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목표 표준

 

1983. 5. 8. 주일오전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어서 해야 될 일이 많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좀 더 잘해야  되겠고, 좀 더 잘해야 되겠어서 모두 다 사람들은 제 각기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육체에 속한 모든 연습보다 경건 연습이 좋다'  왜? '육체에 속한 모든 연습은 유익이 있어도 잠깐 있다가 변해지고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 섬기는 일을 연습하는 것은 금생에도 복되고 내세에도 복되다.'  여러 방면으로 주님 섬기는 일을 하고 나서는 또 미진하다 한번 더 잘해 보자,  이렇게 주님 섬기는 일을 또 다시 더 잘하기 위해서 다시 다시 연습하는 그것은  금생과 내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5장 6절에는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한다고 하고 나서는 또 보니까 모자라서, 돈을 탐하는 사람이  돈이 있어도 또 모자라고 또 모자라고 해서 더 더 돈을 요구하는 것처럼, 권세  욕심의 사람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이 일에 불만성, 가난성, 부족성, 더  갈급성 이것을 가지는 것이 인생으로서의 만족과 충족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멸망케 꾀우는 욕심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각각 제대로의  욕심을 두고 그 욕심을 달성하려고 아낌없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욕심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욕심의 결과는 그 욕심 때문에  삐뚤어지게 되고, 삐뚤어진 것은 마지막에 망하는 것과 죽는 것을 가져 오는 것  외에는 없다' 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4장 1절로 2절에 보면 '사람들이 욕심을  내고 또 다투고 시기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이르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절대자의 그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는  그것을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여 그 이루어지는 것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은 인생의 빈부 귀천이라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되는데, 다만  어떤 사람은 제 욕심을 가지고 범사를 상대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욕심대로 된  줄로 아나 욕심대로 된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되는데 된 그 일에  대해서 저는 심판을 받아야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그 믿음을  지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행위를 하면서 그 현실을 하나 둘 만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되나 자기는 순종하는 사람으로서 그 일을 만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 가지고 자기 욕심대로 달성해 보려는 그것은  자기만 골탕 집어먹고, 이 천연으로, 자연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을 제가  하여서 된 줄 알아 점점 나쁜 사람 되고 교만한 사람되고 점점 욕심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은 되어도 제가 해서 된 것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 다만 자기는 그 당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한 그것만이 자기 할  일인 줄 알아 잘되어도 자기가 책임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못되어도 자기는 거기에서 반성해서 깨달으면서 돌이키는 일로 이래도 저래도  생명으로 더 충만해지는 그런 일만 받는 사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열심히 회개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세상은 인류 시조의 범죄로 인해서 원죄와 본죄로 완전히 죽어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 원죄가 어디까지 뿌리를 박았는지 그 본죄가 얼마나 범위 넓게  재빠르게 숙달되어 있는지 참 측량하기 어려울 만치 깊기도 하고 숙달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서 회개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고 말씀을 하셨고, 또 이 우주를  보존하고 계시는 것도 하나님이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그 회개에 해당된 자들이  다 회개의 충족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보존하시고 대기하여 계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는 일을 지체하지 말고, 게을리 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징계로 주시는 환난을 인해서 특별히 이  서부교회에서 기도하자는 그 선포가 이년 전 부터 선포돼 가지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줄 압니다. 기도한 사람 가운데는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에는 자기가 뜻밖에 새로 닥치는 일과 같이 그렇게 낯이 선 그런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이런 어려움도 생각해 봤고 저런 어려움도 만나 봤고, 자기 혼자 주님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숙이고 눈감고 자기대로는 이 땅에 종류로 있는 모든  어려움이라는 그 어려움은 다 겪어보고 이럴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되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럴 때에 주님이 어떤 도우심을 줘야 되겎다 는 그런  것을 다 기도해서, 갑자기 자유하는 새떼에게 그물이 닥쳐져서 거기에 걸리는  것처럼 뜻밖에 닥치는 그런 어려움이라는 환난은 우리에게 없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귀넘어 듣고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아무리 이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닥치는 그 환난을 생각지도 못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주님에게 한번 의논도 해보지 않은 그런 어려움들이 자기 앞에 부딪칠 터이니까  모르면 우리는 겁납니다. 모르는 소리는 작은 소리라도 겁이 납니다. 이 소리가  모슨 큰 사고를 낼건가? 알면은 사람들이 방비하고 안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 나라에 여섯 예배당을 태운 그것을 계기로 해 가지고  우리에게는 깨닫게 해 주시기를 남한 교회가 회개치 아니하면 다 불바다가  되어서 전멸이 된다. 이 불로 멸망하는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자 하여 회개에 대한 것을 선포한지가 벌써 석달이 됩니다.

