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과 피난

 

1980. 5. 24. 토새

 

본문: 시편 91편 15절 -16절 저가 네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면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이런 거 저런 것에게 다 도움을 구하지마는 막달은 때에는 다  하나님에게 간구하게 됩니다. 이유는 자기가 평소에는 의지하고 바래보고 그로  인하여 자기의 모든 화를 면하고 모든 욕망을 달성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 생각대로 다 각각 바래보고 의지하고 도움 받을 것들을 찾고  구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것 저런 것을 그렇게 의지하고  바래보고 구하지마는 이 모든 것들이 다 허사가 되는 때 자기가 그것이 그것을  바래보고 의지했었는데 아무 효력이 없게 되는 그런 마지막을 당했을 때에는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에게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종말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 외에는 효력이 없다 권위가 없다 하는  이런 그 마지막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고 하나나님만을 바래보고  의지하고 관계를 맺고 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자들은 어두워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에 욕망하는 모든 것이 다 헛되게 되어졌을 그때에  하나님에게 간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에게 간구 안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이종교들도 그들이 신망하는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을 세상에 있는 동안에 보게  됩니다. 불교 신자 다른 이종교 신자들도 마지막 세상 떠날 때에는 과연 저가  바라고 의지하는 것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나 없나 하는데 대해서 확신이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 아마 제일 크신 분이 하늘님이지 생각해  가지고서 마지막에 하느님에 하늘님에게 그들이 간구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그 하늘님은 한을임 한울임이라 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기를 끝이 없는  제일 큰 것이라 이렇게 생각해서 한을님 또 모든 존재에 이 전체를 포옹해  가지고 있는 그 큰 울 한이라는 것은 큰 것을 자기네들이 생각합니다. 큰 울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한울님 또 일본 사람들은 천우중주신이 하늘에 주인되는  신이라 그들은 또 그렇게 이름을 지어 가지고 그때 부릅니다.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에게 구합니다. 불교 신자들이 물에 빠져서 이제는 소용 없을 때에  부처에게 구해 달라고 하지 안하고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하는 그런 것을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처 놓고는 미리 구하고 그 사건을 당했을 그 임시에 그 모든  것이 닥쳤을 때에를 임시라 말하는데 그 모든 것이 부딪쳐졌을 때에 구하고 미리  구하고 이것만 다르지 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모르면 모르는 그 제일 큰 신에게  구하고 어쨌든지 제일 능력 있고 제일 큰거 그 신에게 간구하기는 다  간구합니다. 안 구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간구가 응답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 간구하는 그 간구에 이 절대자시요 주재이신 이분이 그 간구를 듣고  그대로 이루어 주시느냐 안 주시느냐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게 저가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겠다 말은 다 답을 해 주겠다 간구하는 대로  다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 하는 그것을 응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다 구하기는 구하는데 안 구하는 사람 없습니다. 일찍 구하고 늦게  구하고 미리 구하고 그때 임시 닥쳤을 때에 그때 구하고 그 시간만 다르지 간구  하지 안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간구합니다. 그러나 그 간구가 응답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그것이 이제 문제인데 여게 간구할 때에 그 간구하는 것을  다 응답해 주시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면 자기가  어려운 것을 구할 때에 어려움이 다 제거 되어지고 자기가 소원하는 것을 구할  때에 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만능이요 전능이겠습니다. 그래 된다고  하면, 그러기에 기도는 만능이요 전능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다 들어서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이런 기도가 되는 데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지 아니할 수 없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지 아니할 수 없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야만 하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지  아니할 수 없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야만 하는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이런 기도가 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기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성경에 원하는 대로 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겠다 하는 그것은 어떤 그  하나님이 좋아하는 그 사람은 어떤 것을 원하든지 다 들어주신다는 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 들어주실 수 있는 그런 소원만 그가 가졌다 하는 그것을  말씀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가 되는데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수 있는 기도, 또 하나님이 들어주시야만 되는 기도, 또 하나님이 안  들어주실 수 없는 기도 이 기도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자기가 깨닫고 원하고 이루어지기를 노력하는 이 세 가지가  합해야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수 있는  이런 소원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 알  수 있는 사람 소원할 수 있는 사람 또 이것을 알고 원하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  이 사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가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이 말은 단순히 아무나따나 구하면 다 들어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간구는 안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불신자가 다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간구하고 모르지마는 어짜든지 제일  크신 분 그분에게 간구합니다. 알고 간구하고 그분을 모르지마는 어찌든지  절대성 있는 그 대주재 무엇보다도 크신 분 그분에게 간구하는 이 간구, 미리  간구하고 다급했을 때에 그때 간구하고 하는 그 시간이 다르고 알고 간구하고  모르고 간구하는 기 다르지 자기가 원치 안하는 것을 면할려고 하는 그 간구와  자기가 소원하는 대로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간구는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간구하는 기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하는 기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뭐 아무나 따나 하나님에게 많이 기도하면 장기간 크게  희생해 가지고서 자기의 전부를 기울려서 기도하면 들어주리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을 성경은 다 제거시켰습니다. 말을 많이 하리야 들으실 줄 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 있는 그런 기도를 찾아 하지 안 하고 자꾸 많이만  하면 장기간만 기도하면 시간이 끊침 없이 무시로 계속해서 기도하면 자기를  희생해서 전부를 다 기울려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이런 기도에  잘못된 관념들을 우리가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그 전에도 말했지마는 요 부민 교회 어떤 장로 한분 있었는데 그 장로가  자기가 소원하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힘써 구하면 믿고 힘써 구하면 들어  주시리라 생각을 하고 단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단식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거 들어 주신다 이루어 주신다 어떤 제목인데 그 제목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고기 틀린 일입니다. 이랬는데 단식 기도하다가 17일만에 죽어  버렸어. 안 들어 줬어. 하나님이 들어 주지 안하고 '아 이놈 못쓸 것 구한다고  행여나 고칠까 고칠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할까  기다리다가 안 되니까 생명을 걷어가서 죽어 버렸다 그게요.

