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고치심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8일 화새집회 

 

본문 : 계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타난 일곱 교회는 신약 교회 전부를 나타낸 것입니다.

 첫째 둘째 일곱째까지의 교회 이름이 각각 있고 또 이 이름이 실상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교회가 이루어진 것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이루어진 교회요 일곱  교회가 하나님 편에서 예정하신 것을 하나님의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해서 일곱  교회를 이루어지게 하신 것은 그 전입니다.

 이래서, 일곱 교회에 기록된 이 내용은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으로  우리 선택받은 자들의 구원을 이루어 영원 홀로 자존하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는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신 예정이요, 하신 창조요, 또 하신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를 바로 알려고 하면, 다시 말하면 신약 교회인 자기를 바로  알려고 하면, 다시 말하면 신약 교회인 신약 시대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바로  알려고 하면, 다시 말하면 신약 시대의 교회의 모든 행위들과 주장들과 그 원인인  교훈들과 또 거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보응들과 영원 계속들을 그대로 다  빠짐이 없이 담아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이 일곱 교회의 내용입니다. 일곱  교회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그렇게 많지를 못한 그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안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장과 3장 안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 이  계시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영감이 계셔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다 필요  있는 대로 알아 가질 것이 충분히 다 내재해 있습니다.

 이 신약 교회의 이 모든 것 중에 우리가 알 것은 에베소 교회에 한 교훈은  에베소 교회에게만, 두아디라 교회에 한 것은, 사데 교회에, 또 라오디게아 교회에  모두 다 각각 말씀한 것이 그 교회에게만 해당된 것으로 이렇게 아는 것을  우리가 다 고쳐야 합니다. 이 한 말씀 한 말씀은 신약 교회 시대에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갈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해당된 말씀이요 또 관련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밤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고 또 단일  교회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단일 교회라는 말씀은 신학적 단어로 많은 사람들이  다 쓰고 있고 하나라는 그말은 많이 쓰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라, 역사의 교회가 하나라, 역사 교회라고 하면 아담 하와로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땅위에 있던 교회를 다 총칭해서 역사 교회라고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사회 교회라고 하면 인류가 생겨나온지 후 온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인류 전체에 있는 교회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이 교회는 다  하나입니다. 역사 교회나 사회 교회가 그 숫자가 심히 많지만 하나입니다.

 하나라는 말은 나오기를 하나에서 나왔고, 하나라는 말은 나오기를 하나에게서  나왔고, 또 하나인 것을 이렇게 늘 보존 운영 관리하는 것을 하나가 하고, 또  그에게 대해서 책임을 진 책임자가 하나이고, 또 그 것들이 영원히 존재하면서  살아 나아가는 제도와 법칙이 하나이고, 또 그것들을 완전케 하신 완전이  하나입니다. 완전이 하나라는 이 완전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서 완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전체의 역사를 보면 창조를 받고 난 다음에는 타락이 있었고  타락을 한 뒤에는 하나님의 대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타락이 있으니 타락  가운데에 버려 둘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 본성과 본질로 대속을 하셨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도성인신과 사활의 대속은 하나님께서 영원 자존하신 한  분으로 계시면서 한 분이신 하나님의 그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이 목적  하나를 정하셨으니 그 목적은 곧 오늘에 교회입니다.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달성하시는 그 과정에 첫 순서가 하나님의 목적이 예택으로  나타나셨고, 예택이 하나님의 예정으로 나타나셨고, 예정이 하나님의 창조로  나타나셨고, 하나님의 창조가 하나님의 보존과 관리로 나타나셨고, 그 관리 중에  한 순서가 하나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사활의 대속으로 성립된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이루어진 순서나 그 순서  안에, 영원 전에 우리가 택함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사활로 대속하신 그 대속은 역사 세계가 생긴 지 후에  되어졌으나 우리의 선택은 예정도 있기 전, 창조가 있기 전, 하나님만이 홀로 계실  그때에 이차적으로 존재한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의 목적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홀로의 의지 세계에서 된 것입니다.

 이루어졌는데 그 목적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이루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이 이루어진 그것이 이제  예정으로, 창조로, 보존으로, 섭리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이렇게 성취돼  나와서 오늘 우리들이 타락 순서를 밟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교회인가? 하나님의 교회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또 진리와 또 사람과 이렇게 합해 가지고 하나된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이런데 이 셋이 합하여 하나 되어서, 논리적으로 그 내적  요소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그 다음에 둘째로는 진리와 셋째로는 사람 이 셋이  합하여 가지고 하나가 된 그것이 교회인데,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분이시면서  영원 불변자이시면서 영원 완전자이십니다. 이분은 완전하신 분이신데 하나님의  솜씨로 지으셨지만 지으신 것이 그대로는 다 온전타 하지만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견주어서 비추어서 다 불완전한 것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완전과 불완전이  합하여 하나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영원 불변자신데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은 완전자라야 하고 영원 불변자라야 하는데 이 완전 영원 불변자를  하나님께서 만들지를 못하셨습니다. 일차 창조에는 이것을 만드시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차 창조의 것은 다 진동될 것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진동될 이것들을 이제는 진동되지 아니할 것들 곧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이 돼도 흠이 없는 완전자를 창조하신 것, 완전자를 되게 만드신 창조의  방법이 무엇인고 하면 도성인신 사활 대속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거 좀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까지 세계 신학에 나오지 안한 것입니다. 이제 뜨문뜨문 나왔지만  이렇게 일관성 있게 나오지를 안했고 그 모든 순위가 다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넓게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맞지 않는 모순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모순점이 있는 것은 반드시 모순이 있다고 부정하지 말고,  언제든지 주관적이라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모순되다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에게 명백성을 가지고 있고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은 완전성을 가졌고 명백성을 가졌는데, 명백성이라  말은 환하게 누구든지 다 알 수 있고 또 그는 완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신구약 66권의 문서 계시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완전성을 다 나타낸  것은 아니고 문서 계시에 완전성이 담겨 있는데 문서 계시 속에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내주해 계시고 또 거기에 진리가 내주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성을 다 파악도 할 수가 있고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차 창조로 창조하신 방법이 뭐인가? 이차 창조로 창조하신 그 방편이  첫째가 하나님의 자존하신 사랑입니다. 자존하신 사랑이 이차 창조를 주권하셨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돼야 하기 때문에 도성인신을 하셨고, 또 그래  가지고 대형을 하셔서 사죄의 이 창조를 하셨고, 이거 다 창조입니다. 창조를  하셨고 또 대행을 해서 의의 창조를 했습니다. 창조를 하시고 또 이 무죄하게 된  것이, 삐뚤어짐이 없이 된 것이, 또 온전함을 이룬 것이 이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히 하나가 돼서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진 것이 이것이 화친의 창조입니다.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은 진동되지 안할 창조들입니다.

