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구속

 

1979. 11. 3. 토요일 새벽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56절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면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사람의 망하고 죽는 그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죄에 있단 말은 비뚤어진 것이 그  원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비뚤어졌으면 어느 것을 기준해서 어디서  비뚤어졌다는 말씀인가! 그 다음에 율법에 비뚤어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비뚤어진 것이 어떻게 세력이 있어서 비뚤어진 것은 모조리 다  망치고 다 죽이느냐! 비뚤어진 것 그것의 세력이 어찌 그리 강한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것이 율법을 배경을 삼고 율법에 비뚤어졌기 때문에 거기는 하나도  남지 안하고 크고 작고 틀린 것은 많든지 적든지 전부 몰사한다 멸망하고  몰사한다.

 그러면 그 법이 어떤 법이기에, 이 법은 곧 하나님의 지성의 법이요 지공의  법입니다. 지성의 법이라 말은 모든 것을 비교하고 또 논평하고 이리 할 때에  모든 것을 다 능가하고 모든 것은 능가하고 모든 것을 저울질하고 그 이상이  없는 안전한 그 면을 가리켜서 지성이라 지극히 거룩하다. 이제 거룩으로  거룩으로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해서 그 이 상 더 구별 할 것도 없고 하나만  남은 법이란 말입니다. 완전한 이치 완전한 이치 이 면을 가리켜서 지성법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 철학에서도 이디야 주의들이 비슷한데 그것이 다 성경에서 빼 가지고  저희들이 도용을 해 가지고 그렇게들 말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성경은 땅에 있는  말들을 주어 가지고 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지요. 지성법에 이렇게 비뚤어졌기 때문에 그 이상 가치가 없는 평가적으로  그 이상 가치가 없는 평가적으로 그 이상이 없는 이치요, 또 비교적으로 그  이상이 없는 법이요, 또 모든 이치를 다 정죄해도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법인데 영원한 법인데 시간과 공간 종류에 어디라도 이 법을 상해할  수 없는 완전 무결 영원불변의 법인데 이 법에 어긋났기 때문에 여기서 구출할  자들이 없어. 모두가 다 이 법 아래에 있고 이 법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이  법이 가장 평가적으로 완전 무결하기 때문에 이 법에 비뚤어 졌는 고로 사망하는  것이요.

 또 지공법 지공법이라는 것은 이것은 지성은 그 법의 권위와 가치를 말하고 또  지공은 사람말로 말하면 이 법의 사회성 있는 것을 가르쳐 말합니다. 사회성  공통성 모든 존재 창조주나 피조물 어느 하나에게도 불만스럽지 않고 또  침해되지 아니하고 하후하박으로 어떤 데는 좋고 어떤 데는 나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에게 다 환영을 받고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생명이 되고 평강이 되고  유익이 되고.

 이러기 때문에 부스러기 하나도 그에게 침해가 없고 그에게 유익이 없는 것이  아니고 이 이치로만 살아야 모든 존재는 되어 모든 존재가 다 환영하고 실지로  유익을 보고 영원히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이 이치인 이 면을 가리켜서  지공법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다른 면은 이 법을 가르쳐서 자유의 법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의 법이라 이것은 모든 존재들이 다 소원성취가 되는 이 이치로라 그 말이요.

지금은 이치에 모순 되어서 또 어두워서 열 중에 아홉은 해치는 것이 되고,  하나에게 좋으면 하나 그것이 아홉을 모르기 때문에 완전법이라 하지마는 그  외에 아홉이 나서 가지고 모두가 시비를 겁니다. 너거는 좋지마는 우리에게는  안됐다 이러면 이것이 시비가 붙을 것이고 시비 붙어 가지고서 거기서 변론하고  논평하고 대결하고 평가하고 이렇게 하면 무엇인가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을  것이라 말이요. 거기에 당하는 것이 지성치 못한 법이요. 그 모든 걸 능가한 것이  지성의 법인 것입니다. 이 법에 비뚤어져 가지고 망하는 죽는 것이기 때문에 너는  아무도 구출할 수가 없어. 이 법을 아는 자도 없지. 또 이 법을 이 법이 요구하는  요구에 만족을 이룰 자도 없어.

 로마서 1장에 보면은 육체의 연약함을 인해서 이 율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육체라고 말하는 그것은 어떤 것을 내포해서 말한  것인고 하니 아래 위 영물과 또 아주 인간 그밖에 있는 모든 만물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함인데 모든 피조물로서는 이 지성법과 지공법의 요구에 응해지지  못한다, 이 지성법과 지공법에 정죄 되지 안 할 자가 없다. 이 법에 저촉되지 안  할 자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원하고 원하심으로 했지 거기에 대속 하실 때에 만일 예수님에게  속한 세포 하나라도 원하고 원하는 그것이 아니면 지공법에 걸렸습니다. 강제이기  때문에 그 공평이 죄는 남이 짓고 형은 다른 사람이 다른 것이 받는 법이 어디에  있소? 이러나 그 자체가 원하고 원하니 인간에게 자유성을 줬는데 대속 하기를  전체가 원하고 먼저 하나도 세포 하나도 빠짐없이 다 원하니 그것을 강제하는  것은 또 자유성을 틀렸다 그거요. 그 주는 것이 또 공평이라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으로서 지공에 정죄 되지 안하고  지공법이 요구하는 요구를 만족할 수 있는 요 자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렇게  원하셔 가지고 부득이 해서 하는 것 아니요. 요렇게 원하신 요 지공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대속 하신 것이 어떻게 대속하셨는가? 예수님이 요  지공법에 걸리지 안한 요 하나님의 그 지성법 이라면 그 이상이 없는 아지  못함이 없고 능히 못함이 없는 요 법 앞에서 지공법을 완수한 이 사랑을 우리가  새김질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요한 같은 이런 사람들도 다 예수님이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데에 그저 단  마음으로 순종했지마는 주의 얼굴빛이 해와 같이 빛난다 그 앞에 거꾸러졌소.

