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29일 수새

 

본문 : 마6:19-3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다 기록하려면 이 세상에 두어도 둘 곳이 없을 만치  그렇게 많은 내용을 간단 명료하게 이 신구약 육십육 권에 간추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은 전부를 다 기록하지 안하고 그저 자기가 마음을  쓰면 쓰는 것만치 차차 겉에서부터 깨닫게 되고 또 양심을 쓰면 쓰는 것만치  차차 더 넓게 깊게 깨닫게 되고 자기가 양심을 써서 성신의 감화를 소멸치  안하고 성신의 감화를 점점 영접하게 되면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점차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지, 자기의 그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  그걸 가리켜서 인격이라 할 수 있는데 자기를 바치는 그 양에 따라서 이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이지 바친 양 이상은 깨달아지지를 안합니다.

 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 지식은 인간들에게 지음을 받은 그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지배를 받지마는 이 계시 말씀은 진리요 이 진리는 사람보다  위치가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 다음에 이 진리요 이 진리 다음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진리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능력 있는 것만이 아니고 독자적으로  전능의 그 권위성을 가졌습니다. 이 진리가 우주의 모든 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그런 권위성을 가진 것이 이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는 사람에게  만홀히 여김을 받지를 아니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의 수단적으로나 지혜적으로나 그런 거는 다 필요가 없고 자기를  많이 바치든지 적게 바치든지 자기라는 것을 바치는 것 만치 이 진리는 그  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그 사람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바치지 안하고 외식으로 이 세상 일 취급하듯이 그렇게 하는  사람은 이 진리를 열 번 백 번 뭐 통달해서 외운다 할지라도 결단코 이 진리는  자기를 구원하는 진리는 되지 않습니다. 남의 복음은 될지라도 제 복음은 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이 말씀했고 저 아침에도 이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는 것을 자꾸 다 들어야 이 진리가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하는가  하는 그 목적인 진수를 자기가 깨닫게 됩니다. 거게 있는 모든 구비의 부분들을  자기가 알게 되면 차차 차차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여게 말씀하시기를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 한다.

하늘의 것은 동록도 해하지 못하고 좀도 해하지 못하고 도적도 해하지 못한다.'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게 보물이라 하는 이 보물을 어떤 범위로 생각하는가? 이 보물을 물질로,  자기 몸밖의 물질로만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물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배로운 소유를 가리켜서 보물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주격은 누가 주격이냐? 주격은 중생된 영이 주격이요 요 심신은 자기 안에 있는  그 소유인 소유격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그 밖에 있는 모든 자기의 사물과 모든  것은 또 그것도 자기에게 하나 소유격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론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삼분설을 말합니다. '영과 혼과 몸이라'  이렇게 사람의 그 요소를 나눈다고 하면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영 혼  몸으로 그렇게 나눌 수 있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에 그대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은 영이요 또 혼은 짐승에게도 혼이 있고 사람에게도 혼이 있다고  성경에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러니까 짐승은 영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 혼은  어떤 걸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그것은 사람의 마음 위치에 있는 양심, 또  이성, 그 모든 욕심들, 또 감정들, 기억력들 그런 것들을 다 통틀어서 그것을  혼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짐승은 죽을 때에 몸과 그 혼이 다 한꺼번에 없어지고 사람들은 죽을  때에 그 몸은 흙으로 잠깐 돌아가 가지고 있다가 이다음에 부활할 때에 그 몸이  살아나지마는 그 혼은, 그 마음 부분은 그거는 없어지지 안하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말은 구원 얻어 을라간다는 말이 아니고 그것은 심판받으려고  심판에 나아간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이 모든 만물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심판받는데 사람은 영 혼 몸이 다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정통 중에 삼분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분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지금 권위 있는, 미국에 있는 권위 있는 신학교로  인정을 하기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권위 있는 학교로 인정을 합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유니온 신학교가 정통이었었는데 그 신학교가 타락해 가지고 또  프린스톤 신학이 돼 가지고, 그 신학이 또 타락해 가지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됐는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도 지금 신앙 위주보다도 지식 위주가 돼 가지고  거게서 졸업한 사람들이 대개는 지식주의자들입니다.

