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조건

 

1987. 9. 22. 새벽 (화)

 

본문: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 믿는 사람은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한 그것이 정상입니다. 차차 차차 자기 생활이 형통해지고 또 사람들 보기에 ‘저 사람들은 복받는다’ 이렇게 인정돼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을 보고 따라올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일반적 원칙이요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여러가지로 자꾸 지장이 있는 것, 자기가 처음에 계획할 때보다 차차 못해져서 그 모든 일이 자꾸 막히고 안 되지는 것, 또 일이 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끝을 맺지 못하고 실패하는 그런 것, 이런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정상은 아닙니다. 이것은 다 비정상입니다.

이거는 잘못돼서 그런 것이 많습니다.

혹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참 그 사람이 아주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 생활을 잘 하는데 욥이 시험당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어려움이 있는 토막, 아주, 욥에 대해서는 욥기에 보면 “천하에 욥과 같은 의인이 없다” 이랬습니다. 그렇게 의인인데 욥이 일시에 망한 일 있습니다.

자녀가 다 죽었고 소유가 다 절단나 버렸고 자기 또 몸이 참 굉장히 병이 들어서 비참하게 됐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욥을 저주받았다고 했지 욥이 누가 예수를 잘 믿어서 하나님을 잘 공경해서 그리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욥은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 대해서 의심을 하거나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그 친구들이 와 가지고 자꾸 너무 과격하게, 네가 죄값인데 회개하라고 자꾸 이렇게 하니까 그때 조금 불평스러운 말을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 친구는 잘못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고 욥에게는 과거에 모든 면이 배가 되도록 그렇게 축복하셔서 형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거울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당신의 의인을 자랑하기 위해서 또 그 의인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자랑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도록 ‘이런 어려운 가운데서 신앙 생활이 변하지 안했다’ 이래서 그 뒤에 다른 성경에, “욥의 인내를 봐라, 욥이 이런 가운데서도 신앙 생활 했다.” 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많이 교훈했습니다.

그라다가 모든 면에 과거 배나 축복을 해서 해결을 짓게 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됐고 인내의 한 표본이 되도록, 참고 견디는 데 한 표본이 되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에 속한 일들도 있습니다. 의 때문에 고난 당하고, 의 때문에 불통하고, 의 때문에 망하고, 의 때문에 죽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런 사람들도 다 의 때문에 사형을 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이 도리어 믿는 사람의 본이 되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며 믿는 것은 그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보여 준 한 계시 기관이 됐지 망하지를 안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형통치 아니하면 이것은 다 죄를 지은 까닭이라 그렇게 판정하는 것이 그것이 정상입니다. 만일 욥과 같이 참 천하에 욥과 같은 의인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의인이 하나님의 뜻이 계셔 가지고 형통치 안하고 망하게 된 거, 이것을 죄를 지어 가지고 망한 자가 그렇게 착각하고 오산하고 자기를 잘못 평가해 가지고 과대평가해서 그렇게 계산이 된다면 얼마나 그 망하고 또 망하겠습니까? 또 의인이 자기는 이와 같이 지금 양심에 가책 없이 믿음으로 살았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에 죄를 지어 망한 사람처럼, 자기는 죄를 지어서 하나님 앞에 징계와 저주를 받아 그렇다 이렇게 또 오산해도 이것도 탈입니다. 그런 것은 특례요. 특례로서 그런 것은 우리가 잘 구별할 수 있습니다. 넉넉히 있습니다.

왜?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신앙 생활 한 것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했는가? 또 그 사람이 현재도 어떻게 신앙 생활 하고 있는가 하는 그런 것을 보면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칙적으로 일반적으로, 믿는 사람은 다 형통한 것인데 왜 형통치 안하고 그와 같이 망하는가? 여게 말하기를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런데 4절에 “악인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러니까 그게 잘된 것 같고 아주 형통한 것 같지마는 결과가 절단나 버리고 마는 걸 말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간이 망하는 것은 뭣 때문에 망하느냐? 여게 표시하기를 악 때문에 망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은 뭣 때문에 망하느냐? 악 때문에 망한다. 사람이 형통한 것은 뭣 때문에 형통하냐? 의 때문에 형통하다. 그 두 가지로 말했어. 망하는 건 악 때문에 망한다. 형통한 것은 의 때문에 형통하다.

