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있는 목적과 피난얻는 방편

 

1988. 4. 15. 밤

 

본문 : 마태복음 10장 18절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6 절로 17절까지의 것은 같은 건을 가지고 말씀하셨고 18절은 새로 되는 다른  건입니다. 그래서 ‘또’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기독자의 구원의 성공은 언제든지 밤중에 있습니다. 마태복음25장 비유에  밤중에 신랑 왔고 또 신랑을 영접하는 유일한 자격은 등불 든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지마는 등불이 없는 사람들은 신랑을 영접하지 못했고 등불  있는 사람들만 영접했습니다.

 거기에 밤중이라 그렇게 말한 것은 어떤 사건이든지 그 사건으로서는 제일 악의  세력이 강한 때요 죄악이 맹렬하게 날뛰는 그, 어두움의 세력이 가장 강한 때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씀한 짓입니다. 우리가 평소는 평범하고 별 그런  어려움이 없는 보통 때는 무엇을 하는 시기인가? 그것은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평범하고 별 큰 어려움이 없는 그런 때는 믿는 사람들의 그 신앙으로 준비하는  때요.

 그러면 준비해 가지고서 그 신앙생활을 하면 차차 차차 그 신앙생활을 보수해  나가기가 어려워집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밤이 차차차차 깊어가면 어두움이 더  짙어간다.

 그거 모양으로 우리가 신앙 준비할 처음에 시작할 때는 아주 수월하고 쉽고 또  평안하고 그러나 그 신앙생활을 차차 계속해 나가면 점점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해가 기울면 처음에는 초저녁에는 그저 어두침침하다가 밤중이 되면 최고로  어두운 것과 같이 우리 생활에 낮이 있고 또 초저녁이 있고 대 밤중이 있는 거와  같이 그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죄악의 역사가 처음에는 약하고 희미하다가  차차 차차 강해지고 그 죄악의 세력이 맹렬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걸 우리가  자꾸 느끼지 않습니까? 모든,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이렇게 됩니다.

 그럴 때에 그만 사람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고 피곤해서 다 졸며 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라다가 신랑이 밤중에 온다 신랑 온다 맞으라 그렇게 소리가  나니까 모두 처녀들이 일어나 가지고 신랑을 맞이 할라고 지금 차비를 차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평온한 때에 준비해가지고  있다가 환난이 와서 이제는 환난이 닥쳐서 참 그 환난으로 인해서 주님을  영화롭게도 할 수 있고 주님을 기쁘시게도 할 수 있고 참 주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이 증표가 나타날 수도 있는 그런 어려움을 닥치면 모두 믿는  사람들이 다 ‘이 환난이 닥쳤으니까 내가 아무래도 예수님을 배반치 아니하고  이 신앙을 지켜야 될 터인데’. 하고 모두 준비를 하고 다 우성우성 그렇게  합니다.

 그랬는데, 그 기름을 준비 안 한 사람들은 그때에 빛을 등불을 켜지 못해서  그만 낙방해 떨어지고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환난 때에 등불과 같이 이  세상 아, 진리가 빛이요 영감이 힘이요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이  빛인데 이 빛을 그때에 나타내지 못하고 그만 그때에 진리도 배반하고 또 영감도  배반하고 예수님의 대속도 배반하고 하는 사람들은 그 최고의 환난 때에 신앙  승리를 하지 못하고 패전해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언제든지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에 준비하는 시기도 있고 또 준비를 잘했나 못했나 하는 그  실력을 시험하는 그런 때도 있다. 준비를 잘하면 시험에 합격되고 준비 잘못하면  시험에 합격이 안 됩니다.

 이래서, 지금 우리가 삼십 분 기도하는 것도 이 시험에 합격될라고 미리부터 이  환난 오기 전에 매일 삼십 분씩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환난에 대해서  지금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이 환난이 올 때에 바로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환난이 올  때에 바로 깨닫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잘못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끌려가리니’ 이 평소에  준비하고 나서 이 밤중이 되고 환난 때가 오면은, 환난 때가 오면 다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 또 안 믿는 사람들 또 이종교가들 이런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 믿는다고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도 주일도 슬금슬금  범해 가면서 진리 말씀도 지킬 수 있을 때는 지키고 지킬 수 없을 때는 지키지  아니하고 그렇게 널평하게 그만 그렇게 가면은 아무, 핍박이 없는데 꼭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은 핍박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희가 너희를 여기 총독과 임금들에게 넘겨줘서 끌려가게 된다. 여기  17절에 보면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고 또 회당에서  채찍질 한다 그 말씀이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환난 때는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총독과 임금들 앞에 이렇게  고발하고 송사해 가지고서 잡아서 끌고 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감옥에도 갇히고 모두 다 이렇게 당합니다.

 그러면, 성경대로 믿을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예수를 널펑하게 믿는  그런 사람들이 고발하고 송사해 가지고서 안 믿는 사람들과 단합이 돼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총독과 임금들에게 고발을 하고 송사를 해서 끌려가게 됩니다.

 잘 믿을라고 하는 성도들을 외식 신자와 모든 불신자들 또 이 종교가들 이런  사람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서 그 세력으로서 진실되이 믿을라고 하는 사람들을  총독과 임금들에게 고발하고 송사해 가지고 소송을 해서 붙들려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끌려가는 사람이 있고 이제 소송해서 끌려가도록 하는 사람이 있고,  끌려가도록 고발하고 이래 내나 고소해서 끌려가게 하는 사람 있고 또 그 고소를  당하고 고발을 당해 가지고서 끌려가는 사람 있고, 그라면 사람이 몇  종류입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두  종류지요, 두 종류,  고발 고소하는 사람들 하나 있고 또 거기에 고발과 고소를 당해서 끌려가는  사람들 하나 있고 둘 아닙니까? 둘 있지요.