 거게 사람들이 와 가지고 정통으로 인정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신학교의  인간론이, 인간론이 한국 교회에 대부분의 그 권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게서  인간론은 이분설을 말합니다. 이분설, 영과 육이라 그렇게 말하고 성경에는 영과  육도 말했고 또 영 혼 몸 그렇게도 말한 게 다 성경입니다.

 이러니까 삼분설도 이분설도 다 정통에서 인정을 하기는 하는데 그 모든 좀  세력 있고 유력한 분들이 대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이분설을 말합니다.

 이분설과 삼분설이 다른 것 같으나 같은 것은-이분설로 말하는 사람은 영  육이라 이렇게 말하고, 그러면 혼은 어데 가 붙었느냐? 혼 그거는 영에게 붙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삼분설 말하는 사람은 혼은 육에 붙었다. 왜? 짐승에게도  혼이 있다고 하지 안했느냐? 짐승에게 무슨 영이 있느냐? 또 이렇게 깨닫습니다.

 그러나 보수 정통파 가운데서도 영육으로 이분설을 말하는 것도 좋다. 이분설도  좋고 삼분설도 좋다. 그러나 될 수 있는 대로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복잡성을  제하고 간추려서 간단 명료하게 하는 것이 그게 좋다. 그러니까 다대수가  영육으로 이분설을 말하니 이분설도 좋다.

 그러면 이분설로 말하면은 혼이라는 그 마음 부분이 그것이 영에게 속하느냐  육에게 속하느냐, 그게 어데 속하느냐? 그것을 지금 인제 구별해야 되겠는데,  그러니까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영에게다가 소속을 시키고 어떤  사람들은 육에다가 소속을 시킵니다.

 그러면 영에 소속을 시킨다고 하면 영이니 마음이니 성경에 각각 다 말해 놓고  영의 작용이 있고 또 마음의 작용이 있으니 그러면 그것이 어찌 되느냐?  '그거는-어떤 사람이 해석하기를-손바닥과 같다. 손바닥이 등어리는 손등이요 또  손바닥과 등 둘을 이래 분명히 등과 바닥이 외부에서 볼 때는 표가 나지마는  그걸 나누려고 하면은 그거 쪼개서 어데까지가 손등어리에 속했다 어데까지가  손바닥에 속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 나누지는 못한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말하지만 그것이 억해가 되어지는 것은 영이 하는 것과 마음이 하는 것이  그것이 있습니다. 영을 떼놓은 마음의 작용들, 그 마음의 작용들을 그것을 영과  분리시킨 그런 때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절수차 와서 증거를 하니까 '마음이  영에 속했다' 하는 그 사람들의 증거가 그때에 변증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보물이라 하는 이 보물을 물질로만, 이 돈이나 뭐 물건이나 이런  걸로만 해석하는 사람들 있고 또 성경에는 물질은 물질로 말했고 보물이라는  것은 다른 데 여러 군데 보면은 그 물질만이 아니고 다른 자기에게 있는 모든  몸이나 그런 것도 보물이라고 그렇게 한 데가 있다  이래서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 보물이라고 말한 이 보물은 자기의  주격은 아니고, 자기에게 소유되어 있는 그 피소유격인데 그러면 피소유격은  어데까지를 피소유격으로 하느냐?  '자기 몸 밖에 있는 물질을 소유격으로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다. 마음이나 목숨이나 뜻이나 힘이나 그런 것은 그걸 소유격으로 말했지  주격으로 말하지 안했다. 그러기 때문에 '네 마음 네 생명, 네 목숨' 한 그  '너'는 뭐이냐? '너'라 하는 그것이 주격인더 주격은 곧 영이요 다른 그런 것은  다 소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말은 네  마음과 네 몸과 네 몸 밖에 있는 네 소유 그런 것을 다 하늘에 저축하라 하는  말이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저축을 하라고 하면 그 '하늘'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을 하는가?  그 '하늘'을 하늘이라 할 때도 있고, 천국이라 할 때도 있고, 위라고 할 때도  있고, 위-상하-위라고 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늘에 쌓아두라 그말은 천국에 쌓아두라 그말인데 천국에 쌓아두라 하는  그것은 그러면 그것을 자기의 소유를 전부 교회 갖다 바치라, 복음에 바치라,  연보해라 하는 그런 걸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여게 하늘에 쌓아두라는 그것은 어떤 게 하늘에 쌓아두는 것인가?  그것은 하늘이라는 것은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하늘의  주격으로 주재로 보고 그렇게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두라 그말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모든 소유 취급을 하라, 관리를  하라 하늘에 천국 소망을 위해서 모든 소유 관리와 소유의 취급들을 하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몸을 드린다, 몸을 드리는 것은 두 가지가 있는데 순생도 있고 순교도  있습니다. 순생이라는 것은 죽지는 안하고 살아 있으면서 하나님에게 바친 것을  가리켜서 순생이라고 하는 것이니 순생은 그것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로마서 12장에 보면은 '네 몸으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라 산 제사로, 살아  있는데 제물은 죽은 것이 제물인데 살아 있으나 하나님에게 바쳐 죽은 것과  같이, 다시 말하면 자유하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지는 그걸  가리켜서 산 제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나 몸이나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을 생각하고 천국을 생각해서 하나님과 천국의 소망, 하나님에게 소망  가지는 것은 천국의 소망 가지는 것이요 천국의 소망 가지는 것은 역연  하나님에게 소망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은  우리 사람들이 자꾸 이렇게 분리해 가지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이것도  말할 때 있고 저것도 말할 때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해서 또 천국을 소망해서, 하나님과 천국을 소망을 해서 네 마음  취급도 하고, 네 몸 취급도 하고, 네 소유 취급도 하라. 그러면 취급을 한다면  그거는 주격이 아닌데 취급은 누가 한다 말이오? 취급은 곧 자기가 한다 말이오.

