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구원과 4가지 연구

 

1988. 8. 26. 월새.

 

본문: 히브리서 2장 1절∼4절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어제 주일에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그 죄를 회개하기로  시작했습니다. 등한히 여긴다 말은 예사롭게 여긴다 말이오. 이렇게 크고 무한한  이 구원을 우리가 너무 예사롭게 업신여기고 그저 그렇게 우리 전부를 기울이지  않는 그런 정신과 태도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뭐 구원에 많은 종류가 있지마는 어제 간추려서 넷을 들어서 증거 했습니다.

하나는 뭐입니까? 자, 같이 따라서, 학생들 모양으로 따라 해요. 뭐 저 암만 백  살이 먹어도 하나님 앞에는 애기지 뭐 나이 많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오셔서 나는 잘되면 하나님의 지체로 당신이 쓰실  것이고 그리 아니면 하나님이 막대기로 쓰는 것같이 뭐 또 스피카로 쓰듯이 그래  쓰시지 내가 하나님 아닙니다. 이러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이 강단에서 당신이  당신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겸손히 하고 배워야 돼요.

 저 서울대학 법대 대학원 총장, 우리 한국에서는 법으로 말하면 제 일인자입니다.

권위가 제일 있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벼슬을 주려 해도 하지 않고 그저  총장으로만 지냈었는데 그분은 예배보러 오면 저게서 발발 떨면서 예배를 봅니다.

왜? 사람으로서는 뭐 한국에 어떤 사람이라도 그 앞에 세워 두지 않아요. 또  그분이 굉장히 강합니다. 유명합니다. 법에 대해서 전투할 때에 아무도 그이를  이겨내지를 못했고 또 대개 여게 뭐 판검사들은 전부 그 밑에 있는 제자요  이렇습니다. 이런데, 여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배보러 오면 빨빨 떨면서  그저 숙여 가지고 한 마디 한 마디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조심해서 듣습니다.

이러니까 믿은 지 얼마 안 됐지마는 그 신앙은 굉장히 독실합니다. 이래서 장로로  우리가 그 추천을 받고 허락을 해서 아직까지 장로 장립은 하지를 않았으나 명년  삼월달 총회가 되면 장립을 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뻘뻘 떠는데 이거는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교회가 제일 만만합니다. 왜? 교회 오면 누가 주먹내는 사람이  없지 또 교회 오면 저 잘난 척 하고 떠드는 자가 없지 이러니까 아주 교회는 제  눈 아래 보이거든. 그러나 하나님 아는 사람은 천하에 하나님 앞에보다 더  두려움이 없는 것이 그게 하나님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구원인데 제일 처음이, 제일 중요한 것이 영생입니다.

뭐 어쨌든지 이 육체를 가진 불신자들도 제일 중요한 것이 생명입니다. 명예 해  봤자 제가 죽어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명예가 필요없습니다. 또 죽고 난 다음에는  명예가 있다 하지만 죽고 난 다음에 명예 있는 것은 그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이 필요할지라도 본인에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만 생명이 없으면  그것으로서 끝나 버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자, 그리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자,  하늘나라로 가서 낙원에 가서 머무는 사람은 끝이 아니요 이 세상은 이거  시작이요 영원 무궁이 있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천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예수 없이 세상에 제일 잘 산 사람 그  사람보다 말할 수 없는 굉장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제일 천하고 나쁜 것이 지옥에 제일 좋은 것보다 좋습니다.

 이런데 우리에게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영생. 영생.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말인데 이 성경 외에는 다른 책에는 영생하지 못한다 하는 말로 있지  영생한다는 말은 천하 책 가운데 종교 가운데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양심이 죽으니까 자꾸 이 주 대서 이렇게 기독교를 보고 그렇게 거짓말을 해  그렇지 종교 창설자들은 다 영생이라 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양심가입니다.

 영생 또 둘째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은 하나님과 전체가 꼭 같은  자라는 말이니 그 이상 실력있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뭐 코 있고 귀 있고 이런 형상이 아니오. 그의 속성, 그의 신격의 격위를  성경에 나타냈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럽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은 전능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전지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완전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원 불변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면에 완전하고  영원 불변하고 모든 것이 이거저거 여럿이 종합된 것이 아니고 단일성으로서  하나가 전체가 되는 그런 단일성, 여러분들이 그런 것은 단어니까 자꾸 알려고  애를 쓰면 알지마는 귀넘어 듣는 사람들은 뭐 목사 쳐 놓고 단일성을 물으면  단일성이 무슨 말인고 하는 그런 말을 모릅니다. 세상 학자들도 단일성이라는 그  말이 성경에 있는 단일성은 저희들이 모릅니다. 저희들이 과학의 단일성 말은  알지마는, 하나님의 형상, 이거는 이렇게 하나님 같은 모든 면이 구비하고  온전해서 부족함이 없는 실력가를 만든다 그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해 놨어요.

 또 셋째로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이는 대주재시요  주권자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그분이 우리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배경되는 것처럼 그분이 우리의 배경이라 그분의 모든 것이 다  우리 것이 된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그렇게 말해 놨어요.

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기업으로 상속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아들이 된 이 구원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장돼 가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래서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하는 말은  믿음도 영원히 있고 소망도 영원히 있고 사랑도 영원히 있어요. 그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에게 입혀서 하나님같이 되어지는데 이는 영원히 자라갑니다. 영원히  자라가고 영원히 커져가고, 이 불택자들은 세상으로써 그것이 다시는 없고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뭐입니까? 영원한 자유성, 영원한 자유 이것은 어데든지 자유입니다.

