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대해서

 

1985. 2. 8. 금새벽 

 

본문 : 신명기 28장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선지자선교회  28장 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전에도 많이 해석을 했는데 자꾸 잊어 버린다 그거요. 잊어 버리면 안  됩니다. 잊어 버리고 안 잊어 버리는 것은 안 잊어 버리는 방법을 말했는데,  야고보서 1 장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듣기만 하십시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가 여게 잊어 버린다 말은 이 말씀을 그만  기억 안하고 버린다는 그것보다도. 고 밑에 해석이 있는데, 실행하는 자가  잊어버리지 안하지 실행 안하는 자는 아무리 외워도 잊어 버립니다. 왜 그러냐?  외우면서도 그 말씀과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입으로는 자꾸 외우는데 외우면서도 그 말씀과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기억하느냐? 기억하는 방법은,  이 말씀을 잊어 버리지 안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야고보서 1장 25절에  말씀하시기를 실행하는 그것이 기억하고 잊어 버리지 않는 방법이지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자기가 자꾸 외워서, 암송하듯이 자꾸 외워서 하는 그것 가지고  잊어 버리지 안하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잊어 버리는 것은 문서로 되어 있는 이 지식도 잊어 버리지 안해야 되지마는  지식만 잊어 버리지 안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요 지식과 지식 안에는 내재적  영감이 있기 때문에 지식과 그 안에 있는 영감을 같이 잊어 버리지 안해야 되는  것인데 지식과 영감을 같이 잊어 버리지 안하고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실행하는 방법 이거 외에는 잊어 버리지 안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행하는 것이라야 되는데 28장에 얼마나  말씀했지마는서도 벌써 잊어 버려서 물으면 무슨 말 인지 잘 모를 거라  그말이오. 그러면 또 헛일입니다. 잊어 버리지 안하고 성경을 읽을 때에 그만  이 말씀을 생각하면 쫙 깨달아지고 또 자기가 이 말씀을 읽을 때도 생각할 때도  자꾸 깨달아져서 자기에게 지식과 영감이 같이 자기에게 와야 됩니다.

 성경이, 예를 들면은. 자. 성경이 몇 꺼풀로 되어 있다고요? 몇 꺼풀로 되어  있어요. 저 뒤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여러분들, 비유컨대 옥파, 여기 저  양배추, 양배추가, 이렇게 보면은 양배추 속에 알맹이가 들었습니까 잎사귀만  자꾸, 잎사귀 떼다 보면 알맹이 있읍디까? 없습니다. 그러면. 잎사귀가 모여  가지고서 이런 커다란 이런 양배추가 됐어 이러니까 '아, 이거 아마 잎사귀  안에는 뭣 이 알맹이가 주먹 덩이만한 것이 들었지' 싶어 보지마는 아니야  잎사귀 다 떼면 양배추 다 없어집니다.

 그거 모양으로 이제 성경은 몇 꺼풀로 되어 있느냐 하면은 두 꺼풀로 되어  있오, 두 꺼풀. 성경은 두 꺼풀로 돼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지식 꺼풀, 또  지식 꺼풀 안에는 또 뭐입니까? 예? 영감 꺼풀. 그러면 영감과 지식, 지식과  영감이 둘로서 되어 있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둘을 다  가지고 있어야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은 성경  말씀을 기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씀은 자기에게 살리는 역사를 하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를 교만케 하고 또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게 합니다.

무익해요.

 여게 '네가' '네가' 하는 것은 우리 각자들에게 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네 하나님이라 말은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는, 앞으로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 만들 실상의 제물이 있으니 실상의  제물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세례 요한이가 '참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책임 질 어린 양을 보라' 예수님을 보고서 그렇게  예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고 몰랐지마는서도 세례 요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가지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인간의 모든 원죄 본죄  이것을 해결짓는 것은 실은 신인 양성 일위이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만이 화목 제물이 되고 속죄제가 되고 이렇게 되는데 이  예수님을 하나 모형해 가지고서 구약 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  가지고서 그렇게 됐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짐승 잡아 가지고 예수님을 모형하고 예수님을  예표한 그 하나님의 계약을 믿고 짐승을 잡아 가지고 제사를 드린 그런  사람들의 구원은 미결로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할 때에  그때 다 미결로 있던 것이 이제는 완전이 되어졌다 하는 그 표시로서 무엇이  나타났다 했지요? 그 표시로서 무엇이 나타났습니까?  첫째 성전 휘장이. 사람이 손 대지 안하고 위로부터 갈라졌습니다. 그 표가  이제는 구약에서 짐승 잡아 가지고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 모든 원수 되어  있는 것이 해결된 그 표가 성전 휘장이 갈라짐으로써 표시가 됐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리워져 가지고 성소까지는 제사장들이 들어  가지마는서도 지성소에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비로소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갔습니다. 만일 잘못 들어가면 죽어 버립니다. 이랬는데, 그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못박힐 때에, 운명할 때에,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 하고서 운명하실 그때에 그 휘장이 사람이 손 대지 안했는데  위로부터 견고하게 만들어 놓은 휘장이 쪽 짜개졌습니다. 짜개져서 그때부터  그만 통해진 그것이 표시가 됐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바위가 갈라졌습니다. 부근에 있는 바위들이 다  갈라졌습니다. 그 갈라진 것은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원죄 본죄 하는 이 모든  죄악의 이 세력이 깨지는 것을, 죄악의 세력이 깨지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로만  깨지는 것을 표시해서 바위가 다 갈라겼고,  또, 그 다음에는 하나는 뭐이냐 하면은 그때 햇빛이 가리워서, 가리워서  깜깜하게 햇빗이 없이 어둡게 됐습니다.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세상에 예수님이  빛이 되신 빛이 돼서 오셨다가서 운명하실 때에 빛이 없어겼다는 그 증거를  놔두고, 증거하고서 그 다음에는 다시 광명이 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에 광명이 왔습니다.

