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가운데서 인간 구원을 생각

 

1986. 7. 21. 월새벽

 

본문:베드로전서 5장 5절∼6절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어제 말을 했지마는 많이 말해 주면 여러분들이 또 기억을 못 할 거고, 겸손과 교만에 대해서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제 겸손과 교만을 이것은 어떤 것이라고 했지요? 뭣이라고? 외부적 상식이라 그 말은 상식이라 말은 이거는 언제든지 알고 있어야 되는 그런 일이라 그말입니다.

상식이라는 것은 항상 알고 있어야 된다, 이거는 뭐 어데 특별한 지식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누구든지 이런 것은 일반적 지식으로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되지 이게 특별한 데만 쓰이는 게 아니고 그저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이 지식을 가지고 이대로 해야 되지 이대로 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성공은 헛일입니다.

사람이 자기 힘이 강하냐 남의 힘이 강하냐? 남의 힘이 강합니다. 왜? 자기는 한 사람뿐이지마는 자기 밖에 사람은 자기가 뭐 좀 활동하는 데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활동 관계가 그저 몇십 명 되는 사람도 있지마는 몇천 명 몇만 명 몇억만 명 됩니다. 몇십억도 됩니다.

이러니까 그 많은 사람의 힘이 강하지 자기 단독의 힘이 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독불장군이라 말은 자기 혼자로서는 장군노릇을 못 한다 그말입니다, 암만 잘나도. 혼자는 장군노릇을 못 하요. 다른 사람들이 돕는 그 협조가 있어야 되지 협조 없으면 안 됩니다.

이런데 이 교만한 사람은 사람들의 그 협조를 받지 못한다 하는 그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또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그 협조,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나를 돕는 그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인간이 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면도 있기는 있지마는 말하자면 교만과 겸손으로서 이것이 거의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래도 이 교만과 겸손이라 하는 것을 이것을 잘 모르고 자꾸 자기가 어짜든지 나타날라고만 애를 쓰고 유명해질라고만 애를 쓰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도 신문사 잡지사에서 와 가지고서 제가 만났는데 그분들이 말하기를 일반 교계에서 나를 뭐라고 욕하느냐 하면은 뭣이든지 은익해 가지고서 있다고, 뭘 이래 숨기고 나타내지 안하고 개방으로 이래 확 열어 놓지 안하고 뭘 그래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오해를 하고 있다고.

사진도 잘, 사진도 나타내지 안하지, 박지 안하지 또 뭐 알리지도 안하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은 내가 자꾸 그들 가운데 가서 이래 자주 나타나면 그런데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럴 또 시간도 없고 거게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서 이라다 보면 그만 또 나 할 일을 못 하고 이라기 때문에 실은 그랄 수가 없습니다.

뭐 그저 청하는 데 다 가 가지고 같이 하루고 이틀이고 또 뭐 사흘이고 같이 지내고 또 어데 연회석에라도 가서 참석하고 이라면 뭐 그런 것이야 없어지지마는, 그것도 좋기는 좋은데 그라다 보면은 그만 주님과 이렇게 멀어지고 언제 기도할 시간도 없고 언제 뭣을 좀 성경 뭐, 별 연구는 안 하지마는 성경 연구할 시간도 없고, 또 그렇게 자꾸 뭘 아무것도 아닌 게 말이지, 사진 같은 것도 나타내 봐야 다른 사람들은 다 인물이 잘났었으니까 이라지마는 나는 예수로만 참 다른 사람이 좀 알아 주지 내 얼굴은 아주 못되게 생겼어요. 모두 말하기를 ‘그 얼굴이 면모칼이라’ 이렇게 거창 있을 때는 호가 그래 붙었는데 그 좀 면모칼같이 날카로와서 옆에 사람들이 보면 푸근한 재미가 없다 그말이오. 이래서 그거는 실상은 내 중심에는 뭐이냐 하면은 나타내기를 싫어해서 그렇습니다. 나타내기를 싫어해서.

우리 여기 서부교회 주일학교 하는 이것도 저는 나타내지를 안할라고 전연히 그뭐 나타낼 것도 없고 이랬는데 그때 아이를 어떤 사람이 유괴해 가 가지고서 몇 달 숨기고 있는 그 바람에 이 경찰서에서 자꾸 조사하는 가운데에서, 다른 사람들 말만 들을 게 아니라 한번 나한테 가 물어봐야 되겠다고 여기 와 가지고서 조사하러 왔는데 온 것을 내가 사실대로 얘기했더니마는 그 사람이 뭐 자기가 뭐라고 들었는지 깜짝 놀래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서에 들어가서, 이렇고 이렇고 이런 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몰랐다고서.

그런데 마침 출입 기자가 있어 가지고서 그 사람이 그만 그걸 듣고 새로 신문을 냈어. 그때부터 신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거 우리가 낸 거 아니요. 우리가 낸 거 아니고 그때부터 시작했고, 또 대구나 거창이나 집회한 지가 오래 됐지마는 그 신문 내라고 그렇게 해도 신문 안 냈어. 신문에 안 냈는데 하도 아는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꾸 그렇게 광고도 안 내고 그라면 되느냐고, 신문 내기를 올 해 삼 년째 내는가 아마 그래 냈을 겁니다. 광고 한 장도 써붙이지를 안했어. 안 한 그거는 뭐 좋다고 자꾸 드러내고 이렇게 해 쌓는 그게 할 마음이 없어서 그랬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드러낸다고 드러나지고 또 자기를 숨긴다고 숨겨지는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모든 시간도 공간도 모든 인간들의 심리도 다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드러내는 것도 숨기는 것도, 잘 보이는 것도 못 보이는 것도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 하나도 없어.

