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가지 구속

 

1987. 8. 30. 주일오후

 

본문:히브리서 2장 1절∼4절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하는 이 말씀이 공부하는 제목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서도 한번 선포하신 뒤에는 그대로 이행을 하셔서 그 선포의 순종과 불순종으로 공변된 보응을 다 받았지 하나도 말씀하시고 그저 보응 없이 지나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큰 구원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셨는데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그 사람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오전에도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고 근거가 되는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우리가 증거받았습니다.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하나님께서 삼위로 나누어지는 제이위 성자에게 대해서 “네가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창조들을 순전한 생명과 평강으로 영원히 살게 한 이것을 방해하는 그 원수를 다 멸하여 발등상 만들기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나님의 본체의 오른편은 본체 다음의 위치입니다.

그것은 영계나 물질계에 하나님께서 그 수많은 존재들을 창조하시고 온갖 생명과 평강의 은혜들을 다 나열해서 영원한 생명 세계 천국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건설하시기로 경영하신 그 경영에 방해하는 원수들이 그때 있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방해하는 원수들이 앞으로 일어날 그 모든 것들을 완전히 진압시키고 다시는 그런 것들이 없는 영원 불변의 완전 천국을 건설하도록 하라 하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본체와 삼위일체 중 제이위 성자와 약속 맺고 이 성자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여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방해물을 제거하고 완전한 생명과 평강으로만 영원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셨으니 그 목적이 곧 선택입니다.

이래서 우리 구원은 어데서부터 시작되었는고 하니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의 그 본체와 또 삼위일체인 그 삼위 중 제이위와 모든 창조와 창조에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고 완전 생명 세계, 사랑 세계, 영광 세계를 건설하려는 그 목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우리 구원의 시발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기초가 되는, 우리 구원의 근거가 되는 e거라 말이나 기초라 말이나 다 뜻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거가 되고 기초가 되는 이 다섯 가지 기초 중에 하나를 오전에 말씀했습니다. 이 하나는 곧 하나님의 본체로부터 당신의 목적을 정하신 목적까지가 제일호의 우리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둘째의 근거는 이 구원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전지의 지혜로 영원을 예정하셔서 이는 하늘나라도 이 예정이요 영원 무궁토록 이 예정으로 이루실 이 지극히 큰 예정을 우리의 구원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의 근거가 하나는 일호를 말했고 이호는 하나님의 예정을 말했습니다. 이 예정은 우주와 영계의 심지어 유황불 구렁텅이의 음부의 그 세계의 모든 이루어지는 순서는 다 이 예정대로 순서를 따라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예정은 하나님의 전지자의 주권 전지의 지혜로 예정하신 것을 그대로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 성취하시는데 성취하신 일이 곧 하나님의 주권 능력의 창조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구원의 그 근거의 제이호는 우주와 영계의 모든 순서, 모든 순서가 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순서, 전개되는, 시간을 따라서 전개되는 크고 작은 것, 작은 곤충 한 마리가 나고 움직이고 죽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 모든 움직이는 지극히 작은 것이나 우주와 영계에 움직이는 큰 것이나 또 여러가지 종류의 전쟁이나 기근이나 모든 땅위에 이런 사상 저런 사상의 종교 유사의 것들이나 모든 물리에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순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모든 역사나 문화나 모든 과학이나 그런 것들이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순서를 따라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이렇게 큰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에 우리 구원을 위하지 안한 순서는 하나도 없는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지 안한 존재하는 순서는 없습니다.

‘사람이 여러 수억이 죽었다 살았다’ 인간 보기에는 큰 거 같지마는 그것이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노아 홍수의 심판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무겁고 커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고 배반하고 등한히 여기고 멸시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된다’라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런 것도 한 순서 중에 하나로 있어져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좁게 살고 아주 짧은 그 세상 생활을 하고 있지마는 이것은 큰 것을 자랑합니다. 짧은 기간에 영원한 것을 좌우하고 아주 극히 좁은 데에서 모든 존재를 다 능히 총찰하고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이것이 짧은 세상 한 토막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지역이나 나라나 세계나 우주에 전개되는 역사라면 그 모든 것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지식하고 또 믿고 소망하면서 내가 거게 대한 철저한 구비한 원만한 지식을 가지지 못할지라도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단다는 이 사실은 확신을 가지고 거게 대해서 기다리면서 내 구원에 무슨 소용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을 묵묵히 하나님의 섭리와 함께 기다리면서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어떤 존재든지 볼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크다 작다, 혹은 처음이다, 여러가지로 제 주관의 지식 범위대로 다 해석을 하고, 놀래기도 하고, 찬양하기도 하고, 탐도 내고, 또 접할라고도 하고 있지마는 우리들은, 그런 피조물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과 지능을 성령의 지능을 가진 우리들은 모든 존재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케 하셨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내 구원에 어떻게 적응이 되어질 존재인가 하는 것을 묵묵히 선입적 지식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거게 대해서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겨자씨 믿음을 이루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 이 셋째로 큰 것을, 하나 둘 셋째로 큰 것을 말했는데 넷째되는 이 큰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조물되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피조물되어 오신 것입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존재로 오셨고 완전하신 분이 아주 보잘 것 없는 초초한 인생으로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생각하고 생각하면 그 생각의 지식이 미쳐가는 데 따라 그 사람은 광대하고 위대하고 지극한 사람이 되어서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이되고 모든 피조물을 능히 영원히 어거하고 관할하고 통치할 수 있는 실력가로 차차 성장 성화돼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항상 연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시고 살으신 것입니다.