 둘 있고, 그러니까 총독들과 임금 총독은 그 식민지를 다스리도록 하는 그런  책임자를 총독이라고 하고,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일본나라에서 총독을  보냈습니다. 임금이나 이런 사람들은 다 정권자들 정치가들 정권자들, 뭐 큰  정권이나 작은 정권이나 그거 다 모두 통틀어서 이렇게 말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리에서 제일 세력 있는 사랑, 또 지방에 세력 있는 사람,  학교에서는 세력 있는 그 학교 선생들, 학교 같은 데도 안 믿는 사람 가득 찼고  믿는 사람도 외식으로 믿는 사람도 있고 진실되이 믿는 사람들 있는데 외식으로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한덩어리입니다.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진실되이 믿을라고 하는 사람들을 고발을 해가지고 이  국기배례에 절 안 한다, 무슨 신사참배 안 한다, 저거는 주일날 꼭 예배당에  간다고 학교에서 행사를 하는데 안 온다, 또 무슨 뭐 과외 공부 같은 것도  하는데 저거 예배드리는 시간이라 하고서 안 온다, 그래 가지고 ‘아무것이는  빠집니다.’ 그 빠지니까 덕이 안 된다, 그 사람이 바지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들었다, 그러니까 그거 바지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야 되겠다 이런 뭐 종류들에  그런 것이 크고 작은 것이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아주 외식으로 잘못 믿는 외식 신자들, 인본주의로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은 한 덩어리, 또 잘 믿는 사람들은 한 덩어리 이래서 두 종류가  있는데, 그 세상에 속한 안 믿는 사람들과 외식으로 믿는 사람들 그들이 단합을  해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고발해가지고 선생들이 그를 잡아다 놓고 벌을  키든지 또 나라에서 그런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이렇게 뭐 형을 주고 고문과  고형을 하면서 이래하든지 이런 성질이 있다 말이오. 이러한 일들이 있어.

 그라면, 그 고발을 당하는 사람과 고발하는 사람과 두 사람이 있는데  고발당하는 사람이 볼 때에 고발당하는 저거는 세력이 없고 아주 그 참 약하고  고발하는 사람들은 강하고 세력이 있고 그렇게 이제 보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럴 때에 믿는 사람 가운데에서 보기를, 저들은 지금 고발하고  고소하고 하는 그 사람들은 아주 세력이 당당해서 위에 있는 총독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고 임금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고 학교로 말하면 학교 선생들하고 한  덩어리고 그들은 세력이 있고 이들은 세력이 없습니다.

 세력이 없으니까 믿는 사람들이 그때에 생각하기를, 저 안 믿는 예수도 잘 못  믿고 하는 저런 사람들이 세력이 있어 가지고서 이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고 형을 주고 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들과 고발당해서 끌려가는  사람들과 두 사람을 두고서 비판을 할 때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세력이 없고 끌고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세력이 있고 이라니까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도와주시옵소서. 저들이 지금 우리를 끌어다가 고문과 고형을  시킬라고 지금 저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조그만한 것으로 학생들로 말하면 ‘저들이 세력이 커 가지고서 우리를  고발해서 지금 선생님들에게 국기배례 안 한다고 신사참배 안한다고 단군신사에  절하지 안한다고 형을 줄라고 저렇게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말이오.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지 안하십니다.

 저걸 그만 없에 주십시오. 없애서 우리를 고발하는 그 사람들을 무슨 그만  감기가 들게 하든지 그리 안 하면 그만 아파서 그만 쪼그라지게 하든지 그리 안  하면 감동을 시키든지 해 가지고 우리를 형벌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기도를 합니다. 암만 기도해도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지  안하십니다.

 이러니까 생각하기를, 공연히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이래 떠들어 쌓고 이래  쌓아도 그 하나님이 계시면 뭣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애매하게 억울하게 이렇게  고통을 당하도록 고발 고소를 당하도록 이렇게 할까?   이러니까, 그때에 대개는 믿는 사람들이 제가 믿고 있는 그 편이 약하고  상대방이 강하고 저거 편은 가련하고 비참하고 상대편은 권세있고 존영해 그래  보이게 됩니다. 그래 보여서 믿는 사람들이 그만 그럴때에 낙망을 하고 낙심하고  비관하고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뭐 울뚝 바람으로 자기도 그렇게 암만 당해도 핍박을 당하고 끌림을  상하고 고소 고발을 당한다고 해도 나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 이렇게  처음에는 장담을 했지마는 차차 차차 그 일이 짙어가서 그 형벌이 한 달 가 두  달 가 이렇게 점점 심해지게 되면 그만 사람들은 ‘하, 공연히 예수 믿는 거 뭐  백지 목사님은 강단에서 하나님이 전능자라 하나님이 전능자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믿고의 지 채라. 담대해라. 문제없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무슨 문제고?’ 이렇게 큰소리 해 쌓지마는 실상 보니까 안 믿는 그 사람들이  세력있고 믿는 사람들은 이거 다 이렇게 모두 다 정죄를 당하고 이렇게 고발  고소를 당해 가지고 비참하게 된다.

 이렇게 그때 당할 때에 당하는 그 신자들의 입장과 처지가 약해보이고 비참해  보이고 가련해 보이고 이라기 때문에 그만 예수 믿는다는 말도 하기가  부끄러워하고 그때에 믿는 주장을 내세우기가 부끄럽고 이래서 처음에는 좀  섭섭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그만 의심이 나오고 낙망이 나오고 비관이 나오고  이래서 ‘에이, 뭐 이래 믿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고서 그만 낙심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고발을 하고 고발을 당하고 하는데 고발을 당하는 사람들은  뉘 편에 서서 있습니까? 하나님 편에 서서 있지요. 그렇지 안해요? 고발당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안해요? 또 고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편에 서서  있습니까? 세상 편에 서서 있습니까? 세상 편에 서서 있지요.

