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로 진노를 피하자

 

1981. 6. 10. 밤(수)

 

본문:예레미야 14장 1절~18절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겸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 버리며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허덕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에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찌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이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15장 1절~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치라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될 자는 포로됨으로 나아갈찌니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열왕기상 18장 40절~46절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방과 타락한 하나님의 교회들이 칼에 상하였다가 나은  짐승에게 경배하더라 했고,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칼을 보면서 사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일으키는 시대나 민족이나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그  죄악을 치시는데 죄악을 치는 일이 시작될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 이런  죄악 때문에 치시는구나’ 깨닫고 회개하면 즉시 칼이 멈춥니다.

그 멸하시는 일이 그렇게 중단이 되고 평강이 오면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요, 멸하는 일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죄악  때문에 임한 것을 알고 회개로 하나님의 노를 풀어드리고 멸망을 피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신 신정국가인데 오늘 우리들에게 거울이  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어떻게 할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재앙을 면한 역사를 기록해서 우리도 재앙을 면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받은 그들의 행위를 기록해서 우리가 징계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 단번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크게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재난이 시작될 때 벌써 두려워하면서 회개하는 제사장이나  정치가가 정교를 주관했을 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잠시 비치다가 회개하고  돌아섰기 때문에 평강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정치가나 종교가들이 주장할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싹이  확실히 보이지마는 예사롭게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않다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숩니다.

이 예레미야 14장 1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큰 가뭄으로 기근을 당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으로 죽고, 질병으로 죽고, 기근에 죽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흉년 드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회개했더라면 전쟁이나 질병이  없었을 것이고, 굶어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포로되지도 않았을 것인데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화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한 가뭄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쟁 기근 질병 포로가 되는 재앙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예레미야 14장, 15장에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가 왕으로 있을 때 행동한 것이 원인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처음에는 좀 부정했지만 뒤에 회개를 하고 이스라엘 경내에  이방신당을 헐고 하나님에게 제사 드리는 제단을 쌓음으로 나라가 크게  흥왕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왕이 죽은 후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자 하나님의 제단을 헐고  이방신을 끌어들였습니다. 아세라 우상도 끌어들이고, 목상도 끌어들이고,  주상도 끌어들이고, 이런 저런 복술도 끌어들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기에  미혹받아 우상 섬기는 자가 됐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던 자들이 미신자,  점쟁이, 꾀쟁이, 말쟁이, 협잡꾼의 말을 듣게 되니까 하나님의 큰 진노의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때 형편을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에게는 칼이나 흉년이나 질병이 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호해서 평안하게  살 것이다’ 하니까 백성들도 그 말을 듣고 좋아하면서 거짓 선지자들에게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럴 때에 예레미야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은 것을 세계가 다  아는데 이 백성들이 지금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됐는데 왜 이  백성들에게 진노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레미야 15장 이하에 보면 ‘그들은 내가  보내지 않았는데 내 이름으로 저희 생각을 말해서 백성의 귀를 즐겁게 하니까  백성들이 환영하지마는 실은 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들이 꿈을 말하고 지시를  말하지마는 스스로 하는 말이라. 그러기에 그들은 으레 참혹한 멸망을 받을  것이고 이 백성들도 멸하겠다.’ 왜? ‘내가 선지자를 보내서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우상 섬기는 일과 복술을  행하고 집집마다 아세라 우상을 위하고, 나와 내 법도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아라. 모세와 엘리야를 내가  기뻐하지만 그런 종들이 내게 말하더라도 그 기도는 듣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재앙으로 멸해졌습니까? 멸해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이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제거했을 때에 하나님의 진노는 풀렸습니다.

또 열왕기상 18장 이하에도 보면 3년 6개월 동안 비가 없으니까 마지막에는  사람의 피를 마실 만큼 기갈이 심해서 전체가 죽게 됐는데 그 원인도 꼭  같습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이방신을 끌어다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외치면서 회개를 말하는 진실한 종들을 죽이고 정권에 아부하고 비위나 맞추고  백성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이방신의 선지자들만 남겼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강퍅하게 되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께, 감화  감동으로 하시든지, 징계를 주시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회개를 일으켜 달라고  기도한 결과로 가뭄의 재앙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때 비가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손을 떼서 은혜의 역사가 중단이  되고 하나님의 진노의 역사가 임한 것을 자연의 징조로 하나 보인 것입니다.

