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3가지 기도

 

1988. 4. 3. 주일오후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는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교회들 중에 첫째로  기록된 교회입니다. 기록된 일곱 교회는 신약 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해서 그  형편을 기록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큰 교회요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도 크게 기뻐하셨을 뿐 아니라 제일 중대한 문제가 기록되어 있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1절에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하는 말씀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교회에 일꾼들은 다 주님이 붙드시고  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일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고 또 사람이 일하지  아니하면 안 되고 사람이 일을 함으로 되는 것처럼 여겨서 하나님을 뒤로 두고  자신이 앞서 날뛰기 쉬운 이런 점을 여기에서 가르칩니다.

 또,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하는 말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교회는 주님이 다 다스리시고 관할하시고 관리하시는데 잘못하면 사람이  관할하고 관리함으로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관리에 대해서 사람이 하나님보다  앞서고 하나님이 하시지, 아니하는 일을 사람들이 해서 그렇게 잘못되기도 쉽고  지나치기도 쉬운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2절 이하에는 보면 참 성도로써 매우 행하기 어려운 그 여덟 가지 행위를  거기에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이 여덟 가지 행위가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을 만하고 그 위에 또 한 사상을 덧붙여 말해서 아홉 가지 행위의 아주  어려움을 에베소 교회가 잘 지켜 행했는고로 주님이 이를 칭찬했습니다.

 그라면서 4절에 보면 ‘그러나’ ‘그러나’ 하는 것은 여덟 가지 행위를 네가  잘 하고 아주 조심하고 힘써 신앙 행위를 했으나 그말입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므로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두고 보면 우리가 신앙 경험에서 체험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 여덟 가지 신앙 행위를 하려고 하다 보면은 그만 그 면으로 힘을  쓰고 또 그 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그 면에 그 일들이 연속적으로  계속적으로 자꾸 부딪혀지니까 그만 당면한 그 문제들을 해결할려고 또 그  문제들을 이기고 지켜서 죄에 빠지지 아니하려고 실수하지 안하려고 이렇게  하다가 보면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대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가 보면은 이런 계명 저런  계명, 또 이런 범죄 저런 범죄, 이런 불의 저런 불의, 또 이런 의 저런 의  이것을 지킬라고 힘을 쓰다 보면 그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거기에  대해서만 힘쓰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것은 어데서부터 그렇게 그 잘못된 생각이 들고 탈선하기 시작되는가 하면  일곱별을 오른손에 붙잡으시고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 주님을 잊어 버린  데에서 그렇게 됩니다.

 교회에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또 자기 가정에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또 자기  개인에게 닥친 어떤 일이든지 우리는 하다보면은 내가 하면되고 내가 안 하면 안  되고 그렇게 생각이 돼져서 우리가 지나치게 치우쳐 가지고 주님은 움직이지  아니하시는데 나 혼자 움직이기도 쉽고 또 주님은 아직까지 머물고 계시는데 나  혼자 앞서 날뛰기가 쉽고 또 그렇게 하다가 된 데 대해서도 제가 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쉽고 또 안된 데 대해서도 제가 아니해서 안 된 것으로 그렇게  이리저리 치우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주님이 안 하시면 안  됩니다. 일곱별을 오른손에 잡고 역사하신다는 오른손은 승리를 가리킴인데 자기  개인 신앙이나 단체 신앙이나 어떤 신앙이든지 그 신앙생활에 승리되는 것은  순전히 주님이 붙드시고 승리케 하셔서 되는 것이지 주님 없이 인간들이 암만  날뛰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주님이 하시면 사람이 여간 게을하고 부족해도  그 일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까지 무엇을 해 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도  그것도 우리가 다 잘못이요 또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서 하지 안하고 게을리 하는  것도 잘못이니 꼭 동하고 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신중히 거기에  맞추어 가지고 해야만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 사도행전 12장 요새 공부하는 데에는 급히 일어나라고 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빨리 찾아 가지고 고대로 움직여야 되지 시기가  앞서도 안 되고 뒤서도 안 됩니다. 또 하는 그 모든 정도의 노력도 강해도 안  되고 약해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강하는 것도 분석해 보면 자기가 안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그 일을  발버둥치고 날뛰다보면 지내치기 쉽습니다. 또 그래 하다가 보기에 아주  실망되고 안 될 것으로 보여지니까 우리는 게을 부리기 쉬운데 제가 누워 잔다  해도 하나님은 하실 때 일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인간은 움직이기만  움직이지 그 승패는 순전히 주님에게 있는 것을 우리가 의심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움직이시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고 주님이 멈추는 데에  따라서 우리가 멈추어야 하지 주님의 뜻을 찾아서 거기에 피동될라고 생각지  안하고 자기 주관대로 무엇을 날뛰는 것은 다 그 일에 성패의 주권이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그 오해에서 다 이런 행동들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2절에 ‘내가 내 행위와’ 그 행위가 좋다 말입니다. 나쁜 걸 말하지  안하요. ‘내가 네 행위와’ 손가락으로 꼽아보이소.

