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노릇 구걸하는 인생

 

1986. 9. 21. 주일오전

 

본문:사도행전 3장 1절∼10절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않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처음 믿는 사람들이나 또 교회에 오랫 동안 다녀도 참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하는 그 껍데기 신자들과 어린 신자들은 그저 그때에 어린 신자들이 받는 그 은혜를 가지고 유지가 되고 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데보다 교회 오니 어짠지 또 기쁘고,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이런 무슨 경건한 태도나, 또 설교 말씀의 고함 소리나, 또 여러가지 이런 저런 세상에서 잘 들어보지 못하던 그런 말씀이나, 이런 것을 이래 들을 때에 그 분위기 가운데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그 분위기 가운데서 기쁨을 누리고 그래 신앙 생활을 합니다.

이러니까 처음으로 듣는 말에는 재미가 있지마는 몇 번 들으면 그 말에 대해서 재미가 없고, 또 이 세상에 무슨 극장에 하는 것처럼, 강연 하는 것처럼 그렇게 좀 분주하게 참 아주 흥미있게 이렇게 하면은 재미가 있고 은혜가 되고 좋아하지마는 늘 들은 말씀을 또 하고, 또 그 말씀을 할 때에 뭐 그 안에 있는 진리를 말을 한다고 이렇게 저렇게 안에 있는 것을 파서 쪼개서 그렇게 이리 가르치면 그런 것은 그만 머리 아프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이래서, 말씀 가운데 있는 그 진리, 말씀이 가르치고 있는 그 진리를 증거하면 그만 알아듣지 못하니까 잠오고, 취미 없고, 시간 지루하고, 속으로 증거하는 목사에게 대해서 부애도 나도, 밉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그래서, ‘아이고, 거게 예배보러 갔다가 큰 참 곤욕을 치렀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 이렇게 하면서 아주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그런 분위기 가서 돌아다니니까 몇 해를 믿어도 그런 껍데기 신자가 돼 가지고 예수 믿는 이치도 하나도 똑똑히 배우지 못하고 그만 그래 지내다가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기본구원만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는 가지마는 하늘나라의 영광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르니까 행하지 못하고 행하지 안했는데 무슨 그 영광이 있으며 실력이 자라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다 기록할라고 하면은 온 세상에 둘라고 해도 세상이 좁아서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양의 이 말씀입니다.

이런데 이 말씀을 간추려서, 조그만한 신구약 육십육 권으로서 간추려 간단 명료하게 그렇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이 말씀을 세밀히 구비하게 말할라고 하면 온 세상에 둬도 둘 곳이 없을 만치 그렇게 양이 많은 것인데 거게서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간추려서 요렇게 간단 명료하게 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이 한 성구 속에는 수많은 진리가 내포돼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고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안에 있는 진리를 내가 들어야 내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들어 깨달을라고 애를 씁니다.

우리 서부교인만 해도 몇천 명 되는 교인이 천태 만상의 그 생활 분위기 속에서 또 하루도 몇 번이나 갈라서 수많은 형편 사정 종류의 그 생활을 만나게 되는데 그 모든 생활을 다 성경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 놓은 그대로 해야 믿음이 되지 그대로 하지 안하면 믿음이 안 되는 것이니까 그 많은 양을 신구약 성경에다가 다 기록하지 못하고 한 성구 가운데에 백도 열도 스물도 이렇게 내포돼 있기 때문에 ‘요 안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가 뭐인가?’ 하는 그 진리를 깨달을라고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 깨달을라고 애를 쓰면은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씩 둘씩 들어서 깨달아지니까 기쁨이 되고 자기에게 소망이 돼지지마는, 요 들어서 깨달아 볼라고 애를 쓰는 그 일을 그만 잊어버리고 그것이 없이 그냥 듣는 그대로 가지고 그 속에 진리가 들어 있는 요것을 알아볼라고 애를 쓰지 안하면 재미 없고 그만 못 알아들으니까 잠오고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미리 알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것은 다 우리가 평생 걸어갈 그 노정을 가르친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한 사람만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 천이든지 만이든지 억만이든지 뭐 몇백억이든지 몇천억이든지 되는 그 모든 신자들이 살아 나가는 개인 개인의 그 닥치는 모든 그 일들을 다 성경에서 기록해 가지고 가르쳐 주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을 때나, 읽기는 누가 다 못 읽겠습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해 주실 때에 가장 이 서민적인, 가장 서민적인 언어로, 또 일반 보편적인 말로, 아주 무식한 이 보편의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그런 단어를 써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왜? 아주 유식하고 고급층, 특수 인물들만 보고 알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고 아주 무식한 사람들, 일반인들도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이 다 읽을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고 하도록 그렇게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들이 껍데기만 보고는 ‘이 성경은 아주 이거 무식한 사람들의 말이요 또 아주 서민들 하등 인물들 그런 인물들이 다 읽을 책이지 이 책은 고급 지성인들이 읽을 책은 못 된다’ 그렇게 해서 멸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이 아주 많은 멸시를 당했는데, 멸시를 당하고 또 거짓말로 다 정죄를 받은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이라 한 것은 세월이 지내가니까 생각도 못 했던 그 일들이 예언해 놓은 말씀대로 그대로 꼭꼭 맞으니까 모든 사람들의 입이 다 막해졌고 ‘너거 말한 거는 다 세월이 지내가니까 거짓말로 나타나는데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세월이 지내가니까 얼토당토 안한 것 같지마는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있지를 아니하느냐?’ ‘지금으로부터 근 이천 년 전에, 이 우주를 하나님께서 하루 동안에 다 불 태운다 하는 말을 누가 들었느냐? 그거는 아주 얼토당토 안한 말이라 했지마는 오늘의 지금 그 원자 세력이 나타나고 난 다음에는 과연 이 세계라 하는 것은 뭐 하루가 걸릴 게 아니라 몇 시간 만에라도 다 태울 수 있다는 그런 지금 다 인정되고 있지 않느냐?’ 이 모두 모두 다 예언해 놓은 것이 그대로 실제로 이루어지는 그것 때문에 이 성경이 권위가 서졌고, 또 차차 차차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간단 명료한 이 성경 한 구절 속에 수많은 진리가 그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것을 사람들이 조금씩 맛을 보고 또 깨달아지고 궁구하고 난 다음에 이제 모두 다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뭐 수천 년 동안 대대로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이 책을 연구하면서, 또 연구한 것을 그저 돈받고 주지 않고 연구한 것을 공으로, 안 배울라 해도 가르치고 가르치고 해 가지고 이렇게 지식에서 지식으로 자꾸 전달하고 자꾸 그 보강시켜서 이래 나왔지마는 오늘의 기독자들의 마지막에 결론은 그러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누가 다 알았느냐? 누가 다 아느냐?’ 세상에 과학은 다 밑절미를 봤습니다. 어떤 과학이라도 ‘현재까지는 요 이상은 없다, 요 이상이 없다.’ 요 밑잘미를 다 봤습니다. 밑잘미를 다 봐서 요거라고 하고 하지마는, 이종교나 도덕이나 그런 것은 다 밑바탕을 봤습니다. 그게 밑구멍 없는 무저갱이 같은 깊다 하지마는 그 밑구멍을 다 봤다 말이오. 바닥을 다 봤어요.

