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한 지체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14일 금야

 

본문 : 마5:27-28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이 말씀은 좀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절이라 할 수 있는 귀절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에누리하기 때문에 난해절이지 에누리하지 않으면 난 해될 것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있는 말씀과 마태복음 18장에 있는 말씀이 비슷합니다.

마태복음 5장에도 '네 눈이나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없애버리라 지체  중에 그것을 없애고 하늘나라 가는 것이 그것을 없애지 않고 전신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게 말씀했고 또 18장에도 꼭 같은 말씀을  말씀했습니다.

 5장에는 '백체 중에' 모든 지체 중에 그렇게 그것을 표시해서 '백체 중에'  그것이 있고 18장에는 그 말은 없고 눈, 손, 발 이 세 가지를 들어서 말씀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네 눈이나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다 빼어버리고 끊어버리라  그것이 없는 병신으로서 하늘나라 가는 것이 그것이 있어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말 씀하신 동기가 뭐인고 하니  이성 문제를 두고서 말씀했습니다. 남녀 이성 관계, 간음, 음행 이것을 말씀을  하시다가 이 말씀을 하게 됐습니다. 또 18장에는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는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다가 또 이 세 가지를 들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동기는 하나는 음행이 동기가 됐고, 하나는 형제를 범죄케 하는 것이  동기가 됐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교훈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네가 한 지체가 너를 범죄케  하면 그걸 끊어버리지 안하고 항상 계속 범죄하면 너는 지옥에 가고 또 그것을  끊어버리고 범죄하지 안하면 한 지체가 없어 졌으나 하늘나라에 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행위 구원에 대한 말씀인 것이 확정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가지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사람의 이목구비 오감이  있고 또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지체가 있는데 '네 눈이 네 손이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끊어버리고 그 손발이 없이 눈이 없고 한 눈 빼버리고 한  눈밖에 안 남은 한 눈 가지고 천국 가는 것이 두 눈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 그렇게 여기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만일 눈을 빼버렸으면 그 눈은 없어졌으니까 한 눈은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지마는 한 눈은 없어서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한쪽 눈만 가지고 하늘나라에  간다. 그렇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손이 범죄했으면, 범죄케 했으면 그 손을 끊어버리면 하늘나라에 갈 때에  한쪽 손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 그걸 끊여버리지 안하고 두쪽 손을 다  가지고 범죄하면 전신이 다 지옥에 간다. 그렇게 여기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참 듣기에 딱딱하고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겠느냐?  대단히 구원을 어렵게 여기에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은 어렵게, 건설구원을  어렬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바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데도 건설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걸 보면은 여기에와 꼭 같은 동등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을 빼 없애버렸으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 가지마는 한쪽눈 없이 외통눈으로  하늘나라 가게 된다. 또 팔을 하나 끊어버렸으면 외팔로 하늘나라 가게 된다. 또  발을 하나 끊어버렸으면 한쪽 발로 하늘나라 가게 된다. 그렇게 성경 본문에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닙니다. 또 이것은 하나의 위협을 주는 그런  교훈도 아닙니다. 실상 그대로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오른손을 끊어버렸으면  하늘나라에 갈 때에는 오른손이 없는 외팔로 하늘나라 가게 된다 말씀하신 이  말씀인데 우리는 기본구원에서 생명의 부활을 이미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기본구원 얻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건설구원으로서는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 못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성경에도 네가 승리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 패전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그 사망은 기본구원에 얻은 영생을  말씀하심이 아니고 그 심신의 육의 구원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곧 육의  형체는 기본구원에서 얻었고, 부활을 얻었고 육의 그 심신의 기능은 이것은 죽고  살고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준비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은 했지마는, 이목구비 수족이 부활은 했지마는 이목구비  수족의 기능은 다 지옥불에 가서 타버렸고 기능은 하나도 없는 그런 부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눈의 기능은 보는 기능이겠는데 그 기능이 어떤 기능이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순종으로 그 기능을 살려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을 보지 안했으니까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그 기능은 보게 하실 때에 보는 기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하나님이 전지의 지혜로 우리의 눈의 모든 시각을  전지의 지혜로 인도할 때에 전지의 지혜의 인도를 받는 시각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눈은 다 같이 멀뚱멀뚱 떠 가지고 있지마는 눈의 기능은 각각  다릅니다. 눈의 기능이 어떤 사람은 세계에 백여 나라의 그 말을 기록해 놔도 그  눈은 그것을 다 구별해서 볼 수 있는 기능 있는 사람 있고 또 한 나라의 글도  보지 못하는 그런 눈의 기능이 없는 사람 있고,  또 기능도 여러가지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눈의 기능이, 부산 시내에 다  돌아다니면서 과학적인 엑스레이를 다 찍고 오만 유명한 의사에게 다 가도  모르는 병을 그 사람은 딱 눈으로 쳐다보고 딱 알고, 안다고 말하면 다  거짓말이라고 세워대겠지마는 알고 그 사람 말하는 대로 하면 딱 낫습니다. 그  사람의 의학적인 그 시력은 대단히 그 기능이 능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눈의 기능도 굉장하고 손의 기능도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팔을 끊고 눈을 뺐으면 그 기능은 완전히 죽은 것이어서 형체는  오른팔이, 부활할 때에 오른팔이 부활을 하지마는 속에 기능적으로는 오른팔의  기능은 하나도 천국 가지 못하고 다 지옥 가고 천국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무엇을 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것이냐? 반드시 우리의  심신에 온갖 그 지체 기능은 그 지체에서라야 그 지체의 기능을 얻을 수 있지 그  지체가 아니면 다른 지체에서는 지체 기능을 못 얻습니다. 손의 기능을 얻는  데는 이 손이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는 여기에서 이 영생하는 기능을 얻을 수  있지 아무리 왼손이 잘해도 왼손이 잘한다고 해 가지고 오른손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수족이 다 잘해도 눈이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에 순종함을 이  순종으로 기능이 살아나는 것인데 순종함이 없으면 이 수족이 아무리 의를  행해도 눈의 기능은 마련하지 못합니다. 눈의 기능은 눈으로 마련하고, 오른손  기능은 오른손으로 마련하고 왼손 기능은 왼손으로 마련하고, 다리의 기능은  다리로만 마련하고, 이 두뇌의 기능은 두뇌로 마련하고,  우리가 기능 구원을 지금 이루는 것이 이것이 성화구원이요 기능의 차이가  하늘나라에 실력의 차이인데 우리, 이 영육은 기본구원을 다 입었지마는 영은  입고 벗지 아니하는 영생으로 그대로 입고 있지마는 우리의 심신은 받은  기본구원을 벗어버립니다. 벗어버리면 그 기본구원을 제가 벗어버렸기 때문에  기본구원이 거기에는 기본구원의 혜택을 심신이 입지를 못했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입지 못한 그 기능은 지옥 갑니다. 기본구원의 그 은혜를 입은  지체는 하늘나라 갑니다. 이것은 좀 더 해석이 많이 따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또 좀 퍼뜩 깨닫기 어려울 터인데 그걸 몰라도 기억만 하십시오.

