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신앙

 

1987. 11. 29. 주일오후

 

본문: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 말씀을 새벽기도에 나오지 안하는 사람들은 여러번 듣지를 못했지마는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번 증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는 것은 이 말씀과 자기와 자기의 생활과  또 자기에게 맺어진 그 결과를 대조해서 ‘나는 이것이다, 나는 요면이 잘못됐다,  나는 요면이 바로 돼서 요런 결과를 맺었다, 나는 행동은 하나 결과가 없다.’  자기가 자기 행동과 자기와 자기에게 닥쳐진 모든 그 결과와 대조해 가지고  거게서 모든 더러운 것은 벗어나야 되고 좋은 것은 취해야 되는 이 실상의 무슨  효력이 있어야 되지 효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꾸 말씀을 계속 증거하는 것은 귀로만 듣고 지식적으로만 알지  실지로 ‘내가 이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아무런 속에  깨달음과 각오가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번 증거했기 때문에 또 처음으로나 혹 두번째로나 이래 세번째로나  듣는 사람들은 좀 뭐 무슨 말인지 모르련지 몰라도 그저 여러번 들은 사람들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게 첫째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제자들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는 그 떡을 먹고 방금 지금 배타고 가는 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에게 대한 욕망이나 또 감사의 기쁨이나 열심이나  믿음에 대해서는 지금 불이 붙은 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불이 붙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무엇이든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된다’ 세상에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서 오천 명을 두고서  나눠 준다고 하니 누가 그 일을 실없게 보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지마는 제자들이 순종해서 떡을 나눠 주고 보니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에 남아 있었다.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그들이 믿음도 생겨졌고, 또 뜨거운 열심도 있었고, 주님에게  대한 소망도 가지고 그런 때입니다. 그때에 주님이 ‘배타고 건너편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기쁘고 즐거운 마음 가지고서 배타고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가는데 처음에는 배가 아무 어려움 없이 순순히 이렇게 수십 리 나갔습니다. 여게  수리라 말하는 것은 수십 리를 말합니다. 여기 우리는 일 리를 가리켜서 십 리라  이렇게 말하는데, 수십 리나 바다에서 떠났습니다. 아마 그러니까 여게서 말하면  저 벌써 괴정이나 신촌이나 그만치 육지에서 멀리 지금 배가 떠난 셈입니다.

그만치 떠났는데 차차 차차 바람이 일어나고 물결이 거슬려서 처음에는 잘 가던  배가 가지 않습니다. 안 가니까 이 사람들은 더 가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쓸수록 배는 가지 아니하고 바람은 더 일어납니다.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을 믿고 바라보고 믿음에 열심을 가지고 주님 시키시는 대로  지금 합니다. 배타고 가라 하는데 배타고 가니까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그렇게 틀림없이 주님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말씀대로 그대로 한다 말입니다.

그대로 열심히 하고 기쁨으로 하고 힘써서 그렇게 주님 시키시는 말씀대로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했고, 기쁨을 가지고 했고, 열심히 했고, 또 주님 만날  소망을 가지고 했고, 열심히 지금 노를 저어서 갑니다. 가니까 배가 술술 잘  갑니다. 가더니마는 그만 바람 불고 풍랑이 일어나서 못 갑니다.

못 가게 되니까, 배가 빨리 안 가고 슬슬 그래 부슬려서 겨우 쪼매씩 가니까 또  이들은 더 열심히 지금 배 젓고 그저 키를 잡아서 가는 거게만, 배 부리는 데만  열중했지 그만 가다가 잊어버린 거 있습니다.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주님을  잊어버렸어.

주님 잊어버린 증거가 어데 있는가? 잊어버린 증거는, 나중에 주님이 저희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찾아오시니까 물 위로 걸어오신 것이 인간에게는 어렵지마는  하나님에게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주님의 하시는 일은 전부 기적으로 다  행하셨었는데.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서 유령이라 물귀신이 온다고 고함을 지른 거  보면 그들이 주님은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주님을 그들이 생각했으면 왜 난데  없는 물귀신이라고 말할 게 뭐 있습니까? 아이구 주님이 저 물 위로 걸어오신다  이러지. 이게 주님을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증거요.

여게서 우리 믿는 사람이 저 믿고 기쁘고 즐겁고 뭐 예수 믿는 사람이 또 주일날  예배 드리고 난 다음에는 믿음을 가지고서 열심히 지금 주님의 뜻대로 순종해  삽니다. 열심히 순종해 사요. 아무리 열심히 순종해 살아도 이 제자들이 그  마음에 주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마음에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이 나를 가라 하셨으니 주님 명령 따라 간다는, 주님을 그 마음 속에  생각하고 또 주님 만날 것 생각하고 어쨌든지 그 마음 가운데에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그 일을 행하고 있고 또 주님 만날 소망으로  인해서 하고 있는, 주님으로 인해서 하는 것과 주님에게 소망하는 것과 요 두  가지를 놓쳤어.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이 전부 이거라. 자기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성경  말씀대로 한다고 뭐 주일도 지키고 뭐도 지키고 자꾸 이래 열심히 예수 믿는다고  하는데 일이 안 돼. 낭파가 돼. 점점 일이 잘 되지를 안하고 낭파가 되고 자꾸  실패가 된다 그말이오.

그렇게 되는 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하는 것을 여게서 지금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잘 지켜서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는데 왜 일이 잘 안 되느냐? 이 면이 잘 되면 저 면이 안 되고 또 그  면이 안 되면 요 면이 안 되고 자꾸 퉁퉁 터져서 낭파만 자꾸 나타나고 일이 잘  안 된다 그말이오. 우리가 소원한 대로 소원 성취가 안 돼. 성사가 안 되고  승리가 안 돼.

