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 받는 법

 

1983. 11. 9. 수새.

 

본문 : 엡 1:18-22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우리는 이 신앙 생활 한다는 신앙 생활은 어떤 그 구비한 사람으로도 자기  힘으로 신앙 생활은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다만 아버지의 성령으로서만 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는 데에 능력을 받지 안하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신앙 생활은 어떤 것이 신앙 생활인고 하니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잘 죽는 것입니다. 잘 죽는 것 죽음을 잘 해야 됩니다. 잘  죽는 것. 또 하나는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죽는 죽음에 속한 것은 고생, 걱정, 근심, 어려움, 가난, 병 모두 그런 것이  다 죽음에 속한 것인데 그것을 잘 해야 하고, 또 선한 일, 옳은 일, 또  인간노릇, 부모노릇, 부부노릇, 또 자녀노릇, 형제노릇, 이웃노릇 그것을 잘  하는 것이 또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이 두 가지를 바로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은 땅위에  있는 사람으로 하나도 바로 한 사람이 예수님 밖에서는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은 이렇게 바로 살고 바로 죽고 하는 일을 한 분들이 많지마는  예수님 밖에 불신자로서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택한  자들이 성령 받으면 다 할 수 있고 불택자들은 그 많은 수 가운데에 한 사람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닥칠 때에 그 어려움을 잘 겪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또 자기에게 고생이 닦쳤을 때에 그 고생을 잘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또 자기에게 아주 힘드는 일, 이는 참 사람으로 할 수 없는 그런 아주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또 그것을 실행하기도 어려운 그런, 이럴까 저럴까  사람들이 바로 알기 어려운 그런 것을 바로 안다는 그런 것도 어렵습니다.

행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크게 말하면 죽음에 대해서 후회 없이, 다른 사람 아무에게도  덕이 되고, 조롱받지 안하고, 영원히 하나님 심판 앞에 가도 '참 내가 그 죽음은  바로 했다' 죽음이 닥쳤을 때에 그만 사람들은 당황해 가시고 바로 죽는 일,  죽음에 대해서 바른 행위, 죽음에 대해서 옳고 바른' 행위를 못 하고 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음이 와도 옳고 바른 행위를 해야 되겠고, 또 삶이 와도 바른  행위를 해야 되겠고, 또 어떠한 천인 만인이 그런 일을 닥 쳐서는 당황하지 안할  사람이 없을 만한 그런 어려움을 당해서도 당 황하지 안하고 바로 비판하고 바로  할 수 있는 그 사람, 그러면 죽음에 대해서 바로 하고 삶에 대해서 바로 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세상을 이긴  사람이요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일은 우주가 다 찬성했고, 하나님이  찬성을 했고, 지옥에 있는 만물들도 다 찬성하고 감탄한 이 죽으신 죽음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가? 예수님은 신인 양성 일위시지마는 그 일을  단독으로서는 잘 할 수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읽은 말씀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사' 승리했다 말이오.

모든 정사도 다, 정사에 대해서, 모든 권세에 대해서, 능력에 대해서, 주관하는  자에게 대해서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뭐 종류라고 하는 모든  종류에 뛰어난, 뛰어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 예수님도 이 능력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천하 사람이 다 두려워 떠는  그런 입장에서도 우리는 담대하고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이 능력이요,  천하에 있는 사람들이 다 담대해서 '뭐 거기 대해서야' 담대한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정할 수 있는 두려움을 가지는 것. 우리는 천하 사람이 다 두려움을  가지지 못하는 그런 두려움을 우리가 가져야 할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을 거슬릴까 두려워하는 것, 하나님의 법도를  거슬릴까 두려워하는 것, 이래 가지고 실수할까, 다른 사람에게 거리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그런 일은 참 예수님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털끝만한 것도 실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두려워해야 할 두려움은 두려워하지 안하고 오히려 두려워하지  안할 이거 '굶어 죽을까, 맞아 죽을까, 어떤 세력에게 해를 당해 죽을까, 뭐  병들어 죽을까?' 이런 것은 두려워하지 안할 일인데 두려워합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 그 모든 것은 잘 바로  되지 그 삐뚤어지게 되지 안하고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두려움도 바로 가지기가 어렵고 담대함도 바로 가지기가 참  어렵습니다. 두려움도 어렵고, 담대도 어렵고, 또 우리가 사랑하는 것도 사랑도  바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도 바로 하기가 어 렵고, 미움도 바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미움도 또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바로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능력을 받아야 되지  능력 안 받고는 안 됩니다. 이것 내가 앞길이 캄캄해서 이러나 저러나 모를 때에  하나님의 지혜의 능력이 오면 바로 할 일을 환하게 보게 되고 바로 할 일을 봐도  바로 할 그 일에 대해서 담대히 할 만한 그런 용기가 없으면 안 됩니다.

