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구원을 생각하고 고칠 때

 

1962. 3. 12. 밤(금)

 

본문 : 요한일서 3장 13절-24절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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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회 철야기도는 삼일예배 오일예배는 예배가 끝난 지 후 30분 기도하고  남반은 1층 신관, 여반은 1층 구관에서 시작됩니다. 또 주일날은 밤 일곱시  반부터 기도회가 시작됩니다. 많이 참석하셔서 기도를 많이 하도록 합시다.

 둘째, 3월 15일부터 20일까지 매일 밤 일곱 시부터 아홉시까지 학습 세례  문답이 있습니다. 이번 주일 말고 그 다음 주일에 학습 세례 성찬식이 있습니다.

잘 준비해서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셋째, 연보 봉투는 은혜와 더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주지말고 이 봉투를 원하고 원하는  사람에게만 주도록 하십시오. 이 봉투는 한 뭉텅이가 2천여원 들여서 만든  것입니다. 그 공정을 다 하면 3천원도 더 치는 봉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만 주고, 원하는 사람에게도 그 구역장들이 봐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온  가족이 은혜가 될 수 있으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안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봉투를 사용하지 않아도 연보궤가 있기 때문에 연보궤에 넣어도 되고 자기가  개적으로 봉투에다가 넣어도 됩니다. 또 이 봉투를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연보의  종목을 안 써도 되고 액수를 안 써도 되고 자기 이름을 안 써도 됩니다. 또 쓰는  것이 은혜 되는 사람은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봉투가 아주  자기에게는 크게 은혜를 소생시키는 그런 유익을 많이 본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아무나 주지 말고 원하고 원하는 그런 사람에게 한해서만 이 봉투는 무료로 줄  수 있습니다.

 또 교학실 광고입니다. 30분기도 후 4층에서 총공회 위원들과 지방 공회장들과  양성원 운영 위원들이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달라고  부탁이 있습니다.

 오늘밤에는 요한 1서 3장 13절로부터 끝절 24절까지 봉독했습니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첫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66권 안에 기록된 모든 말씀 이 교훈과  법칙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기점으로 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계명들입니다.

 무슨 물질이나 권세나 또 사람의 지혜나 능력이나 용모나 그런 것을 기점으로  한 법칙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그것을 제일 기점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인간만을 사랑하는 것을 기점으로 삼지도 않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이  사랑을 제일 기점, 기초가 되는, 시발이 되는, 움싹이 되는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신구약 성경은 누구든지 읽고 해석을 하려고 하든지 또 깨달으려고  하든지 실행을 하려고 하든지 하면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기점으로 해서 사랑을 기준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 사랑에 연결을 시켜 가지고 거기에 준해서 연구하고  해석하고 실행하여야 합니다.

 모든 말씀은 사랑에서 뻗어 나왔고 사랑의 줄기가 퍼져 나왔고 자라나온  법칙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붙들고 한 걸음 두 걸음 들어가면 차차 차차  사랑은 확실해지고 명확해지고 또 뜨거워지고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점점 떨어져 나가면 악독과 미움으로 타락해 가는 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나  행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을 기준한 것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여기서 이탈되면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을 늘어 놓은 말씀이라, 사랑의  폭을 펴 놓은 말씀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퍼져 나온,  그 사랑을 그려 놓은 것이, 표현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 하는,  하나님의 이 도리는 사랑이 그 기점이라, 사랑을 기준한 법칙이라, 사랑이 퍼져  나온 사랑이라, 사랑이 가지 돋고 잎사귀 나고 꽃 피고 열매 맺는 그 사랑의  나무라, 사랑의 법칙이라, 사랑을 기준한 도리라 하는 것을 여기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그가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들이 사랑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은 세상도 다 좋아하고 교회들도 다 좋아하는  것이나 사랑의 정의는 판이합니다. 사랑은 하나뿐이니 곧 하나님이 홀로 가지신  사랑인데 이 사랑이 피조물들에게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모든 창조, 하나님의  섭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지도, 보지도, 가까이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구원 도리의 종자가 사랑이요 온 세계에 가득찬  자라 나온 하나님의 구원의 수많은 장성한 잎사귀, 가지, 꽃들도 다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이 사랑을 기준하여 우리 개인들에게 만들어진 사랑의 씨앗이 와서  심어졌으니 이것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이것이 하나님의 그 사랑의 씨가 우리에게 와서 심어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은 곧 진리요 영감입니다. 하와가 아담을 사랑했고 아담이 하와를  사랑한 그 사랑은 진리에 반대요 영감에 반대의 사랑이었습니다. 진리와 영감에  반대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피차 죽였습니다. 땅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사랑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는 사랑이 우리  인류에게 피조물에게 왔는데,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진리요  영감입니다. 진리 외에 사랑이 없고 영감 외에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진리에 반대되고 영감에 반대되는 사랑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피차  죽이는 사랑이니, 그것은 인류 시조 아담 하와 때에 원죄보다 앞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의 씨앗입니다. 원죄의 종자입니다. 원죄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랑과 사랑을 구별치 아니하면 안 됩니다. 진리가 아니면  사랑이 아닙니다. 영감이 아니면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죽이는 사랑입니다.