 손가락의 기능은 손가락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우리가 살아나는 것은 진리와  영감 외에 딴걸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도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기능도 진리와 영감으로만 살아납니다. 몸의  기능도 진리와 영감으로만 살아납니다.

 진리와 영감으로만 살아나는데 그것이 진리와 영감과 그 기능과 하나가 되었을  때에 살아납니다. 진리와 영감은 하나인데 진리와 영감과 그 기능과 둘이 결합이  됐을 때에, 떨어지지 않는 결합이 됐을 때에 그 기능은 살아납니다.

 떨어지지 않는 결합은 언제 되느냐? 현실에서만 됩니다. 다른 데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서만 됩니다. 현실에 영감과 진리와 그 기능이 결합됐으면  그것으로 영생이요 다시는 변동 없는 것입니다.

 구속을 이제 단번에 통과합니다. 유다서에 '단번에 얻은 믿음의 도리라'  단번입니다. 단번에 그 기능은 영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현실에 가 가지고 그 지체가, 지체의 기능이 영감과 진리와  결합을 예수님의 공로로 다 시켜 놓은 것인데 결합시켜 놓은 그대로 기본구원을  벗지 안하고 그 현실이 어떻게 영감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기가 어려워 배반치  안하려 하면 자기에게 어떤 환난과 곤고가 와도 진리와 영감을 버리지 안하고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진리와 영감과 결합으로서 그 현실을 통과했으면 그때 그  기능도 영생으로 살아나는데,  그때에 결합으로 통과하려고 하니까 너무 박해가 심하니 못 견뎌서, 결합을  하려 하면 생명 내놔야 되고 모든 걸 희생해야 되고 이렇게 어려움을 당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영감과 진리와 그 현실의 기능이  일치 결합을 되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를 버리고 이 세상 걸 인해서 세상과  하나가 됐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 그 기능은 죽었습니다. 영원히 죽습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살고 그 다음 현실에서 죽을 수 있고, 현실마다 살  수 있고, 두 현실 살고 그 다음 현실에 죽는 수 있고, 또 열 현실 살고 그 다음  현실에 죽는 수 있고, 이렇게 해서 현실 현실 마다. 그때에 해당된 그 기능은  그때에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결합이 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안하고 생명이 승리를 했고, 이 영감과  진리와 결합을 빼앗기면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난 것이 영원히 죽어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것만 기억하십시오. 어느 지체든지 그 지체의 기능은 그 지체에서  살아난다. 그 지체에 살아나지 오른손의 기능을 왼손이 잘한다고 살아나지  않습니다. 자기의 수족이 잘한다고 눈이 영감과 진리와 결합하지 안하는 데에  눈의 기능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안팎의 심신의 모든 기능을 오늘에 살리는 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입니다.

그러면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죽지 않는 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다 법적으로 살아 있고 실지로도 다 살았는데, 공로를  입혀서 공로로 살았는데 이 공로를 현실에서 벗어버리면 새로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을 벗지 않고 기본구원 입은 자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는 그  기도의 첫 제목이 그 제목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 요것만 기억하십시다. 어떤 지체든지 그 지체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그 지체가 순종해야 그 지체의 기능이 살아납 니다. 그 지체가  순종해야 그 지체의 기능이 살아나지 다른 지체가 암만 순종해도 그 지체가  순종하지 안하면 그 지체는 살아나지 못한다.

 왜? 뭘 봐서 그렇게 해석하는가? 오른손을 끊어버리면 오른손은 다시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에게 순종하지 못해, 순종할 수 없습니다. 오른손을 오른팔을  끊었으니까 순종할 수 있습니까?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오른팔은 부활해도  왼팔이 부활입니다. 껍데기는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오른팔은 없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눈이 순종할 때에 눈의 기능이 살아나고, 내 혀가 순종할  때에 혀의 기능이 살아나고, 내 수족이 순종할 때에 수족의 기능이 살아나고, 내  심장이 순종할 때에 심장 기능이 살아나고, 내 마음의 모든 지체, 내 마음에도  지체가 많습니다. 내 마음의 지체는 고기 덩어리의 지체보다 훨끈 많습니다.

훨끈 더 많습니다.

 이러나 그 마음의 온갖, 감정이나 정서라든지 욕심이라든지 뭐 이런 저런 욕심,  이런 무슨 공의성, 정의성, 무슨 복수성, 별별 우리에게, 크게 말하면 여덟 가지  속성이지마는 그 속에는 수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제각각 순종으로 제 기능이  살아난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이 해석을 변동을 못 할  것입니다. 달리 변동 못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기억하고 내가 아무리 다른 면을 잘해도 내 한 지체  그것은 그것이 순종해야 그것의 기능이 살아나고 구원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시다.

 기억해서 현실을 만났을 때에 '나는 여기에는 시력을, 눈의 기능 시력을 얻을  때다.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보는 것이 하나님같이 볼 수 있는, 하나님과 꼭  같이 볼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시력을 가지는, 눈의 기능을 가지는 이 기능을  얻는 이 현실이다. 이 현실은 눈의 기능을 얻는 현실이다. 이 현실은 손의  기능을 얻는 현실이다. 이 기능은 내 혀의 기능을 얻는 이 현실이다, 기능이  살아나는 현실이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자꾸 계속해서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현실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해야 될 때 하나님 말씀 하면 그 기능이 살아납니다.

 그 현실에 하나님 말씀을 해야 될 것인데 제 체면, 제 명예, 제 영광, 제 위신,  사람에게 환영 못 받을까 해서 마땅히 해야 될 그 말을 하지 안했으면 그때 큰  기능을 얻을 터인데 그 혀의 기능은 죽은 기능으로 지나가 버립니다.

 그 다음에 또 혀의 기능이 살아날지라도 그때 살아날 기능은 죽었고 그 다음  살아날 기능이 살아나니까 백분지 오가 죽었는지 백분지 구십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 또 살아 있으면 살 기회가 있지마는.

