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행동은 부활의 형체를 심는 것

 

1988. 6. 3. 금야.

 

본문: 고전 15:36-42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오늘 저녁에 봉독한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부활을 모릅니다.

 그저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서 끝나는 줄로 알고 또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귀신이 돼 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뭐 물밥이나 얻어먹고 주 먹고  그래 돌아다니는 그런 귀신이 된다 그런 미신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그런 사람들은 제사 지내는 일을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으로  돌아다니면 아무것도 못 먹고 굶어 돌아다니니까 그 자손이 제사를 지내 줘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배가 고과서 돌아다니면서 자손들에게 해를 준다 이런 거짓된  미신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유혹시키기도 합니다.

 어쨌든지 일반 사람들은 죽으면 끝난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살고 죽지  안할라고 애를 쓰고 또 죽으면 다 끝나고 헛일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하든지 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 볼라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이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 아닙니다. 죽음 이편에 있는 우리 세상은  하룻밤과 같으면 죽음 너머 오는 세상은 영원무궁합니다. 거기는 뭐 천년  만년으로도 끝나지 안하고 영원히 끝나지 안한 영원한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아무리 백 세를 더 산다할 지라도 그것은 하룻밤에 지나지  않는 아주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가서 있는 그 세상은  영원합니다.

 이래서, 한 세상은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라고도 말을 했고 불못이라고도 말을  했고 또 지옥이라고도 말을 했고 음부라고도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납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전부 다 살아납니다. 살아나 가지고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지 자기 생활한 그 모든 것이다 행동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자기 한 모든 그 생활한 하나 하나의 그 모든 형태가 다 하나님의  우주 촬영에 다 촬영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데 그사람의 죽을 그 육체가 물에 가 있으면 물에서  살려내고 공중에 원소돼 있으면 공중에 살려내고 짐승이나 풀이나 뭐이 돼  가지고 있으면 거게서도 다 살려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몸의 온갖 요소가 죽으면 영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영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안 믿는 사람의 영은 음부로 가고 믿는 사람의  영은 낙원으로 가고 이렇게 세상을 떠나면 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안 믿는  사람의 영은 음부로 믿는 사람의 영은 하늘 낙원으로 그렇게 가고 또 사람이  죽을 때에 영만 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도 갑니다.

 마음을 성경에 다른 데에는 혼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마음도 가는데 안  믿는 사람의 마음은 그 영과 마음이 음부에 가서 있고 믿는 사람은 죽으면 그  영과 마음이 낙원에 가서 있습니다.

 또, 그때에 이 몸이라는 것은 땅에 장례하면 땅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그것이  썩어서 흙이 되고 그러면 그 흙이 돼 가지고 그것이 화초가 먹을 수도 있고 또  화초가 된, 썩어서 흙이 돼서 그 흙이 모든 화초나 이런 모든 식물들이 되면  짐승이 그 또 풀을 먹고서 살아 가지고서  짐승의 살이 되고 또 그것이 바다에 뭐 물고기의 살도 되고 풀도 되고 또  공중에 마치 눈에 보이지 않은 이 자잔한 원소로 돼 가지고서 공중에 머무는  것도 있고 사람이 죽으면 신자의 그 몸이나 불신자의 몸이 다 이 물질 속에  흩어져서 머물고 있습니다.

 신자의 몸이나 불신자의 몸이나 다 죽으면 그 몸은 흩어져서 물 속에 있든지 땅  속에 있든지 공중에 있든지 어떤 짐승 속에 있은지 만물 속에 있든지 다 그것이  흩어져서 그래 있습니다.

 이라다가,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그때에 전부 부활을 합니다. 부활을  하는데 그 부활할 때에는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가지고서  만물에게 점령해서 만물 속에 흩어져 있는 그 사람의 요소는 다 내놓게 됩니다.

내놓으면 그 내놓은 요소를 각각 제 요소를 제가 찾아 가지고서 다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하면 제것이 제 지체가 제 육체가 되어 있던 것은 낱낱이 찾아 가지고서  자기가 가지고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하고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하는데 믿는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고 난 뒤에 오랫동안 있다가 안 믿는 사람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부활을 얼마나 먼저  하느냐 하면은 한 천 년 동안 먼저 한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천 년 동안 먼저 부활한 믿는 사람의 그 심신 영육은 부활해 가지고  뭐하는가? 부활해 가지고서 천 년 왕국 시대에 무궁한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만물을 통치하는 왕노릇 할 그 모든 지위와 직위 그 권위를  연습하게 됩니다.

