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선지자선교회 1982년 10월 10일 주후

 

본문 : 계13:15-18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오전에, 일절로 열절까지에 있는 짐승은 세상을 가르친 것입니다. 또 11절로부터  18절까지에 있는 짐승은 거짓 기독교를 가르친 것입니다. 거짓 기독교. 처음에  나온 짐승에게 대해서는 우리 할 일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 할 일은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 짐승을 제일로 삼아서 섬기지 않는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 짐승 섬기는 일을 아니하는 것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  짐승을 섬기치 아니하려고 하면 우리가 두가지 준비가 있어야 함니다. 하나는 아  무 것도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생사도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빈부  귀천도 주님에게 맡겨놓고 모든 숭패도 주님에게 맡겨놓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라야 짐승에게 경배를 아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참 성도의 믿음이 결정됩니다. 지금은 제가 가지고 제가 하려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오늘 성도들과 같이 살고 있지마는, 마지막에는 무엇이든지  주님에게 다 맡겨놓지 아니하고 제가 하려는 그것이 하나라도 있는 자는 이  짐승에게 경배해야 됩니다. 짐승을 높이 섬겨, 그에게 속해, 그에게 경배하는 자가  됩니다. 그걸 가르쳐서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라.

 또 하나는 성경이 가르친 대로 영감과 잔리로 싸워 하나님과 진리와 참 사람만  손해보지 안하고 이것만 보수하려고 해야되지, 그 외에 딴 것을 생각하면 안되고  다른 방편이나 힘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다 칼입니다.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하나님과 진리와 참 사람만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이 세 가지만 보수하기  위한 전투기 때문에 이 세가지 보수는 성령의 인도와 진리 외에는 다른 전법이  없습니다. 이 두가지 전법 외에 다른 전법을 가진 자는 명철하고 수단좋아도 저는  벌써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새끼가 됐습니다. 거기에 속했습니다. 그것을 1절로  부터 10절까지에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잡고 있으면 안된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또  세상 전법쓰는 자는 다 그것으로 인해서 망합니다. 실패합니다. 고기덩어리야  살찌게 얼마든지 살고 장수도 하고 죽을 때도 아무 고통 없이 죽지마는,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말하는 것인데 구원은 다 실패입니다. 다른 것은  있어도 구원은 실패요.

 또 두번째 땅에서 올라온 양, 두 뿔 가진 양의 새끼같은 그것은 거짓  기독교입니다. 거짓 기독교인데 땅에서 나왔다 하는 그 땅은 도덕을 말합니다.

바다와 정반대 도덕을 말하는데 인간들이 세워놓은 법, 인간들이 조직해놓은 모든  사회성, 윤리성, 그것을 다 가리켜서 도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도덕을 근거해  나온 기독교,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윤리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세상 정화주의 이것이 벌써 나와서 세상을  거의 점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인데 여기에는 새끼양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양보다 새끼양은  아주 순진하고 어립니다. 예수교보다 더 선하게, 착하게, 인자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용처럼 말하더라" 여기서 구별합니다. "용처럼 말하더라" 그 말하는 것이  영감대로 말하지 아니하고 성경대로 말하지 아니하고 인간 말하면서 성경 말씀을  이용만 합니다. 말하는 것이 무엇을 위주로 하느냐? 하나님보다 인간 위주,  천국보다 세상 위주. 거기서만 구별납니다.

 에덴동산에 뱀이 하와를 꾀울 때에 하나님보다 하와야 네가 낫지 아니하느냐, 너  위주로 너 중심으로 살아라, 하는 거기에서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 되는 것이 낫지. 넘어 갔소. 그러기에 참 승리해 나아가려고 하면  정신차려서 바로 믿어야 되지,'용처 럼 말하더라' 아무리 세 상이 떠들어  위대하다고 몇 백만명이 모였다 해도 말씀 증거하는 것이 용의 말이고, 성경이야  다 섞어서 하지. 뱀, 사탄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성경 말씀가지고 유혹했습니다.