죽으신 것은 우리의 이 멸망, 죄로, 사망으로, 마귀로 멸망케 된 이 멸망에서 당신이 대신 형벌받아 거게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이 셋에 대해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신인양성일위가 죽음으로 형을 받아 가지고 이 세 가지 해방과 자유를 주셨고,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입법해 놓은 그 구비하고 세밀하고 복잡한 그 입법의 하나님의 공심판을 의롭다고 통과시키기 위해서 신인양성일위가 우리 대신 행하셔 가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시킨 의의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걸 주시기 위해서 순종을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또 대주재와 우리는 이 원수, 주님의 원수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의 입장, 대립의 입장, 하나님을 배척해 버리는 이 아담 하와의 어리석은 입장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원죄가 생겨져서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을 친히 당신이 화친을 이루어서 대주재와 우리와 연합되어 한 몸같이 이루어지는 이 친합 화친을 위해서 당신이 대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루신 것이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입니다.

이래서 주님은 세 가지 구속을 위해서 죽으셨고 또 여섯 가지 이 구속을 위해서 살으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주신 이 구원은 그 구원의 근거가 다섯 가지입니다. 지극히 큰 구원에 다섯 가지입니다.

이 다섯 가지 이 구원을 먼저 우리가 알아야겠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믿어야 하겠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소망해야 하겠고, 그 다음에는 이 구원을 우리가 친히 입어야 하겠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이 구원을 입고 살면서 누려야 할 터인데, 이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자유로 가르치고 자유로 배우고 자유로 얼마든지 연습하고 연성해서 처음에는 바라보는 것이 어리지마는 연습하는 가운데에서 점점 더 믿게 되고 더 바라보게 되고 더 순종으로 실행하게 되는 이 일은, 이 일은 하나님과 진리와 주의 피공로가 이 일을 벌써 설정해 놓으셨고 설정하신 이 일을 우리에게 분담해서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지식으로 알리고, 또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또 말씀해 주시고, 또 바라봐지도록 소망하도록 역사해 주시고, 이대로 입고 살도록 연습 연성하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자유입니다.

오전에도 약간 말했지마는 교회 자유라 하는 것은 교회라 하는 것은 이것을 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이것을 맡아서 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 속에 안 들어가. 수건을 벗어요. 수건 안 벗으면 안 들어가. 그거 안 들어가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제 주관대로의 신앙에서 갇혀버리고 맙니다.

갇히는 감옥은 일호 이호 백호도 천호도 넘습니다. 어데든지 갇히면 헛일입니다.

문이 열려야 되지.

교회 자유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큰 구원, 기초 근거가 다섯 가지요, 또 예수님의 이 사활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 열한 가지입니다. 이래 총합해서 열여섯 가지인데 이 열여섯 가지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교회의 직분입니다. 또 이렇게 알려주는 것을 이대로 배워 가지고 실상을 만드는 것이 신앙 자유입니다. 또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그 주관이 이거 만드는 데에 제일 선봉장 앞잡이로 서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신앙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 가지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고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얼마든지 또 믿어보고 또 믿어보고 또 믿어봐서 믿음으로 연습해서 얼마든지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성장시키고 또 얼마든지 바라보는 이 소망을 성장시키는 이 삼대 자유가 있으면 우리는 그 세계는 우리가 살 수 있는 행복된 세계입니다.

만일 이 세 가지 자유가 없는 가정이라면 천하에 제일 행복된 모든 것이 구비한 가정이라도 그 가정은 믿는 사람에게는 지옥입니다. 벗어나야 됩니다. 지옥입니다.

뭐 권세 있고, 돈 있고, 행락 있고, 화려 있고, 모든 것이 구비해서 부족함이 없는 세상 최고의 행복자라고 할지라도 그 가정에 이 세 가지 자유가 없어 교회 자유, 신앙 자유, 양심 자유가 없어 이 열여섯 가지를 가르칠래야 가르치지도 못하고, 배울래야 배우지도 못하고, 또 이 열여섯 가지를 내가 믿을래야 믿을 수도 없고, 믿을 만한 이 모든 구비 요소들을 취할래야 취할 수도 없고, 또 이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행동 선택할래야 선택도 하지 못하는 것이면 그는 지옥 속에 빠졌습니다. 그자는 하나님의 택자라 할지라도 세계에 제일가는 부귀 영광을 누렸다 할지라도 그의 마지막에 영원한 나라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같이 비참합니다.