 다리오 왕 앞에서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죽인다고 할 그때에 사람들이  일반인들이 다 기도하는 것은 미리도 그런 기도하고 다급했을 때 그 기도했을  것이요 '하나님이여 어떻게 하든지 나를 여게서 살려 주시옵소서. 나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다리오 왕에 감동을 시켜서 나는  기도하지 안할 수 없는데 기도해도 나를 살려주도록' 그렇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일반인은 다 그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를 하면은 하나님이 들어주실 수 있느냐 들어주실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간구해도 못 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 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냐? '주여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넣는다고  하는데 사자 구덩이에 넣는다고 해도 내가 이기도에 대해서 요동치 아니 하고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을 기도 했을 것이라 그  말이요. 그러면 그것은 죽는 기도라 그 말이요. 그때 그 기도가 나올 수  있겠는가 안 됩니다.

 그 기도가 나왔을 때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셨는데 그러면 그 기도를 할  때에 자기가 기도하는 그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그런 은혜를 구하고 내가  기도를 계속할 터이니까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은 그 기도가  벌써 틀렸다 그 말이요. 월권 기도라 그거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당신이 하실  일을 제가 하나님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시키는 것이 그게 틀렸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그거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명하셨고 기도하는 것이  자기의 본분이요 하나님이 맡겨주신 본문이요 자기의 의무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는 이것은 하나님 앞에 당연히 할 기도요 또  하나님이 그것은 안 들어 주시면 안되는 기도라 그게요.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그 기도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데에는 응답해  주실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해야겠고 응답해 줄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하는 데에는  이런 기도하는 그 사람 자체가 생각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아야 될 것이라 그게요 하나님과 같지 안하면 안됩니다. 자기가 거게  대해서 깨달은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애야 하나님이  그걸 들어 주시지 하나님은 가자 하는데 저는 안 갈라 하고 하나님은 안 되게  하는데 저는 되게 할라 하고 생각이 깨달음이 앎이 달라도 안 될 것이고,  소원함이 달라도 안 될 것이고, 노력함이 달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같은 인격 같은 속성 같은 그 속성을 가진, 같은  인격성이 이 되어졌으므로 그가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하는 것이요 그가  뜻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하는 것이니 그가 노력 하는 것이 하나님이 노력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이 일은 필연성으로 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것만치 자기의 소원은 이루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이 된 거만치 그의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에  모형이요, 그의 간구는 하나님의 간구에 모형이요, 그의 깨달은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에 모형이라 그말이요. 하나님에 모형적 지식, 모형적 소원, 모형적 간구,  모형적 노력. 이러니까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누가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다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이 문제인데 그러면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어지는 데는 어떻게 하면 같은 자가 되어지느냐 이것이 곧 여호와로  피난처 삼는다, 여호와로 피난처 삼는다. 