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담대할 것

 

1987. 5. 29. 새벽 (금)

 

본문:이사야 1장 18절∼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끝을 다져서 말씀하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은 우리와의 계약 맺은 구약 말씀과 신약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여호와의 말씀은 선포해 놓은 것은 획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전지 전능 대주재인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달성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강퍅하기 때문에, 강퍅하기 때문에 더 다져서 ‘이대로 추호도 가감 없이 달성된다, 성취한다.’ 하는 것으로 견고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유혹을 확실히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는 저주와 실패, 근심, 사망, 고통 이 모든 불행스러운 것을 가지고 들어오는 성공과 형통을 우리는 환영하지 말고 막아버려야 합니다. 이런 미혹에 빠지면 안 됩니다.

일시에 뭣이 형통하고 성공되고 좋은 것이 온다고 그것만 보고 영접하지 말고 거기에 죄가 섞여 오거든, 죄는 뭐이 죄냐? 하나님 말씀에 이탈되고 위반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런 것이 섞여 오거든 그것은 나를 멸망시킬라고 오는 큰 유혹인 것을 알고 그럴 때에 그것을 막아버리면 좋은 게 옵니다. 그걸 막아버려야 됩니다. 요게 마귀의 유혹입니다.

또 그와 정반대로 우리에게 모든 승리와 성공과 형통과 생명과 평안을 끌고 오는 이 십자가의 어려움을 물리치는 그런 유혹을 받지 안해야 됩니다. 그런 유혹을 받지 안해야 됩니다.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으로 어려움 당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고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 중심 위주로 하는 이 성경대로 할라고 할 때에 오는 어려움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어려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여러가지로 어려움 올 때에, 고난이 올 때에, 고통이 올 때에, 손해가 올 때에, 또 낭파가 오고 모든 자기에게 해로운 것이 오나 그것이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이면, 그것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함으로 인하여 오는 것, 주님 중심으로 신앙을 지킬라고 할 때에 오는 것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십자가의 유혹을 받지 안해야 됩니다. 왜? 현재 고난스럽지, 또 좋지 않는 것이 오지, 아무리 좋지 않는 것이 온다 할지라도 내가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이면 반드시 그것 속에 생명이 들었고 전지 전능의 하나님의 축복이 들었기 때문에 성공됩니다.

그런고로 일시 좋은 것과 죄와 섞여 오는 그 유혹을 우리가 물리쳐야 되고 또 일시 진리의 걸음과 고난이 오는 것을 우리가 유혹받아서 물리치면 안 됩니다.

죄와 성공이 행복이 오는 그 유혹은 물리쳐야 되고 또 진리의 이 십자가의 고난과 그 모든 어려움이 오는 것은 잘못하면 ‘이거는 불행스럽다’ 물리치기 쉬우니까 물리치지 말고 환영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죄와 행복이 같이 올 때에 이것이 큰 유혹이니까 물리칠 줄을 알아야 되고 또 자기에게 의로운 걸음과 고난이 올 때에 물리치기 쉬우니까 이 물리치는 유혹을 받지 말고 영접해야 됩니다. 알아듣겠습니까? 그 알아듣겠어요? 믿는 사람이 사업을 하든지 무슨 자기가 어떤 직장 생활을 하든지 어떤 경영을 하든지간에 죄와 성공이 같이 끼어 오거들랑 멸망인 줄 알고 그 유혹에 빠지지 말고 물리쳐야 됩니다. 모두 다 덜컹덜컹 삼킵니다.