 그렇게 해서 자꾸 자라가는 것처럼, 자라가면 뼈도 자라가고, 피도 자라가고,  고기도 많아가고, 체중도 무거워가고 자꾸 자라가지 않습니까? 이것 모양으로  모든 것이 이렇게 자꾸 살아서 보태고 자라서 보태 가지고서 우리의 성화구원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각각 생각하기를 '나는 내 어느 지체의 기능이 구원 얻지  못하는가?' 그것을 하나 생각합시다

 하나 생각하고, 또 하나 생각할 것 있는 것은 하나만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는  '네 오른눈이나 왼눈이나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눈을 뽑아버려 버려라. 눈  없이 한쪽 눈으로' 그러면 거기에서 눈을 뽑아버렸으니까 그 눈의 기능은 살릴  수가 없다 말 아니요? 한쪽 눈이니까. 한쪽 눈 뽑아버려도 한쪽 눈 가지고 양쪽  눈 기능을 살릴 수 있다고 하면은 그래 말하지 안할 건데 살릴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런데 '한쪽 눈을 뽑아버리고 한 눈으로 하늘나라 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눈이 범죄했으면 눈만 범죄했지 다른 몸이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오른손이 범죄했으면 오른손만 범죄했지 다른 지체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발이 범죄했으면 발만 범죄했지 다른 지체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안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네 전신 전체에 백체 중에 구십구 지체가 깨끗하다 할지라도 한 지체의 범죄로  인해 가지고서 범죄하지 아니한 아흔아홉 지체가 다 같이 지옥 불에 가게 된다.'  그러면 범죄에 대해서는, 범죄에 대해서는 지체 지체마다 나누지 안하고 지체  지체마다 범죄에 대해서는 한 지체가 범죄하면 모든 지체가 다 범죄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 지체 중에는 다른 지체는 다 의롭고 깨끗하고 다 좋고 혀도  말씀대로 행하고 모든 것 다 이와 같이 다 말씀대로 다 하는데 한 지체 요것이  들어서 범죄합니다. 한 지체 요것이 들어서 범죄하면 한 지체 고것 때문에 다른  지체가 순종한 게 소용이 없다 하는 것으로 여기에 딱 하나님이 판정을 내려서  우리로 뎌불어 계약으로 선포를 해 놨습니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요것을  기억합시다.

 이 해석이 혹 틀렸습니까? 거기에 다른 무슨 다른 길이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이 말씀이나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내가 보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살지 못했다.' '있는 것을 다해야 영생 얻는다' 꼭 같은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어느 지체든지 한 지체 그것이 들어서, 어떤 사람은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짓는 그, 특별히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약점이 있습니다.

악령은 그 사람의 약점을 잘 압니다. '저 사람은 어떤 욕심에는 꼼짝 못한다. 저  사람은 어떤 감정에는 꼼짝 못한다. 저 사람은 어떤 돈 욕심에는 꼼짝을 못  한다. 저 사람은 명예욕에는 꼼짝 못한다. 저 사람이 얼마나 평안한 걸  좋아하는지 안일욕에는 꼼짝 못한다.' 사람마다 단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단점이 있는데 악령은 그 사람의 단점 하나만 점령하면, 단점 하나만  점령하면 다 성공입니다. 왜? 단점 하나, 어데든지 단점 있는 그 지체 그것  하나만 제가 점령해 가지고 그것만 죄와 끊어지지 안하고 죄와 연결돼 가지고  있으면 다른 지체가 암만 날뛰어서 의롭게 해 봤자 소용 없습니다. 요것 때문에  다 정죄받아 가지고 같이 지옥불에 갑니다.

 지옥에 간다는 것은 그 기능이 지옥에 감니다. 심신의 기능이 지옥 가는 것이지  그 영이 지옥 가는 것 아니고 그 형체가 지옥 가는 것 아닙니다. 그 기능이 지옥  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느 지체든지 그 한 지체에 어떤 사람은 보면 그 우정, 동무를  좋아하는 그 우정을 좋아하는, 우정을 좋아하는 우정이라는 그 정이 그놈이 아주  약해서 마음에 '내가 동무 따라 이러다가서 몇 해 신세가 갔다. 몇 해를  헛일했다. 재산을 헛일했다. 이제는 내가 우정이라는 걸 이걸 내가 버리지  못하면 내 신세가 간다.' 결심하고 이를 깨물고 금식하고 단식하고 아무리 해도  우정 그것을 끊지 못해 가지고 우정 그것 때문에 전생활이 다 기능적으로는 지옥  갑니다.

 뭐 이 사람은 도무지 친구라면 견디지를 못하고 동무라면 견디지 못해서 뭐  집에 불덩이 같은 일이 있어도 동무 만나 놓으면 그만 하루고 이틀이고 모르는  가운데 돌아다닙니다. 마귀는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5장에는 음행에 대해서 말씀을 하다가 이 말씀을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동기가  음행에서 나와 가지고서 예수님이 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녀  이성의 성욕, 남자도 성욕 여자도 성욕 성욕 그것 하나 가지고 일생을 망칩니다.

일생을 망칩니다. 그것 하나 때문에 다른 면은 그 사람이 다 훌륭하고  위대하지마는 마귀란 놈이 그것 하나를 딱 거머쥐고 그 지체 하나가 범죄의  기관이 돼 가지고서 그 지체 하나 때문에 온 전신의 기능이 다 지옥 갑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 고요히 살핍시다. 이 건설 구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안하면 육신의 축복도 하늘나라의 축복도 축복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사망뿐입니다. 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질 때에 나님은 세상에서도 여러  배 백 배를 준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심신의 전지체 중에 어느 한 지체라도 죄와 연결돼 가지고  있으면 다른 데 암만 해도 소용 없다.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어. 다른 면은 암만  해도 소용 없어.

 그 사람이 모든 면이 다 깨끗했지마는 그 사람이 혀를 벌로 놀려 가지고 혀를  벌로 놀려서, 혀를 벌로 놀려서 죄를 지었으면 다른 이목구비 수족은 전부 다  깨끗하게 잘했는데 혀 하나 잘못 놀렸으면 그로 인해서 깨끗한 이목구비 수족도  포승줄에 묶여 가지고서 같이 형벌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혀 하나 잘못 놀렸는데 혀가 범죄한 혀로 인해서 전신 전체는 깨끗하게  살았지마는 혀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은 전신 전체가 사형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법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성결과 죄는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점을 잘 기억합시다. 학개서 성전 건축 때에도 학개 선지가 말한 게  있습니다. 꼭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건설구원이라고 하는 이것 굉장히 영광스러운 것인데,  이거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인데 이 건설구원은 안  이루면,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일 천한 그 천한 것이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천한 것 아닙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차이점에 제일 밑에  가기 때문에 천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천한 것 아니오.

 우리가 하늘나라의 구원을 못 얻어 그런 게 아니고 구원을 얻어서 다 갔지마는  영광의 차이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을 세상에 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을 그래  보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자연계시가 수많은 종류는 다 제각각 이 종류 저 종류  있는데 종류와 종류를 보면은 이 종류 저 종류의 그 가치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종류와 종류의 가치 차이가 많이 있고 또 딴 종류가 아니고 한  종류에서 그 가치 차이와 권위 차이가 얼마나 있습니다.

