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20가지

 

1987. 8. 9. 주일새벽

 

본문:이사야 1장 18절∼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반사 선생님들, 공과 다 가져왔습니까? 공과 다 가져왔지요? 반사 선생님들, 공과 가져 온 선생님들 손 들어 봅시다. 녜, 그라면 공과 안 가져온 사람은 옆에 사람하고 보면서 한번 읽고 오늘 아침에는 공과를 종 날 때까지 읽고 외우고 그라면서 스스로 새기다가 종 나면 기도하고 준비해 가지고 심방하러 가겠습니다.

여기 공과에는 ‘회개’라 이래 놨는데, `회개 20가지' 요절은 1장 18절이고 회개에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회개할 것을 말합니다.

첫째가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두려워할 것’ 이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많이 있지마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다 주권되어 있고 심판권을 가지고 생사 화복권을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에게나 무엇에 두려운 게 많지마는 그것을 따져봐서 하나님에게 두려움이 되지 안하면 그런 것은 두려워하지 안해야 됩니다.

만일 사람이나 물건이나 짐승이나 어떤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해도 그 두렵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이면 두려워하고 그것들은 두렵게 해도 하나님은 나를 두렵게 하지 안하시고 나를 보호하시면 그런 거는 두려워하지 안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 같은 사람이 사자구덩이를 앞에 두고서 ‘너 한 달 동안은 기도 안 해야 되지 한 달 동안 기도하면 사자구덩이 잡아다 넣는다’ 그러면 사형한다 말입니다. ‘사자구덩이에 넣어서 사형시킨다’ 이럴 때에 인간적으로, 사자구덩이 집어넣으면 사자밥이 돼서 죽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좀 생각해 가지고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니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지 나를 해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기도 한 달 동안 안 하면 너를 살려 두고 기도하면 죽인다’ 하니까 그 일이 두려운, 죽인다 하니까 두렵지마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면은 하나님이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지 하나님은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 거 아닙니까? 그럴 때에는 그걸 두려워하지 안해야 됩니다.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우상에게 절하면 살려 두고 안 하면 불미불 속에 던져서 태워버린다’ 이렇게 하니까 그것도 두렵지마는 가만히 따져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해할 것은 아니고 하나님은 오히려 나를 보호할 것입니다.

또 하와가 그때에 배암을 만났을 때에 배암이 저에게 아주 친밀한 그런 말을 하고 아주 위로하고 좋은 말 ‘네가 하나님 된다’ 이렇게 말하니까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이렇지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따져보고 생각해 보니까 이는 배암은 저를 좋게 위로하지마는 하나님은 자기에게 대해서 진노하실 일이라 그 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두려워한다’ 요 뜻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의 대립이 돼서 하나님에게 내가 잘못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을 내가 했으면 천하 인간이 다 나를 위로하고 ‘너는 안심이다. 너는 참 행복되다. 영광이다.’ 해도 하나님이 나를 진노하실 일 했으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그게 정상이고 또 그대로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에게, 하나님께 잘못은 하나님 법으로 잘못한 것인데 하나님의 그 계약의 법칙에 위반되지 안하고 계약을 지켰음으로써 하나님이 나를 칭찬하실 그런 형편에서는 천하 인간이 다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고 다른 건 두려워하지 말라 그말입니다.

요걸 똑똑히 알아서,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고 다른 걸 두려워하지 안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지 아무리 천하에 인간들이 다 나를 옹호하고 협조해도 하나님에게 거슬려서 하나님이 ‘네 이놈 너는 그거 틀렸다’ 하면서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그건 천하 인간의 위로나 보호나 협조가 소용이 없고 그는 두려워지고 하나님이 자기를 진노하시니까 그 절단날 것 아닙니까? 두려워하고, 또 세상이 아무리 보호해서 어떻게 한다 해도 하나님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면 나는 절단이니까 두려워해야 되고 또 세상이 아무리 훼방하고 뭐 어떻게 위협을 하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잘못이 없어서 하나님이 내편이 되시면은 그런 거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아니한 죄를’ 우리가 이것을 잘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두려운 일 많은데 그 두려움에 최종 주권이 하나님에게 계시니 그분에게 걸리지 안하면 두려워할 거 하나도 없고 또 그분이 잘못했다고 우리에게 진노하시는데 뭐 인간, 가족, 국가, 상관 그것이 나를 위로하고 보호하면 제까짓 게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세상 것을 두려워하고 세상 것을 의지했지마는 노아는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만 사랑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사랑할 것’ 그러면 가족을 사랑치 안해야? 가족을 사랑합니다. 가족을 사랑하는데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떼놓고 가족 때문에 가족이 좋아서 사랑하는 것은 그것 다 틀렸다 그거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한 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사랑하니까 원수는 미워하지마는 원수도 사랑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랑하는 것을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되지 다른 것 때문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면 그 사랑은 참사랑이고 변치 않는 사랑이고 영원한 사랑이 됩니다. 그런 걸 여러분들이 생각하면서 학생들에게 일러 들려 주십시오.