 그래 천년 동안 연습하고 나면은 그 다음에 다시 하나님께서 전부를 다 곡과  마곡이라는 그 전쟁을 가지고서 전멸을 시켜 버립니다. 전멸시키면 그때는 남은  사람이 없이 다 죽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는 거의 다 죽고 종자 할 사람은 남아 있고 또 그때는 다  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때에 벌써 부활해 가지고 천사와 같이 돼 가지고  천 년 왕국을 지내게 됩니다. 그러면 천사와 같이 지내게되니까 음식도 먹을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고 안 먹고 천 년 내내 살라면 살 수 있고 그때 부활한  몸은 신령한 몸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고 또 문이  닫겼는데도 출입할 수가 있고 사람에게 보일라면 보이고 안보일라면 안 보이고  그렇게 다시는 늙거나 병들거나 쇠해지거나 하지 않는 그런 몸으로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그렇게 부활된다 성경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이 먼저 부활하고 난 다음에 안 믿는 사람이 그 뒤에 천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그때에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천 년 전에 부활하니  이 부활을 가리켜서 첫째 부활이라 그렇게 말했고 또 천 년 후에 부활하는 그  부활을 가리켜서 불신자 부활 심판의 부활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불신자는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가 땅위에서 어떻게  산 대로 심판해 가지고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지 마는 유황불에 영원히 멸망을  받지마는 멸망 받는 것도 그가 세상에서 어떻게 죄를 더 범하고 덜 범한 그거  차이를 될 가지고서 지옥에 그 모든 계급과 차이가 있게 됩니다. 또 믿는  사람들은 천 년을 훈련받아 가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  가지고 거게서 이제 영원무궁세계에 옮겨가서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과 그 사이에  중보 위치에서 영생하게됩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다 부활합니다. 이 죽으면 그만 되는 게  아니고 부활은 다 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죽어 부활하고 믿는 사랑도 죽어  부활하고 전부 사람은 부활을 다 합니다. 부활 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어머니에게 잉태돼 가지고서 그저 사람이라고 사람으로 그  인정할 수 있는 그에게 생명 호흡이 있고 그에게 조그마치라도 그 이성이  생겨졌을 때에는 낙태가 됐다 할지라도 그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부활합니다. 사람의 그 영육이 되지 안할 때는 그렇지만 영육이 됐을 때에는 다  부활합니다. 낙태해도 부활합니다.

 그러면, 영육은 언제 되는가? 영육은 사람이 육체가 생겨지고 영이 생겨지고  그렇게 순서적으로 생겨지는 게 아니라 영과 육이 동시에 생겨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으로 벌써 잉태됐으면 그것은 벌써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부활해 가지고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고로, 뭐 한 달 만에 유산이나 두 달 만에 유산이나 벌써 사람이라는 것이  그것이 정충과 배란이 합해 가지고서 벌써 사람으로 잉태됐으면 벌써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유산하는 것은 그거는 다 살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잉태되지 안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생산 법을 어기는 죄가 되겠고 또 잉태되고 난  다음에 유산하는 것은 살인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나 불신자가 다 부활합니다. 부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하고서 너무 자기 입장이 어려운  사람은 자살을 합니다. 자살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날진대 살아 있을 동안에 마음대로 어떤  일이든지 하고 그만 죽어 버리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이미 좀 늦게 죽으나  이르게 죽으나 뭐 죽는 거니까 죽으면 끝날진대는 땅 위에서 제 비위대로 못 할  게 뭐 있으며 소원대로 못 할 게 없으며 자기 분대로 못 할 게 없으며 또 자기  욕심대로 못 할 게 있습니까?, 뭐? 다 그라고 그만 죽어 버리면 그만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자살이면 끝나는 줄로 이렇게 알지마는 자살을 해도 끝나는  건 아닙니다. 자살해 가지고 그 다음에 부활해서 하나님 심판 받아 가지고  영원한 처벌을 받든지 영원한 보상의 대우를 받든지간에 심판 다음에 그렇게  보응이 있는 것입니다.

 아래서, 무리가 이 부활하는 이것을 똑똑히 알고 인제 부활을 하는데 이 부활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활하는 이 사실은 다 우리가 알고 있지마는  안 믿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리는 부활하는 것은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는 걸 믿고 있으니 이 부활에 대한 지식을 바로 가지고서 이 부활을 잘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일 먼저는 성경에서 부활이 있나 없나 이 세상은 이래 하고 있는데  우리는 성경에서 부활이 있다 하는 이 사실을 배워 가지고 부활이 있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안하고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부활이  있으니 문제입니다. 이 부활은 영원무궁토록, 천년 만년이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부활 후 세계는 그거 자기의 세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하룻밤 나그네와 갈고 부활 후에 우리가 만나는 세상은  잘 만났든지 못 만났든지 참 비참하게 부활했든 복되게 부활했든지 그것은  영원무궁토록 계속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좋아봤자 하룻밤과 같이 잠깐  지나갈 것이고 또 나빠봤자 그거 뭐 하룻밤과 같이 잠깐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짧고 잠깐 지나가는 이 사실을 알고 또 죽은 다음 부활해 가지고 우리가  만나지는 세계는 영원무궁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짧은 이 세상에다가 소망을  두고 세상 살이를 위해서 노력하지 안하고 부활 후 내가 어떤 세계에 옮겨져  가느냐 하는 이 죽은 다음 부활 이 문제를 크게 여겨 가지고서 여게 대해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하룻밤 나그네 준비입니다.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살이를 위해서 준비합니다. 준비하고 세상에서 뭐 잘 살라고 또 구비하게  살라고 남보다 좀 존영하게 살라고 애를 쓰나 그것은 오늘이 끝날란지 내일이  끝날란지 사람의 마지막 시간이라 하는것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젊다고 많이  남았고 건강하다고 많이 남았고 또 늙다고 얼마 안 남았고 약하다고 얼마 안  남은 것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의 종말 시간은 하나님이 모르게 해 놨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종말 시간은 언제 닥쳐도 닥치는 것입니다.