그런 거꾸러진 원인 중의 하나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공법에 거리지  안 할 만치 세포 하나까지도 날 사랑하셔서 대속 하신 일을 원하고 원하여  부득이 하신 것 아니요? 이렇게 원하는 그 능동적인 이 사랑을 가지고  구속했는데 자기는 주님 앞에 순종했다는 것이 이거 뭐 원하고 한다고 해도  그것을 심사해 볼 때에 껍데기만 원했지 속은 그 어느 정도 자기가 자원하고 단  마음으로 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주를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대상이 돼서 주님을 사랑했느냐 하는 여기에 다른 사도들이 느끼지  못한 느낌을 특별히 가진 줄 압니다.

 그러기에 그가 밧모섬에 다녀와 가지고 저널에 의하면 그를 예수님의 도 때문에  기름 가마에 넣었소. 기름 가마에 넣고 삶았소. 기름 가마에 넣고 삶아도 그에게  하나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그 명령을 지킴으로 기름 가마에 삶기는 그런  어려움이 와도 그 세포 하나도 원하고 원하는 그 전체뿐이지 부득이해서 하는  그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고것이 거룩을 완성했으니까 그가 삶기지 아니하고  기름 가마에서 죽지 아니하고 거기서 그대로 생생해서 나왔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면 보다도 주님의 이 지공법의 이 완수한 이 사랑을 사랑  앞에서 그가 녹아졌고 그가 거꾸러져 죽기까지 회개를 해서 주님은 원하고  원하신 순전히 이것만으로 날 사랑했는데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원하는  마음 중심이 있지마는서도 원하지 않는 세포가 있었고 지체가 있었고 또  신경들이 있었다는 여기에 대해서 깊이 회개해서 그에게는 그런 신경이나 그런  세포가 없었기 때문에 기름 가마의 그 열도가 그를 상우지 못했습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물질이 상해하는 것이나 어떻게 상해하는 것이라도 그 이면에는  이치가 주인공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지공법에 그러니까 그것이 주님에게 상대해서는 지공법이요  하나님에게 상대해서는 지성법을 완료했기 때문에 지공 지성법에 걸리지 않는  것을 피조물이 건드리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난 자는 만지지도 못하고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쓱 초월해서 쓱 초월해서 지성 지공법은 과거에 4.19혁명 때에 최고  위원회라고 조직되지 안했습니까? 최고 위원회는 그때 그 당시는 그 밑에 있는  이런 무슨 기관들이나 뭐 관서 이런 것은 다 그 발 아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그저 복종뿐이지 할 수 없는 그 당시는 모든 관서를 다 탁월해 있는 것이  최고 위원회라, 지금 뭐 형전부 보다도 달랐어. 그때는 그 삼권을 단 단일권으로  이제 최고권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최고 위원회인데,  비유컨대 그와 같이 지공법 지성법은 이렇게 지극히 그 탁월해서 있는 이  권위의 위치에 걸리지 안하고 여기서 용납했는데 어떻게 물질이 그를 해할  것이며 물질은 아주 그 밑의 그 저급의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도 여기에 걸리지 안하고 여기서 인정했기 때문에 마귀가  그를 해하지 못하고 사망이 해치 못하고 음부가 그를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산 자를 죽은 것이 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썩는데 이를 수가 없어. 썩는  것 썩히는 것들이 가까이 올 수가 없어. 망하게 하고 죽게 하는 것이 가까이  오지를 못했어.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평가적 도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법에 걸려 놨으니  아무도 할 수 없어. 여기에 도달할 자가 없어. 사망을 내리붓고 이는 이렇게 지성  지공에 있는 지공 지성에 있는데 그 밑에 전부 이 정죄 받고 그 밑에 다 밟혀  있고 거기 명령 따라 지금 있는 그것들인데 그것이 어떻게 작은 것이 큰 것을  능가할 수가 없어. 지배할 수가 없어. 없는 것이 있는 것을 어떻게 상하지 못해.

피조물들에게는 없어 이것이.

 이러기에 이 요구에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 신인양성일위의 중보자로 오신  것입니다.

율법이라!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우리를 책임졌는데 책임진 분이 있는데  이렇게 어려운 지공 지성법에 걸리는 이 문제를 해결 지울 책임자가 왔는데 어떤  책임자? 땅에도 없고 하늘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다. 일곱인으로 인봉했는데  일곱인으로 인봉을 했는데 이 인봉을 뗄 자가 땅에도 없고 하늘에도 없어. 이  정죄 됐다는 말 인봉 됐다는 말은 정죄 됐다는 말이요. 요한계시록에 안팎으로 쓴  책이 있는데 이 책이 다 일곱인으로 인봉 했는데 이 인봉한 것을 땅에서도 뗄  자가 없고 하늘에서도 뗄 자가 없고 모든 존재 중에 이제 피조물 중에는 뗄 자가  하나도 없다, 영계와 물질계의 피조물로서는 하나도 뗄 자가 없는데  신인양성일위이신 어린양이 이 인봉을 뗐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분이 이제  책임을 졌는데 우리 주, 책임졌는데 그분이 어떤 분이냐?  예수라. 예수라. 신인양성일위로써 이 두 법에 이 율법에 거슬려 정죄 된 이것을  이것은 형벌을 받아서 해결 지었고 또 이것은 형벌을 받아서 해결 지었고 사망을  받아서 해결 지었고 사망을 받아서 해결 지었어. 이것은 사망을 받는 외에는 아무  값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사망을 받아 해결을 지은 이것이 대형으로 사죄 주신 것입니다.

또 이 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어서 지성법 지공법이 요구하는대로 다 해야 돼.

이것은 우리를 대신 행함으로 이 율법의 요구대로 다 했어. 지성법이 지공법의  요구에 그 시험칠 때에 그 요구에 합격이 되고 하나도 거게 정죄됨이 없는 이런  행위. 왜? 죽기까지 복종했으니까 거기에 다 바쳤단 말이요. 죽기까지 복종한  죽은 그것이 이제 완료입니다. 그 이상이 없으니까 다 이니까 다 지성법에  지공법에 다 다 복종해서 전체가 죽으신 것은 지성법의 것이 되었고 지공법의  것이 되었고 그것이 죽으심으로 완료입니다. 이래 가지고 칭의를 주시고 이제는  신성 인성 양성이 일위된 신인결합이요.