 바른 일을 구별해서 가지는,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바른 일에 대해서 뭐  조금도 서슴지 않고 천하가 막아도 조금도 제재받지 안하고 담대히 해 나갈 수  있는 이런 능력을 우리가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이 능력, 예수님께서 이 능력 가지고 모든 일에 후회 없이 뭐  도덕면이나, 예의면이나, 체면면이나, 책임면이나, 의무면이나, 또 인간에  대해서나 하나님께 대해서나, 만물에 대해서나, 사건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잘못이 없이 온전한 그 역사를 행하신 것이 이 능력 가지고 했습니다. 이 능력  때문에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능력을 우리가 믿을 때에 이 능력이 우리에게 옵니다. 믿으면  우리에게 이 능력이 옵니다. 이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예수님 께서 성공을  하시고 이 성공하신 성공만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고 성공하신 그 능력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그 능력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이 능력을 우리가 받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가 이 능력을 인정치 아니하고 받으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에 못  받습니다.

 이 능력을 인정치 안하는 것은 왜 인정치 안하는가? 인정치 안하는 것은 배암이  우리에게 준 지식 그 지식이 우리에게 들어 가지고 인정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합니다. 배암의 지식. 이 마귀 지식. 이 세상 지식은 하나님을 인정치 못하게  만드는 그런 지식입니다.

 또 우리가 범죄함으로 타락해 가지고 우리 속에는 부패성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부패성. 그러기 때문에 우리 속에 이 마귀에게 감화받은 이 악성 또  이제까지 죄짓던 그 악습 이 부패성 이것이 들어서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사람을 죽이라' 그랬습니다. 옛 사람을 죽이라.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속에는 자기 아닌 자기, 죽여야 할 자기가 있는 줄도 알아야 되고 우리  속에는 참 영생하는 존귀한 자기가 있는 것도 알아서 존귀한 이 자기는 가꾸어  길러야 하겠고, 죽여야 할 자기는 어쩌든지 곯려 가지고 죽여야 됩니다.

 죽여야 할 그 자기는 어떻게 하면 죽일 수가 있느냐? 죽여야 할 자기를 죽이는  방법은 죄짓지 안하면 그놈은 곱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그놈은 곱니다.

하나님하고 동행하면 그놈은 마지막에는 곯아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십시요.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우리가 믿을 때에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믿을 때에 그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시는 그 능력이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그  능력이 얼마나 크냐? '그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이 능력이 지극히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는데 그 능력이 어떤  능력이냐? 그 능력이 어떤 능력이냐?  20절에 '그 능력이'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에게 있는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으시는 일도 했고,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시는 일도 했고, 또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 오른편에도 앉게도 하셨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도  했습니다. 뛰어나게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능력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능력을 받으면 뭐 한없이 지혜롭습니다. 일자 무식이라도  한없이 지혜롭습니다. 일자무식이라도 쓸데 없는 지식은 가지지 안하고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을 아는 데는 그것 필요가 없으니까 안 알고 자기에게 필요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바로 알고 옳게 압니다.

 자기에게, 필요 있는 것은 다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을  얻은 사람이요, 공연히 자기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남의 일은 잘 알고 또  잘 알면 다행이지마는 모르는 것 없어 전부 다 알아. 보면 다 안다 말이오.

입으로 다 알고 마음으로 다 알아. 마음으로 다 아는데 실상 바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 다 아는데 하나도  몰라, 바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어.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데  보면 바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그 사람이 불쌍합니다.

 그러나 이 능력 받으면 모든 것 다 모르나 다 압니다. 모르다니? 자기에게 상관  없는 일은 하나도 모르고 자기에게 상관 있는 일은 다 압니다. 이러니까 이  능력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 능력을 받는 데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자기 현실에서 '내가 이래 해야 되느냐 저래 해야  되느냐?' 자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바로 하느냐 하는 이것을 자기가 찾아  가지고 그대로 실행하면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뭣이 믿음이냐?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는 그것을 바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요래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오.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햐는 그것을 바로 찾아  가지고 '요렇게 해야 되겠다'하는 그것이 반믿음이요, 그게 반믿음.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실행하면 온믿음이 됩니다. 그 온믿음이 되면은 그 믿음을  통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옵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오나, 자기가 그 믿음 가진 게 조그만하면 지극히 큰 능력이  이제 연결만 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에게 믿음이 조금 더 크면 능력이 조금  더 들어옵니다.

 자기의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 그게 믿음인데 그 행함이 더  커지면 더 많아지면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이 많이 옵니다. 그러니까 많이 오면  많이 알게 되고 많은 일을 능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염려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그 대로 하면  되기는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가 어떻게 바로 알 수가 있느냐?'  요것을,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바로 알 수가 있느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면  내가 행하기는 행하겠는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가 참 어렵다.' 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가 어려운데 누구든지 택하고 중생된 사람이면  다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불택자는 하나님의 뜻을 절대 억만 인 가운데에  털끝만치도 바로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알려 주지 안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알려 주시면 알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불택자로서는 바로 알 자 없고 택하고 중생받은 자 로서는 다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알 수 있는 그 방편이 있고 순서가 있는데 바로 알  수 있는 그 순서를 사람들이. 지키지 안하고 욕심을 가지고 제 꾀대로 제  생각대로 하기 때문에 안 되지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방꾄을 가르쳐  주신 그대로 하면은 다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방편은 뭐인가? 간단합니다. 자기가 현재에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하는 가운데에 '이거는 하나님의 뜻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자기가 한 가지라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알고 있을 것이오.

