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1981. 6. 19. 금요일 저녁

 

본문:창세기 5: 1-20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에는 모든사람이 세상에 난 이후 몇해를 지나다가 결혼을 하고 또  결혼하면 몇해를 지나면서 자녀를 놓고 그 다음에는 죽는 것이 이것이 다  일반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게 에녹은 결혼도 같이 했고 자녀도 같이 낳았고 그랬으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안 한 것이 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에녹은 죽지 안하고 그대로  승천했습니다.

또 창세기 6장에 노아가 홍수에 멸망받은 모든 살마과 다른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하나니과 동행한 것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한  것.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여게 기록된 이 사실에 대해서 에녹이  산채로 승천을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그렇게 별달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해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에녹과 노아에 대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이 말씀이 명문되어 있는 것은 인생이 장수를 하든지  단명을 하든지 또 자녀를 많이 놓든지 적게 놓든지 세상 모든 영광을 많이  누리든지 적게 누리든지 세상에 어떤 생애를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외에는  다 사망이다 하는것을 보이는 요 하나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종류의 위대한 하나는 것을 보이는 요 하나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종류의 위대한 생활 또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생활 어떤 것을  했든지 하나님과 동행이 아닌 것은 다 사망이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창세기 6장에 동행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인간이 별별 준비를 하고 별별 그  부강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심판은 면하지 못한다 유식해도 하나님  심판을 못면하고 어떤 권세를 잡고 있어도 하나님 심판은 못 면하고 또 어떻게  특수한 인물이라 하지마는 하나님의 심판은 이런 것들 가지고는 면하지 모못한다  다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거 하나로만 심판은 면한다 하는 것을 보인  계시입니다.

우리는 죽지 아니하는 것을 마련한 할력 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지 아니 할 것을 마련하려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 저런것 여러가지 필요로  해서 소망을 하는 것 같이 보여지지마는 실은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이용할려고 하난미과 동행하는 데에 소용되는 것이라 우리가 그런  것들을 마련도 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 못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도 알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또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죽음에서 끝나는 것도 있고 심판에 가가지고  끝나는 것도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면하는 영생을 준비하는 우리의 생활들이요. 또 하나님과 심판을 면하는 천국을  마련하는 우리의 세상 생활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아주 간단하게  쉽습니다.

죽음도 하나님과 동행으로만 죽음으로 면할 수 있다. 또 심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행으로만 심판을 면할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이 아닌 것. 이것은 다  심판받고 사망한다 아무리 좋아도 커도 강해도 아름다워도 하나님과 동행이 알면  그것들은 다 심판받고 죽어 망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어떻게 외로워도  초리해도 그것은 다죽지 안하고 영생하고 심판을 이긴다 요걸 우리가 굳게  잡습시다.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데에는 하나님은 완전자시며 거룩한 자십니다.

또 불의나 죄를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의로운 자기 아니면 하나님과 동행을 못합니다.

또 하나님과 그 사이가 화친되어 있지 안하면 하나님과 동해을 못합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을 못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아니면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가 없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동행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든 생활은 다 영생입니다. 사망도 이기고 심판도 이기고 늘그는 것도 쇠하는  것도 낡아지는 것도 더러워지는 것도 다 이깁니다. 하나님과 동해응로 된 것은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썩지 않습니다. 쇠해지지 않습니다. 낡아지지 않습니다.

다 영생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으로 된 것은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일이든지 그 소유물이든지 자기  몸이든지 마음이든지 영이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정죄를  못합니다. 어떤 것이 그것을 나쁘다 이렇게 정죄나 훼방이나 저주나 이런 것을  못합니다. 모두 심판을 다 이깁니다. 또 영생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동행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없고 또 더 귀한 일이 없고 그  이상 실력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어떤 학을 연구해서 학자 되는 것보다 하나님과 도행이 말할 수 없이 귀합니다.

