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로 자라가라

 

1979. 12. 1. 토새

 

본문 : 마 3:1-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여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하신 말씀은 회개하면 천국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천국은 간단하게 말해서 죽음이 없는 나라입니다. 죽음과 슬픔과  고통과 눈물과 한숨과 멸망이 없는 나라요. 생명과 사랑과 진리와 온전과 기쁨이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아니면 이 회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뒤에 안 들린다는데  한번 잘못되면 죄라는 것은 잘못된 것인데 잘못된 것은 그 값이 사망으로 돼  가지고 있소. 그러기에 잘못된 그것을 고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죄없이 안되고 또 고치면 어느 정도 고쳐야 되느냐? 그 부분적으로  완전무결하게 고쳐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렇게 고칠 분이 없습니다.

완전무결로 고치다니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이 고쳐야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날뛰어 봤자 전지의 지혜로 무지 무능을 전지 전능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유한한 것이 무한으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무한의 존재로 말이요 유한의 존재가  무한의 존재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무한이 있고 완전이 있고 영원이 있고 전지 전능이 있는데 그 인간이  그렇게 고치면 뭐 다 하나님 될라고요, 하나님이 당신의 것을 줘서 당신의 것이  그의 것이 될 때에 이 천국을 얻을 수 있는 고침이기 때문에 이거는 예수님의  대속과 또 성령님,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진리가 보증해 가지고서 하는 일이  아니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과 벌어진 것이 하나 되어서 하나님의  전부가 인간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이 공로를 베풀어 놓은 것이 예수님의  대속인데 이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이종교에도 있는 줄 알아도 몰라 그렇지 그것은 껍데기 자기가  사람 죽이던 자가 사람을 안 죽이면 그거 회개인 줄 압니다. 아니요 도둑질하던  자가 도둑질 안하면 회개인 줄 압니까? 아니요. 회개라는 것은 이것은 그 자체  요소가 변해진다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영육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입니다. 또 뭐 있느냐 아니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뿐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것을 우리가 타고났습니다.

우리 영육은 하나 뿐이지 둘이 아니요. 하나 뿐인데 다만 회개라는 것은 영육을  딴 영을 딴 육을 바꾸어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 영 그 육인데 그 활동하는 기능,  이 기능이 바꾸어진다는 것이요. 영육이 악령 악성 악습이 이 영육을 지배하고  그로 인하여서 움직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인다는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그 자체는 피조물입니다. 자체는 영육이 다 피조물이요 또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지마는 그의 기능적으로는 창조주의 기능이라 움직이면  창조주로 인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그 인간을 통한 것뿐이지 실은 그게 창조주의  움직임이라 그게 회개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라는 것은 택자에게만 있지 불택자에게는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기능이 움직이니까 마음이 그 마음인데 그 마음인데 마음의  기능이 달라졌다 그 말이요. 마음의 활동이 달라졌어. 마음이 마음의 활동이  달라졌다는 것은 마음이 이제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거 욕심적으로 움직이는 거  또 지성적으로 움직인 것 비판적으로 움직인 것 모두다 움직임인데 마음은 그  마음인데 이제 그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완전히 피조물로가 아니고 창조주로  움직입니다.

이러니까 아 그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의 움직임. 그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면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평가했으면 하나님의 평가요. 그 사람의 비판이면 하나님의  비판이라 요렇게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둘 아닙니다. 셋도 둘도  아니요.

그 우리가 그 교리사 교회사를 그 공부하라 하는 그것이 사학을 공부하라는 것은  교회사를 공부하라 그 말은 인간들이 움직인 그 결과가 어찌 됐노. 껍데기 나온  결과를 그것을 상고해 가지고서 그 잘못된 그것은 자기에게 반드시 있으니까  그걸 봄으로 남이 실패한 걸 봐서 자기에게 실패를 뽑으라 말입니다.

교리사를 공부하라 말은 사람들이 그러면 이렇게 잘못된 행동들이 생활들이  나타났으니 그 원인인 그의 깨달음이 어찌 되었느냐 그걸 공부하라는 것이요.

깨달음이 그것이 하나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면 다 헛일이라  그기요.

