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네 가지 믿음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22일 화새

 

본문 : 마 14:24-33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렇게 된 이 사실은 많은 풍랑이 있지마는 그렇게 풍랑이 이니까 그때에 이런  형편들이 되어졌다 하는 그런 것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구원의 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구원 계시라는 것을 언제든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구원이 어떠한 구원이라 하는 그 구원을 보여 주시는 구원  도리를 잊어서는 안 되고, 언제든지 우리 구원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인데, 이거는 일시적으로 된 것이 아니 고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하셨고 또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것을 이때에 쓰시기 위해서 배도 그때 그리  됐고 제자들도 그렇게 됐고 바람도 일었고 그런 형편도 되고 다 그렇게 된 것이  돌발적인 일이 아니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모두가 다 예정 되어 있는 일들인  것입니다.

 예정 되어 있는 일들인데, 우리가 늘 들어서 읽어서 잘 아는 대로 그 제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다 건너로 갈라고 배를 타고 갈 때에 그들은 전부  어부들 입니다. 그때 있는 제자들은 전부 어부요. 그러니까 바다에 대해서 다  경험이 대대로 있고 또 능숙하고 거기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사람들입니다.

이런데, 바람이 거슬리니까 그들이 도무지 항해하지를 못 하고 심히 놀라고 심히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니까 그들이 물귀신이라 이라면서  못 견뎌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본능적으로 고함지른 것이지, 사람이 무서우면  고함지르는, 본능적으로 지르는 그 고함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바다의 무서움과 또 물결의, 그 풍랑의 무서움을 인해서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물귀신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니 두려워 말아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말하기를 '만일 주시어든.' 지금 금방  물귀신이라고 말했는데 물귀신인지 주님인지 '만일 주님이거든 나를 명령해서  물위로 주님에게 걸어오라 그렇게 명하십시오.' 이렇게 말 했습니다. 주님이  오라 했습니다. 오라 할 때에 베드로는 배에서 육지같이 내려섭니다. 내려섰고,  육지같이 대려선 그 믿음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내려서 서, 내려섰으면 물에다가  내려섰으니까 빠지는 것이 빠지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빠지지 안하고 물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갑니다. 그 믿음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고 하니 '만일 주시어든' 주님은,  벌써 여러 해 동안 따라다니면서 그 교훈을 들었기 때문에 주님은 어떠하신  주님이라. 주님은 말씀하시면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죽은 자도 살리고 또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말씀이라는 것을 자기가 들었고 따라다니면서 경험했고  체험했고 했기 때문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는, 주님을 향해서 요 소원을 했습니다.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는 요 소원하는 요 믿음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에게 이런 소원을 했을까? 그는 바다에 대한  상식이 넉넉한 사람인데, 사람이 물위로 걸어갈 수가 없는 거라. 물 위에  내려서면 빠져 들어가 죽지 뭐 별 수가 있습니까? 또 물위에 들어가면 그저 빠져  들어가는 것이요 빠져 들어가면 죽는 것이지 뭐 다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요 베드로가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주님이 하라 하시면.

'주님은 능히 할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는 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견고했습니다. 또 내려서면 물에 들어가면 빠져 버리는데 별 수 있느냐? 주님을  의지하는 의지가 거기에 섞인 게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섞인 게 없고  주님을 의지함에 섞인 것이 없었고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당신이  시행한다는 것. 말씀하신 것은 우리만 복종하면 그대로 된다는. 요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믿는 요 믿음과,  그러면 자기가 주님을 볼 때에 저희 소망은 주님이 해 주시는 것을 소망하는,  소망도 뭐 형편이 좋으니까 될 것이다, 사람이 날 도우니까 될 것이다, 조건이  좋으니까 될 것이다, 내 기술이 좋으니까 될 것이다, 내가 열심 이 있으니 내  지능이 있으니 될 것이다 그런 거짓부리 그런 신앙을 가지지 안하고, 다만  '주님이 나에게 해 주시면 된다.' 주님을 바라보는 그 바라봄에 순진했습니다.