 또 하나는 부근에 있는 무덤이 열렸습니다. 무덤이 열리고 오래 전에 모든  죽은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무덤이 갈라지고 자던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자던 모든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라고 예수님이  부활하셔 가지고서 이렇게 에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그때에 자턴 성인들이  일어나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것의 표시로 사람이 손 대지 안하고 이렇게 표시로 이 증거를 나타내고 난  다음에는 다시 근본으로 다 돌아갔습니다.

 그러기에, 구약 성도들은 짐승을 예수님의 모형으로, 예수님의 표시로, 예표로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우리 대속하실 그것을 미리 예표하는 그 예표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낼 때에 하나님이 그 구원을 주시고  역사하셨지마는서도 미결로 되어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그매  완성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온전케 하러 왔다 그 말은 율법에 구약 성경 가르친 것이 다 온전을  이루지 못했는데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온전을 이룬다는 그런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하나님이 없습니다. 성경에 불택자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불택자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그 말은, 그들은  그러면 딴 하나님이냐 하면 딴 하나님이 아니고 이 하나님이지마는,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책임지시고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안 믿는 불택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창조해 가지고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것을 먹고 이렇게  살고 하나님의 법칙은 지키지 안하고 이라다가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이 그것이 불택자들이 받는 일이요 불택자들의 하나님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택자들에게는 이렇게 심판의 하나님이요 세상 일반적 자연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이요, 우리 하나님은 자연 은총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었는데 자연 은총을 주신 이 하나님이 자연 은총은 변화시켜서  우리에게 주시고 또 신령한 그 은혜, 특수 은혜라 하는 것은 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도 주시고 또 중생의 영생도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도 있고 모두  다 기본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기본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 그말이오.

우리에게는 기본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성경에 '너희들이 전에는  하나님도 없었고 소망도 없었고 하나님의 권속 밖의 사람이라' 하는 그 말은 이  특수 은혜가 없었다 그말입니다. 그라다가 우리가 중생되고 예수 믿기 시작한  그때부터 특수 은혜의 하나님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잘 요거  구별해서 들어야 돼요.

 그러면, 특수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차례됩니다. 똑똑히 들어요. 특수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차례 됩니다. 이거 여러분들이 이거 알기가 힘이드는  것이 어디 신학생이라고, 신학 박사라고 아는 것 아니오. 모르는 사람들 많아.

아는 사람도 많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거요. 이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어찌  믿는지 그저 이렇게 형식만 가지고 '교회 다니는 게 믿는 것이라. 이러니까,  예수 믿는 건 불을 받아야 된다. 예수 믿는 건 뜨거워야 된다. 예수님 믿는  거는 이적을 해야 된다. 예수 믿는 거는 방언을 해야 된다' 이렇게 말하는 데.

방언한 사람도 구원이 없었습니다. 또 이적을 행하는 사람도 구원이  없었습니다. 또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도 구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또 많이 전하는 사람에게도 구원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은 '내가  말씀도 많이 전했고 내가 또 귀신도 쫓아냈고 병도 고쳤고 이런 능한 일 하지  안했습니까?' 이라니까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면서 다 쫓아냈습니다. 그것은 이 구원은 무슨 구원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기본구원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건설구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화구원. 기본구원 얻었지마는서도 성화구원 얻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몇 가지 하나님이 되느냐 하면은 두 가지  하나님이 됩니다. 그전에는 안 믿는 사람들은 자연 은총의 하나님, 이런데,  우리는 두 가지 하나님이 되는 것은 어떤 하나님이 되느냐?, 기본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되셨고, 또 두 번째는 우리의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됐습니다.

 그러면,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주신 하나님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중생되기 전에는 이 모든 자연 은총이라는 그것이 불택자들과 같은 그  자연 은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우리가 중생되고 난 다음에는 이 자연  은총을 주시되 불택자들이 가지는 자연 은총과 같은 그런 자연 은총으로 주시지  아니하시고 이 자연 은총을 변화를 시켜서 의에 속하게 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 은총을 변화시켜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변화시켜 주신  것은, 자연 은총을 사용해 가지고서 죽도록 만들지 안하고, 불택자들은 자연  은총을 먹는 것만치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거 아주 어려운 말인데, 이걸 좀  어떻게 기억하고서 주일학생들에게 잘 가르쳐 주십시오. 불택자로 있을 때에는  자연 은총을 받는 그 자연 은총을 하루 받았으면 하루 죽었고 열흘 받았으면  열흘 죽었고 칠십 년 받았으면 칠십 년 죽었고 이래 죽어서 완전히 다 죽는  것인데 우리는 이제 그런 하나님이 아니고, 이 자연 은총을 죽는 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연 은총을 주셨는데 택자들로서 중생되고 난 다음에는 자연  은총을 사용해서 죽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고 이것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대속을 하셔 가지고서 이 자연 은총을 사용함으로 영생하는  일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자연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자연 은총을  우리에게 거룩하게 변화를 시켜 가지고서 주신 하나님이요 이 자연 은총을  가지고 우리들이 건설구원을 이루도록 하시는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되셨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전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상관이 없고, 그전  하나님은 이제는 우리와는 상관이 없고, 이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으니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새로 된 두 가지 하나님입니다. 불택자들은 이  하나님을 모실수 없는 하나님. 이러면.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하나님이  불택자들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없고' 이랬다  말입니다. 너희들에게 하나님이 없다 이랬소. 없고, 또 두 번째는 어떤  하나님을 주셨느냐 하면은 이 하나님이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모든 자연 은총을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연 은총을 사용해  가지고서 영원히 죽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낡아지지 안하는 이것을 이루는  데에 이용하는 이 모든 자연 은총으로 이렇게 속해 가지고서 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하나님은 불택자에게  없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됐습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은  이 하나님은 뭐 택자이면은 다 꼭 같은 하나님입니다. 택자에게는 꼭 같은  하나님이 됐고, 이제 두 번째로는 이것은 건설구완을 이루어 추시는  하나님이니까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또 건설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첫째 아담에 속했고 이 자연 은총에 속한 이것을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  그러면.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되셨습니다.