이러나 이 신구약 성경은 바닥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왜? 무한한 분이 입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들이 암만 연구해 봤자 그저 가도 또 갈수록이 넓고, 갈수록이 깊고, 갈수록이 정확하고, 갈수록이 권위 있고 이라니까 사람이 일생을 다 거게 기울이고 또 대대로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을 우리가 어떤 성구를 읽든지 이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요, 또 `세상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니까 이 말씀에서 세상이 무엇이냐를 배우고, 또 자기가 무엇이냐를 배우고,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배우면은 정확하게 배웠지 틀리게 배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는 간단합니다. 베드로 요한 이 두 분은 사도 중에도 제일 수사도입니다. 제일 수제자인데 이분들이 매일 정해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아홉시가 정해 놓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데, 열두시 세시 이렇게 세 번을 기도하는데 아홉시 기도하는 시간이 돼 가지고 성전에 들어갈라고, 지금 미문을 통과해서 성전에 들어갈라고 들어가니까 성전 미문에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부속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속 건물들이 많이 있는데 그 건물 이름을 가리켜서 솔로몬이 지은 집이라 해서 솔로몬의 행각이라 그렇게 칭하는 부속 건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부속 건물 가운데에 그저 세상에서 참 말만 들었지 보지 못한 환자들이 마구 거게 가뜩 모여 있습니다. 뭐 요새는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 가면은 거게는 별별 종류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런 병의 종류의 환자들이 가득히 있는 것처럼 이 성전 미문에 오만 환자들이 가득히 있었습니다.

가득히 있은 그것은 왜 그렇게 모였느냐? 거게 그 많은 환자들이 모여든 것은 거게서 못에서 병 낫는 그런 일이 있었고 또 하나는 그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래도 마음이 좀 자비심을 또 동정심을, 그렇게 사람의 옳은 정신을 다 반성해서 깨달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러 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개 성전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런 자비심이 있고 구제하는 그런 마음이 독특합니다.

이러니까 모든 환자들이 뭐 할라고 모여들었는고 하니 구걸하기 위해서 몰려들었습니다. 이래서 그저 그 환자들이 한 교인이 성전에 들어가면은 이제 구걸 달라고 손을 내밀고 그라면은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개는 그저 들어가지 안하고 적은 예물이라도 구제를 하고 들어갑니다.

이러니까 구걸할라고 그 모든 많은 환자들이 몰려 있고 또 그 환자들이 거게서 밤낮으로 유숙하면서 구걸하는 그런 환자들도 있고 또 여게 기록한 이 환자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환자인데 그 환자는 다른 사람들이 메다가 항상 미문에 갖다 놓습니다.