순진하고, 주님을 의지함이 아주 순진했습니다. 그거는 물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  그런 어떠한 위험이라도 주님의 그 안보 주님을 의지하는 의지가 순진했기  때문에, 주님의 안보는 그런 게 문제가 없다, 이라면 내가 뭐 죽고 망하고  어떻게 되겠다, 이라면 절단 나겠다, 이라면 직장에서 쫓겨나겠다 이라면 가정이  파괴되겠다 그까짓 것 하나도 생각 안 했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명령대로만 하면 다 주님이 그대로 이루어주신다 하는. 주님을  의지하는 의지에서 두려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바라봄에서,  그거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역사에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소. 물위에  걸어간 일이 역사에 있었습니까? 물위로 걸어가는 일이 역사에 한 번도 없었지만  있었든지 없었든지 어떤 일이라도 주님은 할 수 있는 걸 믿습니다. 또 아무리  위험해도 주님은 거기서 넉넉히 자기를 안보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면,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 당신이 나에게 나만 할라 하면.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것은 나만 하려고 달려들면 주님의 도우심으로써 못할 것이  없는 그걸 또 믿습니다. 또 이렇게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실 때에 자기는 소망이  일편단심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같이 되는 것을 그는 소원합니다. 뭐 다른 어부  질을 해 가지고 뭐 부자되는 그까짓 것도 다 포기해 버렸고 이제는 주님같이  되는 것을 저의 소원으로 했고 또 주님도 또 당신의 형상을 입어라고 당신과  같이 되라고 하는 것이 당신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신과 같이 되어지는 것만을  원하는 요 믿음을 가진 요거주님이 원하십니다.

 아무리 안 될 일이라도 어려운 일이라도, 역사에 없는 일이라도 주님이 해  주시면 해 주실 수 있다 하는 것을 요 바라보는 것, 또 어떻게 위험하고  위험천만이라도 주님은 능히 여기서 보호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의지하는 요  믿음, 또 주님이 명령하시면, 명령하시면 그대로 된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변함이 없다,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실 때에 내가 거절해서 그렇지 나만 거절하지  안하고 나만 복종하면 주님이 다 이행하신다. 요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이제 주님같이 되기를 원하는 요 소원을 가지고 '명하시옵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요 네 가지가 겸해서 한 믿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면 주와 같이 될 것을 자기가 확신하는 요 네  가지가 똘똘 뭉쳐 가지고, 요 네 가지가 똘똘 뭉쳐 가지고 '만일 주시어든,  주님이 아니면 그거는 할 수 없지만 만일 주님이면 나에게 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이것을 나에게 말씀하소서. 해 주옵소서. 주님이 걸어오시는, 물위로  걸어오는 초자연의 걸음, 초자연의 걸음을 나도 걷게 해 주옵소서 하는 요것을  소원했습니다. 요 넷이 똘똘 뭉쳐 가지고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하는 요 간청, 요 네 가지가 똘똘 뭉쳐 가지고 요 간구를 하는  요 간구를 주님이 원하십니다.

 요 간구를 할 때에 주님이 '오라' 했습니다. 오라 하니까 베드로는 그 배에서  물위로 척 내려섰습니다. 내려서는 것. 내려서는 요 행동, 어떻게 내려서는가?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것을 알기 때문에, 주님같이 되기를 원해서 요 넷이 뭉쳐 가지고  내려섰습니다. 요걸 주님이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요 네 가지를 말로만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고 주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요 말만 합니다. 요 말을 하는데 요 말을  하는 데에는 뭐이 들어가야 되느냐? 요 말을 하는 것은 요 말은 배후에 내려 설  주님이 명령하신, 무엇이든지 주님이 명령하시면 그대로 시행할 수 있는 주님이  보실 때에 고 실천의 마음, 고 진실한 마음 고 마음이 속에 있고 해야 되지고  마음은 한 내끼도 없는 것이 입술만 하는 그것은 주님이 보실 때 참 답답하고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 소원을 가지는 요 소원은 넷이 뭉친 소원이다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십시오. 넷을 뭉친 요 소원이 요것이 껍데기  소원이 아니고 주님이 그렇게 명령할 수 있는, 주님이 명할 수 있고 자기는  주님이 명하기를 기다리는 명하면 그대로 실행할 고 중심의 소원을 가진 요  마음입니다. 요 네 가지가 뭉쳐 가지고 진실 있든 고 소원을 했습니다.

