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대하여 세 가지 가르침


선지자선교회 1981년 7월 4일 토새

 

본문 : 막 9 :47∼50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대한 약속과 그 입법은 아주 범위가 넓습니다. 좁아서 용신할  곳이 적어 잘못하면 마치 조그마한 그 상자에 못을 밖아 놓고 거기 가서 있으라  하니까 조금만 오른쪽으로 해도 그 옷에 찔리고 왼쪽으로 해도 찔리고 꼭  한가운데 섰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 상하는 거와 같은 그런 좁은 그 법규를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셨고 아주 용납성이 너르고 융통성이 너를 그런 법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법규 안에서는 참 만일 의인과 악인이라고 말하면 악인도 얼마든지 거기서  용납될 수가 있고 의인도 용납될 수가 있고 이 법은 그저 아무리 그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이 법 안에서 정죄함을 받아 죽는날까지  고칠것이 있고 또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이 법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폭넓게 이 하나님의 법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도리를 자기의 생애법칙으로 구원도리로 삼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의인이라도 교만할 수 없고 아무리 죄인이라도 낙망할 수 없이 구원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이 도를 자기의 도로 삼지 아니하고 자기의  주관 자율 이것을 부인한다고 하면서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의인은  의인이 되어서 아무 회개할 것이 없이 바라새교인같이 교만해지고 또 죄인은  그만 그 소망을 가질 수 없어서 행위를 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데까지 넓어져야 되겠고 또 성경이 말하는  데까지 좁아져야 됩니다. 지혜가 어데까지 바울같은 그런 분은 어데까지 의인이  됐지마는 아직도 자기가 도달하지 못한 그 중앙 중앙선 중앙선이 있기 때문에  거기를 도달하지 못해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거기 도달하지 못해서 죽는날까지 이 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자율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죄악이 참 수없이 많은 흠점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율과 주관을 표준해 가지고 제 생각대로 하나 의로운 그걸 가지고  자기는 전체가 의인이라 이렇게 생각을 가져서 의인이라도 할 희망이 있는  사람이 실패를 하고 교만해서 넘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바리새교인들이 넘어진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또 가룟유다가 그가 참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정죄해 팔았지마는 우리가 그와  같이 파는 일이 오늘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을 부인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민군들이 만난 사람 쳐놓고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 같이 그렇게 부인한  사람들이 뭐 얼마나 많아요? 만난 사람 거의다 그랬소. 만나고 부인하지 안하고  자기가 평소에 믿는 신조와 교리를 지킨 사람들은 제가 알기에도 거창 지방에도  별로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렇지마는 오늘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고 주님이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가 회개하면 돌이킬  수 있는 돌이켜 영접해 주는 이 교리와 신조를 우리가 깨닫았기 때문에 6.25  지나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어데까지 깨끗한 사람으로 성경이 말하는 이 요구를 요구의 그  범위와 그 양을 자기가 바로 살피 가지고 죽는날까지 자기 고칠것이 계속  들어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요. 또 고쳐갈 수록 자꾸 고칠 그 양이  많아지니까 도리어 나는 괴수 죄인이라. 또 이렇게 순종할 수록 순종하지 못한  일이 많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만삭되어 놓지 못한 그 만삭되지 못해서 놓은  아이와 같이 자기에게 연약성을 자꾸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의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이 규범을 알아서 그 범위까지 채우도록  애를 써야 될 것이고 또 우리가 가다가 어떻게 넘어진다 할지라도 이 넘어짐에서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어떤 죄인이라도 우리에게 다시 주님에게 다시  소망을 가지고 일어설 때에 주님이 버리지 아니하시는 이 사랑의 그 높이와  깊이를 자기가 깨닫아서 다시 소망을 가지고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회수를 말하면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돌이키면 주님이 그를 그 구원얻을  수 있는 그런 시기에 버리지말고 용소하고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해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그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면  눈가같이 양털같이 희게 된다"는 그런 말씀을 했고 "네가 피투성이라도 네가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긍휼이 여기시겠다"고 그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는 어떤 죄인이라도 낙망만이 아니고 거기서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고 또 어떤 의인이라도 죽는날까지 자기는 고쳐야 될  미완성의 여분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도는 넓고 깊고 높이가 인간의 지식이 도달할 수가 없는  지식을 초월한 범위기 때문에 자라도 어데까지 자랐든지 자란 그대로 자라나가야  할 것이고 또 어데까지 떨어졌을지라도 거기서 자기는 소망을 자지고 일어서야만  하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 기독교는 언제든지 우리가 사랑으로 권면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이 구원의  권세만 있지 정죄의 심판의 그런 권세는 우리가 가지지를 안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제직회를 모이든지 당회를 모이든지 공회를 모이든지 우리가 할 권세는  사랑할 권세만 가졌고 또 구원할 권세만 가졌기 때문에 그 권세를 가지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주관에 따라서 변해집니다. 자기 주관이  마치 푸른 색경같이 이렇게 색경이 되어 가지고 있으면 모든 들리고 보이는 것은  다 푸르게 보인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크게 나누면 주관과 객관이 이 둘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주관은  자기가 객관을 자기 아닌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이 객관인데 그 객관은 꼭같은  객관이지마는 자기의 됨에 따라서 그 객관과 주관의 결합의 답안은 달리 나오는  것입니다.

