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1984. 11. 19. 월새벽

 

본문 : 창세기 5장 21절∼24절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 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 세을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요새 시편 136편 말씀을 늘 계속했는데 그 말씀을 얼마나 계속 해야 될런지. 참  끝없는 말씀인데 그것만 계속하다 보면 다른 것을 못 하게 될 것이고, 이래서,  그 1절을 해석했는데, 거기 제일 중요한 뜻은 각종의 은혜를 기록하기를 스물  여섯 가지를 기록했는데 스물 여섯 가지가 스물 여섯 가지뿐만 아니고 스물 여섯  종류이기 때문에 그 한 종류에 그 가지수가 뭐 그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하나일  수도 있고 열일 수도 있고 백일 수도 있고 얼마든지 그 숫자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만일 자기 구원을 바로 이루고저 하면 마귀란 놈이 주는 그런 방편을  쓰지 말고, 마귀가 주는 방편은 어떤 것이 마귀가 주는 방편인고 하니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를 행복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방편을 줘서 그 방편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게 하는 것이 마귀가 주는 방편입니다.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부모들도 '내가 이 자녀보다는 앞서 죽을 터이니까  이것을 세상에다가 두고 가야 되지, 또 내가 나이가 차차 많아지면 그렇게  활동이 많이 제재를 받기 때문에 같이 동역. 같이 일하고 같이 다니지를 못하게  되지 이러니까 인정 없고 사정 없는 이 세상에다가 이것들을 남겨둬야 되니까  어짜든지 실력 대결로 그저 모든 인간 대 인간으로 이렇게 경쟁하고 투쟁할 때에  지지 안하고 승리하도록 이렇게 해야 되겠다' 이래서, 그만 마귀 감화를 받아서  날 때부터 부모네들은 그 마음 가지고 있고 뱃속에 배 가지고도 그 마음 가지고  있고 또 나고 난 다음에도 어릴 때 부터 이래 가지고 뭐 유치원에 보낸다 뭐  어데 보낸다 이래 또 보내 가지고, 또 국민학교 들어가면 그저 쉬지 못하게 자지  못하게 이래 가자고 어짜든지 공부를 많이 해 가지고서 그 실력을 길러야 된다  이라는거 그라면 그만 그 아이가 처음에는 주일학교에 잘 나오다가 국민학교  들어가니까 사람은 유한하니 그리 그 심신을 기울일려 하니까 자연히 믿는데  등한히 되고 벌써 국민학교 한 사오학년급이 되면 언제 그랄 여가, 주일 잘  지키지 못하고 그저 형식으로 혹 부모의 신앙이 좀 낫다 하면은 오전 예배 나  참석하고 나머지기 주일날 새벽부터 일어나 가지고 공부하고 또 오후 종일  공부하고 이래 가지고 주일을 범하지, 뭐 주일을 범해도 공부만 하면 된다 해  가지고 주일 범하지, 그라고 난 다음에 새벽 기도 나올라 하면 또 안 되니까  새벽 기도 나가지 말고 공부해야 된다. 공부는 밤에 늦게까지라도 하고 늦게까지  했으니까 이거 또 새벽에 깨워 가지고 하기가 안 됐다 이래 가지고서 그 전부  에미 애비가 들어서 자녀를 다 죽입니다. 다 죽여요.

 뭐 그리 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자녀에 대해서 그거 공부 못  하구로 자꾸 이렇게 했지마는 차차 차차 커지니까 나중에 뭐 생사를 걸어 놓고서  공부 안 하면 뭐 죽느니 사느니 이라기 때문에 하게 되고, 또 그것을 슬슬  양보한 것이 고만 그렇게 돼 가지고서 공부하는 그런 데는 주력해도 신앙에  대해서는 등한히 했습니다. 공부한다고 딴데 외처에 가 가지고 있으니까 감독할  수 없고 또 이래 가지고 신앙을 다 팔아 버렸어.

 그래서, 공부를 해서 내가 실력을 가져야 아무래도 나를 행복되게 할 수 있다.

또 내가 기술을 배워 가지고 있어야 나를 실력있게 할 수 있다. 또 내가 한 푼  두 푼 모아 가지고서 자금을 가지고 있어야 내가 행복되게 할 수 있다. 이래  가지고서 전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들이 어짜든지 자기가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는 그런 백방의 노력을 합니다.

 또 어떤 자는 그것도 타락 중에는 괜찮은데, 타락 중에는 부지런히 등골에  차도록 일할라 하니까 괜찮은데, 어떤 자들은 그것도 하지 안하고 그저 어짜든지  평안하고 좋고 수윌한 고것만 택해 가지고서 '뭐 그까짓 거 많이 있으면 뭐  하노? 올라가면 뭐 하노? 어짜든지 평안하게만 살자.' 이래 가지고 안일주의로  이렇게 빠져서 행락만 처하고 있는 그런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어쨌든지 요한제시 18장에 말씀하신 대로 인간들이 자기 수단 방법을  다 해 가지고서 자기만을 기쁘게, 자기만을 좋게, 자기 유익되게, 자기  고귀하게, 자기를 행복되게, 누구보다도 자기를 유익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지라도 자기를 유익되게 하려는 요것만으로 가득찬 것이 인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것을 모조리 쓸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넣어 버립니다. 아무리  택한 자라도 고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 가지마는 고 정신 고 마음 고  행동 가지고 한 것은 전부 다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려들어 갑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면 무엇을 요구하시느냐? 하나님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당신이  아니면 나를 행복되게 할 이가 없고 당신이 아니면 나를 보호할 이도 없고, 또  당신이 아니면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실 이도 없고, 당신이 아니면 나를 바로  인도할 이가 없습니다. 당신이라야 됩니다. 내가 나를 복되게 하는 것은  당신만이 할 수 있지 아무도 할 수 없다 요렇게 생각 하는 사람들을 만들라고,  하나님이 요 사람, 요런 사람들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모든 것을 보존 관리하시고, 또 예수님이  양성 일위 되셔 가지고 대속까지 하시고 우리 천한 죄인들에게 성령과 진리를  주셔 가지고서 성령으로 살아나고 진리로 살아나게 하셨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로 이 두 가지 은혜를 받도록 예수님이 큰, 참 그 공로를 설정하는  데에, 그 공로를 설정하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이 들었는데 그 공로를 설정해  가지고 우리에게 그 구원을 끼쳐 주신 것입니다.

