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1984. 10. 31. 수새벽

 

본문 : 말라기 3장 10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외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연보에 대해서 요새 늘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연보에 대한 것을 모처럼  가르치다가 그만 중단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자꾸 알리고 또 실행 시키기  위해서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우리가 모든 것의 성공을 하지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면 모든 것이 실패됩니다. 하나님이 복 안 주셔도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야 하나님이 복 안 주셔도 뮈 이것이야 내게 보배지'  어리석습니다. '건강이야 하나님이 복주시든지 안 주시든지 건강이야 좋지'  어리석게 '재물이야 좋지 지식이야 좋지' 이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안하시면 그 건강이 보배인 것만치 건강이 자기에게 제일 해로운 것이  됩니다.

 그거 이해가 됩니까? 건강이 재벌보다 지식보다 뭣보다 다 보배입니다. 그러나  그 건강에 하나님이 축복하지 안하시면 그 건강이 자기를 망치는 데에 제일 크게  망치는 것이 됩니다. 병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자기에게 있는 거 모든 것보다  그 병이 자기에게 크게 도움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평상시에는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6.25때를 지내고 나서 모두 간증을 하고  또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간증을 하는데, 그분이 병으로 인해서,  병으로 인해서, 자기가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는 당하지 아니할 필요없는  박해를 받을 터인데 병으로 인해서 박해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 많았습니다.

 하나 예를 든다면은 6.25때는 주 남선 목사님이 평생 순교하기를 원했고,  인민군 손에라도 죽어서, 주님을 위해서 죽어서 순교하기를 평생 원하신  어른인데 당신은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걸 허락지 않는다 그말이오. 않는데, 만일  그때에 후퇴할 때에 붙들렸으면, 하나님이 생명을 끊지 않하시니까 끊어지지는  안하고 죽지는 안하지마는 그 어른을 데리고 어디까지 갔을란지, 잡아 가지고  갔을란지 모릅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가다가 고만 발을 꿈쳐서 교인들이 전부  시외에 나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 가지고 예배 보고 월요일 날이면 또  인민군 속으로 들어오셔 가지고서 그 사택에저 거처하시고, 행여나 순교를 할까  싶어서 그래 하셨는데, 발을 삐어서 겨우 거기에서 기어서 가 가지고 주일을  보고 월요일날 나올라 하니 도무지 기지도 못하겠고 발이 아파서 꼼짝 못해서  거기에서 사흘을 머물렀습니다. 사흘을 머물고 나서 근근히 사람이 부축을 해  가지고서 본교회로 돌아오니까 벌써 인민군들이 후퇴를 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필요없는 박해를 안 당하게 됐다 그거요.

 또 황보기 조사님이라고, 제가 그 조사님을 제일 먼저 교역자로 모셨 습니다.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때문에 모두 잡혀서. 하나 하나를 잡아가지고 차를 태워  가지고 가는데, 가다가 갑자기 그만 심장이 어찌 돼 가지고서 그만 죽어 버렸다  말이오. 그래서 그사람들이 할 수 없어서 내려 가지고 가까운 병원에다가.

입원을 시키고 좀 치료해서 거석하거든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그분은 갑자기  고만 병이 들어서 기절되는 그것 때문에 신사 참배를 이겼습니다. 그런 거 뭐  그때 그런 얘기 많았습니다.

 병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축복하는 병은 유익이 있습니다. 그 병이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있다 그거요. 재물도 그렇습니다. 축복하시면 유익이 되고 축복 안  하시면 그 재물로 인해서 자기는 망합니다. 모든 것이 안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 자기 재물이나 뭐 사업이나 자기 취직이나 자기 명예나 뮈이든지  하나님이 축복을 해야 그것이 복이 돼지지 축복 안 해도 복될 거 하나도 없고 또  축복을 하실 때에 복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신앙 생활은 제일 복 그것을 먼저 생각하자 하는 것을 시편  1편에서 우리가 공부을 했습니다. 아, 이라면 복 받는 일이냐, 이라면 복을 못  받겠나 복을 받겠나, 복은 물질 복을, 일반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복인 줄  알지마는 돈 그것은 실은 몰라 그렇지 복에 들어가지 안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돈은 복에다 넣지를 않습니다. 영이나 육이나 모든 것의 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볼봐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돌봐 주시지 안하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연보에 대한 것을 자꾸 이렇게 계속 설교하는 것은 우리가 다 복  받는 사람이 돼서,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이 주신다 이랬으니까 복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확실히 가르쳐서 다 기억하고 있도록 해야  되겠다 해서 계속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보에 대해서 두 종류로 나누어서, 하나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연보하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고, 하나님께 대해서 연보하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고 또  사람에게 대해서 물질 취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라면 총 합계가  일곱 가지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해서 다섯 가지는 무엇 무엇인가? 첫째는 고 십일조에 대한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것인테 십일조는 어떻게 하는게 십일조인가? 십일조에  하는 것은 세 가지가 이루어져야 된다.

 그러면 첫째는 내가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만지는 것이나 접하는 것이나  내게 관계가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내가 보고 듣고 하는 모든 거. 우리가  영계 것은 그저 성경 말씀으로 듣기만 들었지 영계의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또 이 우주 안에 있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들은게 많지 직접 본 것은 많지를  못합니다. 내가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관계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모든  존재는 다 나를 대속하신 주님의 것인 것을 우리가 인식을 해야 됩니다. 주님의  것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그 앎으로써, 모든 것을 접할 때에 이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앎으로써.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자기 언행 심사의 모든 행위가 이  모든 것은. 그들의 것임을 앎을 인한 행위가 돼야 됩니다. 앎을 인한 행위. 그  앎을 인해서 내 마음이 거기에. 모두가 다 사랑하시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바로 알 때에 자기 마음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고  거기에 대해서 취급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것이 십일조에 대한  첫째입니다.

 그러면 고 십일조에 대해 첫째가 요것이 첫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인  이것을, 이 사실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인 이 사실을 제가 사실대로 아는  사람이 되어서, 사실대로 앎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애 대한 내 마음도 알기  전과 안 후, 또 그것이 뮈 스스로 있는 것이라. 그거는 미국 것이라, 영국  것이라, 일본 것이라, 뭐 소련 것이라, 그거는 공산주의 것이라 이렇게 알 때와,  그 모든 것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것인 것을 확실히 자기가 그 실상으로 그  실상을 자기가 바로 알 때에 그 때에 그 앎을 인해서 자기의 마음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태도도 달라지고, 거기에 대해서 행동도 달라지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실상은 모든 것이 다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의 것인데, 그 실상은  주님의 것인데. 인간들이 주님의 것인 줄 알지 못하고 하는 데에서. 알지 못함을  인함으로 알지 못함을 인해서 거기에 대해서 그 사람의 언행 심사가 달라집니다.