 또 일차 창조한 것을 포기하고 창조함이 아니고 일차 창조한 것이 이차  창조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졌는데, 이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으로 이차 창조된 이것이 영원히 흠과  점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이 이렇게 지속해 나가고 생장돼 나가는, 나가는 것이 곧  영감과 진리로 이렇게 돼 나갑니다.

 그러면 영감과 진리로 이렇게 성장돼 나가는데 성장돼 나가는 그것의 성장  방편이 곧 영원 자존하신 완전자이신 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영생인 것입니다.

 이분을 향해서 소망해 가지고 영감대로 진리대로 움직여 나감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다 영생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시요 그것은  완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된 것이 교회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되어 영생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다  하나님적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이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피조물인 성도들과 합한 것이 교회인데, 이 합한 교회  이것은 곧 외부에서 그 다음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볼 때에 하나님이십니다. 그  모든 것이 볼 때 하나님이시요 그 내적 구별을 할 때에 거기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요, 자존자와 의존자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교회 안에 완전의 충만이요, 완전의 충만인 교회는 모든  피조물들 속에서 완전 충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의 완전이 교회의  완전이 되고 교회의 완전이 모든 피조물의 완전이 되는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가 혼합돼 가지고 한테 뒤섞였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은 것이 교회에게 충만해지고 교회에 충만해진 것이 모든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해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직책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그 완전이 교회에게 완전히 연결되고, 전달보다도 연결되고,  전달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의 완전이 동하고 정할 때에, 교회가 거게 피동으로  동하고 정하고, 교회의 동하고 정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능동이 되어서  피조물들이 교회를 따라서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하늘나라요 영원 무궁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외부적으로 썩 나와 가지고 사람들에게 발표된 것이  그것이 교회는 하나라 단일 교회라 그렇게 말했는데 그 단일 교회라는 것을 찾아  들어가서 깨달으면 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두 성질이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두 성질이 없고 또 두  생명도 없습니다. 또 두 지혜도 없습니다. 두 가지 소원도 없습니다. 두 가지  주장도 없습니다. 두 가지 기쁨도 없습니다. 두 가지의 모든 행동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은 것이 완전한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움직여지는 이것이 교회요, 완전이 되어 움직여지는 이것이 모든  피조물들에게까지 이것이 다 전하여지고 결합이 돼서 완전해지는 고로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어.

 교회는 만물 안에 있는 것이 교회요 만물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충만을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고 만유의 주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로마서 11장  36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왔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감이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대해서 너무 모르고 마귀란 놈이 우리들을 자꾸 이렇게 미혹을  시켜 가지고 절단을 내는 것입니다. 오늘에 교파와 교파끼리 이렇게 서로 시비를  하고 다 자기의 깨달음에. 깨달음을 가리켜서 교리라고 하고 자기가 믿는 것을  가리켜서 신조라고 말하는데, 자기의 교리와 신조만이 참되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자기네들이 작정한 그것을, 그 행정만이 그것이 바른 헌법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거기서 배치된 것은 다 대립이 되고 마찰이 됩니다. 실은 그 자체가  완전이 됐다면 좋지만 그게 안 된 데에는 큰 화를 자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죄가 뭣이 인간의 원죄인고 하니 원죄라는 것은,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라 말은 성부 성자 성령 어느 그 중에, 삼위일체 중에 한 분과 같다  그말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와 같다 말은 선악을 아는 것이 성부와 갈다는  말이요,-잘 안 들으면 모릅니다. 성부와 갈다는 말이요, 성자와 같다는 말이요,  성령과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기 때문에 동산에 쫓아내자  말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되었다는 그것이 곧 원죄를 말합니다. 선악에 대한 그  규정이, 규정 짓는 것이 삼위일제외 하나님과 같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규정을  지울 때에 당신과 삐뚤어진 거는 다, 나쁘다고 합니다. 당신과 틀린 것은 다  틀렸다고 합니다. 당신을 멀리 하는 것은 다 죽는다고 합니다. 당신과 끊어진  거는 다 죽는다고 합니다. 왜? 그분은 완전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완전과 끊어졌으면, 완전과 멀어졌으면, 완전과 삐뚤어졌으면, 완전과 대립이  됐으면 그러하지만 인간은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 그 누구도 자기를  중심해 가지고 거기서 삐뚤어진 것은 다 틀렸다고 하는 그것은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에 벌써 원죄 뭉텅이가 돼 가지고 있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가 돼 가지고 있는 원죄의 지금 형체가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언제나 단일 교회의 한 분자로 들어갈 자라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교회는 하나뿐인데 하나인 이 교회에 나는 내가 들어서 교회의  전부도 되고 교회의 분자도 됩니다. 나는 교회의 전부요, 나 한 사람은 교회의  전부요 나는 또 교회의 한 분자입니다.

 이래서 오늘 이 구원 준비한다는 말은 교회 준비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요, 교회  준비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준비를 한다는 말이요,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완전자이신, 자존자 완전자이신 그 한 분으로 인해서 완전자가  되어져 간다는 말이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과 합해진 것이 교회이기  때문에 단일 교회에 내가 들어가야 되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하나되지  아니한 행동은 다 삦겨 나갑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우리가 거기서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은  예수님께서 다 대신 공심판을 받아서 공심판 완전 통과를 우리를 해 주셨습니다.

