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 열 가지

 

1984. 11. 23. 금새벽

 

본문 : 창세기 5장 1 절∼32절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구십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육십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육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광고합니다.

'각 구역장님께서는 분교 헌금 추가분을 정확히 파악하여 다음 필요일 권찰회  때까지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헌금을 납부 할 때에는 이미 약속한  사람이 납부하는 것인지 처음으로 연보하는 것인지 구별하여 회계에게 납부하여  주시고 추가로 약속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회계에게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요것을 잘 기억해서 그렇게 해야 될 겁니다.

 지금 수금을 구역장에게 각 구 수금을 다 맡겼습니다. 그라니까 구역장님들이  수금해 가지고 원회계에다가 납부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구역장이 자기가  수금해 가지고 납부하는 것이니까 '뭐 돈이나 수금해서 납부하면 되지 그것을  일일이 수금부 회계에다가 보고할게 뭐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정확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남 연보해 놓은 거 자기가  가로맡아 가지고서 이래 하다가 그만 안 내는 사람 그 사람의 연보 대신 낸  사람의 연보를 대충하고, 처음에 작정한 후에 뒤에 나온 사람들이, 추가한  사람들이 있으면 이미 작정한 사람의 연보를 받지 안하고도 추가한 사람의  연보로 대충하면 자기 구역의 작정된 연보가 다 나온 거같이 그래 되기  쉽겠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속는 일입니다.

 또 그라고, 연보를 받아 가지고서 가지고 있다가 급하면 뭘 대용하는 그런  사람들도 더러 있는 거 같은데 그것은 하나님께 바친 돈은 바친 돈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용을 못 합니다. 대용을 할 때에는 반드시 원 뿌럭지에다가 말을 해  가지고 거기에서 자기는 책임 없는 데에서 말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저렇게 혹  때를 따라서 빌릴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저 아무 돈을 빌려 자기 손에 있으니 이  돈 저 돈 쓰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래 하면 거룩을 범해 가지고 자기 하는 일이  그래 가지고는 그만 형통치 않습니다. 그 일이 절단나 버립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하나님의 법궤를 뭐 이거 그만  법궤로만 이렇게 생각하고 이래도 저래도 안되겠나 이래 했는데, 그 법궤가  보니까 띠벌떵띠벌떵 거리면서 곧 넘어갈 것 같다 그 말이오. 넘어갈 것  같으니까 '이거 안 되겠다. 넘어가게 내두면 넘어가겠다' 붙들었어요. 손을  댔어요. 손을 댔다가 그만 대민 즉사해 버렸습니다.

 왜 그러냐? 전능자가 그 법궤안에도 계시고 밖에도 계시는데 우리에게  약속하기를 법궤 안에 전능자가 계신다 이랬기 때문에, 전능자가 법궤까짓 거  날아서 궁중에 억만 년 달려 가지고 있으라 해도 달려 가지고 있을 건데 그분이  뭐 법궤 넘어가는 걸 못 넘어가구로 못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어떤  분이신 것을 무시하고 저는 충성되이 한다고해서 이랬다가 절단났어.

 하나님의 교회나 또 하나님의 무슨 일이나 그런 것을 벌로이 취급했다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 되기 쉽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연보를 작정했다가 연보, 작정한 연보를 못 내는 거, 힘이  없어서 못 내는 거 좋습니다. 이렇게 작정을 했는데 그 작정한 거 힘이 없어  낼라 해야 낼 거리가 없어 가지고 못 내는 것은 작정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작정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망령을 부린 것입니다. 그래도 뭐 벌 받을  죄는 아니오. 이렇지마는 아나니아는 연보를 작정을 했다가 그만 그 뒤에 인색한  마음이 들어 가지고 그 있는 재산 다 팔아 가지고 바치겠다고 이래 놓고 얼마를  남겨두고 와 가지고서 '이것이 다 판 것입니다.' 하면서 그래 바쳤습니다.

바치니까 베드로가 있다가서 '그러면 이것이 너희가 작정한 대로 네게 있는  소유를 다 판 것이냐?' '예 다 판 것입니다.' 이랬다 말이오. 제가 작정 안 해도  되고 또 없어 못 내는 거는 또 관계 없어. 이런데, 그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속였도다' 하니까 고만 그  아나니아가 직사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어. 장사 지내고 나서 그  장사, 초상친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그 아내가 같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에게 '너는 너거 내외 연보 작정한 대로 가져온 것이 이게 다 판 것이냐?'  이라니까 '예. 다 판 것입니다.' 이랬습니다. '너도, 너거 남편을 장사한 자들이  너도 장사하겠다.' 그 사람들이 초상쳤습니다. 즉시 죽었어.

 하나님은 그렇게 성경에 어떤 하나님인 것을 다 나타내서 이렇게 하시고 어떤  자에게는 그것을 그만 그대로 둬 두시고 참아 기다리시는데, 다만 벌 이 두가지  있기 때문에. 육체에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이 있고 그 심령에 징계하시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다르지 징계는 즉라 즉각입니다.

 주의 안식일 범하면 죽이라고 말씀한 대로 오늘도, 안식일이 지금 주일 날로  변경된 것을 얼마든지 말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다 알 것입니다. 주일을  범하면 즉시 죽습니다. 주일을 범하면 즉시 죽는 것은 고기 덩어리야 죽지  안하지마는 그 심령은 즉시 죽었습니다. 죽었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 끊어졌다  말입니다. 그러면 연결 끊어졌으니까 끊어진 것만치 자기에게는 상당한 그  해독의 영향이 그에게 벌써 왔습니다. 또 심령에는 죽었다가, 연결이 끊어졌다가  다시 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연결하지만 끊어졌을 때의 그 죽음은 암만  연결해도 그거는 복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런 일 하면 안 됩니다.

 어제 아침에도 같은 설교를 했는데, 5장 1절로부터 끝절까지 보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 가지고 먹고 입고 살다가 결혼하고 결혼해 가지고 살면서 자녀  낳고 살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고거뿐입니다. 전부 다 그래 기록 됐습니다.