부자되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이 귀합니다. 큰 권세를 가진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이 귀합니다. 큰 권세를 가진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이 귀합니다. 그 용모가  아주 미남 미인되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이 귀합니다. 므두셀라는 구백 뭐  구십몇살인가 살았는데 천년만년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동행이 귀합니다. 온  천하를 자지하는것보다 하나님과 동행이 귀합니다. 하나님과 동행보다도 더 귀한  것이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을 위해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과 동행보다 더 귀한 일도 없고 또 권세있는 일도 없고 영광있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제일 인생으로서 영광스러운 것이요 권위있는  것이요. 부요한 것이요. 강한 것이요. 권세 있는 것이요. 행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 가지를 말했는데 요것을 굳게 잡습시다. 하나님과 동행만이  죽음을 면한다 하나님과 동행마이 심판을 면한다 하나님과 동행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요 세 가지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데에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생을 노력해도  하나님과 동행 못합니다. 왜 죄가 있기 때문에 동행 못합니다. 또 의인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못합니다. 하나님가 원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히신 것은 이 하나님과 동행시킬라고  십자가에 못밖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간으로서 최 고귀의 이 지위 행복  생명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는 우리 죄를 다 대신 담당해서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에  자기가 어떤 죄를 범했을 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속에 든 죄며 또 예수님이  다 정죄받아가지고 대신 형벌을 바당서 사해주신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생명과 피로 대속함을 받은 그 사죄를 받은 자기인 것을 깨닫고 자기는  예수님으로 사죄를 받은 자기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죄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에 그는 죄없는 사람이 됩니다. 법적으로는 제가  인정하든지 말든지 죄없는 사람의 이로운 사람 하나님과 화친디어 있는  사람이지마는 실제의 역사에 있어서 역사 움직이는 이 역사에 있어서는 자기  주고 나으로 예수님이 대형으로 사죄하해 주신 것을 이것을 인정할때에 자기는  주의 것이요 주님의 대형은 내것이라 한 것을 인정할때에 역사적인 사죄는  자기에게 운동합니다. 또 대신 행한 칭의도 그러합니다. 대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의 제물이 되어서 원수된 우리를 아버지와 저녀의 이 화친을 일으켜 주신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이 제일 귀한 것이요 권위 있는 것이요. 존귀한  것이요. 복 있는 것이요. 영광스러운 것인데 하나님과 동행하는데에는 죄가  없어야 되고 의로워에야 되고 하나님과 화친되어 있어야하고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설교를 잘 안들으면 마귀가 아난가  마귀 아나가면 소용없어. 이 말씀을 들어서 아멘 하고서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 속에 그 마음이 뜨거워지고 확실히 믿어져서 요데로 자기는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때에 모든 병은 다 더 나가버립니다. 모든 병은 다 나았어. 응  인간의 병은 그 사람의 다른거는 좋지마는 성질에 병이 들어서러 병든 병도 있고  다른 거는 좋지마는 그 사람의 욕심이 그 병이 들어서 욕심이 병이 들어서러  병든 병도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이 병들어서 의지가 병들어서 그 사람에게 그  나쁜 슬성이 있서 아무도 인경에 병이 들어서 고기 덩어리의 병이 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러기 때문에 이 인격의 병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외에는  치료하는 길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사람이 성질병이 들서어서  성질이 못되서 그 성질 성질 가진자가 병이 안들으면 큰일 난다 말이요.