돌로 떵덩이가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발에 돌이 부딪히지 않게  하겠다. 그것 다 성경 말씀이요. 성경 말씀 이용하지만 양심이 있는 사람은  들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이야 어찌됐든지 하나님을 위주로 하나님  좋게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인지, 인간 중심으로 하나님은 이용을 당하게 하는  것인지 이것을 구별하면 딱 알아집니다. 환하게 알아집니다.

 그러나 그렇지마는 하고 성신의 감화를 소멸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쳐주지를 앉습니다. "용처럼 말하더라" 용은 사탄입니다. 세상 임금이요. 성경  말씀가지고 하기는 하는데 용처럼 말하더라. 용의 말같이 여기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먼저 나온  짐승이 어디서 나왔지요? 바다에서 나왔지요. 그 짐승 머리가 몇이요 뿔이 몇개요  머리에는 뭣이 있어요 뿔에는 뭣이 있어요 예. 면류관이 있지요. 그런데 "처음  짐승의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그러면 도덕이나 예의나 윤리나 그것 위주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 보다도 그것 위주로 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은 쭉쭉  따릅니다. 그런데 그가 권세를 쓰고 있는 것이 진리의 권세를 쓰는것 아니고.

영감의 권세를 쓰는것 아니고, 누구 권세 쓴다고 했습니까? 짐승 권세 씁니다.

 여러분들이 거짓 기독교를 여기서 찾아야 되지 여기서 찾지 않으면 모릅니다.

거짓 기독교. 예배당 잘 짓는다고 사람 많이 모인다고 참 기독교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사람 많이 모이는 이것만 가진다면 참 기독교 아닙니다. 예배당 크다고  그것 아니요,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이 용의 말을 가르치면 거짓 기독교입니다. 또  교회가 진리의 권세 영감의 권세를 쓰지 아니하고. 세상 권세를 사용해 가지고  세상 권세 가지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거짓 기독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을 듣고 짐승의 권세를 행하고, 세상 권세를 배경으로 바탕으로  삼아 살고 있는 교회가 있고, 그것이 있어도 안쓰려고 애를 쓰며 하나님이  일해주고 진리가 일해주기를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옳다 해야 배경이고 힘이지.

진리에 삐뚤어져 놓으면 세상 권세가 다 옹호해도 그것은 망할것인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힘으로 삼지 않는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권세를  쓰는 교회도 있습니다. 용처럼 말하는 교회는 거짓 기독교입니다.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처음 짐승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말은 그 짐승 위주로.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마는 실은 그 짐승 섬기고 있어. 그 짐승을 섬기고 있다는 말이요. 그 사람은  신앙생활하는 것 같지마는, 실은 그 사람이 제일 섬기고 높이고 바라보는 것은  짐승이라. 처음 짐승. 이만하면 거짓 기독교를 환하게 알 수 있어요.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이 짐승은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것이 처음  짐승이 그랬는데, 세상은 철통같이 된다는데 그것이 순간적으로 퍼떡 절단이  납니다. 절단이 나면, 그것을 보고 아이구! 절단났다 하는데 좀 있으면 그것이  즉시 복구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은 두 종류로 나타납니다. 퍼떡 절단나는 걸  보고, 저런 것은 다 저렇게 절단날 수 있는 것들이로구나! 그래 펑가하는  그것으로 끝이요. 아! 저렇게 절단나도 다시 복구됐네. 복구되고 보니 상대하는  자는 멸망할 자요. 조금 절단나도 절단날 종류라는 것은 그만하면 알지 않습니까?  세상을 없애버리면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지지 안해.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일곱 머리중에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던 것이 나은 자라 이 진리는 얼마나  알기 어려운지 모릅니다. 깨닫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을 예를 들어 육체가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잠깐 몸살을 앓아 병이 들었습니다. 몸살을  합니다. 그것 보고 아! 저 육체는 암만 거강해도 병들 수 있는 몸뚱이요. 마지막에  죽을 수 있는 몸뚱이라, 그리 연상해 나오고 아! 금방 병들어도 건강하네! 건강한  몸뚱이라. 건강 할 몸으로만 보고 사는 사람. 그것도 병들고 상하고 죽을 수 있는  몸뚱이로 상대해서 평가하고 사는 사람 두 종류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에 속했고  하나는 사망에 속했습니다.

