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절기에 오병이어의 기적

 

1988. 10. 2. 주일오후

 

본문: 요한복음 6장 1절∼15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을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음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복음 운동에 쓰여지는 모든 인간의 힘에 대해서  자세히 이 표적으로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빈들판에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따라다니면서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시장해 있으니까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먹게 하라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거기는  빈들판이라 아무런, 그런 많은 숫자 오천여 명이라는 그런 사람들에게 먹여 줄  만한 그런 떡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그들은 따라다니는, 다 돈을 모두 포기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있다 말하기를 우리가 돈이 있어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  가지고 나눠 준다 해도 이 사람들에게 뭐 돌아갈 것이 없고 나눠 줄 주가 없는데  이 떡을 어데서 구해 가지고 어떻게 나눠주겠습니까 하는 것으로써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자들이 이렇게 이백 데나리온의 그 떡을 사도 얼마씩 돌아가지  않을 터이라 하는 걱정하고 있는데 또 안드레라는 그 제자가 있다가 말하기를  '선생님 여게 이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거는 한 아이의  도시락입니다.-이게 있습니다마는 이거 가지고 뭐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또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을 질서 있게 앉혀라. 그러면, 다른 성경에는  보면 오십 인씩 그렇게 예를 지어서 앉혀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곳은  잔디가 많은 고로 모두 오십 인씩 오십 인씩 이렇게 각각 나뉘어 앉았습니다.

 그때에 아이가 가져온 그 떡을 예수님이 가지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제자들에게 주면서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  제자들이 그걸 받아 가지고 나누어주니까 떡도 뭐 달라 하는 대로 다 주고  고기도 또 원하는 대로 다 주고 이렇게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다 먹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이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낱낱이 다 주워 거두라 이랬습니다. 거두니까 주운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때에 모든 무리들이 떡 먹고 난 다음에는 참 이는 세상에 올 하나님의 선지자  곧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라 이렇게 인정을 하고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삼았으면 이제 우리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참 여러 모로 압박이 심했고 또 경제에는 큰  타격을 받고 있었고 이랬는데, 이 메시야라는 분이 오시면 우리 선민들의 왕이  되실 것이고 이분이 선민들의 왕이 되면 그 모든 어려운 난제는 다 해결이  되리라 하는 그것을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알고 은연중 소망하고 있었던  차입니다.

 이러다가, 오천 명이 먹은 이 표적이 나타날 때에 이분이 과연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 곧 우리의 왕이로구나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모든  백성들이 소동하는 것을 보시고 거게서 예수님은 왕위를 차지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피해서 산으로 혼자 은밀히 가셨다 하는 것이 본문에 기록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여게서, 우리 기독자에 대한 이 은혜는 자연 은혜와 신령한 은혜, 이제 세상에서  사는 데에 필요한 모든 은혜와 영원 무궁세계에서 사는 데에 필요한 은혜 이 두  가지 종류의 은혜를 우리는 받아서 사는 자 들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여게 말씀하시기를, 2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나를 찾아다니는 것은  말이오.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너거가 떡 가지고 배불리 먹은 이것은 너희들이 가치로  삼지 않는 영원한 양식을 주님께서 주실 그 사실을 지금 하나의 나타내 보이는  흔적인데, 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인 이 사실에서 너희들이 모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양식 영원한 영생하는 양식을 어떻게 너희들에게 주며  너희들이 받을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르치는 그것을 나타내는 표적인데, 나타내는  표적인데 표적은 너희들이 생각지 않고 거게 대해서는 깨달아서 너희들이 받을  은혜를 받으려고 생각지 아니하고 그저 떡 먹고 배부른 그것만 너희들이  생각한다 이러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27절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을 하라"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여게  보면 그때에는 썩을 양식 곧 육체 양식 이 세상 양식을 예수님이 주셨고, 또 세상  양식 주신 것은 세상 양식과 같이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도 너희들에게 풍성하게  주시겠다 하는 두 가지 양식을 다 들어서 말씀하신 것이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기독자들이 받는 은혜는 이 육신의 은혜와 신령한 은혜 이 두 가지  은혜를 받아 가지고 사는데 육신의 은혜 받는 이치와 또 신령한 은혜 받는 이치  이 은혜 받는 이치, 신령한 양식과 육체의 양식을 받는 이 두 가지 이치를 이  표적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잘못된 것이 몇이 있습니다. 빌립이 말하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금 빈들판에 있는데 여게는 아무 떡집도 없고 또 그런 뭐 시가도  아니니까 여게서 무슨 떡을 구해 가지고 이 사람들을 먹일 수가 있으며, 또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이런 큰, 액수로 떡을 사도 이거 뭐 먹을 것이 없고 돌아갈 것이  없는데 어떻게 이 사람들을 먹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이 빌립이 말을  했습니다. 그 위에 보면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순전히 뭐 너희들이 이  떡을 사 먹이라 이렇게 말씀했지마는 그 제자들이 떡 한 개라도 사서 먹이기를  예수님이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그 제자들에게 의뢰하지 않고 당신이 친히 혼자  하실 것인데 다만 이 빌립과 이 제자들을 시험해 보신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랬는데, 그 먹은 것은, 빌립이 그렇게 말한 데 대해서 주님이 그것을 들어서  쓰지 않았습니다. 빌립이 하는 말을 예수님께서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를 아니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요게서 찾아보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 물질의 은혜, 세상 은혜나-세상 은혜는 우리  고기덩어리가 건강한 것도 세상 은혜요, 또 모든 음식도 물질도 세상 은혜요, 세상  모든 공부를 하는 것도 다 세상 은혜라. 그런 건 다 육체에 속한 은혜입니다.