숫자를 맞출 때 에 가수할 그 더할 숫자는 만일 열이라 하면은 다 열입니다.

열인데 답안은 백명이면 백명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피가수가 하나인 사람은  열하나라는 답이 나올 것이고, 피가수가 둘이라면 열둘이 나올 것이고 피가수가  백이라면 백열이 나올 것이고 피가수라 말은 그 보탬을 받는 기본수를 말하는  것인데, 자기 기본수가 하나가 되어 가지고 있으면 열을 보태면 그 열하나 될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보태기는 열만 보태는데 열을 보태는데 왜 그 답안이 다르게  나오느냐 피가수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수가 다르기 때문에 그 보태는 걸 열만  보탰지마는 답안이 다 다르다 그말이오. 기본수가 자기인데 자기 된대로 이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관련의 그 결과가 나오고 만다 이거요.

이러니까 자기를 고치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이고 자기를 바로 잡으려고 애쓰면  자기만 바로되면 모든 것은 자기와의 올바른 관계가 되어 있어서 자기로 인해서  모든 존재가 자기의 적도 되고 모든 존재가 자기의 수족같이도 되어지고 모든  존재가 자기의 소유도 되고 모든 존재가 자기의 것을 마구 깨뜨려서 멸하는 그런  것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 가지가 자기에게 해결이 되기 때문에 자기를 이것을 쳐서 고칠라고  애를 쓰는 이런 지혜글 가져야 되지 그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를 일생동안 망칠수  있는 이런 자기를 그것을 원수인 줄을 모르고 그것을 옹호하고 그것을 용납하고  하면은 그 결과는 자기가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새사람과 옛사람이라고 두 사람은 분별했습니다. 그 옛사람은  벗어버리라고 말했고 새사람은 입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새사람은 어떤  게 새사람인고 하니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영과 육이 심신으로 된 육이  합작되 있을 때에 그 사람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이렇게 성경에 표현했고  옛사람은 내나 중생된 사람이지마는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과 그 육이  합작하지 아니하고 그 심신이 영을 배반하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그  육이 합작이 되어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성경에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옛사람 노릇하다가 새사람 노릇하는 그것이 바꾸어지기를 하루 뭐  몇십 번이라도 바꾸어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인 것을 우리가 실지로 경험하고  체험합니다. 여게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에 보면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할  때에 그것이 주님을 영접함이 되고" 또 "물 한그릇 떠줄 때에 그 상을 결단코  잃지 아니하고" 또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멧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게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면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면 그 범죄케 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에게 얼마나 손해가 되느냐 하는 그 손해의 양을 지금 여게다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면 멧돌을 목에다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면 다시 올라올 수 없으니까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 말아닙니까?  이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되 빠져들어 가지고 생명을 살았지마는 그만  물속에 빠졌기 때문에 올라오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죽는 것이라 그말이오.

네. 이 범죄케 하는데 멧돌을 목에다 달고 하는 그 멧돌을 범죄케 하는 그 사람  자기 목에다 멧돌을 단다 말인가 상대방의 목에다 가서 멧돌을 단다 말인가? 그  무슨 말인가? 이것이 지금 난해입니다. 이 해석이 공통되어 있지를 아니합니다.

나는 지금 깨닫는 것이 범죄케 하는 그것이 자기 목에 다른 사람이 연자 멧돌을  달아 가지고 깊은 바다에 던지움을 받는 것, 연자 멧돌을 그 달리움을 받고 깊은  바다에 던지움을 그 받는 걸 말했습니다. "연자 멧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달리우고' 이 수동입니다.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던지움이' 이것도  수동입니다. "던지움이 나으리라" 이 표현을 다른 데에서는 표현하기를  "실족케하는 자가 없을 수 없으나 그는 화를 받으리라" 그는 멸망하리라 하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 무슨 말씀인고 하니 다른 사람을 범죄하게 하는 그것이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을 범죄케해서 그 사람은 범죄하도록 하고 그 사람은 넘어지도록 하고 내가  그 사람을 꼬아서 그 사람은 손해보고 손해보는 그거 이용해 먹고 그렇게 한  자기는 괜찮은 줄로 이렇게 사람들이 안다 그말이오.

예.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해도 넘어지게 한 사람 그 내 꾀에 꼬이서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해서 그 사람이 범죄했지 넘어지게 한 나는 내가 넘어지지 안했기  때문에 넘어지게 하고 나는 넘어지게한 나는 안 넘어지면 괜찮지 않겠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마는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그것이 자살행위라  그말이오.