 그러면, 자연 은총을 변화시켜서. 우리가 밥을 먹어도 과거에 중생되기 전 밥  먹는 것은 그것은 죽기 위해서 먹었고. 중생되고 난 다음에 밥먹는 것은 이  밥을 먹음으로써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 밥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밥이 우리에게 달라졌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 밥을  먹어서 건설구원을 이루도록 그러면 이 모든 자연 은총에 속하는 것도 다  이것도 변화시켜 주시고, 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것도 다 변화시켜 주시고,  또 이제 있는 것은 아주 범죄로 더러워진 것은 변화시켜 주시고 또 없는 것은  새로 추가해서 구비해 주시고 이런 하나님으로 된 것이 건설구원을 위해서 우리  하나님 되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이 몸도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일반  은총에 속한 것들인데 이 몸이 변화를 받습니다. 또 우리의 마음도 변화받고  우리의 지식도 변화반고 변화를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 또  건설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 고렇게 여러분들이 구별을 해서 기억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이라는 이 말을 다른 말로  하기를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시는, 역사라 말은  일한다 말입니다. '아, 그 역군들이 많구나.' 일군들이 많다 그말이오. '그  역사가 크다' 그 말은 그 일거리가 크다 그말입니다.

 왜 역사라 말하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일반 교계에 나가면 혹 다른 신학  서적을 불 때에, 신학 서적이나 조직 신학이나 그런 모든 신학 서적을 볼  때에는 그때에 역사라는 말이 많이 납니다. 역사라 하는. 하나님의 역사라  하나님의 역사라 그래 하지 않습니까? 역사라는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모르면은 그때 그 책을 읽어도 뜻을 모르게 될 거라 말이오. 그래서,  역사라 말은 내나 역사한다 일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 '아,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라.' 또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섭리라,  하나님의 섭리라' 이렇게 이 단어를 알아서 이것도 또 알아서 말뜻을 알고  기억해야 설교를 알아 듣지, 처음 온 사람들은 이 설교를 잘 못 알아 듣는 것은  단어도 모르지 또 단어의 뜻도 모르지 또 진리도 새로 배우지 이래 놓으니까  모른다 그거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는 기본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저 우리가  감사하고,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 가지로 발표했는데 이 기본구원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 이 주신 것을  내가 믿고, 믿고 감사하고,믿고 감사함으로써, 이 기본 구원을 주신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게 앞으로 건설구원을 이루어 주신다 하는 것을  기본구원을 기본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건설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그 속에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되는데, 역사의 하나님이 여게  '네가 네 하나님' '네 하나님' 했는데 네 하나님이 구약 성도들이 구약 때에  믿는 하나님과 우리가 지금 믿는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입니까 다른  하나님입니까? 예? 다른 하나님입니다. 구약에는 미결로 되어 있는 하나님을  믿었고, 우리는 이미 완전히. 완전히 완성을 한, 완성을 한. 온전케 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은  신구약 성경으로 계약을 선포해 놓은 하나님. 이러기 때문에, 신 구약 성경의  계약적 하나님이라 그말이오. 계약적 하나님이라. 이 계약대로의 하나님이라.

이러기 때문에 계약을 어기면 하나님이 안 돼요. 이 계약대로의 하나님이라 그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 말은 계약대로의 하나님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됐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참 지극히  크시고 무한하신 분인데 이분을 우리가 암만 우리 하나님이라 하지마는서도  그분과 우리가 접선을 어떻게 하게 되느냐? 그분과 우리가 관계가 어떻게  맺어자느냐? 아무리 우리 대통령 하지마는서도, 어떤 분이, 어떤 목사가 대통령  만나러, ○대통령 때에 대통령 만나러 한 달 동안을 가서 공을 들여도 못  만나고 말았답니다. 그랬는데 지금 ○대통령은 그때 보다는 좀 다른 것은 자꾸  백성들을 많이 만날라고 애를 써서 이라니까 만나기가 쉽다 그말이오. 그것이  좀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런데 하나님 접촉하기가 심히 어렵다 말이오. 어떻게 그 지극히 큰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신 그 지극히 큰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접할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 암만 우리 하나님으로 돼 있지마는서도 뭐  접선이 돼야 뭐이 돼지지 접선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독교 가운데서도 신학자들 가운데에 여러 사상을 가진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칼 바트라 하는 그 신학자는 세계에 유명한 신학자인데 그 신학자는,  이단자입니다. 이단자인데, 여게 한국에도 지금 그 신학을 가지고서 지금  예수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신학자는 아주 그럴듯 합니다. 그  신학자는 위기 신학이라, 위기 신학이라 이라는데. 하나님과 우리와의 접선이  됐느냐? 안 됐다. 안 됐느냐? 됐다. 될듯 될듯 될듯 이래 됐느냐 안 됐다 안  됐느냐 됐다 자꾸 이래 긍정 부정 긍정 부정으로서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이렇게 가지고 있다 이라니까, 항상 그저 하나님을 접선해서 좋을 뻔 하다가 또  떨어져 버리고 하나님을 만날라 하다가 또 떨어지고 자꾸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과 이렇게 밀접한 결합이 된다는. 그것을 그들은 말하지 안하고 그렇게  위기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고 매력을 가지고서 사람들이 많이 끌립니다.

 이래서, 대게 여게 지금 미국에서 큰 신학교라고 뭐 공부 많이 한 그런  신학교의 주장들은, 칼 바트가 아주 그 사람이 지식이 능하고 말 잘 하고 이  세상 학문이 능하기 때문에 거게 쏠려 가지고 지식주의자들은 전부  바트주의에게 다 끌려갔습니다.

 여기 한국에도, 내가 그거 말을 하지 않숩니다. 뭐 자기네들 자랑하고 있는 그  학교의 교장이니 모두 하는 사람들 미국서 학위 받아 가지고 왔는데 학위 받아  가지고 온 가운데에서 다 바트가 주장하고 있는 그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바트 사상을 긍정하지 안하면, 긍정하지 안하면 받아  들이지 안하면 학위를 안 줍니다. 그만 그어 버리고 안 줘요. 그러니까, 학위  받았다는 것은 알고 보면은 그는 바트 신학을 인정한 사람이라 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무시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박사면 제일입니다.

