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15일 주후

 

본문 : 눅 16:19-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오전에, 우리가 다 회개를 한다고는 그전에도 했지마는 다 너무 회개에 부족한  것을 오전에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홍포입은 부자의 이 가치관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가 가치로 여긴 것은 순전히 자기 위하는 그것이 가치인 줄 알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많이 취하고 잘 되면 그것이 가치로 알았습니다. 일생  동안 자기를 위해서 준비하고 노력한 그 모든 것이 무궁세계에 자기에게 그 물  한방울의 효력도 주지 못한 그것을 그는 몰랐습니다. 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것이 일단 죽은 그때부터 자기에게 추호의 효력도  주지 못한다는 것도 그는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영이 중생은 됐지마는 실은 가치관이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뭐 기뻐하는 것도 보면 홍포입은 부자가 기뻐하는 것같은  그런 기쁨, 구하는 것도 그거 자랑하는 것도 그거 저축하는 것도 그거 또 자기가  취득할라고 노력하는 것도 그거, 그저 중생된 영을 가진 자와 중생되지 못한  자와 이것만 다르지 그 세상에 있는 소행은 꼭 같습니다. 우리가 요것을  회개하지 안하면 영은 구원얻어 하늘나라 가고 또 그 고기덩어리의 형체는  부활해 가지고 가지마는서도 기능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사람의 가치는, 이 세상에서 사람의 가치를 그것을 체중을 가지고서 가치라고  하지도 안하고 신장을 가치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장이 커도 제 몸을  이기지 못하는 그 무력한 사람을 가치로 여기지 안하고 또 아무리 몸이 굵어도  조그만한 기능도 없으면 그거는 뭐 병신으로 삼지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도 기능 그것을 가치로 여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택한 자라면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영만 가고 이 육이라는 것은 그저 형체만 갔지 속에 기능은 하나도  없으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 필요없고 소용없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천대받는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나라도 무슨 천대가 있는가?  하늘나라 천대는 대우해 주지 안하니까? 천대입니다. 성경에 구원을 얻으되 불  가운데 구원얻은 거와 같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벌거벗은 자라 그랬습니다.

아무 권력을 입지 못하니까? 벗은 자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홍포 입은 부자는 불택자지마는, 홍포 입은 부자 그 사람  불택자니까? 영육이 다 지옥가서 그렇게 멸망을 받았지마는, 우리 중생된 사람은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홍포입은 부자와 같은 그런 생활을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자기의 받을 기업이나 유언이나 권위 나 지위나 또  실력이나 영광이나 존귀나 그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부가 다  수치스러울 것뿐입니다.

 그런고로, 이거 참 중대한 문제입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남편이 조금 신앙  위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은혜가 제일이지' 하고서 믿음 위주로 살라하면  그 아내가 뒤에 들어 가지고서 기어코라도 그 남편을 꼭작꼭작 꾀워 가지고서  그만 이 홍포입은 부자와 같이 그렇게 살도록 만듭니다. 또 부모가 그렇게  살라고 하면 이 자녀들이 들어서 기어코라도 홍포입은 부자와같이 그렇게 살도록  만듭니다. 그래 만들어 가지고 우선 등따시고 배부르고 먹을 것 있고 뭐  있으니까? 좋다고 이래하지마는서도 그 그날이라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죽으면  헛일입니다.

 뭐 부산에 무슨, 무슨 호텔? 배아? 배아 호텔? 예? 대아? 대아 아 대아 호텔  대아, 대아호텔. 대아호텔에 거기에서 그 변을 당한 사람들에도 믿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 일을 남의 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전부다 다 자연계시입니다. '너도 언제 이런 일 닥칠지 모르니' 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하나의 그 형식으로 계시 주는 것인데 그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이 홍포입은 부자와 같은 이런 인생관을 가지고 그 행복관을 가지고  존영관을 가지고 사는 요것을 완전히 회개하고 요것이 아주 어리석고 자기를  망치는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요것이 원수입니다.

 홍포입은 부자의 남은 오 형제가 있었는데 그 오 형제에게도 이 홍포입은  부자가 저와같이 되라고 저와 같은 것으로 도와 줘서 저와 같은 사람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도 주변에서 나를 홍포입은 부자와 같은 이런 사람으로 살라고  도와 주는 사람이든지 지도하는 사람이든지 자꾸 이렇게 여기에 대해서 욕망이  생겨 지도록 하는 사람이든지 하면 이 사람을 나를 속이는 원수라고 말은 안해도  원수인 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완전히 원수 인 줄 알고 속으로는  배격하고 거기에 미혹을 받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 그러고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홍포입은 부자의 오 형제가, 오 형제가  자기 형에게 대해서 참 이것을 감탄하고 만족했었는데 그것이 순전히 자기를,  자기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 마지막에 홍포입은 부자가 지옥 가 가지고 후회를  하고 말을 했지마는 소용이 있습니까? 그들은 모르는데 우리는 미리 알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이런 홍포입은 부자의  형제가 되는 이런 인생관의 생활도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이거 꼭 회개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너무 우리가 여기에 도적을 많이 맞 고 있습니다.