 공심판 완전 통과는 하나님의 전지자가 입법하신, 전지자가 입법하신 그 입법에  걸리는 것이 죄요, 그 입법대로 하지 안한 것이 죄요, 그 입법대로 완전자  전지자와 결합되지 못한 것이 죄요, 또 자존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이분 한  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그만 바라보고 그분에게 받아 가지고 있는 것만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가 다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공심판은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면제됐기 때문에 받을 것이 없습니다. 공심판을 사활의 대속으로  면제하신 주님, 면제케 해 주신 주님이 당신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그 심판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은 우리를  심판할 권리가 없습니다. 왜?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 대소망을 가지신 이는  완전히, 예수님이 완전히 하셨기 때문에 이 완전히 하신 것은 우리를 다 포함해  가지고 우리를 대표해서, 당신은 그런 것을 행할 이유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아무 그런 것은 행할 만한 그런 의무와 책임과 그런 부채가 없는, 그건  단점이 없는, 부족점이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 것은 당신의 택한 자들을 다 대신해 가지고 이 일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택한 자의 전부를 다 대표해 가지고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이 일을 다 감당하셨기 때문에 다시 더 이상 청구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청구하는 것이 정의요 법이지 두 번은 그거는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공심판의 요구를 다 완전케 했습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케 했다'  이랬습니다. 인간은 이 육체를 가져서 제한받는 방해, 제재받는 충격 잘 받는 이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율법의 요구를 완성했다  그말은 하나닌의 공심판을 완성했다 그말입니다. (여기 이분 지금 그거 좀 못  따라나오는 모양인데 이거 못 따라 나오면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자꾸 여러 번  참석을 하면 차차 차차 알게 됩니다.) 이래서 공심판은 예수님이 대신 공심판을  받았습니다. 공심판 받았으니까, 하나님의 공심판 외에는 죽이는 법이 없습니다.

또 그를 이렇게 저렇게 할 법이 없습니다. 법은 하나님의 전지하신 전지자가  입법하신 입법 하나뿐입니다. 이 법 하나뿐입니다. 이 법에 통과했으면 아무것도  거게 대해서 상관하고 제재하지를 간섭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이 법은  완전법입니다. 완전법인데 완전법을 통과한 자를 당신이 아무 해 줘야 될 만한  의무가 없는데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완전법을 대신 이행해 가지고 통과하셔서  율법의 만족을 이루고 율법이 더 이상 요구할 수 없도록 완전한 만족을 이루신  이것이 은혜로, 공짜배기로 주신 이 완전입니다. 공짜배기로 주신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을 주신 그분은 우리를 심판할 수가 있습니다. 완전을 주신 그분이 지금도  '너는 내가 대속한 것은 나는 너는 안 하겠다' 안 주면 못 받아. 안 주면 못  받습니다. 또 당신이 이렇게 사활의 대속을 하셨는데, 대속을 하셨는데 우리  사람은 삼분설 이분설, 정통에서도 이분설을 말하고 삼분설을 말하는데 이분설에  장점이 있고 삼분설에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설만 맞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삼분설을 모르는 사람이고  삼분설만 맞다고 하는 사람은 이분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분설의 장점이 있는  것은 영물과 물질, 영물과 물질, 영과 물질의 그 구별이 되는 데에는 이분설이  장점이 있습니다. 이분설이 단점이 있는 것은 이 물질로 되어 있는 이 물질이  이분으로 되어 있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분설은 단점이 있습니다. 이분설이  삼분설을 보고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직 지식이 유치하고  아직까지 거기에 이제 보급되지 안한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성경에 삼분설을 말하는 것은 영 혼 몸 이 세 가지로 말했는데  영은 영물이요 또 혼은 이것은 물질의 신비한 곧 오늘의 마음이라고 하는 이  마음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짐승도 혼과 몸은 있습니다. 성경에 '짐승도 혼과 몸은 있는데 짐승의  혼은 아래로 땅속으로 들어가고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물질, 내나 혼이라는 그것은 짐승도 마음과 같은 그런 유사한  것들이 있고 사람도 유사한 것들이 있는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땅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짐승도 마음이 있는데  짐승은 곧 죽음으로서 그 마음도 그 고기덩어리와 함께 썩어지고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은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다음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영, 혼, 몸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데 훅 영혼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영혼이라는 그말은 영이라는 말도 아니요 혼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  영혼이라 말은 곧 영과 관련되어 있는 혼이라 하는 그 혼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중생된 영을 영혼이라고 이래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은  영이요, 영은 영물이요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혼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그  혼이 영과 관련성 있는 것을 가리켜서 영혼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우리의 영을 대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몸도 대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대속을 하셨습니다. 또 우리의 모든 영 혼  몸 이 셋을 다 대속을 하셨습니다.

 대속을 하셨는데 그리스도의 심판은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인가?  그리스도의 심판은 영을 심판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통과한 그대로 영은 통과시키고 또 혼과 몸은, 혼과 몸은,  혼과 몸은 그 자체인 형체는 예수님이 대속하신 공로를 그대로 입혀 주고  벗기지를 아니합니다. 벗기지 안하고 그대로 입힌 채로 뒀기 때문에 그 마음과  몸인, 혼과 몸인, 그 심신인, 이 심신은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뭣만 심판을 받는가?  심판받는 것은 그 행동은 심판을 받습니다. 이제 대속을 입고 난 다음에 네가  어떻게 살았느냐? 대속을 입은 자가 사는 정상적인 방편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자가 정상적으로 사는 정상 생활 정상 행위는 어떤 것이 정상  행위인가? 정상 행위는 먼저 주님의 대속으로 주의 대속이 내것 됐기 때문에  주의 것 되는 것이 이것이 첫 순서입니다. 자기가 주의 것으로 행동해야 됩니다.

 주의 것으로 행동하지 안할 때에 행동하지 안한 그 몸과 혼, 마음 마음이 혼인데,  몸과 그 마음은 대속을 벗기지 안하고 대속을 입혀 둡니다. 대속을 입혀서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거는 예수님의 공심판 대속을 그대로 입혀 두고, 다만 그  마음과 몸 이것을 합해서 육이라고 하는데 육이 이거 대속을 입었는데 네가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행동은 심판합니다. 하늘나라가 무조건 그렇게, 왜?  몸과 마음은 공심판 대속을 입힌 그대로에서 영원 무궁히 영생에도 상관이  없지만 행동은 상관이 있기 때문에 행동은 거기서 심판하십니다. 심판하셔 가지고,  대속을 받은 것이 첫째 순서가 주의 것된 것입니다. 첫째 순서가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것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것으로 행동한 것은, 행동한 것은  이것은 대속을 받은 자의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대속을 받은 자는 정상적으로  주의 것이 돼야 되는 것이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행동이 주의 것이 되지  안했을 때에 이것은 정죄합니다. 누가 정죄하느냐? 공심판 정죄가 아니고 이거는  사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정죄를 합니다.