이러기에 어떤 기생은 이 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자기가 교회 자유, 신앙 자유, 양심 자유를 가질라고 이렇게 할 때에 그가 심히 미인이라 창기로 지낼 때에 기생으로 지낼 때 많은 고급 남자들을 알아 놨기 때문에 그들이 아름다우니 와서 자꾸 탐해서 미혹을 주기 때문에, 미혹도 주고 강제도 해서 자기는 도무지 이 세 가지 자유를 얻지 못해서 ‘내가 이 세 가지 자유를 얻는 데에는 내 얼굴이 그 미인이라는 이 미를 완전히 박살을 내야 이 자유를 얻겠다’ 할 때에 그는 소산수 물로 자기 낯을 씻었을 때에 그 낯은 이상이 없다고 할 만치 미인이었지마는 이제는 더 그 이상이 없다고 할 만치 얼챙이의 박색이 되니까 아무도 보고 두려워했지 가까이 오는 사람이 없었을 때에 비로소 교회 자유, 신앙 자유, 양심 자유를 얻어서 얼마든지 열여섯 가지 구원을 배울 수 있고 익힐 수 있었고 또 믿는 연습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서 자기 생활 현실 현실에서 믿음을 연습하고 연단받고 연성하고 또 자기 양심을 얼마든지 자유해서 자기 마음에 진리대로 옳다 싶으면 얼마든지 해도 아무 방해 없이 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위에 어떤 것보다 자유를 원하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공산 치하에 있어서 어떤 곤욕이라도 어떤 박해의 생활이라도 좋습니다. 이 세 가지 자유만 있으면 좋은데 그들이 이 자유를 박탈하고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하기 위해서 생명을 바쳐 자유한 것이 다 순교자들입니다.

공산 치하에서는 수많은 기독자들이 다 자기는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유 생활 위해서 자기들은 다 고문과 고형을 당했고 생명을 뺏기고 생명을 주고 자유하고 주님 앞에 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 어떤 게 등한히 여기는 것인가? ‘이로 하나님의 선택을 우리가 받았다. 하나님의 본체에서부터 당신이 계획하신 이 지극히 광대하시고 영영하신 계획의 이 계획을 달성하고 완성하기 위해서 정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니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라.’ 하는 이 사실을 등한히 여기고 이 사실을 관심 없이 하나의 지내가는 신화같이 한 이야기같이 이렇게 지내 보내고 마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큰 벌을 받을 면할 수 없는 그 어려움의 재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선택받은 피택받은 이 피택을 자기가 죽는 날까지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것이 참 부족하고 거기에 대해서 그저 날마다 미결되어서 갈급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성도들인데 이것을 등한히 하고 돈에 파묻혀서, 세상 권세에 파묻혀서, 일시의 사소한 이해에 파묻혀서, 자기의 감정에 파묻혀서 하는 것은 분명히 이것은 악령에게 미혹받은 우리가 비정상의 미친 생활이지 정상 생활은 아닙니다.

이 모든 수많은 존재들이 나타날 때에 분명히 나타나는 전개되는 모든 순서들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예정이건마는 여게 대해서 무관심하게 생각하고, 예정의 무엇이 순서가 나타나면 ‘크다 작다 이런 종류라 저런 종류라’ 그런 소리나 하고 이 전개되는 모든 순서가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인정할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알아볼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그저 세상 일에만 분망하게 날뛰는 그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영원히 무섭습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모든 존재가 내 구원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예사롭게 여기고 등한히 여기고 무심히 여기는 것이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딴게 아니오.

예정의 모든, 전개되는 모든 전개되는 순서를 등한히 여기고 내게 옛날 지금 보여지는 내 앞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한 이 지식에 대한 존재관을 등한히 여기는 그런 것이 다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돼 오셨다 하지마는, 존귀한 인간이 누구를 구원하기 위해서 천한 인간이 된다는 것도 놀랠 만한 사랑이고 참 칭찬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피조물되어 우리 구원하러 오셨다는 이야 참으로 얼마나 놀래야 되고 얼마나 우리가 기절해야 될 일이지마는 여게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썩을 일에만 분망해서 날뛰는 이것이 이렇게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도 다 성도들이 여게 대해서 깨달은 것은, 다 그런 사람들도 돈도 알고, 권세도 알고, 지위도 알고, 남보다 명철하기도 하고, 또 예민하기도 하고, 재빠르기도 하고, 활동성도 있고 하지마는 그런 사람들이 모든 걸 똘똘 뭉쳐서 이 구원에 다 바쳐서 생명 기울여 놓고 모든 걸 포기하고 그런 가운데서 참 깨닫고 살고 죽고, 깨닫고 기절하고, 이런 가운데서 모두 다 느껴진 것을 세상에다 선포해서 우리들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쉽게 알게 되는 것 아니오. 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거게서 살았고 거게서 죽었습니다.

거게서 세상을 다 바쳤고 거게서 죽음 없이 영원한 세계로 바로 서서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죽었지마는 그들은 죽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서 목사님 그 하관 예배 볼 때에 사람들은 제게 대해서 많이 주목을 했던 모양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평생에 나는 참 그렇게 기뻐하는 걸 못 봤는데 그렇게 속속들이 마구 기뻐하고 못 견뎌 하는 것 보니까 아마 목사님이 요번에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아서 좀 아마 정신이 이상됐는가보더라. 목사님 미치치 안했는가 모르겠다.’ 그렇게 하면서 걱정한다 말을 들었습니다.

