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확정. 단행 할 것

 

1980. 5. 17. 토새

 

본문: 마태복음 6장 31절-34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할 때에 말씀  하신 그 말씀이 범위가 각각 다릅니다. 범위가 각각 달라서 어떤 말씀은 좁은  범위에서 말씀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넓은 범위에서 말씀한 것이 있어서 그  범위가 다른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지마는 그 말씀과 말씀이 모순된  것같이 그렇게 보이지기가 쉽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한분의 절대성으로만 이루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 구원은  은혜로 이루어졌다 말씀했으니까 그런 말씀은 전적 우리 구원이 하나님 한분의  그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했고 또 어떤 데는 네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는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반석위에 지은 집같고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그게는 또 사람에게 그 구원이 전적 책임져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을 했으니 이 두 말씀이 서로 모순됩니다. 그러나  모순되지 않는 것은 그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처음에 모든 구원이 하나님 한분에게만 매였다 하는 그 말은 전체 범위 그  전체의 하나님 우리 사람 그 움직이는 전체를 포함한 그 넓은 범위에서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좁게 사람의 그 행동면  행동면 범위만 가지고 보면 이런 행동 하면 멸망 받고 저런 행동 하면은 또  구원얻는다 하는 행동이라는 그 좁은 범위에서 보며는 그 구원이 전적 사람에게  근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넓은 범위에서 좁은 범위에서 또 더 좁은  범위에서도 또 더 좁은 범위에서 이렇게 범위 잡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성경 말씀에 해석이 다 삐뚤어지게 됩니다.

이 말씀은 어떤 범위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그 범위부터 우리가 바로  찾아서 알아야 합니다.

지난 밤에 증거한 말씀과 또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이 같은 말씀인데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이해 못할 모순성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것으로 인해서 시험을 받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것으로 인해서 시험을 받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악령은 우리보다 지혜롭습니다. 악령은 우리보다 지혜롭기 때문에 우리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그 점을 잘 알고 언제든지 언제든지 그 점에서 사고를  일으킬려고 애를 씁니다. 또 확신을 가졌지마는 그것을 확정하지 못한 확실히  정하지 못한 확정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서 그게 가서 흔들어  가지고 우리 구원에 사고를 일으킬라고 이 사람은 확신과 확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는 그에게는 손을 댈 수 없으니 남은 것 그 사람이 단행하지  못하는 단행하지 안하고 있는 그 행동 하는 그 행해야 하는 행함에 가 가지고  악령이 공작을 꾸미 가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구원에 실패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령이 사람에게 대해서 침노하는 것이 그것이 다 같들  안하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침노를 하고 저런 저런 자에게는 저런 침노 를  합니다.

그러기에 요 이번에 봉독한 이 말씀에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악령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구원을 손해 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의식주라는 그게 대해서는 책임지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지마는 우리의  전생활을 본다면 의식주에 대한 그 그것이 우리의 전 생활을 차지하고 있을 만치  그렇게 현실에 실행되어 있다

이렇니까 이것을 해결짓지 못하니 그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다 그대로  이행할 수는 없고 대충 하나님에 말씀을 그저 이상적으로 말하면 그렇지마는  이상적으로 아주 지극히 이상적으로 지고적으로 지상적으로 말하면 그렇지마는  누가 다 그렇게 할 수가 있겠느냐 그저 거기에 가장 완전성을 말하면 그렇지마는  우리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런 그 하나님의 완전성에 그  걸음을 바래만 보면서 생각만 하면서 우리 사는 우리 사람으로서에 이상적인  법칙은 그렇지마는 우리 사람으로서는 그 이상적인 그 법칙을 준행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사람으로서에 알맞는 그 걸음을 걸어야 된다.