악은 뭐인데? 악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뭐 비판이든지 평가든지 계획이든지 심지어 믿음을 지키는 것도 자기 중심으로 지키고, 또 의를 행하는 것도 자기 중심으로 행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도 자기 중심으로 행하는 그것은 다 그것이 망할 원인이 되지 복받을 원인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생 동안 원수가 뭐인가? 원수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원수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 말, 생각, 행동, 정신, 성질, 또 계획, 벌써 들어보면 ‘저 사람이 자기 중심이가 그리 안 하면 의가?’ 의가 아니면 자기 중심, 자기 중심이 아니면 의입니다. 의는 예수님의 대속을 가리켜서 의라고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대속 중심이냐 자기 중심이냐 여게서 망하고 형통한 것은 판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형통한 사람들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1절과 2절에 말해 놨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그 말은 형통한 사람은 그 말입니다, ‘모든 일에 형통한 사람은’ 형통한 것은 세상 일이 잘되는 형통, 그보다 더 나은 것은 또 신앙 생활에 하나도 막히지 안하고 닥치는 것마다 다 승리로 통과하고 성공으로 통과하는 그런 것이 다 형통입니다.

육의 형통도 있고 믿음의 형통도 있는데 육의 형통 있는 사람이 믿음의 형통 있고 믿음의 형통 있는 사람은 다 육의 형통을 통과해서 초월해 가지고서 그렇게 형통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일반적으로는 육의 형통이 먼저요, 육의 형통이 먼저인데 그 사람이 그 형통을 받아 가지고서 제가 능하고 제 무슨 노력으로 형통했다고 생각하고 하는 자는 스스로 섰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망해버리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처음에 조금 믿고 난 다음에는 조금 잘 되다가 망하는 것은 그 조금 잘된 것을 자꾸 더 잘되구로 해 놓으면 그게 더 제가 잘나 가가지고 그와같이 했다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교만해져 가지고서 더 망할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육을 망하고 영을 구원하는 게 낫기 때문에 육을 하나님께서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육의 형통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육의 형통은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감사하지마는 이것은 가치가 적다. 육의 형통은 암만 형통해 봤자 그것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것도 아니고 다 하늘나라에 무슨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가치가 적다.’ 이러니까 육의 형통 받은 그것을 전부 하늘나라 구원을 위해서 마구 투자합니다, 하늘나라 구원 위해서 투자 하는 사람.

또 투자 안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은 투자를 안 하고 ‘주여, 내가 육의 형통 이것은 내가 원치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치 않습니다 하고서 다 집어던져 버리고 영의 형통으로 빨리 바꿔 주기를 바라는 이런 사람으로서 육의 형통을 초월해 가지고서 영의 형통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육의 형통을 안 주고 영의 형통부터 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그 베드로도 육의 형통을 먼저 주고 난 다음에 이 형통을 자기가 받고 영의 형통 받지 못한 데 대해서 참 두려워 떨면서 ‘나는 죄인로소이다 주여 나를 떠나시옵소서’ 할 때에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로하시면서 ‘베드로야 네가 이제는 영의 형통인, 이 없어질 물질 축복의 수입을 받지 안하고 이제는 영의 형통 영의 축복을 네가 받으리라.’ 이랄 때에 베드로는 배도 그물도 고기도 다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거 일반적으로 돼 나가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비판해야 될 터인데 이 사람은 저리 비판하고 저 사람은 이리 비판해 가지고 마귀 요놈이 비판케 해 가지고서 제가 죄를 지어서 모든 것이 불통한 그자는 죄를 지어 불통하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죄를 지어 제가 천해지고 죄를 지어서 무능해지고 이렇게 된 것으로 판단할 자는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너는 의인이라 그렇다. 너는 의인이라서 그렇게 지금 그렇게 돼진다.’ 아주 회개해야 될 자가 욥과 같은 의인이라 되는 것으로 이렇게 오판하도록 해 가지고서 더 망하도록 만듭니다.