 또 주의 종이 되는 것이 이것이 정상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주의 종입니다.

 주님의 것이요 주의 종입니다. 주의 종이라 말은 큰 대속에게 팔렸기 때문에  이제 영원 무궁토록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지 능동의 그 세력을  가지지를 못한 것입니다. 영원히 주님의 것이 된 내요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주의 종이 되어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당신이 사 가지고 당신을 우리 안에 모시고 우리는 주의 전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전으로만 영생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주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지체가 돼 가지고  주님으로 함께 동하고 정하는 그것만이 영생입니다.

 또 주님의 몸이 됩니다. 주님의 몸이 되고, 그러면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의 배우자입니다. 주님과 동반자입니다. 주님과 동반자인  것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가리켜서 문을 열라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먹는다는 것을, 인격이 먹는 것은, 인격이  먹는 것을 가리켜서 어떻게 말씀했습니까? 인격이 먹는 것을 기록해 주신 성경이  어디입니까? 요한복음 4장에 기록해 줬습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한 내가 먹을  양식이 여게 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을 양식은 곧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는 것,  이 내 양식이요 그 뜻을 온전히 이룬 것이 내 양식이라' 이것이 인격의  양식입니다.

 이래서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그말은 나는 너를  통해서 하나님 자존자 한 분의 그 뜻을 달성하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 하나를 달성하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를 힘입어서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달성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배우자, 하나님의 신부라, 하나님의 신부라 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음 상대하는 그 면을 가리켜서, 그 각도를 가리켜, 하나님 한  분만을 상대하는 그 각도를 가리켜서 신부라고 그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요새 교회는 하나님의 신부라는 그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왜?  음란한 더러운 세상이 됐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신부라고 성경에는 많이  기록이 돼 있지만 신부라고 말하면 음탕스러운 세상 걸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외심이 숭배심이 없어지고 하나님을 인간처럼 잡된  관계성으로, 이 고기덩어리 있는 관계성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설교를 잘 못 합니다. 본인도 그 설교를 잘 못 합니다. 하면 그것이 앞지르기  때문에.

 그러나 이리 됨으로써 하나님의 신부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을 상대하는 자라  그말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상대하는 자. 이제 모든 피조물이 많지만 피조물과  피조물끼리는 옆으로 횡으로 서로 이렇게 결합이 되어지고 하나님을 향하는  것으로저 결합이 되어지는 것이지 하나님 두고 어떤 피조물이라도 내가 그와  마주 보고 마주 상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주 상대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주  상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주님의 대속을 입어서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종이 되고 주님의  성전이 되고, 주님의 지체가 되고, 주님의 몸이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 외에 딴것은  상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대할 가치도 없고, 상대해서 들을 만한 것도 없고,  받을 만한 것도 없고, 연결할 만한 것도 없고 지도받을 것도 없고, 가르침받을  것도 없고, 맡길 것도 없고, 아무도 하나님 외에는 상대할 대상이 없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자가 됩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 외에 누구를  믿으며, 누구에게 맡기며, 누구의 지도를 받겠소?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행해서  겪어본 사람들은 땅위에 있는 모든 지식이 뱀의 지식이라, 이건 다 죽은 지식이라,  죽이는 지식이라. 이 지식은 말하기를 '지혜는 뱀같이 하고' 이 말은 뱀의 지식을  다 갖추고 사람이 가지되 네가 살기는 '비둘기같이 순결해라'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우리가 아는 것은 그 지식으로 사람이 죽기 때문에 그 지식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 그걸 아는 것입니다. 무슨 독약이 있는데 독약을 그 사람이  아는 것은, 독약을 이거 모르면 안 돼. 이거 독약인 줄 알아야 되겠다. 알아야  된다는 건 독약 먹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독약을 아는 것이 아니고 안 죽기  위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 말씀 하나님의 지식만이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참된 지식이요 그 밖의 거는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거짓된  지식이기 때문에 그 지식은 '이것만 하면 내가 살겠다' 하는 것은 벌써  틀렸습니다. 안 죽기 위해서 그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과학자가 말하기를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이 되는데 왜 이게  틀렸느냐?' 네, 안 틀렸습니다. 그러나 틀릴 때가 있습니다. 조그만한 범위에서는  안 틀리지만! 조그만한 범위에서는 안 틀리지만 유일하신 하나님과의 결합되는 그  법칙에 갔을 때는 다 틀렸습니다.

 세상이라는 범위 내에서는 그것들이 서지만, 노아 때에 모든 지금과 같은 그런  과학의 종류가 다 있었고 문학의 종류가 다 있었고, 철학의 종류가 다 있었고,  지식의 종류가 다 있었고, 모든 행복의 행락의 종류들이 다 있었고, 좋은 것이 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으로서 다 준비하고 만족했으나 노아의 홍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인데, 하나님의 심판이 다 오고 보니까 그 모든 것이 다 무용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 전에는 그것들이 다 등장을 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하나님보다 하나님 말씀보다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필요해서 모두 필요한 것을 다 준비를 하고 마련하고  또 마련한 그것으로 인해서 많이 마련한 사람은 자타가 높여 주고 그게 없는  사람은 아주 천하게 낮아진 것으로 이렇게 자타가 인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인 홍수가 오고 보니까 홍수가 오고 보니까 모든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필요하다고 준비했던 것이 하나도 자기네들이 기대한 기대에 다 응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기대에 다 틀렸습니다. 기대에 틀려서 그들은 다 마지막에 다  헛되다고 해 가지고 자기의 준비한 그 자기 자체와 준비한 행위와 준비한 모든  믿고 의지하고 상대한 그 상대방들이 다 절단났습니다.