육체에 속한 은혜인데 육체에 속한 그런 은혜도 이 복음 운동을 하는 데에는  인간의 덕을 주님이 보지 않습니다. 그 인간의 것이 있으면 할 수 있고 인간의  것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거게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에게 바치니까 이랬는데  바치지 않는다고 해도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드신 무에서 무한을 창조할 수 있는  그런 주님이시기 때문에 인간들의 뭐 힘이 없으면 안 된다는 구차하신 주님이  아니요 이 복음 운동이 아닌 것입니다.

 눈을 똑 바로 뜨고 깨달아야 돼요. 마음에 가슴이 찔려야 돼요. 그냥 예사로  들어 가지고는 헛일이라, 다. 껍데기 신앙이지 나중에 가면 다 깨집니다. 헛일이라,  헛일. 처음에는 OOO집사님이 앞잡이고 OOO 장로님이 뒤에 철거리라. 철거리인  줄 내가 알아요. 과거에는 주일 지킬 때도 OOO장로님 토요일날이면 공연히  애를 먹이고 주일날 옳게 지키지도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인제 앞섰다 그말이오.

앞서서 이제 오늘도 보니까 장로님은 눈을 똑 뜨고 있는데 O집사님은 꾸억꾸억  자꾸 졸면서 은혜받는 척 하고 이래 그저 감탄은 이래이래 하고 있구만. 그 안  돼요. 똑 떠야 되지. 또 저 OO이도 보니까 속잠은 자고 겉어머리만 눈을 떠  가지고 있구만. 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어요. 그거 활딱 벗어버려야 돼요. 안  벗으면 이 환난을 승리하지 못해요.'  이래서, 빌립이 그와같이 말한 것은 그들은 주님의 복음 운동을 할 때에 인간을  구원하는 이 복음 운동 생명 운동을 할 때에 빌립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과학적인 사람이요 아주 수학적인 사람이요 아주 타산적인 사람입니다.

 요새는 뭐 컴퓨터 계산이 있다든가 이래서 뭐 정확하다 하지만 그까짓 거 뭐  암만 정확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런 것이  아닌데 이 빌립은 여게서 떡을 사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사도 얼마 될 것, 이백  데나리온어치 사면 떡이 몇 개인데 이 한 오천쯤 되니까 풀이하면 떡 한 개를  몇이 먹어야 된다는 그런 계산은 정확하게 밝아서 아주 과학적인 신앙을 가졌고  또 아주 계산적인 타산적인 그런 신앙을 가졌습니다.

 예수님 믿는 이 복음 사업하는 데는 과학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 복음 사업에는  다 초과학적인 역사입니다. 초과학적인 역사요 또 초수학적인 그런 순전히 하나님  당신을 믿고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데에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뭐 이래 하시지 뭐 돈이 있으니까 뭐 개척교회 하겠다, 복음  운동을 하겠다, 누구 인재가 있으니까 하겠다, 학자가 있으니까 하겠다. 그거  필요가 없어요. 학자도 필요 없고 부자도 필요 없고 어쩌든지 간에 병신이라도  당신을 참 믿고 바라고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만 있으면 그 사람을  들고 얼마든지 합니다. 좀 잘난 척 하고 내가 이만하니까 나 아니면 이거 안 되지  싶지만 필요 없어요. 그 필요가 없다 그거요.

 어쩌든지 하나님은 당신이 지존자이시요 당신이 주권자이시요 당신이  주재자시요 당신이 창조주시요 당신이 모든 것을 심판하실 그 주님이요 지극히  크신 분인 것을 깨닫고 그분을 바라보며 두려워 높이 섬길 대로 섬겨 떨면서  그분에게 복종하는 이것으로써 족합니다. 이것만 하면 족합니다.