 이것으로써 신인양성일위 이것을 가지고 완전 생애를 다하고 끝마쳤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사이에 불목이 다 요것이 양성일위로써 죽기까지  복종한 요 일을 다 해 버렸기 때문에 요것으로써 이제 불목 된 것이 다 이것이  끊어졌습니다. 불목 된 것이 이것이 다 속해졌소. 그러고 난 다음에  신인양성일위로 영원히 부활했소. 부활했단 말은 신인양성일위로 영원히  계속하기로 출발한 여기서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렇게 화목으로 영원히 계속  하나님과 화목으로 영원히 계속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되는 것으로 영원히  계속하는 요 화목 한 덩어리 이것이 이제 온전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제는  피조물이 하나님하고 하나 됐습니다. 하나 돼 가지고 움직이는 이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지공법으로 지성법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이것이  영생이라. 지공법으로 지공법으로 움직인 이것이 영생이라 이러니까 모든  피조물이 다 환영만 하고 좋아하고 그 혜택만 받지 하나에게 거리낌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자유의 법이라. 자유에 대해서 제가 한 20년 전 서울에서  그 관악동인지 관악산 집회 때 제가 일주간 엿새 동안을 강의할 때 요 자유에  대해서만 강의한 일이 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이치적으로 그 이상이 없는  최고의 이치로 이권 그 다음에는 영권 힘으로 그 이상의 힘이 없어. 이권 영권  하나는 자체권 모든 것이 자유를 원하되 모든 것에게 다 자유를 다 자유를 주는  모든 것에게 다 자유가 돼. 요것만 안하면 모든 전체가 전부 다 공존 공영 공생활  수 있는 궁원대로 될 수 있는 만족을 이루는 요 자체법, 자유라는 그 자체의 범위,  자체권 이것을 가진 것이 자유인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좋지만서도 저 사람의  자유에 걸리면 안돼요. 이렇게 지공의 나라입니다.

 이런데 이제 신인양성일위로 다시 재 출발해서 부활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은 신인양성일위로 다 바쳐서 다 써 버렸고 그러면 이제 화목제물이  됐습니다. 화목은 됐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이제 양성일위가 끊어졌습니다.

양성일위가 신성은 신성대로 인성은 인성대로 나눠졌으면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되어 가지고서 이제 영생하는 이것이 있을 수 없는데 다시 양성일위의 몸으로  영존하시기로 입고 나신 것이 부활이라.

 이러기 때문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주셨다고 베드로전서 4장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우리 주 예수로 이김을 주시고 예수로 이김을 주셨으면 이는  대속 하시고 화평을 이루어 다 이루어 놓으시고, 그 다음에는 우리들에게 하라  이러는데 기초와 자본이야 있지마는서도 우리들이 할 힘이 없는데 그리스도로  이김을 주셨어. 예수와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는 이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도성인신하시기전 성자의 그 직명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본질 본성이 사랑,  도덕면의 완전, 지혜 지식면의 완전, 능력면의 완전 이 세 가지 직책을 받고 장립  시키는 것이 이것이 기름부음의 이 그리스도의 행사인데 양성일위이신 이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직을 행하셨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직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이 이 일을 책임지고 나서서  우리의 구속의 책임자로 준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느니라 그렇게 말했어.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느니라. 보증자라 그 말이요. 보증자. 우리의 모자라는 것을 다 대신  물어넣어야 돼. 보증자. 보증자로 성령이 나섰는데 보증자로 성령이 하는 역사가  나왔으니 그 역사가 진리요, 66권 도리요, 영감의 은밀 의지들이요. 또 이  보증자의 인격체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요 이 보증자가 역사한 무인격체인  역사인 그 이치는 특별계시 문서계시 은밀계시 이 진리요. 이래서 이분이 이김을  주셨다. 이김을 주셨다 했으면 과거사 뿐인데 이김을 주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김을 주셨고 계속 이김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직을 입혀서 그리스도의 직을 입혀 그리스도의 혜택을  입어 이 세 가지 면으로 온전자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직을 대행할 수  있는 복을 덧입게 함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 직을 대행할 수 있는 다른 데에는  말하기를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왕 같은 선지자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왕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영을 말합니다. 성령을  말합니다.

 이러기에 그분이 완수한 그대로의 것을 말합니다. 이러기에 이제 이  그리스도직을 우리로 완료케 하는 것인데, 그러면 제사장 직이나 선지자 직이나  왕의 직이나 이 직책은 그 삼각 관계를 가진 것이 이 직책입니다.한 면으로는  제사장 직은 한 면으로는 영원 자존자 지성자이신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한  손으로는 이 이스라엘 백성을 붙들고 이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붙들고 하나님을  잡고 그 중간에서 문제를 해결 지으려고 호소한 그 행동이 제사장의 제사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삼각형,  그러기에 예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이 이 일을 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이 구속을 받게 하는 것은 우리가 제사장 면으로 모든 기독자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 모든 피조물의 문제를 우리가 가지고 이 하늘과 땅의 것을  다 받으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우리 중보자 예수님에게 매달려서 이 해결을 짓는  모든 사랑과 도덕면에 책임을 지고 해결 짓는 우리는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영원한 제사장 이 직을 지금 우리가 어는 정도 권위 있게 가지느냐 어느 정도의  범위를 가지느냐 이것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실력이요 이것이 하늘의 지위요  영광인 것입니다.

 또 선지자 직은 모든 피조물과 이 창조주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과의 그 사이에서 주님의 뜻과 피조물의 뜻이 일치되도록  이 중간에서 중매의 역할 이 중보 역할을 하는 요것이 영원한 우리의 직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원한 선지자요 왕의 직책에서 하나님 신인양성일위 이신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받아 가지고서 가졌는데  위에서 다 받았는데 이 분의 받으신 이것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을  피조물에게 안보를 주는 이 통치. 모든 피조물에게 평강을 주는 통치.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왕의 직책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지금 마련하는 것이 제사장직 선지직 왕의 직 이 직책의  권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어느 그 범위의  것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며 어느 범위의 것을 하나님의 그 명령을 가지고서  전달하며 어느 범위의 것을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서 통치를 하나? 이래서  한므나 남긴데에 한 고을을 주어서 한 고을 준 것은 자기가 이 땅 위에서 성화  된 그대로 무궁세계의 통치의 권위의 범위를 비유해서 나타낸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감사하노니. 이 감사한다는 이것도 피상인 입으로 감사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  아니요. 여기에 감사를 말하는 것은 이와 같이 되어진 그 자체가 이제 하나님에게  감사의 것이 됐다 그거요. 요대로 해서 성화 된 그 자체가 지금 감사하는 것을  말하지 피상적으로 입으로 아 이렇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을 그 위에 죽 어제 아침인 금요일엔가 아fp 아침인가 죽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입술로 말하는 이것은 아주 외부요 입술로 말하는 그  속에 자기의 행동으로 하는 것이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감사하는 것이 있어야  하고 행동 자체가 감사가 되어야 되고 행동 자체가 감사가 돼야 되고 행동 차제  안에 자기의 그 차제가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자체가 되어 있어야 하고 이제  그밖에 나오는 것을 가리켜서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말했습니다.