셋째로는 ‘하나님만 바라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바라볼 것’ 아무리 피조물이 뭐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해 준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틀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또 하나님이 해 주신다면 어떤 세상이 방해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다른 것을 바라보지 말 것’ 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님이 주권해서 개미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이나 개미 한 마리가 나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그 쪼그만한 그런 것도 전부 하나님이 혼자 주권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분에게 크고 작은 것이 거기에 달렸습니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가 희고 검는 것도 전부 그분에게 주권이 달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안 되면 안 되고 그분이 되면 다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만 바라봐야 됩니다. 그라면 사람은 아무, 자녀가 부모는 안 바라봐야 되느냐? 그것도 하나님이 자녀가 부모를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에 소망하도록 했기 때문에 그 법에 따라서 소망해야 됩니다. 제가 알지는 못하고 할지라도 그 본능적으로 되는 건 다 그런 것입니다.

아주 짐승, 짐승 중에 저만 알지 다른 것을 모르는 것을 미련해서 도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도야지도 하나님께서 그 새끼를 사랑하게 할 때에는 새끼가 젖을 빨아서 뭐, 어떤 거 보면은 젖을 그만 이래 빨아서 젖을 떼 먹어 버렸습니다.

젖이 끊겼습니다. 그거 요래 가지고 젖이 끊긴 것도 있고 뭐 빠짝 마릅니다. 에미 돼지가 빠짝 말라도 으례히 먹일 줄 알고 또 빨아먹을 줄 알고 이래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그 새끼를 사랑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사랑하는 것이지 제가 무슨 그 자녀에 윤리가 있거나 뭐 도덕이 있거나 그런 것이 있어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게 하심으로써 사랑하는 것, 그러니까 철이 없을 때에는 본능적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하게 한 그 사랑이오. 또 본능적 사랑 그것을 초월해서 무슨 이성 비판으로 비판할 때에는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만 바라봐야 되지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된다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크고 작은 것을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된다,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공부하고 어짜고 이래 한다 해도, 공부를 내게 시켜 준다 또 뭣을 해 준다 이렇게 해도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하는 요것을 바라보고 할 때에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거는 내 힘으로 한다, 사람이 협조해 줘서 사람의 힘으로 한다, 이러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돕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아닌 다른 것으로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때 배운 것은 그 사람에게 다 화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뒤에 그것을 깨닫고 회개를 해서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나는 가난한 사람으로 고학하는 사람인데 고학할 때 어떤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했는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 그 사람을 통해 해 주셨구나.’ 마지막에 모든 자기에게 와서 되어 있는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요것을 해결지울 때에 비로소 생명이 역사합니다.

또 ‘구별 없이 복종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복종할 것’ 그러면 성경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또 어데 순종하라 다 정권에게 순종하라 다 이런 거 말해 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 분에게만 복종을 한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처음에 철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제도적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종하게 했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오. 철이 없을 때는 복종하게 했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복종하고자 하나 안 하나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철이 없을 때에는 상전에게 종이 복종하는 것, 또 선생에게 제자가 복종하는 것, 또 부모에게 자녀가 복종하는 것, 복종을 합니다. 복종을 하지마는 ‘구별 없이’ 처음에는 복종하게 하나님이 그렇게 제도를, 조직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자기가 자연적으로 필연적으로 강제적이라도 복종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제 조금 이성이 생겨지고 장성해져 가지고 이렇게 복종할 때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복종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그 왕에게 복종했던 사람이라도 요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 왕으로부터 내려와서 그 왕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에 배치되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이 왕을 통해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줄 알기 때문에 그 왕에게 복종하는 게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또 선배나 부모나 상관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 명령을 몰랐을 때는 이제까지 무조건 복종했지마는 이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복종해야 되기 때문에 상관이 나에게 어떤 명령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면, 비록 보기에는 상관이 명령하나 하나님의 그 법도에 어긋나지 안했기 때문에 그 명령은 하나님이 그 상관을 통해서 나에게 명령하기 때문에, 내 위에 상관, 상관 위에는 하나님이 상관으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되는 거는 복종하지 안하기 때문에 전부 누구에게 어떻게 복종할지라도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종함이 되는 때에 복종하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될 때에는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있을 때에 신신학자들은 해석을 하기를 로마인서 13장을 ‘「위에 권세에게 복종하지 안하는 것은 심판받는다」 이라기 때문에 조선 총독이 명령하는 명령이니까 조선 사람은 다 그 명령을 복종하지 안하면 하나님의 심판 받는다. 복종해야 된다.’ 이랬는데, 왜 어떤 사람은 안 했느냐? ‘우리가 총독에게 복종 해야 되나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되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이 세워 놓은 종인 줄 알고 하나님의 명령에 전달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복종하지마는 하나님 명령에 위반될 때는 복종할 수 없다.’ 그런데 복종하지 안한 사람이 복종하지 안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복종 안 한 것입니다. 이래서 ‘구별 없이 복종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께만 복종할 것’ 요렇게 한 것입니다.