이러니까 어데든지 거리낌이 없다 말이오. 자유하는데 돌아다니며 관광을 갑니다.

우리가 이제 다시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으면 그때는 관광 갈 데가 많이  있습니다. 관광을 가는데 이 우주를 돌아다니며 관광 가는 이까짓 거야 뭐 일  분도 안 걸려요. 다 보고 그만 일 분도 더 볼 게 없어요. 뭐 금강산도 있고  수중의 나라도 있고 뭐 저 별별 별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거는 구경할 게 않지를  못해요, 잠깐 해요. 이러나 인간의 그 참 천태만상의 인간의 구조, 인간 구경이  상당히 구경할 그 면적이 넓습니다. 넓어서, 별별 사람 이거 뭐 상상도 못 할  사람들의 온갖 사람들의 그 속을 자유로 출입합니다. 제가 못 들어오게 한다고 못  들어오지 않아요. 어데든지, 이 사람 속에도 자유로 출입해요, 이런 이것을  가리켜서 자유라 이랍니다.

 또, 제일 구경할 곳이 좋고 제일 참 놀랄 일이 많고 제일 아름답고 좋은 곳을  구경할 곳이 있는데 제일 좋은 데는 어데겠습니까? 제일 좋은 데는 어데겠소?  누가 한번 말해 보이소. 제일 좋은 데는 어데 지요? 제일 좋은 데는 하나님이라.

하나님 안에를 얼마든지 자유로 출입해요. 하나님 안에를 얼마든지 자유해요.

이것은 말하면 무슨 말 인고 모르고 말쟁이 말 같지마는 자기가 경험해 보면  알아요. 하나님 안이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이 속에 들어가 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속이 좋은지,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참 굉장한지.

 이러니까, 사람들이 명상하다가 그만 며칠도 단식하고 그만 이래 가지고 명상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명상하다가 그만 거게서 세상을 떴습니다. 명상하다가  나중에 그만 해골된 사람이 많아요. 그거는 하나님 속에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보니까 그만 세월 지나가는 걸 모르고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가운데서 그렇게  떠났는데 영과 그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그렇게 평안하게 행복을 누리다가 그만  낙원에 가 있는데 예수님 재림하시면 그 해골된 그 모든 몸을 다 부활해 가지고  그때 갈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영생,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 영원한 자유 이것을  어제 오후에는 여게 대해서 네 가지를 배웠는데 네 가지 배운 것이 첫째가  무엇입니까? 평가, 첫째가 평가. 이 평가라는 것은, 모든 가치들을 다 가지고 있지  않소? 온갖 가치를 끌어다 모아 가지고 이 가치와 이 가치와 비교해 보니까 어느  가치가 크냐 하는 그런, 모든 것을 끌어다가서 가치가 보다 보다 어느 것이 크고  온전하냐 하는 것을 비판에 보는 걸 가리켜서 평가라 이럽니다. 평가. 이 네 가지  구원을 우리가 평가해 보는 이런 일은 암만 해도 다 한 건 아니라. 하면 또  나와요. 하면 또 나와요.

 자꾸 이 평가를 이제 귀로만 듣고 있으면 이것은 정죄받습니다. 이 평가를  자기가 또 뭐 그저 이거 보는데도 '이저와 가치를 비교해 보자' 또 깜짝 놀래요.

'이거와 또 가치를 비교해 보자' 모든 것을 가치를 비교해 봐서 모든 존재 제가  아는 대로의 그 모든 걸 가치를 이렇게 비교해 보니까 이 영생보다 가치 더 큰  가치가 없어요. 하나님과 같은 그 하나님의 형상보다 더 실력의 가치가 없어요.

하나님의 아들보다 지위의 가치가 없어요. 더 높은 게 없어요, 영원한 자유의  가치보다 더 귀한 자유가 없어요.

 이래서 평가해 보고, 그 다음에는 궁구해 보고 상고해 보고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였으므로 점점 예수 믿는 사람이 돼요.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성경이  그러나 안 그러나 상고하기 때문에 모든 학자들과 귀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나요.

 상고해 보고, 또 셋째로는 뭐하라 했습니까? 비판해 봐, 비판. 이거와 저거와  비교해서 판단을 해 봐요. 이 이치가 맞나 안 맞나, 이 말이 허무한 말이가 이  과연 이게 사실이겠나 사실 아니겠나? 자꾸 비판해 보면, 비판을 해 보면 이는  옳다 옳다 이거는 틀림없다. 아무리 제가 무신론자라도 비판을 참말로 하려고  달려들어 비판을 해 보면 마지막에는 이보다 더 참되고 진실하고 권위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부인 할수록 믿는 사람 돼요. 부인할수록 믿는 사람이 돼.

 저도 열세 살 먹어서 중생을 했어요. 지금 내가 보니까 열세 살 먹어 중생했는데  예수님이 믿기 시작은 스물다섯 살 먹어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에 내  속에서는 작용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사람 만나면 울려요. 뭐  얼마든지 뭐라고 주 대서 얘기를 해서라도 기어코 그만 울립니다. 제 형제간 중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믿었는데 먼저 믿은 사람들 만나면 내가 울려요. 그러니까 저  사람은 예수 믿기는 저거는 천부당 만부당이다 생각했기 때문에, 그 윤봉기  목사라고 그때는 권서 인데, 글을 권한다고 권서인데 우리 집 앞으로 지나가면서  내가 거게 있어도 안녕하십니까 인사나 하지 예수 믿으라 말을 안 해요, 아예  소문이 나서.