왜 안 되느냐? 주님의 뜻대로 하는데, 주님의 뜻대로 바다 건너로 가라 하는 대로  말씀대로 배타고 건너가는데 ‘배타고 앞서 가라’ 했는데 배타고 앞서 갔으면  주님 시키시는 대로 다 했지 뭐 안 한 것 뭐 있습니까? 주님 시키시는 대로 다  해도 안 된다 그거요. 왜 안 됐느냐? 안 되는 이유는 네 마음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안한 이것 때문이다 그거요. 요것 요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행동은 주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행동은 하면서 마음에는 주님 모시지 안하고  전부 그 행동은 누가 합니까? ‘주님이 하라 해서 한다’ 주님 모시고 주님이  자기에게 보고 계시고 자기 하는 일에 주님이 감찰하시니 ‘주님이 축복 주시면  잘 되고 주님이 축복 안 주시면 안 된다. 주님에게 모든 주권이 되어 있다. 또  주님이 나를 사활로 대속을 하셨다.’ 이렇게 주님이 자기에게 한 일 많으니까  이런 주님임을 자기가 깨닫고 이 주님을 자기 마음 가운데 모시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으로 인해서 행동을 하지 안하고 주님 잊어버리고  행동만 합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만 하는 데에는 환난과 실패뿐이다.

고통뿐이고 근심뿐이다. 아무리 주님의 말씀대로 행한다 할지라로 주님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만 하는 거게는 모든 것이 낭파되고 실패되고  고통되고 무슨 일이든지 전진이나 향상이나 성공이나 그런 것은 없다 하는 것을  요게서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이런 형편에 있으면 나는 이런 형편에 있다 하는 그것을 깨닫고  여게서 정신을 차려야 되지.

왜 이렇습니까? 노를 잘 못 저어서 그렇소, 키를 잘 못 잡아 그렇소? 배를 안 타  그렇소? 주님이 가라 하는 목적지에 가려고 하지 안해 그렇소? 주님이 가라 하는  그 목적을 향해서 갔고, 타라 하는 배 탔고, 노를 저으라는 노 저었고, 키를  잡으라는 키 잡았고, 또 열심히 가려고 애를 쓰고, 하나도 주님에게 거슬리는 것  없었어. 그대로 다 했어.

다 했는데 하나 없는 게 뭣이냐? 그와 같이 배 젓는 데다가 자꾸 전심 전력  기울이다가 보니까 그만 주님 잊어버렸어. 주님을 잊어버렸어.

아무리 장사라도 그 사람이, 자기 몸에 건강을 위해서 뭐 운동도 오만 거 다 하고,  체육도 다 하고, 뭐 영양 있는 걸 자꾸 먹고 애를 써도 자기 생명 끊어질 것을  생각지 못했다 말이요, 생명 끊어질 걸 생각지 못했어. 그래서 이렇게 위생 주의를  만반의 위생 주의를 다 하는데도 생명이 딱 끊어졌으면 헛일이라.

만일 무슨 독약을 먹어서 생명이 끊어져 버렸든지 무슨 그리 안 하면 안 된 무슨  힘에다 부딪혀 가지고서 생명이 끊어졌든지 생명만 딱 끊어지면 만반의 준비해  놓은 일이 전부 헛일이오. 만반의 준비해 놓은 일이 전부 송장되는 것뿐이고 썩는  것뿐이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생명 떠나면 그만이라.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 신앙 생활을 아무리 구비하고 주의하고 갖추고  열심히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생명이신 주님 잊어버리면 그만 그 시간부터  썩는다는 거 요거 알아야 됩니다. 썩어.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뭐 가지고 했소? 처음에는 주님이 가라 해서 주님 명령  따라 주님으로 인해서 배 탔고, 주님 인해서 또 노 저었고, 주님 인해서 갔지만  그만 주님 잊어버리고 나니까 순전히, 노를 젓기는 젓는데 누가 저었소? 누가  저었습니까? 전부 저거 인간들뿐이지, 인간들뿐이지 주님은 떠나버렸어. 주님  잊어버리니까 주님 없고 인간들뿐이라.

인간들뿐이면 아무리 열심 있고, 지혜 있고, 지식 있고, 슬기 있고, 명철해도 소용  없습니다. 주님과 선이 끊어지면 헛일이오. 끊어지면 헛일이라.

마치 전구를 놓고 모든 모타를 놓고 전기 시설을 아무리 이와 같이 해놨다  할지라도 그것만 있으면 될 줄 알면 헛일이라. 전기 스위치 끊어져 버리면  그만이지 스위치가 끊어졌는데 뭣이 움직입니까? 스위치 딱 끊어버리면 그만이라.

스위치만 딱 끊어지면 그만 불은 안 오고 모든 기계는 움직이지 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제가 열심히 예수 믿고 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 속에 주님을  생각하는 게 없으면, 주님 생각하는 것 없고 주님 사모하는 것이 없고 ‘나는  주님의 것이라. 내가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라. 사나 죽으나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인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산다”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 주님으로 인한 것, 주님으로 인한 것, 주님과 연결돼서 주님으로  인한 것, 요것 끊어지면 헛일이라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것을 잡지  못하면 헛일이오.

우리가 주일 지키는 것도 중합니다. 또 우리가 이것 저것 죄짓지 안하려고 애쓰는  것도 중합니다. 정직하게 깨끗하게 살라 하는 것도 중합니다.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겸손한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것 중요하요. 도덕 생활이나, 사회 대한  생활이나, 교회 대한 생활이나, 가정에 대한 생활이나, 인간에 대한 생활이나,  물질에 대한 생활이나 모든 생활을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중요하지마는 거게는 생명이 없다. 중요하지마는 거게는 생명이 없어. 그것이  생명은 아니라. 생명은 아니라. 주님이 생명이라, 주님이 생명.

이러기 때문에 주님 잊어버린 생활은 아무리 해도 그 생활은 마귀 생활이다. 주님  잊어버린 행동은 아무리 구비하고 철저하게 잘한다고 해도 마귀의 그 모든  행동이다.

왜? 우리에게 주님 잊어버리면 자기뿐입니다. 주님 잊어버리면 자기뿐이오.

주님이 와서 나를 주관하시면 나는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은 나의 생명이 되고  나의 주가 됩니다.

이러기에 주님 잊어버리니까 그들이 나중에 어데까지 타락을 했느냐? 주님을  보고는 귀신이라, 자기를 구원하러 온 것은 전부 원수로 여겼습니다. 인간이 주님  잊어버리고 신앙 생활 하는 그자는 얼마 안 가서 제힘으로 하는 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은 교만해지고 망령돼지고 심령이 어두워지고 마귀가 주장하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자기에게 구원되는 도리는 전부 죽는 걸로 보여지고 자기 원수는  자기를 살리는 거로 보여지고 이렇게 정반대로 견해가 되고 평가가 돼서  망합니다.

