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노력


선지자선교회 1982년 7월 19일 월새

 

본문 : 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은 주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또 천국에는 모든 불의 부정한  것이 없는 나라요 모든 불행스러운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생명성 신령성의 것들만 있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회개해라 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천국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고 난 다음에 들어갈 무궁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이 이루어진  것만치 무궁세계의 천국이 이루어지지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이  그때 가서 천국이 이루어지리라고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을 자가 죽고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날  자가 살아나는 이것이 천국 들어가는 순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다음에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으면 떠나고 부활할 때에 그때에 천국에 자기가  마련한 것만침 가지고 들어갑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예수님으로 죽고 살아  이루지 못한 천국은 이 다음에 그 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만 쉽게 말해서 천국은 모든 좋은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져야 합니다. 갖추어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천국은 모든 것이 안정되는 것이오. 마귀라는 놈이 이렇게 흔들고  저렇게 흔들어 가지고 우리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복잡하고 흔들리고, 소용없는 것 필요 없는 것으로 복잡하고 필요 없는 것으로  흔들리고 필요 없는 것으로 정욕을 기울이게 하고 뇌심하게 하고 필요없는 것에  시간과 정력과 자기의 모든 것을 기울이도록 마귀는 이렇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회개를 안 할수록 그 사람은 한없는 고생을 합니다. 천국을 이루는  사람이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천국을 이루지 못하는 택한 자들이,  천국을 이루지 못하는 그 사람이 제일 고민스럽고 고통스럽고 분주하고 또 참  많이 수고합니다.

 이러기에 사람들이 하는 그 생활을 만일 분석한다고 하면 필요 없는 생활에  전부가 다 기울어지는 사람 많고 자기에게 필요 있는 생활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사람 있고, 필요 없는 생황은 차차 차차 이것을 제거해서 필요 없는 생활은 다  제거되고, 이러니까 과거에 천국 준비를 하지 못할 때에 분주하던 것이 하나도  없어져 버립니다. 복잡한 일이 아무것도 그만 쓸데 없이 바쁘고 되고 고생스럽고  근심 걱정되던 것이 하나도 없어져 버립니다. 필요 없는, 자기에게 복되지  아니한 그런 일이 하나도 없어지도록 되어지는 이것 이 회개입니다.

 조금 회개하면 조금 그것이 제거되어지고 차차 회개에 따라서 그런 것이  제거되어지니까 어떤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자기의 언행심사에 모든 생활이  하나도 필요 없는 생활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회개의 은혜를 받으면 이제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할일 없는 그런 아주 수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씩 둘씩 자기가 참 해야 될 일을 하나씩 간추려 챙겨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게 될 때 그때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기 때문에 그 일이  모두 다 사람의 생각 범위 내가 아니고 사람의 모든 생각이나 지능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초인간적인 생활로 순전히 하늘나라의 구원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안정이라 말했습니다. 어제 회개는 안정이라, 회개하면 그  사람이 모든 것이 안정이 되어진다. 마음도 안정되어지고 행동도 안정이 되고  모든 소원도 안정이 되고, 막 소원도 심히 복잡한 소원을 가졌는데 회개해  들어가면 그 소원이 아주 안정이 되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소원도 안정이 되고  자기의 마음도 안정이 되고 정신도 안정이 되고 또 지혜도 여기 저기 모두  지혜도 안정이 되고 모든 것이 안정이 됩니다.

 또 안정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정리가 되어집니다. 정리 정돈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쓸데없는 모든 것이 다 제거되고 제거되니까 그 심신의 모든  기능이 한쪽으로 몰려서 옳은 것으로 집합되기 때문에 이제는 힘있게 됩니다.

정리가 되어집니다. 정리가 되어지면 그 속에서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정리가 되면 능력이 나오고 능력이 나올 뿐만 아니라 이제 그 사람은 자유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의 자유를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동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유가 나오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자기에게 다른 사람들을  대개 관계할 때에 위엄이 나오고, 위엄이 나오고 두려움이 나온다 말이오.