그러면, 나 가지고 먹고 입고 자녀 낳고 살다가 죽었다 고렇게 다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만은 달리 출생해 가지고 먹고 입고 살면서 결혼해서 자녀  낳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자녀  낳다가, 그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산 채로 데려 가서 다시는  죽음 보지 안하고 하늘나라 그대로 갔습니다.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 하면서  자녀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가 삼백 육 십 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외에는 우리에게 죽지 아니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아니하는 일은 어떻게 뭐 영광스러워도 죽고 고귀해도 죽고 능력  있어도 죽고 재미있어도 죽고 훌륭해도 죽고 다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일 외에는 다 멸망받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 19장에 보면 거기에 아주 청청한 아주 용맹스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만 그런 것들을  다 멸했다 이랬습니다. 자녀를 두기를 사자같이 뒀습니다. 젊은 사자같이 길러서  사자가 이렇게 차차 자라니까 그 에미가 사자 제 새끼를, 젊은 사자에게 식물  취하는 그런 방편을. 사냥하는 방편을 가르쳐 가지고서 사자가 사냥을 하는 것을  배웁니다. 배워 가지고 사냥을 하다가 거기에 사자라고 비유한 것은 전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짐승이 됐다 그  말이오. 짐승. 맹수가 됐다 그 말이오. 맹수가 됐다. 맹수가 됐는데, 그 맹수  중에 아주 어떤 자가 공을 들여 가지고서 아주 강한 사자를 만들어 놓으니까  강한 사자가 그 사냥하는 것을, 제 식물을 훔치는 이 연습을 해 가지고서  훔쳤는데 그라다가 다 같은 사자인 줄 알고 사람을 훔쳤습니다. 사람을 사자가  훔쳤습니다. 그 사람을 훔쳐서 삼키자 그것을 사람들이 주 모아 가지고서 그것을  함정으로 가둬 가지고서 죽이고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조심있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 다음으로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작아도 그는 하나님이 배후에 같이  하시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을 하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지 안했다 하는 이것을 성경에 기록했는데  마귀란 놈은 와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죽지 않는다' 이것을 가르쳐  주신 것인데 '죽지 아니하고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요렇게 미혹해  가지고 사람들이, 그리 안 해도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노릇 하는  자들을 안 죽고 천국 가는 길이 있다 하니까 마구 그 길로 쏠려집니다. 그 길로  쏠려져 가지고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그저 거의가다. '안 죽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다. 죽음을 안 봤으면 좋겠다' 하는 자가 벌써 죽음에  종되어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뭐 이렇게 저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거  같지마는 가만히 마귀가 둬 둡니다. 그까짓 거 암만 둬 둬 봤자 하나님 앞에  합격은 되지 안하고 있으니까 죽음만 딱 가져와 가지고서 너 죽인다 하면은 어떤  일이라도 할 터이기 때문에 최후 방편인 죽음이 있기 때문에, 죽음에 굴복할  자는 제야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그 이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 아래에 있는  것들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신앙생활 한다고 하지마는 그게 되는 줄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가끔가다가 시험하시기를 죽음을 가지고 시험을 하십니다.

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를 배반치 안하면 죽인다 하는 그런 어려움을 해 주면  전부 하나님과 하나님의도 다 배반합니다. 말하는 대로 다 배반하요.

 다른 데는 몰라도 제가 그때 거창 있을 때 고저면에 있었는데, 고제면에는 그때  주재소의 그 부장과 순경들이 그 사람들이 철저해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교회 가 가지고 교적부를 다 가지고 왔습니다. 전부 교인들 명단을 다 가지고 와  가지고, 그때는 또 명단이 그렇게 뭐, 마귀가 시킨 일군들 노회장 총회장 이  사람들이 성령의 감화는 받지 못하고 마귀의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마귀 일만  합니다. 그래 가지고 교인들은 교적부를 해야 된다고 교적부를 어떻게 독촉을  해서 철저하게 했는지. 그래 가지고 다른 교회 옮길 때는 이명을 해야 되고,  교적부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적부에 뭐 한 사람도 호적과 같이  빠지지 안하고 철저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교적부를 딱 압수해 가지고 가서 하나 하나 불러다 놓고서 너 지금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하니까, '앞으로 이 신사 참배 안 하는 사람들은 다  함부래 옥에 갇힐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는 죽을 줄 알아라' 그런 말로 가지고서  위협을 했습니다. 하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가지고 가서 전부 주재소에서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때 OO 교인들은 낱낱이 다 불려가서 다 도장 다 찍었고,  이제는 예수를 믿되 일본 나라의 법칙에 따라서 믿겠다고서 다 그렇게 도장 다  찍었고, 지장을 찍어도 찍었고. 또 저 OO교회도 그랬고 OO교회서도 내가 그때는  OO교회에 있지 안해서 와 가지고서 도장 찍고 그렇게 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했는지 그거는 모릅니다. 그 OO교회 OO교회는 내가 그때에 더러  넘나들이 해서 다니기 때문에 다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OO교회에서는 OOO 집사님이라고 그 집사님이 제일 잘  믿는사람인데,OOO집사님 O 집사님 아십니까? O 집사 알아요? 둔터 O집사? 네,  OOO집사가 제일 잘 믿는다 하는 분인데 내가 들으니까 가 가지고 그 사람까지도  다 도장을 다 찍었다고서 하는 말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가 가지고 그 소리를  듣고서. 오후 늦게인데, 그 큰 재를 넘어서 거기에를 찾아가니까 논 구석에,  논에 갔다 하기 때문에 가니까 논 구석에 쳐박혀 가지고서 참 살기는 살아  있지마는 죽은 사람이라. 그만 그렇게 도장 찍고 나니까 자기도 탄식이 되고  이러니까 고만 참 기절하다시피 그래 가지고 있어. 내가 만나 가지고서 위로를  하고 책망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가서 다시 고쳐라. 고치면 살아날 수 있다'  이라니까 고치겠다고서 그렇게 말을 하고 내 앞에서는 용기를 냈지마는 집에  돌아가니까 또 힘이 없다 그 말이오. 갈라 하니까 또 겁이 나 못 가겠다 그거요.

죽기가 겁이 나서 못 가.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노릇 하는 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노릇 하는 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서 해방되지  안한 자는 내나 기본구원이나 있지 죽음에 있다 그거요  그 뒤에 그만 그걸 못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후부텨는 용기있는 그런  신앙생활 못 하고 참 불쌍한 그런 신앙생활 하다가 영과 육이 아울러서 다  절단났었습니다.

 내가 어제 말 들었는데 그거 사실인지 몰라도, 여기 OOO집사라고 여기 있는 저  목발 타고 다니는 집사, 자기 부인이 그래요. 인민군이, 6·25 때 인민군이 와  가지고서 이렇게 모두 다 참 쇰쓸고 있는데 인민군 뒤에 따 라다니면서 예수  믿고 구원얻자고 자꾸, 그래 전했다고서. 전할 때 가 보니까 거석했다고.

그라는데 그거 참말이오? 참말이라? 그래 그 소리를 들을 때 OOO씨가 괜찮았다  싶으다 그 말이오. 그때 거석하면 놔 죽여 버리는데 대번에 신아 죽이는데 어찌  다니면서 자꾸 그래 밉상스러운 소리를 하겠소? 이라면은 '우리도 예수 믿다가  왔오. 잘 믿소.' 이란다고.