 여게서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니까 상당한 수인데 요새는 원청, 말세는,  말세는 세상이 좁아진다 했어요. 이러니까 종말이기 때문에 모이는 수도 뭐 오천  수 그까짓 거야 수도 아니오. 뭐 오만 오천만 오백만 뭐 얼마 얼마 이래 모두  간을 부풀어 놨는데 그때는 오천여 명이라면 참 놀랄 만한 숫자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뭐 돈 걱정 떡 걱정 뭐 얼마 계산 타산하지마는 야 이놈들아  너거 계산이고 타산이고 네까짓 것들 하는 일은 털끝만치도 필요없다 그런  것으로 주님이 말 안 해도 보이셨다 그말이오. 이래서 빌립의 신앙은 여기서 주님  앞에 부정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운동 할 때에 이 과학적인 것보다도, 타산적인 것보다도, 수학적인  것보다도 당신은 이런 것을 초월하신, 무에서 얼마든지 창조하시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그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바로 알고, 그분을 바로 믿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이것이면 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회를 하는 사람도 자기는 아무것도 없고 주님 한 분으로 할라  하는 그 사람 붙들고 하나님이 목회하시지 나는 뭐 일류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지금 무슨 학위를 가졌다, 나는 뭘 가졌다 할 때는 그걸 가지고 없는 것같이 해  가지고 주님 의지하면 더 좋아하시지마는 가지면 내가 이거 있으니까 이거  가지고, 뭐 다른 사람은 없는데 나는 이거 있으니까 그거 없는 사람 열 명 백  명보다도 내가 낫다 이렇게 그거 가지고 천국에 무슨 소용이 될 줄로 이래 아는  그런 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필요없다고 던져버리고 이제 아무것도 없는 자로  하여금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고 약한 자로 강한 자를 누르게 하고 천한 자로  존귀한 자를 다스리고 머리가 되도록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했어요. 당신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당신만 알고 당신만 바로 관계 가지면 그거면 됐지 뭐  당신이 뭐이 모자라서, 엿새 동안에 우주 만들었는데 우주 만든 것 중에 그  사람이 돈을 많이 바치면 이 지구 땅 덩어리만한 걸 다 바쳤다 할지라도 엿새  동안 만든 것이 이거 지구 땅덩어리가 몇 천분지 몇 억만분지 일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는 교만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빌립이 말하는 것은 그는 빌립의 신앙은 여게서 소용이 없다. 빌립의  신앙은 소용이 없다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그 아이의 보리떡 다섯 덩어리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이게  있지마는 뭐 이게 얼마 되겠습니까?' 그래도 그거는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 물고기 두 마리 이거뿐이니까 이거라도 바치면  주님은 이걸 가지고 당신의 능력을 보태 가지고 무엇인가 되구로 하기는 할 거다.

이렇지마는 그래도 그 몇십 명 먹을 모가치나 되면 거석하지마는 그거 찍해야  아이 도시락 한 개 그거 가지고 뭐이 되겠느냐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이라니까  그래 가져오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안드레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 주님의 능력을 믿되, 주님의 은혜를  믿되, 주님의 축복을 믿되, 주님의 역사를 믿되, 주님의 돕는 그 은혜를 믿되  믿어도 제한을 해 가지고 믿는 그런 것도 주님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지만 그래도 '이렇게야 할 수 있겠나 이렇게야 할 수 있겠나?' 거게 족하게  하실 수 있는 주님이시지 '뭐 암만 하지마는 이렇게야 되겠느냐?' 하나님을 믿어도  한정을 제가 정해 놓고 '이만한 정도나 되지 그 이상 이렇게야 되겠느냐  무한정으로 되겠느냐?' 이렇게 하는 그런 믿음을 주님은 쓰지 않습니다.

 이래서 제한을 넘은, 초제한, 초제한적인 무한의 하나님이시요, 완전의  하나님이시요 전능의 하나님이시요, 대주재의 하나님이시요, 주권의 하나님이시요,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모든 것에 풍성하고 풍성하고 충만케 하시는 주님이신 걸  믿는 그 사람의 신앙이 필요 있다 그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한 아이가 적은 그 도시락 한 개를 주님에게 드렸습니다. 드릴 때에 주님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제 이것을 떼서 나눠주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때에  제자들도 오십 명씩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히라 이라니까 예 하면서 다른 것  믿음은 뭐 다 과학적 믿음이요, 다 수학적 믿음이요, 이 타산적 믿음이고  이라지마는 이제 주님이 시키는 대로 질서는 잘 지켰어요. 또 제한적 믿음 이래  가지고 있었지마는 그저 순종은 잘했어요. 이 사람들을 오십씩 딱 앉히라 하니까  오십 명씩 질서 정연하게 딱 앉혔어요,  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임하는 데는 꼭 질서가 정연해야 되고 조직이  정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게서 사도들은 사도들 직책을 했고 그 밑에 또  문도들은 문도들의 직책을 했고 또 그 밑에 모든 평신도들은 오십 명씩 앉으라  하니까 쭉쭉 쭉쭉쭉 앉아 가지고 딱 그 열을 지어서 딱 이렇게 앉고 나니까 이제  떼어 주라 하는 그런 일이 생겨졌습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언제든지 지위를  지키는 것이 기독교요 또 질서와 조직이 정연한 것이 기독교라 하는 것을 여게서  보이고 있습니다. 이래서 뭐 그만 아무나따나 뒤죽박죽으로 이래 마구잡이로 이래  하면서 이러는 게 기독교가 아니고 질서가 정연해야 됩니다.

 이래서, 우리 교회는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앉으라 하니까 욕하는  교회들이 많고 오기를 싫어합니다. 거게는 가면 우리 내외 우리 가족들이 앉아서  들씬거리는데 거게는 꼭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따로 앉으라 하니까 생전 가야  한번 만나지도 못하고 하니까 그놈의 교회 가기 싫다. 오기 싫거든 말아라!  네까짓 거 안 와도 좋다! 초대에 에덴 동산에서 남녀 잘못 가져 가지고서 망했고,  홍수 때도 남녀로 망했고, 또 소돔 고모라성도 남녀로 망했고, 말세도 음행으로  망한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이 그래 돼 나가지마는 그래도 남녀를 구별해 가지고  앉도록 그렇게 하고 또 줄을 지어서 이래 앉기로 이래 하니까 '에이, 까다롭기는  까다롭다. 앉는 대로 앉으면 되지.' 저 뒤에 앉아도 앞으로 와 앉으라고. 여기  앞으로 와서 차혜로 순서로 앉으십시오 하면 앉았다가 픽 달아납니다. '체, 내  이깟놈의 교회 안 온다' 뭐 여게 앉거라 저게 앉거라 남의 자유를 그까지 한다고.