오늘 오전에도 “불이 섞인 유리 바다라” 바다라 하는 것은 미혹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말했는데 주님을 잊어버리고는 미혹에 빠지지 안할 자가 없습니다. 인간이  다 뭐 때문에 망합니까? 미혹에 빠져 망합니다. 꼬임에 빠져 망하요. 대체로 옳은  신앙가 외에는 다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망하고 마는 것인데 마귀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 다 망합니다. 신자도 망하고 불신자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신앙의 형태, 제도, 조직, 또 이런 모든 하나님의 성경의  법칙대로 해도 요게 문제요. 사람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만 하면 다 된 줄  압니다. 이러면 다 되는 줄 압니다. 안 돼요.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만 하고 주님  잊어버려 놓으면 나중에 율법주의자가 돼 가지고 굉장합니다.

과거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지켰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만일 주일날 닭 모이를 주면 한 내끼라도 나면 씨 뿌린 것이 된다고 모이  안 줬습니다. 그날 밥 하려고 불을 때면 일한 게 되기 때문에 한다고 밥을 안  했습니다. 철저하게 지켰소. 나물까지 십일조를 또 딱딱 드렸어. 채소, 자기 농사  지어 조금 수입한 그것까지 십일조를 다 드렸어.

이렇게 철저하게 지켰지만 주님을 십자가에 뉘가 못박았습니까? 성경 학자들이  못박았어. 바리새인들은 털끝만치도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안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어. 왜? 그들이 행동에만 힘을  쓰지, 주님 모시고 주님으로 인한 행동이 가치 있지 주님 잊어버린 행동 그것은  다 사망이요 가치가 없다는 요것을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하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뭣이냐? 이렇게 제자들은  곤란당하고 있고 풍랑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그들은 주님 잊어버려서 그렇게  낭파당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모르고 그 안 되니까 그게 되도록 하려고 더  열심만 냈어.

돈벌이 할라 하다가 안 되니까 주님 잊어버려 망한 줄일랑 모르고 자꾸 돈벌이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고, 자기의 사업이나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이 어려워지니  내가 예수 믿어도 왜 이렇게 어려워지나?’ 주님 잊어버려서 이렇다는 거 이것은  생각지 안하고 ‘야, 장소가 안돼 그런갑다. 장소를 옮겨보자.’ 네까짓 게 장소를  암만 옮겨봐야 소용 있는가 봐라. ‘장소를 옮겨보자’ 장소 옮길라 하니까 제 장소는 장사 안 되니까 십만 원 받고 다른 사람 장소는  좋으니까 백만 원 줘야 되고 이래 가지고 내나 또 그걸 또 사 가져 하니 또  그렇소. ‘또 이 사업은 안 되니까 저 사업으로 사업을 바꿔보자’ 암만 바꿔봐야  소용 없어. 저 사업의 종류를 바꿔도 소용 없고 장소를 바꿔도 소용 없고 ‘이  사람들이 밑에 종업자들이 나빠 그런갑다’ 사람 암만 갈아 치워봐도 소용이  없고,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 생활 하는데 왜 안 되느냐? 안 되는 이유는  네 속에 주님이 떠나서 너를 주님이 주관하지 아니하시고 마귀가 너를 주관하고  있으니까 껍데기 보는 외식의 행동은 신앙 생활 하지만 속의 알맹이는 순 도둑놈  살인 강도 이것 마귀가 꽉 들어 가지고 있는데 뭣이 되겠느냐 그말이요? 요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처음에 예수 믿을 때는 뭣이 좀 되는가 싶으면 그대로 이제  주님 모시고 하면 자꾸 뭐, 참 아이들 말로 뭐 오뉴월 문둥이 된다 하듯이 된다  하더니만 아이들 말로 자꾸 돼 나갑니다, 막. 감당 못 하게 돼 나가요. 이런데 안  되거든.

처음 믿는 것도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보니까 이것도 형통하고 저것도 형통하고 모든 것 복을 많이  받았어. 복을 많이 받았는데 그 껍데기 행동하는 예수 믿는 행동하지만 그만  행동만 그것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주님 모시는 일 하지 안해. 이러니까 가만히 그  뒤에 만나보니까 그 사람 생각이든지 마음이든지 서로 대화해 보니까 속에  마귀가 들어앉았어. 속에 흉측한 게 들어앉았어. 이러니까 나중에는, 예수 믿는다  해도 예수 믿는 적이 되고 대적이 되고 그런 자까지 되어지고 맙니다.

여러분들이 교인을 기르면 전부가 그거요. 이걸 여기서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

자기가 기르는 교인을 지도해 보면 전부 이거라. 전부 일호에 다 떨어지고 있어.

이러니까 어떤 권찰은, 어떤 목사는 ‘이러니까 이 사람에게 아마 직장을 하나  소개 해 줘야 되겠다. 이 사람이 어려운 꼴을 당하니까 우리가 연보를 해 좀 도와  줘야 되겠다. 이 사람을 위로를 좀 모두 해 줘야 되겠다.’ 네까짓 게? 위로를  해서 녹아 봐라. 연보를 해서 네 살림살이를 다 떨어 줘 봐라. 네가 취직을  직장을 사업을 이것 저것 뭘 구해서 아무리 노력해 봐라. 나중에 점점 마귀돼  가지고 너하고 원수가 된다. ‘뭐 시키는 대로 하니까 더 안 된다. 나는 그까짓  놈의 예수 안 믿으련다.’ 하는 소리를 네가 네 귀로 들을 것이다. 전부 그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요 말씀을 귀넘어 듣지 말고, ‘네가 이 껍데기 신앙 행동만 하고 있지  네 마음은 마귀가 주장했고 주님은 떠났으니 전부 네 생각 가지고 산다. 네 생각  가지고 살고, 네 욕심 가지고 살고, 네 뜻대로 살고, 네 지혜대로 살고, 네  성질대로 살지, 네대로 살지, 네가 너를 주관해서 네대로 살지, 지금 성경 말씀  지키는 것도 네가 지키고 있지. 주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네가 주님을  찾아라. 못 찾으면 저 어데 기도원이라도 가 가지고서 이제 주님을 찾아  만나라.’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자기 마음 속에 주님이 계셔서 자기 마음을 주님이  주관해야 됩니다. 자기 마음을 주님이 주관해야 되고, 자기 생각을 주님이  주관해야 되고, 자기 뜻을 주님이 주관해야 되고, 자기 욕심을 주님이 주관해야  되지 주님 소원은 다 내버리고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전부 제가 꽉  차 가지고 사는데 그것은 뭐입니까? 주님 떠난 저는 뭣입니까? 주님 떠난 저는 뭐입니까? 주님 떠난 그것은  옛사람이요 새사람이요? 주님 떠난 자기는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죽이라 했습니까 용납을 하라 했습니까? 죽이라 했어! 이 죽일 놈을  냅두니까, 그놈을 왜 죽이라 했소? 그놈이 나를 망치기 때문에 나 아닌 내요  원수인 내이기 때문에 그놈을 죽이라 했는데 그놈 죽이지 안하니까 그놈에게  죽임 당할 수밖에 없지. 그놈 때문에 망할 길만 자꾸 하지. 천한 길만 하지.