 그러면, 진실 있는 소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걸 뭘로 알 건가? '걸어오라.'  배에서 척 내려섭니다. 저기 어디라고 배에서 내려서겠습니까? 지금 이제까지  풍랑에서 어부들이 어부 경험이 많고 헤엄도 잘 치지만 이만 한 풍랑에는 안  된다 해 가지고 다 모두 다 사람들이 맥이 빠지고 찌금 놀라서 견디지 못하는  그런 위험 속에 지금 있는데 거기서 '오라' 하니까 척 내려섭니다. 이 소원을  했는데 이 소원 속에는 주님이 명령하시면 물위에 척 내려 설 수도 있는 요  실행심 요 진실성. 요렇게 내려 설 수 있는 요 바라보는 것 내려 설 수 있는 요  의지하는 것 내려 설 수 있는 이 명령 복종, 내려 설 수 있는 주님같이 되기를  원하는 요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척 내려서기야 누가 못 내려서겠습니까? 내려 설 수 있지요. 아,  주님이 명하는데 왜 못 내려서겠습니까? 내려 설 수 있지요. 어떤 위험한  일이라도 모험성을 가지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한번 해 보자' 모험성을 가지고, 내가 어떤 책자를 보니까 그 사람이  '신앙은 모험이라.' 그거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것 죽이는 마귀요,  대마귀. 그래 가지고 제가 큰 책을 내놓고 유명한 사람이오. 기독교는 모험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모험은 없습니다. '야, 내려 서 보자. 죽느냐 사느냐 한번  내려 서 보자.' 그게 아니오. 그래 가지고 양판 잡고 내려서는 것이 모험인데  기독교는 모험이 아니라. 모험이 아니고 절대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요동치 않는 확고한 걸음을 걸어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주님이 계시고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주님은 사랑하시고 주님은  신실하시니 주님은 모든 걸 할 수 있으시니 주님이 오라 하시니 물위에 넉넉히  자기는 걸어갈 수 있다는 거기에 대해서 뭐, 걸어갈 수 있다는 그것뿐이지  이러다가 빠져 들어갈까 하는 그런 생각 하나도 없이 걸어갔습니다. 물 위에  내려섰습니다. 물위에 내려섰는데 고 소원하는 것이 물위에 내려 설수 있는 고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고 소원을 했고, 그 소원을 했는데. '오라' 하시니까  물위에 척 내려 설 수 있는, 고 내려 설 수 있는 그런 소원을 했고 내려 설  때에, 내려서기야 다 내려 설 수 있지만 폭 빠져 버리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내려섰는데 물 위에 빠지지 안하고 걸어갔습니다. 이 걸어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이런 믿음이 돼야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  때문에 빠졌지 의심이 있느냐 없느냐,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거짓부리가  섞여 있지 안하고 순전한 믿음뿐이냐 믿음 속에 잡탱이가 섞여 있느냐? 있고  없는 표시는 결과로 가지고, 물에 빠져 들어가고 안 들어가는 그것이  표시입니다. 자기가 주님의 명령 순종은 그대로 했는데 물위에 걸어가는  걸어가는 그 걸어감이 되어지는, 걸어가는 그 결과의 권위 있는 행위가 나타나는  그것이 그 속에 볼 수 없는 바라보는 그것이 나타났고, 의지하는 편이 나타났고,  소원하는 것이 나타났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나타났고 요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요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래 가지고 걸어갑니다.

 걸어갔는데 뭘로 가지고 걸어갔느냐? 걸어간 것은 요 네 가지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고. 뭐 풍랑에서 그거 물론 안 되는 일이지만 주님이 해 주신다는 것.

주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 또 그렇게 위험한데 당신을 의지해서 당신의  보호로 문제없다는 것, 또 뭐한다고 물위로 가? 주님같이 되기를 원해서. 물위로  걸어가기를 원하는 것. '명하시옵소서.' 어떠한 일이라고? 그렇지만 '주님이  명령하실 때에 복종만 하면 그대로 다 된다.' 요 신앙을 가졌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시행하리니" 우리가 주님에게  구하면 주님이 당신이 시행하십니다. 당신이 시행하시는 것은 뭐 당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붙들고 시행하신다 그말이오, 우리를 붙들고.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무엇 때문에 시행하느냐?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구하면 그대로 되니까 죄를  짓는 일을 우리가 우리가 구해서 죄 짓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욕이 되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참으로 칭찬할 만하고 모범할 만하고  본받을 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하고 덕이 되고 이렇게 옳고 바르고  참되고,  만일 그 사람이 판사라고 하면 주님에게 구하면 '네가 구하는 것을 내가 시행해  주겠다. 네가 판사 자리에 앉아 가지고 나한테 이 판사 노릇을 잘하게 해  주옵소서. 이거 판결 요번 문제가 참 국제적 문제고 아주 어려운 문제인데 이거  판단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판단을 주님께서 바로 해 주옵소서 이라면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주님이 재판해서 판단을 한다 말이오. 주님이  판단하셔. 주님이 판단하셨는데 그 판단 한 그것이 나중에 가서 보니까 세계에  국제적으로나 모든 인류들이 역사적으로 볼 때에 '아이구. 그 판단 아주 꺼꾸로  했고 더럽게 했고 잘못했다.' 이리 되면 하나님께 욕이 되겠소? 영광되겠소?  욕이 된다. 그 말이오. 이랬는데, 인간의 지식이 도달치 못해도 떡 그래  판단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모두 처음에는 머리를 가웃가웃 이래 쌓지만 앞으로  차차 차차 그 일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니까 '야, 그 판사는 명판사다.' 온  세계가 보고 '아, 그 일에 대해서 그렇게 판단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모두 다  머리가 가웃가웃 그랬는데 그것이 한 달이 지나가 두 달이 지나가 일 년이  지나가 이렇게 이 년이 지나가니까 모든 세계에서 일찍 잊어버리는 망각성 있는  인간은 세상도 점령 못 합니다. 다 세상도 점령하는 사람은 그 일을 적어도 십  년 이십 년 두고 이렇게 미루어 생각하면서 보자 보자 이렇게 모든 것을 더 넓게  깊게 천천히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 정권도 잡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것이  한 달이 지나고 보니까 '그 사람 판단이, 한국 나라의 그 판단이 그게 우리  생각에는 도무지 맞지 안했었는데 일이 돼 나가는 거 보니까 그 판단이 옳은 것  같다.' 몇 달이 떡 지나고 보니까 '아, 한국에 인재가 있다. 우리보다 훨씬 나은  인재가 있다. 그 판단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세월이 지나가고  보니까, 우리와 처음에는 정반대의 판단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가고 보니까 그  판단이 권위 있고 그 판단이 옳았다. 한국에는 모든 일에 미리 아는 예견자가  있다. 한국에는 예견자가 있다. 한국에는 의인이 있다' 그 판단 하나로써 모든  법계에 있는 머리되는 사람들은 그만 한국을 보고 떱니다. '야, 그것은 우리보다  그 판단하는 것이 뛰어났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 나라에서 뭐 하는 것은 그렇게  깔보지 못한다. 그 사람들 하는 것이 참 알속 있고 도무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런 일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주님이 시행하기 때문에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어떤 사람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다.' '야 예수 믿는 것은 참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효험이 있고 뭐 초자연의 능력의 역사가 있다.' 그래야  영광될 것 아닙니까? 모든 일이 이렇습니다.

