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준비는 깨끗하게 할 것

 

1988. 5. 18. 새벽

 

본문 : 마태복음 3장 5절-12절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손에 키를 든분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에게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것이요’ 한 것은  세례요한이가 회개의 세례 물세례를 베풀었고 내 뒤에오시는 이란 말은 곧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 하는 말은 외부에 그저 형식  세례가 있고, 우리도 물세례 받는 물세례가 있고 또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물세례는 회개하는 형식 세례고 물세례를 받은 후에가 아니고 물세례를 받았든지  안 받았든지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다 중생됐습니다.

 구약 교회는 예약만 받았지 실지로 예수님의 피공로가 이루어지지를 안하고  예약이요 예표인 짐승의 대속물로 속죄를 앞으로 예수님이 대속하시면 거기에  동참될 것을 예약하고 예표로 짐승의 이 제물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오셔서 친히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셔 가지고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때 드릴 때에 구약 시대에서 짐승의 대속물로 속죄를 그 받을 약속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가 돼도, 간접적인 교제지 직접적인  그런 교제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비로소 휘장이 사람 손대지 안하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갈라졌고  또 바위들이 터졌고 거기에서 모든 부활하실때에 자던 성인들이 무덤 속에서  일어나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구약에 예약을 바라보는 모든 첫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하고 예약을  믿던 그 구원이 실상으로 이루어진 증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표현해 주신  것입니다.

 그 후 신약 시대에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다 택한 자면 때가 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하는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다 중생은 됐습니다.

택한 자면 중생됐으니 이것이 첫째 ‘성령과 불로 너희에 세례를 주실 것이라’  세례는 죽고 다시 사는 것이 그 세례식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이, 그것. 이 세례식이요 또 그 세례식은 성경에 다른 데 말하기를 착한 그  신앙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면, 성령과 블로 세례를 베푸신다. 그러면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우리 영이 죽었다가 영이 살아났는데 죽은 영이 살아난’ 그것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시는 것이고,  ‘불로 세례를 준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오순절에 급한 바람같이,  또 불같이, 갈라지는 그 혀같이 그렇게 그런 환상을 나타 나면서 그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필요가 없고 순전히  택한 자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중생을 시키십니다.

 이래서, 중생은 복음을 들을 즉시에 중생되는 사람 있고 복음을 들은지 오래  후에 중생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중생하면 그만 예수님을 믿느냐? 중생하면 예수님 믿기를 시작하는데  나타난 그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은밀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짜든지 중생이 됐으면 사람은 달라집니다. 달라져서 그 사람이 하나님과 속에  영이 연결이 됐기 때문에 속에 영은 연결됐지마는 연결이 될수록 그 속에 들어  있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은 반대를 합니다.

 그러면, 자기 한 사람 속에서 반대하는 것도 있고 한 가정 속에서 반대하는  것도 있고 한 사회에서 반대하는 것도 있고 이 반대하는 싸움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중생된 지 후에부터 이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중생되는 것은 살아나는 것은 이것은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노력을 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께서 순전히 객관 역사로 중생을 시키시는  것이고 중생이 되고 나면 자기를 살리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이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게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는 사랑의 역사로 와 가지고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또 성령님은  감화의 역사로 우리 속에 역사하고 또 진리는 모든 것을 구별하는 이 세밀히  구별하는 역사가 와 가지고 역사하는데 이 진리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요  피공로를 베푸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의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주는데,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데 우리가 성신과 불의 세례를 우리가 다 받았습니다. 우리가 다 받은  사람인데 문제는 뭐이냐 하면 나를 중생시키신 그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은 이  능력이 앞으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다 통치하시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위  주로서 통치할 그때는 악령과 악성 악습이라는 것은 다 몰아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넣고 무궁세계는 그런 것들이 다 음부에만 있지 하늘나라에는  침노하지를 못합니다. 거기에까지 우리의 준비하는 것은 불의 역사입니다.

 불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나의 죄의 형을 대신  받으셔서 대형함으로써 사죄를 주셨고, 또 내가 행할 것을 대신, 내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해 주심으로써 칭의를 주셨고 의롭다 하는 칭의를 입게  하셨고, 또 대신 화친을 베푸셔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역사. 역사가 뜨거워지고 자기 속에 주님이  자기를 사죄해 주신 그 사죄 주심에 대해서 아는 것이 견고해지고 또 깨닫는  것이 견고해지고 거기에 대해서 믿는 믿음이 점점 견고하고 뜨거워지는 것, 이  뜨거워지게 하는 뜨거움을 받고 또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뜨거움을 받고 또  진리로 이렇게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이 거룩케 하는 그 역사가 뜨거워지는  것이 그것이 곧 불의 역사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받은 이 불의 역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런 집회에 참석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읽든지  기도를 하든지 하는 가운데에 자꾸 이 세 가지 은체가 우리속에서 뜨거워지면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우리 마음 전부가 뜨거워지면 우리 몸까지 점령해서 우리  몸에서 그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과 불로 세례받은 이 불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래서, 기본구원인 영 구원은 우리가 노력할 필요가 없고 이제 중생된  우리들이 중생시키신 그 은혜를 힘입어서 그 능력을 힘입어서 그 능력으로 내가  성화되고 그 능력으로 내 지식이 다 새로와지고 또 내 행위가 또 성화되고 내  자체가 성화되어지는 그것은 우리가 노력함에 따라서 이루어 집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 행위를 통해서 구원이 되기 때문에  행위구원이라, 또 차차차차 만들어져 가는 것을 과정을 말해서 건설구원이라, 또  본질과 본성의 형태를 가리켜서 성화구원이라 점점 하나님화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고 전에 보면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대로 둬 두고 나머지기는 다 베어 버린다’ 또 ‘그러기에 너희들이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저  나는 예수 믿는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예수 믿으면 믿는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믿으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 대해서 미워하는 것과 다시는 죄로 더불어 타협하지 않는  일이 자연히 생겨지게 되고, 또 의를 좋아하고 의를 보존하고 의를 버리지 않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하나님과 화친하는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너거가 회개하면, 회개해서  변화되면 그것은 피조물의 요소가 자존자 창조주의 요소화된다. 완전자의  요소화된다.

 그러나, 완전자의 요소화된지 않는 것 성화되지 안한 그런 것은 돌이나 너거나  꼭 같지 뭐 딴게 하나도 없다. 풀덩이나 흙덩이나 너거나 꼭 같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멸망받고 하나님화 된것만 이제 구원 얻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믿는다고 말해도 예수님의 대속의 이 세  가지 피공로로 자신이 성화되고 또 성령으로 성화되고 진리로 성화돼서 이  성화된 그것은 완전히 그것이 성화된 것은 다시 말하면 다른 말로 말하면 변질  변색된 거와 같습니다.