다시 말하면 그것이 자살행위다. 다른 사람을 범죄케하는 것이 자살행위다. 여게  하늘나라의 그 사상인데 그러면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  구원이다 그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됩니다. 아무 불평을  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 지옥에 있는 자들이 다 하나님을 주라  시인하고서 그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가게 하는 것이  그것이 곧 자살행위다. 어떤 것으로 자살행위냐? 연자 멧돌을 목에다 달고서  깊은 바다에 빠졌으면 내려가는 줄도 알고 빠져 들어가는 줄도 알고 올라가야  될줄도 알고 빠져들어갈 줄도 알지마는 여다 딱 메 놨으니까 끈을 여가도 없이  끈기전에 다 숨이 기절해 죽어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이렇게 다른 사람을 구원에 손해 가게하는 그것이 곧 자기가 멸망가운데에  빠져들어가기를 이 연자 멧돌 메고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남을 실족케 남의 구원을 손해케한 그 손해케하고 자기는 손해 안볼라고  생각하지마는 손해케하는 그 역사 그것이 곧 자기 목에다 연자 멧돌을 달고서  깊은 바다에 빠지는 거와 같이, 아무리 자기는 남을 실족케 했지마는 나는  실족하지 않겠다. 그 사람은 내 말을 그 사람의 구원은 손해를 봤지마는 내  구원은 나는 손해보지 않겠다. 다른 사람만 해치고 자기는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이런 오산을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지마는,  남의 구원을 손해케하는 그것이 자기 구원이 손해되게 해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인데, 그때에 주관은 이 멸망받는 일을 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은 넘어지게  했지마는 자기는 넘어지지 안할라고, 다른 사람은 구원에 손해가도 전, 자기  구원은 손해가지 않겠다고 이렇게 마음을 먹지마는 연자 멧돌 달고 바다 가운데  빠지는 자가 빠지지 안할라고 애를 쓰고 올라 올 줄도 번연히 알지마는 그  자기의 실력으로는 그것을 감당치 못해서 결국은 그 속에서 다 죽어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남을 실족케하고 또 자기는 그 실족케 하는 손해를 남만 보이지  자기는 보이지 아니할라고 이렇게 어리석은 사욕을 가지지마는 그게는 면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남의 구원의 남에게 구원 손해보이는 손해보이는 그 몇배  자기는 가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면 남을 구원하게 되면 남을 구원하는 그 몇배 자기 구원은 유익을 본다.

이러기 때문에 "남의 죄를 사해주지 않으면 천부께서도 너희 죄를 사해주지  아니한다 사해주면 천부께서 사해준다" 요게 그 '사해준다' '용서한다' 하는 그  말은 그 해방을 시켜준다는 그런 뜻입니다. 네가 다른 사람을 구원할라고 이렇게  애를 쓰면 네 무능 무지한 것이 애쓰는 그 무지 무능한 네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쓰는 그 댓가는 전지 전능자가 네 구원을 위해서 애쓰도록  만드는 것이니까 무가치한 것 가지고 큰 가치를 바꾸는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와 정반대 아닙니까? 네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했으면 너 빈약한 힘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했지마는 전지 전능자가 너를 파멸해서 넘어지게 하기 때문에  네가 다시는 연자 멧돌을 그 바다 가운데 달고 빠지는 거와 같이 다시는 올라올  희망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 하늘나라의 사상이요 법칙입니다.

또 그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사람들은 이 다음에 영원 무궁 세계에서  당할 그 일을 지금도 무지 보지를 못합니다. 그걸 보면 좋지마는 그걸 보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나사로 그것도 비유가 아니고 홍포 입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것을 말한 것이 비유가 아니고, 인간이 모르는 지옥의 그 형상을 예수님께서  실제의 것을 하나 끌어다가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때에 그  홍포 입은 부자가 그 사실을 보고서 거기서 후회를 하면서 자기 동생들을 부탁한  일을 거기 기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그것이 오늘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세상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인다" 그 말은 세상에서 메면 지옥에서도 메인도  그말입니다. 이 세상은 하늘나라 지옥에 되는 이것이 여게서 결정된다  그말입니다.