 자기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이다. 요래 해야 된다.'  자기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기 때문에 요  일은 해야 된다 하는 것을 자기가 단 하나라도 알고 있을 거라 그말어오.

하나라도 알고 있어요.

 모르면, '주일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주일은 지켜야 된다' 하는 그것이야  알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면 주일은 지켜야 된다 하는 것 알 것  아니겠소? 그러면 주일 지키라 그말이오. 주일 지키면 그 다음에 졸졸 자꾸 실이  풀려 나가는 것처럼 자꾸 알아져 나갑니다.

 주일 지키고, 요새는 우리 교회서 기도회를 시작했으니까 낮이나 밤이나 이  기도회를 생각하고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모든 환난을 피하고 내  개인이나,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가 모든 환난을  다 피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야 되겠다 하는 그 소망을 가지고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해라 했으니까 이거는 뭐 주일마다 광고하니까 그거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알 수 있는 그것 해 보라 그말이오.

 그것 하면, 그것 해 보라 말이오. 그거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기 때문에 주일을 지킨다는 것 하나님의 뜻인 줄 압니다.

자기가. 또 기도회에 참석하라 했으니까 기도회에 참석하는 이거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것 안 하면 알고도 하지 안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고 난 다음에는 쉬운 것 있습니다. 또. 네가 거짓말 하지 말아라, 거짓말  해서 안 될 줄이야 그권 알 것 아닙니까? 거짓말 안 하는 거 하나님의 뜻인 줄  알지 않겠소? 그러면 거짓말 안 하려고 애를 씁니다. 거짓말 안 하려고 애를  쓰다 보니까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고 거기에서 능력이 옵니다.

 거짓말 안 하려고 애를 쓰니까 거기에서 능력이 와서 사람이 변화됩니다.

주일을 지킬려고 애를 쓰니까 주일을 지키니까 변화가 됩니다.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이렇게 애를 써 기도회에 참석을 하니까 또 사람이 변화가  되어집니다.

 자기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죄 아닙니까?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했는데  자기에게는 딱한 사정이 있어서 그 사람을 암만 안 미워할라 해도 안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사랑하는 게 하나님의 뜻일 터인데 암만 안 미워할래야 안 미워할 수가 없고  아무리 사랑할라 해야 사랑이 안 될 때 그건 아는 것이니까 환하게 아는  것이니까 그걸 해 보라 그말이오.

 미워하는 걸 어쩌든지 자기가 뭐 어떻게 밥을 굶어도 '내가 아무것 이를  미워하는 요 죄를 회개해야 되겠다'하는 마음 가지고 그 미워하는 그걸'어쩌든지  버리려고 애를 쓰고 또 사랑해야 된다는 그것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가 뭐이든지 아는 것, 그 아는 게 하나 있으면 하나, 그것 행하면 그다음에  야는 게 또 나옵니다. 또 둘 나와서 둘 행하면 또 그다음에 아는 것 또  나옵니다.