 하나 ‘네 행위와’ 또 둘째 ‘네 수고와’ 또 셋째 ‘네 인내를 알고’ 참고  견디는 거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기중심으로 날뛰는 자들을 용납지 안하고 거기에 피동되지 아니한 걸  말합니다.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여기에 제가 하나님의 종인 척 해가지고서 많은  교인들을 아주 앞에서 인기를 끌고 교인들을 휘몰아 가지고서 이렇게 세상에  빠지도록 멸망에 빠지도록 이렇게 하는 것을 네가 심히 살펴 가지고서 그것이  아닌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3절에 ‘네가 참고’ 참는 것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주를  위해서 주의 역사를 위해서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면  몇입니까? 여덟 가지? 네, 여덟 가지 이 행위는 아주 귀한 행위입니다. 이  하나만 해도 그거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생활할라 하면은 별별 일을 닥치는데 이럴 때 저럴 때 여러가지 애로가  있으나 그저 꾸준히 참고 신앙생활 한다는 거, 모든 거짓부리가 온갖 유혹하는데  그것을 밝혀서 다른 사람들로 거기에 유혹받지 않도록 하는 모든 그런 것 이런  행위가 다 귀하고 어려운 행위입니다.

 ‘그러나’ 4절에 ‘그러나’ 이런 행위가 아름답지마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를 옮긴다 말은 네가 살고 있는 교회를 옮긴다 말이요 네가 일하고 있는 네  무대 권찰 구역을 옮긴다 말이요 네가 일하고 있는 그 모든 복음의 무대를  옮긴다는 말이요 또 네가 오늘까지 하고 있던 모든 생활 제도와 방편과 조직과  모든 기성되어 있는 건설되어 있는 단합들 그런 것들을 다 없애 버리겠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신앙생활에 고런 것을 자꾸 자주 만날 때에 복잡하게 만날 때에  주님이 나를 구속해서 사랑하신 그 사랑을 처음 믿을 때에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 하는 주님의 사랑이 제일 기쁘고 감사하고, 또 주님의  구속의 사랑에 대해서 제일 강하게 느끼고 좋고, 또 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한다면 그만 전할 때에 말을 잘 못할지라도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그 사랑을 본능적으로 말하게 되고 자랑하게 되고 또 그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뭐 사랑에 대해 무슨 정의나 똑똑히 알면 하지마는 사랑에 대한 정의도 모르고  해석할 줄도 모르고 그러나 어쨌든지 주님이 날 사랑한 그 사랑이 우리 속에  가득 차고 뜨거워져서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싶고, 또 사랑을 가지니 못났든지 잘났든지 다른  사람에게 지극히 작은 친절이라도 봉사라도 서로 또 화친이라도 위하고 싶은  그런 것이 있었는데 그만 이 신앙생활 하다 보니까 주위 환경에서 몰려오는 여러  가지 사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부딪혀서 그 면에다가 힘을 쓰다 보니까 그만  주님의 대속의 이 사랑은 잊어 버리고, 그 둥치와 뿌리는 잊어 버리고 그 줄기와  휘추리, 휘추리와 잎사귀와 같은 그런 것만 가지고 이렇게 힘을 쓰다 보니까  원둥치가 없어지면 그 가지는 결국 마르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바라는 거, 믿는 거, 감격하는 거, 주님의  사랑을 믿고 사랑을 내가 소망하고 그 사랑에 감격된 이것이 없어지면, 이것이  뿌럭지요 이것이 생명이요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된그 연결인데 이것이 없어지면  자연히 그 신앙생활에는 처음에 아무리 열정 있어도 그만 주의 사랑이 식어짐에  따라서 열심도 식어지고 나중에는 권태도 나고 나중에는 또 의심도 나고  나중에는 방종도 되고 이래 가지고서 다 신앙생활들이 그만 옛날로 다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니골라당의 행위라는 것은 그 밑에 보면은 발람의 교훈 발람의  행위가 니골라당의 행위입니다.