 에베소에 보면은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네 사랑하는  형제들아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는 요 사랑이라는 여기 기록된 요  사랑은 하나님이 상대하는 하나님의 대상인데 하나님이 상대하는 하나님의  대상인데 어떤 면으로 대상이 되어 있느냐 하나님의 전부를 다 주시기로  작정했고 받을 수 있는 그 소속과 입장과 위치를 가진 고 면을 고조해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말한 것입니다. 이는 무한히 받는 위치요 무한히 받는 위치요  받는 위치요 하나님은 무한히 주시기로 작정해 놓고 유일한 대상으로 삼아 놓은  위치요 이는 무한히 받고 무한히 주는 요 위치인데, 이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이랬습니다.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또 세례 받으셨을  때에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그 사랑한다는 말은  네게 있는 것 모든 것 다 이를 사랑하므로 내게 있는 모든 것 다 주는 자라. 내게  있는 것 다 주는 자라. 이 에게는 내가 있는 것이 다 있는 자라. 나의 기뻐하는  자라 그 말은 다 받을 수 있는 자라 그 말이요.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받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의 것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그 이상은 기쁨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 말은 제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서  기쁘시게 한다는 그런 잘못된 거꾸로의 해석을 가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받는 것이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적게 받으면  적게 기쁘시게 했소. 안 받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했소.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요. 잘못 알았소. 연보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잠깐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영원히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그 길이 뭐이냐? 그것을 하나님이 뜻대로  한번 쓰는 것이요. 그 하나님에게 제 것을 드리는게 아니요. 하나님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데 영원히 자기 것이 되는 것이라 그 말이요. 그 받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견고하며" 요게 요 촛점 요 촛점 요 지공 지성법에 딱 들어 맞아서  빈틈없이 되어 있고 예수님이 대속으로 되어 있고 요게 빈틈없는 요것을  계속하는 그것이 영생인데 계속하게 하려고 성령님이 지금 그 역사의 망으로 그  성문의지 은밀의지로 망을 쳐 놓았고 그 어디에 성령님이 내주 해 역사 하셔  가지고서 요 일하고 있는 요기에 떨어지지 말아라. "견고하며" 요게 비뜰어지지  말아라. 요기에 금이 가지 말아라. 틈을 가지지 말아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견고라는 말은 우리가 이렇게 붙들고 하는 그 인간의 말로는 요렇게  밖에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요렇게 표시했지마는 이 얼마나 어렵고 이것도  전능이 아니면 안돼.

 이래서 이것을 좀 깊이 생각해 새김질해 본 그 칼빈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궁극적 구원론을 자기가 말 안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성을 말하지  안 할 수가 없어. 주권성 위에는 하나님의 유일성 하나님의 유일성 하나님의  단일성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서 모든 것이 생기기도 다 거기서 나왔고, 그이 능력에서 나왔고,  또 영생도 그에게서 나온 것만이 영존합니다. 그에게서 생겨진 것이 그로  말미암아 움직여질 때 이것이 영생이요 그 외에는 영생이 없어. 이러니까 여기에  요동되지 말아라.

 견고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여게 떨면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어.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라 그 말은 방탕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방탕하지 말아라. 요게 떨어지면 방탕입니다. 요게 떨어지면  방탕이요 그것이 사망이요. 그것이 탈선이요 그것이 죄요 흔들리지 말아라 죄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 말은 네가 힘쓰되 이제 차차 능숙해지니까 이제는  수월한 줄로 아느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라 하는 말을 바울이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마음이 눌린다는 그거와 꼭 같은 성질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있는  대로 네 있는 대로 쓰는 쓰는데 네가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니까 다 드리는  정도가 미약했고 어렸고 약했고 더 깨달으면 더 깨닫는대로 네가 있는 전부를 다  기울이라 그 말이요. 힘쓰며 다 기울이라. 더욱 힘 쓰는 자 되라.

 이러니까 기독교는 노쇠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육체는 부패하나 육체는 후퇴한다  그 말이요. 육체는 낡아지고 쇠해지고 이렇지마는 속은 날로 새롭도다. 이러니까  고깃덩어리로 하는 일이 빈약해지지 이제 그 마음이나 깨달음이나 이런 것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 기독자의 신앙입니다. 이런데 나이가 많으면 척 척 이제  낡아지고 쇠해져서 이제는 그 힘쓰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이것이 더 영적이고  더 심적이라 더 깨닫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범위나 또 간절한 것이나 마음에  눌리는 것이나 또 힘쓰는 면이 과거에는 껍데기 보이는 요 면으로 있었는데 또  이제 범위를 넓혀 가지, 이렇게 힘써서 점점 그것이 새로와지고 자라가면 그  신앙에 바로 입각해진 것이고 그렇지 안하고 육체의 노쇠에 따라 그것이 권능  준비하는 그 심령이 노쇠해진다면 그는 그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요. 그것은 성령님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잡탱이 입니다. 잡탱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많고 또 잡 것이 많습니다. 그것은 열매를 보아 알아.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요게 안 떨어지고 요게 붙어 가지고  있는 요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요것이 주의 일이요 우리의 일입니다.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안다.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었는데  이것만이 헛되지 않는다 그 말이요. 이것만이 헛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왜  헛되어지느냐? 헛되어지는 그 이유는 첫째로, 그것이 존재 존속하지를 못합니다.

존속하지 못해 없어지요.