자기는 누군데?  자기는 두 가지 자기가 있으니까 자기 아닌 자기가 있고 참 자기가 있습니다.

자기 아닌 자기가 참 자기를 죽여서,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를 입어 중생되기  전에는 참 자기는 죽어 있고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옛사람 그놈이 자기같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라는 이 역사 이것들이  들어 가지고 자기인 체하는데 그건 옛사람이요 그걸 가리켜서 육체의  사람이라고도 말했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도 말했고, 그렇게 땅에  있는 지체라 그렇 게도 말하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마음과 네-영은 아닙니다. 영은  주격이기 때문에 소유가 아니라 그말이오. '네' 하는 것은 살아난 중생된 영,  새사람을 가리켜서 '네' '네 보화' '네 보화' 네가 가지고 있는 네 소유인 네  마음, 네 소유인 네 몸, 네 소유인 모든 물질, 그런 것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것을 하나님 곧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그런 것들을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소망하는 그 소망을 가지고 그것들을 취급도 하고 관리도 하고 처리를  해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자기 마음이나 몸이나 모든 소유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것 키우는 것도 말이요, 그것을 키우는 것도  믿음으로 키우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고, 또 그것을 보관하는 것도  믿음으로 보관하는 것이 또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되고 또 그것을 사용하는 것도  믿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또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되겠고, 그것을 빼앗기는 것도  믿음으로 빼앗겨서 뺏기면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것 좀 알기 어렵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실지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이보다 더 세밀합니다. 이보다 더 세밀한데 말로는 이렇게 하는 이것은 '아이고  복잡하다' 하지마는 이 복잡보다도 실제로 살려 하면은 이보다 더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이 복잡을 모른다면 실제 생활에 가 가지고는 엉뚱하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을 지어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점점 타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이 보물을 네가 받아들여서 보물을 네가 수입하는 데도  믿음으로 해라. 보물을 보관하는 데도 믿음으로 해라. 또 보물을 네가 지불하는  데도 믿음으로 해라. 또 보물을 네가 강한 세력들에게 뺏길 때도 믿음으로 해라.

그것이 다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예를 들면은 자기의 생명을 주님에게 바쳐서  복음에 바쳐서 사는 것도 있고, 악의 세력들이 내 생명을 하나님의 진리를 두고  그 진리를 어기지 안하면 내 마음과 몸 이런 것을-생명이나 이런 것도 다 그  속에 들었는데-이것을 진리를 배반하면 이것을 유지할 수가 있고 진리를 배반치  안하려고 하면은,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안하려고 하면은 이것들을 뺏기지  안할 수가 없고 뺏기게 밖에는 안 되는 그런 때가 있다 그거요.