 이래서 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셨는데, 우리 하나님이 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접선할 수 있느냐? 접선할 수 있는  것은 신구약 이 계약이 맺어졌기 때문에, 이 신구약 계약을 보면은 이 계약에  '요라면 하나님과 접선할 수 있다. 요라면 하나님과 영원히 동행할 수 있다.

하나님과 떨어지지 안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실 수가 있다. 네가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밀접한 결합을 가질 수 있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이 계약이 됐기 때문에 계약대로만 하면 된다 그말이오.

계약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처음에 깨달은  사람은 참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뭐 얼마나 감사해야 될런지. 뭐 그 감사를  뭐 영원히 해도 참 그 감사가 모자라지, 영원히 해도.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만 되시고 이 계약을 선포해 주지 안했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접선할 도리가 없습니다. 접선할 길이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을 접선하게 된  것은 이 계약을 우리에게 선포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계약 대로만 하면  당신을 접선할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러면, 계약대로만 말하면 접선할 수가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신 것은 어떻게 돼 가지고 우리 하나님 됐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우리의 하나님 됐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이가?  예? 이름이 ○○○이라? 예? ○○○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우리 하나님이  되셨지? 예? 예수님의 대속이 뭐인데? 예? 예수님의 대속이 뭐이지? 그래.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됐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보면은  전부 예수님의 대속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하면은  입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뭣이 왔다.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내버리면 안 되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모시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무슨  은혜 무슨 은혜가 온다.'  언제 새벽 기도 인도하는 사람보니까 그 사람이 똑똑히 구별했어요. 예수님의  대속,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우리에게 주셨고 이 또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사데 교회에 어떻게 받은  것이라는 그것을 해석을 하면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들었어. 잘 들어서 잘  깨달았다 그말이오.

 어떻게 받은거, 내가 들었는데, ○○○조사님의 사위가 그랬어. ○○○ 조사님  사위 여기 있어? 손 한번 들어 봐. 사위 없나? ○조사의 사위 없오, 여게? 안  왔어? 예? ○조사 사위 없어? 사위가 꼭 요새 차 타고 꼭 새벽으로 여기, 새벽  기도 올라고 자가용도 하나 사 가지고 온다 하는 말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안  왔는가? 새벽 기도회 며칠 인도했는데, 인도 하고 난 다음에 또 설교도 내가  한번 시켰는데. 그만 그라고 난 다음에 교만해졌나? 와 안 왔노?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또 설교 한번 시키면 제가 아주 준비만 하면 되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준비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준비를 하면은 은혜를 줍니다.

이래 가지고 또 설교할 때에 은혜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됐다' 하고서  설교 한번 하고 교만해서 꺼꾸러지는 자 있고, 또 부흥회 한번 인도하고 나서  교만해서 꺼꾸러지는 자 있고, 평생 부흥회를 계속해도 항상 무익한 종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은 것뿐이다 하는 그런 종은 평생 권능있는 종으로  계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저 사람이 아닌가 여겼는데, 저 뒤에 안경 쓴  사람, 저 사람 아니가? 안 왔나? 그 사람 보니까 그렇게 고걸 좀 가르쳐요.

 우리가 '어떻게 받은 거' 이랬는데,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 하나님  되신 것은, 대속으로 됐다 말은 사죄로 됐다 말이요 칭의로 됐다 말이요 화친의  이 공로로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대속의 하나님이 되셨는데 어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대속의  하나님이 되셨는데 몇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돼 가지고 있습니까? 손 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하나님으로 우리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몇 하나님으로? 높이 버뜩 들어야 내가  보이지. 좀 이래 가지고, 이래 이래 가지고 한 번 들어요. 이래 이래 가지고  이래 들든지 이래 들든지. 안 보여요. ○○○집사님 좀 높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안 드는구만. 들어 봐요. 손가락 들어 봐요. 손가락으로, 몇이? 둘로  들어서, 몇 가지 하나님이 됐어요? 세 가지 하나님, 또 두 가지 하나님,  이런데, 아마 세 가지 하나님이나 두 가지 하나님이나 마찬가지인데 조금  해석을 잘못 들은 것 갈애.

 두 가지 하나님인데 한 하나님은 뭐이냐 하면은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 또  둘째는 성화구원을, 건설구원을 주신 하나님. 그런데. 건설구원을 주신  하나님은 어떤 역사를 하느냐 하면은 이제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자연 은총에  속한 이것을 다 변화시키는, 변화시켜 주시는 그 하나님 또 새로 모자라는 것을  더 추가시켜 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됐으니까 고거 둘로 봤으면 이  손가락 셋으로, 아는 사람이 말하는데 요 셋으로 가리키는 것은 그래 셋으로  말한 모양이고, 둘로 가리킨 사랑은 이 둘로 가리켰는데 그러면, 둘로 가리키면  제일로 낮습니다. 그게 한가지라. 사람을 삼분설로 말하기도 하고 이분설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분설로 말하는 것도. 맞고 삼분설로 말하는 것도 맞는데  삼분설로 말하는 것이 기억하기 좋고 똑똑하고, 그러니까. 삼분설로 말하는  것이 장점이 있고 이분설로 말하는 것이 장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여게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라' 이래  말씀하신 것은 한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 또  건설구원을 주신 하나님. 건설구원을 주신 하나님이라 말은 다른 말로 하면은  무슨 하나님이라고요? 역사, 역사의 하나님.

 자, 따라합시다. 역사의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 녜. 역사의 하나님 이라 말은  내가 이렇게 움직여서 역사할 때 내가. 말하는 것도 역사 아닙니까? 말하는  것도 혀를 움직이고 정신을 움직이고, 내가 또 생각하는 것도 역사 아닙니까?  생각하는 것도 그 정신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활동해. 정신 활동,  마음 활동, 감정 활동, 이성 할동, 기억 할동, 또 총명 활동, 이 모든 육체  활동, 혀 할동, 눈 활동. 귀 활동 모두 활동 아닙니까? 그러면, 활동이 역사라  그말이오.