또 성경에 대해서는 ‘성경을 다른 독서량만치 읽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을 많이 읽을 것’ 이것이 타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어떤 민족이든지 개인이든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 읽은 그 시간이, 이 양이니까 뭐 책장을 읽는 것보다도 그 시간을 바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읽은 시간이 다른 모든 그 도서를 읽은 것보다 더 양이 많아야 되지 안 많으면 저는 타락합니다. 안 많으면 타락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라면 공부하는 사람은 뭐 그 많은 책을 읽었는데 성경 그만치 읽겠느냐? 그것은 제가 철이 없어 그럴 때라도 어짜든지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 아이가 성경 말씀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외우는 것이라든지 하는 그것은 다 읽는 것이니까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외우고, 읽은 것!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외우고 하는 그 시간이, 그 시간이 많아야 되고 다른 것보다 많아야 되고 또 자기의 정력이 기울인 것도 성경 말씀에 기울인 게 많아야 됩니다.

그리 안 하면 그 사람, 하나님은 무서우신 하나님입니다. 많지 안한 자에게는 꼭 그만치 구별했기 때문에 저는 그만치 인본주의요, 그만치 세상주의요, 그만치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은 지키기가 어려운 거 같으나 요거 되어감에 따라서, 세상 독서를 자기가 읽은 거 그 양이 반 저게 반 되면은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은혜가 반밖에 안 옵니다. 세상주의 인본주의가 반이고 반반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어떤 일을 척 처리하면 여기에서 반이 당기고 여기서 반이 당기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머뭇거리고 이리저리 못 갑니다.

못 가고 그 중간에서 머물고 있는데 그때에 하나님의 그 말씀을 읽은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또 외운 것이나 그 양이 많으면 그리 기울어집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에게로 기울어지고, 세상 독서가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은 마지막에는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최종 승리가 안 된다 그거요.

또 둘째로, ‘성경에 있는 것을 다 믿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성경에 있는 것을 다 믿을 것’ 믿는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성경에 대한 것을 바로 알고, 그대로 알고, 그 다음에는 또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그대로 행할 것. 이번에 믿음은 세 개라 하는 것을 이번에도 가서 많이 배웠습니다.

셋째로 ‘성경으로 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성경으로 살 것’ 자기는 성경 법을 지키면서 사는 거 있고, ‘성경 법도대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게 있고, 또 자기가 사는 게 아니라 성경 진리가 자기를 붙들고 사는 것 있습니다.

그러면 최종에 완전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게 완전이냐? 자기가 성경 말씀을 이렇게 지켜서 행할라고 하는 게 아니라 성경 말씀에게 붙들려서, 성경 말씀이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는 성경 말씀에게 복종하고 성경 말씀에게 끌려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유있는 게 아니라 성경 말씀이 자기에게 자유있고 자기는 성경 말씀에게 완전히 자유를 박탈당한 그것이 이제 새사람입니다.

또 ‘성경을 항상 지참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어데서나 지참할 것’ 그러면 성경을 안 가지고 다니는 죄를 회개해서 성경을 가지고 다닐 것. 이런 것은 이거 사람들이 뭐 이상하게 보지마는서도 이 굉장한 깊은 것입니다.

자기가 어데서든지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거기에서 굉장한 구원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군인들이, 군인노릇 하면은 그뭐 기동할 때에 얼마나 복잡하고 또 무엇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그 자기네들 전쟁 도구만 가져가지 딴거는 하나도 가질 수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 조금만한, 다 못 가지니까 아주 성경 신약 성경이나 안 되면 다 못 가지면 성경 쪽복음이라도 이래 가지고서 보겟트에 넣어 가 가지고서 꼭 성경을 안 가져가지 안하고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그래 가지고서 과거 이차대전 때에 아주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에 자기 이 보겟트에 성경 넣어 가지고 있는 그 성경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이 피난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그래 가지고 다닐라 하는 그것이 성경책보다도 진리를 그렇게 사랑하고, 진리는 영감, 영감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피난시켜 주는 일이 있습니다.

또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은 안 보고 사람만 대한 죄를 회개하여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대할 것’ 사람은 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인데 잘못하면 하나님 보지 안하고 사람만 보기 쉽다 말이오.

예를 들면은 어떤 아이에 사랑하는 그 부모와 둘이 있는데 부모는 보지 안하고 그 아이 하나뿐인 줄 알고 아이에게 만만하게 이래 했다가서 그 부모는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부모가 섭섭해 여긴다 말이오.

또 어떤 그 공평된 법관이 그 사람을 보고 있는데 자기는 법관은 보지 안하고 그 사람에게 무례하게 월권하게 했으면은 그 법관이 그걸 보고서 아주 무례한 사람이라고서 정죄하고 구속을 할 것이라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왜?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지은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법도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과 같이 볼 때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하나님이 섭섭하지 안하도록, 하나님이 노하지 안하도록,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그 사람을 같이 보면서 사는 그 사람이 슬기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지 안하고 사람만 보고 사는 사람은 판판이 실수해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저주가 저축되는 것입니다.