네가 남을 넘어지게 살짝 이 사람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요 살짝 그래 가지고  네가 뒤에 구원하면 되지 않겠나 또 요렇게 이용만 하고 나는 손해보지 안하면  되지 않겠나, 요렇게 네가 생각을 가지지마는 고것이 네가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구원얻을 수가 없고 또 고것이 네가 이 면을 노려서 그래하고, 네 욕심을  달성하기 그리하고, 또 혹은 그 사람을 넘어지고 너는 일어서기 위해서 그래하고  별별 네 속에 계산이 있어 가지고 말하지면 따지면은 이해 계산 너 좋고 남에  대하는 그 수지 계산을 네가 따지 가지고 하는 것이지마는, 실족케하는 그것이  영원을 가지면 네 전체가 바다 가운데 빠져서 죽는 다시 말하면 네 생명이  끊어지는 생명이 끊어지는 그 중량을 가진 생명이 끊어지는 그 중량의 손해가  네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네가 아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소하게 말 한마디 해 가지고 넘어지게 하고 실족하게 하고 그  사람 구원을 손해 보게하고 그 사람을 바른 길 가는 것을 삐뚤어지게하여 영  원수되게 한다 그말이오. 그 사람 바른길을 졸졸 가고 있는데 그 사람을 제 사람  만들기 위해서 그 사람을 꼬아 가지고 유혹을 시켜서 그 바른길 가는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구원 이루는 것을 속도를 느리게 하고, 대선을 소선으로  바꾸는 것이 그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하루 열 개 이루는 사람을 아홉 개 이루게 했으면은 한 개 이루는 그걸  손해 보이는 그것이 뭐이냐? 실족케 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렇게 한 그 양이  그것이 네게 대해서 네 유익을 위해서, 네 주관을 세우기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와 같이 하지마는 그것이 네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해 그렇지 내 생명을  끊는 거와 같다 하는 것을 여게 또 말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범죄케하면 자기가 빠져 들어가서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그런 무서운  그 가운데 자기가 자살로 빠져 들어가는 그 광경을 말해서 새멧돌을 그만 그냥  칼에 맞아 죽든지 불에 타 죽든지 하지 안하고 연자 멧돌을 메고 바다고  던지우면 쑥 빠져 들어가니까 '아이구 내 빠져 죽는다' 하고 안 빠져 죽으려고  애쓰지마는 불가능한 거라 말이요. 그 형태를 가르쳐서 여게 말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네 생명이 끊어지는 네 육의 생명이 끊어지는 그 불량에  손해가 되는데 너는 다른 사람을 실족케하는 것이 장난삼아 실족케 하는 것은  무슨 돈이나 뭐 얻도록, 제 욕심이나 뭐 달성하기 위해서 실족케하는 그것이  자기의 입장이나 형편이나 자기의 하는 그 역사나 그런데에 유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너는 유익을 취해서 하지마는 그것이 실은 네 육의 생명이 끊어진  손해보다도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려집니까?  이렇게 이 영원의 날까지 계산해보면 이런 큰 손해인데, 다시 말하면 이 지구  땅덩어리 같은 이런 손해를 제 해을 먼지만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 이 손해를  자취하니 얼마나 멸망할 어리석은 자냐 그말이오. 왜 이렇게 가서 이런 것이  보여지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게 잘 보여져서 지옥에 가 가지고 그때  보는거와 같은 것을 지금 보고 환란이 와 가지고 원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떨고  할 때에 그때에 보는 것을 미리보고 미리 준비해서 그때 준비를 해놨기 때문에  원수 앞에 설 때는 아 무섭기는 나는 참 크게  한 예를 들면은 백근이나 되는 무서움인 줄 알고 준비를 해놨으니까 그 무서움을  당할 때에 그 사람에게 뭐 수월하겠소. 되겠소? (성)집사. 예. 수월하지. 어떻게  그렇노? 그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인데 왜 그 사람은 그렇게 미리 보고서 넉넉히  준비할 수 있는 그게 준비를 했는데 왜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사로울 것이고, 그때 그때 결심하면 되지 각오만 하면 되지 그러면 배도 하지  안하지 주님을 배반치 안하지 이렇게 쉬운줄 알았는데 닥치고 보니까 자기가 본  그 본것보다 백배나 큽니다. 그 사람 꺼꾸러질 것 아니겠소.

왜 다 같이 미래를 두고서 한 사람은 이렇게 그 실상보다도 더 지나치게 봐서  준비가 넉넉해서 준비하는 게 남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보는 것이 보이지  안해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가보니까 뭐 백분지 일도 안되는데 제까짓게 무슨  이기겠소. 네. 왜 이렇게 눈이 어두우느냐 그말이오.

"믿음을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하나 하나에, 현실 현실에 꼬박 꼬박  순종하면은 이렇게 눈이 밝아져 가지고 인간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에 나타난  이것 이전에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이 한없이 그 속에 있고 또 나타난 이 인간  넘어 보지 못하는 것이 한없이 있는데 이것을 믿음으로 본다 그말이오.

'믿음으로 본다' 하나님 그렇다 하니까 인도한다는 그것 아닙니다. 하나 둘 꼬박  꼬박 순종하니까 자기 심령이 밝하지고 자기 생활이 정리가 되어지고, 자기의  모든 사람이 정리 되어지고, 사상이 정리 되어지고, 속성이 다 정리가 되어지고  이러니까 가리워진 것을 다 티어놓으니까 거울 있는데 거울은 보이지 안하고  먼지가 꽉 찌놓으니까 그거는 땅속에 땅을 들어다 보이지 안하고 먼지가 꽉  찌놓으니까 그거는 땅속에 땅을 들어다 보는것 같이 어리석지마는 자꾸 이거  씻어서 이거 닦아버리니까 환하이 보인다 그말이오.

안경이 있지마는 안경이 먼지가 묻으면 그 뭐 그게 무슨 그 투명이 되겠습니까?  닦으면 되는 것 이것을 가르쳐서 그 은돈을 잊어버려 여인이 은전을  잊어버렸는데 그 찾기 위해 쓸고 닦고 하니까 난중에 찾고 난 다음에 기뻐  즐거워 뛰었다. 그게 뭐이냐? 자기가 이 세상으로 인해서 어두어진 그걸 하나 둘  주의 말씀으로 자꾸 씻어서 자기가 밝아지고 심령이 밝아져서 과거를 알고  미래를 알고 인간들은 다 나타난 이것밖에 모릅니다.