속담에 큰 이런 잉어가 밥풀 한 개에 낚인다고서. 밥풀 한 개를 끼워 가지고서 던지면 잉어 이놈이 먹을 건 줄 알고 훅 둘러마셔 가지서고 낚수에 걸려서 큰 것이 잡혀 올라온다고. 그러니까 ‘잉어가 밥티기에 속는다’ 자기 생명하고 밥티기하고 바꿉니다. 그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일시 성공과 죄가 같이 올 때에 성공 그놈만 보고 죄를 보지 안하고 영접했다가 그것으로써 망하고 맙니다. 믿는 사람이 그런 일 없이 망하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 성공이 오는 것은 반드시 십자가로 통해서 오기 때문에 십자가는 손해고 고난입니다. 주님과 진리를 위한 어려움이나 고난이 올 때에 그것이 막바로 행복이요 성공이기 때문에 유혹받아서 물리치면 안 됩니다. 영접해야 됩니다. 의로 통한 고난이 올 때에 단마음으로 즉시 영접해야 되고 죄가 섞여 오는 모든 성공과 행복을 즉시 막아 물리쳐야 됩니다. 그거 할 줄 모르면 헛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죄를 고침으로 회개를 함으로, 회개함으로 여러가지 낭파되는 그런 것을 걱정 말고 담대해야 됩니다. 내가 나쁜 것을 고침으로 인하여서 오는 그 어려움에 대해서 담대해야 됩니다. 이제 전자에 말한 것은 두 가지 꼬임받는 유혹을 우리가 물리쳐야 되고 이제 지금 말하는 두 가지는 담대해야 됩니다.

잘못된 것을 고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그 여파, 파동, 또 후유증 그런 거, 내가 잘못된 걸 고침으로 인하여서 오는 여러가지 어려운 그 어려움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고 담대해야 됩니다. 회개에 대해서 담대해야 됩니다.

뭐 어떤 것이 온다 해도, 죄를 회개할라 하면 얼마나, 회개해 보는 사람은 압니다.

우는 사자 같습니다. 마구 그 가족, 또 자기와 가까운 친구 이런 것이 막 악을 품고 독을 품고 이랍니다.

박 대통령도 마지막에 자기는 대통령 출마를 하지 안할라고 하니까 마구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우리가 이래 해 놓은 일이 있으니까 이거 지금 각하께서 지금 정권을 내놓으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다 죽으니까 죽을 판에야 각하하고 같이 죽읍시다. 내놓으면 각하는 어떻게 사는지 몰라도 우리는 다 죽습니다. 다 사형, 원수한테 새 정권자에게 다 죽임을 당하니까 같이 죽읍시다.’ 이라며 막 악다구를 부리고 이라니까 ‘나는 그만 해야 되는데’ 이라니까 옆에서 얼마나 악을 부린 줄 압니까? 죄를 회개할라 하면 막 악이 사자같이 입을 벌립니다. 그까짓 거 암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바싹 깨뜨려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에 대해서 우리는 담대해야 됩니다. 회개에 대해서 담대하지 못하면 회개 못 합니다. 전능자가 기뻐해서 함께 하는 줄 알고 회개에는 담대해야 됩니다. 회개에는 담대해야 되고, 또, 담대 또 하나 있는 것은 뭐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 지키는 의의 걸음을 걸을라 할 때에, 의의 걸음을 걸을라 할 때에 의의 걸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낭파의 파동이, 어마어마한 파동이 자기에게 막 일어나는 거 보입니다.

그러나 의를 행하는 데에 담대해야 됩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해도 의를 행하는 걸음은 하나님이 돕는 걸음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해하지를 못합니다.

다니엘이 의의 걸음에 담대하기를 사자구덩이 던지우기까지 담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 나왔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런 혹독한 불을 피워 놓고 ‘네가 의를 꼭 고집할 것이냐?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고 네가 의를 고집할 것이냐?’ 할 때에 ‘불구덩이 던져도 나는 의는 양보할 수 없다’ 하는 담력을 가지고서 그는 불구덩이에 덤짐을 받았을 때에 타지 안하고 그는 거게서 승리하고 나왔습니다.

그게 뭐이냐? 우리에게 보이는 계시입니다. 어떠한 혹독한 현실에서라도 담대하라. 사자와 같은 악독하고 잔인한 그 현실에서라도 회개에 담대하라, 의를 행하는 데에 담대하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죄의 결과는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인 것을 우리가 깨닫고 죄 의 요것을 굳게 잡고 놓지 안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무슨 자기가 단체적으로나 개적으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 이 두 가지 유혹을 방어하지 못하면 저는 헛일입니다.

언제든지 마귀에게 이용당합니다. 이 두 가지 담대를 가지지 못하면 언제든지 마귀에게 이용됩니다.