또 ‘형제를 사랑치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내 몸같이 사랑할 것’ 이런 것도 우리가 자꾸 힘써야 됩니다. 하다 보면은 실수해 가지고 그렇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형제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크게 평안이고 참 죄와 그 실수를 방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론 나쁜 행위는 미워해야 됩니다. 나쁜 행위는 미워해야 되지마는서도 나쁜 행위를 미워하다 보면은 사람까지 미워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은밀히 생각하면 형제에게 나쁜 행위 있는 그 행위도 미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거 내가 뭣 때문에 그것을 죄 짓고 실수하고 또 시험에 들기 쉽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기 쉬운, 아무리 나쁜 행위라도 그 행위까지 우리가 나쁜 행위라 할지라도, 으례히 사람은 미워하지 안해야 되겠고, 사람을 사랑해야 되겠고.

행위를 미워하다 보면 사람 미워하기 쉽기 때문에 나쁜 행위도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손해갈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나쁜 행위라도 성경이 말한 거는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라” 이거는 틀렸다. 틀렸다 하는 그것으로써 우리는 끝내는 것이 냉정스러운 것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의 시체를 두고서 사탄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에 미가엘 천사장이 사탄에게 대해서 미워하거나 대적하거나 그런 일 하지 안하고 그저 성경이 말한 대로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라” 하는 그대로 ‘하나님이 너를 노여워하실 것이다’ 요렇게 탁 책임을 ‘하나님이 노여워하실 것이다’ 그래 버리고 그거 자기가 책임지지 안해.

우리가 나쁜 일이 있다고 그 사람에 대해서 사람을 미워하고 뭐 행위 미워하는 그런 거 우리가 참 어리석어서 벌로 덤비는, 약지 못하다 말이오. 말하자면 우리가 믿는 사람이 약지를 못해요. 그래서 둘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형제를 내몸 같이 사랑할 것’ ‘사람에게 교만한 죄를 회개하여 사람에게 겸손할 것’ ‘사람을 조심 없이 대한 죄를 회개하여 사람을 삼갈 것’ 이러니까 이는 차라리 사람 중에 조심하지 안하고, 조심 안 해도 손해를 안 보고 손해를 안 끼치고 하나님의 진노를 만들지 안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보다 원수입니다. 원수를 대하는 데는 실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대할 때는 실수가 없고, 믿는 사람 말이오. 안 믿는 사람은 원수에 대해서 살인 죄를 많이 짓지마는서도 믿는 사람은 원수에 대해서는 실수가 적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에게 제일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원수가 집안 식구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고 여자고 그 제일 조심할 것이 하나님에게 걸릴까 해서 제일 그것을 조심하고 하나님을 조심하고 그 다음에 둘째로서는 사람과 악령에 대해서 조심해야 돼.

우리가 잘못하면 악령에 미혹받기 쉽기 때문에 항상 이 악령과의 관계, ‘여기에는 지금 악령이 동참하나 안 하나?’ 그것을 생각하면서 살고 또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되나? ‘조심 없이’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노여워하는 일을 할라? 또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일을 해야지.

사람에게 대해서는 아주 얼마나 조심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범죄가 거의 다 제일 많이 되는 것이 그것이 사람에게 대해서 조심하지 안함으로 죄가 많고 그 다음에는 물질 이 사건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조심 없이 대한 죄를 회개하여 사람을 삼갈 것’ 항상 조심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을까? 이거 사람과 우리가 접촉이 많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사람에게 조심 없이, 속에서 조심이 돼 가지고서 거기에서 하나님과 의논해 가지고 판정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면 다 실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행심사가 동하고 정할 때에는 꼭 안에 있는 내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언행심사가 동하고 정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동하고 정하지 안하고 자기 단독이 동하고 정한 거는 뭐 백프로 그거는 실수입니다.

또 사건에 대해서. 첫째는 ‘사건을 모든 사람으로만 의논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문의할 것’ 그러면 사건을 무엇이든지 있으면은 하나님께 문의하는 것은 성경에서 뭐라 하느냐? 이 사건을 성경에서 어떻게 하느냐? 성경에 문의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께 문의하는 것이요 자기가 신앙 양심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기도해서 영감에게 문의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께 문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사람은 실수가 없고 그 하는 일이 자꾸, 다른 사람 보기에는 시시하지마는 시시한 일이 뒤에 큰 열매를 맺고 맺고 해서 자꾸, 사람들이 입으로 떠든다고 그거 다 되는 게 아니라 떠드나 안 떠드나 그 해 놓은 것을 자꾸 하나님에게 맞으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함께 하시요.

이러니까 모든 그 사건에 대해서는 사람에게만 의논하고 하나님이야 어찌됐든지 하는 그거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건에서는 먼저 하나님께만 의논해야 되는데 하나님께만 의논하라 그말은 성경에만 의논할 것, 영감에게 의논할 것, 성경과 영감에 의논해 가지고서 하라 하면 했지 뭐 그뭐 인간들의 반대가 상관이 없다 말이오.

그거 또 하다가, 하는 데도 상대방이 죄를 짓고 이와같이 그 거슬리면 그만침 하고 나머지기는 하나님께 맡겨 놓고 저는,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 한다 할지라도 죄를 지어 가면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될 필요 없어.