오늘 아침에 여게 증거할라 하는 것은 마지막 절수를 증거할라고 했는데 11절에 보면 「능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는 요 성구를 증거할라 했는데 위에 겸손과 교만에 대해서 지금 증거를 합니다.

“능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능력이라 말은 힘이라 말입니다. 힘은 그에게만 있습니다. 그분 외에는 힘을 털끝만치도 가진 자가 없습니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힘은 힘은 전부가 그분 혼자밖에는 안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가지셨던 것을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그 힘을 인계받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인계받았기 때문에 마귀나 새나 버리지나 뭐 이거 하루살이나 모기 한 마리도 그놈이 왱왱거리고 날아다니는 그 힘은 전부 그 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주님 한 분이 가진 그 힘을 그들에게 다 이렇게 부어 주어서 그분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들이 움직이지 그분이 아니면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힘은 신인양성일위로서 모든 걸 승리하신 이분 한 분이 힘을 가졌습니다. 천군 천사도 힘 하나도 없습니다. 이분이 줘야 됩니다. 이분의 힘을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능력은 단일 능력이라 하는 걸 한번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도 가르칠 기회가 없어서 이제까지 별로이 말 안 했는데 이것도 이 교계에 나가면 야단입니다. 그래, 교계에서 왜 이단이라고 하느냐 하는 그것을 어제 물어서 그거 내가 약간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거는 ○○노회가 한국 교회서는 제일 큰 노회인데 그 노회에서 백영희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를 해 놨으니까 그 이단이라고 퍼져 나가지 않느냐? 그랬는데 지금은 이단이라 하는 그런 것을 서로 이단이라 소리 안 했다 하고 다 이라지 이단이라 말을 하는 한 사람이 없다. 그거는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나는 주장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고 주장을 하고 이게 거석해 가지고 그분들이 자꾸 사람 붙들고 이래 가지고 자꾸 뚤뚤 뭉쳐 가지고서 해서 정죄를 했는데 그때에 내가 안 그렇다고 자꾸 세워대면은 그 사람들은 뒤에 돌아올 기회가 없어서 말하지 안하고 가만히 둬 뒀다. 둬 뒀는데 지금 ○○노회에서 중생된 영이 범죄 한다 않는다 해서 범죄할 수가 없다 범죄 않는다 하는 말이 옳다 하는 것을 아마 긍정하는 사람이 ○○노회에서 거의 다 백프로가 다 긍정하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것을 말했습니다.

이런데, 이 사람들이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은 자기를 나타낼라고 하는 사람은 그 결과는 어찌 되느냐 하면은 모든 대적을 사게 됩니다.

요거 좀 알기가 어렵지마는.

자기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은 그것도 옛사람이 나타내고 악령 악성 악습이 나타내기 때문에 그거 나타내면은 모든 사람은 시기하고 질투하고 대적해서 다 원수만 생기지 자기에게 도움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과장해서 이렇게 나타냄으로 돕는 사람 그런 것은 다 사망만 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생명력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 억억만이 있어도 그거는 있으나 없으나 그거 상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과장해서 나타낼 때에 ‘그거 위험하다. 그거 그건 좀 과장인데,’ 하고서, 정죄는 안 할지라도 ‘그 사람 조심해야되지 그 사람 가까이 하거나 손 잡고 일 할 사람이 못 된다.’ 이럴 수 있고 요렇게 깨닫는 사람은 실력이 있어서 남에게 도움을 좀 줄 수 있고 뭐 서로 관계를 가지면 유익되어질 사람이지마는 그렇지 못한 사람은 관계를 가진 것만치 손해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은 결국 자기를 망치는 일이라 하는 것을 그걸 알아야 되고 자기는 자기를 낮추고 숨기고 가루는데 하나님이 나타내는 그것은 자타에게 다 유익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꺼꾸로 간다. 내가 며칠 전에도 ‘하늘나라는 꺼꾸로 가는 나라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내가 그런 말했어.

그거는 뭐이냐 하면 세상은 세상이 살아가는 법칙과 하늘나라의 살아가는 법칙은 아주 다릅니다. 세상은 자꾸 자기를 높여서 높여서 높여 가지고서 자기를 높아지는 그 세상이고 하늘나라는 자기를 자꾸 낮춤으로 조금 낮추니까 하나님이 그만치 올리고 또 조금 낮추니까 그만치 올리고 많이 낮춘 사람은 많이 올리고 자기를 완전히 다 낮춘 사람은 하나님이 완전히 다 올리고, 내려감으로 올라가는 거, 또 자꾸 빼앗음으로가 아니고 줌으로 자꾸 부요해지는 거, 또 자기가 점점 죄인 된 걸 깨달아 죄인이 됨으로서 점점 의인이 되는 거, 점점 무능한 사람이 되어짐으로 참으로 능한 사람이 되는 거, 이거 성경입니다.