그런고로 모든 좋은 것과 죄와 같이 섞여 오는 그 유혹을 받아서 영접하지 말고 물리치고 또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의와 여러가지 고난이 섞여 올 때에 유혹받지 말고 그는 영접해야 됩니다. 하나는 유혹을 이겨서 물리쳐야 되고, 하나는 유혹을 물리쳐 영접해야 됩니다. 진리하고 고난하고 올 때에 염려하지 말고 영접해야 돼. 여러가지 좋은 것과 죄가 섞여 올 때에 그 유혹받지 말고 그는 물리쳐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하고 섞여 오는 모든 좋은 것을 네가 속지 말고 물리쳐라.

잉어가 밥띠끼에 낚이는 거와 같이 그렇게 네가 유혹받는 것이기 때문에 물리쳐라. 십자가의 고난을, 십자가, 진리대로 내가 살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어려움 오는 십자가에 대해서 어려움에 유혹받지 말고 담대히 영접하라.

두 가지 미혹을 물리쳐야 되고 두 가지 담력, 회개할 때에 담대할 것, 의를 행할 때에 담대히 인내할 것 이것을 우리가 가지지 안하면 생명과 좋은 날을 보지 못합니다. 크나 작으나 매사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정리하는 사랑의 역사와 우리에게 의롭게 하는 그 사랑의 역사, 또 우리 자체를 온전케 하는 역사,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에게 갖다 주는 역사 이런 역사를 하나님이 하실 때에 몇 가지 방편 가지고 하십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저게도. 뻐뜩 들어 봐. 예, 세 가지 방편 가지고 합니다.

현실을 우리가 보기에는 꼭 같은 현실 같지마는 그 자리에서 늘 일생을 직장 생활 하는 사람도 현실은 자꾸 바꾸어집니다. 거게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의 구조가 자꾸 이래 변해져 가지고 자기에게는 같은 현실이 없습니다. 자기 보기에 이 공간은 같고 장소는 같다 할지라도 거게 활동하는 사건과 상대하는 모든 인간들의 심리가 자꾸 바꾸어져서 이렇게 자꾸 현실이 바꾸어집니다.

바꾸어지는 그것이 나에게 죄를 정리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의를 건설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를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충만을 갖다 주기 위한 사랑의 그 방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현실을 원망하지 말고 어짜든지 달게 받아야 됩니다.

현실에, 별별 귀신들이 많습니다. 마귀가 금방 마귀란 놈이 상대방을 붙들고 귀신이 돼 가지고서 그렇게 날뛰는 것 많습니다. 그게 내게 필요해서 그런 거니까 그럴 때에 우리는 잘 생각해서 피동되지 안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요번에 집회 가서 은혜받고 그만 실패했다고, 하기 때문에 내가 그 얘기 듣고 ‘그 귀신이 와서 그런 것이니까, 은혜 뺏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때에 뺏기지 안해야 네게 완전한 네 은혜가 된다.’ 그 귀신이 와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정상이 아닐 때에는 귀신이 그 사람 붙들고 하는 것이니까 그걸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면 실패합니다. 그것 모르고 원망이나 하고 이라면은 불평하면 실패해. 그거 귀신의 이용물이니까.

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거라. 뭐 있느냐? 이 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은 이 사람 위해서 있느냐 저 사람 위해서 있느냐 그것을 우리가 잘 구별해야 돼. 나를 위해서 있으면 내 선물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방편. 현실과 현실에 영감과 진리, 현실 주시고 ‘어떻게 요 현실을 돋파나가야 되겠느냐?’ 거게 대한 내가 행할 그 방편인 영감과 진리를 줄 때에 이 세 가지 주는 거기에서 네 가지가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굳게 잡고 언제든지 놓지 안해야 됩니다.

광고합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다 외우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벌써 이 광고한 지가 아마 얼마나 됐지요? 한, 근 열흘 안 돼 가나요? 얼마 되노? 지난주 공과 했지? 이랬는데 그래도 공과를 외우지 안하는 그자는 강퍅한 자라.

