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1988. 4. 10. 주일오후

 

본문 : 창세기 6장 9절-12절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죄가 없는 데도 죄를 범하는 일이 하늘나라에서 생겨졌지마는 땅에는 하늘의  죄가 내려와 가지고 땅까지 범죄케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노아의 때는 땅에 죄악이 가득 찼다 이랬습니다. 그때에 온 땅에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완패해지고 또 포악해지고 이래서 죄악이 땅에 가득 찼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요한계시 18장에는 보면은 죄가 하늘까지 관영한다 그렇게  했습니다.

 죄악이 없는 데서도 죄가 생겨지려니와 더욱 죄가 있는 데는 죄인되기  쉽습니다. 죄가 있는 데는 죄인되기 쉽고 또 죄가, 땅은 이 모든 세상을 말하는  것인데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으면 더욱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 죄가  하늘까지 관영했다 하는 말씀은 죄악이 교회 안에까지 관영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라면, 노아 때보다 예수님 재림을 앞두고는 죄악이 옛날로 생각도 못 할 만치  그렇게 죄악이 가득 차게 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죄가 점점 관영해지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살기가 심히 힘듭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하는 이  말씀은 죄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망이 오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세상에도 가득 찼고 교회 안에도 죄가 가득 차니 이세상은 사망  아래에 파묻힐 수밖에 없고 또 하나님의 심판이 오지 안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노아의 때에 죄악이 관영해서 그 죄에 물들지 안하고 깨끗하게 살기가  어려워서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전부 다 죄악에 감염돼 가지고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재림 때는 더욱이 죄악이 관영해서, 관영이라 말은  가득 찼다 말입니다. 찰 영(盈)자입니다. 죄악이 가득 차서 뭐 빈틈이 없이 이  세상은 의례히 그러하고 또 교회 안에도 그러하니 이 죄에 물들지 않는 것과 또  죄에 감염되지 않는 것, 죄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전에도 하나님의 동행으로서만 영생을 우리가 마련할 수가 있고  하나님과 동행으로만 심판을 통과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으로만이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동행에 대해서는 세 분 있는데 우리들도 하나님과 동행할라면  할 수 있는 방편이나 그런 자원은 넉넉히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어떤 죄악이 관영한 세상, 환경, 주위,  그 현실이라도 관영한 죄악에 물들지 아니하고 다 영생이 되도록 또 하나님  심판에 걸릴 것을 하나도 범하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그런  방편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들에게는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하나님의 생명록에서 제명을 안 당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어린 양의 생명책에서 제 명 당하지 안하는 일도, 하나님의 심판에  그리스도의 심판에 걸리지 아니하는 것도, 또 다 영생이 되는 것도 이 세 가지는  순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만 되는 것을 오전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이렇게 동행하지 안하면 동행이 안 된 그 시간은 다 죽은  시간이요 그 행동은 다 죽은 행동인데 하나님과 동행이라 하는 것이 가능하냐?  사데 교회에 가능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받은 그 은혜는 잊어버리지 말고 항상  받은 그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로 살고 또 들은 것은 네가 지키고 또 잘못되면  회개하고 자꾸 이렇게 계속해서 지킬라고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흰옷  입고 같이 다닐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소망하는 것이 뭐 땅에 무슨 세상 사람이 소망하는 거와  같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참  영생을 소망하고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아무 정죄 받을 것이 없는 그  깨끗한 사람과 깨끗한 행위와 깨끗한 소유를 가지는 자가 될라고 우리가 애를  쓰고 예수님의 생명록에서 흐리지 안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아노라고  주님이 인정해 주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총 목적과 소원을 이루는 데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여기 9절  이하에도 보면 ‘노아의 사적이 이러하니 노아는 의인이요’ 노아는 의인이라.