빌어먹는 길만 자꾸 하지.

며칠 전에 어떤 권사님이 와 가지고서 나한테 말하기를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그  어렵고 그러니까 그 돈이 그러니 내가 그거 돈을 빌려 줬는데 그 사람이 지금 집  때문에 갚을 수가 없으니 동네에 뭐 동네 금고인가 어데 가 가지고서 돈을 낼라  하는데 그 보증을 서 주면 그 돈 내 가지고 나를 줄라 하는데 보증을 서 줘야  됩니까 안 서 줘야 됩니까 그래 물어.

내가 ‘뭐 그러면 형편이 할 수 없지’ 요래 놓으면 그뒤에 `목사님이 서 주라 해  서 줬습니다’ 요럴 거라. 내가 그 소리 듣고서 ‘뭐 서 줘도 되고 괜찮지요. 서  줘도 되고 안 서 줘도 되지요. 그런데 서 주려면 자기 구역 식구는 다 서 줄  각오를 가지십시오. 한 사람도 안 서 주면 안 됩니다. 다 서 줄 각오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다 서 주도록 망쳐 버립니다.’ 구역장이 성령이 주관하지 않고 마귀가 주장하니까 그것 마귀 그놈이 구역장  주관하니까 그 구역장 지도 받는 사람은 다 망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다  망하면 ‘그 사람만이 아니고 이 사람도 서 줘야 되고 저 사람, 다 서 줘야  되니까 전부 다 서 줄 각오를 가지고서 그래 서 주십시오. 그리 안 하면 안 될  것입니다.’ 내가 그러고 말았어.

그러니까, ‘그거는 천상 어짤 수 없지요’ `천상 어짤 수 없으니까 다 서 줘야  되지요’ 이러고 말았어. 다 서 줬는지 안 서 줬는지 모르겠어.

여러분들, 우리 마음을 성령, 하나님ㅡ성령은 하나님입니다ㅡ하나님이 주관하시면  주님이 주관하시면 내 마음은 옳고 바른 것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주관하시면 하나님이 주관하시면 내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계획이나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삐뚤어진 게 하나도 없어. 전부 옳은  것뿐이라.

옳은 것을 망칠 자가 어데 있어! 옳은 것을 망칠 마귀는 없어. 옳은 것을 망칠  인간은 없어. 옳은 것을 망치면 하나님이 그놈의 대가리를 깨뜨려서 박살내 버려!!  옳은 것을 어데 망쳐! 이러니까, 우리가 껍데기 예수 믿는 행동 아무리 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 속에  주님 잊어버려서 주님이 자기를 주관하지 안하고 자기 생각 자기가 자기를  주관하면 자기는 뭣이요?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입니다. 자기가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인 줄 알아. 만물보다 거짓되다니? 만물보다 거짓된 마귀가 자기를  주관하거든. 만물보다 거짓되지.

우리는 마귀의 사람도 되고 하나님의 사람도 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  떠나면 마귀 사람 되고 하나님 오시면 마귀 떠나버립니다.

이러니까 요게서, 요 행동은 주님 시키는 대로 틀림없이 했어. ‘빨리 가라’ 빨리  갔지. ‘배 타라’ 배 탔지. `바다로 건너가라' 건너갔지. `저 건너 게네사렛으로  가거라. 거기 가서 만나자.’ 그리 갔지. 잘 갑니다.

잘 가다가 왜 풍랑이 안 나던 풍랑이 왜 일어났소? 왜 바람에 거슬려서 왜 못  가요? 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고난을 왜 당하고 있습니까? 처음에 배 탈  때의 사람과 지금 사람과 사람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처음에 배타고 출발할 때의  사람과 풍랑 만나 지금 야단지길 때의 사람과 사람이 같은 사람입니까 다릅니까? 눈이 다릅니까, 낯이 다릅니까, 머리가 다릅니까, 팔이 다릅니까, 몸뚱이가  다릅니까, 뭣이 다릅니까? 그 속에 주인이 달라. 주인이 달라졌어. 하나님 잊으면  하나님은 뭐 밀어 내버렸어. 제가 주인이라. 하나님 없는 저는 뭣입니까? 하나님  없는 저는 누구의 것입니까? 마귀의 것이라. 요것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다가 안 되거든 두말 할 것 없이 어째야  됩니까? ‘네가 힘을 안 써 그렇다’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네가 다른 사람은  주일날 전부 장사하는데 네가 주일날 안 해 가지고 되느냐?’ 인제 주일날  일하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새벽부터 모두 일찍 서두는데 너는 새벽예배 보니  어짜니 하니까 되나? 다른 사람은 하루 종일 전심전력 기울이는데 너는 성경  펴놓고 성경만 보고 되나?’

내가 처음 믿을 때 거창읍에 이 집사라고 엿장사 있어, 엿장사. 병든 엿장사라. 그  가족이 여기도 있으련지 몰라. 병든 엿장사인데 그 엿장사가 속에 폐병인가 그때  무슨 병인가 내가 잘 모르는데 노래이 해 가지고 헤갈헤갈 해 가지고 다 죽어  가는데 그 사람이 엿장사 하면서, 내가 한번 가 보니까 점빵에 성경 펴놓고 성경  읽으면서 누가 와 가지고, 다른 사람이 물건 다 도적해 가도 모르겠어. 이래  가지고서, ‘물건 이것 주이소’ `예예' 이러다 보니까 달라 하는 대로 잘 못  줍니다. 예예예예 예예 예예 이래 놓고, 예예 갑니다 갑니다 이래 놓고 나서 또  여기 보던 얼른 끄트머리 보고 또 가 가지고 주고, 이러니까, 보기에 참 다른 사람 보기에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데, 그것이  거창읍교회서 제일 부자가 돼 버렸습니다. 거창읍교회서 제일 부자가 돼 버렸어.