또 욥과 같이 의인으로서 하나님이 계시기관으로 쓰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의 표본을 삼기 위해서 “욥의 인내를 봐라. 욥이 참고 견디니까 끝이 어찌 됐느냐?” 이라기 위해서 하는 그 사람이 참고 견디지를 못하고 ‘나는 하나님이 버렸는가보다. 나는 지금 저주받아 그런가보다.’ 이렇게 오판을 하면 그 사람이 또 참고 견디지를 못할 거라 말이오. 그래서 또 망합니다. 마귀란 놈은 어찌 됐든지 바로 깨닫지 못하도록 꺼꾸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망하는 것은 전부 뭐 자기에 대해서나, 하나님께 대해서나, 일에 대해서나,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잘못 깨닫는 것이 망하는 원인이오. 잘못 깨닫는 것은 원인이 뭐인가? 잘못 깨닫는 원인은 악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놈이 들어서 잘못 깨닫는 그 원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복있는 사람은 의인이 복있고 망하는 것은 악인이 망한다.

악인이 망하고 의인은 잘 된다. 의인은 뭐이 의인인가? 의인은 예수님의 대속의, 우리는 세밀하게 배웠는데 열여섯 가지를 자기가 가지고 이 열여섯 가지로 사는 것이 의인입니다.

그때야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히기 전인데 거기다가 억지로 끌어다 붙이나? 끌어다 붙이는 게 아니라 과거에 짐승으로 속죄제 속건죄 화목제 번제 드리는 그 제사는 전부 예수님의 그 모형으로 예수님을 두고서 예수님의 예약으로, 예약으로 했기 때문에 죄를 사하지 그게 사함 받는 거는 아닙니다.

그거 사함 받았다가서, 사함을 받아도 미결로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실 때에 사활의 대속은 그때 입었기 때문에 모든 무덤 속에 있는 성인들이 그때 일어나고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의인으로 사는 데 그걸 구체적으로 요거 말하기를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은 제가 들어서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보다도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기 중심으로 살게 만듭니다.

요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이 자꾸 주장하는 거기에 미혹받아 가지고서 자꾸 그 길 걸어가기 쉽습니다. 옆에 가족들이 악인으로 살도록 악인의 길을 취하도록, 가장 친한 자들이 들어서 악인의 길로 가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이 먼저 걸어가면서, 악인 따라가지 말라 그 말이오. 좇지 말라 말은 악인 따라가지 말아라. 네가 사람을 접촉할 때는 그 사람이 너로 하여금 악으로 판단하고 악으로 주장하게 해 가지고서 나아가지 않도록 그렇게 해라.

자기 가족끼리 만나서 그 가정을 하나님의 구속으로 인도하지 안하고 자꾸 저거 중심으로 이래 가지고서 ‘뭐 누가 우리를 이라니까’ `그 사람이 그래, 나도?’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악인으로 살도록 만드는 그 아내, 악인으로 살도록 만드는 그 남편, 악인으로 살도록 만드는 그 친구, 악인으로 살도록 만드는 그 신앙 동지, 이래서 제가 여기 처음에 와 가지고, 지금 권사들입니다. 그때에 집사들인데, 아주 수집사들인데 ‘집사끼리 만나지 말아라’ 이랬어. 왜 만나지 말라 했습니까? 만나지 말라 하는 것은 너희들은 네가 맡은 식구에게 가서 만날 때에는 그 식구를 어짜든지 악을 떠나서 의로 살도록 그래 지도하지마는 너거끼리 만나 놓으면 이 집사가 저 집사 악으로 살게 하고 저 집사가 이 집사 악으로 살게 하고 저거끼리 수군수군 그래 가지고 자꾸 악으로만 살도록 만든다 말이오.

만나지 못하도록 그래 서로 만나는 그런 것을 금지한 것이 여러 해 됐습니다.