오기 싫거든 말아요. 가요. 너 같은 건 안 와도 돼. 올 필요 없어요. 너 같은 거  오면 예배당 짓기도 힘도 들고 우리는 돈도 없는 사람들이라. 가. 필요 없어요.

이래서 여기는 좀 까다롭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데는 또 장로님이라면 장로님 자리 떡 만들어 놓고 이래 앉아  가지고 그 재미로 지금 장로되려 하고 장로들은 그 재미로 지금 장로 노릇  합니다. 이런데 여기 오니까 뭐 장로가 누가 장로인지 뭐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데, 다만 장로는 벌써 신앙 장로이기 때문에 자기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저 사람은 저 뭐인지 그 사람 보니까 신앙을 본받을 만하다' '그 장로님  아니가?' '아이고, 그러나?' 또 보니까 '장로님은 저렇구나' 모든 신앙 지위에서  모든 면에서 본이 되고 덕이 되고, 성경에는 보니까 장로는 앞자리에 앉아 가지고  그렇게 장로의 자세를 부리고 그들의 위신을 세우라고 그리 안 하고 양무리의  본이 되고 자세를 부리지 않는 것으로써 그렇게 덕을 세우라 했는데 이제 이거는  안 하고 여기 앉히는 그거는 잘 앉혀서 잘 합니다.

 이런데, 우리 교회는 그거는 안 하니까, 이제 장로님들은 또 그래도 장로직을  하려고 이렇게 하고 이러는데 평신도들은 뭐 그만 여게는 장로고 뭐이고, 장로나  내나 뭐, 장로면 장로지, 네가 장로지 내가 장로가? 이 격으로 해 가지고 장로들을  멸시합니다.

 이런데, 우리 교회 참 본받을 만한 좋은 사람 하나 있어요. 그 이름을 내가  잊어버렸다. 저 거창집회 가지고 집회 가서 아이가 우는 걸 자꾸 안 달래고  뚜드리니까 옆에 장로가 있다가 그러면 안 되니까 달래고 그래 하라고. 이러니까  옆에 있다가, 뭐 왜 내 아이 그러는데 무슨 상관 있느냐고 이러니까 그 장로님이  하시는데 장로님이신데 그러니까 장로면 장로지 장로가 내게 무슨 상관 있느냐고.

이래 가지고 뭐 호통을 치니까 그 장로님이 그만 혼이 났어요. 이래서, '햐, 이거  서부교회 이 복음 총공회 복음은 좋다고 쌓아서 왔는데 이거 보니까 이거, 참  아래 위도 없고 이건 참 아주 이단이라 하더니만 정말 이단이로구나.' 이래 가지고  그만 그 장로님이 삐꿔서 돌아가려 하다가 그래도 말씀이 좋으니까 좀 더 받고  가자 이래서 했는데, 그 나중에 왔어요. 와서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그 사람을  데리고 네가 이래 가지고는 이거 예수 믿는 사람의 일이 아니고 또 이것은 교회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인데 이래 되겠느냐 이랬더니마는 가 가지고 무릎을 꿇고  빌었어요. 얼마나 그 장로님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고 빌었든지 빌고 하도 빌어  쌓으니까 그만 그 장로님이 미안해서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안 있습니까  이러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한번도 내가 보기에는 눈에 걸리는 행동을 안 해요.

저 불량꾼이라고 소문났어요. 깡패라고 소문났어. 뭐 뚱뚱하게 생겨서 O집사  구역인데 그 이름이 뭐이지? 지금 아주 잘 삽니다. 잘 살고 그 뒤에 고만 아주  겸손히 돼 가지고 이 참 덕 아마 하는 모양이라. 덕덕덕 자꾸 하는 모양이라. 덕  덕. 어데든지 떡덕덕, 여게서 신덕이 없이 실덕할라 실덕할라? 이래 놓으니까  그렇게 백팔십도 전환의 회개를 했어요.

 그래 내가 저 먼저께도 어데 오다 가다 만나 가지고 좀 참 너무 고와서  칭찬하고, 그 어린 아이들도 머슴아 둘 잘 크지요? 잘 크지? 이름이 뭐이요  그라면? 이름은 몰라요? 이름 말하면 좋아요. 그래. 됐어요.

 이래서, 이 장로님들 만나도 인사 안 합니다. 인사 안 하요. 장로님이 오히려  인사하지 장로님을 만나도 인사하면 음 이래. 눈만 깜짝 이러고. 이거 또 요새 이  절하는 거 보면 또 이상하지. 이 처녀들 여자들 절은, 여자들 절은-그까짓 것  여자들이 교만해 가지고 큰일났어요. 남녀 동등이라 하는 거 어떤 놈이 말하고  있어요? 안 돼요. 적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 했는데 왜 성경을 위반해서 돼요? 안 돼요. 동등 안 돼.