 그거 하나 뭐 예를 든다고 하면은 다니엘이 자기가 그 목숨이나 자기의  마음이나 자기의 몸이나 자기의 소유나 그런 것을 다 진리를 하나님과 진리를  생각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내주지 안하려고 하면은 자기 지위도 내줘야 되고  자기의 몸도 내줘야 되고 자기 마음도 내줘야 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신사참배 할 때 그랬습니다. '그들이 강제로 끌어다가서 나를  신사참배 해라 이렇게 해서 강제로 끌려가 가지고 신사참배를 한 그것은 내가 속  마음은 안 했기 때문에 암만 겉어머리는 하면서도 마음은 암만 그래도 내가 속  마음은 안 한다.' 그 겉어머리는 하며 속 마음은 안 한다고 제가 이중이 될 줄  알았는데 겉어머리 한 사람은 속 마음까지 다 한 것이 돼 버려서 실패를 했다  그말이오.

 그런 것이 거창서는 좋은 증거가 있습니다. 임, 아따 그 이름이 임 집사인데,  여기 저 집사 위에 이름이, 장로 밑에, 안 되고 그 밑에 있는 그 집사가 뭐  있지? 권사 말고. 어? 영수. 영수, 영수. 지금은 영수라 말이 없는데 그  영수입니다. 영수인데, 임 영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참 진실되게,  양반이고 아주 굉장한 양반이라서 그전에 양반 팔아먹고 모두 사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이 집사가 됐는데,  윤동선 조사라고 그분이 그 다음에, 그 사람이 그때 고둥고시에, 세무관으로도  있었고 또 여기 도청에 그때 또 좀 아마 높은 자리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거게 되기 전에 전도사로 있다가 타락해 가지고 그짓 하다가 또 새로 또  돌아와 가지고 난중에 결국은 그만 세상으로 이래 삐끄러져 허무하게  됐었습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이 한번 밤에 가니까, 심방하러 저녁 먹고 늦게사 그 임 영수  집에 가니까 자꾸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불은 꺼졌는데 성경을 읽고 있어서  '아마 이거 외우는갑다' 하고 '하면 얼마까지 외우는지 보자.' 하고 문 밖에서  들으니까 한 시간이 가도 외우고 두 시간이 가도 외워서 이거 얼마를 외우는지  몰라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 돼서 할 수 없어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까,  들어가면서 '영수님 성경을 그렇츰 많이 외웁니까?' '나 성경 읽고 있습니다.'  '불을 껐는데 성경을 읽습니까?' '불 끄면 성경이 안 보입니까? 저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불은 암만 꺼도 성경은 환하게 보입니다.' 깜깜한데 성경을 본  그것이 기적입니다.

 또 인제 그 사람이 친해라는 그 동네까지, 북상이라는 그 동네까지 거창읍에서  도상회 할 때 가려고 하면은 거게서 한 오십 리 됩니다. 오십 리 되는데  새벽기도 마치고 모두 이래 기도하고 회의하고 지나면은 밥 먹고 오는 시간이  과적 그저 한 시간 한 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와서 보면 같이 헤었는데 나중에 예배 시작할 때에 앞자리 와서 앉았습니다.

'그러면 영수님은 식사를 어데다 붙였습니까?' '안 붙였습니다. 집에 가 먹고  옵니다.' 그 집에 오십 리 가 먹고 온다는 거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참 그 이상하다. 이 사람은 불을 꺼도 성경이 보여서  성경을 읽지, 또 오십 리 가는 데 아침 먹고 오는데 찍해야 한 한 시간 반밖에는  안 걸리지, 이상한 사람이라.' 그랬는데, 기도도 거석하고 열심히 참 진리를 꼭  성경대로 믿고 행하고 그랬습니다.

 이랬는데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가 와 가지고 강제로 끌고 가니까 속에 해석을  잘못했다 그말이오. '아무리 내가 저거에게 끌려가 가지고, 강제로 끌고 가서  나를 머리를 거머쥐고 이래 숙이고 이래 해도 그만 하는 척하고 이래 해도 속은  내가 안 하지.'  그러면 신사참배에 대해서 절하라고 이래 호령을 부를 때에 절은 하지마는  강제로 끌려왔기 때문에 그 책임을 강제로 끌여온 거기다가 책임을 전가시키고  자기는 속 마음으로 고의적으로는 안 하니까 신사참배 안 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해석을 하고 신사참배의 절을 했다 말이오.