여러 해 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그걸 피했기 때문에 지금은 만나라 하요. 만날래도 만날 시간도 없고 또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날 맛도 없고, 그때는 안 만나면 못 견뎌.

그래 내가 여기 남권찰들, 또 여기 반사들, 또 지금 여권찰들, 이렇게 산에 기도하러 갈 때에 우 여럿이 가 가지고 가는 것은 좋지마는 그 몇 사람이 기도하러 가면은 내가 그것을 좋아 보지 안하고 살펴봅니다. ‘저게 너이 갔다, 다섯이 갔다, 여섯이 갔다, 일곱이 갔으니까 분명히 저것들이 악의 운동만 하고 오지 저거 구원 이루지 못할 터이니까 보자.’ 갔다 오면은 저거딴에는 은혜 받았지마는 실컷 악만 도모하고 옵니다. 이래 가지고서 뭐 전부 제 중심만 만들어 가지고 오요. 그걸 우리가 피하지 안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가족끼리도, 가족끼리도 말하면 만나면 제 자랑하고 목사 험담하고, 또 어데 가 심방하면은 슬금슬금 목사 하는 일 그거는 틀렸다고 훼방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저는 지금 잘 하는 양으로 하고. 망합니다. 그까짓 거 좀 남아 있는 그게 뭐야? 아무것도 아니라. 바람에 나는 겨라. 사람이 악만 되면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아무리 성공해 봤자 그까짓 거 잠깐 날아가 버리고 말아요.

이러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런 주장에 따라가지 말며. 롯이 왜 망했습니까? 롯이 망한 것은 악인의 꾀를 좇아가다가 망했습니다. 자기 아내가 그랬지, 딸들이 그랬지, 밑에 있는 모든 종업자들이 그랬지, 다 제 중심으로 살라 했지 하나님의 의로써 살라고 하지 안했어. 이러니까 그 따라가다가 다 망했어.

그러기 때문에 가족끼리, 신앙 동지끼리, 너거 둘이 만나면, 만날 걸 못 들어도 안 들어도 환하게 알아. 개가 개하고 만나면 개소리 하지 뭐 딴거 할 게 뭐 있는가? 개노릇 하지. 닭하고 닭하고 만나면 닭노릇 하고 닭소리 하지 뭐 딴거 할 게 없어.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는 요것이 원수인 줄 알고, 만일 얘기하다가 ‘저 사람이 자기 중심’ 그 묘하게 마귀란 놈이 꼬웁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서 결국은 자기 중심의 사람, 자기 중심의 말, 그거 따라서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며” 자기 중심으로 가도록 끄는 거기에 따라가지 안하는 그게 제일 일호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복받을라면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자에게 미혹받아 끌려가지 않는 것이 이게 제일호라. 이게 제일 어려운 거라. 이것부터 해 놔야, 이것 못 하는 인간은 뭐 다 그 속에서 망하고 말지 희망이 없어.

다 또 안다 말이요, 이 설교하면 여러분들이 다 알아요. ‘아무것이를 만나니까 과연 그 사람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 반대는 뭐입니까?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라.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가 아니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더라. 그 사람을 만나니까 어짠지 은혜가 안 되더라. 그 사람 만나니까 목사님 설교가 은혜가 안 되더라. 목사님 나는 천사인 줄 알았는데 그이 말 듣고 보니까 은혜가 안 되더라.’ 이래 가지고서 일생을 망치고 만다 말이오. 몽똥몽똥 하나님이 모아둡니다. 모아뒀다가 나중에 가 깨뜨리고 만다 그 말이오. 우리가 이걸 알아야 돼요.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해야 돼.

악은 제가 자기 중심으로 살라 하는 것보다도 옆에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살도록 이끄는 그 유혹을 받지 안해야 돼요.

그래서, 다 봅니다. ‘저 누구 가정’ `누구 가정은 너 때문에 잘되는 게 아니라.

너거 가정에는 의인이 하나 있어. 너는 누구 때문에 잘돼. 너는 너거 집구석을 만날 망치기밖에 못 해.’ 환하게 안다 말이오.