엘리야, 예레미야 시대에 있었던 한재는 이방신을 섬긴 것이 원인데 그 일을  누가 끌어왔습니까?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해서  정권에 아부하고 협력함으로 그렇게 됐고, 또 예레미야 시대에도 예레미야 한  사람만 남았다 할 만큼 희귀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우리의 싸움은 혈육적 투쟁이 아닌 정사와 권세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 정사와 권세가 하나님을 모르고 거스르는 일들을 자주  많이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경고의 나팔을 불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시대는 어두워지지 않고 멸망받지 않게 깰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한 것은 교회 정치나 사회 정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 정치는 일반 교회로 말하자면 시찰회 당회 노회  총회 또 연합회 같은 것이겠고, 우리로 말하자면 총공회 지방공회 위원들 같은  것이겠고, 또 이방으로 말하자면 박정권이나 전정권 같은 그런 정권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정사와 권세로 더불어 싸워야 한다는 것은, 타락한 교회가 세상  권세와 하나 되어서 타락을 끌어들일 때에 거기에 대해서 충고하고 간청하고  대적해서 자기의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양보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증거하는 것이  생명의 밀알이요, 그로 인해서 그 시대가 구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도 오랫동안 기도하고, 이방신과 하나님의 능력을 비교하는 일에 ‘너희  선지들이 옳으면 내가 죽고, 내가 옳으면 너희 선지자들이 죽는다’ 하면서  생명을 내놨습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났을 때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과 정권들에게 아부한 창기같이 변질된 선지자들을 기손강 가에서  죽이고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생명 내놓고 강하게 역사했기 때문에 3년 6개월간 당한 어려움이  회복되었고, 또 예레미야 선지도 그렇게 강하게 외침으로 구원이 됐으나 그때도  회개치 않은 자들은 비참하게 됐습니다.

지금 비가 오지 않는 데 대해서 여러 날 아침 설교를 합니다. 또 우리가 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고 지역적으로 봐야 하는데, 여러 해 동안  풍년이 들어서 의식에 대한 그리움이 없을 만큼 우리가 살았는데 지금은 흉년이  여러 번 들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과거를 돌이켜 보면 호남지방에 천재, 하나님의 재가 계속  많았습니다. 해방 이후에 사람들이 일으킨 여수나 광주의 재앙은 두고라도  하나님이 내린 수재 한재 병재 이런 것이 제일 심했고, 그 다음은 서울 지역이  심했습니다.

좀 평안한 곳은 영남이라 할 수 있었고, 영남 여러 지역을 살펴봐도 제가 보는  대로는 맞았습니다. 이런 저런 소식을 듣지 않고도 ‘아마 이번에 수재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보면 당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번에 무슨 한재나 이런  것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보면 당하지 않았습니다. 또 ‘무슨 질병도  좀 덜할 것이다’ 하고 보면 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호남 지방은 그대로인데 영남 지방에 한재가 심합니다. 또 서울  지방도 덜한 셈입니다. 이번에 비가 전국적으로 온다고 측후소에서 발표했지마는  서울은 비가 잘 오고 있고 또 호남 지방에도 비가 온다는데 영남 지방에만 비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징조요, 우리에게 무엇인지 요구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것이 있는 줄 이 기회에 깨달아서 회개하면 이 재난은 물러갑니다.

그렇지만 재난이 물러가면 세상 사람은 다 잊어버리게 되지마는 이 재난으로  인해서 깨달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붙잡고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회개하면서  나가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는 우상 섬기는 것과 복술 때문에 진노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오늘 신약교회의 우상은 어떤 것인가? 무슨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서 그것들에게  은혜받아 살고자 하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 버리고 이 세상 다른 것을 상대해 가지고 ‘이것이면 나는 산다.

평안하다. 행복하다.’ 이렇게 인간이나 어떤 피조물이나 물질이나 과학을  하나님처럼 상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우상이요, 또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인간 말대로, 인간 생각대로, 인간 지혜대로 하는 그런 것이 복술의  범죄입니다.


선지자선교회 지난밤에 충현교회 장로님들이 제게 우리 한국 교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묻기 때문에 이야기를 좀 했고, 오늘도 목사님들이 한 100여 명이 다녀갔는데  그만 시간이 없어서 어제 했던 말을 못 했습니다.

제가 말했던 것은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신학의 질이 낮으니까 신학의 질을  높이자’ 하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사 질을 높이자는 말을 하고  있는데 아주 좋은 뜻이요 좋은 운동입니다. 그러나 목사의 질과 실력을 무엇으로  삼으려고 하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세상 대학을 졸업하고, 몇 가지 어학을 하고, 또 정치나 사회성이  능해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사회성이나 지식성을 목회자와 신학의 질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경 지식이 너무 천박하다. 바짝 마른 글자만 가지고  딱딱거리지 도무지 영감이 빈약하다. 또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문제라.’ 이런 말은 없습니다.

