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에서 건짐 받는 길-계명지키는 것

 

1987. 6. 29. 새벽 <월>

 

본문:시편 91편 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 신앙 생활은 마음부터 자기가 사로잡아서 이용할 수 있어야 되지 자기 마음을 자기가 사로잡아서 사용하지 못하면 모든 생활은 다 실패됩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조심하는 것보다 자기 마음에 대해서 조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물질이나 또 이런 운동 저런 운동 모든 것을 자기가 다 점령했다 할지라도 제 마음을 제가 점령하지 못했으면 다 실패입니다. 모든 것을 점령하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점령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마음을 단속을 해서, 이 마음이라 하는 것도 영 다음에는 능력 있는 건데 이 마음은 굉장히 빠르고 또 그 힘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붙들고 마음을 사용한다고 하면은 그 마음은 이 피조물 중에는 자기 마음이 자기에게 제일 필요 있고 또 능력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자기가 잡아 부릴 수가 있다고 하면은 그는 굉장한 보배를 가진 사람인데 사람들은 여게 대한 가치를 잘 몰라서 땅위에 무슨 돈이나 사건이나 사람이나 그런 것을 자기가 취하기 위해서 마음을 빼앗기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라면 헛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신앙 생활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고 이 마음을 단단히 단속해서 이 마음이 제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이것을 하나님과 연결된 요 연결로 자기 마음을 사로잡아 가지고 활동하면 이 마음은 굉장한 능률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 생활은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단속하지 못하고 또 자기의 몸을 단속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우리의 몸은 굉장히 게을한 것입니다. 우리 몸은 굉장히 게을해서 얼마든지 게을하기를 좋아하고 얼마든지 방탕하기를 좋아합니다.

또 우리 마음은 굉장히 부지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부지런해서 이것을 단속 못 하면 큰일나고 몸은 게을해서 또 이것은 단속하지 못하면 큰일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조심과 부지런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조심과 부지런이라.

그래서 요새는 지금 조금 어려움에 대해서 거듭거듭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이 아니고 벌써 일찍부터 하루 삼십 분 특별히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자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자 하는 것을 벌써 계속한 지가 오래 됐습니다.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된다고, 티끌 그것이 뭐 먼지니까 먼지 그게 얼마 안 되지마는 먼지 그것도 모이면 큰 산이 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그것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마는 이 삼십 분 기도를 자기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 기도가 일 년이 계속되면 굉장하고 이 년이 계속되면 굉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중대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인데 중대한 문제는 이 우주의 종말이 언제인지 우리가 모르고 또 우리 개인의 종말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살라고 하는 사람에게 또 이 세상에 온갖 소망을 가지고 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주의 종말이니 개인 종말이니 이 종말을 말하면 아주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이 실패하는 것은 이리 저리 치우치는 데에서 다 실패를 합니다. 우주의 종말을 알고 이 우주와 관련을 가져야 치우치지 안하고 중앙선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또 개인에게도 개인의 죽음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성경이 말씀해 놨습니다. 개인의 죽음이 언제인지 모르는 요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모든 살 일을 해야 그 일이 치우치지 안하고 정상적인 중용을 취해서 성공하게 되지 그렇지 않으면 실패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생각하는 동시에 죽음을 같이 생각해야 되지 사는 것만 생각하고 죽음 생각지 안하면 벌써 치우쳐서 실패했습니다. 또 죽는 것만 생각하고 사는 걸 생각하지 안하면 실패했습니다. 죽는 거와 사는 것을 계속 생각해야 되고 또 이 우주의 종말인 예수님의 재림과 또 이 우주가 우리와의 관련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이것도 같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 그 생각해야 될 중요한 것을 말씀하려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사랑한즉’ 하는 것은 이 조건부입니다. 사랑하면 건지시고 사랑치 않으면 안 건지신다 그런 조건부를 말합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그러면 이거 하나 기억해야 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가 여게 대해서 잘못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이 정의를 우리가 모르면 그만 두숭두숭하고 벙벙해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건 줄을 모르니까 이라다가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라” 그렇게 똑똑히 밝혔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할 것,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 어떤 궁지에서라도 우리를 건질 때에는, 내가 건져 나올 때에는 반드시 뭘 가지고 건지느냐? 주님을 사랑한즉 건진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거 가지고 건지움을 받습니다.