반사 쳐 놓고 그래도, 벌써 열 번 이상 광고했을 것이라. 이래도 외우지 안하는 그자는 강퍅한 자라. 그자가 멸망 받지 그자가 멸망 안 받고 어짜겠소? 누가 말하기를 ‘자꾸 멸망이니 그런 거 말하니까 안됐고 좀 부드럽게 듣기 좋은 말 해라’ 아니야! 나는 그 말할 때에 ‘너도 사탄이다.’ 말은 안 해도. ‘너도 사탄이다. 내가 네 유혹을 받을 줄 아느냐?' 왜? 옳은 말을 강하게 하나 부드럽게 하나 옳은 말 하면은 그건 생명이고 자기를 넘어지게 하는 말이면 아무리 뭐 빨고 그만 몸에다가 살을 비벼대면서 하더란대도 그거 다 악이라, 유혹이라.

공과를 안 외우는 그 반사는 성공을 못 해요. 반사 성공만 못 하는 게 아니라 제 일생 생활이 성공 못 해. 그렇츰 말해도 옳은 건 취하지 안하고 마귀하고 합작되는 그것이 뭐이 되겠소? 만일 그래도 육신이 잘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높이 올려 가지고 바싹 깰라고 하든지 그리 안 하면 불택자든지 둘 중에 하나라.

공과를 꼭 외우도록 하십시오.

그라고 하루 삼십 분 기도를 빠짐없이 그대로 꼭 자기 미래를 위해서 특별히 삼십 분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번에 중간반 반사들이 가서 뭐 기도한 사람들은 좀 요번에는 좀 열심히 기도했다 하는데 했는지 안 했는지 귀신 놀음 했는지 열심히 했는지 나는 그거는 몰라요. 그거는 표시판만 보고 ‘표시판이 뭐이 나오느냐?’ 그거 봐.

요번에 그런 말 있었다고서. ‘무보수 반사 어떤 사람보다 우리가 자꾸 뒤에 떨어지니 이거 무슨 이유냐?’ 그거 큰 이유라. 나도 ‘이거 무슨 이유인가?' 이래서 내가 여기서 하나 약을 질렀어. ‘그게 혹 보고가 거짓말 허위 보고, 유령 보고, 없는 걸 있다고 사람을 꾸며대 가지고 유령 보고가 아니고 허위보고가 아닌가 좀 조사해 봐라.’ 이랬다 말이오. 그거 내가 말한 그거는 그 사람이 유령 보고나 허영 보고를 할 리는 없다는 걸 그거 내가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그거 그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은 거기서 내가 뭘 얻기 위해서 한 거라. 이랬는데 그거 잘 아주 진찰을 잘하고 약을 잘 썼어.

이랬더니마는 그 구역장이 와 가지고서,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일하고 난 다음에 저녁에, 일찍 뭐 저녁 좀 먹고 나면은 밤새껏 뭐 열한시나 이럴 때까지 심방하지 또 시간 시간이 나뉘어서 심방하지 이래 놓으니까 아무래도 그 몸이 약해질 것이라고서 그런 말을 해.

그래 나는 내가 거게서 목적은 뭐이냐?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맡은 자는 요구될 것이 뭐이냐? 충성이니라.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했는데 충성이 없으면 될 리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뭣 때문엔가?’ 그것을 내가 알고 싶어서 지금 주사를 놨는데 주사 놓은 효력이 당장 나 가지고서, 이렇게 이렇게 심방하고 이렇게 이렇게 하는 실상을 나에게 딱 보고를 해 줘서 내가 알았다 그거요.

또 알고 난 다음에 나는 또 주사 놨어. 그 사람에게 또 주사를 놨어. ‘그러면 뭐 그래 심방하니까 몸이 약해지겠다고 하는 말이냐? 그러면 건강과 약한 게 구역장 너거 뭐 그 식물에만 있는 줄 아느냐? 하나님께 있다. 심방하고 전도하는 사람 쳐놓고 건강하지 않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뭐꼬? ○ 목사라고 우리가 전도비 얼마씩 대는데, 내가 저 산에 있으니까 거기까지 찾아 올라왔어요. 어제 올라와 가지고서 어떻게 얘기를 하든지 한 두 시간 동안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은 한 오십 세 되는 사람 같이 그렇게 뭐 장장하고 힘이 있어요. 그 힘이 있어서 뭐 잠시도 쉬지를 못해,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인데.