 이렇게, 참 믿는다고 해도 자기가 하나님을 참 믿지 안하는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가끔가다가 하나님이 그런 환난을 통해 가지고 '나는 참 하나님을 참으로  믿지 않는 자다' 하는 것을 본인에게 알려 줍니다. 알려 주는 것은 그러면  하나님이 알려 주고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려 주나 안 알려 주나 하나님은  알고 계시지마는 본인들이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가끔가다 알려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는데 그 믿음을  우리가 만들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그런 것을 다 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에녹은 죽지 안하고 산 채로 데려 가셨다, 그러면, 산  채로 데려간 것이야, 하나님이 물론 예정의 기한이 있지마는, '에녹이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그때는 동행 안 하고 낳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제 아이 낳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  세를 살고 하나님이 데려갔습니다.

 그러면, 삼백 육십 오 세가 이거 뭐일까? 삼백 육십 오 세가 뭐일까? 하나님과  동행했지마는 하나님이 테리고 가도, 그대로 데리고 가도 '아, 내가 땅에  있었으면 좀 구원을 더 이룰 터인데' 하는 그런 것이 없이 구원을 다 이뤘다고  보칠 때가 삼백 육십 오 년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 일이 이루어졌다 그  말이오.

 그러면, 와 그 전에는 안 데려갔는가. 동행했는데? 처음에 동행에는 안  데려갔는데 삼백 육십 오 세나, 삼백 육십 오 년이나 동행한 후에 데려간 것이  뭐일까? 왜 동행은 동행인데 일찍 안 데려갈까? 그 일찍 동행해도 안 데려간  것은 동행했지마는 동행함으로 자꾸 고쳐 가고 동행함으로 자꾸 변화돼 가고  동행함으로써 점점 하늘나라의 것으로 성화돼 나가기 때문에 삼백 육십 오  년이다, 삼백 육십 오 년이 되니까 이제 그가 땅 위에서 이룰 구원이 다  이루어졌으니 더 둘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더 둘 필요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뭣을 발견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죽지 안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데 동행한다고 죽지 안하는 일이 당장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가 죽지 안하는, 일부분이 죽지 안하게 이루어지고 또  일부분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고 또 일부분이 죽지 안할 것으로 변화되고  점차적으로 죽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가 돼서 죽지 안할 것으로 다 변화되니까  하나님이 데려 가셨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계서 자기는 성화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기에서 죽지 아니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동행하면서 죽지 안하는  일이 이루어져도 당장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동행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죽지 안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잡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계속해야 된다 하는 것을 어제 아침에 말씀했습니다.

 '안 들어도 나 예수 믿으면 되지.' 어림도 없습니다. 서부 교회에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기까지는 서부 교회 교인들은 서부 교회 목자 백 목사  설교를 들어야 구원이 된다 하는 그 말이오. 안 듣고는 하나님께서 제가 깨달을  수 없도록 고렇게 해 놨습니다.' 교회마다 다 그래 놨소. 그러기 때문에,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인데, 그 교회 교역자와 그 교회 교인들과는 그거는 참  인간이 알기 어려운 지극히 깊은 것이 그 안에 다 내포되어 있다 하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들어야 깨달아지지 안 들으면 안 깨달아집니다. 이러니까 새벽 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 잘 믿으면 되지' 잘 믿으면 된다는 그 사람들  보면 그 사람들이 인본주의 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고 고귀하다 합니다.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고 '야, 그 사람행위가 참 훌륭하다.'  인본주의. 인간 비위 다 맞추고 세상 도덕 다 맞춰서 이렇게 하니까 그렇지  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만날 죄 짓고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그 사람은 만날 약자로  보여집니다. 그 사람은 무슨 죄 짓고 말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보기에 인정되는 그런 거  가지고서 사람들이 안심하면 안 됩니다. 새벽 기도 안 나온 사람이 뭘 압니까?  모르는데. 오늘 아침에도 나와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이 말을 들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동행했습니까? 동행할 때 있지만 동행 못 할 때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 그 말이오. 동행 못 한 그 시간은 다 죽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동행한다고 대번에 다 삽니까? 동행합으로 차차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 말은 하나님을 떨어지지 말라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 어찌합니까? 그저 처음에는 못하면 '아, 주님주님 주님'  이래도 좋습니다. '주님' 주님 잊어 버리지 말고 자꾸 주님을 생각하는게  좋습니다. '주님 주님' 생각하는게 좋습니다. 그러나, 차차 차차, 그러면, 이제  주님을 생각하기가 어려우니까, 주님이 눈에 형체가 보이면 하지만 형체가  무형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도성인신 하신 주님은 신인 양성 일위로 우리와  동행합니다. 신인 양성 일위이신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또 계시지마는 우리와  동행합니다.

 내가 어떤 새벽에 누가 가르치는데 보니까, 주님은 아버지 우편에 계시고  우리와 동행하지 않고 거기에만 와서 계시는 줄로 그렇게 알고 말하는지 그래  말하는 사람 있던데 그거 안 돼요. 신인 양성 일위이신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말은 최고 최후의 능리를 이루시고 승리의 그 위치에 앉았다 그 말을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말하는 것이고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동행하고 계십니다.

 이러나 형상이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자꾸 이거 과학자들이 불행하다 하는 그  말은, 과학자가 행복되기도 하고 불행합니다. 과학자는 눈에 육 안으로 보는  것만이 인정한다 그 말이오. 보는 것만이 인정하는 그 과학자들이 보지 않는  것은 다 무시하다 보니까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니까 보이지 안하니 고만  하나님을 무시하기 쉽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과학자가, 참 복 있는 사람은 또  과학자요, 과학자가 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존재, 유형의 존재를  만드신 그 하나님을 자기가 알 때에는 유형의 존재를 이런 사람들보다  과학자들은 더 많이 깊이 널리 많이 안다 말이오. 깊이 안 다 말이요. 요렇게  묘하게, 아마 의학자도 말하면 인체 만든 것을 연구하면은 우리는 인체에 대해서  그렇게 오묘한 걸 모르지마는 인체에 대한 것을 연구한 사람들은 기이하게,  인체에 대해서 '참 이것을 부모가 만든 것이 아니고 이 인체는 과연 전능자가  만들지 안하고는 이렇게 못 만든다' 하는 것을 거기에서 알아서 과학자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면 더 깊 이 인정하게 된다 그거요.