 마음과 몸을 달리 생각해 가지고 절을 했는데, 신사참배의 절을 딱 엎드리니까  뭣이 자기 속에서 학이 날아가는 것같이 무엇이 확, 그 어떤 권능이 확 나가는  것같이 그런데 그만 그리고 나서 그 앞에 팍 엎어 졌습니다. 엎어져 가지고 한  서너 시간 있었는데 그 뒤에 정신을 차려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꼭 일반인과  같이 성경을 밤에 못 봅니다. 못 읽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집회할 때에 못  갑니다. 자기가 가려고 그때와 같이 갈 줄 알고 집회할 때 나섰는데 나서 가지고  죽자껏 가도 거기서 그저 한 십 리, 십오 리 가기만 하고 한 시간에 그저 십 리  이상을 걷지 못하고 그만치 가고 이러니까 그만 할 수 없어 늦게사 왔는데,  '오늘 왜 이래 늦게 왔습니까?' 그래 그 사람이 와서 간증을 해요. '그때 능력을  잃어버려서 내가 이 걸음도 그렇고 눈도 어두워졌고 그만 이래 됐습니다.'  그거는 그때 있던 그 거창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속 마음은 따로  가지고 겉어머리 행동은 어떻게 할 수 있다, 행동과 그 마음을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 그런 것은 다 안 된다'는 것을 일반들이 인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것은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이러니까 못  알아들으니까 여기 부득이, 여기 하늘이라 했었기 때문에 알아듣기 위해서  천국이라,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또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렇게 말하지마는  하나님께 소망둔 사람이면 천국에 소망둔 사람이요 천국에 소망둔 사람이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몸이나 마음이나, 생명도 물질 생명이 있다. 물질 생명은  짐승에게도 있는 것인데 우리는 물질 생명이 아닌, 물질 생명은 빼앗아 갈지라도  우리가, 중생된 생명이라는 이 생명은 물질 생명이 아닙니다. 중생된 생명은  물질 생명이 아니고 영의 생명인데 이것은 영생이요 이 주격이 영생하니까 그  소유격인 이 마음도 몸도 것도 다 뒤에 다 영생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영생한 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만물이 새롭게 됐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마음 취급, 몸 취급, 자기 몸 밖에 있는 사물 취급 이 취급을 하늘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이것을 취급을 해라. 취급을 해라. '그러면 내가 지금  마음을 이래 쓰는 것은 하나님을 소망하는 데 대해서 어찌 되느냐? 하늘나라  소망하는 데 어찌 되느냐?' 그 소망을 가지고 거게서 네가 비판을 하고 평가를  하라. 하나님세게 소망두고 하늘나라에 소망둔 그 소망을 가지고 네가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결정도 해라. 그렇게 하면 네 마음이 하늘에 가 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그말은 네 마음을 하나님께 가 있도록 네  마음을 천국에 가 있도록, 이래서 네 마음이 비록 이 세상에 있지마는 네 마음이  하늘과 하나님에게 가서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 그것이 네가 각오로나  결심으로나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되는 방편이 그 취급과 관리와 모든 수지를  그대로 하는 거게서 이루어진다.

 그러면 거게서 이루어지면 뭐이 되느냐? 네 마음이 차차 밝아진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이 어두우면 전신이 어둡고 눈이 밝으면 전신이 밝아지는 것처럼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전부 어둡고 네게 있는 빛이 밝아지면 밝다 하는 그  빛이라 하는 그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 양심을 말합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이렇게 보화, 보물 취급을 이렇게 취급을 하게 되면은 네  마음이 하늘에 가서 있게 되고, 네 마음이 하늘에 가서 있게 되면은 네 마음이  밝아진다, 양심이 가꾸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그것이 뭐이 되느냐? 그것이 땅의 소망과 하늘의 소망, 이  땅과 하늘을 바꾸는 것이 된다. 세상과 천국을 바꾸는 것이 된다. 네가 땅에  있는 소망을 하늘의 소망으로 바꾼다는 것이, 네가 세상을 주고 천국으로 네가  바꾸고 이렇게 바꾸게 된다는 이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만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가지게 되는 그 조성 방편은 그 건설 방편은 어떤  방편을 써야 되느냐?  그저 자기가 아무리 앉아서 '나는 주님과 하늘나라에만 소망 둡니다.' 하고  명상을 많이 하고, 또 자기가 입으로 많이 그저 자꾸 그렇게 많이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한다고 해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하늘의 소망과 땅의 소망 이 둘이 기독자의 소망인데 기독자들이 불신자일 때는  전부 땅의 소망만 있었는데 땅의 소망과 하늘의 소망 이 두 가지를 가졌고, 이  두 가지를 가졌는데 사람들이 땅의 소망이 주격이 되고 하늘의 소망이 그다음에  부가 되어질 때는 그 사람은 항상 표준이 땅의 소망이 표준이 되고 기준이 돼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뭐 어떤 경우에서는 하늘나라를 위주로 해 가지고  이와같이 한다 하지마는 최종에 가 가지고는 땅의 소망을 위해서 결정도 되고  기울어지게도 되고 주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참 최종의 판정이 날 그 규징지워질 때는 언제든지  땅에 속한 사람이 돼 버리고 천국의 소망을, 천국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일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과 하늘나라를 바꾸는 것, 어제 아침에 그 세  가지를 말했는데 어제 아침에 말한 그 첫째 것을 그걸 지금 재독합니다.