 발람은 자기의 그 물욕이라는 그 물욕의 이것을 정리하지 안하고 물욕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지노릇을 했기 때문에 그 물욕을 인해서 발락이라는 왕에게 끌려가  가지고서 자기는 직접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안했지마는 이스라엘이 망할 수  있는 율무를 놓아 가지고서 망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속에 자기중심인, 주를 사랑하고  주를 위주로 하는 이 중심이 되어 있지 안하고 무엇인가 주님 외에 딴것이  중심이 되고 위주가 돼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그것 때문에 자기는 아주 교묘한  꾀를 써서 주를 위한 거 같지마는 실상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악령의  역사를 제가 간접적으로 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제가 오후에 이 말씀을 증거하게 되는 동기는 오전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 사활의 대속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말하면  그 얼마나 참 큰 일 하셨습니까? 주님이 전능하시니 참 놀랠 만합니다. 주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어서 엿새동안에 우주를 창조할 만한 전능한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으면 그거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만일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서 우리를 위해서 전적 역사한다  할지라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으면 그 능력 보고 우리가 어떻게  살며 그 능력이 우리에게 참 기쁨과 평안이 뭐 있겠습니까?   또,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뭐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대주재가 되고 만왕의  왕이시고 주권자이시고 우리 위해서 죽고 우리 위해서 부활하고 우리 위해서  온갖 희생을 다한다 할지라도, 다했다 할지라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거기에는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이 크면 클수록 작은 나는 거기에 가서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지혜가  있으면 있을수록 무지한 나는 거기에 가 가지고서는 지옥 중에 지옥이지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그분이 날 위해서 큰 희생을 했다 할지라도 그분이 날 사랑하는 사랑이  없다면 그 희생이 나에게는 짐만 되고 괴롭기만 하고 마음에 무겁기만 하고  미안키만 하고 불안만 하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만 그분이 이 모든 것을 하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사랑이 동기가 돼  가지고 이 모든 일을 하셨고 또 그분이 우리에게 대해서 온갖 대속과 구속을  하시는 것이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가서 보금자리 칠 수 있고 마음놓고 살 수 있고 평안하게 살 수 있고  가장 모든 거처 중에 주 안에가 제일 좋은 줄 알고 그곳에 가서 평강을 누리는  것이지 그거 없으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만일  그 사람이 여자로서 어떤 모든 박력있고 구비해서,  세계에 일류 가는 그런 훌륭한 모든 면이 겸전한 세밀하고 철두철미하고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런 남편이라 할지라도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다면  그곳은 감옥에 지나지 못할 것이요 반드시 그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떠나기를 원하지 그곳에 있기를 원치 안할 것입니다.

 오전에도 약간 말했지마는 참 관상조를 기르는 그 주인이 새장을 잘 꾸며 놓고  그 때에 대해서 온갖 대우하는 것이 뭐 이 자연으로 산천에 돌아다니면서 제가  먹고 사는 것보다 훨씬 구비하게 영양차게 먹고 또 좋은 거처를 하고 이렇게  해서 생육하고 번성하지마는 그거 다 주인이 해 주는데, 주인이 해 주는데  그래도 주인을 마다하고 놓쳐 놓으면은 잡지 못합니다. 그거는 뭐이냐? 주인과  그 사이에 사랑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은 사람의 것이 아니고 사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악어 얘기를 했지마는  악어가 그렇게 맹수라서 모든 짐승들은 다 보고 달아나지 그를 좋다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마는 제 새끼는 모든 짐승보다 아름다운 학보다 아름다운 봉보다 그  에미 악어가 좋기 때문에 어데도 갔다가도 에미 악어를 찾아서 그 자리에 제일  편하고 좋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왜 그런가? 하나님이 그에게 사랑을 줘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줘서 큰 악어는 새끼 악어를 사랑해서 그렇큼 독한 맹종이지마는 그 새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자기 몸과 생명이 다 끊어져도 희생을 합니다. 그 희생해도 불평  없이 희생합니다.

