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1981. 6. 20. 토요일 새벽

 

본문: 창세기 5: 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동행에서만 죽지 않은 것이 이루어지고 또 심판을 이겨  면하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인생의 시력이나 가치가 행복은 안믿을 때에 우리가  평가하는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그런 것이 실력도 못되고 행복도 못됩니다. 왜  그것은다 죽음에 속했고 심판 아래에 속한 것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 이하여에 보면 사람으로 자랑치 말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이제 있는 것이나 장래 있는 그것이나 모든것이 다 너의 것이  되는 이것이 인생의 가치인데 이 가치를 못한 그것은 인생의 가치가 아니라  자랑치 말라 이것을 인생의 가치로 삼지 말아라 하는 말의 가치가 아니라 자랑치  말라 피조물 천군천사보다도 뛰어난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다 유업으로  상속받아서 이것을 관할 통치하며 능히 그들에게 은혜로 충만시켜 줄 수 있는 그  권위를 가져 영원히 자기 것으로 이렇게 가질 수 있는것이 이것이 인새으이 본  위치입니다.

이것을 잠깐 동안 타락전에 가졌지마는 원죄로 해서 다 빼앗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세서 이것을 회복하셨는데 택자에게만 한해서 회복하셨지  불택자에게는 회복하시지 아니했습니다. 택자에게 있어서 영은 단번에 회복이  되었 본 지위를 차지 했지마는 이 심신이라는 그 기관 곧 육 이것이 이 지위를  가질만한 그런 시력이 엇어 이 시력을 마련하는 것이 구속받은 자들의 재세의  기간동안 노력인 것입니다. 그 신령한 마음은 세상을 떠날 때에 영과 함께  나구원에 가고 그 몸은 물질이요 신령성을 가지지 못했기 대문에 세상에 있다가  예수님이 구름타고 재림하시면 그때에 신령한 육으로부활해서 그때 비로서  심신으로 된 육을 여은 자기의 모든데에 필요한 기관으로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영계에 활동할 때에 주로 필요하고 육은 물질계를 활동할때에  필합니다. 육이 없으면 그 영은 물질계와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능해도 배가 없으면 배위에는 활동할 수 없는 것같이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심신으로된 육의 이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구원은  소망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이것이 택자들의 소망입니다. 택자들의 소망은  죽지 않는 것이 택자들의 소망입니다. 썩지 않는 것 쇠해지지 않는 것 낡아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라고 하는 이 말씀은 고 산 것들이 우리의 소망이지  죽음에 속한 것들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란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함을 받지 안하고 모든시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 죽지 는 것 심판 받지 않는 것. 다른 말로  말하면 영원성의 것. 완전성의 것. 불변성의 것. 이것은 다 단일성적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화가 되면 우리의 심신은 수없는 요소에 종합체이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었지 이 성화는 이것은 다 단일성의 것들인 것입니다 이  단일성의 것이라는 말을 요것을많이 연구해가지고서 요것을잘 알아야 합니다.

