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낫게 하심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17일 금야 

 

 본문 : 사도행전 3장 1절∼16절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  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다음 주일 유년반 중간반 일 이부의 공과인데 이 공과를 한 번도 제가 증거한  일이 없습니다. 이래서, 반사들을 알리기 위해서 오늘 밤에 이 공과를 간단하게  읽고 증거합니다. 수요일 밤에는 제가 공과를 만들고 그 날 밤에 증거할라고  양산동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만 증거를 못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도 증거를 못  했었습니다. ○○○집사님에게 세 번만 공과를 읽고 예배를 대신하라 해서  그대로 지난 수요일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제 11공과.

 본문은 사도행전 3장 1절로 16절.

 제목은 병을 낫게 하심.

 요절은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서론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쓸 때는 고만 뭐 급속히 쓰니까 이 말이 뭐  수사학적으로 나 또 문장적으로는 뭐 맞지 않는 그런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그 속에 증거하는 그 진리만 여러분들이 깨달을라고 하면 될 것이고  무슨 문장이나 술어나 그런 것을 따질라고 하면 도리어 시험에 들기 쉬울  것입니다. 그 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서론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낫게 하신 이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여 주신 것은 구원  도리를 가르치신 하나의 계시입니다. 이 앉은뱅이 나은 모든 순서로 우리 전  신자의 사람병 고치는 순서를 가르쳐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우리는 내 자신의  사람병 고침을 받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병 고치기 전에는 매일 인간의 혜택을  받았으나 그는 천하고 불쌍하고 가련하고 곤고함을 한 시간도 못 벗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고 보니 신체적 행복, 마음의 행복, 경제 행복,  위신 행복, 사회 행복. 활동 행복. 권위 행복 명예 행복 기타 모든 면으로 안팎  행복과 영육 행복과 금생과 내세의 영원 무궁한 행복을 받아서 제일 행복된 자가  된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우리도 피조물 혜택으로만 살려는 구걸 방편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려는 이 방편으로 바꾸는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론.