아무리 그거는 하나님의 뜻이라, 꼭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그 절대의 의로운 일이라도 그 일을 우리가 하다가서 다른 사람이 범죄하게 되면은 그 사람이야 범죄하든지 말든지 나는 하자 그렇게, 나는 그걸 그 범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안하고, 그 하는 걸 중단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나는 그 하는 것으로 계속 이래 대고 있습니다. 계속만 하고 있으면, 있는데 범죄케 해도 할 그런 필요는 없어.

그저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하는 거와 꼭 같은 이치입니다.

또 ‘인간 판단만을 상대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의 판단만 위주할 것’ 그뭐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그것은 참 아주 가벼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은 “사람들의 여론은 매우 그것은 경한 것이라” 아주 뭐 별로이 그거, 여론 하는 그거는 우리가 참고는 삼지마는 온 세상 사람이 떠들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한다 할지라도 그런 데 대해서 ‘저래 하니까 저게 뭐이가?’ 참고로 삼아 가지고서 묻기는 어데 가 물을 것인가? 성경에게 묻습니다. 영감에 묻습니다.

영감과 성경에 물어서 판단하면 그 판단이 판단이지 인간 판단은 참고로만 삼지 그걸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를 아니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이 뭐라 하는 데 거기에 충동받지 않습니다.

요새 우리 나라도 지금 뭐 데모니 뭐이니 하는 그런 데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수가 말할 때에 ‘아, 이거 어떻다.’ 이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수에 절대 피동되지 않습니다. ‘이 성경이 어떻게 했느냐? 성경에 어찌 됐느냐?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느냐?’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옳다 할 때 아닌 게 없고 아니라 할 때에 그 옳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판단만을 상대하던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의 판단만 의지할 것’ 셋째로, ‘사람의 지도만을 받은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의 지도만 받을 것’ 아무리 사람이 이래 저래 하라 한다 해도 그 물론 우리가 위의 사람에게, 부모에게, 또 친구에게 이래저래 하라 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이라도, 아이라도 요구하고 말하는 거 할 수 있습니다.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지도하는 일이고 인도하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떤 것이라도 안 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외로와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으로써 부자간에 형제간에 친구간에 또 동역자간에 이렇게 벌어지고 또 이거 안 하고 뭐 타협적으로 사람의 지도를 받으면 다 좋아합니다.

이러니까 천인 만인에게 그와 나와 같이 된다고 하면은 어려울 것이 한내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지도, 하나님의 인도만 받고 다른 인도를 안 받을라 하는 데서 거기에서 우리는 외로와지고 세상과 자꾸 이래 벌어집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것을 사람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람과 나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 일을 하면 하나님과 나와 벌어져 버리고 하나님과 나와 안 벌어질라 하면은 사람에게 벌어지고 둘 중에 하나라. 이러니까 할 수 없어서 하나님과 벌어지지 안하고 사람에게 벌어지니 참 기가 막힐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 그대로 따라 움직여야 됩니다.

또 ‘도움을 가리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도움 받을 것’ 그러면 우리가 도움 받으면 이거는 부모의 도움이라 뭐 도움이라 하는 것 말이요, 그러면 부모의 도움이라면 그것을 생각지 안하고 도움을 받은 죄입니다.

‘도움을 가리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도움 받을 것’ 그러면 암만 다른 사람이 내게 줄라 하더란대도 그것을 하나님이 그 주시는 것이 마땅하고 또 하나님 법에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마땅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주는 것이면은 진리대로 주는 거라. 진리대로 주면 내가 받지마는 진리대로 오는 것이 아니면 좋으나 나쁘나 어떤 거나 다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두 하나님에게만 받지 안하고, 도움을 가리지 안하고, 도움을 구별하지 안하고 받은 그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도움 받을 것.

하나님의 진리대로의 나에게 돕는 것이나 주는 것이라야 되지 아무리 복이 오고 아무리 성공이 와도 하나님의 진리대로의 오는 것이 아니면 거부한다 그 말이오.

이게 들어서 뭐이냐 하면 우리가 사약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독약을 먹지 않는 것이오.

또 물질에 대해서는 ‘물질을 피조물에게서만 받은 인식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받을 것’ 우리가 물질에 대해서 누구를 통해서 어디서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나에게 주셨다는 것 이것을 생각하고, 또 죄로 왔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게 아니라 마귀에게 받은 것을 우리가 생각해서 그거는 집어던져 버려야 됩니다. 버려야 돼요.

저도 예수 믿을 때에 그 술도가해서 돈 많이 벌었습니다. 그때 돈 많았었는데 성경 딱 보고 보니까 그게 다 하나님에게 받은 게 아니고 죄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안 남구고 다 내버려 버렸습니다. 그것 다 없애 버렸습니다.

‘물질을 피조물에게서만 받은 인식의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받을 것’ 또 ‘보관 저축주의로 살던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보관하라는 것만 보관할 것’ 어짜든지 돈은 모아야 된다 저축만 해야 된다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저축하라는 거는 저축하고 쓰라는 건 쓰고 또 쓰는 데도 하나님이 쓰라는 법도대로 써야지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 제 맘대로 쓰는 그런 게 다 틀렸다 그거요. ‘보관 저축주의로만 살던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보관하라는 것만 보관할 것’ 또 ‘물질을 주고 받은 것을 자유로 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주라는 것만 줄 것’ 그러면 물질을 주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제 맘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복종으로 ‘이거는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주라면 주고 안 주라면 안 준다 그거요.