 이제 그때에 가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홍수 예비로 방주를 만들어라. 하나 하나  시키시기를 끊어라, 구멍을 뚫어라, 꿰어 맞춰라, 또 역청을 발라라, 층대를 만들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시키는 것은 홍수 심판이 오기 전에는 다 무용지물이요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심판이 딱 오고 보니까  이것만이 옳은 준비고 필요 있는 지혜 있는 준비지 그외에 거는 다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장 2I절에 보면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마지막 끝절입나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다  준행하였더라. 다 준행한 것은 홍수의 그 멸망을 다 방어할 수 있는 그  준비였습니다. 만일 다 준비하지 못하고 나무 쪼가리 하나 붙일 것을 붙이지  안했다면 그 쪼가리로 밀어 들어오는 그 바닷물은, 그 홍수물은 그들을 다  침몰시켜서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노아의 방주가 노아의 홍수 심판을  면제한 거와 같이 이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활의 대속은 우리를  멸망시키는 모든 것을 방어하는 것이 사활의 대속이요 영원히 우리에게 생명과  양식이 되는 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인 것입니다.

 이래서 단일 교회를 성취하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모든 걸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들은 공심판을 받지 사심판은 상관이  없습니다. 사심판은 이것은 전체를 심판함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주인  당신이 이 대속을 입히고 싶으면 입히고 입히기 싫으면 안 입혀 버리고 해서  자기가 이 대속을 입었으면, 대속을 입은 자이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본구원, 이 공심판을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을 기록한 것은 성경에 많지를 못합니다. 정확히는 말 못 하지만 뭐  한 십분지 일도 안 됩니다. 공심판이 대속 면제 해 준 것은 십분지 일도 안 되고  나머지기는 전부 공심판에서 면제받은, 사활의 대속을 받은 자가 네가 사활의  대속을 받았으면 당연히 이게 너인데, 우리는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불교는  무아주의로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똑똑한  자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잘못하면온, 세상에 지금 많은 이단들을 여러분들이 자꾸  배격해야 되겠는데 메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자는, 받은 자는 다 예수  그리스도뿐이고 자기는 없어졌다 이렇게 말해서, 이 교회가 지금 탈선돼 나가  가지고 하나만 탈선돼도 죽기 때문에 죽는 이 방향으로 빠지는 그 구멍이 천도  만도 넘습니다. 이것을 다 막아 놓은 것이 성경이요. 이것을 빠지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게 성경입니다. 이것을 다 성경 문서로서는 막지 못하기 때문에 막는  방편은 그것을 다 기록하라 하면 온 세상에 둬도 둘 곳이 없을 만치 많은 양을  가지고 있는데 막는 것을 우리에게 세밀히 가르쳐 주는 방법이 뭐인가? 신구약  66권 도리 안에 내재적 영감이 계셔서 이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따라가면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신 성령과 연결을 시키기 때문에 이 성령은 하나님이시요  전지자요 완전자이기 때문에 완전자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연결된 그의 모든  행위는 완전이 됩니다. 그러면 연결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을 이걸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된다고, 얼마 전에는 산굴에서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는 것으로 판을 쳐 가지고 이랬는데 '믿사옵나이다'하는  것이 요새는 지금 거의 꺼꾸러졌는데 꺼꾸러진 것이 어디서 그 말이 나와 가지고  꺼꾸러졌고 어디서 그것을 무슨 칼로 가지고 그것을 쳐서 꺼꾸러트렸었는지 아는  자는 알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뭐이냐? 그분의 완전자와 완전 결합이라는 것을 가리켜서 믿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완전자와 결합되니까, 완전자와 결합됐으니 완전이 되어졌다는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완전의 결과를 맺은 것 그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믿음으로 말미암은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것이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의 교회가 뭐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교회는 또 하나라는 거, 하나라는 것도 그것도 껍데기 말입니다.

 껍데기에 보면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그 속에는 들어가면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라.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은, 우리 구원은 단일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우리  구원이요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는데 영원히 구별할 것은 뭐이냐?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움직이고 동하고  정하여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이래서 하나님과 나와에  상호내주 활동하고 있는데 영원히 구별되는 거는 뭐이냐? 그분은 자존자시요  그분은 창조자시요 그분은 능동자시요, 우리는 피조물이요 우리는 그분으로  인하여서 피동하고 정하는 순종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그말은 그분하고 나하고 둘이 합했으니까 일대 일로, 일대 일로 둘이 혼합된 것이  아니고 그분은 능동으로 불변이신데 불변인 그분에게 내가 따라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따라서 하나된 것입니다. 그분에게 피동됨으로 하나된 것입니다.

 그분을 닮아서 하나된 것입니다. 그분을 본받아서 하나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제일 원수로 삼아서 죽여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원수로  삼아서 죽여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원수로 삼아서 죽여야 할 것을 제가 세  가지로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 안에 자기 아닌 자기가 있습니다. 자기  아닌 자기가 있는데 자기 아닌 자기 이거는 자기를 죽인 자기입니다. 자기의  원수의 자기입니다. 원수인 자기입니다.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자기입니다.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자기입니다. 그러면  그 자기는 뭐, 자기는, 그거 자기인데 자기가 아닙니다. 자기인 줄 알아서, 어떻게  교묘하게 있는지 다 자기인 줄 압니다. 다 자기인 줄 알지만 자기 아닙니다.

 자기를 죽인 자기입니다.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자기 속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원수인 자기입니다. 가장을 하고 나온 자기입니다. 이 자기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죽일 목적으로, 자기를 이미 죽이고 또 죽이고 영원히 죽일  목적으로 온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이미 자기를 죽였고 앞으로 자가를  죽일, 죽이기를 목적한 자기, 원수, 이것을 자기로 착각하고 자기인 줄 알고  인식했으니까 그거는 고칠 도리가 없습니다. 그에게 움직이는 건 전부 자멸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이거 말을 자꾸 그거 여러 이름으로 해 놔서  사람들이 혼돈합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입니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는 말과 민주주의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민주주의라는 말과 사회주의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그것도 사람이  주장된다 그 말이오.

 사회주의도 사람이 주장된다는 말입니다. 외형의 형태만 좀 다른 것이지. 그걸  똑똑히 분석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대립입니다.