 이제 자기가 아는 것이 만일 열 가지라면 열가지 아는 걸 그것을 행해야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열 가지나 알아도 안 행하는 자에게 뜻  가르쳐 줘 봤자 헛일이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안 행하는 사람에게, 행하지  안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면은 그것은 그 사람을 구원합니까 그  사람을 정죄하게 됩니까? 정죄하게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알려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지. 알려  주는 것보다, 알려 줘서 '이렇게 해라' 알았는데 알고 행치 안하면 그게 죄가  되고, 알고 행치 안하는 그것은 고범죄라. 죄도 몰라서 행한 것보다도 알고  행하지 안한 것은 고범죄가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알려 주실 수가 없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래도 이 능력을 받아야 되겠는데 이 능력을 받으면  죽음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했고, 천하가 다 비행기 태여서 올리려 해도 안  올라갔고, 올라가서 될 때는 올라갔고 올라가서 안 될 때에는 안 올라갔고, 또  위에서 천인 만인이 눌러도 내려가야 될 때는 내려갔고 천인 만인이 눌러도 안  내려가야 될 때는 천인 만인 천하가 눌러도 내려가지 안하고 꼼짝없이 요래 있는  그것이 이 바로 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참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른 사람으로 이렇게 사회에  대해서나, 국가에 대해서나, 이웃에 대해서나, 경제에 대해서나, 사업에  대해서나, 병에 대해서나, 자기에게 있는 여러가지 어려운 난 사에 대해서나, 또  피곤할 때 대해서나, 이것 뭐 원수에 대해서나 모든 것 다 바로 한다는 것이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또 바로 하는 데는, 바로 하는 데는 하기까지는 바로 하는 것이 죽는 것 같고,  고통스러운 것 갈고, 손해가는 것 같지마는 바로 하는 그 고개만 척 넘으면,  바로 하는 그 일을 완성해서 고개만 척 넘으면 그 속에는 한없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들이 세상이 모르는, 세상이 기뻐하는 기쁨은 죽은 기쁨이요, 기독자들이  기뻐하는 기쁨은 산 기쁨이오. 세상이 평안한 그 평안은 다 죽은 멸망하는  평안이요, 기독자들이 누리는 평안은 참 산 평안인데, 산 평안 산 기쁨을 왜  가지지 못하느냐?  믿음을 지키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할 때에 자기에게 '뜻대로  하면은 참 고통스럽다' 이게 보인다 말이요. '고통스럽다' 보일 때에 고통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고통을 당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요게 뭐입니까? 요게  십자가요.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하면 큰 고통 어떤 고통입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될 줄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고통을 당했는데 그 고통이 변해서 사흘 만에 뭣 됐습니까? 사흘 만에 뭣  됐지요? 고통이 변해서 사흘 만에 뭣 됐습니까? 한번 모두 큰 소리 한번 해  보십시오. 부활! 삼 일 만에 부활됐습니다. 예수 믿는 생활은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고통이 오는, 자기 보기에는 고통이 오는데 고통  오는 그것이 영원한 평강을 끌고 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 고통하는 그것이 뭐이냐? 고통하는 그것이 죽음에 속한 것들이 고통하고,  옛사람에게 속한 것들이 고통하고, 땅에 속한 것들이 고통 하고, 혈육에 속한  것들이 고통하는 것인데, 혈육에 속한 것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죽음에 속한 것이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요, 땅에  속한 것이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것이요, 이것이 모든 죄악에 속한 것이 의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옮기기는 누가 옮깁니까? 옮길 차비를 차리는, 옮길 원인을 만드는 것은 누가  만들며 옮기기는 누가 옮깁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옮길 그 차비, 옮겨야 되는  옮김의 원인을 만들기는 누가 만들지요? 한번 손 들어 봐요. 그러면 조금,  맞기는 맞았는데 초절해 지나가 버렸어. 옮길 수 있는 그 원인을 만들기는 누가  만들지요? 자기. 자기가 만들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약한데서 강한 데로 옮기고, 또 더러운 데서  거룩함으로 옮기고, 모든 죽은 것을 산 것으로 옮기고,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옮기고, 옮기는 그것은, 옮기는 그 원인을 마련 하기는 우리가  마련합니다. 우리가 마련해요.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면 될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것이 다  절단나는데 절단나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니까 옮길 수 있는 원인은 우리가  만들지 않습니까?  그래 인제 옮기는 일은 누가 합니까? 옮기는 일은 누가 하지요? 여반에 한번  대답해 봐. 남반보다 여반이 잘 깨닫는데 여반은 잘 깨닫기는 깨달아도 실행력이  없고 인내가 없고 계속성이 없기 때문에 항상 천국 가 보면 인제 여반들이  뒤떨어질 것 같애요.

 옮기는 역사는 누가 하지요? 여반에 한번 대답해 봐. 큰 소리로 한번 해 봐.

하나님? 옮기는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까? 남반에는? 내가 묻는 걸 모르는구만.

옮기는 역사는 마귀가 합니다. 알겠소? 옮기는 역사는 마귀가 하고, 죄가 하고,  세상이 합니다. 옮기는 역사.

 예수님을 죽을 수 있는 거기에서 영원히 죽지 안할 그 몸으로 옮긴 것을 누가  했습니까? 누가 했지요? 로마 병정들이 했어. 그렇지 안 했소? 로마 병정들이  했어.

 이러나 로마 병정들이 했는데 사람들 보기에는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 죽였다  이래 생각하지만 예수님 죽인 게 아니라 예수님의 죽을 수 있는 그 몸을 영원히  죽을 수 없는 죽지 안할 그 몸으로서 옮긴 것은 이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 십자가 못박아 죽인 것이 이것이 영원히 죽을 수  없는 몸으로 이제 바꾸어지게 해 버렸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우리가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그 손해는,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그 손해보는  원인은 누가 장만합니까?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원인은 누가 장만하요? 우리가  장만하지요. 진리만 양보하면 될 터인데 진리 양보 안 하니까, , 진리 때문예  샤업이 안 되고 뭣이 안 되고 이래 하는 것은 그렇게 원인은, 그렇게 사업이 안  되게 하는 원인은 우리 사람이 만드요.

 제가 진리 안 지키면 될 터인데 사업이 될 터인데 진리를 지키니까 사업이  안'된다 말이오. 진리 지키는 것 때문에 갇히기도 하고, 진리 지키는 것 때문에  죽기도 하고, 진리 지키는 것 때문에 사업도 안 되고, 진리 지키는 것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자꾸 이래 한다 말이오.

 그러면 그렇게 세상에서 쫓겨나게 하고, 망하게 하고, 감옥에 갇히게 하고,  손해보게 하고 이렇게 하는 그것은 뉘가 만들지요? 그걸 누가 만드요? 성도가  만드요 마귀가 만드요? 마귀가 만드요 성도가 만 드요? 자, 마귀가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성도 자기가 만든다고 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성도 자기가 만들지, 왜 이것 확실히 말귀를 못 알아들어? 손 뻐뜩  들어요. 성도 자기가 만듭니다. 자기가 만들어.