 이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음으로 끝나고 부활이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어짜든지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고 세상에서 저 하고 싶은 대로할라고 애를 쓰고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부활 영원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짧은 세상 준비에 주력하지 안하고 내가 부활하고 난 다음에 어찌 되나  하는 이 부활을 위해서 거게다가 주력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는 데에 주력하지 안하고 이 다음 부활 할 그 부활에다가 주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이 지식을 요새 늘 공부하고 있는데 아주 이거 좀, 부활은 세상  사람들이 다 부인하는 일 아닙니까?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부활은 세상  사람들이 다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도록 가르치는 것이  이것이 힘이 들고 배우기가 힘이 듭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부인하고 있고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이 부활에 대한 지식이 배우기가 힘들고 믿기가 힘들고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부활에 대해서 첫째로 36절에 이 부활을 이제 씨뿌리는 이씨를  가지고서 부활을 비유해서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 비유 이런걸 가지고  가르치지 안하면 모르기 때문에.

 왜? 이 성경에 부활이 있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부활이 있다는 그 말을 믿으면  좋은데 그 부활이 어째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살아나겠느냐 이렇게 하니  살아나는 이치를 가르쳐야 되겠다 그거요. 살아나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  씨종자를 가지고서 이치를 가르쳤어.

 살아나는 이치를 이 씨종자를 가지고서 살아나는 이치를 가르쳤으니까 이  곡식씨나 뭐 이런 씨, 씨 종자를 가지고서 살아나는 이치를 가르쳤기 때문에 이  씨종자에 대한 것을 잘 연구해 가지고서 우리의 부활도 그와 같다 하는 그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여기 첫째로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부활이라 하는 것은 죽어야 살아납니다.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죽어야  살아난다는 요 이치를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은 안 죽고 그대로 홀연히 변화한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홀연히 변화된다 하니까 모두 죽음이 두려워서 일생 동안 벌벌 떨고 있는 제일  싫은 것이 죽음인데 그 죽지 안하고 변화해서 하늘나라 간다 하니까 다 거게  욕심을 품고 그것을 소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집니다. 마귀란 놈이 요 이치를  가지고서 사람들을 꼬와 가지고 멸망을 시킵니다.

 이래서, 여호와의 증인도 예수를 잘 믿으면 안 죽고 홀연히 변화해가지고  하늘나라 간다 그렇게 가르칩니다. 이 전도관에서도 천년성에 들어오면  거게서는. 안 죽고 홀연히 변화돼 가지고서 하늘나라 간다. 죽음을 보지 안하고,  죽음 보지 안하고 하늘나라 가고 싶은 사람은 다 천년성으로 들어오라 이라니까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지고서 천년성으로 모두 다 들어간 사람들이 않습니다.

또 그러고 그전에는 통일교회가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그 교리를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우리 한국에도 자기네들 말하는 대로 그대로 됐으면은 죽지  아니하고 하늘나라 간다 하는 그런 이단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는 이단  교회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죽지 아니하고 홀연히 변화해 가지고 하늘나라  간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그 교회들은 다 이단 교회요 그 교파들은 이단 교파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다 죽어 가지고서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고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죽어 가지고 부활해 가지고 심판 받아서 지옥 갑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지옥 가는 것도 죽어 가지고 다시 부활해 가지고 다시 지옥 가고 믿는 사람도  죽어 가지고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 갑니다.

 그런고로, 이 부활은 죽어야 된다. 죽어야 간다. 그런데 전체가 죽어 가지고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 가는데 그 전체가 죽는 데 이르는 그 과정을 지금  여게다가 가르쳐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씨를 뿌릴 때에는 어데다가 뿌리느냐 하면은 땅에다  뿌립니다. 그러면 요 씨로 비유한 것은, 씨로 비유한 것은-이 안 믿는 사람들은  내비 두고, 안 믿는 사람들은 필요 없기 때문에 내비두고 믿는 사람에게 대한  것만 지금 말을 합니다.-씨로 비유한 것은 믿는 사람의 그 행동을 씨로  비유했습니다. 또 씨를 심으는 것은 그 행동을 해 지낸 것 그 행동을 한 것, 그  행동을 한 것을 가리켜서 심은 것으로 그렇게 비유합니다. 또 땅은 자기 현실로  그렇게 비유합니다. 그러니까, 행위에서 씨에서 씨가 죽어야 살아난다. 그러면  그 행위에 죽는 행위를 해야 살아난다 그말입니다. 죽는 행위를 해야 살아난다.

죽는 행위라니? 그러면 그 현실에서 죽는 행위 해야 살아난다 그말이오.

 그러면, 현실에서. 어떻게 죽는 행위를 하는가? 현실에서 죽으면 살아납니다.

현실에서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그 현실을 통해서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옛사람이 죽지 안하면 그 현실에서 새사람으로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래서, 현실을 만날 때에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현실 만났을 때에  안 죽고 현실을 통과했습니다. 안 죽고 현실을 통과한 사람은 안 죽었으니까  다행이다 생각하겠는데 안 죽고 현실을 통과한 사람은 그 사람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지 안 했기 때문에 살아나지 못하고 그 안 죽은 그 사람으로 있습니다. 안  죽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안 죽은 그 사람은 옛사람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죽어야 살아난다’ 그 이치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깊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깨닫기 어려울 것이나 그저 대충으로 알기만 아십시오.