위엄이 나오고 권위가 나오고 존경이 나오고 또 사모가 나오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영광이 나옵니다.

 이렇게 회개라는 것은 참 굉장히 어려운 것이면서 굉장히 행복스러운 것입니다.

회개가 왜 어려우냐? 어려운 것은 회개는 사람을 바꾸어 가지게 되는 것이오,  사람을, 자기가 죽고 자기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는 사람을 바꾸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거 뭐 무슨 행동 하나 그거 잘못됐으니까 '아, 요거 회개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고, 회개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과  못쓸 사람을 바꾸는 것이고, 불완전한 사람을 주고 참 온전한 사람으로  바꿉니다. 모든 못쓸 사람을 주고 온전한 사람을 바꾸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오.

또 행위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은 사람 단독이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개는 권능이요, 순전히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그러기에 이 회개를 하는 데에는 우리가 주관적으로는 어떤 일을 해야 되느냐?  자기가 기도해야 되고 또 자기가 사람이 바꾸어질려고 애를 쓰고 행위를 고쳐서  바꾸어 할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애를 쓰면 애를 쓰니까 되어졌다고 하면 그  사람이 애쓴 그것 가지고 되어진 것인가? 애써 가지고 되어진 것이라면 암만  해도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왜? 회개는 이는 사망의 것이 생명으로 바꾸어지는 것이요 또 모든 거짓 것이  참으로 바꾸어지는 것이요 사망 아래에 있는 모든 불완전한 것이 생명 안에 있는  완전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의지자라 명철자라  도덕가라 할지라도 인간은 완전성의 것을 만들 자격이 없습니다.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을 만들지를 못합니다. 그보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만들어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단독으로서는 회개는 안된다. 그러면 이 보배로운 회개를  해야 될 터인데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 인간이 하나님에게 회개를 달라고  간구하고 그 회개를 진정 원하는 그 소원에 따라서 하나님이 회개의 양을  주신다. 조금 원하면 조금 주시고 많이 원하면 많이 주시고 하나님이 회개를  일으켜 주신다.

 그러면 인간의 그 모든 기도하는 것이나 또 자기가 사람이 바꾸어 지려고,  행위가 바꾸어 지려고 애쓰는 것이나 이 노력이 회개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회개시켜 주심을 청구하는 것 이것을 하는 것이 간청하는 것인데 그 간청하는  도수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도록 간청의 도수에 도달한 것만치 하나님께서  그렇게 바꾸어 썩을 것을 받고 썩지 않을 것을 주시고 약한 것을 받으시고 강한  것을 주시고 이렇게 바꾸어 주신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는 것이요 또 회개는 모든 기독교에 있는  모든 행복을 다 끌어 오는 것이요 또 인간에게 있는 모든 불행을 다 제거하는  것이 회개이기 때문에 회개는 모든 불행스러운 것을 제거하는 열쇠와 같고 모든  행복스러운 것을 다 끌어 내서 자기 것을 삼는 열쇠와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참 좋은 것인데, 회개하면 우리에게 모든 고통이 물러갑니다.

아주 단순해지고 또 깨끗해지고 자유로워지고 또 권위 있어지고 영광이 있어지고  지극히 큰 능력이 얼마든지 와서 일 할 수 있고 아주 보배로운 것이 회개인데 이  회개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개는 건설구원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회개를 주실 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이 회개케 해 주시는 회개를 시켜 주시는 이 은총을 받기까지는  자기가 노력이 자기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노력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회개케 해 주시지를 아니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노력을 할 때에 그 일이 하나씩 둘씩 회개가 되어져 갈 때에  이것을 잘못하면 혼돈하기 쉽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니까 회개가  되어지니 인간의 힘으로 회개는 하면 되는 것이라, 회개는 인간의 노력이라'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주의 중에 펠라기우스주의라는, 펠라기우스 주의라는 그 주의는 이 주장입니다.