뭐 믿는다고 해도 대개 보면 잘난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믿습니다. 참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그걸 무엇을 대우해 주는 것은 그 제가 알고 제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그걸 알아주지 안하고 대우해 주지 안하면 그거 삐꿔서 아예 복음 들을  여가도 없고 도망을 칠 것이기 때문에 우선 사람을 불들어서 뭐 복음을 넣어  줘야 되지 이러기 때문에 그라는 줄을 모르고 내가 이거 있으니까? 참 대우 하는  가보다 이래 가지고서 어리석게 껑충거리는 그거 참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정말로 이것이 불쌍하고 가련한 눈이 없으면 믿는 사람 아닙니다.

 우리는 오전에도 많이 말했지마는 홍포입은 부자는 그 사람은 지옥간 사람이고  우리는 홍포입은 부자와같이 살아도 지옥은 안 갑니다. 하늘나라 가지마는서도  가보면 아무것도 없어. 제 소유가 있습니까? 지위가 있습니까? 권세가 있습니까?  환영이 있습니까? 영광이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존귀가 있습니까? 자기의  무슨 뭐 어떤 기능이나 실력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 이러니까? 구원 얻어  봤자 불 가운데서 구원얻은 거와 꼭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 끝인지 모르요.

오늘이라도 덜컥 죽으면 한 것이 뭐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 일을 참으로. 실상으로 느껴서 그때에, 죽을 때에  후회되는 그 후회를 지금 해야 되겠고 죽고 난 다음에 심판 앞에서 부활해서  후회할 것을 지금 하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요 두 가지 사람은 우리가 되면 안됩니다. 홍포입은 부자와 그 불쌍하고 가려한  속고 있는 형제, 뭐 그 사람들이 아마 세상에서는 굉장했을 것이요, 아 육  형제가 그렇츰 미꿈 미꿈하게 부자로 지냈으니까? 그 옆에 사람들이 살았겠소?  뭐 그것만 자랑하고 뭐 얼마나 세도를 부리고 얼마나 영광이라 존귀라 해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그래 살면 아 저 사람들은 복을 받았다 저  사람은 참 영광이다 존귀다 그런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저도, 저도 그런 시험에 일년 전에 들어 가지고서 내가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한 일 년 맞았어. 맞았고 뭐 여러분이나 내나 꼭 같은 사람이지 내라고 뭐  다르다는 것 아니요 우리가 다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한목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해야 되지 지금도 가끔 가다가서 그런 시험에 듭니다. 이래서, 참 며칠  전에도 내가 회개를 했습니다. 제가 어데 조용한 데 기도할 수 있는 그런데  한군데 자꾸 어데 구할라고 이래 저래 어데 돌아다녀도 다 뭐 장로님들이 땅 사  가지고 있어서 도무지 그래 조그만치도 쓸모있는 땅은 장로님들이 다 샀어.

그런데, 내가 김해 장유면에 갔었는데 장유 면에 그 뭐 위성 도시가 된다고 해  가지고서 그만 이 날랜 사람들이 가 가지고 돈을 많이 주고 전부 다 샀는데 그  위성 도시가 안 됐는데 그게 아마 한 몇십 년 묵을 것이요. 그러니까?, 그만 그  장로들이 폭 속았다 그 말이요, 날래기는 날랜데 속아버렸어. 내가 보니 그건 또  볼 때에 아 그 터가 그 뉘 거고? 장로들 터이냐? 아 장로들 터라고. 또 저거는?  또 장로들 터. 또 그거는? 또 장로들 터. 그 모두 부산에 있는 장로들이 와서 다  샀대요. 그거 다.

 그래 가지고 그런 것이 되어서 잘되면은 형통이라 이렇게 했는데, 나는 무슨  시험에 들었는고 하니 ○○ 목사는 대구 가 가지고도 있을 때에도 그만 그  기도원을 줘서 그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아주 좋았습니다. 아 또 서울에 가  가지고, 보니까? 그 아주 그 기도원 터를 좋은 데를 주고 물도 좋고 공기 좋고  좋은 데를 줬다고서 자꾸 날 올라오라 합니다. 뭐 지금 준비를 단단히 해  놨으니까? 목사님 와서 좀 쉬어 가지고 가이소 가이소 하는데 그래 내가 '언제  시간 있으면 가지' 그라면서도 하나님한테 기도해야 나는 주지 않는다 그  말이요. 나는 주지 안해서 '아 ○○목사님은 그래 주는데 나는 안 주는고 이거'  그래 가지고 그것이 마음에 좀 깨름적하이 그렇다 그거요.

 한번은 떡 그렇게 거기 대해서. 말은 안하고 속으로만 그라고 있지요.

그라니까? 주님이 있다 말씀하시기를 '너 그라면 그 ○○목사하고 모두 다  바꿔라 전부다 그 네 진리 깨달은 것도 다 바꾸고 영감도 바꾸고 설교도 바꾸고  교회도 바꾸고 전부 이 입장도 다 바꿔라' 이제 그걸 나한테 한번 이렇게 깨달아  줘서 내가 회개를 했습니다. 그라니까? 그 속으로 그라면서 주님이 바꾸라 하면  아이구 안 바꾸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까? 나 혼자 자문자답이라. 이러니까?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그저 하나님 뭐 당신 주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제 그라고  그것을 한 사 일 전에 완전히 해결짓고 평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오늘도  이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홍포입은 부자의 입장을 예수 믿는 중생된 사람이 가지고 하면은  굉장할 것이요. 자기도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영광이라고 생각해  가지고서 굉장할 것입니다. 또 그 오 형제와 같은 그런 배경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 행복이라고 굉장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기회에 요 두 사람의  인생관이라든지 가치관이라든지 한 이것을 회개를 우리가 아주 하는 사람이 복  있습니다. 철두 철미하게 회개를 합시다.