이럴때는 하나님꼐서 병을 줘서러 성진로 인해서 병이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성질 병든 성질이 변화가 됐을 때에 성질병을 인해서 병든 그 병은  그 성질이 변화됐을 때에 치료 됐을 때에 그 병은 당장 최료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긴대 에배볼 때에 꾸벅 꾸벅 졸고 자리면만 차지해 가지고서 뭐이  됩니까. 이 말씀은 큰 말씀입니다. 우리가 땅위에 사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삽니다. 무궁세계에서도 이 생활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뭐이 그리 좋상서 하나님이 하나님과 동행만이 죽지 아니하고 영생하는  영생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만이 모든 심판을 이깁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과  동행이 죽지 안흔 것과 심판을 이기는 것과 가장 존귀한 권위요 지위요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 이 복된 동행은 죄있는 사람은 못합니다. 불의한 불의가  있는 사람은 못합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은 못합니다. 하나님과 화친이 되어  있어야 되고 의인이라야 하고 죄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상에서 대신해서 이 공로를 설정해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해결 지워서  리에게 이세 가지 공로를 각각 입혀 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울어도 힘써도  참아도 인간의 어떤 세력으로도 할 수 없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신인  결합의 생명 이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되어 있습니다. 이종교가들은  어떤 종교인인이라도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에게 되어 있습니다. 이종교가들은  어떤 조욕인이라도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안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을  못합니다. 죄를 못 벗습니다. 의인이 못됩니다. 하나님과 화친이 안됩니다.

원수된 그대로 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의 공로로 이 세 가지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잘못됐을지라도 자기가 잘못된 것인  것을 깨닫고 이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 공로를 내것으로 삼으면서 나는 주의 공로로 값주고 산주의  것이니 이거는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의 뜻대로 쓰고 주의 것이라 주의  마음대로 하시는 주의 것이라 요것만 결정을 지워버리면 그 시로 우리는  역사합니다. 역활을 합니다. 운동을 합니다. 칭의가 우리에게 와가지고서  역사합니다. 하나님과 화친이 와 가지고 역사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려고 할때에 마귀라는 놈은 와가지고 너는 이런 죄를 지었는데  네가 무슨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느냐 고 미혹을 받지 마십시요. 그때에 주님의  사죄를 대행으로 주신 사죄를 내가 붙들고 나는 주께 맡기십시요 사죄를 붙들고  나는 주께 맡기십시요. 그 죄는 해결됩니다.

네가 일생동안 죄만 짓고 의가 하나도 없는 네가 무슨 내게 의가 있다고  하나님과 동행할라고 하느냐 할 때에 자기에게 의가 없는 모든 불의를 깨닫고  이것 때문에 주님께서 대행을 하신 이 칭의를 붙들고 자기는 칭의를 자기는  잡았을 때에 자기는 의인이 됩니다. 의인에으로서 이 의의으로서 이 의의능력이  자기에게 와가지고서 역사를 합니다.

이제까지 무신론으로 이제까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앞에 망령된 못된  입술을 많이 노렸었다 할지라도 이 시간 자기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 노를 끼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런 죄를 법한 이 죄때문에 주님이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 사실을 믿어 주님이 대신 화친해 주셨으니 이 화친을  자자기가 잡고 하나님과 원수 됐던 이것은 주에게 맡겨서 이거는 주의 것이니까  이제 주의 것이니 이거는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의 뜻대로 할 것이요. 주님의  댓니 화친은 자기 것인 것을 잡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과 자기는 화친한 것으로  화친의 그 공로가 와가지고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머니들 기도해요.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얼만 사치하고  교만했든지 놓는 것 고생이라 고 아를 안 놓을라해서 아를 낳는 사람 돈을 주던  안 놓을라 해 미국서는 산아제한 하난 하는 것 아닙니다. 미국서는 돈을 줘서  자꾸 아이 놓으면 키위줍니다. 이아 놓으라 해도 여자들이 놓기 싫어 안 낳소 그  나라 거는 산아제한 하는 줄 압니까? 아니오, 이렇게 하는 이 악한 세상에 저거  행락은 취하면서 수고는 하기 싫어서 산아제한 하는 이 시대에 무릎쓰고 아이를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이렇게 놓는거는 대단히 고맙습니다.