그러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이 말은 사람이 자기 마음이 마음의  움직임 마음의 움직임이라면은 마음의 기쁨도 마음의 움직임 아니요 마음의  슬픔도 마음의 움직임 아니요. 마음의 담대도 마음의 움직임 아니요 그 담대한  마음이 따로 있고 뭐 비겁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 아니요. 내나 그 마음이  담대하게 움직이고 비겁하게 움직이고 하는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그 마음의 기능이 담대한 기능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그  마음에서는 담대함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또 그 마음이 아주 사망에 속한 것은  미워하고 생명에 속한 것은 기뻐하는 것도 그 마음의 움직임이 사망에 속한 것은  미워하고 생명에 속한 것은 기뻐하는 그것이 마음의 움직임이 그리 돼야 된다 그  말이요. 마음이 그리 돼야 돼. 마음이 그래 돼야 되니까 이것은 고쳐야 천국에  속한 좋은 것을 다 누릴 수가 있지. 암만 천국 속에서라도 제 마음이 고쳐지지  않으면 헛일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회개하면 기쁜 세계, 평안한 세계,  영생의 세계, 사랑의 세계, 그 세계에 제가 살 수 있다 그 말이요. 그 세계에  살수가 있다 이는 자체가 변해졌기 때문에 이러니까 그 악령은 왜 하늘나라에서  쫓겨나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강제로 쫓아낸 것 아니요 제가 그 자리는 못  있습니다. 제가 나온 기라 왜?  하늘나라는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자체들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하고 아무 이색진 것이 없고 거게는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의  전부가 제 것이요, 제 전부가 하나님의 것 되지마는 그 자체가 그 변화되지  아니하면 전부 하나님의 움직임하고 자기 움직임하고 서로 막 부딪혀 마찰이  되어지니까 그 어떻게 견디겠소 박살이 날 터이니까 자연히 그거 나가야 될 것  아니겠소.

 회개라는 것은 요것은 마음이 딴 마음 되는 것 아닙니다. 마음이 딴 마음 지금  마음 자체가 딴 마음을 가져오는 것 아니요 우리가 그 영육 영이나 마음이나  고깃덩어리는 요것은 요기 자체인데 우리 자체인데 요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그러면 이기 둘이냐 아니요. 하나 뿐이요 하나 뿐인데  다만 여게 검정물이 들었다가 붉은 물이 든 것 모양으로 검정물이 들었으니  이거는 탈색시키면 검정물은 없어지고 붉은 물을 들이면 이제 붉은 베 쪼각이  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작용 기능이 이것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변해지는  것이지, 이 마음이 지금 뭐 이런 나쁜 마음 저런 마음 여러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지금 또 기계 부속품 갈아 넣듯이 갈아 넣는 것 아니요. 이것은 내나 한  마음이요 한 고깃덩어리요.

한 영인데 그 영이 기능적으로는 죽어서 아무 것도 없는 진공 같이 덩어리만  있지 죽었던 그 영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그것으로 움직이게 됐습니다.

하나님에게 접선되니까 하나님이 거머쥐고 움직이게 되니까 하나님을 따라  피동되더라 그 말이요. 이기 산 영입니다.

이제 그러면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것은 자기 마음의 기능이 그러니까 마음의  작용이 그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베조각 한가지요. 이거는  아무것도 없는 하나의 원단 한 것이요, 하나의 이거 물질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이제 움직이니까 그게 돼 버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움직이니까 하나님 돼 버리고, 하나님 된다 그 말은 본체는 하나님이 되지  안하지마는 그 자체는 하나님이 되지 안하지마는 그것의 작용은 전부 하나님이요  하나님 한 분이 작용하요. 하나님 작용이 그를 통해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  작용하면 하나님과 꼭 같애.

이러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이 천국은 전부 제 것이 다 돼 버려요. 악령으로  말미암아 작용하는 그 마음이 있다면은 천국은 지옥이 될 것이요 지옥은  저에게는 천국이 됩니다. 이러니까 이 회개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지  다른데는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이 회개라는 것은 이것은 자기 자체가 딴 걸로  갈아넣는 것 아니요 그 자체 그것이 기능 변화입니다. 기능 변화요 움직임의  변화요.