첫째로 없어지지 아니할 것은 요 길 뿐입니다. 뭐 이종교가 많이 있지마는서도 그  말 할 수 있어. 없어지지 말아라. 없어지지 말아라 없어지지 안하면 된다. 첫째로  없어지지 말아라. 여기에 속해서 요 외에는 없어지지 안 할 것이 없습니다. 무로  돌아가지 안 할 것이 없소. 무를 이길 자가 없소. 없어지게 하는 것을 이길 자가  없어. 요것 외에는.

 둘째로는 낡아지고 약해지는 것을 이길 자가 없어. 시간에 따라서 백년 천년  만년 가면은 약해지고 낡아져. 약해지지 안하고 낡아지지 안하고 자꾸 소생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맞은 것 뿐이라. 지성법 지공법 여기에 만족을 이루는 요 이치에  맞아야 돼. 요 법에 맞아야 돼. 요 최고 권위 요게 맞아야 돼. 이러면 자존 자에게  맞아요.

 세째로는 시간을 초월한 것이라야 됩니다. 천년만년 영원 만년 억억 만년 영원히  가도 그 시간에게 정죄를 안 받고 그 시간에게 정복 안 당하고 그 시간에게  갇히지 안 해야 돼. 만년을 자기가 보존되었다 할지라도 유지했다 할지라도 만  이년을 건너가지 못하면 만년 속에 파묻혔습니다. 이거 없어. 아무 것으로도  여기에 요 자존법 지존법 지공법 여기에 걸리지 안하는 것이라야 이제 시간이  그를 가두지 못해.

 네째로는 공간이 가루지 못해야 돼. 공간, 물질계, 영계 이것을 표현을 공간으로  한 것인데 어떤 그 존재나 단체나 위치들이 어떤 위치가 너는 여기에 제한되어  있다가 그 위치에게 위치라는 그 감옥에게 들지를 안해야 돼. 이 위치를 통과해야  돼. 위치야 있거나 말거나 그 위치에 나는 자유라. 그 자유를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다섯째로는 모든 존재 모든 존재에게 걸리지 안 해야 합니다. 수많은  종류에게 걸리지 안 해야 되고 수많은 행동에게 제제 받지 안 해야 되고 안해야  되고.

비판들 봐라 이렇게 판단되니 네가 어쩔 것인고? 거기에 막히지 안 해야 돼.

평가에게 막하지 안 해야 되고 모든 존재가 환영하는 그 환영에 통과가 되어야  돼. 그 환영에 걸리면 안돼. 너는 환영 못하겠다 하면 안됩니다. 모든 존대 그  존대를 통과해야 돼. 아 당신은 내가 존대합니다. 인정을 받아야 돼. 모든  존재에게 화평의 인정을 받아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이 걸음을 걸어야 되는데  이거라야 영생이 되는데.

 여섯째로 망하지 안 해야 되고 죽지 안 해야 돼. 사망을 이겨야 돼. 우리 행동이  말입니다. 일곱째로 심판의 부활을 벗어난 것이라야 돼. 생명의 부활에 속한  행동이라야 돼. 여덟째로 공심판은 주님이 대형 대행하셨지마는 이제 주님의  사심판이 있는데 이 사심판은 공심판 속에 있는 것인데 공심판 알맹인데  공심판을 이겨냈다 할지라도 이 사심판에 걸리면 하늘나라에 활동 못합니다. 하늘  활동 못하요. 이러니까 공심판을 통과한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예수님의 이  사심판 이 심판에 걸리면 심판에 걸리면 무궁세계에 활동은 못합니다. 그  나라에는 존재 못하요. 그러니까 부활 영생으로 하늘나라에 가 있지마는 그  나라의 활동은 못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봤어.

 고린도후서 5장 9절 이하에 보면은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다 서서  각각 자기의 행한대로 갚음을 받을 것이라 그것이 사심판 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그리스도의 심판대라니? 그리스도가 무엇이지요? 기름부음입니다.

기름부음이라니?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서 제사장이 될 수 있고 선지자가  될수 있고 왕이 될 수 있는 요 심판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거, 요 실력을 갖춘  종류 그것만이 그 심판에서 통과 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돼. 우리 행동에  이것이 이루어진 행동이 되어야 돼.

 아홉째로 모든 존재의 자유에 모든 참된 이치에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그  조성하신 의에 모든 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 그 신령의 질 생명의 질 사랑의 질  영생의 질 이 질로 되어 있는 이 천국에 거침없이 들어가야 돼. 거기 걸리면  안돼. 이 본질로 본성으로 되어 있는 것만 이 천국 문에 들어가지 이 본질과  본성으로 되어 있지 않는 것은 이 천국 문에 이 본질과 본성이 아닌 것은 못  들어가.

 열째로 천국 시민의 자격인데, 그것은 하늘나라의 법칙이 자기 법칙이 되어  있어야 돼. 하늘나라 범칙이 자기 법칙이 되어 있는 그 행동만 들어가. 그 실력만  들어가요. 이러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법칙을 현실에서 이루면 그 법칙은 내  법칙이 됐기 때문에 이루어졌소. 내 자율이요 내 주관이요 또 그 나라의 그 언어  통과 되어야 돼.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아야 돼. 그 나라의 언어는 음성이  안나. 상대방을 보면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내가 아는 것이 그것이 그 나라의  방언이라. 상대방의 뜻을 내가 보고 아는 것이 그것이 말이라. 상대방의 뜻을  모르면 귀머거리이고 벙어리라. 상대방의 뜻을 아는 것은 내 뜻이 상대방의 뜻과  일치가 돼 가야 알지 다른데 아는 것은 아니야. 그 뜻이 내 뜻. 내 듯이 그 뜻.

하나님의 뜻이 내 뜻. 내 뜻이 하나님의 뜻. 단일의 뜻이라. 한 뜻.

 이래서 빌립보 2장에는 한 뜻 한 마음 이 행동이 되어야 됩니다. 한 사상 한  본질과 본성 한 생활 전체가 근본이신 하나님의 단일성으로 돌아가 그이  본체와는 합하지 않지마는서도 그 본체에서 나오는 모든 작용과 는 꼭 같은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요것만이 하늘나라에 가서 역사 합니다. 삽니다. 이래서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보면은 이것을 말해 놨습니다. 거기는 문이 사람이고  사람이 문이고 거리가 사람이고 사람이 거리고 이래서 성도들을 교회를 가리켜서  십 이 지파를 열 두 진주문이라 그렇게 말한 것은 거기는 사람이나 물질이나 그  모든 전체가 다 단일성이기 때문에 단일성의 성전이 없어. 필요가 없어. 다른 게  없어. 이것보다 이게 다르다 그런 것이 없어. 전부 다 하나님화 되어 버렸어.