 현실에서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옛사람이 죽지안하고 그대로  살았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사망합니다. 이거 참 이거 어려워서 이거 잘 먹혀  들어가지 안해. 여러분들이 잘 깨닫지 안하고 잘 먹혀 들어가지 안해.

 옛사람이 뭐인가? 다시 말하면 악령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악성이된 인간성,  악성이 된 인간성. 악성이 뵙다니?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이 된 것, 또  악습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버르징이 버릇 자기 위주의 자기중심의 모든 생활해  모은 그 버릇 그것을 현실에서 죽이면 살아나고. 현실에서 이 셋을 죽이면  살아납니다.

 현실에서 악령의 감화를 죽이고 물리치면 성신의 감화를 받습니다. 악령의  감화를 물리치지 안하면은 성신의 감화를 받지 못합니다. 악령의 감화를  자기에게서 죽여 버립니다. 악령의 감화를 죽여 버리고 용납지 안하고 악령의  감화를 죽여서 없애 버리면 성신의 감화를 받습니다. 또, 자기중심 위주의 그  성질이나 마음이나 욕심이나 소원이나 지식이나 비판이나 뭐 정서나 지혜나 그런  것을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것을 죽여 버리면은 이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것으로서 살아나게 됩니다.

 또 자기가 이 악령과 악성 그 생활한 버릇 이제까지 악령과 악성의 생활한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 그 습관이 있는 것. 그 버릇.

 자기가 자기 마음 자기중심 자기 욕심대로 사는 생활을 한 번 하면은 고것이 한  번 했기 때문에 물먹으로 칠한 거와 같이 그것이 한번 했으니까 조그매 그것이  한번 했으니까 그게 있습니다. 두 번 했으면은 연습했기 때문에 좀 짙어집니다.

열 번 했으면은 더 짙어집니다.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이 성령의 말을 하지 안하고 악령의 감화를 받은 말을  합니다. 악령의 감화를 받은 말을 하면은 그 먈을 한번 하면은 그것이 조그매  옅게 돼 가지고 있고 열 번 하면은 더 짙고 백 번 하면 더 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욕도 한 번 하면 그게 더 그게. 벌써 한번 해도 그게 습관이 되어지고  있는데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일 년 이태 십 년 하면은 그 습성이 익힐 습(習)자  연습, 그 습관 그 습관이 많이 자랐습니다.

 그 한 번 두 번 연습을 해 자꾸 하면은 연습이 돼 그게 자라는 것인데 그  연습이 뭐이냐? 악습이라 하는 것은 자기중심 위주로 산 그것이 악습입니다.

악습을 다른 말로 말하면은 그것을 가리켜서 본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죄라.

또 악성은 원죄라 이래. 자기 그 인간성이 벌써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이  돼 가지고 있으면은 고것은 악성이라고 원죄입니다. 악성 원죄요. 악성이 이제  주장허 가지고서 행동한 고것은 가리켜서 악습이라 본죄라 그렇게 합니다.

원죄와 본죄 그렇게 신학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현실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하나님이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 하나님 하고 싶은 거 있고 자기 하고 싶은 거  있는데 자기 하고 싶은 그놈을 죽여야 하나님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 하고 싶은 대로는 못 합니다.

 또, 자기 성질이 있고 하나님 성질이 있는데 자기 성질 고것을 꺾고 죽이면  하나님의 성질로 살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 욕심 그것을 자기 욕심이 있고 하나님의 욕심이 있는데 하나님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욕심이라 그렇게 말해. 성령의 소욕이라. 또 자기  욕심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 이랬습니다. 자기 욕심을 죽이면 하나님의  욕심인 성령의 소욕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처, 현실에서 옛사람을 죽이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 생활할 때에 우리의 이 심신 우리 심신  이것이 사람으로 살면 이 심신은 옛사람의 것이 되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받습니다. 사람의 것 된 그것은 영원히 멸망받습니다. 또 고것이 그 피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의 것이 되면은 그것은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죽지 않고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죽이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살아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현실에서는 자기로 사느냐, 자기로 사느냐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사느냐? 하나님의 성령으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새사람은 몇 가지로 살아났습니까?  손가락으로. 네, 세 가지로 살아났습니다. 진리로 살아났고 성신의 감동으로  살아났고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살아난 것이 이것이 새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사람의 성질은 진리요 영감이요. 예수님의 대속이오.

 또, 옛사람은 몇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이 옛사람입니까? 옛사람은 몇 가지로  되어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그것도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고거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현실에서 내가 악령, 악성, 악습대로 고 현실을 살면 옛사람이  그만침 장성해지고 또 내 심신의 기능은 옛사람의 것이 됩니다.

 또, 내가 현실에서 옛사람의 것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게 되면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게 새사람으로 사는 것인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진리대로  사는 것이요 영감으로 사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 속의 사죄 칭의 화친으로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현실에서 살면 자기에게 새사람이 커집니다. 새사람이  강건해지고 새사람이 커집니다.