영감 아닌 사랑 진리 아닌 사랑, 인간들은 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이 사랑은 다  주관적 사랑이요 살리는 사랑이 아니고 죽이는 사랑이요 죽은 자가 좋아하는  사랑입니다. 부패성이 좋아하는 것이고 타락이 좋아하는 것이고 사망을 일으키는  그 사망의 취미에서 좋아하는 사랑이니,  인생과 인생이 가장 밀접한 사이가 부모와 자녀보다도 부부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형제간은 가까운 것 같으나 그것이 변동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높이  평가되지 실은 그것이 부부의 관계보다 먼 밖의 순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제일 가까운 부부 사랑도 진리가 아니면 반드시  죽이는 일 했습니다. 영감이 아니면 반드시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도 진리 아닌 사랑, 영감 아닌 사랑을 했으면 반드시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원수 중의 원수의 일을 했습니다. 아무리 형제간이 좋다하지만 진리 아닌 사랑  그것은 피차에 죽였습니다. 영감 아닌 사랑은 피차에 죽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뿐이니 곧 하나님만이 가지신 사랑인데 이 사랑은 영생을 가졌고  완전을 가졌고 영원 불변을 가졌고 전지를 가졌고 전능을 가진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랑은 쇠퇴가 없고 후퇴가 없고 패전이 없고 후회가 없고 불가능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산 사랑이요 영원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진리가 왔으니 하나님의 사랑이요 영감이 왔으니 하나님의  사랑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진리의 행위요 영감의 행위로 영감과 진리가  십자가의 대속으로 나타난 것이요 십자가의 대속 속에는 진리와 영감의 능력이  그 일을 일으켰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법칙은 사랑을 기준한 법칙인데 사랑에서, 사랑의 씨앗에서  번져 나와 어디까지나 끝까지 사랑입니다. 이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의 신앙 완성은 사랑의 완성이요 구원 완성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진리와 영감을 떠난 것은 미워하는 살해의 완성입니다. 악령은  산 사랑, 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의 평가를 인류 시조 아담 하와가 피차에 죽였던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을 가지고 혼돈 혼합시켜서 미혹을 시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는 전체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도의 역사의 성공은  사랑의 성공입니다. 이만큼 사랑은 영생이요 사랑은 평강이요 사랑은 화평이요  사랑은 영광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의 전부는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중심에서부터 표면까지,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소속의 것들까지 전부는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사랑을 심히 고조하고 강조하고 있는 동시에 사랑의 정의를 모르면,  하나님의 사랑이 둘째아담으로 통해서 나타났는데 인간을 죽인 첫 아담의 사랑이  이것이 나타나서, 마귀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으로 바꾸어 기독교를  멸살시키는 이 역사를 맹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일 귀한 것이 사랑이요 제일 무섭고 악독이 심한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사랑이요 하나님의 도의 원수는 사랑입니다. 한 사랑은 산  사랑이요 살리는 사랑이요, 한 사랑은 죽은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사랑을 같이 보면 안 됩니다. 한 사랑은 죽은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입니다. 한 사랑은 산 사랑이요 살리는 사랑입니다.

