님과 말씀이 있다가 나가 비었어. 진공이라. 멸망의 원인이 진공이기 때문에  진공인데 비어 가지고 있는데 그거 배암이 썩 나타나 나서면서, 배암이 나타나  나서면서 '나는 배암이다' 이라고 나타났습니까? 뭐라고 나타났어요? '참으로'  이라면서 '하나님이' 이라니까 '하, 이것도 하나님 말한다.'  '하나님 말씀' '이거  하나님 말씀 말한다' 그거 사이비하거든. 그럴 듯 하거든.

 이런데 거게서 그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들을 이  동산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더냐?' 요 말을 착 하는데 참으로' 하니까 그  배암이 그 사람의 편을 들었어요, 사람 편 됐어요 하나님 편 됐어요? 사람 편  됐어요. '참으로' 이라면서 '참으로' 그라니까 하나님세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고 이제 해와를 위하는 것이지요. 해와를 위했어요. 알겠습니까? '참으로' 하는  그것은 무슨 죄라요? 훼방죄라. 하나님을 헐 훼(毁)자, 훼방이라 그거 무슨 방  자고? 깎을 방(謗) 자 하자 깎을 방 (謗)자, 그거 뭐, 헐고 깎았어. 그거 훼방이라.

 그러면, 하나님을 떡 훼방하는 알 했거든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을 하면서 저는  높여 줬어. 하나님을 훼방하면서 저는 높여 주니까 이 어리석은 것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를 높여 주니까 저 높이는 그 바람에 그만 하나님의 훼방도 그만  받아들였다 그거요.

 만일 그때에 속에 하나님을 사모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으면  배암이 와서 그라면 그거 누구하고 충돌돼요? 누구하고 충돌돼요? 하나님하고  충돌돼요. 하나님 사모하고 있는데 배암이 떡 들어오면 그 해와가 암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 지금 생각하고 있는데 배암이 들어오면 하나님의 그 안면에  부셔서라도 '하나님 이 배암이 들어옵니다.' 이렇게도 했지, 그만 배암하고 '아이  들어오십시오' 하고서 그렇게 이야기 주고 나누고는 안 했을 거라 말이오. 또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면 하나님이 계시는데 배암 그놈이 '참으로' 하는 그따위  훼방하는 입술을 놀리지를 못해요. 이것도 자꾸 생각해.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할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요? 사죄, 칭의, 화친의  주님의 대속의 이 하나님, 대속으로 친밀된 하나님, 친아버지된 하나님,  또 나를 성결케 하신 하나님, 죄 없게 하신 하나님, 또 성령으로 나타나신 영감의  하나님, 진리의 하나님 이 하나님을 자기 마음 가운데 떡 모시고 있으면 그런  것들이 근방에 못 들어와요. 어데 들어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이 육체의  성화구원에는 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 이 세 가지를 사모하고 세 가지가  자기 속에 내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강한 능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난 것은 과학으로 살아났어요, 돈의 힘으로 살아났어요, 뭐  산소 호흡으로 살아났어요, 뭘로 살아났어요? 이분. 산소 호흡으로 살아났어?  자기, 자기 말이요, 뚱뚱하게 커다란 양반. 그래. 뭘로 살아났지? 산소 호흡으로  살아났어? 산소 호흡으로? 진리로?  뭐 과학으로 살아났어? 약으로 살아났어? 주사로 살아났어? 뭘로 살아났어? 한번  대답해 봐. 이제, 주사로 살아난 게 아니라 진리로 살아나고 영감으로 살아나고  예수님의 대속의 삼대 대속으로 살아났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강해요 약해요?  잘났어요 못났어요? 하나님의 심판을 상대할 때 겁이 나요 안 나요? 안 나요. 또  하나님 만나면 겁이 나요 하나라요? 한 덩어리 됐어. 겁날 것 아무데 가도 겁날  것 없어.

 이거 외에는 현실을 다스리는 법이 없고 이거 외에는 자기의 현실을 지킬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만 하면은 임의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자연 은총의 모든 거는 임의로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고 선악과 그것만 안  하면 돼. 선악과는 뭘 말해요? 선악과는 뭐, 선악과는 먹으면 안 된다 말은  먹으면 제것 되지 안했어요? 먹어 버리니까 제것 됐지. 선악과는 네것 되면 안  된다. 선과 악의 결과는 네것 만들면 안 된다. 하나님 중심은 선이요 피조물  중심은 악인데 하나님 중심도 너는 손대지 말고 피조물 중심도 너는 손대지 말고  그것은 네것을 하몇 안 된다. 네가 차지하면 안 된다. 너는 하나님의 중심을 이래  섬기고 모시고 저게 속해서 살지 네가 하나님 중심은 좋다 해서 하나님 중심이  네가 돼서는 안 돼 그 말이오. 하나님이 중심이 네가 돼서는 안 돼요.

 이랬는데, 여게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사람이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선악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까  좋습니까 나쁩니까? 이래 가지고 저 O교회서 어떤 사람이 이거 뭘 이렇게 착한  것 악한 것, 이 선악을 선한 것 악한 것 이거 아는 것이 좋다 싶으거든. 선한 것도  알고 악한 것도 알고, 하나님은 선악 아니까 선악 아는 지식이 그거 좋아요  나빠요, 선악 아는 지식이 나빠요 좋아요? 나쁩니까? 선악 아는 지식이 좋아요.