 인제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고게서 악령이 고것 미혹을 줘 가지고서 너희들은  요거 하나가 고래 돼 놓으면 너희들은 하나님이 이상적으로 완전을 말한다고  하면은 그것이 완전이니까 완성을 두고서 말한 그것을 네가 그것을 할려고 하는  것이냐? 그거는 하나님이 말한 그 위치에 되기 때문에 그 최고로 말하면  완전으로 말하면 그런 것이지마는 인간은 인간인 것만치 그 정도에 맞춰서야  되지 않겠느냐 요렇게 미혹을 줍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렇게 그 말씀을 암만 봐도 그 안되니까 그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 말이 옳겠다 고것 하나 그릇되고 나면 이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 요구하고 명령하는 대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요구 고 명령하는  말씀대로는 불가능하고 우리는 위 사람으로서에 사람 정도에 맞춰서 모든 일  행해야 된다 이러니까 고만 하나님의 도는 전부 자기가 행한다는 것은 고대로가  아니고 고게서 조절하고 가감되고 어누리하는 그것이 딱 생겨 버리니까 그  다음에 모든 것 다 헛일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런 미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게 되니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  온전하심과 같이 거록하심과 같이 그리스도에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해져라 하는  이 말씀은 모두가 다 이것은 하나 이상적인 표준으로 이렇게 해놓은 것이지  사람이 이렇게 될 수가 있겠느냐 해서 이것은 다만 사람을 정죄하는 데에 쓰이는  말씀이다  아무리 제가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 계명 지켰느냐 하면 그 계명은  지킨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서 사람을 정죄하는데 쓰는 말씀이지 그  사람이 그 실천해서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이 성경에 해석입니다. 그래서  이 성구가 세계적으로 난해절이 대가 있습니다. 난해절 이 성경 해석은 아주 이  성구는 해석하기 어려운 난 해절이라 이래서 난 해절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기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 정죄 할라고 하는 것 아니고 그것은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진 고것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그와 같이 안된 거는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졌으니까 하나님 됐다는 것입니까. 같다는 말은 아무리 봐도 그와  비슷하지 고것은 아니라 말입니다. 같다라는 말은 그것이 사람 같다 꼭 사람  같은데 그러면 그것은 사람과 비슷하지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은 하나님에 모형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과 꼭  같다는 말이요. 그 하나님 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때문에 아무리 봐도  하나님과 꼭 같은데 하나님은 아닌 것이 그것이 우리에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지 하나님에 완전하신 그 율법에서 심판에서  그 율법에 걸리지지 아니하는 그 완전한 것이라야 하늘나라 들어가지 완전치  안한 것은 하늘 나라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는 것은 우리의 그 온전의 양이 전부가 다 되는 기  아니고 우리는 부분적으로 그 양적 온전이 아니고 그 부분적으로 온전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아무리 정죄해도 정죄 할 수가 없는 지성과  지공법에 맞은 것이라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은 안됩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사람으로 할 수 없고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사람의 그 힘이라  말은 힘쓰는 것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능이라 말은 실력을 말한 것인데 사람의  실력과 사람의 노력으로서는 안된다 무얼로 되느냐 아버지의 사랑으로는 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들어가지고서 예수님에 인성은  우리와 같은 인성인데 꼭 같은데 죄만 없는 것 뿐이지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요  인성인데 예수님의 인성을 그 신성인 지극히 큰 능력이 붙들고 역사해 가지고서  예수님으로서 완성을 했습니다.

그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한다고서 말씀했습니다. 그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해서 모두 우리 구원 이루어지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우리의 생각과 원하는 것을 초월해서 생각을 초월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도 우리가 불가능한 거를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능이 되고 예수님의 공로로 가능이 되기 때문에 말씀한 것인데, 아야 이런  것은 우리는 불가능한 것인데, 그러나 그저 멀리 바라보면서 이 도에 표준이  이렇다 이러니까 아무도에게 도달한 사람은 없으니까 이것은 다 하나에 교만한  사람을 내가 여게 봐라 여게 도달했느냐 그게 못도달 했으니까 정죄받는 것에  정죄받는데 그게 쓰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해 놓은 주석을 봤다 그게요. 제가  그런 말을 그 사람을 지금 제가 이름을 말하지 안하는데 그 주석에는 어떤지  물라도 제가 언제 설교를 들을 때에 그렇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암만 주석도  그래 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에 있는 그 주석 해석을 시편 해석을 그 기자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여 나를 살펴 보십시오 내게 흠이 있습니까 점이 있습니까 내게  불안전하 것이 있습니까 나는 완전합니다. 행위가 완전합니다. 내 소원도 목적도  성질도 뭐 내게 대해서는 저는 완전합니다. 흠이 있는가 살펴 보십시오.

이렇게 말한 것을 아무리 봐도 사람은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성경 기자가  다윗같은 사람도 그렇게 말했다 성경 기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것은 자기가  회개하고 난 다음에 사람으로서에 볼 때에 사람으로서 볼 때 사람으로서는  완전하다는 그걸 말하는 것이지 성령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들 다 성경  해석을 해 놓았습니다. 그 해석이 틀렸습니다.