어떤 종류의 환난에 빠져 있을 때라도 거게서 나를 주님이 건져 주시는 그 건져 주심은 꼭 다른 방편 없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이러니까 어려움 속에 파묻힌 데서 하나님의 건지워 주심을 받는 방법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건져 주십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뭐인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꼭 함정에 들었을 때는 주님의 계명 지키면 거게서 구출되도록 계명을 주시는데 마귀란 놈은 우리를 미혹시켜서 그때에 주님이 나를 건져 주실 수 있는 그 주님의 계명은 그때 보면은 그 계명 지키면 자기는 빠져서 완전히 전멸된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해 있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는 방편은 뭐이냐? 내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 방편이라. 그러면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편은 무슨 방편인가? 주님이 내게 네가 이렇게 해라 하는 계명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명 주는 것이 자기 보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으로 그렇게 보여지면 아무라도 그것을 지키지마는 꼭 그때 보일 때는 ‘이거 지키면 나 망한다’ 그렇게 보여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면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제자들이 배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갈라 할 때에 풍랑이 일어 가지고 그들이 아주 위험한 가운데 있을 때에 지금 죽겠다고 위험성을 느끼고 있는데 그때에 주님이 찾아오실 때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물귀신같이 찾아왔습니다. 오니까 다 모두 ‘물귀신이다 유령이다’ 이라면서 놀라서 죽을 지경이라. 그라니까 주님이 있다가 “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실 때에 그들에게 구원이 이르렀습니다.

요거 뭘 보이냐 하면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꼭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은 우리의 주관과 정반대로 오기 때문에 그때에 구원이 아니라 나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오는 것으로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게 곧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인 것을 아는 사람은 다 받는다 그말이오.

왜 그렇게 보이겠습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은 내가 주관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환난 속에 있지 주관으로 돌아가지 안했으면 환난 속에 있지 않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앞에, 불미를 앞에 놓고서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은 불미에 집어넣는다 하니까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구덩이에 결박해 넣는다고 했으니까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때에 어려웠습니까 기뻤습니까? 어려웠습니까 기뻤습니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됐습니까 기쁨이 됐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굉장히 어려움이 됐을 터인데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으니 어려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도 기뻐 하나님 앞에 계속 기도했고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왕이 말하는 데도 하도 답답하니까 ‘왕이여, 아무리 해도 나는 절 안 할 줄 아십시오.’ 그 심령이 얼마나 평안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데에서 그게 어려움이 되어지는 것이지 믿으면 하나님의 큰 구원의 축복을 받고 자기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모든 좋은 기회는 전부 불행스러운 기회랍니다. 이 마귀란 놈이 우리를 미혹시키기 때문에 다 그렇게 정반대로 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주님의 구원은 도리어 더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보여지는 방편을 가지고 온다. 그거는 왜 그러냐? 내 주관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나님과의 정반대되는 주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멸망시키는 것으로 보이고 마귀란 놈이 자기를 멸망시키는 거는 구원하는 것으로 그렇게 정반대로 보이게 된다. 이래서 “네가 지혜로운 줄 알거든 미련한 자가 돼라. 네 지혜의 정반대로 걸어가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즉”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꼭 “당신을 사랑한즉 건지리라” 사랑하는 그 방편을 통해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는 방편을 통해 가지고 우리를 건지십니다.

그러면 당신을 사랑하는 방편이 무엇입니까? 당신을 사랑하는 방편을 통해 가지고 우리를 건집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러면 사랑하면 건지고 사랑하지 안하면 안 건집니다. 조건부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건지실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실 때에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하는 조건에서 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조건으로 가지고 건지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조건으로 가지고 건지신다 하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계명을 지키면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조건으로 온다 그말이오, 계명을 지키면.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씀은 아주 환난 가운데에 큰 능력이 됩니다. 그러기에 평소에도 그러하지마는 이걸 평소에 늘 이렇게 나오는 사람은 환난 가운데에 뭐 건짐 받는 것이 요것 하나뿐인 줄 알기 때문에 환난을 닥칠수록이, 환난을 닥칠수록이 자기가 거게서 건지움을 받을라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환난을 당할수록 자기가 하나님의 구출하심을 받을라고 하면은 그때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 ○○○장로님? 계명을 지켜야 돼. 요거 확고히 잡아야 돼요. 확고히 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환난에 들수록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되겠는데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환난을 받을수록이 환난 가운데 들수록이 우리의 할일은 뭐입니까? 계명 지키는 것. 요거 단단히 가져요. 지금은 요게 우리에게 이해가 되지마는 환난 올 때는 마귀란 놈이 와서 충동시키고 내 주관하고 합작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그런 일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뭐 힘들 것이 없어. 어떤 환난에서든지 하나님이 건질라 하면 문제가 없어. 그걸 우리에게 계시해 보이는 것으로서 불미불 속에 갖다 넣었더니마는 불내음새나 났습니까? 사자굴에 집어넣었지마는 조그매나 상함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뭘 계시하느냐? 불과 같은 어떤 혹독한 그 혹독, 또 사자와 같은 어떤 맹수와 같은 맹수성의 맹수적인 것 어떤 게 있어도 하나님의 계명 지키면 다 그런 것이 자기에게 영광이 되고 면류관이 되고 칭찬이 되지 해하지는 못한다.