 세상과 천국을 바꾸고, 그다음에는 물질과 하나님을 바꾸고, 그다음에는 자기와  하나님을 바꾸고, 마지막에 그것이, 그런데 그건 이 진리 속에 깊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꾸 거게서 깨달아서 지켜 나가야 그게 깨달아지지 그전에는 못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이 해석을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아무데나따나 그래  말하면 알지도 못하고 잘못하면 난중에 이단이라고 또 정죄받습니다.

 이렇게 그러면 우리 소망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 소망이 천국에 가 있어서  우리의 모든 그 전생활이 하늘의 소망을 건설하고 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성취하고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 유일한 방편이 뭐이냐? 좋은 방편이 뭐이냐? 그  좋은 방편을 여게 하나를 해 놨습니다.

 소유 취급, 영이 아니고 영 네가 중생된 네가 이 소유 취급을 할 때에 소유  취급을 할 때에 땅의 소망 이 소망을 두고 네가 소유 취급을 하지 말고 네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하늘의 소망으로 모든 이 소유 취급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소망을 두고 소유 취급을 해서 소유 취급의 그 목적의 그 저축은  하늘에 갖다 저축하는, 하늘을 위해서 모든 소유 취급을 하고 하늘에 유익이  되도록 네가 소유 취급을 해라. 그러면 '네 마음이 보물 있는 데 가 있다'  그말은 네 마음이 하늘에 가 있다.

 그러면 네 마음이 하늘에 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늘은 벌써 네가 점령을 해  가지고 네 모든 이 육체의 생활의 그 계획이 하늘에서 계획되고 또 결말이  하늘에 가서 지워지고 또 수지 계산의 결산이 하늘에 가서 지워져서 그렇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세상과 천국을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안하는 것이니 가장 쉽게 되는 그 유일한 방법이 뭐이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제일 속빠른 아주 신속의 방편이다. 그것이 아주 고속 방편이니까  그 방편을 써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밝아진다. 그다음에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얼마나  어둡겠느냐' 그말은 네 양심이 어두워지면은 네 모든 생애가 얼마나  어두워지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빛을, 빛은 마음이라 하는 것이 다 다른 데 있지마는 네 육체의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고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다 하는 그것은 하나의 비유로 이제  나타내 가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눈이 어두운 것처럼, 눈은 찍해야 네 육체를 이렇게 보고 있지마는  양심의 눈이라 하는 것은 네 이 심신의 전 생애를 보고 있는 것은 양심이 보고  있는 것인데 육체의 눈이 어두워서 이거 보지 못하는 어두운 그거는 네가  알지마는 양심의 눈이 어두우면 네가 무슨 말 해야 되는지, 네 행동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네가 어떻게 취급해야 되는지 모든 비판이나 평가나 계획이나  경영이나 소원이나 소망이나 그런 것을 네가 어떻게 해야 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깜깜 소경 놀음을 네가 하게 된다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의 눈이 밝아지려고 하면은 어떤 방편이 제일 좋으냐 ? 마음의  눈을 밝아지려고 하는 데에는 자기 마음이 하늘에 가 있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소망하라'  네 모든 마음의 작용이 다 그 날에 가서 있으라 하는 그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이렇게 소망을 가지고 취급을 하게 되면은 네 마음이 자연히  하늘에 가서 있게 되고, 네 마음이 하늘에 가서 있게 되면은 그 마음이 눈이  밝아진다.