 실상 완전한 것이니다. 완전한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고 하니 하나님에  대속으로 대속 받아 그 법적 해결이 됐고 또 성령과 진리로 중생했습니다.

성령과 진리로 중생한 것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나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로만  움직이지지 사용되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중생했고 진리로 중생했기 때문에  그거는 성령적이요 진리적입니다. 그래 그거는 완전입니다. 또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것이 성령과 진리로서만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완전성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구원 얻어가 가지고서 있는 그런 사람은 심판을  통과해 간 사람들인데 심판 통과해 간 그 사람들은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은 지공 지성법으로 판단해도 그게 정죄받을 만한 그런 것이 없는 그런  요소들만 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돼 가지고 있다 그 말이요. 그런고로 그 말하면  자기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대속으로 또 대속하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직접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이루어져 있는 그것을 보고서 새사람을 보고서 이 새사람 보이소 하나님이여  새사람 보십시오 이 새사람에 무슨 흠이 점이 있습니까 자 새사람의 생각  가운데에 털끌 만치라도 흠이 있거든 말해 보시요.

 그러면 새사람의 생각 가운데에 생각이나 새사람의 말이나 새사람의 그 행동에  대해서 털끌만치라도 그게 부정한 거이 끼어 이습니까 없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예 부정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여러분들이 그 확신을 가지고  말해야 됩니다.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래 없습니까 심신을 가진 인간이 한 것인데 어떻게 해서  없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래 없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래 없습니까 어떻게 해서  없을 수가 있습니까 김철수 목사님 성령과 진리가 한 것이 때문에 성령이 죄를  지을 수 없고 진리가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가 전적했기  때문에 새사람에 행동이나 새사람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요 성령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 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어 이 심신이라는 이것은 새사람의 의의  기관이라고 말하지 안했소. 의에 도구 새사람의 기관이 될 때도 있고 이것이  옛사람의 기관이 될때도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은 이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에  부할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간 것은 그 심신이  얼마나 갔다든지 간 고것은 완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에는 그게 안됐기 때문에 그 하나님에게 드려서 의에  병기가 되어라 죄에 드리면 죄에 병기가 된다 죄에 도구가 된다 하는 것을  말씀했고 그것을 성령으로 시작해다가 육체로 끝나는 사람도 있다 성령의 것이  됐다가 악령의 것이 도구가 됐다가 그렇게 자꾸 중복적으로 변동된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그 주석가가 말하는 것은 자기가 세 사람으로 세 사람을 찾아  가지고서 새사람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라 말이라 새사람이 말하고 이는 거.

새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에 성경 기록할 때는  영감으로 충만해서 그 모든 의사나 그 모든 것이 새사람 됐겠소 안됐겠소 네  성경 기자가 성경 기록한 것이 완전 무결입니까 그게 조금 흠이 들어 있습니까  그 행동에 성경 기록은 새사람의 그 성경 기자 행동인데 성경 기록할 그 때의  영감된 그 사람은 행동한 것이 뭐 행동이냐 성경 기록한 행동이라 성경 기록에  그러면 흠이 있느냐 정확무오로 우리가 믿는다 그게요.

그러면 정확무오한 행동한 그것이 뭐이냐 그 사람의 영육이지마는 영감에  충만해서 영감으로 새사람이 되었을 그때에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무오니까  그 사람도 정확무오라 그 말이요. 그 모두 다 범위가 좁아 사람들이 복짱이 좁다  말이요 마음이 좁아. 좁아서 자꾸 견해나 지식이 좁기 때문에 고안에서 자꾸  무슨과 자꾸 착각을 가지고서 오산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넓히니 넓어가면 모든 것이 다 들어맞는 그러기에 우리가 확신되지  안하는 성구가 있으면 그 성구가 자기에게 신앙 생활에 암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확신하는 이것을 가져야 하고 먼저 제일 쉽고 확신이 제일 먼저 되어야  되기 때문에 게게도 마귀가 침노할 수가 있고 단행하지 안했기 때문에 거게도  마귀가 침노할 수가 있고 세군데 다 마귀가 침노를 할 수가 있는 사람도 있고  군데 군데만 침노하고 한 군데는 아야 침노를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한 군데만 침노하지 두 군데까지도 침노를 못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도 바울같은 그런 분들은 이 두 가지에는 마귀가 침노를 했느냐 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 가지고서 할례 받지 않는 사람들은 몇이든지 죽이는 그  단체까지도 침노를 했다는 것을 반대를 했으니까 바울을 죽일 것이라 말이요.