 이래서 죽은 자의 부활의 영광도 이와 같이 차이 있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은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제가 뻔뻔스러운 여자라 할지라도 본남편에게 대해서  이제까지 본남편을 배척만 하고 간부로 더불어 간음하고 본남편 배척하고  이러다가 마지막에 간부가 죽어버리고 난 다음에 이제 본 남편에게  돌아섰습니다. 안면 있을 게 뭐 있겠습니까? 아무리 낮빤대기가 두껍지마는 무슨  안면이 있겠소? 뭐이 뻔뻔스럽게 안면 있고 기쁘고 제가 즐겁겠소? 이겁니다!  간부는 성경에 상징으로 세상을 말했는데 기본구원을 주님이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입혔지만 기본구원을 다 벗어놓고 세상하고 하나가 됐다가 세상을  떠나서 세상이 제 세상이 죽어버렸고 세상이 없어지고 나니까 부득이해 주님에게  갔지마는 이제까지 본남편과 같은 주님을 배척하고 간부로 더불어 일생 동안  살다가 그 나라 왔으니까 죽이지야 안하고 지옥에 안 보내지마는 무슨 안면이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고 말했소.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 이루는 것이 이렇게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는 '네 소유를 다 내놓지 안하면 건설구원 얻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과 성품을 다 전부를 다하지 안하면 이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한 가지라도 가지고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힌다한 가지라도 가지고 이  건설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자는 세상에게, 세상에 있는 것 한 가 지라도 붙들고  이 건설구원 얻으려 하는 자는 세상에게 붙들리고 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성화구원 건설구원을 너무 헐하게 봅니다. 너무 쉽게  봅니다. 건설구원은 이렇게 힘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 늘나라의 영광의  차이, 권위의 차이, 존귀의 차이, 환영의 차이, 주님이 대우하는 대우의 차이 이  차이는 건설구원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설구원은 이루는 것은 아무리 다른 것이 다 해도 그 지체가, 그  지체가 순종하지 안했을 때에 그 지체의 기능은 구원 얻지 못한다. 그 지체의  기능은 그 지체에서 그 지체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그 지체의 기능은 그 지체  순종으로 살아난다. 구원된다.

 또 어느 지체 한 지체가 잘못될 때에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지체가 암만 잘돼도  소용 없다. 오른눈 하나 범죄했는데 그것 빼버리니까 온 전신이 다 구원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그 몸인데 온 전신이 다 구원 얻어 하늘나라 가는데  오른눈 하나 그놈이 들어서 그놈이 들어 가지고서 범죄해서 온 전신이 그 오른눈  그놈만 아니면 전신이 다 하늘나라 갈 수 있는 참 순종하는 깨끗한 전신  전체인데, 심신인데, 오른눈 그놈 하나가 들어서 그놈 하나가 범죄함으로 모든  전체가 다 지옥 가니 그놈 빼버리고 하늘나라 가는 것이 그것이 낫다, 오른눈  그것 하나 안 빼버리려고 해 가지고서 지옥 가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

 이러니까 한 지체의 범죄로 전신이 다 멸망이요 구원은 안 된다, 한 지체의  범죄에서 전신의 구원은 안 된다 하는 그것을 여기서 또 단정지웠습니다. 어려운  것 같지마는 하나님 말씀이 이래 했으니까 우리 혼자 자작으로 해 가지고  에누리해야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실은 이 건설구원 성화구원은 모때기 모때기로 되는 것  아닙니다. 이 건설구원이라면 둥글둥글하게 꼭 같이 돼 나갑니다. 모든 전면이  돼서 그러기 때문에 원만하고 둥글둥글하게 원만하게 전체적으로 구비하게  원만하게 돼 나가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건설구원이 자꾸 이루어 하나씩 둘씩 이래 자꾸 연습을  해서 이제 다가 안 돼도 연습을 하고 해 가지고 이 건설구원을 요것을 우리가  완성을 해야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그대로 두면 헛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어느 단점이 있으면 단점 그것을 자꾸 건드리지 안하고 단점 그것을  두고 다른 면을 다른 면을 숙달을 시켜서 다른 면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 일을 하도록 다른 면을 능숙하게 강하게 만듭니다. 강하게 만들어서 다른  면은 지금 하나님 말씀 막 순종을 잘 합니다. 한 지체 요것이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체는 다 하나님 말씀대로 털끝만치도 변함 없이  순종을 합니다.

 그러니까 순종해서 연습 연습 연습을 해서 자꾸 순종을 해서 다 하는데 그러면  다른 지체는 백체 중에 구십구 지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잘 합니다. 다 잘  합니다. 한 지체 그것이 순종 안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그때에 이 건설구원이 돼 가자고 있습니까 안 돼 가지고  있습니까? 남반에, 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안 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안 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 성도들이 다 구원을 이루는 요소가 됐지마는 하나 예수님의 대속이  이루어지지 안했기 때문에 다 미결로 있다가 예수님의 대속이 턱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휘장이 쫙 갈라진 것은 그때 이제 완성이 됐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이 성화구원이라는 것도 다른 모든 지체가 다 이와같이  순종하면 그것은 순종했으니까 능숙하지요. 능숙하지마는 지체 중 하나 요놈  때문에 다른 것은 능숙하지마는 그 다른 지체가 범죄해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그 기능이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요 지체 하나 요것 때문에 지금 이 지옥을  면하지 못하고 다 미결에 있습니다.

 능숙하기야 능숙하지요. 능숙하지마는 미결로 있다가 요 범죄하는 지체 요놈을  아주 끊어버려서 범죄를 안 하든지 그것이 회개를 해서 범죄를 안 하든지 범죄  안 할 때에 이제까지에 다른 구십구 지체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한 믿음을 지킨  그 효력이 그때사 비로소 완성으로 효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교회는 한 교회입니다. 히브리 11장 끝절에 보면 구약 성도들이 그렇게  신앙으로 위대한 걸음을 걸었지마는 아직까지 완전은 안 됩니다. 완전은 안 되는  것은 우리로 말미암아 완전함을 얻지 못했다 했어. 우리가 이제 구원을 이루어야  비로소 구약 성도들의 구원이 완 성이 된다. 그것을 히브리서 11장 끝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지체가 잘 순종하는 믿음을 지켜서 온전할 때에  그것으로 만족하고 안심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만족하고 안심해서 '다른 것  내가 한 지체로 범죄해도 이 다른 면은 모두 다 깨끗하니까 이것이야 구원 얻지  안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겠는데 그것은 구원 얻을 수 있는 자격도 있고 의가  준비됐습니다. 숙달돼서 능숙합니다. 의에 능숙합니다. 이렇지마는 지체 하나  그것 때문에 아직까지 구원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미결에 있습니다.