고거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복이 됩니다. 거다 복이 더 되게 이것을 위해서  아이가 없으면 나 혼자 예배보러 가서 뭐잘 보면 되는마는 이기 하나 따랐으니까  이기 마귀노릇 안하도록 할랄 하니까 기도많이 해야 되지 또 둘이 가가가  마귀노릇하는데 또 이거 마귀노릇 안할라 하니까 또 기기도해야 되지 서이니까  더 복잡하지 너이니까 도더 복잡하지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발로 할라 하다  보니까 구언은 자기 구언 이루어 집니다.

이래서 성경에 여인은 해산함으로 구언을 얻는다 이랬소 여인은 해산함으로  구원얻는다 또또 말씀하시기를 젓멋이는 영인에게 화가 있다 아이밴 여인에게  화있다 그거 죄지은 죄를 먼저 지은 그 죄값으로 남자없는여자가 그걸 고통을  하는 것인데 ㅈ되죄값으로 고통하면 의례히 받을 줄아록 감사히 받고 또 새로  죄를 짓지 안해야 될 터인데 젓먹이는 의식하고 예배도 상관업고 뭐 기도할 때도  상관업속 새벽기도도 상상관없고 아이만 낳다 하고서 이것가지고 큰소리  하고사서 지금 있으니까 화라 그 말이오. 거게다 행락은 취하면서 일을 안놓고  신아재한하는 그런 사람들은 확 얼마나 클 것입니까. 참 불쌍합니다. 천주교는  산아재한 안합니다.

그거는 개혁교보다 훨씬 낫소 개혁교보다 훨신 낫아 이 기도하고 좀 예배시간에  경건하게 예할 수 있도록 그래야 되지 에배신간에 예배를 드릴 수가 있어야 야지  어떻게 분주한지 그렇다고 아이구 거 아이 데리고는 못가겠다고 아이 데리고  못오면 제가 여 예배준비 구원준비 안하고 죽어 버렸으면 그만 천국같자는  가지마는 벌거벗어 가지 우리는 이종교가들이 모든 철학가들이 모든 더덕가들이  불택자들자로서 아무리 하나님과 동행이 좋다 할지라도 동행할 자원이 없습니다.

공로가 벗습니다.

또 공로를 입지 안한 사람들은 하나나님이라고 말하지마는 조작배기 하나님이지  하나님 당신이 나는 이런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준 그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섬기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싱  복인줄도 알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데에 제일 큰 조건 세 가지 조건이 해결이  되가지고 있어.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만 하면 됩니다.

오늘밤에 증거할라는 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것을 간단하게 증거 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증거 한것은 다 서론 이요. 하나님과 동행은 전능과  동행입니다. 전능과 동행이요. 전능과 동행이라 말이요. 전전지와 동행이라  말이요.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이 주권과 동행이라 말입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주인신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모든 것의 주가 되신 이 주와  동행하는 것이요.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이 창조주와  동행이요. 시은자와 동행이요. 만왕의 왕과 동행이요. 하나님과 동행은  이것입니다.

이런데 이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제 말한대로 이 전능과 동행이라 저는 전능과  동행이니까 전능자가 둘이 손을 잡고 동거 동행하니까 능력으로 할일이야 문제가  뭐이겠소. 전자와 동행이니까 지혜로 하는이야 문제가 뭐이겠소. 주건자와  동행이니까 이런 것 저런것들이 짜다라 뭐 움직거리 싸봤자 무슨 소용있소.

이분과 동행하는데에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 하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과  동행은 첫째가 하나님과 나는 동행한다는 것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이  사실을 첫째 생각하는 것입니다. 첫째 생각하는 것이요. 세상에 그까짓 오늘  있다 없어질 그런 권세도 제 배경을 삼을라고 애를 쓰고 야단인데 이전능을 자기  능력을 삼는 거인데 이일을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이걸 사람들이 마귀의 미혹을  들어서 안합니다. 이 하나님과 동행은 첫째가 생각입니다. 잘 기억하십시요.