“나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내가 강한 척 할 때는 다 실패했고 내가 약할 때에 능해지더라.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나를 능력 있게 해서 되더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약점을 알 때에 하나님은 그를 도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만은 어떤 게 교만인고 하니 자기를 잘못 알고 자기는 쌀내끼만한 것이 자기를 집채 무더기만치 아는 그것이 자기를 잘못 알았다 말이오. 사람이 대개 자기를 잘못 아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 실상보다 크게 아는 것이 마귀란 놈이 주는, 알리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자기가 모를 뿐 아니라 자기 아는 대로도 자기가 아는 것보다도 더 키웁니다. 자기는 자기가 콩내끼만한 줄 알면서도 자기는 무슨 태산같이 큰 듯이 이렇게 나타낼라 하는 것이 인간들이라. 그건 순전히 마귀 마음을 먹어 가지고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모르고 잘못 알고 자기를 과장해서 키워 가지고서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모르고 자기 실상보다 더 큰 자로, 더 높은 자로, 더 강한 자로, 더 의로운 자로, 더 깨끗한 자로 이렇게 나타내고 있으니까 한 말로 말하면 제 자랑하는 사람인데, 이러니까 가증스럽게 보인다 말이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거게 협조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만이오.

자기를 잘못 알고 또 자기가 아는 대로도 자기가 아는 것보다 자기를 크게 높여서, 또 자기가 몰라서 자기를 높이고 크게 하는 것, 몰라서 자기 키우지 알고 역부로 제가 자기 위해서 크게 하지 이래서 자기를 사람 앞에서 높이는 자는 그 사람은 사람에게 벌써 한 자리 있어도 벌써 쫓김을 받았습니다. 한 직장에 같이 살아도 아예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니까’ 딱 선을 그어서 도외치지로 아주 취급을 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그저 겉만 상대하지 속에 마음을 주고 상대하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 거짓말로 과장하는 사람에게 꾀이는 사람은 그 사람들은 그 사람 좋다고 뭐 이래 따라가. 꾀이는 그까짓 거야 억만 명이 있어야 유익될 거 하나도 없어.

있으나 없으나 그거는 뭐 칠 것도 없는 것이고, 그것을 알아듣는 그런 사람은 그래도 대개 실력 있어. 안 믿는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다 그 뭣인가 다 장자를 가지고 거기서 좀 실력 있는 권위 있는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뭐 좀 도우면 도움이 되지마는, 나머지기 그런, 자기를 과장하는 그 교만한 자에게 ‘저 사람이 그렇구나’ 이래 가지고 그렇게 아는 사람에게는, 끌려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그 사람 큰갑다’ 하고서 끌려가는 사람, 그 사람은 뭐 거짓말이나 참말이나 제가 크다 하면 큰 줄 알고 작다 하면 작은 줄 아는 그런 사람은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그다음으로 바로 직관하고, 직관이라 말은 바로 보고, 들리는 대로 바로 보고, 직청하고, 바로 그대로 듣고, 그런 사람은, 듣는 데에서 네가 뭐라고 말해도 그 속에 참이라는 그 진실을 보고 아는 그 사람이라야 세상도 권세도 잡고 영계도 그렇고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교만한 자는, 사람 앞에 교만한 자는 사람에게 배척을 당하고 못쓸 사람으로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암만 한 자리에 있어도 교만한 사람은 아예 딱 거석하고, 그 사람 말하는데 뭐 사나운 개 같으니까 그걸 뭐 상대해서 할 필요도 없고 그라면 그저 거기다가 취급하기를 그만 이거는 상대해 취급 안 하고 그만 냅둬 버려. 그러니까 사람의 도움이라는 건 하나도 못 보고 전부 자기 혼자 힘 가지고 살기 때문에 고독하고 그거는 한다면 그냥 안 되니까 악독이나 가지고 뭐 이래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신세가 가련해집니다.

이러기에 교만은 자기를 망치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는 더군다나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 자기가 잘난 척 큰 척 높은 척 이라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는 못쓸 놈이라고 하고서 오는 것은 징계나 올까 그에게 축복은 올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 차든지 더웁기를 원한다. 차지도 안하고 더웁지도 안하고 미직지근하다.” 되지도 못한 게 된 척 하기 때문에, 못 된 게 못 된 줄 알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실 건데 못 된 게 못 되지 안한 줄 알기 때문에 차지 않는 자요, 또 더웁지 않다 그 말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의인이 의인으로 생각하면 하지만 의인되지 못한 게 의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참 더운 것도 아니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내 입에서 토해 내치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직지근해서 내 입에서 토해 내치리라” 비유로 한 말씀인데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를 모르는 사람, 자기를 알고도 자기를 속여서 과장해서 자기를 키워서 높여서 나타내는 그런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오.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또 겸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가? 자기의 장점은 자기가 생각지 안하고 자기에게 잘못된 점, 나쁜 점, 단점, 자기에게 또 뭐 칭찬 받을 만한 의로운 점은 생각지 안하고 자기에게 부정한 점, 자기에게 그 부정한 점, 부족한 점, 무지한 점, 또 자기 항상 실패한 것만 생각합니다. 성공하면 성공은 성공만 생각지 안하고 장 실패한 것만 실패한 것만 생각하요.