단일성이라 말은 외부에는 여러 수많은 형태로 조유로 역활로 나타나지마는 그  속은 하나입니다. 곧 나타날 때는 미움으로 나타나나 그속에는 보면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나타나나 그 속에는 미워할 것이 있을 때에 미워하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단일성으로라 고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귀한 하나님과 동행 죽음과 심판을 면하는 하나님과 동행에  우리 말로 행동할 때에 동행이라 이렇게 성경에 표현했으나 다른데에  표현하는데에는 하나님은 교회에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 곧 봄체적으로는  이렇게 하나가 되지를 못하고 언나 창조주요 피조물인 이 본체로되어있자지마는  활동적으로는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으로서 일체의 역활을 하게 되는 이것이  곧 동행이나 같은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되가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구주가 되신는 하나님의 인하여 주는  것처럼 이렇게 같은 것인 것을 사증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서만 우리의 모든 욕망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그  외에는 이루어지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데에는 특별히 조건 서이가  있으니 죄가 없어야 되고 의로워야 하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이 해결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대신해서 대형을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서 사죄에 근거를 설정정했고 또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행하심으로서 칭의 선거를 설정하셨고 또 원수된 이것을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되심으로서 하나님과 화친의 이 새생명 근거를 설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택한자들에게는 나가 전부터 벌써 그에게 부여 되기 있기 때문에  날때부터 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은 자로 납니다.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으로 받은 자로 고 논리적순위로 말하면 이 주의 대속을 받기 전  정죄받아서 하나님과 원수되어 부릉한 그 사망자로 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날  때에는 정죄의 정죄 아래서 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핫실 때에 그 죄를  창조하실 수가 있겠느냐 하나님은 죄를 창조하실 수가 없는 창조와 동시에  우리는 정죄아래에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논리는 하나님은 죄없는 것을  창조하는데 우리의 선조로 말미암아 정죄를 창조되는 동시에 받게 됩니다.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창조가 먼저요. 정죄가 그 다음에요. 또 하나님의 대속이  그 다음으로서 우리는 뱃속에 벨때부터 벌써 하나님보시기에 선한자로 지음받은  것이 저오지받아 예수님의 대속 아래에서 잉태되게 되는 것이비낟. 이것은  번적구원이요. 그 실질적구언은 그것이 중생될 때에 비로서 실질적인 구원이  되는것입니다. 기본구원은 법적구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실질적인 이  구원이라는 이것이 영이 중생될 때 또 이 삼신이 구속을 받을 때 이것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적구언이것이 이루어진자는 언제 중생하든지 그는 뱃속에서 중생도 할  수 있고 또 배밖에서 생산되가지고 출생하가지고 그 젓먹을 때에 중생되는 자도  있고 장성해가지고 중생되는 자도 있중생되어 그이중생된 표로중새오딘 중생된  표적인 신앙위는 세상에서 주앳오딘지 몇십년후에 그 표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또 동시에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일생동안 한번도 나타나지 못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중생된 자가 이 심신이 구언을 받는 이것이 우리의 기본구원에 건설하는  건설구원입니다. 심신이 이 구속함을 받는 이것은 중복적이요 단번적이 아니요.