 이래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우리는 마치 아주 나쁜 검정물을 들여가지고서  있던 것이 차차차차 검정물이 탈색이 되고 거기에다 횐 원단이 되어지고  거기에다가 다른 뭐 이렇게 아름다운 채색으로 염색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이 회개하는 것은, 과거에는 악령에게 속해 있었는데 이제 하나님에게  속하고, 과거에는 세상 것을 소망했는데 이제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과거에는 죽는 생명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서 영생을 점점  튼튼케 하는 그런 사람으로 우리가 살수도 있고 죽는 생명으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죽어가는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저는 하루 살면 산 것만치  그 생명이 끊어졌습니다. 그뭐 만일 백 년 살았다면 그사람은 백 년을 걸쳐서  죽을 생명이 다 죽은 것이오. 또 하루 살고 죽는것은 하루 동안이 그 죽을  생명이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고 자꾸 그것이 영생하는 것으로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생하는 것으로 자꾸 성화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살면 하루 산 것만치 그 생명이 강하고 장성하게 됐고 십 년 살면 그만치, 또  몇십 년 살면 그렇게 자꾸 죽지 아니하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죽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것인가? 그것이 자기가 회개해서 과거에는 이  세상 지식대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지식대로 삽니다. 그것이 진리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세상 지식이 백프로 들어 있는 그 사람이 예수님 믿은  후에 차차 하나님의 지식이 거기에서 자프로가 거기에서 가입됐고 또 이프로,  오십프로, 백프로, 예를 들면 하나님의 지식으로 백프로가 그 사람의 지식이  됐고 인간 지식은 가지고 있지마는 그것은 다 이용물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기 때문에, 마치 산 자가 죽은자를 이용하면 자기 피와 살이 되는 것처럼  이렇게 이 죽은 지식을 자기가 먹어서 양식을 삼지 그 지식대로 산다고 하여 그  지식에게 자기를 의뢰하거나 지식의 지도를 받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지식은  잡아 먹습니다. 이용해서 먹고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지식이  점점 자라갑니다.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라가고 또 그 사람이 악령, 악성의 감동에 따라서  살았었는데 이제는 성령의 감화로 삽니다.

 그러면,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다 같은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는 데도 한 사람의 입에서는 성신의 감화가 나오고 진리가 나오고 또 예수님의  대 속의 공로를 입고 하나님의 의가 나오고 내나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해도 한  사함은 세상 지식으로 살고 악령의 감화로 살고 하나님 앞에서 타락된 그 변질된  악성으로 삽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자꾸 우리가 성화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죽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도  있어서 하루 하루 사는 그것으로 완전한 생명이 점점 자기에게 또 시작되고 또  장성해지고 견고해지고 어떤 사람은 이 생명은 기르지 못하고 죽을 생명으로  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루 살았으면 생명이그만치 끊어졌습니다.

 벌써 이것은 원죄와 본죄로 인해서 죽은 것인데 영은 단번에 죽었고 우리의  심신이라는 이것은 중복적으로 돼 있기 때문에 단번에 죽지를 안하고 요 요소는  요 현실에서 죽고 조 요소는 조 현실에서 죽고 자꾸 현실에 죽소.

 죽는 거는 뭐이냐? 삐뚤어짐으로 자꾸 죽습니다. 인간의 그 마귀법으로 살기  때문에 자꾸 뻐뚤어지고 하나님 법으로 사니까 이거는 점점 옳아집니다.

 그러면, 하나님 법 진리로 살므로서 점점 발라지고 옳아져서 살아나고 인간의  지식으로 살아서 점점 죽어지고 성신의 감화로 살아서 점점 살아지고 악령의  감화로 살아서 점점 죽어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므로 점점  무죄자가 되고 의로운 자 되고 하나님과, 밀접한 친밀이 되어지고 또 악령으로  살므로 하나님과 자꾸 멀어지고 마귀와 가까와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 불탈 때에 그도 같이 가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키를  들고’ 손에 키를 든다 이 손에 키를 든다 말은 예수님에서 키를 든다 말은 이  환난을 당신이 일으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키가 뭐인지 압니까? 우리 시골 말은 챙이라 했는데, 챙이. 이 뭐꼬? 이  버드나무 휘추리를 가지고 만들어서 양쪽에 날개 있고 이래 까부는거 이래,  까부는 거. 키. 그것을 가리켜서 키라 합니다.

 ‘손에 키를 들고’ 우리를 대속하시고 앞으로 심판주로 오시고 이제 마귀도  모두 다 당신이 점령했기 때문에 이제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마귀는  그 부리는 신이 됐습니다. 그 지금은 마귀가 제맘대로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 역사나 뭐이나 그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현실이 오든지 그 현실을 만드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현실은 가치가  우리에게 이용 가치가 같다고 배웠습니까 이 현실이 이용 가치가 종류대로 각각  다르다고 배웠습니까 같다고 배웠습시까? 다르다고 배운 분들 같다고 배운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세, 꼭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조브랍게 생각하고 ‘나에게 요런 현실은 안 닥쳤으면  좋겠다’ 그 대개 보면 안 닥쳤으면 좋겠다 하는 고것은 옛사람 고놈이 죽을  지경이니까 안 닥켰으면 좋겠다 합니다.

 본인은 ‘안 닥쳤으면 좋겠다’ 이라는데 신앙 지도자가 볼 때에는 그저 마음에  위로는 줍니다. ‘아이 그 뭐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니까 염려 말고 참고 견뎌 보십시오’ 이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합니다.

 왜 좋아합니까? 사람 고놈이 지금 녹느니라고 그렇습니다. 땅의것 바라보는  그놈이 죽느니라고, 또 땅에 소망 가진 그놈이. 죽느니라고. 또 자기 의지했던  그놈이 죽느니라고. 자기 의지했던 자기를 부인하고 땅의 소망을 부인하고 이런  걸 다 부인해야 하늘나라 것으로 바꿔지는데.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다 부인시켜서 그런 것들을 없에는데 강제로 없애시는  일이. 있고 없애지 안하는데 제가 버건 일 있습니다. 어떤사람은 그만 제가 아예  가치 없다고 세상 것 버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안, 버릴라고서 애를  쓰다가서 나중에 없어지니까 어짤 수 없어 그래 버리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버리는 사람 그것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그렇게 버리는데  그거 특수 은혜고 또 없어지니까 어짤 수 없어 버리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와  같이 하신 은혜이기 때문에 그거는 일반적 은혜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손에 키를 들고 지금 까불라고 키를 들고 있습니다. 이 알곡과  쪽정이를 까블라서 쪽정이는 날려 보내버리고 알곡은 가질라고서 그래 ‘손에  키를 들고’ 예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그 환난을 들고 ‘키를 들고’  환난을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이 환난을 들고. 그러면, 환난 전에야 다  사람들이 예수 믿겠다 하고서 뭐 잘 믿겠다고 이래 하지마는 그 참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 땅의 그 세상인해서 하늘나라를 팔 리가 없는 것이고  자기에게 영생이, 있다면 영생을 죽는 생명을 안 죽을라고 영생을 내 줄 리가  없다 말이오.