어떤 사람은 말하는 것 보면 나는 실패자라는, 평생 한번 실패한 것을 평생 나는 이 실패자로 장 그렇게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실패는 자기가 일생 동안 전체가 실패인데 뭐 한번 잘한 거 있으면 잘한 그놈만 기억해 가지고 항상 그것만 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그런 자는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을 역부러 할라고 애를 써서 할 게 아니라 실은 겸손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겸손한 사람이 돼야 된다 그 말은 자기를 바로 아는 사람이 돼야 되고 자기를 안 그대로, 다른 사람 모를지라도 자기는 자기를 알기 때문에 자기가 아는 대로의 약자로, 아는 대로의 무지자로, 아는 대로의 실패자로, 아는 대로의 악한 자로, 아는 대로의 불의한 자로, 아는 대로의 사랑이 없는 자로 이렇게, 자기가 아는 대로 그런 자로 자기가 알고,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말 뭐 할 필요가 없지마는 그런 자로 알고 그런 자로 다른 사람에게 상대하고 나타나서 이렇게 있으면 다른 사람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 사람 겸손하다’ 이렇게 말해.

겸손한 게 아니라 저는 저대로 개가 개대로 나타났고 소가 소대로 나타내서 자기의 정체대로 그래 나타나 가지고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참 아주 겸손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겸손한 사람이라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그놈은 더 교만한 자요. 알겠습니까? 이래서, 겸손함이라는 것을 해석을 하니까 이러니까 자기는 겸손한 사람 될라고 할 것이 아니고, 자기는 겸손한 사람 돼서 다른 사람에게 겸손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라고, 그것은 속에는 자기를 더 높아질라고 하는 흉측한 고등 술책 아주 고급 범죄의 교만한 자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자기는 뭐 겸손할라 하는게 아니라 자기 실상 자기를 알고 날뛰어야 될 것이고, 자기의 과거 현재를 알고 날뛰어야 될 것이고, 자기의 도덕면이나, 자기의 지능면이나, 자기의 성패면이나, 자기의 사회면이나, 자기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유익을 줬다, 손해를 보였다, 뭐라도 인인 관계라든지, 윤리면이라든지, 이 모든 교회의 신앙면이라든지 그런 면을 자기가 아는 대로의, 그만 쉽게 말하면 아는 대로의 단점을 가지고서 그렇게 자기가 알고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 그렇게 나타나서 사는 사람은 사람과 하나님 앞에 도움을 입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얘기를 해 봐도 하면 그만 자기 나타냅니다. 그만 자기 나타내는, 자기 자랑하고 자기 나타내는 그런 것이 우리 인생들인데 그게 참 마귀 그놈에게 꾀여 가지고서 인간의 단점입니다.

자살을 자살인 줄 모르고 자멸을 자멸인 줄 모르고 하는 것이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거 마귀란 놈이 꾀워서 그 교만한 것은 자멸하는 것이요 자살하는 행위인데 그 자살되는 줄을 몰라서 그게 자기 높아지고 자기 크게 하는 것인 줄 알아서 사람들이 그 방편을 쓴다 그거요.

이래서, 뭐 책이 얼마나 나오는지? 이 책이 나오는 것은 뭣 때문에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 하면은, 지금은 그게 또 한 시대 지나갔습니다. 좀 전에는 ‘그 사람이 저서가 얼마다, 그 사람이 책을 지어 놓은 책을 써 놓은 게 얼마다.’ 저서 한 권 낸 사람, 저서 열 권 낸 사람, 저서 백 권 낸 사람, 저서 몇 백 권 낸 사람, 저서 숫자 많은 것을 그 사람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막 저서의 숫자를 많이 낼라고서 사람들이 애를 써서, 아무짝도 쓰지 못할, 그러기 때문에 도서실에 가 가지고서 그까짓 거 책 암만 뒤벼봐야 사는 책은 하나도 없어, 생명 있는 책은. 그러기 때문에 성경 외에는 볼 책이 없다 그말이오. 성경 외에는 볼 책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 외에는 볼 게 없습니다. 주석이 많아서 그 주석이 어떤고 싶어서, 혹 좋은 주석이 있다고 자꾸 그래 쌓으며 와서 해서 사다 놔도 그 주석을 혹 찾아 볼라고 ‘이게 필요하다’ 싶어서 찾아 보면은 그 주석에 없습니다. 필요한 그거는 주석 낸 사람들이 알 리가 없다 말이오. 몰라.

이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거 내가 며칠 전엔가 얼마 전에도 말하기를 주석에 뭣 좀 알라고 찾아보면 그거는 빠져 버리고 없다고서. 알라고 찾은 요긴한 거 그런 거는 없습니다.