그 사람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구덩이에서, 불구덩이에 들어가기를 뭣 때문에 들어갔습니까? 계명 지키느라고 들어갔습니다. 또 불구덩이에서 나오기는 뭣 때문에 나왔습니까? 계명 지킴으로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계명 지키는 이것이, 모든 함정 빠진 데서 구출되는 것은 계명 지키는 이 외에 딴게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요거 하나밖에는 방법이 없어.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야 되지 하나님이 안 높이시는 그 높임을 가면은 나중에 가서 그거는 떨어져 가지고 박살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높은 것 좋지마는, 좋아하지마는 하나님이 안 높여 주는 그 높임을 가지고 다 박살돼서 다 죽는 것이 세상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높임을 받을라면은 뭐이냐?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행위. 하나님을 아는 것은 뭐인 것이냐? 하나님을 아는 행동입니다. 말로만 안다 하고 행동 안 하면 됩니까? “저가 나를 안즉” 하는 그말은 하나님을 아는 행동이라 말이오.

하나님을 아는 행동이 뭐입니까? 간단히 몇 가지만 말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독생자까지 줬으니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행동,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아는 행동,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심을 아는 행동, 하나님은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행동, 이거면 다 돼, 그만 뭐. 이 행동이면 돼. 딴거 아무것도 없어. 이 행동이면 다 돼요. 이라면 높아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지식으로는 말하고 실지로 행동에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머리털 하나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이 혼자 주권하셔 가지고 주권대로 움직이신다.’ 이렇게 입술은 말하면서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와 가지고 ‘이놈 찌른다’ 이라니까 그것은, 그때에 살고 죽는 건 뭐이냐? 살고 죽는 것은 ‘주님이 주권 개별 섭리하시기 때문에 보기에는 이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나를 지금 찌를라고 달라들고 있지마는 이것을 조정하시고 이것을 주권하시는 이, 이것을 조정하시고 이것을 주권하시는 이는 주님이시다.’ 요것을 믿으면 나 위해서 생명까지 버려 주신 주님이 내게 해로운 일을 하겠습니까? 해로운 일 안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먼저 없어집니다. 해로운 일 안 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져.

그러면 그 사람이 생명이 끝날 시간이 됐으면, 끝날 시간이 됐으면 주님 믿다가서 자, 독침 찔려 가지고 죽으면은 그냥 병들어 죽는 게 좋아요 늙어 죽는 게 좋아요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을 양보하지 안할라고 진리를 양보하지 안할라 하다가 죽으면 좋아요? 어떤 게 좋아요? 이미 죽으면은 어떤 죽음이 좋아요? 순교가 좋습니다.

세상에는 순직자도 있어. 또, 자기 직책을 위해 죽는 자도 있고. 순족자도 있고, 자기 족속을 위해 죽는 자도 있고. 순국자도 있고, 다 그거는 세상에서는 위대하다 하지마는 주님에게는 상관이 없어. 주님에게는 꼭 순교, 주님의 십자가의 도, “나와 내 도를 위하여” 거게만은 한계됩니다.