그러면 두계약을 선포해 논 이 계약은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노력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전부를 이 계약에 다 발표 시켰는데 이 계약은  당신의 소원의 발표요, 당신에 성질의 발표요, 당신의 뜻에 발표요, 당신의  목적에 발표요, 당신의 경영에 발표요, 당신의 노력의 발표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발표라 그게요. 하나님은 아니지마는  하나님이 그렇게 나타나셨다 그말이요. 이러기에 이것을 따라서 자기가 움직이다  보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순응성 있게 지었습니다. 순응성 있  동화성 있 감화성 있 감염성 있게 이렇게 사람을 지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짐승, 짐승을 접하는 사람은 짐승을 닮게 되고, 이런 식물을 접할 때는 식물을  닮게 되고, 사기꾼을 접할 때는 사기꾼을 닮게 되고 불교인들은 그가 그 부동  자세로 되어 있는 꿍한 그 부처를 자꾸 접하기 때문에 불교인은 보면 눈이 밝은  사람은 다 안다 그게요. 부처 와 꼭 같습니다. 부동 자세 멍한 그런 아무런 다른  잡념이 없는 그런 하나에 속에 생각이 없는 그런 사람과 같은 그런 모형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가 접하는 그 서적에 닮아가게 됩니다. 서적은 다른  사람이 만든 그 저서가 아니고 자기가 자기가 이상적인 꿈을 기록한 서적이라  하면 자기가 이상적으로 자기가 연구하고 느껴 가지고서 이런 이상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 자기 이상을 기록한 그런 서적이라도 자기가 기록한 그 서적을  자꾸 읽고 읽고 하면은 그 서적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적적 인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서적적 인물이라 그 서적을  닮아가는 사람이라. 그러기에 사람을 아느 데에는 그 사람이 애독하는 그 책을  보면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을 짐작하면 그것이 틀림이 별로이  없습니다. 왜 자꾸 읽으는 그대로 간다 말이요.

 이러기에 공산주의의 그 서적을, 철학을 어떤 그 영웅전을, 어떤 성현전을,  어떤 그 아주 모략적인 그런 그 서적을 읽으면 그 사람은 그런 사람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만물을 접할 때도 거게 감염되는 것이 인간이요 그렇게 만들어  났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논 것은 비록 피조물이지마는 완전자이신 조물주 이분을 접해서  이분과 같이 감염되고, 감화되고, 동화되고 거게 모형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물건을  접해도, 짐승을 접해도, 글을 접해도, 말을 접해도, 사람을 접해도 접촉하는  대로 나는 그를 닮아가고 그는 나를 닮아오는 것입니다.

 그 중 제일 힘있게 감염되는 것이 뭐이냐? 감염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사람은  인격 존재기 때문에, 인격 존재기 때문에 사상 감염이 제일 잘되고, 성질 감염이  제일 잘되고, 또 지식 감염 그의 속성 감염 이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식에 든 이것이 그 사람의 저자에 그 실존이 거게 문서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독서하는 데에서 사람들이 많이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두 계약이라는 것은 하나는 하나님요 하나는 하나님에  나타내신 그 지식인데 지식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하나님에 그 자체가 문서로  나타난 것이 그것이 이 계약이요 문서 계약이요 또 하나님이 감동으로 하나님이  감화로 감동으로 나타난 것이 그것이 성신의 감화인 것입니다. 영감 계약인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 접해서 지키는 가운데에 그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이런  하나님의 모형이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같은 이런 사람이 되어지니까 그 사람에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그 사람의 노력이 하나님의 노력이기 때문에 그거는  이루어지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평소에 기도하고 환난 급할 때에 기도하고 다 간구하기는 다  간구하는데 그 간구가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는 그런 간구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접해 볼 때에 그 사람이 참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 사람에게 이것은 이루어져야 되겠다는 그런 간구를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간구를 하는 사람이 드므요.