 그러면, 고발당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 같이 하는데, 같이 하고  고발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한 덩어리 돼 가지고 고발하는데 그때에 누가 세도가  강하고 누가 이깁니까, 누가 강합니까?  그때에 강한 사람은 고발하는 사람들이 강하고 고발당하는 사람들은 아주  미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그만 예수 믿는다는 소리도 하기  부끄럼고 그만 그리 됩니다. 믿는다고 하기도 부끄럽고 믿었던 것이 뭐 후회도  되고 믿을 용기도 나지 안하고 고발하는 고사람들은 보면 두려워하고 커져  보이고 높아 보이고 세력도 있어 보이고 고발당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같이  한다 하지마는 이렇게 뭐 억울하게 애매하게 당하고 있으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이 너무 허무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고발당하는 믿는 자기와 고발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봐야 되느냐 하는 고것을 지금 문제입니다. 잘못보면 헛일입니다.

잘못 보면 헛일이오.

 고발당하는 사람들이 이제, 여러분들이 우리 믿는 신자들은 자기가 바로 알고  바로 깨달을라고 하면은 고발당한 사람들이 강해니까 고발하는 사람들이  강합니까? 고발당하는 사람들이 큽니까? 고발을 하는 사람들이 큽니까? 어찌  되지요?  고 다음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끌려가리니’ 끌려가게 하는 목적이 뭐이냐? ‘끌려가리니 이는’ ‘이는’  끌려가는 이것은, 끌려가는 이것은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이 끌려가는 목적이 어데 있습니까? 끌려가는 목적이 어데있지요?  목적이 증거에 있습니다. 목적이, 끌려가는 목적이 증거에 있어, 증거에. 그러면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끌려가도록 합니다.

 그러면, 목적은 증거하기 위해서 있는데 그러면 이 일에 동기와 시작은, 동기와  시작은, 이 결과인 목적은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한다. 그러면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면은 증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저희라는  것은 총독이나 임금이나 또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이렇게 끌려가게  된다.

 그러면 이 증거하는 이것은 증거하는 것은 누구의 일입니까? 증거하는 것은  누구의 일이지요? 증거하는 것은 ‘증거가 되게 하려함이라’ 증거되도록 하는  것이니까 이 일은 누가 합니까? 증거가 되도록 하는 것은 누가 하지요? 주님이  하는 것이 분명합니까? 주님이 하는 것이 분명하지요? 분명하지요.

 그러면, 이 고발하고 고소하고 끌려가는 사람들이 고발은 누가했소? 목적을  위한 그분이 이걸 시발하지 안했겠소? 목적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는 그 증거를  위해서 이분이 고발하게 했고 고소를 당하게 했고 끌려가게 했고, 그러면  고발하는 사람이나 고발을 당해 끌려가는 사람이나 이 일을 누가 하지요? 주님이  하셔.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걸 똑똑히, 이걸 알면, 지금은 뭐, 지금도 물으면 잘 몰라요. 모르는데 요런  성경에서 꼭 잡아 가지고 있지 안하면 그럴 때에는 다 사람들이 낙망하고  갑니다. 모든 범사에 다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든지 불행을 당하게 된다든지 하면 그것이,  불행당하는 모든 불행 말이요. 모든 불행 모든 어려움. 모든 불행 모든 어려움  그런 것은 택자들에게 신자들에게 당하게 하는 그 목적이 어데 있습니까? 그  목적이 증거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합니다.

 예수님을 세상 임금이 와 가지고서 고문과 고형으로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그러면 저거들은 좋다고 이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죽이고 난  다음에 아주 잔치를 하고 좋아했습니다.

 그 죽이게 하신 이는 누굽니까? 아버지요. 그 죽인 목적이 뭐이요? 하나님의  당신의 영광의 그 구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신자에게 이런 저런 모든 어려움 저OOO교회나  OO교회나 저래 어려움 닥친 그것도 저런 일을 일으키신 이가 누굽니까? 일으키신  이가 주님이시오.

 그러면, 주님인데 그 주님이면 또 그 목적은 어데 있습니까? 목적은 어데  있습니까?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예수  믿는 도를 증거해서 이 사람이 참말로 예수 믿나 안 믿나하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 그거요.

 여기에 고발당한 사람이나 고발하는 사람이나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 고발당하는  사람은 약하고 고발하는 사람은 강해서 고발당하는 사람이 ‘백지 목사님은 뭐  하나님 크다 능력 있다 전능이다 이래 쌓지마는 지금은 보니까 이거 비참하게  몰려지고 이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세도가 크고 세상 나라가 세도가 크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참으로 세력이 큰 줄 알았더니마는 이번에 보니까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막 김치 담듯이 들이 담아 버리고 족치는 거 보니까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세력 하나도 없다. 안 믿는 사람 그 사람들이 세력이 크다.

마귀 세력이 더 크다.’ 이렇게 봅니다.

 그런데, 고발당하는 사람은 ‘우리는 약하다. 고발하는 사람들은 강하다.’  고발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고발당하는 제 입장이 비참하기 때문에 얼른 입장을  바꿔서 자기도 그만 굴복하고서 고발하는 그 편이 될라고 사람들은 애를 쓰고  고발당하는 그 자리는 불행스럽다고 그 자리를 옮겨 설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이게 바로 깨달았습니까? 안 깨달았습니까? 이게 바로 깨달았소 안  깨달았소? 바로 못 깨달았지. 자, 그건 바로 못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고발을 하는 사람과 고발당하는 사람 그 두 사람을 다 그렇게 하게  되고 당하게 되고, 고문과 고형의 고생을 하게 되고 고생을 당하게 되고, 그러면  쌍방 그 쌍방 둘이 다 누구의 단독 역사입니까? 주님홀로의 주권 단독  역사입니다. 당신 혼자 그리 장난하고 계시요. 알겠소? 이것 모르면 신자들이  절단납니다.