 그 회개는 무슨 회개인고? 첫째는,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중심 자기 위주.

둘째 회개는 뭐인고 하니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위주. 요두 가지를 우리가  첫째로 회개를 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이 오 형제와 같은  그런 그 혜택을 입으면, 그거 입는 것도 좋지마는 그것을 입음으로 하나님의  믿음의 은혜가 삭감되어지고, 그걸 입을라면 믿음의 은혜를 내놔야 되고 믿음의  은혜를 가질라면 그것을 가질 수 없을 그럴 때에도 믿음에 속한 것을 내놓고  그걸 가지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우리가 이제 아주 회개하고 그런 것을 다시.

다시 한번 그런 일을 하지 안해야 되겠습니다. 고 두 사람의 요소를 우리에게서  완전히 회개하고.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아브라함도 좋지마는 나는  나사로의 이 생활도 참 부럽습니다. 나사로의 생활은 부러운 것은 그것을 지금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럽습니다. 나사로는 하나님 공경하면서 그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자연 은총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연 은총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 그랬지마는서도 나사로는 불만과 불평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연은총이 없었으니 첫째로 아무 의식이 그에게는, 의식의 축복이  없었습니다. 뭐 항상 부자 상에서 떨어지는 그거 주워 먹을라 하니까? 그 거지  생활하니까? 무슨 축복이 있소? 의식의 축복이 아주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거기서 불만이나 불평을 품었더라면 다를 것인데 그런 것이 없었던 것을 그 뒤에  보응을 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그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축복이 없었습니다. 그 몸에 병이들어서 온 헌데가  났다고 이랬으니까? 항상 거지로 지내지, 몸에는 병이 들어서 그렇지 이런데,  가만히 저도 지난번에 아파 가지고서 누웠으면서 가만히 생각 해. 아파도 일 년  얼마를 아팠는데 아프기는 꼭 네 시간 아파 봤어요. 그다음에는 아프지는 안하고  자꾸 애가 터져서 그렇지 아프지는 안했는데 네 시간은 내가 참 고통을 않아  봤어. 열 두시인가 되어서 새벽 네 시까지 요래 가지고 요래도 못 하고 요래도  못 하고 그래 가지고서 꼼짝도 못 하고 담같이 어째 마치 가지고 고통을  하나님이 주는데 그 네 시간 동안 참 고통을 심히 했어요. 그 외에는 그저  기운이 없어 활동 못 하지 고통 안 했는데 그때에 생각하기를, 아 참 후란시스는  주님의 나 위해서 고난당한 고난이 얼마나 컸습니까? 하는 것을 나무에 배를  걸쳐 가지고서 이 질매가지같이 이래 걸쳐 가지고 디리디리 하면서 주님의  고난을 알게 해. 달라고 하는데 손에 옆구리에 전부 그 다 구멍이나기까지  그렇게 주의 그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할라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거  내가 잘못했든지 뭐 우연히 왔든지 이래 가지고 고통 이것도 못 견뎌서 이러니,  그때에 내가 느낀 것은 만일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으로, 뭐 원하기야 하지요.

눈을 빼도 주님을 찬양하고 가죽을 벗겨도 주님을 찬양하고 그럴수록이 복되고  주를 위함이니까?, 그럴 때에 주를 위하는 것은 평소에 위하는거와 다르기  때문에 그럴 때에 주를 위하게 해 달라고 자꾸 기도는 하기는 하지마는서도 막상  아파 보니까? 그런 장기간의 고문이나 고행이 있을 때에는 그만 내가 변질될까  겁이 난다 말이요. 그래서 늘 인제 그전에도 기도했지만 기도를 그래 합니다.

나에게 고문이나 고행이나 그래 있을 때에 내가 아픔을 견디지 못해 가지고서  내가 말로나 행동으로나 변질되고 변성될까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그때에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랑이  요동치 안하도록 해 달라고서 기도를 하기는 합니다.

 이랬는데 나사로는 일생 동안 이래 지내도 그분이 불평 불만없이 지낸 그  신앙이 참 부럽습니다. 하늘나라 가면은 뭐 만일 주님께서-주를 위해서가  아니라도-그에게 한 달만 어려움을 줘도, 그만 돈만 떨어져도, 몸에 그  고통스러운 질병만 있어도 얼마 동안만 있어도 못 견뎌서 발동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 나사로가 와 가지고 떡 나오면 꼼짝 못할 것이요. 나사로는 그런  가운데서도 만족하고 살았는데 조그만한 고통만 와도 그걸 못 견뎌 그랬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나사로는 아주 의식에 대해서 참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하고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몸에  대해서도 그 병이 들어 가지고 그와같이 했으니까? 그 사람 아무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늘 부자의 대문간에, 거기에도 물론 겨울도 있었을 것이고 여름이  있었을 것인데 대문간에 거게서 지내니까? 개가 와서 헌데를 핥고 이렇게 한다고  했으니까? 그의 뭐 거처라 하는 것이 참 형편없습니다. 인제 그렇게 자기 거주에  대해서 축복도 받지 못했지 또 개들이 와서 그렇게 뭐 핥고 이랬으니까? 그  사람으로 여기겠습니까? 아주 대우라 하는 것이 그거 허무했습니다.