또 그것이 주님의 것임을 확실히 자기가 앎을 인해서 언행 심사가 달라집니다.

 그라면 자기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이 실상을 앎으로 인한 그 마음도  되고 생각도 되고. 모든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접촉하는 것도 취급하는 것도  아는 자가, 아는 자가 되는 그것이 이제 도적질은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게  도적질을 첫째 안 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그 안다는 것이 그 범위가 넓다면 넓습니다.

 그러면, 아는 것은 모든 존재의 그 실상이 주님의 것인 것을 아는 것어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대주재시라 이렇게 말로는 한 마디로 쉽지마는 대주재라  말은 모든 것은 다 그것이 주님의 것이라 하는 이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그것이  주님을 아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렇게 모든 것은 아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하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고 면으로서는 도적하지 안 한 사람이 됐습니다. 자기의 것이나 어디  것이나 그렇게 요 사실을 요 사실대로 아는 사람이 도적질 안 한 사람입니다.

사실대로 아는 사람.

 어떤 사람이 미국에 있는 나야가라 폭포를 자기 것이라고 이라니까 어떤 사람이  그때 가서 그만. 뭐 정부에서인가 고발을 했는데 재판하다가 마지막에 그 사람이  이겼다고.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것이니까 내것 아니냐? 내것이다. 너희들이  내것이라 아니라 하는 그 말은 언제 굴복해도 굴복하지, 이것은 내것이다.'  마지막에 재판을 이겼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도적질 안 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뭐 미국 것이라 소련 것이라, 이거는 누구 것이라. 이거는  내것이라 하는 그것이 도적질이라 그거요.

 그러므로, 십일조는, 십일조를 바로 바치는 것도 도적질을 안 하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요, 십일조 안 드리는 거는 뭐이냐? 도적질 하는 것이라  그렇게 여기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첫째로 우리가 도적질 안 하는  것이, 도적질 하는 이 죄를 범하지 안하고 거기에서 도적질 하는 것을 회개하면  주님과 서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첫째 중요하고.

 둘째는, 모든 것이 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나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인데.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이 주님의 것을 내게 주셔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의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이다.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내게 주셔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의 것이다. 모든 것  중에 주님이 내게 주신 이것들이다 요렇게 자기가 확실히 이 사실을 사실대로  앎으로 자기가 변화가 됩니다. 이 앎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것을 모를 때와 알  때와 사람이 달라진다 그거요. 그게 달라지는 그것이 실상으로 아는 것이지,  말로는 열 번 그렇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 거는 소용이 없어.

 하나, 그거는 에를 들어 말하는데, 어떤 사람이 지금 공산주의 속에 포위가 돼  가지고, 군인들이 공산주의 속에 포위가 돼 가지고 이제는 뭐 포위가 돼 이리  갈라 해도 꼼짝 못하고 이제, 이제는 포위가 됐으니까 죽을 수 밖에 없는데.

강한 군대가 군대에 섞여서 이와 같이 지금 오고 있으니까, 포위 돼 가지고 며칠  동안 있었으니까 이제는 뭐 다시는 살 길은 없다 이래 생각하고 있는데, 자고  나서 보니까 내나 그 군대가 포위 돼 가지고 있으니 이 사람이 참 아주 낙망을  하고 기절을 하고 하는 이런 지경인데 나중에 보니까 태극기가 쑥 올라와서 높이  들리더라. 태극기가 들리니까 '저 태극기가 어째서 태극기가 와 달리노?  태극기가 우리나라 기인데?' 태극기가 이래 들리니까 거기에 있는 총 책임자  대장이 있다가서 미리 함부래 무전으로 방송을 듣고 그 태극기가 들리니까  고함을. 호령을 치면서 그래 다 경례를 하라고서, 이래 국기에 대해서 주목을  하라고 이렇게 하니까. 경례하라 하니까 모두 군인들은 뭐 그 태극기를 보고서  울면서 경례를 하고. 믿는 사람들은 태극기를 보면서 오른 손을 가슴에다 붙이고  그렇게 눈을 감고. 묵상을 하면서 울고 고만 그 마음이 확 달라지는, 아주 근심  걱정이 기쁨으로 변해졌지, 두려움이 평안으로 변해졌지, 그만 절망이 소망으로  변해지지, 사람들이 아마 그때, 그럴 때에는 얼굴도 뭐 피부도 그 모든 눈도  정신도 온 전신이 다 변화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너무 거짓돼서 하나님의 모든 선물에 대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는 데도 내가 거기에 대해서 마음이나 성품이나 뜻이나  생각이나 모든 이성 판단이나 공포나 비겁이나 기쁨이나 슬픔이나 담대나  평강이나 이런 무슨 변화되는 작용은 결과는 하나도 없고 입술로만 하고서 있는  이것이 우리에게 큰 병인데,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가 참 애를 얼마나 써야  이것이 고쳐질란지 모릅니다.