 미결에 있는데, 미결에 있는데 그 지체가 회개를 하든지 그 지체를 아주  끊어버려서, 끊어버려서 다시 죄를 짓지 안하든지 어쨌든지 그 지체가 죄짓는 그  일이 없어지고 그 지체가 죄짓는 일이 없어져서, 순종은 못 해도 죄짓는 일이  없어지면 끊기지는 안하는 것이니까 순종해서 순종도 못 하지, 끊어버렸으면  순종이야 못 하지마는 끊어버려서 죄를 범하지 아니하면 다른 지체는 이제는 죄  범함이 끝나버리고 죄 범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그 병신 그것으로써 이제 구원  얻어 가지고서 하늘나라 간다 요렇게 밝혀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다른 모든 것을 자꾸 고치고 한  외통으로 몰아 가지고 그것을 고치도록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노력을  하십니다.

 하나 비유로 말한다면 수력 발전소를 만들 때에 강물을 막아 가지고 강물을  높여 가지고 그 강물이 높은 데에서 그 물이 낮은 데로 떨어 지니까 낮은 데로  떨어지는 그 힘을 이용해 가지고 발전을 하는 것이 수력 발전입니다. 발전인데  강물을 막으려 하니까 막을 수가 있습니까? 한 자 막으면 그 물은 한 자  높으니까 그만치 한 자 내려오는 떨어지는 그 힘이 있겠고 열 자 높아지면 열  자에서 떨어지는 힘이 있고 높을수록이 그 떨어지는 힘이 많겠습니다.

 그런데 이 강물을 막을 때에 어떻게 막느냐? 먼저 할 때에 강물을 저 나갈 수  있는 그런 물 길을 만듭니다. 도랑을 만들고 물 길을 만들어 그 강물을 다 딱  나갈 수 있는 그 물 길을 저리 둘러서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다가 물 문을 첩첩이  해서 이렇게 닫아 놓고 물은 출출 흘러가게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 물  문을 열고 이 물을 그리 싹 그리 들어가 버리도록 해 버립니다. 그리 들어가면,  요 보 막을 때에는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이 하나도 없으니까 거기다가 대고  세멘 공굴 해서 철근을 넣어 가지고 튼튼하게 해도 강물이 하나도 안 내려오니까  얼마든지 높이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높이 쌓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쌓을 대로 마음대로 쌓고 그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석 달이고 물은  안 내려오니까 비가 와도 안 내려오니까 딴딴 굳어지게 만들어 가지고 막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요 물 문을 하나씩 착착 막으면 그 물이 그렇게 높으게  쌓아 올라갑니다. 이렇게 높이 쌓아 올라가니까 거기에서 압력이 내려와  가지고서 수력 발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요렇게 당신이 그이에게 죄악의 단점  가장 약점을 악마의 마귀는 노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 점을 그대로 두고서 다른  점을 다 깨끗이 이렇게 숙달시켜 가지고 요 점을 죽기 전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막기 위해서 당신이 이런 교훈도 하시고, 이런 전쟁도 일으키고, 이런 환난도  일으키고, 또 이런 단체적 환난, 시대적 환난, 그리 안 하면 개적 환난, 이래  가지고 그때에 그 죄악을 끊지 안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그런 다급한 하나님의  엄한 징계나 경계나 환난을 일으켜 가지고 그때에 그것을 딱 끊어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하시는 이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도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지금 큰 환난이 오는데 이  환난이 오는데 미리부터 기도해 가지고, 미리부터 기도해서 도랑 쳐 놓은 약점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각각 도랑을 쳐 놓은 약점이 있어. 각각 이 사람에는  물욕에 대한 약점, 공명욕에 대한 약점 어떤 사람은 식욕에 대한 약점, 정욕에  대한 약점, 음욕에 대한 약점 어쨌든지 그 약점이 있는데 그 약점을 하나님께서  기어코라도 그 약점을 회개하지 안하면 마구 쐐기다 대고 짭니다. 이 기름틀에  넣듯이 기름 틀에 넣고 짜 댑니다. 짜 대니까 제가 그걸 회개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이번에 우리가 이 기도단을 작성을 한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이  기도단에서 매일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하면 여러분들이 체험할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나니까 각자 자기가, 자기는 물욕이 들어서, 아무것도  다른 점은 그런데 물질에 대한 물욕 때문에 죄짓는 사람은 기도를 하루 하고  이틀 하고 사흘 하고 눈물을 한 번 흘리고 두 번 흘리니까 물욕이 차차 차차 '뭐  하려고 그렇게 물욕을 가졌던가?' 물욕이 차차 차차 희미해집니다.

 온갖 죄악의 욕심이 차차 차차 약해집니다.

 그렇게 감정이면 참지 못하고 어데까지든지 복수성이 강한 사람도 자꾸  기도하고 새벽예배에 나와서 성경 말씀 듣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 생각하니까  이제 차차 차차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 그렇게 밉던 원수도 밉지 안합니다. 그  복수성이 차차차 빈약해집니다. 빈약해지니까 속 사람은 강해지고 겉사람은  약해집니다.

 이래 가지고 이번 이 기도단에서, 기도단에서 자기가 하나님이 기름틀에  넣어놓고 짜는 그 무서운 징계 그 징세의 고퉁의 십분의 일만 기도에, 회개에,  새벽예배 참석에 그 십분의 일만 들여도 십분의 일만 들여도 그렇게 기름짜임을  받지 안하고 아무 어려움 없이, 그 환난이 와 봤자 회개한 자에게는 환난이  없습니다. 회개한 자에게는 환난이 되지 않습니다. 회개한 자에게는 환난이  기쁘고 즐거운 것뿐이지 환 난되지 않습니다.

 환난되지 않지마는 오늘에 평안하기 위해서 기도하지 안하고 이러는 자들은  그때에 하나님이 기름짜듯이 짭니다. 그때 간단한 시간이지마는 여러 해를  고통하는 것보다도 더할 것이오. 죽을 고비를 수십 번 넘겼어. 뭐 자기가  녹아지고 녹아지고 견디지 못하는 그런 아주 고급의 혹독한 아주 심히 고강한  그런 징계로 해서 그 사람이 그 죄를 활활 게워내고 딱 끊도록 만들 것이오.

 이러니까 그렇게 한목 치료받으려 하면 기막혀. 우리가 수술을 받는 것도 한목  수술 받는 것보다는 조그매씩 조그매씩 이것을 차차차 약을 조그매씩 먹으면  낫는다. 약 먹으면 낫는 것보다도 네가 위생 주의를 해서 음식 주의만 하면,  위생 주의를 하면 너는 치료된다. 으례히 네가 위장병이 들었는데 네가 음식만  절제하면 된다.