그래도 그것은 말을 해 주지 안해. 다 그러면 ‘뭐 본인이 알지 뭐 사람이 어찌 압니까? 사람에게 배울 것이 없다 했는데.’ 이렇게 말해 둬야 되지 바른 말 해 주면 그게 배나 지옥의 자식이 돼. 이러기 때문에 그런 걸 잘 말하지 않는다 그거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그 말은 이것은 유혹이 적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생활 하는 것은 제가 스스로 어기는 생활 하는 일이 많아.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저거는 따라가지 말고, 악인을 따라가지 말고, 악인의 계획을 따라가지 말고, 악인의 유혹을 따라가지 말고, 죄인은 성경 말씀을 어기는 생활이 죄인인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제가 서야 돼. 하나님 말씀을 제가 어기는 그거는 제게 담당이지마는 악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피동되기가 쉽기 때문에 이걸 말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그 말은 자기를 자꾸 자기를 만족하게 여깁니다. 자기를 만족하게 여겨. 자기를 됐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 볼 때 자기는 한 삼점이나 사점밖에 안 되는데 저는 백점으로 보고 있다 그 말이오. 이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만한 자리에 앉는 것이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요것을 지금 말할라 하는 게 제가 어제 오늘 아침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그 베드로가 그물 던져 가지고 고기 잡은 그것도 그 근본을 캐 보면 주님의 가르치는 말씀을 다 배우고 난 끝에 주님이 인도하실 때 그 인도를 따랐고, 따르면서는 믿지 안하고 그저 다른 생각 가지고 형식만 따랐지마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육신의 축복받는 이런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많이 생각하고 읽고 재독 듣고, 재독 듣고 또 설교 듣고 또 성경 읽고 이 일을 많이 하면은 뭐이 떠오르느냐? “네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를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뭘 사모하는 것이? 하나님의 더 확실한 이 문서계시의 말씀이 있으니까 이 말씀을 네가 읽고 생각하고 사모하고 또 설교를 자꾸 재독해 자꾸 듣고 그라면 자신이 변화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래 해라 하는 하나님 음성을 바로 들을 수가 있어. 들은 그대로 하면 그만 형통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형통이 우리 정상이지 예수 믿는 사람이 곤고당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다. 여기도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뭐 아주 뭐 자꾸 잘되는 것이 그게 정상일 것이라 말이오. 자꾸 잘돼.

자꾸 망하는 것은 예수를 잘 못 믿어 그래. 그런데 잘 못 믿어 망하고 특별히 잘 믿는 사람은 망하는 일 있어요. 특별히 잘 믿는 사람은 망하는 것이 한 고비가 있지마는 그 다음에는 특별히 성공이 됩니다, 반드시.

그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영육과 금생 내세가 다 성공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공하는 이 순서가 보니까 네 가지뿐이라. 악인의 꾀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 이것만 하면 모든 것 다 돼져요.

이러니까 ‘뭐 재독만 듣고 자꾸 성경만 읽고 기도만 하면 뭣될 건가?’ 하나님이 복 주어서 우리가 형통한 것이지 제까짓 게 뭐 노력해 가지고 되는 것입니까? 노력은 하지마는 망할 노력만 자꾸 하는데 어떻게 그게 되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꼭 요 말씀을 듣고 요대로 해요. 그래 가지고 우리가 자꾸 형통해야 복음이 전해지지 예수 믿는 게 바짝 말라 자꾸 망해지는데 뭣이 복음이 전해져요? 안 믿는 사람들도 ‘예수를 믿을라면 잘 믿어라. 예수를 믿을라면 잘 믿어야 돼.

아무것이는 잘 믿으니까 그렇게 잘된다. 아무것이는 잘 못 믿으니 그리 됐다.’ 이걸 환하게 안 믿는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세상 빛이 돼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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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혼인잔치/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1986. 11. 3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40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19절-31절/ 1984. 1. 1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139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19절-31절/ 1984. 1.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38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22절-23절/ 1984. 1. 16.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37 화있는 사람/ 유다서 1장 11절-13절/ 1986. 7. 18.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