 그러면, 하늘나라를 가졌나 안 가졌나, 영생을 가졌나 안 가졌나, 네가 믿나 안  믿나, 또 예수님의 대속을 믿나 안 믿나, 하나님의 지식인 진리를 믿나 안 믿나,  네가 영감을 받나 안 받나 하는 것을 그것을 이제 심사한다 말이오. 속에 있나  없나 하는 그것이 나타납니다.

 이래 ‘손에 키를 들고’키는 환난을 말합니다. ‘손에 키를 들고’ 이번에  우리에게 올 환난은 무슨 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공산주의의 이 적화시키는  공산주의 운동의 환난일는지 또 전쟁의 환난일는지 또 무슨 이거 내란의 이거  무슨 쿠데타나 이런게 일어나는 환난일는지 어쨌든지우리가 모든 것을 봐야  됩니다.

 과거 여수 환난도 있었고 또 그후에 광주 환난도 있었고 또 6·25환난도 있었고  이거 다 환난 있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 있는키입니다. 키.

 ‘키를 들고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자기 타작마당이라는 것은  타작마당은 뭐이냐? 타작마당은 이거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깨끗게 하사. 인제 교회를 깨끗게 합니다. 뭐 이런거 저런 거 다  있는데 모든 세상은 교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그것을  부근에 두고 이래 가지고 교회를 깨끗게 한다. 교회를, 거짓부리로 믿는 거,  거짓 증거하는 거, 거짓 선지자,  요새는 전부 제가 정통이오. 요새는 전부 제가 다 정통이고 제가 사는 길이라.

뭐 불교는 불교가 사는 길이라, 또 회회교는 회회교가 사는 길이라, 유교는  유교가 사는 길이라, 또 이거 뭐 천주교는 천주교가 사는 길이라, 고신은 고신이  사는 길이라, 또 총공회는 총공회가 사는 길이라 모두 다 이렇게 사는 길이라고  제각각 지금 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환난을 거머쥐고 활활  까불면 알곡은 남아 있고 쭉정이는 다 날아간다 말이오.

 참으로 그 속에 진리가 얼마나 들어 가지고 있으며 영감이 얼마나 들어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얼마나 들어 가지고 있는가? 그게 가뜩 안 들어  있어도 그 환난에 자기 구원을 내주지 안할 만한 그런 속에 알맹이가 들어  있으면 안 날아갑니다. 제가 뭐 잘 믿는척 해도 알맹이가 없으면 날아가.

 앞으로 일어날 이 환난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야 내가 그런 걸 경험해 봤어.

우리 지금 사촌이 공산주의 있고 우리 조카도 있고 우리 뭐 친척도 우리 친구도  있고 전부 공산주의에 다 지금 있으니까 그때 6·25 때인데 다 거기에 일하고  있고 그 속에 있고 일찍부터 다 지하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있으니까  그분들이 말하기를 ‘염려하지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숙청시켜 다 죽이고  또 이거 지금 민주주의에 좀 주동되는 인물들은 다 숙청시킨다.’ 이거 뭐  경관이니 이건거 전부 숙청 다 시켜.

 그때 경관들은 그들이 부르는 이름이 뭐라고 불렀니라? 그때 개라고 불렀던가?  누가 알아요? OOO집사도 여기 있어 모르지. 그때 그 사람들이 순경을 거석하며  ‘여기에 개가’ ‘뭐 여기에 뭐 있다, 여기 개 있다 개 있다.’ 개라 했던가?  개라 했어요? 나는 오래 돼 잊어버렸어. ‘여기 개 있다. 개. 개. 개놈들 있다.

개놈 있다.’ 개놈이라 이래, 개놈. 개놈 있다 개놈 있다 이래 가지고서 했는데,  이제 다 숙청할 터인데 너는 그 예수 믿는 그건 표명 가졌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안하기 때문에 속으로는 우리를 환영하고 이래 하기 때문에 너는 숙청 안  당한다. 그 염려하지 마라.’ 이래서 그걸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걸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이 세상  뭐 정권이니 배경이니 미군이니 이런 거 의지하던 사람들은 다 그게 그만 절단이  나버렸지 미군이 그만 후퇴를 하지 자꾸 후퇴해서 쫓겨가고 있지 또 전쟁에서  자꾸 전사가 나지 이러니까 뭐 그것도 다 소용이 없어.

 이거 의지하는 사람들, 공산주의 의지하는 사람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피하는 게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서 위에서 피해 내려오는데, 저는 그때 거창에  있었습니다. 뭐 사람이 어떻게, 제일 처음에 피난민들이 쫙 피해 내려가고 피난  내려가고 그후에는 국군들이 우리 나라 국군들이 후퇴해서 내려가고 맨 뒤에는  미군들이 후퇴해서 맨 뒤에,내려왔어. 내려오고 그후에는 인민군들이 이제  추격해서 따라오고 있었어.

 그래 가지고 뭐’ 그저 바로 제가 위천 있었는데 위천면 바로 길거리 아따 그  무슨 쐐악실 모통이라. 그 이름이 쐐악실 모통이라. 쐐기에, 명 잡는 거 쐐기  압니까? 그 쐐기는 배배배배배 틀려 가지고서 요래 가지고서 이 틀린 거 하고  돌아가는 게 쐐기라. 쐐기 압니까? 명 타는 저. 쐐기 아는 사람 본 사람 손  들어봐요. 아, 많이 봤네. 그 이를 이 쐐악실이라. 쐐기 꼭대기라 말이오.

 이런데, 고게 가 가지고서 그 언덕이 길에서, 언덕이 굉장히 높습니다. 한 아마  한 몇십 길은 몰라도 한 그래도 십여 길 너머 될 겁니다. 십여길 그래 놓은  데인데 거기에 뭐 돌아가는 걸 위에서 자꾸 인제 인민군들이 내려오니까 자꾸  거기에서 그 사람들은 지뢰를 넣어 가지고서 자뢰 터주지, 미리 간첩을 가지고서  터주지 위에서 폭탄으로 던지지 그싼 그냇물이 막혔습니다. 얼마나 차가 뭐 수천  대 그 차가 뿌쑥지고 사람들도 죽어서 미군들도 죽은 시체가 그게 뭐 강가에  거기에 언덕에 산에 뭐 논들에 그 들에, 그 키가 큽니다. 그분들은. 또 우리  국군들 인민군들 뭐 죽은 게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그 수도 헤아리지 못해.