부자가 돼서 우리는 그때 거게 도상회 하면 일 년에 한 번씩 도상회 하는데 함양,  거창, 협천, 삼군이 연합해서 도상회 하면 사람이 굉장히 많이 모입니다. 많이  모이는데 많이 모이면 아예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뭐 그때 시골에 있으면 소고기  잘 먹습니까? 못 먹는다 말이오. 기다리고 있어. ‘요번에 사경회 가면 그 이  집사님 댁에서 한 끼 인제 한번 잘 먹여 줄 거다’ 기다리고 있어. 잘 먹여  주니까.

인제 이래 갑니다. 가면 그 많은 사람들인데 뭐 솥을 얼마를 거는지 이래  가지고서 소고기를 뭐 뭉떵뭉떵하게 썰어 넣어 가지고서 뻑뻑하게 꿇여서 ‘어찌  됐든간에 오늘은 자시고 싶은 대로 발끈 자시이소. 고기 많이 있습니다. 발끈  자시이소.’ 그만 그때 가면 사람들이 모두 사경회 가도 그 집에 가서 소고기국  한그릇 먹고 하기 위해서 다, 뭐 고기 실컷 먹어. 어떻게 부자가 돼 놨는지.

그 소고기국 배가 벌떡 일어나도록 먹어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그 집에 가서.

먹어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안 들면 거짓말쟁이라. 먹어 본 사람 들어 봐.

○○○집사 안 먹었어? 안 먹었어? 먹지는 안해도 가봤어? 거창읍에 있으니까 못  가 먹었구만. 읍에 있는 사람들은, 딴데 온 사람들은 다 먹였는데. 가 보기는 가  봤어? 나는 먹어 봤어.

이랬는데, 주남선 목사님이 그때 목회할 때입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어찌  됐든간에 너거 주님 모시고 살아라. 주님 모시고 살아라.’ 늘 이랬는데 그만 주  남선 목사님이 신사참배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가고 나니까 그 뒤  목사가 이 목사라는 목사가 왔는데 인본주의 목사라. 살은 뚱뚱하게 찌고 인물이  훌륭하고 미꿈하고 사람은 좋습니다. 이 목사 왔지? 인물은 훌륭합니다.

와 가지고서는, 이 엿장사 사는 생활이 이것 그렇게 살아도 저래 잘되는 것  보니까 요렇게 살면 더 잘되겠다 싶어서, 예수 잊어버리고 요렇게 살면 더  잘되겠다 싶어서 살살 지도했다 말이오. 요 사람이 그것 모르고 그만 처음으로  시험에, 연단을 받지 안해서.

그 이 목사라는 분이 와서 지도하는데 그 지도대로 하니까 일이 좀 안 된다  말이오. 안 되니까 더 열심히 하겠다고 자꾸 열심히 하니까 예수님 잊어버렸어.

그만 주일도 옳게 지키지도 못하고 이래 가지고서 영 아주 그만 신앙 생활  깨지고 나니까 살림살이 다 갔지. 살림살이 다 가고 나니까 이제는 주님 떠나니까  그까짓 것 뭐 마귀가 잡아먹기가 문제가 없어, 주님 떠나고 나니까. 이러고 나니  옆에 또 예쁜 어떤 여인이 와 가지고서 자꾸 꼬댁꼬댁하니까 그만 첩살이까지  얻었지, 첩살이 얻었어. 살림은 왕창 망해버렸어. 완전히 망해버렸어. 그 부자가  완전히 망해버렸어.

그 망했는데, 그럭저럭 해방이 됐어. 망했는데 오른 다리는 병신이 돼 가지고 질질  끌고 다니고 작대기 짚고도 멀리 못 가. 작대기 요게서 조만치 가면 또 앉아 또  쉬어야 되고 그래 가지고 비참하게 돼. 그 병신된 것 봤어요? 못 봤어? 그때 어데  있었어? 부산 있으니까 못 봤구만. 나는 봤어.

어째 봤느냐? 내가 서울 그때, 아따 무슨 교회고? 저 ○○○권사님, 이인재  목사님 있던 교회가 무슨 교회지? 성산교회. 성산교회 내가 집회를 갔어요.

성산교회 집회를 갔는데 뭣이 새카만 게 하나 숯덩이같은 것이 영 바짝 말라  병신 같은 게 저 하나 와 앉았어. 앉아 가지고 자꾸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설교  말씀을 듣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래 가지고 있어요. 그래 나중에 몇 시간  설교하고 나니까 기어 와.

기어 와 가지고서 ‘강사 조사님, 저를 아십니까?’ `예,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울면서 ‘내가 거창읍에 이 집사입니다’ 이래. 내가 깜짝 놀라서 `이 집사님 왜  이래 됐습니까?’ ‘내가 병이 들어 가지고 이와같이 돼 버렸고ㅡ자기가 다  말해ㅡ내가 그 신앙 생활 할 때에 주남선 목사님 떠나고 나서 그만 내가 목사가  와 가지고서 뭐 가르치는 것 그대로 시키는 대로 이래 한다는 게 한 것이 그만  이래 망해 버렸습니다. 내가 신앙을 완전히 팔았습니다. 인제 영 아주 그만  죽기만 기다리고 있고 이런데 하도 주남선 목사님이 이제 그리워서 해방이  됐으니까 곧 내려오신다 내려오신다 해서, 이북까지 가지는 못하고 인제 서울역에,  오면 서울역 들릴 터이니까 서울역에 거게서 내가 지금 보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름째 기다려도 지금 안 오는 판이라. 인제, ‘기다리고 있는데 곧  온다 온다 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얘기를 다 해요.