 그런고로 회개에 대해서도 각자들이 양의 차이는 있고 단위의 차이는 있지마는  다 자기대로는 힘써서 회개를 한 줄 압니다.

 거기 대해서 회개한 사람들에게는 벌써 마음으로 그런 것이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남북 전쟁이라는 공산주의의 무력 남침에 적화 운동이각는  그런 것은 오든지 말든지 내게는 상관없다. 안 와도 모든 복음 운동에 도움이  되니 유익하고, 또 와도 그들에게 주님같이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과 어떻게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기의 신앙 행위를 보일 것과 하나님의 능력의 섭리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무신론자 그들에게 과연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나 나타났으면 나타났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있을 것이 없다.

 이래서 벌써 전쟁이라는 그런것은 다 초월한 그런 심정들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또 중에는 또 여기 대해서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것을 목표로 둔다면 우리 회개는 끝났습니다. 그런 걸  목표로 둔다면 더 회개할 것 없습니다. 그런 걸 목표로 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그런 면에서는 풀고 이만하면 무신론주의자 들에게, 유물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앙주의 유일신주의를 그들에게 붙여서 멸망을 시킬 그런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자인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개의 목표를 그런 데다가 두면 우리는 오만한 자리에 앉기  쉽고 우리는 회개가 중단되기 쉽습니다. 우리 회개는 동기는 그로 인해서 시작이  됐지마는 우리의 회개의 목표는 거기에다가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회개의 목표는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위의 것이라 하는 것은 공간적으로 위에 것보다도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심판을 통과된 그런 가치적으로 말해서 위의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회개는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에서 영원무궁을 두고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가 되도록 회개의 목표를 하늘에 두고 해야 합니다.

 첫째는 참 우리가 지금 안다고 해도 그분의 그심을 알 대로 아는 자가 없다고  할 수 있고, 그분의 두려우심을, 그분의 능력을, 그분의 사랑을 그 실상대로 알  대로 알 자가 없다고 성경이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모든 역사들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극히 크신 이 주님을 영원히 모시고, 알지 못 하심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이분을 모시고 영원히 그분 앞에 가서 살아야 할 우리들이니까  그분과의 영원히 가도 '아차, 잘못됐다. 부끄럽다' 하는 그런 것이, 우리  양심대로 써서, 우리 힘대로 해서 우리가 그 때 그런 것이 나타날 때에 '아하,  나는 이렇게 모자라는구나, 그러나 후회할 것은 없다. 나로서는 그때에 내  실력이 이 이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깨달아 맺을 만한 그런 실력 없었다. 내  있는 대로는 다 했기 때문에 내 자격이 그렇고 실력이 그렇지 후회 할 것은 없다  하는 이만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면 이 면에 우리 힘대로는 흠과 점이 없도록  이를 목표하고 우리가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다 하나님과 나와에 가려진 그것이 또 사람과 나와에  가려져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 가려져 있는 그것이 또 모든 사물들과  가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나와에 가려진 그것을 내가 하는 대로 회개 해서  틔어지도록, 가려진 모든 잘못된 것이 틔워지도록 여기다가 목표를 두고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겠고,

 또 하나는 지금은 사람들의 지식과 말과 수단과 모두 번쩍거리는 이런 방편  저런 조화로 보이지 않지마는 불원간에 벌거벗은 것과 같이 원수 앞에도 내가 다  보일 것이고, 내 앞에도 모든 사람들이 다 보일 것이고 하는 이것이, 참  이북에서 인민재판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인류 재판입니다.

 인류의 재판으로서 역사에 있는 모든 사람들 현재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거리낌이 없는,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깨끗하다.