 이래서 둘째로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이 내개 주신 주님의 것이라 요것을  자기가 요 사실대로 요대로 아는 사람이 둘째로 도적질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도적질 하지 안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이것은 다 주님이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인데 이것을 주님의 뜻대로  취급하고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주님의 뜻대로 하라고 하셨는데 주님의 뜻대로 하는 일호로, 주님의  뜻대로 하는 일호로 여기에 대해서 십분지 일,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의 십분지  일은 주님에게 이것을 바치라고 했다. 이러니까,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당신의  규범대로 이 모든 것을 취급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규범대로 취급하는 일호  순종으로 십일조를 드린다 하는 고것이 이제 도적질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거는 규범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규범대로 지키는 거. 그러면 요것이 십일조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을 드리기 시작한 것은. 십일조에 대한 것이 세 가지인데,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 이 사실을 자기가 이 사실대로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것,  둘째로는 자기에게 온 이것이, 이제 월급이 왔다든지. 무슨 추수가 왔다든지,  자기에게 무슨 지식이 왔다든지, 건강이 왔다든지 무엇이 왔다든지 자기가  이전에 없던 거 새로 온 것이 있으면 '요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인데 이것이  주님의 것이라. 주님이 내게 주셔서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의 것이라' 요것을  자기가 알아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 세번째는 내게 주신 이 주님의 것은 주님이  주님의 뜻대로 이것을 취급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 뜻대로 취급하라고 했는데  뜻대로 취급하는 제일호로 주의 뜻을 순종할 것이 뭐이냐? 주님이 거기에 십분지  일은 무조건 주님에게 바치라고 했다. 그러면, 주님에게 바치는 그것을 사람들이  십분지 일을 바친 다는 그런 뜻과 위에서 두 가지를 겸해 가지고서 마지막 이  셋을 바로 주님의 뜻대로 바로 행하는 이 마지막 결말로 십일조를 드립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 내게 있는 이것은 주님이 모든  것 중에 구별해서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이라 이랬으니까 둘에 대해서는 바로  알았으니 도적을 벗어났습니다. 두 가지 면으로서는 도적을 벗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내게 주신 것은 주님이 주님의 뜻대로 쓰라고 취급하라고, 쓰든지  어쨌든지 주님이 쓰라고 하는 대로. 가지고 있어라 하는 대로, 또 어떻게  사용하라 하는 대로.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당신이 주시는 그 규례, 규칙. 규례  그대로 하는 그 규례를 지키는 그 규례를 첫째로 순종하기 위해서 규례 순종으로  십일조를 드린다 하면 드리면 이제 그것으로서 십일조에 관한 것은 온전을 다  이루었는데  온전을 다 이루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다 결말된 것은 아닙니다. 완성된 거는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십일조를 드렸는데. 드리기 시작했으니 남은 구 조, 남은  십분의 구 그것이 다 없어지기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이 결말이 돼져야 이제  십일조도 완전한 십일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자기의 남은 구  조 그것을 하나님의 규례대로 모든 것을 절해서 그것이 다 없어지고 끝나야 그래  온전한 십일조가 마지막에 그 완전 결말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 세  가지를 요렇게 하고,  고다음에 두 가지는, 그러면, 십일조를 드렸으니까 남은 것이 얼마가  남았습니까? 얼마가 남았어? 십의 구 조가 남았습니다.

 그러면, 십의 구 조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언제든지 그거는 따라 다녀야  됩니다. 십의 구 조, '아, 이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인데 주님의  규례대로 하라고 취급하라고 하셔서 규례대로 취급하는 규례의 일호로써 십일조  드리고 남은 구 조 이것이니까 이것을 또 주님의 법규대로 내가 해야 되겠다.

이것은 주님의 법규대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말씀하시기를 헌물을 말씀했으니  이 남은 구 조는, 구 조는, 구 조에서는 헌물을 드려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자기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헌물이라니? 첫째는 감사를 드리는 감사제가 헌물의 둘인데, 두 종류  중에 한 종류입니다. 감사제를 드리는 것은 십분지 구가 자기에게 있는데  '이것은 참 주님이 나에게 이래 주섰으니 감사하다. 주님이 내게 주셨으니  감사하다' 하는, 감사하는, 주님이 내게 주셨으니 감사하다 하는 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그러면, 감사의 마음만 가지고. 마음만 가지고 해도 이것이 감사한 감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이게 똑똑히 분명치 못하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기가  감사한다는 요 감사함의 표시로써. 표시로써 감사 헌금을 드립니다. 헌금 드릴  때 고것은 여러분들이, 처음에는 예를 들면 자기에게 만일 돈을 한 좀 많이  수입이 됐다 합시다. 한 백만 원 수입이 됐다 합시다. 백 만 원 수입 됐는데, 고  십일조는 십만 원 드리는 거는 액수를 변동 못 합니다. 고거는 변동 못 하지마는  감사함의 그 표시라는 것은 그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좋으니까, '아, 이거  내게 주시니 참 감사하다.' 내가 감사함으로 받아 가져야 버릴 것이 없지,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이 다 거룩하고 깨끗해서 복이 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가지면 자기에게 필요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감사함으로 가져서, 나로 하여금  주님에게, 이걸 주셨으니 이것을 인해서, 다른 것을 인해서도 감사하지마는  이것을 인해서도 주님 앞에 감사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사용하라고 주님이 내게 주셨다 요것을 알면. 주님이 내게 주셔서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취급하라고 하셨다 하는 요걸 깨닫고 자기가 감사하면  십분의 구에 대해서 십분외 구는 공짜베기로 은혜로 주신 것인데 십분의 구에  대해서 대가를 낸 일이 됩니다. 감사하면. '주님이 내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니까, 감사라는 것은 은혜의 대가입니다. 자기가 아무래도 감사하지  않으면은혜의 대가가 안 됩니다.

 그러면, 누가 말하기를 '이거는 내가 참 바람 불고 아주 추운 날 바다에 가  가지고 낚시로 이 흑돔을 낚아 가지고 왔는데' 우리 교회 그때 집사님, 있다가  딴데로 갔습니다. 자주, 가져오지 말라 해도 새까만 돔 이만한 걸 가서 낚아  가지고 와요. 낚아 가지고 와서, 꼭 낚아 가지고 오면 뭐 십일조라고 드리는지  가지고 와요. 이거 낚으러 이제 가지 말라고. 고기 낚는 거 그거 안 되니까 가지  말라고. 그래 이제 고기 낚는 걸, 낚으러 가는 걸 고쳤습니다. 안 갑니다. 아주  고기를 잘 낚아요, 영 아주.

 그러면, '내가 이렇게 힘들여 가지고 고기를 낚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내가  수고해 가지고서 얻은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라면서 그걸 팔아 먹을  때에 '이거 얼마요?' '얼마 주시오' 얼마에 달라 하면 '아, 안 하요.' '안  하기는 뭘 안 해? 얼마 주면 줄 일이지.' '아, 내것 가지고 내가 팔든지 말든지  당신이 무슨 상관있소? 사기 싫으면 말지.' '내것 가지고' 할 수 있다 말이오.