 13절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 말은, 그 운동이 어떻게  맹렬한지, 불을 말하는 것은 맹렬한 것을 말합니다, 그 운동이 어떻게 맹렬하고  어떻게 큰지, 힘있게 운동하고 크게 운동하는 거기만 쏠려. 거기에 사람들이 끌려.

 14절에 "불이 하늘로 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이러니까 짐승을  하나님 대신으로 하나님보다 그 짐승을 크게 높게 귀하게 위하는 그런 자들을 다  만듭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네가 세상하고 하나님하고 비중이 될 때에 세상을 버렸으면 버렸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그 사람이라야 구원 이룹니다. '세상과 천국과 둘이 있을  때에 어찌되느냐, 어느걸 놓겠느냐' 할 그때에 세상을 놓고 천국을 놓지 안할 수  있는 그 사람이라야 그에게 줍니다. 하늘나라는 그렇게 싸지 않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써 천국가는 것은 인간이 아무리 해봤자 안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을 했지, 하늘나라가 싸고 허무해서 그런것 아닙니다. 절대 어림도 없소.

세상보다 천국을 낫게 여긴 거기에 천국것을 주고, 모든 피조물이나 자기보다  하나님을 높인 거기에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 되어서 구원주지 그전에는 안줍니다.

 이렇게 웅성 웅성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요.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세게 생기를 주어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그 짐승이 뭐냐 세상 대표의 말하는 짐승. 이것은 사람을 가르쳐 말합니다.

세상을 주름 잡아서 한 손에 거머쥔 그 자가 세상을 타고 이제 하나님 보다  높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습니다.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하더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안하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합니다. 그러면 둘째 나온 짐승은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무슨 앞잡이로, 무엇의 이용물이 되어서, 무엇을 높이고,  무엇을 위하고 있습니까? 첫째 짐승의 권세릎 받아 그것 섬기고 위하고 그것의  앞잡이입니다. 이것이 거짓 기독교입니다. 알고 믿어야 됩니다. 예수교는 그렇게  쉬운것 아니요. 이렇게 많지만 참으로 성화된 것은 하늘과 땅을 통치할 수  있습니다. 영계와 물질계를 통치하고 발 아래 밟아 호령칠 수 있습니다. 실력있소.

없는 것 아닙니다. 천군 천사를 호령칠 수 있고 발아래 종으로 잡아 부릴 수  있소.

 왜? 그는 하나님으로 속에 가득찼지.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그는  피조물이지만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과 꼭 같은데. 하나님과 다른것이 하나도  없는데 속에 들어가보면 꾀조물이요 하나님은 하나님인데, 밖에 나타나기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 나타나고 결합됐기 때문에 세상을 이긴자라 처음에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라 해도 경배 안해 경배를 안하고 어찌 견디는가? 있는 것  다 내놨어. 이놈 죽일란다. 생명도 주님께 딱 맡겼어 생사도 맡기고, 빈부 귀천도,  맡기고, 성패도 맡기고, 다 맡겨놓고 나는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나님 사랑하고  섬기는 것 외에 나 할 일 없어. 그것만 하지 딴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는데 못하도록 하려 해 봤자 죽인다 해봤자 그 생사를 다 주님께  맡겨 놨으니까 죽인다 하는 것 이 효력이 나요? 가난하게 한다는 것이 효력이  나요 `배를 골린다는 것이 효력이 나요? 아무 효력이 없어. 잡을 건덕지가  있어야기. 이 자가 아니면 첫째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지 안할 수 없습니다.