 역사의 하나님. 내가 역사할 때에 이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는 이거, 역사할  때에 내게 역사해 줄라고 나를 역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 기본구원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 필요한고 하니  기본구원을 주신 하나님은 이미 우리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고 이거 믿으면  되고. 믿고, 그래 사실 인정하고 믿고 바라보면 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의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역사의 하나님.

 역사의 하나님이 필요한데 이 역사의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이 역사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셨습니까? 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 해서  역사의 하나님이 됐습니다. 그러면, 대속의 공로로 역사의 하나님이 됐는데  대속의 공로, 몇 가지 공로로 역사의 하나님이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라켜  보십시오. 저 뒤에. 뒤에도 모두 예, 얼추 이거는 다 말하네요? 이 세 가지. 세  가지 대속의 공로로써 역사의 하나님 됐습니다.

 이러니까 세 가지 대속의 공로로 역사의 하나님이 되셨는데 이 역사라 하는  것은 실상입니까 말입니까 생각입니까? 실상이라는 것은. 역사라 하는 것은 그  실상으로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글로 되고 그래 되는 것입니까? 역사라 하는  것은 실상으로 되는 것입니다. 실상으로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실상으로 믿고 있지 안하면은 이 역사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기본구원의 하나님이, 기본구원의 하나님도 세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이 되셨고 또 역사의 하나님도 이 세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이 됐는데 역사의 하나님이, 내나 기본구원의 하나님은 변동이 없습니다.

변동이 없고 역사의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됐다가 안됐다가 됐다가 안 됐다가  이래 됩니다. 역사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됐다가 안 됐다가 됐다가 안  됐다가 이래 됩니다.

 이래서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어 달라. 내가 들어가면' 문 열어  달라고 주님이 말하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들어오지 못했으니까, 문 밖에  쫓겨나가 있으니까 이제 '문을 열어 달라. 날 좀. 내가 들어가구로'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 들어올라고 하는 것은 역사의 하나님을 쫓가냈다  말이오. 역사의 하나님을 쫓가냈으니까 역사의 하나님을 환영해 달라 그말이오.

 역사의 하나님을, 여러분이 잘못 들으면 안 돼. 역사의 하나님을 쫓가냈다 그  말은 역사의 하나님을 내가 쫓가낸 것이 그분이 능력 없어 쫓겨나갔습니까?  능력이 없어 쫓겨나간 거 아닙니다. 역사의 하나님이 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되기를 이 세 가지 때문에 됐지요. 알겠습니까? 사죄와 칭의와 화친 이 세 가지  때문에 됐다 그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공로가 없으면, 이 역사의  하나님이 오시면 이 세 가지 공로가 없으면 그 사람이 죽어 버립니다. 죽여  버립니다. 이 역사의 하나님이 이 세 가지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지 이 공로가 아니면 죽는다 그말이오.

 왜? 여러분들 지금은 거짓말 그런게 많기 때문에 비유도 안 되지마는서도  경관이 말이지요, 경찰이, 경찰이 노름하는 사람 보면은 잡아 가지고 가야  됩니까 안 가야 됩니까? 잡아 가지고 가야 되지요. 요래 묶어 가지고 가야 된다  말이오. 묶어가야 되지, 요새는 민주주의 법이 와 가지고 썩었어. 더러워졌어.

일본 나라 법이 좋아요. 이런데, 그저 그만 경찰이 와 가지고서 노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 수갑 질러 가지고 갑니다. 이래 그만 묶어 가지고 간다  말이오. 요새는 묶을려면 검찰에게 구속 영장을 신청해 가지고 또 그래 허락이  나와야 묶고 이렇다 그말이오. 옛날 법은 안 그래요.

 이. 건설구원의 하나님은, 이 건설구원의 하나님이 세 가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건설구원의 하나님인데 세 가지 공로를 실지로 입고 있을 때에, (또  조는구만. 졸면 안돼. 여러분들이 알아 듣기가 힘이 든다 그말이오. 이거 못  알아 들으면 예수 믿어야 덩덕군 예수라. 그게 소용이 없어. 공연히 예수  믿는다 하지. 나중에 가 보면 풀과 짚으로 집을 지어 놨지. 다 타버리고  건설구원이 이루어진 거는 없다 그거요.)  건설구원을 주시는 이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인데, 실상 역사, 역사는 실상  아니오? 역사는 실상인데 실상의 내 하나님이 돼야 된다 말이오. 실상의 내  하나님이 되는 데에는 이 예수님의 대속을 실상으로 입고 있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자기가 실상으로 입고 있어야 이 역사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으로 역사해 주시지, 전능이 역사해 주시고, 전지가 역사가 해 주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주권자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지, 실상의 하나님으로 내게  와 가지고서, 실상의 하나님, 네게 와 역사해 주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되어지는 데에는 우리가 이 공로를 실상으로 입 고 있어야 된다 말이오.

실상으로 입고 있지 일으면 안 돼요. 예수님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지식적으로 입고 있어도 안 돼. 실상으로 입고  있어야 되지. 실상으로 입고 있지 안하고서 지식적으로만 입고 실상으로 입고  있지 안하면.

