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선지자선교회 1982년 5월 6일 목후집회

 

본문 : 말 1: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제까지 공부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보존하시고 또 우리 구원 위하여 모든 것을 영원 전 예정하시고 그대로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데, 이루어 나가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현실 현실을 만들어  주시면서 그 현실 현실에서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사망에 속한 것을 생명의 것으로 이렇게 수많은 것들을 바꾸어 가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바꿀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현실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못나도 다 저 잘난 재미로 사는데, 제것 가지고 살지 바꿀 것이  뭐 있는가, 고칠 것이 뭐 있는가 이렇게들 생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다 믿고 어쨌든지 현실은 하나님께서 바꾸고 고치고 없는  것은 새로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구원의 현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현실을 하나도 허비하지 않고 그 현실 현실에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바꾸게 되는 이유는 하늘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서 삽니다.

하늘나라의 그 층어리는 세상으로 비할 수 없을 만침 아주 층어리가 많습니다.

계급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 차이는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지마는  하늘나라에 가면 구원 얻은 사람들의 그 층어리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잘 이룬 사람도 있고 못 이룬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는 가면 아무리 잘난 사람의 것이라도 다 못씁니다. 전부  조물주며 또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되신 이분과 꼭 같은 것만 거기에 가서  있습니다. 이분과 같은 것이 많은 사람은 그 나라에 실력있는 사람이고 적은  사람은 실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성질도 하나님의 성질 하나 가지고 다  살고, 기쁨도 하나님의 기쁨 하나 가지고, 욕심도 하나님의 욕심 하나 가지고,  힘도 하나님의 힘 하나 가지고, 지식도 하나님의 지식 하나 가지고 다 삽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것은 뭐 좋든 나쁘든, 크든 작든, 잘났든 못났든 모조리  이것은 폐지입니다. 이것은 전부 폐지고, 하나님 한 분의 것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냐. 제것을 가지고 고집하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제일 거지로 살 사람이 누구냐. 제것 가지고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주장대로, 제 성질대로, 제 지식대로, 이대로 산 자는  세상에서 자기 것 버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 것 삼게 하는 이런 기회를  하나도 이용하지 못하고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에 갈 제것만 가지고 일생동안  살았으니까 세상을 끝날 때에 그것은 다, 믿는 사람이라도 그리스도  심판대에서는 다 제거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탑니다.

 어떤 사람은 중생 된 영과 그 심신의 덩치만 하늘나라 가지, 그 기묘하고  오묘하고 찬란한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이 오묘하고 기이한 것은 전부 지옥불에  불타 버리고 껍데기만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바꿀 수 있는 기회에 바꾸지 아니하고 제것만 가지고 날뛰던 사람들이 다 이렇게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 여러 지체는 다 같은 직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직분을 한다 하는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이런 개성  저런 개성이 있다는 말 아닙니다.

 어떤 신학자가 해석을 하는데, 사람이 이런 개성, 저런 개성, 모든 개성들이  있어서 개성 개성이 집단이 되니까, 화단에 울긋불긋한 그런 꽃이 다 여러  색깔이 섞여 있으면 화단이 아름다운 것처럼 하늘나라도 이런 개성 저런  개성들이 다 그대로 살려서 가는 것은 하늘나라를 화려하게 한다 그렇게  신학박사가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박사가 그 설교 하기 한 4, 5년 전에, 제 집회할 때에 와서, 제가  하늘나라는 단일성의 나라라, 모든 개성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의 그  속성을 다 자기 것으로 삼아 단일성의 존재들이 살고 있는 하늘나라라 이렇게  그날 밤 설교를 그 설교를 했는데, 나중에 인사하고 가면서, 나도 이렇게  가르치겠습니다. 이제는 신학에서 이것을 가르치겠습니다. 이렇게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 말 하더니마는 그만 그 뒤에 어떻게 변했는지, 이 소리를 하고 나서  생각하니까 신학박사가 일개의 조사에게 그 말 한 것이 마음에 울분했든지  정반대로 설교를 하는데,  사람들의 개성을 살려서 하늘나라에 개성 개성이 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늘나라의 미를 이룬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는 것은 개성 개성을 가리켜  말한다 그렇게 해석하는 기막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 말은 개성들을  가진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한 분의 속성대로 그 형상을 닮아 하나님의  모형인 양성일위이신 예수님, 예수님의 모형, 예수님과 꼭 같은 성질, 욕심도  같고 뜻도 같고 소원도 같고 취미도 같고 비판도 평가도 지식도 같은 이런  사람들인데, 다만 사명을 맡아서 어떤 사람은 신학자, 어떤 사람은 교사, 목사,  전도사, 구제자, 정치가 이렇게 하는 일들이 자각 다르다는 것이지 하늘나라에  그렇게 개성이 가서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크게 잘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쨌든지 어떤 잘난 사람을 따라가도 안되고  하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우리가 본받을 우리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현실 현실을 맞이하는 이 현실은 주님이 우리 구원 위해서  사랑하셔서 만들어 주신 현실인데, 이 현실마다 무용의 현실은 없습니다.

쓸데없는 현실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은 쓸데없는 현실이 없으면 어디다가 쓰라고 현실을 주시는가.

가만히 현실을 조사해 보십시오. 그 현실에서 내 성질과 하나님의 성품이  정반대로 나타나서 내 성품이냐 하나님의 성품이냐, 어느 성품을 버리고 어느  성품을 취할 것이냐.

 둘의 성품이, 나와 주님의 성품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현실이요,  다르니까 어느 성품을 내가 차지할 것이냐 하여, 내 성품은 썩고 죽은 것이기  때문에 버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내가 바꾸어 가지도록 하게 하는 그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전 시간에도 지식 바꾸게 하는 현실, 성질 바꾸게 하는 현실, 마음 바꾸게 하는  현실, 소원 바꾸게 하는 현실, 취미 바꾸게 하는 현실 이렇게 여러 가지 우리  구원을 이루는데 필요한 현실을 주는데, 어떤 현실은 주님의 것과 내 것이 서로  대립이 되지 않고 둘이 꼭 같은 것으로 나타나서 그 현실에는 바꿀 것도 없이,  내 것이나 주님의 것이나 꼭 같은 그렇게 그 현실을 살아도 될 수 있도록 그런  현실일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나와 주님과 조그매 틀리는 현실도 있고, 어떤  때는 정반대로 많이 틀릴 때도, 많이 틀리는 그런 현실도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꼭 주님과 나와의, 주님의 뜻도 그 현실에서 지킬 수 있고 내  뜻도 지킬 수 있고, 그 현실에서는 주님의 뜻이나 내 뜻이나 대립이 안돼서 내  뜻 지키고 주님 뜻 지키는 것이 다 같이 보여지는 그런 현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현실에는 주님의 것과 내 것이 분별이 나지를 않은 때입니다.

그러면 분별이 나지 않은 때이니까 그때는 아무 뭐, 바랄 것도 없고 대립될 것도  없고 고칠 것도 없는 때입니다.