 그것은 자기가 계명만 어기면 안 죽을 것 아니겠소? 계명을 안 어기고 지키려  하기 때문에 죽게 된다 말이요. 그런데 그 원인은 사람이 만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이를 완전히 완성시키는 것은, 완성시켜서 죽 이는 것은 누가 합니까? 죽이는 것  누가 하지요? 자기가 합니까, 하나님이 하십니까, 세상이 합니까, 자? 하나님이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자기가 한다고 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세상이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녜, 요겁니다. 최  들어요. 확실히 알아요. 녜, 세상이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세상이 죽여 놓은  것을 다시 영원히 살려서 온전케 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이러니까 진리와 영감을 인해서 실패하게 되는 그 원인을 만드는 것은 진리  양보하지 안하는 그 사람이 그렇게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것와 실패가 되도록  실패를 시킨 것은 세상, 실패를 진리 때문에 실패한 것을 그 실패를 성공으로  다시 도로 일으키는 이것은 하나님, 이것이 삼 일 만에 부활입니다. 기독교는  전부 이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손해본 사람은  세상에서 여러 배 백 배를 받을 것이나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 그말은 뭐냐  하면 죽음을'통해서 얻는다 그말이오. 실패를 통해서 주님과 진리 때문에 실패를  통해서 이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을 받아야 되겠는데 이 능력을  받는 데는 그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만 그 능력 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것이 바로 그 능력이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 속에 능력이 바로  직접 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거기에 직접 하나님의 능력이 오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데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과 그대로 행하는 것과  요 둘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걱정하기를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어야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뭐입니까, 하나님이 정해 놓은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뭐이지요? 아는 방법은 하나님이 내게 이미 가르쳐 줘서 알고 있는  그것을 실행하는 그것이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자기가 아는 걸 실행을 하면 하나님께서 모르는 하나님의  뜻까지 자기에게 알려 주시니 하나님의 뜻 다 알지요. 아는 것 자, 한 가지  알았는데, 한 가지 알있는데 아는 그것을 실행을 하면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뭐이  온다고요? 능력이 옵니다. 어떤 능력이 옵니까?  하나 실행했으면 그다음에는 모르던 또 둘째, 둘째로 모르던, 하나 밖에  몰랐는데 또 하나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것을 자기가 실행하려면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벌써 왔습니다.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왔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 행한 사람은 둘 행할 수 있고, 둘 행한 사람은 셋 행할 수  있고, , 셋 행한 사람은 넷 행할 수 있고, 열 행한 사람은 백을 행할 수 있고,  백 행한 사람은 천을 행할 수 있고,  하나 안 사람은 둘 알 수 있고, 둘 안 사람은 셋 알 수 있고, 셋 안 사람은  백을 알 수 있고, 백 안 사람은 천을 알 수 있고, 자꾸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이 아니면 안 된다 그말이오. 믿음은 인정을 하고, 깨닫고  인정하고 실행하는 요걸 가지고 가는 것 이지 실행하지 안하면 안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아무래도 능력을 얻어야 되겠습니다. 능력 얻어야'되는데 이  능력은 뭐 세상 대학에서 얻는 것 아니오. 공부 그까짓 거 암만 해 봐야, 내가  지금도 가만히 보니까 자, 공부해 가지고 망한 사람은 많지마는 공부해 가지고  잘된 사람은 적다.

 공부해 가지고 잘된 사람 그 사람은 공부 안 했으면 더 잘 돼요. 실은 더 잘  돼. 안 될 게 아니라 더 잘 돼요. 사람 보기에 세상 것은 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이 들어서 하늘나라는 망쳐졌습니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동리에 어떤 어북 착실할  사람이 있는데 부자가 있는데, 많은 큰 부자는 아니지마는 있는데 아이들 위에서  대학을 시키고 이러니까 큰아들도 전부 공부하고 나니까 그만 저 도시로 나가  가지고 평생 구경도 못 하지, 또 둘째아들도 또 공부시켜 놓으니까 도시로  나가서 구경도 못 하지, 뭐 오지도 못하지, 자유도 못하지, 자유도 없지, 이  부모가 죽는가 사는가 병드는가 그것도 모르지.

 이런데 막내아들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은 그만 공부를 안 시켜요. 공부를 안  시키니까 동네 사람들이 욕을 하기를 '저 자식을 세상에 부모가 무식한 자식을  만들고 저렇게 잔인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러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래  말하더래요.

 '나는 자식 둘 공부 시쳤더니마는 다 저 갈 대로 다 가 버리고 내가 죽을 때에  내게 대해서 하나도 봉양할 자가 없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겠노? 이러니까 공부  그놈을 안 시켜야 공부 그놈을 안 시켜야 나무를 해다가 따뜻하게 방에 불도 때  줄 것이고, 또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또 해 줄 것이고 이럴 터이니까 그래 내가  그래서 공부 안 시킨다.' 공부를 안 시키더해요.

 안 시켰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공부 안 한 그 아이에게 대해서, 저 모든 큰  아들들이 잘 살고 이래 오니까 말하기를 '오거들랑은 우리 꼭 먹는 대로  그대로만 밥을 주지 조그만한 것이라도 외의 것 더 하면 안 된다. 우리 먹는  대로는 밥 안 줄 수 없으니까 우리 먹는 대로만 밥을 줘라. 외의 것 더 해  주지는 말아라. 그러고 갈 때에 조그만한 것도 주지 말아라.' 못 가지고 가구로  딱 막는대요.