그 말 하는 고게 뭐이냐 하면 고게 도적질이 되는 말이라. '이거는 값이 헐하기  때문에 팔 수 없습니다.'. '왜 못 파요?' '이거는 내가 손해가기 때문에 못  파요.' 그런 말 암만 해도 괜찮습니다. '내것 가지고 팔든지 말든지' '내것'  하면은 벌써 죄가 됐다 말이오. 왜? '내가, 내가 잡아 가지고 왔는데 내것이지?'  '네가 가서 낚은 수고했고 시장으로 가지고 나오는 수고를 했고 기다리고 앉은  수고도 했고 했지마는 고기는 하나님께서 혼자 길러 놓으신 하나님의 것을 네가  아무 대가 내지 안하고 지금 가지고 왔으니까, 고기는 하나님의 것이요 너는  수고의 대가를 받는 것이지 네가 이 고기 값은 받으면 안 된다. 고기값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래야 이제 옳을 거라 말이오. 자꾸 자기가 고기 장사를  해도, 이거는 모두 인간들이 수고의 대가를 내가 받는 것이지. 잡은 어부의 또,  어부의 품삯 줘야 되지, 또 여기까지 싣고 온 품삯 줘야 되지, 또 이거 곽의 또  삯도 줘야 되지, 또 내가 기다리고 앉았는 내 또 품삯 줘야 되지, '이 품삯이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이 품삯이 얼마는 돼야 됩니다. 이 품삯을 얼마를  주십시오. 그리 안 하면 손해 갑니다. 이 고기는 하나님이. 우리 조물주  하나님께서 공으로 주신 것인데, 이 공으로 주신 것을 가져오는 데에 인간  노력의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품이 얼마입니다.' 이렇게 해야 사실이 옳다  말이오. 그 사람은 도적을 벗어난 사람이라.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주님이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인데 이것을 대가를 내야  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모든 주님의 것이니까 이거 대가를 내야 된다 그런데,  대가를 첫째적으로. 저기 저 뭐이지? 이름은 내가 잘 모른다. 요새 자주 안오데?  저 붉은 쉐타 입은 사람. 자기 말이오, 자기. 그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인데 대가를 내야 되는데 대가를 뭐로 내야 돼요? 그 남편 또 저 어디 와  앉았을 거다. 두 내외, 남편도 나왔지요, 오늘 아침에? 예? 나왔지? 와 대답  안해? 나왔어요? 예? 나왔지? 나왔는데, 그 남편은 보면 잠 안 들어요. 잘 안  졸아, 보면. 내가 퍼특 봐서 잘 안 보인다. 그런데 그 부인이 잘 믿는 것같이  떠들어 쌓는데 보면 예배보러 오면 졸기는 잘 존다. 졸면 안돼. 졸면, 졸면 가서  마귀 노릇 해요. 졸면 오늘 집에 가서, 아침에 집에 가서 마귀 노릇 하든지 그래  안 하면 좀 큰 마귀 노릇 할라 하면 교회 마귀 노릇 하든지 구역에 마귀 노릇  하든지 마귀 노릇 한다 그거요.

 대가를 내야 돼. 대가를 내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아, 주님. 이 모든 걸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계속 가지면 계속 그걸 대가를 내고 있는  거고. 감사하고 난 다음에 감사한 마음이 없이 그 모든 것을 취급하면은 대가  내지 안하고. 대가를 냈다가서 얼마 동안 내고 그걸 온전히 다 내지 안한 것이  된다 말이오.

 이런데, 감사함으로 이래 한다는 건 감사한다고 이래도,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해도 사람은 거짓되기 때문에 시원하지 안 하고 또 하나님이 보실 때 감사하는  아무 감사도 안 하면서 입으로만 감사한다는, 감사한 마음도 없으면서 이라기  때문에 감사하는 그 표시로 감사 헌금을 드려야 되겠다 그말이오.

 그런데 요번에 얼마 받았다 했지요? 돈 얼마 받았다 했지? 몰라? 잊어버렸어?  백만 원을 지금 받았다는 백만원에 대해서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백만 원에  십만원 십일조는 변동없이 십만 원을 드려야 돼요. 그러나 구십만 원에 대해서  지금 이제 감사하면 대가를 내는데 그거 다 없어지기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주님이 내게 주신 이거 참 선물이다. 은혜다.' 쓰면서 감사하고,  그것을 요긴하게 쓰면서 감사하는데 감사하는 표시로, 요새 돈 제일 작은 돈이  얼마입니까? 일 원입니까, 십 원입니까? 예? 일 원짜리 있습니까? 예? 일 원  없어졌어? 있제? 일 원짜리가 제일 작아. 일 원짜리도 좋아. '주님이여.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요 선물이기 때문에 내가 이 감사함의 표시로 돈  일원을 드립니다.' 돈 일 원을 드리면서라도 요 감사하는 표시로 돈 일 원을  드립니다. 그래도 주님은 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고 감사함으로 표시한 고걸  받기 때문에, 진정 일 원을 드리면서라도 감사하는 표시를 드려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마는 주님은 감사하는 고 감사의 질과 양을 주님은 다 보신다  말이오. 질과 양을 세밀히 보시오.

 만일 일 원을 드려도 질과 양이 주님 보시기에 고것이 온전해서 질과 양이 제일  좋고 제일 많을 수도 있고, 감사로 구십만 원 남은 걸 십만 원만 남구고 팔십만  원을 감사 헌금으로 다 이래 드렸다 할지라도, 드릴지라도 주님이 보실 때에  질과 양이 아무것도 아닌 허무할 수도 있다 그말이오. 어떻게 해서? 보시니까  '이놈, 네가 내게 드리면 너는 십만원 남겨 놓고 팔십만 원을 나한테 감사  헌금을 드리지마는 나한테 드리는게 아니고 감사 헌금을 팔십만 원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아' 사람에게 '그 사람이 감사 헌금 팔십만 원 드렸다' 이래 가지고서  명예 영광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너를 존귀히 여겨 줄, 너 위해서 이놈아  네가 팔십만 원을 드렸지, 내것 가지고 드렸지 나한테 감사함으로 내게  드렸느냐? 껍데기는 내게 드렸지마는 네가 속에 욕심과 소욕과 그 목적은 딴걸  위해 드리기 때문에, 네가 날 소경으로 아나 바보로 아나? 네가 날 이렇게  업신여기는구나. 어리석게 만홀히 여기는구나' 하나님은 만홀허 여기심을 받지  안합니다. 그거는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그러나 이거는 일 원을 드려도 진정 '주님이여, 액수는 얼마 안 됩니다. 주님이  액수를 보시지 않는 걸 압니다. 진정 이 모든 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감사하는 표로, 일 원을 감사하는 표로 당신에게 드리고,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없어질, 다 끝까지 다 없어질 때까지 내가 이것을 주님 앞에  주님이 주신 은혜인 것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이것을 내가 사용하겠습니다.' 하는  고 사람이 일 원을 드렸지마는 고것을 진정 주님이 주신 감사의 선물로 알고서  그것을 끝까지 감사함으로 그것을 다 취급할 수 있는 취급한다는 그걸 하나님은  볼 수 있다 말이오. 사람은 못 보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연보한 것보다도, 부자들도 연보하고. 많은 연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보하면은 그 연보궤가 어떻게, 통으로 크단하게 만들어  놨는데 사람이 거기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한 길 넘어서. 그라면 쏙 훅 던져요  이래. 갖다 훅 던지면 이래 덜컥 덜컥 떨어지고 이래해서 했는데, 모든 걸  그라는 걸 보고서 주님이 옆에, 연보궤 옆에 떡 서셨다가서 보신다 말이오.