 그러면, 자기가 현실에 진리로 살았으면 현실에서 진리로 산 것 만치 진리가  강해지고 커집니다. 자기에게 진리의 양이 많아진다 말입니다. 진리의 양이  많아집니다. 또 영감의 양도 많아집니다. 예수님의 대 속의 양도 많아집니다. 더  충만해집니다.

 또 자기가 현실에서 옛사람으로 살게 되면은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뭘로 사는  것입니까? 악습으로 사는 것이요 악성으로 사는 것이요 악령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고 현실에서 요 옛사람으로 살게 되면 뭣이 커집니까? 뭐이 커지겠소?  악습이 커집니다. 한번 연습 더 했으니까 악습이 커집니다. 악성이 커집니다.

악령이 자기에게 더 충만해집니다.

 이래 가지고서, 현실에서 우리 이 심신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지마는 우리의  심신은 살아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심신은 지금 살수 있는 권세만 가지고 있는  것이지 현재에 죽어 있는 것입니다.

 여게 로마인서 8장 10절에 보면은 ‘그리스도로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우리 몸이라면은  마음과 몸을 다 합해서 육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죄로 인해서 죽은 것이나  그러면 우리의 육은 죄로 인해서 지금 죽어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있습니다. 사망 아래에 있고 사형 선고를 받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해서 산 것이니라’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러면 우리 영은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오늘 지금 여게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영은 다 살았습니다. 영은 다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 살았습니다. 영은 다 살았는데 육은  다 죽어 있습니까? 다 살아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대답을 해서 손을 들어서  표시해 주십시오.

 여게 있는 사람들의 이 심신은 다 죽었습니까? 다 살았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심신은 다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심신은 다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 죽어 있다고 아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다 죽어 있습니다.

 저 산에 있는 아주 한 아름되는 큰 소나무가 아주 새파랗게 살아있는 그,  소나무가 있습니다. 그 소나무를 거두로 베어 가지고서 넘겨뜨렸습니다. 거두로  베어서 뿌리에서 끊어 버렸습니다. 뿌리에서 끊었으니까 그 나무가 지금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어떤 사람 말하기를 ‘이  나무 생생하게 살았네’ 말합니다. 살았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에서 끊겨졌기 때문에 죽어 있습니다.

 생생히 살아 있는데 왜 죽어? 그러면 그 살아 있는 그것이 뿌리에서 끊겨서  죽어 있으니까 아직까지 다 죽지 안했지 벌써 뿌리에. 끊겼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다 죽지 안했지요.

 그러면 다 죽는 것은 그 소나무 잎사귀가 소나무 둥치가 아주 바짝 마르기까지  죽을라고 하면은 그 몇 시간이나 걸립니까? 며칠 걸립니까 몇 시간 걸립니까 영  달 걸립니까? 큰 나무로 말하면 몇 달 걸립니다. 큰 나무로 말하면 몇 달  걸리요.

 이와 마찬가지로 나무가 그 뿌리에서 끊겨지니까 그는 죽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로 인간은 어데서 끊겨지면 죽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끊겨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의 그 육은, 영은 벌써 끊겨져서  죽었고 육은 지금 살아 있으나 하나님께 끊겨졌기 때문에 나무를 베어 놓은 거와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죽어 있는 것이니까 그것이 어떤 것은 오십 년 죽으면 다  죽는 것 있고 칠십 년 죽으면 다 죽는 것 있고 팔십 세에 죽은 사람은 팔십 년  죽으니까 다 죽어졌고 그 사람이 만일 백 세에 죽었으면 백 세에 죽었으면 그  사람은 그 죽은 육체가 몇 해를 걸려서 다 죽었습니까? 몇 해 걸려서 다  죽었습니까? 백 년 걸리니까 다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이 사는 것은 지금 생명이 살아서 자라가고  있습니까? 생명이 점점 죽어서 없어져 가고 있습니까? 죽어져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게 사는 게 아니오. 죽어져 없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의 이 육, 믿는 사람의 심신은 다 죽었습니까? 다  살았습니까? 다 죽었습니까? 다 살았습니까?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하나도 안 들어? 그러면 다 살았다고 아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하나도  안 들고. 그러면 다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산 것도 아닙니까?  네, 그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백 분의 구십 구는 죽었고 백 분의 일은  살아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백 분의 구십이 살았고 백 분의 십이 죽었고  이러니까 많이 죽은 사람 적게 죽은 사람, 많이 죽은 사람 적게 죽은 사람, 이런데, 죽은 게 먼저입니까? 산 것이 먼저입니까? 죽은 것이 먼저입니까? 산  것이 먼저입니까? 자, 산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죽은  것이 먼저라고 아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죽은 것이 먼저야, 죽은 것이 먼저.

인제 죽은 것이 하나씩 살아납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요.

 살아나는데, 심신이 죽기는 왜 죽었습니까? 이 심신이 죽은 것은 뭘로 말미암아  죽었습니까? 죄와 사망과 마귀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심신  죽은 심신이 살아날라고 하면 먼저 죄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마귀에서 해방을 받아야 이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

 그러면, 이 해방을 받는데 이 해방을 우리의 이 육이라 심신이 죄와 사망과  마귀에서 해방을 받는데 이 해방받는 것이 단번에 받습니까? 여러 차례 걸쳐서  받습니까? 단번에 받습니까? 여러 차례 걸쳐서 받습니까? 여러 차례 걸쳐서  받습니다.