녜, 할 만할 것입니다. 왜? 내가 순간이나마 세상 것 다 버리고 그 나라만 바라보고 그 나라의 것만 연결되고 보니까 그보다 좋은 것 없고 땅위에 뭐 어떻게 그분이 그래 살고 간 것이 부럽고 내게 대해서 탄식이 돼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한 게 탄식이지 그분의 살고 간 것은 그 이상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암만 결심하고 살아도 그보다 더 낫게 살지를 못하리라 그렇게 생각이 가져집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왜? 그분은 평생 내가, 많이는 접촉하지 못했지마는 중학교 때부터 접했는데 볼 때에 그분이 한번도 낙망하는 말이나 행동이나 안면은 보지 못했습니다. 또 그분이 근심 걱정하는 안면이나 말이나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분이 성내는 꼴을 나는 한번도 못 봤어. 그분이 무슨 당황하는 그런 꼬라지도 나는 못 봤어. 뭐 캄캄한 밤에 혼자 올라와도 언제나 낮이나 밤이나 그분은 산골이나 자기 혼자 가는 데나 한가지입니다.

그랬는데, 그분의 그 죽음에 대해서 모두 다 익사라 이렇게 말을 하니까 이번에 제 막내아들이 미국에서 그것이 너무 궁금하고 마음에 해결이 안 되고 의문된다 하면서 역부러 장례 지낼 때에 못 나오게 했더니마는 장례 지내고 나왔는데 나왔다가 그날 와 가지고 그 이튿날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는데, 청도 그 현장에 갔더랍니다. 나는 가지 못하게 할라고 ‘야야, 거게는 가지 말아라. 거게는 일 년에 사람이 여럿이 죽는데, 그 소에서 죽는데 거게는 물귀신이 있어서 해마다 몇씩 죽는단다. 금년에도 하나가 죽고 둘채 죽었단다.’ 내가 이라니까, ‘가지 마라. 거기 물귀신이 있는데 갔다가 하나 죽고 둘 죽고 자꾸 그라면 또 내가 어떻게 견디겠나?’ 이라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라더니만 나는 안 갈 줄 알았는데 새벽에 다섯시에 나서 가지고 갔다가 김해 묘지로 다녀서 그래 왔습디다.

가니까 그 동리 사람들을 불러 가지고 정확하게 어데서 목욕을 했으며 어데서 어떻게 됐는가? 옷은 자갈밭에 벗어놨고 내가 넓기를, 말하는데 아마 이 기둥에서 저 가에만치 그만치 거기가 내가 넓더랍니다. 이러니까 물이 깊지를 안하고 물은 그저 정갱이에 올 만한 물이고 그런데 정갱이에 올 만한 그 물이 이 예배당 이거 폭 이거보다 더 넓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물이 깊은 데에는 암석이 깔려서 암석에 물이 그리 나가기에 거기는 모래도 자갈도 하나도 붙지 못하고 패여서 그쪽에는 깊은데 아주 그쪽에는 물이 시퍼러이 아주 그렇더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목욕한 것은 이쪽 가에 자갈밭 아주 이 자갈밭 중에도 가에서 거게서 목욕을 했는데, 전날도 거게서 목욕했고, 내가, 몸이 약해서 ‘그러면 거기서 목욕을 좀 하면서 해라’ 전날도 거게서 목욕했고, 또 전전날도 거게서 목욕했고, 전날은 저거 가족 다섯이 그 자리에서 목욕을 했고, 마지막에 죽는 날도 그 자리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 건너 빨래 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보니까 그 자갈밭에 거게서 무슨 소리를 꽥 지르고 난 다음에는 사람이 안 보이더라.

거기는 물이 그저 사람 오금쟁이 요 정갱이 마디에 올까 말까 한 것인데 그 물이 거게서 흘러 가지고 이리 굽어 쳐져 가지고 저리 아래로 깊은 데로 저리 가는데, 그리 가는데, 그때에 심장마비로 별세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분의 안경을 찾아도 없어. 수영하러 가면은 안경을 벗고 수영하지 안경을 쓰고 무슨 수영을 하겠습니까? 이런데 안경을 쓰고 들어갔어. 안경이 없어. 다른 건 다 있는데 안경이 없어. 안경을 쓰고 들어간 게 증거라. 전날도 쓰고 들어갔고 가족들이 거석할 때도 안경 쓰고 거기서 그저 요만치, 앉으면 요 앉으면 뭐 배구멍에 올 만한 그 물인가 거게서 씻어 가지고 이래 씻고 했으니까 그라다가 심장마비가 일어나서 그만 그 심장마비 일어나니까 꽥 고함 지르고 난 다음에는 쓰러져서 그 쓰러지니까 그만 다시 일어나지 안하고 슬슬 떠내려 가서 저 밑에 아주 먼 데 거게서 얼마나 멀리 가 가지고 그 깊은 물로 그리 인제 자꾸 쓸려 들어가 가지고 저 밑에 가서 그렇게 거게서 시체가 있으니까 그 부근에서 찾을라 해야 찾지를 못했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거게는, 살수가 건너가는 데 거게는 그 사람이 평소에도 수영을 안 하기 때문에 해수욕 가도 다른 사람은 이 뱃구멍 위에 오는 물에 들어가지마는 그 사람은 뱃구멍 위에 오는 그 물에는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항상 그 얕은 데에서, 수영을 전연히 못 해요.