 그 사람 그 일은 절대 낭파 될 일이오 그거는 만의 하나도 이루어지지 안할  일인데, 그 일이 뭐 죄되는 일이냐? 아니야. 이루어지면 좋기야 좋고,  이루어지기만 하면 좋기야 좋지만 어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가정은 완전히 파괴가 된 가정인데 어떻게 그 가정이 설  수가 있겠느냐? 그 사람은 완전히 실패가 되는데 어찌 그 가정이. 그 사람이  실패가 안 되고 일어서겠느냐? 이랬는데 그리 척 일어서니 '야. 거기에는 참  하나님의 능력이 계신다. 초자연의 능력이 있다. 그 사람이 궁지에 빠져 가지고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 궁지에서 벗어난 것 봐라.'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 가지고 궁지에 빠졌는데 살아나오니까 '야, 하나님 계신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안했습니까? 우리가 주님에게 구하는 것이 죄되는 거는 구하면  주님이 들어 주지 못합니다. 그러 나 성경에 약속한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은  주님에게 구할 때에 주님이 다 시행해 주십니다.

 왜 시행해 주느냐? '이는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하여금, 아버지로 하여금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이대로 시행하게 되면 '아, 하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참으로 계신다.' 강퍅한 그 다리오, 왕도 '아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신(神)중에 지극히 큰 신이다. 그 신은 참 진실한 신이다. 당신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는 신이다. 그분은 또 못 할 게 없다.

사자 구덩이 속에서도 구원하시니까 능치 못하심이 없다. 이 신은 참신이다.

나도 이 신을 섬기겠다. 우리나라 백성들도 다 이 신을 섬기자. 만일 이 신에  대해서 거슬리는 말을 하든지 행동하면 그는 다 사형을 내리겠다.' 하지  안했습니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4절, 15절 이중 거듭 말했습니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이 베드로가 주님을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오 모든 크고 작은 걸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바라봤기 때문에, 의지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순종만 하면 능치 못함이 없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바라봤기 때문에, 공자같이 되기를 원하지 안했고 석가 같이 되기를 원하지  안했고 뭐 노자같이 되기를 원하지 안했고 톨스토이같이 되기를 원하지 안했고  그는 그렇게 다른 무엇을 아무것도 되기를 원하지 안했고 예수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떡 소원하는 게, 물위에 내려서면 자살하는 행위지 그거  되겠습니까? '물위로 날 명하여 걸어오게 하소사 고 말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만일 주시어든 물위로 걸어서 오라 하소서' 하는 고 말에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도 속에 들었고 위지하는 것도 들었고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도 들었고 당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이 된다는 것도 들었고 참 주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그것도 들었고 속에 들었는데, 알맹이인지 거짓부리인지 고거는 뭐이냐? '오라'  척 내려서는 그게, '오라' 척 내려서는 그것이, 그 내려서는 그것이 뭐이냐?  속에 원한 고 원함의 알맹이가 가득 찼고 알곡이 있다 말이오. 충실하다 말이오.