사람이 올바른 소원을 가졌을 때에 그 소원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옳은 소원 가진 것은 다 이루어집니다. 그 소원이 대주재를  배격하고 또 모든 존재들이 다 싫어하고 전부가 사욕적이요 주관적이요 다  자율적이라. 제가 하나님 대신 되어서 간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죽이야  되지 안 죽일 수가 없는 이런 소원이기 때문에 안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 더디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대로 안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여호와로 피난처 삼는다는 것은 그 계약으로 계약에 자기가  피난처 삼는 것 그 계약의 품에 안겨서 계약으로 평강을 누리고 계약으로 모든  것을 다 방비하는 그것이 피난입니다. 피난이라는 것은 자기를 해하는 것을 다  방비하고 그것이 없는 곳 자기가 해할려다가 해할 자기를 해할라는 것이 없는  곳이니까 자기에게 평강이 있는 곳입니다.

 싫어하는 것은 방어하고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 그것이 한 말로 말해서 피난이라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피난 이는 피난이라는 것은 오묘한 그 현실인데  외부에 해하는 것이 심할수록 피난은 평안한 것입니다. 피난은 평안하요. 사람이  평소에는 땅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그것이 불안하겠지마는 그 땅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평안해지는 것은 땅굴 밖에 자기를 해하는 것이 해할라는 것이  심해 갈수록이 그것이 더 평안합니다. 심해 갈수록이 더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심해 갈수록이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행복스럽고 또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로 피난 삼는 것은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자기를 해할라 하는  것을 다 방어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그것을 자기가 어디서 찾느냐 자기에게 모든  해되는 것을 다 피하고 제거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이것이 자기의 마련되는 요  방편을 뭘로 삼느냐? 계약 이행으로 삼는다 말이요. 계약 이행으로 그 누가 세운  계약인데? 하나님이 세우신 계약인데 하나님이 세우신 이 두 계약 속에 피난하라  두 계약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모든 해로운 것을 방어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다 마련하는 이 방편을 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방편을 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분에게 피난할라 하는 것은 이분이 계약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  이행하는 그분에게 피난할려고 하는 것이니까 이 계약 지키는 것으로 피난할라  한다 그말이요 이 계약을 지키는 것으로 피해 피난을 할라는 자라

이 계약을 지킴으로 피난할라 하는, 이 계약 지키는 기 뭐인가? 이 계약을  지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 그 당신에 본질 본성 소원, 당신의 당신에 난 이러한  자다 나는 이러한 자요 이런 소원을 가진 자요 이런 포부를 가진 자요 이런 것을  목적하는 자요 이런 것을 노력하는 자라 당신이 앞으로 영원히 어떤 것을 할  이것을 문서로 나타내 논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 계약이요 문서로 다 기록할 수  없어 문서로 기록할 수 없어 우주에 둬도 천하에 둬도 둘 곳이 없을 만한 그 이  우주를 능가하고 이것을 벗어난 이런 그 당신의 무한을 나타내는 그것이 영감  계약이라 말이요.

그러면 이 계약을 따라서 행하니까 행하는 가운데에 자기는 이 계약과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서 계약과 같은 자가 이 성경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됐다 말이요. 성경 중 사람이 됐어. 성경 중 사람, 서적 서적 중  인물이라. 글 속에는 그 속에 사람이 들었어. 여게는 이런 인간이 들었구나  신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은 이 성경 가운데에 그 사람이 있다 말이요 인간에  인간은 모형이면 인간의 원형이 그 들어 있다 말이요 원형이.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초상으로 그려서 그림으로 이래 그려 가지고 어떻게  수염이 많이 나고 낯이 지단하고 키가 커서 그러니까 이것이 전부 성경 가운데에  있는 그 인격 그 형상을 우리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가루어 놓는, 이러기 때문에  성화라 하는 이것이 복음을 가루는 마귀 역사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이것을  제가 부산 와서 고려 신학교에서 증거한 것이 벌써 30년이 다 돼 가는데 아마  30년 됐는가 모르겠.