 그러면 그런 때는 아무 수입이 없는 때입니다. 수입이 없는 때. 뭣 때문에  그러면 수입 없는 그런 때를 주시는가. 그것은 그 현실에서는 주님과 나와 아무  배치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도 예수를 잘 믿는 줄로, 주님과 나와 같은 줄로  이렇게 아는, 주님과 나와 같다 하는 것을 인식시키는 그 현실을 주신 것이고,  그 현실이 지나가고 나면 즉시 그때는 나와 같았는데 그 다음 현실에서는 보니까  주님과 나와의 정반대가 되어, 주님은 이렇고 나는 이래서 내가 주님 뜻을  따르려면 나를 버려야 되고 나를 따르려면 주님을 버려야 되는 그런 정반대인  그런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서 주십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나는 주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되기 때문에 이제 다 된 줄로  알았더니마는 이번 현실을 만나 보고 보니까 과거에 그 현실에서는 같았던 것이  실은 그것이 나타날 기회를 주지 않고, 그 흑백이 구별될 수 있는 그런 현실을  만들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둘에 것이 배치가 되지 않고 일치 됐구나 하는  것을 알고, 일치 됐다고 일치된 그것을 안심하지 말아라. 반드시 일치해서 된  데에서 안심하지 말고 둘이 대립된 그 대립에서 너를 죽여 주로 살고 너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고 해서 자기가 부인이 되든지 죽든지 버리든지 그에게  복종하든지 이 변동 이것이 순서가 통과된 것만이 산 것이요 구원이 되느니라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데 오늘은 비가 와서 저기 뜰이 모두 추지니까 전부 집안으로 들어  모였는데, 그래도 어제 오전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적습니다. 적은 것은 아마 무슨 일이 있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이제 이거 큰일났다 하는 일이 있는 것인데, 이렇게 비가  와서 좁혀 가지고 좁게 앉으니까 벌써 그 현실이 바꿔져서 정갱이를 펴지를  못하겠고, 쪼그려지고 앉아야 되겠고, 이렇게 좁아 놓으니까 자 이거는 현실  아닙니까. 이것이 현실이지요 현실인데, 그러면 이 현실에서는 무엇을 지금 구원  주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까. 여기 현실에서 다 같이 좁게 앉는데 저만 좁은 양  하고, 또 저만 넓게 앉으려고 하고, 또 자기를 생각하고 남을 생각지 아니함으로  시비가 일어나는 그것이 옛사람이니까 그놈 죽이고 고치라고 이 또 현실을 주는  것이로구나 하고 잘 활용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제일 천국, 자기 천국을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천국생활 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자 어쨌든지 나는 좁히고 다른 사람들을 편케 앉도록  좁혀 보자, 좁혀 보자, 얼마든지 좁혀 보자, 그저 암만 좁혀 봤자 그 자리에 살,  그 자리에 있기는 있지 들려 나가지는 않으니까, 아무리 좁힐래야 더 좁힐 수가  없습니다.

 좁히고자 하는 사람, 자기는 좁고 다른 사람 넓게 앉게 하려 하는 사람은 자기  천국을 만들었소. 이런데 좀 넓게 앉으려고 해 봤자 되지도 않는 것 자기 지옥만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단단히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십시오.

 현실은 이제 전문가가 되면, 전공가가 되면 현실이 척 닥쳤을 때에 이거 왜  이런가, 여기서 무슨 필요가 있어서 이런 현실 주시는가 이것부터 생각합니다.

이것 생각해 가지고 이렇구나, 저렇구나.

 올해 천막을 치는데, 남반에게다가 의뢰를 했더니마는 영 큰 코를 다쳤는데,  아무리 못나도 무력해도 제 일은 제가 해야 되지 저 할 일은 남에게 전가시켜서  남에게 청구하는 것은 이것은 다 속는 일이고 헛일이다.

 왜 이 현실을 줬을까, 올해 조그만한 이 속임으로써 앞으로 거창 집회에 크게  이제 학생들이 가는 큰 집회에 그때에 많은 부하를 데리고 가 가지고 그때 크게  속을 일을 지금 미리 조그만한 속음으로써 깨닫고 방비하도록 하는 것이로구나.

모든 것을 그 안에 뜻이 숨어 있는 것과 필요 있는 현실이라는 것, 거기에서  자기가 얻을 유익이 있다는 것, 이렇게만 깨달아 나가는 사람은 마귀란 놈이  간담이 녹아집니다. 간담이 녹아져. 여러분들, 현실마다 무용의 현실이  없습니다.

 왜 일계명을 했는고, 왜 일계명을 줬는고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시니라」 이제 어떤 선생님이 와서 말하는데 거기 원어를 보니까 「내  앞」이라고 하는 것이 원어에 맞다고 그러는데, 내 원어 모르지마는 「내  앞」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밝히 알려 주려고 애쓰는 것이 하나님이신데, 자꾸  어지럽게 만들어 가지고 엉뚱이 같은 그런 학자는 하나님 앞에 꾸중을 단단히  들을 것이오. 어떤 사람이 번역했든지.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시니라」 있게 말라 하시니라, 그러면  이 일계명 해석은 주님부터 먼저 손잡고 그 다음에 둘이 하나돼 가지고 모든 것  손 잡으라 그말이오, 그 말 그것이 제일 완전한 해석입니다. 뭐 하려고, 뭣  때문에, 우리가 뭐이기 때문에 네가 자존자 하나님, 내 다음 위치를 네가 가질  자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정승은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이라, 한 사람 왕 밑에  있고 일만 백성 위에 있다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한 분 하나님 밑에 있고, 모든  피조물을 통치할 자이기 때문에 그분하고 한 덩어리 안돼 가지고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해 나가겠소.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부터 그분하고 한 덩어리 되는 이 일을 연습하고, 먼저  그분부터 접촉해서 한 덩어리 되고 난 다음에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돈도  만나고 직장도 만나고 공산주의도 만나고 이래야 되지 그거 안 하면 안 된다  왜정말년에 일본에서는 참 신사참배 때문에 고통이 많았습니다.

 그만 그거 안하는 사람은 배급도 안 주고 영 굶어 죽이고 이랬는데, 배 수윤  목사님, 배급은 떨어졌지 배급을 타야 되지, 배급을 타러 가면 너 신사참배  하느냐 이거 물을 터이니까 이제까지 안하고 싸워 나가는데, 그때는 모두 다  군인 출신들이 거기서 무기 제작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신사참배가 철저한데,  거기서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 이제까지 신사참배 안하고 나왔는데, 배급 타러  가면 반드시 종교가 무엇이지, 으례 조사를 해 묻는 것이고, 종교 묻고 난  다음에는 신사참배 어떻게 하지, 으례 물을 터이니까 이거 쌀을 안 타면 굶어  죽을 모양이지, 그거 물으면 쌀도 먹지 못하고 이제 감옥에 또 잡혀 가는 것이지  이랬는데 그래 쌀 타러 들어가면서 쌀, 식량 청구하러 들어가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이것 묻지 이것 묻지 해서 가슴이 도근 도근해서, 안됐다,  어라 후퇴하자. 나와 가지고 또 기도 한참하고 이러니까 뭐 우리 하나님께서 날  안 굶겨 죽이려면 그 입을 봉해 가지고 그런 것 없이 할 것이고, 내가 그 말 또  해도 일 없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이 굶어 죽게 하면 굶어 죽고, 하나님이 먹게 하려 하면 제까짓  것이 무슨 소용 있노,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생겨서 담대하면서 문을 쾅 열고  들어가니까 그때 후퇴했을 때 그 까다로운 담당자가 그만 딴 데 나가 버리고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데, 가서 말하니까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도장을 꼭 찍어  줘서 그래 가지고 나왔다고.

 우리는 제일계명이 보배입니다. 보배 중에 보배요. 주님하고 나하고,  전능자하고 나하고 둘이 결합되고 난 다음에 만 가지를 대해도 문제가 없소.

이것은 못난 자가 나하고 둘이 결합해 가지고 하면 내가 손해가지마는, 못난  자가 자꾸 달려들면 내게, 내게 있는 것 닮을 것밖에 아무 것도 없소.

가난뱅이가 자꾸 달라 붙으면 뭐 양식이고 뭐이고 손해갈뿐이지 유익 될 것이 뭐  있습니까.

 이렇지마는 거지같은 내가 큰 부자한테 들어붙으면 만고에 유익 될 것이지 해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있기를 무지 무능한 이것이 전지전능한 그분이 손잡고 둘이  같이 가자 하면 그거야 땅 짚고 헤엄하기지. 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소.

 이러니까 제일계명이 보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뭣 때문에  이러는고 하고 까다롭게 보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일계명이 제일  기쁜 소식이오 그 다음에는 이계명이 둘째로 기쁜 소식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지만 네게 복되게 가지고 화되게 가지지 말아라, 아무  소용없는 것 그것 잘못 가지면 나하고 끊어지고 아무 소용없는 그것하고 결합해  가지고 그것 섬기다가 망한다, 이러니까 아무것을 가질지라도 나하고 둘이 똘똘  뭉쳐 가지고 그것을 나 위해서 가지도록 해라, 그 모든 것을 나 위해서 가지도록  하고 나 위해서 사용하고 나 위해서 써라.