생각아 하나님은 나와 같이 계신다. 나와 동행하신다.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요. 먼저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 것. 고 다음에는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 요 생각가과 인정이 다른릅니다. 인정하는  것. 고라고 난 다음에는 요거 잘 안들으면 몰라요. 고라고 난 인정하는  것입니다. 고라고 나난 다음에는 요거 잘 안들으면 몰라요. 고락거고 난  다음에는 자기의 움직임 마음 움직임 못몸 움직임 그 두 가지 움직임 외에 또  움직임이 있습니까. 마음 움직임과 몸 움직임 그 둘 외에 또 어데 있습니까.

마음 움직임이라면 마음 속에는 성질도 들었고 욕심도 들었고 뜻도 들었고  생각도 들었고 감각도 들었고 이 전부를 합해서 마음이라고 지금 총칭합니다. 이  마음이 움직일 때에 마음이 움직이는 거는 이 생각을 가지는 것도 마음  움직임이요. 저 생각가지는 것도 마음 움직임이요. 이 욕심을 가지는 것도 마음  움직임이요. 이 미음이을 가지는 것도 마음 움직임이요. 사랑을 가진 것는 것도  마음 움지깅ㅁ이요. 성내는 것도 마음 움직이밍요. 웃는 것도 마음 움직임이요.

기뻐하는 것도마음 움직임이요. 마음 움직임 또 하나는 우리 몸 움직임 마음으로  기쁘면 마음으로 기쁘면 얼굴 빛에 기쁨이 나오지요.

또 마음에 슬프면 고기덩어리도 또 슬픔이 나오지요. 마음이 욕심이 나면 이  고기덩어리도 또 욕심을 내서 활동을 하지요. 응 대개는 마음과 몸이 같이  움직이는데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지깅밍 자기가 동행하는 이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생각하고 고 다음에는 인정하고 생각하고 인정하는 나와 함께 계시는  이 하나님이 이분이 나와 하께 게시니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임의 요게  관련이 되면 요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이 이 동행하는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요것이 다가 안되도 이 하나님에게 이 마음과 몸의 움직임이  같이 게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이분을 생각하고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이 재재도 받고 다시 마랗면 금지도 금지도 받는다 마링요  금지도 받고 하기 싫지마는 이분이 권면하니까 권면은 바고 하고 싶지마는  이분이 하지말라 하니까 할 수 없어 그 금지도 받고 또 하기 싫지마는 권면도  받고 자기의 마음과 이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이 자기가 하나님이 나와 지금 같이  계신 이 사실을 생각하고 인정하는 요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의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이 이 영향을 받을 때에 이 관게를 받을 때에 요게 얼마라도  관련을 받을 때에 요땡테 받은 것만치 요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이것이  전능자와 전지자와 동행입니. 요렇게 된 요것이 영생입니다. 요것은 심판을 다  면합니다. 이렇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나와 지금  같이 계시는 이 사실을 자기가 생각은 해도 인정 안하는데 거서 끊어지빈다.

생각과 인저응ㄹ 해도 생각과 인정을 해도 이 하나님이 자기의 언행심사의  우움직임에는 아무 관련이 없는 여게서 끊어집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하나니모가 동행하는 이 생애가 눈에 귀에 접촉되는 이 모든  화경접촉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깜밖 잊어 버립니다. 역세 거의 다가 실패하니다.

깜박 잊어버립니다. 생각만하면 보배를는 얻었소. 이렇게 잊어버렸다가 하닌밍  자기와 함께 계시는 걸 생각했으면 이 큰걸 잡았는데 생각하고 고만  의에는약하고 죄에는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사실을 생각하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인정하나 안하나 인정해 나갈라고 하지도 안하고  생각하고 고만 버리 버립니다.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는 이렇게 성구도  생각하고 이런 것 저런 것이면 하나님은 나와 같이 게신다 믿습니다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는 걸 믿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여게 계십니다. 몇십번 몇 백번 이고 자기에게  인정이 되도록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인정함이 자기의  언행심사에 역향이 이거로거 언행심사가 함께 하시는 이분이으로 인해서  그믿지도 당하고 이분으로 인해서 하기 싫은데 권면도 당하고 이분으로 인해서  견디기도 하고 이분으로 인해서 던지기도 하고 자기의 언행심사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질 때에 요것이 하나님과 동행의 오나성입니다.