 이래 놓으면, 미국은 여자를 존중하고 이러면 대통령 투표를 많이 받는다 하는데  여게는 남녀 동등이 안 된다고 이래 놔서 뭐 백 목사 지지 안 하고, 지지 안 하면  좋아. 지지 안 하면 주님이 지지하시지 다 쫓아내면 주님하고 같이 가지, 뭐. 무슨  일이 있어요?  그런데, 여자들은 인사할 때 보면 이래요. 이래 이러면, 그래 내가 그깟놈의 절도  흉내내기도 싫어요. 요래요. 요래 가지고 절하는데 보면 눈만 깜짝해요, 눈만 깜짝.

그게 요새는 문화되고 아주 개화되고 아주 참 선진하는 그런 신사들 아마 인사인  모양이라. 그저 눈만 깜짝하면 그게 인사라, 절이라. 그래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머리를 숙여서 예를 해야 되는 것이고 또 장로님은 장로님으로 이렇게 언제든지  존경을 해야 되고 또 위해야 되고 뒤에서 배후에서 기도해 줘야 되고 또 무슨 말  하면 잘 순종을 하고 지도를 받아야 되고 이래야 되는 것이지.

 그러기에, 여게는 보니까 질서가 정연해. 조직이 정연하고. 뭐라고 쌓아도 이렇게  남녀 쭉 갈라 앉는 것과 또 이렇게 줄 지어서 앉는 거 주님이 기뻐하시오. 이래야  됩니다. 앞으로 뭐 혼잡하는데 앞으로 어쨌든간에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한국  교회도 전부 이 서부교회 줄지어 앉는 거 남녀 이래 분리해서 앉는 거 요거 따라  옵니다. 따라오기 싫거든 말지. 요새도 따라온 것 많아요. 요새는 여기서 두시에  예배 보니까 모두 다 거의 두시에 예배 본대요. 그런 거는 따라오는데 그거  따라오면 좋아요. 진리 따라와야 돼요. 모든 조직과 질서가 정연하고 또 모든  지위가 똑똑해서, 위에 사람은 그 지위에 자세를 부리지 않으나 밑에 사람은  언제든지 존경을 해야 되고 위에 사람은 장로면 장로 그 자세 부리지 않고 밑에  사람과 같이 밑에 사람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 자기 하는 본분이요 밑에 사람은  그럴수록 존대를 해야 되는 것이지 도무지 그런 것이 우리 교회는 없어요, 인사도  도무지 안 해요. 서부교회 인사 안 한다고 유명해요. 그런데 인사 안 한다고  유명해서 선지자 한 분을 보냈다가 세상을 떴는데 인사 안 하는 서부교회에  인사하는 선지자를 보냈어요. 인사하는 선지자 보냈다가 갔는데 그분이  천사입니다. 신앙에 독특했소. 그분 누군지 압니까, 이름 알아요? 뭐이요, 이름이?  윤홍렬.

 그분한테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원청 빠짝 말라 가지고 먹지도 못하고 이러니까  '아, 기운이 없지요?' 이랬다가는 혼나요. '왜 기운이 없어요? 예수님 믿는 사람이  기운 없어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왜 기운이 없어요?' 또 뭐 며칠 굶었는데  '아이 좀 시장하시지요? 집으로 가서 식사하시이소.' '믿는 사람이 왜 시장해요,  주님이 속에 계시는데? 왜 시장해요?' 언제든지 기운이 팔팔하고 하루 열 번  만나면 열 번 절 합니다. 땅에 닿도록까지 절해요. 그 절하지 않는 서부교회에  절하는 것을 가르치는 선지자가 하나 왔다가 갔어요.

 그래 가지고 세상 뜰 때 방에 암만 가자 해도 여기 강단 밑에서 여게서 세상  떴어요. 딴 데 안 가고 이래서 내가 그래 그날은 이 널같이 만들어 가지고 아래  스치로폴을 깔고 이래 가지고 여기 있으라 하니까 감사하다 하면서 그 만들어  가지고 하루밤인가 이틀밤인가 거게 자고 그만 가 버렸어요. 그래, 그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가 아주 지극히 적은 소유지마는 주님이 모든 오천이나 되는  그 형제들을 위해서, 오천이나 되는 형제를 위해서 쓰고자 하시는 주님에게  지극히 적은 것이나마 바쳤습니다. 바쳤을 때 그것이 오천 명이 먹고 나서 떡  다섯 개가 네 개가 된 것도 아니고 다섯 개가 열두 바구니니까 여러 수십 개  되고 말았어요. 요걸 가르칩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구원 복음 사업을  위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극히 작은 육체의 것이나 지극히 작은 그 신령한  것이나 무엇이든지, 작은 물질이든지, 또 적은 건강이든지, 또 아주 적은  지능이든지, 적은 총명이든지, 늙어서 다 죽어가니까 뭐 힘도 얼마 안 남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아주 남은 얼마 되지 않은 그 힘이든지 또 자기가 깨달은  신령한 은혜, 깨달은 진리, 또 기도의 은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교훈 이런 것이 다 신령한 양식이오. 혈육의 것 신령한 것,  자기가 비록 작은 것을 가졌을지라도 주님이 인간 구원을 위해서 필요로 하실  때에 주님에게 바친 것은 끝이 없다 하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으드가 그는 빈손 쥐고 자기 두 내외 나서 가지고 이  복음 봉사의 일을 했는데 그는 역사 이후로 물질 가지고 교회를 돕는 그런  역사는 그 윌리암 부으드보다도 더 많은 금액을 바쳐서 한 사람이 없다 했습니다.