 이런데 둘째 나온 짐승 간사한 이것이, 처음 짐승의 권세를 입어 용의 말을  하면서 껍데기는 두 뿔 사진 새끼 양이요, 껍데기는 예수교중에 예수교요. 참  모든 사람이 존경할만한 자비의 예수교, 사랑의 예수교, 도덕의 예수교 그러나  그것은 어린 양 그리스도는 아니고 거짓 짐승인데, 먼저 나 온 짐승의 새끼요  "용처럼 말하더라"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해서 섬기라. 높이라, 우상을 만들라, 그 우상은 말하더라." 그럭저럭  하다보니까 이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거짓 기독교의 사람이 말하는 우상, 사람  그것이 왕이 돼서 주장을 합니다.

 "저가 모든자 곧 작은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오른 손은 행위를 말합니다. 이마는 사상을  말합니다. 그 사상을 받든지 그 행위를 가져야 되지, 그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매매를 못한다는 말은  물물 상통을 못하게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땅위에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 못살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잘 살수있는 그 길 가지, 뭐 하려고 핍박 조롱 천대받는  예수를 꼭 짊어지고 예수를 꼭 모시고 못살게 하는 그 길 갈 필요가 뭐 있소. 또  몇이든지 죽이고, 매매도 못하게 하는데 무엇 때문에 예수를 따라가겠소. 그 때에  주를 따라가는 자가 믿는 사람이요. 그 사람 가릴려고 지금 우주를 만들었소.

영계를 만들었소. 그것 때문에 당신이 손해보지 않습니다. 속지 않소.

 이러니까 십자가의 이 도는 미련하게 보여지고, 구원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여져. 그러니까 바울이 "다니는 자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그의  마침은 멸망이니라." 좋으면 얼마 가겠소. 좋은 사람을 봅니다. 아주 세상에 좋은  사람 봅니다. 좋은것 가지고 주님 믿어서 주님과 연결이 되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좋은 것을 주님이 주셨고 주님이 기뻐하셔서 더 좋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면 참 좋지마는, 주님 팔고 진리 팔고 영원한 구원 팔아가지고 땅위에 좋은  것 얻었다는 것은 불쌍하고 가련하지 좋을것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표를 가진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어떤 표냐?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의 이름이라 무슨 말이요. 세상 이름이라  그 말이요.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이든지 저 세상이든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라 그 말이요. 세상과 세상에 있는것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자기  정신이나 자기 행위에 경배하는 것.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들을 주님과  진리보다 천국보다 구원보다 앞세우지 안한 자는 다 죽여. 생활 못하게 만들어.

요렇게 쪼라재끼니까 누가 필요없고 백해 무익으로 고생만 되는 예수를 걸머지고  다닐 필요가 뭐 있겠소 있기를. 진리를 거머쥐고 다닐 필요 뭐 있소. 다 성경  불태워버리요. 다 집어던져 버리요. 예수 욕하고 집어던져 버리요. 더럽고  징그러운 예수 그럴 때에 그럴 때에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 그 자가 주님 믿는  자이지. 그 자에게 하나님은 맡길 수 있지. 아! 조금 어려워도 변하는 그 자에게  하나님이 맡겨가지고 어쩔려고,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그것은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라. 이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돈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권세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행락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떤 사람은 예술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또 이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 어쨌든지 하나님 차지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차지를 줬든지, 세상 어떤  것에게 차지를 줬든지 그에게 있는 보좌에는 세상이든지 인간이든지 다 앉고,  주님이 앉아 있지 않은 그 보좌 다툼인데 주님은 빼앗기고 세상 그것들이 인간의  제일 상상보좌 제일 높은보좌 제일 귀한보좌 이것을 세상과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세아려 보라. 곧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니  666이라. 좋기야 좋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수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이러기에 이 표를 받지 아니하려고 하면 자기의 생명을 빼앗길 각오를 해야  합니다. 생명을 빼앗겨도 이 표는 안 받아야 되지. 생명가지고 이 표 안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세상 이 생애를 살지 못해도 이 표 안 받겠다 해야 되지, 세상에  살면서 안 받겠다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거짓 기독교가 세력을 얻어 가지고 참  기독교를 거짓 기독교화 시키려고 할 때에 몇이든지 죽여요. 그건 다 아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예 생명을 내 놓은 자 제단 위에 올려놓은 자, 이자가 거짓  기독교를 이길 수 있고 또 매매를 못하게 하니까 매매 그걸 다 내어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매매 못하고 굶어 죽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감옥에  갇혀 죽으면 그것이 뜻이고. 거지되면 어쨌든지 세상생활을 못하게 하든지 뭐  목숨을 붙어 있지 못하게 하든지 어쨌든지 그에게만 경배하고, 그에게만  경배하고, 그의 법도만 지키고 하는 이 사람만 이 경배를 안하고 지나갑니다.