노아가 어떻게 돼서 이렇게 의인이 됐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의인이  됐던가? 또 ‘당시에 완전한 자라’ ‘그 당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노아는  완전한 사람이라’  노아가 완, 전한 사람이 됐고 노아가 의인이 됐는데 그 당시 땅에는 죄악이  관영하고 뭐 심지어 혈육을 가진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 전부 다 강퍅해졌다  이랬습니다. 사람만이 아니고. 강퍅해지고 악독해지면 심지어 사람에게 따른  짐승까지도 다 그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죄악이 관영한 속에서도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칭찬을 하시고 또  완전한 자라고 이렇게 칭찬하신 이 방편이 뭐인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우리가 힘쓰는 이 방편으로서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완전자가 될 수가 있고 또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제명당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대해서 오전에  간단하게 조금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우리 중생된 영은 언제나 하나님이 안에 계시고 또  하나님이 중생된 영을 다 품고 계시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하나님 밖에도  나오지도 못하고 또 하나님도 중생된 자 안에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염려할 것도 없고  중생된 영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는  언제든지 온전하고 깨끗해서 하나님 앞에 완전자라 의인이라 인정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다만 우리의 이 마음과 몸이라는 이 심신이 항상 죄 아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이하에는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나 몸은 죄로 인해서 아직도  죽어 있다. 법적으로는 구속함을 입었지마는 실상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심신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영생하는 의인이 되는  데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길 밖에는 없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우리의 몸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누가복음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라  말은 마음에도 수많은 요소들이 있는 이 수많은 요소를 다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요소로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이 요소로 동행하고 저 요소로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저 요소로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되지 한 요소로만 동행해  가지고 안 되기 때문에 마음에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 고로 ‘마음을  다하고’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목숨을 다하고’라는 그  말씀은 우리의 생명은 이 자리에 있는 생명도 있고 저 자리에도 생명 있고  이때에도 생명 있고 저 새도 생명 있고 때마다 우리 생명이 있고 장소마다 우리  생명이 있고 또 움직이는 사건마다 우리 생명이 거기에 같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을 다하라 말은 아침에도 내 생명을 다하고 낮에도, 시간적으로는  낮도 밤도 언제든지 그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되는 걸 말하고, 또 생명을 다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도 생명을 다하고  저 자리에서도 생명을 다하고 침대에서도 그렇고 어데서든지 뭐 독침 앞에서나  독약 앞에서나 자기는 귀하게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자리에서 나 어데서든지  어떤 장소에서라도 생명을 다하고 어떤 사건에서도 다해서 해야 된다는 걸  가리켜서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하는 것은 우리는 힘도 뭐 마음의 힘도 있고 의지의 힘도 있고  팔의 힘도 다리의 힘도 또 눈 힘 그건 시력이라 하는데 시력도 있고 온갖 힘이  다 했는데 그것을 다해야 이제 영생이 이루어진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마음과 몸 이 두 가지가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되겠고 또  우리 소유가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지마는 내  소유는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할 때 우리가 많이 봅니다. 뭐 나는 내 심신이  동행하지마는 내 소유는 따로 딱 보관시켜 놓고 간직해 놓고 긍 소유는 내 진리  행동에 같이 동하고 정하지 안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면 하고 있는 일 저 OOO교회 예배당 문제로 지금예배를 못 본다,  한 쪽에는 예배를 같이 보자 한 쪽에는 우리만 보고 너거는 못 본다 이래 가지고  서로 시비하고 있는데 그것이 다 자기네들의 알고 있는 그 진리 지식과 마음이  같이 하지 안하는 증거요, 또 욕심이 같이 하지 않는 증거요, 행위가 같이 하지  않는 증거요, 입술이 같이 않는 증거요, 또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들이 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진리대로 할라고 할 때에 같이 동행하지 않은  증거입니다.