'인간이 노력을 하면 회개가 된다. 인간 노력으로 회개를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참 행동에 대해서 철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회개를 시켜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아주 자기네들이 힘을 써 가지고 노력을 하니까 회개한 것 같고  회개가 된 것같이 보여지니까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는데 하나님이 인간 단독으로  회개가 안 된다는 것을 현실을 주셔 가지고 현실에 자기네들이 회개한 것이  조작배기이고 가짜이기 때문에 전부 허사가 되도록 이렇게 만드는 그런 순서를  거치고 나니까 큰 소리 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큰소리를 못하게 되고 또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저 사람은 뭐 완전이라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이 어떤  현실을 주시니까 아무것도 아니라 그거요.

 그래서 펠라기우스주의라고 유명한 주의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주의를  따랐는데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이 반 되지 사람의 노력만 가지고  안된다.' 이래서 반 펠라기우스주의가 나왔습니다. 반은 인간이 노력해야 되고  반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야 된다 이렇게 했습니다.

 성결교에서도 그 주장은 '인간이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이 되어진다. 땅위에서  완전이 되어진다' 하는 그것을 주장을 했었는데. 완전이 됐으니까 다 됐소. '다  되어서 더 할일이 없다. 저런 사람들은 완전이라' 그래서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완전이 되어야 중생이 되지, 완전 된 그것이 중생이지 완전 되기 전에는 중생이  아니다. 누구 누구는 완전이 됐기 때문에 중생했다.' '중생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흠이 없다고 자신들이 그렇게 여겨 온 것이 성결교입니다.

 이러다가 이게 뚜렷이, 그전에는 뭐 교리가 틀렸다 해도 그 사람들이 별  느끼지를 아니했었는데 왜정 말년 때 신사참배 때 그때에 이것이 깨어졌습니다.

신사참배가 있기 전에 그때 왜정말년인데 제가 개명 있을 때에, 개명 집사로  있을 때에 성결교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성결교 그때 권사든가 뭐 그런 사람  만났습니다.

 만나 가지고 '이 완전주의라는 것이 이것이 불가하지 않느냐?' 그것을 말을  해도 그 사람도 '그게 좀 안되기는 안됐는데 그래도 그 흠점을 잡아서 꼬집을  수가 없다' 자기도 그렇게 말합디다. 좀 의문은 가기는 가는데.