인간은 못보지마는 주님은 보셔. '너희 모든 사람들이 드린 연보 그 전부보다 이  과부의 푼돈 드린 이 연보가 훨씬 크다' 이렇게 평가하셨다 말이오. 그거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그 속에 감사함이라든지. 또 십일조는 달리 드리고 했는데,  감사 연보라든지 뭐 드리는 그 종류에 대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주님은  그렇게 판단하셨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대개 사람들이 인색해 가지고서, 인색해서 연보의 규례를  지키지 못하는데, 그 인색을 벗어나기 위해서 감사 헌금을 드릴 때에는 일 원을  드리십시오. 일 원을 드리십시오. 일 원 드려도 좋습니다. 일 원 드려도 '내게  있는, 요번에, 이 달에는 장사 해 가지고서 총 결산을 보니까 이번에는 얼마가  수입이 됐는데, 이번에는 천만 원이 수입이 됐는데, 천만 원이 수입이 됐는데  이거는 참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고 마음을 진정 가지고  있으면서 감사함의 표시는 돈을 일 원짜리를 드립니다. 일 원짜리를. 일  원짜리를 '주님이여, 이 액수는 적지마는 진정 이 모든 것을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인 것을 내가 아는 표시로 일 원을 드립니다.' 그래도 진정 아는고 표시로 일  원을 드리면 고것으로써 주님은 족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액수 많고 적은 그거 가지고서 주의 일 하는 것 아닙니다. 그래  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차차 은혜를 주시니까 나중에 감사함을,  감사함으로 드려 보라 그말이오. 드려 보면. 드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  가지고 첫째는 자기에게 성신의 감화의 은혜를 주실 것이고, 진리의 깨달음의  은혜를 주실 것이고, 또 그리 함으로써 하나님깨서 복을 쌓을 곳이 없이 부어  주나 안 주나 하는 약속대로 또 복을 부어 주실 것이고 이라니까, 자기가 해  보니까 됐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성신의 감화가 나중에는 '아, 요거 일  원을 드릴게 아니라, 요라니까, 일 원을 드리니까 어짠지 내 마음에 좀  흐뭇하지를 못하다. 이러니까, 어라. 십 원을 드려 보자.' 또 십 원을 드리다가  나중에 차차 그라면 또 '이래도 허무하다. 아, 안 됐다.' 나중에 자기가 '어라.'  그러면 나중에 감사함으로써 십분지 구 있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거의 다 드릴  수도 있다 그 말이오, 그런 사람이 돼져요. 왜? 그거는 드려 보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약속이 이루어지니까.

 이래서 인색한 사람들이 이 돈의 액수에 제재를 받지 말고 액수에 제재를 받지  말고 어쩌든지 요 감사하는 마음, 감사함의 깨달음, 감사하는 요 표시, 요  표시를 해 보라 말이오. 요 표시를 해서 해요. 그거야, 돈 일 원이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일 원 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정 일 원짜리 구하기 어려우면 십  원이면 족하다 그말이오. 십 원이면 할 수 잇다 그말이오. 그 십 원으로써  그렇게 우리가 내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만 가질게 아니라 감사하는 표시를 한 번 두 번 이래해서  자꾸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것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감사하는 지식으로, 감사하는 의식, 이성, 이성 판단으로. 감사하는 요 일이  연습이 돼서 감사 하는 습관, 감사하는 천성이 되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요 본능이 되어지도록. 천성이 되어지도록  요렇게 잠꾸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인식하고 인식하고 인식하고 자꾸  인식하고, '이 내게 주신 거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쓰도록 하셨다.' 감사에  대해서 인식하고 인식하고 인식해서 고만 완전히 내게 주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인식이 돼지고 또 요것을 모두 다 사용할 때도 감사함으로  사용하고 여기에 대해서 감사한 표시도 하고 싶으면 하고 요렇게해서 감사하는  요 속성, 감사하는 요 인격성, 감사하는 자기의 인격성, 그 속성 요것을 자꾸  기르자 그말이오.

 이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에 대한 그 속성이 없습니다. 속성이 없어. 이제  주님은 원하시는 것은 뭘 원하시느냐? 고 제일 원하시는 것은 고런 속성을  길러서 고런 사람이 되기를 당신이 원하시고, 고 다음으로는 그런 사람 면이  만들어지는 고런 행둥을 하시는 것을 고것을 원하시고. 그 다음으로는 그 행동을  할 수 있는 고런 마음을 가지는 것을 당신이 원하셔서 하시는 것이지 물질이야  엿새동안에 다 만들었는데 문제가 뭐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분교 연보를 하는 데에도 그렇습니다. 요 성질 대로 해야  될 겁니다. 자기 마음에 그래 가지고는 흐믓지 않다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불쾌감을 가질 수 없으니, 감사함으로 드리고 기쁨으로 드려야 되니까 기쁨이  돼야 되니까 기쁨으로 드리는 거기에 대해서 자유로 하지마는 일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연보 내도 우리가 분교에 대해서도 참 과부의 엽전 두 푼이 있으면 일이  됩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것 가지고서 일하시지,  교만하고 이래 가지고 '이거 나는 부자라 많이 드린다' 하는 그런 썩고 더럽고  추잡한 그거 가지고는 드리기만 드렸지 하나님은 그거 가지고는 일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없는 가운 데에서 모든 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과부의  엽전 두 푼, 이 정성 이거, 이 믿음 이 정성을 가지고서 당신은 일을 하신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건축 연보에도 그렇고 모든 연보에도 참 과부의  엽전 두 푼이라는 고 마음, 마음, 정성 요것이 고 속에 들어 있어야만 합니다.

 요것이 감사하는 헌물 제사요. 감사하는 헌물. 이제 그라면 가다가서 또 그라면  한번 생각해 봅니다. '주님이여, 이 모든 걸 참 내게 주시니 감사 합니다.' 고걸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고걸 받으십니다. '감사합니다. 또 쓰면서 '아, 주님이  내게 주셔서 이렇게 내가 요긴하게 쓰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라는  가운데서 사람이 성화돼서, 그분의 것을 그분이 내게 주셔 가지고서 감사하며  쓰는데 죄 짓는데 쓸 수는 없다 그말이오. 그런 가운데 사람이 차차 차차 변화돼  나간다 말이오.

 그라다가, 감사함으로 니다가 또 마음애 시원치 않습니다. 감사, 자꾸 말로만  감사하고 마음으로만 감사하다 보니까 마음에 께끄름하이 시원치 않다 말이오.