 이래서 공산주의를 사회주의라 하고 자본주의를 민주주위라 이래 하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오해하고 있지만 실은 그건 것이 아니오.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나  인간이 주인된다는 말이오. 자본주의는 자기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자본주의로 말하는 것이고 공산주의로 말한 것은 내것 네것 없이  소유권을 인정하지 안하고 다 우리 공동 소유라고 하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자본주의입니까 공산주의입니까? 하나님은 자본주의입니까  공산주의입니까? 예? 민주주의? 하나님은 자본주의입니까 공산주의입니까? 뭐라  하노, 여기? 자본주의라 해? 인제 손을 한번 들어 봐야 되겠어. 하나님은  자본주의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님은 공산주의로 아는 분들 손  하번 들어 봅시다. 배워야 돼. 틀렸어. 하나님은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인데,  자본주의인데 세상 지금 자본주의와 좀 다릅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은  자본주의시면서 그의 모든 움직임은, 움직임은 시은의 움직임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은의 움직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진 것을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습니다. 없는 가운데 당신의 가진 것은 아무에게 얻지도 안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본만으로 만족합니다. 만족하고 누구한테 뺏기지 않습니다. 천하 인간이  다 달라들어도 안 뺏깁니다. 다만 당신이 사랑으로 주십니다. 그것이 도성  인신이요 사활의 대속입니다.

 그런데 요새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를 불평하는 것은 그것은 성급한 일이고  그래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자들이 틀린 것이 많고 또 자본주의에 미달된  미비점이 또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는 자기에게 있는 것이 하나님은  당신의 것이지만 사람은 하나님께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11장에 보면, 로마서 11장 34절에 보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러면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자존하신 하나님의  완전과 무한과 충만을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목적을 정했고, 예정을 했고, 창조를  했고, 보존을 하고 이거 전부 다 주는 운동입니다. 이거 전부 주는 운동이오. 이거  다 전부 주는 운동이오. 주면서 또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이 있는 것은 주면,  주니까, 사랑을 주니까 무조건이 아니오. 안된 것은 심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극히 공평되기 때문에 만물이 그를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를 없애지 않습니다. 당신이 모든  피조물에게, 자본주의라 말은, 또 이거 조그만한 요만한 범위에서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 법 가지고 말해. 그 법이라는 지식은 요만밖에 안 돼. 여기서 말하는  거는 한없는 넓은 범위를 말하고 있는 거라. 자본주의라 말은,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당신의 완전이 자본입니다. 완전의 자본을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습니다.

 피조물을 사랑한다고 해도 완전의 자본에 손해보고 했기지 않습니다. 완전한  자기의 완전을, 완전을, 완전이니까 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을 언제든지  보존하고 그 완전이 퍼져 나가서 피조물들에게 혜택을 입도록 그렇게 하지  완전을 헐지 않습니다. 당신의 완전을 조그마치라도 필요하다고 헐지 않소.

 완전에 대한 불가침입니다. 이게 자본주의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법 공부한  사람 OOO장로, 이해가 돼요? 확실히 돼요? 눈이 똑 떨어져야 되지 그까짓 거 뭐  이해만 된다 해가지고. 여게 우리 여기도 뭐 법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와 있어요.

 법학 박사도 와 있고 모두 다 있어요.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시책이 어떤가? 그분이  어떻게 경영을 해 가지고 어떻게 지금 성취를 해 나가며 그분이 마지막에 선별을  할 때에 어떻게 구별을 해 가지고 어떻게 심사를 하는가? 그래 가지고 거게 안  된 것은 다 없애 버립니다. 다 없애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과 이질의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이 아닌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당신 하나로써, 당신 하나의 완전으로써 완전 된 것만 그 나라에 가지 완전되지  안한 것은 없애 버립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완전한 나라입니다. 완전한 그 나라가, 완전한 나라면, 완전한  나라면 하나님과 완전이 같은 완전이 됐느냐? 하늘 나라에서는 성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전이 없는 거는 성전이라 하는 것은 거룩한 전이라 말은 요거와  요거보다 요게 깨끗하다, 깨끗하다, 성전과 좀 차별된 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성전이 있지만 하늘나라 가 보면, 하늘나라 가 보면 성전과 차이점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전부 동질 동성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동질  동성이기 때문에 성전이 없습니다. 성전이 없으니까 이제 하나님과 합해졌으니까,  하나님과 완전 결합이 됐으니까 하나님과 동등의 동질 동성이 됐습니까,  하늘나라서는 하나님하고 사람과의 동질 동성이 됐는데 차이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과 동질 동성돼서 동질이 아닌 것은 그  나라에 가지 못하고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태워 버려. 그 동질 동성을  심사하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공심판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이 심사합니다.

 심사해 가지고 동질 동성이 아닌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보내 버립니다.

동질 동성된 것만 하늘나라로 갑니다.

 동질 동성된 것만 하늘나라로 가는데 그러면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전부  동등인가? 동등인가? 영원히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완전과, 이 모든 하나님과 배치되는 이질적인 것은 다 제거했지만,  하나님과 동질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무한하신 분을 닮은  범위가 어느 범위 내에는 있지만 무한하신 분은 그러면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서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화 되어져 가는 이것은 이  세상에서 화된 것만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통과해 가지고 하늘나라  가는데 하늘나라 가는 것은 다 하나인가? 거게는 성전이 없는 그 정도로 하나는  됐지만 하나님은 보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건 하나님과 차이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해.

 차이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니까 보지 못하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은 멀리  그렇게 완전 무한한 완전으로 되어 있고 우리는 여기서 그라면 하나님 같은 그런  데까지는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하늘나라인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렇게 말씀했어.

 소망이라는 것은 얻은 것을 소망이라고 하지 안하고 앞으로 얻어질 것을  가리켜서 소망이라 말한 것입니다. 소망은 영원히 있다 말은 앞으로 얻어질 게  영원히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갈 것은 영원히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워갈 것은 영원히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져 갈 것은 영원히 있습니다.

 소망은 영원히 있다. 또 믿음은 영원히 있다. 소망을 믿음으로써 실상을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소망하는 것 실상으로 만들고, 소망을 실상으로 만들고  이라는데 그중에 골자는 하나님의 사랑이더라. 하나님의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성이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이렇게 다 우러나 가지고 역사해  나오더라 하는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라면 오늘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돼야  됩니까? 우리의 원수는, 우리의 원수는 자기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자기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를 구별해야 됩니다. 자기를 영원히 은혜를 베푸는 시은자는  원수로 삼고 자기를 망치는 그자는 좋아합니다. 자기를 망치는 자는 좋아합니다.