 그러면 어쩌려고. 하나님 욕심쟁이네요. 아니오. 그렇게 하면 당신의 충만한  것을 나에게 다 줍니다. 자, 내것하고 하나님 것하고 둘이 한데 타 가지고 같이  살자 하면 손해입니까 이제 유익입니까. 내게 있는 것 당신에게 바쳐 살면  당신의 것 모든 것 내것 돼. 내것이 다 당신의 것 되면 당신의 것은 다 내것 돼.

내 자신이 당신의 것 되면 당신은 내 하나님 돼. 손해갈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유익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여기에 아마도 이 말씀을 해야 되겠다 해서 하는데, 이 말라기 선지가 말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선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마지막으로  말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을 하고, 그전에는 빙빙 둘러서 이렇게 말하다가  여기서는 노골적으로 마지막으로 말을 하고 이스라엘이 듣지 않아서, 이스라엘이  이 예언 듣고 난 다음에 망해 버렸습니다. 망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자껀 고생 했어.

 그런데 이 말씀을 이번에 분명히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  하다가 다른 말씀도 여기 나왔지마는 실은 이 말씀에 연관된 말씀으로 늘 계속해  나왔었는데,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 중에 제일 진노하는 것은  뭐이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척하고도  배척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이것을 제일 진노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습니까 너희들이 하는도다. 하는도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이것을 제일 분노해서  이스라엘을, 에서와 야곱이 장자가 바꾸어진 것처럼 이스라엘과 이방이 완전히  하나님의 장자가 바꾸어진다, 이스라엘은 버리고 이방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장자로 세우겠다 하는 이 무서운 선언이 되고 난 다음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오늘도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는 이제까지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던 자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에서 떨어지고 우리 원수  공산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는지 모릅니다.

 과거 6·25때 보니까, 남한에 있는 남한 군인들은 차를 타고 그저 조금씩  걸어와도 전부 발병이 나 가지고 쩔룩 쩔룩거리는데, 이북에서 내려온  인민군들은 보니까 거기서부터 차 한 번도 못타고 뭐 보름을 걸어 왔다던가 어째  왔다던가, 밤낮으로 이렇게 걸어 왔는데도 발병 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그걸 보고 역부러 자꾸 물었소. 며칠 걸어 왔습니까, 열 아흐레  걸어왔습니다. 얼마나 걸어 왔습니까, 뭐 신의주에서 나서 걸어왔습니다.

함흥에서 나서 가지고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걸어왔다 하는데, 발병 안  났습니까, 발병 하나도 안 났습니다. 하나도 안 났다고 해.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반대로 에서와 야곱을 바꾼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던 남한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 거리가 되고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능력은 인민군들에게 가 있었어요. 인민군들에게 가 있어.

이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건강하고,  또 물어봤어. 나는 이점을 두고 내가 그들에게 알려고 물었기 때문에 그  면으로만 물었는데 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물었는지 모르지요.

 우리 예배당에 와 가지고, 이 예배당 좀 우리가 점령해야 되겠다 해서, 안  된다고. 그래 또 이제 풍금을 타기 때문에, 풍금 이거 부숴라. 다 뜯어 버려라.

뜯어 가지고, 어디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을 이런 못된 무신론자들이 쓸 수  있겠느냐. 부숴 버리고,  그래 인제 그 사람을 그 밑에 별관 방에다가 그 사람들을 수십 명 앉혀놓고  내가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이야기를 해 보면서, 오면서 이렇게 오면 모두  피곤할 터인데 그래 며칠 만에 고기 한 번씩 먹습니까, 고기가 뭐입니까, 하루  밥 한 끼 먹거나 말거나 하는데 그것도 그저 보리쌀 그대로지 남한에는 쌀이  없는 모양입니다. 쌀은 다 숨겨 버렸으니까 보리쌀 그거 뭐 삶은 듯 만 듯해서  한때 한 끼도 먹고, 한 끼 얻어 먹으면 잘 얻어 먹습니다. 이틀만에 한 끼도  먹고. 그런데 시장해서 어쩝니까, 어쩐지 그래도 시장하지도 않고 배도 안  고프고, 뭐 피곤치 않습니까, 피곤치 않다고. 발병은 어쩌냐고. 발병 안 났다고.

그래 내가 있다가 발병이 그렇츰 안 날리가 있는가, 한번 봅시다. 내가 이러니까  예, 보이소.

 우리 그래도 날마다 세 번 예배봤습니다. 예배보고 그래도 하나님이 그러니  그분들하고 친해서 예수 믿으라 하고 어찌 됐든 간에 그래 가지고 뭐 아주  친하게 지냈어. 그 이상해요.

 그 발을 이래 보이소 이러는데 발을 보니까 하나도 터지지도 않고 병이 하나도  안 났어. 물집 하나도 잡히지 않았어.

 내가 그때 보고 설교를 그래 했습니다. 하나님께 몽둥이를 단단히 단속하고  몽둥이를 실한 몽둥이를 만드셨다, 몽둥이를 이렇게 튼튼케 하는 것 보니까  우리의 맷정이 주님 앞에 심히 크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그 집회 때 내가 그  설교를 했습니다. 인민군 속에 포위해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바꿔 버린다 그말이오. 바꿔 버려. 나중에 소문 들으니까  삼일교회에서 마구 회개 운동이 일어나 가지고 나흘 동안을 밥을 굶고, 목사  장로, 피난 온 모두 목사 장로들이 이제는 지금 밀고 내려온다, 그만 거기만  가면 어디 피할 데도 없고, 모조리 이북에서 내려온 월남한 목사들은, 우리들  피해서 갔지 해 가지고 모조리 잡아 죽일 터인데, 이제 죽을 지경 돼 놓으니까  급하다 그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삼일교회에서 마구 나흘동안을 다글 다글 다글  다글 다글 다글거리고, 밥도 먹을 줄 모르고 굶어 가지고 마구 회개를 하는데  굉장했답니다.

 회개를 하니까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가 잘못된 데 분개해서 몽둥이 들었는데  잘못됐다고 눈물 흘리면서 회개하니까 아무래도 아들이 아들이지 몽둥이가 아들  될 턱이 있는가 이러니까 아들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몽둥이 이것들이 믿는  자들도 순교도 시키고 이러니까 분하다 그말이오.

 몽둥이를 자뿐 자뿐 분질러서 이러니까 그들이 후퇴할 때에는 그만 보니까  정신도 없이 이러는데, 나가 가지고 아이구, 어디서부터 이리 옵니까 이러니까  사경에서 오고, 뭐 저 합천에서 오고, 합천에서 오면 찍해야 한 70리 한 100리  되는가, 100리 되는데 전부 쩔룩 쩔룩 다 절어요. 올 때는 발병 안 났는데 갈  때는 전부 발병이 다 납니다. 그 이상합니다. 전부 발병이 나 가지고, 바쁩니다.

이야기 할 여가 없습니다. 바쁩니다. 이러면서 쩔룩쩔룩 쩔룩쩔룩 그러면서  도망을 치는데 그게 다 하나님의 역사요, 여러분들.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에서는 장자지마는 내가 미워 했고 야곱은  차자지마는 사랑함으로써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줬다. 왜, 너희들이 내가  너희들을 사랑했지마는 내 사랑이 뭐인지도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제일 분개합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당신의 사랑을 땅위에 보내는 것이오. 당신의 사랑  보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리 예언하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이 사람되어 와  가지고 대속의 이 제물 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아닙니까. 이래서  비참해졌습니다.

 그래 제가 이 말라기서를 우연히 여기 집회를 두고 자꾸 기도를 하니까 어쩐지  말라기가 보고 싶어서 말라기를 보니까 어떻게 두려운지, 이 말라기를 보니까  어떻게 두려운지, 과연 내가 이 죄를 짓고 있는 자인지 두렵다 그거요.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해. 무시했으니 과거 6·25때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은  족치고, 하나님의 원수가 돼 있는 무신론자들을 이제 강건케 하고 세력 있게 해  가지고 마구 남침해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몰살시킬 것 아닌가. 이것이 생각이  난다 그거요.