나중에, 거게서 거석하고 ‘이제는 내가 작정을 했습니다. 내가 죽어도 좋고  말씀대로 이제 살고 내가 주님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러고 나니까 그 집회를  하고 나니까 질질 끌던 다리를 들고 제법 걸어. 이래 서서 이래 걸어다니면서  ‘이만치 성하니 요래 나으면 집회 두 번만 참석하면 완전히 낫겠습니다’ 나중에, 얼마 기다리가다 주남선 목사님이 서울역에 내리니까, 붙드니까 주남선  목사님이 있다가서 ‘내가 이 집사입니다’ 해도 그것 몰라 보겠거든. `네가 왜  이래 됐노? 네가 주님 잊어버렸구나. 왜 이리 됐노?’ 그래 울면서 그 얘기를  하니까 ‘지금이라도 관계 없다. 지금이라도 너만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  그래 믿어 가지고 새로 부자 됐어.

새로 그다음에 거창읍에 부자 됐는데 주남선 목사님 있을 동안에 그래 있다가  주남선 목사 떠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이 딴데로 이사를 갔을 것입니다. 아마  뭐 그런 목자 밑에서는 소용 없으니까 지금 딴데로 가야 되겠다 하고서 살 데로  간다고 딴데로 갔어. 어데 삼천포로 갔다든가, 어데로 갔다 합디까? 모르겠어? 영  모르네. 삼천포로인가 어데로 어데 신앙 따라간다고서 간다 말 들었는데.

여러분들, 이렇습니다. 아무리 잘나고 훌륭해도 그 마음 속에 주님 떠나면  마귀되고 마귀되면 망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일수록 폭망됩니다.

자기가 신앙 겉어머리 행위 이런 데는 이런 것만 겉어머리 외식의 형식만 제도만  지키면 되는 줄 알고 인간 비위만 맞춰서 이와같이 하고 자기 속에 계시는 주님  모시지 안하고 주님 뜻이 무엇인가 살피지 안하고 이와같이 나가면 얼마 안 가서,  얼마 안 가서 그만 귀신의 자식이 됩니다. 그래 가지고 못 범할 죄 없이  범합니다. 아무리 성자라도 그리 됩니다. 더러워지지 뭐 못 할 것 없습니다.

그러고 나면 비참해지요.

이러니까 이런 게 되거든 다른 생각 가지지 말고, 이렇게 되거든 자기 마음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그저 주님하고 의논해서, 주님 생각하고, 주님 생각하고,  ‘이래야 됩니까?’ 주님에게 묻고, 주님을 생각함으로 생각나는 생각, 주님을  생각함으로 생각나는 생각 그것만 가지요. 주님을 생각함으로 소원되는 소원  그것만 해요. 주님을 생각함으로 근심하는 근심 그것만 해요. 주님을 생각함으로  기쁜 그 기쁨만 가지요.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면 가면 갈수록 모든 병이  치료되고 사업의 병도 모든 자기의 경제병도 가정병도 모두가 다 치료돼지고  점점 옳바르게 치료가 돼 나갑니다.

요걸 깨달아서, 우리 교회 지금 그런 사람 많은데 어짜든지 자기 마음 가운데  주님 모시십시오. ‘나를 멸망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대신 죽으신 주님, 나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의롭다 인정시키기 위해서 죽어 주신 주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서 하나님의 아들되도록 하기 위해서, 영생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제 죽고 부활하신 주님.’ 이 주님을 자꾸 생각하고 그저,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생각해야 되지 주님은 생각지 안하고 주님의 뜻  생각하면 소용 없어. 마귀 들어와요. 주님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  생각하는 그 마음 가지고서 이 생각 저 생각, 이 소원 저 소원, 이 뜻 저 뜻, 이  계획 저 계획을 해야 되지 주님 잊어버리고 성경 말씀 생각하는 건 다 마귀  됩니다. 소용 없어. 알겠습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이 살아계시는 주님 잊어버리고 성경 말씀만 지키다 보니까  완전히 귀신이 돼 가지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예수님이 그들이 다  화있을지어다 한 대로 다 화를 받아서 멸망받고 말았습니다.

이래도 나다나엘은 말씀을 지키는 동시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주님 모시고 살아. 모시고 살았는데 나다나엘이 떡 주님 앞에 가니까  ‘이는 간사함이 없는 외식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이러니까  나다나엘이 말하기를 ‘주여 나를 어찌 아십니까? 나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니까 뭐라 했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대답했어? 뭐라고 했지? ‘너를 내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내가 너를 보지 안했느냐? 무화과나무 밑에서 매일 거기 장소  정해 놓고 기도하면서 주여 이렇게 부르짖는 그 주가 나 아니냐? 네가 나를  무화과나무 밑에서 찾지 안했느냐? 그때 나를 찾던 그 주님이 곧 오늘 네 앞에  나타난 이 주님이신데 네가 모르느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 모시고 사는  생활과 성경 말씀대로 이 법도만 지키는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 서부교회서 지금 연경회에서 열심히 그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 걸 내가  봤는데 성경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성경 공부만 하지 주님을 그 마음 가운데  모시지 안하니까 성경 진리를 조금 더 아니까 더 교만해지고 더 아니까 더  교만해지고 이제 강퍅해져서, 아주 불량해지고 강퍅해져 버렸어. 그럴러면 성경  공부 확 태워버려요, 그것. 소용 없어. 주님 안 모시면 소용 없습니다. 주님 안  모시면 소용 없어.

이랬는데 여게서 치료한 법이 뭣입니까? 그들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그들의  소원이 바로 돼지고, 그들의 비판과 평가가 바로 돼지고 그들이 다 담대하고  평안해지고 그렇게 된 것 뭐 가지고 됐습니까? 딴것 가지고 안 됐어. 주님이  물귀신이라 하는데 주님이 떡 말씀하시기를 ‘안심하라.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음성을 들을 때에 자기들 속에 이상한 감으로 평안이 왔고 무엇인가  은혜가 부딪혀 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은혜가 부딪혀 오는 게 있었어. 요게 지금  내가 오후에 할라 하는 건 요걸 지금 말할라 하는 거라. 은혜가 부딪혀 오는 게  있었어.

자기가 오늘로 말하면,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을 읽으니까 뭣인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고 마음에 감동이 되고 좀 생각이 달라지고 자기가 마음이 달라지고  무엇이 좀 달라지는 것이 자기에게 보일 거라 그말이오. 보일 거.