 그러나 이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과 동행할라 하면은 어떻게  동행하느냐? 처음에는 그래라도 동행하십시오. '주님 주님' 자꾸 이렇게  불러서라도 그저 주님을 잊어 버리지 말고 사모해요. 주님을 잊어 버리지 말고  사모하는 것으로 동행해도 좋습니다. 그저 주님을 잊어 버리지 말고 주님을  밤낮으로. 밥먹고 있으면서도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이래 주님을 생각만 하고  주님을 잊어 버리지만 안해도 그것이 큰 사망을 방어 하는게 됩니다. 사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큰 사망을 방어하는게 돼요.

 거기에서 한 걸음 나가서 인제 자라가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곧 진리라' 이랬습니다. '내가 곧 진리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말씀을  자기가 잊어 버리지 말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라, 또, 열  처녀 비유라' 자기 생각하는 대로. 무슨 열 처녀 비유라면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자기가 이렇고 저렇고 자기 아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자꾸 이래  깨달아지고 자꾸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 기름 준비라, 나도 기름  준비해야 되겠다' 이렇게, 어느 성구든지 그 성구를 자기가 깨달은 대로 그  성구를 생각하는 그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구, 하나님의 성구를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이 못 달아나요.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못하도록 붙드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사모해도 주님은 날 버리고, 날 버리고 가지 못하십니다.

주님만 사모해도 버리지 못 하시고 내게 붙들려 가지고서 내게 내 구원 역사를  하지 안할 수가 없다 말이오. 또 내가 성경 말씀을 하나 사모하면서 그 말씀을  자꾸 이래 새김질 하면서 '요 말씀을 내가 복종해야 되겠다 요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다' 이래도 주님이 붙들리고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거 없어 제가 돈만  사모한다든지 무슨 고관 대작을 사모하든지 사장을 사모하든지 어떤 좋은 것을  사모 하든지, '내가 다른 사람을 구제를 해야 되겠다 뭘 해야 되겠다 어째야  되겠다' 해도, 어떤 선한 일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거기에는 동행하지를  않습니다. 주님 자체가 아니라. 주님 시키는 일은 일이라도 자체는 아니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요.'내가  진리라' 하지 안했습니까? 내가 진리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지 안했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자꾸 이래 생각을  하면서 그 말씀을 자기가 새기면서 '아, 이 말씀대로 해야 되겠다' 그 말씀을  놓지 안하면, 또 거기에다가 자기가 조금 더 거석하면 성령의 감화가 있다  말이오. 성령의 감화는 무슨 형체 있는게 아니오. 성령의 감화는 내가 그 진리를  자꾸 이래 생각할 때에 더 생각하게 하시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요. 진리를 또  이래 생각하는데 자꾸 더 깨달아지게. 더 깨닫게 되고 더 믿어지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 더 욕망을 가지게 되고, 진리의 말씀과 나와의 관계를 더 강하게 또  진실되게 더 새롭게 그렇게 하는 그분이 성령님이오.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다.

성신의 감화와 동행을 합니다.

 또 그라고, '아, 주님이 나를 대속하셨지. 주님이 날 대속하셨기 때문에 그냥  내가 죄 짓지 않겠다 하는 거와 다르요. 주님이 내 죄를 대신 형벌 받아  죽으시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내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죄를 다시  내가 행동할 수 없다. 내 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주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담당하시고 죽기까지 담당하신 내가 다시 끌여들여 가지고 동행할 수가  없다. 이래서, 나는 주님이 내게 사죄 주셨기 때문에 무슨 죄든지. 이 죄를  주님이 죽기까지 담당한 내가 앞으로 지을 죄도 이 죄를 주님이. 내가 짓지  안했으나 벌써 내가 지을 걸 당신이 알고 계신다 말이오. 이렇기 때문에  죽기까지 담당하셔서 이 죄를 형벌받으신 죄이기 때문에 내가 다시는 죄를 범할  수가 없다. 내가 사죄 입었으니 사죄를 범할 수 없다. 벗을 수 없다.

 나에게 칭의를 주셨으니 칭의를 벗을 수 없다. 그 하나 해석할라 하면 그거 다  시간 없기 때문에 이제 대충 말한다 말이오. 칭의를 나에게 주셨으니 칭의를  벗을 수 없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게 되도록 원수를 멸하고 화목을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화목 제물로 드려 가지고 화목했으니 내가 화목을 하나님과 동행을 내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연결된. 영교가 된. 신인 교제가 된 영교된 이 연결을 내가  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동행하면 거기에서 또 동행이 나옵니다. 동행하면 거기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자꾸 감사로 동행합니다.

 또, 이러다 보니까, 내가 또 그거 생각하다 보니까 잘못이 있습니다. 또 잘못을  자복으로 또 동행합니다. '내가 이거 잘못했습니다. 사해 주옵소서.'  또, 자복으로 동행하니까, 또 그러니까 내가 거기에 대해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모르니까 '주님이여 이 일은 뭐입니까? 이 일은 어찌 해야됩니까?' 또  당신으로 더불어 이렇게 서로 의논을 해야 되겠다 말이오. 당신으로 더불어  의논하니까 물어야 되겠고 또 배워야 되겠고 또 '어떻게 하랍니까' 지도도  받아야 되겠고 이러니까 또 '내 사정이 이렇고 저렇습니다.' 또 이래 구해야  되겠으니까 그게 또 하나님과 동행이라 그 말이오.

 이라다 보니까 '아내가 이거 안 됐다. 이거 이거 이거는 내가 못 하겠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되겠다' 간구해서 간구 가지고 동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감사함으로 동행하고, 자복함으로 동행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문의함으로 동행하고. 하나님에게 간구함으로 동행하고, 진리 말씀을 사모함으로  동행하고, 또 영감을 내가 소멸, 영감을 소멸. '아, 요게 영감이다 요게  성령님이다 요게 주님이시다.' 성령이 성령이 주님이시오. 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성령 이, 성령은 따로가 아니라 성령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랬습니다. 성령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했어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했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기를 누가 못박혔느냐? 십자가에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삼위일체에  대해서 머리가 혼돈되니까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을 자기가 사모하고 영감과 동행하는  그게 주님과 동행이오, 주님과 동행.

 또 그라다 보니까 이제 주님의 대속이 있습니다. 대속의, 사죄를 사모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칭의를 사모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화친을 사모하면  '나는 주님, 하나님 아버지와 화친된 내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있다. 아버지는  나와 같이 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화친됐기 때문에 이 화친은 영원히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암만 배반해도 자기 쪽에서, 자기 쪽에서 배반했지  하나님 쪽에서는 배반이 안 된다. 나만 하나님과 결합하면 대번 결합이라  말이오. 하나님과 동행하고,  이라다 보니까 내가 감사하는 또 감사의 기도로 동행하고, 또 잘못됐으니까  자복한 기도로 동행하고, 또 내가 이 모든 사정을 고하는 도고로 동행하고  간구로 동행하고 자꾸 이렇게 동행함으로 자꾸 죽지 안할 것으로 생겨져. 죽지  안할 것이 돼진다 말이오.