 음식 절제하는 것이 시간이 걸리지만 음식만 절제하면 아무 어려움 없이 거석할  것인데 그것보다 자기가 이제 약을 먹어서 약을 먹어야 되는 그 독약을 먹어  가지고 치료하는 독약 먹고 치료하는 것은 고통이 더 많을 것이고, 독약 먹어  치료하는 것보다 배를 갈라뜨리고 뭐 등을 따고 이래 가지고 이제 수술하는 것은  더 고통스러울 것 아니겠소?  이러니까 쉽게 치료하는 법이니 우리가 기도하고 새벽예배 참석해 가지고  이러는 건 앞으로 환난 때 조아대는 그 고통을 이렇게 음식 주의해 가지고 병  낫우는 그것은 쉽고 고통 없이 되는 것과 같은 이렇게 쉽게 해결을 짓도록  하나님이 하신 방편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안하고 새벽기도 나오지 안하고, 새벽기도를 나와야 제가  알아듣지, 깨닫지, 깨달아야 회개를 하지. 치료가 돼지지. 깨달아야 저를 망칠  죄악의 요소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깨달아서 회개를 하지.

 어쩌든지 마지막에 이 물 문을 막기는 막을 건데, 마지막에 막기는 막는데.

막을 때에 그때 마지막으로 어쨌든지 죄악을 끊어야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로  보내기 때문에 끊기는 끊는데 마지막에 죽을 때에 끊어도 끊으니까 대개 믿는  사람들이 마지막 죽을 때 죽을 고통을 느끼고 심히 죽을 고통을 느끼는 그것이  다 그런 연고요.

 깨끗하게 회개한 사람은 병들어 죽어도 죽음에 고통이 없고 아무리 순교를  당해도 웃음으로 기쁨으로 즐거워서 순교하지 그 좋은 순교를 두려워 떨면서  억지로 순교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오늘 밤에 주신 이 두 가지 말씀 이것 기억합시다. 하나만 안  돼도 그것 때문에 아흔아홉 지체의 의는 의의 결제를 못 맡습니다. 의의 결제를  못 맡소. 의롭다 결제를 못 맡아. 미결이오. 요것 하나 요것 때문에. 요것  때문에 그 기능이 다 지옥 갑니다. 요것 때문에 네가 구십구가 다 바로 했는데  요 지체 하나가 요것 자꾸 범죄하기 때문에 요것 때문에 네가 지옥 가니 요것  하나를 끊어 버려, 그러면 범죄 안 한다 말이오. 끊어버리니까 범죄 안 할 것  아닙니까? 끊어버려 다른 지체의 기능이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요것을 깨닫고, 자기를 범죄케 하는 지체가 각각 있습니다.

자기를 범죄케 하는 지체가 각각 있습니다. 혀나 손이나 발이나 다른 지체나  자기 속에 무슨 감정이나 욕심이나 뭐든지 하나 있습니다. 그놈이 들어서 내  기능의 전부를 멸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놈을 우리가 기도로 그것을  곯킵니다. 기도로 곯키고, 새벽예배로 곯키고, 산기도로 곯키고, 나중에 바짝  곯려 놓으면, 바짝 곯려 놓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이 힘이 없어. 그럴 때는 힘이  없어. 바짝 곯려 놓으면 힘이 없어. 그럴 때는 그걸 때려잡아도 돼요.

 이러니까 그렇게 우리가 그것을 잡아서 온 전신 전체에 죄의 도구가 없어야  되지 죄의 도구가 하나라도 있으면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여, 주께 바쳐 의의 병기로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결과를 맺게 해 주옵소서. 그러고도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아  죽도록 충성하고도 주여 나는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깨달아 주님을 노엽게 하지  않고 살게 하시옵소서.' 하는 것을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걸 죽이기 전에는 우리 건설구원은 다 헛일이라. 그놈을  죽여야 됩니다. 그놈을 죽이는 데는 그 죽이기가 힘들어. 얼마나 힘드는지  몰라요.

 자기가 번연히, 죽을 줄 알지마는 권세욕 지위욕 명예욕, 그 명예욕 그것  자기가 사면하면 그만이지만 명예욕에서 그 생명이 위험해도 갑니다. 생명이  위협해도 하요.

 우리에게 있는 어떤 지체든지 마귀의 도구가 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그것은 뭐  죽고 사는 것을 상관하지 않소. 이렇게 강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회개가 안 돼요. 회개 못 합니다. 회개가 되는 줄  압니까? 회개 안 됩니다. 회개 안 돼요. 단번에 회개가 안 돼요. 자기 뭐  산기도나 가고 몇 번 가 가지고 '내가 이제는 결심했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결심했다고 그게 죽어지고 끊겨지는 줄 알고 합니까? 안 됩니다.

 그저 그놈을 죽이는 데에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계속 기도해야 됩니다. 요새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이거는 우리 서부교회에 대해서 큰 은총을 주시고 큰 지금  광대한 사상을 당신이 베푸십니다. 아주, 아주 광대하고 아주 관용하고 풍성한  너그러운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우리가 기도하고 새벽기도 나오고 이렇게 하면 앞으로 전쟁이  나야 공산주의 독침 앞에라야 회개를 할 수 있는 이제,  감옥에 갇혀 가지고, 보니까 이북에서 말 들어 보니까 온 살을 다 껍데기를  벗겨서,그래도 안 죽는 모양이라. 사람이 그것 하나님이 생명 안 부르면 안  죽어요. 껍데기를 홀딱 벗겨서 모가지 다 벗겨 놨는데 누군지는 모르고 그래  가지고 눈을 쭈욱 빼 버렸고 또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 눈은 뻐꿈 이래 가지고도  이 가죽을 다 벗겨 가지고도 안 죽고 있더랍니다. 안 죽고 있어.

 어떤 것은 팔을 두 팔을 끊어서 이래 가지고 뭐, 치료합니까? 끊어서 피가  덩덩덩덩 그래도 안 죽고 있더랍니다.

 척 데리고 지하실로 떡 끌고 가면서 '이놈아 봐, 네가 이놈아 예수를 안 내놔?  예수를 안 내놓으면, 예수를 안 내놓으면 이것 보지, 이놈들 다 예수 안  내놓다가 다 지금 이래 형벌당해. 이래 당하고 있어. 너도 이놈아 봐.' 다니며  구경을 시킨다 그거요. 다 구경했대요. 그런 책자가 하나 왔어. 거기에서  거기에까지 갔다가도 하나님이 안 죽이고 살려내니까 거기에서 나오고 나와  가지고 이제 자유 진영에 와 가지고 책자를 냈어. 그래, 보니까 별별 게  있더랍니다.

 이 모양으로 그때 예수 팔면 다 헛일이라. 예수 팔면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나를 모른다 하면 나도 하나님과 크 사자들 앞에서 내가 너를 모른다 하리라'  했으니까 그 건설구원인데 모른다 하면 멸망이지 뭐입니까? 기본구원이야  얻어놨지마는.

