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함과 거룩함을(마9:1-8)

 

1988. 5. 6. 새벽집회

 

본문 : 히 12 : 14-17, 마9 : 1-8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금번 집회는 중심은 같지마는 조금 그전 집회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으나 저로서는 준비할 때에, 준비는 뭐 기도한 것  뿐이었습니다. 기도할 때에 다른 집회라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총공회 진영이 총공회 안에 있는 모든 교역자들에게도 다 훼방을 받고,  훼방이라 말은 그거 안 됐다 헐고 삣는 것을 가리켜서 훼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역자들에게도 이 진영이 훼방을 받고,  노골적으로 저거끼리 앉으면 수근거려서 훼방을 받고, 거기에 따른 교인들도  한국에서는 제일 쓰지 못할 이 노선이 총공휘 노선이라고 그렇게 교역자들에게  배우고 또 다른 진영 사람들에게 듣고 해서 그렇게 허무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증거하고 또 신앙 동지의 사람들이 같이 증거한다  하지라도 이 총공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판거리와 의문거리가 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아니라고 증거를 많이 하고 없이 해라고 기도하고 말로는 그렇게 한 적이  별로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고 믿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이것이 만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이를 훼방하는 자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요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질 것이요 또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라면 이 역사를 혐조하고 믿고 따르면 하나님을 믿고 딿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제도 어떤 사람이 ‘그러면 목사님의 깨달음은 완전이라고  봅니까?’ 하는 말 들었는데 과연 옳은 말입니다. 완전이 아닙니다. 저도 그저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깨닫고 믿어지게 하는 대로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러나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이렇게 들어 댈  때에는 저도 거기에는 약점이 생겨집니다.

 의심을 해서 약점이 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럴 때는 나를 증인으로 세웠는데.

내가 암만 증거해 봤자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를 안하고 세상은 다 저 옳다고  제가 정통이라고 제가 인도하고 가는 길이 제일 바르다고 하는 것이 오늘은  세계에 각 교파, 각 진영들의 주장들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는 그도  내가 같이 하지마는 이도 같이 하신다는 그런 증거를 당신이 뭐 표적으로 보여  줘야 되지 내 좁은 입, 간판 없는 무식한 사람, 내가 무슨 참 계통 있는 무슨  높은 학문을 공부하지도 안했고 또 세계에 있는 모든 지식의 그 광대한 지식을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늘 말하기를 여러분들에게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까지 밖에는, 오학년도 다 끝마치지 못한 사람이라 언제든지 나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 앞에 증거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명예나 간판이나 학위나 그런 것들을 가치로 삼는 사람들이 내게는  그런 가치가 하나도 없으니 내가 암만 말해 봤자 인정해 줄이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당신이 인정하시는 표적을 보여 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증거하는  이 내용을 인정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 총공회에 내용은 이 진영을  진영 안에 있으면서도 돌아앉으면 쑥덕거려서 훼방하는 사람들이 삼분지 일쯤  되고 그저 멈춤하게 말하지 안하고 뭐인가 보자 이렇게 구경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 진영이 생명으로 걸어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영이니 이  진영을 보수해야 되고 증거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몇  사람이 안 됩니다.

 일면으로는 보수하면서 증거를 하면서 또 마귀 시험이 들어와 가지고서 그  속에서는 제가 왕이 되고 싶어서 거기에서 그 공작으로 내가 증거하는 교훈이나  지도하는 행정을 훼방하는 그런 것으로써 저거 끼리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이용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이용하고 제 앞에 앞잡이로 이 사람을 내세우고  저 사람을 내새워서 나가고 있는 것이 오늘 총공회 진영입니다.

 그래서, 이번 집회에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번 집회는 저렇게 교회들이 다  갈라져 나가고 또 교역자들이 벌써 이 교훈이나 이 진영을 ‘이 길로 안 가면  내가 사는 곳을 갈 수가 없다’ 생명으로 찾아가는 길이라고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숫자가 적어졌으니,  또, 거기에 가면 내 교훈과 서로 대립이 되는, 껍데기는 이 교훈하지마는  속으로는, 옳은 거야 좋지마는 틀려도 제것을 나타내서 자랑할라고, 분명히 죽은  것이지마는 죽은 것을 자랑할라고 하는 전부이 악이 그 속에 가득 찼습니다.

 악은 자기 중심 피조물 중심이 악입니다. 악의 정의도 세계에 역사 이후에 이  악의 정의가 안 나왔습니다. 광문 다학한 사람들은 자기가 알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광문 다학한 사람들은 옛사람을 악령, 악성 악습이 옛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악은 자기나 피조물 중심이 악이다 이렇게 정의 내는 것을 다  부정했습니다. 아직도 대학 이상을 졸업맡은 사람들은 부정하고 있습니다.

 또, 시골에 있을 때에는 했지마는 서울로 옮겨가고 난 다음에는 많은 학자들을  접촉하고 광문 다학한 사람들, 광문 다학이라 말은 널리 듣고 많이 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접한 사람들은 그뭐 국민학교 오학년밖에 안  했지, 말도 표준어가 뭐인지 그것도 모르지, 또 일반 공통으로 쓰고 있는 그  모든 술어나 단어들도 잘 몰라서 사투리도, 사투리도 다 몰라서 자기가 아는  대로 창작한 자기 단독 쓰는 말, 이런 말로 가르치니까 그거 뭐 참 볼 것 없는데  거기에서 해방을 잘 당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 어떤 사람이 이렇게 ‘목사님의 앞에서는 순종하는 듯 하지마는 속으로는  반발하고 부글부글 괴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하는 말 하는 사람을 내가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 내가 그 답에 ‘나도 알고 잇다’ 내가 모르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둔해도 하나님이 알려 주시기 때문에 정확하게 거의 아는 것도 많습니다.

 이래서, 이번 집회에는 서부교인들이 여기에 많이 와 있는데 이번 집회에 모두  많이 가도록 참여하도록 하라 하는 그 권면을 과거 어느 집회보다 사분지 일도  말 안 했습니다. 내가 마지막에 차가 두 대가 비었다 하기 때문에 그뭐 이번에는  많이 안 가나? 가도록 좀 행정실에있는, 제 밑에 있는 비서에게 그말 한  것뿐입니다. 그라고 약간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번에는 모두 다 이렇게 저렇게 다 마음들이  흐려졌기 때문에 뭐 천막 자리도 전부 다 비어 있을 것이고 또 집회 장소도 통퉁  비어 있을 터이니까 아무 때 가도 자리 좁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하는  것을 다 모두 말들 하고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저는 제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어떤고 보자’  그래서 제가 O목사님이 거기에 자기가 편지한 것을 내가 봤는데 거기에 총공회가  변질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탈퇴한 것은 다행 중에 다행이라 이렇게 말을 한 그  편지를 보고 나는 속으로 감사하고 고통을 느꼈습니다.

 총공회가 변질된 것이 무엇인가? 이분이 보았으니까 그분에게 물어 가지고서  그걸 알아서 고쳤으면 좋겠다 이 간절한 소원이지마는 통화가 안 됩니다 전화를  해도 통화가 안 돼서 못 하고 그래 내가 교회서 대예배 때인가 언제 광고를  했습니다.