이렇게, 낭파돼 가지고서 어떤 사람은 내가 ‘일주일 동안 기도하고 와야  되겠다’ `한 달 동안 기도하고 와야 되겠다’ 크게 재를 많이 저지른 사람은  ‘몇 달 동안 기도하고 와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성령의 지도할 때에 기도하러  가는 것도 좋고 기도하는 것도 좋고 성경 읽는 것도 좋은데 거게 좋은 게 뭣이  좋은 거냐? 그 읽는 것, 재독을 듣는 것, 또 기도를 하는 것, 금식 기도를 하는 것, 산에서  거게서 거처하고 있는 것 다 좋지마는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은  껍데기요. 그것은 껍데기라. 알맹이는 뭣이요? 알맹이를 잡아야 돼. 알맹이 못  잡으면 헛일이라.

알맹이가 뭣인데? 알맹이가 뭣입니까? 이들이 그렇게 두려워서 못 견디고, 근심  걱정에 가득히 싸여졌고, 지금 저거들의 생각만 가득 차 가지고서 암만 해도 일은  안 되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마귀와 자기의 부패한 원죄 본죄만 가득 차  가지고서 있는데 ‘안심하라.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을 듣고 나니까  자기들에게 무엇인가 속에서 자기 마음 속에서 변화되는 것이 뭣이 있는 것을  자기가 봤다 그말이오.

이 변화되니까, 얼마나 변화가 됐느냐? 베드로는 거게서 그렇게 무서워 못 견디던  그 베드로가 그만 ‘물 위로라도 걸어오라 하면 내가 걸어가겠다’ 주님이 오라  하시면 물 위로 걸어가겠다 하는 그 새로운 담력과 주님에게 대한 소망과 주님을  믿는 믿음이 새로 싹 나왔다 그말이오.

믿는 마음이 생겨지고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이 생겨지고 또 모든 문제 ‘그까짓  것 문제 없다. 주님 모시면 다 된다.’ 믿어지는 담력이 생겨지고 요게 생겨졌어.

요게 생겨졌어. 요것 생겨지는 요게 문제입니다. 요것 없으면 헛일이라. 요게  생겨지는 게 문제라.

생겨지는 게 문제인데 모든 다른 사람들은 그게 생겨지니까, 뭣 해? 생겨지니까  그만 두려움 없어져 버렸고 염려 없어져 버리고 주님이 오신다 하니까 좋아서  주님이 오시기를 그만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 위에 올라오도록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 기다리고 있었어.

요것이 그래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을 때에 그 받은 은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오. 간직하고 있는 사람. 간직하고 있는 사람. 그 사람들은 어찌됐소? 그  사람들은 나중에 주님 오시니까 맞이하니 바람도 안 일었고 배는 순순히 가서  목적지에 썩 도달했습니다. 그 신앙.

그것도 좋지만 그 신앙보다 딴 신앙 있어, 딴 신앙. 나는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에 집사로 있을 때에, 집사로 있을 때에 집회하면서 내가 봉산교회 가 가지고서  이 설교를 했는데 그때, 나는 변화된 그 제자들 같은 그래 나는 신앙 생활 하기  싫었어.

베드로는 자기가 받은 바의 은혜가 있으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니 주님이  안심하라,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들으니까 내 마음이  화끈하더니마는 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지고 소망이 생겨지고 담대함이  생겨진다. 이상하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역사해 작용이 일어났다.’ 하는 그것을  받아 봤소.

받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은 좋아서 주님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그렇지 안했소. 요것 은혜 받고 보니까 좋다 말이오. 그 은혜 받았는데 그  어쨌느냐? 더 은혜를 받으려고,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까 나도 물 위로 주와  같이 걸어가고 싶고 주님 오도록만 기다릴 게 아니라 얼른 주님 만나고 싶고  하는 요 소망과 소욕에 믿음에 욕심이 있었어. 믿음에 욕심. ‘믿는 데는 사양  말고 믿는 데다 욕심 품어 가라’ 하는 것 모양으로 이제 믿음에 욕심이  생겨졌어.

생겨져 가지고서 떡 말하기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만일 주시어든' 이러면  이미 자기에게 역사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기는 받았지만 주님에게 대해서 혹  주님이 아니고 뭐 딴건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니 조금 의심하는 그것을  가지고서 ‘만일 주님이면, 나에게 지금 내 맘에 평강을 주신 주님이 내  주님이시거든 내 소원을 더 들어 주시옵소서.’ 하고서 소원한 게 뭐입니까? 소원한 게 사소한 걸 소원한 게 아니라 자기 목숨 내놓는 걸 소원했어. 자기 목숨  내놓는 것. ‘나를 명하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이것은 자, 자기 죽는  소원이요 사는 소원이요? 생명 내놓는 소원이요 생명 구하는 소원이요? 무슨  소원입니까? 그 수십 길 되는 물 위에 푹 내려 서는 그걸 그 명령하라 했으니까  살기를 원하는 소원이요 생명 내놓는 소원이요? 생명 내놓는 소원이라. 생명  내놓는 소원이라도 소원이라도 주님은 거게서 구출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의 소원이라.

‘오라 하시옵소서’ `오라!' 오라 하니까 `아이구 빠질란가 어짤까?' 빠질란가  어짤까 의심하고 ‘어짤까?’ 이렇게 하지 않고 푹 내려서니까 떨뻑떨뻑  걸어갔어.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주님의, 성경을 보든지 설교 말씀을 듣든지 들을 때에 자기 속에  깨달음이 있고 각오가 있고 힘이 나오고 용기가 나오고 소망이 나오면 그것이  주님이 나에게 은혜 주신 증거이기 때문에 그것을 붙들고, 그것을 붙들고 거게서  더 자기의 생명까지 다 바쳐서, 생명을 바쳐서 주님의 은혜를 더 받고자 원하는  그 사람은 자기 소원대로에 주님의 은혜가 와서, 물 위에 걸어간다 그말은 뭣입니까? 인간이 걸어가는 것 아니라. 초인간의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 초인간의 신앙 생활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이 신앙 생활 하지  못하는 인간을 초월한 초인간의 신앙 생활 할 수 있다. 요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다 이 신앙 생활 다 걷고 있습니다. 다 걷고 있소.

이래서 저도 봉산교회서, 집사가 돼 가지고 거기서 집회를 했는데 그때 한 사백여  명 모였어. 모였는데 그때 그 집회 때에 망령을 부리는 사람은 입술로 망령  부리는 사람은 당장 벙어리 되라면 벙어리가 돼 버렸어. 또 눈으로 죄짓는 자는  다 봉사가 돼 버렸어. 봉사가 되고 벙어리 돼 그대로 있으면 어짤 것이요? 나중에  제가 자복하면 자꾸 원해 쌓아서 가서 기도해 주면 봉사가 눈이 뜨이고 벙어리가  입을 벌리고, ○○○집사 거기 다 거기 참석했었어, 다.