미문에 갖다 놓는 것은 뭐할라고 갖다 놓느냐? 이 환자가 미문에 가 가지고 구걸을 하면 구걸한 그 돈을 메어다 준 사람과 이렇게 같이 나눠 가지고 이익 배당을 하기 위해서 환자들을 메어다 주는 사람도 있고 또 이 병신은 거기 가 가지고 구걸하고, 그러면 메다 놓은 사람들은 그 환자에게 ‘오늘은 네가 들어가 가지고 구걸을 좀 많이 해라. 그 많이 하는데도 네가 뻔뻔스럽게 이렇게 앉았으면 다른 사람이 어데 구걸해 주나? 안 주니까 네가 조그매 아파도 많이 아프다 하고 아주 네가 병신 중에는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병신으로 그렇게 보여지면 들어가는 모든 손님들이 그래도 제일 불쌍한 환자에게 먼저 구걸 줄 것이고 또 많이 줄 게 아니냐? 그러니까 어짜든지 네가 그 병신 놀음을 좀 몇 배나 더 과장을 해서 그래 해 가지고라도 구걸을 많이 하도록 해라. 그라면 오늘 네가 수입을 많이 될 터이니까 그라면 너도 수입 많고 우리도 또 배당하면 수입 많고 그렇지 않느냐?’ 이라면서 이래 메다 놓습니다. 날마다 메다 놓습니다. 또 메다 놨다가, 또 메고 갔다가 또 메다 놓고 이래 가지고, 여게 말하기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날마다 메다 놓습니다. 요렇게 말해 놨어. “날마다 메다 놓는다” 요것은 그라면 우리에게 뭣을 지금 가르치는 이 도리인가?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생활해야 된다는, 뭣을 지금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을 여게서 알아야 됩니다. 요게서 가르치고 있는, 요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그 뜻이 무엇인가 그걸 알아야 되지 여게 있는 단어를 읽는 그까짓 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단어 알고 속에 가르치고 있는 내용의 뜻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고 하니 이 세상에서 성전에 출입하는 거와 같이 사람들이 정로가 있고 바른 길이 있습니다. 있는데, 사람들이 옳은 사람노릇을 하고 걸어가는 사람 있는 그런 사람들한테 가 가지고 구걸하기 위해서, 구걸하기 위해서 이렇게 메다 놓는 사람들이 날마다 메다 놨습니다.

이는 병신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좀 구제를 받아 가지고 자기의 생계를 유지할라 하는 그런 사람들이고 또 병신 놀음 해 가지고 구제받은 그것 서로 갈라먹기 위해서 또 이렇게 메다 놓는 그런 사람들, 그라면 병신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병신 놀음 해 가지고 구걸하기 위해서 메여 가는 사람 또 이 구걸하면 갈라먹기 위해서 메다 놓는 사람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는 누군가? 사람이 날 때부터 원죄와 본죄로 다 병신으로 났지, 원죄와 본죄로 병든 자로 인생이 났지 병든 자 아닌 자로 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 곧 특수인 예수님 외에는 전부 나면서 앉은뱅이로 난 자입니다.

앉은뱅이로 난 자는 사람 걸음을 걸을 수가 없어서 남에게 업혀가는 것처럼 이제 인간이 자기의 사람노릇을 하고 사람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참 사람으로 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원죄와 본죄, 이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된 이 병든 사람으로 인생들이 다 출생하게 됐다 하는 것을 여게 가르칩니다.

출생하게 돼서 이 병신들은 인간 걸음은 다 걷지 못한, 조그만한 걸음도 할라 하면은 남에게 부담이 되고 남을 힘입어야 되고 남에게 짐이 돼 가지고야 걸어가는 그것이 병든 인간들의 걸음이라.

그랬는데 이 병든 자의 실력은 어데 있는고 하니 병든 자의 실력은 병이 실력이라. 이 나면서 앉은뱅이는 그 실력이 뭐이 실력인고 하니 그 병이 실력이라. 병이 실력이라. 병이 실력이고, 그의 수입은 무엇인가? 수입은 구걸하는 것이라. 구걸하는 것이라. 다시 말하면 남의 것을 내가 일해 가지고 얻으면 그거는 정당한 일이지마는 남의 것을 뺏들어 가지고, 남의 것을 공력 들이지 안하고 남의 것을 공짜로 뺏들어 가지고 이제 그걸 가지고 자기의 모든 생계를 유지하고 자기를 부강하게 할라 하는 자가 이 병든 자의 생활 법칙이라.

이러니까 그저 그 병든 것은 뭣이 병든 것이냐 하면은 사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이 사람이요, 진리가 자기 지식이 되고, 성령의 지혜가 자기 지혜가 되고, 하나님 중심이 그게 자기의 속성이 되고, 모든 것을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 가지고 거룩 그것이 자기의 인간의 속성이 되고, 진실이 속성이 되고, 의가 속성이 되고, 이런 것이 다 사람이 변질되지 안한 그 참사람의 건강인데, 이 모두 다 병신이라.

병신이라 하는 것은 지식은 남 속이는 거, 남 꼬우는 거, 지혜도 그런 거, 다 자기에게 중심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모든 걸 이렇게 구별해서, 따져서 옳고 바른 걸 구별하지 안하고 어짜든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서 모든 사람을 설득시키고 이해시켜 가지고 불교는 불교로서 설득시키고, 뭐 회회교는 회회교로 설득시키고, 마호멧트교는 마호멧트교로 설득시키고, 힌두교는 힌두교로 설득을 시키고, 또 유교는 유교로 설득시키고, 모든 사람을 자기를 중심해서 ‘내게로 모아 들어라’ 모아 들어라 하고서 자기를 중심해 가지고 이와같이 설득시키는 이것이 곧 인생이 타고 난 변질된 사람의, 다시 말하면 나면서 앉은뱅이로 났다는 이 병신은 뭐이냐? 인간이 다 하나님이 지으신 본질과 본성, 하나님 형상대로의 사람에서 타락이 돼 가지고 전부 다 변질된 사람들이다. 변질된 사람들이다.

그러면 사람이 날 때부터 변질된 사람으로 났다. 그러니까 변질된 사람들로 났기 때문에 그의 실력은 뭐이냐? 변질된 그 병신된 것이 실력이다. 병신된 것이 실력이다. 이 세상에는 남에게 거짓말 잘하는 게 실력이고, 남을 꼬우는 게 실력이고, 남의 걸 뺏드는 게 실력이고, 남을 죽이는 게 실력이고, 남을 밟는 게 실력이고, 남을 디디고 올라가는 것이 실력이지, 이제 하나님의 속성대로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 돕는 사람, 남을 높이는 사람, 남을 키우는 사람, 남을 위하는 사람 이것이, 그러면 하나님 중심 또 하나님 위주,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하나님 중심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 위주로 그 사람을 대하는 이게 아니고, 정반대인 변질된 그것이 병신들의 실력이다.