우리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고 저런 마음이 있고 여러 가지 마음이 여러 수십개  수백개 수천개 되는 것 아닙니다. 다만 그 마음 하나인데 그 마음이 누구로  통해서 이리 움직이느냐 어느 기능으로 움직이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천국이 없는 것 아닙니다. 천국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어도 이 자리에서도 어떤 사람은 한없이 기쁠 것이고, 한없이  고통스러울 것이고, 한없이 원망스러울 것이고, 한없이 감사스러울 것이고,  한없이 소망이 클 것이고, 한없이 절망이 되어질 것이고, 내나 딴 기 아니라  자기가 어데 따라 움직이느냐 하나님이 무한한 소망으로 움직이게 할 때 그  마음이 무한한 소망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면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전부는  무한한 소망 뿐이라 내나 그 마음인데 이 움직임이 없어져 버리고 악령이 절망의  움직임을 주면은 그 마음에는 나오는 것은 전부 절망 뿐이요

이거는 꼭 피아노 한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육이라 하는 것은 지음을 받을 때에  그 피동적 존재로 지을 받은 것이지 그게 독단으로 능동적 존재로 지음 받은 것  아닙니다.

여게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거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자체가 물질로 되어 있는 그거는 내나 돌이나 흙이나 꼭 같다 돌이나 흙이나 꼭  같다 우리 마음도 돌이나 흙이나 꼭 같고 고깃덩어리도 돌이나 흙이나 꼭  같습니다. 이거 물질이라면 물질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났으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그 자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택한 사람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이렇게 믿음의 조상으로 정한 이것은 그 아브라함의 그 움직이는 기능  움직이는 기능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자랑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은 그것 뭐 고깃덩어리는 고기덩어리는 그 고기덩어리는  고깃덩어리나 흙 돌이나 꼭 같소. 아브라함의 뭐 심신이 딴 거 있는 줄 압니까?  그건 물질이요 이렇지마는 거기에 움직이는 움직임이 순전히 하나님이 움직이는  움직임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능이 아브라함의 기능이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자랑삼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이스라엘이 이 기능이 자기 마음이 어떤 기능으로 지금 움직이느냐?  이거는 마음이라는 이거는 그 자체는 아무 기능이 없습니다. 아무 기능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무 기능이 없는 것이요. 이 고깃덩어리도 아무 기능 없는  것이요. 이것 다만 악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이것만 있는데 이제 이 고깃덩어리 이것이 꼭 짐승과 같이 이리 되어 있는  것이지 이기 무슨 고깃덩어리 움직이는 이것만 있지 이것이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아무 주관성이 없어 자기의 주장성이 없는 기라. 이것이 사용하면  이것에게 사용되고 저것이 사용하면 저것에게 사용되고 이것에게 피동되면  이것에게 피동되고 저것에게 피동되면 저것에게 피동되는데,

 이렇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이 그 기능이 그 기능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냐 또 악령에게서 나왔느냐 이것이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요 이 구별되는 것인데 다만 혈통 이걸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요한이가 있다가서 돌로도 이런 것 될 수 있다 돌이나 꼭 같다  하나님으로 움직이는 그것이 문제다.

그러기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이랬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 말은 그 마음이 딴 마음으로 지금 갈아 넣으라는 말 아니요, 딴  마음으로 갈아 넣으라는 말이 아니고, 내나 그 마음, 그 고깃덩어리 그 영인데,  고치는 것으로 열매 맺으라 그 말인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은  고치는 것으로 열매 맺으라.

그러면 언제든지 자기 자체는 자체입니다. 그 자기 자체는 자체인데 그게  잘못됐기 때문에 고치라 그 말이요. 다만 그 영육이 영이 죽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고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그걸 살려야 되고 살리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영은 악령이 쓸 줄 압니까? 악령이 쓰지 못합니다.