성구 사전이라 하는 것도 보면은 아주 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것이지 아주 요긴한 ‘여게 대해서는 성구 사전에 뭐라 했는고 보자’ 찾아보면 안 나왔어. 안 나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산만당에 올라가면은 백 미터 간 사람들이 말하는 건 전부 백 미터 이하에 있는 본 걸 말하지 백 미터 올라간 사람이 어째 백 미터 이상에 올라가야 보이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래서, 쓸데 없는 책을 많이 내놨기 때문에 사람들을 복잡하게만 했고 사람들을 자꾸 시간 낭비만 만들지 그게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자기를 키우고 높일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망치는 사람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단점을 보는 사람은 단점을 보고 그 면을 탄식하고 그 면을 보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꾸 장점만 되어지고 자기의 장점만 보고 하는 사람은 자꾸 단점만 많아져서 자꾸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교만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자꾸 이런 말씀을 자주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러니까 ‘나는 이제 교만하지 않겠다. 겸손한 사람으로 살겠다.’ 이 말은 겸손한 사람으로 살겠다 이랬지마는 겸손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너무 과장스럽습니다. 뭐 자기에게 무슨 겸손이, 죄인이 죄인으로 나타났는데 그게 무슨 겸손이라 말이요? 죄인이 죄인으로 나타나고 개가 개로 나타나는데 뭐 개가, 개가 개로 나타난 것이 겸손입니까 그것이 실상입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겸손이라는 그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 놨기 때문에 ‘겸손한’ 말 하는 것이지 겸손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해당되지 안해요. 실상이라, 실상.

자기 사실 된 실상 그대로 사람 앞에서 나타나서 살아라. 자기 실상 된 그대로의 그 위치에서 살아라. 그러면 기어들어갈 것밖에 없고, 낮아질 것밖에 없고, 파고 들어갈 것밖에 없어. 뭐 자기 뭐라고 자랑하고 높이고 뭐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벌써 자기를 모르고 자기를 높일 줄 알고, 자기를 키울 줄 알고,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헐고 삣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 벌써, 자기를 모르고 하는 사람 죽은 사람이요, 자기를 또 높이는 사람은 죽고 또 죽은 사람이요,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낮추고 삣고 깎아 내루는 사람은 “죽고 또 죽고 뿌리까지 뽑혀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 하는 것은 자꾸 죽고 또 죽은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인으로 사는 사람은 의인이 되고 말았고 의인으로 사는 사람은 죄인되고 말았습니다. 그걸 성경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바리새인과 세리인데 세리는 죄인이요 바리새인들은 의인들이요 열심쟁이요 정통 신앙을 가진 보수파들입니다. 이랬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남을 당했고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접함을 받았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왜 바리새인이 왜 쫓겨났습니까? ‘나는 이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사람과 같이 나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나는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장점만 보고서 날뛰었어.

세리는 죄인인 것을 자기의 단점을 보고서 하나님을 감히 쳐다보지 못해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이렇게 죄인이라고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이 그 사람을 영접했다 그말이오.

그러면 요것이 들어 가지고서, 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 죄인 왔습니다.’ 자기를 죄인으로 항상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그 사람 있고 또 `나는 의인인데 죄인노릇 하고 있습니다.’ 하는 그 사람 있고, 그라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래야 됩니까 ‘나는 의인인데 내가 죄인노릇 하고 있습니다’ 해야 됩니까? 뭐라 해야 됩니까? 죄인이라 하면은 예수님의 대속을 부인하기 때문에, 대속을 다 입혀 줬는데 죄인이라 하면은 그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 안 해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는 의인인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인데 행동은 죄인 행동이라.

‘주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으로 나는 의인된 자인데 실제 행동은 죄인 행동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깨끗해진 것을 그것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는, 여게 이 말씀이 있는가? 디모데전서 1장에 보면은 디모데전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기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니라」 이러니까 요 12절과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렇게 참 귀히 보시고 충성되이 보시고 귀하게 취급하셔서 이렇게 큰 구원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큰 구원 주신 것을 먼저 감사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나는 과거에 이렇던 죄인이라 하는 것을 죄인을 뒤에 말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잘 기억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러니까 바울이 자기가 주님 앞에 두 가지 있는데 자기는 죄인이요 자기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됐는데 의인 된 것을 먼저 말했습니까 죄인 된 것을 먼저 말했습니까? 뭣을 먼저 말했습니까? 의인 된 걸 먼저 말했어.

의인 된 것을 먼저 말하고 그러면 의인 된 걸 말하고 의인 된 걸 말했으니까 그다음에 의인 된 걸 말하고 그다음에 딴거는 모릅니까? 의인 된 것을 말하고 “나는 이렇던 죄인인데 주님이 긍휼히 여겨서 이와같이 하셨다” 이러니까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구속 받아서 하나님의 의로 의인된 것이니까, 의인됐으니까 의인 된 것을 항상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의인된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러면 의인 된 것만 생각해 버리면 그 사람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됐는데 의인됐으니까 자기는 의인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 대해서 의인이 받을 소망을 바라보고 의인이 할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서 자기는 그 실상으로 죄인 자리에서 그대로 행동하는 그것을, 의인인 것을 알고 그다음에 죄인인 문제를 들고서 회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기억하고, 그러면 우리는 잘못하면 자꾸 그렇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라기 쉬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라면 그 말 잘됐소, 잘못 됐소? 죄인이라는 말보다는 의인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을 기억해야 돼요.