 이거 우리가 이 생활 해야 되는데, 이렇게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가지고서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면 자꾸 영생이 이루어지고 자기가 거룩하게 변해지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니 어찌 됩니까?  우리에게 우리가 세상에서 몇 가지, 이중으로 산다 했소 사중으로 산다 했소?  몇 중으로 살아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락 들고 가리켜 봐요, 몇  중으로 사는지? 저 O 집사, 더 들어 봐, 더 들어 봐요. 아, 요래 드는구만. 그래  놓으니까 똑똑히 모르니까 요래 들어. 요래 들어. 이거 맞소? 틀렸어. 이거  틀렸어. 다 지옥 갈, 지옥 갈 지식이라. 틀렸어. 자, 새로 한번 들어 봐요. 이게  틀렸어. 들었다 놓지 말고 뻐뜩 한번 들어 가지고 있어 봐요 한번. 다 아는 대로  들고 있어 봐요. 와야 모르니 뭐 할 거라? 이랬다가 이래 드는 사람  이래 봐요. 이래 세 가지.세 가지 들어 봐요 세 가지. 세 가지 그래 들면 잘  몰라. 꺼꾸로 들어 봐요. 꺼꾸로. 내가 보도록은, 여기도 꺼꾸로 그러면 똑똑히  알지. 나에게 잘 보이지. 이렇게 여러분들이라면 잘보이지 안해요?서 이서 이.

우스꽝스럽게 생각하지마는 요렇게 가르쳐도 모르니까 한 번 듣고 뭘 알겠소?  모르는 사람들이 '만날 잔소리 한다' 잔소리 한다고 하지마는 그 사람 서울 가서  좋은데 가서 매였는데 내가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고 있습니다. 빨트주의의  교회요. 어리석어. 그러니까, 찔리지 안하지. 여러분들이 어디를 가든지 꼭꼭  찔러서 자기에게 죄인이란 걸 알아서 애통하는 거기에 가고, 찔러서 자기를 막  박살을 내는 거기에 찾아가십시오. 거기에 가야 살아. 슬슬 덮어 주고 자꾸  이라는 데는 거석하는 거 같고 또 일 대 일로 복수하면은 그 사람들은 강하고  똑똑한 줄 알고. 가만히 참고 있으면은 마찬가지로, '거짓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뭐라 했습니까? '하늘의 상이 크니라 하늘의 상이  크니라'와 상을 발길로 차, 와 차기를?  그래 삼중. 우리는 형체를 가지고 삽니다. 형체, 형체 가지고 살면은 형체  가지고 사는 데서 그 형체의 힘이 오든지, 형체의 힘을 하나님께서 빼 버리면  마귀의 힘이 옵니다. 사망시키는 힘이 옵니다. 형체와 힐을 가지고서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감동받도록 살면 지극히 큰 능력을 줍니다. 이러니까 형체 형체  힘 그거는 자연의 힘이오. 안 믿는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다 자연의 힘이오,  자연의 힘. 그 다음에 잘 살면 지극히 큰 능력, 이래 사는 사람 있고 형체  가지고, 형체는 예를 들어서 동장이면 동장 그 위가 형체요 호주면 호주가  형체요, 자기가 지식이라면 그 사람 지식 가진 그것은 사람 볼 수 있는데 그거는  형체요, 사업이면 사업이 형체요, 눈이면 눈 그게 형체요 귀면 귀 그게 형체요,  형체인데, 그 형체에, 귀의 형체에는 자연의 귀의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귀의 힘이 있는데 자연의 힘이라 하는, 힘이라 하는 건 자기 돕는 것이  자기 힘이지 자기 해하는 건 자기 힘이 아니라, 이 귀로써, 귀가 자기를 돕는  힘이 있습니다. 고 귀는 어데 가서 들으니까. 죽는 말은 들으니까 '아이구, 이거  마귀다. 물리쳐야 되겠다' 사는 말은 들으니까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이  자리에서도 있으면서도 이 귀가 사는 말로 들어서 자기를 살게 하는 그 귀의 힘  있는 사람이 있고 이 귀가 살게 하는 힘을 하나님이 쪽 빼 버려버리고 나니까  살게 하는 힘은 빠져 나가 버리고 죽게 하는 힘이 있다 말이오. 들음으로써 죄  짓소. 들음으로써 자꾸 죄 짓고 자기 망할 것만 듣는다 말이오. 눈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요새 설교에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없어. 자기네들이 아는 줄 알아도  알면 알면 직장을 집어던져 버려도 이 새벽에 안 나올 수 없어. 알면. 몰랐기  때문에 안 나오지. 들을 귀가 없어 몰라 안 나와.

 어떤 사람은 형체, 형체의 힘 그거는 자연의 힘이오. 안 믿는 사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지극히 큰 능력 거기에서부터 이제 죽지 일는 영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형체 가지고 그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뽑아 버립니다. 형체는 가만히 내비두고 힘을 뽑아 버려요. 힘을 뽑아  버리니까 그 힘 뽑고 난 다음에 무슨 힘 들어갔소? 죽이는 힘이 들어갔다  말이오. 죽이는 힘이 들어가니까 그 사람은 그 형체로 인해서 자꾸 죽는 일만  합니다. 형체. 죽이는 힘, 또 죽이는 힘 외에 영원히 멸망시키는 힘. 멸망시키는  힘은 악령이 이제 그에게 넣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래 사는 사람 있고, 형체와 자연의 힘과 지극히 큰 능력과 이렇게  삼중돼서 사는 사람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일이 어데서 되느냐? 하나님과  동행해서 돼요. 동행. 어짜든지 '그라면 밥 못 먹고 있으면 어짜라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밥 못 먹고 지낼까 염려하지 말고. 사업 안 될까 염려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자, 동행을 그라면 몇 가지로 말했지요? 처음에 제일 일학년으로서는 사모로  하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하나님을,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자꾸 생각만  해요. '주님 주님 주님 주님.'  어떤 사람은 처음에 거석할 때에. '주님 주님' 이렇게 생각했는데, 고만 새벽에  늦게까지 설교 듣고 이래가다 보니까 식사, 아침 조반 하기가 늦었다 말이오. 막  달음질 쳐 가다가서 가다가 보니까 그만, 가다가 '주님 주님' 생각하며  가다가서, 노디라고 있어요. 노디라고 여기는, 도시 사람은 노디가 뭐인지 몰라.