 껍데기로 하나 비유한다면 아주 유망한 청년이 공부하는 공부의 시기도 놓치게  하고, 자기의 모든 정력도 다 놓치게 하고, 자기의 이미 소유하고 있는 모든  소유물도 다 놓치게 하는 창기가 자기를 꼬와서, 꼬우는 것은 이것은 아주 달기가  꿀같이 달고 '네가 그러면 네 장래가 비참하게 된다. 네가 이 기회를 다 뺏기고  정력을 다 뺏기고 네 소유를 다 뺏기면 너는 비참한 자가 되니까 네가 그런 데서  멀리 하고 그런 데에 그렇게 너를 좋아하고 네가 좋은 줄 알지만 원수 중에  원수이기 때문에 멀리 하라' 하는 그 부모의 말을 원수같이 듣고 그거는  좋아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참 자기에게 유익된 말은 싫어하고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말은 좋아하는 것은 그거는 뭐이냐? 자기가 변해져 버려  그렇습니다. 자기가 변질돼 그렇습니다. 자기가 참 자기를 모르고 자기 아닌  자기를 자기인 줄 알고. 자기의 원수를 자기인 줄 알고, 자기 죽이는 자를 자기인  줄 알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되는 것이라.

 그러면 그 자기를 우리가 배울 때에 뭐라고 배웠습니까? 그 자기를 무슨  자기라고 했습니까? 그 자기는 몇 가지로 되어 있는 자기입니까? 세 개. 요것이  자기 아닌 자기요, 요것이 옛사람이요, 자기를 죽이는 자기요.

 그러면 셋이라니, 뭘로? 악령. 악령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배반하고 제  중심으로 하다가 쫓겨난 것이 악령입니다. 악령 이놈이 에덴 동산에 와 가지고  인류 시조를 꾀워서 인류 시조가 하나님 버리고 저거 중심으로 바꿔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악성입니다. 악성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하나는  악습입니다. 악령과 악성 이 둘이 합해 가지고 그 사람의 심신을 움직여서  행동하게 한 그것이 악인데 한 번 하니까, 한 번 하고 두 번 하니까 습관이요 세  번 하니까 습관이요 이래 악습이라.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습성이 악습입니다.

 사람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원수 중에 원수요 자기를 죽이는 원수요  자기에게 제일 큰 원수인데 이놈을 원수인 줄을 모르고 자기인 줄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구원이 천리 만리 멉니다. 자기를 치켜올리면  좋아합니다. 저를 치켜올리면 좋아하고 하나님 치켜올리면 싫어합니다. 하나님  치켜올리는데 저를 치켜올리는 것으로 하면 좋아하지만 저를 꺼꾸러 트리는  하나님 치켜올리는 걸 하면 싫어합니다.

 이래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이것을 다른 사람이 협조하면  좋아하는데, 죽고 또 죽고 뿌리까지 뽑혀 열매 없는 가을나무로, 사람의 죽음이란  것은 한 번이 아니고 한 꺼풀 죽고 두 꺼풀 죽고, (O조사. 밥 굶어, 오늘 아침에.

 왜 자꾸 졸고 있어? 아침밥 굶어. 잘 순종해요 교회는 가서 부흥하는에 졸면  헛일이라. 능력 못 받으면 헛일이야. 그까짓 거 다 소용 없어. 그거 무슨 힘  있어?) 이래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자기 중심된 이 성품이 원죄의  원죄성입니다. 요게 원죄입니다. 또 본죄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 악령으로  말미암아 행동한 그 행동 모은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악이라는 것은 피조물 중심이 악이라, 악의 정의를 나는 하나님께  배우기를, 나는 사람에게 배우지 안했소. 사람에게 그걸, 사람이 나를 가르쳐 주지  안해. 지금도 사람에게 반대를 받고 있어요. 악의 정의는, 선악을 많이 말했는데  성경에 악이라는 것을 이 악은 피조물 중심 자기 중심을 악이라 한다는 요 악의  정의로 해 가지고 성경을 해석을 해 보지. 성경에 깊은 뜻이 알려지는가 안  알려지는가? 그것을 마귀란 놈이 이 세상 모든 도덕, 모든 철학, 정치, 어떤  데서든지 거게 악이라는 것을 말하지 안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악 자체가 전부  자기네들의 중심으로 다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 전부가 다 악이요 다  그것이 죄악이요 멸망의 뭉텅이인 것입니다.

 이런데 무식한 사람들은 여기서 배우니까 '백 목사님이 가르치니까 이거 그대로  배워야 되겠다' 하고, 이제 좀 유식한 사람들은 '악이라면 이게 범위가 이렇게  넓은 거 이게 다 악인데' 암만 너는 말해도 인간의 도적적 악, 인간 지식적  악이지 참 악을 몰라! 뭐이 악인데? 악은 피조물 중심 위주,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민족 중심도 악, 인류 중심도 악, 혈육 중심도 악, 악을 벗어나야 돼.

 그러면 뭣이 선인가? 영원 자존하신 완전자이신 그분 중심이 선이라! 네  교파에서 악을 뽑아 버려라! 네 개인 생활에서 악을 뽑아 버려라! 네가 지금 하고  노력하는 모든 것도 악이 중심돼서 악의 힘으로 했기 때문에 그 모든 건 다  멸망이요 하나도 남아 있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말은 이미 복음  받은 자는 말이오. 사활의 대속으로 복을 받은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자기 중심의 계획과 모든 경영과 주장을 따르지 않습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했으니까. 그 악이 뭐이지? 내가 그래  물었지? 그래 안 물었나? 인제 내나 찍해야 자기 중심 실컷 말해 놨는데 그것만  물을까? 그러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다 뭐인데? 그 만날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뭐인데?' '악' '악이 뭐인데?'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래 뺑뺑 돌아가면  어디로 갈 거라? 이 세상에 악과 선 그 모든 주장이라면 사상이요 지식이겠는데,  그렇지 않소? 주장이라면 사상이요, 지식 아니요? 말 아니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말은 선한 말 악한 말 둘밖에 없습니다. 악한 주장 선한 주장밖에는 없습니다.