이 사람의 영이라 하는 것을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쓸 수 있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자유 할 수 있지 다른 것에게는  이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딴 것은 그것은 무용지물이라 사람의 영은  무용지물이요 죽은 사람의 그 영을 죽은 영을 악령이 사용하는 줄 압니까? 그저  그것을 싣고 다니기만 싣고 다니기만 다니고 하지 그 죽은 영이라 하는 것은  악령이 털끝만치도 쓰지를 못합니다. 끌고만 다니요. 그러면 마음과 고깃덩이는  쓸 줄 압니까? 못 씁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쓸 수 있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라 범죄한 영이란 말은 그 영이  나쁜 작용을 했다는 말이요. 아니요. 내나 고깃덩어리 마음 그게 그리해  가지고서 영은 주격 입장에서 정죄 받아 가지고 죽은 것입니다.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작용이 거기 끊어졌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 영육이 영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그것이 이제 그 마음을 움직이게 돼서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그 고깃덩어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이러니까 그 자체는 그대로 있기 때문에 회개하라 고치라 그 말이요. 그 자체는  그 자체가 자체를 갈아라 그 말 아니요. 자체를 갈아라 말이 아니고 자체는 그  자체인데 이 자체가 악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면 이것이 이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이것으로 바꾸라 그 말이요.

회개라 말은 바꾸라 말입니다. 그 기능 작용 기능 작용을 바꿔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 기능 작용을 바꿔라. 기능 작용을 바꾸고 혈통이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해가지고서 너거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지 말아라. 그거는 이 돌이나 꼭 같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그 혈통  고깃덩어리 그것을 하나님의 하나님에게 속했다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신자나  불신자나 택자나 불택자나 꼭 같은 것인데 이제 그의 기능이 하나님하고  연결됐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기능이 거기 가 있어. 그 기능은 하나님의  기능이 와 가지고서 거기서 움직이는 작용을 해. 작용하기 때문에 그 마음 그  모든 기능이 악령의 기능이었는데 악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기능이었습니다.

이 칼이 이 칼이 살인자가 이 칼을 거머쥐고서 지금 쓰던 것을 이제는 사람을  구원하는 의사가 이 칼을 들고서 쓰게 됐어 그 칼은 내나 그 칼인데 칼은 그  칼인데 그 칼이 이용되기를 달리 이용당하고 그 칼이 움직이기를 달리 움직였다  그 말이요.

그 동기도 목적도 결과도 달라 쓰여지기는 같이 쓰여지지마는서도 거머잡은 그  주인이 다르다 그 말이요. 의사가 거머쥐고 살인 강도가 거머쥐고 달라 이러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이 열매는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던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으로 자꾸 이리 바꾸어서 가라 이 일을 힘쓰지  아니하고 혈통 가지고 말하지 마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다  찍어 불에 던진다 했소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그러면 나무 뿌리에  놓였으면 나무 둥치에 놓였다 그 말인데 나무 둥치에  놓였다는 말인데 그러면 베면 위에 우둥지는 베어 있지마는서도 밑의 끄트러기는  거기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을 가르쳐 말하느냐 그 베어내 버리는 것은 열매 안 맺는  것을 베어 내 버리는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이것은 우리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뿌럭지가 그거는 언제든지 베지 못합니다. 이것이 기본  구원이요. 기본 구원인데 이거는 베지 못합니다. 이거는 그대로 있는데 다만  이것이 고치는 것으로서 자꾸 자라 갑니다. 회개로 자라가요 고치는 것으로  고치는 것으로 자라 간다는 말은 그 영은 영은 이 현실이라는 요 현실을  당했으면 요 현실에서 영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일을 한번 더 합니다.

요 현실에서 합니다. 하면 또 그 마음은 이 영이 움직인데 따라서 그 현실에서  그 마음이 움직입니다.

또 그 고깃덩어리는 이 현실에서 산 마음이 산 마음이 뭐인데? 산 영에게 피동된  것이 산 마음이지 그 마음 자체는 딴거 아닙니다. 산 마음 산 마음에게 그  고깃덩어리가 따라서 피동되게 되면은 내나 고깃덩이지마는서도 그 움직임은 산  움직임입니다. 산 움직임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대로이니까 산 움직임이요.