이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그 계시록을 해석해 놓은 주석이 없어. 그러기에 유력한 주석가들이  말하기를 하늘나라도 다 개성들이 있어서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자 않으냐 하는  해석을 하늘나라도 다 개성들이 용납돼서 마치 꽃밭에 화원에 가면 붉은 것 흰  것 전부 한데 썩여 아롱아롱하게 아름다운 것처럼 하늘나라의 이 사람의 개성 저  사람의 개성 모든 개성들이 다 종합되어 가지고서 그대로 살려 가지고 가는  하늘나라라 하는 해석이 일반적 해석인데 그 해석이 틀렸소. 하늘나라는  아롱아롱한 것이 없습니다. 개성이 그대로 가지 않소. 개성은 다 죽여야 돼요. 다  죽여서 예수님의 단일성화 되어야 됩니다.

 이러니까 모든 피조물이나 영계 것이나 물질계 것이 다 하나님 한 분으로 난  것은 하나님 한 분의 속성 그대로 된 것이 만물이요.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통일이 된 것입니다. 통일됐다 말은 단일성으로  움직이는 그 움직임에 나와서 말합니다. 통일성 위가 주권성이요 주권성 위에가  유일성. 유일성 단일성 유일성 단일성이요 단일성 위에가 유일성입니다.

유일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이 다 단일성 돼 버렸소. 단일성이라는 그  말이 어려운 말인데 그걸 많이 해석을 해 줬는데 거기에는 그 나타날 때는 수백  천으로 나타나지마는 그것이 하나라. 하나에서 나온 것이라. 그 수백으로 나타나  역사 하지마는서도 속은 하나라.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는 것은 그것은  활동면으로 가리켜 말합니다. 그 사람의 개성을 말하는 것 아니요. 개 직을 말한  것입니다. 개 직을 손이 하는 일이 있고 발이 하는 일이 있지 않소? 하나님의  단일성 단일생명으로 인한 단일성 단일생명 단일지혜 단일능력 이것 가지고 역사  하지마는서도 껍데기는 이 사람은 이 일하고 부흥회 하고 이 사람은 목회하고 이  사람은 지금 공장하고 이 사람은 농사 짓고 하지만서도 그것이 하나님 한 분  에게서 나온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것을 비유한 것이 로마서에 이제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 하는 것이지,  개성이 그대로 살려져 가지고서 하늘나라 간다는 말 아니요. 그것을 제가 서울  원일 교회에서 한 새벽에 집회할 때에 집회를 했는데 그때 박 윤성 목사님  이상근 목사님 거기 와서 참석을 했는데 제가 그것을 가지고 증거를 했소. 증거를  했더니마는 박윤선 목사님 나서면서 이 천국은 단일성이다. 이는 개성이 용납  못한다. 그것을 말을 해서 같이 거기서 나가면서 박윤선 목사님 말씀하시기를  나도 이제 신학교 가서 이것을 증거 하겠습니다. 단일성 이걸 증거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갔는데 그 뒤에 오랜 후에 나눠져 가지고서 이제 중생된 뭐  영이 죄 짓는다 안 짓는다 이런 말하고 난 다음에 오랜 후에 갈라지고나서 중앙  교회 집회 할 때 내가 가서 참석하고 하룻밤 잤는데 마침 그날 밤에 그것을 증거  했는데,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다 하면서 하늘나라는 아롱아롱한 그것이  인간에게 사려 가지고 가져 간다 (                        )마음에 아주 마음에  기가 막혔습니다. 나중에 마치고 나서 나가서 인사하면서 목사님 나는 그만  이렇습니다. 그리 겸손한 말씀을 하시는데도 그 학자라는 것은 자기의 깨달음은  변경하지 않는 모양이야. 틀렸습니다. 그 해석이 틀렸소. 안됩니다. 하늘나라는  개성이 용납 못 하요. 이 피조물이 그 피조물이 그 존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지마는 이제 완전히 그 기능이라는 것은 하늘나라의 것으로 됐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린도후서 5장에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우리 활동이요.

 열한째는 우리가 한 시간 한 토막 한 현실에 사는 요것이 어떤 것이야 되느냐?  수여의 위치여야 합니다. 수여 받을 수 자 줄 여 자 수여의 위치여야 하요.

하나님 한 분에게 받아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주는 그 위치가 교회 위치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연습하고 그 실력을 마련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있어지게 할 분 있어지게 할 분 모든 것을 있어지게 한 분 이 분 한  분 뿐입니다. 있어지게 한 분 이 분 한 분 뿐이요. 앞으로 영원히 있어지게 할  분도 이 분 한 분 뿐이요. 이 분과 이 분으로 말미암아 있어진 나. 앞으로 이  분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있어질 나 요. 나요 이분과 요 있어지게 할 요 결합의 요  관이 여기 통해 있어야 됩니다. 여기 막히면 안됩니다. 여기 통해지는 요 현실  공부해야 됩니다. 이런데 이 것을 누가 하겠습니까? 누가 이것을 하겠소? 우리가  예수 믿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비판적이며 얼마나 평가적이며 얼마나 심판적이며  얼마나 정죄적이며, 금을 불로 연단해서 타지 않는 이십 사금 그것이 연단하고  연단해서 남는 그 진짜 그것을 비교할 수 없는 그것보다 뛰어난 모든 것을  능가하고 모든 연단을 시련 모든 박해를 다 벗어나고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이것인데 불로 연단해서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롭다 말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정선된 것이란 그 말이요. 정선된 것 이것인데 이것을 누구 힘으로 되겠소? 이것  어려운 줄 우리가 알아야 될 터인데. 어려운 줄 알아야 될 터인데 이제  아무나따나 제 썩은 생각 제 명철이나 현철 그것 가지고서 이렇게 맞추면  되리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고 완고하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뭐 이것 보면 기가 막히요. 근방에도 가지 않는 뭐 우리 사람이  봐도 근방에도 가지 않은 것이라도 하면 되는 줄 알아. 하면 되는 줄 알고  말만하면 되는 줄 알고 하면 되는 줄 알고 이러기 때문에 이 길을 이김을 주시는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더욱 힘써라 요 면에 힘써라.