안 주면 서로 사람을 잃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라는 것을 줘야 되지 안 주라는 것을 줄라 하면은 그건 그 사람 내가 붙들라 하다가 하나님 잊어버리는 게 된다 말이오. 하나님을 뺏기게 돼. 요런 것이 이거 다 우리 신앙 생활에 성결이 되는 것이고 지혜가 되는 것이고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욕대로 월권 남용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사용하라는 것만 사용할 것’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물건이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보관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명령 따라서 사용해야 되지 제것이라고 사용하면 전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공부했는데, 모든 가진 것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보관물입니다. 보관물이요, 지식도 보관물이요, 모든 지혜도 능력도 보관물이요, 건강도 보관물이요, 또 재산도 보관물이요, 제것 하나도 없습니다. 왜? 택한 자들은 예수님의 피로 대속해서 다 값 주고 샀기 때문에 완전히 주의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거라.

보관하고 있는데 보관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저의 것을 삼는 데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완전히 제것 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시키셔 이렇게 하라 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썼을 때에 그때에 영원한 자기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안하고 제 맘대로 사용하는 것은 도적질 하는 것이 돼서 이다음에 변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안하고 보관해 놓은 것은 보관물을 보관해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쓰라 했으면은 네게 주마 했는데 쓰지 안하고 보관해 있는 것을 그대로 보관하다가 떠나지면 하나님의 보관이 제게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그 사람이 많았지마는 하나님의 보관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제것은 하나도 안 됐습니다.

이것을 지금, 뭐 시간이 다 갔는데 이러니까 이것을 오늘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지금은 떠나지 말고 여기에서 기도하고 있다가서 바로 심방가는 것이 좋습니다.


선지자선교회 그라고 하나 광고합니다.

‘차를 태워서 학생들을 인도하는 선생님들은 오늘 아침 여섯시 이십분까지 교회로 오시면 교회 버스와 통근버스로 심방하는 곳까지 갑니다. 만일 오늘 시내버스가 운행되면 본교회로 데리고 오고 운행이 안 될 때에는 분교에서 아홉시에 예배를 봅니다.’ 아홉시에 예배보고 또 거기서 올 형편이 못 되면 아홉시에 예배보고 장년반 예배도 분교에서 봅니다. 올 수 있으면 오고 올 수 없으면 분교에서 봅니다. 그때 올 수 있는 우리의 지정된 차나 또 교회 차가 있으면 오고, 못 오면 그 자리에서 예배봅니다.

오늘은 이것 뭐 버스가 뭐 버스 기사들이 데모해 그렇다 하는데 그 타협이 어찌 됐는지? 아직까지 타협이 안 됐습니까? 아침에 다니고 있다 하는데? 많이 다니면 그러면 다 와. 이거 내비두고, 인제 이 광고할 필요가 없고 그라면 다 옵니다.

오는데 이것 그저, 또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이거 그냥 약자들이 말해도 안 되니까 여럿이 단합해 가지고 이거 뭐 데모해 가지고 되는 좋은 점도 있지마는 다 좋은 게 아니라.

그라면 안 할 것도 하고, 어쨌든지 서로 의논해서 이리 해야 되는데 의논하지 안하고 그만 다수로 이렇게 밀고만 나가면 된다 하는 이 다수 세력을 이래 해 놨는데 앞으로 이제 직선제가 된다고 하면 이게 좋은 것 같지마는 직선제가 이거 데모의 원인입니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는 민도가 그런 데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숫자만 많으면 이 숫자 많은 게 제일이라 이라니까 많은 숫자 그게 바로 깨닫습니까? 그러니까 이거 뭐 속에 한 사람 두 사람 가지고서 천명 만명이 막 움직이고 이라기 때문에 이거는 데모 세상이 되면은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

그동안에도 공장 이거 데모 때문에 아마 경제에 많은 흠점이 있을 것이라. 요래 되면 나중에 사람들이 이제 자기 식록을 붙여 놓고 정성을 기울여서 물질을 만들었는데, 만들었는데 이거 이렇게 해 버릇 하니까 그만 자기네들 못된 이거 ‘하면 된다’ 하는 이 습성이 들어 가지고 일하는 데 성의 없을 터이니까 앞으로 외국에서 수출품이 인제 많이 퇴자가 돼서 돌아올 것입니다. 돌아오면 회사가 망합니다. 회사가 망하면 그 직원들이 있느냐? 실직자들이 많이 있어 배를 곯을 것입니다. 이게 누가 이렇게 데모를 내놨는가? 이거 데모 만든 이거 좀 생각해야 되지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모른다 그거요.

또 그걸 자, 그러면 회사를 경영하는 그 지혜 가지고 경영하는 그 사람은 한 사람이 천 명도 더 당합니다. 그 사람 가지고 그 모든 게 운영해 나가는데 그 사람 이라면은 ‘아이고, 이래 봐야 뭐’ 나라도 좋고 제가 그것 뭐 재산 가져가는 것 아니고 이러니까 이걸 회사를 하나 경영해서 자꾸 서 갈라고 이래 애를 쓰는데 이거는 마구 우선 갈라먹자 그거요.