 ‘이렇게 O목사님이 총공회가 변질됐다고 이렇게 하는데 이 변질되면 죽는  것이고 썩는 것인데 이 변질됐다고 하니 우리 변질된 것이 무엇인가?’ 그라면서  제가 말하기를 ‘나는 이 편지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과연 내가 변질되어  있는 것을 발견을 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사랑이 없는 이것이 아마  변질 같습니다. 그전보다 내가 사랑이 식어져 가지 않는가?’  이라면서, 에베소 교회에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모든 것 다 구비  하지마는 그것에 다가 주력을 하다 보니까 그리스도의 이 대 속의 지극히 큰 이  생명인 이 사랑을 에베소 교회가 잊어 버려서 촛대를 옮기겠다 한 그대로 내가  생각해 볼 때 나는 전투의 사람이라 공의 정의 성결 이것을 위주로 해서 나는  싸움하는 전투하는 투사지 나는 사랑의 사람이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에베소  교회에 대한 그 설교를 대예배 때에 아마 몇 시간 여러 차례 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래 이번에 이 집회에 하나님이 그래도 또 붙드시고 내가 변치 않고  이 진영을 붙들고 일한다 하는 것을 그것으로 다는 아니지마는 조그만한  흔적으로서라도 저는 기다렸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본 교회에서 ‘이 집회에 가서 참석하도록 하라. 위해서  기도하라.’ 이 말을 과거 집회 때의 아마 사분지 일도 안 했을 것입니다. 여기  서부교인들이 다 알 겁니다.

 이랬는데, 제가 보고 있는 대로는 이 대구에 집회가 생긴 이후에 이번이 사람이  제일 많이 모였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학생들 수백 명 왔다 간 그 학생들 말고  학생들 오기 전에 모인 것이 제일 많이 모였다 하는 것을 제가 보고 마음에 조금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모이기는 모였지마는 이 모인 것이야 이 몇백 배도 모일 수가 있는데  나로서는 짐작하는 것 뿐이지, 그러나 이 모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실효적으로는 사람병을 고쳐 주셔야 하겠고 또 고기덩어리병을 고쳐 주시는  이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합께 하시는 그 표적, 표적을 보여 주셔야 되겠고,  또, 내적으로서는 제가 증거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내가 증거하는게 아니고  당신이 나를 통해서 성구도 당신이 택했고 증거도 당신이 나를 기계같이 쓰든지  나팔같이 쓰든지 당신의 지체로 쓰시든지 어쨌든지 당신은 나를 쓰셔서  말씀하도록 오기 전부터도 평소부터도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는 나를 부인하는  것과 내가 거기에 털끝만치라도 찰나의 시간이라도 내가 주장해서 증거하는 내가  능동이 돼서 내가 근원이 근거가 돼 가지고 하는 그런 일을 안 할라고 일생 동안  싸워 나오는데 특별히 이번에는 더 그 면에 대해서 하나님과 싸웠습니다.

 꼭 내가 하먼 안 되겠습니다 했는데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이 나에게 성구도  택해 주셨고 증거할 때도 당신이 날 붙들고 증거하신 것인 것을 제가 이제까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오늘 남은 시간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것은 이번에 자기가 이 집회를 참석하기 이전보다  이후에 사람병 고친 것이 하나든지 둘이든지 자기에게 내가 집회 참석하기  이전과 후와 내가 볼 때에 분명히, 다른 사람이야 보든지 말든지 내가 나를  아는데 나는 분명히 사람병이 이 점은 고쳐졌다 저 점은 고쳐졌다, 하나  고쳐졌다 둘 고쳐졌다 전폭적으로 고쳐졌다 하는것을 본인들이 알 터이니까  이것을 다 기록해서 내 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육체의 병도 자기가 분명히  이는 이번 집회 때에 주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깨닫고 믿을 때에 주님이 오셔서  나를 고쳐 주셨다 하는것이 순전히 자기로서 확실히 믿어질 때에는 그것도 크고  작은 병을 내비두고 다 기록해 내 주십시오 그렇게 말했는데 그것도 처음부터  말하지 안하고 어제부터 그 말을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낫고도 거기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람병 고치고도 자기는 나는 과거에는 이렇던 사람인데 이런 생각,  각오, 소원, 깨달음, 평가하는 것, ‘과거에는 나는 이게 좋은 줄 알았는데 이게  옳다’ 자기의 비판이나 평가가 지식이 달라진 것 이런 것에서 분명히 주님의  은혜로 달라진 것인 것을, 고쳐진 것인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기록해 내라  그렇게 제가 말을 한 것을, 비방을 하기를 또 그렇게 비방을 합니다.

 ‘백영회 목사는 자기 집회 때에 병이 많이 낫고 한 것이 자기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에 자기 영광이 커지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이렇게 지금 하고 있다.’  조롱을 하고 이 말을 할 때에 입이 비쭉거리고 치금 속으로도 구역질이 나는  그런 사람도 이 자리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없는 게 아닙니다.

 다 그렇다가 고침받아 가지고 나왔지 나도 예수 믿는 사람들 증거할 때에  만나면 예수 믿는 사람을 공박해서 만나 가지고서 울지 안한 사람 별로  없었습니다. 너무 촉분을 질러서 울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렇게 반발했는데 내 깊은 속에는 반발해도 쾌함이 없고  반발하는 그것을 완전히 불에 태워서 마구 예수교를 없애 버리면 싶지마는  그말하고 나면 내 속에 예수교가 더 긍정 되어지고 이걸 없앨 수 없다, 견고하다  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중생은 열 세 살 먹어서  학교 가다가 고운서 목사님의전도에서 내가 증생된 게 분명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부름 받아서 예수믿기로 작정한 것은 내가 스물 다섯 살 먹었을 때에  작정한 것이 그것이 분명합니다.

 이래서, 오늘 이 마태복음 9장에 있는 말씀을 낭독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갔을 때에 거기에 중풍병 환자가 있었는데 그 환자가 평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사람들이 그를 메고, 평상에다 태워가지고 메고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메고 온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저희  믿음을 보시고’ 하는 것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고 메고 온 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환자를 낫게 해줬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시간 없으니까, 자기에게 믿음이 없어도 그를 낫게  할라고 하는 협조하는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낫아 주실 수  있다는 이 계약을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하고 뚜렷한 믿음이 없어도 이리 저리  권고 받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해서 온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신앙의 재료가 된다, 신앙의 밑천이 된다 하는 것을 증거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마귀란 놈이 이 믿음을 없애서 의심으로 혹은  낙망으로 그렇게 바꿀까 해서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대뜸 만나던 길로 그 믿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려고 메여 오는  그 환자에게 ‘소자야 안심을 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람병 고치는 이 큰 은혜라든지 자기 육체의 어떤 그 큰  성이나 작은 병이나 성을 고쳐 주시는 은총이나 이런 것보다 앞서서 죄 문제가  먼저 거론된다 하는 것을 증거합니다.

 자기가 큰 죄나 작은 죄나 조그만치라도 ‘나는 이런 죄를 지었던 죄인데 이거  하나님 앞에 자복합니다’ 죄에 대해서 사유함을 받는 그 역사가 있은 지  후에’, 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난다 하는 것을 증거할려고 하는  것이고,  또, 그라니까 성경 잘 아는 서기관들이 속으로 비웃기를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느냐? 아주 참람된 사람이다.’ 참람되다  말은 못됐다라는 말보다 좀 다릅니다 . 가증스럽다 말보다도. 좀 다릅니다. 이는  자기를 지극히 과대 평가해 가지고서 자기를 높여서 하는 그런 가증을 가리켜서  참람되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고 어떻게 해서 너희들의 마음에 이런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말씀했습니다.

 악한 생각 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 줘서 악의 정의를 가르쳐  주셨는대, 나는 원어도 뭐 여러 가지 방언도 모릅니다. 외국어를 모릅니다.

안다면 일본말 조그매 알고 딴거는 몰라요.