 이러다가 왜정말년에 한국에 있는 성결교의 제일 우두머리되는 머리되는  사람들, 성결교 신학교 교장 그 밑에 있는 모든 교수들 또 유력한 목회자들 그  사람들이 모조리 신사참배를 다 했습니다. 신사참배를 다 하고, 신사참배 할  때는 그때는 '이거는 국가 의식이기 때문에 어거는 관계가 없다' 이래 가지고  신사참배를 다 했는데 막상 8.15 해방 딱 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신사참배를 우상 숭배라 또 신앙정조를 판 영적 음행이라 하는 것을 공통으로 다  그렇게 말하고 또 따져보니까 자기도 세월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렇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 그분들이 다 근신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그걸 회개를 하면서  '우리가 신사참배를 하는 이런 범죄를 했다.' 이래 가지고 회개를 하고 하는  그때에 완전주의라는 성결교회 주의가 완전히 바꾸어졌습니다. 그때 회개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노력을 함으로 회개가 되어지니까 회개가 사람 힘으로 된 것으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회개를 하지 못한 사람이오. 인간 힘으로,  인본으로 그것이 되어져 있는 것 있지마는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완전히  바꾸어서 고쳐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그런 말이 있는데 '흰개 꼬리 굴둑에 삼년 처박아 둔 거와 같다' 삼 년 동안  굴뚝에 쳐박아 두니까 새까맣지마는 나와서 틀툴 털어 버리니까 내나 하얀 흰개  꼬리와 같다. 이러니까 인간의 힘으로 이렇게 노력을 하고 이러니까 사람들  보기에 아주 회개해서 성결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그런 안위를 인본이요  신본으로 된, 하나님의 능력으로, 초자연의 능력으로 된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고  통치할 수 있는 이런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현실을 그걸 줘가지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험은 자기 힘으로 됐다고 생각하는, 안 되면서 된 줄로 아는 자에게  안 됐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시험이요. 또 되기는 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안  됐다고 말하는 자에게 '봐라 됐다'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포하기 위해서  시험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험은 안된 자를 자타가 인정하면 그거는 잘못  인정이기 때문에 그걸 고쳐야 되겠고 또 바로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을 자타가  인정하지 못하는 그것을 자기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참 됐구나.' 다른 사람도  '저거는 됐구나' 인정하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시험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에 대해서 인간의 노력으로 된다 하는 그런 생각을 아주 첫째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는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그런 무가치한 것이  아니오. 가치가 적은 것이 아니오. 이는 참 하나님이 와서 하셔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런 아주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죽을 자가 산 자로, 죽은 자가 산 자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모두가 다 바꾸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절대자이신 그분이 엿새동안에 우주를 창조한 것보다도 더  힘들여서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또 진리와 성령님과, 하나님 진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이 셋이 합작해 가지고 이루어 놓는 것이 회개요,  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창조물을 이용해 가지고 회개라는 것이  되는 것인데 이거는 얼마나 어려우냐? 하나님이 일차 창조보다 이차 창조는 더  어려운 것인데 하나님이 일차 창조해 놓은 것. 사람이 바꾸어지는 것. 행위가  바꾸어지는 것. 완전히 고쳐지는 이 어려운 것인데 이 어려운 이것은 인간을  초월한 초인간의 것이요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 회개인데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라고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데에서 다 업신여기고 이것을  그렇게 참 가치있는 실상의 가치를 사람들이 인정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러면 인간의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하느냐? 꼭 인간의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성경 말씀을 믿고 의지 하지 않으면, 자기가 힘을  쓰니까 되고 힘을 안 쓰니까 안 됩니다. 이러니까 인간 노력으로 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되는 그런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되기 때문에 사람이 힘쓰니까  회개가 되어지고 힘 안 쓰니까 회개가 안 된다 이렇게 해 가지고  펠라기우스주의와 같이 실패를 한다 그거요.