이러니까, 네가 이 세상에 사는 데는 병신 실력을 가져야 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있는 모든 학문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다 하나님의 지식의 정반대인, 타락할 때에 타락시킨 그 배암으로 말미암아 얻은 지식인데, 배암으로 말미암아 얻은 지식인데 그 지식은 뭐이냐? 인류시조 때부터 사람을 꼬와서 하나님 배반케 하고 제게로 소속케 하는 그 악령이 가르치는 지식이기 때문에 이 지식의 전부는 결말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다 부인하고 다 인간 제가 주인공이 돼 가지고, 인간 제가 주인공 되면 마귀가 주인공 되는 건데, 이렇게 세상에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이 세상 지식은 전부 이것을 성경이 말하기를 “꼬우고 꼬이는 지식이라” 이래. “꾀우고 꾀이는 지식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실력이라.

‘네가 지금 어릴 때부터 이 공부를 해 가지고, 공부를 해야 남을 꼬울지라도 꼬이지 안하고, 남을 지배할지라도 너는 지배를 받지 안하고, 남을 착취할지라도 너는 착취당하지 안하고, 남을 누를지라도 너는 눌리지 안하고, 너는 남을 종으로 부릴지라도 남에게 너는 종되지 안하고,’ 이 전부 말하자면 이거 전부 요 지식이라. 요걸 지금 자꾸 요 실력을 갖춰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나라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 모든 성공과 권세와 모든 존귀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 이것은 전부 남을 누르는 것이요 섬김을 받는 것이요 이런데 나는 그와 정반대다. 한 말로 말하면 다른 사람을 누르고 다스리는 것이 세상의 좋은 것이요 장점이요 이런데 나는 남을 누르고 다스리러 온 것이 아니라 남에게 종질하러 왔다. 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그것이 다 하나에게 받으면 그만치 영광스럽고, 백 명에게 섬김 받으면 그만치 영광스럽고, 억만 명에게 섬김 받으면 영광스럽고, 이 모두 영광이라 해 섬김 받는 게 영광인데 나는 세상에서 섬기러 왔다. 종되고 섬기러 왔는데 내 소유와 몸과 생명까지 다 바쳐서 종노릇 하고 섬길라고 왔다. 내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다르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나면서 병신된, 원죄와 본죄로 다 변질된 사람으로 출생해 가지고 변질된 사람 앉은뱅이를, 제 발로 못 걸어가니까 앉은뱅이를 메다가 성전 미문에 놓으면서 ‘구걸 많이 해라.’ `내가 구걸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구걸할라 하면 오늘 내가 춤을 출까요, 내가 이렇게 한번 무용을 할까요, 주먹을 내 밀까요?’ ‘거게는 병신들이 구걸하는 곳인데, 병신들이 구걸하는 곳인데 거게는 자꾸 병신노릇을 많이 해야 구걸이 많아지지 네가 이제 건강체를 보이면, 저 사람은 건강이 싱싱 성하네? 하나도 구걸 안 해준다.’ ‘이러니까 네가 세상에서 악독을, 변질된 인간, 악독을 네가 많이 부려야 되고, 배짱을 많이 부려야 되고, 억지를 많이 부려야 되고, 잔인을 많이 부려야 되고, 모든 무자비를 많이 부려야 되고, 욕심을 많이 부려야 되고, 도둑질을 많이 하고, 착취 많이 하고, 사기를 많이 하고 이걸 많이 해야 네가 수입이 많다’ 하는 그것이 병신노릇을 많이 해야 다른 사람의 것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다는 그것을 요게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요것을 모르면 성경 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식을 낳아 가지고 이것을 많이 공부를 시켜서 외국 유학까지 시키니까 자기딴에는 이거 지금 ‘아나, 나는 좋은 걸 시켜서 아주 공부를 많이 시켜서 이렇게 참 이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었다.’ 제딴에는 그렇게 가정을 할란지 모르지마는, 이거는 전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이 세상을 어떻게 잡아 삼키며, 모든 사람을 네가 삼켜서 네 종으로 삼으며, 모든 사람 위에 올라가며, 모든 사람의 것을 다 뺏들어 가지고 네가 왕이 돼 가지고 네 중심이 돼 가지고 전부 다 네 앞에다 굴복을 시켜서 이렇게 집합시키는, 이 모든 것을 전부 완전히 도취하는 이런 자가 되는 데에는 네가 과학 공부를 해야 된다, 네가 무슨 무슨 문학 공부를 해야 된다, 네가 무슨 정치 뭐 법과 공부를 해야 된다, 뭐 예술 공부를 해야 된다.’ 이게 다 전부 뭐이냐 하면은 그것이 병신노릇 하는 그 방편을 가르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메다가 그 구걸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해다가 이 세상을 자기 것으로 착취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출세시키고 난 다음에는, ‘나는 메다가 거기 이제 놨으니까 너는 거게서 착취를 많이 해 가지고 네가 많이 벌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너하고 나하고 갈라먹자.’