 왜 그런가?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은 한 개가 아니고 여러 수천 개가 모여 수만  개가 모여 가지고서 이 심신이 된 것입니다. 마음도 그 분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 몸뚱이도 분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러니까 하나씩 둘씩 살려내야 되기  때문에 이거는 중복적으로 수많은 회수를 통해 가지고서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면 이 심신이 살아나는 것은 죄에서 해방 받아야 되고 마귀에게서  해방 받아야 되고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야 이것이 살아나는 것인데 해방 받기를  언제 받습니까? 해방 받기를 밤에 받습니까? 낮에 받습니까? 예수 처음 믿을  때에 받습니까? 얼마 동안 믿다가 부흥회 때에 받습니까? 이 심신이 세  가지에게서 해방을 받아야 사는 건데 이 세 가지에서 해방 받는 것이 언제 받는  것입니까? 언제 받습니까? 해방 받는 장소 해방 받는 시간 해방 받는 그 모든  만물의 관계 이거 여게서 받는데 언제 해방을 받습니까? 언제 해방 받습니까?  밤입니까? 낮입니까? 현실입니까? 밤이나 낮이나 현실입니다. 현실에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 이 심신이 살아날라고 하면은 몇 가지에게서 해방을  받아야 됩니까? 세 가지에게서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해방을 받아야 되니까 이  현실에서 자기가 이 세 가지에서 해방 받는 행동할 수도 있고 이 현실에서 해방  받지 안하고 그대로 사는 행동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그 심신이 죽은 것이 영원히 죽고 살아나지  못하고 영원히 죽으며 그 죽은 심신이 이제 영원히 살아나기는 어떻게 하면  살아나는가?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심신이 죽은 것은 죄와  사망과 마귀로 인해서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끊겨져 있습니다. 뿌리에서 끊겨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왜 끊겨졌느냐? 하나님과 끊겨진 거는 죄 때문에  끊겨졌습니다. 왜 죄를 범했느냐? 마귀의 유혹 받아 가지고서 죄를 범했습니다.

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망이 왔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패은 것은 죄요  죄를 범하게 한 것은 마귀요 죄를 범했고 마귀에 속했기 때문에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제 여게서, 현실에서 자기가 우리 심신이 살아난 것은, 살아난 것도  있고 죽은 것도 있는데 현실에서 죽은 것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살아난 것은 현실에서 살아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몇 가지를 하는 것이 현실입니까?, 손가락으로? 영 가지  하는 것이 현실입니까? 두 가지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는 죽은 것은  해방받아서 살아나는 것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하나는 현실에 살아난 것은.

산 행동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산 행동 하는 거.

 그러면, 산 행동 하는 그것은 산 게 산 행동 하는 것은 다 영생의 행동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에서는 해방받는 것과 산 것이 산 행동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우리는 이 현실에서 두 가지를 쌔야 되는데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하는  그 죽지 앉으면 살아나지 못한다고 한 죽기는 뭣이 죽습니까? 죽기는 뭐이  죽습니까? 죄의 것이 되어 있는데 현실에서 죄를 죽이면, 마귀를 물리치면  죽습니다. 마귀를 물리치고, 죄와 마귀를 물리치고 사망을 물리치고 그러면 죄를  물리치는 것은 진리와 영감으로 사는 것이요 마귀를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된 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이렇게 우리가 살게 되면은 자기의 죽은 심신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자, 풀어봅시다. 현실에서 자기 욕심대로 살았고 자기  좋아하는 대로 살았고 자기 뜻대로 살았고 자기 비판대로 살았고. 자기 평가대로  살았고 자기 견해대로 살았고 자기 지식대로 산 고것을 한 말로 말하면 고것이  뭐입니까? 그게 뭐입니까? 저 뒤에 그게 뭐입니까? 저 뒤에 뭐입니까?, 그게?  악입니다. 악. 그것이 자기중심자기 위주로 산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죽은 것이 살아나지 못하고 그 현실을 통해서  완전히 죽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었으면 그 사람이  살아남아 있어? 완전히 죽었으면 살아남아 있어? 그러면 그 사람이 살아남아  있으면 그 완전히 죽었다 말이 거짓말입니까? 바로 된 말입니까? 완전히 죽은  것은 고 현실에서 악령과 악성 악습대로 자기대로 살아서 없어진 그 정력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 정력은 완전히 죽고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은 지금 산 것입니까? 앞으로  완전히 죽을 것입니까? 남아 있는 것은 앞으로 완전히 죽을 것이 남아 있습니까?  산 것이 남아 있습니까? 또 모르는 가배. 완전히 죽을 것이 남아 있습니까? 산  것이 남아 있습니까? 죽을 것이 남아 있지요. 인제 죽었는데 지금, 죽기는  죽었는데 다 죽지 안하고 시들시들하고 있으니까 자금 죽을 거라 말이오. 나무를  베어 놨는데 지금 자꾸 말라져 들어간다 그 말이오.