 그런고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 이 짐승 두 마리, 하나는 두 뿔  가진 새끼 양 같은 것 어린 양보다 새끼 양은 더 어리고 더 순진하지 않소?  땅에서 나왔다. 하나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라 이러니까 표범같고 곰 같고  사자같은 그것도 뭐냐? 하나도 자기가 가진 것 없으면 됐어. 암만 표범같고  사자같이 와 봤자 내 생사를 주님에게 맡겨 놨는데 주님에게 맡겨 놨으니까 제가  협박줄 수가 없소. 표범이 줄 수 없고 사자가 와도 오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소.

 이것이 신앙의 종결입니다. 그런고로 두 짐승을 기억하고 그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 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 그 다음에 승리가 있습니다. 성도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에 있소. 성도의 지혜가 여기에 있소. 지혜가 있어도  중간가다가 떨어지면 안돼 여기까지 밀고 나가는 그 지혜가 성령의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을 때에 귀가 있어 듣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내 생명이나  몸이나 소유나 내 세상 모든것 다 주님에게 맡겨놓고 주님께 일임을 해놓고  하나님 섬기는데 그 법칙대로 섬길 것. 하나님의 법칙대로 섬기는 이 사람으로  사는 것 이것 하나만 제 힘인줄 아는 그 자가 이기고 그자를 가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자가 하늘나라에 필요해, 그 자가 하나님의 일꾼이요. 그  외에는 소용이 없어. 지저분한 거는. 다 거기 가 있어도 일거리지요.

 하나님 섬기는 것 또 하나는 무엇이요? 하나님 섬기는 법칙, 또 하나는 이렇게  사는 자기. 이 세 가지만 우리가 가지고 갈 사람들이요. 이것만 가지고 가는  거기에서 최종의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데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다 죽었오. 실상은 죽은 자라. 무엇 됐소? 행위의 온전함이 없거든  이러니까 이 절정을 넘은 데에서 확정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모든 신앙생활 보면 절정이 있어. 고개 넘는 마지막 순간이 있어.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해서 하신 것은 요 절정을 넘기 위해서 지성과  지공법을 당신의 세포 하나라도 혹은 원치 안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지공에  걸려버려요. 생명의 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라도 가지고는 못합니다.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세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에누리가 없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 전 인류가 똘똘 뭉쳐서 그 앞에 복종하여 이렇게 예수 믿는 것은  외로워지는데, 또 땅에서 나온 짐승도 앞잡이가 되어 어린양으로 놓지 안하고  진실한 자는 몇이든지 죽인다 했는데 왜 이렇게 당신이 하시는가?   죽는 것이 문제라. 이미 죽을 것이기 때문에 죽는 죽음. 당신과 진리와 세상에  죽었으면 예수님의 승리지 딴 것 뭐 있습니까? 깨닫고 에누리 하지 말고  믿읍시다. 예수 믿는 것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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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회개/ 사도행전 20장 26절-32절/ 1982. 9. 22.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81 회개/ 마태복음 4장 17절/ 1982년 30공과 선지자 2016.01.11
80 회개/ 누가복음 15장 1절-7절/ 1976년 31공과 선지자 2016.01.11
79 회개/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9. 3. 3.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78 회개/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9. 7 22. 하기아동 성경학교 선지자 2016.01.11
77 회개/ 마태복음 4장 17절/ 1978년 27공과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