이래 가지고 전부가 이 세상의, 변질되어 타락한 인간들이 땅위에 난 것은 그 생활 전부가 다 병신을 구걸할 자리에, 병신이 구걸할 수 있는 자리에, 병신이 병신노릇해 가지고 병신노릇이 효력이 있을 자리에, 병신 놀음이 효력이 있을 자리에 거게 메다 놓는 운동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아, ‘네가 낳아 놓은 그것을 얼마나 유망하게 보고 있지마는 원죄와 본죄로 변질되어서 죽은 자다. 오십 년 있다가 죽을란지 칠십 년 있다 죽을란지 모르지마는 다 지옥 갈 자들이요 다 죽은 자요 멸망할 그 병신들이다.

그런데 네가 이런 걸 가르쳐 놓고 저런 걸 가르쳐 놓고 가르쳐 놨으니까 많이 가르쳤으니까 나는 부모노릇 할 대로 했다.’

‘나는 인간노릇 다 했어. 나는 오만 거 이거 가르칠 것 저거 가르칠 것,’ 가르쳤는데 그거 뭐이냐? 그것이 죄인노릇이요, 하나님 앞에 범죄노릇이요, 그게 다 인간 착취할 노릇이요, 인간을 정복할 노릇이요, 자기 것을 만들 노릇이요, 자기가 상전하고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그 노력이기 때문에 그게 내가 전부 병신 놀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그렇게 해 가지고 떡 메다가 성전 미문에 턱 내려 놓으며 ‘휴유. 나 할일은 다 했다. 이제 네가 오늘 구걸 많이 해라.’ ‘구걸을 하다니요? 구걸 많이 하면 어떻게 구걸 많이 합니까?’ ‘야, 이 등신야, 팔이 이래 가지고 있으면 팔 이게 네가 팔이 이래 병신이지마는 이것만 보여 가지고 되나? 이것만 보여 가지고 안 되니까 이렇게 뭐 아야야야 아야야야 아야야야?? 자꾸 마구 병신이 몇십 배나 병신노릇을 해야 다른 사람이 아이구 저거 급한갑다, 저거 좀 동정 좀 해 줘야 되겠다 할 것 아니가?’ ‘이러니까 병신노릇을 많이 해야 되도록, 그게 아니가? 네가 이제까지 뭣 배웠노? 네가 지금 배웠으니까 네가 백 명이 네 직장에 같이 있어도 구십구 명 그놈을 발끈 잡아서 네 밥을 삼고 네 발 아래 쳐넣고 네가 밟고 사다리에 올라서야 되지 않느냐? 그들을 네가 지금 뭐 중앙청이면 중앙청을 다 삼켜서 중앙청이 똘똘 뭉쳐서 네 입으로 쏙 들어갈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네가 국회의원 됐으면 모든 국회의원 전부 다 삼킬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이것을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법에서는 이것이 병신노릇이지 이것이 참된 사람노릇은 아닌 것입니다.

병신노릇 해 가지고 구걸해서 그 구걸 같이 갈라 먹자고 지금 성전 미문에 메다 놓는 이것이, 메어다 놓는 자가 누구며 또 거기서 구걸하고 있는 자는 누군가? 이것이 곧 짤막한 토막으로 말했지마는 인생이 아담 하와로 말미암아 타락한 후에 원죄와 본죄, 원죄는 뭐이 원죄냐 하면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 성질, 자기 중심의 인간성, 자기 위주의 인간성 그것이 원죄입니다. 사람은 조물주 창조주 완전자 그분 중심 그분 위주가 근본 사람의 본성이었지마는 이 타락한 후에는 인간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이 됐기 때문에 이거는 타락성이요 변질성이요 이것이 원죄입니다.

본죄는 뭐이냐? 본죄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가지고 행동한 그 모든 행동이 다 본죄가 되는 것입니다. 본죄는 신학적으로 해석하기를 본죄는 자기가 범한 죄, 원죄는 선조들이 범한 그 죄에 동참한 죄 그렇게 모든 신학자들이 다 해석하는 것이 공통이요 통일입니다.

이래서, 여게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이 인생은 다 날 때부터 인간 걸음을 걸을 수 없는앉은뱅이니까 인간 걸음 걷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앉은뱅이가 기면 기었지 못 걷지 안해요?인생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정상적인 사람, 참사람으로서는 일 보도 살아갈 수 없는 인생으로 변질된 병든 인간으로 났다.’ 이러기 때문에 몇십 년이든지 있으면 병신노릇 하다가, 병신노릇은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다가, 팔십 세 살았으면 팔십 세 산 것만치 다른 사람에게 그만치 많이 해를 끼쳤고, 열 살 살았으면 그만치 해를 끼쳤고, 하루 살고 있으면 그만치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고 해를 끼치고 살았고, 이제 못났으면 못난 것만치 해를 적게 끼쳤고 제일 잘났으면 제일 잘난 사람이 제일 해독를 많이 끼치고 간 자로 살아났다.

이러기 때문에 나면서 앉은뱅이로 난 이것이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거 기르치는가? 요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성경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앉은뱅이를 메다가 성전 미문에 놓으니 미문은 뭐하는 자리인가? 거게서는 인인 관계를 가지고, 사람으로 사람으로 더불어 접촉해 가지고 그 사람의 것을 자기가 아무 수고 없이 정당하지 안하고 공으로 얻는 것이오. 공으로 뺏드는 거, 공으로 얻는 것이라 말이오. 공으로 남의 것을 취하는 것, 공으로 남의 것을 취하는 것이 구걸 아닙니까? 남의 것을 공으로 취하는 것이 구걸이라.