감사하는 표시를 해야 되겠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단 십 원도  좋습니다. 내게 있는데 내가 감사하는 표로, 감사하는 표로. 십 원을 드려도  감사하는 표시를 하고 나니까, 내 입으로만 마음으로, 말로만 자꾸 이래,  마음으로 입으로만 한 그것보다 내가 십 원이라도 표시하니까 표시가 십 원이라  됐다 그말이오. 그게 표시가 아무 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제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제 마음이야 제가 보입니까? 이래 볼 수 있도록 됐다 그거요. 이래서,  이것을 우리가 자꾸 양성해 나가도록, 가꾸어 나가서 가꾸어 길러나가도록  이렇게 하고

 그러면, 인제 남은 것에 대해서 또 '머리를 떼서' 그랬다 말이오. '아 이거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술을 주셨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그것을  쓰고, 감사함으로 이거 쓰고. 감사함으로 그걸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께 드리고  나니까 남은게 있지 않습니까? 남은게 있습니다. 남은 것 가운데서 이거 머리를  떼서 바쳐야 되겠는데, 머리를 떼서 바쳐야 되겠는데, 이러니까, 내가 대학을  공부를 했는데. 대학을 공부를 했는데 졸업을 했으니까, 대학 졸업하고 이거  머리를 떼서 주님에게 바쳐야 될 터인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모두  취직하라 합니다. 이 취직 저 취직 하라 하니까 '내가 이 대학 공부한 것을  주님에게 제일 먼저 바쳐서 이렇게 섬겨야 될 터인데 내가 어디다가 바칠꼬?'  이라다가 자기가 '오늘은 뭘 목사님이 뭐, 뭐 쓰라든지 그래 안 하면 뭘 계산을  하라든지 뭘 그런데 혹 머리 떼서 바칠 데가 없는가?' 이래서 '목사님. 저 뭐 좀  할 것 없습니까? 시간이 좀 있으니까 심부름 시킬 거 있거든 심부름 좀  시키시이소.' 그래? 너 아무 그거 좀 계산 좀 해 봐라' 이러니까, 고거는 대학  졸업생이라야 고거 계산하지, 고 일은 대학 졸업자라야 계산하지 대학 졸업자가  아니면 고걸 못 할 일이라 말이오. '그러면, 네가 좀 그 일 좀 해라.' 속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내가 머리를 떼서 주님에게 바칠 수 있게 됐으니  감사합니다.' 자기 계산으로, 자기 계산으로 쓰는 데에 머리,  또 자기가 취직을 했습니다. 취직을 했으면, 취직을 했는데. 취직했으니  월급으로, 월급을 받았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월급에서 고걸 그라면 십일조를  떼. 감사를 떼, 거기다 머리를 떼야 되는데 고 나머지, 고라고 난 다음에  나머지기 있는 여기에서, 요거는 십일조도 뗐고 감사 헌금도 뗐고 요 남은  것이니까, 거기서 남은 것이 있습니다. 남은 것이 만일 월급 받아 가지고서 한  오만 원이 남았습니다.다 모두 이리저리 다 하고 나니까 오만 원이 남았든지  십만 원이 남았든지 백만 원이 남았든지 그 사람 자격에 따라, 백만 원이  남었어요 백만원 남았으면 백만원에서 '여기서 머리를 떼서 주님에게 바쳐야  되는데' 그 백만 원 가운데에서. 백만원 저금 통장에 딱 넣어 놨으면 백만 원  가운데 요 가운데 머리 떼서, 제일 처음에 인출을 십 원 해도 좋습니다. 십 원  해도 좋소. 머리 떼는 것은 양이 많다고 좋은게 아니라. 십원 해도 좋아요.

십원을 '내가 가지고 있는 요 나머지기 가운데는 제일, 제일 첫째로 내가  인츨하는 요 십 원 제일 첫째로 인출해 가지고 요걸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되겠다.'고 '하나님을 제일 먼저 섬겨야 되겠다. 제일 먼저 것을 하나님 섬겨야  되겠다'요 마음 가지고 하면은 십 원도 됐다 그거요.

 또 자기가 무슨 공부를 했는데. 어떤 사람이 피아노 공부를 했다 말이오.

피아노 공부를 했었는데, 피아노 공부 해 가지고서 '이거 자꾸 다른 데에.

머리를 떼서 주님께 바치지 못하고 고다음에 머리 아닌 꼬리를 떼서 바치게 될까  싶어 안 됐다. 이거 자꾸 꼬리 떼서 바치라고 이 마귀들은 자꾸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자꾸 이래 쌓는데 이제까지 공부해 가지고서 잘 하든지 못 하든지 머리를  하나님께 떼서 바치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겠는데' 이래서 머리 떼서  바칠라고서 하는 그런 사람들을 봤다 그말이오.

 자기가 자꾸 이래저래 아무나따나 여기에 저게 공부만 하지, 공부만 하다가,  예를 들면 피아노면 피아노 공부 하다가 이것도. 다른 사람이 이것도 시키니까  여계도 또 여기에도 쓰고 저게도 쓰고 양사방 쓰는 사람이 있고 공부만 하지,  '내가 이 사용은 주님에게 바치는 그건 제일 먼저 사용해야 되지 딴데는 사용 안  하겠다' 요렇게 딱 스톱을 하고서 하나님에게 먼저 바쳐 사용하려고 이렇게 하는  사람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게 뭐 아주 뭐 자격도 없지마는 그 마음을  가졌을 때에 주님이 기뻐하신다 말이오. '그래 너 피아노를 쳐라.' 피아노면  '피아노를 쳐라. 네 마음이 그런 머리 떼서 바치는, 머리를 자꾸 하나님에게  바치고 난 다음이라야 실수가 안 되지 잘못하면 머리 딴데 뺏기기 쉽겠다 싶어서  네가 그와 같이 하니 머리 떼서 바쳐라.' 허무해도 말이지요. 아주 허무해도  머리를 떼서 제일 처음에 거석할 때에, 도레미파솔, 뭐 도레미파도 모르고  말이지, 이래 해도 고 마음 가지고 할 때 주님은 만족히 여기시고 기뻐하신다  그말이오. 그거 천하에 막 있는 기술자 가지고 막 덩덩덩 해 대는 것보다  하나님은 고걸 원하십니다. 머리 떼서 바치는 요것을 우리가 고것을 익혀서 해야  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거 다 십일조을, 감자 농사를 짓습니다. 감자 농사들 지었는데  십일조를 이래 다 드리고 또 이제 감사 헌금으로 또 감사 연보로 뭘 이래 드렸다  말이오. 나머지기 남았다 그말이오. 나머지기 남았으니, 자기 생각대로요. '아,  머리 떼서 주님께 바쳐야 될 터이니까' 머리 떼는데 자기 게산대로 '아, 머리  세라? 내가' 머리 떼서, '내가 이래 보고 나 보는 데 제일 첫눈에 띄는 걸 내가  주님에게 바치겠다.' 첫눈에 띄는 거, 첫눈에 띄었는데 감자 새끼 똑 요만한게  눈에 띄었습니다. 요만한게 처음에 보였다 말이오. 요만한 게 보였어도 '내가  제일 처음에 내 눈에 띄는 거 내가 고걸 내가 주님에게 바치겠다. 요 똑  꿀밤만한 감자 요것이라도 요거 내 첫눈에 띄었다. 첫눈에 띄었기 때문에 요거  내가 요거 제일 첫눈에 띈 거 주님에게 바친다.' 요래서 바칠 때에 감자 아무 뜻  없이 여러 수천석 바치는 것보다 주님은 요것을 귀하게 보신다 말이오. 요걸  귀하게 보시고 당신이 일하신다 그거요  또 그 사람이 그 사람은 그렇지 안하고 '보자. 머리 떼서 바치라 하는데 여기에  어느 것이 제일 크나? 제일 큰 걸 주님에게 바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이래  보니까 이리 저리 하며 가려 보니까 '요것보다 여기에 크다. 요것보다 여기에  크다. 아, 보니 요거 같은 것 같으나? 어느 건가?' 자꾸 이래 가려 가지고  가리면서 '어느게 크노? 제일 큰 걸 주님께 바쳐야 될 터인데.' 그러니까 자기는  또 머리를 큰 걸 머리로 삼았다 말이오. 큰 걸 머리로 인식을 했다 말이오.