 그러니까, 노아 홍수 때에는 이거 저거 의지하던 사람들은 소용 없고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피난은 네가 배 모아라 그때는 배 모아라 하는대로 배 모은  사람들만 피난했습니다.

 노아 여덟 식구는 다른 사람들은 비가 자꾸 오니까 모두 다 산으로 기어  올라갑니다. 그거 큰 배니까 뜹니까? 산으로 기어 올라가는데 이 사람들은 기어  올라가지도 안하고 배만 거머쥐고 거기 있으니까’ 저 등신아 올라 오너라 지금  죽는다. 올라 오너라. 지금 어서 이 산으로 기어 을라오너라.’ 저거 친척들이  그라고 ‘노아 저놈의 영감탕구 자식도 다 죽이네. 어서 올라오라.’ 자꾸 이래  쌓고 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올라가지 말고 너희들이 배 옆에 있거라.’ 배  옆에 있으니까 이제 배문을 여시면서 ‘이제 들어가거라.’ 이제 다 하나님이  문을 딱 닫고 난 다음에 이러니까 물이 차차차 들어오니까 드부렁 떠 가지고서  이거는 환난속에 떠 가지고서 살았지 환난 피해 가 가지고 산 사람 아닙니다.

 홍수가 오는데 홍수를 발 아래 두고 홍수 위에 떠 가지곳서 지금 그때 구원을  받았지 그 홍수를 피해 간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다 멸해졌어.

 앞으로도, 그거 우리에게 하나의 상징적으로 홍수 심판 있는 것은 마지막  실상의 그 불심판이 있을 것을 하나 상징해서 그와같이 예표로 예고로 우리에게  경고의 계시로 주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앞으로 그저 신약 시대의 환난은 과거에 6·25도. 그 환난이요  또 여기에도 뭐 지역 지역마다 여수의 환난도 그것도 내나 그런 환난의 종류에  속한 것이오. 또 광주사태, 요새. 광주사태 가지고서 많이 어지럽게 자꾸 지금  심히 복잡해 가지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화재나는데불 조그만한 성냥블 조그만한  씨가 들어서 큰 불을 일으키는 거 모양으로 이것이 불씨가 될란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일어나는 이런 것들이 그저 여러분들은 뭐 이 데로 일어난다 여기에서  저게서 지금. 또 요새도 데모가 조그매씩 일어나고 이라는데 그런 거 일어나는  것을 그것을 그냥 ‘아, 데모 일어났다.’ 그것만 보면안 돼. 이게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걸 알아야 돼요. 이것이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무슨 징조를 무슨 싹수를 보이고, 있는가? 조그만한 싹수를 보면  그다음에 ‘이거는 뭐이겠다’ 그 약캐는 사람들도 조그만한 싹을 보고서 캐면  그 속에 약이 들어 있지 않소?  그와 미찬가지로 이게 다 이런 거석이니까 이번에 예수님이 재림으로 뭐 끝을  마칠란지 무슨 지역적이나 환난으로 일어날란지 또 세계 대전이 일어날란지  어짜든지, 세계에 대전이니 대전으로써 땅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주님은 공중에  재림하시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고 다 죽임을  받아 가지고서 죽고 나니까 부활하고 죽고 나니까 부활하고, 이러니까 그 사람은  죽었는데 시체가 없습니다. 죽었는데 시체가 없고 죽었는데 시체가 없고  죽었는데 시체가 없고 이러니까, 처음에는 죽고 나서 며칠 만에 시체가 없더니만  나중에는 차차 차차 죽고 나니까 당장 시체가 없어지고 고만 죽으면 살아나는거  보고 이라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거의 다 순교를 다 당합니다. 죽고 나니까  금방 살아나 가지고 다시는 죽일 수 없는 사람이 돼 가지고 돌아다니니까 그거.

안 죽을 사람이 누가 있겠소?  이렇게 하는데.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이게 인제 알곡도 있고 쭉정이도 있고 뭐  꺼부지기도 있는 이것이 타작마당 아닙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가  타작마당이요 또 이제 이 세상이 타작마당입니다. 온 세상에서는 검불 가운데서  이 모든 꺼부지기 가운데서 추려 내면 알곡 쭉정이가 추려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타작하는 것도 뭐 이거 비유로 이래 놨는데 요새는 기계  타작하니까 어데서 나락이 들어가며 어떻게 떨어지며 어떻게 그걸 깨끗하게,  정화를 시키며 어떻게 가마니에 들어가고 가마니에 어떻게 묶어 나오는 줄도  모르게 그만 뭐 이래 그 하면 나중에, 인제 제일 발달된데는 기계가 죽 가면  나중에 벼는 벼대로 다 베이고 쌀가마니가 뭉쳐나와 쌀가마니가 뭉쳐 나와 딱.

어데 쌀이 됐는지. 이러나 옛날은 그렇지 안했다 말이오. 그걸 두고 지금  말합니다.

 이 꺼부지기 있는 그것은 온 세상에서 알곡과 쭉정이 곡식만 이래 남아. 자꾸  이 쓸면 꺼부지기만 빗자루 쓸어내면 그것만 남아. 남고 난 다음에 남은 그거  쭉정이 알곡 있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 교회라. 교회 가운데서 이제 키를  가지고서 이래 까불라.

 알곡과 쭉정이 이래 까부니까 아주 쭉정이는 날아가 버려. 조금 알맹이 들은  것도 날아가 버려. 그러나 거기에서 알곡이 아주 충실치 못해도 알이 들어 있는  건 날아가지 안해. 그 알맹이 든 거는 날아가지 안하고 알맹이가 환난을  이길만한 알맹이가 되면 안 날아가고 알맹이가 환난을 이기지 못할 만한  알맹이가 되어 있으면 그까짓 거 있어봤자 날아가.

 그 속에 알맹이가 들어 있어야 바랑에 안 날아가는데 세상 공산 바람 뭐 전쟁  바람 이거 이런 거 쿠데타 바람 오만 것들이 다 일어나고 또 이런 유혹 저런  유혹, 그뭐 말세는 마귀가 이기고 하나님이 이깁니다. 마귀는 뭘로 이깁니까?  하나님이 그거 해 놨어, 전부이 거짓말 하는걸로 가지고서 이래 만들어서  거짓말에 유혹받는데 거짓말에 유혹받지 안할라고 하면 거짓말을 안 들을라 하면  죽임 받아.