 그런데 내가 있다가 '왜 나한테는 전도 안 하고 그냥 갑니까?' '하, 예.' '그래  오늘 어째 옵니까? 여기 뭐 저 전도강연 하러 온다고 이래요. '그러거든 우리  집에서 좀-나는 술도가 하는데-우리 집에 좀 전도 강연을 하시렵니까? 그러면 이  동리 사람 다 모을 겁니다.' 아, 좋다고. 그래 그날밤에 다 모아 가지고, 그때는  내가 모이라고 하면 다 모이니까. 전도 강연했는데-내가 뭐하다 그랬지요? 옳지.

'비판' 하다 그랬어요. 이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비판을 하니까 반대하는 것은  반대가 하고 싶어 반대하는 게 아니라 반대하는 '이거 가짜 아니가? 이거 뭐 사실  이런 게 있나?' 이래서 자꾸 반대하면 그 속에 뭐이 나오는가 싶어서 그렇게  반대를 한다 말이오. 나오는가 싶어서 반대를 해도 속에 내게 해결되는 그런 게  나오지를 않아요.

 안 나오는데 한번은 내가 영익 목사한테서 내가 뭘 좋은 걸 하나 받았어요. 그래  떡 을라오더니마는 내가 부러 묻기를 '어제는 뭐 했노?' 이러니까 '어제 우리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뭐 재미있었는데?' 그 영 기대라 하는 데 거게 그 경치가 좋은  곳이 있습니다. 물 좋고 산도 좋고, '그래 거게 가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뭐  했는데?' 그라니까 '참 그날 여럿이 모이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  묻기를 '그러면 뭐 술을 몇 말이나 가지고 왔는데?' 이러니까 '아, 술은 요?'  '그러면 술 없이 무슨 재미가 있어?' 이러니까 또 아, 재미있었다고. '그라면  기생이 몇 사람 왔는데?' '기생이 뭐입니까?' '그러면 술 없고 기생 없는데 재미가  무슨 재미가 있어?' 내가 이래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래 그러면 재미 좀 말 한번 해 봐라. 무슨 재미가 있었노?' 이 재미  있었다 하기를 아, 그날 가 가지고 뭘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갔는데 음식을 좀  많이 장만해 갔지마는 사람들이 어찌 많이 뭐 왔든지 손님이 왔든지 음식이  모자라서 나중에 주다가 모자라서 우리는 하나도 안 먹고 전부 대접만 하고  이랬다 해. '그러면 그만 하루 종일 좋은 게 무슨 재미로구만? 그 재미가 뭐이야?'  이러니까 하루 종일 저희는 못 먹고 애써 해 가지고 가서 다른 사람 주고 굶고  한 그것이 그날 재미라 하는 그 말을 하는데 내가 욕은 해 주기는 해 줘도  '그까짓 무슨 재미라? 재미도 더러운 놈의 재미도 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내  속에서 비판이 됐습니다.

 하, 그 이상하다. 그 세상 사람의 정반대로, 다른 사람이 모두 한 걸 제가 다  끌여당겨서 모든 사람을 제가 이용을 해 먹고 모든 사람을 제 사다리를 삼고  이렇게 해야 좋은데 모든 사람에게 사다리가 되어지고 이용을 당하는 그게  좋다니 그거 참 그게 가치로서는 비판하니까 꼭 옳기는 옳은데 그 속에 아무래도  보면 이 속에 뭐 있어요. 비판해 보면 자꾸 그런 것을 자꾸 알아져요  그래서, 제가 그때 술도가 할 때이니까 뭐 술이 얼마든지 그 대접할 게 있으니까  그저 이상한 사람만 오면 붙들고 옵니다. 이상한 사람만 오면 저게 속에 뭣  들었는가 싶어서 청해 가지고 와서 데리고 앉아서 그 술을 대접하면서 슬슬  이야기 해 물으면 속에 깡깡해 빈 깡통, 속이 꽉 차서 새카맣고 뭐 아무것도 없고  빈 깡통이라. 또 그 학자라고 아주 도복을 커단하게 입고 큰 갓을 쓰고 또 이래  가는 사람 있어요. 또 한 사람도 안 떨궈요, 내가. 꼭 어쩌든지 붙들어 청해  들이지. 청해 들여 가지고 또 묻고 이러면 그것도 깜깜해요.

 그래 태을도군, 뭐 흠치도, 뭐 보천교, 뭐 불교 중 전부 만나는 사람마다 다  거석하는데 유교인들을 보면 조금 양심은 살았고 다른 거는 전부 사기꾼들이고,  또 그 총 중에 종교성으로서 제일 나은 거는 불교라. 그래 중은 청해 놓고도 가면  꼭 붙들어서 자고 가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청해 놓고 밤이 맟도록 얘기  듣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해결이 안 돼요.

 그때 이런 걸 못 들었으니까, 그저 예수 믿으라 말만 들었어요. 길가 가니까  고운서 목사 됐는데 그분이 그때가 내나 권서인인데, 권서인이라 말은 글을,  성경을 권한다 그래 권서인이라 이름을 그래 놨어요. 직책을 그때 모두. 이런데  내가 가니까, 내가 그때 열세 살 먹을 때인데 학교 가니까 떡 지나가더니마는  '예수 믿고 하나님 공경하십시오' 이래 말해요. 그러며 썩 지나가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좀 이상해서 '예수를 믿어 하나님 공경하다니?' 예수 믿는다는 말은 내가  모르겠고 '하나님 공경하다니, 하나님 공경하다니? 인생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겠느냐?' 그때 이제 하나님이 크다는 걸 그거 느끼고 있었어요. '하나님 공경할  수 있다면 그거보다 더 좋은 거 어데 있겠느냐?' 그때가 내가 아마 중생된 것  같애요.