 이런데, ‘너희들이 이런 악한 생각을 하느냐’ 나는 그 해석을 악한 생각은  ‘왜 너희들이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지 않느냐? 너거  인간으로서는 그렇지마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대속주로 보냈으니까 창조주  그분에게는 튼튼해서 피조물 그까짓 게 우주와 영계 것이 다 달라들어도 이 일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침노하지 못할 이 하나님의 중심으로 시발된 이 구원이건마는  너희들이 너희 인간들 중심으로 칼하고 있느냐?’ 그말입니다.

 성경에 가다가는 그렇지마는 악이라는 것을 이것을 이 정의를 가리지 안하면  성경 해석이 바로 되지를 안합니다.

 예수님이 ‘보라, 그러면 너희들이 죄 사함받고서 하는 말을 참람되다고 이렇게  수근거리는데 죄를 사했다 하는 이 말과 이 반산 불수환자가 일어서서 걸어가라  하는 말과 둘 중에 어느 것이 어렵겠느냐?’저거 거 짓말쟁이들이니까 말로야 뭘  못해? 말로 떡을 하면 하루 아침에 천하 사람이 먹고도 남도록 할 수 있다 하는  게 인간의 말인데 말 그 까짓거야 누가, 못 해?  이것은 ‘그러면 죄를 사함 받았다 하는 말과 반신 불수가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는 말과 둘 중에 어느 것이 어렵겠느냐?’ 저거 보기에는 그거야 반신 불수가  있어나 걸어가는.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이 환하게 보이기 때문에 거짓 것과 참  것이 나타나니까 그게 어렵지. 저들의 대답이 여기에 나타나지는 안했지마는  의혜히 그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들에게 알게  하겠다’ 하시고 반신 불수 환자에게 ‘네가 일어나서 네가 앉았던 그 묵직한  평상 그것을 네가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이라시니까 앉은뱅이 그 반신  불수가 나아서 평상을 들고 돌아갔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여기에 보니까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무리가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보고,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그들이 보도록 보여  줬기 때문에 그들이 믿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지자로 그들이 인정을 했습니다.

 이래서, 제가 두 가지 병 나은 것을 기록해 내라 하는 것은 여러분들도 나도  하나님이 이 자리에서 당신이 사람을 붙들고 친히 말씀해 주신이 사실을  여러분들로 하여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오.

 또, 이것을 기록해 내고, 다른 성경에 보면 네가 들아가서 제사장에게 문둥병  나은 것을 보이고 너 보는 사람마다 ‘나는 과거에 문둥이 아무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나았습니다.’ 하는 것을 너거 모두 다 병신으로 있을 때의 너희 낫고 난  오늘의 너를 보여서 예수님이 어떻게 한 역사를 하셨다는 것을 증거해서 많은  사람들이 옳은 길로 돌아 오도록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지 백 목사 집회에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으니 백 목사 위대하다 하는 그런 생각은 만일 꿈에라도 생각에라도 한  번이라도 가졌으면 그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자멸하는 행동은  저는 하지를 않습니다.

 또 그러고,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서 목회자라고 하면은, 목회자는 어떤 것이  목회자냐 하면 사람을 생명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세상은 신불신자  간에 말세를 닥쳤다, 전부 멸망할 것들이다, 어느 길로 가야 되겠느냐 다  방황하고,  배가 고픈 사람은 우선 배가 고프니까 배고픈 것이 급하니 다른 생각 가지지  못하지마는 그래도 굶어 죽지 안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뭐 엔간하면 다 ‘이거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늘나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내가-복은 다 압니다-어떻게 해야 내가 복을 받고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겠느냐?’ 이래서 누구의 발을 듣고 어데로 가야 되겠느냐 해서  요사이는 모인다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이번에 뭐 국회의원에도 그 국회의원에 자기네들이 그 연설할라고 할 때에 모인  사람들이 뭐 오십만 명 뭐 몇십만 몇 그렇게 다 말합디다. 그것도 다  조그만치라도 자기들에게 어느 길을 따라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사람들이  궁금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길이 많습니다. 뭐 사람마다 각각 말하기를 이 길이 좋다 날  따라 오라. 잘나고 못나고 하는 사람들 전부 그 입에서 공동 고백은 ‘안 된  것은 네가 내 말 안 들어서 안 됐다. 내 말을 들으라.’ 하는 것이 세계 모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각각 옳은 말이라고 하고 옳은 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득 찼으니 참으로 사람들은 번민합니다. 누구 말을 들을까 해서 이 말도 듣고  저 말도 듣고 좀 듣다가서 나중에 보니까 아이구 이가나 저거나 다 같다,  이러니까 오늘은 종교 종일이다 뭐 종교는 꼭 같은 것들이다, 사상도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서 뭐 취하고버릴 것도 없다, 다 같다. 이러니까 그저 그날  그날 마구잡이로 사는게 그날 그날 하루의 평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이것이 제일  슬기로운 일이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낙망한 사람, 찾고 분주한 사람, 찾았다갓 헛일했다고  후회하는 사람, 이 사람들이 가득 찬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데, 그 인도하는 지도자, 인도하는 목사가, 교역자가 제가 나서 가지고서  인도하면서 모두 다 제 길 좋다고, 제 말 좋다고, 제 말 들으라고, 제, 길  좋으니까 날 따라오라고 다 이렇게 해도 사람들이 머뭇거리고 잘 안 따라가는데  제가 가면서 ‘이 길은 틀렸다, 내가 가는 이 길은 틀렸다. 저 건너 저 길이  옳다. 이 길은 틀렸다.’ 하는 그.미친자에게 어떤 자가 따라 가겠습니까?  알겠소?  저는 총공회 노선에서 이 노선 길을 걸어가면서, 여기에 속해 있으면서 이  총공회 노선은 틀렸다고 훼방하고 비방하고 자기가 생각하기는 무슨 진영 무슨  진영이 좋다고 이렇게 말을 하는 목회자는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누구든지 그 자는 제가 가는 그 노선에서는 실패자지 성공은 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 총공회 노선이 옳고 다른 노선이 틀렸다는 말 아니오. 자기가 속한  사람이라면 자기 노선을 비방하고 훼방하고 하면 좋아하는 자랑할 수 있는 그  노선으로 빨리 옮겨서야 되지 빨리 옮겨서 가지고서 ‘내가 과거에는 그 노선에  갔었는데 그게 틀렸고 이 노선이 좋다’ 이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고 슬기 있는  사람입니다.

 ‘O목사님은 그 노선은 변질이 됐다, 이 노선이 좋다’ 하는 사람은  명랑한 사람이요 슬기로운 사람이요 그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사람이 ‘그래요? 그 노선보다 이 노선이 좋습니까?’ ‘하, 좋다,’ 이렇게  강하게 주장하면 그 노선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안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시장에 장사하는 사람이 제가 같은 종류의 상품이 꽉 찼는데, 같은 종류의  상품이 꽉 찼는데 가지고 있으면서 ‘여보시오. 저게도 있고 저게도 있고 저게도  있고 모두 다 물건 팔고 있는데 내가 파는 물건이 제일 나쁩니다.’ 이게 뭐  이렇고 저렇고 나쁘다고서 참 나쁘기도 했겠지마는 ‘이런 저런 점이 나쁩니다’  그렇게 선전하고 광고하면서 그 물건 팔라고 앉았으면 그 물건은 팔릴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 물건을 놓고 저 물건이 좋습니다. 그걸 떼 가지고서 내가 과거에  팔던 그거는 틀렸고 이게 좋다 해야 자기가 장사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처럼 무지한 자들이 어데 있습니까? 이렇게 무지한 자들이 어데 있소?  이러기 때문에, 단언합니다. 총공회에 속해서 총공회를 비방하는 자는 결단코  그, 교회가 부홍은 안 됩니다. 한 달 되면 그만치 양적으로 쇠해질 것이고 또 한  달 되면 질적으로 쇠해져서 마지막에는 믿음 없는 교회 사람도 없는 교회 그런  교회 절단 나는 그 목사가 될 것입니다. 이게 틀립니까? 이게 틀려요? 나는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다 상식으로 알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됩니다.