 이런고로 66권 도리는 외관적입니다. 이거 다가 아니요. 66권 도리로써 자기의  행위와 자기를 이것는 보이는 것입니다. 66권 도리는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것이요 느낄 수 있는 것이요. 66권 도리로 대충 자기  행위를 정리하고 자기를 66권 도리로 정리를 하면 이제 거기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그 면에 어떤 면이라도 그 면에 66권 도리를 가지고서 거리끼는 것을  정리를 하면, 그 면에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요걸로  정리한 마음을 가리켜서 양심이라 착한 양심이라. 요것으로 정리된 그 행동과 그  자기, 사람이 된 그 다음의 마음 그것이 착한 양심이라 그게 양심이라. 그러면  이것이 다냐? 이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찾아간다 했소.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 요것이 찾아간다 했습니다.

 이러면 이제 자기 현실에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영감의 그 길을 자기가 알고 그  도를 알아서 그러면 첫째로는 자기 현실에서 이렇게 해야 되느냐 저렇게 해야  되느냐 그 종류적으로 노선적으로 그것을 택해야 되겠고 요리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고 그러면 그것만 택했으면 다인가? 그걸 택했는데 택하는 것도 성경을  힘입어서 그걸 택했지마는 택한 그것을 행하는 데에도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  인정할 수 있는 데에는 자기가 요렇게 하는 그것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그  하는 도수가 맞는다 그 말이요. 도수가 맞아. 암만 자기가 가라는 데에서 가라는  것을 택했지마는 가라는 데에 가라는 데까지 가야 될 것 아니겠소? 도달 해야 될  것 아니겠소? 그것은 힘 아니요? 가라는 것을 택해서 그 길에 떡 나섰다고  됩니까? 그 일에 나서는 것이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요  그것이 진리를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능히 갈 수 있는 자기의 주관 준비를  가리켜서 성령을 받는다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갈 수 있어. 가게 되는 그 힘을  가리켜서 능력이라 말했소. 진리와 성령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렇게 받아야  된다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가는 데에는 얼마나 이 맞추기 힘든다는  것을 알고,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될 터인데 너무 낙관시하고 너무  과소평가하고 너무 주관적인 평가요. 이만하면 됐다 자기 무더기, 순전히 만물보다  거짓된 그 욕심에 조금 거슬리면 된 줄 압니다. 욕심 그것을 통과 해 가지고도  통과할 그 순위가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너희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닫을  자가 없다. 열린 문을 어떻게? 네가 여간한 힘을 가지고서 내 이름을 다 받지  아니하고 내 말을 순종하겠다 이러기 때문에 열린 문 준다 했지요. 그냥 문으로  말했소. 문으로 말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나라가 가는데는 이 옳은 길 걷는 데는  거기에서 방 문을, 문으로 또 요거 제거하고 나니까 그 다음 있고 그 다음 있고  요래 가지고서 우리 힘을 다해야, 죽도록 충성해라. 그래야 생명의 면류관을 네가  얻으리라. 죽도록 충성해라. 그래야 새사람이 사는 생활 곧 생명이 사는 생활  지공 지성법에서 나온 고 움직임의 나로 인하여 살리라 여기에 피동 돼 가지고  살게 된다. 이랬는데 이것을 생각하기도 싫고 말도 하는 것도 듣기 싫고 어찌  됐든지 저절로 평안하자는 주의요. 우리가 나가는 여기의 교역자들이 이리 하는  것이 내가 요새는 염려되는 것이 뭐이냐면은 게을 게을한 사람을 만드는 일로가  아닌가 해. 이것이 없으면 차라리 제가 발버둥을 치면 저와 진리와 성령과 삼각이  맞을 수 있는 그런 때가 가끔이라도 있을 터인데 여기서 받은 걸 자기가 도움을  받아 가지고 이것을 힘 입어서 자기가 힘쓰면 자기 연구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빛을 협조해. 빛을 비추어 주니까 될 것인데 누구에게 들어도 그걸 자기가 깨달은  것이 돼야 되는데 자기 깨달음이 돼야 되는데 자기가 듣는 것은 참고요 자기  깨달음이 되고 또 자기의 이제 법칙이 되고 자율이 되고 그 벌써 실력에서  능력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 능력이 자성해 갑니다. 이래야 될 터인데 기도실  지어 놓은 것이 기도실 다 집어 뜯는 것 이유가 있는 같애. 기도실 지어 놓으니  가서 휘떡 드러 누우면서 기도실에 갔다 하면 교인들은 다 기도실에 간 줄 알고  또 가정에 뭐 기도실 갔다 하니까 뭐 무슨 말도 할 수 없고 이러니까 가정은  책임은 다 지워 놓고 기도는 하지 안하고 실컷 누워 자고 자다가 노트나 읽어  가지고 더듬더듬 이리 읽어 가지고 보면서 이제 안되면 노트 들여다 보고 내려다  보고 교인 쳐다 보고 이래가지고서 전하는 이만하면 다 됐다 그게 틀림이 없다  이거요.

 이러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이 안된다 그 말이요. 어데 교회 부흥 안 되는 데가  어데 있소 있기를. 교회 안 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세웠겠소 세우기를. 뭐  말하는 암만 말해도 그걸 느끼지는 안하고 자꾸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죽은 사람들 어디 죽는 사람 없는 데가 어디 있으며  나가는 사람 없는 데가 어디 있으며 어디 있소 있기를. 우리 진영 교역자들 너무  게을 합니다. 너무 게을 하기만 게을 해서 너무 교만하기만 교만하고 안돼.

 이번에는 이제 스물 여섯 군데를 이동을 했는데 거기는 나타난 것 여러분이  보면 알 것이요. 지식을 뒤로 두고 설교의 설교 잘하는 그걸 뒤로 두고 설교 암만  잘해봤자 교회 부흥 안되면 그 설교 잘못한 것이지 여기 하는 설교 따다가  그것만 저 하면 다 되는 줄 알찐대야 암만 제가 잘 전해 봤자 녹음만치는 못  전해. 녹음기 갖다가 틀어 놓지 뭐 하려고 많은 월급 주고 사람을 세워 놔.