 그러면 사람이 힘쓰니까 된다는 그거는, 사람이 힘을 쓸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네가 요만침은 받을 수 있는 힘을 쓴다. 네가 힘쓴 그 힘씀의 댓가로 내가  회개를 시켜 준다.' 그것이 하나님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인데 '네가 요것을 구하지마는 진정 구하지 아니하고 네가 해서 된다고  생각하고 네가 하고 있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또 네가,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인 줄 알고 하나님에게 해 달라고 말은 하지마는 네가 해 달라  하는 껍데기에 발린 말이지 네가 진정 소원하지 않는데 내가 거기 응해서 내가  해 주겠느냐?'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노력은 기도해야 되고 자기가 사람이  바꾸어질려고, 행위가 바꾸어질려고, 모든 자기 미래 과거 현재에 대해서 대한  그 사람이 바꾸어질려고 애를 쓰는 것 기도하는 것 그게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이 회개케 해 주실 수 있도록 간구하는, 간구하는 간구요 또 하나님이  회개케 해 주실 때에 감당할 수 있는 그 감당의 자격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선물로 이렇게 회개를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노력은 어떤 면만 노력하느냐? 기도하고  자기가 사람이 고쳐질려고, 바꾸어질려고 애를 쓰고 행위를 바꿀려고 고칠려고  애를 씁니다. 이 세 가지로 우리가 노력을 하는데 이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회개케 해 주시는 그 회개를 끌어오고, 회개를 하나님이 주실 수 있고 회개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그 수속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서 회개가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회개는 절대  안 합니다. 자기의 일생동안 자기는 잘 믿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면 죽기 전에 '네가 회개 했다고, 네가 신앙생활 하는 그 신앙생활이  전부 잡탱이요 헛것이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죽기 전에 드러내면, 자기가  죽기 전 늙어서 깨달았으면 머리가 푹 수그러져 가지고 자기는 용기있게 예수  믿던 자가 용기가 팍 죽어 가지고 아무것도 아니게 그래 지내다가, 또 죽을  때까지 용기있게 이래 나가서 아주 저거 의인으로 예수 잘 믿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까 전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어. 잘못됐다 그말이오. 불탈  걸로 되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회개는 교만한 자에게는 회개가 없습니다. 또 회개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는 성신의 감화 감동의 도우심을  입지 못하는 자에게는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회개한 것이 그것이 어떤 기회를 닥칠 때에 다시 그것이  일어나는 것은 그거 뭐이냐? 그것은 내 회개한 것이 바로 회개가 되어 있지  않다. 나 혼자 인간적으로 회개했지 하나님이 회개시켜 주신, 회개시켜 주신  것은 아니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유컨대 위에 물이 말가이 아주 맑지마는 그 밑에는 구정물 안채기가  꽉 들어 있기 때문에 작지로 흔들면 내나 구정물 안채기가 다 올라와서,  가라앉았지 다 올라온다 그거요. 그러나 참 회개는 그게 아니고 구정물을 비워내  버리고 싹 씻고 새 물을 떠서 담아 가지고 있으므로 그릇에 물이 깨끗한 것과  구정물이 가라앉아 가지고 깨끗한 것이 다르다 그말이오. 그러면 인간이  회개하는 것은 구정물 가라앉은 거와 같고 하나님이 회개시켜 주셨으면 이는  물을 갈아서 맑은 물 갖다 넣은 저와 하나라. 같다 그말이오, 비유컨대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갈아 주셔야 되지 안 해 주시면 안 되는 줄 알고  하나님이 갈아 주시기까지 자기가 노력을 해야 자기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  합격이 되어지는 줄 알고, 우리가 기도도 하나님 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날  회개시켜 주시고 내가 또 사람과 행위를 바꾸려고 노력하니까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는 바꾸어 주심을 받는 여기에까지 우리는 표준을 하고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지 이 회개가 자기 힘으로 되는 줄 아는 사람은 회개에 대해서 아직까지  근방에 가지 못한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아주 회개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마는 말 한 마디에 팍  넘어가 버리요. 말 한 마디에 팍 넘어가고 눈초리 하나에 팍 넘어가고 이래  가지고 이상스러운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그거요. 또 사건 하나에서, 그 사람이,  그렇게 잘 믿는 사람이 어떤 사건 하나 일어나니까 그만 달라져 버리요.

자기에게 무슨 사업이 낭패가 된다든지 또 자기가 생각지 못한 그런 어떤  어려움을 닥친다든지 이러니까 그만 사람도 변해져 버리고 행위도 변해져 버리고  자기가 소망하는 그런 것도 변해져 버리고 확 변해져 버립니다.

 그거는 뭐이냐? 아직까지 하나님이 고쳐 주시는 그 고쳐 주심을 받지 못한  증거요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본인이 모르고 있고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알려 주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이냐  유익이 되는 것이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거 줘야 자기도 고칠 수 있고 또  사람들이 그만침밖에 인정을 안 해야 내가 과대평가를 받아서 손해가지 않을 수  있다 그말이오. 힘 없는 사람에게 힘이 있는 줄로 알면 다른 사람 이 부담을  무거운 짐을 부담시킬 터이니까 무거운 짐을 부담시키면 그 사람이 치어 죽지  않겠소? 이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 유익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시험으로 이렇게 연단을  시켜서, 저 먼저 믿음의 시련이라 그래 말했는데, 믿음의 시련은 순전히  하나님의 요소로 믿음이 되어 있나 인간 요소로 믿음이 되어 있나 그것을  시험해서 인간 요소로 되어있는 믿음은 다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 요소로  되어있는 그 믿음은 세상이 어떻게 하겠소? 깨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것을  하는 것이 믿음의 시련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회개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인간이 인본적인 회개를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마귀의 대시험입니다. 그러면 그만 헛일이라. 그거  한마디 가지고 그 한 생각 가지고 다 헛일이라.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수 없소.