 그후부터 저 학교 가서 집이 머니까 자취를 하면서도 예수 믿는 사람을 청해  가지고 밥을 많이 해 먹였습니다. 우리 한 반에 학생이 있는데 예수 믿는  학생이라. 만날 오라 해요. 와서 저녁 해 먹여 가지고 '그거 예배당에는 무슨 일  하노?' 내가 이래 설설 이래 묻고 저래 묻고 이래 묻는데 그래도 그거 벌판이로  말을 해도 그 뭐인가 내가 좀 가질 것이 있고 뭐 조금 뭣이 좀 강직할 게 있더라  그말이오.

 이래서, 이와 마찬가지로 어쩌든지 우리가 예수 믿는 이것을 영생도 비판해 봐야  됩니다. 이런 것 저런 것 주 대 가지고 이렇게도 비판해 보고 이렇게도 평가하고  이렇게도 변론도 또 해 보고 서로 혼자 자문자답으로 변론도 해 보고 이래 자꾸  해 보면 예수 안 믿을 때도 할 때에 예수를 반대할수륵 중생된 사람은 속에서  역사가 있어요. 반대하고 나면 '예수 믿어 헛일이야. 무슨 지옥이니 뭐 있노?'  헛일이다 하면 그 속에서, 헛일이라는 말할수록 한번 하면 그 속에 '이거는 헛일이  아니다. 참되다.' 반대를 많이 세게 하고 나면 속에 '네가 이놈아 속에 이거 지금  하나님이 계시고 구원이 있는데 네가 이걸 반대를 이렇게 해?' 하면 내 속에서  공격이 나온다 말이오. 그래서 제가 중생되는 것도 알고 그래 가지고 스물 다섯  살 먹어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런데, 영생도 평가도 해 보고 상고도 해 보고 비판도 해 보고 자문자답으로  변증 변론도 해 보고, 그 다음에 넷째로는 뭐하라 했소? 실행을 해서 실험을 해  봐요. 실행을 해 봐요. 실행하는 게 제일 힘이 있습니다. 실행하면 뭐 부인할 수  없도록 영생도 자기가 확실한 것이 자기에게 확신이 돼 집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  보니까 이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말하는 것 부러운 것 있지만 그까짓 거는 볼  게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그 인격성, 하나님의 신격성, 하나님의  속성,  이 몰라도, 그때는 몰라요. 지금은 다 알지 않아요, 많이 배워서? 하나님의  속성을 자꾸 이래 가지고 비교 평가해 보면 하나님같이 된 사람이 제일 좋지  딴거는 그까짓 거 뭐, 이 성경을 알고 난 다음에는 학박사 해야 들여다보면 다  보이요. 들여다보면 속에 돌멍이만 꽉 차 있는 것, 죄 악덩이만 꽉 차 았는 것,  속이 콱 막힌 것 아무것도 없는 속에 팅 비었어요. 온전한 게 하나도 없어요,  영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불변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이 껍데기로 둘둘둘둘 이거  이래 자꾸, 속에 말하면 안개 뭐 그런 이거 어두움을 집어넣어 가지고 이래 잡아  돌리는 것 모양으로 그렇지 속에 아무것도 없어요.

 실험은 자기가 실제로 이대로 살면서 살아보면 하나씩 둘씩 경험해서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확실히 알게 돼요. 여러분들이 이거 주님에게 구해 가지고 그거는  번연히 조그만 거라도 뭐, 나는 그 무좀 그것도 안 나아요. 나는 무좀 그저 씻어서  인제 치료가 돼서 좀 없지 무좀 안 나아요. 그러니까 표적은 안 믿는 사람에게  주셔요. 믿는 사람은 더 알면 이제 하나님을 바로 이용해야지 또 그런 걸로  이용하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나, 자기에게 무좀이 금방 아파서 이래 진창이 돼 가지고 있었는데 그저  엎드려 가지고 '주님, 날 이거 무좀 이거 낫아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난 다음에, 저는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만이야. 기도하고 몰라요. 인간은 보면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낫아 줬나 안 낫아 줬나 이렇게 시험해 보는 사람  중에는 별로 낫는 사람이 없어요. 그거 믿음이 바로 안 됐다 그말이오. 자기는  무좀 낫아 달라고 이래 놓고 난 다음에는 그만 잊어버리고 이랬는데 한참  돌아다니든지 며칠 지내고 보니까 무좀이 없어졌습니다. 낫기는 고때 나았는데  자기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들을 수 있는 그런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는 나았나 안 나았나 시험해 보는 그런 일이 생겨지지를  않아요. 그래 이게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은 알아듣기가 어려워요.

 이스라엘이 항상 하나님을 시험했었는데 진실히 기도가 됐으면 그 다음에 '낫아  주셨나 안 낫아 주셨나 한번 조사해 보자' 그런 조사해 보자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없고 그만 나은 줄로 그때 믿는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려요. 나중에 보면 나았어요. 어떤 사람은 예배드리고 나니까 그만  달라졌고. 다른 사람이 말해서, 혹 다른 것 보다 보니까 없어졌어요.