 우리는 어데 가 가지고 한 번만, 하루만 대우를 그 멸시 받고 천대 받는다 해도  분해서 못 견디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언제 내가 -○○○ 장로님 저 어디 계실  것인데-가서 장로님에게 네게 단점이 있는데 '자존심 그거 지금 꺾어야 되는데  그거 안 꺾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나는 참 죽는 것보다 자존심 꺾이는 것이  더 어렵다고서 그래 말합니다. 그 솔직하게 말하는데 우리는 어디 가 가지고  조금만 모욕을 당하든지 천대를 당해도 섭섭하게 '요걸 어떻게 내가 다시는 요런  꼴 당하지 안하도록 할까' 그렇게 생각이 되어지고 매우 그 아프지 않습니까?  이는 일생 동안 그렇게 거지로 천대 당했습니다.

 또 그 사람은 그렇게 지내니까? 참 일생 동안 고독으로 지냅니다. 옆에 냄새가  자꾸 이렇게 썩는 냄새가나니까? 누가 왔겠소? 마누라가 있었겠소 자녀가  있겠소?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어. 자기를 위로하고 서로 이렇게 동정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어. 일생 동안 고독하게 지냈지 일생 동안 참 아주 포근한  거처 한 번도 못 해 보고 살았지 따뜻한 의식을 한 번도 못 해 보고 살았지 또  이런 위로나 저런 위로 받고 살지를 못했지 그렇게 모든 면에 참 고생스럽게  살았습니다. 이래도, 주님 믿는 그 믿음을 놓지 아니하고 어데서든지 그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와같이 구원하셨으니 내기에 필요해서 주는 것이고 또  필요해 주든지 어짜든지 그분이 주신 것이니까? 어짤 수 없으니 그저 아무 이의  불평없이 발동없이 그렇게 참고 견디면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계속했기 때문에  요게서 배울 것이 참, 여러분들은 몰라도 저는 여기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이제 가 보면 목회자 가운데서도 아주 온갖 고생을 당하면서 목회하는, 그래도  목회 생활이 자기는 하나님의 사명 이라고 여기서 좇기면 저리 가고 저기서  쫓기면 저리 가고 그라면서도 그저 하나님 앞에 기름 부음 받음을 그걸 업신  여길 수가 없다 하면서 이렇게 다니는 그 종들이 세상에는 그렇지마는 하늘나라  가면은 영광이 얼마나 클런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목회하면서도 뭐 다른  사람에게 대우받고 존대받고 이렇게 모두 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과 하나님에게  대한 그 열심이나 충성이나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속에 참 진실함이 누가  많으며 누가 그것을 중량 무겁게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가봐야 될 터인데 그대로  주님은 대우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이 거지 나사로에게서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은 줄 압니다. 우리는  그래도 암만 그래도 이보다 낫지 않습니까? 의식주도 이보다 낫고 또 몸도  이만하면 뭐 다 그 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또 우리는 그래도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뭐 부부간이 있고 이래 다 위로하고 서로 화합하고 할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형제간도 있고 이러니까? 우리가 이 나사로에게 대해서  배워서 나사로와 같은 이런 지경에 이를지라도 나사로를 생각하고 우리는 견뎌야  되겠습니다.

 그 욥의 고난 당한데 대해서도 욥을 생각하고 세상에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을  견디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욥도 그 사람이 부귀 영광으로 산 그것  가지고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친 일이 별로이 없고 그가 얼마 동안이라도 그  고난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끼친 그 은혜의 영향이라 하는 것은 심히 큰 줄로  압니다.

 그런고로, 나사로를 우리가 배워 가지고 이 나사로와 같은 이런 형편을 만났을  때도 욥이나 나사로를 생각하고 우리 신앙의 요동치 않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우리는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나사로를 우리가 배워야 되겠고.

 또 아브라함에 대해서 여기 보니까?, 22절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뭐 아브라함의 품이라도 육체의 품이라면 그 안에  사람 하나 들어가면 됐지 뭐 둘이고 서이고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브라함의 그 닦아 놓은 은택 아래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닦아 놓은 그 은택  아래에 들어갔다 그 은택 아래에 속했다 그 은택으로 말미암아 그 혜택을 입어서  살게 됐다 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천대까지  이르게 한다' 아브라함이 우리에게까지 몇 대나 됐는가 또 어떤 사람은 더러  계산해 본 사람 더러 있을 것인데 혹 누가 계산해 봤습니까? 몇 대나 됐는지.