 거짓말을 안 들으면 죽임 받는데 거짓말 아닌 말이 세상에 있습니까? 거짓말  아닌 말이 세상에 있소? 세상에는 전부 거짓말인데 하나님 말씀만이 참말입니다.

그외에는 하나도 참말이 없어. 다 죽은 말이요 죽이는 말입니다.

 이래서, 온 성경은 다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진실한 자들은 살아. 진실한  자들은 어떤 자가 진실한 자입니까? 성경 말씀대로의 지식 말씀대로의 행위  말씀대로의 사람 된 고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그거는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때  남아 있어. 그거는 살아.

 이러니까,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에서 활활 까부는데 안 날아가고 남아 있는  것은 속에 알곡이 들어 있는 것은 무겁기 때문에 안 날아가. 무겁기 때문에 암만  바람이 불어도 안 날아간다 그말이오. 키로 가지고 이라면 확확 바람을 치면  아주 바람이 확확 안 불립니까? 이래도 안날아나가.

 그런데, 그 속에 알맹이 들어 있는 건 안 날아가는데 그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가 몇 가지로 되어 있는 알맹이입니까, 손가락으로? 저뒤에는? 다  들어봐요. 몇 가지로 들어 있는 알맹이요? 저 모르는 사람들은 손가락 안 드네.

다 들었나요? 네, 잘 알았어. 이 셋으로 되어있는 알맹이입니다.

 이 환난에 날아가지 않을 수 있는 진리가 자기 속에 있어야 되고이 환난에  날아가지 안하는 성신의 감동이 있어야 되고 또 이 환난에 날아가지 안할  예수님의 이 대속의 이 공로의 사랑이 자기 속에 들어있어야 돼.

 ‘내가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사죄, 칭의, 화친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시고 죽기까지 하시고 나를 이 대속을 주셨는데 내가 안 죽기  위해서 또 죄를 지어? 내가 안 죽기 위해서 또 의를 양보해? 안 죽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을 배반해? 열 번 백 번 죽어도 어림도 없다’ 인제 그 사람의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그속에 뭉텅하게 들어있었기 때문에 안 날아간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어 가지고서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곡간에 들인다 말은 주님의 곡간 우리  안에 들어간다 말이오, 양의 우리 안에. 양의우리 안에 들어간다 말이오. 주님의  보호 안에 들어간다 말이오.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녹아지려니와 그  의인은 새 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의인은 거기에 들지 안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잘 알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 지글 이 악령의 유혹을  받아서 지금 뭐 지금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이 신앙을  양보하면 지금 환난 없고 앞으로 예수님이 이 키를 들고 까부는 이런 환난 때는  다 날아가고,  그러기에, 지금 편키 위해서 진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다 지. 금은 편치마는  마지막에 죽고 또 자기가 죽어도 진리를 양보하지 안하고 이렇게 굳게 선 사람은  지금은 고통스럽고 환난이 오면 평안합니다. 노아는 언제 고통스러웠겠소? 모든  사람들이 다 배반하고 나가는데 노아의 여덟 식구만 남았으니까 노아 여얾  식구가 그때 얼마나 외로왔겠소? 얼마나 외로왔겠소? 이 생각하면 이거 이거저거  자꾸 핍박하고 외롭고 이거 반대하고 이래 쌓으니까 괴롭지마는 노아를 생각하면  아직 멀었어.

 그 온 세상이 다 그런데 노아 여덟 식구만 남았으니까 얼마나 외로왔으며  얼마나 모든 것이 반대되는 자가 많았겠습니까? 이래도 진리를 내놓지 안했기  때문에 노아는 구원을 얻어야 돼. 모든 앞으로 하나님의 후사가 돼 가지고  있어요, 지금. 영원히 후사가 돼 가지고 영생하고 지금 앞으로 우리도 가면 노아  밑에 노아의 다스림을 받고 노아 밑에 들어 있을 거라. 노아 밑에 아브라함  들었고 아브라함 밑에 그 밑에 쭉 들어 있어요.

 이러니까 이라는 데에는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되지 그럴 때에 우리가이 구원을  내주지 안할라면 생명을 내대야 되고 이런 어려움을 당하니까 믿음으로써 그때  어려움을 지금 댕겨와요.

 댕겨다가서 그때 그 죽음에서 죽음의 어려움 당할 것을 지금 미리 댕겨서 지금  하루 삼십 분 기도 하라 하는 것을 놓지 말고, 그때 한 번 몽탕 어려움 당할  그것은 아무도 당해내지 못해. 이기지 못해요. 이 몽탕 어려움 당하는 이  여려움을 조그만한 어려움으로 자꾸 어려움 당해서 자꾸 모아. 자꾸 이 저축을  해.

 하루 삼십 분씩 간절한 기도로써 이래이래 하는데 암만 좁쌀내끼 만한,  서쑥쌀내끼만한 것도 그거 많이 모아 놓으면 서쑥 포대 한 포대 되지 않소? 또  그것도 많이 모아 놓으면 추럭으로 한 추럭도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티끌 모아 태산 된다고 어짜든지 하후 삼십분 기도를  자기가 앞으로 지금 생명을 내놓지 안하면 이길 수 없는 큰 환난이 오니까  그때에 그걸 생각하면서 미리 뽀시래기 환난으로서 기도하고 회개하는 이  어려움을 지금 당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회개하느라고 고통하고 기도하느라고  고통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환난이 오면 웃고 지내가.

 앞으로는 그리 될 란지 몰라요. 6·25 때 그럴 때에 막 사람이 옆에서 자꾸  죽습니다. 이라고 그분들은 인민군이 거기 주둔해 가지고서 굉장하게 이래  하는데 우리는 그때 부흥회 했어. 하루 세 번씩 종치고 부흥회 했어.

 이라니까, 그분들이 ‘저놈들 이제 우리 죽으라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있으니까 저놈들은 모조리 전부’ 장 우리 잡아 죽일 그런 연구만하고 있는데  그래도 그분들 우리 집회 하는 데에 오지를 못했어. 집회하는 데 오지를 못했어.

하나님이 탁으니까 못 와. 그들이 뭐 말 들으면 오늘 온다 내일 온다 해도  오지를 못했어.

 바로 그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 내가 있는 그 위천교회 에배당에서 한 오십  메타 될까 그리 떨어져 가지고 있어요. 오십 메타 되고 있는데. 거기 우리 집회  했어.