{{}} 실상으로 입는 것은 어떤 것이 실상으로 입는 것인가? 사죄의 공로를 입고,  칭의의 공로를 입고. 화친의 공로를 입는 것인데, (아, 이거 뭐 못 알아  들으니까 잠이 자꾸 오니까 이거 큰일났네? 알아 들어야 되는데.) 실상의  공로를 입는다 그 말은, 사죄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는 것은 뭐이냐? 사죄라는  것은 이제 죄를 대형해서 죄 없는 자로 사는 것이 사죄의 공로를 입은  것입니다. 죄 없는 자로 사는 거. 죄 없는 자로 산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되지 어기는 일만 있으면 죄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상 어기는 일이 없을 때에 주님은 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할 수가 있지 말씀을 어기면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가  '필요가 있는 것은 자기가 만일 이 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연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에 하나님이 오시면  그사람은 죽어야 돼요. 여러분들. 빛이 오면 어두움은 싹 녹아져 버리지  안해요? 하나님은 예를 들면 비유컨대 빛이시요 죄는 어두움이기 때문에 오시면  죄가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출애굽기 33장에 보면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사를 보낼 터이니까 같이 가거라. 천사가 가서 내 심부름을 해서 너거 모두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모든 대적들을 다 쳐서 물리치고 해 줄 터이다.' '와  하나님이 싼 가실랍니까? '나는 갈 수가 없다. 내가 가다가는 너거를 중간에 다  죽여 버릴 터이니까 내가 갈 수가 없다. 왜? 너거가 패역한 자라서 같이  가다가서 딱 범죄하면 내가 딱 죽여야 되니까 너거를 도중에서 전멸할 터이니까  내가 갈 수가 없다' 이래서 하나님이 같이 못 간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때 회개를 하고 '절대 우리가, 만일 죄 지었으면 우리, 죄 지은 자 있으면  우리가 죽여 버릴 터이고 이럴 터이니까,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안할 터이니까  같이 가십시다. 그래 가지고서 같이 가다가서, 같이 가다가 또 그들이 죄 짓기  때문에 함부래 이만 삼천 명이니 그안 이래 다 몰살시켜 버리니까 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그라고 난 다음 도로 피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고 있지 안  할 때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를 전멸시켜야 되기 때문에 실상의  공로를 우리가 입고 안 있을 때에는 예수님은 피해 버립니다. 예수님이 피해.

우리가 실상의 공로를 입지 안할 때에는 피합니다. 피하는 그것을 가리켜 내가  아까 말하기를 쫓가냈다 그랬습니다. 실상의 공로를 입지 안하고 실상의 공로를  벗어 버리는 것, 실상으로 벗어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쫓가내는 것이라 말이오.

예수님을 쫓가내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와 나가시느냐? 당신은 빛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자를 죽여 버리겠다 말이오.

 순경이 노름하는 사람을 보면 잡아 가지고 오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자기  아들이 그 방에 노름을 하는 줄 알면은 그 순경이 들어가면 아들도 잡아 가지고  가야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순경이, 애비가 자식을 묶어 가지고 간다는 것은,  가야 되기는 그게 옳은 건데 그리 못 하면은 그만 거기'가는 데 '아마 그놈이  가서 그 안에 지금' 누구 누구 있더노 이래 물어서 이랬으면은 자기 아들도  있으면은 아들도 묶어 가지고 가야 될 터이니까, 물어 가지고 가야 될 터이니  이거 부득이 이래 가지고 묶어 갈 수 없이 이러니까 이제 가 가지고 혼날린다  말이오. '아, 경관 온다 하더라. 저기 경관 온다 경관 온다 그래라.' 경관 온다  하니까 다 도망 가 버리고, 도망을 치구로 해서 그저 노름하는 걸 없애 버리고  해산을 시켜 버리지 가 가지고 묶어 갈 수가 없는 것처럼.

 이렇게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딱 멸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만 육체 멸해  버리고 죽여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그만이기 때문에 당신이 자꾸 피해 주신다  그말이오. 피해 주시고,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시고저  원하지마는서도 역사하실라면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있어야 되는  것인데 대속의 공로를 벗어 버렸으니까 와서 역사할 수가 없으니까 부득이  피해서 입을 때까지 기다리고 섰을 수 밖에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문을  두드리라 말은 입어라 그말이오.

 그러면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은, 사죄를 입는 것은 어떤 것이 사죄의 공로를  입는 것이냐 하면은 말씀을 어긴 것이 없어야, 말씀을 어긴 것이 없어야 사죄  공로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라면, 말씀을 어긴 것이 없어야 되는데 말씀을  어긴 것이 자기가 있으면 어짤랍니까? 있으면 없을 수 없는 인간이라 말이지.

그러면. 아무리 이래 해도 또 실수를 한다 그 말이오.

 나도 어제 며칠 전에 그 사람이 어렵다 해서 동정한다고 이래, 동정한다고  이래서, 그 사람을 동정해야 되겠다 하고서 동정했는데, 동정하고서 동정할  준비를 다 해 가지고 딱 이래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딱 읽으니까 그만  내게 그게 떠오른다 말이오. '네가 나한테 언제 네가 이런 약속기도를 했는데  약속 기도를 해 놓고 네가 또 이런 일 하느냐?' 약속 기도 했다는 것이 딱  생각이 났다 말이오. 이래서 내가 어제 혼이 났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구역장도  불렀고 그 본인도 부부를 불렀고 이래 가지고서 불러 가지고서 또 몇 번이나 그  얘기를 해 가지고서 이것을 하나님 앞에 이 죄를 짓지 않을려고 이랬는데  아직도 께끄름합니다.

 께끄름한 것은, 내가 그래 하니까, 내가 그만 죄를 짓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나님 앞에 자복도 하고 같이 기도도 했습니다. 안 할 일을 해 놔서. 이랬으나  나는 그래 했다 말하지마는서도 내가 그 사람에게 말했는데 그 사람의 일이.

내가 그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게 돼 놓으니까 이게 또 문제라 말자지요. 사람이  말한 것은 아무리 손해가 가도 변하지 안해야 되는데 약속한 것은 변치 안해야  되는데 또 그 사람에게 안하면 변치 안해야 되는 그 죄를 범하니까 변치 안해야  되지 하나님께 범하지 안해야 되지 이라기 때문에 이거 고민이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어제 이것을 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이걸 좀 해 줘라 이래 가지고  이래 말하다가 그 문제가 해결이 아마 된 거 같습니다. 된 거 같은데  아직까지도. 오늘 인제 그거 엊저녁에 적어 놨어. 이 문제 해결이 됐는데.