 공산주의가 오면, 민주주의 정치가도 속에 쓸개가 없기 때문에 정치가도  세뇌작업이 가능하다 이럽니다. 그분들이. 아무리 민주주의자의 머리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은 세뇌작업이 가능하다 이럽니다. 세뇌작업이라 말은 이  뇌를 씻는다 그말이오.

 뇌를 씻는, 민주주의 뇌를 싹 씻어 버리고 공산주의 뇌로 싹 바꿔 놓을 수가  있지마는 기독자는 세뇌작업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답니다. 기독자는 암만 씻어  봤자 예수 믿은 것 빼 버리지 못한다, 전능자가 넣어 놨는데 빼 버릴 수가  있는가. 못 빠지는 줄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길은 죽을 길밖에 하나도 없어. 그것밖에는 없어. 이러니까,  월남한 사람들이 아이구, 공산주의 되면 우리는 핑계도 못할 것이라 해서  도망치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되면 죽을 터이니까 어디로 지금  망명 가자, 피난 가자 해 봤자 소용도 없습니다. 그것도 또 안돼요.

 6·25때에 o조사님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는 신학교가 하늘 대문 같아서 그  사람이 신학을 졸업 맡은 조사라서 막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대접했는데,  높였는데, 보면 신학은 졸업했다는데 가짜는 가짜라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야.

 이랬는데, 6·25때에 그만 뭐 인민군들이 밀고 내려오니까 당장에 그만 도망을  쳐 가지고 교회야 되거나 말거나 다 집어 던져 버리고 피난 간다고 낙동강에 가  가지고 배를 타고, 다른 사람도 못 타게 하고 막 달아 서둘러 가지고 자기  가족들 다 싹 타고 뚝 떠나니까 위에서 팡 때려서 한 사람도 남지 않고 그만  몰사해 버렸어. 피난 간다고 피난도 잘 갈 줄 압니까. 잘 못 가요.

 0목사님은 피난 간다고 막 어머니고 뭐 가족이고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자기  마누라만 데리고 가자고 이러고 타고 가다가, 타 가지고 저 가다 보니까 마누라  타라 했는데 마누라가 안 탔거든, 이러니까 마누라 때문에 할 수 없어서 내려  가지고 헤엄을 쳐서 오고 나니까 가다가 꽝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 다 죽었는데  0목사님은 살았답니다. 부인이 좀 신앙이 나아요. 그런데 피난도 안돼요.

 뭐 여기는 뭐 별 말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잊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우리의 대적을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약하게 만드시고 우리의 대적은 강하게 만드십니다.

6·25가 그런 전쟁입니다. 6.25가 그런 전쟁이오. 여기 여러분들 다 알 것인데.

 여기 말하기를 이렇게 바꿔 놓는데, 바꿔 놓으니까, 바꿔 놓으니 다 그들을  절단이 나도록, 이스라엘을 절단 나도록 하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강하게  만드니까 반발심이 나오고 반동심이 나와 가지고, 뭐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원수 저놈들은 형통하고 우리는 이와 같이 지금 모든  일이 자꾸 되게 꼬여 나가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 버려도 좋다, 우리  힘으로 한번 회복하겠다, 우리 힘으로 하겠다.

 그렇게 악독을 부리니까 여기 말하기를, 「에돔은 말하기를」 에돔이면  이스라엘입니다.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이것이 이제 망하고 또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고 또 망하는  것이오. 우리가 제일 좋은 길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존하는 것이 제일 좋고,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존하는  것이 제일 좋고.

 이 집사님, 하나님의 사랑이 뭐이지요. 여기 남천교회 집사님, 하나님의 사랑이  뭐이지. 하나님의 사랑이 뭐이지요. 이것 참 다른 사람은 살리고 자기는  버림당하면 어쩌는고. 옆에 사람이야 졸든지 말든지 그것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어쨌든지 들어요. 들어야 내 모가치 합니다. 내 모가치 차지해. 옆에 사람 뭐  존다고 말하고 자기는 물으니까 하나도 대답 못하고. 잘 들어. 그러면 안 돼.

 제일 좋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업신여겼던 것을 이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귀중히 여겨서 이 사랑을 받고 이 사랑을 보존하고 이 사랑을  전하고 하는 이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번에 이 집회하고 난 다음에 첫 시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구구히 많이  말했는레, 지금 앞으로 이북과 이남이 이렇게 지금 싸우고 아주 위기 일로에  있는데 이때에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이때에 한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보존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형제에게  전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좋은 피난법입니다.

 이것만 하면 하나님의 노가 풀어집니다. 이것만 하면 다른 남한 사람들이 다  안하고 자기 가정만 하면 자기 가정 단독 가정이라도 하나님이 구출하십니다. 다  안 하면 단독 개인이라도 하면 그 개인이라도 하나님이 구출하십니다. 노아 때  보이소. 그렇츰 부패해도 노아의 여덟 식구만은 구출하지 않았습니까. (저 아기  왜 울지. 왜 울지. 뉘 값으로 울지. 뉘 값으로 울지. 누구 마누라고. 누구  아들이고. 뉘 값으로 울어 아이 갖다 맡겨. 저 0선생 0선생 저 귀머거리가.

0선생 저 000선생 갖다 맡겨. 자기는 평안하게 잠자고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야.

그래 놓으니까 봐, 그 말 하니까 저놈이 방긋 방긋 웃으며 좋다 하는 것 봐. 참  기차지. 처음부터 조는구만, 아이들 잘 길러. 졸려면 아이 데리고 조울라.

공연히 다른 사람 은혜도 못 받구로.)  이것이 제일입니다. 이것이 제일. 만일 이것이 제일인데, 이것 못 하거든 부디  뒤바꿔 놓을 때에, 뒤바꿔 놓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던져 버리고 우리 원수  무신론자에게 이렇게 은혜와 축복을 줘서 강건하게 씩씩하게 밀고 내려오거들랑,  에이 하나님이 우리 버렸다, 우리 힘으로 한번 해 보자, 그렇게 패역과 망령을  부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라 말은  하나님이 분노해서 언제든지 성을 내 가지고 너하고 나하고 싸워 보자 하는 그럴  때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로 나타났습니다. 그냥 여호와가 만군의 여호와라고  나타날 때는 반드시 그것이 하나님이 심히 분해서 견디지 못해서 너하고 나하고  한번 대립해 보자 하는 그런 선전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그들은 건축할지라도 나는 파괴하리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그러면 그 결과는 어찌 되느냐. 사람들이  그들을 말하기를 「악한 지경이라」 저것 참 저것들은 독종이라, 독종이라,  저거만 알고 남도 모르고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그만 저거는 이기주의 사욕만  가진 인종 중에는 제일 못쓸 인종이라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악종이라고 평을  듣게 만들 것이다 그말이오. 악종이라. 악종은 저만 아는 것이 악종입니다. 제  중심이 악종이오.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저는  하나님 믿는 백성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인데, 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참 저건  저렇게 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던져  버렸든지 반드시 무슨 수가 있다, 저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은 모양이다,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는갑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다 알도록 망치겠다 그말이오.

 그런 일 많습니다. 제가 개명에서 예수 믿지 않을 때에 그때에 그 골짜기에  가득 찬 말은 무슨 말이 생겼느냐. 예수 믿으면 망한다. 예수 믿으면 망한다는  소리는 뭐 어른이고 아이고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예수 믿어 망한다는 것.