 첫째, 사람병이 무엇인지 먼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병은 첫째 영의  병이요. 둘째는 마음의 병이요, 셋째는 신체의 병 이 세 가지를 합하여  사람병이라고 한 것입니다. 첫째. 신체병은 과학이 지적할 수 있는 그 모든 병,  신체 병이라 하는 건 몸의 병 말입니다. 몸의 병은 과학으로 지적 할 수 있는  병이 몸의 병이요, 또 성경이 가리키는, 지적할 수 있는 행동병이 몸의  병입니다. 성경히 그거는 잘못된 행동을 한다 이렇게 지적할 수 있는 그  행동병이 곧 몸의 병입니다. 또 악한 자기 중심의 악습을 행하는 그것이 곧  신체의 병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신체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병은 어떤 것인고 하니, 악성병.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마음 그것이  마음의 병입니다. 또 성경에 정죄 받는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나 자체가 다 마음  병입니다. 또 악령에게 피동된 마음들이 마음병입니다. 중생된 영을 거역하는,  중생된 영에게 순종치 안하고 중생된 영을 거역하는 그런 모든 병들을 가리켜서  마음의 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셋째로, 영의 병은 진리나 영감을 거역하는 병은 전혀 없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책임진 자기의 심신이 어기는 것과 순종함에 부족한 것에 대해서 영이  주격 책임을 지고 성화에 미달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어김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 순종으로 의를 행하는 의의 미달과  부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는 아닙니다. 오직 진리와 영감과 중생된  영에게 심신이 복종하는 그 복종이 유치하고 온전에 미달된 것을 가리켜서 영의  병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병을 고치는 그 능력은, 사람병, 영병 마음병 신체병 그 병을  고치는 능력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고치셨다고 성경에 말씀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영원전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을 만드시려는 그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운동이 목적을 위하여 예정을 하신 예정을 하셨고. 예정 운동이  목적을 위하여 창조 운동을 했고, 창조 운동이 목적을 위하여 보존 운동을 했고  보존 운동이 목적을 위하여 모든 섭리 운동을 하셨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도성인신 운동을 가리켜 나사렛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고쳤다. 나사렛 이름이 고쳤다 이 말은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낮아지신 데까지의 토막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고, 또 십자가의 대속 운동을 가리켜서 예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하는 것은 예수님은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운동 역사를 가리켜서 예수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부활로 부활하심으로  성령과 진리와 섭리와 천군 천사에 심부름 시키시는 이 모든 운동을 가지고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자 왕의 실력자를 만드시려는 그 운동력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전 피조물 전체 운동력이 고치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낫게 했다 그 말은, 요 뜻을 잘 알아서  나사렛은 벌써 하나님의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의 운동. 역사 거기에서, 목적 운동이 예정  운동, 창조 운동, 보존 운동, 또 섭리 운동, 도성인신 운동. 또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신 운동, 또 부활하신 운동,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과 진리가  왔습니다. 이 운동이, 곧 이 운동은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여서 제사장 실력의 온전. 또 선지 실력의 온전 왕의  실력의 온전을 일으키려는 하나님의 목적 그 지극히 큰 운동이 들어서 이렇게  병든자를 완전히 고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 병자를 낫게 하셨다 하는 이  뜻을 우리가 잘 새겨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요렇게 발표한 것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진리와 성령과 피로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우리를 피와  성령과 진리의 운동이 우리를 붙드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예정하신 모든 예정  전체의 운동, 또 하나님이 창조해서 존재한 모든 존재 운동 이 전체의 운동이  합해 가지고 우리로 하나님 목적하신 대로 하나님 같은 제사장, 하나님 같은  선지자, 하나님 같은 왕, 첫 열매 곧 예수님과 같은 이런 자를 만드셔 가지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 역활을, 선지 역활을, 왕의 역활을 감당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모든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이 자를 만드실려는 그 지극히 큰 운동이 우리를 변화시켜서 사람병을  고치시는 그것을 여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셋째 대지에, 이 능력이 고쳐 주심을 받은 것은, 이 능력이 고쳐 주심을  받은 것은. 이 인간병을 고쳐 주신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름이라는 것은 운동을 말합니다. 혹 이름이라면 운동이라는 그것을 이해가  될란지 몰라도 이름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성명 삼 자 혹은 두 자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 이름이 높다 낮다 이름이 죽었다 이름이  없어졌다 이름이 드러난다 이름이 크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이력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이력대로, 이력의 표시이기  때문에, 이력의 표시이기 때문에 그 사람 이력에 따라서 그 이름의 가치는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모든 역사와 운동의 그 전부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치신 능력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이 고치셨고 그 능력이 고쳐 주시는  그 고치심을 받은 것은 이 능력이 고쳐 주심을 받은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을 받아 가진 그 믿음이 고쳐 주심을 받은 것을 가리키십니다. 그러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뭣인고? 예수로 난 믿음이 뭐인가?  예수로 난 믿음이라 말은 위에서부터 주욱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거기에서부터  근원이 돼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로 우리에게는 세 가지 대속이 됐고, 또 부활,  부활로 우리에게 피와 성령과 진리의 운동이 들어서 우리 안에 직접 오셔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우리를 성화시키시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는 이것을 간단하게 말했으나 쪽 위에 근원은 하나님의  자존하심에서부너 시발되어서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우리를 늘 관리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목적. 영화로운 구원, 우리에게 지극히 큰 주신  소망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는 고것을 가리켜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이름이 고쳐 주시는 고쳐 주심을 받은 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면, 고치신 능력은 이름이요 받은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깨달아서 교인들에게 똑똑히 인식을 시켜 줘야 할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은 영원 전 택자로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고  자존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목적, 예정, 창조, 보존 섭리 도성 인신,  사활의 대속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을 인정하고, 자기가 중생된 걸 인정하고,  우리가 이 대속의 근거를, 쭈욱 내려온 그 근거는 모든 존재가 이를 위해서  있습니다. 이를 자기가 인정하고. 자기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이것이 큽니다. 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게 대해서 충성하고 어떻게 자기 생명을 바치고 또 바쳤다 한지라도  그까짓 게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 바치는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과  당신의 하시는 일을 내가 인정하고 사실로 믿는 이것이 제일 큽니다.

 그러면, 순종을 가리켜서 예수로 난 믿음이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장단간에 말씀을 듣고 또 자기가 읽어보는 데에서 이 믿음이  자신에게 있을 때에 고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이 유래, 위에서부터.