 진리와 영감 외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 있는 부모와 자녀의 사랑, 형제의 사랑,  부부의 사랑, 친구의 사랑 그 전부의 사랑은 다 죽은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입니다. 사랑과 사랑이 혼돈되기 쉽습니다. 자기와 자기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일생 동안 사랑했는데 일생 동안 피차에 죽였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도는 사랑이요 하나님의 구원은 사랑이요,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요 하나님의 도의 적도 사랑이요 우리를 멸망시키는 자도  사랑입니다. 한 사랑은 우리를 구출하고 한 사랑은 우리를 죽입니다! 진리와  영감인 사랑은 우리를 살리고 진리와 영감을 떠난 혈육의 정실, 남녀 이성의  정실, 동류의 모든 정실 이것은 진리를 떠나 타락한 그자들에게서 나온 타락한  자의 죽은 사랑입니다! 죽이는 사랑입니다! 이것으로써 저도 죽고 남도 죽고,  이것으로써 가정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다 죽입니다. 산다씽은  자기의 숙부의 사랑으로써 산다씽을 죽이려고 하는 그 독이 자기 일생의 시험  중에는 제일 어려운 시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사랑 없는 곳에 하나님의 구원이 없습니다. 사랑 없는 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평강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구원을 죽이는 것도 사랑  외에는 죽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강과 행복을 죽이는 것도 사랑 외에  다른 것은 죽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를 살리고 사랑이 우리를  죽입니다! 진리와 영감인 사랑은 우리를 살리고! 진리와 영감을 떠난 사랑은  우리를 죽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이 구원의 도의 종자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도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도의 시발도 사랑이요, 부스러기도 사랑이요,  하나님의 도의 그림자도 사랑이요, 하나님의도의 지나간 흔적도 사랑이요 전체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생명을 삼키려고 하는 악령은 인류 시조를 죽인 아담하와가 가졌던  이 사랑을 가지고, 사랑과 사랑을 혼돈시켜서 죽은 사랑 죽이는 사랑을 가지고 산  사랑 살리는 사랑과 비슷하게 보여지는 자에게, 구별하지 않는 자에게 살해하는  이 역사를 하는 것이 악령의 오늘의 역사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출되고 세상은 마귀의 이 죽은 사랑으로 세상은 완전히 멸망을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고 사랑을 준하여 생명을 얻는 자가 되어져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영을 살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너희들이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사랑하라 말은 혈육적 사랑을 가지라 말  아닙니다. 형제간이 사랑하고 부자간이 사랑하고 부부간이 사랑하고 친구간이  사랑하는 그 색은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하라 말 아닙니다! 그 사랑이 뜨거우면  빨리 뒈집니다! 그런고로 기독자이면 부부 사랑도, 부자 사랑도, 형제 사랑도,  친구사랑도 죽은 사랑을 청소하고 산 사랑으로 바꾸면 영원합니다.

 사랑 없어 탄식 소리난다는 그 찬송도 기이합니다 그 사랑을 산 사랑 참사랑을  말한 것으로 보면 보여지고 죽이는 사랑으로 보면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 찬송의  맺은 열매는 죽이는 열매가 커졌고 산열매가 적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산 사랑이 왔으니 우리의 영을 살린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씨가 와서 살렸습니다. 「그런고로 너희들이 거듭난 것은 사랑의 씨로 거듭났으니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살아 있고 항상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너희들이 거듭났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진리는 사랑이요 영감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그 사랑은 우리에게 진리와 영감으로 나타났습니다.

 진리와 영감의 사랑으로 살아난 영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신앙의 마음, 우리의 신앙양심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형상화된, 하나님의 사랑화된 영의 모형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영의 모형이요, 영의 모형이라니?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인 영의  모형 곧 영의 사랑의 모형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마음입니다. 신앙  양심입니다.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그  말씀은 그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 마음은 죽은 마음이요 산 영의 모형이 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 양심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난 사랑의 영의  모형이요, 영의 모형이요 또 우리의 양심은 우리 밖에 있는 모든 것의  원형입니다. 우리 마음밖에 있는 모든 것의 원형입니다. 우리 몸의 원형이요 몸  밖에 있는 모든 자기의 전 환경 생애의 원형입니다. 마음이 막히면 자기의 몸에  막히는 지장이 생깁니다. 마음이 막히면 자기 활동이 막힙니다.

 마음이 막히면 자기의 사업이 막힙니다 자기의 마음이 형통하면 자기의 활동이  형통합니다. 자기의 사업이 형통합니다. 자기의 출세가 형통합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자기 몸이 불안하고 자기 생애가 불안하고 사업이 불안하고 출세가  불안하고 모든 전체가 불안합니다. 자기 마음에 평강이 있으면 자기 몸에 평강이  있고 사업에 평강이 있고 활동에 평강이 있고 자기의 무대에 평강이 있고 자기  명예에 평강이 있고 전체에 평강이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함이 그의 영에게 심어져 그 영이 하나님으로  완전해지면 그 영의 완전이 그 마음에 심어져 그 마음의 완전이 이루어지고 그  마음의 완전이 이루어지면 그 몸의 완전이 이루어지고 그 몸의 완전이  이루어지면 그의 모든 소원이나 계획의 완전이 이루어지고 소원과 계획과 모든  역사의 완전이 이루어지면 그 나타난 열매의 일과 모든 사물들의 완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 의 법칙입니다.