 그때 믿는 집, 영수라고 박영수라고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장자는 일찍 죽어서  과부가 됐지, 아들네들은 개 망나니가 돼 가지고 산지 산으로 전부 흩어졌지, 딸  하나, 골케 골케 하는 딸 하나 있었지, 그 영수라 하는 영감님은 온 동리에서  돌려 가지고, 정직하기는 정직했소. 별명이 참나무 장작입니다. 곧고 바르다는  그말이지, 이래도 하나님이 뭐 그까짓 것 봐 줘야지. 저거 예수 믿다 망한  사람이다, 모두 전 미야코 미야코, 저 사람이 오면 저거 미야코다 미야코다 이래  돌려 가지고 비참하게 됐는데 모두 예수 믿으면 망한다 그래.

 그리고 난 다음에 이제 제가 예수를 척 전도 받아 가지고 믿으니까 모든 사람이  있다가, 야 이 사람아, 예수 믿으면 망하는데 어쩔려고 하노, 예수 믿어 가지고  봐라, 물안실 그렇게 많이 믿는데 전부 다 망했다, 지금 다 망하고 그 박영수란  사람 그분도 다 망할 대로 다 망하고 자기만 지금 살아 남아 있지, 무우뿌리  모양으로 자손이 어디 있나, 전부 다 망해 버리고 이것 저것 다 이 꼬라지가  됐는데 망하려고 예수 믿나.

 이러더니마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니까 슬슬 잘돼.

이러니까 술자리에 앉아 가지고 저거끼리 말하기를, 예수를 믿으려면 잘 믿어야  되는 모양이라, 예수 믿으면 망하는데 그 사람은 오뉴월 문둥이 되듯이 자꾸 돼  가네, 자꾸 살림살이도 늘고 그것 참 이상하다.

 이러니까 우리 장모가 와 가지고 딸한테 묻기를, 얘야 너거는 술도가 할 때보다  자꾸 부자가 되고 돈은 그렇츰 많이 써도 그런 것 보니까, 하나 전도하는데 돈을  얼마나 받노, 오는 길이 없으니까. 이러면 나중에 말이 바꿔져. 예수를 믿으려면  잘 믿어야 돼, 잘 믿으면 효력이 있는 모양이라 못 믿으면 망해도, 예수를  믿으려면 잘 믿어야 돼, 이렇게 말을 합디다.

 이러니까 「영영히 여호와의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다,  저거 예수 믿다 망했다, 하나님의 진노 받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참혹하게  망치겠다 그말이오. 처음에 「악한 지경이라」 하는 그 말은 인간들이 점점  악해진다 그말이오, 악해져서.

 내가 애양원에 가 가지고 들으니까, 거기에 장로 한 분이 있는데 그 장로가  가시 장로라. 이것이 어떻게 교회 가시 노릇을 하는데, 나중에 가시 노릇을  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온 가시 노릇하니까 온 장로들이 갑지를 못해. 이놈 막  하고 달려드니까. 뭐 목사고 뭐이고 막 악독을 부리고 막 설치니까 다른 사람이  달라붙지를 못한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막 제 왕땡이로 제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욕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큰 소리 치고 싶은 대로 다 치고, 위  아래 사람도 없고 이 야단을 지겼는데 나중에 이래 놓으니까 하나 둘 차차  차차차 안돼 가니까, 나중에 그만 모든 것이 안되니까 짜증 지기고 이래 가지고  그만 자기가 못 견디니까 자살을 하려고, 자살 하려 하는 걸 또 붙들어 자살 못  하게 하면 또 자살하려 하고 또 자살하려 하고 너무 못 견뎌서, 못 견뎌서 악한  지경이라 이렇게 망쳐 놓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떠나서 마귀에게 놓으면 분하고 혼자 불안하고 낙망되고, 마음에  그래서 막 모든 사람을 서로 물고 뜯고 싶지마는 그래 봤자 그것이 또 욕심이  마음에 만족이 됩니까. 이래 놓으니까 나중에 자살하려고 해서 할 수 없이 그  사람을 거기 두지 못하고 저리 딴 병원으로 이송을 해 가지고 자살을 못 하도록  딱 가둬 놓고 이송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을 그 후에 담임 목사 0목사가  말합디다, 내가 그 교회 부흥회 가니까. 신풍 애양원교회 부흥회 가니까. 여기  아마 0조사님 알런지 몰라, 그 장로님 제일 세력 있는 장로인데 그렇게 돼 버려.

 하나님의 복수는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복수가 오면 그 사람을 독사같이 만들고  그만 불안해서, 불안해서 항상 화와 분만 내 가지고 아내도 죽이면 싶고 자식도  죽이면 싶고 자기도 죽으면 싶고 이렇게 독사가 된다 그거요.

 「악한 지경이라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도다 하리라」 너거  눈으로 환하게 보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안 하시고 우리 원수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라, 우리 원수에게 하나님은 크게 역사 하신다 하는 것을 너거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리라.

 여러분들, 이래도 강퍅하면 마음에 놀라지지 않지마는, 지금 놀라서 떠는  사람은 인민군이 오면 온유하고 담대할 것이고 또 지금 심히 떨던 사람은 인민군  구경도 못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뭐 이북과, 이북과 이 군력의 비중이 되도록 하려면  지금부터 뭐 7년이 더 있어야 된다든가 어쨌다든가. 그 사람들은 가만히  앉았는가 그 사람들은 더 닦고 하지 여기서는 살살 달래서 일 시켜도 조그매  일을 시키다 땀만 나도 그렇지만, 삐꿔 돌아가면 할 수 없지마는 거기에는 막  칼을 들고서 일해라, 안 하면 막 죽인다 이래 가지고 죽자껏 일해도 밥 이런 것  많이 안 줘. 근근히 주고 먹이고 자꾸 들이 해 재끼는데, 여기에 열이 거기  하나를 못 당할 터인데 뭐 몇 해 있으면 뭐 군력이 비중이 돼, 안 돼요. 안 돼.

또 미국을 등을 대지마는 그 사람들 등 대는 나라는 소련입니다. 소련은  미국보다 훨씬 지금 위에 있습니다. 뭘 바라보겠소.

 여기에는 의령에서, 의령에서 그 경관 새끼 하나 쪼그만한 것이 총을 가지고  수류탄을 가지고 아홉 시간인가, 여섯 시간 여섯 시간을 혼자 천지를 총을 놓고  양사방 돌아다녀도 그 뭐 무슨 군이고, 예비군인가, 재향군인인가 이렇게  있지마는 한 놈도 나오지 않고 총이 어디서 났는고 말도 하나 없었는데, 뭣이  혼자만 하면 부산도 지금 탈환하고 점령을 할런지도 모를 것인데. 뭘 바라고  있소, 뭘 기다리고 있어, 있기를.

 나는 내가 이번에 올 때 기가 차는 것이, 이 고속도로에 그때는 보니까 왱왱  왱왱왱 밤낮으로 쉬지 않았는데 고속도로에 도무지 차 소리가 안 들립니다. 왜  이렇소. 그때 그 사람들은 놀러 다녔던가. 그 사람들은 바빴어. 짐을 싣고 오고  싣고 오고 바빴는데 지금은 싣고 갈 것도 없고 싣고 올 것도 없고 아무 운반할  것 없으니까 텅 비어서 길이 가만히 있어. 이거 하나만 봐도 기찬다 그말이오.

뭘 바라고 안심을 하고 있단 말이오, 뭘 바라고.

 이번에 이것이 아마 하나님이, 나는 압니다. 내가 이 말씀을 택하려고도 하지도  않았어요. 않았는데 우연히 기도하니까 이 말씀이 보고 싶었어요.

 그 말라기, 말라기는 그 뭐 마지막 예언자라 했지마는 거기 대해서 별 관심  없고 여러 번 읽어도 예사로 읽어서 말라기에서 기억하는 것은 십일조 그것만  항상 기억나고 이랬는데 말라기를 보니까 기찰 일이라 그거요.