인본은 회개할 수 없소. 인본 회개는, 인본 회개의 완성이 뭐이냐? 인본 회개의  완성은 신본 회개를 하나님이 주실 수 있도록, 신본 회개를 받을 수  있도록까지의 인본 회개 하는 그것이 인본 회개의 완성이라 그러면 신본 회개는  하나님의 회개를 청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실 수 있도록 청구하는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신본 회개가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회개가 모든 불행을 제거하는 열쇠도 되고 행복을 끌어오는  열쇠도 됩니다. 자기를 심히 존귀케 하는 것이 회개요. 이 세상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존귀하게 여기고 권세 있으면 존귀하게 여기지마는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많으니까 그 면은 그래 하지마는 적개심을 가지게도 하고  돈만 많지 뭐 그 사람에 대해서 존경을 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더 믿는 사람은  더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안정이 되는 것이고 정리 정돈이 되는 것이고 능력이 나오는  것이고 자유가 있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는 엄위와 권위가 나오고  또 영광이 나오고 이렇게 이제 평강 기쁨 즐거움 만족 담대 이런 것이 마구  회개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 회개를 우리가 힘쓰지 않으면 열쇠를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어쩌든지 회개에 대해서 기도하고 회개에 대해서 자기 사람에 대해서 힘을 쓰고  행위에 대해서 힘을 써. 회개라는 것은 사람을 바꿔 놓은 것이요 행위를 바꿔  놓은 것이오. 일차 창조의 것을 두번 째 하나님이 새로 창조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새 창조의 것이라.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새로 지음을  받은 새로 지은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차 창조는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다 지었지마는 이차 창조는 일차 창조의 것을 가지고 벌써 육천 년이 다  되도록까지 하나님이 지으셔도 완성이 안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일차 창조의 것은 다 진동 변동될 것들이지마는 이차 창조의 것들은  이는 진동되지 아니할 변동이 되지 아니할 완전성의 것들이라 하는 것을  히브리서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회개를 잊어버리면 열쇠를 잊어버린 사람이요 회개는 모든  불행을 다 제거하고 좋은 것을 다 끌어오는 것이 이것이 회개인데 이 회개는  하나님이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의  선물인, 은혜인 이 회개를 우리가 끌어올려고 하면 끌어오는 것은 자기가 회개에  대해서 노력하는 그 노력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회개를 가져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거는 댓가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그것이 주실 수 있을 만침  간구하는 간구가 됐고 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는 고 회개의 양을 많이 주는 게  아니고 다 주는 게 아니고 많이 받는 사람 적게 받는 사람 층층이 많은데 그것을  받을 만한, 받아서 간직할 만한 자격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라서  회개를 주신다 그말이오. 회개의 노력에 따라서 하나님이 회개케 해 주신다.