물이 내려가는 거기에다가 돌을 갖다 놓고서 징검 징검 건너가는 그것이 노디라.

노디 건너가다가 그만 주님 잊어 버렸다 말이오. 주님을 잊어 버려서 다시  회개를 하고 도로 되돌아와 가지고서 거기에서 처음에 시작하면서 '주님 주님'  해 가지고 건너갔다고. 갔다가서 되돌아와 가지고서 급해 놓으니까, 되돌아 와  가지고서 이제 또 '주님 주님' 하며 가다가서 노다리 다 건너기 전에 또 주님  잊어 버렸다 말이오. 또 와. 다른 사람이 미쳤다 하지 않겠소? 그 사람이 잊어  버리지 안하고 주님과 동행할라고서 했는데 가다가 잊어 버리니까 다시 또 주님  찾았던 그 자리로 돌아가 가지고 주님 또 같이 하고, 왔다 갔다가 노디를 두  번인가 뭐 이렇게 했다 하니까 급한 사람이 하니까 다른 사람이 미쳤다고 하지  않겠소?  그러니까, 미쳤다 하는 것도 와 미켰는지 모릅니다. 몰라요. 너무. 너무 모든  일은 층층거리 첩첩이, 수 많은 첩첩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이 어디  사는지 몰라요.

 이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입신 중에 들어가 가지고서, 바울 모양으로 입신  중에 들어가 가지고 영계를 가 봤는데, 영계에 가 보니까 참 놀랠 일 하나 보고  왔답니다. 뭐? '아, 저까짓 거야, 저까짓 거야 저거 사람 축에 가지 안하는 것,  찌꺼러기' 이랬는데 그 사람이 지극히 높은 자리에 가 있고, '야, 저분은 참  아마 하늘나라 갔으면은 제일 높은 자리에 가 있을 것이다'하고 가 보니까 그  사람이 제일 낮은 자리에 가 있더라고서. 낮은 자리에 가 있더라고. 참 놀랠 일  보고 왔다고서 그 사람이 자기 전기에 기록한 것을 제가 한번 언젠가 몇십년  전에 읽은 일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제일 처음에 하나님을 자꾸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자꾸 사모함으로,  생각함으로, 사모함으로 동행하고,  또, 고다음에 뭘로 동행하라 했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동행하고, 고다음에 뭘로  동행하라 했어? 예? 또 영감으로 동행하고, 또 고다음에 뭘로 동행하라 했소?  예, 고다음에 사죄 칭의로 동행하면 순서가 됩니다. 고다음에 사죄로 동행하고.

또 고다음에는? 칭위로 동행하고 고다음에는? 화친으로 동행하고. 또 고다음에는  그러면 몇 가지요. 인제? 몇 가지? 예? 대답해 봐. 몇 가지? 몇 가지? 몇  가지인가 대답하라고.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가리켜 봐. 내가  모르는 거 보고 있어. 눈은 똑 뜨고 바른데 세아리라 하니까 '세아리기야 할  필요가 뭐 있나?' 안 세아렸다 말이오. 안 세아렸으니까 뭐인지 모르지  몇 개지? 이래 이래. 여섯 가지. 자. 여섯, 그 다음에는 또 뭘로 동행하요? 예?  예? 감사로 동행하고, 또 자복으로 동행하고, 또? 도고로 동행하고, 또? 예?  간구로 동행하고, 그라면 몇 개입니까? 손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개인지. 이래,  뻐뜩 들어 저 뒤에 들어 봐요. 이거 좋아요, 좋아 어린애가 아니라. 놓읍시다.

왜 그렇게 교만해요?

 이렇게 동행하기를 주님이 원하시고 이런 가운데 사는게 있는데 이거는 다 잊어  버리고, 어짜든지 주님과 동행은 잊어 버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 아침부터  저녁까지 죄 짓는 일. 꼬우는 일, 속이는 일, 세상에서 잘 살 거 그런 것만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형체는 있어도 힘을 잡아 빼 버려 그 힘을 잡아빼요.

사울 왕이 왕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그 형체를 하나님이 뺏들었소 힘을  뺏들었소? 뭣 뺏들었지요? 힘 뺏들었어요.

 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 때는 뭣부터 먼저 줘요? 순서가, 제일 처음 뭣  줍니까? 일호로, 형체. 두번째 주는 것 뭣 주요? 자연의 힘. 세째로 뭣 줍니까?  지극히 큰 능력. 빼앗을 때는 어떻게 뺏습니까? 일호가 뭐이요? 지극히 큰  능력을 뺏들어. 다음에는 힘을 뺏들어. 그다음에는 형체도 없어져 버려요.

 여러분들이 사업하는데 형체까지 없어지는 거는 그만치 죽고 또 죽고 또 죽는  것이오. 알아야지. 왜 믿는 사람들이 뭣 때문에 하는 일이 실패가 된다  말입니까? 실패 없어. 그저 버리지. 더 좋은 거 있으니까, 베드로가 고기와 배  버린 것처럼 다 버려 버리고 더 좋은 거 찾아가는 것이지, 당신에게 순종하는데  뭣 때문에 망하겠소? 저주 중에 저주를 받고서도 자꾸 저주 받을 애를 쓰고  있으니까 안 받을 수 있어야지? 마지막에는 몸뚱이도 그만 병신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뭐 젊은 거는 안죽습니까? 다 죽여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니라' 그것도 봐야 됩니다.

 자 하나님이 주실 때는 뭣 부터 줘요? 형체 주시는데 형체 켜 가지고서 하는  행동 봐 가지고서 고다음에 자연의 힘을 줘요. 자연의 힘. 그래 가지고 봐서  지극히 큰 능력 줬어요.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능력을 먼저 뽑아 버렸습니다. 그라면 회개를  할 일이지 회개 안 하고 그대로 강퍅하게 나가고 있으니까 자연의 힘을 빼  버렸소. 왕의 그 능력을 빼 버렸소. 이라니까, 끝까지 또 형체는 둬 뒀소.

이러니까 왕이기 때문에 골탕을 집어먹었소.