그저 끝만 하지 말고 위에서부터 이렇게 날 구원하신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으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운동을 하셨으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투자를 하셨는가, 하나 예를 든다면 내게 오늘 어떤  일을 내가 듣든지 보든지 할 때에 저 모든 운동도 내 구원 위해서 있다는 것을  믿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존재,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볼 때에 저것이 지금 뭐 세계가 움직이는 그런 것은 사소한 것입니다. 이  우주에 수많은 지구 땅덩어리와 같은 그런 별들이 자기 궤도를 따라서 움직이는  이 우주에 충만한 것과 영계에 충만한 그것이 뭣 때문에 있느냐? 그 존재가 뭣  때문에냐? 내 구원 위해 있다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 만물의 중보자가 될 수 있는 그 능력은  거기에서 나오고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시간이 장단간에 말씀을 들었든지 읽든지 하는 데에서  이 믿음이 자신에게 있을 때에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천상 천하 아무 이름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인간병을 예수의 예수의 이름으로 삼위의 하나님이 고쳐  주셨는데, 고쳐 주셨는데. 고쳐 주시기는 곧 종, 종, 곧 순종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고치신 것이다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 그 말은 종을  영화롭게 했다 그말입니다. 그 말은 그 이상 더 하나님을 인정하는 거 순종하는  것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 이상으로서, 인정하는 것도 순종이고, 인정하는  것도. 인정하는 것도 하나님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요 순종이요 또 그와 같이  모든 행동하는 것도 다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치가 어디 있느냐?  예수님의 가치는 종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주신 것은 뭣  때문에 주셨느냐? 종의 그 실력을 보시고 종의 값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택자들을 하나님처럼 온전케 하고 거룩케 하고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 다음의 위치를 가지고 모든 피조물의 중보가 되어서 복의 기관이 될 수  있는 이런 온전한 자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몸과 같이 하나님의 지체같이 이와  같이 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뭘 보고 이와 같이 하셨느냐? 하신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하셨지만 그 예정하신 것을 이루신 것은 예수님이 종노릇 하는 그  종의 가치를 보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종을 대우한 것입니다. 종을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믿고 순종하는 것을 제일 귀하게 여기시고 또  모든 것을 주시고 모든 귀중한 것을 맡기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 2장에,  2장 9절 이하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했다 죽기까지 복종했다.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모든 피조물로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거기까지는 강제 같은 것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마지막에 결론에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모든 것이 이 종 예수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3장  마지막절, 26절인데 거기에도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서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이러니까, 하나님은 종을 붙들고 일하시고 종을 제일 귀중히 대우하시고 제일  신임하시고 모든 것을 종에게 맡깁니다.

 그러기에, 종이 아닌 자에게는 하나님은 적입니다. 종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  종이니 종을 벗으면 하나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적이 뭐이  적이냐? 하나님의 적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자기를 부인해라 하는  것이 그것이 곧 악을 부인하라는 것이요 원죄를 벗어나라는 것이요 본죄를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으로 네가 돌아서라 이렇게 돌아서서 거슬리는 세상에서 살려고 하면  여러가지 애로가 있으니 그 애로에서, 그 애로에서 사망 아래 있는 것이 애로를  통해서 생명으로 옮기고 영원히 멸망할 것이 그 애로를 통해서 영생하는 것으로  바꿔진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그 고난은 어리석은 세상  지식으로 본다면 죽는 것이요 고난 받는 것이지만 죽고 고난받는 게 아니라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개조 하는 운동이요,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개조하는  운동이요,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개조하는 운동이요, 모든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개조하는 역사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부인과 십자가 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답에 있어서  첫째, 성경에 병 고친 것을 기록한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이뇨? 답입니다.

사람병 고치는 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그 병 고친 걸  가리켜서 그 전에는 기적이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 번역은 표적이라고 했는데 이  표적이라는 번역이 아주 잘됐습니다. 이는 믿음의 사람이 번역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 표적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신체병 그거 고치는 것은  인간들이 아는 거 모르는 거 그 속에 영병 마음병 이 고기덩어리병 인간병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런 신체병으로 계시했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표적이라,  그러면, 그 표적이 실상은 뭐이냐? 표적의 실상은 사람병이라 하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병 고친 것을 기록한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이뇨? 답에 사람병 고치기 위한 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요 답이  그렇습니다.