성경 지식, 영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역사 이 세 가지를 신학교와 목회자의  실력과 질로 알고 힘쓰면 자연스럽게 교인들이 성경 말씀대로의 교인이 되고,  영감의 교인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는 교인이 될 터인데 순전히 세상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폐단이 있기 때문에 은혜니 성경이니 영감이니 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광신의 미치광이 신앙이라고 조롱을 합니다. 이렇게 세상과 조금도  다름없이 나가면서 질을 더 향상시키자고 하는데 앞으로 한국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계 교회들도 다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미국에는 예수 믿는 청년들이 없어요.

거기는 어떻게 사치를 하든지 아이 낳으면 거슬린다고 안 낳습니다. 결혼할 때도  아이를 둘 이상 낳자고 하면 결혼 안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만 낳든지 그렇지 않으면 낳지 않습니다. 또 고생하기 싫다고 자연  법칙으로 해산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다 향락주의인데 우리 나라도 그런  걸 따라가니까 문제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미국  신학생에게 신학교에 성경 공부가 몇 시간이 되는지 물으니까 신학 공부가 성경  공부하는 것으로 아느냐고 하면서 웃더랍니다. 그러면서 신학은 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신구약 성경을 한번 읽어 보지도 않은  신학 박사들도 많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세계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복술을  따르는 것이라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이 세계에서 양적으로 부흥되기를 몇 번째라고 할 만큼  열심이 있습니다. 한국을 살리려면 성경 많이 읽고 신학교에서도 성경 공부를  해야 됩니다.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도록 회개를 해야 됩니다.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것은 없고 정치로, 수단으로, 방법으로, 운동으로, 바람으로 엮어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할 것도 없이 구약시대의  우상과 같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욕심으로 하는 그게 우상이오.

하나님의 성경 법칙대로 하지 않고 자기 꾀대로 하고, 성령이 세우는 교회보다  어쨌든지 자기 수단과 방법으로 교인이나 모으고 돈이나 나오면 된다는 이런  주장으로 나가는 한국 교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 심히 염려가 됩니다.

깨달을 자는 깨달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징조로 보이고 계십니다. 여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해야 될 것을 어떤 피조물에게 대해서 그와 같은  심지로, 그와 같은 소망으로, 그와 같은 경외로, 그와 같은 충성과 열심으로  하는 데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 재앙에서는 벗어나더라도 앞으로 하나님의 진노는  더 강하게 올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 각자들이 이 일을 보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각각  자기 신앙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듣지  않으면 금식을 해도 안 듣는다 했습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듣는다 모세가 와서 기도한다고 해도 안 듣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무엘이  와서 기도해도 안 듣는다」 고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 복 주시는  하나님이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 하면서 위안제를 마시면 하나님의  노를 더 격발시키는 일이 됩니다.

물론 우리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좋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 어깨 위로  기어오르기도 하고, 어머니 입도 벌려 보고 온갖 짓을 다 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당신을 부르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주님! 아버지! 하나님!’ 하루종일  부르면서 매어 달려도 좋아하십니다.

그렇지마는 다른 꾀를 가지고 그렇게 하면 어찌됩니까? 어린아이가 부모만  의지하고 바라볼 때는 철이 없어도 좋고 버릇이 없어도 좋습니다. 유치해도  어리석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장성해 가지고도 부모를 꾀려고 아첨이나 하고  미혹시켜서 이용이나 하려고 어떤 복안을 가지고 부모를 대한다면 부모와는 점점  멀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어린아이가 부모를 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좋아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법도대로만 살면 당장에는 죽을 것같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것은 해결이 되고야 맙니다.

분명히 지금 우리 나라에 여러 해 동안 흉년 든 것이나 또 지금 한재를 당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시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이시는 하나의 징조로  알고, 이 기회에 자꾸 회개하면 깨끗한 사람은 점점 깨끗해지고, 의로운 사람은  점점 의로워지지마는 또 미련하고 더러운 사람은 점점 미련해지고 더러워지게  됩니다. 말세지 말에 이 일은 가속도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생각합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보다 세상 어떤 것을 더 의지하고  바라보고 좋아하고 두려워하고 사는 우리가 아닌지?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것보다도 인간의 말, 수단, 방법으로 사는 우리들이  아닌지?  어느 정도, 어느 때까지는 이렇게 살 수 있지마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면  부지할 수 없습니다. 자기와 자기 가정을 위해서, 자기 교회를 위해서, 자기  구역을 위해서 각자 회개하는 길이 지혜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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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로 진노를 피하자/ 예레미야 14장 1절-18절/ 1981. 6. 10. 수저녁 선지자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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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개의 기회/ 요엘 1장 1절-4절/ 1983. 2. 20.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42 회개의 기회에/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83. 10. 15.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41 회개의 노력/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9. 월새벽 선지자 2016.01.12
40 회개의 목표 표준/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1983. 5. 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39 회개의 방편과 종별/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38 회개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37 회개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22. 목새벽 선지자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