 그래 우리 그때 큰딸아기, 이상하게도 여게 이만한 게 솟아올라요. 학교 다닐  때인데 자꾸 커져서 이만한 게 처녀가 이만치 올라오니까 그거 병신 아닙니까?  그래 이거 거석해요. 내가 있다가 그걸 '어쩌렵니까?' 이래서 '네가 그것을 손으로  만지면서 하나님 앞에 낫아 달라고 기도를 해라, 네 손이 그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손이니 주님의 손이다. 이래 만지면서 낫아 달라고 그래 기도해라.' 이랬는데  내가 그러고 난 다음에 인제 일주일 만에 오는데, 학교 가서 저 멀어 놓으니까  중학교 다닐 때 자취하고 있다가 일주일에 주일이 되면 올라오는데 올라오는데  보니까 없어요. 내가 보니까 없어요. 없는데 저는 없는 줄 몰라요. '야, 그거 너  손에 그 혹 난 것 그 혹이 어찌 됐지?' 이러면서 '아, 이거 없다요. 없습니다.'  이래.그 본인은 몰라. 그래 그런 것도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게 실행  아니오? 실행을 해 보면 그게 내나 실험이라, 실험.

 이런 면 저런 면으로 실험을 해 보면 자기가 그만 변소간에도 겁이 나 가지고  귀신 있는가 싶어 못 가는 사람이 그만 낮에 밝을 때에 그만 첩첩산중을 자꾸  가요. 가 가지고 깜깜 어두워 놓으니까 올래야 올 수도 없어요, 그만. 거기 있으면  처음에는 죽을 지경이라 이랬는데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 의지해 가지고 이  하나님에게 보호해 달라 하고 한참 의지하고 기도하고 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기를 집보다 더 평안하니까 이제 그만 갑자기 어떻게  사람이 변해졌는지 돌아다니면서 이거 똑 맹수나 뭐 호랑이가 한번 나왔으면  한번 얘기나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곰이 나왔으면 얘기하면 좋겠다. 이상하게도  자기가 올라갈 때와 나중에 그때와 사람이 완전히 변해요. 그런 게 다 체험이라  말이오. 말씀대로 믿어 보면 그 체험이 나오고 경험이 나오고 그게 한번 실험,  실지로 그런 걸 실험을 해 보는 거라. 실험은 실행이라. 실행해 보면 알아져요.

 이러니까, 이제 이 세 가지 큰 구원을 첫째 뭐해 봐요? 평가해 보고, 둘째로?  상고해 봐요. 성경도 보고 다른 것도 이래 가지고 자꾸 아는 지식대로 해 가지고  상고해 봐요. 또 셋째로 뭐해 봐요? 비판해 봐요. 자꾸 이래 비판해 봐요. 넷째로  뭐해 봐요? 실험해 봐요. 이것을 언제든지 자꾸 하십시다. 그저 영생, 길가면서도  '영생이라? 나에게 영생을 주셨다. 영생보다 더 큰 게 뭐이냐?' 자꾸 이래 봐요.

그러면 '영생보다 내게 제일 필요하고 중한 것이 없다'그 제일 필요하고 중한 게  없는데 '이게 영생이 됐으면 좋겠는데' 그게 나와요. 영생이 제일 가치는 있기는  제일 가치 있는데 이 영생이 참말로 영생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뭘 보고 해요?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상고해 보지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자연 만물을 보고  상고해 보지 자꾸 이 상고해 보면 자꾸 증거가 나와요. '맞다 맞다 맞다 맞다'  나와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또 뭐이야? 비판해 봐요. 그러면 '이거 공연이가?  이거 반대 한번 해 보자.' 저 혼자 자문자답이라. 반대도 한번 해 봐요. 또 긍정도  한낸 해 봐요. 제 혼자 이렇게 반대하고 긍정하고, 반대하고 긍정하고 자꾸 반대  긍정 반대 긍정 자꾸 이래 해 보니까 결국은 저 혼자 하지마는 반대가 지고  긍정이 이긴다 그말이오. 저 혼자 원고 피고 돼 가지고 자꾸 재판해요. 원고 피고  돼 가지고 자꾸 재판을 이래 하고 보니까 암만 해도 저는 원고고 저 피고인데 그  피고하고 하는데 나중에 피고가 지고 제가 원고가 이겼다 말이오. 바꿔 해 보자.