 다른 집에는, 그 동리 모두 그런 집 많은데 그 모두 서울이고 모두 어디 가서  공부시키고 해 놓은 사람은 가 가지고 이것들이 오면은 아주 뭐 왔으니까 아주  고관 대접을 하고 또 갈 때는 또 그 피땀 흘려서 벌어 놓은 것 양식을 그런 것  이런 것 저런 것 자꾸 주 거머 가지고 가기만 하지 가져오는 것은 하나도 없어.

전부 도적놈이라 그말이오.

 그래 다 도둑을 맞고 있는데, 이 사람 이 아들은 그래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절대 아무것도 주지 말아라.' 딱 간섭해 가지고 '너거는 돈 잘 벌어 가지고 너거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데 우리가 근근히 살면서 너거 도와 줄 수 없다. 또  대접도 잘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오려면 도움이나 가지고 오고 그리 안 하면 오지 말고. 또 안 와도  좋다. 올 필요도 없고 안 와도 좋고, 오려면 뭐인가 좀 도와 주려면 오고 그리  안 하면 오지 말아라.' 딱 요래 놓으니까 그 아들들이 오면 하다 못 해 안 되면  조기라도 한 마리 사 가지고 와야 되지 그냥은 못 은대요. 그냥은 못 와. 또  왔다가는 그저 사 가지고는 그것 가지고 반찬해서 이 주든지 하지 하나도 못  가지고 가.

 '그러고 내 재산은 너거는 다 공부해서 그렇게 잘 사니까 그렇고 내 막내아들은  내가 공부를 안 시켰고, 또 나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을 하던 막내아들이기  때문에 이 막내아들에게 내가 이 재산 다 줘야 된다.' 막내아들에게 재산을 다  줬대요.

 다 주고, 이러니까 공부는 안 했는데, 공부는 안 했는데 사람이 옳은 소견이  드니까, 라디오 안 했소? 라디오 뭐 날마다 요 귀에 꽂고 다니며 일하면서  듣는데 뭐 와 보니까 박식이라. 박사보다 나아. 지식도 탁월하고 또 어떻게  부자가 돼 그 동네 제일이더래요.

 이래 가지고 온동네 사람이 말하기를 '참 아무것이 그 가정 교육하는 것이 그게  옳다' 이래 가지고 모두 동리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다 그러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극단으로 하는 점은 있기는 있었지마는 우리가 그것 참고해야 됩니다.

참고를 해야 돼요.

 이러니까 공부만 하면 뭐이 될 줄로 알고, 내 저게 남산동에 저기 가서 거기 좀  휴게소를 하나 지어 놓고 거기에 얼마 전에 그때 아플 때 거기 가서 있었는데,  그 동리에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있어요. 나하고 동갑이라. 칠십네 살인데  나하고 동갑인데 와서 간증한다는 것이 그래, 그전에도 한다 하더니마는.

 '이 동네는 참 딴데 걸 갖다 먹기 때문에 좀 곤란합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곤란하지 딸 둔 사람들은 곤란치 않습니다. 딸 둔 사람들은 모두 잘  삽니다. 나는 딸이 없어 참 곤란합니다. 그놈들 공부시켜 놨 더니마는 다  취직해서 뭐 다 남 위에 올라가고 이렇지마는, 저 아레도 이 영감 할머니가 이래  가지고 근근히 남의 논 붙여 가지고 양식해 놓은 것, 또 할머니가 쌀 한 말 퍼  줘서 한 말 그걸 들고 갑디다. 이러니까 아들놈들은 오면 전부 와아 가지고 가고  다 긁어 가지고 가고, 딸 있는 사람들은 보니까 딸들은 와 가지고 뭐 맛있는,  것도 사 가지고 오고,' 이러니까 그 노인은 참 순진한 노인이라. '딸 있는  사람은 다 잘 사는데 나는 딸이 없어서 참 이 신세가 가련합니다.'  그러며 또 말하기를 '하루 돈 천 원만 있으면, 천 원만 있으면 천 원만 있으면  저기 가 가지고-안 믿는 사람이니까-천 원만 있으면 술집 에 술 먹고 친구들하고  천 원만 내면 같이 술먹고 저래 정자나무 밑에 가서 앉아 놀고 재미있게 참  좋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좋는데 나는 딸이 없어 헛일입니다.' 이러며  탄식을 합디다.

 그 뒤에 보니까 그래 근근히 사는데도 아들이 오든지 며느리가 오든지 하면은  갈근잘근 해 가지고 그런 가운데에서 쌀 한 말씩 닷 되씩, '어제 방아 찍어  놨더니마는 그 아들이 오더니마는 그만 한 말 덜어가 버렸지, 또 인제 아들 하나  오니까 또 그것 아무 아들은 가져갔는데 또 아들 안 준다 할 터이니까 또 그게  또 가지고 가지, 이래 놓으니까 죽을 판입니다.' 그래. 그러면서 '그것 다  공부시켜 가지고 내 신세 내가 망쳤습니다.' 이런 말 해요.

 요새는 뭐 산아제한 하라고 이래 떠들어 쌓지마는 산아제한 하라고 안 해도  산아제한이 됩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산아제한 나라 아니오. 미국은 지금 아이  낳으면 상급을 줍니다. 아이 낳으면 상급을 줘요. 버마 나라에도 아이만 낳으면  상급을 줍니다.