 이래서, 오전에도 말했거니와 오후에도, 우리의 모든 구원 성취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구원 성취가 될 수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하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서만 우리 구원은 성취될 수 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되도록 어짜든지 힘써서 노력을 해서 하나님과 동행이  됐으면 된 고것은 벌써 다 부분적으로 영생이 됐고, 또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벌써 무난히 통과하게 되고, 또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록에서 다 제거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 이 마음의 요소도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지식에 때라서 그러면 마음하면은 마음 하나로 이렇게  보지마는 또 그 사람의 지식이 조금 더 넓으면 마음속에도 생각도 있고 뭐  이성도 있고 의지도 있고 감정도 있고 또 온갖 속성들이 다 마음에 여러 가지  있습니다. 봉사성도 있고 복수성도 있고 보수성도 있고 또 기억성도 있고  비판성도 있고 그런 것도 뭐 꽉 찼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자기가 가진 지식으로서 자기 아는 대로 충성하고 지키면  그만하면 족한 것입니다. 그러면 차차 차차 지식도 자라가고 행위도 그렇게 점점  자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대해서 간단하게 좀 생각하고, 기억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대개는 사람들이 행한다는 것은 손으로 행하는 것 이것을 대개 행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 발로 가지고서 하나님과 같이 오고  가고 하면은 그것이 다 동행이라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물론 그  발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또 손으로도 동행해야 되겠습니다. 동행이라 말은  하나님과 같이 동하고 정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하나님과 이 동행하는 면에 힘을  쓰지 안하고 그저 다 자기 주관대로 믿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이렇게 믿으면  ale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자기 주관대로 해석 해가지고서 믿는 생활을  하지 이 객관인 하나님이 정한 그 법칙대로 그분의 법칙을 따라서 우리가 믿는  생활을 아니 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세상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객관성에는 맞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첫째로 이 마음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시에 그새는 마음만 동행해서  될 때도 있지마는 내 손이 동행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또 마음이 동행하는  동시에 내 입이 동행을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또, 내 입이 진리의 말씀대로 하면 동행이겠습니다. 영감대로 하면  동행이겠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대속의 공로에 합당한  말을 하면은 그것은 입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입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말뿐이요 그 속에 마음은 따로 있어서 그 마음으로서는 하나님의  진리대로나 영감대로 예수님의 대속과 하나가 돼 가지고 행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외식의 사람이요 치우친 사람이기 때문에 로마서 3장에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다 이리저리 치우쳐서 다 곁길로  걸어 다 무익한 자가 돼 버렸다 그렇게 말씀한 거와 같이 우리들이 그 일모는  하나님과 동행하지마는 또, 일모는 동행하지 안하는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두 가지로 동행해야 될 때는 두 가지로 동행해야 되겠고. 또 세 가지로  동행해야 될 때는 에 가지로 동행해야 되겠고 또 열 가지면 열 가지로 동행해야  될 때는 열 가지로 동행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이 만일 어떤 일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그 말할 때에는  말하고 자기 마음하고 둘만 동행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을 하고서  말과 행동을 한 때에는 그 말도 행동도 동행해야 되기 때문에 행동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뭐 우리 기관이 여럿이 있으니까,  손으로 행동하는 것도 있고, 눈으로 행동하는 것도 있고, 귀로 행동하는 것도  있고, 입으로 행동하는 것도 있고, 그 사람의 안면으로 행동하는 것도 있고, 그  사람의 발로 행동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어쩌든지 자기가 아는  대로 현실을 살 때에 하나님과 모든 면이 다 동행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생각하고 동행하기를 힘쓰는 거기에서,  우리가 동행은 세 가지가 동행입니다. 세 가지와 함께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동행하는  것은 어떤 게 동행하는 것인가? 자기 마음으로 ‘하나님이여 나는 동행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동행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동행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는 지금 모시고 다닙니다.’ 암만 그 말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기를 세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문서계시로 나타난  이 성경 말씀 이 진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접하기 쉽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보다 더 우리가 서로 접촉하기가 어렵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좀 어렵게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보다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입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으니 예수의 것이 되어져 가지고서 산다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서 피와 성령과 진리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이  셋으로 더불어 우리가 같이 움직이면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나 생각할 때도 그 생각할 때에 내가 그 생각을  크게 말하면 둘로 동행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안 되면 마귀와 동행, 마귀와  동행이 안 되면 마귀와 동행 이 동행이 두 종류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아니면 마귀하고 동행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왜 마귀와 동행해?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싫고 무신론자들은  하나님도 동행하기 싫고 마귀로도 동행 안하고 나는 내대로 산다.’ 하지마는  성경이 말하고 우리가 알고 보면 하나님과 동행이 아니면 그 외에 전부는 다  마귀하고 동행입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속에 악령이 주장해 가지고 그 사람 전체의  이목구비 수족 언행심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마귀하고  동행은 저절로 마귀하고 동행은 됩니다. 마귀와 동행하지 안할라면 안 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이 돼야 마귀와 동행 안 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동행 아닌 것은  전부 마귀와 동행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내가 말을 할 때에 그 말이 성경말씀에  부합된 말을 하면은 진리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라 할 때에 내  마음으로 하면 하나님과 동행이요 영감이 하라 할 때에 내 마음으로 영감대로  하면 하나님과 동행이요 내가 말하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에  일치가 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하나가 되는 그런 말을 하면은 나는  세수님의 피와 동행하는 것이니 하나님과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도 그러하고 또 마음도 그러하고 내가 마음을 가질 때에 항상  나는 동행하기를 힘써서 ‘동행이 안 되면 다 멸망이다’ 이러기 때문에 동행을  우리 머리속에 가득 채우고 연습도 해서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하나님과  동행’ 이라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동행이면 다 영생이요 심판  면하고 생명록에 다 제거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 생애는 동행이면 생명이고  동행 아니면 전멸이다 요걸 생각해서 동행하는 데에는 하나님과 나와 동행해야  된다 하는 요것을 제일 중점적으로 우리가 먼저 가져야 되겠습니다.