 그것을 여기 들어서 몇 가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19절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이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마음이 굳세진다. 어쩌면? 자기 마음이 형통하면, 자기 마음이  평안하면, 네 마음이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면 불안하고, 마음에 거리끼면 모든  것이, 자기 마음 밖의 것 모든 것이 거리끼고, 자기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이  자기 마음이 형통하면 자기 마음 밖의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자기 마음에  평강이 이르면 자기 마음 밖의 모든 것이 평강이 이루어지고, 자기 마음에 하나도  거리낌이 없으면 자기 마음 밖의 몸에, 자기 생애에, 사업에, 전체에 거리낀 것은  하나도 없이 다 제거된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몇 가지로 들어서, 네 마음은 네 몸과 네 몸 밖에 있는 모든 네 생애의  판도다. 판도. 판도, 판도다. 그것들의 원인이다. 네 마음이 어떻게 된 것같이 네  마음 밖에 몸이나 행동이나 소유나 생애나 전부는 그것을 모형해서 이루어진다.

네 몸밖의 모든 생애는 네 몸의 모형이요, 네 몸은 네 마음의 모형이요, 네  마음은 죽은 영이라면 죽은 형의 모형이요 산 영이라면 산 영의 모형이니,  하나님의 모형인 산 영, 산 영의 모형인 산 마음, 산 마음의 모형인 산몸, 산 몸의  모형인 산 생애를 이루는 것이 너의 구원의 성공이니 네가 다른 데 가서  날뛰려고 하지 말고,  「네 마음이 너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무릇 네 마음이 굳세지고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 담대해지고 무릇 너의 구하는 것을 다 그에게 다 받을 수 있느니라  네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네가 폭 싸여 있는 것을 네가 영감으로  인해서 환하게 알게 되리라」 그러기에 모든 생애의, 생애의 행 불행과 생사는 네  몸에 매였고, 네 생애와 네 몸의 삶은 네 마음에 매였고, 네 생애와 네 몸과  네마음의 삶은 네 중생된 영에게 매였고, 네 전부는 진리와 영감에게 매여  있느니라. 그러기에 네 밖의 복잡하고 수많은, 네 몸의 수많은 행동에서 조절하는  것보다도 그것의 씨앗이 되는, 그것의 씨앗이 되는 이 마음에서 단속하고  조절해라? 네 마음에서 단속하고 조절하는 수백의 수천의 방편보다도 네 속에  생명이 있으니 중생된 영, 참 너 거기에 연결되어 거기에 피동되도록 그와  교제해서 그에 연결되는 이 일에 주력해라!

 그리 되면 첫째로 「네 마음이 굳세게 되리로다」 마음이 강해지는것, 마음에  힘이 쥐어집니다. 결심이 강해집니다. 의지가 강해집니다. 한다 하면 하고 안 한다  하면 안 하고, 이긴다 하면 이기고, 버린다 하면 버리고, 네 마음이 강해서,  견고해서 아무도 네 마음을 꺽지 못하고 네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굴복도  시키지도 못하고 네 마음을 흔들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서?  네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그 속에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네 마음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  영감의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을 단 속해서 네가 네 마음을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에 준해서 거기 거리낌이 없는 네 마음을 만들면,  거기 거리낌이 없는 네 마음을 만들면 이 마음의 소생 중 첫 소생이 네게는 반석  같은, 아무도 해할 수 없는 견고한 마음이 네게 거기서 산출된다. 그 마음에서  견고한 마음이 산출된다.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인 사랑의 그 법칙에, 거기 네가 준해서 거 기 아무  거리낌이 없이 네 마음을 만들려고, 거기 거리낌이 없이 네 마음을 만들려고 애를  쓰면, 거리낌이 없는 네 마음이 만들어지면 네 몸을 거리낌이 없는 몸으로 만들  수 있는 굳센 마음이 생겨 진다. 이 마음을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 앞에 담대함에  너에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내가 계명으로 인해서 불 가운데 들어가도 하나  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천천만의 원수가 첩첩이 둘러 있어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가지리라,  '하나님 앞에 네 마음이 담대하리로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이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담대한 마음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무엇이 어찌하며, 불보다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상관이 있느냐?' 그 담대, '사자를 만드시고  시간과 공간과 활동계를 주관하시는, 주권하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사자가 무슨 상관 있느냐?' 사자의 웅크림에 조금도 두려움이나 놀람이 없는  담대, 하나님으로 인한 담대, 하나님으로 인한 담대가 너에게 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네 구하는 대로 다 주신다. 「네 구하는 대로 다 이루리라」  구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큰 게 아니라, 구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큰 게  아니라, 잘못 구했으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면 하나님이 범죄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구하는 것을 다 얻으리라」 하는 말씀은 네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네  싫어함이 하나님이 싫어함이요, 네 마음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라. 네 인격과  하나님의 신격이 같아! 너와 하나님이, 너는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지만  마음의 작용은 너와 하나님과 꼭 같아. 이러기 때문에 네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니 당신 소원 이루어지는 것이 네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라.