자기 입으로 자기가 칠십 얼마라 해. 칠십 몇 살인데 오십 살 먹은 사람보다 젊어. 이거 심방 전도 많이 하는 사람은, 심방 전도 많이 하는 사람은 다른 축복은 내가 모르지마는 건강 축복은 틀림없이 줍니다. 건강 축복은 줘요. 늘 전도하러 계속 자기 업을 전도로 삼는 사람은 그 사람은 수명 장수는 틀림없이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

그래서 이번에 반사들은 ‘우리가, 무보수 반사가 우리보다 앞에 올라가는데 우리가 이래 되겠느냐?’ 하면서 기도했다 하기 때문에 ‘인제 중간반이 좀 깼구나.' 요번에 조금 기도하고 난 다음에 내 마음에 ‘조금 뭘 기도하고 왔는가?’ 그동안에 중간반이 미워요. 인제 중간반 할라 하는 사람이 없어요.

내가 중간반을 아주 아무짝도 못쓸 것으로 빠싹 내려서 깨버리요. 이러니까 뭐 불평 불만이 많애. 많으면 다, ‘사면할라면 다 사면해 버려라.’ 이랬는데, 지금은 누구를 또 내가 존귀하게 여기느냐?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여권찰님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남권찰님들도 바싹 깨버렸는데 지금 차차 차차 조그매씩 존귀하게 여기요. 왜? 가치 있는 걸, 주님이 가치로 여기는 것을 가치로 여겨야지.

또 그라고 무보수 반사들을 지금 힘쓰는 그런 사람들은 가치로 여겨. 주님이 기뻐하는 것을 나도 기뻐해야 되고, 주님이 가치로 여기는 걸 내가 가치로 여겨야 되고, 주님이 미워하는 건 미워해야 되고, 주님이 속지 않으니 나도 속지 안해야 돼. 껍데기로 자꾸 이래 하고 이래 돌아다니는 그걸 그 속지 안해야 돼.

이러니까, 주님 속지 안하는데 나도 속지 안해야 되고, 주님이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해야 되고, 주님이 싫어하는 건 나도 싫고, 주님이 미워하는 건 나도 미워해야 되고, 주님이 존귀케 대우하는 것을 나도 존귀케 대우해야 되고,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되면 인간 그까짓 거 뭐라 하면 무슨 소용 있어? 세상에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두렵지 하나님 반대하는 사람은 거게 대해서는 두려움은 한내끼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게는 뭐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 반대하는 그런 자에게 대해서는 두려움은 하나도 없어야 되고 뭐 있어야 됩니까? 우리 ○○○집사님? 뭐 있어야 됩니까? 뭐 있어야 되지요? 뭐 있어야 돼요? 저 ○선생? 어? 담대? 어? 담대? 저 ○○○선생은? 어? 분이 있어야 된다? 분이 있어야 된다.

의를 행할라 할 때에 불의로 대항하고 이와같이 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 담대해야 되고, 또 분히 여겨야 되고, 또? 뭐라 했어? ○선생? 담대해야 되고, 여기 ○○○선생? 불쌍히 여겨야 된다네? 불쌍히 여겨야 된대요. 엉뚱한 소리 아니라? 이 깨달음이 다르기 때문에 힘이 다르다 그 말이오.

뭐 담대해야 된다 하면, 담대해야 되고, 담대해야 되고 그거는 담대해야 되는 건 소극적이라. 담대해야 되고 분히 여겨야 되고, 다 거게 도달하지 못한 거라.

담대해야 되고 그에게 대해서 생각을 가질라면 그 모르고 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고 애처롭게 여기고 가련하게 여겨서 그를 위해서 기도나 하고 참 자비를 베풀어야 되고 긍휼을 베풀어야 되지 거게 대해서 뭐, 담대나 분이나 다 한가지 말이라.

담대나 분이나 또, 그런 건 다 같은 말이고 거게 담대한 거 외에 우리가 가질 게 뭐이냐? 불쌍하고 가련하기 때문에 불쌍하게 인자하게 여겨서 그를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동정하는 그 생각 가져야 되지 딴거 가질 게 없어. 이런데 한자리에서 가르쳐 놓고 물으니까 대답이 달라. 진리를 바로 알아야 그 속에 능력이 있고 하나님이 동행합니다.

어짜든지 교역자 나가고 싶고 뭐 대우만 생각하지 이거 주님이 요구하시는 요구에 응해서 주님 대접할 거는 하나도 생각하지 안하고 자꾸 대우만 생각해.