 죽을 것이 남아 있습니다. 죽을 것이 남아 있는데 그 죽을 것이 어떻게 살면  자꾸 죽습니까? 우리 현실에서 우리 현실에서 죽을 것으로 살면 자꾸 죽습니다.

현실에 죽을 것으로 살면 죽습니다.

 죽을 것으로 살다니? 좋을 것이 뭐인데? 죄로 죽고 마귀로 죽고 사망으로 죽기  때문에 이제 자기중심 자기 위주 원죄, 본죄, 악령으로 더불어 살면 자꾸  죽습니다.

 이제 이 현실에서 현실에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 이와같이 살면 죽은 것이  완전히 죽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죽은 것이 자꾸 죽은 것이 죽이는 방법을  쓰니까 자꾸 죽습니다. 죽은 것이 죽이는 방법, 죽는 방법을 쓰니까 자꾸  죽습니다. 죄는 죽는 방법이고 사는 방법 아니오. 악령은 죽이는 자요 살리는  자가 아닙니다. 사망은 죽이는 자요 살리는 자가 아닙니다. 그걸로 살면 자꾸  죽소.

 그러면, 현실에서 그것을 그걸로 사는 것을 버려 버리고 그놈을 죽여버리고  그놈을 죽이고, 죄를 죽이고 마귀를 죽이고 사망을 죽이고 진리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고 예수의 대속대로 살게 되면은 그 현실을 살았으면 현실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현실에 산 그 정력, 현실에 산 마음의 정력 몸의 정력, 현실에  그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산 그 정력 그 정력은 죽은  정력이 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대로 살고 있습니까? 산 정력이 살고  있습니까? 산 정력이 이거 지금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삽니까 죽은 정력이 지금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삽니까? 죽은 것이 삽니까  산 것이 살고 있습니까? 죽은 것이 살고 있습니까? 산 것이 살고 있습니까?  죽은 것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몰라. 죽은 것이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니까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알겠습니까? 산 것이 사는 것 아니고 죽은 것이 지금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죽은 것이 살아나니까 뭐이 죽었습니까? 죽기는 뭐이 죽고  살아나기는 뭐이 살아났습니까? 죽기는 뮈이 죽고 살아나기는 뭐이  살아났습니까? 죽기는 뭐이 죽었지요? 악령 죄 사망, 악령 악성 악습 이 죄 사망  이건 것들이 죽어 버렸습니다.

 이런 것들이 죽고 이제 죽고 그라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이  살아났습니까?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죽은 이 심신이  살아났습니까? 죽은 심신이 살아났습니다.

 그러가 때문에, 죽이는 것은 죄가 죽이고 마귀가 죽이고 사망이 죽이고 살리는  것온 진리가 살리고 영감이 살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살립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정신이 살아나는 것도 이 세 가지로 살아나고 마음이  살아나는 것도 이 세 가지로 살아나고 몸뚱이의 힘이 살아나는 것도 이 세  가지로 살아나고 정력이 살아나는 것도. 이 세 가지로 살아나고 정기가 살아나는  것도 이 세 가지로 살아납니다.

 이 세 가지로 살아난 것은, 살아난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난 그것은 살아나  가지고서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지금 살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데, 그러면 죽어야 살아난다.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또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지금 그 사람이 영감대로 진리대로  예수님의 대속대로 지금 살고 있습니다. 대속대로 살고 있습니다. 살고 있으면  이것이, 살고 있으면 이것이 영생을 합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살고 있으면  이것이 영생합니까 죽습니까?  요거 잘 아십시오. 우리의 심신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이것과, 살아 있는  이것과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사는 이 심신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는 이 생애를 이 심신이 하고 살고 이 심신이 살고 있는 게  좋습니까? 이 살고 있는 이것이 이 사는 이 생활이 끝이 나야 좋습니까? 끝이  나야 좋습니까? 살고 있는 게 좋습니까? 살고 있는 게 좋습니까? 이 사는 생활로  끝이 나는 것이 좋습니까? 끝이 나는 것이 좋습니다.

 끝이 나는 것은 다시는 그 유혹받거나 위험성이 없고 다시는 실패성이  없습니다. 이제 완성입니다. 실패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은 아무리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산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이 시간에는  살지마는 다음 시간에는 무슨 실수로 넘어질는지 모릅니다. 넘어질런지  모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완전 승리를 이루신 것은 모든 죄를 완전히 이기셨고  사망을 완전히 이기셨고 마귀를 완전히 이기셨는데 이기신 것은 죄를 완전히  없애서 이겼습니까? 마귀와 사망을 완전히 없애서 이겼습니까? 이기는 그 생활을  계속으로 이기는 생활 계속으로 하고 있는, 이기는 생활 계속 하고 있는데  사탄이 예수님의 그 생활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딱 끝을 내 버렸으니까 예수님은  승리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사탄이 그것을 더 하지 못하구로 딱 끝을 냈으니까  예수님은 다시 그 전쟁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쟁을 완전히  완성했습니다.