 그러면, 뭘 그때 공연히 궈에 질어서 귀걸이 코에 걸어서 코걸이로 그렇게 뭐  하나님이 주권자라 해 놓으니까 고발당하는 사람이나 고발하는 사람이나 그거 다  주님이 하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억지로 끌어다 붙인다고 그래 가지고서  밉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밉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증거하기 위함이라’ 그 목적을 뒀기 때문에 목적을  둔 그분이 모든 것을 시발하시고 모든 동기도 거기에서 하고 또 중간에 방편도  그분이 하시고 그래 가지고서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주님 한 분의 역사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있는데 요 이치이기 때문에, 이치이기 때문에 큰 사건에  갖다 맞춰도 맞고 작은 사건에 갖다 맞춰도 맞고 다 맞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또 인제 모르는 거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그들이 잡아다가 놓고 막  두드려 대고 고문을 하고 고형을 하고, 또 여러분들 이거 기도해야 돼요. 독약  먹이는 거 독약 먹이는 거, 그냥 때리고 해도 이거 좀 뭐 그냥 죽든지 하면 좋을  터인데 이 독약을 먹이면 사람이 이 모든 신경과 정신이 훼딱 뒤비지기 때문에  그만 사람이 안 돼.

그래 독약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항상. ‘주여 독약을 먹이고 독침을 찌를  지라도 그 독으로 인해서 내 정신이나 마음이나 변해져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맡겨 놓고 순종하는 이것이 변질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래 모두 기도합니다.

 O조사님 기도 해 봤어요, 그 기도? ‘장기간 고문과 고형, 또 독약 독침 앞에서  내가 주를 향한 믿음이 사랑이 변치 앓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기도해  봤어요 저 O 조사. 해 봤어? 그래 해 봤으면 됐어. 많이 해야 돼, 많이. 그냥  그때, 그때 가서 그때 당해 가지고 어려운 그걸 생각하고 지금 많이 해야 돼요.

 그렇게 ‘나를 인해서’ 여기에 보니까. 또 너희가 나를 인해서 끌려가, 나를  인해서. 예수 믿는다고 끌려가고 진리 지킨다고 끌려가고 진리 어기지 않는다고  계명 어기지 않는다고 끌려갔으니까 끌려가 가지고 지금 뚜드립니다. 끌려가  가지고 뚜드리기도 하고 고문도 하고 가두기도 하고 또 굶기기도 하고 별별  고문과 고형을 할 때에 그때에, 자, 그들이 예수 믿는다고 그렇게 하고 잘  믿는다고 그리 하고 계명지킨다고 그리 하니까 그때에 그들에게서, 고문받고  있는 거기에서 자기가 피하는 길, 자기의 그 모든 고통을 피하는 길, 거기에서  해방 당하는 길, 그런 방편,  그들이 그렇게 ‘너 이놈아 예수를 그렇게 믿기 때문에 너는 죽인다’ 그리 안  하면 ‘항복을 해라. 항복을 해라. 이제 이제는 계명을 어기겠다고 해라.’ 이래  자꾸 고문과 고형을 할 때에 그때에 거기에서 피난 얻는 방편, 거기에서 고통을  면하는 방편, 거기에서 구출되는 방편 그 방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방편은  무엇이겠소?  ‘너 지금도 네가 꼭 주일 지키겠다고 고집을 해? 그라면 임마 너는 감옥에  썩어.’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거기에서 그 곤욕과 고통에서 놓여나올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놓여나올 수 있어?   O조사. 증거하는 일이라? 엉뚱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예수 믿는다고 주일을  계명 지킨다고 지금 막 뚜드려 때는데 ‘그라면 내가 계명 내가 안  지키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 안 믿겠습니다.’ 이래야 그때 놓여나오지 자꾸  예수 믿는다고 증거를 더 해? 더 뚜드려 맞을라고?  네, 그럴 때에 사람들은 깨닫는 것이 다 얼추 깨닫는 것은 ‘아이구 이러니까  내가 나갔다가 뒤에 잘 믿을 지라도 우선은 이거 항복을 해야 여기에 형벌을  면하겠다 곤경을 면하겠다. 그만 저자 만하는 대로 내가 그렇게 좁게 그렇게  독실히 그래 믿는 그런 일을 그만 안하고 좀 신앙생활을 어째 좀 널평하게 그만  그래 하겠습니다.’ 이라면 그 사람들이 대번 놔 줄 거라 말이오. 그렇지.

그라면 그만 놔 주지.