 이랬는데,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은 안 듣습니다. 배암의 말 마귀  말은 잘 듣는데 하나님 말씀은 안 들어. 제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행동을 하고  보니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떨어지면 마귀 접촉했다 하는 그걸 알아야 될  터인데, 제가 뭣을 무슨 일을 하고 보니까 하나님께 대한 간절이나 열심이나  소망이 식어지더라 하면 고것이 마귀 일입니다. 마귀 일이기 때문에 고때 고것을  중단해야 되고, 또 아무 책을 읽으니까 하나님에게 대한 믿음이나 소망이나 그  열심이 식어진다 고러면고 책 속에 마귀가 들었다 말이오. 마귀인 줄 알고 그걸  버려야 되겠고, 또 어떤 부모나 형제나 뭐 친구나 어떤 자를 만나니까 내게  믿음이 식어진다 하는 고거면 친구가 아니라 고것이 마귀요 다른 말로 말하면  악한 동무인데,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손해케 한다고 이런 것인데, 이걸  느끼고도 이거는 도무지 상관 없고 아무리 속아도 상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딱  받아 가지고 그래 하는 그것이 그 사람 자체가 마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는 고것이 망하는  제일호의 제일호의 망하는 길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는 고것이 제  일호 멸망하는 것이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볼 때에 '저게  왜 저게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가?' 돈 때문에 걸어가면 그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더 많이 주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돈 때문에. 돈 때문에 그래 되면 그  사람은 돈이 없어져야 되겠고, 그 사람은 건강하기 때문에 그리 되면 건강이  없어져야 되겠고, 그 사람은 아무 자기에게 지장되는게 없으니까 그런 행동을  자꾸 하니까 그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거리끼는 지장되는 일이 있어야 되겠고,  자꾸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이래 이래 해 가지고 한 가지 두 가지  해서 모은 것이 인간들이 용납하지 못하게 멸망을 받게 되는 그 결과가 마련되는  것이 그것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짓을 우리가 다 버려야 됩니다. 버리고, 어짜든지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행복될 뿐 아니라 다음으로는 자기와 제일 가까운 자가 행복돼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조금 먼 자가 행복돼야 되겠고, 모두 다 행복돼야 되지마는 사람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행복되기를 구합니다. 행복되기를 구한다고 해서  사람이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다 된다면 사람이 전능자지 뭐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저 원리적으로 되는 것인데 안 되는 것이 가끔 가다가 있기는 있다 할지라도  그건 또 다른 이유가 있고 다른 각도로 또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다른 각도로  또 하나님이 만드시는 일이 있기 때문에 뭣이 뭐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 그  말이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보면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뭐인고 하니 할 일은 에녹과 같이, 여기에  창세기 5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되어 있는데, 그  사람들 한 일이 뭐이냐 하면은, 날마다 살고, 날마다 살고, 먹고 살고 입고 살고  또 재미로 살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또 그라고 또 하나한 거 뭐 있는가? 하나  하고 있는 것은 자녀 낳는 거, 자녀 낳는 거. 다시 말하면 부부 생활이라  말입니다. 그저 부부 생활 또 사는 거 요거 두 가지 하다가 다 죽어 버렸습니다.

다 죽었어.

 두 가지 하다가 다 죽었는데, 에녹은 보면 그 두 가지 안했느냐? 에녹도  살았오. 에녹도 사는 거 하고 에녹도 또 자녀 낳는 일 하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일 에녹이 하나 한 거 있어.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일 에녹이  하나 하는 거 있어. 그래 다른 사람 안 하는 거 하나한 것은 뭐이냐?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어. 하나님과 동행하면 서도 먹고 살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자녀 낳았습니다. 가정 생활 부부 생활 다 했다 그거요.

그러면서 하나님과 동행했어.

 이러니까 우리 할 일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제일 가치 있는 일이요  그것만이 알속 있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 버렸는데 에녹은 안 죽었어,  이것은 뭣을 보이는 것이냐? 인간 생활이 다 죽는 것이다. 뭐 자녀 낳아도 죽고  자녀를 많이 낳아도 죽고 위대한 자녀를 낳아도 죽고, 그거 가지고는 사는  데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거는, 그거 가지고는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또  아무리 모든 것을 구비하게 해 가지고서 산다 할지라도 그거 가지고는 사람을  살리지를 못한다. 죽을 때 되면 다 죽고 망해지고 만다. 다만 사람들이 죽음을  면하고 사는 그 길은 하나뿐이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거 하나뿐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면은 사는 것도 안 살고 자녀도 안 낳고 결혼도 안  하고 그래야 되느냐? 그거 다 하고 하나님과 동행한다. 그러면, 에녹이 다른  것은 그런 것을 다 하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런 것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일을 했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과 에녹과 다른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 달랐고, 또 뭐이 달랐느냐? 다른 사람은 죽었는데 에녹은 죽지  안한 것만 달랐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외에는 다 죽고 망하는  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 안 죽고 영생하는 길이다 이것을 보여  줬습니다.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에녹을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이 예정대로 해가지고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하도록 요렇게 하셨는데, 이것을 마귀란 놈이  달리 오용하도록 해 가지고서 '에녹과 같이 안 죽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 안  죽고 영접할 수가 있다.' 죽기가 그리 아니라도 싫어서, 죽기 싫어서 죽인다  하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하는데, 죽기가 싫어서 죽인다 하면은 무슨 일이든지 다  하는데, 이런데 안 죽는다는 이거 말을 하니까 얼마든지 좋아하겠습니까?  이러니까, '네가 안 죽고 천국 갈 수가 있으니까, 안 죽고 홀연히 변화해  가지고. 봐라. 천국가지 않느냐?' 예수님의 재림 때에 홀연히 변화해 가지고  천국간다고 이라니까 그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인지 모르니까, 예수님 승천 후  벌써 그때부터. 승천 후 그때부터 '오늘 재림 하실는지 내일 오실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그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 올지 모르니까 기다리고 있으라  하니까 그때 사람들부터 '주님은 오늘 올지 내일 올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사람이 안 죽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 이것은 그때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마귀란 놈이.

 이러니까, 지금 벌써 근 이천 년 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지 안했습니까? 다  죽었지마는 그때에 사는 사람들은 다 속았다 그 말이오. '아, 오늘 올지 내일  올지 모르니까 안 죽고 주님 영접 할 수 있다.' 안 죽고 영접할 수 있다 하니까,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모든 일에 마귀란 놈이 시키는 대로 죽인다고만 하면  뭐이든지 다 합니다. 뭐 신사 참배도 죽인다 하면 신사 참배 다 하고, 단군  신사에도 죽인다 하면 단군 신사 참배 다 할 것이고, 죽인다 하면 주일 다 범할  것이고, 여기에도 뭐 죽인다 하면. 새벽 기도 나가면 죽인다 했으면 새벽 기도  여기 나올 사람이 몇 사람이 있을란지 모른다 그거요.

 이렇게 죽기를 싫어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 자들에게 안 죽고 천국 가는 길  있다 하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사람들을 그리 몰아넣어서 '안  죽고 천국 가는 길이 있다. 이러니까 안 죽고 갈라면은 이리 오너라. 이  천년성에 가면은 안 죽고 간다. 또 안식교 오면 안 죽고 간다.' 안식교에도  십사만 사천 인 안 죽고 천국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늘 구원 있고 땅 구원  있는데 하늘 구원은 이거는 참 얻기가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안식일을 다  지켜야 하늘 구원이 있고 안식일 안 지키는 사람은 땅 구원은 있지만 하늘  구원은 없다 이랍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꼬울라 하는 것이 뭐 백 가지 천 가지도 넘고.