나는 또 내가 피고가 되고 또 다른 뭣을 하나 인격을 만들어 가지고 그측을  원고로 삼아 가지고 원고에 나는 그걸 반박한다. 자꾸 반박하니까 저쪽에  반박하고 자꾸 이래 해 봐도 나중에 가서 이 구원이 확실하다 하는 것이  자기에게 비판하고 난 다음에 생겨집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알아  들리는지?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 평가해 봤지, 또 상고해 봤지, 또 비판해 봤지, 이러니까  이제는 참 그러나 안 그러나 실험을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실험을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실험을 해 봐요. 실험을 해 보니까 점점 알아지니 나중에 그래 그 신앙  생활한 사람은 자기 핏속에 자기 기름 속에 고기덩어리 속에 생각 속에 지식  속에 꽉 들이 배 놨기 때문에 이건 빼내 버릴래야 빼낼 도리가 없어요. 빼내  버릴래야 빼내 버릴 수가 없어요. 이렇게 우리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한번 슬쩍 듣고 그 다음에 다 잊어버려 버리고 이런데 이 구원을 세상에  이 인간 대가리에 나온 그까짓, 인간 대가리야 암만 해도 하나님이 지은 것 엿새  동안에 지은 것이니까 그거 무슨 대가리에 큰 게 있겠소? 이래 지은 것이니까 그  가운데 있는 그것도 내가 뽑아서 가지려고 하면 힘이 드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주신 이 무한을 제가 알 때 너무 시뻐 보고 말이지. 그거는 머리 싸짜매고 한 십  년이나 이십 년이나 공부해야 된다. 여기 뭐 의대도 하려 하면은 그거 몇 해  걸립니까? 육 년 걸립니까? 육 년 걸리고 또 뭐 그 뒤에 가서 무슨 전문의라도  하려 하면 뭐 어찌 좀 걸리고 이런데 그런 것도 그런데 이 구원을 너무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며 묻는 거는 좋지마는 이  사람이 이것은 하루 아침 해장거리도 안 되는 줄 알아요. 하루 아침만 배워도  이까짓 거 다 배울 줄로 그래 알고 있어요. 이래 가지고 뭐 이래 묻고 저래  묻는데 저는 천리 만리 거리가 멀어서 저 밖에 있으면서 이걸 제가 알려고. '너는  네가 이거는 도를 배울 지금 실력이 없어 자격이 없어.' 그러니까 이 순서대로  기역 하거든 기역 배우고 니은 하거든 니은 배우고 이래 가지고 나가야 되지  이러니까 시키는 대로 이와같이 해서 네가 열심히 공부하면 혹 세상에 죽는  날까지 하면 인간으로서 땅위에서 알 수 있는 정도는 네가 알런지 모르겠고 그  너머 무한이 있기 때문에 무한은, 그 무한이 있는 것도 사람 말 듣는 게 아니라.

이는 무한이 있는 것을 알게 돼요. 자기가 실험해 보면 알게 돼요.

 이러니까, 어제 추석날 설교가 네 가지 구원을 말했는데 오전에는 네 가지 구원  말했고 오후에는 네 가지 구원을 몇 가지로 연구해요? 네 가지로 연구해서 이  구원이, 이 네 가지 구원이 사실이라는 이 확신만 들면 이 땅위에 뭘 부러워해요?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다 하는 사람이 땅위에 이런 것 저런 것 부러워하는 그런  사람은 이걸 몰라 그래요. 아는 사람은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은 땅위에 아무것도  부러운 게 없어요. 저거 백지 공연히 저라니까 지금 저렇지 부러워하는 게 없어요,  부러워하는 게.

 나는 그러기 때문에 아이들 대학을 공부시킬 때에도 공부한 거 전부 다 법과야.

뭐 정치가 하려고 그 법과 하는 거 아니라. 우리 딸아기도 정외과를 보냈어.

그거는 뭐이냐 하면 인간으로 말하면 인간이 이상적으로 다 종합해 가지고  저희들의 이상 논리를 수립한 것이 법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들을 알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예수 잘 믿도록 하기 위해서 법을 공부시켰어요, 딴것 아니라 다른  사람은 성적도 좋은데 정외과 들어간다 하니까 여자를 정외과 뭐하러 보내는고  학교서도 반문이 오고 반대를 오고 그 이화대학 들어갈 때에 그래 쌓아도 나는  꼭 그래 보냈어요. 지금은 후회가 안 돼요. 참 잘 보냈다 이래 생각해요. 그 뭐뭐  돈벌이 하는 것 무슨 실업과 이런 것 저런 것 그런 거 보내지 않았어요. 그래도  잘못 믿어도 평생 소원은 예수 잘 믿기 소원이고 예수 믿는 그 소원 외에 나는  딴게 없어요.

 그래도, 그래 놓으니까 뭐 어데서 뭐 이단이니 그래 쌓아도 이단은 그저 그래도  그 사람들이 좀 마음에 그래 쌓는 게 좋아요. 이단이라고 아무말도 안 하고 있는  그것보다는 이단이라고 하는 그게 나는 더 좋아요. 왜? 이단이라 하는 그거는  틀렸다 하니까 이거 틀렸다 말했으니 이거 참 틀렸는가 안 틀렸는가 좀 자기가  착안을 해 가지고 좀 궁구해 보면 좋겠어요.

 너무도 많은 실험과 경험을 해 가지고 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 말해도 염려되는  그런 말은 별로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설교할 때 툭 튀어 나오면 이걸 어째  한번 설교를 한번 해 놓으면 이거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이 옛사람이라는  이것을 제가 대구 주암산 집회 때에 이래 퍼뜩 한번 말해 놓고 그걸 말을 표시를  그때 왜 뭣 때문에 이 말 했는고? 이 말 해 놨으니까 이 뒤에 손 골에 돼지  몰리듯이 얼마나 몰릴 것이고 이래 놓고 몰릴 것이라 하니까 지금 몰리지  않으려고 자꾸 이래 성경을 상고해 가지고 딱 알고 난 다음에는 담대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내 입에다 넣어서 툭 튀어 나오도록 해  가지고 날 고생을 줘 가지고 나로 궁구해 가지고 아무데 가도 이거는 틀림없는  변증을 하고 증거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나를 길러 만들어요. 오늘까지  나를 하나님이 기르시기를 그래 길러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거 네 가지 말한 것도 그것도 자꾸 하나님 앞에  뭣을 무슨 말씀을 증거해 주시렵니까 이래 물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신 그 설교 제목이라야 내가 확신을 가지고 하지 그저 이 무슨 주석이나  뭐 보고 다른 사람이 이런 설교 하니까 나도 이런 설교 하겠다 그런 설교는 내가  평생 해보지를 않았어요.