악한 사상 선한 사상밖에는 없습니다. 선악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악이 뭐이지? 말해 봐. 이걸 말을 못 해. 이것을 사람들이 똑똑히 자기  아주 마음 깊이 가지지를 못하기 때문에 세상은 혼돈이야. 자, 누가 한번 말해 봐.

 내가 이름을 잘 몰라서. 여게 목사님들 한번 좀 말해 보지요. 인제 목사님들이  다 어디로 도망을 가 버렸어. 여기 있으면 내가 물어 쌓아니까. 교인들 보는데  답을 못 하면 창피스러우니까. 한번 물어 볼까요? OOO목사님? 하나님 중심이  아닌 거? 만날 장 그게 그건데 뭐. 그말 하는데. 딴걸 좀 들어 말하라 하는 건데.

그거 말고, 자, 하나님 중심이 아닌 거 또 피조물 중심 그런 거 말고, 그말 말고  다른 말로 대답 한번 해 봐요. 아직 안 됐어. 또 더. 성령으로 하지 않는 거.

그것도 또 안 됐어? 복술? 복술이라 하나? 특권? 뭐라 하노? 자기 중심. 만날  그거, 자기 중심 피조물 중심. 하나님 중심 아닌 거. 내나 그 말이 그말인데, 자기  위하는 거. 범죄? 암만해도 답이 안 나와. 누가 인제 말했어? '인간 지식' 하는 거  누가 말했어? 이 조그마이가 맞았어.

 악이 뭐입니까? 선과 악 둘이 있다 했는데 그러면 선은 뭐이요? 선은 신구약  성경이오. 악은 신구약 성경 외의 것은 전부 악입니다. 요게, 요걸 믿어야 돼요.

 요거 믿어져요? 안 믿어져. 마귀란 놈이 못 믿구로 하거든. 속에 자기를 죽이는  지식이 들어서 못 믿구로 해. 이 악을 똑똑히 알아 가지고 악을 죽여야 됩니다.

 악을 죽여야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악을 죽여야 된다는 말은 자기를  주관하는, 자기를 주관하는 세상 지식을 다 죽여야 된다 말이오. 왜? 세상 지식은  인류 중심이요, 인간 중심이요, 자기 중심이오. 이거는 조물주만 없으면 이게 제일  좋겠는데, 조물주만 없으면 좋겠는데 조물주 때문에 탈이 됩니다. 이게 숫자를  무슨 수로 발표했습니까? 육백66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수는 칠수요.

 육백66이라, 하나님의 수에 도달치 못한 최고의 수입니다. 요것을 확정짓기  전에는 안 됩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시간이 몇 시 됐지요? 다섯시 삼십분. 인제 됐어, 그만.

 이러니까 아예 우리는 단일 교회 속으로 들어갈 우리들이기 때문에 여기에 제일  적은 뭐이냐? 제일 적이 악입니다. 단일 교회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요. 전부  하나님의 것이오. 동기도 하나님이요, 발원도 하나님이요, 원인도 하나님이요,  방편도 하나님의 것이요, 목적도 하나님의 것이요, 맺어진 결과도 하나님의 것이요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아닌 것을 다 하나님으로 생각하연 틀립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건 뭐이냐? 하나님 아닌 것을 그것이 독립이라  자존이라 이래 가지고 그것을 중심해서 모으면 천이 모이든지 만이 모이든지  인류가 다 모이든지 다 멸망입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중심으로 전부 하나님께 속해야 됩니다. 전부 하나님께 속해야 돼. 하나님께  속한다 말은 완전에게 속해야 된다 말이요, 하나님으로 동한다 말은 완전으로  동하고 정한다 말이요,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진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거  무슨 말이지?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해진다 말이 뭐이지? 완전으로 충만해진다  말이야. 이거 좀 수건을 벗어요. 수건을 벗어서 자기라는 주관을 벗어 버려야  돼요. 벗어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아직도 수건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항상 말해  봤자 말하고 나면 없어져 버려. 수건이 가루기 때문에 없어. 그 수건이 뭐인데?  자기를 벗어야 돼. 자기를 부인해야 돼.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완전히 주장적으로는 다 부인하고, 그러면 자기가  없습니까? 기독교에 자기가 없습니까 있습니까? 자기가 없습니까 있습니까?  불교에는 자기가 없어요 있어요? 무아주의요, 자기가 없어야 들어가는 거요.

 기독교는 자기가 있어요. 자기가 있는데 자기는 어떤 자기입니까? 좋은  자기입니다. 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좋은 자기가 됐습니다. 아주 자기는  좋은 자기입니다. 어떤 자기가 됐소? 자 한번 헤아려 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 또 둘쌔로는?  하나님의 종, 또 셋째로? 하나님의 성전. 넷째로? 하나님의 지체. 다섯째로?  하나님의 몸. 또 여섯째로? 하나님의 신부. 또 일곱째로?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

또 여덟째로? 하나님의 제사장.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의 왕. 이라면 뭣 됩니까? 이리 되면 하나님의 형상이  됩니다. 이리 되면 하나님의 형상이 됩니다. 이리 되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의  실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의 적은 뭐입니까? 자, 따라해요. 이것의 적은 악! 이 구원의 적은  악! 이 구원의 적은 악! 이 구원의 적은 악! 이 악을 뽑아 버려야 됩니다.

 악이 뭐입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요. 또 자기 아니라도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가 아닌 것은 전부 악입니다. 생겨지기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어떤 과정을 통과하느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져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하나님 단독 주권으로 하시는 것인데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인 그것은 하늘나라로 가고 하나님의 중심을 반대하면서 움직인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갑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인 것은 누가 주권한 것입니까? 제 중심으로 가다가  유황불 구렁텅이 가는 것은 누가 주권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권해 놓고 '너는  네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옥 가라' 하니까 공평입니까 공평 아닙니까? 공평  아닌 것 같지? 공평이라. 의 아닌 것 같지? 의라. 이것은 여러분들이 숙제로 알아  가지고 이것을 알라고 발버둥을 쳐서 이걸 깨달아야 비로소 신앙이 자기  정상적인 궤도 위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내놓고 이제는 전부를 다 고쳐서 완전히 새것을 만들  각오를 가지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여기서 죽는 것이 제일 힘드는 것이요 죽는 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이제 죽어야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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