 이래서 결말에는 네 행동과 하나님의 행동은 일치가 되어진다. 일치되어지기 그  앞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어디든지 두려움이 없고 모든 것을 가능할 수 있는  담력이 너에게 있고, 그 앞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견고해져서, 네  옳은 마음 신앙의지가 견고해져서 네 의지를 아무도 피조물이 흔들 수 없어!  피조물이 흔들 수 없는 마음, 왜? 네 마음 속에 진리와 영감의 사랑의 생명이  들어 가지고 역사했기 때문에.

 성도들이 자기의 마음에 가책된 것을 제거하고! 가책된 것을 제거하고! 자기  양심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는 것은 그 진리와 영감의 그 사랑이 자기 속에  들어오기를 원할 때에 들어오도록 활짝 열어서 들어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들어오면, 그 사랑이 들어오면, 그 진리가 들어오면, 그 영감이 들어오면  네 신앙 의지가 견고해서,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을 더  하시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네 신앙 심지, 신앙 의지가 견고해서 아무도 꺾지  못해! 피조물이 꺾지 못해! 모든 피조물은 네 신앙 의지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  왜? 네 신앙 의지 안에는 하나님이 그 속에 역사해 들어갔어!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담대함을 얻어.

 6.25 때 같이 추교경전도사, 또 이 뭐인가 이름은 잊어버렸어. 이장로,  주남선목사 세 분이 개평 가서 설교를 하는데 '황충이 떼가 왔기 때문에 너희들이  황충이 떼에 끌려서, 죽기를 두려워하고 황충이 떼에 끌려서 범죄하지 말라'고  외쳤는데, 저 뒤에 내무서 내무서원 여서원이 하나 와서 딱 앉았다가 그걸 다  적고 난 다음에 설교 딱 마치니까 '동무, 나 좀 따라 오시오.' 그래 서이 따라  갔는데, 내무서, 공산주의자 내무서로 가 가지고 설교를 다 읽으며 '요놈은 그냥  죽여서 안 되겠고 우리 해방시켜 놓고 잔치를 해서 이 살을 낱낱이 째서 뭐 구워  먹든지 어쨌든지, 요 분개할 놈을' 거석한다고 이렇게 하니까, 감방에 떡  가뒀는데, 조사님하고 장로님하고 둘이는 상이 새파랗게 지금 살아 있지만 죽은  송장이라. 어떻게 창백해졌는지. 죽을 지경이라. 이런데 주남선목사님은 턱  들어가시더니만 10분도 안 돼서 코를 드렁드렁 그려 가면서 자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담대함이라.

 이것들보다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저희들이 나를 어떻게 하리요!  살아도 당신이 내게는 주권자 죽어도 당신이 주권자, 당신이 나에게 주권자시니  피조물이 나를 어떻게 하리요! 이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담대함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담대함이오.

 그 결과는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이라. 그 사람 소원이 하나님 소원, 하나님 소원  성취가 그 사람 소원 성취, 이제는 하나님과 그 사람이 하나라. 「무릇 너의  구하는 것을 다 얻으리라」 무릇 너의 구하는 것을 다 얻으니까 다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얻지 하나님의 뜻에 이탈된 것을 어떻게 다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그의 소원이 되고, 하나님의 모든 비판과  평가가 그의 비판과 평가가 되었으니, 지혜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되었어.

이루어지니까 능력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됐어. 하나님과 동행.

 이러고 보니 마지막에 결말은 하나님 안에 네가, 네 안에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네 안에 이렇게 계시는 것이 말로만 아니라 네가 하나님 속에  계시니 피조물들이 와서 찬양이나 했지 어떻게 해할 것이오? 전지 전능자가 네  안에 계셔 가지고 역사하니까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라, 이것을  성령이, 하나님 안에 네가 거하고 너의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성령으로 인하여  알게 되리라 이것이 결말입니다.