잘못하면 사람들은 자꾸 죄인이라 말을 먼저 해요. 요거 구별하지 못하면. 요거 다른 데는 구별된 것이 그렇게 다 범위가 넓게 돼 가지고 구별돼 있지마는 요게는 간단하게 요 구별돼 가지고 있는 데는 여게가 제일 간단하게 구별돼 가지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 이하에.

그러니까 언제든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그 말보다도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하고, 그러면 `의인이로소이다’ 하고, 과거에 어째 됐든지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하고 그 시간부터 의인으로 살면 제일 만점이오.

의인으로 살면 만점인데 ‘의인이로소이다’ 하고서 의인으로 살지 못한 과거 그런 것을 반성하는 것도 좋고 제일 좋은 거는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하고 과거야 어찌 됐든지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나는 의인됐으니 요 시간부터 나는 의인으로 살고 죽어도 내가 죄인으로 내가 살지는 않겠다. 내가 불의한 자로 살지 않겠다. 마귀하고 합작하지 않겠다. 하나님 배반하지 않겠다.’ 의인으로 살고, 죄 없는 자로 살고,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사는 요 생활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죄지은 것을 끙끙 앓으면서 거게서 통회하고 있는 거, 사람이 너무 그것도 없으면 안 되지마는 그것보다도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자꾸 원통히 여기는 그것이 내나 고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좀 쓸모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그 원통히 여기는 것보다 ‘내가 이제는 의인으로 살겠다’ 의인으로 살겠다 하는 거게다가 힘을 다 기울이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오늘 아침에는 교만과 겸손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쫓겨나고 사람에게 쫓겨나고 겸손한 자는 사람에게 다 동정과 환영을 받고 하나님 앞에 동정과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기의 단점 보고 그것을 가지고서 항상 고칠라고 애를 쓰고 자기의 무지 무능을 보고서 자기 그거 하나님에게 그걸 고처 달라고 애를 쓰고,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 보인 거 그걸랑 생각지 말고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유익을 줘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으면서 주지 못한 유익, 유익을 주지 못한 그 점만 자꾸 보고서 생각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산기도, 또 하루 삼십 분씩 하는 기도 잊어버리지 말고 꼭 하고, 여러분들이 전도를 해서, 전도는 자꾸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고 안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십시오. 믿는 사람에게 새벽기도 안 나오는 자를 새벽기도 나오도록 자꾸 권면하십시오.

여기, ○○○권찰님 구역에 화장지 장사하는 거 그거 뭐 믿음이 있다고 해서 결혼도 좋은 처녀에 결혼 시켰더니마는 그놈 영 믿음 없어. 오늘 아침에 저 나와 있는지 몰라. 나와 있으면 손 들어. 저 화장지 장사. ○○○권찰님 구역에, 화장지 장사. 오늘 아침에 왔으면 손 들어 봐요. 어제 내가 저 길가 가다가 화장지 오토바이 싣고 오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새벽기도 나온다 했는데 나왔는가 봐. 나왔으면 손 들어 봐. 제까짓 게 못 나와. 마귀가 들면 내 보내는가? 좀 가서 말해요, 구역장.

구역장은 자꾸 좋도록, 그 사람 좋도록 해서 자꾸 내 사람 만드는 그거 삯군목자라. 나쁜 것이 있으면 막 책망을 해서 ‘이놈의 구역을 옮겨야 되겠다.

구역장 싫다.’ 자꾸 해도 나쁜 점을 자꾸 말해 줘 고쳐 줘야 되지. 얼러 키운 호로자식이라고 그래 놓으면 안 돼요.

그저 자꾸 사람 좋게만 슬슬 해 가지고 나이가 많으면, 구역장이 나이가 많으면 그만 이거 못써져 버려. 사람 좋게만 하기 위해서 그저 설설설 자꾸 설설 붙들어 줘서 유하게 붙들어 주는 효력만 생각하지 이걸 호랭이 잡아 가지고 효력 있는 건 또 모른다 그말이오. 더러 호랭이를 잡아야 돼요. 인제 영생 구원을 안 자는 안 되면 매를 때려대야 그게 빨리 달아나지.

그런 구역장에게 자란 거는 전부 사람이 그저 교만해지고 못돼지고 다 그래 가지고 된 거 같지만 끄트머리 다 안 돼 버려, 끄트머리가. 교만해서 다 망하고 말아. 끝이 망하고 말아. 한번도 매를 맞지 안하고 고쳐지지 안했거든.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기를 때에 자식이 흠점이 없으면 티를 잡아 가지고라도 매를 때리라. “매를 맞고 자라야 되지 채찍을 아끼는 사람은 음부에 자식을 떨어트리는 거라” 그렇게 말했소.