 내려서기야 내려섰는데, 내려서는 거는 베드로가 내려 선 것 아닙니까? 물위로  걸어가는 거는 베드로가 걸어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라 말이오. 척  내려섰는데 내려서다가 물에 푹 빠졌으면 그 사람은 제 주관적 신앙이지  하나님이 도왔습니까? 하나님이 안 돕고는 안 되는 그런 확고한 신앙이기 때문에  물위로 걸어가게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 다 말이오. 주님 안해 주시면 안  된다 그거요. 그 믿음인데, 믿으라고 해서 믿는데 어떻게 거부할 수가 있습니까?  그거는 주님이 범죄하는 거라. 안 된다 그거요. 못 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내려서니 그거는 베드로 주관이 들었지만 내려서니까 물 위로 떠벅  떠벅 걸어가는 그것은 주님의 권능이라. 이 초자연의 능력. 초자연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일할 수 있는 그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또 주님이  명령하시면 죽는 거나 사는 거나 온 세상이 반대해도, 주님의 명령이면 뭐  천하가 반대해도 그까짓 게 무슨 일이 있느냐? 천하보다 주님의 능력이 크기  때문에 이 모든 피조물을 압박할 수 있고 피조물을 압도할 수 있는 하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소원을 해야 되고 이 소원을 할 때에, 그러면, 참말로 저게  진실한 소원이냐? 주님이 '오라' 하시니까 배에서 물위에 척 내려 설 수 있는,  모든 역사에 있는 것을 다 부인하고 주님이 명령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요  확신을 가진 요 믿음을 가지고 척 내려섰다 말이오. 내려섰어. 내려서니까 물에  빠지지 안하고 걸어갔소.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나를 붙들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합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해요. 이제는 뭐이냐?  주님을 바라보는, 주님을 바라보는. 주님이 무엇이든지 다 해 주신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틀림이 없다. 주님의 능력은 날 안보하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했는데 주님이 안보하시는 안보도 흔들렸고, 주님을 봐라보는 소망도  흔들렸고,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요것도 흔들렸고, 주님같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도 흔들렸고 요 네 가지가 병들었습니다. 요 네 가지가  병드니까 빠져 들어간다 말이오. 요 네 가지가 병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뭘 보고  아느냐? 물에 빠져 들어가는 이게 병들었다 말이오. 무엇을 가지고 그 사람이  확고한 진실한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느냐? 물위로 걸어가는 것 보니까, 그게  결과라. 그게 표시라. 그게 표적이라. 물위로 걸어가는 것이  빠져 들어가는 것은 뭐이냐? 네가 의심한 증거라 말이오. '이 적게 믿는 자야.'  적게 믿는다는 것은 처음에 시작할 때는 믿어 가지고 물위로 걸어왔는데 물위로  걸어오다가 마지막에는 차져 들어갑니다. 그게 적게 믿는 거라. 믿다가 동가리가  끊어져 버렸어. 그라고 다시 해석하기를 '왜 의심하느냐?'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것, 의지하는 것, 또 복종하는 것, 주와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 요것이  흔들렸다 말이오. 의심한다 말은 흔들렸다 그 말이오. 의심한다 말은 나사가  풀어졌다 말이오. 나사가 풀어졌다. 흔들린다. 풀어졌다. 풀어졌다. 의심한다,  풀어졌다. 그것을 보입니다. 주님은 요 신앙을 원하십니다. 요 신앙 가지고 모든  것 다 돼 가요.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를 이긴 것도 다 요 신앙 가지고 이겼습니다. 요 신앙을  양보하지 않으면 주님에게, 요걸 양보하려고, 양보하라 하고 양보 안 할라 하고  요 시비입니다. 어제 사회한 ○○○목사님도 그때 일본 나라에는 모든 군수 공장  그런 공장은 군인들이 다 사장이 돼 가지고 전부 그때는 통제 경제와 같이 개인  재산이 있지만 모든 경제 관리를 전부 누가 하고 있느냐 하면 군에 갔던  군인들이 전부 사장입니다. 나라에서 강제로 군인을 시킵니다. 암만 돈이 많아도  제가 사장 못 합니다. 군인들을 사장시키고 이러니까 전부 군인 출신들이 하기  때문에 전부 다 군법적으로 다 해 나갔습니다.