 그거 뭐이냐 하면은, 어떤 거냐 하면은 그 사람이 내가 아주 신실히 본  사람인데 그만 이 사람이 어떻게 하다가서 손해 갔다 말이오. 손해 가가지고서  집이, 집 전세를 다 톨톨 털어 버려야 이제 되는데 이걸 털면 저 먼데로,  없으니까 저 먼데로 가야 되니, 그게 나는 지금 하나님의 종이 될까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돈이 삼백만 원이라. 이래서, 그 집에 있기는 있는  것이니까, 돈 삼백만 원 빚 갚아 버리면 그 집에 있고 또 돈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거는 좀 말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 이래서 내가 말을 해 줬다  말이오. 말을 해 줄라고서 딱 그라니까, 딱 그래 전화 했디마는 가져왔다  말이오. 돈을 가지고 왔는데, 가지고 오라 해 놓고 나서 성 경을 들여다 보니까  그만 그게 생각이 떠올라 가지고서 이거 뭐 큰 고민을 가졌워니다. 이러니까,  성경봐야 우리 마음이 밝아지지 안 보면 그만 어두워져 버려요.

 이래서 그래 인제 그것을 이리 저리 해 가지고서, '나는 이제 하나님 앞에  약속했기 때문에 이거는 할 수 없으니까 이걸 어떤 사람에게 가서 말해 봐라.

그러면 어떻게 그 사람이 물어 보고, 그 사람이 어찌, 되느냐, 그 사람 어떠냐  이래 나한테 물어보라 해라. 그라면 내가, 물어보면 그 사람이 신용있고 괜찮다  이렇게 내가 말해 주는, 이것도 내가 께끄름한 것이 내가 그러면 말해 준  것이라면 내가 그때 그 사람에게 대해서 연대 보중을, 도장은 안 찍어도 내가  보중하는 게 되지 않느냐? 이러니까 또 이래도 안 되겠다' 이래서' 인제 그런게  아니라 그 사람이 서로 아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에게 한번 가서  말해 봐라. 말하면 될 거다 아마' 이렇게 해 주면 어떨까? 이것도 께끄름하기는  께끄름 해. 말 한마디 잘못해 놓고 어떻게 께끄름한지. 하나님 앞에서 다시  그런 거 안 하기로 딱 약속을 해 놓고 이렇게 그만 깜박 잊어 버리고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나는 죄가 뭐이냐 하면은 사랑을 동정하다가 내가 죄를 짓습니다.

사람을 동정하다가 다른 사람 앞에 오해 오해 뭐 참 엉망진창 같은 오해도 받고  이래 동정한다는 거, 이거 동정한다고 해 가지고서 이래서 내 죄 중에 하나는  동정하는 죄라. 그만 만나면 그만 그 사람 이래 그만 동정한다 하는게 그만  죄가 돼 가지고서 자꾸 이래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이 죄 짓지 안할 수 없다 말이오. 그 죄를 지었는데,그라면 어째  할 거냐? 그때 그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피에 고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피에  '내가 이거 잘못 됐으니까, 사하여 주시옵소서' 고하면, 이제 주홍 같고 진흥  같은 범죄라도 자기가 고하면 죄가 사함 받습니다. 사함 받으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못 들어오시지 안한다 그말이오. 못 들어 오시지 안하고 사함  받고 이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하나님에게 들어오시는데 들어와  가지고서 역사하시는데 내가 그때 사함 받고 나서 가책되는 거 다 사함 받고 난  다음에 죄를 짓지 안하면 죄 짓지 않는 자를 통해 가지고서 역사하십니다.

역사하는데. 그라다가 내가 무슨 죄를 짓는 것이 이래 봐지면 죄를 지으면  당신이, 죄를 지을듯 하면 아예 달아나 버립니다. 죄를 지을법 하면은 그만  내게 역사하시던 하나님이 떠나 버립니다. 왜? 안 떠나면 내가 망해 버리기  때문에. 그러니 하나님이 재빨리 피하신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에 위반되는 일, 성경을 어기는 일이 있었으면  사함 받고 주님 앞에 고하면 주님이 오셔 가지고 역사할 수 있는데, 어기는  일이 없을 때까지는, 어기지 안하고 할 때까지는 지극히 그분이 나와 같이  역사하시는데, 그만 어기는 일이 딱 생길라 할 때에는 그만 떠나 버린다  그말이오. 떠나 버리는 것은 뭐이냐? 그런게 하나님을 쫓가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문을 두드리니 열어 달라 그 말은 네가 하나님 말씀 어긴 것을 다  사함 받고 어서 정리해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실지로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셔 가지고서 언제까지 안 떠나고 계시느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을 때까지는 떠나지 안하시고 나와 같이 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어기면 떠나 버립니다.

 이렇지, 또 칭의라는 것은 어떻게 칭의냐 하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거  하나님께 피동되는 것이 그것이 칭의인데.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못한 것이  있으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에 고해서 사죄를 받고 다시 예수님에게  피동되는. 예수님에게 피동되지 못했던 그런 모든 것을 고해서 사함을 받고  주님에게 피동되는 일을 시작했다 말이오. 피동되는 일을 시작했으면 주님이  즉시 와 가지고서 칭의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역사하시다가, 그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능력있는 하나님이 내게 와  역사하니까 내게는 뭐 못 할 일이 없는데, 내가 피동이 딱 끊어져 버 리면.