이 철인들이 저거가 말하지마는 나타난 이것을 뿌럭지를 잡아 가지고 해석해  나가고 있고 이랬기 때문에 그 추측이지 모릅니다. 이랬지마는 기독교는 이렇게  믿음을 지켜 나가면 그게 먼저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잊어버린 은전을 찾았다  이거요. 그것이 뭐이냐? 안약을 발라서 낫는 것이라 그말이오. 볼수 있게 되는  것,  비유컨덴 안경을 썼는데 안경이 아주 안경이 페인트 칠이 딱 되 가지고 있으니까  뭐 안경 써봤자 보이겠소? 하나도 안 보인다 말이오. 안 보이지마는 페인트 칠한  걸 싹 닦아버리니까 환하이 보인다 이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믿음 지키니까 보지  못한 것을 자기가 보게된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이 우리는 알지마는 이렇다 할 때에  그 인정하면 아는 것이 된게 아니요. 그것만이 아니요. 그것도 있지마는  그것보다 자기가 변화됨으로서 하나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다 볼수가 있다  이거요.

이러니까 이것도 다 같은 심령이지마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이 연자  멧돌을 자기 목에 달고서 바다에 빠져 자살 행위라 하는 이것을 말씀했지마는 아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네가 참 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깊은 바다에 빠져  들어가는 거와 같이 이렇게 내가 함정에 빠져 들어가는 멸망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빠져 들어갈 때에 그때에 안 들어갈라고 애를 쓰고 나와야 살줄 알고  들어가면 죽을 줄 알지마는 자기에게는 그런 실력이 없어서 안된다. 이것을  느끼는 것이 정도가 다를 것이라.

아 남을 범죄케 하는 이것이 내 육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 보다도 이것이 내게  있어서 영원을 따지면 손해가는 것이다. 이 큰 손해다. 이 큰 손해를 할 수  있느냐? 이것을 알고 해야 되지, 다른 사람을 뭐 동양의 자기가 무슨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닙니다. 그 사람이 견해가 좁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이는  대로 다 보이면 자기는 그 할 수가 없는 일이라.

그게 여게 또 말씀하시기를 "네 눈이 손이 발 범죄케 하거든 뽑아버리고 하나  가지고 천국가는 것이 둘 다 가지고 지옥가는 것보다 나으리라" 이 말씀도 내나  위와 같은 꼭같은 그런 말씀입니다. 사람의 의는 하나 행했다고 해 가지고  전신이 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의 고것만 의가 되어지지 그렇지마는 죄는 하나  지으면 전신이 범죄가 됩니다. 이것을 여게 첫째 가르칩니다.

네가 어떤 지체든지 눈이 나빠서 눈 버릇이 나빠서 네가 범죄하면 눈버릇 그거  고치기 전까지는 너는 다른 지체는 아무리 의를 행한다 할지라도 눈 버릇 그것이  범죄하면은 네 전체가 범죄한 것이 되어서 언제든지 네 구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너는 다른 데는 충성도 잘하고, 그 아주 정직하기도 하고, 참 다른 사람의  구원을 애끼게 되고, 복음 운동에 많은 수종도 들고 이래 충성도 하지마는 너는  입술 하나가 그것이 나빠서 입술로 자꾸 범죄하니 하나는 그 입술로 범죄한다면  다른 일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입술 하나로 범죄하는 그 범죄는 입반  범죄하는 것이 아니고 입 하나가 범죄한 그것이 전신 범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는 다른 면이 다 좋지마는 손 버릇 하나가 나빠서 이것이 들리지면 막  녹아지요 속이 녹아질 것인데 막 생활이 막 디비지고 지금 막 놀래는데 성경은  성경이요 나는 내요. 예 무슨 상관이 있노 무슨 상관 없으면 난중에 그 하나님의  심판 상관 밖에는 없지 뭐 딴것 있을 게 뭐 있겠소. 있기를 심판 상관만 있겠지  예. 못 알아 들으면 헛일이야 이게 안 알아 들리면 목회 암만 해도 그 사람 남  죽이는 일 참 범죄케 하기 때문에 아야 마는 게 옳습니다.

 예 손이 범죄하면 손만 범죄하는 게 아니라 손 하나가 범죄함으로 전신이  더러워졌습니다. 전신 범죄가 되는 걸 말합니다. "손 하나가 범죄하면 그로  말미암아 전신이 지옥간다 그러기 때문에 손 하나 끊어버리고 손 하나 없이  하늘나라 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범죄는 일, 지체의 범죄로 전신 범죄를  가르쳐서 여게 말씀하고  또 네가 그 범죄할 때에 범죄하는 그것을 회개할라고 하면 손으로 범죄하든지,  눈으로 범죄하든지, 입으로 범죄하든지, 어떤 지체로 범죄하든지 범죄하는  그것을 네가 회개할라고 하면은 그것이 그 얼마나 힘이 들며 또 그것이 네게  대해서 얼마나 아프다는 그 사실을 네가 깨닫아야 그걸 고칠 수가 있다. 어떻게  한 지체가 범죄하면 그로 인해서 전신이 지옥불에서 타는 이런 그 양을 받게  된다.