그러니까 제일 말단 노동자가 제일 죄가 적습니다. 이래서 저는 가르치기를 자식을 지금 이거 버리는 것은 어데서 버려지느냐? 어짜든지, 나도 처음에 그런 진리를 몰랐습니다. 버린 거 어째 버리느냐? 그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수고는 적게 하고 수입은 많은 그런 자리로 보내면 그 성공하고 취직 잘한 줄로 그렇게 그전에는 알았습니다.

알아서, 옛날 우리가 공부할 때는 그랬어요. ‘그 사람은 참 복있는 사람이라.’ `어떻게 복있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 평생 손톱 발톱 밑에 흙 안 넣고 살았으니까 복있는 사람이 아닌가?’ 지금 깨달아 보니까 선조들이 그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이 자손들이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그거요.

인제, 그러니까 요새도 그런 폐풍이 있어 가지고 자녀에게 아들 취직이, 자, 땀 흘리는 직장에서 한 달에 만일 십만 원 받고 또 가만히 놀고 있는 직장에서 십만 원 받으면은, 그 두 직장이 났습니다. 그 두 직장이 나섰는데 땀 흘리는 직장을 취할 사람이 이 가운데 몇이나 있을란지 평안하고 십만 원 받을 직장을 취할 사람 있을란지? 자, 땀 흘리고 십만 원, 같은 돈을 월급을 십만 원 십만 원인데 땀 흘리고 십만 원 받을 그 자리를 그 직장을 취할 사람, 그 직장을 자기도 취할 사람 자녀에게 그 직장을 보낼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지금 어짜든지 땀 안 흘리고 평안하고 놀고 십만 원을 월급받을 수 있는 그 직장을 지금 원해서 그 직장을 원하고 그 직장을 보낼 사람들 손들어 봅시다. 어처구니가 없으니까 안 들지.

어처구니가 없어 안 들어. 안 들어도 알아요. 안 들어도 알아요.

안 들어도 여기 둘이 났으면 ‘아니다. 이건 아무래도 이 수월하고 십만 원 받는 데는 사람을 팔아먹는다. 사람을 버린다. 이제 땀 흘리고 십만 원 받는 데는 사람이 된다.’ 요것을 깨닫고 그 직장을 취하는 사람은 수가 적습니다.

이게 다 뭐이냐? 아이 낳고 난 다음에 뭐 영아원부터 유치원부터 이렇게 가르치고 또 일류 학교에 가르칠라고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냉정스럽게 인간과 하나님을 이와같이 통계를 놔 놓고, 금생과 내세의 통계를 내놓고, 하나님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을 다 한테 합해 놓고서 비판을 해 보십시오, 비판을. 그게 뭐인가? 한 말로 말하면 그게 뭐입니까? 다 그것이 남의 것을, 어떻게 하든지 남의 것을 뺏드는 그 능력을, 뺏들어서 남을 이용하는 능력을 그것을 실력을 가르치는 거,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지 어떻게 하면 내가 남을 위해 죽고,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서 유익이 돼서 남에게 참말로, 말은 잘해. 남의 돋움발이 되고 남의 발바닥이 되고 남의 무슨 사다리가 되고 이제 다른 사람 올리고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키워서 올리겠다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 이 세상에 떠들고 돌아다니지마는 실상 그런 사람들이 누구냐? 또 그것도 다 자기 주관대로서 또 가짜라, 보면.

이러니까 여러분들, 오늘 오전 이 말씀 가운데에서, 이래도 이라니까 꾸벅꾸벅 졸고 안 들려. 그 무슨 말인지? 그 이상한 말이지. 그 말이 들릴 턱이 없지. 그 말이 자기 귀에 들릴 턱이 없어. 이해가 될 턱이 없지. 왜? 이 세상 지식은 전적 백프로 옳은 것으로만 딱 알고 있는 그 대가리 속에 어떻게 이것이 그게 다 전적 틀렸다 하는 그말이 들어가겠소? 자기 대가리가 깨져야 될 터인데.

이 민주주의를 공산주의 만들라면 완전히 민주주의를 세뇌를 해서 완전히 뇌를 바꿔야 될 터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민주주의를 만들라 하면 공산주의의 그 사상을 뇌를 완전히 바꿔야 될 터이니까 이게 바꾸기 전에 그게 들려집니까? 안 들린다 말이오. 이 말이 안 들리고 꾸벅꾸벅 졸음 오는 그자는 그자니까 자기는 멸망할 자라는 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해야 진리가 나오고 생각해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생각지 안하면은, 하나님의 구원은 껍데기 발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는 껍데기 거기 있는 거 아니오. 껍데기는 신구약 육십육 권이지마는 그 안에는 우주에 채워도 채우지 못할 우주와 영계를 차지할 것이 요 가운데 다 있어.

신구약 성경에는 하늘과 땅과 영계와 물질계와 이 모든 지구 땅덩어리 인류 만물 그거 전부를 다 차지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요 조그마한 책 안에 들었습니다. 조그마한 책 안에. 그런데 그렇게 쉽게 알아지겠습니까? 이러니까,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요것을 가서 새기십시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사람들이 메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병신, 병신, 인간병이 들었다 그 말이오, 인간병이 들었어. 원죄와 본죄로 인간병이 들었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으로 났다 말이오, 날 때부터 인간은. 본성이 선이었는데 타락 후에는 인간의 본성이 악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악이오. 날 때부터 자기 중심 자기 위주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다가 구걸할 자리에 데리고 갑니다. 메고 가다니? 사람들이 메다니? ‘야, 팔 들어라. 다리 들어라. 팔 들어라 다리 들어라.