 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또 믿음으로  끝을 맺었고 진리로 끝을 맺었고 영감으로 끝을 맺었고 예수님의 피의 대속으로  끝을 완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다 돼 버렸어요. 완전히 끝을 맺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승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죽어야 살고 죽어야 살고 산 것이 산  것으로 끝을 맺어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자, 그러면 옛사람이 죽어 새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새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제일 성공입니까?  새사람으로 사는 것으로서 그 완료를 한 것이 성공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완료를 한 것이 성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어짜든지 옛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옛사람으로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게 좋고 새사람으로 살아 있는  것보다도 새사람으로 끝을 마치는 게 좋습니다. 요것을 똑똑히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을 끝낼 때에 자기는 자기의 심신의 모든 감정이나  또 자기의 의지나 자기의 욕심이나 자기의 주관이나 자기의 지식이나 모든 것이  이 세상 것은 다 죽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다 되어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자기 것을 삼았다 말이오. 완전히 바꿔 버렸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것은 다 없애 버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내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성질로 내 성질,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내 지식, 예수  그리스도의 감정으로 내 감정, 예수 그리스도의 뜻으로 내 뜻,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으로 내 소원, 예수 그리스도의 희로애락으로 내 희로애락, 예수.

그리스도의 성공으로 내 성공, 예수 그리스도 자체와 그 행위와 공로 그 소유  예수의 것으로 다 내것을 삼고 이 세상 범죄의 가지고 있었던 마귀 그런 것의  것은 마귀의 것과 모든 이 세상의 것 죽은 사망의 것은 다 없애 버리고 예수의  것으로 완전히 바꿉니다.

 완전히 바꾸어 가지고 바꾼 그것을 바꾸어 가지고 세상에 있으면 좋습니까?,  완전히 바꿔 가지고서 세상에서 다시 미혹을 끝장내는 미혹이 끝나는, 바꾼 것이  다시 미혹이나 시험이나 패전이나 하는 그런 위험성 없는 완료로 끝나는 게  좋습니까? 이제 바꿔 가지고 땅위에 있는 게 좋습니까? 끝난 게 좋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서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을 인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사자구덩이에 던지움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서 거기에서 끝이 났으면 좋습니까? 살아 나온 게 좋습니까? 끝이  난 게 좋습니까? 살아나온 게 좋습니까? 살아나온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끝이 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끝이 난  것이 더 좋아. 더 좋은데 주님이 끝내지 안하도록 했으니까 주님이 원하시니까  그것도 좋지요.

 그러면 다니엘이 끝내지 안하고 살아나온 것은 다니엘 자신에게 좋습니까? 우리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좋습니까? 우리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좋습니다. 우리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 증거받아 가지고  좋지마는 다니엘은 그 살아 나왔는데 만일 살아 나왔는데 다니엘이 그 다음에  그런 꾸슨 시험이 있을 때에 다니엘이 만일 패전하는 날이면은 다니엘은  실패자입니까? 성공자입니까? 실패자라.

 그러기 때문에, 일차 죽어서 죽고 살아나면 좋고 이차적으로 아주 죽으면 아주  좋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을 믿어야 돼. 요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중생돼서 산 사람은 산 사람으로 자꾸 살게되면은 자기가  안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안 죽는 사람으로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살아 있는데 아직까지 세상에서 지금 남아 있기 때문에 온갖  시험을 받고 온갖 시험 받지마는 이제 이것이 끝나면 다시는 완료이기 때문에  완전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이 부활에 대해서 굉장히 오묘한 진리가 그 밑에 있는데 그건  지금 또 헐어놔야 여러분들이 알지도 못할 터이니까 내일 아침에 계속을  하겠습니다.

 이 새벽으로 이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부활에 대해서 뭐 수십 년 예수  믿고 목사 장로 뭐 돼도 이 부활에 대해서 그저 ‘사람이 죽은 다음에 살아난다  이것만 생각하지 어떻게 해야 살아나는지? 안죽고 살아납니까? 항상 안 죽기  위해서 죽인다 하면 죄짓고, 죽인다 하면 진리 내주고, 죽인다 하면 영감  내주고, 죽인다 하면 예수님의 대속 내주고 뭐 죽인다 하면 다 되는데  이라면서도 이제 부활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그것이 다 헛일 아닙니까? 이거  모르면 못 믿습니다. 바로 알아야 믿지.

 이래서, 새벽기도 좀 나와요. 새벽기도 나오면 요새 지금 이 부활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 이거 얼마나 지금 보배로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오늘밤에는  ‘죽으면 산다’ 첫째 죽으면 어찌 됩니까? 첫째 죽으면 어찌 돼요? 살아나고,  또 살아나 가지고 죽으면 어찌 됩니까? 영생하고. 죽음이 다시없어. 죽음이  다시없어. 요걸 우리가 확실히 잡고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자꾸 이래 생각하는데 곡식 종자도 생각해 보고 버러지가 구더기가 부화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굼뱅이가 부화해 가지고 매미되는 것도 생각해 보고 이 모든  동물, 곤충 식물 이런 데에서 이 부활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을 자기가 자꾸  이와 같이 지금 명상해서 확신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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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현재에 믿는 믿음/ 로마서 1장 14절-17절/ 1985. 9. 1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 현재의 행동은 부활의 형체를 심는 것/ 고린도전서 15장 36절-42절/ 1988. 6. 3.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157 현재의 행동은 부활의 형체를 심는 것/ 고린도전서 15장 36절-38절/ 1988. 6. 2. 목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