왜? 한 지체가 범죄할 때에는 네가 다른 것 암만 노력해봤자 한 지체가  범죄하니까 다른 지체가 백이 지체가 백이 있는데 구십구 지체가 의를 행하고 한  지체가 범죄한다고 할지라도 한 지체가 범죄한 걸로 말미암아 구십구 지체  그것도 다 범죄한 것이 되 가지고 전체가 지금 멸망이지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하는 그 전체성을 가르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잘 안들으면 난해절을 당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이러기에 이렇게 한 지체가 범죄하면은 그 범죄함으로 네게 손해가는 것이  얼마나 손해간다는 그걸 바로 알라는 것을 여게 말하고 여 세 가지로 말해요. 한  지체가 범죄하면 그 지체만 범죄하는게 아니라 전신 범죄가 된다하는 것을 하나  말하고, 그러기에 한 지체가 범죄하면 그 지체만 멸망받는게 아니라 한 지체가  범죄하면 고 지체로 말미암아 전신이 전체가 네게 멸망을 받는 것이니 그 멸망을  당하는 걸 네가 봐라 하는 걸 말하는 것이고,  하나는 네가 그러면 그것을 고칠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힘이 들어야 고쳐지며  어느 정도의 아픔이 되어야 고치지느냐? 쉽게 '네가 결심을 한다' '네가  고치겠다' 안 된다. 눈으로 범죄했으면 네가 눈을 실지로 뽑아버리는 뽑아버리는  그 아픔같은 그런 아픔을 통해서 네가 눈 버릇을 고칠 수가 있고, 입 버릇을  고칠 수가 있고, 네 손 버릇을 고치고, 어떤 지체의 버릇을 고칠 수가 있지 그런  아픔이 없이 고친다는 것을 그 고치지지를 안했는데 네 주관대로 고친다는 것이  실지로 고치지지는 안했다. 그걸 고칠라고 하면 그와 같은 끊어버리는 그 아픔과  꼭같이 끊어버리는 아픔같에야 네가 고치지 그 전에는 고치지지 않는다. 만일 못  고치면 그 끊어버리는 게 낫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 우리가 무슨 자기의 잘못된 것이 어떤 그 역경을 당하든지 환란을 당하든지  이렇게 할때 그때 일시 자기가 잠깐 느껴서 회개를 한다든지, 또 자기가 무슨  말씀을 받았을 때에 참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이것은 잘못이라 회개를 한다든지,  또 그보다 좀 뜨거운 회개로 눈물을 흘려서 회개를 했다든지 하면은 다 된줄로  알지마는 그것은 사함은 받았습니다. 그것이 들어서 막혀 가지고 있는 거는  하나님 사랑으로 주님이 피흘렸기 때문에 그렇게 그한 것을 고하면 이제  하나님의 주의 피공로를 입혀서 사함을 줍니다. 고치진건 압니다.

그걸 그렇다고 해 가지고 앞으로 그 범죄하던 것이 범죄하지 안하는 것으로  된것은 아니라 그말이오. 범죄한 그것을 하나님께서 용서만해서 하나님과 관련을  다시 거리낌없이 이 맺어지지마는 그것이 범죄하던 그것이 고쳐진건 아니라  그말이오. 그것을 고칠라고 할 때에는 그것을 끊어버리는 것 빼어버리는 것 이런  아픔에 이런 정도의 이것을 자기가 생각지 안하면, 느끼지 안하면, 그만침  자기가 고통을 당히지 안하면 그것이 범죄하던 요소가 범죄하지 안한 요소로써  변화되지는 않는다. 그 변화의 어려움을 회개의 어려움을 가리켜 말합니다.

 예. 사함받는 것은 쉽습니다. 사함받는 것은 쉽지마는 회개는 어렵다 말이오.

회하면 사함받지마는 개라는 것은 그 지체가 어떤 사람은 사람은 생각해봐.

자기는 무슨 둘러마시는 것, 마시는 이것으로 인해서 자기 전신의 구원이 다  절단내고 말았다 말이오. 그런데 이것을 고친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고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여게서 가르치는 것, 그 범죄하는데 대해서도 세 가지로  가르치는 것, 소자를 범죄케 하는 여게 대해서도 세 가지로 가르치는 이 범위를  우리가 여게서 말씀해 주신대로 이 범위를 가져야 합니다.

아 동역자들이 이 성경만 알고 예수 믿으면 만나면 반갑기만 하고 인사나 하지  할 일이 뭐 있느냐 그말이오. 양의 껍질을 입었으나 실상은 이게 다 거짓  선지자라 이러기 때문에 말할 일이 많다 그말이오. 살리기 위해서 왜 그 살리기  위해서 안하면 무슨 공로로 명예로 하는 게 아니라 살리는 일을 안하면 하나님이  나 살리는 일을 안하기 때문에 안할 수도 없다 그말이오. 그 뭐 사소한 안면에서  정에서 뭐 하는줄 압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비록 파수군이 말할 때에 그들이 돌이키지 안하고 제 죄가운데 죽어도 그  피를 내 손에 도칠 것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만일 네가 그렇지마는 "네게  있는데까지 다하지 안하면 그 피를 네 손에서 도치리라" 말씀을 했습니다.