 이러니까 거게 있는 모두 사도들이 말하기를 야 그 네가 지금 할례 그것을  행하지 안하면 다 죽이는데 네가 돌아다니며 너 할례를 반대한다는 것은  유대교를 반대한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할례 반대한다는 이런 말이 지금 우리  예루살렘이 들리와 있으니까 네가 온줄 알면 너를 죽일려고 모든 사람들이 지금  정죄해 죽이려고 달라들 터이니까 네가 그 누가라는 사람은 이방 사람인데 그  사람을 할례를 줘라 할례를 줘 가지고서 이 사람 봐라 할례를 주지 안했느냐  이렇게 말을 하면 될 것이라 해 가지고서 할례를 줘 가지고 달리 그래 했더라  말이요.

 그러니까 달라 죽일려고 애를 썼지 모두 모아 들었지마는 그 실행을 보니까  할례를 부인한다는 것이 그 아니라 이래 가지고 용납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또 선언을 할례를 반대하는 그 교리를 선언하고서 나갔다 말이요.

그 베드로 같은 사람도 그 수제자지 마는 그분이 단행하는 데에 미혹은 받았다  제자들하고 유대인들하고 같이 먹을 때에 유대인들하고 같이 먹을 때에  이방인들하고 같이 먹을 때에 유대인이 오는 데 유대인이 이방인하고 같이  먹으면은 그만 사형을 시켰어. 이러니까 지금 유대인들이 유대도를 받기는  유대인들이 예수교 예수를 받기는 받아서 예수 믿기로 작성은 하기는 했지마는  서도 아직까지 그 삭제되지 안하는 그런 관념들이 있는데,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사도 바울이라고 인정하고 찾아 오니까 베드로가  이방인하고 같이 먹는다 말이요. 먹는 기 발견되면 큰일날 터이니까 먹다가 벌떡  일어나서 나갔다 그게요. 먹다가 벌떡 일어나 나갔어. 그것은 그 행동이 자기가  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믿어서 옳은 대로 이방인하고 먹다가 뭣 때문에  그 외식하는 이중에 짓을 했느냐 그 뒤에 사도 바울이 베드로에게 대해서 면책을  했다 그게요. 면책이 성경에 있어. 무엇 때문에 이방인하고 먹다 외식자로  그렇게 그 유대인이 오니까 그만 벌떡 일어나 나갔노 이랬다 말이요. 고  (실수)실수라 고말이요. 고 고게 단행하는 고게 그때 그만 단 그걸 단행하지  안하고 있으니까 그만 마귀란 놈이 미혹을 줘 가지고 미혹했다 그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신자도 어떤 사람은 이 세 군데 다 미혹을 주는 사람도 있소. 세  군데 주니까 세번이나 그 활을 쏠 수 있는 데가 있으니까 한군데 맞아도 어데  맞아도 맞는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 사람의 행위는 헛일이라 말이요. 이거는 두  군데는 다 헛일하고 이거는 활을 쏠 수 없고 한 군대만 마귀란 놈이 그 활을 쏠  수가 있는데 그 한 군데 고거 실패하면 마귀도 실패했다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세군데 다 요 미혹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잠을 잡니다 그까짓 기야 뭐 일차  안되면 이차 하지 이차 안되면 삼차 하지 일차에 실패를 했고 이차에 실패를  했고 일 이차는 실패했고 여 삼차만 남아 있는데 요러니까 요거 안되면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삼차만 남은 그 사람의 단행에 대해서는 마귀란 놈이 전적 힘을  기울이기 때문에 그만치 단행하기가 어렵다 그게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 갈수록 행하는 그 행함이라는 것이 그 사람으로서의 그  사람으로서의 행할 것 그 행하는 것이 신앙이 어린 사람들이 행하기가 쉽습니까.

신앙 장성한 사람이 자기 행동하기가 그 쉽습니까 그 누가 쉽습니까 자 누가  쉽습니까. 하나는 이제 참 신출내기고 하나는 장성한데 그 자기가 행할 그  행동에 대해서 누가 하기가 쉽겠습니까.