 이래도 이제 미국 같은 나라는 아이 안 낳아요. 왜? 남자가 안 낳아요? 여자가  안 낳으려 해요, 여자가. 하나 낳으면 저는 그만치 늙고 그만치 희생한다고 안  낳으려 해요.

 그러니까 결혼할 때 아예 말하기를 '자, 아이 낳으라 하면은 결혼 안 하겠다.'  '그러면 아이 안 낳으라 할께.' '안 낳으라고 하면 계약서 쓰자.' 계약서 딱  쓰고, 계약서를 딱 공증인까지 해 가지고 그래, 계약을 해도 저거끼리 하는 거  아니라 저 합동 사법인들에게 가 가지고 공증을 딱 맡아서 계약을 씁니다. 그래  가지고 결혼해요.

 '아무래도 하나도 안 낳아서는 안 되겠는데 하나만 낳읍시다.' '그래 그러면  하나만 낳자.' '둘 낳자.' 둘 이상 말하면 도야지 같은 야만인이라 하면서 아예  결혼 못 한답니다. 그래 가지고 여자들이 저를 애껴서 안 하는 거라.

 나중에는 얼마나 약아서 이기주의든지, 왜? 낳아봤자 소용 없으니까. 낳아봤자  키우느라고 골만 빠지지 그것 가지고 백지 애만 터지고 속 썩이는 것이나  유익하지 실은 냉정스럽게 따지면 아무 유익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녀 낳을 여자는 이제 더 없고 자녀 낳을 남자는 차차 없어지고  나중에는 아기 낳을 사람이 없어 인종이 끝납니다. 인종이 끝나요.

 그것 뭐 그런 것보다도 자식 하나 키우는 돈만 했으면은 늙어서 잘 살 수  있습니다. 대하시키는 사람들이야 대학 하나 시키려 하면은 뭐 얼마가 든다  하더라? 한목에 안 들어 그렇지. 뭐 그때 돈으로 뭐 사천만 원 든다 하던가 얼마  든다 하던가, 유학까지 시키면 더 얼마가 일억이 든다던가 이렇게 말해.

 말하는데 그 돈, 하나만 공부 안 시켜도 그 돈 딱 저축해 놓고서 이러면  늙어서, 요새 식모가 암만 비싸다 하지마는 돈 많이 주려 하면, 늙은이 집에는  또 와서 있지 안하려 해요. 안 하려 해도 십만 원 주는데 이십만 원 주면 설마  오지. 이십만 원씩 줄 요량하고 또 한 삼신만 원씩 생활비 할 요량하고 이래  가지고 오십만 원만 들이면 그뭐 와 가지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척척 다 하고  이럴 건데 속 안 썩힐 건데 뭐 하려고 아이 낳을 필요가 뭐 있겠소, 있기를?  아이 기를 필요가 없어.

 ○집사님 몇이나 낳았어? 몇이나 낳았어요? 얼마, 여섯? 일곱? 일곱? 봐, 일곱.

일곱 낳았는데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직까지 이 집에는 후회 안 해요. 후회  안 하고 지금 뭐 졸졸 하지마는 그것도 아직까지 속화가 덜 돼서 후회를 안 하지  속화돼 놓으면 뒤에 후회 합니다.

 이러니까 공연히 이런 것 저런 것 하지 말고, 반지식론이 아니라 공부를  시키려면 하나님의 지식 공부는 위에 이만치 올라가 있고 인간 지식 공부는 밑에  따라가고, 하나님의 지식 공부가 위에 올라가고 인간 지식 공부가 뒤에 따라가야  되지 이게 꺼꾸로 돼 가지고 인간 지식 공부는 위에 올라가고 하나님의 지식  공부가 따라가니까 나중에 인간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을 왈깍 밟아서 처넣어  버리고 뭉캐버리니까 하나님 말씀 하나 기억도 안 하고 이 성경 보지도  안합니다.

 성경을 말하면 제가 뭐 아는 것처럼 삐쭉삐쭉거리며 '에이고, 그저 참 무식해  놓으니까, 우리 어머니는 무식해 놓으니까 거떡하면 성경 성경, 성경, 성경 이저  케케묵은' 이 성경을 전혀 믿지 안하는 자식이니 그 자식의 신세가 얼마나  가련해? 금생과 내세에 비참합니다.

 이러니까 그저 뭣 때문에 예수 믿는다, 뭣 때문에 실행 못 한다 그런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깨달은 대로 실행하 십시오. 그래야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고 존귀케 하고 또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손들도 다  존귀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깨달은 대로 실행합시다.

 깨달은 대로 실행하면, 실행하면 다 자기도 존귀해지고 자손도 존 귀해지요.

그러나 암만 자기가 실행해도 자식이 하나님 말씀 실행 안 하면 자식 그거는  존귀해질 수가 없어. 아무리 부모가 죄를 많이 지었서도 자식에게"넘겨 주지  안하고 또 부모가 아무리 의를 많이 행했어도 자식이 죄를 지을 때 또 의를 넘겨  주지 안해요.