 아예 그러기에 우리가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걸음을 걷는 사람들이니까, 기회는  두 번 있는 것 아닙니다. 오늘 지나갔으면 다시 못 만납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이리 저리 따져보고 이 노선이 평가적으로 제일 낫다 하면  여기에 있고 평가적으로 어느 노선이 제일 좋다 하면 빨리 그리 재빨리 옮겨가야  랍니다.

 또, 모든 노선 다 틀렸고 내가 가는 노선이 제일 바르다 하면 어서 그 노선에  창작자로 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안 속이는 사람이요 남을 안  속이는 사람입니다.

 ‘뭐, 이제 친척들이 이래 있으니, 또 모든 형편이 이래 돼 가지고 있으니 아닌  줄 알지마는 여기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고, 이것은 영원 무궁을 좌우하는 원인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러한 중대한  문제인데 무슨 조건에 붙들려서 그 조건에 얽매일 것입니까? 무슨 정에 붙들려서  거기에 얽매일 것입니까? 아예 주저하지 마십시오.

 주저하지 마시고, 결단코 저는 여기에 있다고 좋아하고 나간다고 싫어하는 사람  아닙니다. 내가 우리 진영에 있는 지금 교역자들은 통으로 기도하지 누구 누구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이 없습니다.

 이래도, 여기에서 나간 사람들은 대개는 하루 한번도 안 빠지고 나는 그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돌아오라고 기도 그런 기도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그분에게 피의 은혜와 성령의 진리의 은혜로 충만해서 새사람으로  강건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옛사람이 그를 침노하지 못하도록  붙들어서 주님에게 영광 돌리는 생활을 잘하도록 해 주옵소서 이 기도합니다.

 왜? 주님이 명령하시기를 네가 너와 대립된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저주를  빌지 말고 복을 빌어야 주님이 기뻐하신다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한다는  것보다도 주님이 그렇게 명문해 놨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와 제일 먼 사람을 들먹여서 기도하는  것이 제일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신에 있을 때에 가장 많은 충돌과 대립이 되어 있던 그런  사람들을 많이 기도해서 지금은 다 통합니다. 그분들도 나를 좋아하고 저도  그분들을 좋아하고 이미 노선은 달리 돼 있지마는 사랑하는 것이나 위하는  것이나 서로 행복된 이 최복을 마련해 나가는데 대해서는 꼭 같이 생각하고 아무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저, 하나님이 꼭 같은 것으로 하지 안했고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습니다. 눈은 눈노릇 해야 되겠고 코는 코노릇 해야 되겠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 은혜도 꼭 같은 게 아니고 이 사람은 이런면의 은혜를 특수하게 주셨고  저 사람은 저런 면의 은혜를 특수하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뭣에  어떻게 쓰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의사와 같은 것이라고 전부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온 몸에 수많은 세포가 들어 있는데 그 세포마다 그 사람 본체의 형상을 다  구비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세포입니다. 이것은 오늘 의학이 발견하지 안한 것을  제가 말하는데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 모르지마는 나는 깨닫는 대로는  그렇습니다.

 세포 하나라면 그것도 코도 있고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입도 있고 팔도 있고  다리도 있고 꼭 사람 하나의 이제 그 구비한 분자로 되어있는 것이 세포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오늘 이십 세기의 의학과 배치가 됐고 일치가  되지 안할 것입니다마는 나는 깨닫기를 그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나도 온 전신에 세포 하나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중에  거기에 없어서는 안 될 한 세포 중에 하나다, 한 분자 중에 하나다, 거기에 한  지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고 결단코. 그것을 틀렸다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런 조부라운 견해와 세계에서 살지 않습니다.

 못나도 나는 전체면을 보고 전체를 상대해서 살고 전체의 이 단일교회에 거기에  한 분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일치가 돼서 전체는 나의 해택을 입고 전체의  혜택은 내가 입고 이런 상호 관계를 가진 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조부랍게  생각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각각 다르니 자기는 코노릇하라  했는지 눈노릇 하라 했는지 알게 뭐입니까?  이러니까, 예를 들어서 나는 귀노릇 하는데 다른 사람은 손노릇 하면 그 사람과  나와 정반대로 다르지, 다르지마는 내 시야가 좁고 견해가 좀고 해서 그렇지 다  귀 없으면 손도 탈 손 없으면 귀도 탈이지 다를 게 없습니다. 그게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래서 OO교파에 사람들이 그전에 말하기를 나를 쫓아 낼 터에 ‘저 백영회  조사는 OO교파의 눈인데 이제 눈 빼버린다’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말한 사람  많은데 나는 그것인지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뭐인가 이렇게 좀 보고  깨닫는 시각하는 점은 하나님이 더 특수하게 주셨다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이렇게 과거로 벌써 현재가 돼 가지고 이렇게 미래가 현재가 돼서 과거가 됐기  때문에 증거를 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우리 진영에서 그런 생각 가진 분들은 ‘이라면  목사님이 섭섭해 그럴 거라’ 그런 생각 가지지 마시고 또 그저 빠른 시간에  자기 구원 절단내면 그 사람 구원 절단나면 누구 구원 절단나는 것입니까? 바로  그것이 내 구원 절단나는 것이오. 그 사람구원이 잘 됐으면 내 구원 잘 된  것이오.

 왜? 모든 그리스도 안에 진리와 영감과 피로 된 것이라면 억만 인이 된  것이라도 그거 다 내것입니다. 내게 필요하고 내게 효력을 주고 있소. 이러기  때문에, 내가 만일 진리와 피와 영감으로 바로 된 것이라면 내가 비록 적지마는  피와 진리와 영감으로 돤 전체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존재의 혜택을  입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머뭇거리지 마시고 빨리 정해 가지고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노선 문제를 확정지우지 안하고는 자기의가는 길은  항상 방해이요 절대 없습니다. 확정 짓고, 짓고 난 다음에 또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다져서 비로소 좁은 길로 가 가지고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 또 착한 양심이라야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이런데 그런 것이 양심 근방에 가지도 안했는데 무슨 하나님을  찾아가며 만날 것입니까?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자기가 그 교회에 부임해  가지고 ‘내가 가는 거는, 내가 걸어가는 걸, 내가 가라고 하는 길, 나를  따라오라 하는 길, 내가 걸어가고 있는길, 내가 이 길로 가거라 하는 이 길, 이  길은 틀린 길이야. 이 길은 안심 못 하는 길이라. 이 길보다는 저 길이 좋아.’  그러면, 그러니까 그 교회가 절대 부흥되지 않습니다.

 왜 네가 학문도 많고 구변도 많고 지식도 많고 열심도 많고 모든 면이 많고 다  이 면도 저 면도 다 좋은데 왜 네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자꾸 침체되고  떨어지느냐? 교인 수가 왜 줄어지느냐? 왜 교인들의 믿음이 열심이 없느냐?  아무리 무지한 자라도 깨달아서 이래 간단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래 그런  분은 좋은 곳으로 어서 옮겨서야 됩니다.

 이번에도 어제 말 들어 보니까 나은 사람이 서부교회서 제일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겁니다. 내나. 서부교회는 ‘하, 다른 사람은 그래도 그거 다 모든  진영 좋지마는 진영 중에는 우리 총공회 진영이 제일 좋다.’ 이라기 때문에 그  진영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또 살아나가는 데 대해서 죽자 살자 하고 그대로  될라고 하니까 다 같이 와 앉았지마는 다 같은 말씀을 듣지마는 자기에게는  믿어지는 양이 크다 그 말입니다.