 둘째 문답에, 사람병이 무엇이뇨? 답에, 사람병은 신체병 마음병 영병을 가리켜  사람병이라 한 것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신체병은 과학이  지적하는 모든 병들, 과학이 지적한다는 말은 뭐 암병이니 폐병이니 뭐 신경통  병이니 뭐 이거는 혈액병이니 또 혈액 순환이 부족한 것이니 뭐 또 혈압병이니  또 체온병이니 그런 거는 다 과학이 다 지적하는 것이라. 과학이 지적하는 병  그것이 다 신체병이요 또 성경이 지적하는 행동병, 그 몸이 잘못 이용된다  말이오. 그 몸이 잘못 이용이 되는 그 모든. 성경이 잘못됐다고 하는 그런  행동을, 움직임을 하고 있는 그것이 신체의 병인 것입니다. 또 깨끗한 그 중생된  마음에게 복종하지 않는 그것이 다 신체병입니다. 고것을 가서 이제 읽으면  얼마든지 잘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병을 고친 능력은 무엇이뇨? 답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고쳤습니다.

 또 네째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무엇이뇨? 답에 도성인신과  십자가 대속과 부활과 성령과 진리의 능력의 운동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고 새겨  보면 다 알 것이오. 이 안에 다 포함됐습니다.

 그래서, 다섯째로는, 인간의 영원한 행복은 어디 있느뇨? 사람의 영원한 행복이  어디 있느뇨? 영원한 행복이 어디 있느뇨? 사람병 고침에 있습니다. 이 사람병을  깨닫고 사람병 고치기를 우리가 힘써서 이거고치기 전에는 천하 걸 다 차지해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아주 간단하나마 고게서 그때 그 현실에 있어서 사람병 고침  받은 사람이 제일 행복됐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제일 쾌락이라는 소망이라든지  또 평강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담력이라든지 제일 행복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을  이번에 집회 때는 제가 말을 했는지. 말 안 한 것 같습니다. 모르지만 여기에서  집회 가는 전 주일날 사람이 제일 행복은 어디 있느냐? 행복은 고쳐진 데 있지  안하고. 고쳐진 데에 있지 안하고 고치는 고게 있다.