성경 번역을 해 가지고 꼬우고 찬송가를 만들어 가지고 꼬우고 또 거짓말을  만들어 가지고 꼬우고 이래서 꼬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여우는, 여우는 그게 작으나 크나 항상 그놈이 썩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썩은 것만 자꾸 코를 맡아 가지고 썩은 것만 찾습니다. 그 모양으로  사람도 여우 새끼는, 자꾸 소는 앞으로만 보고 달아나는데 여우 새끼는 빼꼼빼꼼  뒤를 돌아보면서 조금 권면하면 하루 아침 하나님을 향해서 가다가서 또 세상  돌아보고 조금 또 며칠 새벽 기도 나오다가 그만 세상 돌아보고 요래 가지고서  꼭 여우 새끼로 요래, 고거는 썩은 것만 좋아 한다 그거요. 썩은 것만 좋아해서,  어디든지 죄 지을 거, 어데든지 하나님 노여워하실 거. 자기 믿음 떨어질 거,  믿음 떨어지는 고런 동무만 고런 친구만 좋아서 졸졸 찾아 다닙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여우 새끼라 그게 불택자인지도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믿는다고 다 택자가 아니라, 교회에 나와도 다 택자가 아니고  불택자를 마귀란 놈이 보내 가지고서 '봐라. 이래 믿어도 잘 된다. 죄를 지어도  잘되는 것은 불택자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것은 사사로운 아들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저래 믿어도 잘되는데' '나 봐라. 이래 믿어도  잘되는 거 봐라. 나와 같이 믿어라'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 보고 믿는데, 택자는  안 됩니다. 징계가 없는 것은 사사로운 아들이요 참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잘못하면 징계 있고 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동행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이 보면 안다 그 말이오. 당장에 하루 이틀에는 나타나지  안하지마는 벌써 십 년이나 이십 년을 보면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벌써 이삼십  년을 지나면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는 가. 안 하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오. 모든 걸 알 수가 있어요. 이러니까, 자기가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렇게 어짜든지 자기를 은혜되도록 할라고 애를 안 쓰고  마귀가 가르치는 그런 유혹만 자꾸 받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에녹이 안 죽고 갔으니까 요것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안  죽었다' 요것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한 요것뿐이가 고 내용의 뜻이요 딴거는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안 죽는다.' 지금도 동행하면 안  죽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동행한 그 마음의 기능도 안 죽습니다. 몸의  기능도 안 죽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다 안 죽고 다 마음의 기능은 벌써  세상 뜰 때에 하늘나라로 갔고 몸의 기능은 묻혀 가지고 있다가서 예수님 재림  때에는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몸이 죽는 것은 시간의 제한받는, 늙으면 쭈글쭈글해지고  시들어지고 하는 이 혈육을, 혈육의 몸을 신령한 몸으로 바꾸어 가지기 위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지 택자들이 죽는 것은 죽기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바꿔 입기 위해서. 바꿔 입을 때에 몸뚱이만 바꾸어서 신령한 몸으로 바꾸고  기능은 그 사람이 신령한 기능으로 살아나지를 못한 사람 있고 이라기 때문에  부활은 꼭 같지마는 그 실력은 천인 만인이 각각 다릅니다. 땅 위에서 산 대로.

동행을 많이 했으면 기능이 많고 동행을 적게 했으면 기능이 적고. 동행을  한번도 안 했으면 기능이 하나도 없고 이렇게 해서 다르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런 유혹을 받지 말고, 지금 이런 데는 유혹이 적습니다. 우리  교회는 유혹이 적은 셈입니다. 적은 셈인 것은 다른 것이, 범접을 못해서 그런  것이 있고, 또 다른데 외제를 접하지 안해 가지고서 그런 거 있고, 또 이미  교리나 신조적으로는 바르고 옳게 배운게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저항하게  되기 때문에 그 유혹이 적고, 이러나. 여러분들이 눈을 떠 가지고서 우리 국내에  있는 교파도 많은데 교파나 교회나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한번 돌아 볼 필요도  있습니다. 쭉 한번 순행해 불 필요도 있습니다. '보자. 어떤가 보자' 이래  가지고서 그 교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그런 것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또 다른데 집회 가는 그런 것도 또 가 가지고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가는 것이 좀 안 됐는 이유는 뭐가 있느냐 하면은 이것이 땅의 것을  차지하지 못하고 땅의 것을 버리고 하늘의 것을 취하라고 자꾸 이렇게  강조하는데, 거기에 가니까 땅의 것을 말해 주니까 달콤한게 좋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땅의 것을 원하는 자는 그런데 가면은 귀가 버쩍버쩍 열리는 것이 참  재미가 있고 좋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자가 탈이지.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온  세상을 다 알면 좋습니다. '지혜는 배암같이 하고' 그 말은 마귀의 하는 술책을  전부 다 알아야 된다 말이오. 다 아는데, 행동은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행동해야  되고, 나는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되고 지혜는 배암같이 해야 됩니다.

 그런고로, 그런 유혹을 다 벗어나서 우리가 이겨야 되지 이기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뭐이냐? 요것뿐이라 오늘 아침에. 따라랍시다.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과 동행! 동행하면서 오만 거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하나님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이오. 그러면, 잊어 버리지 안하고 뭘 '하나님 하나님' 이라고 있을랍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그저 '주님 주님' 이라고 있는 것도 좋지마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어떻게 동행을 했던가? 동행한 것은 명상으로 동행했고 기도로  동행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는 꼭 눈 감고 해야 기도가 되는게 아니라 눈뜨고  기도해도 된다 그 말이오. 눈뜨고 기도 해도 돼.

 여기 부자되는 방법 여기 다 있어. 요대로만 하면 잠깐 삼 년이면 부자 돼요.

삼 년이면 큰 부자는 안 돼도 그만 자기가 올라서. 이런데 어리석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뭐이 될라고 하지 안하고 제가 뭐 뭣을 할라 하는 통에 다 망하고 만다  말이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안 오도록 하나님이 딱 버텨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골만 빠지지. 그저 뭐 거기에 따른 모든 젊은 이스라엘이 있기 때문에,  애굽에서 나온 그 이스라엘을 죽여 버리면 광야에서 난 그 이스라엘.고 새움으로  난 거 요것들이 먹고 살지 못할 터이니까 고것을 보호자로서 이렇게 뒀지,  이라니까. 보면 부모네들은 신앙 없어도 자녀들은 신앙 있어. 그러니까 자녀  신앙 있는 고것을 기르기 위해서 비용이나 대라고 해 가지고서 그렇게 부모들을  살려두고 이런 거 저런 거해서 죽자껏 믿음도 지키지도 안하고 이라는 그거,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 먹여나 살려 가지고서 하는 거 그것 때문에 그걸  내비둔다 그 말이오. 참 눈을 환하게 열고 보면 그런 것을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기도로  그라면 뭐 어떻게 동행할 건가? 그저 자기가 뭐 사건 있는 거 '주님 이것을  어째야 됩니까? 이 일은 이런데 이거는 뭐입니까?' 묻기도 하고 '이거 뭐입니까?  이거 어짠 겁니까?'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안하지마는 우리의 속의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다 살피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벌써 우릿 생각이 없어도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질 것이다 하는 이런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인데 우리가 생각을  가졌으면, 벌써 그거는 당신에게 벌써 꽉 박혀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또 말을 하고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면 뜻이나 마음을 가졌으면 벌써  당신에게는 그것이 우리 사람같이 겨우 들리는게 아니라, 들리는게 아니라  그분에게, 그분은 얼마나 비유컨대 컴퓨터를 얼마나 많이 가졌던지 우리의 말한  거 생각한 거 고것이 당신에게 딱딱 박혀 가지고 있다 말이오. 말한 거 다 박혀  가지고 있어.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저 '주님' 길을 가면서도, 길 가며 '주님이여, 넘어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여기 또 악한 자를 만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또 실수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눈으로 내가, 눈으로 마귀가 들어오지 않게 하시고 또 이 귀로  죄악이 들어오지 앉게 해 주옵소서. 이 모든 거 있으니까 이 음식의 미혹을 받지  말게 해 주옵소서.' 뭐 중얼중얼 자꾸 주님하고 의논할 것이 얼마든지 있다  그거요. '이거는 뭣입니까? 이걸 알려 주십시오, 이것이 내게 신앙에 유익이 될  겁니까, 해가 될 겁니까?' 이렇게 했으면 주님이 반드시 그 마음을 진정 가지고  했을 때에는 뻐뜩뻐뜩 당신이 들어서 해하게 된다는 거는 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또 '그것을 해 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옵소서. 유익되게 해  주옵소서' 하면 벌써 유익 되게 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렇게 우리가  당신과 교제할 때에 그 반응이 번개같이 빠릅니다. 바뜩바뜩 해.