 여기에 와서 앉았어도 이 말씀을 증거할 때에, 내가 이거는 조부라운 마음으로  추측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참고만 하십시오. 내가 증거할때에 저라다가 무슨  다른 데서 이단이라고- 정죄를 딱 받을 무슨 대실수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은 차마 못 하지요, 하나님 앞에서 말은 못 하지마는, 자기 집에 불이 탔는데  다른 집에 불이 붙어 탄다 하니까 안 됐다 하지마는 실은 속으로 저거 집 하나만  불탄 것보다는 여러 집이 불타는 것이 속이 시원하다 하는 그런 마음과 같은  그런 심보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무슨 실수해서 정죄받을 만한 그런 게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가서 그게 나오면 ‘됐다’ 또 증거하는 데 ‘여기에  오기는 왔지마는 증거하는데 가 가지고는 어떻게 뒤비트릴까? 이걸 뒤비트릴라  해도 뒤비트릴 것이 없다.’ 이라다가 비슷하게 뒤트뜨릴 수 있는 그런 하나 딱  만나면 ‘됐다’ 딱 거머쥐고 요것 가지고돌아가서 교인들에게 휘딱 뒤비트리면  거기에 집회 가서 참석한 것 그거보다 이게 좋다 해서 여기에 와서 집회를 며칠  동안 참석한 것을 완전히 싹 까뭉케서 백지를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신앙을 망치는 자는 먼 자가 아니고  가까운자입니다. 가까운 자가 신앙을 망칩니다. ‘네가 들어서 네 친척의 신앙을  다 망친다. 네가 들어서 너와 연관된 모든 교인들의 신앙을 다 망친다.’  ‘망치는 것은 네가 세상에 지위나 권세를 가진 그것이 들어서 너를 작업해  가지고서 마귀란 놈이 이용해 가지고 망치게 한다. 너는 너무 학문이 많아서  유식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들어서 망친다.’ 이것을 참고로 삼으십시오. 아무  결과 없을 말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미래, 현재, 과거를 한테 묶는 그 지혜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허사입니다. 우리가 금번에 와 가지고도 그것을 말했습니다. 미래는 보고 숭숭숭  하지마는 현재가 되면 좀 정리가 됩니다. 현재는 반드시 과거로 지나가고 마니까  과거가 되고 난 다음에는 확실히 알게 됩니다. 네가 한 말로 접촉한 사람을  죽였나 살렸나, 그의 믿음이 강해지나 흐려지나, 하늘나라의 소망이 크냐  작으냐, 하나님과 관계가 밀접해지느냐 성글어 지느냐, 보라! 과거가 됐으니까  볼 수 있지 않느냐?  이래서 미래를 두고는 사람이 올라도 현재가 되면 ‘내가 미래에 둔 것과  이것이 현재에 오고 보니까 조금 뭐이’ 달라진다. 보자. 이것이 지나가서  과거가 될 때에는 보자.’ 과거가 척 되고 보니까 ‘아이구 내가 미래에 생각한  것과 이 과거와는 이렇게 틀리구나’ 거기에서 제가 반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제가 저를 증거하는 그 자증인데 이것을 받지 못하는 자는 희망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멸망할 짐승과 같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종별적으로 우리는 자꾸 자기를 연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연구해서 연구하다 보니까 미래에 두고는  제가 옳고 하나님 말씀은 틀렸었는데 현재가 되고 나니까 조금 달라지니 자기는  부정하고 하나님 말씀은 긍정하게 됐다가 과거로지나가고 보니까 자기는 전적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자기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저 깊은 데 가서 그물 던져 고기잡으라 하니까 삐쭉거리면서, ‘이는  내가 고기잡는 식이 이래서 하는 것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하기 때문에 그 말을  따라서 합니다. 안 되는 것은 당신이 책임지십시오. 내 어부의 상식으로  지식으로써는 이거는 안 됩니다. 낮에 무슨 고기를 잡으며 또 깊은 데 가 가지고  무슨 고기를 잡습니까? 이거는 똑 당신의 말을 따라서 합니다.’ 이거 믿음이  아니오. 그걸 믿음으로 해석하면 귀에 걸어서 귀고리 되게 마구잡이로 하는  사람들이라.

 이랬는데, 미래로는 이렇게 하고 현재로는 이랬는데 떡 과거가 돼서 들어  보니까 그물이 찢어질 만치 고기가 말큰 잡혔으니까 미래로 두고 생각하던 자기,  현재에게 조롱하던 자기, 과거가 되고 난 다음에는 빠사졌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올소이다. 나를 떠나시옵소서.’ 했습니다.

 자기를 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종별적으로 더듬어 연구해야되지 자기를  연구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에 대새 무식합니다. 하나님에 무식이 제일 크고  그다음에 무식은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모르는자가 무식이 둘째로 크고  셋째로는 모든 사람들을 모르는 것이 셋째무식입니다. 그 다음이 물건 무식이오.

 이러기 때문에, 돈벌이 좋은 과학자가 될라고 하지 안하고 돈벌이 없는  천대받는 인문학을 공부해 가지고서 인간을 배우고 알라고 하는것이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저는 주장하기를 공부를 할라면 법을 하고 역사를 해라. 저거 자녀들은  전부 남자고 여자고 다 법을 하라 했습니다. 법을 하라 하는것은 인간을 알도록  하라는 것이오.

 역사를 공부하라 하는 것은 세월을 알라는 그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금인데 내일은 똥이 됩니다. 이 사람들이 시야를 좀 넓혀서 시간을 초월해서  수십 년 동안에 된 일을 나는 한 페이지 한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니까  시간을 축소시키고 공간을 축소시켜서 모든 그 활동들과 존재들을 넓게 좀  시야를 넓게 봐라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사학을 공부해라 저는 말합니다.

오늘까지 주장이 나는 그 주장이었습니다. 그것도 나는 깨달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내가 깨닫는 대로는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OOO목사님에게 배운게 많습니다. 나는 다를 때는 배운게 없는데 편지로써  총공회가 변질됐다 하는 그 말에서 나는 배운 게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마 이  사랑이나, 이러니까 암만 봐도 나는 투사지 공의와 정의와 진리 성결 이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한때는 내가 우리 교인들에게 사석에서 만나 가지고서 그말까지  한 일 있습니다. 나는 오늘까지 위주로 삼았던 공의와 정의가 밉다. 성결이  밉다. 공의와 정의와 성결 없고 서로 화평한 사람이 낫다. 차라리 까랑까랑하고  뭐 댓쪽같이 그렇게 성결한 그런 어떤 도덕의 가정보다 그저 서로 죄를 짓고  죄를 먹고 마셔도 서로 웃으면서 화평하게 이래 지내는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말을 내가 그 편지 보고 난 다음에며칠 동안 내가 갈급해서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오. ‘정말로 그러나?’ 주님이 책망라니다. ‘야,  이놈아. 네가 정말로 그러냐? 그러면 바꿀 것이냐? 바꿔 줄까?’ 할때에 나는  놀라서. 실었습니다.‘주님이여, 내가 너무도 사랑면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갈증에서 비정상의 말이지 결단코 그것이 내 중심의 소원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또 기도했습니다.

 이래서, 제가 이 말씀을 본 교회에서 설교를 장기간 동안 했기 때문에 이것을  여기에서도 또 여러분들에게 해야 되겠다 해서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아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것이,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 만나지 못한다.

 주님 만나지 못하면 주님에게 얻을 것 다 못 얻고 또 물을 것 다 못 묻고 또  배울 것 다 못 배우고 지도 받을 것 다 지도 못 받았고 고침 받을 것 다 고침 못  받고 주님 못 만나면 우리 생활은 전멸 아닙니까? 거룩함과 화평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어도 몇몇 사람들은 주를 볼 수가 있다, 특수인들은 주를  볼 수가 있다 이랬으면 하지마는 ‘아무도’ 했으니까 여기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했습니다.