 그러기 때문에 행복은 양편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니 하나는 병, 한 쪽은  병 한쪽은 나은, 나은 것 고 사이에 병을 고쳐서 낫게 하는. 고 병과 고침과 고  사이에 낫게 하는 거기에 우리의 행복은 있다. 기쁨은 있다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고쳐 놓은 것 가지고 기쁜 것은 그것은  잠깐이면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마나. 다만 계속 자기가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 될라고 하면 병을 발견하는 것이 계속돼야 되겠고 또 고치는 것이  계속돼서 계속 발견과 계속 고친 여기에만 인간의 행복은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딴 데는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에 그 집회에서도  하나님이 토막을 정하시기를 짧은 토막을 정해 주셨다 긴 토막을 주시지 안하고  찰나의 토막을 주셨다. 이러기 때문에 고게서 '아, 나 요 병. 믿음으로 고침  받아' 이래서, 양, 병과 고침 받은 의 고 사이에 있는 행복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 공과를 누구든지 다 받도록 그렇게 매수를 넉넉히 했으니까 요걸  가져가 가지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애를 써야 깨달을런지 모릅니다. 제가 공과  하나 만들라 하면 월요일부터 늘 마음에 눌려 이래 가지고, 아레도 이 공과 하나  만들고 난 다음에 다시 그만 더 힘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서 작정을 하고 예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안할라고 했는데 그만 아레 저녁에 아무래도 와서  우사하고 안 될 거 같아서 서지를 못했고, 어제 아침에는 내가 할라고 이라다가,  네시까지 할라고 애를 쓰다가 아무래도 안 돼서 네시에 ○○○목사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거 또 사탄이 전달을 잘 안 해서 ○○○집사님에게  부탁을 해서, 나는 지금 나오는가 하니까 ○○○집사님이 강단에서 찬송을  인도를 합니다. 그래서 급속히 연락을 해 가지고 ○○○목사님에게 했는데. 왜  너희들이 그랬느냐 이래서 했더니만 ○○○집사님이 찬송하고 난 다음에  기도하고 나서 '○○○목사님이 나와서 성경 읽고 하나님 말씀 증거해  주시겠습니다' 하니까 아마 그렇츰 급하게 그렇게 시킨 일 없을 겁니다. 그렇게  급하게 시켜도 우리는 준비해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준비해 가지고 있으면  자기에게 나옵니다. 그래서 급한 아주 설교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과를 그렇게 아무나따나 그냥 이렇게 읽어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깨달을라 하면 얼마나. 뭐 몇 날을 얼마나 거기에서 아무리. 양심  쓰지 안하고 자기 인격 기울이지 안하면 천 번 만 번, 뭐 외우기야 당장 외우지  그거 못 외우겠습니까? 외운다고 해 가지고 그 깊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번에도 대구에서 사람병 고치는데 대해서 증거를 했는데 그 증거하는데  대해서 하나님이 동참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너희들이 믿지  못하겠거든,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일을 인해서 너희들이 믿으라' 했습니다. 그러면 보지 안하고 믿는 것이  복있는데, 영감이 가르치는 것을 믿는 사람이 제일 복있는 사람이요 그 다음에는  성경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믿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요 그 두 가지 믿는 것은  보지 안하고 믿는 것인데 보지 안하고 믿는 그 사람이 복있는데 그걸 못 믿으면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여서 나타나게 보이는, 이번에도 뭐 사백 수십 명이 그렇게  하나님이 낫아 주신 거 그 병 나은 것은 과학으로도 낫울 수 있고 또 세월이  지나가면 자치력의 자연 자치력의 자치력으로써 치료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내게 오셔 가지고 역사하셨다는 그것을  그것이 큽니다. 그걸 믿어야 합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9장에는 반신불수에게 대해서 하신 것이나 요한복음 5장에  대해서 병 낫기 전에 하나님께서 죄사함을 받았다는 그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네  죄가 사함을 받았으니 안심하라 그 말씀하고 난 다음에 그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삼십 팔 년 된 병자에게는 낫고 난 다음에 주님이 부탁하기를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말은, 이제 범한 죄는 주님 앞에 사유함을  받아서 다 사유함 받고 네가 치료받았기 때문에 네가 다시 죄를 범해서  되풀이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 똑 같은  뜻으로서 죄사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감기 하나 낫운 것도 그 감기 낫운 게 큰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접해 가지고 내게 손을 대시고  관심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오셔 가지고 나를 치료해 주셨다 하는  이게 지극히 큽니다. 거기에서도 어떤 대통령이 쌀 한 되 가져 온 것을 말을  했지만 이제 그것은 비유가 안 됩니다. 뭐 대통령이 하나님 같습니까?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비유입니다. 지극히 크신 분이, 그것도 사람이  놀랄 터인데 지극히 크신 분이 이 천한 죄인에게 오셔 가지고 친히 착수하셔  가지고 나를 치료하셨다 하는 이 사실을 믿는 것은 천층 만층입니다. 그 믿는  것이 그 믿음의 양이 한 사람의 믿음의 양이 억만인의 믿음의 양보다도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믿느냐.

어쨌든지 그 능력이 와서 역사 하셔서 나를 치료하셨다, 이것은 당신의 사죄와  침의와 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네가 입었다, 네가 대속의 공로를 지금 입었다, 죄  사함을 받았으니 안심하라 하는 이 말은 내나 속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입히셔야, 입히셔야 당신의 능력이 와서  치료할 수가 있지 입히시지 안했는데 당신의 능력이 오면 바로 직살돼 버립니다.