이러니까 그만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되니까 거게서 숨이 딱 끊쳐졌으니까 그것은 익사가 아닙니다. 거기서 심장마비로 숨이 끊어지니까, 숨이 떨어지니까, 떨어질 때 고함을 꽥 지르고 거기 가서 옆으로 자빠지니까 그만 그대로 떠내려 가 버렸어. 이러니까 그 시체 속에 물이 하나도 없어. 물은 하나도 안 먹었어.

그것을 봐서 다 보고 조사해 가지고 동리 사람 통해서 조사하고 그래 이거는 익사가 아니다, 이거는 심장마비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한 생명이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증거하고, 그걸 뭐 알 필요가 뭐 있느냐 하니까 ‘남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면은 저거 구원을 바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내가 확인을 할라고 내가 이번에 이것 때문에 나왔었습니다.’ 그러니까 맞아요. 거게서 요번에 기도하러 갈 때에 몸이 약하기 때문에 ‘가서 좀 기도도 하고 좀 쉬어라.’ 그랬는데 거게는 그 장소가 어떤 곳이냐 하면은 위에서 길바닥이 이만치 있는데 길이 높으고 밑에 냇가는 바로 길 밑에가 냇가인데 거게는 자갈밭이라. 사람들이 지나가니까 거게서 옷을 벗고 목욕을 못한대요.

언제든지 빤스를 입어야 목욕을 하는 거라. 그러니까 수영할라고 해수욕복 입은 게 아니라 목욕을 해도 수영복을 입어야 되지 거기서는 바로 대로길이기 때문에, 대로가이니까 하지를 못해.

자기 교회서 갈 때에 마지막 설교하기를 내가 이 설교가 마지막 설교인지 모른다.

여러분들이 설교를 뒤에 다시 들을란지 안 들을란지 이것이 마지막 설교인지 모른다 그렇게 하고 가고, 또 가면서 예배 순서를 재독을 하면서 이렇게 하라고서 그렇게 순서를 다 짠 것이 내가 가서 예배 본 오전 설교까지 짰고 오후에는 누구한테 부담을 안 하고 그저 처음 믿는 사람에게 이럭저럭 말하고 해서 그날 밤에 내가 가 가지고 그 설교를 끝마쳤습니다.

그라고, 그 교인들이 가고 난 다음에 모두 울기를 ‘아무래도 목사님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데’ 하면서 우는 사람들이 많았더랍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깨끗하게 바쳐서 온전히 바치고 살고 갔으니까 나는 그 생활이 부러워서 그랬지 나는 뭐 떠난 것이 슬퍼서 그런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그렇츰 좋아하는 꼴은 평생 못 봤는데 아마 그 요번에 목사님이 좀 충격을 받아서 아마 좀 정신이 돌은 모양이라.’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하더라 말, 그 사람도 옳게 봤어.

또 어떤 사람은 나한테 저게서, 저 먼 데입니다. 먼 데 교인이 역부러 전화를 해 가지고 내게 말하기를 ‘목사님의 그 표정이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이 심히 심각해서 뭐인지 심각해서 도무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뭣인가 그 정신이 심각합디다. 심각해 가지고 이 세상적으로는 비정상인 심각했는데 그 심각한 것이 어떻게 심각한지 목사님의 발표는 이렇게 나는 살지 못해서 다 원통하다, 거게 대해서는 떠난 데 대해서는 나는 슬픔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을 하시지마는 그 모든 정신이 심각했는데 나는 지금 전화하는 것은 그 심각을 인해서 목사님의 그 세밀하시고 세밀하신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에게 예언해 주는 선지 직책에 조그매라도 지장이 있을까 해서 그래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 세밀이 조그마치라도 녹슬면 안 되고 조그마치라도 상처 입으면 안 됩니다.’ 그런 전화를 했습디다.