빈손 쥐고 했는데. 하나님이 주셨어요, 다 주셨어요.

 그래 가지고 곳곳마다 큰 감옥소 앞에는 공업소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죄수들  나오면 거기서 취직시켜 가지고 다 이렇게 생활하게 하고 또 아주 병원이 없는  데는 전부 병원 차려 가지고 의료 시설해서 환자들을 구원하고 그걸로써 복음  운동 위해서 하는 그것이 구세군 창설자입니다. 창설자가 윌리암 부으드요.

그런데 그분은 과연 이 말씀을 믿고 오병 이어 자기에게 적은 것이지마는 주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에게 적은 것이나마 바쳐서 주님의 손에, 들렸을  때에 주님이 축사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할 때는 지극히 작은 거 가지고 무한한 일  했어요  오천 명 먹였어? 만일 오만 명 먹였으면 어떻게 됐겠소? 오천 명을 먹이니까 떡  다섯 개가 열 두 바구니 남았으니까 오만 명 먹였으면 그 얼마 남겠습니까, 그  숫자로 말하면? 몇 개지요? 오만 명이면 오천 명의 몇 배고? 열 배? 그러면 열두  바구니의 열 배면 얼마 되지? 백이십 바구니. 백이십 바구니. 오백만 명을 먹이면  어찌 되며 오천만 명을 먹이면 어찌 될 건가? 이렇게 요것을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요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이 쓰기를  원하시는 거게 자기 몸이든지 생명이든지 자기 인격이든지 소유든지 아무리  미약하고 가치 없는 것이라도 인간 구원을 위해서 당신에게 바쳤을 때에는  지극히 적은 그것이 지극히 큰 결과를 맺고야 마는 요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백 목사는 뭐 크게 된 거는 없지마는, 백 목사는 국민학교 오학년 했어요.

오학년 했는데 내가 예수 안 믿을 때에는 술쟁이고 술먹고 돌아다니며 죄나 짓고  이래 다녔던 못쓸 것이라. 아주 못쓸 인간이라. 또 술장사 했어요, 술장사. 나는  술장사 한 사람이라. 이랬는데 그래 예수님 믿을 때 그거 더럽다고 다 내버려  버리고 이 아무것도 없는 게 예수 믿으려고 바쳤더니마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그래 뭐 내가 가만히 생각할 때 내가 거창 가서 보면 '저 사람이 나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인데 보자' 그 사람 지금과 나와 비교하면 비교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뭐 하나 먹을 거 오천 명 있으니 오천 배가 불었는데 나는 오천 배가 더  불었어요. 오천 배도 더 불었어요. 오만 배도 더 불었어요. 요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코자 하는 그 주님의 중심, 생명까지 바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그 주님의 소원을 위해서 주님에게 크나 작으나 자기에게  있는 걸 바쳤을 때에는 그것을 가지고 주님에게는 얼마든지 확대해서 축사해  가지고 크게 유효하게 쓰시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오병이어로 바친 그 사람은 그때 이거 바치고 나니까 굶었습니까 배불리  먹었습니까? 굶었습니까 배불리 먹었습니까? 아마 배가 불러서 못 먹어, 못  먹었지 뭐 아주 그럴 거라. 그 아이가 낸 줄 알거든 그러니까 제자들도 가 가지고  이 도시락을 줘서 참 이런 이적이 났으니까 이 좀 많이 먹으라고 뭐 대단히 아주  참 상전 대접을 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도 좋고 제게도 만족이라. 제게 모자랄  것 하나도 없어요. 도시락 고것만 까먹고 앉았는 것보다도 재미도 있고 큰  영광스러운 일도 하고 자기에게 크게 또 부족함이 없었어요. 이것을 가르칩니다.

 가르치는데, 여게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오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절기  유월절이 당하니라, 유월절이 가까우니라 이랬는데 유월절은 뭐입니까? 유월절은  환난 절기요. 유월절은 환난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환난 절기 환난 절기인데 무슨  환난 절기입니까? 환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민들에게는 자유의 해방이 됐고  하나님의 초자연의 기적과 이적으로 먹고 마시는 이런 영광스러운 해방의 구원을  얻은 것이 유월절 환난을 통해서 됐습니다. 환난이 없으면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환난은 전부 유월절 환난이라 요렇게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기독자에는 무슨 병이 들었든지 무슨 환난이든지 환난이 오면 그 환난은  기독자의 믿음을 돋구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좋도록 하기  위해서 그 환난을 주시는 것이지 망하라고 환난 주시는 것은 하나도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환난이 올 때마다, 환난이 올 때마다 무엇을 버려야 됩니까? 이런  환난이 올 때마다 버릴 것 뭐입니까? 버릴 것 한번 말해 봐요. 이렇게 환난이 올  때마다 버릴 게 뭐인지 요 안경쟁이 한번 말해 봐요. 버릴 게 뭐이야? 또 모르지.