또 심신이 이 구속을 받는 이것이 영에게는 자기의 소유권을 이것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은 심신을 자기의 소유로 가지는그런권세를 얻게 되는것이  이거싱 영의 구원입니다. 영은 권위를 마련하는것이고 영은 영의 권위다시  말하면 소유권을 마련하는 것이고 지배권을 마련하는 것이고 이 심신은 죽은  것이 사랑나는 나는 이 구원고 또 이것이 완전 이 완전인 절대성 있는 이 실력을  마련하는 이것이 심신의 이 구속인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면 심신이 구속받는 것은 이것은 살아 나는 것과 또 실력을 마련하는 이 두  가지가 이 심신의 구속이요. 영의 구언은 임 하나님과 결합되어 완전자 된것이  자기의 소유물인 이 심신을 지배하는 지배권을 가지 못했는데 이요권을가지지  못했는데 이것을 하나씩 둘씩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심신은 영의 도구  영의 병기입니다. 칭의의 병기도 될 수있고 불의의 병기도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음을 면한다 심판을 면한다 하는 것은 이 심신의  기능이 이 죽음과 심판을 면한다는 말씀이지 여잉 죽음과 심판을 면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또 이 심신의 부활을 면하나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 부활은 다  기본구원에 속한 것에서 그 심신의 기능이 구속 곧 이 건설구원을 하나도 받지  못해도 그 심신은 부활은 합니다. 그러기에 구언을 어딪마는 그 공로가 불탄자는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동행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동행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성령님과 또 진리와 하나님의 이 큰 세 가지 대속의 공로가  우리로 하여금 한나님과 동행케 하 할력 노력을 합니다. 우리의 중생된 영과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잔리와 준비의 공로가 이 셋은 하나인데 이 셋이 중생된  영과 합작해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실려고 노력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한다 말은 이 심신을  구원하는데는 증거로 증거로 구원합니다. 설득으로 구원합니다. 이해로 구원을  시킵니다. 이 지식으로 구원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하는 그 표시를 말하기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인 것을 증거해준다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증거한다 말은  이해와 납득을 시켜서 타일러서 가르쳐서 그 지식까지 다 새롭게 함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그 구원을 주시는 구원의 방식을 가르쳐서 증거하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셋은 하나이요 또 우리의 중생된 영은 그에게  속해서 그와 함께 움직입니다. 이 셋이 중생된 영을 통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그 모든 창조를 무시하지 안하고 창조를  대우하고 또 당신이 세워 놓으신 제도와 법칙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만일 중생된 여을 뒤돌리두고 직접 역사하면 그는 하나님은 당신의 법을 어기는  월권이요 또 남용이요. 그는 침략이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유성이라는그  인격성을 박탈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죄를 범할수 없는 하나님이시요.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기 땜문에 언제든지 그 중생된 영은 통해서 역사합니다. 육으로 인해서  영이죽은그 영이 하나님으로 살아나가지고서 그 영이 이제는 죽은 육을 살리는  것이 그것이 인과 보응제도요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이 네 가지 큰 배경이 큰 근거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할  기능성이 우리에게 생겨진 것입니다. 이 네 가지 큰 배경을 힘입지 않고는  하나님과 동해 못합니다. 이 네 가지 큰 배경을 힘입는데에는 우리의 심신이라는  작용으로 이 심신의 역활로 이 네 가지 배경을 심신이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의 구원은 순전히 객관의 그 능력으로 된 것이지마는 이 건설구원은  이매 받은 기본구원을 근거해 가지고 기본구원의 이 모든 은혜를 활용하는 이  은혜를 은혜로 쓰는 이 은혜가 자기에게 활동하고 작용하는 이 작용을 자본으로  삼아가지고 근거로 삼아가지고 이 심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건설구원인 심신의 구언이 하나님과 동행은 무엇이 중요하나 첫째로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이 배경이 중요합니다. 이 네 가지 배경이 없으면  안됩니다. 네 가지 이 근거 이 자본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장사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본을 주셨는데 이 자본은 다 이런 종류의 것들을 가르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둘을 받았다 어떤 사람으은 셋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넷을 받았다 우리는 뚜렷이 넷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과 물과 피 중생된 영의 이 역사 이 네 가지가 근거가 되어야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이 있고 이런 권세가 있고 이런 자본이 되는  것이지 이 자원이 없으면 그는 일생동안수양을 해도 절제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불교에서 존경하고 있는 그 석가모니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은 절제의  사람이요 의지의 사람이요 그는 참 옳은 것을 심히 타묵한 사람입니다. 그의  노력은 심신의 노력은 심히 켰습니다. 이렇지마는 그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이  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것이 네  가지 자원이 중요한데 이 자원은 우리에게 되어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원은  되어 가지고 있으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 자원을 우리가 끌어 쓰는  것입니다. 닷양쭝 받은 사람이 넉양쭝 받은 사람이 그것을 자본으로 사망 가지고  활용으로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 동행에 자본이 되는 이 근원이 되는 이 네  가지의 역사를 우리가 써야 됩니다. 다시 마랗면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힘입을 수 있는 이 네 가지 기본은 되어 있는데 이 네 가지 기본자원을  우리가 활용해야 됩니다. 활용을해야비로서 동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활용을  해야 되는데 활용은 누가 해야 되느냐 활용은 이것은 심신이 활동해야 됩니다.