이래서 먼저도 내가 늘 말했지마는 손양원 목사님 그 후계자, 바로 후임인 그 서 목사하고 그때 거게 애양원에 집회 가면서 ‘보자, 손 목사님이 순교당할 때는 살 수 있는 무슨, 살아 남아 있을 수 있는 그런 수명이 많이 있었는데 죽었나, 죽을 때가 돼서 죽었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이미 죽는 죽음을 순교로 죽게 하셨느냐? 한번 알아보자.’ 해서, 나는 성경을 봤기 때문에 그거 아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거 깨닫지를 못해요.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손 목사님이 그때 순교당하실 때에 어데 맞았습니까?’ 이라니까 뭐 여기 가슴에 맞았다고 또 그때 뭐 가슴에 맞아서 뭐 구멍이 있다 하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똑똑히 말해. 그 서 목사가 내게 똑똑히 말했어. 요, 내가 그때 손을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그거는 몰라. 요 총이 요래 딱 갔는데, 요 갔는데 ‘얼마나 피가 많이 났읍디까?’ `아닙니다. 그저 그 껍데기만 살짝 벗겨져서 이랬지 뭐 피도 나지 안했습니다.’ 껍데기만 살짝 벗겨졌어. 그래 내가 있다가서 ‘그런데 그 죽어요?’ `그러니까 이거 뭐 그거 가지고 죽을 거는 아닙니다. 껍데기만 살짝 벗겨졌습니다.’ 서 목사님이 나한테 거짓말 했는지는 몰라도 그래 들었어. 그게 또 성경적이라.

우리의 생명이 주를 위해서 일 초도 일찍 죽지 않는다는 요걸 믿어야 됩니다. 일 초도 일찍 죽지 않습니다.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주님이 내게 정해 놓은 생명에 일 초도 일찍 죽이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때에는 하나님 법칙을 어겼을 때에는 하나님이 상관하지 안하고 자기의 잘못으로 기한 전에도 죽을 수가 있습니다. 기한 전에도 죽을 수가 있지마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데에는 일 초도, 순교당하는 건 하나님의 법대로 살라고 하기 위한 지금 대결하고 있는 그 입장 아닙니까? 그 현실 아닙니까?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일 초도 일찍 죽는 일이 없습니다.

“증거를 마치매” 자기 할 일 다 끝나야 이제 죽는 데는, 끝나고 죽는데 늙어 죽는 사람, 병들어 죽는 사람, 또 불의를 행하다가서 맞아죽는 사람, 또 주를 위해서 순교로 죽는 사람, 여러가지 있는데, 자, 그러면 늙어 죽는 것, 병들어 죽는 것, 남에게 해를 끼치다가서 맞아 죽는 것, 피해받아 죽는 것, 주님과 주님의 도를 위해 죽는 것, 이 죽음 여러가지인데 그중에 늙어 죽는 것, 평안하게 살다가 늙어 죽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병들어 죽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죄짓다가서 해를 받아 가지고 형받아 가지고 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이미 죽는 데는, 죽는 죽음이니까, 주님 나 위해서 죽으시고 나 위해서 고난당하셨으니까 나도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죽는 그 순교되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이것 다 원하지요.

우리가 알고 보면은 순교 못 할 사람 하나도 없어, 알고 보면은. 이러니까 성경을 몰라서 다 이렇게 믿지 않는 데에서 그렇게 모든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홍해 바다 앞에 두고서 뒤에 애굽 병정이 추격하고 있을 때에 그때 입장이야 꼭 같지 뭐 다른 사람이 뭐 있습니까? 꼭 같앴는데 그 모든 사람은 뭐 기절할 만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두려워서.

그런데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은 아주 좋아서, 두려워하는데 ‘두려워하지 말아라.

오늘 또 우리 하나님의 솜씨를 한번 보자.’ 얼마나 좋아했소? 그거 뭐 어데서 나왔습니까? 그 두려움과 그 평강이 어데서 나왔습니까? 두려움은 어데서 나왔소? 두려움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한 소리로? 다 말해 봐요.

다 큰 소리로 말해 봐요. 이거 이래야 인이 꽉꽉 박여서 속에 꽉꽉 박히지, 우리에게. 그때 그 두려움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불신에서 나왔었어. 주관이라 하면 내나 되기는 되는데 그때는 불신이라 하는 게 더 좋아요? 안 믿는 데서 나왔어, 안 믿는 데서. 불신에서 나왔어.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그런 가운데서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한 그 행복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믿음에서 나왔어. 불신에서 고통이 나왔고 믿음에서 행복이 나왔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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