그 전화를 해서 나도 고마와서 그 전화에 대해서 오히려 그 사람에게 기뻐할 수 있는 내 속에 있는 것을 말을 해 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거는 저게 먼 데 충청도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 큰 구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다’ 이것을 생각하고 기독자들이 ‘주님이 소원하시는 소원을 위해서야 내가 어데든지 못 낮아질 것 없다. 못 천해질 것 없다. 내가 못 당할 가난 없다. 내가 멸시 못 당할 멸시 없다.’ 이러기 때문에 멸시 천대 조롱 암만 받아도 주님 생각하고, 오히려 받아도 유위부족한 줄 알고 사니까 세상들은 이거 이해 못 하니 ‘예수 믿으면 등신되고 천치 바보 된다’ 왜? 믿기 전에는 그따위야 다 몇 마디면 다 쓸어 없애버리고 다 무찔러 버리고 그 복수를 다 절단내 버리고 마는데 ‘예수 믿고 나서 완전히 등신 됐다.’ 등신 된 것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녹아서 등신되고 등신된 것도 그래 등신되고, 용기 없는 것도 그래 용기 없고, 죽여도 그냥 아프다 소리도 한 마디 안 하고 죽는 것도 그래 그 사랑에 녹아서 그런 것이지 예수 믿어서 못난 사람돼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런 분들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이 통일될 때에 그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너에게 맡기겠노라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하는 그 사랑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보기에 예수 미치괭이가 아니면 예수를 바로 모르는 사람이오. 왜? 예수 알고 난 다음에 재물을 다 집어던진다, 지위를 집어던진다, 모든 위신을 권위를 다 집어던진다. 세상 사람 볼 때에 완전히 미쳤지 그보다 더 미친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게 다 예수 믿는 사람이오. 예수님의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이 사랑과 그 영광과 그 인격, 그 존귀, 그 겸손, 그 화평, 그 사랑에 다 감격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신인양성일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 가지 죽으심으로 이룬 거, 형을 대신 받아 죽으셨고 우리가 행할 것을 대신 행해 죽으셨고 우리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을 화친하기 위해서 화목의 제물되어서 죽으신 이도 평생 먹어도 양식이 남습니다.

평생 이 사실을 생각해도 마음에 감격해서 뭐 우는 것 가지고 안 되고 웃는 것 가지고 안 되고 어떻게 해야 좋을 줄 몰라 ‘나도 주를 위해서 순생하고 순교하겠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죄에서 해방시켰으니 어떤 그 죄악의 세력이 와서 어떻게 한다 해도 다시 나는 죄악에 종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일이 와도 나는 다시 범죄하지 않겠습니다. 죄가 죄 지으라 하는 데에 죄악의 종 죄의 종은 범죄하는 건 죄의 종입니다. 범죄하지 않겠습니다. 죄의 종되지 않겠습니다.’ ‘사망이 이런 위협 저런 위협, 이런 고문 저런 고문, 어떤 고문을 당해도 이 죽음의 그것 때문에 내가 죄 짓지 않겠습니다. 사망의 종이 되지 않겠습니다.’ ‘마귀가 감언 이설로써 천하 걸 다 주며 나를 꾀우고, 내가 좋아하는 오만 영광 존귀 다 주고, 미인이라는 천하 미인 다 주고, 미남이라는 천하 미남 다 주고, 좋은 지위 권세 행락 다 줘도, 이것 가지고 마귀가 꼬와도 예수님의 대속을 나는 이제 벗을 수 없다, 이것 때문에 마귀의 종될 수 없다.’ 하는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세상이 모르는 단쇠와 같은 것입니다.

솥쟁이가 솥을 때우러 무쇠를 녹힐 때에 보면은 아주 발간 마치 어데 그뭐 감홍시같이 반들반들하게 그렇지마는, 그렇게 물렁물렁하지마는 탈 것은 닿으면 탑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단쇠와 같다” 이랬어. 물렁물렁하고, 보기는 물렁물렁하고 엽슬엽슬하고 아주 시쁘게 보이고 그저 죄되지 않는 일이라면 요구하면 뭐이든지 다 들어주고 이라니까 ‘저까짓 거야 등신이라 마음대로 놀려먹지’ 싶으지마는 죄악은 오면은 타고 생명을 끊을려 해도 죄는 용납 안 합니다! 불의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조작배기 만든 죄는 그렇지만 양심의 죄 하나님 법에 범죄되는 거는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성도들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대형으로 죽으심으로 세 가지 해방과 자유를 주셨고, 우리 대신 하나님 법을 행함으로써 공심판에 통과시킨 의의 완전 자유를 주셨고, 우리 대신 화친의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서 하나님과 빈틈 없는 머리와 몸, 부자간 같은 이런 피조물과 창조주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 주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이것이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구원의 근거.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의 근거 구원의 기초는 이 다섯 가지요, 이것이 우리 구원의 근거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죽으심으로 주신 것, 세 가지 죽음으로 주신 것이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죽음으로 주신 것이 몇 가지요? 다섯 가지입니다. 세 가지 죽음으로 주신 것이 다섯 가지요. 세 가지 자유, 공심판 자유, 하나님과 화친의 완전 생명, 완전 결합이니까 완전 생명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체 구원입니다.

자체에 다섯 가지 건설이오.

또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세 가지 우리 자체에 대해서 건설해 준 것 있으니까,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가 우리 대속으로 죽으시고 다시 죽은 가운데서 피조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피조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제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던 것이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하나님의 배우자로,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사는 완전한 생명으로 우리를 중생시켜 줬습니다.

그전에 이 열 가지는 구원의 근거요 이것은 건설입니다. 우리에게 완전 생명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중생을 주셨습니다. 이 중생된 이 생명은 진리로만 삽니다.