아브라함의 그로부터 우리까지 대가 몇 대나 됐는지. 몇 대나 됐겠습니까? 천 대  됐겠습니까? 한 번 누가 속산법 한 사람 없습니까? 아브라함이 지금으로부터 한  사천 년 됐으니까? 사년 만에 한 대라면 천 대 됐겠지 그러니까? 천 대 미만  아닙니까? 안 그렇습그까? 천 대 미만이지요? 이러니까?,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그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한 그 계약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의 지킨 의가 수많은 자손들에게 그 혜택이 번져가서 그를 가르쳐서 복의  기관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또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아브라함을 배워서 아브라함과 같은 이런 사람으로써 우리의 그 신앙  행위에 우리에게 소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 행위의 그 혜택 그늘  아래에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천 대까지 이르게  한다 그랬으니까? 아브라함의 그 지킨 믿음을 하나님이, 만족히 여기시고 내가  너를 복의 기관으로 삼아서 네가 지킨 이 행위에 대한 은혜를 내가 베풀되 천  대까지 베풀어 주겠다 하는 그런 약속과 같은 그런 아브라함의 신앙의 혜택 그늘  아래에, 그늘 아래 그 은덕 아래에 소속해서 살게 된 것을 가르쳐서 아브라함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점이 많지마는서도 참  그이에게, 아주 우리에게 큰 혜택을 끼쳐 준 믿음의 조상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이 심히 위대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네 아비 친척, 네 본토 아비 친척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당장 그곳을 떠나고 모두다 이별하고 하나님  인도를 따라서 출발을 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참 놀핼만한 위대한  일입니다. 그가 과거에 근 한 육칠십 세가 될 때까지 거기에서 다 정든 그 지방  정실 또 동족 정실 뭐 동류 정실 그런 것이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다 끊고 내가 인도하는 대로 가라 할 때에 지체하지 안하고 출발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순종의 제일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 믿지  아니하는 불신적인 그 모든 인간 인위 정실이나 지방 정실이나 또 이런 모든  사업 정실이나 그런 것, 다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고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모두다 정리해서 다 고쳐서 거게서 떠나서 이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으로 살아라 하는 그 회개로서 자기의 향방을 이 전환하라는 그 말씀을  우리가 많이 들었지마는서도 그것을 지금도 하지 못하고 그래 있는 약한 점에  있는 것이 우리 신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우리는 무슨  소유의 정실이든지 지방의 정실이든지 사업의 정실이든지 혈육 정실이든지 동류  정실이든지 무슨 정실이든지 그 정실을 이제 일단 떠나서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라 하는 이 말씀을 우리가 순종하기로 각오하고 이대로 그만 출발해야 뒬  것입니다. 이것을 수십 년 예수님 믿어도 이것을 출발 못한 사람들 너무  많숩니다. 어떤 사람은 또, 출발한 사람들은 그만 그런 것을 다 무시해 버려서,  그것을 무시하라 말 아니요. 하나님 명령과 그 둘을 비중을 달 때에 그것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크게 여기라 말이고 거게 관련된 그 모든 인연보다 하나님의 그  인도의 인연을 더 높이 평가하고 거기에 더 중점을 두라는 것이지 그 아주  무시하라는 말 아닙니다. 그만 끊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보면 참 하나님을  위해서 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시해서 끊습니다. 무시해서 끊는 그 이면에는  살펴 보면 자기중심이지 다른 것은 아닌 것이 대개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에 대해서 위대한 일을 했는데 그 순종한 그 순종의 그의  공로의 혜택을 우리들이 다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믿음의 자손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혜택을 여러 수천 년 후도 입는  그것보다도 믿음의 혜택을, 지금도 자기 믿는 그 믿음의 혜택을 백 명이 입을  수도 있고 천 명이 입을 수도 있고 만 명이 입을 수도 있고 뭐 많은 사람이 입을  수도 있고 그 혜택을 또 몇사람이 입을 수도 있고 우리도 지금은 자기가 믿음의  혜택을 입힌 그것이 자기의 자손이요 또 그가 자기의 면류관이요 영광이요 또  자기의 그 모든 나라도 되고 부요도 되는 것입니다. 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품에 들어갔다. 요 품이라는 요 안을 우리가 잘 해석을 합시다. 그가 하나님과의  어떻게 행하신 그 행함의 은덕을 행함의 그 혜택을 행함의 그 영향을 받은 것을  가르쳐서 품안에 들어갔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또 그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아주 애꼈습니다. 하나님을 아주 애꼈어요. 소돔  왕하고 서로 이야기 할 때에 그때에, 이 재물은 다 하고 사람만 내달라 이렇게  말할 때에 아브라함이 그 재물을 취해도 되는 것인데 그 소돔 왕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이 부자되고 하나님으로 인해야 되는 것인데 하나님 한 분에게 영광돌릴  것을, 하나님 한 분에게 영광돌릴 영광을 그 영광을 다른 것에게 돌리게 되는 그  마음에 아깝고 그런 일을 하지 못해서 내가 신들매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  그랬습니다. 그걸 깊이 묵상하고 생각 해 보면 아브라함이 아주 하나님을 대단히  애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조그만치라도 영향이 갈라 조그만치라도 그 욕이  돌아 갈라 흠이 돌아 갈라 조그만치라도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무엇이  가리워질라 욕이 될라, 아주 하나님을 애낀 것이 아브라함이 특이합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창세기 16장에 보면,  사라가 자기 집에 있는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줘 가지고서. 아들을  두기 위해서 첩으로 줬습니다. 줬으니 -그 사라가 그리 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그랬지 아브라함이 그란 것 아니요. 사라가 그래 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하갈이 임신되고 나서 사라가 말하기를, 아 하갈이 임신된 것을 제가  알고 난 무시하고 나를 멸시하고 이와같이 지금 천대를 하니까? 이럴 수가 어디  있겠느냐 이 일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판단하시기를 내가 바란다. 그 여호와  하나님 앞에 판단을 받아야 되겠다 이라니까? 그 아브라함이 나이 많은 사람이  사라가 준, 내나 자기 첩으로 줬으니까? 또 거게 애정도 들었지 거게 또 벌써 백  세나 되어서 아이 못 낳는데 임신이 됐지-인간은 똑 같소.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꼭 같습니다.-그렇게 애정도 들고 또 그 임신도 되고, 참 그 사이가 중요하지 그  쉬운 사이가 아니요.-여게 모두 사람들 보면 그런 것 다 모두 그런 점 있어  가지고 이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그런 걸 보면 중한 점입니다. 그럴 때에  사라가 이와같이 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지 안 옳은지 하나님 앞에 내가  판단을 받겠다 하나님이 판단하시기를 바란다 그라니까? 아브라함이 온갖 면으로  그나 우리가 꼭 같은 사람인데 그 뭐 정실이나 애정이나 또 자녀에 대해서나 그  뭐 굉장했을 것인데, 그 얼마 서로 그래 가지고서 만낸 지가 몇 달 안 됐으니까?  그나마 또 그 다음에 이중으로 거석했지 하니까? 그 애정이 뭐 독특했을 것인데  그때에 사라가 하나님을 두고 떡 말하니까? 아브라함이 꼼짝을 못 하고  말했습니다. 사라여 그는 자기 수하에 있으니까? 뭐 보내든지 두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나님앞에 뭐 그랄 것이 뭐입니까?, 하나님 말하니까? 그만  아브라함이 뻘뻘 떨면서 꼼짝을 못 했소. 오금을 못 땠어. 못 때고 그만 그리  하라고서. 그래서 사라가 그때부터 아주 하갈을 박대를 하고 멸시를 했습니다.