 그랬는데, 여기에 우리가 이 화평에 대해서 화평 없는 사람들이 어디있느냐?  화평 없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맹수 사자 새끼라도 저거끼리는  화평이 있습니다. 화평없는 맹수가 없고 화평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이러기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이러니까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으로 화평해야 된다 이것이 어렵습디다.

 저도 화평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데 제가 내게 교인이라면 조금  생각이 더 되어지고 또 이 진영 교회라면 좀 생각이 더 돼지고 이거는 책임  이행에서 책임감에서 이럴 수 있는 것은 정상이지마는  그 외에 모든 사람으로 화평한 이것이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해서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기가 참으로 어렵겠다. 이래서 화평에는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는 이것에 나아가야 그것이 이제 정상적으로 바로돼 가는 것이 되겠다  그것을 느꼈습니다.

 또, 거기에 보니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하니까 이거는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그 사람이야 나한테 원수를 품고 있든지  말든지 나는 그 사람에게 그저 그 사람 좋도록 하면 화평될 수 있으니까, 화평은  소금을 두고 화평하라 했으니까 자기 회생하면 다 화평되지 뭐 별것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에 더불어라는 말은 더 어렵습니다. 너만 그 사람에게 화평할 게  아니라 그 사람도 너에게 화평하고자 하는 그 사람을 만들어라.

 이러니까, ‘모든’이 있으니 이 화평이 어렵고 ‘더불어’가 있으니까 또 더  어렵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을 가질라 하니까 거룩이 모순되고 거룩을  가질라 하니까 화평이 죽어지고 이래서 에베소 교회가 그렇게 모든 것이 아홉  가지가 구비했지마는 처음 사랑을 잊었기 때문에 촛대를 옮기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여기에 생명은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화평할라 하니 거룩이 안  되고 거룩할라 하니 화평이 안 되고 이 둘이 정 상극의 모순입니다. 서로 사람  좋게 할라 하니까 콩팥을 안 가려야 되겠고 콩팥을 가릴라 하니까 사람하고  자연히 금이 나고 쪼개지고 이리 되니. 이것 참 문제다.

 이래서, 고민하는 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민할 것 없이 화평하면 거룩되고  거룩하면 화평된다. 이 둘이 각각 딴 것이 아니고 단일성을 가진 단일체인데  이것을 가지라.

 그러면, 어떤 것 가지라 말인가?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좇으라’  여기에는 아마 원어 아는 사람들이 알면 좇으라는 걸 말하는 걸 해석하는 것을  저 엉터리 해석한다 할란지 모릅니다. 나는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좇으라 말은 따라가라 말입니다. 본받아라 말입니다. 배우라  말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화평과 거룩을 배우고 닮아가고 따라가고 좋아가고 그를 향하여  갈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두말 할 것 없이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우리가  그것을 영원히 바라보고 사는 그리스도의 화평과 거룩이 있습니다.

 주님의 화평과 거룩은 어떤 것인가? 사죄, 칭의, 화친입니다. 죄는 대신 형벌  받아서 없앴고 의무와 책임은 대신 행해서 그것을 완성했고 불목은 대신 그  원수의 값을 받고 화목의 제물이 되어짐으로써 되어진 예수님의 이 화목이라.

 그러면 예수님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주셨으니 우리들이 주님의  대형의 사죄와 대행의 칭의와 대화친의 생명을 주님이 건설하셨으니 이 방편을  취하면 어찌 되나? 이 방편을 취하면 바로 그것은 화평이요 그것은 거룩이라.

둘이 아니고 하나라.

 이분의 것만 따라가고 이분만 본받고 이분을 좇아가서 그 방식, 그양식, 그  방법, 그 역사, 그 행동, 그 방식의 건설하면 모순의 세계를 꿰뚫고 나가서  모순이 없는 일치된 진리의 세계에 주님이 계셨구나 하는 데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화평만 할라 하니까 마찰되는 것이 이게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라’ 하니까 우리 좋은 사람 친구끼리 저거 끼리 화평 하나가  됐는데 이 모든 사람으로 화평할라 하니까 이거 고장입니다.

 또 내가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제야 날 원수로 품고 잇든지 말든지 나는  그에게 속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저 화평할라고 애를 쓰면 되어지는데 이만하면  다가 아니라 더불어라 씻으니까 너만 그 사람에게 화평할 게 하니라 그 사람이  너에게 화평하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된다 하는 이게 뭐뭐 어떻게 어려운지 끝이  없다 말이오.

 거룩이라는 거는 구별 구별 해 가지고서 옳고 바른 것을 자꾸 이와같이  궁구하고 증거하고 밝혀 가지고서 이렇게 수많은 잡탱이가 모아 있는데 거기에서  옳은 것은 하나뿐인데 잡탱이가 다 많이 있는 데서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하는 것을 그것을 구별이라 합니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구별해 가지고 요거다 하는 그 참인 하나인 그 진실에 도달했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거룩이라  이랬으니까 거룩이라는 것은 모든 잡된 것과 깨끗한 것과 그것이한테 섞여 있을  때에 다른 것을 구별해서 제거하고 참을 잡는 그 과정까지를 합해서 말할 때에  거룩이라고 말했고, 진실이라 하는 것은 과정은 떼 내 버렸고 이미 완전으로  단일로 돼 가지고 있는 그 자체만을 들어서 말할 때에 진실이라고 이와같이 한  것인데 이거 할라 하면 저거 안 되고 이래서 고통인데,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네가 배워라, 따라가라. 누구의 것을? 대형,  대행, 대화친의, 너를 대속해서 네가 곧 그분의 화평과 거룩으로 네가 지금  살아났고 그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분이 너에게 한 그대로 하면 된다. 그  방식을 취해서 그 방법으로 하면 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해석을 밑에다가  해 놨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15절에 이제  거기에 대한 그 구체적인 이 방법론에 대해서 해석을 해 놨습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너희는 돌아보아’ 너 혼자만 살 것이 아니라 너희는  신불신자, 택불택자 모든 전 인류를 네가 돌아보라.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만물을 전부 다 돌아보라. 거기에 대해서는 네가 아무 상관 없는 게  아니고 책임 없는 게 아니고 그 전체, 인류 전체, 피조물 전체 그것들의 흥망  성쇠를 네가 책임져라 하는 것을 ‘돌아 보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망치고 나는 잘 될라 하는 것이 타락한 마귀가 준 방법입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행복을 위해서 나를 거기에다가 제물로 녹일라 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  위해서 걸어가시고 시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돌아보아’ 이럴 때에 우리 조부라운 사람은 넓어지고 사람병이 고쳐집니다.