그때 그 설교를 하고 저도 ‘나도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시옵소서’ 하고서 걸어오라 할 때에 걸어갈 요것을 소원하고서 해서 그때부터  저는 요 베드로 신앙을 가지려고 애를 쓰고 걸어왔었습니다.

저 신앙 걸음 걸어온 걸 다른 사람들은 다 오해합니다. 가족도 오해하고 교인들도  오해하고, 가는 곳마다 다 오해하고 교인들이 이해 못 하고 ‘너무 과격하다’  지금 오늘 총공회에 있는 교역자들도 다 ‘과격하다’ 하지만 내가 걸어온  걸음은 그 걸음이고 앞으로 가는 것도 그 걸음 걸어갈 것입니다.

여러분들, 제일 중요한 것이 뭣이냐? 왜 풍랑이 일어났느냐? 예수님 잊어버려  일어났다. 예수님 잊어버려서 일어난 낭파 뭘로 해결했느냐? 주님의 음성 들을  때에 자기 마음 속에서 해결됐다. 마음 속에서 해결된 그것이 은혜의 줄이니까,  은혜의 줄이니까 그 은혜의 줄을 잡고 놓지 말고 어데까지든지 네가 소원하는  대로, 소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은혜의 줄을 잡고 은혜를 소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데 은혜를 소원할  때에 뭘 내놓고 소원해야 되느냐? 생명 내놓고 소원해.

‘녜, 가난해도 좋습니다. 병신돼도 좋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어짜든지 주님으로  충만케 하셔서 신앙의 높은 길 고독한 길 올바른 곧은 길을 가게 해 주옵소서.

나에게 있어야 될 모든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는 자는 다 얻어서 다  부요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생명을 내놓는 자는 다  산다” 이랬어. 이게 십자가의 도라.

그런고로, 낭파당한 이가 있습니까? 주님 잊어버린 그 결과입니다. 주님을  잊어버려서 낭파를 당하고 있습니까? 그 일을 잘하려고 애쓰면 점점 더 망합니다.

아예 딱 손 떼 버리고 어서 주의 음성 듣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의 은혜 받도록  노력하십시오.

주님의 은혜 받거든, 주님의 은혜 받고 그만 그 은혜만 쏟지 안하고 가만 있으면  해결 돼. 저절로 배는 술술 가 버렸어. 해결되고 은혜받고 은혜받은 그 은혜만  보관하면 돼져요.

은혜 받고 그 은혜에서 더 큰 은혜, 더 높은 은혜, 더 권위 있는 은혜 이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생명 내놓고 은혜를 구하라! 초인간의 신앙 걸음을 걷는다!  백명 천명이 있어도 걷지 못한 신앙 걸음을 걷는다. 왜정 말년에도 모두 다  신사참배에 굴하지만 굴하지 않은 신앙 걸음을 걷는다. 감옥에도 들어가지 안하고  돌아다니며 신사참배 반대를 하면서도 살고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는 걸음을  걷는다. 공산주의 앞에서도 용감스럽게 그들을 복종시키는 그런 신앙 걸음을  걷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일반적인 제자들의 평안한 신앙 생활도 주님의 음성 들음으로써  해결됐어. 음성 듣고 받은 그 은혜 놓치지 안하고 보관하고 주님만 기다리고  있으면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 요것 일반적인 신앙.

거게서 은혜받은 그걸 보고 ‘주님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키고 이렇게 해결시켜  주시니까 이분에게 간구하면 더 큰 은혜 주실 수 있다’ 하고서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명하십시오.’ 생명 내놓고. ‘오라' 털퍽  내려섰어. 내려서니까 인간이 역사에 한 번도 물 위에 걸어간 사람 없었는데  베드로는 걸어갔지. 인간으로서는 베드로만이 걸어갔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으십시오! 여게 아이고 어른이고 믿는 사람이면 세상을 이깁니다! 이런 용사가  막 일어나야 됩니다! 김일성이가 뭣이요? 이북이 뭣이요? 이런 신앙이면 세계를  점령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 붙들고 일합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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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벗는 노력 취하는 노력/ 골로새서 3장 1절-4절/ 791213목새 선지자 2015.11.01
182 베드로가 책망받은 이유/ 마태복음 16장 21절-26절/ 840419목새 선지자 2015.11.01
181 베드로의 네 가지 믿음/ 마태복음 14장 24절-33절/ 840522화새 선지자 2015.11.01
180 베드로의 변화/ 마태복음 14장 27절-33절/ 871201화새 선지자 2015.11.01
» 베드로의 신앙/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71129주후 선지자 2015.11.01
178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다섯 가지/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821226주전 선지자 2015.11.01
177 베푸신 은혜를 찾고 바로 이용/ 시편 136장 1절-26절/ 850210주전 선지자 2015.11.01
176 변동성이 많은 사람/ 마태복음 10장 17절-20절/ 820628월새 선지자 2015.11.01
175 병고침 간증 보고/ 사도행전 3장 1절-21절/ 870726주후 선지자 2015.11.01
174 병고침의 기쁨/ 사도행전 3장 1절-15절/ 820822주후 선지자 2015.11.01
173 병신노릇 구걸하는 인생/ 사도행전 3장 1절-10절/ 860921주전 선지자 2015.11.01
172 병을 고치심/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90808화새집회 선지자 2015.11.01
171 병을 낫게 하심/ 사도행전 3장 1절-22절/ 850522수야 선지자 2015.11.01
170 병을 낫게 하심/ 사도행전 3장 11절-16절/ 850505주후 선지자 2015.11.01
169 병을 낫게 하심/ 사도행전 3장 1절-16절/ 850517금야 선지자 2015.11.01
168 보기를 원하나이다/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870218수야 선지자 2015.11.01
167 보물을 하늘에 쌓는 유익/ 마태복음 6장 19절-23절/ 830630목새 선지자 2015.11.01
166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830629수새 선지자 2015.11.01
165 보배로운 믿음/ 베드로후서 1장 1절-2절/ 810217화새 선지자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