 너거가 목도할 것이다, 너거 원수는 여호와가 함께 하셔 그들에게는 큰 분으로  역사하시고 너거들에게는 다 버렸다는 것을 너거 눈으로 볼 것이다. 왜,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이런고로, 그러면 여기서 지혜를 배웁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과 강직 하는 것과 전하는 것 이것이 제일 좋고, 이러면 전쟁 구경도 안  할 것이고, 인민군 저거 오지도 못할 것이고, 이북을 이남 우리 손에 붙일  것이고, 우리가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받지도 강직하지도  전하지도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 붙여서 하나님은 우리 원수의  하나님이 되고 악령은 우리의 악령이 되고 정 바꿔 버려요. 바꿔 버리면 그  결과가 비참하게 되는 것을 여기서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제일 좋고, 만일 이 일을 못하거든 그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서서 이북에 붙여서 이제 망치게 되거들랑 살아 보려고 발동치지 말고,  내가 죄 지은 값으로 죽는 것이 지당하니 주님이여 나는 죽는 것이 지당합니다.

내가 주님을 폐대접 했고 주의 사랑을 무시한 죄값으로 원수의 손에서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여 죽되 이 죽음에서라도 다시 주님 배반치 아니하고 그래도  신앙으로 죽게 해 주옵소서, 이 죽음이라도 옳게 죽게 해 주옵소서.

 이래 가지고 고요히 죽어요. 고요히 죽고 그때 발동하지 말라고. 살려고, 자꾸  살려고 이렇게 빼고 저렇게 빼면 살려 할수록이 비참한 죽음을 죽게 됩니다.

살려고 할수록 비참한 죽음을 죽게 합니다. 왜 나는 건설할려 하니까 하나님은  정반대로 파괴시킬려 했거든. 내나 그말 아니오. 자, 그 말 아니고 어떻게  해석을 하겠소,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뭐입니까. 받는 것은 자기보다도 가족보다도  돈보다도 생명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지. 이분을 더 사랑함으로 이분 떠나지 않고 이분과 같이 있는 것이 주의  사랑을 보존하는 것이지. 주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이분을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구주인 것을 전하는 것이 주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지.

 이 사랑은 대목사랑이고, 이 사랑의 꺼풀이 있는데 꺼풀 사랑은 뭐입니까.

0조사님. 꺼풀 사랑은 뭐이요. 배암 사랑. 주님의 사랑에 포장해 놓은  것이라니까, 주님의 사랑을 포장해 놓은 것. 주님의 사랑을 포장해 놓은 주님의  사랑의 껍데기 말이오. 그것이 배암 사랑인가. 주님의 사랑의 꺼풀은 사죄요,  사죄. 칭의요, 칭의. 하나님과 화친이오, 화친.

 성경 말씀은 이 사랑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알려 주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인격체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다음으로서는 어쨌든지 주님의 피 운동해야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 어쨌든지 주님이 사죄를 해  주셨기 때문에 이 사죄 받은 것을 인하여 자기에게 낱낱이 춰서, 자기 성질로,  마음으로, 욕심으로, 생각으로, 생활로, 자기의 모든 직장으로, 사업으로 이렇게  하나씩 자꾸 죄를 추려 가지고 주님의 사죄로 이것을 사죄화 시키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그말이오.

 자기에게 있는 죄를 회개하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요 자기는 죽고 주님으로  동하여 자율로 살지 않고 주님에게 피동됨으로 사는 이 의, 의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복종하는 것이 의니까 주님에게 복종하려고 애를 써서 이 현실에서도  주의 뜻대로 저 현실에도 주의 뜻대로 살려고만 애를 쓰고, (또 어린 아이  울라고 000씨 또 조나. 어머니 어린 아이 맡겨 놓고, 000, 안 졸기는 뭐 안  졸아, 잠 오는, 눈이 잠 오는데.)  이래서 의, 이 의를 지금 애를 써요 의를 애를 쓰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의를 애쓰다니. 현실에서 내가 주장돼 가지고 살지 아니하고  주님이 주장돼서 나는 그에게 복종해 사는 것이 그것이 의라 그말이오.

 이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잘 강직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는 이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는 것이라. 주님에게 피동으로 계속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강직하는 것이라.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나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순종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내가 어떻게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하나님께 순종해야 산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 이것이 주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내가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을 이 현실에서 주님 괄시하지 않고 주님을 내 제일  좋은 자리에, 좋은 자리 모시고, 좋은 자리 드리고 이제 주님을 어떤 현실에서나  주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주님 사모하고, 내가 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그것이 이제 주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청하는  것이지 이래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함으로써 자기 마음이 흐뭇한  그것이 주님의 화친의 사랑을 지금 보존하는 것이지.

 이것으로써 다리오 왕이 보고, 다니엘아 너거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다, 너거 하나님이 너와 같이 하는구나 이래 가지고 반대하던 우상  주장자 다리오 왕이 다니엘의 하나님이 다니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그들이  봤지, 요셉이를 종으로 사 가지고 온 보디발이 요셉이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봤지,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화친의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친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해, 탄환 없는 총 그까짓 것  있으면 뭐 할 것입니까. 탄환 없는 총 있어야 소용없는 것처럼 만인 전도, 만  교회 운동, 만 교회 운동 이러지마는 마구 죄만 주 몰아 들여 가지고 이 만 교회  운동에 이 토막에 이 사람 하나 살고 저 사람 하나 살고 전부 구멍가게 만들어  살고, 저거끼리 떡 다 갈라 먹고 어쨌든지 이래 가지고 명예주의로 권위주의로  간판주의로 일은 이만침하고 광고는 이렇게 써 붙이고 이렇게 하는 사랑 없는 이  모든 껍데기에 외식에 이 모든 역사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초래거리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말고 그저 자기 한 사람이  이렇게 하면 자기 한 사람 살고, 자기 한 사람 살면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한  가정이 살 수 있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뭐 여덟 식구가 다 의인인 줄 압니까. 아니오. 노아만  의인이오. 노아의 여덟 식구 가운데는 함 같은 그런 호로자식도 있었습니다. 함  같은 그런 못된 것도 있었소. 이렇지마는 노아의 신앙으로 그 식구들이 다 구원  얻었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 한 사람이 바로 하면 자기 가정이 구원 얻을 것이고, 자기 한  가정이 구원 얻으면 그 한 가정이 빛이 돼 가지고 온 교회가 구원 얻을 것이고,  한 교회가 구원 얻으면 우리 한국 교회가 다 구원 얻을는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 시켜서 월권으로 그렇게 외식자로 날뛰지  말고, 어쨌든지 우리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 버리면 화가 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잘 강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  인간에게 전하여 줍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해.

 제일 중요한데 하나님의 사랑이 뭐인고.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의 독생자  보낸 독생자가 하나님의 사랑이지. 독생자의 사랑이 커다랗게 퍼져 나왔는데  퍼져 나온 것이 뭐인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주신  것이지.

 이러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이렇게 기념하고 영접하고 강직하고  전하고 해야 될 터인데 얼마나 하나님이 분노했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배암  사랑하고 휘딱 바꿔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떡 말하면서 배암 사랑을  들이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성구를 배암 사랑을 들이대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렇게 말해 가지고, 전부 이 사랑으로 들어서 한국 교회  세계 교회를 죽이게 만들어 놨으니 이 일이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사랑과 사랑이 구별이 됩니까. 여기 대해서 가슴이 터집니까 이제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핑계를 못할 것입니다. 배암 사랑에 대해서 알 만침 말해  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알 만치 말해 줬습니다.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제일 급하요. 이래 가지고 만일 여러분들이 깨지 않고 멸망  가운데 빠지거든 단 마음으로 지당하도소이다 하고 멸망을 하면서 죽음이나  더러운 죽음 죽지 않도록, 죽음이나 바로 죽도록, 예수를 증거하며 죽고, 예수  팔고 죽는 그 더러운 죽음 죽지 않고 그때 달리 죽을 것이고.

 이 일을 오기 전에 제일 좋은 것은, 주님의 사랑을 내가 이제 알았나이다, 이  사랑을 찬양하고 이 사랑을 영접하고 이 사랑을 보존하고 이 사랑을 전하는  이것을 하면 주의 노는 다 풀어집니다.