당시의 대속의 능력을 우리에게 입히시지 안하시면 당신이 오면 직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대속의 공로로 우리를 먼저 깨끗게 하시고 난 다음에  당신이 착수 하셔서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혜를, 하나님께서 내게 이와 같이 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믿는 믿음과 기억하는 기억을 살려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역사를 볼 때는, '네 믿습니다. 이제는  믿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믿는 거 다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나' 하고  그 다음에 고와 같은 동등의 동질의 일을 그이들에게 부딪히게 하니까 '아,  하나님이 과거에 이거 해 주셨으니까 이것도 해 줄 것이다.' 믿으면 이제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가나안으로 들여보낼 것인데 그 다음에는 '과거에 그때는  하셨지만 지금은 하시겠나? 해 주시겠나?' 이것이 뭐입니까? 이것이 불신이오,  믿지 안함으로 멸망한 그 믿지 않는 것이오.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그것이 뭐입니까? 믿지 안하니까, 그분이 무형의 존재로서  사람이 와서 하는 거처럼 그렇게 하지 안하고 무형의 존재가 전능하신 능력으로  와 가지고 하니까 그걸 믿지 안하니까 유형의 존재를 만든 것이 우상 섬긴  것입니다. 이것과 말단에는 음행하다가서 절단난 그것이, 그래 되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 자기에게 행복을 다 잊어버립니다. 하나님 믿지 못하니 자기에게  평강이 다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일 뭘 원하시느냐?  하나님을 인정하는 거,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는 거, 그 다음에는  행하는 거 이 둘을 합해서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는다 하면 주권 개별 섭리를 인정하는 거,  그러기 때문에, 내 앞에는 당신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도  없고 나타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는,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하시는 그분이 내게 역사하시는 그 역사 외에는 내게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행하는 거 인정하고 행하는 건 뭐입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뭐 총부리를 놓고 철컥거리고, 일본  사람들이 신사 참배 어떻게 하고, 또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개별 섭리를 인정하는 고 인정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니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분이 내 구완을 위해서 주권적으로  개개별의 그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시니 이것도 사랑하시는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주셨다는 것을 알 때에 그는 반가워지고 기쁘고 평안한 것이 그이의  마음에. 하나님 보실 때에 그 마음에 가득 차고. 그 평안한 것이 그이의 얼굴  피부에까지, 그 기쁨과 평강과 반가운 분을 만난 그 표현이 자기 얼굴색과 그  피부에 있을 때에 그것이 뭐이냐 하면 행동하는 순종이라 그 말이오. 이거  주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이거 가지고 당신이 하십니다. 당신이 엿새 동안에  만들었는데 뭐 인부의 노동력이 모자라서 뭐 모집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다 만든  거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인간 충성, 모든 것 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신 것은 그 믿음을 좋아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 했다,  믿음을 보고 좋아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뭐 그 언행심사와 모든 영과 심신이 다 인정하는  그 마음이 됐고 인정하는 몸이 됐고 인정하는 피부가 됐고 인정하는 성품이 됐고  인정하는 게 환하게 태도에 나타나서 그 분이 인정한 거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삭도 내나 믿음의 사람이오.

야곱의 하나님, 야곱도 믿음의 사람이오. 실수 많이 했지만 마지막에는 야곱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해서 나는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님이다.