 이러니까, 요 비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노력하니까 되고  노력 안 하니까 안 되어지니까 자기 힘으로 되는 것으로 이렇게 안다 그거요.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니까 알뜰히 하니까 되고 안 하니까 안 되고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의 노력 그거는 쌀을 만드는 데에 백분지 일도 안 됩니다. 백분지  일도 안 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백분지 구십구도 넘습니다. 공기며 햇빛이며  물이며 모든 것 다 이런데 하나님께서 어려운 것은 다 공으로 주셔요. 어려운  것은 공으로 주시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그 노력만 인간이 하는데 그것만 한다고  됩니까? 그러면 뭣 때문에 흉년이 집니까? 뭣 때문에 같은 노력인데 흉년이  집니까? 뭣 때문에 굶어 죽게 만듭니까?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걸 해 주시면서 당신이 해 주고 싶으면 해 주고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풍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오늘은 뭐 봉사할 것이 혹 있습니까? 오늘은 없답니다. 그래도 봉사하고 싶은  사람 오면 못도 빼고 또 옮길 것도 있고 약간의 봉사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봉사하고 싶은 분들은 와서 봉사를 하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앞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건축에 대해서 기도를 많이 해서 모든  전교인들이 다 복을 받도록, 이번에 복받는 일이기 때문에 또 마귀의 방해도  심히 클 것입니다. 이러니까 기도를 많이 해서, 사람 보고 하지 말고 주님만  보고 성심 성의를 다 기울여 참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사람 보고 하니까 사람이 갚든지 말든지 하지 주님에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사람 보고 하지 말고 하나님 주님을 보고 하라 했기 때문에 이것은  '너는 나만 보고 하니까, 날 보고 하니까 내가 갚아 줘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보면서 하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라도 말하면서도 주님을 보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주님을 보면서  행동하고, 주님은 소경이 아닙니다. 귀머거리가 아니오. 우리 사람 모양으로  여기 있으면 저기 없고 그런 거 아닙니다. 어디든지 계십니다. 이러니까 이 성전  짓는 데 대해서 말 한 마디며 행동이며 하나님이 보실 때에 '너는 참 나를  보면서 성심 성의 기울여 하는구나. 너는 지금 이 일 하는데 이렇게 훼방하고  저렇게 훼방하고 이렇게 이간 돌고 저렇게 이간 돌아서 너는 네 가증스런 일을  하고 있구나. 네가 아주 외식이고 껍데기로구나.' 이러면 하나님께서,  껍데기라는 것을 하나님이 발표해서 고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기도를 많이 해야, 이제까지 해 나온 일은 이거 모두가 다  기적적이오. 내가 이제까지 집을 짓는데 조그만한 것 짓는 것보다도 이번에는  아주 수월합니다. 모두 다 이제 건축에 대해서 능숙하게 된 것도 있지마는  하나님께서 모든 걸 순조롭게 이렇게 해 주기 때문에 그렇게 마찰되는 일이 없다  말이오. 뭐 있어도 그만 스르르 풀리고 풀리고 다 이래서 이래 되어지고 또 모두  다 성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니까 뜻이 같아. 하나님을 향한 뜻이  같고 목적이 같고 이러니까 일이 잘 되어 나간다 그거요.

 이러니까 계속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또 연보 작정한 사람들도 자기가 주님을  바라보면서,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신 것을 바라보면서, 즐겨 내는 자는  하나님이 받으신다 이랬습니다. 끝까지 즐겨 내는 연보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서 온 교우 한 사람도 빠짐었이 이번 성전 건축에 다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처음에는 몰라서 이리 저리 해도 이제 결과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될 것입니다.

 일곱가지 기도해야 된다는 것 그 기도 제목도 아주 요긴한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현장 공사에도 네 가지 표어가 있읍디다.

보니까, 보니까 표어 외우는데 보니까 첫째 하나님 모시고 일할 것. 둘째 피차에  마음을 가꾸면서, 심령을 가꾸면서 일할 것. 셋째 피차에 몸을 안보하면서 일할  것, 넷째에 서로 덕을 세우면서 일할 것, 이렇게 표어 네 가지가 있는데 아주 그  표어도 하나님이 주셔서 잘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잘못하면 한 사람의  쓴뿌리 그것 때문에 이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고 잘못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기도를 많이 해서 아주 이번 공사가 8월 집회 시작하기 전에 이 지하실 뚜껑을  덮고 간다고 하면 이는 우리가 생각하던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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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개에 담대할 것/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7. 5. 29. 금새벽 선지자 2016.01.12
49 회개에 담대할 것/ 고린도후서 7장 1절/ 1983. 6. 20. 월새벽 선지자 2016.01.12
48 회개에 후퇴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 5. 6.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6.01.12
47 회개에 후퇴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년 20공과 선지자 2016.01.12
46 회개에 후퇴하지 말라/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3. 5. 6. 금저녁 선지자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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