하나도 거리낌이 없다. 깨끗하다' 말한 이대로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후회없이  그 때에 잘못됨이 나타나지 않는 이것을 목표로 해 가지고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겠고,  또 지나간 현재 나와의 간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사건들, 모든 만물들 여기에  대해서 흠이 없는, 가려지는 게 없도록 이것을 목표로 하고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직접으로 어떤 사건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도 우리의 이 자체와 발동에  언행심사의 이 모든 것에 주님이 시기 시기를 따라서 회개를 재촉하시는 것은,  내가 측량 못할 하나님의 각 부분과 내가 측량 못 할 모든 인류들과의 관계와  내가 측량 못 할 모든 사물들과의 관계를 당신은 아시기 때문에, 그 하나 하나를  우리로 하여금 정리하고 정비해서 후회할 것이 없게 하려는 이 목표를 가지고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원대한 참된 이 목표를 우리의 회개의 목표로 두고  합시다.

 처음에 동기는 남북 적화의 전쟁의 위험을 우리가 두고 시작은 했지마는 우리의  회개의 목표가 거기 있다고 하면 벌써 자기로서는 회개에는 너무 지나쳤다 할  만큼 그만큼 만족을 이룬, 남북 전쟁에 대한, 이 전쟁에 대한 위험성이나  피난하는 것이나 이런 것이 막아지는 이런 면에 대해서 이것을 목표로 하고  회개했으면 회개한 것이 너무 지나쳤다 할 만한 그런 회개를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압니다.

 거기에서 온전함을 이루었으면 전쟁에 대한 염려가 하나도 없습니 다.

공산주의에 대한 염려도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차라리 원하는 것은 한 번  닥쳐서, 내가 주를 위해서 자살도 못하고 내 생명이 주를 위해서 병들어 늙어  죽지 말고 내 생명이 주님을 위하여 나도 생명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이 속으로 은연중 소원이  되어있지 그런 데 대한 염려성은 다 초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의 목표를 여기에다 두면 우리는 죽는 날까지 회개해도  마음에 거기에서 게을러지지 아니할 것이고 회개에 대해서 만족이 없을 것이고,  회개에 대해서 가난 가난, 갈급 갈급으로 아직도 회개에 부족 부족,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양심에 자책할 것은 하나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의 심판 앞에 가기 때문에 문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는 깨끗하다. 내 피가 모든 사람에게 상관없다. 이랬지마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의 심판 앞에 가서 당할 걸 생각하니 기가찬다.' 그는 마지막까지  회개에 대해서 부자가 되지를 못했고 항상 회개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른  사람으로 계속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회개를 누구를 표준할 것인가? 사도 바울을 표준할 것인가?  어떤 성자나 성녀를 표준할 것인가? 프란시스와 같은, 무슨 사도 바울, 요한  같은 그런 분을 표준할 젓인가? 그분들도 다 위대하지마는 우리가 그들을 표준해  가지고 그들을 따라가다가 따라가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사람을 표준하라고  성경이 말씀하시지를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 끝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 했습니다. 5장 마지막 절입니다. '온전하라' 이것이 우리의 회개의  표준입니다. 아버지의 온전함 같이 나도 하나님 되지는 않지마는 하나님의  모형은 가능한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하지 못할 터이니까 우리에게 정죄 하고 우리를  위협주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 아닙니다. 우리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표준을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언행심사의 모든 면에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나도 온전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까지를  표준하고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또 베드로전서 1장 15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같이  너도 거룩하라' 했습니다. '거룩하라' 명령입니다. 거룩은 특별히 모든 존재를  구별해서 온전함에 도달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세밀히 구별하고,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도 세밀히  구별해서 '요것은 요것보다 크다, 요것은 요것보다 더 크다, 요것은 요것보다 더  더 크다, 요것은 요만 못하다'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가치도 정확히 정하고, 또  하나님에 대해서도 '아 하나님이 이면은 더 강조하셨다, 이면은 보편화 하셨다,  이면에 교훈을 받은 사람은 이제는 또 이다음 교훈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구별하는 그 거룩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1서 3장 3절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또 '네가 주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라' 했습니다.

 우리의 회개의 표준을 주님같이 깨끗한 데 이르도록, 아버지와 같이 온전함에  이르도록, 아버지와 같이 거룩함에 이르도록 이것을 우리가 표준으로 하고  회개에 달음질을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계시록 2장 23절에 보면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인간의 행위로  보는 자인 줄 알지니라' 했습니다. 모든 교회는, 네 마음과 뜻 그것을 바로 네  행위로 알고 내가 심판한다. 그 다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시고 '사람의 마음과 뜻 그것을 행위로 보시는 하나님인 줄 알아라,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니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내가 갚겠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야고보서 1장 26절에 보면 '자기 마음을 자기가 속이면 다 헛일이라' 고  말을 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아는데 마음으로는 자기가 범하는 죄를.