인식하기를. 자기 인식대로 그거는, 자기 주관대로 '큰 걸 하는데 여기에 크나  저게 크나?' 고렇게 가리면서 '요것 보다 여기에 크다.' 나중에 안 되면  '요거하고 똑 같은 거 같은데? 같은거 같은데? 그라면 요걸 달아 볼까?'  이라다가 '그래도 요거 같은 거 같은데 모양이 생기기를, 모양이 생기기를  여기에 모양이 잘 생겼다.' 거기에서 어쨌든지 자기로서 '여기에 제일이다'  고렇게 고거 제일로 주님을 섬겨야 될 줄 알고 고것을 선택하느라고 애를 써서  고래 해 가지고서 고걸 바칠 때에 주님은 고걸 받으신다 말이오. 고 감자라는고  감자를 받으시는게 아니라 감자를 받으시는 그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고 인격.

고 정성, 성의 고걸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모든 것이 다 이렇게 돼서 하는  고것이 십일조의 온전한 십일조요 또 헌물에 대해서 고것이 온전한 헌물이라  말이오.

 그러면, 요 오늘 아침에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이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사람입니다. 그러면 복을 쌓을 곳이 있나 없나 부어 준다  했습니다.

 요것만 하면, 뭐 이것만 하면 뭣을 인간에게 대한 것. 씨와 양식을 준다는,  씨와 양식 준다는 그것도 좋지마는 씨와 양식 그것도 지저분하이 사실은 그것은  다 새끼요. 씨와 양식 주는 거 그거는 새끼라 말이오. 새끼 연보, 씨와 양식  주는 거는 새끼 연보라. 새끼 연보고, 위의 이 다섯가지. 이 다섯 가지를 가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은 하나도 아낌 없이 막 주십니다. 막 줘  봤자 그 사람이 점점 잘됐으니까, 다른 사람 잘되지 하나님 영광 되지 나쁠게 뭐  있습니까? 이게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을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에 다 지었는데 그까짓 놈의 물질 까짓거 뭐 원할게 뭐이라? 요 인격을  원하고 요 성심 성의를 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생 동안 연보 생활 해도 한 번도 하나님에게 합당한 연보는  하지 못하고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상급 받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물질에 대한 액수만 보수 주십니다. 네가 하늘에 쌓아 뒀기 때문에 동록도  좀도 도적도 해하지 못한다 하니까 고대로 한 것은 뭐 거짓말로 했든지 명예로  했든지 어쨌든지 주의 복음에 바쳤으면 고 액수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갚으십니다. 갚지마는. 액수는 갚지마는 그 인격을 바친데 대가는 대가는 끝이  없고 한정이 없지마는 물질의 양을 바친 고 양에 대해서는 한정이 있습니다.

고걸 이 배 갚아주면 많이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이 배, 혹 일 배도 갚아 주고  당신이 그러면 배도 주실수 있고 여러 배도 주실수 있고 백 배도 주실 수  있으니까 배 만 줘도 대가는 됐다 말이오. 배를 줘도 한정이 있고 백 배를 줘도  한정이 있지마는 그의 인격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 성심성의를 받으셨을 때에  당신이 만족하는 거기에 대해서는 끝이 없어.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대가  주시는 것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시간이 됐는데. 요 온전한 십일조에 대해서 도적질이 되고  안 되는 것도 여러분들이 이래 세밀히 배웠고, 또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도  배워서, 요만치 알려 줘도 모르면 참 그는 하나님이 어둡게 해서 모르는 것이지  가르치지 안해 모든 거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요걸 깨닫고 요렇게 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창고에 들여' 창고는, 보이는 창고는 하나님의 회계의,  회계의 저금 통장 그런 것이 보이는 창고일 것이고 보이지 안 하는 창고는 어디  있습니까? 예? 보이지 않는 창고는 어디 있습니까? 하늘나라? 보이지 않는  창고는 어디 있습니까? 마음, 뭐 하늘은 어디 하늘? 마음이지. 우리  ○○○집사님 낙제했다. 보이지 않는 창고는 우리 마음이라고 했다 그말이오.