심신이 이 네 가지를 쓰는 활동을 하는 이것이 네 가지의 이 근거에 혜택을  권세를 입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때문에 이매 되어있는 이 기본구원 성령과  물과 피 중생된 영이 이 기본구원 다음에는 우리의 심신의 역활이 그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힘쓰는 자는 이기리라 하는 그것이 심신의 그 역활을  말하는 것이고 행한대로 갚으리라 하는그것이 심신의 역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네 가지 이 자원을 쓰는대로 결과는 맺는다 네 가지 이 자원은 심신이  활동하는데 따라서 피동이 된다 얼마든지 힘입을 수 있는 것을 가르쳐서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의 활동이 네 가지 이 그너와 연결이 되었을 때에  연결이 되었을 때에 이 네 가지를 심신의 활동이 힘입었을 때에 뭐이 되느냐  사죄가 와가지고서 친히 역사를 합니다. 죄를 멸하는 역사를 합니다.

또 칭의가 와가지고서 의의 역사를 합니다. 또 이 예수님이 이 화친이 이 공로가  친히 와가지고서 친히 역사를 합니다. 또 이 예수님의 이 화치의 이 공로가 친히  와가지고서 역사해서 우리에게 새생명의 역사를 곧 영생을 이룹니다. 이 공로는  우리에게 이써엇 중보자입니다. 이 고올는 무엇을 끌어 당기느냐 이공로는  진리를 ㄲM렁 당기는 하나의 도구와 같고 중간 다리 중보와 같습니다.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힘입어 힙입을 때에 진리는 우리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말스마히식를 보혜사 성신아 오시면 진리 안으로 인도한다 네내것을  가지고 너히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공로를 통해서  진리와 내가 이렇게 결합해서 진리의 모든 은택을 힘입을 수가 또 이 네 가지  공로를 인해서 진리의 은택을 힘입을 때에 이 가지 공로가 힘입은 진리와 이 네  가지가 합할 때에 하나님의 은택을 힘입을 수있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우리에게 맺어지는 것은 어떤기 맺어지느냐 완전히 맺어집니다. 또  심판을 벗어난 그 영생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힘쓸 것은  어떤 것이 힘쓸 것이냐 우리의 심신의 노력이 이것이 현재로서는 주점이  되어있습니다. 여기에 촛점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촛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 심신의 노력이라는 여기에 전부다 집결되 있습니다.

그러면 심신의 노력은 어떻게 노력을 할 것이냐 심신의 노력은 내가지 이 네  가지 은혜를 찾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은혜를 찾았으면 이 네 가지 은혜를  놓지 안할라고 잡는 것입니다. 놓치 안하고 붙들고 있으면 이 네 가지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서 자기의 생활을 탄생합니다. 네 가지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  자기는 그 언행심사의 이 해우리라는 것을 산출합니다. 네 가지 은혜를 힘입어서  언행심사의 해우이를 산출합니다.

그러면 네 가지를 힘입어가지고서 언행심사의 행위를 산출하는 그 장소와 그  시기는 언제냐 그것은 현실이요 곧 현재입니다. 그러면 이 그 장소와 그 시기에  이네 가지 은혜를 힘입어서 언행심사에 해우이를 산출하면 그것이 생명이 산  생활이요. 생명이 승리한 생활이요. 그 생명의 면류과 생명이 승리한 생활이요.

그것이 영생이요.