이러니 ‘우리는 좀 절약해 살고 자꾸 이것을 잘 거석해 가지고서 기계도 좋은 걸 도입해서 세계에 제일 앞서가는 그런 데에 따라가자’ 그랄라 하니까 좀 배를 곯으며 살아야 될 거라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자, 그만 오늘 있는 대로 마구 털어먹어 버리자 하는 것 있고 그 조금 절약해 먹고 자꾸 이거 지금 해 나가자, 암만 그 사람들이 회사를 거석한다 해도 그 사람이 돈을 가져가느냐? 도피만 못 하게 하면 그 사람은 밥을 한 끼에 두 그릇 먹고 세 그릇 먹는 것도 아니고 어짜든지 이걸 이래 가지고 건설해 나가자 하는 것 있고 막 털어먹자 하는 것 있고, 막 털어먹자 하는 그거는 좋아하기는 좋아하지마는 망합니다.

아무리 이래 하다 안 되면 만일 기업가들이 ‘이거 해 봐야 나중에 가서 뒤에 가서 몽둥이 맞아 죽을 것이고 이것 뭐 할 필요가 있느냐? 나 혼자 밥 먹기야 이거 안 해도 먹을 수 있지 않느냐?’ 그 사람들이 턱 떼버리면 이 나라는 공산주의에게 완전히 종이 돼 가지고 몽둥이로 뚜드려 맞아서 이제 밥 한 그릇 옳게 못먹는 그런 단계가 옵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지금 이렇게 하니, 이거 그 버릇을 채 놔서 자, 암만 정치에서 법이고 뭐이고 이래 한다 할지라도 그만 이거는 ‘이래라’ 하면 이래 듣고 뭉쳐져 놓으니까 암만 나라에서 이래도 이뭐 있는 대로 다 이라니까 이 정신차리면 국민들 구테타가 나와야 됩니다.

이러면 일대 일로 그라면 이거 다 저거끼리 싸워서 다 죽여버리고 맙니다. 이걸 이 세상에 다른 나라들 보지 않습니까? 그 나라들이 뭐이 됩니까? 이렇게 재미있게 자꾸 건설돼 나가고 이라는 이거, 뭐 정치 이양이라 하는 거 뭐 육 개월 어떻다 하는데 여기서 발동쳐 어쨌든간에 이거 이래 가지고 소동을 시켜 마음을 소동시켜서 분쟁을 일으켜 가지고서 하자는 것, 만일 정치 정권 야욕을 위해서 분쟁을 일으켰다고 하면 그 사람은 우리 민족이 아닙니다. 이거 눈을 들고 좀 봐야 된다 말이오.

이번에 앞으로 지금 이거 선거가 있는데 이 선거가 어찌 되나? 선거가 과연 대통령 하나 잘못 선거하면 그 나라 망합니다. 바로 선거하면 그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투표 하나에 우리 나라가 망하면 제가 망하고 가정이 망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와 개인과 내 가정이 망하고 흥하는 것이 이거 대통령 이 한 사람 선거에 있다, 내 투표 하나가 여기 있다. 이러니까 돈을 줘도 매수당하지 안하고 강제해도 매수당하지 안하고 이 생사화복이 세상에서는 대통령 선출에 있다. 하는 요것을 생각하고 그 한 표를 자기 양심으로 생각해서 ‘이 사람이 되면 좋으냐 저 사람이 되면 좋으냐?’ 이것을 자기 양심껏 생각해 가지고 투표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는 사람이 된다면 망합니다.

그래서 열여덟 살까지 내리자 스무 살로 하자 자꾸 이렇게 말하는데 그것도 지금 문제입니다. 어짜든지 스무 살 이하로는 무엇이든지 말만하면 들어가. 그때는 주입적 시기라. 적어도 스물다섯 살이 돼야 이렇게 뭘 좀 판단한다 하는 건데 스무 살로 한 것도 이것도 이 스무 살로 하기 때문에 이 직선제로 할 수 없는 게 됩니다. 지금 이 우리 나라에서 스물다섯 살 서른 살로 한다면은 다 직선제 될 수 있습니다. 서른 살 돼 놓으면 뭐 이성 비판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낫기 때문에 뭘 할 수 있지마는 이것 뭐 어린 학생들이야 대중에 따라서 말하는 대로 쭉쭉 따라간다 말이오. 이러니까 위험 천만이라.

이 나라 망치고 어짜는 거 모르는데 마구 마구잽이로 이거 뭐 돌을 던지고 이래 해 쌓아니까 뭐 갋을 수가 있겠소? 이러니까 이거는 아무것도 갋을 수 없어. 이거 갋을 수 있는 거는 뭐이냐 하면 이거 군인 구테타가 오면이나 할까 그전에는 못 한다 말이오. 군인 거석이나 발동하면 할까 그리 안 하면 안 돼. 이라면 이거 뭐이냐? 나라는 절단나는 거라.