마음. 우리 마음은, 우리를 성전이라고 하지 안 했습니까?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이 양식은 누구 먹을 양식입니까?  하나님의 양식인데 하나님의 종들의 양식이오. 하나님의 종들의 양식은 껍데기요  실은 신령과 진정 그거는 하나님의 양식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양식. '있게  하고 이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예를 들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의 과실을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러니까, 이제 이것이. '내야 농사 안 짓는데 뭐 포도나무만 약속했지.' 다  기록할라면 온 세상이라도 쌓을 곳이 없으니까 포도나무 말했으니까 장사하는  것도 말했고, 떡국 장사도 말했고 우동 장사도 말했고 빵 장사도 말했고 회사도  말했고 다 말했다 말이오. 공부도 말했고 여기 다 들어 있어요.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다 말은 결실이 있다 말이오. 기한 전에 떨어진 거는  결실 못한 거 아닙니까? 네 하는 일이 결실이 없도록 하는 그 모든 방해를  제해서 모든 매사에 다 좋은 성과가 있도록 하겠다 그 말씀이라 말이오. 황충  제한다 말은 모든 방해하는 해하는 것들을 다 제하겠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요 하나라도 듣고 깨달아서, 깨달아서 요렇게 믿어 나가야 되지,  깨닫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여기에서면 잘 살 수 있는데 뭣 때문에 돈 때문에  어디 가고 어디 가고 뭐 그리 갈 사람이 뭐 있어?  우리 집의 아들 말이오, 어제 전화가 왔어요. ○○이 한데서 미국에서 전화가  와서 떡 말하며 '뭐 좀 봐서 안 되면 가겠습니다.' 이래 말해. '오지 마라' 내가  오지 마라 네가 오려면 예수 잘 믿으려면 오고 아예 예수 잘 못 믿어 눈에  거치려면 오지 마라. 내가 너거가 없으니까 내가 시원하다. 너거가 거기 가서야  예수를 잘 믿든지 말든지 그거는 그래 놓으니 '누가 잘 믿고 뉘도 잘 믿고 아주  열심히 잘 믿고 잘 믿고 어짜고', 이래 쌓아서 '잘 믿어도, 잘 믿어도,  ○○○목사님, 거기서 제 딴에는 잘 믿는다. 잘 믿는다 하지만 여기 와 가지고는  다 회개하고 거기 가서는 다 모두 고깃덩어리 귀신 놀음만 했다고 회개하고.

여기서 ○○○목사님 아주 회개를 많이 했다. 회개를 많이 해서 지금 모두 다  은혜가 있다 하고 인제 좀 있으면 부흥사 될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너거가  거기 가서, 그저 여기서 잘 믿으려면 오고 잘 안 믿으려면 오지 마라. 뭐 필요가  없다.' 내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냉정스럽게 하니까 또 웃으면서 '여기서 잘  믿습니다. 뭐 좀 있다 가겠습니다.' '아, 올 필요 없어. 잘 믿으려면 오고 그래  안 하면 오지 마.' 그래 내가 '너거 가거라. 여기 있어도 눈에 가시만 되고 뭐  새벽기도도 나오지 안하니 사람 자꾸 애만 쓰이고 그러니까 가라.' 내가  가라했어. 다른 사람은 생각하기를 '피난 보냈는가?' 피난 보낸 게 아니오. 만일  인민군이 오면 나한테 지금 인제 그게, 그게 있습니다. 예수 믿는 고난 보다도  '너 이놈 친미파로구나. 전부 자식들은 전부 미국 다 피난 다 시켜 놨구나' 이랄  거라 말이오. 그러면 그 고통 내가 당할 줄 알아요. 알아도 내가 양심에.

그것들이 여기에서는 도무지 예수를 믿지 안해. 어짠지 교회 일이라면, 교회하고  공연히, 교회는 저거를 이렇게 환영하고 이라는데 교회서 저거를 어떻게 하는가  이래 가지고, 교회하고 이래 가지고 교회하고 장 이래 떡 대립이 돼 가지고  있어. 그래 놓으니까 뭐 '교회는 전부 목사 아들은 꼼짝도 못 하게 끄떡하면  목사 목사 자꾸 이라니까 이렇다' 해 가지고 '아예 목사 아들 아닌 데로  가거라.' 그래 내가 쫓가 보내 버렸어. 피난 보낸 거 아니오. 예수 안 믿기  때문에, 거기 가서 좀 잘 믿어, 보니까. 간 것들은. 그래서 그랬는데.

 어쩌든지 이 계명 지키면. 여기에서, 엊저녁에 그 말 있었어. '여기서는 참  돈벌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라며 뭐, '뭐 어느 형도 지금 여기서는 중류  이상은 됩니다. 중류 이상이 됩니다. 또 어느 누구는 여기 제일 아주, 아주  고급이요 상류가 됩니다.' '암만 많아 봤자 하나님이 그까짓 거, 돈 가지고  사람이 사는 줄 아나? 또 돈 벌이로 말하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하나님이 주셔야  되지 안 주시면 안 되고, 또 돈벌이는 한국이 하기 쉽지 그런 나라는 다 움푹  짐푹한게 없고 한국은 움푹 짐푹하기 때문에 지혜롭게만 날뛰면 지금  일확천금이나 횡재수를 많이 닥칠 수 있지만 거기에는 그런게 없다.' 그라면서  내가 좀, 인제 그 사람들은 별명이 있어요. 내가 하도 전파할 때. '너거는  돼지라. 돼지. 도야지. 도야지.' 내가 그 별명을 도야지, '야. 도야지들 너거 뭐  다 편하나?' 내가 도야지로, 이름은 도야지로 그렇게 지었습니다. 도야지.

'너거는 물질 보고, 물질 보고 세상 보고 너거 간 거 아니냐?' 이랬는데,  어쩌든지 어디서든지 여기에서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막 뭐 퍼부어집니다. 한번  해 보시오. '한번 시험해 봐라.'  오늘 아침에 가르친 대로 요대로 십일조, 헌물 요걸 요대로 해 봐요. 하나님께  대한 다섯 가지를 요래 해 봐요. 되는가 안 되는가 해 봐요. 그만 사업하다가  꺼꾸러진 사람, 뭐 부도 나도 좋아요. 부도가 나도 좋고 망해도 좋고 아무것  없어도 좋아요. 우리 아버지 대주재가 계시는데 문제가 뭐이요? 요대로  여러분들이 해 보라 말이오, 해 봐. 되는가 안 되는가. '나를 시험해 봐라' 해  봐요, 되는가 안 되는가. 이런데 이 진실하신 거짓말 안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 말은 안 듣고 이 엉뚱한 다른 말만 자꾸 듣고 이래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36 하나님, 진리 사람을 위하는 생애/ 고린도후서 5장 15절/ 1984. 7.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5 하나님과 3가지 기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4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비결/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1989. 6. 4. 남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1
533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20. 수저녁 선지자 2016.01.01
532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18. 월새벽 선지자 2016.01.01
531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3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1. 6. 20.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52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20절/ 1981. 6. 19.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28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9. 28.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 하나님과 동행/ 말라기 3장 10절-12절/ 1984. 10. 31.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6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3장 15절/ 1981. 5.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25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19.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24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32절/ 1984. 11. 2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23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2. 1. 29.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22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2. 4.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21 하나님과 동행/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 4. 16.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5. 7.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6장 9절-12절/ 1988. 4. 1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8 하나님과 동행 열 가지/ 창세기 5장 1 절-32절/ 1984. 11.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17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유다서 1장 5절 상반절/ 1981. 5. 27. 수저녁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