 이러니까, '이거는 뭐입니까? 이거는 있어야 됩니까? 이거는 이거 없도록 해  주옵소서. 이걸 방해해 주옵소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미혹받지 않게 해  주옵소서.' 또 뭣을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길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꾸 중얼거려요. 예를 들면 말이지. 중얼거려. '길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님을 사모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죄 짓지  않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뭐 자꾸 거짓말일랑 하지 말고, 거짓말일랑 하지 말고 다 말해.

그러면 그것이 공연한 말인가? 실은 주님이 그렇게 하고 계셨다 그 말이오.

그런데 감사할 걸 아무리 그래 해도 우리가 감사할 걸 다 못 합니다. 감사할 걸  감사하고, 또 의논할 것을 '의논하고, '아, 주님. 이거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거  용서해 주옵소서' 그라면 뻐뜩 당신이 사하셨다 그 말이오. '용서해 주옵소서.

또 뭐 이것은 주님이 해 주셔야 되겠는데 이것 해 주옵소서. 이거 내가 모르니까  알려 주옵소서. 이 성경을 해석을 못 하는데 이걸 알게 해 주옵소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자꾸 그저 하루 잠들기 전에는 자꾸 그 말을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잠들기 전에는 이렇게 주님을 쉴새 없이.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님에게 대해서 자꾸 부를 때에는  주님이 놓고 떠나지를 못하시는 주님이신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고, 돈 보고 있으니까. 주님이 그렇게 느린 주님인 줄 압니까?  저는 돈 보고 있으니까 주님이 '그래 돈을 얼마나 보고 올래? 내가 앉았지'  쭉박지고 앉아 있으시는 하나님인 줄 압니까? 아니오. '돈 봐? 그러면 너는 돈  봐라. 나는 또 내 볼 일 있다.' 가 버립니다.

 이러니까, 주님과 행동은 뭐이냐? 주님을 놓지 안해야 주님과 동행이 되는  것이지, 그분이 생명이요, 그분이 전지전능이요, 그분이 만유의 대주 재시오,  그분에게 모든게 다 있는데, 그분만 있으면 다 있는데. 그분을 붙들고 그분과  동행하면 뭐 원수가 문제이며 아무것도 문제가 없는데. 그 분과 동행할라 하면은  그저 그분과 꼭 계속 대화를 하든지 서로 상관을 하든지 뭐 손을 잡았든지  잡아야 되는데 그분을 손을 잡을라 해도, 내가 손을 잡을라 해도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과 뜻과 행동이 그분과  동행하는 일을 해야 된다 말이오. '주님이여' 나 이거 지금 이 일 하는데 주님이  동행해 주시옵소서. 여기서 잘못되는 것이 없도록 지켜 주옵소서. 지켜 달라  하니까, 구하라 주시마 했기 때문에 지켜 달라 하면 또 꼼짝 못 한다 그 말이오.

주님을 꼼짝 못 하게 떠나지 못하게 요렇게 잡을 수가 있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우리의 심령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라도 이 세상으로 더불어 주님 잊어 버리고 그리  돌아가면은 주님은 '너는 너니까 또 나는 나 볼 일 봐야 되겠다' 하고서 가  버려. 그만 떨구어 버렸어. 또 그 주님에게 거리끼는 일 엉뚱한 일을 합니다.

주님에게 거리끼는 주님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일,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

주님의 법칙에 맞지 않는 일,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에 위반된 일, 주님이  요구하시는 요구에 위반된 일 주님이 부탁한 일에 대해서 위반된 거, 주님이  주신 거 잘못 사용하는 거 이런 거 다 삐뚤어졌는데 그 삐뚤어진 거 뭐입니까?  삐뚤어진게 뭐이지요? 삐뚤어진게 죄라 그 말이오 삐뚤어진게 죄 그게 죄라.

죄가 별것이 죄가 아니라 삐뚤어진 거는 다 죄입니다.

 그러면, 내게 삐뚤어진게 있을 때에 주님은 뭐와 같다 했지요? 뭐와 같다 했어?  저 뒤에 여반들 한번 더러 말해 봐요. 뭐와 같다 했어요? 남반 저 OOO 집사, 뭐?  뭐? 고 말만 했어? 그래. 노루와 사슴과 같다 했어.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하나 뻐뜩 나타났으면 고만 노루와 사슴 같애. 고만 하나님은 달아나 버립니다.

당신의 비위에 맞지 안하는 것이 우리의 언행 심사에 하나만 았으면 주님은  노루와 사슴같이 그만, 그만 달아나 버려요. 그만 달아나. 어디까지 달아나  버려요. 이라니까, OOO목사님이 주님하고 동행하다가 고만 딴것 버뜩 생각하다  보니까 그만 주님이 간 곳이 없어. 생각하기는 딱 뻐뜩 생각해서 주님 잊어  버렸는데 잊어 버린 주님을 찾을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이래 가지고서 그  주님을 찾을라고 그냥 안 되니까 산골로 가고 밥도 굶고 이래 가지고 겨우 찾아  가지고서 같이 이래 동행하다가서 그만 딴거 뻐뜩 생각해 놓으면 그만 주님을  잊어 버렸어, 이래서, 주님은 자기와 같이 동행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벌써 벌써  당신의 비위에 틀려서 나는 어만 엉뚱한 짓 하고 있으니까 달아나셔서 주님을  잊어 버렸다. 또 주님을 잊어 버렸다고 이래서 잊어 버려서 죽자 살자 하고  찾을라고서 금식도 하고 산으로 가고 내나 애를 썼는데, 어데 갔는고 찾다  보니까 내나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더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계시다니? 달아났는데 함께 계신다? 자기에게 그러면 어떻게 주님이  계셨습니까?  어떤 성녀가 말하기를 '내가' 자기가 참 미혼으로 일생 동안 혼인하지 안하고  주님과 결혼하고 다시는 인간 결혼 하지 안하고 지낸 여성도입니다. 여성도인데  그 여성도가 자기가 갑자기 결혼할 생각이 나서. 그런 마음이 일어나서 이  마음을 없앨라고 해도 어떻게 그 마음이 없어지지 안해서 그래 그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땅가시라고, 여러분들은 땅가시를 보지 못했겠는데 땅가시라고 있는  것은 땅에 쏵 깔려서 땅가시 밭이 나면은 땅에 빈데 없이 쫙, 찔레나무,  찔레나무 같운 가시가 있는데, 땅에 딱 깔려 가지고 요만치씩 큰 거는 그만 땅에  확 깔리는데 그 가시가 아주 강합니다. 가시가 자꾸 총총총 있으니까 바늘과  같애요. 땅가시 밭에 가 가지고서 막 두굴두굴 구불렀다 말이오. 두굴두굴  구불고 이라니까 온 전신에 피가 나고 이라니까. 아픈 것도 없소. 아픈 것도  없이 그 불 같은 정욕의 생각이 마구 불같이 일어나는데 그 땅가시에 구불러도  그게 멈추지 안해. 한참 구불고 나니까 고만 아픈 생각만 있고서 그런 정욕의  생각이 하나도 없어졌다 말이오. 없어서 그래 유혈이 낭자가 돼 가지고서 이래  나와서 앉아서, 앉아서, 앉아서, 앉았으니까. 나와서 앉으니까 주님이 자기 곁에  있어. 주님이 자기 곁에 있었다 말이오.