멸시를 하고 박대를 해서 하갈이, 얼마나 박대가 심했던지, 사라의 박대가  심했던지 그 자리서 견디지 못해서. 못 배겨내서 쫓겨났습니다. 그럴 때에 그  아브라함이 그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말했기 때문에 겁이 나  가지고 뒤에 꼼짝을 못 했습니다. 그 다른 데도 하나님 경외한 것이  있지마는서도 인간성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했는가 하는 것은  거게서 찾아 보면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두려워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주 두려워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아주 기뻐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뻐한 사람, 기뻐하는 것을  저는 어데서 찾아 봤느냐 하면은 이삭을, 백 세에 낳은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 이라니까? 번제로 드리라면 순종 안할 수 없어 순종 하지마는서도 그것이  뭘 좋은 것이라고, 그렇지마는 번제로 드리라는 소리 듣고-모리아 산에는 그때  산중이니까? 나무가 뭐 여러 수천 짐이거기 꽉 찼습니다. 나무가 꽉 찼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 듣고 집에서 거게 사용할 그 장작을 패 가지고 그  먼데까지 이제 가지고 가는 것을 봐서, 그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참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이 말 하는 것이라면 사지를 못 쓴 사람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도 그런 것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뭐 괴로울수록 좋고 어려울수록  좋고 뭐 밤중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괴로운 것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피곤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자기가 기뻐하는 자의 요구라면은 그거는 거기대해서  어떤 것이라도 기쁘고 즐겁지 짐스럽지 안하고 피곤하지를 않다 그말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에 그 소리를 듣고 집에서 벌써  장작을 패 가지고서 그 먼데까지 짊어지고 이래 가는 걸 봐서 아! 그 분이 참  하나님을 무척 사랑했구나!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그만 좋아서 못 견뎌서  하나님 명령이라면 뭐 희생도 무엇도 그것도 거석하고 하나님 명령이라면 더  쉽게 하는 것보다도 힘들게 하면 좋고 하나님 명령이라면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이 더 좋고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무척 참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기뻐했던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어찌 기쁜지 그만 기뻐서 그는 뭐 수지 계산도  없어.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사람들 한창 은혜 받은 사람들, 은혜 받은 사람들은  그 은혜 받은 은혜의 기관으로 된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자기가  받아서 참 은혜를 받아서 은혜를 끼친 하나님의 은혜의 기관의 그 사람을 무척  좋아하면 그 사람이 시키는 것은 괴롭고 까다롭고 어렵고 불편하고 손해가고  하는 것 상관없습니다. 뭐이든지 그래 막 좋아서 어떻게 하면 이 좀 더 잘할까  이렇지 다른 것이 없다 말이요. 여게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참 무척 기뻐하고  사랑했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가, 히브리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과도 약속하고 이삭과도 약속하고 야곱과도 약속하고 이래 약속을 해도  약속한 것을 평생에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나안을 준다고 말했지마는서도  가나안을 주면 가나안이 무슨 전체를 점령하고 권세를 잡아야 되는 것인데  준다고 말했지마는서도 항상 우거살이로 그저 젓방살이로 돌아다녔습니다. 남의  집에 갔다 남의 터에 이렇게 우거로 돌아다녔지 한 번도 하나님 주신다는 것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또 그가 세상을 떠날 때도 받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러니까? 죽을 때 하는 말이 아 하나님이 나한테 약속하신 것은 틀림없는데  지금 이 세상 것 안 주시는 것 보니까? 세상 것 아닌 것 진동되지 안 할 터가  있는 것 영원한 것을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라고 이와같이 하는가보다 요걸  딱 믿고 떠났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궁한 하늘나라를  그에게 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 말이요. 마귀 앞에서도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도 아브라함의 그 소망의 하늘나라를, 주고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를  하늘나라에 다 입적시키는 것을 하나님이 부끄럽지 않다 그 말이요. 예수님 한  분의 그 은택으로서 모든 택한 자들이 다 그 품안에 들어가서 그 은택 속에  들어가 사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이 신앙의 모든 행위의, 은택 품안에도 은택  속에도 이 나사로도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내가 어떻게 순종하는가 순종하는 그 은택이 내게 뿐만 아니라 내게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그 은택이 됩니다. 내가 또 하나님을 얼마나 애끼는지. 뭐 아는,  자기가 딱 눈에 대했으면 어짤 수 없지마는서도 모르면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지마는서도 그 하나님을 애끼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에게 대해  조그만치라도 뭐 좀 영향이 있을까 좀 해가 될까 뭐 걸릴까 그렇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애끼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나는, 오늘 아침에 교통지도하는데 다른 데는 몰라도 여기 저 주유소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는데, 그 보니까? 벌써 시간이 늦었어요. 시간이 늦어서  주일학교는 마칠 때가 다 되어가는데 그때 학생들이 들어오니까?, 데리고 오는  보조 반사인지 반사는 뭐 그만 기운이 빠져 그런지 느릿느릿한데 그래도  학생들은 뽈뽈 뛰어오고 이라니까? 그 교통지도하는 사람이, 벌써 차가 그때 그  횡단을 하라 하면 안 되고 차가 잠깐 끊어지니까?, 잠깐 토막이 끊어지니까? 요  사이라도 한 자국이라도 일찍 가 가지고서 참석해 들어야 되겠다 해서 그 교통  지도원이 그때 교통로를 차단하고서 빨리 가도록 막 독촉을 하고 이래 가지고  하는 그것을 내가 퍼뜩 볼 때에 아 저 교통 지도원은 그 학생들이 이것이 먼데서  와서 예배에 다문 안 되면 몇십 분이라도 참석을 해야 되겠는데 해서 그 예배에  참석을 하도록 할라고 진심으로 애를 쓰고 있다는 그것을 내가 봤어요. 봐서  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참 하나님이 보시면 네 중심을 볼 때에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요 주유소 있는데 거게서 누가 했는지  몰라도, 그냥 사무적으로 하는 것과 사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들이  은혜 받도록 할라 하는 그 중심을 가지고 하는 것과 우리 사람 눈에도 보입니다.