 그런고로 영에게는 왔는데 모든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인 진리와 영감에 거기 기준한 그 기점인 그 법칙을  준해서 자기 마음으로 잘못되었다 생각하는 것 있으면 이것을 하나 하나  정리하는 것은 영감과 진리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속에 들어와서 주관하게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계명을,  계명을 그 방편으로 삼아 가지고 일계명, 이계명, 삼계명, 사계명, 하나님에게  대한 계명, 오계명 부모에게 대한 계명, 살인에 대한 계명, 음행에 대한 계명,  도적질에 대한 계명, 거짓 증거에 대한 계명, 탐심에 대한 계명 이 계명적으로  자기 속에 거리낌이 있으면 즉시이것 정리하는 것이, 이것 정리하는 것이 자기  마음 밖에 있는 몸의 모든 거리끼는 것, 생애에 거리끼는 것, 사업에 거리끼는 것,  가정에 거리끼는 것 모든 거리끼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니 그 넓은 데 가서  정리하지 말고 네 마음 안에 거기서 정리해라!

 내가 조그만하게 어렸을 때에 어떤 나이가 많은, 나이가 한 스물 댓 살 서른 살  먹는 머슴이, 보니까 그 밑에 논인데, 논두렁에, 논이 말랐으니, 구멍이 나 가지고  자꾸 이래 흐르고 하니까 구멍을 막으려고 저 밑에 가 가지고 막 암만 막아도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하니까 야단을 지겨. 그래 내가 그때 조그만할 때인데,  국민학교 2학년 때인가 그런데, 가보니까 답답하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가서 논바닥에 이리 저리 다녀 보니까 구정물이 내려가. 구정물이  졸졸졸 가는 데가 있어. 맑은 물은 가는 데를 모르는데 구정물이 가는 데가 있어.

구정물 가는데 보니까 구멍이 요만한게 들렸어. 요만한 게 들렸어. 뚫려서 그래  그걸 이래 가지고 딱 막고 있으니까, '물 나오나?' 이러니까 '아, 물이 안  나온다.''그래, 구멍이 여기 있어. 여기를 막아야지 거기 가서 막아서 되는가?'  이것 모양으로 자기 몸의 모든 불행, 자기 사업의 모든 불행, 원치 않는 것, 소원  이루어지는 것, 소원도 원치 않는 것도 이것을 정리할 수 있는, 방안에 앉아서  정리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이것이 뭐이냐? 자기 마음 거기서 모든 것을  정리하라. 네 마음은 네 모든 생애의 판도다. 네 마음은 네 모든 생애의 원인이다.

원인을 네가 고치면 그 나머지 몸은 다 고쳐진다. 네 마음에 거리낌을 두고 네  사업의 형통을 네가 해서 죽자껏 힘써 봐야 다 허사를 경영하는 것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굳센 마음이 된다.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담대함을 얻는다. 네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한다. 이러면 네 안에 하나님  하나님 안에 너, 하나님 안에 있는 너를 누가 어떻게 하며, 네 안에는, 껍데기는  너이지만 하나님이 네 안에 앉아서 전지 전능자가 역사하시는데 여기 반대할  자가어디 있느냐? 네가 하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이것을 네가 확실히 네가  보고 알기까지 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지극히 큰 생명과 평강과 영광과 축복을 우리 앞에 아듬고 있지만  우리가 소경이라 다 물리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첩경이 있고 형통이 없고  성공이 없습니다.

 마음에 작정하고 기도합시다. 마음에 작정하고 기도합시다. 단정을 지웁시다!  우리에게는 만능이 있습니다! 전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피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써먹지 못하면 주의 피는 우리에게 너무도 허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고서 못 낸 분들 다 보고서 내고, 가방을 다 안에다 넣고 기도하고, 30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1층에 남반은 신관 여관은 구관, 여기서 30분 기도하고  내려가면 즉시 장로님들 인솔 하에서 안효일집사님이 찬송 인도하고 장로님들은  거기서 뒤에서 잘 협조해서 감독하실 것입니다. 오늘 밤에 맡은 장로님은 뒤에서  잘 협조하시고 잘 안보하시고, 안효일선생님은 찬송 한 장 하고 오늘 밤 설교를  녹음기로 틀고, 그리고 난 다음에 기도 한 시간 하고 또 찬송 하나하고 또 녹음  틀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자유로 기도하다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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