그러니까 이성을 잃고 살면 안 돼요. 이성, 이성 판단으로 사는데 이성 판단이라는 것이 어릴 때는 이성 판단이 어리고 약합니다. 그러니까 차차차 좀 장성해져야 되는데 여러분들도 이거, 말은 하지 안해도 저 혼자는 그래 알아야 돼. 이거 지금 운동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말하지는 말고 그저 자기 혼자는 ‘가만히 보자.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하나만 생각이라. ‘이러면은 그 끝이 어찌 되느냐?’ 기업주야 그것은 이렇게 데모 안 해도 말이지, ‘자, 너거 수입이 이런데 수입이 이러니까 이 수입이 이러니 우리 다 갈라먹자, 그만. 우선 마구 떨어먹자.’ 이 수입이 이런데 지금 이것을 자꾸 건설해 나가야 되니까 내가 먹는 것도 있고 네가 먹는 것도 있고 건설해 나가니까 건설해 나가는 데다 얼마를 몇프로를 건설에다 투자하고 또 몇 프로를 우리가 갈라먹고 이런데 그러면 갈라먹는 게 적으면 더하자 덜하자 의논해서 얼마든지 이성 비판으로 의논해 가지고서 공평되게 이라면 회사도 잘돼 나가고 이 기업주도 잘돼 나가고 점점 이게 잘돼 나가면 수입 많을 것이고 이러면 우리 차차 차차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자꾸 생활이 향상되는 그걸 해야 되겠느냐 막 털어먹어야 되겠느냐 이거 의논하면은 환한 정답이 나올 터이니까 그리 해야 되는데 이것 뭐 마구 이 데모하는 거, 이것도 또 좋은 면은 있어. 이거 의논하자 해도 의논 안 하고 있으니까 또 이것도 좋다 그 말이오. 그래도 의논하자 하는 그게 나오면은 그만 그거 돼야 돼. 그거 그걸 조정하는 게 정부인데. 그 의논하는 그걸 조정하는 것이 정부니까 그것을 ‘이거 이렇고, 이렇고 하니까 이거 다 털어먹을 게 아니라 이거 건설해 가며 하자. 그러면 건설해 가면 차차차 잘 먹고 살 수가 있다.’ 이걸 해야 되는데 그만 그라면 그렇게 하자 하면 ‘이거 정부가 지금 이뭐 노조는 전부 무시하고, 노동자는 무시하고 저거만 좋게 한다.’ 이 어리석게 이라니까 이거 그만 그말 듣고 이라니까 여기 지금 정권이 말 못 합니다. 정권이 꼼짝을 못합니다.

꼼짝 못하고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우리 나라가 행복될라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행복될라면 일단 좀 참말로 독재자가 나와야 될텐데 그런 사람이 우리 나라는 없습니다. ‘박 정권 어떻다, 박 정권이,’ 박정희 그분이 들어 가지고서 이 나라를 이만치 향상시키지 안했습니까? 지금 다 알고 있지 않아? 그대로 있으면 어찌 될 거라? 중학생, 고등학생이가? 대학생이가? 너거는 생각이 어떠노?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는 자기가 자기를 자기 단속 잘해서 자기 하나만이라도 실족하지 안해야 됩니다. 이래서 모든 것을 다 정평정가 해 가지고 하되 요런 범위만 보지 말고 좀 넓게 보고 좀 넓게 보고 좀 넓게 봐서 이래야지, 우리 나라의 생활이라 하는 것은 과거보다 얼마나 생활이 향상됐습니까? 이것 다 기업이 이래 돼 가지고 했지 아무것도 없으면 이 나라 굶어죽지 별수 있어요? 우리 시대만 해도 굶은 사람 많았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걸 좀 생각하면서, 자꾸 또 그것만 키우고 우리는 굶어 죽으면 소용 없어. 우리가 굶으면, 그것만 키우고 굶으면 안 돼. 그러니까 굶는 거 우리가 다 밥먹고 옷입고 이래 있으면 호화롭게 사치 생활은 안 하고 사치 생활 안 하고는 자꾸 이거 올라가서 향상되면은 결국은 그거 누가 가져갈 것이요? 우리가 자꾸 일이 잘되고 부강해짐으로 잘 먹어져야 되지 이거 약한 자 우선 잘 먹을라 하면 약해져요.

이러니까 이런 것도 좀, 여러분들도 다 업자요 또 종업자요 이러니까 이 사람이 이런 사상으로 좀 이거 계몽이 돼야 되는데 이것 뭐, 하기는 나라에서 또 이것도 모른다 말이오. 이승만 대통령은 인문과를 많이 위주했습니다, 인문과. 인문과를 많이 위주했기 때문에 그때 사람들이 조금 정신을 차렸어.

그 다음에는 인문과 해 가지고 안 되니까 이거 밥을 먹어야 되니까 과학과에다 자꾸 이거 여기다가 주력을 하고 이라니까 사람이 없어져 버렸어. 이거 과학뿐이지 사람이 없어. 과학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우리가 좀 넓게 좀 생각해서 나가야 되지 여기에 어긋나면 개인이나 단체나 죽고 망합니다. 그뭐 별수가 뭐 있습니까?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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