 이러니까, 그때에 신자들이 대개는 예수님과 진리 때문에 붙들려 들어와  가지고서 고생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진리를 내놓으면 그 고생에서 면해질 줄로  벗어질 줄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백의 구십구입니다. 알겠습니까? 지금은 그런  일 닥치지 안한 데서, 말하니까 사람들이 판단이 다르지마는 그때는 다르요,  자, 신사참배 하면 사업도 못 하게 한다. 전부 학교 퇴학을 다 한다. 저 손명복  목사님도 뭐 여기에 강단에 설교할 때에 그때에 자기 아들 퇴학 다 당했다  했지요? 그 신사참배 안 할라 하니 퇴학 다 당했다고 안합디까?   이렇게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과 진리 때문에  잡아다 가두고 형벌을 주면서 예수님과 진리를 내놓으라고 하니까 내가 여기에서  이 고통을 면 하는 것은, 고통을 면 하는 것은 예수님과 진리를 내놓는 그거  밖에는 없다. 그것이 제일 쉬운 방편이고 이 고통을 면 하는 방편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 모든 신자들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압니까?   다 그렇게 판단을 하고 그렇게 깨닫고 판단을 해서 그만 그 환난이 온다 하면은  신앙을 배반하고 그만 슬슬 숨어 버리고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일반에  다 깨달음이라 그말이오. 다 그래 깨달아요. 그 사람들이 막 자꾸 형벌 주니까  이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되겠고 이 사람들에게 들어붙어야 되겠고 이 사람들  하라 하는 대로 해야 되지 이 사람들이 미워하고 예수 잘 믿는다고 진리 때문에  잡아 가지고 왔는데 내가 여기에서 예수를 더 잘 믿겠다고 진리대로 내가  하겠다고 이렇게 하면은 여기에서 내가 지금 고통을 더 받고 죽어 나가겠다  이러니까 그자리에서 그 어려움을 면해 나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예수 믿는다고 잡아가고 또 진리대로 고대로 고집해서 진리대로 믿는다고  이와같이 잡아가고 했으니까 그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에 그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그 고문과 고통을 면해 나올 수 있는 길입니까?   이제는 예수님 믿는 것을 그만 좀 널펑하게 믿고 진리 지키는 것도 ‘내야 뭐  그래 안 믿지요’ 이제는 그만 지킬 때는 지키고 안 지킬 때는 안 지키고 ‘예수  믿는 것도 그저 당신들 말 들어가면서 내가 예수 믿지 당신들에게 거스려지는  그런 내가 예수를 안 믿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그것이 그때에 어려움을 면하는  길이겠습니까 그때에 더욱 더 예수님을 잘 믿을라고 하고 성경 말씀을 더 고대로  지킬라고 하는 그것이 그때 형벌에서 풀려나오는 것이겠습니까? ‘  그러면, 처음은 내놓는 거, 두 번째는 더 잘 믿을라고 하는 거 이 두 가지 중에  그러면 처음이 그 형벌에서 놓여나오는 방편이겠습니까? 이제 둘째가 놓여나오는  방편이겠습니까? 자,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처음이 거기에서 그 고통 고문  고형당하는 데에서 거기에서 놓여 나오고 풀려 나오는 그 방편이라고 생각이  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안 들어?   형사들이 말이지요. 형사들이, 그러면 학교 선생들이 ‘너 국기배례 안 해?’  ‘아무것이 국기배례 안 했습니다.’ 하니까 잡아다 놓고서 그 벌을 씌우며  ‘국기배례 안 하면 너는 학교 퇴학을 해야 돼’ 이랄 때에 거기에서 퇴학을  한다 하고 아주 벌을 키고 이라니까 거기에서, 그 벌 키고 퇴학당하는 거기에서  형벌과 아주 퇴학당하는 그 어려움의 환난에서자기가 벗어나는 것은, 벗어나는  것은 선생님들 말대로 이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고것이 거기에서  벗어나오는 길이겠습니까, 요거 첫째.

 또 거기에서 ‘나는 뭐 퇴학을 당하고 어떻게 해도 형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국기 배례는 할 수가 없습니다.’ 요렇게 하는 것이 거기에서 벗어나오는  길일란지 어느 것이 벗어나오는 길일란지?  첫째가 벗어나오는 길이겠습니까 둘째가 벗어나오는 같이겠습니까? 첫째가  벗어나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봐요. 둘째가 벗어나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봐요. 손은 들기는 잘 들었는데 어쩌서  그런지?  어째 그라면 ‘나는 국기배례 안 할랍니다.’ 이라면 자꾸 국기배례 안한다고  잡아다 놓고 뚜드리고 형벌하고 지금 퇴학시킨다 하는데 ‘국기배례 안  할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학교 퇴학도 안당하고 형벌도 안받고 그라는  길이라요? 어째 그래?  ‘내가 뭐 이제 시키는 국기배례 하겠습니다.’ 이래야 퇴학도 안 당하고  형벌도 안 받지요. 그렇지 안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대답하는 것이 이상하네.

팔은 들기는 옳게 들었어요, 들기는. 옳게 들기는 들었는데 어째서 그래 되는가?  이걸 알고 드는지 모르고 드는지 모르겠다 그거요. 팔을 들기는 옳게 들었어.

 지금 신사참배면 신사참배, 또 공산주의. 빨갱이들이 와 가지고서 ‘네 이놈들  예수 믿기 때문에 지금 잡아 놓고 죽일 터인데 지금이라도 안 믿는다 하면 내가  살려 둘 것이고 예수 믿는다면 잡아 죽일 것이다’ 이래가지고,  저 이리에 내가 그 어떤 집사 하나 만났는데 6.25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다  놓고 ‘너거 우리에게 협동 안 하고서 예수 믿으면 다 잡아 죽일란다. 그러면  지금 베수를 안 믿는다 하고 우리에게 협조 하겠다 고서 하면 너거는 다  회개하고 들아왔기 때문에 귀순한 사람이라. 돌아온 사람이라. 귀순한  사람이니까 너거는 다 살려 두겠고 안 그런 사람은 다 죽이겠다.’ 이라니까  전부 다 귀순했습니다.

 전부 다 ‘내가 예수 안 믿고 당신들 시키는 대로, 예수를 믿어도 당신들  법도에 따라서 하라 하는 대로 예수를 믿겠습니다.’ 다 이래 항복했어.