이 하늘나라의 사상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 예수님께서 먼데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온 것 아닙니다. 옆에 있는 아이를 갖다 세우면서 "이렇게 아이를 내가  부르신 요 한 이것은 막바로 이것이 나를 영접한 것이다" 고거는 양을 따집니다.

그 옆에 있는 아이를 예수님 앞으로 오라했으니 몇 발자국 왔는지 모르겠소? 그  열 발자국이나 왔는지, 옆에 있는 손만 내밀어서 오게 했는지 고 아주 극히  소양을 말합니다. "주님 앞으로 어린 아이라" 말한 것은 어린 아이라 말한 것은  평가적으로 범죄 안했으니 높으다 그말 아니요. 어린 아이 사람 중에는 제일  소인이라 말이오.

소인, 그 다음에 소자라고 한 그게 내나 같은 연관성있는 그런 뜻입니다. 제일  작은 자 하나를 내 앞으로 인도하는 데에 극히 소량의 네가 자본을 투자했어도,  소량의 네가 희생을 했어도, 소량의 수고를 했어도, 구제를 했어도 막바로  그것이 나를 영접함이다. 나를 영접함이다. 영접함과 같다 말 아니요. 그것이  막바로 주를 영접함입니다. 이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으로 끝난게 아니라 막바로  주를 영접함입니다. 이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으로 끝난게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영접함이 된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사랑의 나라요 이렇게 철두철미하고  이렇게 지금 힘을 쓰고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사람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안할 수 없는 이 운동인데,  이 생명운동인데 이 운동을 등한히 할 수 없고, 이 운동을 외식으로 할 수가  없고, 이 운동을 방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자기 사명감에서  도무지 내가 받힐라고해도 이런 사업 저런 사업을 하면서 받혀 가지고 이렇게 다  받힐수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을 가속도로 급속이 빠짐없이 전부 솔박 다 받힐  그 길을 찾다보니까 현실이라는 이 목회 생활을 나오는 것이지, '다른데 밥먹을  것보다 여 밥먹는 게 낫다' '요새 돈벌이는 목사 되는 것이 돈벌이 하기가 제일  낫다' '중되는 게 낫다' 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게 다 할 수 있지마는 그건 참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여게 말씀하시기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것을 지난밤에 말씀했는데 가서 새기십시오. 지옥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말은,  꺼지지 않는다 그말은 이 비유인데 꺼지지 않는다 말은 하나님의 그 말씀의 그  불인데 꺼지지 않는다 그말은 태울것이 계속있다 그말입니다.

예. 꺼지지 않는다 그말은 지옥의 형벌이 시간이 가면은 이렇게 차차 면역성이  생겨져서 감해지느냐? 감해지면 불탈것이 없어지지 불이 차차차차 까무라지지  꺼지지, 않는다 말은 이 불은 형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말하는 것이라.

형벌 고통을 말하는 것인데 이 형벌 고통이 꺼지지 않으니까 형벌 고통받을 것이  계속있다 그말입니다. 계속받는다 그말이오.

형벌 고통 받는 것이 자꾸 매도 여러번 맞으면 툭툭해 매살이 쪄서 아프지 안한  것 모양으로 그런 면역성 있는 것이 형벌이 아니라 그말이오. 또 형벌 받으니까  난중에 형벌 받아서 죽어져서 그만 난중에 너무 받으니까 까물어져서 없어버렸다  그거 아닙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지옥 형벌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불이라" 이 무엇을 지금 비유해서 요렇게 묘사했는고 하는  그것을 깊히 새겨야 합니다.

지난밤에도 세 가지 소금을 말했는데 그 소금을 기억하고 여게 지금 난해절이  뭐이냐 하면은 아 그렇게 지옥불에 가서 형벌받게 된다. 우리는 하늘나라 갈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해당된 말이 아니다. 네가 끊고 저는 다리로  천국가는 것이 낫다 두다리 가지고 지옥가는 일보다 그게 낫다 이랬으니까  우리는 하늘나라를 얻어놨으니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이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 입니까?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할  것입니까? 아 회개치 안한 사람은 그 사람을 지옥간다 그러면 우리가 지옥갑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늘나라 가니까 하늘나라 가니까 우리가 지옥 형벌 받는다  그거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된 말이지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안한 말입니까  이것이 난해절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다 보면 난해될 것이 없어. 옛사람과  새사람을 말했어.

그러면 우리가 사람이 둘입니까? 한 사람이지마는 성경에 두 사람을 말했다  이거야 우리의 심신이 이것을 가르쳐서 이것이 마귀로 죄로 그 자기주심의 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이 심신이 합작되면 옛사람이 됩니다. 진리와 성령과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이 육이 합작되면은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인격성을 말했다 그거야 가서 이러니까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  가 있는데 하늘나라 가 있는데 자기에게 있는 이 심신 기능 이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합작되 되 있으면 그것도 하나의 인격성으로  보이집니다. 인격성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가서 영원히 형벌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지체가 자기의 지체가 지옥에 가서 형벌받는 것을  자기가 볼 수 있는 것이요 아픔을 자기가 느낄수 있는 것이요.