 밤에도 ‘이 밤에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겠다’ 낮에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겠다’ 장사하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겠다’ 직장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겠다’나 혼자 길을 가도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겠다’ 하나님의  동행을 떠날 사이가 없이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것을 생각하고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왜? 이것이 다 완전한 구원이 되어지지 ‘당시에 의인이라’ 이것이 의인되는  유일한 방법이라. 이것이 의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 방법이  아니고는 의인되는 길이 없어. 의인되는 방법이 없어. 또 ‘당시에 완전한  자라’ 이 방법이 아니고는 완전한 자가 되는 길이 없어.

 잘못하면 우리는 그만 사건과 나와, 사람과 나와, 물질과 나와, 이래 가지고서  물질하고 동행하든지 사람하고 동행하든지 사건하고 동행하든지 그거하고는 둘이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동행을 하지마는 그때 그만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말이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런 거하고 동행을 해서 아무리 얻었든지  성공했든지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사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사건 닥치면 이 사건과 자기와 둘이 뭉쳐가지고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사건하고 자기하고 둘이면 동행하지 그 하나님  동행하는 것은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건과 동행하는 것도 실패, 사람과 동행하는 것도 실패, 또 물건과  동행하는 것도 실패, 자기가 자기 혼자 독행하는 것도 실패. 이러니까 꼭  하나님하고 동행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하고 동행이라말은 둘이 이제 짝이 돼  가지고서 둘이 합해 가지고서 한 움직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양성 일위이시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양성일위이시다.

예수님은 신인 양성 일위이지마는 우리 기독자들은 신성과 인성이 우리에게  있는데, 신성도 우리 안에 있고 인성도 있고 이런데 신성과 인성이 있는데  우리들은 ‘신인 양성’ 어째야 된다 했습니까? 일행. 신인 양성 일행. 주님은  신인 양성 일위.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 인격 한 격위를 이룬 것이 예수님이시오 우리는 신성과  인성이, 한 행동을 한다 말은 동행한다는 말입니다. 동행을 해야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많든지 적든지  그것만 다 산 생활이고 구원이 됐지 그 외에 거는 다 헛일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서만 우리 심신의 기능이 살아난다 말이요 완전이 된다 말이요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하는 그 정력 생활, 자기 정력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것이 다 영생이 되고 온전이 되지마는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는 그것은 다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생 동안 만일 그  사람이 비유컨대 한 시간만 하나님과 동행했다면 한 시간만 그것은 완전이요  영생이요 심판을 통과하지 나머지기는 다 불살라 버리고 맙니다. 영도 가고 몸도  그 형체는 가지마는 속에 기능은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지식을 똑똑히 거머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외에는  구원이 없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성공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는 이것을 가리켜서 주심이 말하시기를 네 있는  소유를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 말은 있는 소유를 하나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동행할라고 할 때에 만일  자기 몸뚱이가 거리끼면 몸뚱이 던져버리고 만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자기  목숨을 가지고는 동행 못하게 될 때에는 목숨을 던져 버리고 어쩌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일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다 버리고 하나님과 동행 하나만을  위주로해서 하지 안하면은 하나님과 동행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것이 곧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완전자 되는 것이요 의인되는 것이요 영생이 되는 것이다 한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은 뭐 별로 이 많이 해석 하나 안 하나 우리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단단히 견고히 잡고 놓지 안해야 됩니다. 이 사람이, 이거 알기야 누가  모릅니까? 다 알지요. 이거 뭐 알기가 어렵습니까? 무슨 그 논법이 있소?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높은 그 아주, 술어를 가지고서 말하면 인간들은 그거  그만 쉽게 아주 이 서민 말로 하면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주 이상한 무슨 고급  특별 술어를 가지고서 해서 그래 말하면 거기 매력을 느끼지마는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주 이 서민의 말로 아주 일반으로 해서 일반  사람이 알도록 다 그렇게 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렇게 인간으로 갈 수 없는 지극히 높은 그 사실을 증거한 것이지마는 거기에  쓰여지는 말은 아주 쉬운 말로 썼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도리를 아는 것도  쉽고 또 깨닫는 것도 쉽고 하지마는 이 생활 한다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동행은 영생이요, 하나님의 심판 통과요, 또 그리스도의 대속의  생명록에 다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그 생명록에 흐리지 안하구 예수님의  대속으로 생명록에 기록돼 있었는데 요 시간에 하나님과 동행안 하니까 싹 그려  버리고 요 시간에 하나님과 동행 안 하니까 싹싹그리고 싹싹싹싹 다 그려 버리고  나니까 생명록에 기록됐던 게 싹 다 제거 돼 버리고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이래서, 책에서 네 이름을 흐리지 않겠다. 흐리지 않겠다. 사데 교회야 네가  이기는 자에게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기는 자는 곧 동행하는 자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알고  동행하는 것만 내게는 수입이요 가치 있고 알속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짜든지  동행에 나는 전심전력 기울여야 되겠다 요것만 기억하고, 그저 못나도 좋습니다.