 하나는 많은 연습을 했고 많은 연습을 안해놓고 이랬으니까 그 예수 잘 믿는 그  사람이 그 단행하기가 쉽겠습니까 처음 믿는 사람이 자기가 행할 수 있는  자기에게 분담된 행위를 행하기가 쉽겠습니까 어느 사람이 쉽겠습니까 어느  사람이 쉽소. 어린 사람이 하기가 쉽다 그 이상한 말인데 어린 사람이 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여반에는 그래 좀 덜 드네 여반이  암만 모지래. 네. 그 여계서 지금 말하는 법대로 말하면 어린 사람이 하기가  쉽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어린 사람에게는 그걸 그 사람을 말아 가지고 있는 마귀란 놈이  거게 주력을 하지 않습니다. 거게 주력을 하지를 않소. 않고 벌써 거게 행하기는  행해도 저쪽에 일 이차에 벌써 마귀란 놈이 승리해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말이요 그게 확신 확정이 되어 가지고 단행이 된 것인지? 확신에 그 자리는  되지를 안하고 확정의 그 자리는 되지도 안하고 단행만 했는지 그것도 모른다  그말이요.

 마귀란 놈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패전케 할 수 있는 그런 길이 얼마든지 있고  쉽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악령이 그렇게 주력하지 안하고 이제 이 두 군데  미혹에는 미혹할수 없는 마지막 하나밖에 남지 안한 사람이니까 이 사람은 이  단행하는 여게서 패전을 시키지 안하고 저는 다 헛일한다 말이요.

이러니까 이 한 군데 그 전체 집중해 가지고서 여게서 그 미혹도 시키고 또  투쟁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갈수록 자기가 행하야 될 그 자기  행함에 행함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점점 어려워져. 그거는 대적이 점점 많해지기  때문에 어려워집니다. 또 그 중량이 일학년이 이학년 교과서를 감당하는 것이나  대학생이 대학생 그 자기 과목을 감당하는 것이나 정도에 따라서 그 과목이 된  것이기 때문에 1학년도 힘을 다해야 공부할 수 있다면은 대학생도 힘을 다해야  공부할 수 있는 과목에 정도가 높으기 때문에 그래 된다 말이요.

그러니까 오래 믿어서 잘 믿어 갈수록이 그에게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에 정도가  높으기 때문에 그 쉽지 안하고 또 악령에 그 방해가 이전보다 강하기 때문에  쉽지 안하고 이러니까 갈수록이 자기가 행하여야 될 자기 걸음을 걷는다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갈수록이 어려워져.

 이러니까 처음에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래하지 안해도 처음에 1학년에는 되지지마는 점점 갈수록이 이것을 다하고  다하는 것이 마지막에는 완전 다가 아니라면 최종에 최고 승리에 길을 걸어갈  수가 없는 걸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걸음이 정도가 낮은 것 같으면 갈수록 쉽지마는 서도  정도가 높아져 가기 때문에 갈수록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얼마동안 예수 믿으면 나중에 가서 쉽다 나도 처음에 어릴 때는  내가 그렇게 깨달았어 그 이것도 능숙해서 쉽지 않겠느냐 그게 아니요 자꾸 하는  정도를 높이기 때문에 쉽지 안하고 갈수록이 (어두워진다)어려워진다 말이요  그래야 무슨 성공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일학년 교과서 그 교과서 같으면 일 년 공부하고 그 이듬해 다시 공부하면  쉽지마는 서도 정도를 자꾸 높이니까 공부하는 데는 일학년 때도 전력을  기울이야 되고 2학년 때도 전력을 기울이야 일등하겠고 3학년 때도 전력을  기울이야 일등하겠다 대학에 가도 전력을 기울이야 일등하겠고 갈수록이 자꾸 그  전력을 기울이야 일등하는 그것은 그 정도를 높이했기 때문에 그리 돼지고 또  정도를 높이야 이 전력을 기울이는 그면만 보면은 수월하지 못하니까 안됐지마는  전력을 기울이지 안하면 감당할 수 없는 그 정도를 높이야 이 사람이 실력이  올라가지 자라가지 그 안하면 실력이 자라가지를 않는다 그게요.

이러니까 죽는 날까지 우리의 실력을 길러가는 그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어데까지 가도 항상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안하면은 통과할 수  없는 그런 정도로 높여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귀란 놈이  그렇게 그 미혹을 주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줍니다.