이랬는 데 암만 말해야 듣지 안해. 그것 듣는 사람이 그때에 그 송 목사 ,송  조사라 하는 그 사람 송 조사지 아마, 그 사람이 그때 남교회에서 이렇게  엉덩이가 떨어진 그 내나 떨어져 가지고서 그때는 치료해 가지고 뒤에 까스로  죽은 사람이요. 김교신 장로라고 여러분들이 아는가 몰라. 김교신, 김교신인가?  김교신, 김교신인가? 김교신 장로 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본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하 세대는 빠르다 이렇게 없구먼 그분이면 '예수 천당, 예수 천당'  이라며 돌아다닌 사람이데 엉뚱하이 그분은 이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말을  듣고 그 다음부터 그것을 배부 해서 늘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 말해야 그말 하니까 은혜가 되는데 이것은 30년이 지냈는데 어떤 그  집사가 따라 다니면서 그분이 그래 장로되고 그랬었는데 '아 기도 하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이렇게 못을 박혀서 이래가 죽어서 달려 가지고서 그 피를  줄줄 흘리는데 그분을 보고 내가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에 피에 내가 눈물  흘리며 울면서 간구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물어 그게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것이요 그것이  인간들의 생각대로 제가 만든 것이요 또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그 못 박혀 죽으신 시체를 보고 기도해 봐야 소용 없어. 그 시체라면 예수님의  시체라도 안된다 그말이요 예수님의 몸뚱이를 당시에 원한 거 아니라 예수님이  영감으로 나타내고 성경으로 나타낸 그 성경 중 인격, 성경 중 예수 영감 중  예수

이러기에 예수님께서 땅 위에 글씨 하나 쓰고 난 다음에 즉시 뭉캐 버렸어. 아무  그런 걸 남구지 안 했어. 이러기에 이 성경을 읽는 가운데에 닮아가고 성경을  지켜 이 계약을 지켜가는 데에 그분을 닮아가고, 영감을 받는 가운데에  닮아가고, 영감을 지켜 가는데에 예수님의 모형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하는 이 말씀은 어떤 자에게  여호와를 피난처로 지존자를 거처로 삼은 그 자에 간구를 들어 주신다 그  말이요. 그자의 간구 그 말은 여호와를 피난처로 이 두 계약을 자기가 모든 해에  사망의 방어로 생명의 그 마련으로 이 두 계약을 사망의 방어 생명의 마련으로  이렇게 삼는 자는 그의 소원하는 그 소원이 하나님과 동일 소원이 되어서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자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환난 때에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환난 때 저와 함깨  하다니 환난 때에 하나님과 주님과 사상이 같애, 소원이 같애, 노력이 같애요.

이러니까 건지는 것은 그 환난을 이용하고 환난 때 유익되는 것은 환난에서 안  죽는 것도 아니요 또 죽는 것도 아니라 그게요.

 그러면 거기에서 주님의 소원하시는 그 소원대로 자기도 소원해서 주님이 그  환난에 대해서 어떠하신 그 유익을 본 것처럼 자기도 같은 유익을 보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환난 때에 건진다니까 그때에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그 환난 때에 안 죽고 살면은 건지지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이 되어지는 그것이  일방적이라 그말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환난을 당할 때에 예수님께서 사는 것이 환난에  아버지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그 환난에  도우심을 받은 것입니까? 그때는 죽으시는 것이 그것이 도우심을 받으신 것이요  죽으시면서 요소 하나도 지공 그 법에 걸리지 안하도록 원하고 원하고 요소  하나도 지존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 도우심을 받은  것이라 그말이요. '영화롭게 하리라.'