그것이 뭐 뭐이냐 그것이 마태복음 25장에 기름 주닙라고 한 그 기름주비인  것이빈다. 그러면 이것이 이 네 가지에 연결이 되어서 이 네 가지는 위에 있는  네 가지는 네 심신을 점령해서 책임지고 보호하고 영원히 쓰고 요 시간에 이 네  가지를 힘입어서 산 이것은 세상을 이겼고 완전히 이 네 가지를 힘입을 수  이있는 권세를 얻어서 네 가지를 연결하여 네 가지의 권세를 힘입어 세상을  이겼고 영원히 피조물들에게 이 네 가지를 힘입어 피조물들에게 역사할 수 있는  이 권세 지워 실력을 갖췄으니 고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지금 마련하는 것이지 이 다음에 마련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심신의 역활이 어떻게 해서 이 네 가지를 힘입을 수 있느냐 이는 이  네 가지를 첫째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그냥 하나님이 나와 동행한다  하는 그것은 사죄에 대한 그 사죄에 근거를 힘입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죄를  통하지 않으면 진리도 내가 소능ㄹ 잡을 수 없고 또 그 성경도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이 사죄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죙는 죄없는 자는  사죄가 필요 없스빈다. 자기에게 있는 과거에 사죄받는 것을 생각하는 그것도  자기에게 힘이 되고 또 자기가 새로원운 발견해서 죄를 발견하고 이 죄를 주님이  대행한 그 대행한 이 대속을 자기가 발견하고 새로 한층더 빚졌고 더 감사하고  새로 한층 더 주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 한층 주님은 내기에 대속의 은혜를  베푸셨고 나는 주님에게 이 짐을 지위졌고 주님이 나를 대속했기 때문에 나는  한층 더 주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주님은 나에게 더 주인되고 나느  더 주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나느 주님이 나에게 대속한 공로는  나에게 더 충만히 튼튼해지고 나는 주의 것이 더 되고 주의 공로는 나에게  충만해지고 나는주의 것이 더 되고 나는 주의 것으로서 주님이 자유하고 주의  것으로 살빛빚이 져서 주의 것으로 더욱 움직이게 되고 주님은 내게 대해서 더  능력으로 크게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죄를 자기가 입는 것이요. 사죄를 생각하고 또 의에 대해서  요와 꼭같은 것입니다. 다 해석하면 시간많이 때문에 의도 또 요와같은 것이요  꼭 요와 같소 의를 생각하고 또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을 생각하고 이  생각하고 또 자기가 인정합니다. 이것이 노력입니다. 생각하는 노력을 하고 또  인정 하는 노력은 하고 이래가지고 이럴때에 진리는 나에게 붙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나에게 붙들린다는 것은 내가 이럴지 저랄지 모르는 때에  진리는 요렇게 해야 되는 그 진리를 붙듭니다. 이것이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생명의 사람들의 빛이라 말한 것입니다. 빛이라 마말하는 것은 이렇게  해가지고서 진리를 내가 붙들때에 진리가 내갈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내가 진리를 붙들었고 말은 진리는 나를 붙들 수 있었습니다. 진리는 나를 잡을  수 있어 가지고서 그 진리의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진리의 것이 될 때에 진리가 나를 붙들어 자유할 때에 그때에 이제  성령은 하나님이신 성령은 우리와 비로서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공로를 인하여 진리와 결합되어 진리의 것이 될 수 있고 진리의 것이  될때에 하나님의 것이도리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될 때에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속할 때에 하나님은 나를  책임진 내 생명같이 내 머리같이 내 지능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세 가지 공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이 공로로 인해서 진리를나를  중생시키신 진리와 교제해서 진리를 생각해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생각할 때에 인정이 되어지고 내가 공로를 생각할 때에 진리를 생각할 때에는  달라집니다. 진리를 를 생각할 때에는 이 이 진리가 나에게 권위적으로 그 권위  적으로 주권적으로 이렇게 나에게 압도적으로 감화적으로 나에게 주격적으로  이렇게 나를 안보해주고 나를 책임져 주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더우기  나에게 내 생명처럼 내지헤 철럼 나 중에 나차럼 아주 자유로운 나 자기가  자기를 찾아 들어갈 때에 온전해 지는 것처럼 자기인지 하나님인지 모를 만침  하나님은 무형은 존재로서 나에게 모든 하나님의 충만만 주시기 때문에 나는 그  형체를 보지 못하게 때문에 이제 칙각하면 자기인줄 알기 쉬운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자기가 자기 중에 자기로 알기 쉬운 것입니다.