 이러니까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지지 안하고 이거는 틀림없다 확신을 가지지  아니하고 확정도 하지도 아니하고 그때 행하기만 할려해도 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처음에 어릴 때 교인이라 말이요. 이러니까 처음에는 자기가 뭐 할라는  것이 척척 돼 졌는데 차차 차차 믿어갈수록이 자기의 행함이라는 것이 그  결심한대로 되지 안하고 처음 어린 때는결심한대로 됐는데 믿어 갈수록 결심한  대로 안되지니까 어떤 사람은 의심해서 그렇게 묻는 사람들 많했소 내게는  성령이 떠나셨고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안해 그렀는가 처음 믿을 때보담 처음 믿을  때는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딱딱 다했고 말한 대로 다했고 하라면 다 그대로  됐는데 믿어 갈수록이 그 일이 잘 안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날 버리셨는가  성령에 도우심이 없는가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러니까 그걸 봐서  나한테 묻는 사람을 내가 많이 봤어요. 좀 진실되기 신앙생활 할라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와서 물어요. 묻는데 저도 거게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지고서 투쟁하고  또 거게서 의심도 시험도 많이 시련을 받은 가운데에서 그걸 발견했다 그말이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거게 대한 확실한 그런 그 확신을 가지고서 지금은  지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는 미혹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가운데  착각해서 퍼떡 그런 미혹이 있을 때도 있다 그말이요. 이 말을 왜 하는고 하니  그 요게 두 가지 봉착이 있는데 의식주에 대해서 네가 염려하지 말아라 이거는  너는 책임지지 말아라 그말이요.

 의식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말아라 그러면 의식주에 책임을 지지 안한다면은  요 말은 제일 중요한 것인데 뭐라고사도 먹는 기 제일 중요합니다. 이  생명보다도 먹는것이 중요합니다. 이 생에 본능이 있기 때문에 이차 대전 때에  그 뒤에 말하기를 무인도에가 가지고 사람이 걸렸을 때에는 배가 고프고 먹고  싶으니까 번연히 모래 그거 먹으면 죽는다는 걸 압니다. 그 왜 모르겠습니까  이렇지마는 마구 먹고 싶어 못견뎌서 모든 죽은 사람들 보니까 모래를 먹어서  아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버러지니 뭐이니 자꾸 이래 먹고 이렇지마는 이라다가  물을 먹고 이라지마는 물먹어도 배가 안 차지고 물먹어 봤자 무엇인가 속에 좀  그 크기 있는 뭐 좀 여문 무슨 그런 것이 들어가야 되지 물만 마셔야 안되니까  자꾸 뭘 여문 걸 먹고 싶어서 모래를 먹었다 그 말이요. 그래 가지고 모두  모래가 모두 먹어서 배가 모래에 소복소복하이 차가지고 모래를 불록불록해  가지고 죽었더라고서 그 뒤에 발견해서 그것이 얼마나 그 전파가 되지  안했습니까. 이만침 먹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먹는 것 입는 것 거처하는 것 마시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입는 거 거처하는 것이라 그 말이요.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 담당을 했으면 그  외에 어떤 걸 담당했느냐 목숨도 담당한 걸 또 그 위에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한 것은 모든 우리에게 대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에게 필요한 이 일반  일반인과 같이 일반인과 같이 우리에게 필요한 점 안 믿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그거와 같은 그런 필요점은 그런 필요에 것은 하나님이 전 부담을 했다  말이요. 전담했어 하나님이 전적 담당했습니다. 이것이요 확신 확정 단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걸 지금 오늘 아침에 할라고 했는데 벌써 거게 대한 구비로서  이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그 서론으로 자꾸 이래 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갔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여려분들이 가 연구하면 알 수 있다  말이요.

요것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하나님이 전적부담했기 때문에 너거가 할  일은 무슨 일인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 되는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는 어떤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만은 바래보고 하나님만을 의지 일이라 그 말이요.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되어지느냐 그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은 그 나라는 하나님께 피동 된다는 말이요 외는 하나님에  피동으로 끝을 마치라는 말입니다. 그의 탄 그 말이요. 거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담한 이런 것은 일체 하나님께서 다 부담해 줄  터이니까 너거 부담하는 것은 뭐이냐 온전한 사람 되는 거 온전한 행위하는 거  요것만 부담해라 그런 그거 부담하란 말이 무슨 말인가 전적 하나님만 바래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요것만 부담해 갖고서 요 일만 네가  완성하도록 해라 그게 뭐이냐 그 나라와 그 의만을 구하는 것이라