이러니까, 좀 나쁜 거 있으면 강하게 말해요. 왜 믿는 사람이 왜 새벽기도 안 나와요? 뭣 때문에? 여기 모두 유하게 다 하고 있어요. 인제 다 모두 죽을 때가 됐는가, 모두 다. ○○○권사님도 아주 유하게 합니다. 또 저 ○○○권사님도 그전에는 좀 딱딱하더니만 아주 유하게 합니다. ○○○권사님은 그전부터 유하게 하고, 또 ○○○권사님이 지금 조금 아직까지 땍땍땍땍 그렇습니다. 땍땍땍 하는 그것 때문에 그 구역이 살아요. ○○○권찰님이 그렇게 좀 그랬었는데 그만 일찍 죽어 버렸어. 지금까지 살았으면 그 구역이 크게 부흥됐을 겁니다.

이래 자꾸 되나 안 되나 또 호랭이 잡으면 안 돼요. ○○○권찰님은 뭐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이렇지마는 뭐이냐? 그거 하나 가지고 해. 찝게 벌거지는 아무것도 못 해요. 찝게 벌거지는 찝는 거 고거 하나 가지고 지금 먹고 살아요.

찝는 거 고거 하나 가지고 먹고 살아요. 짐승도 보면은 꼭 그 기술 하나뿐이라.

하나 그놈 가지고 먹고 살아요. 먹고 사는데 저 ○○○권찰님은 호랭이를 잘 잡는 그거 가지고서 먹고 삽니다. 호랭이. 그 구역 식구. 안 되면 안 된 걸 뭐 용납 안 하고 자꾸 이래 말하고 하니까 그 구역들이 떨고 또 성경 말씀 가지고 자꾸 말하고 이러니까 그래도 ‘저 구역은 절단날 거다’ 싶어도 그게 유지가 돼서.

성경 말씀 말하고 자꾸 더러 호랭이를 잡아야 됩니다.

되나 안 되나 또 어떤 사람은 호랭이 잡아 탈이라. ○○○권찰님은 그 호랭이를 너무 과히 잡았는데 그래도 바로 잡아요. 이래도 호랭이 잡는 그것을 잘 써서 그 구역이 실상이 괜찮습니다. 이런데 호랭이를 잡으면서 말씀 가지고 호랭이 잡아요, 자꾸. 그라면 유익이 돼져요.

백 목사는 이 호랭이 잡는 일을 잘합니까 못합니까? 잘하요 못하요? 어떻게 생각해요? 왜 대답 안 해? 하도 호랭이 잡아 놓으니까 대답도 못 하는구만.

그래도 책망하는 게 좋습니다. 책망은 손해가 없소. 책망받을 때에 공연히 책망받으면 참고 있으면 복은 저절로 오는 거, 책망받을 거 있어 할 때 고치면 복 다 얻는 거. 그렇지 안해요? 잘못하면 책망이 교만하기 쉬워. 교만하면 절단납니다. 겸손한 책망은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 지금까지도 이 집회 가자 하는 것을 이 모두 권사님들 지금 다 모두 병이 들었을 거야. 아마 아랫도리를 못 쓰고 뭐 허리도 아프고 이럴 터이니까 그래 돌아다니면 나중에 못 합니다. 갈 만한 그거 그 냅둬요. 뭐할라고 그거 가자 하고 있어요, 그걸? 인제 맡겨요. 너 이놈아 너는 누구 데리고 가거라. 누구 누구 데리고 가라. 떠 맡겨 버려. 떠 맡기고 안 되거든. 그놈만 독촉을 해요.

그렇지 안해? 자식을 낳아 놓으면 집구석이 될라면 자식이 맏자식이 잘 돼야 돼.

맏자식이 잘 되면 맏자식 그놈만 나무래면 그놈이 동생을 다 통솔하는데 맏자식 하나 삐뚤어져 놓으면 헛일이야. 맏자식 하나 바로 되면 다 잘 돼요. 구역도 위에 하나 잘 되면 다 잘 되고 위에 하나 잘못 되면 다 잘못 됩니다. 그걸 본을 뜨거든. 잘못 된 그걸 본을 뜨거든.

종전과 같이 주변 청소를 다 협조해서 ‘나도 한번 주변 청소를 해보자. 다른 사람 하니까 나도 해 보자.’ 이래 가지고 그런 것도 좀 빠지지 말아요.

그라고, 새벽기도 좀 전도 좀 하십시오. 새벽기도 못 나오는 자는 자들, 죽은 자는 아니고 자는 자라. 자는 자는 죽은 자와 꼭 같이 않아? 신앙에 자는 사람 그런 사람을 깨워서 새벽기도 좀 나오도록 그래 권유해요.

자, 새벽으로 자기 나오라고 깨우는 사람, 깨우는 사람 열 있는 사람 손 들어 봐.

전화로 열 있는 사람. 저 누고? 손 들어 봐. 열 있는 사람, 열 깨우는 사람 사람 손 들어 봐. 자기가 전화로 열 명 이상 깨우는 사람 손 들어 봐. 하나도 없네? 다섯 명 이상 깨우는 사람 손 들어 봐. 하나도 없고, 두 명 이상 깨우는 사람 손 들어 봐. 있으며 손 안 들면 거짓말쟁이야. 깨우는 사람 손 들어 봐. 너이, 다섯, 에이구, 여섯.