 이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조상의 하나님,  믿는 자의 하나님, 우리 조상 믿는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 종이라 말이 내나 믿음이라 말입니다. 종이. 종이라는 것은  순종하는 걸 말하는데 순종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순종이요 또 인정한 그것이 내 마음과 몸에까지 충만해서 그것이 나타난  그것이 순종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말로는 그래 하지만, 개별 섭리를 믿는다  하지만 실상 그 눈은 보니까 벌써 눈동자가 뒤비졌지 또 얼굴은 새파라이  질러졌지 그 행동은 달라져 버렸지 이래 경거망동으로 그만 거기 따라 움직여서  어쩔 줄 모른다며 그게 믿는 게 아니라 그 말이오. 그는 인정도 안하는 것이요  입술로 안다는 건 인정도 안하는 것이요 또 순종도 행동도 안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므로, 그 종을 영화롭게 했다, 또 하나님이, 26절에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을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악함이라 말은 자기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악한 정의를  자기 중심이라고 해석해 놓은 이 해석이 이것이 보통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른 데 암만 악의 정의를 이렇게 정의 내놓은 것을 조직신학에  나는 못봤습니다. 내가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뭐 뭐 학자들은 어디 봤는지  몰라도 그 악을 중심을 바꾸지 마라 하나님 중심 아닌 인간 중심이 악이라,  피조물 중심이 악이라. 하나님 중심 아닌 건 다 악이라. 이러니까, '각각 악을  버리게 하려 함이라' 이게 내나 자기 부인이요 원죄는 자기 중심 악이  원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은 그 개인에게 내가 네 죄를  다 대속했다 너는 내 대형 대행 대화친의 내 대속을 너는 입었다 하는 것을  당신이 보여 주시는 것이오. 입었다 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오. 당신이 나를  손잡으시고 나를 착수하시고 나에게 함께 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한  것이라. 요것을 잡아서 요게서부터 우리가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있는 것인데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것은 큰 손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서 마지막 아침에 간단하게 했는데. 병 나은 자에게는  반드시 미혹의 시비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도 보면 병 낫고 난 다음에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 교인들 유대인들 또 서기관들 제사장들 그들이 이 믿음을  깨트릴라고 막 달려들어 서둘렀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생명을 내놓고  증거했습니다. '나는 그이 말 듣는다 너거 말안 듣는다' 이라고 그렇게 나가서  마지막에는 그들이 아버지까지 잡아 가지고 뭐 별별 일 해도 끝까지 요동치  안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5장에도 그렇게 말해도 '나를 낫게 한 그이가 자리  들고 걸어가라 했는데 나는 그이 말 듣는다 너거 무슨 상관있느냐' 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착수하시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영감된 대로 신앙생활  할라고 하면 대적들이 않습니다. 대적이 누가 대적이냐? 인본주의 신앙이 다  대적입니다. 대적이 돼도 요동치 안하고 담대히 그걸 밀고 나가야 되고 변동 안  해야 되지. 은혜 받은 대로 새사람 생활할라 하면 다 마찰이 되고 다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잘 보존해야 되지 보존하지 안하면 사데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은혜를 자꾸 보존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사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삼가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간적으로 그렇게 하면 성령 훼방죄가 돼 가지고 그 하나님이 반드시 징계를  주십니다. 자기가 똑똑히 살펴보면 징계가 오는 것을 당장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이번에는 꼭 고 한 가지를 증거했습니다. 저 지난번에는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것을 증거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간단  명료하게 우리의 발의 등불이 되는지 모릅니다.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서  내냐 하나님이냐 고게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고게서 인간들의 모든  의사냐 하나님의 뜻이냐, 인간의 의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보이는  모든 조건들의 양호한 것이냐 하나님의 축복이냐 우리가 요 세 가지만 지키면  바른 길 얼마든지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롯과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  것이 그것이 뭐가 하나님 섬기는 것이냐 그거 자꾸 억설로 해서 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네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롯을 대우한 것이 하나님  대우한 것이요 롯이 아브라함을 배척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 배척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그 일을 어짜든지 각 교회 교역자들은 자꾸 살려야 할  것입니다. 살려서, 하나님이 우리 진영에 같이 하신다는 증거 또 하나님이 이  교훈을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직접하고 계신다는 증거 또 하나님이 이제 내가  너에게 착수해서 구원을 착수해서 내가 너를 아노라 하고 인정하고 계신다는 이  증거, 이 증거이니까 우리가 이것을 예사롭게 하면 안 됩니다.