 어제 주일날 네 가지 구원, 이것을 그러나 안 그러나 가치도 한번 평가해 보고,  만일 있다고 하면 가치가 어떤가? 있다고 하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는가?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게 뭐 있어요? 영생보다 '가치 있는 것 있어요? OOO집사.

영생보다 가치 더 있는 게 있어요? 뭐 지금 어데 뭣을 복사기에 돌아다니고 어데  돌아다녀 쌓았는데 이제 알면, 물론 사람이 밥먹고 살려 하니까 이런 거 저런 거  하지마는 가치는 거게 절대로 두지 않습니다.

 영생,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과 꼭 같은 자, 하나님의 아들, 영원한 자유 이  구원을 자꾸 자기가 몇 가지로 되씹어요? 이 네 가지 구원을 몇 가지로 씹어라  했어요? 네 가지로 씹어요. 자꾸 가치를, 모든 가치를 다 끌어 대 봐요.

 이러고 또 성경을 가지고 자꾸 상고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 만물이 자연  계시이기 때문에 자연 만물을 가지고 따져 보고 이거 상고해 보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뭐입니까? 상고해 보고,  그러고 난 다음에 뭐이야? 그러나 안 그러나 비판해 봐요. 자꾸, 자꾸 비판은  누구하고 해요? 변증을 누구하고 해요? 자문자답을 해요. 저 혼자 제가 원고도 돼  보고 제가 피고도 돼 보고 자꾸 시비해요. 막 시비를 자꾸 해 봐도 나중에 보니까  이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이 확실히 승리가 돼요. 다른 사람에게 물을 게 없이.

그것을 가리켜서 비판해 보라 하는 것이라. 비판해 보라는 건 재판해 보라는  그말이오. 재판해 봐요. 재판을 누구하고 해요? O집사 누구하고 해? 자기하고  자기하고 해요. 자기가 원고가 돼 가지고 마구 이래 내 보여. 그러면 또 저쪽에  또 피고가 돼 가지고 자꾸 변증을 해요. 자꾸 이래도 결국은 보니까 내가 이  사실이 옳다 하는 것을 원고가 됐을 때는 내가 이기고 이 사실이 사실이라 하는  것을 다른 사람으로 피고를 만들 때는 내가 원고돼 가지고 변증할 때는 내가  져요. 이러니까 이게 확실하다 하는 것을 자꾸 알게 된다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실험해 봐요. 실험해 보면, 실험해 본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안 사람은 딴걸 찾지 않습니다. 네 가지 네 가지  요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여게 힘쓰면 공연한 헛된 일 안 해요. 또 아무 염려가  없어요. 공연히 썩을 짓 하고 돌아다니지 않아요. 이 네 가지에, 그러기 때문에  우리 사는 것이 이 네 가지에 수입 많은 곳이 자기 행복된 자리요 이 네 가지  뺏기고 썩을 것 많은 곳이 행복된 자리요? 어데가 행복된 자리요? 어리석어요. 이  네 가지는 생각할래야 생각해 볼 여가도 없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돈만  거머쥐고 이 모든 정치만 거머쥐고 뭣만 거머쥐고 분주해서 이거 네 가지는  생각할 시간도 없어요.

 거게서 그것도 그만 또 그렇지, 요게서 오, 이제 요게서 계장되고 계장에서  과장되고 과장에서 또 뭐 총무되고 또 총무에서 사장되고 그것도 올라가면  여게서 뭐 교수, 조교되고 또 뭐 부교수되고 또 교수되고 또 뭐 뭣되고 뭣되고  그런 것도 올라가려 하면 그 자리도 많아요. 그것만 보면 그게 선악과라.

그것뿐인 줄 알지마는 그 외에 딴것이, 얘, 그것 보지 말고 옆에 봐요. 그거보다  한없는 존귀한 가치의 층어리가 있기 때문에 좋은 층어리 올라가지 멸망받는  층어리 올라가면 뭐할 건고? 그래 좀 우리가 깨달아 살아야 됩니다.

 이래서 보니까 이복순 집사님이 떠나고 난 다음에 우리 교회 생기가 돌아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고 좀 진실되게 살려 하는 사람들이 많고 좀 양산동  기도산에도 그렇고 여기 꽃마을에도 그렇고 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교회도 그렇고  이래요. 어쩌든지 진실되게 믿읍시다. 그분은 참 완전히 죽음을 초월하고 고통을  초월해 가지고 기쁨으로 갔어요. 그분 그분은 갔는데. 지금 가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살아 있으리라 하는 것이 확실히 믿어지고 인정이 돼 져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은 묘지에 가겠습니다. 가서 성묘도 하고, 또 거게 가서 그라면 오늘 은혜를  많이 받아요. 가 가지고 나도 이 흙무더기가 오늘 될런지 내일 될런지 몰라요.