진리로 살아서 그 현실을 통해서 물질계에서 사는 그 생애가 영생이요 거게 속한 모든 것이 다 영생하요. 영감으로 영생하요.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세 가지 건설해 주신 이것은 우리 자체 구원이오, 우리 자체 구원. 우리 자체 구원이 다섯 가지 자유,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의 이 결합, 공심판에 자유 통과, 죄, 사망, 마귀에게서 자유하는 거 이 다섯 가지가 우리 자체의 완전입니다. 우리, 이 다섯 가지 구원 근거 위에다가 이 다섯 가지가 건설됐습니다. 이거는 건설구원, 우리 자체가 건설된 거요. 우리 자체가 건설됐어.

우리 자체가 건설된 다섯 가지에다가 다시 우리 자체 건설에 세 가지가 합해지니 하나님을 향한 완전 생명의 중생과 이 생명으로써 진리대로 영생하고 영감대로 영생하는 이 세 가지는 우리 자체의 건설구원입니다. 우리 자체를 건설했어.

주님이 우리 자체를 이렇게 완전 건설해 주신 것이 여덟 가지라. 여덟 가지, 이 근거가 다섯 가지, 이래서 열세 가지.

이 완전 구원 얻은 우리들에게 완전 영원한 성직을 주었으니 완전 직책은 하나님에게 받은 기업입니다, 이 기업. 하나님이 가지신 그 기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상속시켜 줬습니다. 이 기업을 얻는 우리를 후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기업은 곧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화친을 일으키는, 모든 난제를 해결해서 화목을 일으켜 하나님도 우리 아니면 못 살고 우리도 하나님 아니면 못 살겠다고 하는 이 밀접한 화친을 이루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주님이 제사장돼 가지고 이 일을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제사장직을 맡겼습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이라 말은 예수님과 같은 제사장이라 말이오.

제사장직이 우리의 영원 천직이요, 선지직이 영원한 천직이요, 왕직이 영원한 천직이니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렇게 큰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는 자는 등한히 여기는 그것으로 망합니다.

죽고 망합니다.

이 큰 구원을 연구해서 깨달으면, 깨달으면 속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인격이 나오고, 또 깨달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인격이 나오고, 또 깨달으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인격이 나오고, 천태 만상으로 변해져도 요동치 안하고 변치 않는 인내의 인격이 나오고, 이래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니 영생이 그 속에 있다” 영생한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은 참된 영생하는 인격이 먹는 양식이다. 이 양식 먹으면 영생하는 인격이 강하고 담대하고 건전하고 아름답고 윤택하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의 완전자가 된다. 하나님은 신격이요 우리는 인격인데 신격과 꼭 같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진다.

그런고로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의 언행심사는 이 열여섯 가지 구원을 인해서 동하고 정하지 이 열여섯 가지 구원을 떠나서 동하고 정하는 일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 속에 열여섯 가지 구원으로 인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나는 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요 그대로 행하면 믿음이 되는 것이지마는 열여섯 가지 구원을 버리고, 열여섯 가지 구속으로 인해서 우리가 동하고 정하지 안하고 열여섯 가지 구속을 떠나서 인간으로 인해서 생긴 생각이나, 돈으로 인해서 생긴 생각이나, 권세로 인해서 생긴 생각이나, 애정으로 인해서 생긴 생각이나, 이 세상 다급하고 분주 복잡으로 인해서 생긴 생각이나, 무엇이든지 내 속에 열여섯 가지를 인해서 ‘열여섯 가지 인해서 해야 되겠다. 열여섯 가지를 인해서 이거 생각해야 되겠다. 열여섯 가지를 인해서 이걸 게획해야겠다.’ 열여섯 가지로 인하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서 나를 움직인다고 하면 두말 할 것 없이 그거는 내 원수요 마귀요 악이요 사망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우리는 똑똑히 판단해서 그런 것을 용납지 안해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아가서에 “나의 사랑은 잠근 동산이라” 이랬어. 잠근 동산이라. 왕의 후궁이 머물고 있는 그 동산, 그 동산에는 강하게 잠궈 놓고 수위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후궁에 들어가는 사람만이만 거게는 들어갑니다.

우리 한국은 조그만한 나라지마는 청와대가 들어 있는 그 숲이 무슨 숲이라 합니까? 그 숲을 무슨 숲이라 해? 내수동에 그 산 있지 안해요? 비원이라 하나? 북악산 그거 말고 그뒤에 동산 만들어 놓지 안했어요, 동산? 거게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지 안해요? 거게 가면 뭐 꿩도 있고 노루도 있고 짐승도 다 기르는데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거 모두 다, 그거 무슨 산이라, 그 동산? 저 우리 나라 대통령 혼자만이 유람하고 다니는 뒤에 동산 있지 안해요? 그만 됐어.

“잠근 동산이라” “잠근 동산이라” “나의 사랑 너는 잠근 동산이라” 네 안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출입시키지 내가 싫어하는 거는 하나도 용납지 안하는 네 마음은 잠근 동산이다. 네 마음에는 나만 출입하지 아무도 출입하지 못한다.