피동이 딱 끊어져 하나님에게, 피동이라 말은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인데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지 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든지, 누구 사람에게  피동되든지, 돈에게 피동되든지, 협박에게 피동되든지 뭐 어떤 것에게  피동되든지 딱 피동이 딴 데 피동이 딱 될라고 시작하면은 당신은 벌써 나를  사랑하심으로 멸하기가 아까우니까 당신이 피하신다 말이오. 그러나, 내가  피동이 계속될 때는 일 년이 계속되든지 십 년이 계속 되든지 하루가 계속  되든지 한 시간이 계속되든지 계속되는 동안은 이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나와  같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화친이라는 것은 뭣이 화친이냐 하면은 하나님과 연결을 가리켜서  화친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거, 내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피동과 연결이 다릅니다. 피동이, 내가 마음이  하나님을 늘 생각해서 내 마음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생각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사모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또 내 성품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내  뜻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연결되어 있는 저. 피동이, 피동이 그 것이 성공이  되면 연결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무죄가 성공이 되면 칭의가 되고 칭의가  성공이 되면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화친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인데' 이 연결을 어떻게 주셨느냐?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연결을 어떻게 주셨느냐? 주님이 생명을 바쳐 죽으심으로서  연결이 됐지 그전에는 연결이 안 됐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느냐? 우리가 이제 죽어도 사죄는  우리가 모시고 있어야 되겠고, 죽어도 칭의는 모시고 있어야 되고, 죽어도  화친은 우리가 모시고 있어야 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죽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고, 또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 하고 그 피동을 옮겨서  딴 데 피동될 수는 없다 말이오.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피동이  변동될 수 없고,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과 결합된 이 결합은 이거 끊어질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래 입고 있으면 내가 역사하는 데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그말이오. '네 하나님 여호와' 이 말은, 계약의 하나님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또 대속도 되고 다른 성구도 다 이렇게 '요라면 요래 주겠다  조라면 조래 주겠다' 전부 계약적인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오늘날 네게' 하는 것도 이 대면되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돼 가지고 있지마는 건설적으로는  실상으로 내가 이 삼대 대속을 내가 입고 있을 때에만 하나님은 나와 대면할 수  있지 입고 있지 안할 때에는 대면을 못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내게 떠난 게  아니라. 내게 계시지마는서도 내게 역사로 당신이 가리웠다 말이오. 역사로  가리워 가지고서. 직접 대하면 내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리고 있다  말이오. 떠나겠다 말은 가리워졌오. 휘장이 가리워진 거 모양으로, 지성소와  성소 사이 휘장이 가리워진 거 모양으로 이래 가리워졌다 말이오.

 그런고로. 이렇게 세 가지 대속이 내게 실상으로 입혀 있고 이 실상으로 되어  있는 예수님의 대속이 내게 실상으로 되어 있을 때만이 주님은 건설 구원의  실상으로 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돼 가지고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내게  대속의 공로가 실상이 없고 말뿐일 때에는 이 말씀뿐으로만 돼 지지 역사는 안  된다 그말이오. 내가 실상으로 입고 있을 때에 역사의 하나님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실상으로 입는 여게서만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입지 안하는 데는 건설구원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입는 데에는 이미 잘못된 것은 고해서 얼른 사함 받고, 사함  받고 난 다음에 고다음에 하나님이 언제까지 우리에게 같이 있느냐 하면은  자기가 이 세 가지 대속을 범하지 안하고 이 대속을 버리지 않을 때까지는  역사합니다. 범하고 버릴 때에는 그만 주님은 내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또 주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건, 대속을 입지마는서도 자꾸  부분적으로 입지 한목 우리가 다 입을 수가 없다 말이오.'부분적으로 어느 정도  입었으면 어느 정도에 와 가지고는 역사하시고. 또, 그러면, 우리가 자꾸  입어나간다 말이오. 이 대속,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마는서도 자기 지식에  따라서, 자기 지식에 따라서 지식이 넓은 사람은 대속을 넓게 입고 지식이 좁은  사람은 좁게 입고 지식이 하나뿐인 사람은 하나만 입는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대속을 입어도 각각 다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미 대속을 입는 데에 이 대속을 범하는, 대속을  범하는 죄가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대속을 범하는 죄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 가지 죄는 그저 죄와 허물이요, 죄와 허물이라 하는 것은, 죄라  하는 것은 자기가 몰라서 지은 죄, 또 허물이라 하는 것은 실수해서 지은 죄  그것이 죄와 허물이고 또 고범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범죄는 뭐이냐 하면  자기가 알고 범하는 죄는 고범죄입니다. 고범죄는 이것을 알고 범하는 죄이기  때문에, 고범 죄는 이것이 예수님의 이 역사적 하나님이 그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할 수가 없게 되고, 이거 몰라서 범하는 그 죄는 자기는 고범죄가 아니고,  고범죄가 아닐 때에는 떠나지 안하시고, 고범죄가 될 때에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몰라서 범하는 죄는 그이에게 모르게. 주관이 몰랐기  때문에 모른다는 건 자기 주관이 모르지 주관이 주관이 몰랐기 때문에 주관이  모르는 그 범죄는 그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 그말이오. 왜 그러냐 하면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모르고 범 한 죄이기 때문에  그거는 고범죄와 자기가 죄인 줄 모르고 하는 거와 다르다 그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어두울 때에 한 것은 하나님이 개의 치 안했다' 그거는  모르고 하는 거,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 하여 금 고범죄를 범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하는 거는 뭐이냐? 자기가 알고 범죄, 이거는, '도적질은  범죄다 간음은 범죄다 이거 미워하는 건 범죄다' 이 걸 알고 범한 건 다  고범죄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요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해서. 어쩌든지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어제 아침에 내나 배운 거와 연결이 돼야 다 알아요. 요걸 알고 예수를 믿어야  똑똑히 예수를 믿는 것이지 이거 모르고 예수 믿는 건 다 껍데기라, 이래  놓으니까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말이오. 자꾸 수박 겉 해기가 되고 마는  것이지.

 자. 그러면, 역사의 하나님은. 따라합시다. 역사의 하나님은! 삼대 대속을!  실상으로 입고 있어야 한다! 역사의 하나님은 삼대 대속을 내가 실상으로 입고  있을 때만 와서 역사하지 그만 실상으로 입지 않으면 떠나 버립니다.

 그런고로, 고걸 잘 기억하면서 자꾸 우리가 기도를 해서. 이 대속을 실상으로  우리가 입고 있도록. 그러면. 우리는 말씀을 어기면 벌써, 자기가 알고. 이  말씀을 모르고 어기는 것은 고범죄가 아니오. 말씀은. 여기 성경에 하지 말라  했는데, 하지 말라 했는데 하면은 그거 고범죄라. 그러면 그 때는 하나님이  제가 암만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같이 못 합니다. 고 죄를 '내가 요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를 받으면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지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가 필요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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