 이랬는데 한번은 이제는 뭐 다 설교 다, 이제는 내가 준비할 거 여러분들에게  다 예언 다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들은 말씀만 하면 요대로만 하면 다 사는  것이니까 이제는 더 전할 게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인제 마지막으로  폐회한다는 그걸, 집회에 폐회한다는 이 광고를 해야 되는데 오늘 아침에는  설교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했기 때문에.

 없다 하면서. 마래복음 5장 1절 이하에 팔복을 읽고서 ‘오늘은 이 팔복에  대해서 한번 읽고 그저 끝을 마치겠습니다’ 이라는데 그 성경을 읽는데 뭐이 꽝  거리더마는 보니까 저 출입구 두 군데 군인들이 와가지고서 뭐 위협을 주느라고  이 총대를 가지고서 마루를 이래 쾅 뚜드리니까 얼마나 깜짝 놀라. 모두 다 깜짝  놀라지. 놀래고 또 여기와 뚜드리고. 출입하는 문은 딱 막고 이래 가지고서  이런데,  이라니까 여기 O 장로라고 요새 지금 조사노릇 하고 있지 않소? 그 O 장로가  그때 주일학교 부장입니다. 부장인데 보니까 함부래 보니 문을 열어놨어,  보니까. 어짠 일인지. 나중에 보니까. 혹 거리더니마는 뛰어서 창문으로 훅 뛰어  밖으로 뛰어나가 버려. 나가는데 저거끼리 짰어. 저거 다 친구들 많으니까. 그  사람들이 다 그거 빨갱이 운동해. 그래 가지고 거기에 그 사람들 다 죽었습니다.

 ‘인제 오늘은 새벽에 갈터이니까 네가 함부래 무슨 소리만 나거들랑은  창문으로 뛰어 달아 나거라. 그라면 우리가 또 간수해 주겠다.’ 그리 내약이  됐다 말이오. 그래 그 말을 파설을 못 해. 그래도 그날 새벽에 나왔으니까  신앙이 어북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 그뭐. 안 나오고 숨을 건데.

 그래 가지고서 그래 인제 그때, 이러니까 이러더니 마는 고함을 질러. 고함을  지르는데 또 나는 지르거나 말았거나 나는 또 설교 고함을 질러. 그때 한 사백  명 모였어. 설교 고함을 또 지른다 말이오. 설교를 자꾸 고함 질러 하니까 자꾸  하니까 이만기 목사가, 지금 이만기 목사인데 그 교회 수집사라요. 수집사인데  저 뒤에, 집사는 저 교인들 어떻는고 볼라고 맨 뒤에서 앉아서 지금 관리하고  있는데 엉금엉금 기어 들어와. 아마 기어 들어오는 것이 나 잡아 가지고 나 좀  끌고 나오라고 독촉을 하니까 지금 아마 좀 나와 보시이소 하기 위해서 오는  모양이라.

 그래 내가 그걸 알았어. 알고 여기 고함을 질렀어. 어데 예배 드리는데  들어오느냐고, 안 물러가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다시 돌아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아마 인민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호통치니까 그게 더 무섭던  모양이라. 기어 나가.

 기어 나가고, 예배보라고서. 그 아무데고 앉아서. 그 사람들 또 뭐라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예배보러 왔습니다.’ 이제는 또 그래  말해. 앉아서 거기 예배를 봐요. 자꾸 설교하니까 또 가 뭐 나오라 이래. 그래  나중에 마지막으로, 예배 안 드릴라면, 가버리든지. 그라면 예배드리라고.

고함을 지르고 이라니까 그래 앉았어. 그래서 인제 다 설교 다 하고  주기도문으로 패회하고 그래 나가니까 나를 앞세우고 사택으로 ‘가요. 사택으로  가서 사택에 갔는데 그래 사택에 가서 인제 좀 앉으시라고 이라니까 그래 앉아.

이래 보니까 그때 사택이 아주 뭐 험했습니다. 험했는데 그 사택이 험하니까  이리 보더니마는 ‘이 착취자는 아니다. 이 사택 보니까 착춰자는 아니다.’  그때는 그거만 봤거든. 그래도 뭐 착춰할라면 돈 모아 가지고 딴데 뭐 외봉도 칠  수 있을 것인데 ‘그래 착춰자는 아니다’ 이라더니마는 서도 그래 인제 가자  이래. 가자고 이래요.

 저거 앞에 서고 또 뒤에 서고 나는 가운데 서고 가면서 이제 복음만 전하고  그래도 하나도 두려움이 없고 참 사랑스러워, 그거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기  때문에. 그래 나는 그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지 뭐 그 무슨 적대시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무슨 뭐 떨거나 두렵거나 뭐 그런 것도 아무것도 없이 이래  복음만 순수하게 전하고 이라니까 그래 한참 가더니마는 뭐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예수를 믿으십시오.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순수한 예수를  믿으십시오. 가시이소.’ 인제 그때는 존경을 해. 가시이소 이래 경어를 써.

그래 인제 나는 그라면‘네 안녕히 갑시다’ 이라고 나는 또 나대로 인제 왔지.

 오니까 얘배당에 오니까 다 달아났어. 너인가 남았어. 너이 남아가지고는 뭐  대성통곡하고 인제 죽었다고 대성통곡하고, 왜? 데려가면 죽이는 거거든, 본래  거기서는. 그 많이 죽었습니다.

 이랬는데, 그 제가 그전에 설교를 하기를 그건 6·25전에 설교하기를 그런 설교  했어. 믿음의 사람들은 환난에서 살고 또 환난 때는 웃음으로 평안으로 살고,  미리 앞으로 닥칠 그 환난을 미리 보고서 미리 고생을 한 사람들은 그 환난이  오면 고통이 없습니다. 다 평안하게 삽니다. 평안하게 살고.

 또,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환난이 없는데 환난 속에, 다른 사람이  환난 없는 그때에 환난 속에 살고 다른 사람이 없는 미래의 환난을 댕겨서 환난  속세 사는 사람은 환난이 을 그때는 기쁨으로 평안함으로 하나님이 살게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환난을 미리 닥쳐요. 닥치는데 닥치기는 다 닥치는데 미리 닥치는  것과 그때 임시 닥치는 거와 달라. 이러니까 기름을 준비하는것이 다 힘이  들지만 미리 준비한 사람은 아후 설설 준비하니까 준비하는 데 고통 안 당허소?  마지막에 사람들은 그 기름 준비 할라고 급하게 하니까 되기는 됐지만 기름 준비  못 했다 그거요. 이와 꼭 같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모르는 환난에서 살고 모든 사람이 환난당할 때에는  평안에서 살고 또 모든 사람이 평안에서 사는 데에는 또 어데 살아야 돼요?  OOO.씨. 모든 사람들이 다 평안하게 사는 데에는 어데 살아야 돼?  어? 모두 울고 웃고 좋고 지금 야단인데, 야단이라 뭐 우리가 뭣이라 별별 운동  별별 운동 ‘지금은 또 인제 한번 운동해야 되겠다’ 이리저리 갈라지고 저거  좋아하는 대로, 오늘에는 하나님의 말씀에게 억제 당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게 하나도 억제 안 당하요. 말씀이야 저야 하거나 말거나 저는  제대로고 말씀은 말씀은 말씀대로지 전부 저거 생각대로 주장대로 해석 다 해  가지고서 이렇계 자유로 뛰놉니다. 참 먹고 마시고 뛰노요, 우상 만들어 놓고.