 자기 곁에 있어서 '아, 주님. 어데 가지고 날 버려 두셔서 내가 그 음신에게  끌려 가지고서 큰 곤욕을 당하고 이랬었는데 주님 어디 갔습니까? 왜 나를  버리시고 가십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말하기를 '내가 간게 아니라 네 옆에  있었다. 네가 땅가시밭에 들어가서 구불게 되는 것이 내가 구불게해서 구불렀지  네게 그렇게 그 죄악을 이기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네  곁에 있었다' 그래 말씀하더라고.

 그것을 체험한 그 신앙이 지금으로부터, 지금으로부터 한 백 년 이내입니다.

이런데, 우리 한국 교회에서 그것을 체험하면서 그 신령한 주님으로 더불어  교제한 것을 자기 전기에 나타낸 사람이 OOO목사님뿐이라. 다른 목사님들은 말한  것이 신령한 면에서 멀어졌고. 그저 법칙으로 이렇게 사귀었지 참 신령하게  사귀지를 못했기 때문에 신령한 무슨 신비한 그런 능력은 나타나지를 별로이  못했었어요. OOO 목사님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분은 이적적으로  동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거기에서만 멸망이 없고, 거기에서만 멸망이  없고 거기에서만 죄가 없고 거기에서만 바로 옳게 살 수 있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동행이 뭐이냐? 자꾸 중얼거려요. 거짓말로 그라면 안 되고. 고걸  자꾸 눈이 열리게 되면 '아, 요것도 주님이 해 주셨구나. 아, 참 귀하다.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접근했다. 주님이 자기 속으로 주님이 자기와 동행하는 것을  자기가 알 것이고 또 나중에 주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역사하는 걸 자기가  환하게 볼 수 있고, 또 자기는 주님의 이 능력 품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자기가  또 체험 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랬어. 보리라. 너희들이 보리라  하는, 확실히 볼 수 있으리라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땅에 있는 다른 것을 사모할 여가가 없어, 사모하면 그 틈에  주님 잊어 버립니다. 그저 주님 사모하고 주님의 대속을 주님의 십자가에서 날  대형, 대행, 대화친해서 생명 주신 주님의 대속을 내가 생각하고, 또 성신의  감화를 내가 받을라고 생각하고,  성신의 감화가 별게 아닙니다. 성신의 감화가 별게 아니오. 성경을 보고 싶은  것이 성신의 감화요, 성경대로 살고 싶은 그것이 성신의 감화요, 또 성경에  깨달아지는 것이 그것이 성신의 감화요, 또 성경 말씀대로, 말씀을 어겨서 달리  행할라고 할 때에 그거 행하면 안 된다고 하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요, 성신의  감화가 뭐 딴데 있는게 아니라. 별게 아닙니다. 그 감과 한 그 감화 그분이  누굽니까? 그분이 전지자요 전능자요 그분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성령이 만물을 창조했고 성자가 만물을 창조했고 성부가 만물을  창조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은 어떤 비유에 그 사람이 신학자인데, 비유하기를,  성부는, 성부는 나무로 비하면 나무 둥치 뿌리이고, 성부는 뿌리이고, 성자는  나무둥치이고, 성령은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라 고렇게 비하는 게, 고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고것이 망하는 길. 그러면 차이 있는 것 아닙니까? 이래서,  고렇게 고것이 지금 정통 신학에서 정통 신학자들이 삼위일체를 비유할 때에  나무 뿌리와 줄기와 가지 잎사귀로 요렇게 비유하는 것이 고것이 비유인데  고것이 틀렸어. 고게 틀렸습니다.

 또, 어떤 비유는 말하기를 태양으로 비유해 가지고서 태양 자체는 성부 요 또  거기에 따뜻하게 하는 것은 성자요 거기에 환한 빛이 와 가지고서 보게 하는  태양은 하나인데 세 가지로 역할한다 그렇게 한 비유 고거는 조금 낫습니다.

그래도 고 자체와 요렇게 비유하는 고것은 고 단일체로서 그 세 가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 면은 나무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하기를 그렇게 말해요, 삼위일체를. 한 사람이, 한 사람이,  내나 한 사람인데, 누가 있다가 말하기를, '이게 누구냐?' '우리 남편이라.' 또  하나가 있다가 말하기를 '아니, 우리 아버지라' 이래 말합니다. 또 '이 집의  호주가 누구요?' 그라니까 또 '내라' 이랍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호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나타났으나 자기 직책의 그 모든 위가 다른 것이지, 이거는  남편의 위를 가졌고 호주의 위를 가졌고 아버지의 위를 가졌고 위만 가진 것이지  내나 한 분은 한 분이라 말이오. 그런 걸로 비유했는데, 그것도 뭐 또 흠이 있지  다 흠 없는 그런 비유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이 연습을 해야 될 것입니다. 동행하는  데는, 그러면, 주님에게 첫째는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할 것,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할 것. 또 주님으로 더불어 이제 내가 받은 것을 감사할 것. 또 무엇이  잘못된 거 있으면 자복할 것. 또 내게 뭐 부족한게 있으면 간구 할 것. 그런데,  이로써 주님과 동행하고, 또 주님의 세 가지고 대속을 생각하며 '아, 주님이 나  위해서 내 형벌을 대신 받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또 동행했지. 또 '주님이 내  형벌을 대신 받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자꾸 그 말만 해도 주님이 떠나지는  못해요. 주님이 떠나지는 못해. 또 '주님이 내가 못 행하는 것을 대신 행했지요.