성령을 녹음기는 성령은 전하지 못해요. 음성은 전해도. 이래서 이번에는 그 행한  공로를 공로를 대우하는 것과 공로를 대우하는 것과 하나 더 있는 것과 공로를  대우하면서 그 자들을 좀 더 나이가 젊을 때에 밟을 순서와 경력을 가지게  하려는 이 뜨거운 사랑 공력을 대우하는 이 대우 이 공평을 가지고서 했습니다.

그랬는데 이 공력을 각기 할 때에 그래도 공평 그 판단이 거의 대동 소이 했기  때문에 아주 이번에는 스물 여섯이 이동 됐지만는 쉽게 됐소. 아주 쉽게 됐어. 그  승강이 없이 누구든지 한 사람이 말하면 그게 다 그대로 통과 돼. 말해. 통과되면  아무 비판 없이 말하면 통과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말하면 거기 맞았더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양성원은 4년만 졸업을 안 해도 됩니다. 10년 걸려도 상관없소. 이것은  우리가 실력을 찾아가는 것이요 실력은 아닙니다. 실력은 우리의 실력은 진리와  진리의 하니님 입니다. 우리 실력은 진리요 하나님입니다. 진리가 내 진리 돼  있어서 진리가 나와 함께 하여 진리가 나를 붙들고 일하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일하면 누가 막을 것이요? 만일 진리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 사람이 산골짝에  가 있어 보시오. 그 교회가 안 되는가? 산골짝에 가 있으면 그 골짝에 대로가 날  것이요. 아무리 산골짝이라도 큰 길이 날 것이요. 만일 어떤 그런 사람이 지금  지리산 상상봉에 가 있다고 하면 나도 가겠소. 나도 시간만 있으면 거기 갔소.

거기 대로가 날 것입니다. 사람이 끊혀지지 않을 것이라. 그런데 요 교회가  안되겠소. 이래도 자꾸 나가 서 그렇다 이래 변명하니 언제 깨달을는지. 어쩌든지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면 우리가 이 복음을 가지고서 일을 해서 교회가 자꾸 부흥이 되면 그  사람들이 아이쿠 저게 부흥되니 우리도 힘 써야 되겠다, 여기 관련지어 힘써야  된다는 것만 격발케 했어도 그게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우리와 교훈적 관련이  없다 해도 그 열심만 격발시켰다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주의 일하는 데에 이제  막힌 것을 틔운 것이 되겠습니까? 또 그러면 교훈에 대해서도 직접 오지는  못해도 이제 간접적으로 녹음을 하든지 뭐 우리는 안 된다 못 보내게 해라  이러면 그럴수록이 사람이 어릴 때는 숨어 먹는 것을 좋아 하니까 안 들은 척 해  가지고서 들은 양으로 하는 것은 좋아하니까 이제 녹음을 해 가지고서 양사방에  펼쳐 가지고서라도 ( )복음이 그런가 보다 귀 기울여 가지고서 우리에게 주신 것  가지고 서로 같이 나눠 가지고서 복음 운동이 빨리 이루어지면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 아니요. 하늘의 것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매일 기도하지 않소. 이런데 내가 게을 지겨 가지고서 이 복음운동을  막으면 이 죄가 얼마나 크겠소?. 이것이 천국문을 막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니겟소? 또 역사에 일하는 것이 세상 인간 머리에서 나온 학마눈을 많이 가지  그 사라밍이 정말로 가치 있는 일한게 어디 있소. 유명 하는 것은 다 망했소.

유명한 것 그당시 유명한 것은 다 망했소. 그 당시에 유명한 것은 다 망했소.

칼빈도 그 당시는 다 욕하는 사람이 많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적었소. 유명하지  않아 상후에 그 비석을 만들고 무덤을 짓지.

 이러니까 일하는 것은 이 세상 것 준비하는 것 그것 가지고 일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잘 쓰면 자기 가진 연장과 같습니다. 그것 가진 연장도구와 같소. 힘은  진리의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입니다. 뭐 힘만 가지면 주먹으로 두드려서도 바위  깰 수 있겠지. 그러나 정을 가졌으면 쉽지. 힘이 있는 자에게 도구가 필요하지  힘없는 자에게 도구가 무슨 필요가 있겠소? 도구 저 혼자 일합니까? 우리의 힘은  진리와 하나님이요. 모든 이런 지식이나 모든 이런 것은 하나의 도구에 지내지  못합니다. 힘을 가진 자가 도구 없는 자 도구 있는 자가 비하면 도구 있는 자가  낫지요. 도구 그것이 힘은 아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게을하면 안됩니다. 게을하면 복음을 막는 큰 죄를 범합니다. 왜 처음에  갈 때는 교회가 부흥됐다가 뭣 때문에 석달이 지나가면 교회가 내려오고 또 몇  해가 지나가면 다 교회가 푹 내려옵니까? 왜 점점 망합니까? 그게 자기 주관의  결점입니다. 힘쓰니까 됐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이번에는 교학실에서 교회  그래프를 그리시오. 이제 교역자 그것들을 그릴 것입니다. . 이 교역자는 이런  교역자라. 자기가 자기의 일한 것을 그려 놓은 것 보면 얼마나 미치괭이인지 푹  올라갔다가 푹 내려갔다가 얼마나 끝풀림을 못하는지. 이렇게 간섭을 하고 이렇게  깨우쳐 줘도 일을 못한다면 그거는 못쓰는 물건입니다. 녜. 못쓰는 인간이야. 못  쓸 도구라 여기서 일 못한다면 여게서 탈선된다면 다른데 가면 그거는 아예 다  버림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저는 알고 이렇게 단속을 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데서는 알아도 단속을 못해. 왜? 같이 동등으로 같이 일하고 자기 나아갈 길을  가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말 알아도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그러기를 몰라.

그런데 아니라 해도 잘 안 듣고 노엽기만 해. 이렇지만 우린 지금 출발한 것이  내가 주일학교 학생 이거 뭐 조그마한 소년 때 이때부터 나 같이 지내 나왔기  때문에 이제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복이 있고 나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복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맺지  못하면 소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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