이래 가지고 ‘방이 어떻고, 뭐 어떻고, 또 거처가 어떻고, 전화가 어떻고, 또 토큰이 어떻고, 돈이 어떻고’ 이라기 때문에 그래 할 때마다 밉상으로 보여, 내가. ‘너거는 만날 중간반 반사는 구걸쟁이로 자꾸 뭐 하나님한테 대우받을 그거 자꾸 구걸만 생각하고 있구나. 하나님이 요구하는 걸 좀 생각해 봐라.’ 이래 가지고 내가 박하게 했어. 뭐 한동안은 중간반 반사를 막 이렇게 추켜 올렸어. 추켜 올릴 때는 추켜 올릴 가치가 있어서 추켜 올렸어.

그런고로 우리는 깨어서 살아야 됩니다. 모든 주권을 주님이 가지신 줄 아십시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 줄을 아십시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감이니라” 이걸 알아야지.

봐, 새벽기도도 안 나와. 암만 해도 안 나와. 이러니까 이 망해야 되지 어짤 거라? ‘그러니까 자꾸 망한다 하니까 더 그렇다.’ 망해야 된다는 소리를 내가 이거 지금 힘이 없어 말 못 해요. 막 힘이 있어 이거 좀 막 퍼대야 돼.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살면 망하지 어짤 거라? 하나님의 뜻대로 안 사는데 안 망한다 하는 그 말이 마귀 말 아니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망한다 하는 소리를 힘만 있으면 저 우리 예배당에 저 스피커 달아놓고 하루 종일 스물네 시간 ‘죄 지으면 망한다 죄 지으면 망한다 의를 행하면 성공한다’ 이 말을 자꾸 막 꽉 차서 저 소문이 나 놔서 세계에 소문이 나서 ‘서부교회라는 그 교회는 죄 지으면 망한다 의를 행하면 성공한다 그게 밤낮으로 고함이 나와서 거게만 들어가면 그런 소리 들린단다’ 하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거기서 회개하면 봐라 하고서 ‘봐라, 죄 짓는 자 망하는 걸 봐라.’ 보여줄 것이고 ‘의를 행하는 자 성공하는 걸 봐라' 보여줄 것이라. 지금도 다 보이고 있어. 온 세계에 다 보이고 있어. 죄 짓는 민족이 망하고 의를 행하는 민족이 성공하고 개인도 가정도 다 그래.

듣고는 결심을 해요, 강퍅하지 말고.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6 회개는 방패, 기도는 무기/ 야고보서 5장 13절-20절/ 1983. 7. 27. 수새벽 선지자 2016.01.12
55 회개로 자라가라/ 마태복음 3장 1절-12절/ 1979. 12. 1.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54 회개로 진노를 피하자/ 예레미야 14장 1절-18절/ 1981. 6. 10. 수저녁 선지자 2016.01.12
53 회개를 재촉하시는 하나님/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3. 6. 21. 화새벽 선지자 2016.01.12
52 회개시킬것/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5. 3. 1.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2
51 회개에 담대하라/ 누가복음 15장 1절-7절/ 1984. 8. 31. 금새벽 선지자 2016.01.12
» 회개에 담대할 것/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7. 5. 29. 금새벽 선지자 2016.01.12
49 회개에 담대할 것/ 고린도후서 7장 1절/ 1983. 6. 20. 월새벽 선지자 2016.01.12
48 회개에 후퇴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 5. 6.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6.01.12
47 회개에 후퇴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년 20공과 선지자 2016.01.12
46 회개에 후퇴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 5. 6. 금저녁 선지자 2016.01.12
45 회개와 십계명/ 누가복음 13장 6절-9절/ 1983. 3. 1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44 회개와 십계명/ 요엘 1장 2절-4절/ 1983. 2. 1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43 회개의 기회/ 요엘 1장 1절-4절/ 1983. 2. 20.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42 회개의 기회에/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1983. 10. 15.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41 회개의 노력/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9. 월새벽 선지자 2016.01.12
40 회개의 목표 표준/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1983. 5. 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39 회개의 방편과 종별/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38 회개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1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37 회개의 복/ 마태복음 4장 17절/ 1982. 7. 22. 목새벽 선지자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