주님이 내가 못 행하는 것을 대신 행하셨어. 이것도 주님이 대신 행해  주셨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 내가 할 것을,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요구를 전부 다 능히 다 다 대신 행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자꾸  이것을 생각하는 데에는 '말하거나 말 거나 나는 간다' 그렇게 안 하시요. 못  하신다 그 말이오. 또 대행의 주님으로서 그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뭐 세  시간이고 동행할 수도 있지 또 주님이 원수된 것을 내 대신 화친을 주어서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됐지, 자존자가 내 아버지 됐지, 만유의 대주재가 내 아버지  됐지, 또 만유의 대주재가 나의 남편 됐지, 만유의 대주재가 나의 머리가 됐지,  만유의 대주재가 나를 통솔하려고 통솔하시는 왕이 됐지, 이러니까 또 그  주님으로 자꾸 이래 부릅니다. 이렇게 또 부르면 상당히 시간이 가고, 또 자기가  뭐 찾아 가지고서 '아, 이거 주님이 해 주셨다.' 감사하고, 또 자복하고. 또  간구하고, 모든 사정을 도고하고, 이러면은, 이라다가 보면 그만 가.

 그라면서, 농사 지으며 그 말 하고, 장사하며 그 말 그거 하고, 자꾸 팔면서도  속으로 자꾸 주님 생각하면서 사고 팔 수가 있다 말이오. 고만 주님 잊어 버리고  가 버리면 주님은 떠나 버렸어. 주님과 거석하면서 '주님이여, 이 물건' '이  물건이 얼마입니까?' 그라면서 '주님, 나와 같이 계시고 죄 짓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라면서 부탁하고 '나 지금 물건 팝니다. 물건 팔 때 실족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라면 물건 팔고 그라면 나도 모르게 정직하게 하고 진실되게  하고 그 사람이 볼 때에 빛이 비취고, '아, 이 사람은 이거 참 진실한  사람이로구나. 물건을 여기 와 사야 되겠구나.' 또 거기서 말 한 마디 나온 것이  행동한 것이 다 틀린 것이 없어. 이러니까 자꾸 되는 줄 모르게 일이 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는 것은 그 분위기야 여러 수천 방면에서 이래  하기 때문에 어데서 어찌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마치 암만 난로 피우고  그래도 봄이 오면은 뜨뜻하이 모두, 봄이 오면은 온기가 안 들어간 공이 없어.

안 들어간 구멍이 없어. 그러니까 깊은 구멍에서도 다 있는 얼음도 다 녹아  버리고 거기에서도 새움이 터 올라온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는 광범하게 하시기 때문에, 하나로 하지 안하고 광범하게 하시기 때문에  원수가 하나님이 돕는 사람은 해할래야 해할 수 없습니다. 제까짓 눈에  보여야지? 하나님이 돕는 사람의 그 돕는 길은 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이오.

보이지 안하니까 얼마든지 도울 수 있고 방해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 동행하는 거, 그저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하라는 것은, 감사할라 하면은 뭐 감사가 계속 해야 되지,  또 보니까 이것도 감사 저것도 감사 그 감사를 한 시간하고 끝낼게 없어. 감사를  계속해야 되겠다 그 말이오. 감사를 계속해야 되겠어. 이러니까 감사가 끝날  시간이 없어 이러니까, 그 말은 하나님과 동행하라 그 말이오. 그러면 못 할게  없어. 전부 다 있어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요걸 해결지워야 돼요. '이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뭐이 된다, 또 무슨 조건이 있어야 된다. 또 뭣이 구비해야 된다.' 그까짓 거 다  아무 필요 없어. 다 필요 없어. 하나님이 그런 것을 엿새 동안에 다 지은  것이니까 당신과 같이 하시면 그까짓 거 문제가 뭣인가? 다 있지.

 그러니까, 제일 지혜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일자무식이든지 유식가든지 제일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제일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누구냐?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행복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성공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사에 승리를 하겠다,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걸 다 하겠다 하는 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요 사람을 기뻐하시고.

하나님 한 분으로 되지마는 요것만은 없으면 안 된다 하는 고것이 자기를 망치는  것이고 고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요 멸망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결혼할 때도 이 세상 그런 자격을 보지 말라 그 말이오. 용모  잘나면 그까짓 거 뭐 할 것이오? 건강하면 뭣 할 것이오? 기술 있으면 뭐 할  것이오? 유식하면 뭐 할 것이오? 하나님을 얼마나 동행해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이 얼마나 되느냐 고것이 진짜의 실력이니까 고거 보고 하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공연히, 전부 대학 졸업 말은 것은 좋을라고 졸업 맡았는데 시집을  못 가요. 대학 졸업 맡은 거는 시집을 못 가. 갈라 해도 갈 데가 있어야지? 못  간다 그 말이오. 못 가는데, 그게 가리다 가리다 대학 졸업 한데 갈라 하니까  어떻게 상대자가 없어서 골탕을 먹고 가리는데. '골탕 먹고 가리면 그놈이 또  엉크리기를 어떻게 잘 엉크리는지 그놈에게 종 되어 가지고 그놈 비워 맞출라고  일생 동안 죽자껏 발발발 떨면서 예수 비위보다도 그놈 비위 맞추어야 돼.

예수님 말보다 그놈 말 들어야 돼. 이렇게 하다가서 나중에 늙어 죽을 때 보니까  그까짓 거 아무것도. 그것도 송장되는 것, 그것도 죽으니까 그만 되는 거. 그거  복종해 가지고 해 봐야 아무것도 소용 없는 거. 그렇다고 부자가 됩니까?  대학생들이 결혼해 가지고서 나중에 비참한 것입니다.

 내가 그때 여기 처음에 와 가지고서 여기에 대심방 갈 때 따라갔는데,  OOO구역이오. OOO 권사님은 그거 잊어 버렸습니까? 저 위에, 제일위에, 제일위의  집 제일 불쌍하고 가련하고 들어가지 못하는 집 있는데, 그 집이 여자는 뭐 OO  대학 나왔다던가 그렇고 전부 대학 졸업생이라. 결혼 할 때는 그렇츰  행복됐지마는 제일 아마 부산 시내에서 비참하게 살아요. 비참하게

 여러분들, 어리석게 가치 아닌 것을 가치로 삼지를 마십시오. 가치를 참 가치를  가치로 삼고 참 권능을 권능으로 삼고 참 지혜를 지혜로 삼아야 되는 것인데,  이거는 거석하고 마귀 말은 잘 듣고 하나님 말씀은 잘 안 듣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기에 권사님들을 내가 기를 때에, 권사님들 아직 안 되고 집사된  사람들도 기를 때에 내가 금족령을 내렸이, 금족령. '서로 집사들 집사들끼리  만나지 마라.' 그때 권찰이라. '권찰 권찰들끼리 만나지 말아라.' 이래  놓으니까, 못 만나구로 하니까 날 모르게 숨어서, 숨어서 만났는데, 그까짓 거  뭐 가지고 가는 것도 있고 접시에 조그매 가지고 가는 거, 요 서너 내끼 되는  것인데 요걸 치마꼬리 속에다가 딱 넣어 가지고 요래 가지고 가다가서 내가 딱  보면 고만 이걸 이래 가지고 있는데 그래 내가 그렇게 했어. '거기 뭣 가지고가?  뭣 가지고가?' 할 수 없이 그걸 내 놓는다 말이오. '어데가?' 썩 웃으면서 어디  간다고. '와 가지 말라 하는데 가? 죽을라고 가?' 가면 죽습니다. 저거끼리  만나면 죽어.