그는 무형의 존재로 무형의 존재로 나에게 전지를 주니까 내가 전지는 내가  받았지마는 무형의 존재 그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전지만 나에게 역사하니  자기가 전것을 이것을 언제든지 성경에많이 말해서 우리를 구별물이라 성도라는  것은 내가지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인정합니다. 인정할라고 애를 씁니다. 자꾸  노래를 불러요. 인정이 대번에 되는 것 아니니까 자꾸 노래 불러요. 다른  사람이야 뭐 흉을 보든지 말든지 자꾸 노래 부릅니다. 주님은 나에게 사죄를  주셨다 이 사죄에 대해서 마구 내가 어떤 죄에 대해서 주님은 어떤 형을 받았고  그러면 이 내가 무엇 때문에 정죄받았느냐 이 정죄는 영원한율법에서 받았으니  영원한 정죄가 이거는 영원한 형벌이라 자꾸 노래를 부릅니다. 이래가지고 위로  이 네 가지를 자꾸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그 목표가 뭐이냐 하면은 이정하기  위해서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동시에 인정이 자랍니다.

인저잉 자라면 생각과 인정이 자라게 되면 자기가 이지의 현실의 언행심사를  할때에 이 실제에 생각과 인정으로 자라진 이 네 가지의 내 근원은 그 구근원이  내인데 사람이 그 근원이 없으면 나는 빠리 끊힌 나무와같이 아무 것도 살만한  그 권위가 없는 데 근거와 없는 데 온천하가 다 그래도 그까짓거는 사망이요  아무 힘이 없어. 그 예수님의 대속 그기라 야 그 진리라야 하나님이라야 그분을  내가 알기 때문에 자꾸 그분을 생각하니까 알아졌습니다.

그분을 알고 그러면 자구 인식이 되어지고 지식이 되어 지니까 내가 현실에  언행심사를 하는데 거게 재재를 받는 다 그 말이오 이분을 암만 무시할라고 해도  없다고 생각하고 할라고 해도 그 그분에게 거슬리는 일은 두리워서 하는데에  자꾸 손이 오그라지고 자구 소름이 끼치지고 안된다 그게 또 아무리 이 내가  두려운것을 대해도 그분이 자구 이렇게 인신이 되어지는 것만침 이 두려워 것이  안두려워 할 것이 이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관거에는 필요없는 것쓸모 없는 것들을 소용없는것 거짓것들을  가졌는데 거짓뿌리 리 가졌던 이것이 자꾸 제거되어져 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이 참의 것이 자꾸 물 솟아지는듯이 솟아져 가지고서 그 참이신 완전이신  하나님이 진리라는 이 그 수도관 처럼 이진리라는 법칙을 끼고서 이것을  통해가지고 이 관을 통해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이 공로를 인해서 나에게 마구  이렇다 강물처럼 이러게 밀려오니까 내가 그 영향을 안받을 수 없고 거게  압도되지 안할 수 없고 거게 통치를 받지 안할 수가 없고 그분이 나에게 온  그분의 능력이 오왔으니까 내가 아무리 떨라고 해도 그 두려운것이 떨어  두려워지지를 안하고 아무리 그분이 이렇게 와가지고서 나에게 물밀듯 그분의  자체와 능력을 역사하고 보니까 내가 세상 사람이 좋아서 못견디는 그  보배라는하는 것도 내가 그걸 무시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고 그 마치 모르드개가  하만을 보고 암만해야 머리가 숙여지지 안하고 참 불싸하다 가련하다 렇게  비웃게 되는 것처럼이래 세상에 있는 그 모든 것을 그것짓 뿌리의 두려움을  두려워 할 수가 없고 거짓 뿌리의 봅배를 보배라 할 수가 없는 이것이 자기의  행동에 제재가 되고 자국이 되고 관련이 되고 영향이 있고 그로 인해움직이지는  요것이 하나님과 동행이 된것입니다.