 이랬는데, 그들이 이기는 것은 천조 대신이 이기게 한다. 이라기 때문에 온  백성을 천조 대신에게만 복종을 시키면 나라는 흥왕된다. 그걸 의심 없이 믿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뭐 그들이 뭐 신사참배라든지 아침마다 시작할 때에 해거  요배라든지 국기배례라든지 하는 그런 것이 철두철미했습니다. 이러니까, 아침에  모이면 조례 시간에 딱 모여 가지고 전부 다 군복 다 입고 장성들인데.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합니까? 참 일본 사람을 욕하지만  일본 사람을 나는 은인으로 생각합니다. 36년 동안 뭐 일본 사람이 착취, 공연히  그따위 소리 하는 것이지 36년 동안에 우리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해택을 입었고 그들이 우리나라에 이 철도도 지금, 철로도 그 사람들이 놓아  놓은 철로로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습니다. 무식한 자와 유식한 자가 둘이  붙으면 무식한 자가 유식한 자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 같지만 이용당하는 것은  잠깐이고 무식한 자가 유식한 자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착취해 가지고 결국은  유식한 자가 되기 때문에 무식한 자와 유식한 자가 붙어 놓으면 무식한 자가  유익되지 유식한 자가 유익되는 것, 없습니다. 높은 만당하고 구멍하고 둘이  붙어 놓으면 이제 뭐이냐? 높은 만당바위 있는 흙이 다 슬슬 허물어져서 구멍을  채워 버리지 구멍의 흙이 높은 만당을 도와주는 것 아닙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와 붙으면 결국 부자가 손해 가고 가난한 자가 유익 보지 손해 가는 것 없다  그말이오.

 그랬는데 떡 이렇게 조례할 때에 척 서 가지고 일본 말로 '차렷' 이래 가지고  '국기에 대해서 경례' 이라면 다 이래 가지고. 다 하지 않습니까? 이라는데  거기에 직공 노릇을 하니까 섰지만 거기서 국기에 대해서 서기는 섰지만 절할 수  없고 또 신사에 대해서 아침마다 그 앞에 세워 놓고 붙여 놓고 절하는데 절할 수  없고 이라니까 다른 사람은 다, 일본 사람은 또 겸손해서 조선 사람처럼  건방지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건방져. 모두 건방진데 그  사람들은 건방지지 안해요. 일본 사람들 앞으로 좀 점령을 더 할 것이오. 다만  병은 뭐이냐 하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없어. 그게  문제지. 그 사람들은 절을 하면 한국사람 미국 사람은 이라면. 이 눈만 껌적  거리면 이게 절입니다. 눈만 껌적 거리면 절이오. 그 사람들은 그리 안해,  '경례' 하면 허리를 굽혀서 이래 해.

 이러니까 신사참배 신사에 대해서 '경례' 하면. 체 경례, 체경례 하면 허리까지  굽혀. 이래 가지고 이만한 사람이 이만침 굽혀집니다. 이러니까 꿋끗하이 섰으면  환하이 볼 것 아닙니까? 보면 그만 잡아다가 그거는 당장에 그때 말로는  사형이라. 군법에서는 사형이라. 이래도 거기서 가슴이 도근도근 하지만,  도근거리고, 도근거리면 또 안심하고, 안심하고 도근거리고 안심하고 도근거리고  도근거리고, 안심하고 왜?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다니엘도 문제가 없었다,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당신이 다 안보해 주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 하는 것을 요것을 고 마음에 확신을 가지면 '문제없다.'  안심하고 뻐뜩 섰고, 요게 의심이 들어오면 '아이구! 나는 이제 죽는다.' 발발  떨려서 낯이 새파래지고, 믿으면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고 안 믿으면 새파래지고  질리는 이것이, 그래 가지고 계속해 싸워서 승리를 하고 나왔습니다.

 마지막에 거기에 있으면 너무 그러니까 그 회사 그만 사면하고 나와야 되겠는데  나오면 배급을 안 타면 굶어 죽는다 말이오. 그때는 배급이 아니면 양식. 쌀 한  내끼도 얻을 수가 없어요. 일본나라에 그랬는데. 배급 타러 이래 가지고 배급에  이거 증서를 받아야 될 건데, 가면 왜 네가 이 좋은 회사에서 나왔노 물을  것이고, 네가 그러면 종교가 뭐이고 물을 것이고, 신사참배 하느냐 그것 물을  것이고, 의례히 그것 묻는 것이니까. 묻는 것이니 만일 이거 묻는 날이면 내가  노루 피해서 범 만난다. 내가 이거 들어가면 이거는 뭐 꼼짝 없이 그만 사형  당한다. 이렇지만 그래 이거 가 가지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문을 열고 들어갈라  하다가 문고리를 잡고 마음에 의심이 나니까, 의심 이 나니까 일이 안 돼.