그래 물으니까 또 몰라요. 유월절 절기가 가까움이라 했는데 그때 이거 지금  유월절에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있는데 거게서 퇴짜 맞은 게 뭐 있어요?  퇴짜 맞은 거 말해 봐요. 퇴짜 맞은 거. 허, 이거 또 모르네. 퇴짜 .맞은 거. 자,  자꾸 불러서 미안하지마는 한번 더 불러 볼까? O장로님, 퇴짜 맞은 거 뭐이지?  대학원 졸업했고 고등학교 선생이고 다 그래요. 그런데도 뭐 소용 있어야지. 이거  누구한테 물을꼬? 너 대답해 봐. 그래 그만 됐어요. 그만 그 빌립의 신앙이라  하면 되지. 내나 그말 해석을 했는데. 빌립의 신앙이라 빌립의 신앙. 과학적이고  계산적이고 수학적인 그런 신앙이 필요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 환난 왔을 때에 그런 신앙을 다 버려야 됩니다. 그 신앙 안  버리면 안 돼요. 그게 들어서 사람을 죽이는 거라, 또 버릴 게 뭐이라,  OOO조사님. 안드레 신앙이라 하면 그래야 잘 외워요. 빌립의 신앙, 안드레 신앙  다 버려야 돼요. 어떤 신앙 가져야 됩니까? 어린 아이의 신앙 가져야 돼요, 어린  아이의 신앙. 어린 아이의 신앙 가지면 저 좋고 남 좋고, 저 충족하고 남 충족하고  이렇게 주님이 복음을 위해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시는 그때에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치는 지극히 작은 양은 지극히 큰 결실을 맺는 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데, 썩는 양식만, 썩을 양식만 아니라 영생토록 있을 양식, 이것만 이런 게  아니고, 자기가 예수 믿는 거 하나 배웠어요. 예수 믿는 거 하나 배우고 난 다음에  고걸 주님께 바쳐요. 주님에게 바쳐서 내가 예수 믿는 거 알았으니까 내가 이제  다른 거는 몰라도 예수 믿으시요 하는 요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그 아무것도 모르는 게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읍시다 요 말뿐이라. 그놈이 큰 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큰 일 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아요! 다 이렇게 한  사람마다 다 위대해졌고 뭐 준비한다고 뭐 학위를 뭘 가지고 뭐 어쩌고 이렇게  짜다라 해 가지고 날뛴 사람들은 다 주님께서, 다 노아 홍수 때에 네피림이 다  홍수 속에 매장된 거와같이 다 매장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이 올수록, 환난이 가까이 올수록, 환난일 때일 수록  자기에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형제를 위해서 바치십시오.

우리 OOO목사님이 지금 저 원로원에 가서 계시는데 그분이 8·15 해방 때에  대구역에서 그 봉사하는 일, 처음에는 사과 주다가 그 다음 에는 계란 삶아  주다가 그 다음에는 죽을 써서 주다가 그 다음에는 차차 차차 고급으로 대접을  했습니다. 뭐 아이고 계란 그거.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생각 못 한다고 지금은  계란 그게 그렇지마는 그때 8·15 해방 때 그때는 아주 어려울 때입니다. 계란  어북 귀골이라야 계란 먹지 잘 못 먹어요.

 그런데, 그때 이걸 참 자기에게 있는 살림을 톨톨 털어 가지고 이거 계란을 사  가지고 저 외국에서 고국이라고 이제 돌아오는데 귀환 동포들, 귀환 동포인데 이  동포들이 돌아을 때 대접할 게 없으니까 자기 살림 다 팔아 가지고 계란을  줬어요. 계란을 이래 사 가지고 한 개씩 주고 나중에는 인제 떡도 잘 없어요.

죽을 쒀 가지고 이렇게 대접을 하고 이래 했는데 나중에 살림 톨톨 다 팔아서  하고 나니까 뒤에 가서 대구에 창고에 전부 계란이 한 창고씩 다 들었어요. 대구  그 역에 있는 많은 창고에 계란이 꽉 들었고 또 그 뒤에는 쌀이 꽉 들었고 그래  그분의 표어가 '네가 낙심하지 말고 씨를 물 위에 뿌리라 반드시 때가 되면  거두리라' 하는 이 성구보고 해 가지고 그대로 됐습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앞으로  환난이 올 때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복음을 위해서 주님에게 바쳐  보십시오. 그러면 큰 성과를 거 두게 되는 것을 여게다 계약으로 선포해  주십니다. 지금뿐 아니라 과거도 알고 이렇게 벌써 사용해서 효력을 본 사람들  많이 있어요. 효력을 본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요 오병이어에 대해서  잘 기억합시다.