그러면 산 움직임을 가진 그 고깃덩어리가 또 모든 자기 몸 밖에 있는 모든  만물에게 이제 이대로 그를 움직입니다.

그러면 그 돈이 이 고깃덩어리 산 고깃덩어리의 기능 그 고깃덩어리의  고깃덩어리의 산 기능에 따라서 이 돈이 움직였소 그면 그 돈이 하나님의 뜻대로  쓰였으니까 그 돈은 하늘나라에 보배가 하늘나라에 쌓인 다고 하지 안했소?  그것이 좀 동록도 도적도 쓸지 않는 그 물질이 움직인 물질이 움직인 그 움직임  그 움직임은 영원 존재라 그 말이요. 그 움직임이 영원 존재 그 멸하지 않는  것이라. 멸해지지 않아.

돈이 그것이 그리 가는 게 아니라 그 물질의 움직임이 그 물질의 기능 움직인  기능이 영원 존재라 그 말이요. 이러기에 회개한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  버린다 그 말은 그 하나님이 벌써 이렇게 자기에게 기능 이것을 자꾸 하나님이  이 죽은 기능이 되어 있는 것은 자꾸 도퇴를 시켜서 제거하고 벗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새기능으로 자꾸 지금 길러가는데 이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면 그만치 그 기능이 많아졌습니다.

저축이 됐소. 그 기능이 구비 되요. 현실에서 하나님의 기능으로 이것이 둘  되었던 것이 두 종류됐던 것이 셋 종류로 불을 기라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기능으로 말미암아 그 현실에서 움직였으니까 고 현실의 움직임은 또 딴 종류라  이것이 그 만치 둘 되었던 것이 셋 되었고 한치 되었던 것이 두치 되었고 크든지  또 세 종류로 와 가지고서 많아졌든지  이런데 그것이 그 현실에서 요렇게 과거에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지금 피동되던 것인데 고 현실로 통해서 그것에게 피동되는  그것을 버리고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피동되니까 이것이 자라는데  자라는데 이 고치니까 자라는데 여게 있던 것이 이제 그것으로 바꾼다는 말이요  바꾸니까 자라고 바꾸니까 바꿔 놓은 것이 바꿔진 것이 자라고 바꾸지 않으니까  이것은 바꿔 놓은 것으로 자랄 것이 자라지 못한다 그 말이요. 벤다 그 말은  성령의 도끼는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천국의 것으로 자꾸 이래 숫자가 많아지고 구비해지고 이것이  또 성장돼서 양이 실력이 자꾸 더 커지고 활동 그 실력이 더 커진다는 말이요.

커지고 종류가 많아지고 많아질 이것이 이제 도끼로 벴다 많아질 이것이 이제  많아지지 못하고 그것으로 변동된다.

그러기에 이것은 우리가 시간 시간마다 생사로 심판이 되어가고 있다 그  말입니다. 무궁세계의 심판에 지금 현재 현재에 생사로 되어가고 있다 그  말입니다.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았다는 그 말은 옛날과 달라서 지금 즉시 즉시  살고 죽고 자꾸 이것이 결정돼 나가고 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았다 그래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현실은 뭣하는 현실이냐 이거는 바꾸는 그런 기회요. 바꾸는  기회요. 고치는 기회요.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던 이것이 그것을  벗어버리고 이제 성령으로 움직이는 성령으로 진리의 법칙대로 움직이는 그  진리는 법칙이고 성령은 능력인데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이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것이 바꾸는 것이라  고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로 커나갑니다. 자기가 회개로 커 나가지 달리는 커나가지  못합니다. 꼭 이거는 회개로만 커나가는데 회개로 커나가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거기서부터는 곧 회개하지 않은 그 시간은 벌써 끊긴 것이란 말이요.