 그라고 그 항복 안 한 사람은 그 몇 명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딱 항복하고  나니까 ‘항복한 사람들은 당신들은 우리 편이니까 사흘 만에 한번씩 이 정세를  보고해 주십시오.’ 그 사흘 만에 한 번씩 오면 ‘수고했습니다.’ 이 보고 하면  좋다고 이래 하는데 마지막에 보고 하러 가가지고서 안 나와. 이 사람들은  후퇴하는 걸 몰랐지만 저거는 후퇴하는 걸 미리 알았거든.

 안 되니 후퇴해야 된다 아니까, 마지막에 갔을 때에는 딱 가둬 놓고 조금 여기  지금 앞으로 좀 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나가면 큰일나니까 조금만 머물러  가지고 나가십시오’ 그래 딱 가둬서 딱 뒀다 말이오. 딱 두고 시간이 딱 되니까  다 요래 야전 줄로, 야전 줄 그게 질기요. 안 떨어져. 요래 가지고 전부 싹  묶어다가 그 학교에, 그 학교가 너른데 그 큰 학교, 국민학교인데 그 운동장을  저거더러 파라 하고 딱 요래 해가지고서 총들고 파라 해 가지고 그 깊이 팠어.

한층 여기 들어가거라, 안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요래 묶였는데,  그뭐 안 들어가고 거기 죽었으면 죽었지 또 뭐할라고 들어갑니까? 인간은  연약해요. ‘안 들어가면 다 죽인다’ 다 죽지 않기 위해서 묶여서 죽으러  들어가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안 죽기 위해서 그 구멍이 들어가는 거라. 알아요?  생의 애착욕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아요, 여러분들?  들어가니까 또 ‘너거가  묻어라’ 한층 묻고. 그래 뭐 네 층인가 다섯층인가 묻었는데 장로 한 분이  들어가서 죽었는데 나중에 그 조카가 파낼라 하니까 그 밑에라고. 조카는  집사라. 집사인데 ‘그럴 수야 있나’이래 가지고 그는 그 항복 안 할라고  지하실에 가 가지고서 무 구덩이인가 가 가지고 숨어서 그래 그 인제 피난해  살았어.

 그래 나와 보니까 그때 살기 위해서 한 사람들은 다 죽어 버렸어. 살기 위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죽었어. 죽어도 예수 안 내놓는 사람들만 살았고.

기이합니다.

 여기에, 이렇게 공산주의들이 와 가지고 이럴 때에 그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지금 잡아다가 형벌 줄 때에 그때에 사는 길이 뭐이라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예수 내놓으면 살리겠다. 용서해 주겠다. 예수를 믿는다고 끝까지 고집하면  죽인다.’ 그랄 때 그때에 사는 길이 뭐이라요? 사는 길이 뭐입니까?   사는 길이 예수님을 내놓고 부인하는 길이 사는 길이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이 사는 길이요 어떤 게 사는 것입니까? 믿겠다고 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봐요. 이상하네. 어째 그래요, 그라면,  어째  믿겠다고, 믿는다고 잡아 죽일라 하는데 안믿는다고 해야 놓이지. 믿는다고 잡아  죽일라 하는데 그 믿는다 하면 잡혀 죽지 믿는다 하는 것이 안 죽고 그 살아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 천치 바보 소리 같은 걸 하고 있네. 천치 바보 소리를  하고 있어.

 예수 믿는다고 잡아가 가지고서 ‘네가 예수 안 믿는다 하면은 놔 줄 것이고  예수 믿는다 하면. 잡아 죽일란다’ 이라는데 예수 믿는다 하는 것이 거기에서  살아나온다, 예수 안 믿는다 하면 죽고. 어째 그래, 그라면? 어째 그래?  여러분들이 손은 바로 들기는 들었는데 어째 그런지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인지 내가 모르겠다 그거요.

 이제 알 만한 사람 저 하나 말해 볼까? OOO 조사님. 한 번 대답해 보이소. 이거  들어 맞추면 그만 묵 올라가서 지’금 OOO교회가 쑥 올라간다. 우리 조사 저 참  아주 똑똑히 아는구나 싶어서. 대답 한 번 해봐. 잘 믿기를 원하니까 그렇다.

주님이 잘 믿기를 원하니까 주님이 구원해 준다 그말이지. 그저 육십점 줄까?  비싸게 해도 육십점.

 어째 그래? OOO 목사님, 아멘! 목적이 그분이 동기 방편 목적 다 그분 혼자  주권으로 하는데 그분의 목적에 딱 맞았기 때문에 합격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고발하는 사람 고발당하는 사람 이거 다 누가 지금 한 공작이라요? 주님이 하신  공작이오. 이 공작한 것은 목적이 어데 있습니까? 증거하는 그게 목적이라.