요것이 심판을 이긴 것입니다. 이것을 외부로 말해서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가르줬다 선지자 노릇하고 또 귀신 쫓아내고 능한 일을  했으니까 구원 주십시요 이것을 구원은 구원의 표준을 이것이 구원이 되는  것으로 천리 만리 멀다 이것은 구원에서는 천리 만리 멀다 이런데 네가  이것가지고 왔으니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이 구언에 대해서는 네가 불법이다  이 이적이나 기사나 그런것은 이 구원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구언이 있다 하는  소문을 들려주는 것이 구원이 있다는 그런 소식을 들려주는 표전이지 이기  구원되는 것 아니다 이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친 그것은 뭐이냐 그것이 네가 거게  대해서 잘못 가르친 거짓선지자다 이러기 때문에 양의 옷을 입었지마는 실상은  이리다 이는 중생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의 그 성화같이 이리  말하지마는 껍데기는 이 예수님을믿는 사람이지마는 속에는 예사람 내나 그대로  그대로다 그 자기 중심 그대로 그대로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위에서  내려와가지고서 이 심신이 변화되어서 심신은 그 심신이지마는 이 심신이 변화된  것 이 심신이 붉은물이 들어있던 것을 이것을 와완전히 빼서 탈색해서 하양게  되는 것처럼 이 심신이라는 이것은 이것은 물질이기 때문에 이것이  궁국적인원위를 가지지못한 것입니다.

이거는 붉은 물으 들이면 붉은 것 되고 검은 물 들이면 검은물 되고 흰것들이면  흐니물 디고 공산주의물 들이면 공산주의 물이 들고 또 유교 물들리면 유고 물이  드로고 불교 물드리면 불교 물 들이느넋ㅇ이기 때문에 이것이 다 탈색기 다  되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물든이것이 되어야 될터인데 내나 속은  고대로 있다 아무리 끄트머리는 색깔칠을 해서 그 닭처럼 미 놨지마는 실은  물에집어 넣어 보니까 오리 그 물을 좋아해 그 물로 들어가는 오리처럼겉만  다랏지 속은 같다 이것을 가르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은 무럴로 되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되는기 아니고 하늘에 게신 내 아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뜻은 진리입니다. 진리대로 된 것이라야 된된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익이것은 우리의 노력입니다. 우리의  심신의 이 노력이 중요합니다. 심신의 노력으로서 이일이 되돌고 하고 이일  된것이 심신의 노력으로서 생각한 그것은 인정의 그 목표를 향해서 자라가는  것이고 인정되는 그 목표는 현실의 그 언행심사의 이 능력이 역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그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인정하나 안하나 하는 그  표시는 그이의 현실 생활에 자기가 보면 알 것이고 자기각 자기 생활보면  압니다. 아무리 전능한 사람인데 나와같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마는  전능자만 못한 세력을 내가 두려우면 그것이 내게 빈약한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워도 두려워도 층어리가 많습니다. 이래서 두렵다가 두렵다가  어짜니까 두려움이 하나도 없고 또 어짜니까 두렵고 하는 그것은 뭐이냐전선이  전구에 연결되면 빤작거다가 또 떨어지면 또 그게 꺼졌다가 연결되고 하는  것처럼이조화가 인정생각하고 위에 너이를 생각하고 인정하는 이 인정이 됐다가  안됐다가 조금 들 됐다가 확실히 됐다가 다니엘이 그가 다리왕에서 그가  사자굴에 들어갔어도 그는 평안하고 그 소식을 조서를 받고도 그 감사함으로  기도했던 그것은 요 인정을 평소에 많이 해서 요 인정이 자기에게 온 그것을  능가한 그 능력이 왔기 때문에 이 큰 능력이 자기와 함께 하기 때문에 작은 능력  그것이 보이지 않고 아주 그약하게 깔보게 되기 때문에 그는 그 두려움이 이  다니엘을 정복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은 그고것이 기름인데 고것이 기름인데 고것은 언제 마련했는 냐  평소에 말련을 했지 그때 일시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마련은 했는데  평소에 마련한 그것은다 가값을주고 마련한 것입니다. 네가 값이 없어도 값을  내고 사라그말은 값업삳 말은 그 가치는 댓가될만한 것이 나에게 없다 없지마는  값을 내고 내준다 그말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 자기를 투자해가지고서  그 기름을 마련한 것입니다. 현실 현실마다 이것을 마련할 때에는 자기에게는  노력이 있었고 희생이 있었고 이매 이 썩은 것을 주고 써썩지 않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값이요 이 댓가는 안되지마는 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이 점을 많이 힘써야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어떤 성자의 전기에 보니까 그분이 입신 가운데에 들어갔는데 입신가운데에 가서  영계 가서 보니까 하늘나라에 제일 고로자가 어떤 자 이었으며 제일사람들을  많이 구원하고 의로운 일을 만힝 하고 간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은 만이 명상한  사람들이더라 그렇게 기록해놨습니다. 많이 명상한 사람들. 명상이 뭐입니까.