 이 시골에는 가서 보면 뭐 개니 도야지니 그때는 사료가 모자라서 먹이는데 그  새끼가 잘 때에는 어미는 곧 넘어갑니다. 넘어가서 뭐 비틀거리고 걸음도 걷지  못하고 뭐 젖이나 뭐 나올 게 있습니까? 그래도 새끼에게 젖을 슬려서 그러다가  나중에 그만 회복을 못 하고 죽는 그런 게 많습니다. 그래도 또 짤릴라 하고 또  그래도 또 새끼도 그뭐 그 에미의 사랑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믿기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합니다.

 그러기에, 평안이 어데 있는가? 제일 평안한 곳이 어데 있는가? 자기가 믿는  사랑 속입니다. 자기가 믿는 사랑이 있는 그곳에 제일 평안한 곳입니다. 악어가  그리 찾아가는 것도 그것도 에미의 사랑이 그에게 믿어지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가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거 누가 교훈한 것 아닙니다. 네 악어야 네 에미 사랑이 너를 어짜든지 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 새끼 너를 사랑한다 하는 것을 누가 교훈한 것  아니지마는 하나님이 그 사랑을 믿도록 해 줬기 때문에 그 새끼들이 믿습니다.

 또, 그 에미도 그 새끼를 위해서, 너는 너를 돌보지 안하고 사랑으로 희생해서  그를 봉사하고 그를 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그런 누가 어떤 교훈을 해 준 것  아닙니다. 교훈해 준 것 아니지마는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의 본능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후에 증거하는 것은 참 이 사랑이 귀한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이 동물도 믿고 악어도 믿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해 주신 참 측량 못 할 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영원히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믿게 해 주시면  우리가 넉넉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구할 것이 많지마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믿게 해 주고 알게 해 달라는 이것을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해서 오후에 또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그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우리들로  알게 해 주시고 그 사랑을 의심없이 믿는 그 믿음을 달라고, 그 사랑을 믿을  때에 그에게는 가장 평강의 나라요 그에게는 천국이요 그에게는 아무런 고통이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혹 과거에 혹 지나다니다 보면은 그 여인은 정신 병자라서 자기 몸을  간수하지 못하고 두더기를 감고 그래 있어도 그 젖먹이는 어린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를 뭐 간수할 줄 압니까 뭘 압니까? 그저 길가 아무데다 따나 퍼대고 앉아서  이래 가지고 있지마는 그 아이는 어미의 사랑을 하나님이 믿게 해 줬기 때문에  그뭐 그 품 안에서 아주 만족하고 아무 염려 없이 온 세상에 제가 행복된 줄  알고 어머니의 그 미치괭이 어머니 품 속에서 만족하고 사는 것을 종종  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그 새끼로서 믿게 해 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이 사랑을 우리에게 믿게  해주신다면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는다면 우리에게 뭐 염려가 뭐일  것이며 그 이상 행복된 자가 어데 있으며 평강이 어데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이라는 것은 믿을 때에 믿는 자에게는 승강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평강이 됩니다.

 미치괭이 그 어건 아이가 어머니 사랑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평안합니다. 악어  새끼가 악어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평안한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들이 믿어지는 믿음이 우리에게 불붙는다면 우리는 그 이상  행복된 곳이 없을 것이요 행복된 세계와 위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 믿게 해 달라는 이것을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가 사랑을 가진 자가,  사랑을 가진 자가 되기를 하나님 앞에 구해야 되겠습니다.

 그 미물의 짐승들도 새끼 위해서 자기의 건강도 뭘도 생각지 안하고 자기  전부를 다 희생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주님도 당신이 우리 위해서 온갖 형언  못할 그, 대속의 희생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랑의 능력은 그분이 우리 위해서 희생하고도 조금도 피곤하기나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존재에게 대해서 내가 내 자신을 타를 위해서 희생할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는 연고요 희생하는 것은 사랑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 그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사랑을 주님에게 구해서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모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모든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까 해 달라고  해서 우리가 정말로 주님이 주시는 이 사랑을 가진 사랑의 사람이 된다면 원수를  위해서 능히 희생하고도 모자라서 있는 것을 다 희생으로 끝마치고 말 것입니다.