동행하기만 힘을 쓰면 동행하는 가운데서 거기에서 동행하는 그 동행의  구멍에서는 전지전능이 나오고 굉장한 게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동거 동행해 가지고서 나중에는 모든  인류 가운데에 뛰어난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결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다 폐하려 하시나니’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못나도 좋고 잘나도 좋고 무식해도 좋습니다. 또 병신이라도  좋습니다. 뭐 늙었어도 지금부터라도 하면 됩니다.

 이래서, 꼭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씁시다. 동행은 자기가 몸으로는 하고  마음으로는 동행하지 안하는 그런 것은 외식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것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동생인데,  또, 우리 마음이 같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같이 움직일 때에 마음만 움직이고  그때 또 몸으로 움직여야 될 때에 몸이 움직이지 안하면 또 안 됩니다.

 어떨 때는 마음만 움직이면 될 때도 있고 마음과 몸이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마음과 이성과 감정이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또 다른 그 속성들이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또 그럴 때는 귀가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눈이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혀가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자기의 지식이 움직여야 될 때도 있고 자기 전  사업과 소유가 마구 움직여야 될 때도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그때 그때에 해당된 모든 것들을 다 우리가 찾아 가지고서 어떨  때는 하나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둘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셋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내게 있는 요소 둘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내게 있는 요소 열이 하나님과 동행을  해서 그 당신이, 둘이 동행하는 셋이 동행해야 되는 그런 것은 당신이 그 현실을  줄 때에 해당됩니다. 현실을 줄 때에 둘이 동행해야 될 그런 현실도 있고 셔이  동행해야 될 그 현실도 있고 내게 있는 전부가 다 동원돼서 동행해야 될 그  현실도 만들어 주십니다.

 당신이 현실 주시는 데 따라서 내 요소가 두 가지 하면 되느냐 세 가지되느냐  네 가지 되느냐 이래서 어쨌건 이 하나님과 내게 있는, 것이 동행해야 그때에  우리위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이 일을 우리가 힘쓰도록 노력합시다.

 너무 세상에는 거짓이 가득 찼습니다. 이 거짓으로 망합니다. 목사 쳐놓고  거짓말 안 하는 목사가 없고 거짓 행동 안 하는 목사가 없고 뭐 수단 방법을  가루지 않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리하고 좀  맞춰보고 영감하고 맞춰보고 자기 양심하고도 맞춰보고 자기의 이성, 비판하고도  맞춰보는데 아무것도 맞추지 않습니다. 하나뿐이오. 하나로 가지고만 일사천리로  막 밀어댑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뭐 순전히 멸망에 섞인 것이 다른 거 섞인 거 하나도  없어. 순전히 멸망뿐입니다. 멸망뿐으로 이렇게 나가고 있는 것이 인생들이 참  비참합니다. 주님이 보실 때에 이 세상을 보고 탄식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각양 요소 마음에 각양 요소. 마음에는  생각도 마음이요 또 마음도 마음이요 뜻도 마음이요 또 우리에게 이성도  마음이요 감정도 마음이요 정서도 마음이요 기억성도 마음이요 욕심도 마음이라.