 우상은 뭐? 하나님만이 구원하는 것인데 하나님 외에 저거 꾀가 구원할 줄 알고  저거 뭐 인간 친한 그까짓 게 구원할 줄 알고 ‘아, 우리당이 얼마가 세다. 우리  운동이 얼마나 세다. 우리와 하나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세다. 남한에  공산주의가 얼마다. 이북에 공산주의들이 우리 입고 있다.’ 그까짓 거 다  먼지라. 주님이 다 없애면 일초에 다재가 되고 말고 없어질 수 있어. 그거 다  주님이 있게 하시니까 있지, 이러니까, 주님 외에,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공로 이 셋 외에 자기의 피난처로 생각하는 자들은 지금 기쁘고 즐거워서 오만  명예, 지위, 권세, 뭐 행락, 자기 욕심 이래 가지고서 오만 거 제 욕심대로 제  마음대로 제 주관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계획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걸  ‘이거 있으면 됐다’ 하고서 지금 안심하고 노는 그런 걸가리켜서 앉아 먹고  일어나 뛰놀더라, 우상 만들어 놓고.

 지금 우상 만들어 놓은 사람, 우상 만들라고 보물을 자기에게 있는 보배를  바쳐서 우상 만들라고 하는 사람, 우상 만들어 놓은 사람, 우상 만든 사람,  우상이 없어서 지금 부르짖는 사람, 이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에 모든 것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영감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두려워해서 거기에 눌리는 사람 또 이 셋을 의지하는  사람 그 사람 외에는 다 살아 있든지 말든지 전부 멸망입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이런 환난이 우리에게 올 걸 생각하고 그때에 당할걸  생각하면서 오늘에 하루 삼십 분 기도를 게을리 하지말고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자꾸 파서 고쳐야 됩니다. 뭣이든지.

 털끝만한 것도 죄가 있으면 ‘죽음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독수리는  멸망을 말하는 것인데 죽음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 모인다. 죽음이 있으면  독수리가 파먹으로 오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죄가 있는 곳에는 명망이  찾아옵니다. 죄 있는 데는 멸망이 찾아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안팎에 죄가  없어야 돼. 죄를 완전히 회개해서 죄가 없어야 돼. 죄를 완전히 청산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이 외에는 피난처  없어요.

 뭐꼬 OOO 집사 왔어요? OOO손 들어 봐. OOOO 목사님 사모님. 안 왔지 안 와.

그거 요새 환난, 요새 평안하게 살아, 모두 다. 모두 다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 모두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평안하게 지금. 제각각 금송아지를 만들어  놨거든. 지금 그거 만드느라고 또 애쓰는 사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눌린 사람은 새벽기도 안 나오고 못 견딥니다. 또  영감에 눌린 사람은, 영감이 자기를 눌러서 거기에 눌려서 꼼짝못 하는 그  진리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고 자기를 눌러서 꼼짝 못 하는 그 영감이 구원할  수가 있고 자기를 눌러서 자유하지 못하게 꼼짝 못하게 하는 그 예수님의 대속이  구원하지 그까짓 거 헌신짝 모양으로 집어던져 버리고 던지고 던지고 하는 그런  것은 능력 없어. 그래 믿는 그 진리는 능력이 없어. 그 영감도 능력 없고  예수님의 대속도 능력없고 예수님의 이름도 능력 없어.

 예수님의 이름은 자기가 온 천하 모든 것보다도 예수님의 이름이 제일 두렵고  크고 의지할 만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은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 다른  자에게 효력이 없어. 효력이 없어.

 이러니까 여러분들, 오늘은 환난에서 살아야 됩니다. 오늘은 환난에서 살고,  오늘 환난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죽고 망하고 절단나고 천인 만인이  네 옆에 꺼꾸러지는데 네게는 이 재앙이 오지 못하리라. 오늘에 환난에 사는  사람은 앞으로 정작 환난이 올 때는 그때는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살아.

 이러니까, 다른 사람이 평안한 때는 환난에 살고 다른 사람 환난일째는  평안에서 살고 거기에서 훅 넘어서 날아서 또 환난에서 살고 정반대로 살아.

이것이 진리에 속한 사람이요 진리를 향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뭐 모든 계획 다 가지지마는 저거 마음대로 안 돼. 이러니까, ‘주남선  목사하고 백조사하고 저거는 어짜든지 우리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딿고 있기  때문에 저거 지금 죽이면 민란 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 통일해 놓고 난  다음에 멋지게 죽이자’ 이라다가 ‘이제 우리가 안 됐으니까 후퇴하면서 저놈들  죽여 버리자’ 후퇴하며 죽일라 했는데, 주남선 목사님은 후퇴하다 죽일라  했는데 하나님이 못 죽구로 했어. 그 주일에는 가다 그만 발을 꿈쳐서 못  걸어가서 교인들이 와서 업고 왔어. 그래 가지고 꼼짝을 못 하고 그리 안 하면  주일만 지키면 월요일날이면 어서 인민군 속에 거기에 지금 폭탄 속에 자기  사택에 와 가 지고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날은 올라 해야 뭐 올 수가 있어야지? 그만 다리를  꿈쳤으니까 꼼짝을 못 하는데 그래 좀 업고 가자 하니까 교인들이 업고 갈라  합니까? 이래서 거기서 나흘 있었는데 나흘 동안있는 동안에 후퇴해 버렸어.

그래 뭐 와 보니까 뭐 주남선 목사가 있어야지,  나는 또 그때 사택에 있었어. 있으면서 그날 밤에는 보니까 인민군이 조용해.

인민군이 어. 항상 인민군이 잡으러 와 가지고서 애를 먹이는데 가자 안 간다  가자 안 간다 이제 조사님은 짐은 지고 가지 말고 이 탄환짐에 좀 같이 좀  책임자로 따라가 달라고 자꾸 하는데 처음에는 나는 그래 나는 지금 내가 못  간다고서 자꾸 이래 피했는데 나중에 거석하니까 자꾸 그러며 와.