밑의 뿌럭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이것이 지금 그 힘이 자꾸 이와 같이  벌어서 그 사람 그 힘이 요런 자기의 세계에서도 그것으로 이제 바꿔 놓고 저  세계도 바꿔 놓고 이런 면 저런 면 전부 바꿔 놓는 것인데 바꾸는 것을 그것을  그 시에 바꾸지 않으면 바꾸지 않으면 그거는 다 죽은 것이란 그 말입니다.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았다는 말은 찍어 불에 던진다는 말은 바꾸지 않으면  그것은 다 죽은 것이다.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운다. 알곡은 뭘  말하는 것인가? 알곡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그것이 알곡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인  것 이제 자기 자체는 피조물이지마는 서도 그의 움직이는 기능은 순전히  하나님으로 된 것인데 하나님으로 된 그것이 알곡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질은 완전이지 또 그것은 영존 할 것 영원히 불변의 것, 그러면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 말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이것은 태울 자가 없어. 그에게 알곡은 뭐이냐?  그에게 움직이는 그 힘이 있는데 움직이는 힘이 있는데 그 힘이 뭐냐? 하나님의  힘이라 그 말이요. 또 그것이 법칙을 가졌는데 그 법칙이 뭐냐? 하나님의 뜻이라  말입니다. 진리가 그 법칙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죽일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죽일 자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요. 이것을 가리켜서 알곡이라고  말하고 쭉정이는 뭐이냐? 우리가 안 믿을 때 안 믿는 사람 그대로의 기능입니다.

우리의 심신이 그대로 움직여지는 것 움직여지는 그것은 불에 타 버리오,  쭉정이요.

그러기 때문에 자 우리가 보니까 우리 마음이 물질면에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움직이고 영이 움직이고 고깃덩어리가 움직이고 이러니까 모든  사물에게 대해서 그 영육의 자체가 하나님의 움직이는 그 일을 하더란 그  말이요. 이것은 그 사람이 하는데 요건 물질에서는 그렇게 하는데요 사람이  명예면에 대해 가지고서는 명예면에 대해 가지고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명예면에 대해서는 보니까 그 명예면에 대해서는 그 마음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를 아니하고 또 그 고깃덩이도 하나님으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사물  취급하는 그것도 보니까 하나님으로 움직이지 안해. 그것은 내나 안 믿을 때에  그 움직임과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고 안 믿는 거와 같은 그 움직임을 하고 있는  그것이 쭉정이라.

그러기에 요것을 또 비유해서 너희는 포도나무 가지요 나는 포도나무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요. 예수님은 껍데기는 사람이요 알맹이는 하나님입니다.

신인양성일위시요. 이런데 그러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가지가 거기서 뭐  줄기든지 잎사귀든지 꽃이든지 큰 줄기든지 커다란 가지가 됐든지 저 끄트머리  지금 아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조금 있지요 보이는 것은  거기 있지마는서도 그 현미경으로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그밖에 벌써 그 기운이  뻗치고 있다 그 말이요. 포도나무 잎사귀가 요 손바닥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  눈에 손바닥만한 보이는 이것뿐이지요. 요것뿐인데 실은 그 물질로 더  현미경으로 본다면 나는 아직 안 봤지마는 본다면 이 물질 요거 우리 보는 외에  그 기운이 벌써 이 공간을 점령하고 있다 그 말이요. 공간을 점령하고 있어.

점령하고 있는 그래 가지고 이기 자라는 기라.

이런데 이 전부가 이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그것이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요.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전부  그것은 포도나무 가지를 해치는 것 뿐이요. 제일 포도나무 그 비유에 중요한  것은 가지라 하는 것은 포도나무에서 나온 것이라 그 말이요. 이거는 뭐이냐  기능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이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자입니다.

자체는 첫째 아담에게 속했고 그 기능은 둘째 아담에게 속했소.

이러니까 우리의 작용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이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왔기 때문에 이것은 다  영생을 가진 것이고 하나님으로 나오지 않은 그것은 다 영멸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로 자라갑니다. 또 회개의 열매요 고친 열매라 그 말입니다. 자체는  그 둘도 아니고 변해지는 게 아니고 자체는 그놈인데 자체는 그것인데 그것이  기능적으로 기능 작용이 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이것만이 알곡이요.