젊은 학생들도 그래요. 조용기 목사님이 아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무덤 옆에  마다 기도막을 지어 놨다 했지요? OOO권사님 가 봤어요? 무덤 옆에 그  있다던데? 그거는 그것대로 주 모였구만? 기도실만 오부락이 있어요? 나는 그거  저 무덤 옆에 기도실 하나 있다고 나는, 그랬으면 더 맛이 있는데. 공동묘지 그  옆에 있습니까? 뭐 공동묘지하고 한테 합 했다 하는데, 내가 말 들으니까. 그래  오늘 가서 그것도 생각하고 또 이미 있는 사람 같으면 하지만 간 사람들은 다  아무 일 없으니까 간 사람들은 좀 비판해요. 그 사람은 뭣 좋아하더니마는 그  사람이 지금, 지금 그 사람은 생각할 때에 세상살이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가졌을까? 무슨 후회를 가졌을까? 무슨 원통을 가졌을까? 지금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저게서는 뭣을 보고 뭣을 지금 부러워하고 있을까? 이제  그것을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우리들을 위해서 응원하고 있는데 응원하면서 그  사람이 우리를 응원하는 그 사람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보고 있고 어떻게 지금  소원하고 응원을 하고 있을까 이것을 한번 생각하면서, 제가 먼저 그때 이복순씨  장례에서 그런 내가 설교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 오늘은 그래 가지고 가서, 제사도 안 지내고 하니까 그 묘는 벌초를 단단히  하고 또 그러고 다른 사람은 뭐 청명 한식이 아닌데 묘에 손댔다가는 탈이 나서  죽어요. 병이 들고 탈이 나고 야단이 나요. 그래 놓으니까 꼼짝도 못 합니다. 꼭  청명 한식날이라야 이제 손을 대도록 그랬어요. 우리는 밤이고 낮이고 아무  날이라도 손 댈 수 있어요. 오늘 가 가지고 흙이 모자라면 그 밑에 흙 있는 걸  그래 채워서 그 아주 뻐끔하게 있으면 구멍도 메우고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때 해도 괜찮아요. 그것도 자유라. 안 믿는 사람들은 못 한 개 옳게  못 쳐요. 못을 치며 '여게 오늘 손이 있나 없나?' 손 있는 방 위에는 못 치면 큰  탈 나. 눈에 그만 당장 다래끼가 나든지 쌈지 서든지, 그것도 못도 한개 옳게 못  치고 여게 무슨 방위고 그것도 못 하고 그래 꼼짝 못 해요. 자유를 못 해요.

그런데 우리는 자유야. 마귀에게 대해 자유, 뭐 사람에게 대해 자유, 사람이 암만  대통령이 너 여게 오늘 이거 버마 이거 묘소에 가자 해도, 주일날 가자 해도,  대통령이 가자 해도 나는 오늘 안 가렵니다. 자유할 수 있어요. 자유 못하는 종은  가요. 종은 그만 죄의 종이니까 마귀 종이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하지  않아요.

 이래서, 그런 것도 모두 다 자유니까 묘도 보고 또 그 사람의 생애도 생각하고  '간증자들이 구름같이 싸였으니' 하는 것은 그 사람들, 그 사람은 취할 때 그  사람은 그렇게 뭘 좋아, 술을 좋아하더니만, 그 사람은 노름을 좋아하더니만, 그  사람은 남자를 좋아하더니만, 그 사람은 여자를 좋아하더니만, 그 사람은 행락을  좋아하더니만, 춤을 좋아하더니만, 그 사람은 명예를 좋아하더니만, 자기만 추켜  올리면 좋아하고 어찌 됐던간에 명예 영광을 좋아하더니마는, 그런 것 다 이래  사람은, 인제 세상 뜬 사람은 자꾸 명상을 많이 해 보면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러면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 그 사람이 부럽다, 나는 이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 그래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데 가 있어요? 초상집에 가 있고 또 미련한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어요.

이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가서 은혜를 많이 받겠습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 3차 죽음/ 로마서 6장 1절-11절/ 890219주후 선지자 2015.10.20
63 3차례 안식을 주심/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4화새 선지자 2015.10.20
62 3힘, 4대적 이기는 법/ 에베소서 6장 10절-13절/ 880624금야 선지자 2015.10.20
61 4 가지 배운 것/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60801금새 선지자 2015.10.21
60 4가지 교훈/ 누가복음 16장 9절-13절/ 880302수야 선지자 2015.10.21
» 4가지 구원과 4가지 연구/ 히브리서 2장 1절-4절/ 880826월새 선지자 2015.10.21
58 4가지 기억할 것/ 요한복음 8장 42절-48절/ 870619금야 선지자 2015.10.21
57 4가지 기억할 것/ 에베소서 1장 3절-14절/ 870915화새 선지자 2015.10.21
56 4가지 나뉠 이유/ 마태복음 10장 16절-42절/ 870618목새 선지자 2015.10.21
55 4가지 다해 주와 이웃을 사랑하면/ 누가복음 10장 25절-37절/ 870703금야 선지자 2015.10.21
54 4가지 대적/ 요한복음 16장 33절/ 871011주새 선지자 2015.10.21
53 4가지 도리/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70123금야 선지자 2015.10.21
52 4가지 작정할 것/ 요한일서 3장 16절-24절/ 830608수야 선지자 2015.10.21
51 4가지 정권에 대한 평가기준/ 로마서 1장 18절-25절/ 870622월새 선지자 2015.10.21
50 4가지 주기위한 3가지 방편/ 이사야 1장 18절-20절/ 870527수야 선지자 2015.10.21
49 4가지 준비/ 마태복음 25장 10절-13절/ 880528토새 선지자 2015.10.21
48 4가지 큰 구원/ 히브리서 2장 1절-4절/ 880927화새 선지자 2015.10.21
47 5가지 가르침/ 누가복음 16장 9절-13절/ 880308화새 선지자 2015.10.21
46 5가지 가르침/ 히브리 12장 1절-5절/ 880102토새 선지자 2015.10.21
45 5가지 가르침/ 창세기 2장 15절-17절/ 880203수야 선지자 201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