 한번은 가만히 기도하고 보니까 ‘그런 게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나는 복음 전하러 왔지 나는 하나님 계신 거 증거하지 하나님 없다는 무신론  나는 전하러 거기 협조하는 사람 아니라. 사람 죽이는데 협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사람 죽이는 데 협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오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더니마는 아 그라고 나니까 그만 다시 안 왔어요. 고라고 한 고게 한 사오  일인가 일주일인가 계속했어. 이래서, 그날밤에는 아무 조용해서 막 모아 가지고  우리 찬송해서 그 사택에 모여 가지고 찬송을 이래 막 이래 하면서 오늘 인제  우리 세상, 오늘 인민군들 어데로 갔노?’ 우리 몰라서. 그래 지금 찬송하고  있었는데 그래 날이 부움하게 새니까 오더니마는 ‘저 자꾸 인민군이 후퇴를  합니다’ ‘야 가 봐서 물어봐라. 후퇴하는가 물어봐라.’ 가니까 작전상 지금  잠깐 후퇴했다가 할라고 지금 후퇴한다 하며 오면서 전부 다 절어. 하나님이  내려갈 때는 평양서 내려와도 하나도 절름발이가없고 걸어와도 그렇게 기운이  생생했는데 올라갈 때는 다 절어. 절뚝발이가 됐어요.

 그래 물어봤어. ‘어데서 을라오는데 이렇게 저노?’ 이라니까 야로에서  올라오면 야로에서 그거 한 사십리밖에 안 돼. 사십리 왔는데 절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인민군을 쓸 때는 강했습니다.

 지금도 이거 교회를 몽둥이질 할라고 지금 이북을 강하게 이라는데 여기에서  조금 하나님이 인제 노를, 하나님이 노를 풀도록 회개하고 깨끗하면 저 위에  이북이 푹 풀이 죽어지고 또 여기에서 지금 교회들이 세상만 바라보고  꺼들거리고 돌아다니면 이북이 강해지고, 요새 지금교회들이 좀 꺼들거리고  돌아다니며 요새 그만 자유주의라. 어떻게 자유주의인지 요새 신학자들이 마구  무책임하게 지금 행동합니다. 이 신학자들이 제일 먼저 죽임당할 것입니다.

 소련에 혁명할 때에 제일 먼저 신학자 죽이고 목사 죽이고 그다음에 성직자  죽이고, 뭐 그때는 그 나라에는 예수 안 믿으면 그 나라 국경에 들어가면 예수  안 믿는다 하면 돈 주고도 밥을 못 사먹었어요. 그렇게 됐던 나라가 완전히 저  무신론 나라로서 그 혁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뭐이냐? 교회라 하는 것이  하나님, 진리, 예수님의 대속 공로믿지 안하고서 전부 예수 믿는 걸 이용해  먹거든. 이라니까 오늘, 예수믿는 걸 이용해 먹어. 가만히 보니까 돈벌이 하는  데는 편안하고 돈벌이 하는 데는 목사 되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없어. 이래  놓으니까 목사 되는 그런 인간들 많아.

 이러니까, 아무래도 앞으로 환난이 곧 올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정신차려서  그라면 살 것이고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제까짓 게 암만 해도 무슨 죄든지  죄가 있으면 안 돼요.

 그런데, 지금 뭐 우상 섬기는 거, 우상 섬기는 거, 우상 만드는 거, 또 우상  만드는 거 뭐이냐? 자기가 뭐이든지 좋아하는 거 주님보다 좋아하는 그게 다  우상이라. 또 의지하는 것도 우상, 두려워하는 것도 우상, 매인 것도 우상,  거기에 복종하는 것도 우상 다 우상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를 깨끗하게 해서 어짜든지 깨끗하게 합시다, 깨끗하게  하는 데는 그 십계명을 따라서 하면 됩니다. 십계명을 따라서 우리가 죄를  회개를 해서 어짜든지 깨끗하게 하고 삼십 분 기도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는 절대 ‘주를 바라보는 자’ 뭐라 했습니까?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OOO이도 돈벌이 잘하지마는 예수 잘 믿어야 된다. 거기서 나올 때는 예수 잘  믿는다고 나왔는데 그때 OO교회서 이래 나올 때는 믿겠다고 했는데 요새는 믿는  내음새가 잘 안 보여. 잘 믿어야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 그 예수 믿는 데에 목사들 훼방하지 말아요. 목사들 훼방하지  말아요. 목사 하늘나라 안 보면 목사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철이 없어  목사가 좋은 줄만 알고 나서지 목사가 어떻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나서.

 목사들은 다 마지막에 주남선 목사님 가족들도 굶어서, 굶어서 나중에 세탁비누  장사했어. 세탁비누 그것도 따라다니니까 못 사지 누구든지 그거 살라 합니까?  그래서 얻어먹다시피 얻어먹었습니다.

 그때 제가 얻어먹을 때에 그때에 쌀을 얼마 갖다 줬다고 그게 내나 주남선  목사님 전기가 이름이 뭐꼬? 해와같이 빛나리가? 거레 보면 쓰였는데 거기  거짓말 하나 쓰였어요. 내가 중 옷을 입고 그래 갔다 하는데 나 중 옷 입고  가지는 안했었어. 안 하고 어떨 때는 삿갓 쓰고, 삿갓 쓰고 이래 농부처럼 그래  가지고서 짊어지고 쌀 짊어지고 갖다 주고 그랬어. 그냥 가면 그 사람들 먹는 게  아니고 들키면. 뺏겨 버리니까. 가져갔다 하면 뺏겨 버리고 그 사람들 못 준다  말이오. 그래서 그분의 자녀들이 지금도 참 제 말이라 하면 항거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그래. 주남선 목사님도 그랬지. 손양원 목사님 가족들도 그저 모두  문둥이들이 얻어다 먹였습니다. 아무것도. 그때 무슨 오늘이라도 환난 오면 누가  십일조 내요? 누가 연보 내요? 아무것도 없어요.

 또 그라고, 딱 수위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놈이 저기 들어가는 고 보자’  거기에 가다 붙들리면 절단 날 터이니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어요. 올 줄  압니까? 없어. 그렇게 그때는 외로와져. 그런 그 결말이 될 그때가 밤중에 신랑  오는 때라, 주님 만나는 때라.

 이러니까, 그건 줄 알고 지금 목회자한테 혹, 지금 뭐 저거에게는 생명의 도를  주는데 자꾸 설설 훼방하고 앉아 숙떡거리고 그 행세하지 말아요. 어짜든지 지금  이 생명의 도를 주니까 살지 이 도를 안 주면 못 살아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준비 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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