 이러니까 그때 그런 어려운 꼴, 그런 어려운 꼴을 당해 가지고서 고통당하는 그  고통을 지금 새벽예배에 나오고 기도하고 이래 하는 것은, 뽀스래기, 뽀스래기  이 뽀스래기 수고 뽀스래기 고난을 모아 가지고서, 진합태산이라고 뽀스래기  수고 뽀스래기 고생을 모아 가지고서 이다음에 그렇게 한번 뭉텅 당할 이 고난을  미리 다 대충해 놨으니까, 당하지만 뽀스래기 모았는데 이것도 진합태산으로  나중에 보니까 그것 대충이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기에서 우리에게 이 구원에 방해하는 이것은 주님의 원수인데  이것을 그저 쉽게 어쩌든지 쉽게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안하고 다 쉽게 자기 지체  중에 자기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그 사람의 자기의 단점 그놈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주님이 이렇게 기도, 새 벽기도 나오라.

 요새는 나오는 사람이 요 두 줄이 차면 얼마나 되는고? 두 줄 차면 얼마입니까,  장로님? 몇 명 됩니까? 뭐라 하노? 잘 몰라요? 두 줄이 차면 아마 사백 명 가량  될런가 그럴 겁니다. 아마. 그런데 두 줄이 거의 다 차 가기는 다 차 가는데,  이래도 나머지기 사람들은 어떻게 하련지 모르겠어.

 이래서 기도하고 새벽에 와서 새벽으로 와 가지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는데  요새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뭐 불을 주십니다.

 말씀을 주시는 말씀을 받고 또 기도하고 이러면 차차 차차 그놈이 곯아 가지고,  곯아 가지고 쫓겨나고 죽어져. 그러면 그놈 죽어 없어져 버리면 우리 전신 구원  얻었지 또 앞으로 환난이 와도 그 사람에게는 상관이 없어.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 면케 하겠다 말은 그 시험은 고통인데 고통이 안 돼.

시험을 져야 고통이지 시험 공부를 미리부터 잘한 사람은 시험이 시험 안 돼.

 시험을 공부 잘 한 사람은 그래요. 공부 잘 한 사람은, 동무들 보면 학교 다닐  때 보면 시험 친다 하면 그만 눈이 뻐끔하게 돼 가지고 기가 턱 죽어 가지고  시험을, 시험 안 친다 할 때는 운동장에 뛰기는 말 모양으로 제일 잘 뛰는데  시험 친다 하면 그만 푹 기가 죽어 가지고 수그러져 있어.

 공부 잘하는 준비한 학생들은 시험 친다 하면 그때는 왕이오. 시험 친다 하면  그때는 왕노릇 합니다. 그때는 시헙 친다 하면 기쁘고 즐거워서 뭐 시험 문제 다  아는데 시험치니까 뻐뜩뻐뜩 이래 떡 써 가지고 다른 사람 시작도, 시험지  읽어보지도 안해서 답안 다 써서 딱 바쳐 놓고 나가서 이제 저 혼자 공차고  돌아다니며 이래 찹니다. 그 실력을 준비해 놓으면 시헙이 시험되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앞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이 원수, 한 지체가  범죄함으로 전구원이 실패되는 요것을 지금 끊으려고, 요것을 이 연장으로 끊을  게 아니라 요것을 환난을 줘 가지고 자기 마음으로 끊고, 자기 그 모든 의지로  끊고, 자기의 성품으로 끊고, 자기 욕심으로 완전히 꺾어서 끊어서 다시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범죄할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요런 사람을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환난을 준비해 놓고 간다 간다 이래 쌓고 있는데, 지금  어리석어 그렇지 칼 사건과, 칼기 사건과 버마 사건 이것은 그 사람들은 전쟁  시작했어.

 전쟁 시작해서 '요래 죽여야 요것 도매로 몽땅몽땅 죽일까 요래 죽여야  요긴하게 죽일까, 요래야 지금 촉분을 지를까?' 벌써 그 사람들은 전쟁 하고  있소, 안 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어.

 여기서는 뭐 그 사람들의 만행 어짜지만 만행 하는 것보다도 그만 어쨌든지  여기에도 지금, 할 수 없어. 뭐 세상으로서는 그저 국력을 기르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지마는 여기에서 책임은 믿는 사람들이오. 다시스로 가는 그 배가 풍랑  만난 그 이유는 요나 한 사람뿐입니다. 하나 때문에 그렇소. 우리만, 우리  때문에 공연히 그들이 지금 고통당하요. 우리만 아니면 김일성이 저것 푸우 하게  나자빠질 것이오. 우리만 다 회개하면 김일성이도 '이 동족끼리 이래 할 게 뭐  있나?' 그 사람도 마음이 단박 회개될 거라. 그 사람이 악한 게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만든다 그거요.

 이러니까 새벽기도 나오고, 삼십 분씩 기도하는 이 기도를 산에서 들에서  기도하고 하면 그런 환난 안 와도 다. 그것 다 끊어버렸으면 하나님께서 뭐  하려고 환난을 줄 것입니까? 또 다 끊지는 안 할 거라. 다 끊지는 안할 터이니까  반 끊은 자는 반 환난 당하고 다 끊은 자는 환난 하나도 없고 기쁘고 즐거워.

하나도 안 끊은 자는 그때에 죽을 고비 넘깁니다. 그때. 뭐 왜정 말년에도 6·25  때도 보니까 참 못할 일이요, 믿음 없는 사람들 죽을 지경이라.

 홍해 바다 앞에서 애굽 병정 추격하고 홍해 바다가 가로막았을 때에 모세  여호수아 갈렙은 벙긋벙긋 웃으면서 '야, 이것 또 오늘 또 앞에는 바다 뒤에는  오지 하나님의 그 솜씨가 지금 한번 나타나겠다.' 하고 좋고 기뻐서 못 견디는데  백성들은 죽을 지경이라. 그날밤 하룻밤 녹는 것이 얼마나 고생이겠소?  사람 그 마음으로 고생스럽고 참 고통당하는 것 무섭습니다. 뭐 하 루밤  고통당하니까 아무라도 그만 피골이 상접이오. 뼈와 살이 그만 딱 붙습니다.

하루 동안에. 하루 동안에 그래요, 하루 밤에. 피골이 딱 상접이 돼 버려. 아무  병이 들어도 마음에 두려움의 고통 그보다 더, 그만 완전히 죽어버렸어요, 그만.

 이렇게 앞으로 회개하면 그런 것이 안 오고 기쁘고 즐겁게 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 어떤 걸 하렵니까?  미리부터 하나님 말씀을 신청히 듣고 죽이고 죽인 사람들은, 죽이고 죽인  사람들은 뭐 앞으로 환난이 오기를 기다리지, 오기를 기다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오기를 원한다 하면 '저거 다른 사람 죽기를 원한다는 놈이라' 하고  오해할까 싶어서 말 안 해도 속으로는 환난이 오기를 기다리지 안 오기를  기다리지 안할 것.

 또 기도와 새벽에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써 이것을 다 골케골케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환난 오면 그때 잠깐 좀, '야, 이것 큰일났다.'  우쭈름하지마는 닥쳐보면 아무것도 아니라 평안하게 지내갈 것.