 여러분들, 어제 그 말씀을 뜻밖에, 나 어데 말 들은게 아니오. 하나님이 내게  말하게해서 말한 것이지 내가 들은 것 아니라. 요새 지금 반사 반사끼리 만나  가지고 죽이는 일이 있는 모양이라. 권찰 권찰끼리 만나 가지고 죽이는 일이  있는 모양이라. 장로 장로끼리 만나 가지고 죽이는 일이 있는 모양이라. 집사  집사끼리 만나 가지고 죽이는 일이 있는 모양이라. 목사 목사끼리도 만나면  죽입니다.

 저 대티 고개에 기도실 그거짓느라고, 참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었는데. 그거  도무지 지을 수 없는데 다 권능으로 지었습니다. 거기에 뭐 돌 한 덩이도 포개  놓지 못하게 하는데 기도실 큰 것을 둘을 짓고 이층으로 지어 가지고 그래 지은  거 다 권능으로 지었어. 그거 도무지 지을 수 없는 것인데, 그때는 지금과  달라요. 어데 있으면 그만 기동대인가 뭐 가 가지고 그만 당장 두드려 부숴  버려.

 이런데 그 짓는 것이 기적적으로 지었는데, 짓고 난 다음에 그 뒤에 목사들이  가서 모여 가지고서, 안 된 목사 하나 그 속에 들어 있어 가지고서, 모여 가지고  저거끼리 숙덕숙덕 하면서 하나님 기뻐하지 안하는 일 만날 그런 공모만 해  가지고서,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의논 한 거, 의논한 거 뒤에 조사 해 가지고  들어 보면 전부 죽을 의논만 했지 살 의논은 하나도 안 됐다 말이오. 그래 내가  말을 그래 했습니다. '이 기도실은 하나님이 뜯는다.' 그 말 나오기 전에  '뜯는다. 왜? 뜯는 이유는 너희들이 여기 모여 가지고 죄만 짓고 이라니까  하나님이 뜯지 놔 두겠느냐?' 그라고 난 다음에 참 얼마 있다가서 이 기도실  모두 다 이런 거 뜯는다 이랄 때에, 그때 뜯는다 하니까 그것을 기별을 나한테  했어. 목장의 OOO집사가 나 한테 '아이구, 기도실을 뜯는다고 합니다.' '나는  상관이 없어, 나는 그 기도실에 상관이 없어. 그 기도실을 뜯는 건 기도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그 분들에게 전달을 해.' 그분들에게 전달해 그분들이 그걸 못  뜯구로 할라고 애를 쓰고 이라니까, 또 '누구에게 가서 운동하자. 누구에게 가서  운동하자' '어짜든지 하는 대로 해 가지고서 해 봐.' '나는 내가 뭐 기도실  뜯으라고 운동하는 사람은 아니고 동참하는 것같이 하지마는 나는 그 기도실  뜯는데 상관이 없어. 그러나 내 마음으로 볼 때 하나님은 그것을, 그것을  뜯으신다. 뜯으신다.' 쏵 뜯어서 하나도 없애 버렸습니다. 뜯는다 해도 나는 가  보지도 안하고 뜯는 것도 보지도 안하고 뜯을라 하는데 돌아 보지도 안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세밀히 계십니다. 당장 안 갚지 안하는 하나님이시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하나님은 세밀하십니다.

 이러니까, 그저, OOO 교회를 제가 살릴 때에 어떻게 살렸느냐 하면은  집사들끼리 만나면 서로 죽이요. 그저 숙덕숙덕 해 가지고서 아무 것이가 이렇다  저렇다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말 물음이 나오고 이래 가지고 서로 죽여.

그래서 그걸 못 만나게 했다 말이오. 못 만나게 했는데 한 달에 내가 한 번씩  올라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떡 올라가면은 올라가 가지고서 부릅니다. 누굴  누굴 불러 가지고 '왜 너 이 행동 했어? 이 행동 했어?' 그때, 그때는 내가  그것을 불러 가지고 낱낱이 그만 직면적으로 책망을 했습니다. 이라면 그  사람들이 자복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알고 말하는데? 이라니까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라, 그때는 전화가 없을 때요. 이러니까, '아마 아무것이가 이거 편지를  했는가 보다' 이래 가지고 모두 '아무것이가 내게 대해서 고자질했다  고자질했다' 서로 또 고자질했다고 한꺼번에 야단이 났었소. 나중에, 저는 다른  사람. 고자질했다고 했지마는서 또, 했다고 했지마는 다른 사람이 절  고자질했다고 이라는데 자기는 정말 고자질 안했거든? 안 했으니까 이것이 얼마  동안 지나가니까 '야 이거 고자질 한게 아니라 그 조사님이 안 들어도  아시는구나. 안 보고도 아시는구나.'  내 안 들어도 알고 안 봐도 압니다. 여러분들, 그거 아는 비결이 쉬워. 사람  알면 돼요. 자, 개가 두 마리 모였으면 무슨 소리 나겠소? 개가 두 마리  모였으면 개 소리 하지 딴 소리 뭐 했겠소? 닭이 두 마리면 뭐 닭소리지 딴거  했겠소? 저 집사 저 집사 둘이 만났으면 무슨 말했을 거라 환하게 다 안다 그  말이오. 그 사람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가. '귀인이면 귀언이라'  '귀인이면 귀언이라' 그 사람이면 그 말한다, 그게 통계가 다 돼 가지고 있어.

뭐 저거끼리 만나면 무슨 말, '저 사람들이 만나서 무슨 말 했을 것이다 무슨  놀음 했을 거다' 환하게 다 안다 그거요. 이러니까, 사람을 아니까 알지. 나중에  그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때 무조건 복종을 해 가지고 고때의 집사들은 참  아주 잘 만들어서 간추려졌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는 OOO교회는 든든하게 만들어 놨으니까 문제 없다 이래  가지고 모두 교역자 쓰지 못할 교역자들은 전부 OOO 교회로 보냈습니다. 보내  가지고서, 거기 보내면, 거기 보내서 말이 있기를 OOO교회는 교역자 양성소라  그랬습니다. 이래도 자꾸 보내서 되고 했지마는 나중에 오래 동안 내가 안 가고  하니까 OOO 교회가 그만 들통이 나 버렸다 말이오. 가지는 안하고 자꾸 쓰지  못할, 교역자들이 가 가지고서 이거 자꾸 저기서 만들어 내니까 그 사람들이  그만 교회가 안 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그 뒤에 많은 타격을 받았는데  지금도 그 OOO교회가 그때의 그 어려움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OO교회도. 내가 그 교회를 '이 OO교회는 문제가 없으니까 OO교회는 그저 되지  못한 교역자들 보내 가지고 교역자 만드는 곳이라' 해 가지고 OO교회를  보내는데, OO교회도 간 사람마다 교역자가 돼 가지고 나오기는 나오는데 교회가  절단이 났어요. 교회가 어떻게 빈약했는데, 그렇츰 빈약했는데 OOO조사님이 가  가지고서 조금 그 교회를 조금 일으켰어요. 조금 힘을 일으켜서 회복을 조금  했습니다. 회복하고, 요새 OOO목사님이 가 가지고서 요새 뭐 조금 부흥이  일어난다 그렇게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센트루이즈 교회를 그 교회에서 편지가 왔어요. '우리는  이제 교역자 양성하는 교회 안 될랍니다.' 우리 집의 아이들이 다 있기 때문에.