사람병이 고쳐집니다. 모든 사람을 내가 책임졌을 때에 책임질 때에 사람병  고쳐지고 모든 피조물을 책임질 때에 사람병은 고쳐집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를 직위를 주셨는데 만물의 그 모든 행복을 내가 책임졌을  때에 나는 모든 만물의 영장이라.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에 모든 지음받은 것들을  다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는 근본 지위의 이 책임을 자기가 가질 때에 우리는  조부라움이 다 없어지고 이런 것저런 것 모든 구렁텅이 골짜기 이런 것이 다  없이 널펑하게 다 주름 잡아서 모든 것에 다 평강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 면 저 면 사람들이 수천 수만 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들이 혹  은혜 생활을 하는데 그것이 나로 말미암아 이제 은혜에 밀접하게 도달하는 데에  내가 방해되지 않나?방해된 게 없나 하여서 두려워하고 자기의 혹 하는 일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밀착되는 그 일을 혹 내가 하지 못해서 밀착되지 않는  점이 있지 않나?  내가 하지 못한 것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지 못해서 주님이 이렇게 피흘려  구속하신 이 하나님의 은혜에 밀착되는 이 일이 혹 완성되지 못하는 이런 일이  없나?  이렇게 이 광대하고 큰 것을 자기가 품었을 때에 우리 사람은 피조물이지마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넓어지고 커집니다. 그뭐  사소한 것, 네것이다 내것이다, 이거다 저거다 하는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그런 것이 있는 것은 또 하나님의 다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OOO교회 저런  일이 있는 것이지 그게 내게 돼 봤자 내것입니까 네게 돼 봤자 네것입니까?  그런 걸 초월해도 또 그 안에서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일도 되고 살리는  일도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도 되기 때문에 지키는 일도 되기  때문에, 이러니까 이리도 못 가고 저리도 못가고 양쪽에 아무데도 못 가고  성하게 이래 섰다가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는 넘어져도 자빠지지 안할 수 있는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그 길을 찾아 가지고야 비로소 가는 것이 안심하고  가는 것이 성도들인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쓴 뿌리는 뭣을 가리린 것인가? 악을 가리린 것입니다. 악령  그놈, 악성 그놈, 악성이 뭐입니까? 원죄입니다. 악습이 뭐입니까? 본뀐입니다.

자기가 평생 지은 죄를 가리켜서 악습이라, 악의 연습한 것이라, 악을 익혀  숙달한 것이라.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사랑이었고 하나님의 속성이었는데 이것이  변해서 자기 중심의 인간 본성이 됐습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천사 중에 자기  중심의 악령 그놈이 나와 가지고서 에덴 동산애서 이 감염시키고 미훅시켜서  물든 것입니다.

 이래서,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이거는 본인 괴로운 걸 말합니다. 본인  괴로운 걸 말해. 어데 본인 괴롭다 말이 어데 있노? 그밑에 말씀하시기를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 대조로써 그것으로써 본인이라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래서, 쓴 뿌리가 나서 본인을 괴롭게 하고. 인간들의 고통은 전체가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주는 고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하신 하나님을 중심하지  안하고 자기를 중심하면, 김일성씨가 이북에서는자기의 소원 성춰가  이루어지니까 거기에서는 평안을 누릴지라도 이남을 바라보면 평안이 누려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중심의 그 사람은 제 소원이 이루어질 리도 없고 저와  대적이 없을 리도 없고 저에게 평강과 생명이 있을 리는 없는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쓴 뿌리가 나서 자기를 괴롭게 하고, 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그 속에, 그놈을 죽여야 되는데 그게 나타나서 그거로 인해서  본인이 괴로워진다.

 여러분들 다른 사람 다 냅두고 자기를 우리가 더듬어 봅시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는 두말 할 것 없이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어떤 은혜  역사로 옛사람 그놈만 떠나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가지는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에는 돌변적으로 우리는 악독이 가득히 찼다가 웃음이  나오고 웃음이 나왔다가 오히려 그에 대해서 내가 책임감을 못 한 데 대해서  눈물로 끝을 마치는 것이 우리의 신앙 경험입니다.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이  자기 중심의 옛사람으로 사는 목사 하나가 있으면 우리 진영은 다 더러워집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이 장로가 하나 있으면 그 교회는 다 더러워집 니다.

차차 감염들어서 더러워집니다.

 자기 구역에 이렇게 쓴 뿌리 난 사람이 하나 있으면 처음에는 제 고통이라  그거는 보면 얼굴 보면 알아. 얼굴에 지옥이라. 제가 암만 웃어도, 웃어도  껍데기 웃는 것과 제가 조작배기로 만들어 웃는 것과 저 속에서 기쁨이 피어  나오는 거와 달라. 그 피부에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그런 사람 하나, 쓴 뿌리 난 사람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러워질까 해서 두려워하는 이것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건설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서 이것을 봐야 되겠습니다. 저만 잘 살면 좋다는 그게 벌써  지옥이오. 저만 잘 살면 좋다. ‘우리 가정만 구원 잘 이루고 잘 믿으면 좋다’  벌써 제 지옥을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제 눈이 어두워서 아직까지 조금 넓은  범위를 못 보고 있어 그렇지 그 넓은 범위에서는 자기는 지옥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무형의 감옥 속에 갇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망령되다 말은, 그는 환장했다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는 미친 사람은 미친  사람인데 이상하게 좋은 것을 인해서 미친사람이라, 정신 이상자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알 수 있는데 그런 완전히 환장된 짓을 하고 있다 하는 그런  아주 뜻의 말입니다. 무엇을? 넓은 시야가 있는데 큰 거는 모르고 작은 것 안다.

그거 망령이오. 귀한 것 모르고 천한 것만 안다. 몇천만 원짜리 수표는 모르고  십 원짜리만 안다. 그런 게 다 망령입니다.

 시간적으로 좁아졌다, 공간적으로 좁아졌다, 종별적으로 좁아졌다.

 네가 음행의 그 취미와 음행의 네 그 매력과 그것은 네가 시간적으로 좁아졌다.

네가 시간을 재 봐라. 그 기쁨이 얼마나 가며, 시간적으로 얼마나 가며 너와는  기쁘지마는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보라. 모든 사람이 다 찬양할 만 하고 칭찬할  만 하냐?  너희의 정신에는 네가 가치로 삼을 것이 꽉 찼는데, 네 신경에는 가치로 삼을  보배가 꽉 찼는데 네가 축소되고 축소돼 가지고서 신경으로는 가장 무익힌 말초  신경, 취미로서는 가장 가치 없는 춰미, 시간만 늘여뜨려 봐도 아무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는 좋았지마는 문밖에만-내다 봐도 아무것도 아니고 네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네가 한없이 네가 너를 좁게 만들어 가지고서 너를  함정에 가뒀다, 네가 갇힌줄 모르고 이와같은 행동하니 참 망령된 자다, 이것을  모든 인간들의 쾌락을 총칭해서 이 하나로 대표로 표시한 것입니다.’  인생들아, 네 쾌락을 ‘시간으로 따져봐라. 그 쾌락이 몇 시간이나  유지되겠느냐? 네 쾌락을 네가 공간적으로, 따져봐라. 너거 집에서는 좋지마는  앞 뒷 집에서는 좋아하나? 이북에서는 너희들이 좋다 하지마는 이남도 다른  나라에서도 좋다 하느냐?  이래서, 정치가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는 세계적으로 봉사하는 나라가  되겠고 세계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런 필요한 나라로 우리가 성장돼 나가야  되겠다’ 그 말 좋은 말이오. 그분들 다 지식적으로는 그래도 그게 좋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음행의 이것으로 하나 가지고서 표시한 것은 네 이런 쾌락 저런  기쁨, 온갖 쾌락과 기쁨이 있는데 그런 것을 다 공간적으로 따져보라,  시간적으로 따져보라 종별적으로 따져봐라. 너는 좋은데 다른 많은 종류들은  어찌 되느냐? 너에 대해서 무한히 많은 종류들은 거기에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러면, 네가 하는 일은 수많은 종류와 적이 되는 것이요 수많은 시간과 적이  되는 것이요 수많은 공간과 적이 되는 그것을 가치 있다고 거기에 네가  파묻혔으니 그게 망령이다 그걸 말합니다.