당신의 목적에 합격이 됐으니까 주님께서 그를 높이 들겠소 안 들겠소?  그럴 때에 살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안 하고 제 꾀대로 하는 자는 야  이놈아 쓸데없는 놈아 하고서 다 없애 버려. 알겠어? 이러니까 이리에서 그렇츰  많이 죽었다 그거요,   이것이 그럴 때에 목적이 예수 믿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목적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증거한 사람은 그 공작을 꾸민 그분이 그를 구원하겠습니까?  버리겠습니까? 구원하겠소 버리겠소? 구원하십니다. 이 성경을 가지고 보고서  따져 가지고 요래 꼭 잡고 알아야 되지 그냥 이 말하는 거는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자, 그러면 고발하고 고소당한 것 그 고소당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입니까 세상편입니까? 하나님 편. 고소하는 사람은 누구의 순종으로 고소를  하고 있습니까? 누구의 순종으로 고소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순종으로 고소하고  있어. 저는 주님을 반대하면서도 주님의 그 전능하신 능력에 결과적으로  이용당해 가지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발하는 자나 고소를 당하는 자나 형을 주는 자나 형을 받는 자나다 주님의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홀로의 주권대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요것을 똑똑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성경에 그래 있지 안해요, 요 성경에?  이랬는데, 그 형을 당하는 것이 ‘나를 인하여’ 예수님 때문에 형을 당하는  것이니까 그 형을 면하는 것은 예수님을 내버리는 것이 형을 면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껍데기로 바로 이 직감적으로 껍데기로 생각했소 고  이면에 구속의 도리를 생각한 사람입니까 껍데기로만 생각했습니까?   껍데기로만 생각하면 예수 배반해야 될 줄 알고 죄를 지어야 될 줄 알고, 모든  사람들이 이래 가지고서 시험에 다 패전하고서 다 비참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그 목적이 주님이 그 일을 예수 믿는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랑으로 나타내야 주의 구원을 받겠습니까? 도우심을  받겠습니까? 예수를 부인해야 도움을 받겠습니까? 뭐이요? 네, 주님을 믿는 자  돼야 도움 받지 주님을 부인하면 도움 받을 리가 있습니까? 안 도와 주신다  그말이오. 이 비밀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요걸 잘 깨닫고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증거가  되게 할라고 주님이 하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껍데기로 생각하면 끌려가면서 끌려가는 저는 세력 없고 끌려가는  저는 예수님이 세력 없고 예수 믿다가 끌려가는 저는 비참하고 예수님도 능력  없고 끌고 가는 사람들은 영 존귀하고 그 사람들은 세력 있고 요렇게 보기 쉽다  말이오.

 그때 바로 볼라면 어떻게 봐야 돼요? 예수님이 세력이 있어요. 이제 끌고 가는  그 사람들이 세력이 있어요? 누가 세력이 있어요? 예수님이 세력이 있어요.

 끌고 가는 사람도 주님의 작용 끌려가는 사람도 주님의 작용 둘 다 주님 당신  한 분의 주권 역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박첨치가 뭐 바가지 박첨지 떡 쓰고  있을 때 그 속에 누군지를 모르면 막 수염 달고 하면 뭐 무섭지마는 서도 내나  저거 형님이 박첨지 바가지 쓰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이면 무서워 할 턱이 있어?  휘뜩 들면 저거 형님인데. 막 수염이 이래 나고 이 박첨지를 그거 뭐라 하노,  요새는? 말. 이, 말 이래 쓰면 사람들 뭐 보고 놀래지 안해요? 그 속에 누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웃기만 웃지 무서워하지 안해요. 알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이 보이는 것 속에 주님이 역사하는 이 주님의 역사를 다 아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어. 무슨 크고 작은 것 다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지금 우리 교회에서 OOO교회 된 그런 일도 그걸 그렇게 하는 일도  주님이 하고 계시는 거, 또 이쪽에서 또 그거 죄되지 아니하는 한까지는, 또  지킬라 하는 것도 주님이 하고 계시는 것. 그러기 때문에 고 주님을 보기 때문에  주님의 비위에 맞춰서 주님이 하게 하는 데까지만 하지 고 이상은 일보도 안  넘어갑니다. 일보도 넘어가지 안해요. 하게 하는 데만 딱 하고 그치요.

 이래 놓으니까 마귀란 놈이 성경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뭐 항상 해봤자 이용만  당하지 그놈들 수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문과 고형을 당할 때에 고문과 고형하는  사람들은 세도가 있어 보이고 고문과 고형을 당하는 사람은 나는 약해 보이고  나는 비참하고 가련해 보이고 그들은 존영해 보이고 이렇게 보기 쉽다 그  말이오.

 나한테 고문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껍데기는 그 사람들이지마는 서도 그  속에는 주님이시거든.

 이러니까, 독침을 가지고 찌를라고 이래 하는데 이래 하는데 실은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찌를라 하는데 그럴 때에 누가 찌르요? 주님이 찌를라고 해요.

주님이 찌를라고 하셔.

 이러니까, 그때에 ‘주님이여- 속으로 그 말 안 해도- 주님 나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나도 죽기까지 주님 한 번 좀 사랑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찔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라는 사람, 또 그 사람은 두려움이 없어.

 선교사가 선교하러 갔다 오다가 풍랑을 만나 가지고서 지금 선교사는 드러누워  자는데 사모님이 그 옆에 있다가 보니까 막 풍랑이 일어나가지고 지금 죽을  지경인데 남편이 돌보지도 안하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좀 너무 섭섭해서 이래  흔들며 이래 가지고 막 흔들며 여보 당신 당신만 자면 되느냐 나는 이거 정말  죽겠다고서 막 죽겠다고 이라니까, 풍랑이 일어 죽을 지경인데 이렇게 모르는 척  하고 자꾸 누워 자고 있다고.

 그래 아무말도 안 하고 일어나더니만, 옛날은 칼을 가지고 다니며 선교했어요.

야만 지방에 가니까. 칼을 한 자루 쑥 꺼더니마는 성을 내가지고 콱 찌를라  이라니까 따그르르 웃거든. 마누라가 따그르르 우는다 말이오. ‘왜  웃소?’이라니까 당신이 날 뭐 사랑하니까 찌르지 안 할 줄 알기 때문에 웃는  거라.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이 바다 가운데 뭐 매장할라고 하셔?’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서. 그래 그만 그 부인이 그만 회개를 해 버렸어.

 우리가 꼭 환난을 당하고 환난을 주는 사람 그 둘이 다 주님의 작용이라는 것을  그걸 깨닫지 못하면 환난당한 자기는 비참한 것으로 알아 가지고서 낙망하고  비관하고 이래 가지고서 실패합니다.

 그 둘 다 주님이 홀로 주권하셔서 작용하시는 그 주님의 한 분의 주권 섭리로  되어지는 요 비밀을 알아야 되고, 그러면 그렇게 하는 목적이 어데 있느냐?  목적이 무슨 환난이든지 환난 그 환난에서 예수 믿는 게 어떻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라. 보여 주기 위함이라.