유치원 입학해라. 국민학교 입학해라. 중학교 입학해라. 고등학교 입학해라. 대학 입학해라. 또 대학원에 입학 해라. 외국에 유학을 가거라.’ 어째 됐든간에 더 그렇게 시킵니다. 자꾸 이렇게 지금 하는 그것이 전부 뭐이냐? 앉은뱅이 메고 가는 운동이다. 앉은뱅이 메고 가는 운동이다. 뭐할라고? 구걸하는 자리까지 가도록 할라고.

구걸하는 자리라니? 모든 사람의 것을 제가, 다른 사람의 것을 제가 정당하게 취하지 안하고 공들이지 안하고 취할라고, 공들이지 안하고 취할라고, 공들이지 안하고 취할라고.

취하다니? 자, 세상에서 천하 인류를 다 제 이용물로 삼았으면 제일 높은 사람, 천하 인류를 다 저 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면은 제일 높은 사람, 천하에 모든 사람을 제가 제 주장대로 제 중심 제 위주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제일 큰 사람, 모든 사람이 저를 섬기게 하는 사람이면 제일 큰 사람, 모든 사람에 으뜸가면 제일 큰 사람. 요것이 세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소. 이제 하늘나라에 제일 큰 사람은 제일 많이 섬길 수 있는 실력 있는 사람, 제일 많이 종노릇 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사람, 구더기까지도 그에게 내가 이용돼서 그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 천상 천하에 모든 만물의 종류가 억억억억??도 더 많지마는 그 하나에게도 내가 필요 있고 그에게 봉사 되고 그에게 유익을 끼치고 나는 그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고 유익을 줄 수 있는 그자 되는 것이 실력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게 하늘나라요.

그 하늘나라에는 누가 제일 큽니까? 하늘나라에 누가 제일 크겠소? 하늘나라는 봉사의 실력이 제일 크고 희생의 자본이 제일 크고 모든 존재에게 유익을 제일 많이 주고 하는 그것은 무엇이 그렇게 많이 주겠습니까? 저 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 누가 제일 커? 제일 봉사 많이 할 자가 제일 크지, 희생 많이 할 자가 크지, 모든 존재에게 필요한 제일, 모든 존재에게 하나에게도 필요 없지 안하고 전체에게 다 필요 있는 자가 제일 크지. 그자가 누구야? 예수님이야, 예수님! 마귀란 놈이 꼬와서 만물이 죽게 된 것을 주님은, 당신이 모든 것에 시초부터 모든 존재에게 필요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타락시킨 것을 당신이 다시 대속하셔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당신은 필요 있는 존재, 모든 존재에게 혜택을 입힐 수 있는 존재, 모든 존재에게 봉사할 수 있는 존재, 모든 존재에게 수종들 수 있는 존재, 모든 존재를 다만 한 뼘이라도 올리고 사다리가 돼서 높이기 위한 존재, 그 존재가 되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거 정상의 사람이 이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정상의 사람이오.

이러니까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전 미문이라는 문에 두는 자라” 구걸하기 위해서, 구걸하기라 말하는 것은 남의 혜택 보기 위한다는 말이요, 혜택 보기 위해서. 남의 것을 내가 중간에 취해서.

이러니까 어짜든지 사람들이 웃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원죄 본죄를 좋게 하면 웃습니다. 그 부득이 그거 웃는 꼴 보고 살지 뛰 하이 성내고 있는 거를 보고 살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이거 저를 좀 위합니다. 저를 좀 위합니다, 절 좀 높입니다, 저를 마음으로 위하고, 기분으로 위하고, 생각으로 위하고, 말로 위하고, 물질로 위하고, 모든 힘으로 위하고, 위하면 입이 벙긋합니다. 전부 이 악이 만족되면 입이 벙긋하고, 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이루어지면 벙긋하고,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을 조금이라도 갉아버리면 막 확 튀어나와 버립니다.

여러분들! 이 변질된 인생병이 있는 걸 아십시오. 변질된 인간. 나면서 앉은뱅이로 났다. 병질된 병신 인간으로 놨다.

그러면 이 앉은뱅이를 메고 가는 자가 어떤 자가 메고 가느냐? ‘아, 나는 있는 것 다 해서, 이제 네가 어데가도 착취하지 착취당하지 안하고, 어데 가든지 잡아 이용하지 네가 이용당하지 안하고, 어데 가든지 머리가 되고 아래 되지 안하고, 어데가든지 네가 네 수입 유익을 보지 다른 사람에게 손해보지 안할 수 있는,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유익 볼 수 있는 사람을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 공들일 거 다 들였다. 내가 메다 놓을 데 메다 놓았다. 이제 네가 시험봐 가지고 취직을 했지, 출세를 했지. 이러니까, 네가 병신노릇 많이 해라. 배운 대로 병신노릇 많이 해라.’ 배운 거 뭐? 배운 거 뭐?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밟고 올라가는 거. 천 명이고 만 명이고 꺾어 내루는 거. 그 사람이 요만한 범위에 거짓말하면 너는 그 십 배나 넓은 범위에서 거짓말하는 거 사기하는 거,’ 이러니까 그 범위 속에서 다 들고 있지.

이제 요런 뭉텅이에 들어 있는 것은 요만한 보자기로 탁 싸면 그만이고, 요만한 보자기로 싸놓고 됐다 하거든 더 큰 그물 가지고 탁 싸면 돼 버리고, 모두 그물에게 싸이고 싸이고 모두 그물에게 싸이지 이 그물에서 확 펴놔서 자유하라! 자유하라! 자유하라! 얼마든지 자유하라! 네가 양심 자유하고 신앙 자유하고 모든 생활하고 자유해서 자유의 율법으로 살아라 하는 것은 기독교 하나뿐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날마다 성전 미문에 두는 자라” “미문에 두는 자라” 1절로부터 2절까지 해석 했습니다. 1절부터 2절까지 해석을 했는데 요걸 단단히 아십시오.