유차연조사님이 목사님이 지금 조우는데 조울면 들으면 이것은 말로는 쉬운데  말로는 다 여러분들이 할 줄 압니다. 말로 하는 그 말하는데에 거게 그 성령의  감화와 능력이 가야 됩니다. 거게 대한 그 확신이 가야 된다 그 말이요. 또  단정이 가야 돼. 단행이 가야 되고 그게 능력인데 그 안가면 헛일이라 그게 지금  전체 그걸 못하고 있는데 내가 유 목사님 지금 그 이제 이거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세 가지 다 하나도 못하고 세 가지 다 못하고 있는 걸 내가 확실히 아는데 왜  조울아지느냐 그 확신도 없고 확정도 없고 단행도 없다 그게요. 여게서 마귀란  놈이 대수입을 보고 우리의 구원이라 하는 이 구멍으로 막 빠저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구원 이 이 구원을 이 구멍을 막아야 된다 그 말이요. 그것을 하나님이  분담했다는 이것과 또 우리가 구원을 현실에서 이루는데 이 현실은 자기가  현실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가 현실에서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담시켜준 일 하나님만 바래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만 피동되는  요것만이 현실에서 우리 할 일이요 우리 부담이요 그러면 현실을 만드는 것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거는 현실을 만들 터이니까 현실에  대해서는 손데지 말고 현실에 대해서는 그 내가 관심도 책임도 지지 말아라 하는  것이라 그 말이요.

그러면 자기가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은 현실을 현실에서 앞으로 닥쳐 올 그  현실을 만드는 것이 이것이 전부라고 보여지는데 그 현실을 만들지 말라고  하니까 이것이 큰 모순요 이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자기가 현실에서는  현실에서는 앞으로 닥쳐올 현실을 마련하는 이것이 전공이고 자기가 볼 때에  이래 보여지는데 요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요거만 네가 할 일인 참사람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 요것만 내가 조성하는 그것이 너 할 일이고 요것만 할  일이지 요 현실에서는 네가 앞으로 요런 현실을 만들어 보겠다 저런 현실을  만들어 보겠다 그 현실을 만드는 고걸랑 하지 말아라 하는데 우리 생활에는  자기가 전적 그 미래에 현실을 만드는 것 같이 돼 가지고 있다 그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것을 해결을 짓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이제 현실은 고것만 알고  가십시오. 현실은 현재 닥친 현실이든지 앞으로 닥쳐올 현실이든지 현실은 전적  하나님이 만들지 우리가 만드는 것은 아니라 고것을 구별하십시오. 고기  거룩입니다. 고걸 구별하십시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담시킨 영원한  하나님의 목적 그게 우리 부담인데 우리의 소욕이고 우리의 목적이고 우리의  부담인데 그것만하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에게 필요하는 필요 그것은 우리는  전적 책임지지 말아라 그거는 하나님만이 책임 져야 된다 하나님이 책임진다고  하셨다 또 고것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거이라 그 말이요.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아라 하는 요런 성구가 고걸 범위를 생각지 못하면  고기 또 모순돼 가지고 고기 또 우리에게 걸림이 되어진다 그 말이요.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 말아라 그 말은 일은 어떤 일을 말한 것이나. 고걸 오해를 해  가지고 자기네들이 가 농사짓고 밭갈고 먹으라는 그 일로 아는데 그게 아니고 그  일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일을 자기가 안하면 그 사람은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것은 떡으로만 하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그것도 하고 도 떡을 위하는 것도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그거는 떡은 그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고 모순된 고것을 왜 모순이 되느냐 자기가 의식주를 안하면  어찌 되겠느냐 자기가 다 전담해 가지고 한다 싶이 보이 지는데 그걸 하지 말라  하니까 이것은 하나님에 공상이고 하나에 그 그저 하나에 공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지 진실성은 없다 또 현실을 만들지는 마라 하는 이것도 실질성은 없다  이러겠는데 그 실질성이 없다는 그것이 우리가 잘못 깨달아서 실질성이 없는  것이지 실질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 우리가 자기가 의식주를 할라고 해도 자기가 그와 같이 하는 것 같이 하는 줄  알고 했는데 그게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습니다. 안되는 고것은 자기가  고렇게 함으로만 된다면 이번 됐으면 그 다음도 되고 다 되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될 때도 되고 안될 때 있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 하나님이  당신이 시켜서 그것 하라 해 가지고 하니까 그것 돼지는 것이지 그것 하라고  하지 안해서 다른 것 하라 할때는 그게 안된다 말이요. 해도 또 안될 때 안된다  이기요.