뉘든지 볼 수 있는 그거는 가치가 적고, 누구든지 보니까? 다 사무적으로 하는  거는 가치가 적고 그 속에 중심에서 하는 그것을 하나님도 대접으로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을 애끼는 것. 그 소돔 왕으로 더불어 말 할  때에 그 때에 참 그 하나님의 영광을 조그매라도 우리 하나님에게 뭣이  조그매라도 거리낄까 뭐이 어찌될까 그 영광이 모두 딴 데로 돌아갈까 그것이  하나님을 애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애낀 것. 애낌이 없으면 사람에게도 아무리  부부간이라 해도 아무리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해도 뭐 다른 걸로 낯짜구  사랑하는 것도 있고 뭐 다른 것 사업 사랑도 있고 하지마는 어쨌든지 사람을  애끼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애끼지 안하면 그 사랑이 다  껍데기 사랑이고 또 아내가 남편을 애끼지 안 하면 소용 없습니다. 교인들이  암만 뭘로 대접을 해도 목사를 애끼지 안하면 소용없소. 또 목사가 교인들을  정말 애끼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애끼는 마음,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애꼈지요.

 또 그는 아주 두려워했습니다. 그 사라가 말 한마디 하니까? 그만 뻘뻘 떨었소.

청교도들이 미국에서 끼친 영향이 지금도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알고 모시는 그런 것을 선조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미국 사람에게 보십시오. 이 얘기 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떻다 하면 깜짝  놀랩니다. 하나님이 너 기뻐한다 하면은 뭐 사람이 말해도 하나님이 너 기뻐한다  하면은 뭐 좋아 못 견디요. 하나님이 너 저주 한다 하면은 사생결단하고  달라듭니다. 하나님은 아주 그렇게 크게 중요하게 여겨서 하나님에게 잘 보이는  거 하나님이 기뻐한다는 거 하나님이 미워한다는 거 하나님이 저주 한다는 거  하나님이 축복한다는 거 하나님을 크게 그렇게 귀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입술로는 하나님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그 진실성이  없는 그거 스스로 자기 속는 일입니다.