마음으로는 범하는 죄를 행동으로는 범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상관없다. 마음으로  범한 것은 자기 범한 것 아닌 줄로 이렇게 아는 그것은 마음 속이는, 마음  속이는 죄라. 마음을 속이면 다 헛일이라.

 네가 행동은 없을지라도 마음에 있으면 너는 죄를 범했다, 네가 남의 물건에  대해서 가지지 아니할 생각을 가졌으면 그게 벌써 도적질이다, 네가 남녀에  대해서 네 마음에 벌써 성욕이 발동됐으면 벌써 그게 음행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고 그대로 그 행위대로 갚아주는 내인  것을 모든 교회는 알지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회개할 때에 그 회개의 부분에 대해서, 첫째는 제일 껍데기로  자기 몸으로 모든 면에 대해서 잘못된 그 행위를 우리가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체행, 자기 몸으로 행동하는 그 행동에서 잘못된 그런 부분을 다 회개를  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자기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느냐? 자기의 마음의 움직임으로써  잘못된 그런 모든 죄를 회개를 해야 합니다. 껍데기는 아무리 있지마는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기를 회칠한 무덤과 같이 껍데기는 번들번들한 의인인데 그  마음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는 줄 알지마는 마음의 움직임 그것을  하나님은 행동으로 보시고 그대로 갚는다. 하나님 보시는 행위의 표준은 마음과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속지 맙시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본능, 자기는 행동도 그런 행동 하지 아니하고, 그는 마음도  만일 들어오면 '주여' 하면서 물리치고 이랬지마는 자기 본능으로 공연히 어떤  물건을 보면 마음이 퍼뜩 동하는 것이 것이 본능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과 둘이 앉아서 본능에 대한 범죄를 서로 의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얼마 전에 제가 다시 만났습니다. '그 본능의 범죄는  생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걸 죄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어찌 본능의 범죄를  그렇게 범죄라 하지 않을 수 있느냐? 그러면 주님에게도 본능의 범죄는 있었다는  말이냐?' 하는 그것을 말했습니다.

 본능의 범죄 그것도 성경은 용납지를 아니합니다. 자기의 의식.감각이 아니고  본능적으로 동하는 그 범죄, 그것도 우리는 연약하지마 는 그것도 죄인줄 알아서  그것이 내게서 없어지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자기가 평생있는  동안, 만일 칠계라면 건강한 이상 평생 노력해서 싸우는 것만치만 이긴 것이지  싸움이 없을 때에는 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본능의 범죄를….

 그 다음에 넷째로는 내가 이렇게 회개하는 이 걸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흥을 주느냐? 그것도 우리에게 책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는 곳곳마다,  그들이 범죄했지 아브라함이 범죄하지 않았지마는 아말렉 족속에게 갔을 때에  아브라함이, 그들이 자기로 인해서 된 그 범죄를 그것을 말끔하게 씻어서  그들에게 축복이 완전히 회복 되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에게는 '너는 깨끗하다'  해서 이삭을 줬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내 이 회개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동의 그 감흥을  주느냐? 그이에게 대해서 반응이 어떤 반응이 오는가? 그 감동의 반응 그것이  우리에게 상관없는 것 아닙니다. 성경에 우리에게 상관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누구에게 거리끼면 나는 평생 육식을 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한 것은 자기 양심이  아니라 남의 양심을 두고 거기에서 회개를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반응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이게 어떻게 나타나겠느냐? 바울은 죽는 날까지, 이 다섯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그 회개를 죽는 날까지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내 양심에 가책될 것은 하나도 없지마는 그분 앞에 설 때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것을 회개의 표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는 회개에  대해서는 만홀한 오만한 자리에 앉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늘 갈급했지 한  번도 배부른 꼴이 없었습니다. 회개에 대해서 늘 그는 평생 갈급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회개라는 것이 말뿐이지 이 회개가 되겠느냐? 우리는 됩니다.