요거는 심판을 면했습니다. 요거는 사마망을 면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연습하고 연습해서 이제는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할라고 부인할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언행심사를 할라고 해도 눈 질끝 감고 할라고 해도 나와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 이분이 두려워서 이분의 눈을 가루지 못해서 할 수 없는  이 사람으로 되어지는 것이 우리가 성화입니다. 여게서 전지오 전능의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로 우리는 요 간단한 마지막의 요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하나님과  동행은 첫째로 하나님이 구속바드은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것을 생각합시다.

나와 함께 계시는 걸 생각합시다. 그 다음에는 자꾸 인정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요. 성구도 생각하고 과서거 자기와동행환것을 생각하고 또 모든 다른  그 이웃의 그 성자와 성녀 선지사도들을 생갓하고 모든 역사를 생각하고 이래서  하나님이 자기와 동해아하고 게신는 것을 인정하도록 인정이 디도록 하고 인정이  되니까 인저잉 되고져서 인정이 되되니 내 움직임에 영향이 있다 막말이요.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하고 눈질근감고 할라 해도 인정한 이분 때문에 못합니다.

하기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 인정하다 보니까 나 혼자 있으면 두려원 견디지  못할 터인데 이분때문에 두려워움이 없습니다. 나혼자 있으면 얼른 뛰달라  들터인데 이분이 그게 때문에 참 그일을 뜻 달라들지 못합니다. 자기의  언행심사가 이분이 함께 계신 이 때문에 재재를 바독 영향을 받는 이것이 산자요  이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으 요 세 가지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과 동행만이 죽음을 면하고 심판을 면합니다. 하나님의  동행은 인생으로서는 최고 의 권위요 영광이요 존귀요 시력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데에는 세 가지가 있어야 됩니다. 죄가 없어야 됩니다. 의인이라는라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친된 자라야 동행이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이것을 베풀어서 우리에게 줬습니다. 어떤 죄가 있어도 그 죄에서 예수님이 다  저오지받아 대행한 죄인줄을 아록 대행한 죄인줄 알고 죄로 인해서 나는  죽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어서 하나예수님이 대형한 그 공로는 내 것 됐고 이  고로에 팔린 나는 주의 것 도됐다 요럴 대에 그 공로는 나에게 살아 역사합니다.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주음과 내가 동행하는 것은 첫째가 주님을  생각하는 것. 둘째는 인정하는 것. 셋째는 생각하고 인정하는 그 주님이 같이  계씨는 주님이 자기의 언행심사에 재재를 주도록 언행심사가 에게 영향을 받도록  자기 혼자 같으면 널북 집어 삼겠는데 이분때문에 못하겠습니다. 사람의  눈같으면 눈을 가루가 이래 속여서 하지마는 이분은 가룰 수 없기 때문에  못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권면하고 신실하게 권면해도 오늘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 말듣고 시작 못하겠습니다. 이렇지마는 이분은 영생하기 때문에  담대히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응 이분의 권능이 내 생활에 영향이있고 이분이  지혜가 있고 이분의 두려움이 있고 이분의 환하게 감찰하심이 내가 어두운  생활에 영향있을 때에 이것이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구원은 별스러운데 있는 것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생활에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진실하면 됩니다. 진실 없으면 천하 지헤를 다가져도 스스로 속인 것  뿐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요긴한 때인지 모릅니다. 우리 가 아무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을 지금 기도로 우리는 다 방어하고 필요나 것을 다 끌어 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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