 또 창세기 22장에, 그 모리아 산에 가 가지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는데 그  장작을 뭐 할라고 그 꽉 찼는데, 그 소리 들으니까? 어떻게 하면 주님이  이와같이 한것 지금 잘 해 드릴꼬 싶어서 그 소리를 들으니까? 잠이 근심이  되어서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잠이 안 온다 말이요. 그러니까? 나무를 쪼갰어. 지금도 주님을 의무적으로  사무적으로 종으로, 주님의 종으로 주를 섬기는 사람 있고 주님의 백성으로  섬기는 사람 있고 또 주님의 지체로 섬기는 사람 있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섬기는  사람 있고 종류가 각각 다릅니다. 이 다음에 가면 전부 그 종류대로  하늘나라에서 보상과 대우는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된 대로  자기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구별있게 옵니다. 죽을 때도 믿고 죽은 것 보면  하나님을 믿어요. 그저 말하다가 그것이 아니니까? 하나님은 왜 이런가 의심하지  않고 아! 지금 안 주시는 거 보니까? 더 좋은 것으로 주실라고 하는데 항상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잘못 믿은 것 삐뚤어지게 믿은 것 가깝게 믿은 것  좁게 믿은 것 그것을, 자기 믿은 것을 고쳤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한 것은  털끝만치도 고치지 안해. 그건 변동없다 절대 불변으로 딱 믿는 그런 믿음을  아브라함이 가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믿음을 가진 그 믿음의 혜택  아래에 나사로는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땅 위에서 물질의  혜택을 입히는 것도 좋고 또 다른 봉사의 혜택을 입히는 것도 좋고 권세의  혜택을 입히는 것도 좋지마는서도 어쨌든지 우리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모든 진리대로의 행하는 행위 그 행위의 혜택을 자기만 입을 뿐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자들에게 입히는 것 그 혜택이 얼마나 입혀지는가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한 고을을 차지했다 두 고을을 차지했다 열 고을을 차지했다 또 그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은혜 생활, 말로 하고 행동으로 보이고  뭘로든지 해서 자기로 인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택이 그이에게 얼마나 가서  있느냐 그 어느 정도의 그 범위는 얼마나 가 있으며 깊이는 얼마나 가 있으며 그  고상하게 높이는 얼마나 가 있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가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요 또 자기의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요 자기의 영광과 존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꼭 정확해. 이거는 뭐 조그만치도 비뚤어짐이 없어.

그는 참으로 평가할 만하고 기념할 만하고 칭찬할 만하고 흠이 없는 이  전능입니다. 흠이 없는 전능이요 흠이 없는 건설이니까? 우리는 나사로를 배워야  되겠고 어데까지 있어도, 주를 위해서 잘 먹고 잘 입어도 예수 근근히 믿는데  주를 위해, 뭐 주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전적 고생하는 가운데서도 주를 믿는 그  사람이 더 가치있는 일 아닙니까?  이러니까?, 주님의 이 자연 은총이나 모든 은총이 풍성한 데서 믿는 것도  좋지마는 없는 데에서도 믿을 수 있는 그런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고 없는  가운데에서 믿는 사람들이 나사로같은 사람을 봐서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풍성했는데 이 가운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주를 섬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주님  앞에서 부끄럽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걸 생각해서 우리가 고쳐서 어짜든지 나사로의 신앙을 배워야  되겠고, 아브라함의 그 '품에 안겼다' 우리도 우리에게 속한 수많은 사람이 내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이 그래도 내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솔로몬아  너거 아버지 다윗을 인해서 네 당대에는 그 왕위를 잘 가지도록 해 주겠다.

아버지의 혜택, 아브라함의, 너거 조상 아브라함과 이 사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대로 너거 조상의 그 은택을 너거들에게  입히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이런 일을 건설하는 것이 지금이기 때문에,  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입니까? 이는 참, 땅을 점령하는 거 뭐 국경을 점령하는거  세계를 점령하는 그 너무, 그건 좋기는 좋지마는 너무 가치가 없습니다. 너무  가치가 없고 너무 외식적이고 너무 껍데기고 너무 무가치요. 너무 꼭 바람 앞에  등불같이 퍼뜩 지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로 말미암은 이 혜택을  입혀서 이 혜택이 널리 퍼지는 이것은 이는 영원히 가도 없어지지 안하고 얼마나  참된 것입니까? 그런고로 오후에는 나사로의 신앙을 배우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배워서 우리들도 우리의 이 모든 신앙 행위의 그 은택 그 나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다 깃들일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뭐 세상 것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불만 불평을 품던 그런 죄는 이  나사로 앞에서 다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나사로같이 되어도 그저 주로  만족하고 주께 감사하고 주께 굴복하고 주께 소망을 두고 주님이 임하셔서  맞이해 주는 그날까지를 기다리는 이런 신앙을 우리가 가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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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19절-31절/ 1984. 1. 1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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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22절-23절/ 1984. 1. 16.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37 화있는 사람/ 유다서 1장 11절-13절/ 1986. 7. 18.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