 돈보다도 주님을 사모하고 권세보다 주님 사모하고 자기의 행락과 취미보다도  주님을 사모하는, 이렇게 마음 목숨 힘 뜻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면 됐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뭣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뭣입니까 낮은 자는  높은 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작은 자는 큰 자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젖먹이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소.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것, 그것이 어머니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어머니가 주는 것을 바라보고 좋은 것을 받아서 감당하는  그것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오. 우리 더러운 것이 그  완전자를 어떻게 사랑할 것이오. 내 사랑이 거기 갑니까.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오.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  말은 저주를 뭐 해서 저주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 하면 저주받지, 이 말은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멸망 받을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필연한  일이라. 외에 무슨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것이 돼야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이 돼야 돼요.

 이러니까 우리 교회들이 돌아가거든 교회 교회마다 옳은 것은 따라가는 것이  좋아요. 조그매라도 옳은 것은 따라가는 것이 좋아요.

 저는 연보에 대해서, 연보에 대해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이렇게 하다가  전국 교회의 연보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게 했습니다. 돌아보게 하니까, 연보에  대해서 그 교회가 무슨 교회지. 부전교회, 부전교회. 부전교회에서 연보 하는  데에 거기서 연보봉투를 해 가지고 했는데, 다른 교회에서 연보봉투 한 것과  조금 달라요. 다른데 그 연보봉투 한 것 보고, 아이구 우리에게 대해서 이  부전교회가 연보에 대해서는 선지자 선생님이로구나 이래 가지고 가는 곳마다  자랑합니다.

 누구의 것이든지 주의 것 좋은 것이 있으면 가져오고, 처음에 발명한 사람은  찬양해 주고 이래야 되지, 꼭 저거 교파에서 돼야 좋지 남의 교파가 되면 욕을  하고, 남의 교파에 되면 가서 들어도 니고데모 모양으로 밤에 살며시 가 가지고  녹음이나 들어오고 이래 가지고 딱 따먹고 그거 못 써.

 부전교회에서 봉투 한 걸 보고 거기에서 조금 더 가해 가지고, 거기에서 한  서너 가지 가했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인데, 거기에다 세 가지를 가해 가지고 네  가지를 딱 해서 봉투를 만들었더니마는 감사연보가 종류로서는 그저 한 주일에  몇 봉만, 몇 봉밖에 안 나오는데 그 감사연보가 백 수십 봉이 매주일 나옵니다.

 이러니까, 히야 서부교회 돈벌이 했다, 돈벌이가 아니고 그분들이 하나님에게  감사할 것을 감사할 줄 알고 깨달아서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으니까 뭣이 옵니까.

감사는 뭣의 대가입니까. 감사는 뭣의 대가요.

 자, 따라 해.

 감사는 은혜의 대가.

 이러니까 자꾸 대가를 척척 잘 치르니까 자꾸 은혜를 자꾸 아낌없이 자꾸  주겠지. 주면 감사하고 받고 감사하고 받고 감사하고, 이러면 열 개 받고 백 개  받아 가지고 한 개나 감사하는 표시만 하면 되는데 얼마나 장사요. 이것이  장사인데, 공연히 인간하고 싸워 가지고 깍쟁이 노름하고 주께 욕만 얻어 먹이고  그래 가지고 돈벌이 하려고.

 이렇게 우리가 이 주의 사랑을 어쨌든지 받아야 됩니다. 구해야 됩니다. 주의  사랑을 잊어버린 것으로 우리 남북 문제는 해결됩니다. 주의 사랑을 잊어버린  것으로써 우리는 이북 손에 붙이울 것이고 이북은 우리를 점령할 것이고, 우리가  주의 사랑을 다시 찾아서 사모하고 감사하고 찾고 보존하고 전하고 하면 이북을  우리 손에 붙이고 우리는 이북을 인도하고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왜. 성경이 다 그런 것 아닙니까. 성경이 예언해서 듣고 회개하면 축복 오고  회개 않고 거역하면 하나님의 진노 오는 것은 뭐 성경 전부가 그렇게 가르치는  것인데 여기에만 하필 그렇겠소.

 이러니까 다른 교회 하는 것이라도 좋은 것이면 따라와야 돼. 저, 사직동교회가  언제든지 서부교회에서 하는 이 주일학교 따라 오지 않아. 주일학교 서부교회는  그래도 나는 이래 한다 이러더니만 뭐 어디로 가 버렸어. 서부교회 하는 것 따라  해요. 다른 것은 못해도 그것은 따라 해요.

 뭐 밤마다 기도회, 밤마다 기도회. 저녁으로 무슨 공장 일을 하든지 공무원  노릇 하든지 어쨌든지 매일 와 가지고 저녁에 자기로서 시간 낼 수 있는 데까지,  7시에 오든지 8시에 오든지 9시에 오든지 10시에 오든지 와 가지고 주님 앞에 이  어려운 남북 문제를 두고,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문제를 두고, 하나님의  도움이라야 공산주의 손에서 우리가 안 죽지 준비도 못하고 죽으면 다  개죽음합니다.

 이러니까 이런 문제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회를 조직하고 매일 기도하자 그거요.

예배당에 와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가급적이면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고, 또  저 구석에 있는 사람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또 안 되는 사람은 자기 지붕  딸막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공장 모퉁이에서 기도하고, 어쨌든지 하루 우리  앞에 당면한 남북문제, 이 환난문제, 주님의 진노문제 이 문제를 두고 매일  반시간, 이 시간 이상을 기도를 하자 그거요. 이 문제로 해서 반시간 이상을  기도하는 이 일을 어쨌든지 시작합시다.

 자, 시작한 목사들, 시작한 목사들, 시작한 목사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시작한 목사들. 제법 시작했구만요. 자, 앞으로 시작할 교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시작할 교회들. 아따 손은 많이 드는데 잘 할런가 몰라.

 그거 하자 하면, 별스러운데 갔다 오더니마는 별 소리는 듣고, 뭐 꼭 하루 30분  기도해야 되나, 그런 인본주의 말 하지마, 항상 기도 하지, 이래 가지고 박살을  내서 이것도 살아나지 못하도록 할런지 몰라요. 여러분들, 안 그러거든 혼자라도  기도해요. 혼자라도.

 뭘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한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감사하면서 영접하고 이 사랑을 내가 강직하고 이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는 일,  하나님의 사랑이 뭐인데. 도성인신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우리 구주  주님이시지요 예수님이시지요. 이분이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왔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분을 사모하기를 돈 보다, 권세보다, 지위보다,  자기 가정보다, 자기 욕심보다, 자기보다 더 사모하고, 모든 것 다해서 이분을  사랑하고, 이분과 동행하고, 이분을 전하고 이러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감당하는  것이오. 그 다음에는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은혜를 자기가 구하고 보존하고,  사죄, 죄 없기를 자꾸 구한다 그말이오. 아까 해석했지요. 그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할 일이고 그 다음에 주의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매를 때리거든 달게 받으면서  회개나 할 일이지 하나님이 매 때리니까 반발 가지고 나서면 비참하고 참혹하게  망합니다. 비참하고 참혹해요.

 하나님이 우리 잘못했다고 매를 때리거들랑 이제 이 매를 아이구 내가 지은  죄값은 이렇게 큰데 매를 이렇게 조금매만 때립니까, 하나님의 징계 벌을, 너무  가볍습니다. 내 지은 죄에 대해서 너무 가볍습니다. 가볍게 경히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그에게 올 것이요, 내가 뭐 했는데 이렇게 날 벌을  크게 주는가 하는 자는 망합니다. 그것보다도 한번 대항해서 하나님은 그래도  나는 한번 해 보겠다 하는 자는 안 망하고 제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 뒤에 여러분들 가서 보십시오.

 둘째로 하나님이 분하게 여기시는 것은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노라」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제사장들은 오늘의 목회자들입니다. 목회자들. 장로들, 구역장들,  목사님들 다 이 제사장들이오.