한 명 이상 깨우는 사람 손 들어 봐요. 한 명 이상. 그러면 두 명 깨우는 사람 다 들어야지, 두 명 이상. 한 명 깨우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이래 놓으니 여러분들이 안 죽을 수가 있어야지. 깨우는 사람 하나도 없는 사람 손 들어 봐. 깨우는 사람 하나도 없는 사람. 들어, 손 들어. 들어야지. 뭣 때문에 주제 넘게 안 들어, 안 들기를? 놔요.

그라면 안 돼요. 가서 로 깨우든지 전화로 깨우든지 그래 가지고서 다 사람 살립니다. 전화로도 깨우고 또 찾아가서도 깨우고 또 다른 집에 못 깨우면 저거 집에 그 남편이라도 깨우고 이래 가지고, 뭐 저 우리 ○○○집사님은 그분이 여전도회 회장 됐지, 그 남편은 장로 됐지 장로보다 큰 주일학교 부장됐지 이랬는데 내가 소문 듣기를, 가 뭐 주문대요. 이제 아마 새벽으로도 가면 새벽기도 가자고 자꾸 가자고 이래 일어나 가지고서 기도하면서 이래 자꾸 안마도 해 주고 이래 쌓으면 ‘허, 참. 또 새벽기도 가자 하지? 갈 거야. 갈 거야.’ 그래 가지고, 오전예배 보고 난 다음에는, 오전예배꾼이라. 그만 오후예배 보러 안 올라고 이라면은 또 이래 가지고, 뭐 곤하기야 다 같은 사람인데 그 남편보다 더 곤하지 이렇지마는 이래 또 안마를 해 주고 주물러 주니까 ‘에이고, 또 오후예배 보러 가자 말이지?’ 그래 나와.

이래 가지고서 그러구로 그러구로 해 가지고 키웠어. 쪼맨한 걸 키웠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거는 부인 ○○○집사님이 낳아 가지고 키운 ○○○장로님이오. 다 그래 돼요.

○○○목사님 안 그런 줄 압니까? ○○○목사님이 우리 ○○○ 집사님이 길렀어.

요다음에 어쩌면 ○○○인제 권사님 될 거라. 그래 길러 가지고 지금 목사님 됐어. 그라면 ○○○목사님은 ‘내가 먼저 믿었고 내가 잘 믿는데.’ 내가 다 알아. 내가 뭐 모르는가? 내가 그때 다 아는데. 그래 가지고 모두 참, 한 가정에 산 사람이 한 사람이 있으면 온 가정이 삽니다.

어제 주일학교 반사들 내가 좀 야단을 쳤어. 넷 주일이나 안 믿는 사람 안 믿는 부모 형제에게 전도 하라고 실컷 말일랑 해 놓고 관심이 없으니까 ‘오늘 부모 형제 자매에게 교회 나오도록 그래 권해서 교회 인도한 사람 있습니까? 인도했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어 본 사람이 있습니까?’ 하니까 한 사람도 없어.

자, 그 책망 할 만해요 안 할 만해요? 그거 이렇게 뭣 때문에 입술로는 전도하라 해 놓고 학생들에게 전도했나 안 했나 하나 물어 본 사람도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게 야단을 치고 책망하는 거 내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하는 것이요? 말해 봐요. 하나님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하나님이 하시요.

그 뭐야? 그까짓으로 해 가지고. 주일학교 반사들 다 죽은 거 한가지라. 어떻게 바로 진실히 전했으면 ‘이 안 믿는 부모 아무것이 부모 있는데 너 아버지에게 전도했나? 네 아버지 보고 전도했나?’ 이거 이렇게 그 관심이 있으면 그럴 터인데 도무지 말뿐이라. 말뿐인 신자.

이다음에 예수님이 환난을 일으켜 가지고 말뿐인 신자, 설교만 하는 신자, 돌아다니며 심방이나 하고 저는 구원하지 않는 신자, 이런 신자 다 모조리 쓸어서 쓰레기통에 집어 넣기 위해서 앞으로 환난이 올란지 몰라.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빗자루가 오니까 전부 싹 쓸어서 쓰레기통에 다 들어가 버리고 그때 남겨 둔 사람은 몇 사람 없었어.

지금도 그래. 지금도 어떤 사람은, ‘마디가 없다’ 하니까 `나는 마디가 없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환난을 받지 못했는데, 당해 보지 못했는데 앞으로 환난 오면 어짤꼬?’ 이리 걱정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내가 이래 믿으니까 이대로 믿으니까 잘 믿겠지.’ 어리석게 헛되이 믿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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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98. 4. 17.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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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환난 때에 우리 할 일/ 다니엘 12장 1절 상반절/ 1989. 7. 10.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23 환난 준비/ 베드로후서 3장 1절-18절/ 1984. 5. 10. 목전집회 선지자 2016.01.11
122 환난 준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1988. 11. 22.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121 환난 준비 2가지/ 마태복음24장5절-6절/ 1988. 5. 20.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120 환난 준비의 네 가지/ 이사야 49장 22절-23절/ 1982. 3. 10.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 환난가운데서 인간 구원을 생각/ 베드로전서 5장 5절-6절/ 1986. 7.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18 환난과 구원 역사의 원인/ 출애굽기 12장 11절-14절/ 1979. 11. 21.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117 환난과 피난/ 시편 91편15절-16절/ 1980. 5.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