 이러니까 어쩌든지 깨달은 것을 실행하도록 합시다. 깨달은 것을 실행하면 하나  깨달았는데 하나 실행하면 뭣 줍니까? 하나 깨달았는데 알고 있는 것 하나  실행하면 뭣 주지요? 두 가지 줍니다. 뭣 줍니까? 그다음에 깨달을 수 있는 것  하나, 또! 실행할 수 있는 능력 하나. 이것 둘 줍니다.

 또 둘 깨달은 것 둘 실행하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또 그다음에 깨달을 수 있는  행할 수 있는 능력, 능력은 주는데 능력은 자기에게 왔는데 능력은 안 쓰면 안  돼. 능력 어째 씁니까? 능력을, 능력을 저 밖에 있는 걸 들어다 씁니까,  어쩝니까? 자기가 깨달은 그대로 깨달은 그것을 인정하고 달라들어 행하면 돼.

달라들어 행하면, 행하면 능력 쓰는 거라.

 앉은뱅이 삼십팔 년 된 병자를 주님이 일어나라 할 때에 그것 그 믿음으로  일어났는데 일어난 것이 뭐 수속이 있었소 순서가 복잡했소? 일어나라 할 때에  그 말씀을 믿고 어짜니까 됐습니까? 일어나니까 일어나져 버렸소. 일어나니까  일어나졌어. 깨달은 대로 행하니까 행 해진다 그말이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행하니까 행해져. 그것이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이제 둥록한 수가 삼천이백일곱이 됐습니다. 지난밤에는 기도 하러 온  사람이 칠백칠십삼 명이 와서 기도하고 갔습니다. 또 장로님들 가운데에는 여덟  분이 기도하고 가셨는데,  여기 와서 기도하고 가신 분이 여덟 분인데 우리 저 장로님 한 분, 여러분들이  모르는 장로님 한 분, 보배로운 장로님 한 분이 우리 교회 왔습니다.

 지금 자꾸 내가 소개하려 하니까 딱 숙여 가지고 안 나타나려 해서 그래 있는데  이다음에는 시무 장로로 이제 우리가 교회에서 다 인정을 해 가지고 시무 장로로  역사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 여러분들 모르는데  새벽기도 한 번도 안 빠지고 꼭 그 가족이 나옵니다.

 지난밤에는 ○○○, ○○○, 이 장로님들 여덟 분 와서 기도했습니다.

 어제 ○○○장로님 만나 가지고, ○○○장로님이 '요새 장로님 새벽에 안  보이데' 이 러는데, 나는 봤거든. 그래 '어제 아침에 왔습니다.' 내가 이러니까,  '내가 딱 요래 가지고 있는데 어찌 봤습니까?' '목사가 장로님들 오시는가  싶어서 고대 고대하는데 안 볼 수 있소?' 내가 장 설교하며 자꾸 이래 쌓는 것은  행여나 오는가 싶어서 지금 저 뒤에 예배 마칠 때까지 장 뒤를 보며 설교를  하요, 오는가 기다려서. 그러니까 앉은 걸 보는 거 아니라 오는 걸 내가  본다고요.

 그러니까 그 ○○○장로님이 '아이구, 목사님이 어떻게 저를 그래 딱 머리  숙이고 있는데 그래 봤습니까, 못 보신 줄 알았더니마는.' 그뭐 안 보일 리가  있습니까? 자기의 어떤 참 못 견디는 친구가 오려 해도 눈이 시도록 이래  기다리고 있을 건데 장로님들이 오시는가 새벽기도 오는가 싶어서 얼마나  기달피는지, 자꾸.

 오늘 보니까 ○○○장로님도 저 뒤에 앉았어. 이래 털럭털럭 하며 이래 오는데  어떻게 좋은지 왜? 그분들이 '양무리의 본이 돼라' '양무리의 본이 돼라'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십 분 기도 후에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권찰회가 없는 날인데  권찰회 특별히 모이니까 잠깐만 참석해서 한 그저 오 분 만이면 됩니다. 오  분이면 권찰회는 끝납니다. 그러니까 십 분 기도 후에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녜, 장로님들도 참석하시고. 반사들도 다 참석하십시오.

참석하는 것 다 좋습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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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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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흰옷/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3. 12. 4.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6.01.12
10 흰옷/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3. 12. 4.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9 흰옷/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3년 50공과 선지자 2016.01.12
8 힘써야 할 다섯 가지/ 마태복음 28장 18절/ 1980. 7. 22. 화새벽 선지자 2016.01.12
7 하나님을 영화롭게/ 로마서 1장 18절-23절/ 1983. 9. 13. 화새벽 선지자 2016.01.12
» 하나님의 능력 받는 법/ 에베소서 1장 18절-22절/ 1983. 11. 9. 수새벽 선지자 2016.01.12
5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고린도전서 2장 3절-5절/ 1983. 11. 19. 토새벽 선지자 2016.01.12
4 하나님의 원수-범죄케 하는 것/ 민수기 31장 1절-8절/ 1983. 7.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2
3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요한일서 3장 1절/ 1983. 11. 1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
2 하나님의 진노(징조)와 우리 할 일(회개)/ 요한계시록 12장 10절-11절/ 1983. 6. 17. 금저녁 선지자 2016.01.12
1 하나님이 복 주시는 조건/ 신명기 28장 1절-68절/ 1983. 6. 19.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