 혹 '내가, 나를 통해서 한 것이 아니고 다른 이를 통해서 한 것이니까'  훼방하는 그런 죄를 지었다가는 하나님 앞에 사함을 못 받는 회개안 하면 사함  못 받는 그런 무서운 죄를 범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지,  하신 것은 예수의 이름이 고쳤고, 받은 것은 그 개인의 믿음이 받았습니다. 백  목사는 하나님 말씀을 증거를 바로 한 고것이나 한 사명입니다. 말씀 바로  증거한 거 고거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증거 할 때 나는 받는 것은 '아  네가 증거한 것을 내가 인정한다 내가 기뻐한다. 네가 증거한 것이 그것이 내  뜻에 맞다. 그것이 바른 진리를 증거했다' 당신이 그거 인정해 주는 그것을  내게는 주신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각자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하셔서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보지 아니하고 안 보고 믿는 사람이 복있는데 안 보고 믿지  못할라면 보고라도 믿어야 되는데 보고 믿지 못하면 그 다음 뭐입니까? 안 보고  믿으면 복있고. 그게 안 되면 보고 믿어야 되고, 보고도 믿지 안 하면 그 다음,  그 다음 단계는 뭐입니까? 그 다음 단계는 멸망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멸망이라. 이것을 뭐 예사롭게 이렇게 여기면 안 됩니다. 예사롭게 여길 사람도  있을 저고, '아, 과학에도 짜다라 그렇게 하고 있는데 뭐 그게 별 건가?' 그  사람은 내나 출애굽에 그 복술이 세 번 행한 거 거기도 행했는데 그 편에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오. 그러나 네번째는 하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도 믿을 사람 믿을 것이고, '그거야 뭐 별거 아니라. 그래 된다'  예사롭게 여길 사람도 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또 그것을 '저게 나았다가 고만  도로 반복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소원하는 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인간은  속에 뒤비보면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하기  쉽습니다. 요것을 고치지 안하면 나 헛일이라 말이오. 하나님 그분이 제일이지  뭐 그분 앞에 뭐 인간이 설 게 뭐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신 이것을 여러분들은 남한테 자랑할 거는 없어도  '아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했다' 이러면, 이것이면 다 된 거 아닙니까? 아,  하나님이 나를 택했다. 나를 아신다.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택자다 나는  중생된 자다' 하나님에게 이거 인정받았으면 그 이상 더 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우리 진영에 당신이 같이 하신다. 또 증거한 이 말씀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기뻐하시는 말씀이다.' 그게 뭐이냐? 그게 하나님이 보지 아니하고  믿을 수 있는 그 믿음 가지지 못하니까 이번에는 보여 주셨습니다. 보여준 것이.

보여 주고 난 다음에도 믿지 안하고 거기서 뒤퉁스러운 일 하면 그 다음에는  멸망이라는 거.

 이래서 이거 보여준 여기에 대해서 저는 요새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기도  제목이 이것입니다. 왜? 그 다음은 멸망이라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여 줘도 안 믿으면 그 다음에는 멸망입니다. 보고도 믿지 안하면 멸망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무진장의 하나님의 은혜에 연결이 됐으니 얼마든지 우리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은혜 받아서 얼마든지 충만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은혜를 삭감하지 안하도록, 사데 교회가 되지 안하도록,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받고 들은 것을 잊어 버렸다 말이오. 그런 교회가  되지 안하도록 우리가 힘쓰고, 자꾸 자기 교회 가 가지고도 말할 것이오.

하나님이 너에게, 너를 인정한다는 표를 받지 안했느냐? 아마 이번에 병 없는  완전한 자는. 완전한 자는 고쳐 주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병이 있는 것은  있다고 하면 있는 사람은 고침을 받지 안한 사람은 버린 사람이나 불택자나  그렇지 택자면 요번에 다 고침을 다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양이 다르고 다  그렇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어짜든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행하는 것을  보아서 믿으라. 하나님이, 주님이 행하신 이거 우리 눈으로 봤는데 그라고도  믿지 안하면 그 다음은 멸망인 것입니다 이번에 나타난 증거만 해도 뒤에 보고가  들어오는 게 사백 열 여섯 건이 들어왔고, 사백 열 일곱 건, 그동안에 여기서도  많이 들어와 있는데 아직 그걸 접수를 안 했습니다. 이러니까, 며칠 동안에 집회  가운데서 사오 백 명에 대해서 하나님이 착수하셨다는 것이 나타났으니까 그게  어디 장난으로 된 것입니까? 사람이 한 것입니까? 누가 거기다가 손을 댔습니까  뭐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지 안했습니까? 또 거기 뭐 다른 방법을 뉘가  간구했습니까? 하나님 말씀만 증거했습니다. 인간병을 고치라는 말씀만  증거했습니다. 그 인간병을 고치라는 그 말씀, 그 말씀 아주 진리입니다. 성신의  감동으로 주신 말씀이오. 한 말씀도 그 인간이 인위적으로 한 말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가 믿음이 없으니까 보고 믿도록 해  주셨으니까 이 보고 믿은 이것도 우리가 여기에서 담력과 위로를 받아서  강직하지 안하고 또 불신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 다음에 던져 버립니다.

이다음은 남은 것은 던져 버리는 역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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