 이러니까 그 환난을 통해서 영광스러워 돼야 되지 그 환난을 통해서  수치스러워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일을  당했을 때에 그때 죽음을 면해서 죽어 죽지 안하고 살았으면 그것이 영광이  되겠소 수치가 되겠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소원하는 것이 당신의 소원함과 같이 하나 되는 이기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같은 자 되어지는 것이 문제요 영원히 하나님의 뜻만  섭니다. 하나님의 목적만 서시요 하나님은 당신과 같은 자만 존재하고 당신과  같지 않는 것은 다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요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보인다는 거는 영원히 보인다는 말이지요. 장수하므로 이러니까 장수함이란  이것은 시간에 대해서 말한 것인데 하나 말할 때에 전부를 다 드려 내요 시간에  대해서 말한 것인데 하나 말할 때에 전부를 다 드려 내요 시간에 권능에 공간에  범위에 성격에 하나님은 모든 면에 무한하시기 때문에 모든 면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이 무한으로 무한 속에 들어서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 무한으로 그에게  만족케 한다.

그면 무한으로 그가 모든 욕망을 이룬다. 무한적 욕망, 무한적 소망, 무한적  구원. 이래서 '이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면 세상에서는 세상에 보이지마는 영원  무궁토록 이 구원을 무시한 자들에게 영원히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구원에 동참하지 못했던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그들에게  영원히 하나님과 같은 자 되어진 그 자가 어떤 그 존재를, 어떤 권위를, 어떤  영광을, 어떤 한 말로 말하면 구원을 가진 것을 그것을 영원히 나타내리라  그러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에게 성도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 보이는 거라. 하나님의 구원을  약속 세워 놓고 약속대로 이행한 자에 그 약속 이행에 결과가 어떠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이 계약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고 있는 자 이  계약을 이것을 자기가 이용해 먹을려고 삼는 자 자기는 있으면서 이것을 자기의  소지품으로 자기의 소용물로 자기의 이용물로 자기에 필요한 부속의 물로 삼는  자는 헛일이요 이 계약을 이룰 때에 자기가 존재 하느냐 자기가 존재하느냐,  멸망하느냐? 자기의 멸망을 피하고 자기의 존재 이것 위해서 계약을 이루는  자요, 이것 위해서 이 두 가지 계약을 상고하는 자요, 이 계약을 지키는 자,  성경을 내가 읽어서 내가 설교 잘하는 사람, 내가 유명한 사람 많은 사람이 나를  닳는 사람 그것은 다 여유 있는 짓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요게서 읽고 지키는  그 자에게만 필요하지 다른 자에게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자기가 이것을 배워서 대학자가 되겠다, 대설교가가 되겠다,  대혁명가가 되겠다, 대개혁가가 되겠다 이것은 다 먹고 입고 살고 남은 것 있는  자기 영광 위치에 있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에게는 이 성경이 해당치 않습니다.

이 성경은 가루어집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어. 죽느냐, 사는냐 생사 문제 다른 기 없어. 안  죽을라고 살라고 하는 요 촛점에서 이 두 계약을 상종 하는 자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기는 그렇게 그것 때문에 하나님 닮을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본받을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감화 받을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감염될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모형될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 여호와로  피난처 안 죽을라고 살기 위해서 뭐 명예 영광이 문제라 먹을 것 입을 것 명예  영광 지위 평안한 것 다 생명 다음입니다.

 생명 다음 사느냐 죽느냐 이 생명 위치에서 생명 촛점에서 이 두 계약을  상대하는 그에게 성화도 있고 영화도 있고 하나님의 모형도 이루어지는 것이지  모형을 바래서 하는 것도 다 그것을 우리가 교리적으로 알았지마는 그것은  하나에 인간에게 부수적인 위로에 그 말씀이요 또 사실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하는 것이지 우리가 이룰 촛점은 뭐이냐? 여호와로 피난처 삼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말할 것을 영생하는 말씀이, 영생하는 말씀이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영생, 영생으로 안다 여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이 이 계약성을 깨닫고 자기가 생명 그 문제를 가지고서  하는 사람 언제 그 사람이 무슨 이용해 먹을라고 이것 알아 가지고 학자될라고  유명해질려고 그런 것을 벌써 이 구원 그 촛점에 구원 입각에서는 거리가 천리  만리 멉니다. 저 밖에 것입니다. 여게 해당되지 않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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