의심이 나면 일이 안 되니까. 안 되니 그거 잡고 못 들어가고 이래 가지고  거기서 기도를 하고 의심 없이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고 주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들어오면 문을 열수 있고 믿음이 없으면  문을 못 열고 이래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문을 확 열고 썩 문을, 믿으면 '뭐  주님이 계시는데' 확 열고 들어가니까, 들어가다가 또, 들어가면 저 만침 저기  자리 있는데 가니까 또 의심이 들어온다 말이오. 이 의심 이 들어오니까 못  견뎌서, 의심이 들어오니까 거기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면 '미친 사람 아니가?'  이 믿음부터 준비해야 되지 거기 섰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말이오. 거기서  가지고 또 눈감고 또 하니까 믿음이 들어오면, 믿으면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주님은 모든 데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수가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 말씀을 지킬 때에 나에게 함께 하신다' 요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안하고 믿음을 가지고 그 앞에 척  가니까 외나 대장이라는 그 사람은 없고 그 밑의 차석이 있어. 차석이 있는데  가니까 어디서 왔냐? 소리도 안 하고 뭣 때문에 왔나?' 이것 때문에 왔다 하니까  쿡 찍어 주더래요. 그래 찍어 가지고 이래 가지고 나오는데, 나오는데 또 이  의심이 요놈이 들어오려고 지금, 의심이 들어오면 대번 잡혀서 돌아간다 말이오,  이제 들어올라 해서 나오다가 거기서 또 믿음을 또 살려 가지고 나오고 문을 척  열고나오니까 '이제 됐다' 하니까 이놈의 의심이 또 들어온다 말이오. 이래서  거기 서 가지고 가지 안하고 또 멈춤 멈춤 이러다가서 그래 저기 가니까, 집  대문을 나가려고 하니까 대문 나갈 때 또 의심이 들어와 '인제는 됐다.' '되기는  어디 돼? 뭐 돼, 이놈아? 네가 아무데 가서 숨어 앉았어도 잡아들일 수가  있는데. 믿음이라야 되지.' 또 이 믿음을 갖추고 그래 가지고 뛰어갈 것도 믿음  안 뺏기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서 걸어서 그래 가지고 와 가지고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를 안 하고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분을 내가  존경하요. 거창 있을 때도 다른 사람이 다 배척할 때에 나는 그분을 옹호 했고  또 그저 그때부텀도 나는 교회에 모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말 하면  교역자로 모시는고로 ○○교회 보낼 때도 내가 말해 가지고 ○○교회 갔습니다.

가나 결과는 좋은 결과는 맺지를 못했소. 못 해도 제가 보냈어요. 나도 체험이  있고, 그분이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존경을 합니다.

 아무라도 그래 이겼소. 나도 왜정 말년에 그 사람들에게 뭐 가지고 내가 소래  큰소리하고 그래 가지고 그래 이겼겠읍니까? 단지 요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것 요 세 가지 가지고 이겼어. 요게서 잡탱이만 들이지 안하고  '명하시온소서' 배에서 물에 척 내려 설 수 있는 의심 없는 고 믿음. 또 의심  없는 믿음으로 배 위에서 내려 설 수 있는 의심 없는 믿음. 의심 없는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셔서 물 위로 저벅 저벅 걸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이 있는, 그 결과가 있는 믿음.

 이랬는데, 이것이 풍랑 보고 무서워 빠져 들어간다. 주님이 해석하기를 '적게  믿는 자야, 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그것이 중단됐느냐? 의심하는 자야, 네가  그래 똘똘 뭉친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데 이 믿음이 흐려지지 안했느냐? 그걸  말씀했습니다. 흐려질 때에 그 낭파된 것을 그대로 빠져 들어가지 안하고 '주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이라니까 즉시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 우리에게 계약이요 이거, 계약. 흐리면 안 된다 가지면 그대로  능력이 와서 역사한다. 능력이 역사하는 데 네가 의심하면 안 된다 그렇게 믿던  확고한 신앙이 그것이 중단되면 하나님의 능력은 일할 수 없다 중단될 수밖에  없다.

 네가 똘똘 뭉친, 요 네 가지가 똘똘 뭉친 요것이라야, 주와 같이 되기를,  어떻게 주와 같이 되겠느냐?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주와 같이 되지.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주와 같이 되지. 주님의 명령하는 대로만 하니까 주님이 명령해  주시면 되지. 요 네 가지가 똘똘 뭉친 요 신앙을 가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것만 풀리면 안 됩니다. 이러나 또 그 다음에 빠져 들어 가는 고 경우를 해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요래 나가다가서 요게 흔들리면 빠져 들어간다,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베드로가 와 걸어가지 못하고 빠져 들어갔느냐? 빠져  들어간 것은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그런 것이오.

 빠져 들어가니까 그때에 '주여, 구원하옵소서'하니까 즉시 손을 내밀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럴 때는 기도하라. 즉시, 지체하지 안하고 즉시 너를 구원하신다:  그러니까, 우리 믿음이 모자라면 믿음을 또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해 가지고.

새롭게 해 가지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요 믿음이 있어야 돼요.