이제 요거는 가르치기를 모든 인생이 다 변질된 인간으로 출생됐다. 인생 걸음은 한 뼘도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로 출생됐다.

이랬는데, 구걸하는 자리에다가 메다 놓는, 메고 가는 이는 누구냐? 구걸 할 수 있도록 구걸하는 자리에 보내기까지에 메고 갔으니까, ‘네가 이 뭐 일학년 시험치고, 또 중학 시험치고 고등, 대학 시험치고 치고 자꾸 이래 가지고 올라가서 올라가서 너를 지금 구걸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내가 메다 놨다. 내가 공들였다.

내가 모든 거 다 해서 공들였다.’ 공 들여서 모두 다 일생 동안 가르쳐 놨는데 가르쳐 놓은 것이 하나님 앞에 가면은 너는 과연 인간을 위할 수 있는 걸 가르쳤다 하는 것이 될 것인지, 너는 모든 만물이 찬성할 수 있는 걸 가르쳤는지, 가르친 그것이 다 모두 만물이 찬성하지 안하고 모든 만물이 다 착취를 당했다고, 모든 만물이 피해를 당했다고, 모든 인간들이 피해당했다 하기 때문에 잘난 자가 권세가 십 년이면 다 망하고 맙니다. 잘난 자가 다 망해지고 맙니다.

이랬으니까, 인생아! 너는 날 때부터 변질된, 변질된 병신으로 났다. 원죄와 본죄 아래에서 났다. 네가 부모냐 뭣이냐 스승이냐 떠들어 쌓지마는 자세히 생각해봐라. 앞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이 되고 하나님의 이 생명법이, 자유법이 정착되고 자유법이 뚜렷이 설 때에 그때에 너 같은 거는 뭐이냐? 너는 앉은뱅이 구걸하는 데에 메고 간 그거 외에는 딴게 안 된다.

메고 간 게 뭐이냐? 메고 간 것은 병신노릇해 가지고, 병신노릇 해 가지고,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병신노릇 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있던 걸 다 혜택을 보고 착취를 하고 다 끌어들이고 이래 가지고 그거 갈라먹기 위해서 한 것 아니냐, 모조리 다 합해서? 그러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다. 요걸 똑똑히 아십시오. 요거 똑똑이 알고 요게서 여러분들이 바로 깨달으십시오. 벌써 설교한 지 사십오 분 됐습니다. 이제 끝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마음을 좁게 생각지 말고 넓게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은 갑니다 세상은 떠납니다! 세상은 없어집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이 됩니다! 앞으로는 지옥과 천국이 뚜렷히 구별해 가지고 지옥은 불타고 하늘나라는 생명과 영생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좁게 가지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끌려서 소경되지 마십시오.

<기도> 주님, 이들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것이 아닙니까? 주님이 세상도 마귀도 죄도 사망도 이기시지 안했습니까?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것을 다시 마귀와 죄와 사망에게 뺏기지 말으시옵소서. 주님이 내준다면 누가 여기서 당할 자가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의 영은 다 영생을 이루어주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의 심신은 아직까지 속량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이 심신이 속량을 받아야 될 터인데 현실에서 우리 힘으로는 항상 악령 악성 악습, 죄 사망 세상에게 항상 유린당하고 그들의 종이 되어서 참혹하게도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이 둘째 사망으로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이여! 놓지 마시고! 버리지 마시고! 주님이 뺏기지 마시옵소서! 주님이 뺏기면 누가 지키겠습니까!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고 주님이 단언하지 안했습니까, 주님이여! 주께서 또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이행해 주마고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부족하고, 우리들이 심방하는 것이 부족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게 부족할지라도,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주님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해 주겠다고 약속하신 이 약속을 놓지 않습니다, 주님이여! 이 약속을 잡습니다! 주님 앞에 구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말씀을 주셨사오니 들은 전부를 다 주께서 이 앉은뱅이의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메고 가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구걸 하는 비참한 생활 깨닫게 하시고 이 모든 데에서, 이것을 저들이 이해 못 할지라도 주님의 성령으로 피로 이해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해되게 하셔서 다 이해하게 해 주시옵소서.

확신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요 사실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는 저희들 되게 하사 여게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많은 형제들을 구원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암흑 가운데 있다가 빛에 나왔습니다. 나기 전부터 주의 것이 이제사 주의 것으로 알고 주 앞에 나왔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셔서 저들을 주님의 장중에 잡으시고 품 안에 안으시고 순간도 놓지 마셔서 악령 악성 악습에게 뺏기지 마시고 세상에게 뺏기지 마시고 이들을 안보해 지켜 주사 저들이 이 험한 세상에 있는 동안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평강 가운데서 염려 없는 평안의 생활로 날마다 승리 승리의 영생하는 생명으로 자라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고 모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모든 더러운 미혹의 욕심을 다 이겨 떼어 버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한 종들에게도 이 일을 놓지 안하고 끝까지 주께서 부탁하신 대로 이 모든 죽은 자들을 살리는 이 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심판 앞에서 심판을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희들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어떻게 강퍅한 자라도 상관 없이 너희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전하고 기회를 놓지 말라고 하신 이 말씀을 굳게 잡고 저들이 인간 구원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우리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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