 뭐 그래 이번에 말이오. 그 모두 이 대가리를 쥐뜯겨서 머리 다 쥐어 뜯겼대요.

머리 당 쥐 뜯고 막 욕도 하고 이라는데도 그라니까 그 사람들이 있다가서, 하,  그거 참 이상한 물건들이라. 머리를 쥐뜯고 막그래 욕을 그렇게 해도 욕 한  마디도 안 하지, 뭐 머리를 막 여자들이 머리를 막 쥐뜯고 이렇게 해대도 하나도  달려 들지도 안하지, 욕도 안하지, 대신 뚜드리지도 안하지, 별 물건들이라고서.

 그라니까, 그 조사 하나 문 지킨 조사가 있다가 떡 말하기를 ‘하, 이백 목사님  교훈이 아니면 다른 진영에서는 이만치 가 놨으면 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란다고. 그게 뭐이냐? 그런 것도 다 예수 믿는 증거하기 위함이라. ‘예수  믿는 건 이런 것이다’ 증거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역사라, 모든 역사가.

 총독들 임금들 앞에 가 가지고도 예수 믿는 건 이렇다 하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주님이 그런 계획을 가지고 하시는 그것이니까 사랑하는 자가 나를  당신을 증거하기 위해서 계획해서 하시는 것이니까 거기에 이용당하니까 얼마나  좋고 얼마나 기쁩니까? 내게 손해가게 그분이 하지를 안한다 그말이오.

 그거 알고, 그러면 그때 예수 믿는다고 큰 고문과 고형을 하는데 그때 고문과  고형을 면하는 방법은, 예수 믿는다고 고문과 고형을 하고 있으니까 고문과  고형을 면하는 방법은 예수를 믿는다 해야 돼요 예수믿는 것을, 그만 둬야 된다  해요? 그만 둬야 된다 해요?   껍데기로 보기는 예수 믿는 일을 그만 둔다 하면은 그만 당장 형벌이 없는 것  같지마는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은 죽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아노라 하고서  믿는 것을 강조하면은 대번 죽을 것 같지마는 그 사람은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생명을 버건 자는 살리라 그렇게 말씀한 것이 이런 비밀들이라 그말이오.

 그 다음에 또 내일 아침에 하겠는데, 이제 그러면 여러분들이 자,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 껍데기 예수 믿는 사람 고 안에 속껍데기 믿는 사람 더  속껍데기 있는 것. 이래 가지고 속을 알맹이를 알아 가지고 알맹이를 따라서  움직여야 되지 알맹이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껍데기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건  다 외식자이기 때문에 다 실패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넓은 길이라 넓은 문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언제 오늘 아침에 주석을 보니까 어떤 유명한  주석을 보니까 ‘그거는 세상 사람들 살고 있는 것이 다 넓은 길이고 좁은 길은  예수믿는 사람들 사는 길이 좁은 길이라’ 그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 넓은 길을  말한 겁니다. 넓은 길을 말한 건 안 믿는 사람들을 말한 게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 넓은 길 말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 좁은 길을 말한다 그거야.

 그러면 지금 자기가 형벌을 당하고 있는 데에 예수를 증거해야 거기에서 구원이  된다. 예수를 내놓으면 당장 구원된다. 그러면 예수를 내놓으면 당장 구원된다는  그 길은 좁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OOO 목사님. 예수 믿는다고 잡아 죽일라  하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그거는 좁은 길이요 넓은  길이요? 예? 안 들려, 좀 크게 해 봐. 그게 좁은 길이라, 그게 좁은 길.

 이 진리, 요게 대한 이치가 몇 가지냐? 이치가 다섯 가지라. 다섯 가지라니?  이치는 하나뿐이지. 옳은 이치는 하나뿐이데, 옳은 이치는 하나뿐인데 다섯  가지가 이거 이래 있다. 이것도 떼놓고 이것도 떼놓고 다 떼놓고 그게 옳은 이치  하나만 되는 거 최종에 하나만 되는 고걸 찾아가지고 가는 것이 그게 다 좁은  길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좁은 길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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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환난과 피난/ 시편 91장 1절-16절/ 1980. 5. 21.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112 환난때에 더욱-믿음,연경,회개/ 요한계시록 17장 12절-14절/ 1987. 6. 2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11 환난때에 필요한 것/ 호세아 2장 18절-23절/ 1984. 8.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110 환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 출애굽기 12장 8절-11절/ 1979. 11. 21.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109 환난에서 건짐 받는 길-계명지키는 것/ 시편 91장 14절/ 1987. 6. 29.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08 환난의 든든한 준비 방편/ 요한복음16장 23절-33절/ 1988. 5. 18.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 환난있는 목적과 피난얻는 방편/ 마태복음 10장 18절/ 1988. 4. 15.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106 환난절기에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장 1절-15절/ 1988. 10. 2.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05 환난준비/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1987. 7.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104 환난준비/ 사무엘상 17장 41절-49절/ 1984. 5. 18.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103 환난준비/ 사무엘상 17장 41절-49절/ 1984. 5. 18.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102 환난준비 3가지/ 시편 91편 9절-16절/ 1987. 6.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01 환난준비는 깨끗하게 할 것/ 마태복음 3장 5절-12절/ 1988. 5. 18.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100 활동 계약/ 이사야 26장 2절/ 1980. 1. 14.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99 회개/ 마가복음 1장 14절-15절/ 1979. 12. 3.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98 회개/ 마태복음 4장 17절/ 1980. 10. 22.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97 회개/ 신명기 28장 1절/ 1985. 2. 7. 목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