그러면 하늘나라도 아픔이 있으면 아픔이 있으면 천국의 기쁨이 아니고 천국의  행복이 안 되겠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 믿어보니까 안 믿었다고  교회 들어와서, 교회들어 왔으니까 그거는 천국으로 더 가까와진 것 아닙니까?  가까와졌는데, 안 믿을 때보다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끼친일이 있으면 실수한  일이 있으면 안 믿을 때에 우리가 고통보다도 그 교회들어 와서 예수 믿고나니까  고통이 더하던데요.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신앙이 어릴 때에 그 아픔보다도  신앙이 장성해갈수록 그 아픔이 더 심해지는데요. 이게 천국이 아닌가요?  이런데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아서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거기 한 그것을  과거에 그것이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요. 하늘나라는 지옥에 대한 것을 더  똑똑히 느끼는 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오늘이라는 이 시기에 녹아지지  안하면 다시 복수 못합니다. 시기 놓치면 못합니다.

화목의 소금이라 말은 사람을 하나님과 진리에게로 연결을 연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옳고 바르도록 하기위해서 자기가 희생해야 될 희생을, 자기 잘못한  그 잘못을 벌을 받지 안해도 자기 희생 안한 것, 꾸중받지 안해서도 안한 것,  자기가 잘못한 것을 자기가 잘못됐다는 그걸 다른 사람에게 발표하지 안 해도 안  되는 것.

잘못의 희생도 있고 자기가 잘했는데 억울한 그 희생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고의 희생도 있고, 녹아지는 방편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쨔든지 자기가 이래 녹아지든지 저래 녹아지든지 자기가  손해봄으로, 자기가 희생을 함으로, 자기가 깨어짐으로, 자기가 낮아짐으로,  자기가 작아짐으로, 자기가 천해짐으로 이 구원운동이 되어지는 그것이 막바로  화목의 소금입니다. 이 소금의 기회를 놓치면은 다시는 그런 기회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소금의 화목의 기회의 소금으로 녹아지면 녹아진 그것의 재료는  어떠냐? 아니 요게 하나 데리고온 수고도 구원 역사를 위한 고 수고도 그게  뭐이냐?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요. 물 한그릇 냉수 한그릇 떠준 그것도 상급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이 화목의 소금으로 녹아지는 녹아짐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네가  세상의 무슨 이해를 당해서 무슨 유익을 위해서 네가 녹아지지 못하느냐? 무엇이  손해가겠다고 무슨 손해를 계산하고 녹아지지 못하느냐? 네가 똑똑히 알아라  녹아지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손해가는 것이 얼마나 크냐? 연자 멧돌 메고  바다가운데 빠지지는 거와 같다. 이런 손해가 있다.

그러면 네가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이 있는지 그 유익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것이 막바로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를 네가 영접해서 그분하고  결합이되는 것이라. 그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함이다. 털끝만한 수고도  그것이 다 상이 하늘에 있다. 네가 화목의 제물로서 희생되어지는 이보다 더 큰  수입이 없고, 녹아질 것을 녹아지지 안한 이보다 더 큰 손해가 없는데, 네가  무슨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녹아지지 않느냐? 네가 무슨 수입을 보기 위해서  네가 녹아지지 않느냐?  이 말씀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에누리  되지는 그 심령으로 보여지는 것이 평소에 신앙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변화되지 안해서 그렇습니다. 한자리 있지마는 놀래서 가물칠만한데 한 사람은  거 대해서 참 코웃음 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에 오순절에 그때 마구 사람들이 거석하니까 옆에 사람이 보고  저 사람들 술챘구만 술취해서 이러구만 이런 그 심령도 있었고, 그때 '그  어찌할까?' 하면서 다시 자기의 모든 생활을 돌이켜서 자기 있는 소유를 다  내놓고 '고락을 같이하자' '복음일 같이하지' 하는 그런 사람으로 그 느끼지는  그런 감화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뭐이냐? 유대인들 그 바리새교인  있으면서 그 사람이 평소 신앙 생활을 어떻게한 그대로의 만들어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공평입니다. 남 못 속입니다. 남 못 속이요. 남 못  속이고 남 손해 못보입니다. 또 남 유익 보이는 그것이 따지보면 남 유익보는 게  아닙니다. 전부 자기 유익보는 것이요. 그런고로 유익도 자기가 자기를 유익케  하고 해도 자기가 자기를 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것을 알고 모든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알아야 되지 임시 무슨 거석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를 말아야 됩니다.

또 이해를 똑똑히 따지야 되지 무슨 썩어질 가치없는 이 이해를 천지를 두고  말하는 것인되 자기를 잃으면 자기를 빼앗기면 빼앗기는 것은 이 시간에 자기의  지체될 것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잃은 것은 중생된 참 자기 잊어버릴 걸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에 인간들을 이렇게 잊어버리느냐? 세상에 있는 것  이거 얻기 위해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몰랐다. 온천하를 얻은 그  수입과 너 잃은 손해와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된다. 예수님께서 공연히 베짱으로  이랬습니까? 아니요. 조금도 가감이 에누리가 없는 진실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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