 다니엘은 공부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연의 힘을 주니까, 지식의 자연의 힘을  주니까 아마 시험칠 때도 아마 일등 했을 거라. 시험칠 때에 일등한 것은 그것은  자연의 힘이오. 자연의 힘 가지고 주를 위해서 하니까 지극히 큰 능력 줬는데  지극히 큰 능력 준 거는 뭐입니까? 아는 사람 한번 대답 해 봐요. 뭣 줬어요?  예? 뭣? 예? 십 배 그런 거는 자연의 힘이라. 공부 잘하는 사람 몇명 있잖아?  아무리 십 배 해 봤자 그까짓. 십배 해 봤 자 뭐 할 건고? 다른 사람 지식 십 배  해 봤자 소용 없어. 십 배 해 봤자 십 배 그거는 자연의 힘이라. 다니엘이 십 배  더 지식을 얻은 그것은, 그 거는 자연의 힘이라. 시험치면 일등 되겠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능력 줬는데 그거는 뭐이요?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할수없는 꿈 해석 그거라. 그거는 지극히 크신 분이 아니면 자기 배운  그 지식. 가지고는 십 배 아니라 백 배가 돼도 그거는 몰라. 백 배라도 어찌  알겠소? 자기가 꿈꾼걸 그걸 알 수가 있어요? 무슨 꿈 꿨는지 모른다 그거요  그것은 지극히 큰 능력이라.

 내가 저 먼저 주일인가 언젠가 그걸 다 말했는데, 종류마다 보면 뭐이든지 다  그래요. 형체 있고, 형체 그 형체가 가진 힘 돈도 돈이 가지 힘이 있다 말이오.

돈이 있지만 돈이 가진 힘을 빼 버리면은 그 사람은 단 만 원 가지고 있는  그보다 이 사람은 억만 원 가지고 있어도 억만 원을가지고 있어도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돈은 한 푼도 없어. 돈 있는 것마다 자기를 해치지. 그걸 인간  경험이 없어서 '돈만 있으면 다 좋겠지' 아니야. 권세도 그렇소.

 여러분들, 보이는 형체가 있고 형체 속에 자연의 힘이 있고 자연의 힘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있다 하는 이것은 그저 성경 암만 봐야 몰라 암만 봐야. 제가  신천해서 봐지면 '아, 요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연의 힘을 뽑아 버렸다.'  먹어도. 먹어도 양식되지 않는다 그 말은 와 먹었는데 양식 되지 안해? 먹어도  음식이 자기에게 힘을 주지 못한다 그 말이오. 힘을 주지 못해.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다는 것은 입어도 자기에게 그걸 의복이 자기에게 자연의 힘을 못 준다  말이오. 자연의 힘을 주면 따뜻하지. 자연의 의복을 입었으니까 자연의 힘을  주면 따뜻할 것 아니겠소? 따뜻한데 의복은 입었는데 따뜻한 그 힘을 뽑아  버렸기 때문에 암만 입어 밝야 따뜻함 이 없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어짜든지 힘씁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썩지  안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잊어 버리면은 마귀란 놈이요 죄 저 죄 자꾸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엊저녁에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서, 아홉시까지인가 얼마 얘기를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과 동행하라. 하나님과 동행하면  모든 문제 해결 다 된다. 원수가 많으면 어짤 겁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는 원수가 와서 쥐어박을라고 죽인다 죽인다 할수록이  좋습니다. 왜 좋습니까? '주님이 귀가 있으니까 들으시겠지' 죽인다 죽인다  하니까 주님만 봅니다. 주님만 보니까 죽인다 죽인다 하니까 '이놈. 내가 너  죽인다. 네가 내 말대로 하지 안하고 이라니까 내가 죽인다.' 주님이 그 원수가  죽인다 하니까 주님이 있다가서 한 번 죽인다 하니까 주님이 좀 상이  찡그려집니다. 또 '네가 나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네가 목회를 나 하자 하는  대로 하지 안하고 네가 주님과. 주님의 진리 진리 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그따위로 하면 내가 죽여 버린다' 이라니까, 한 번 하니까 주님이 좀  엉그러집니다. 두 번 하니까, 자꾸 그라니까, 자, 그 사람이 어찌 되겠소? 자꾸  그라니까,  사람들의 안면과 안면을 보고 그들의 말하는 것을 인해서, 사람의 얼굴과  그들이 하는 말을 인해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만일 그것들의 안면과 얼굴과 또,  나는 세 가지 기도합니다. 그들이 설치해 놓은 거. 얼굴 막 엉크리니까  호랑이같이 무섭다 말이오. 또 입술을 가지고 막 독하게 사자 같이 말하니까  그거 또 징그럽다 말이오. 또 그렇게 막 이라겠다 저라겠다 설치하는 거, 고문과  고형을 이래 하겠다 저래 하겠다 설치해 놓은 거 그런 것을 볼 때에 두려워하면,  내가 너와 같이 하고 나화 같이 하는 내 일을 하고 나와 동행하는 이 일을  하는데 너를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먼저 미워하는 것이라고 내가 성경에  요한복음 15장에 똑똑히 말해 놨는데, 너를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먼저 미워하는  것이라고서 이렇게 말을 해놨는데 네가 그것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는 연고가 아니냐? 만일 그라면 내가 너에게 이제 두려움을 줄 것이다 말했어.

 이러니까, 주님과 동행하면 자꾸 그렇게 할수록이, 죽인다 죽인다 하니까  속으로. 지금은 내가 그런 기도를 안 해요. 그전에는, 처음 믿을 때는 그랬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래 말하기 때문에 그래 말하는 것을 자꾸 자꾸 하면 좋았어.

자꾸 하기를 원했어. '자꾸 예수 믿으면 망한다 예수 믿으면 망한다 자꾸  그랬으면 좋겠다' 왜? 예수 믿으면 자꾸 망한다 하니까 주님 이 '망해?' 자꾸  주님에게 약을 올린다 말이오. '예수 믿으면 망한다 망한다' 주님에게 자꾸 약을  올려요. 아이들 말로 약을 올려요. 약을 올리니까 주님이 '뭐 어째?' 이렇게  나설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자꾸 약 올리는 걸 슬슬 원했어. 그때는, 처음 믿을  때는, 제가 집사로 개명 있을 때는 자꾸 그라면 원했어. 자꾸 그랄수록, 내가  거기 있으며 말하기를 '저렇게 자꾸 망한다고 하는데 저 망한다고 저라면 주님이  저거 들을까 안 들을까?' '주님이 들으시지요.' '주님이 들으면 자꾸 망한다  하면 주님이 어떻게 해 주겠지?' '망한다 하니까 망해? 망하는가 봐라 하고서  당신이 안 망하는 일을 해 주시겠지요.'  그래서 내가 그때에 설교하기를 그랬었습니다. '원수가 저주하는 것은 축복  아닌 것 같은 축복이다' 하는 것을 그때에 제가 집사로 있을 때에 깨달은 대로의  그 설교를 내가 거기에서 개명 교회서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들을 귀가 있는  지혜를 줘서 그래요.