 그 가정에 신앙으로써 호주된 사람은 제사장들이오 어떤 집에는 주일학생이  신앙 호주되고, 어떤 때는 부인이 호주되고, 어떤 때는 육으로 호주된 사람이 그  가정에는 신앙으로 제일 꼼벵이 된 사람도 있고, 이렇게 신앙의 인도의 위치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 신앙 보고 따라올 수 있고 자기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이끌 수 있는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다 제사장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너희들의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은 주님이 우리를, 우리가 주님을 멸시한다고 분해서 이러는데, 주님은  우리의 참 영영하신 아버지요 한 분이신 아버지요 우리의 주가 되시는 분이신데  우리가 주님을 멸시한다고 주님이 분히 여기십니다. 이래 놓으니까, 너희들이  어떻게 나를 멸시하느냐 이러니까, 언제 우리가 주님을 멸시합니까 이렇게 하는  자들아,

 7절에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이것이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멸시하는 것. 더러운 떡을  드리는 것, 더러운 떡을 드리는 것.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바치는 그 떡을 조심해서 성결히 성결히  하지 않고, 성의 없이 조심 없이 떡상에다가 떡을 드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을 멸시하시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 떡은 무엇을 표현해서 그때 떡상을 뒀느냐 하면 성도들의 몸을, 이 성도들의  몸을 상징해서 떡상을 두었던 것입니다. 더러운 떡을 내 떡상에 드리는 이것이  나를 멸시하는 것이다. 내 떡상을 멸시하는 것이 나를 멸시하는 것이다.

 더러운 떡, 오늘 우리는 자기의 몸을 더럽힌 더러운 몸을 주의 피에 씻어서, 이  더러운 몸을 자기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든지 하나님 앞에 나타나든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든지 하나님 앞에 설려면 그때는 자기가 아무리 더러웠을지라도  아하, 내가 이 몸을 이렇게 더렵혔구나, 더럽힌 것을 자기가 찾아서 원통히  회개를 하면서 후회를 하면서, 나는 이런 몸입니다. 내가 몸을 이렇게 썼습니다,  이 몸으로 어떻게 했습니다. 이 몸으로 어떤 짓을 했습니다. 했습니다.

 자기 몸이 더러워진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마음 아피 여겨 주님의 피에 고해서,  주여, 나는 이렇게 범죄한 몸입니다. 범죄한 죄인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래도 그때라도 임시라도 씻어 가지고, 주의 보혈에서 씻어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해야 될 터인데,  이것은 뭐 어떻게 돼도 상관도 없이 금방 그 몸뚱이 가지고 온갖 죄 짓고 난  다음에 아무 씻지도 않고, 하나님을 앞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설교하고 성경  보고 전도하고 이렇게 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분개히 여기십니다.

 이 죄가 과연 말세에 우리 교회들에게 과연 있습니다. 이 죄가 과연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을 상대하려고 주님을  부를 때에, 주님을 부를 때에 내 몸뚱이는 어떻다는 것을 생각도 않고 이렇게 이  더러운 몸뚱이 가지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상관없이, 뭐 주님 부르는 것이야,  주님이 피 흘려 구속하신 주님이신데, 죄를 위해서 죽으신 주님이신데, 이  주님을 대하면서 자기 몸을 더러운 그대로 이것을 깨끗하게 씻지도 않고, 주의  피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지도 않고, 이렇게 더러운 몸이니 이 몸은 주님의 피  아니면 주님 앞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피가 아니면 내 몸뚱이는 여기서  당장 저주받아서 어떻게 될 몸뚱이입니다.

 주여, 이 몸뚱이로선 주님 앞에 성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피공로로써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내 몸이, 내 손이 이런 더러운 짓을 했습니다. 내 발이  이런 더러운 짓을 했습니다. 내 눈이 이렇게 더러운 짓 했습니다. 내 몸뚱이가  이런 더러운 일 했습니다. 이렇게 했습니다.

 자기의 한 것을 그것을 깨달아서 자기 몸뚱이가 더러워졌으니 이 몸뚱이  가지고는 주님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을 깨닫고 주님의 피에 고해서 이  몸을 깨끗이 해 가지고, 당장에 깨끗해지지 않지마는 주님의 피에 자기가 이제  회개하고 사유함을 받아 가지고라도 이 몸으로 주님을 상대해야 될 터인데  이렇게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님을 대하는 이것이 주님이 둘째로 분노입니다.

둘째로 분노.

 이러니까 우리가 부르기를 혼자만 불렀지 당신은 대답하실 수가 없지요. 우리가  부를 때에 정말로 당신이 우리를 상대하면 우리는 전멸을 당했을 터인데.

 이스라엘이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너희들이 이제 가나안을 가거라. 내가  사자를 보낼 터이니까 사자하고 같이 가거라. 나는 같이 가지 않겠다. 왜 같이  가지 않으시렵니까.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니 가다가 나한테 진멸을 당한 수  있는 그런 패역한 행동을 할 터이니까, 나는 지공 지성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전멸될 그 행동을 하면 당장에 나는 전멸시켜야 내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 본분을 하는 것이니까 내가 너희들과 같이 갈 수 없으니까 내 사자만  보낼 터이니 같이 가라 이렇게 하신 말씀이요. 이렇게 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시내산에서 백성은 산 발치에, 아론은 중턱에, 모세는 산 만당에 올라가고  이렇게 깨끗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더러운 이대로 가지고 주님을 부르고 뭐  철야한다고 자꾸 이래 쌓아니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서 우리 소리를 들으면 당장  멸해 죽여야 될 것이고 벌 해야 될 것이고, 이러니까 할 수 없어 기도하려 하면  피할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이것이 하나님의 둘째 진노입니다. 둘째 진노.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어떻게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  함이 어디 있느냐」 아버지 아버지 부르지마는 너희들이 나를 두려워 함이 어디  있느냐. 정말로 만유의 주이신 지극히 크신 영존하신 아버지로 나를 알고  대우하느냐.

 6절 하반절에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위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노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너희들의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들의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아비란  말이 헛말이 아니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너희들이  나 공경하고 나 두려워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더러운 떡을 가지고 아무런  속으로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도 없고, 이렇게 섬기는 것도 없고 마구잡이로  얼마든지 이렇게 제 몸뚱이를 더럽혀 놓고도 더럽힌 그것을 가책도 없이 주의  피에 씻지도 않고 그대로 주님 앞에 대하니 내가 피할 수밖에 더 있느냐, 이  진노가 쌓여 왔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죄를 우리가 너무 많이 범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  했는데 제 욕심대로 마음대로 입을 열고 마음대로 더러운 떡을 드리면서도 내가  어떻게 주님을 더럽게 하였나이까.

 그 다음에 내리 집에 가서 읽어 보십시오. 다음 시간에 증거합시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노하신 것은 첫째가 그 사랑을 멸시함에 제일 분노했고,  둘째는 하나님을 공경하되 더러운 제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둘째로  노여워했습니다. 더러운 제물 드리는 것.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하나님을  상대할 때마다 자기 마음도 조심해서 다시 씻어 가지고, 자기 몸뚱이도 씻어  가지고, 자기 생각도 씻어 가지고 이렇게 깨끗하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지  않고 마구 더러운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니 이것이 분노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멸시 당할 대로 당했고, 천대  당할 대로 당했고, 무시 당할 대로 당했고, 하나님이 업신여김을 받을 대로 받은  이 복수가 시작되고 난 다음에는 변동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복수가 시작됐을 때에 이스라엘은 비참하게도 2천 4백여년  동안을 그 나라가 비참하게 망하고 망하고 또 망하고 망해서 세계에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누가 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백성이라 그렇게 말할  만침 된 것이 우리의 거울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 하는 자가 더러운, 더럽힌 몸뚱이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자가, 찬양한다는 자가, 예배드린다는 자가.

 우리 이 죄를 회개합시다. 사랑을 잊은 죄, 내가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보고  아시는 분이며, 하나님은 성결하신 분이요, 이 부정 때문에 죽기까지 하셔  도말하신 이분을 상대하면서 마구잡이로 더러운 대로, 더러운 대로 막 더러운  그대로 가지고 마구잡이로 마음에 가책없이 하나님께 대하는 이것을 오늘까지  참았지만 하나님은 참지 못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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