'OOO교회가 교역자 양성하다가 다 망하지 안했습니까?' 그OOO 교회는 저거가  세웠기 때문에. 그거 우리집 아이들이 세웠어요. '다 망하지 안했습니까? 또  OO교회도 그라다 보니까 다 그렇게 쇠퇴되지 안했습니까?' 센트루이스 교회도  자꾸 교역자가 없어서 자꾸 신학생만, 유학생만 보내 가지고서 자꾸 하고 가고  하고 가고 이라면 안 되니까 '이제 학생 받기 싫습니다.' 하도 학생 받기  싫다고서 항거를 해서 이번에는 학생은 가 있으나 할 수 없어서 학생 아닌 사람,  공부 안 하기로 약속하고 OOO목사님이 가 가지고 있는데 요새는 교회가 조금 잘  된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가 죽겠느냐 어떻게 하면 내가 살겠느냐?  자기가 죽을 곳은 자기가 피해야 되고 자기 구원은 자기가 해야 되고 자기  행복은 자기가 만들어야 된다 말이오. 자기 행복을 자기가 만든다는 말을  오해한다 말이오. 자기가 자기 행복을 만들 수 없어. 자기가 자기 행복을 만드는  것은 행복을 만드시는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를 행복을 만들어  주실수 있도록 해야 된다 말이오. 주님이 어떻게 행복을 만드는가? 내 하는  행동이 주님에게 감화 감동이 돼야 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님이 진노하는  말 하는데 어떻게 안 망하겠어?  내가 여기에 어떤 청년, O집사님에게 내가 말했어. 말하기를, 'O 집사야 그런  일이 있는데 왜 망하구로 내비두느냐? 그 둘이 만나서 들썽거리면 그거 저거가  뻔한 일인데 자꾸 죄만 짓고 이러면 망할 터인데 그라고 있느냐?' 그라니까  '나도 그걸 알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나중에 쏵 망했어. 쏵 뿌리까지 쏵 망했어  뿌리만 뽑힌게 아니라 뿌리 뽑히고 열매 없는 가을나무라. 죽고 또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가 됐어. 망하고 망했으니까 일어설 수가  없게 돼 가지고 있다 그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나는 괜찮은데 둘이 만나니까  서로 죽였다 말이오. OOO선생, 알아요? 짐작하겠어? 짐작하겠어? 짐작해? 네, 알  수 있어. 다 보면 알 수 있어 아는 눈은 다 알아요.

 이러니까, 장로하고 장로 둘이 만나면 반드시 서로 죽입니다. 만나면, '만나면  이런말 저런 말 했을 것이라' 그 사람을 알기 때문에. 이러니까, 그게 살아날  여가가 없이 자꾸 그리 되는 버릇 하는 것은 살아나지 못해. 그걸 아주 이제 '나  죽는 그거다' 하고 뚝 잡아 떼 버리고 오래 동안 이라면은 차차 차차 의의  습관이 되고 죄의 악습, 죄의 악습이 없어지고 또 악성이 차차 차차 곯아 빠져  가지고 그놈이 쫓겨나가고 이래 돼 가지고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새 주일학교가 조금 일어나는데 반사들이 왜 힘을 못 쓰느냐?  반사들, 젊은 반사들, 이제 자반사들, 분반돼 가지고 된 자반사들은 힘을 내  가지고 하는데 죽은게 어떤게 죽었느냐? 모반사가 죽었다 말이오. 이제 모반사를  좀 한번 치켜 올리면서 '모반사들 힘을 쓰십시오' 이랬는데, 안 들으면 모반사  그런 거 다 계명시킬 거야. '모반사 너는 반사 하지 마라. 반사 하지 말고 네가  가 가지고서 마귀 노름을 얼마를 하든지 한번 해 봐라.' 하나님이 치도록 내버려  둘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모 반사를 좀 힘을 쓰라고 이래 하니까 모반사들이  힘을 써서 일어나지 안하고 모반사가 '아이구, 우리가 모반사이니까 우리에게  주일학교는 좌우 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께 좌우 있지, 모반사 그런 거  하나도 없어도 막대기로써도 하나님의 일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손해보지 안해요 '백 목사 아니면 안 된다' 아니, 백 목사 아니면 저 벽돌  덩어리를 가지고라도 백 목사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런 자인 줄 알기 때문에 제가 귀중히 쓰였으면 감사하고 그렇게 할  일이 '나 아니면 뭐 안 되겠다' 하면은 벌써 저는 망하는 데에서 가지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놓지 맙시다.

 오늘 아침에는 좀많이 나왔는데, 이제 더 뒤에도 차고 이 예배 볼 때와 꼭 같이  차야 안 뒈진다 그 말이오. 안 죽어! 하나님 외에 우리를 복되게 할 자가 없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요. 이러니까, 사업을 못 해도 저녁으로 일찍 자고  새벽에 다 새벽 기도에 다 나와요. 아예 새벽 기도 빼면은 별써 죄 짓는 줄 알고  망할 줄 아십시오. 새벽 기도를 빼기까지 귀중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이 들어서  자기 죽입니다. '새벽 기도를 못 나와도 이거는 주일을 못 지켜도 이것은' 하면  고것이 들어서 벌써 자기를 망치는 암병과 같은 그런 마목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기도해요. 오늘 아침에 뭐 다른 기도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과 동행을  기도하고 이제 다음으로 새벽 기도 빠지지 않고 나오겠다 하는 고것을 결심해.

그라고 나오다 늦으면 당황하지 말고 함부래 전기 밥솥 사요 전기 밥솥 사고, 또  시간 조절하는 거 있어. 딱 이래 놓고 꽂아 놓고서 '내일 새벽 네시 반쯤 되거든  불이 탁 켜지게 해 주옵소서' 하는 고거 지금 만들어 냈는데, 고게 과학이라.

문화라. 고거 만들었으니까 고거 딱 끼워 놓으면은 세시 반에 켜라 하면 세시  반, 네시에 켜라 하면 네시, 자기는 누워 자면서도 내일은 두시에 밥을 해야  되겠다 하면은 고거 딱 꽂아 가지고 두 시에 딱 틀어 놓으면 자기는 누워자도  두시 되면 불이 탁 켜져 가지고 밥이 돼진다 그거요. 이래 가지고 다 그래 놨지,  반찬도 다 그래. 가니까 밥 반찬 다 돼 가지고 있으니까 얼마 조금 손 봐  가지고서 고만 이렇게 하면은 주부 노릇 다 감당할 수가 있지 않겠소? 또, 뭐라  하더라? 식모를 뭐라 하지? 가정부, 가정부 노릇을 다 할 수가 있지. 다 할 수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제 연구를 자꾸 해 가지고 새벽 기도 다 나오고 또 산에 기도 가고  오만 거 다 하고 예수 믿는 거 다 하고 세상 것도 해 가지고서 복도 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지혜와 능력 주면 다 돼요.

 그런고로,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그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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