 이러니까, 주님과 동행하면 나를 해하면 그게 복되고, 죽이면 최고의 복이  되고, 주님과 나와 동행할 때는, 동행하면 내게는 해는 없어요. 모든 해를, 그  사람을 막고 방어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는 거는 나중에 들어가는 거라. 뭐라  하든지 그를 위해서 축복하고 어짜든지 주님과 동행만 놓지 안 하면 모든 것이  오는 것이 다 유익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늘도 땅도 모든 만물도 다 너를  유익하게 한다. 이래서, 모든 세상에 왕비와 군왕들도 다 널 유익하게 한다.

너를 어깨에, 네 자녀를 어깨에 매고 다닌다. 네 발의 티끌을, 네 발의 티를,  티끌을 핥을 것이다, 이것이 다 오늘도 그렇게 되고 있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놓지 맙시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자꾸 깨끗해집니다. 깨끗해져요. 사람도 정말로 의인과 동행하면은 자꾸  깨끗해집니다. 의인과 동행하는데 의인과 동행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제  견해대로 보는 사람은 점점 망해지고 맙니다. 의인의 가는 길을 참 말로 같이,  같이 가면은 점점 지혜로워지고 점점 의로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자꾸 안된  것을 자꾸 이래 말하면은 원수가 돼져. 의인과 동행해서 원수가 되든지 그 앞에  한 몸과 같이 그렇게 결합이 되든지 그 결과가 맺어 지고야 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 힘씁시다.

 자, 동행하는 일 몇 가지로 동행한다 했소? 한번 손 한 번만 들어 봅시다.

옳지. 아마 두 손 다 드는 모양이라. 두 손 다 들어. 저 누가하나 들었다? 저  사람, 저 OOO 집사님 옆에 있는 그청년 뭐이지? 둘 들었나요? 아, 둘 들었어?  그래.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놓지 말아요. 행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행하지 않고는 구원  안이루어집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내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러 왔는데, 요새 내가 독촉하는  사람 중에 안은 사람이 보여지는데. 여반에도 왔는가 안 왔는가 그 얼굴이 잘  보이지 안하고, 또 남반사 중에서도 왔는지 안 왔는지 장 앞에 와서 앉았는데  얼굴이 보이지 안하고.

 그래. 하나님의 종이 챙길 때에 빨리 들어야 돼. 저 보니까 내가 어제 아침에  전화한 데는 오늘 아침에는 전화를 안 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다 나온  것이 내 눈에 보이요.

 뭣 때문에? 여러분들하고 나하고 심판대 앞에 같이 가. 왜? 대신 회계를 해.

대신 계산을 해야 돼. 주님하고 계산을 대요. 행위 계산을 다 대. 이러기  때문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내 구원이요 그들의 구원이기 때문에 자꾸 독촉을  하고 있는 거라. 뭐 안 오고 그라면 절 무서워서 뭐 그라면 뭐 어찌 될까 싶어?  그게 아니야. 하나님과 동행이 되어서 하는 거라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바로 믿읍시다. 우리 서부 교회서 이렇게 말을 해도 안  나오는 사람은 안 나와. 새벽 기도 안 나와요. 강퍅해서. 안 나온 사람들  권찰들은 자꾸 말해요. 듣든지 안 듣든지 겁내지 말고, 옳은 말해 가지고  낙심하면 낙심하는게 좋지. 옳은 말 해 가지고 낙심하는 것은 그거 마귀  새끼이기 때문에 옳은 말해 가지고서 낙심하는 것은 가 버리는게 좋다 그  말이오. 뭣 때문에 걱정하느냐 말이오. 자꾸 말하되 거슬리게 말하지 말고  순하게 자꾸 옳은 말 해요. 순하게 옳은 말, '듣든지 안 듣든지 네가 옳은 말  해라 그러면 선지자가 저희 중에 있는 것을 제가 깨달으리라' 자꾸 옳은 말을  해놔요. 와 새벽 기도 안 나오는 걸 보고 권찰들이 가만히 있어요? 자꾸 아는  대로 자꾸 말하지. '새벽 기도 나오너라' 그게 어때? '새벽 기도 나오십시오.

새벽 기도 나오십시오.' 그 뒤에 마귀 말일랑 하지 마. '나오십시오.' 뭐 어짜면  어찌 된다 감정을 일으키는 소리는 하지 말고 그저 '새벽 기도 나오십시오'  그래만 말해. '새벽 기도 나오십시오' 그 말은 자꾸 해요.

 자꾸 해 가지고 새벽 기도 나오라 한다고 싫어서 낙심을 하면은 그건 마귀  새끼인 줄 알고, 고것은 가 버리는게 좋습니다. 새벽 기도 자꾸 나오라 하면,  나오라 하면 자꾸 돼지는 거 있고 나오라 하니까 감정을 가지고 자꾸 일어나는  그것은 택한 자면 뒤로 나자빠져 가지고 뒤꼭지를 깨든지 깨야 나옵니다. 그래  말하면 순종하든지, 순종 안 하면 뒤꼭지가 깨져 가지고서 그때 뒤꼭지가 깨지고  난 다음에 후회를 하고 오든지 피를 틀리고 난 다음에 모든지 온다 말이오.

어찌됐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는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좌우에  날선검이라. 벌써 찔렀으면 들어갔어. 찔렸어. 그만치 옛사람은 죽었어.

 이러니까 권해서, 이거 새벽 기도 전부 다 차야 될터인데, 뭣 때문에 그리  분주한지? 다 두 말 할 것 없이 죽는 일. 하고 망하는 일 하느라고 그렇게  분주하지 사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줄 아십시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36 하나님, 진리 사람을 위하는 생애/ 고린도후서 5장 15절/ 1984. 7.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5 하나님과 3가지 기도/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34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비결/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1989. 6. 4. 남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1
533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20. 수저녁 선지자 2016.01.01
532 하나님과 동거동행/ 창세기 6장 1절-22절/ 1981. 5. 18. 월새벽 선지자 2016.01.01
531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3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1. 6. 20.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52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20절/ 1981. 6. 19. 금저녁 선지자 2016.01.01
528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9. 28.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27 하나님과 동행/ 말라기 3장 10절-12절/ 1984. 10. 31.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6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3장 15절/ 1981. 5.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25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1. 19.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24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1절-32절/ 1984. 11. 2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23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2. 1. 29.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22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4. 12. 4.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21 하나님과 동행/ 로마서 12장 1절-2절/ 1980. 4. 16.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520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5장 21절-24절/ 1985. 7.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519 하나님과 동행/ 창세기 6장 9절-12절/ 1988. 4. 1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 하나님과 동행 열 가지/ 창세기 5장 1 절-32절/ 1984. 11. 23.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17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 유다서 1장 5절 상반절/ 1981. 5. 27. 수저녁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