요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요것이 속에 알맹이가 들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기도하면 주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은 뭣 때문에 이루어 주시는가? 뭣  때문에 이루어 주신다 했소? 저 ○○○선생, 뭣 때문에 이루어 주신다 했소? 예?  뭣 때문에 주님이 이루어 주셔? 아, 이거 둘 다 한목 죽으면 못 사는데,  하나라도 살아야지. 하나 죽으면 하나라도 살아야지. 남편이 죽어 있으면  아내라도 살아야지. 그래야 지옥을 안 가고 천국을 간다 그말이오. 그래야 구원  일을 헛일 안 하고 구원 이루고 가. 둘 다 믿음 떨어지면 그까짓 것 암만 살아  봤자 오늘이라도 구름 타고 오시면 다 불타 버리고 헛일 아닙니까? 택자는 구원  얻어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만 아무 기능 없이 영광 없이 가면 뭐 할 겁니까, 그  천한 것? 뭣 때문에 주님이 시행해 주셔? 이거 참 바보네. 통통 바보네. 둘이 다  다 죽었구만. 자 뉘한테 물어 보꼬? 저 ○집사, 아버지의,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로 하여금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해서. '아, 하나님 참  계신 다. 하나님 참 계신다. 히야, 그거는 천부당 만부당 한 일인데 그 일이  어떻게 된다 말이고? 하나님이 계신다. 그거는 막 박살이 돼 놔서 그거는 도무지  만의 일도 천의 일도 안 되는 일인데 어떻게 그리 됐노? 하나님이 계신다. 그것  보니 하나님이 계신다.' '네가 나에게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시행해 줄  것은 너 보고 시행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대로 시행을 해야 인간이 모르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 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고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구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보여져서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했다 말이오. 나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그 근본이  그렇기 때문에 튼튼하고 변동이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 아침에는 저 뒤에까지 두 줄이 다 찼지만 오늘 아침에는 저래 많이  비었네. 또 약하다 말이오. 이틀 아침을 계속을 못 해요. 우리 인간은 그래.

계속 '못 하나 또 달라들어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도 꺼꾸러져도 또  일어서고 또 달라 들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고 믿음이 우리 속에 있어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우리 속에 가득 차면 우리는 하나님같이 됩니다. 능치  못할 게 없어.

 다른 것 무슨 구멍 뚫어 봤자 그 구멍이 이북의 김일성이 땅굴 파는 것  한가지지. 땅굴 파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그 손에 붙여야 그게 효력이 있지  붙이지 안하면 그건 참 좋지 못한 결과가 납니다. 땅굴에 자기네들 다 죽을 구멍  파고 만 거라.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그리 되고 우리 믿음 없으면 여기 당장  한번 꽝 하면 서울이 확 공중으로 날아가서 다 연기뭉텅이가 되어 확 날아가  버릴지 몰라. 먼지가 되고 다 파괴될지 몰라요. 지금 뭐 한 이십 개 판다 하는데  이십 개 파는 그거는 계산이 쉽습니다. 그저 남한에서 제일 중요한, 중요한 도시  이십 개 도시 그 밑에 파 놓고 그래 놓고 꽝 하면 헛일이라.

 내목 대장이 소련을 다 점령한 것이 땅굴 파 가지고 점령했습니다. 땅굴 파는  줄 몰랐거든 그때. 남보다 앞서면 이기요. 땅굴 파 가지고 그들이 제일 강한  고지가 이래 있는데 이래 가 가지고 되가지고 거기서 폭발시키니까 갑자기 확  날아가 버리니까 그만 그들이 '아이구, 이들은 당할 수 없다.'그래 놓으니까,  천지가 그래 돼 놓으니 '이들은 대항 할 수가 없다.' 그래 가지고 내목 대장한테  와 가지고 머리를 숙이고 이 러시아 대장 스테슬이 와 가지고 절을 하면서  굴복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걸 못 당해. 누가 당해요? 비행기? 비행기  소용없어. 암만 때려 봤자 그 밑에 소용이 있는가, 밑에 가서 저 밑에 있는데?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데. 얼마나 때려서? 그거 다 때릴라 하면 어디든지 모르고  때리니까 우리나라 다 잿바닥 될 터이니까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나님의  도우심이라야 돼.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돼. 땅굴 파는데 여기인 줄 모르고 자꾸 폭탄만  많이 던지면 되는가? 미국이 암만 폭탄이 많아도 이것 다 폭파시킬라 하면 그거  없어져요. 그라면 땅들이 다 잿덩어리가 되는데 뭐 이기면 뭐 합니까? 사람 다  죽고 없는데.

 이러니까, 이것은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둔해서 거기에 대해서 도무지 판단이 안 선다 그거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복종하고 하는 이 사람이 앞으로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만 필요 있소. 나머지 사람 필요가 없어. 다 유황불 구렁에  쓸어 넣을라 하고 있소. 나머지는 다 필요가 없어. 먹이고 입히고 당신이 길러  봤자 당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복종하는 이것을 원하지 그 외의  것은 당신이 원하지 안하시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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