 그러면, 내 욕심이 하나님의 진리와 동행해야 됩니다. 또 내 욕심이 영감과  동행해야 됩니다. 영감과 동행하지 안한 욕심 그놈은 죽여야 됩니다. 진리와  동행하지 안하는 그 욕심은 죽여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동행하지  안하는 그 욕심, 그 욕심도 동행해야 되고 감정도 동행해야 되고 우리 사람마다  다 복수성이 있습니다. 왜 원수갚는 거 원수 갚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복수성이 있습니다. 복수성이 있으나 그 복수성이 진리와 동행해서 복수할 수도  있고 진리와 동행하는 복수하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복수성 그것도  항상 진리와 영감과 피와 동행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동행하라,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까지 주어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향하라하는 이 말씀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것은 강한 복수성입니다. 강한 복수성이요 강한 투쟁성입니다. 그  죄악이 와 가지고서 무슨 방편을 가지고 어떻게 온다 할지라도 그놈을 대항해서,  죄에게 져서 죄에게 피동되지 말고 죄에게 피동되지 말아라.

 죄악으로 더불어서 죄악을 죽이는 의로 네가 죄악을 죽이지 그 죄악이 이런  모양의 죄악으로 온다고 그만 거기 피동되고 저런 모양의 죄악으로 온다고  피동될 게 아니라 그 죄악이 네게 오기를 뭘로 올는지 모른다. 네 재산을 홀빡  다 뺏기는 것으로 뺏는 그 죄악으로 올는지 또 네 생명을 끊는 그런 죄악으로  올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너 소유를 뺏기고 생명을 뺏기더라도 그 죄악에게 종이 되지 말아라  하는 그것이 예수님이 이 주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항하지 안하는 무저항주의자가 아니오. 무저항주의자가 아니고  굉장한 저항자입니다. 예수님의 저항에는 영원히 저항했기 때문에 영원히,  이기고 패전하는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이거 생각하고 어떨 때는 자기가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일 많습니다. 또 양심과 동행하지 않는, 양심에 불가타  하는 것을, 양심한테 물어도 양심도 찬동하지 안하는 거, 양심이 찬성하지  안하는 일을 제가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양심과 동행 안 하니까 무슨  진리와 동행이 되겠습니까? 무슨 영감과 동행이 되겠습니까?  이래서, 우리 요소는 여러 가지로 이 종합체입니다. 우리 마음도 수많은 것이  종합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 몸뚱이도 수많은 종합체입니다. 이래서 몸에는  뭐 세포를 말하는 그런 것이 다 종합이라 말이요. 세포로 뚤뚤 뭉쳐 가지고서  우리가 된 것이오.

 수많은 종합체로 돼 있는데 이 종합체에 현실에서 이 부분이 활용할 때도 저  부분이 활동할 때도 있으니까 어떤 부분이 활용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이 되도록 노력을 하면 ‘당세에 의인이라"  하나님이 볼 때에 ‘당세에 의인이라’ ‘이 이십세기에 의인이라.’이 현시대에  완전자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우리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사는 그런 행위를 우리가 버리고 이제 깹시다.

일방적으로 하는 행위를 버리고 우리는 마음 없는 말하지 말고 마음과 몸과 이  모든 지체와 자기의 욕심과 정신이 다 같이 해야 되지 다른 거는 다 같이  하면서도 욕심 하나 고놈만 빠져 버리면 헛일입니다. 고놈만 빠져 버리면 고놈이  들어서 자기 행동 다 삼켜 버리고 맙니다. 고놈도 꼭 동행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마음도, 생각도, 뜻도, 욕심도, 감정도, 성질도, 이성도, 지성도, 기억성도,  모든 욕심도, 복수성도, 시기성도, 모든 질투성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말씀으로 세례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세례를 받아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하는 거는 죽여 버리고 전부 하나님과 동행이 될 때에 우리  구원은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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