이거 참 시간이 좀이 걸리야 되겠는데 고 하나만 알고 가십시오. 사람의  의식주에 대해서나 자기 현실을 만들는 데에는 사람의 노력을 가 하는 사람이  부담해 가고서 고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가 되느냐 비유컨데 한 천분으로 녹는다  하입시다.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일을 하는 데는 그 일하는 그 재료가 천 가지가  든다 하입시다. 일하는 재료가 천 가지가 들어서 만일 그 천 원이든다 하입시다.

일 하는 그 재료가 천 원 천 원어치가 든다 하입시다. 천 원어치가 들면 고게  사람이 그 일을 하는데에 부담한 양이 얼마나 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얼마나 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고게서 일원도 될란가 말란가 그렇습니다.

일원도 될란가 말란가 그렇소. 그러니까 일원 그것이 없어도 999원이 있으면  그거는 될 수 있어도 일원이 완전히 있어도 999원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행동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자기 아닌 우리 행동이라 하는 것이 자기 주관 밖에 더 가요 요걸 알면 좀  눈이 뜨일 것인데 우리 행동이라 하는 자기 주관 밖에 더 됩니까. 자기 주관이  되는데 자기 주관과 자기 아닌 모든 객관과 합해 가지고 일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주관과 자기 아닌 객관과 합해 가지고 일이 되는데 그러면 그 자기  아닌 객관이라는 그것은 하나 일할 때에 자기 아닌 객관이라는 그것은 그것이  자기 주관에 몇 배나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까. 내가 아무리 농사를 지을라고  이렇게 한다고 해도 한다고 해도 거게 이 뭐 햇빛이라든지 공기라든지  바람이라든지 그 땅이라든지 그것은 사람이 농사짓는 노력하는 그것에  억억만배도 더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합해주지 안하면 안되요. 합해주지 안하면 그가 합하는데  대해서 그러니까 농사를 지어도 흉년을 만냈지요 인간들이 살라고  (자기중에는)자기 중에는 생명 생활이 제일 중대한 문제인데 살라고 하는 전심  전력을 기울였는데 그대로 됩니까 살아집니까 그 안 살아진다 말이요. 그것이  내나 미래가 현재 돼 그 죽음이 앞에 있을 때에는 미래가 돼 있고 현재 죽을  때는 죽은 그것이 현실이라 그말이요.

 왜 죽기 싫은데 죽음이라 하는 그 현실이 오느냐 그 자기대로 되는 기 아니라  이러니까 요것을 깨달아서 확신 확정을 가지고 단행한 그 사람이라야 모든 것을  초월해 가지고서 믿음으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연구해서 요걸  깨닫지 안하면 안되요. 그 언제 시간 있으면 할 것이고 여게서는 계속 해서  그것을 증거해 나갈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 광대한 구원을 우리에게 입하셨고 또 영원도록 계속입히시려고 완전하시며  영원하신 주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사랑하사 정하신 이 구원이요 이  구원은 아무도 피조물이 간섭하지 못하고 무한하신 성령님께서 이 일을 주도  하셔서 이루시는 구원이요 이 구원의 도리를 극히 미약한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원할 수도 행할 수 도 없는 지극히 크고 영화로운 구원인  것을 아옵나이다 이런고로 주님의 대속으로 재건 하셨사옵고 주님의 성령의  감동으로만 받을 수 있고 증거 할 수도 있고 이루어 갈 수도 있음을 아옵나이다  이 시간에도 우리 각자들에게 주님의 공로로 인한 성령의 충만함을 약속한 대로  부어 주사 성령의 은사로 이 구원을 감당하여 영원토록 주님에게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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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절 / 1988. 7. 22.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130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88. 4. 18.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29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98. 4. 17.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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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환난 준비/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1984. 5. 10. 목전집회 선지자 2016.01.11
122 환난 준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1988. 11. 22.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121 환난 준비 2가지/ 마태복음24장5절-6절/ 1988. 5. 20.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120 환난 준비의 네 가지/ 이사야 49장 22절-23절/ 1982. 3. 10.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119 환난가운데서 인간 구원을 생각/ 베드로전서 5장 5절-6절/ 1986. 7.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18 환난과 구원 역사의 원인/ 출애굽기 12장 11절-14절/ 1979. 11. 21.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117 환난과 피난/ 시편 91편15절-16절/ 1980. 5.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