생각하는 것이지 인정하는 것이지 그래서 그는 모든 현실의 움직이는 것이 이  위에 있는 네 가지 이 근원에서 흘러 나오는 근원에서 흘러나가는 그 생수로  말미암아 흘러 퍼져나가는 그것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구원에 대해서 방해된는 그  일이 없었고 그분으로 인해서 움직이 졌으니까 그 사람이 제일 큰봉사자요. 큰  전도자요 가장 실력이 있는 많은 승리한 사람들어더라 그거는다 명상한  사람들이더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는 명상입니다. 기도는 명상이요. 명상끝에 자복도 나오고 명상 끝에  감사도 나오고 명상 끝에 간구도 나오고 명상끝에 다시 도고도 나오고 명상 끝에  의논도 나오는 그것이 뭐이냐 마음 다하고 힘 다하고 또 뜻 다하고 마지막은  제물로는 생명까지 다 이것을 있는 걸 다 받혀 내놔야 비로서 되는 고것이  골방기도요 고것이 명상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벌써 눈에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명상하는 것은 세상이  보는 현실 세계를 자꾸 벗고 벗고 현실세계를 벗고 그 이 현실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대속을 예수님의 대속에서 진리를 하나님을 이렇게 향하여 상대하는 이  이것이 명상인데 믿는 사람이 이런 것은 없이 돌아 다니는 사람 목회잘고 심방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으로서는 위대한 목회자 절대 안됩니다. 왜 심방  다니는 기 좋지마는 심방 다니다 보면 난중에 그 사람되기 쉽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심방을 다니되 다니는 것이 전부 다 명상 생활이 안라면은 헛일입니다.

그저 아무 명상도 없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무슨 회의를 하고 있는지 저  목사 저놈을 죽이야 되겠는데 저놈을 주가 죽이느냐 저놈을 지금 마이치는데  누가 망치는냐 저놈을 지금 고생을 해도 지금 지금 쫄쫄 곳해서 지금 그 천대를  받도록 해야 되겠는데 누가 하겠느냐 마귀가 있다가 내가 하겠습니다. 할 수 이  비밀의 세계는 생각지도 안하고 돌아다니면서 제 이 사람 꾀와가지고서 제 사람  만들고 저사람꾀워 가지고서 제 사람 만들도록 이렇게 욕망하는 것이 돈이나  권세나 뭐 이런 것 임시 세상에 있는 그것만 바라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그저  동분서주하게 돌아다니는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다. 응 기독자는 명상이  있어야 된다 좀 찾아야 좀 찾아야 되요 생각도 해봐야 됩니다. 생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기가 명상을 해봤으면 명상을 해봤으면 명상을 해 봤으면 이 현상 세계가  다껍데기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현상세계를 다 지내가서 밝은 세계가 있는 것을  알 것입니다. 현상세계를 다 지내가서 밝은 세계가 있는 것을 알 것입니다. 명상  봤으면 지식이 현상세계에도 아주 자 외나 최고의 것은 아니고 중간쯤 되어져서  뭐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활동도 훌륭한 기능도 지시곧 그 모든 것이 다 죽음에  속한 것들이요.

이것은 우리가 이용물들이지 이것은 이요 물이지 이것이 안한 생명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된 것입니다. 명상이 없으면 저도 모르고  명상이 없는 세상도 모르고 명상이 없으면 하늘나라도 모르고 주님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응 명상에 들어갈 때에 자기의 원수인 자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병이 들어서 죽고 저 병이 들어서 죽고 다 병들이어  죽는데 이것거 명상이 아니면 이것을 치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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