“덮은 우물이다” 나만 네 속의 중심을 마시지 아무도 네 중심은 다른 것은 아무도 주지도 안하고 아무도 상관하지 못한다. “나의 사랑 나의 누이야 너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우리가 살 세계가 어뎁니까? 우리가 살 세계가 어뎁니까? 우리가 시집갈 시가가 어뎁니까? 우리가 장가갈 처가가 어뎁니까? 우리가 취직할 직장이 어뎁니까? 우리가 할 사업장이 어뎁니까? 우리가 할 사업이 어데요? 우리가 탐하고 누릴 행복이 어데 있습니까, 어뎁니까? 여러분들, 이 열여섯 가지 지극히 큰 구원은 내가 얼마든지 들을라면 들을 수 있고, 배울라면 배울 수 있고, 얼마든지 가르칠라면 가르칠 수 있고, 연구할라면 연구할 수 있고, 믿어볼라면 얼마든지 믿어보고, 바라볼라면 얼마든지 바라보고, 행해 볼라면 얼마든지 행해 보고, 또 재복 재복 몇십 번이든지 연습해서 다시 다시 해 볼 수 있는 교회 자유, 신앙 자유, 양심 자유 있는 그곳이 우리 살 세계고 우리가 기뻐하는 세계지, 돈 없어도 좋고, 피곤해도 좋고, 괴로와도 좋고, 세상 번쩍거리는 거 없어도 좋고, 이 자유 있는 세계는 우리의 살 곳이요 이 자유가 없는 세계라면 생명을 주고라도 우리는 자유를 찾아야 할 것이라. 자유를 찾아야 할 것이라.

오늘은 이 세 가지에 우리 나라에서는 자유가 있어. 나는 양심 생활한다고 아무도 나를 제재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말씀대로 산다고 아무도 제재하지 안했습니다.

나는 교회 생활을 얼마든지 해서 우리 교회가 삼십여 곳에 분교를 했지마는 내 힘이 모자라 못 했지 교회 세운다고 아무도 억제하는 꼴을 못 봤습니다. 나는 자유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남한의 자유 세계가 나는 만족입니다! 앞으로 어떤 정권이 바뀌든지 뭣이 될지라도 이 자유를 뺏들면 나는 그들하고 나는 싸우다가 나는 죽을 것입니다! 이 자유를 뺏들면 나는 그것으로 더불어 싸우다가 죽을 것입니다! 거게서 순교 당할 것입니다. 자유는 줄 수 없습니다.

교회 자유 줄 수 없습니다! 양심 자유 줄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유 줄 수 없습니다! 죽어도 이 자유 하다가서 끝을 마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것이 좋습니까? 어느 것이 소원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게 소원입니까? 어떤 세계를 바랍니까? 어떤 나라를 바랍니까? 어떤 사회를 바랍니까? 뭣을 바랍니까? 돈 많고 자유 없는 세계를 바랍니까? 나는 그것 바라지 않습니다.

미국은 자유 있는 세계지마는 한국보다 미혹이 많기 때문에 나는 그 나라에 그렇게 오라고, 부흥사로 오라고 그렇게 청해 쌓아도 나는 오늘까지 안 갔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벌써 여러군데가 오륙 처가 서서 한번 순회로서 오라고 그래 쌓아도 나는 안 갑니다. 거게는 자유하는 세계지마는 세상 번쩍거리는 미혹이 많기 때문에 나같은 약한 사람으로서는 미혹 많은 그 세계보다도 미혹 적은 이 세계가 좋아서 가지 안합니다. 그곳에 간 사람 쳐놓고 삼 년 지내니까 변질 안 된 사람이 없습니다.

저 마산에 있는 인애원의 원장되는 조수옥 권사님이 나한테 말하기를 ‘미국에 보내거든 삼 년 더는 두지 마십시오. 삼 년 더 이상 돼 가지고 변질되지 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말 하는 것을 내가 깊이 새겼어.

다 삼 년 갔다와 가지고 다 변질되지 않는 사람 ○○○목사님 하나밖에는 안 봤습니다. 그는 팔 년 구 년 됐지만 그는 변질 안 됐습니다. 그는 인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로 말미암아, 그가 통영 사람이라. 통영 사람 고성 사람을 우리 이 배달의 민족의 본토종이 사는 곳이라 그렇게 나는 평가하고 그곳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모든 뭐 신문이나 볼 때 거게서 제일 굳은 인질을 가지고 변하지 않습니다. 왜? 모두 다, 평양은 호가 산중호출이지, 산중호출. 황해도는 돌밭을 가는 황소지.

그래도 배달의 민족의 변치 않는 본질은 통영과 고성이라, 우리 나라의 본토종은 거게서 볼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정신차려서 삽시다, 정신차려서.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행복인지! 열여섯 가지 이 구원에 모든 이 세 가지 면으로 역사하는 양심 자유, 교회 자유, 신앙 자유 다 뺏겨도 돈 많은 남자면 좋다. 세상 지식 많은 남자면 좋다. 권세와 지위 많은 남자면 좋다. 사지가 멀꿈하게 미남이면 좋다. 미인이면 좋다. 그거 좋아서 그런 사람은 그리 가십시오. 우리는 그것보다도 열여섯 가지 구원에 자유 있는 세계를 우리는 좋아하고 그 세계에 살려 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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