 에서가 한 그릇 식물을 인해서, 장자의 기업이라면 영원한 기업인데, 우주와  영계에 가득 찬 기업인데 식물 한 그릇에 장자의 기업을 판거와 같이 인간들이  영광적으로 한없는 영광, 한없는 권위, 한없는 부오, 부요로도 말할 수 없는  무한의 부요, 무한의 영광, 무한의 권위, 무한의존귀 이 무한한 것을 한 그릇  식물하고 바꾸지 안했느냐? 이와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눈을 넓히  펴서 네가 넓게 봐라. 시야를 넓히라. 너는 대국적으로 보지 말고 전체적으로  봐라.

 ‘이런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그러면 두려워하라 말은 자기가 그  자리에서 옮겨서기를 두려워하고 옮겨섰기 때문에 옮겨서지 안한 사람을 위해서  염려할 것 아닙니까?  여기에 대해서 교훈하기를 네가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를  보고서 빼라 하니까 네 눈에 들보를 먼저 빼고 눈이 밝은 뛰에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서 빼라고 해라.

 사람이 요새는, 건너 말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 사람이 제 말을 하는지 남의 말을 하는지, 남의 복음을 말하고 있는지 제  복음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종교 말년이 돼 갈수록이 이제는 표적을  봐야 되겠다, 증거를 봐야 되겠다. 하나님이 증거하는 그 증거를 봐야지 말은  전부 다, 전부 다 웅변가요. 전부 다 대설교가요 다 굳에게 강하게 얼마든지  억세게 말하니까 뭐인지 모르겠다.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표적을 구했고  오늘도 표적을 구하는것입니다.

 이래서, 아브라함 설교는 롯도 아브라함 설교하고 아브라함도 아브라함  설교하고 다 고렇게 아브라함 설교를 다 하고 하니까 그 뭐인지를 모르겠다  그거요. 그거는 표적으로 하나님이 증거해 주는 거라야 되자 그리 안 하면 믿을  수가 없어.

 이래서.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가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러니까 알아봤자 기회 놓치면 헛일인 것 입니다.

 꼭 세밀히 말하면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매일 매일은 기회 기회입니다. 기회  기회를 엮어서 연장시켜 놓은 것이 우리의 여생입니다. 그러나, 한 시간의  현실도 두 번 중복되는 일은 없습니다. 지나갔으면 그 현실은 다시 잡지 못하고  다가오는 것은 또 새로운 현실이니까 거기에 대한 내 의무와 책임과 본분과  구원과 실패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는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이제는  우리는 모든 존재들을 돌아보는 사람, 자기만 보고 모든 것을 적으로 삼을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책임지고 돌아보는 사람,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도달치  못하는 거, 하나님 은혜에 도달 못할까 하는 이 면을 우리가 두려워하는 우리가  되고 모든 사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은혜에 있기는 있지마는 ‘은혜에 도달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쓴 뿌리가 나서 저도 괴롭고 많은 사람이 또 더러움 입고, 저는 괴롭고  많은 사람은 더러움 입습니다. 자기 중심의 이 사람, 돈 중심의 교역자, 이 세상  중심의, 저거 가정 중심의 교역자, 제 명예 중심의 교역자 어쩌든지 악이 있으면  그 사람 심령에는 절대로 평안이 없습니다. 그 코를 맡으면 쇠똥내가 날  것입니다. 절대로 평강 없습니다. 다른 사람 제 삼자는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더  라워집니다. 더러워진다 말은 속화된다 말입니다.

 그러고, 모든 것이 축소돼서 이 넓은 세계와 전체를 보지 못하고 가장 축소되고  축소돼서 가장 축소돼서 저도 용납하지 못할 그런 좁은 구멍에 짜져 가지고서  일어나지 못하는 그 망령을 가려켜서 하나 예를 들어서 음행으로 표시했고 한  그릇 식물에 자기의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판 것을 예를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기회를 지나가면 뒤에 찾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한 말씀을 또 새겨서 여기에 왔던 효력을  가집시다. 그라고, 하루 한 번이라도 뭐 회개하면 됩니다. 주홍 같고 진흥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면 됩니다.

 옳은데 회개 하지 못하는 것, 옳은 줄 알고 회개 하지 못하는 그것은 성신  훼방죄입니다. 그게 성령 훼방죄요. 번연히 정평 정가하면 알수 있는 법전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있는데, 시험하는 유일한 시험 법칙이 있는데 그라고도  제것을 옳다고서 말하는 것은 그게 악 중에 악입니다.

 악도 저급의 악이 있고 고급의 악이 있으니 최고의 고급의 악은 지성인의 악이  최고의 고급의 악입니다. 무식한 자의 악은 저급의 악이기 때문에 그것은 없어질  수도 깨어질 수도 변할 수 있지마는 제일 고급의 악 그것을 고둥 비평가의  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연일 연야에 주님이 사람의 영육을 치료하시는 역사를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친히 하신 것을 보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이  운동과 이 진영에 함께 하신다는 표적을 적은 것이나마 보고 믿고 감사드립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큰데 한 사람의 자유도 마귀의 쇠사슬 속에서  하나님을 많은 자유를 가지지 못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인도를  따라서 모였사오니 죽은 모임은 억억만 명도 있지마는 이 생명의 모임은 소수나  지극히 크신 주님의 역사인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금번에 주님이 말씀해 주셨사오니 이 말씀에서 믿음 없는 자도 옆에 사람의  믿음으로 또 먼저 증거를 보여서 믿게 하시는 주께서 저희에게 사람의 이 영육의  병의 고친 이 표적을 보고 믿는 자도 되게 하사 이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주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육의 병을 완전히 치료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심을 저는  믿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육의 이 병을  완전히 치료해 주시고 치료해 주실 것을 믿지 못하는 자도 치료해서 증거로 보여  주시고 남의 믿음으로라도 치료해 주시고 자기 믿음으로 더욱이 치료해 주시고  점점 주님이 착수하시고 장중에 잡았사오니 놓치 마시고 하루하루 세월이  지나가는데 따라 주님이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소경 같은 저희 심령에도 보여  주시옵소서. 멸망과 구원의 길을 환하게 보여 주옵소서.

 이래서, 금번에 나음을 받은 저희들이 이 자리에 가졌던 주님과의 진리와의  대속과의 관계된 이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망령되게 이 세상과 다시 합할 때에  이것이 정절을 판 음행과 같은 죄인 것을 저희에게 알려 주사 큰 증세로  나타나서 더 큰 사람병과 고기덩어리의 병이 재발되게 하시옵소서,  재발되었을 때에 다시 깨닫고 돌이키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돌이킬  때는 사해 주시마고 약속하신 주여, 돌이킬 때에 즉시 들어서 다시 치료해  주시옵소서.

이 일. 이 계속 중복 중복되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는 횟수가 줄어져서 짧은  기간에 온전함을 이루어 주님의 소원을 이루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피의 역사가  완성되게 하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서 수고하며 준비한 이 대구 지방에 있는 교역자들에게 더욱이  은혜로 영감으로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이 은혜에 이르는 것으로 기뻐하는 이  고귀한 은혜로 저희들에게 충만케 하시고 이 일을 위해서 사회하고 인도하고 또  힘써 반주한 종들에게도 주님께서 주님의 지혜와능력과 사랑과 주님으로  그들에게 충만시켜 갚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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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88. 4. 18.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29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98. 4. 17.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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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환난 준비/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1984. 5. 10. 목전집회 선지자 2016.01.11
122 환난 준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1988. 11. 22.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121 환난 준비 2가지/ 마태복음24장5절-6절/ 1988. 5. 20.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120 환난 준비의 네 가지/ 이사야 49장 22절-23절/ 1982. 3. 10.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119 환난가운데서 인간 구원을 생각/ 베드로전서 5장 5절-6절/ 1986. 7.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18 환난과 구원 역사의 원인/ 출애굽기 12장 11절-14절/ 1979. 11. 21.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117 환난과 피난/ 시편 91편15절-16절/ 1980. 5.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