그러면 그 기능은 뭐이냐? 기능은 하나님의 기능이라 전지의 기능이라 전능의  기능이라 영원불변의 기능이라 이것으로 지금 우리가 현실 현실에 자라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원수가 뭐이냐? 쭉덩이가 원수라. 우리가 뭘로 자라 가느냐? 알곡으로  자라가. 하나님으로 자라가 그러기에 하나님으로 피동되는 것으로 자라가고  언제? 현실에서 하나님으로 피동되는 것을 거부하고 악령과 악습으로 피동되는  것으로서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이 그 사람이 요 한 토막이 바꿔져  버렸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안한 그 움직임 끝에 아무리 움직여 봤자  생명 내놓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했지마는 그 움직임은 그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은 아니고 악령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이 껍데기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였기 때문에 그 결과가 전부가  사망이지 하나도 생명에 속한 것이 없었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회개는 돌담을 써서 가는 거와 같이 그렇게 자꾸 쌓여나가는  것이지 자라 나가는 것. 그러면 자라나가 자라 나간다는 요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자라 나가지 어데 여기에 저게 떼다 붙여서 지금 모으는 것 아니요.

우리는 돌을 져다 모아서 돌을 모아 가지고서 산더미같이 쌓아져 나가는  모양으로 뭘 이리 자꾸 들이 붙여가되는 것이 아니고 요것이 자라 갑니다. 자라  가는 것이 뭐이냐? 자라 가는 것은 이미 자란 그것을 통해 가지고 자꾸 나간다  그 말이요.

통해 가지고 그러면 포도나무 가지가 자랄 때에 뭣이 끄트머리에 가 붙습니까?  붙습니까? 속에 기 자꾸 나와서 커집니까? 어떻소? 먼저 나온 것은 먼저 나온데  또 그 다음에 먼저 나온 먼저 것 있는데 그 다음에 딴 기 와 가지고 동여 있을라  합니까? 먼저 나온 그거는 어찌 되지요? 그거는 뭣 됩니까? 알맹이 되요? 껍데기  되요? 먼저 나온 것은 뭣 되요? 모르요? 녜? 먼저 나온 것은 껍데기 먼저 나온  잎사귀는 뭣 되요? 젖잎 되요. 자꾸 속에서 자꾸 속에 것이 자꾸 이래 나옵니다.

 이것 모양으로 우리의 회개가 된 그 회개를 통해서 나오지 회개가 없으면 그  다음 못 나옵니다. 끊겨 진단 그 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발람이 하나 잘못된 것 있기 때문에 다시는 고치지 못해. 도로  기어 들어와야 되는데 기어 들어오지 못하고 그것이 됩니까? 도로 왔으면 됐지.

그런고로 우리가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한 그걸 잘 배워  가지고 여러분들이 깨닫고 행동을 한다고 하면은 여기를 떠나지마는 이 자리 이  공간을 떠나지마는 진리는 떠나지 못합니다. 아무데 가도 뭐 진리가 둘 입니까?  둘 아니요. 하나 뿐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배워도 보배인 줄을 모르면 나중에 가서는 빼앗기게 됩니다. 보배를 모르는  사람은 뺏기게 되요. 도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데 그 밟는다 배격한다 말이요.

그 보배를 모르면 그것을 결국은 그것 가지고 악용하게 된다 그기요. 여려분들이  교리사 교회사를 공부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압니까?  여러분들이 이것하면 모든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단 말이요. 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말했다 말하는 것은 거게서 바른 것은  그것을 성경에 있기 때문에 내 바른 거와 그 바른 거와 같으면 내 바른 것 그걸  가지고 살고 그 다른 사람 삐뚤어진 것 보면은 그게 내게 있기 때문에 삐뚤어진  것 고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의사는 자꾸 사람을 고쳐 살리는 것만 알면 의사 안되요. 뭘로  죽는지 그걸 알아야 돼. 뭘로 죽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니요? 아이구 이거 이래  두면 뭐이 된다 뭐이 된다 악화된다 죽는 것을 알아야 돼.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이나 모든 것은 그것이 죽는 것입니다.

이래 죽었다 저래 죽었다 죽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요. 우리가 그것 될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죽은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세상에서 인간이 말한 거와 하나님이  말한 거 둘이 있는데 인간이 말한 이걸 가지고 사람들은 다 지금 살고 있소.