 그 오전에 말씀, 앞으로 우리가 지금 할 것은, 지금 이 평안한 것은 뭘로  깨달아야 돼요? 지금 평안한 것은 뭘로 깨달아요? 우리 O집사님 한번 대답해  보시지. 뭘로 깨달아야 돼요, 지금 평안한 것은? 신앙 선배들의 신앙 선배들의 그  신앙의 혜택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또 지금 이거 평안한데, 평안한데 지금 앞으로 뭣이 올 거라고 생각돼요? 모든  사람들이 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 실은 하고 있고 오히려 지금 엉뚱한 일  하고 있거든. 이라니까 앞으로 영육간에 시험이 옵니다. 영육간에 큰 환난이  옵니다. 영육간에 시험이 와요. 신앙에 큰 환난이 와요. 신앙에 환난이 오는데  신앙에 환난이 올 때에 그때에 할 일이 뭐입니까? 뭐라 했지요? 하나님 배반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도로 찾아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돼요.

 8·15 해방 직후에 손양원 목사님이, 대구 제일교회에서 전국 장로회 총회를  모였는데 그 손양원 목사님이 그때 설교하는데 그 설교하는 걸 내가 들었는데  그때 그렇게 말합디다. 이제 모두 다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는 설교해요.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나님 잊어버려서 우리가 이렇게 비참해졌고 삼심육 년 동안 비참한  것을 회개를 하면서 성도들이 부르짖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런 모든  노예 생활에서 해방을 주시고 이랬으니까 지금 여게서 벌로 좋다고만 뛰고 굴릴  게 아니라 하나님 찾아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을 찾자, 여호와를 찾자 하는 그런 설교를 한 시간 내내 하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거요. 앞으로 환난 오면, 환난 오면 망할 자는  공산주의로 말미암아 환난 오니까 공산주의에 아부하고 기어들어가면 좋을 줄  알고 기어들어가 다가 망하고, 이 모든 물질에 환난 오면 물질 세계로 자꾸  기어들어가서 물질에게만 자꾸 머리 숙이고 물질 위해서 신앙도 다 버리면 좋을  줄 아는데 그라다가 망하고, 모든 권세로 환난 올 때는 권세에 기어들어가 망하고,  이 모든 환난은 주님이 일으키신 것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가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고 그 외에는 다른 해결하는 방책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저 뒤에도 믿습니까! 저 뒤에 입도 안 벌리네. 믿습니까! 저 봐. 안  믿을라면 말아요. 앞으로 환난 올 때에 어째요? 뭣을, 환난이 오면 직장 떨어지는  환난 오면 직장에 들어붙으려고, 경제에 어려운 환난 오면 경제에 들어붙으려고  모든 권세로 말미암아 환난 오면 권세에 들어붙어 가지고 피난하려고, 공산주의가  오면 공산주의에 들어붙어 가지고 아부해 가지고 환난 면하려고 그러는 자는 다  전멸입니다. 알겠습니까?  환난 때에 나에게 환난 주는 눈에 보이는 그것은 주님의 기계로 이용당하는  것이요 환난을 주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환난 때는 여호와를 찾아야 돼요 나를  환난 주는 세력 있는 거게 들어붙어야 돼요? 거게 들어붙어야 된다 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하나도 없네. 그러면 그럴 때에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도록  하나님께 들어붙어야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손 들어 봐요. 그래 이거요. 됐어요.

그러면 됐어. 그러면 앞으로 환난 면해요. 이게 선지자의 설교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대로요. 이제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급속한  사랑의 징계와 급속한 사랑의 축복으로 자꾸 교체해 줄 터이니까 그저 회개하면  평안하고 회개 안 하면 참 못 견딜 겁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16 환난과 피난/ 시편 91편 9절-10 절/ 1980. 5. 22.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115 환난과 피난/ 시편 91장 1절-16절/ 1980. 5.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114 환난과 피난/ 시편 91장 15절-16절/ 1980. 5. 24.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113 환난과 피난/ 시편 91장 1절-16절/ 1980. 5. 21.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112 환난때에 더욱-믿음,연경,회개/ 요한계시록 17장 12절-14절/ 1987. 6. 2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11 환난때에 필요한 것/ 호세아 2장 18절-23절/ 1984. 8.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110 환난에 대한 성도의 자세/ 출애굽기 12장 8절-11절/ 1979. 11. 21.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109 환난에서 건짐 받는 길-계명지키는 것/ 시편 91장 14절/ 1987. 6. 29.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108 환난의 든든한 준비 방편/ 요한복음16장 23절-33절/ 1988. 5. 18.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107 환난있는 목적과 피난얻는 방편/ 마태복음 10장 18절/ 1988. 4. 15.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 환난절기에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장 1절-15절/ 1988. 10. 2.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05 환난준비/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1987. 7.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104 환난준비/ 사무엘상 17장 41절-49절/ 1984. 5. 18.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103 환난준비/ 사무엘상 17장 41절-49절/ 1984. 5. 18.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102 환난준비 3가지/ 시편 91편 9절-16절/ 1987. 6.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101 환난준비는 깨끗하게 할 것/ 마태복음 3장 5절-12절/ 1988. 5. 18.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100 활동 계약/ 이사야 26장 2절/ 1980. 1. 14.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99 회개/ 마가복음 1장 14절-15절/ 1979. 12. 3.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98 회개/ 마태복음 4장 17절/ 1980. 10. 22.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97 회개/ 신명기 28장 1절/ 1985. 2. 7. 목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