 그건고로 우리는 이 사랑을 하나님에게 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게 해 달라고 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서 모든 존재를 대하도록, 사랑을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대하고 사랑을  가지고서 주님을 대하고,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주를 위해서  죽어도 모자라고 충성하고도 모자랄 것입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이래서, 사랑의 희생의 능력이라. 사랑은 평강을 주는 능력이라.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생명이라 하는 것을 모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이 사랑은 참 보배로운 것이니 이 사랑을 우리가 간직하는데에는  원수가 많습니다. 보배에는 도적이 많이 듭니다. 보배를 가지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은 보배를 본 원수가 있으면 보배를 탐해서 빼앗아 갈라는 그 적이  많기 때문에 보배를 가진 사람은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천상 천하에 제일이요 내 자신에게 대해서 제일이요 나와 상관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제일입니다.

 제일인데, 이 사랑은 이런 보배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삼킬라고 하는 원수가  많습니다. 이 원수는 간단하게 말해서 셋입니다.

 내가 그를 사랑할 때에 어떻게 뭐 어떻게 희생하고 어떻게 다 없어지고 죽어도  만족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에 죄가 들어오면, 이 사랑에 죄가 들어오면  절단납니다. 이 사랑에 죄가 들어오면 절단납니다.

 무슨 물질에 죄악이나 남녀 이성 죄악이나 무슨 명예 죄악이나 영광 죄악이나  무슨 행락의 죄악이나 어떤 죄악이든지 죄악이 들어오면, 이 사랑이 변질돼서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다 살해하는 결과를 이루게 되고 이 사랑이 변질되면  나와의 상관되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반역하는 역적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랑에 이 죄가 들어오기 쉽기 때문에 주님이 대형해서 사죄로  막아 줬습니다.

 죄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당신이 대행해서 칭의를 줬기 때문에 이의를 굳게  잡고 의를 놓지 안해야 됩니다. 이 사랑은 의 속에서만 보존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은 죄 외에 딴것은 이 사랑을 썩힐 것이 없고 무능하게 변질시킬 것은  없습니다.

 그런고로, 죄를 막아서 변질을 방어하고, 의를 간수해서 이 사랑을 잘  안보하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분에게 피동됨으로 이 사랑은 활발스럽게 모든  존재에게 다 펴서 모든 사람에게 아이 되고 생명이 능히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믿게 해 달라는 기도 하나 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어서 타를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만물을 사랑할 수 있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다 아낌없이 기쁘고 즐거워 원하고 원함으로써 희생되고,  희생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불안하고 희생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사람이  되어지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줘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거  기도하고,  셋째로는 이 사랑을 잘 보존하고 보호하고 이 사랑에 모든 부패케하는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고 이 사랑이 활발하게 능력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연결되는 요 세 가지를 달라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사랑에 대해서 두 가지, 사랑을 잘 보존하고 활동하기 위해서 한 가지 이것을  우리가 기도하는 제목으로 삼아 가지고 남은 때는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집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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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하나님, 진리 사람을 위하는 생애/ 고린도후서 5장 15절/ 1984. 7.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 하나님과 3가지 기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4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비결/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1989. 6. 4. 남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1
533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20. 수저녁 선지자 2016.01.01
532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18. 월새벽 선지자 2016.01.01
531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3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1. 6. 20.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52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20절/ 1981. 6. 19.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28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9. 28.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27 하나님과 동행/ 말라기 3장 10절-12절/ 1984. 10. 31.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6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3장 15절/ 1981. 5.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25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19.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24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32절/ 1984. 11. 2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23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2. 1. 29.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22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2. 4.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21 하나님과 동행/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 4. 16.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5. 7.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6장 9절-12절/ 1988. 4. 1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8 하나님과 동행 열 가지/ 창세기 5장 1 절-32절/ 1984. 11.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17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유다서 1장 5절 상반절/ 1981. 5. 27. 수저녁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