우리로서는 안 되지마는 될 수가 있습니다. 있는 것은 요한 1 서 5장 8절에 보면  성령과 물과 피가 우리의 보증이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성령이 전능자  하나님이신데 성령이 하려면 못할 것 뭐 있겠습니까?  또 진리가 우주를 다 지었는데 그 능력 가진, 독자적의 권위를 가진 그 능력이  우리 보증이 됐는데 못할 것 뭐 있겠습니까? 주님의 대속의 피가 보증이 됐는데  우리는 잘못된 것 있으면 거기에서 다 속해 버리고 고치고 고쳐서, 한 번 잘못된  것을 다시 고치려 하면 심판을 거치지 않고는 할 수 없지마는 우리는 주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알면 즉시 거기에서 돌아서고 해결지울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합니다.

 또 에베소 1장 19절과 22절에 보면 지극히 큰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이 완전을  이루신, 완전의 토대가 되신, 완전의 토대가 되게 하신 그 능력이 지금 우리  믿는 자 속에 와서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너희들 속에서 역사하는 그 능력이 얼마나 능력 있으며 얼마나 큰 일을 할  것인가? 이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능력, 사는 능력, 모든 걸 완성 이루는  능력, 이래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완전케 하는 이런 구원을 달성한 능력이  너희들 안에 있는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랬습니다.

그런고로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합니다. 이는 우리 속에 주님의  피공로 때문에 온 것입니다.

 또 에베소 3장 20절에는 보면 우리의 온갖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을 우리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의 능력이 해 주신다고 보증을  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거룩하심 같이, 그리스도의 깨끗하심  같이 이것은 원하는데 원하는 이게 안 되겠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이상으로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1장 5절에는 보면 '말세에 너희에게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 앞에 수많은 환난이 있어도 염려하지 말아라. 이 능력을 믿고 너희들은  말씀을 떠나지 아니하면 승리하고 남음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왜 우리가 못  이루겠습니까? 우리는 이룰 수 있습니다.

 또 빌립보 4장 13절에도 뭐 어떤 현실이 와도 좋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자의  그의 능력으로 어떤 현실이 와도 능히 이루고 남음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낙망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회개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뭘 받고 회개를 팔 게 없습니다.

 또 우리가 회개하다가 중단하지 맙시다. 회개를 게워 내트리지 맙시다.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 보면 '개가 토했던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이 회개하던  것을 다시 삼키지 말아라. 도야지가 씻었던 것을 다시 더럽히는 것처럼 네가  깨끗하게 했던 것을 다시 더럽히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모처럼 힘들여서 어떤 집회에서 어떤 기회에 자기가 회개 할 각오 가진  이 회개를 다시 그것을 더럽히지 맙시다. 후퇴하지 맙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그렇게 후퇴하지 맙시다. 우리가 이 회개를 주고 차지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땅위에 뭐이 좋아서 회개보다 좋겠습니까? 자기를 깨끗케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뭐 있습니까?  어쩌든지 희고 깨끗하게 굳게 해서 우리의 목표가 하나님 아버지 처럼 거룩하고  깨끗하고, 주님의 깨끗하심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온전케 되라고 하시고  이렇게 보증이 됐으니까 우리는 하면 안 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개와 도야지와 같은 그런 수성같이 다시 어두운 데로 돌아가서  회개한 것을 되풀이 하지 맙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버지 같이 거룩하고  아버지 같이 온전하고 주님 같이 깨끗한 요 목표로 가지고 달립시다. 이보다 더  큰 포부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보부가 무엇 있습니까? 무엇이 이보다 더  좋습니까?  왜? 이만하면 또 세상에서도 당신이 결단코 천하게 하지 아니하고 높여서  당신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가 수치를 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그에 속한  사람까지도 존귀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회개의 가치를 모르고 회개를 등한히 했습니다. 우리가  어쩌든지 이 회개의 보배로움을 이제 깨달았으니 회개에 우리는 전공합시다.

 전심 전력을 해서 회개만 하면 나머지기는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뭐 물질이나  지위나 권세나 모든 것이나 그것은 당신이 할 일입니다. 우리 할 것은 깨끗하게  회개하고 믿음 지킬 것뿐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후퇴하지 맙시다. 회개했던 것, 다시 내주지 맙시다. 마귀라는 놈은 회개했던  것을 내주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 방법을 놀립니다마는 회개를 빼앗기지  맙시다. 고친 것은 내주지 맙시다. 끊은 것은 내주지 맙시다. 버린 것은 도로  취하지 맙시다. 단념한 것은 다시 생각 가지지 맙시다.

 그저 모든 게 다 주께 있습니다. 모든 게 다 주께 있소. 이것만 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절해서 가장 적절하게 다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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