 어떤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 어떤 사람은 웃음으로 지내는 사람, 어떤 사람은  평안하게 지내는 사람, 어떤 사람은 고통이, 고통으로 지내는 사람 어떤 사람은  심한 고통으로, 어떤 사람은 그만 살았으나 죽었어. 완전히 살았으나 죽었어.

하나님이 모르는 데는 무섭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밤에 한 지체, 한 요소, 한 가지의 습성,-한 습성, 한 지체 한  범죄, 한 욕심, 그놈 때문에 전신이 멸망받고 있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치료하시기 위해 가지고 자꾸 북한에다 김일성이가 이렇단다 뭐  어떻단다 자꾸 이렇게 말해 가지고 그렇게 두려움을 줘 가지고 미리 준비해서  깨끗하게 정리한 사람들은 아무 일 없고.

 이러니까, '자 온다. 온다. 온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이것만 다 회개하면  그까짓 거 다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여러분들 어쩌렵니까? 자, 미리 다. 그런 것 정리해서 '나도 주를  위해서 죽어야 될 터인데, 주님이 죽기까지 해 생명 다해서 나를 사랑하셨는데  나도 생명 다해서 주님을 한번 사랑해 봐야 되겠는데 늙어 죽고 병들어 죽을  수가 있겠느냐? 이제 주를 위해서 죽음으로 주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오면  좋겠다, 그런 형편이 오면 좋겠다.' 이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렵니까? 환난이  오니 웃음으로 통과하는 사람이 되렵니까? 환난이 오니 잠깐 근심 걱정 하다가  기쁨으로 통과하는 사람이 되렵니까? 이제 바짝 녹아서 피골이 상접할 만치  요렇게 고통스럽게 녹아나는 사람이 되렵니까? 어떤 사람이 되렵니까?  자 몇 가지 말했소, 지금 내가? 내가 몇 가지 말했지? 네 가지 말했나? 몇 가지  말했어? 내가 신용 못 해, 거기서, '네 가지' 말한 건. 여기에 누가 있나?  ○○○이 어데 갔노? 너, 몇 가지 말했노? ○○○이가 말하면 내가 좀 신용을  해요. 네 가지.

 네 가지 말했는데 그러면 네 가지 중에 자, 마지막을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마지막을 원하는 사람? 그때는 자살하고 싶어도 자살도 못 해요.

자살하면 또 구원이 헛일이거든.

 마지막 원하지 안하면 그러면 자, 셋째 원하는 사람? 이제 근심 고통하다가  이제 기쁨으로 되는 이 셋째 것 원하는 손 한번 들어 봐요.

 웃음으로 지내가는 이 둘째 걸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욕심은 많구먼  그러면 이런 환난이 오기를 고대하는 사람 이 사람 되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다른 사람은 저런 분들 손도 안 들고 저 뭐 하는 사람들이요? 하도 얼측이  없어서 그만 그런가배? 얼측이가 없어도 닥칩니다. 미국으로 피해 가도  닥칩니다. 아무 데 가도 소용 없소. 닥치요. 노아 홍수 때 훙수가 오는데 그걸  피한다고 어데 안 닥쳤습니까? 피해서 피해서 간 그것이 방주와 멀어졌소.

방주와 멀어졌어. 소용이 없어.

 자, 첫째 걸 원하는 사람 한번 남반에 한번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우리 다  첫째 것 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면 준비하면 됩니다. 여반에도 첫째 걸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용기 안 서는가배. 들어봐요. 원하면  들어야지, 들어야 돼지지. 놓읍시다.

 지금 참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버려두지 안하고 '성전 밭마당을  버려두라' 버려두지 안하고 우리에게 그래도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축에  들어갔다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이렇게 이번에 특별히 기도 이래  시작하는 것, 우리가 버마에 사건 일어나고 난 다음에 우리 기도 시작한 것  아니오. 버마 사건 일어나기 전 사흘 전에 시작했습니다. 사흘 전에 시작했어.

 오늘 내가 어떤 사람 만나니까 그 목사님이 환난에 대해서 곧 환난에 대해서  강한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하고 나서 오후예배 마치고 나니까 버마 사건이  터졌다고서 왔더랍니다. 하나님이 다 알려 주시오.

 하나님이 다 알려 주시는데 하루 전에 알리는 사람, 한 달 전에 알리는 사람,  하나님이 이렇게 알려 주셔서 우리에게는 지금 미리 알려 가지고서 기도하게  했으니까 우리가 기도로 한 지체가 들어서 전부를 멸망시키는 그 지체 그것을  칼로 끊고 톱으로 끊기 전에 그 지체를 살려 두고 하나님의 성신의 은혜로 와  가지고 그 죄악성만 싹 끊어버리는 날이면 그것이 살아 있으니까 의의 병기로  살아서 의의 도구로 뭐 오른팔도 구원 이룰 수가 있지 않겠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낙관시 맙시다. 다 소용 없소. 노아 홍수 때에 무엇이 소용이 있었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준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그때와 꼭 같다고 주님이 말씀하시지 안 했습니까?  뭐 지금 뭘 모두 준비합니까? 사업이니 돈이니 그런 것도 좋지마는 그런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 지키면서 하십시오. 믿음 지키며 해도 하나님의  축복이면 됩니다.

 금년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까 풍년이 돼서 뭐 땅에 떨어진 것마다 다  열매가 다 결실했다고 말하는데, 이래서 농부들은 '이 올해는 지금 이 곡식을  정부에서 다 사 줄 건가 안 사 줄 건가? 곡식 이것 팔아먹을 데 없어 어쩔까?'  해서 그래 걱정 한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면 되니까 공연히 말씀 어겨서 돈벌이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제  구원만 팔아먹고 제 신세만 망치는 그런 사람 되지 말고 그저 믿음으로 삽시다.

새벽기도 다 나오도록 하십시오.

 가만 있어, 하나 손 한번 들어 보자. 자, 내일 새벽기도 약속하고 사람이  못나서 잠이 들어 못 오는 수 있어. 약속해도 못 오는 수 있어. 못 와도 해가  돋아도 새벽기도 나와요. 그러면 새벽기도 못 나오게 하 그놈을 우사를 시키면  그놈이 그 다음 아침에는 일찍 나오게 돼요.

 내일 아침부터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들어 보이소. 손 들어 봐요. 다 피골이  상접하도록 고통당하려면 당하고 다 평안하게 살려면 새로 손 버뜩 들어 파요.

들어 봐요. 자, 손 들고 기도합시다. 손 들고.

 주님, 앞에서 이제 첫시간을 주님 앞에 섬겨 부르짖고 또 주님 앞에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 믿음 생활로 우리에게 원수가 되는 이 지체를 뽑아 죽여  주님이 노를 풀고 주님에게 기쁨이 되게 하려고 저희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주께서 성령으로 축복하셔서 한 사람도 쭉정이지 말고 다 알곡이 되도록  성령으로 인쳐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을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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