이것이 죽은 것인데 인간이 말한 이것과 하나님 말씀과 둘을 구별해 가지고 내  속에 인간이 말한 인본의 것은 이것은 다 제거해 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이것을 채울려는 것이요. 이러니까 세상 것을 모르는 사람은 죽는 걸 모르는  사람이요.

세상 것을 아는 사람은 죽는 걸 아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사는 것을 모르면 그 죽는 것 밖에 모르니까 죽는 것 밖에 몰라. 죽는 것  밖에는 없어. 이러나 하나님 말씀하고 세상 말하고 둘을 아는 것은 이걸 대조해  가지고 하나님 말씀은 산 것이고 이거는 죽는 것이니까 아 이래 죽었구나 그것은  요러면 살고 요러면 죽는다 둘을 알았다 말이요. 쌍방 지식을 알아야 그 사람이  의사 노릇을 하지.

사는 것만 알고 죽는걸 몰라 버렸으면 그거 뭐 죽을 줄만 아지 뭣 되겠소?  그러나 죽는 것 아는 그것은 아는 것은 그것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안 죽기  위해서 아는 것이지 죽는 것 그걸 자기 쓰기 위해서 가지는 것 아니란 그  말이요. 죽는 방법은 그 죽는 방법 아 이러면 죽는다 죽지 않도록 실패하지  않도록 병신되지 안하도록 이러기 위해서 그 지식을 가진 것이지 그 지식이 사는  자는 치료하는데 아무 효력이 없다 말이요. 사는 것은 달라 그거는 죽는 것  방비하는 것이라  그러기에 쌍방 지식. 죽는 걸 방비하는 것 죽는 걸 뽑는 것 그 사람에게 병을  알아야지. 병을 아는 그것은 그 병 알아서 뭐할라고? 그 병으로 키우기 위해서  아니요. 그 병을 뽑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 이것  외에는 다 죽은 것인데 그걸 왜 아는 사람이 필요 있고 모르는 사람은 저는  그것만 못하느냐? 아는 사람 그것을 가지고서 그것을 키워 나가면 죽습니다.

그것을 뽑아 버리고 이 산 것을 구별해서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이요 아  그러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소?

우선 돈벌이 해도 그렇소. 그 나는 그 저 안 믿을 때에 전리해 가지고서 한번도  떼여 본 일 없었소. 전리한 돈 그것은 나는 없애 버렸어. 나는 돈 이자는 내  가지고서 내가 그 소유한 것은 하나도 없어. 이 어떻게? 돈 가지러 오면은 그  사람에게 묻거를 아 이런 거 저런 거 자꾸 돈벌이 할 그것만 지금 말할 때에는  그 말 가지고 내가 돈 안 줬소. 그 사람이 오니까 그 그 일이면 대략 짐작하니까  이래 실패 저래 실패 보니까 실패에 대해서 이러면 실패한다 실패의 길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그 실패가 이런데 그 실패를 능가하고 실패를 능가하고 이  실패에서 뭐이 되고 뭐이 되고 뭘할 것 그 양면에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이  양면에 알고 있는 것이 현재에 인간의 수준보다 앞서 가 있으니 그 사람은 앞선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 사람 주면 다 되지.

그러니까 이 세상에 속한 것 내 속에 있는 걸 모르거든 다른 사람 발 람을  보고서 발람 그 망한 그걸 우리는 뭐 하려고 압니까? 아는 것은 내 속에 발람이  있는 걸 뽑으려고 하는 것이란 말이요. 고라를 배우는 데 뭣 때문에 고라를  배웁니까? 그 내 속에 고라를 뽑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란 말입니다. 사람이 뭐  별 거 있습니까? 한번 잘못 되고 나면 이제 죽는데 이르는 죄도 있고 죽는데  이르지 않는 죄도 있습니다. 죽는 데 이르는 그 죄는 돌아서야 되지 그것은  사함을 못 받습니다. 발람이 암만 그렇게 해도 사함 못 받소 저거가 돌아와야  되지. 망하는 갈래길를 냈기 때문에 안됩니다.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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