 선악 아는 지식이 좋은데, 그래서 선악 아는 지식이 이걸 하나님이 선악을 아는  지식을 가져서 사람이 죽었고 나쁘니까 아예 선도 모르고 악도 몰라야 된다.

이러니 아이들 공부시키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 이 성구를 가지고서 아이들  공부시키면 안 된다고 전부 그 주일학교 책임 맡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 이래  가지고 학교 전부 못 가구로 하고 이래 가지고 야단을 지겨 놨다 그말이오.

 그래 놨는데 나중에 내가 삼각산 집회할 때에 그 사람이, 그래서 안 된다고 이래  했더니마는 밤중에 소낙비가 오는데 밤중에 찾아왔어. 그래 내가 찾아오는데  밖에서 묻기 때문에 요 니고데모가 왔구나 싶어서, 누구요?' 이라니까 '아이구  접니다.' '아이 이 소나기 오는데 뭐 어째 왔어?' '아이 문 좀 열어 주이소' '뭐  할라고 지금 이 자는데 소나기 오는데 왔어?' 내가 그걸 안다 말이오.

 그래 하도 열어 달라 해서 열어 주니까 '내가 지금 여게 대해서 그런데 여게  대한 요 진리를 내가 똑똑히 모르니까 어짜든지 요거 조사님이 꼭 가르쳐 주이소.

내가 그라면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또 가르쳐. 주면 네가 또 가 가지고 꺼꾸로  거석해 가지고 나는 요렇게 해석했는데 하고서 그래 가지고 지금 그 틀린 것을  네가 회개를 하지 안하고 자꾸 빈정거려서 변명을 해 가지고서 자꾸 계속 돼  죽을라고 그런 소리를 해? 안 가르쳐 준다.' '아이고, 안 그라겠습니다. 내가 가서  요번에는 꼭 그라겠습니다.' 그래 내가 가르쳐 줬어.

 가르쳐 줬더니마는 당장 내려가 가지고 '내가 그전에 이 해석을 이래 한 것은  이렇게 이렇게 이런 결과를 맺기 위해서 이런 해석을 했다,' 이렇게 그때 했지?  여기 OO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그때 그래 해석 했어요 안 했어요?  모르는가배? 몰라? 그래 했어. 내가 똑똑히 알아요.

 자,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라. 그러면 선악을 결정지우는 것이 하나님과  같다 그말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선악을 이거는 선이다 이거는 악이다 그거  결정지우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중 하나 같다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중에  삼위일체 중에 하나와 같이 그렇게 선악의 그 표준을 그렇게 삼게 된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선악을 어떻게 표준 잡아요? 하나님은 선은 당신 좋아하면  선 당신 싫어하면 악, 하나님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또 당신에게  굽신굽신거리고 순종하면 선 당신에게 반항하면 악, 당신에게 가까이 오면 선  멀리 떨어져 나가면 악, 하나님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랬는데 이제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는 사람이 그렇게 됐다 그말이오. 사람이. 사람이 그렇게 됐어.

 사람이 그만 그렇게 돼 가지고서 저 좋아하면은 그 사람 선으로 보고 저  싫어하면 악으로 보고, 저한테 굽신거리면 선으로 보고 저를 대항하면은 그만  악으로 보고, 저와 가까워지면 이래 됐으니까, 이리 됐는데 하나님과 꼭  같았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 꼭 같이 돼 버렸어. 꼭 같이 됐다고 하지  안했어요? 선악을 아는 게 우리 중 하나와 같다고,  이리 되는데, 그래 아담 해와는 그리 됨으로써 사망하는데 왜 하나님은 그리  됨으로 사망 안 합니까? 왜 그래요? 하나님은 그래도 괜찮은데 왜 아담은 그라면  안 돼요? 그 이유가 어데 있어요? 저 한번 대답해 봐요.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래야 돼요. 인간은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라면 안 돼요.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완전은 가까이 하면 선 완전에게 따르면 선 완전에게 순종하면  선 완전을 거역하면 악 이렇지마는 그 해와야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를  중심해서 이라면은 이제 모든 것이 죽고 저도 죽고 다 죽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서, 그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이걸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자. 그러면 사람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어. 그말은 하나님이 주신 저 살  그 현실에서 완전히 버림을 당해 버렸어. 쫓겨났어. 그 현실을 제 현실로 살지  못해. 제 현실로 살지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하고 제것도 아니고  제 현실이 제것이 아니라.

 제 현실을 제것으로 살지를 못해요. 현실에 종이 되고 현실을 제것으로 살지  못해. 현실을 제것으로 살지 못하고 제 종으로 잡아 부리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익되도록 현실을 살지 못하는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원인이 어데 있소?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졌기 때문에 그런 거라.

 그게 뭐이요?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되면은 이 세상에서는 하나도 차지할 것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면은 하나도 차지할 것 없고 자꾸  뺏기기만 뺏겨요.

 이 시간에도 또 뺏기고 또 뺏기고 또 뺏기고 또 뺏겨서 나중에 물 한방울 혀를  서늘케 할 물 한방울도 없고 완전히 거지되고 완전히 불 가운데서 영원히  멸망받는 그런 자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저 뒤에 깨달았습니까?  선악과 먹고 싶어요 먹기 싫어요? 녜, 먹기 싫으면 됐어요.

자, 그러면 다 같이 통성으로 한번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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