 사람의 눈이 사람의 마음의 눈이 말이요, 사람의 마음이 땅의 소망을 가지게  되면 그만 어두워지고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심판 거친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게 되면은 그 사람의 마음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마음의 눈을 밝아지려고 하는 데에도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다. 마음의 눈 밝아지는 것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인데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면 네 마음은 하늘에 가서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네것이 되어지고 만다.

땅의 소망과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꾸는 유일한 그 간단한 방편이 이 방편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방편으로 자기가 취급해 보면, 그게 뭐 쉬운가 어려운가  취급해 보면 알게 됩니다. 취급해 보면 하루도 수십 번 실패하고 수십 번 또  다시 회개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이 육의 구원이리 하는 것은 중복적으로 되기  때문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그 잘못된 것을 깨닫고 뉘우쳐  회개하거든 사해 줘라' 하는 그말은 '누가 하루 칠칠은 사십구 사백구십 번이나  실수할까?' 아니오. 이래 살라 하면은 사백구십 번도 참 헤아린다고 하면 더  됩니다.

 이런데 그런 것을 자꾸 이래 가지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내 마음을  이러면 내가 마음을 이래 쓰면 이거 하늘에 어찌 되느냐? 하늘에 이 소망에  수입이 되나 안 되나? 내가 이 몸을 이래 쓰면은 하늘에 소망에 수입이 어찌  되나? 이 물질을 쓰면 어떻게 되나?'  이것이 간단한 것 같지마는 하나님이 그렇게 방편을 지시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지시 따라서 하기 때문에 고거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래 하는 가운데서 자기가 자꾸 성화되고 자기 마음이 하늘에 가서  옮겨지는 방편을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놨기 때문에 그 방편을 쓰면 된다  그거요. 홍해를 건너가라 해서 건너가는 방편을 쓰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라  해서 이스라엘이 그 방편 쓰니까 홍해를 건너갔다 그말이오.

 그거는 뭐 말도 같지 않은 비합리적 이요, 비논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비통계적이요, 비이성적이지마는 그래도 하나님이 정한 방편은 쓰면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보물 취급을, 하늘에 소망을 두고서 보물 취급을 해라.

 자기가 직장에 있을 때도 그뭐, 그러니까 실수한 걸 그렇게 크게 여기지 말고  '내가 실수했다' 끙끙 앓고, 끙끙 앓고 있으면서 자살을 해도 소용 없습니다. 가  유다가 자기가 주님 팔고 난 다음에 너무 후회가 돼서 가슴을 치고 이러다가  나중에 자살을 했습니다. 이래도 그게 소용이 없어.

 그저 자기가 마음을 천국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했는데 자기가 그만  잘못됐습니다. 약해서 잘못됐어. 잘못돼서 약해서 잘못될 때에는 알았지마는  약해서 잘못됐으니까 그 시간이 현실 지나갔으니까 지나갔으니 그거는 할 수  있다 말이오. 지나갔으니까 '주님이여, 내가 요번에 이 마음을 참 잘못  썼습니다. 이거 순전히 땅에 속한 마음으로서 또 땅의 소망으로 이 마음을  썼습니다. 사해 주옵소서.' 이러니까 사하면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다음에 가 가지고는 차차차 그런 가운데서 그 마음을 하늘 소망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하늘의 소망으로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고, 하늘의  소망으로 땅에 있는 모든 소유들을 움직일 수 있는 여기에서 땅에 속한 사람이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변화돼 나간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뭐 실수가 없는 게 아니라 하루 일흔 번도 더 될 수 있어.

사백구십 번도 더 될 수 있어, 우리 전생활에. 이러니까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을  알고 주님에게 고하면 그게 쌓이지 안하지마는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도 알지  못하고 나가면은 그게 속에 암같이 돼 가지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영물은 안팎에 눈이 가득 찼다' 했어. '안팎에 눈이  가득 찼다' 말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 있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 있기 때문에 육안만 가지고 살지 말고 네가 마음의 눈을  가지고서 살아야 된다 하는 걸 말한 것입니다.

 이거 또 결론을 맺지를 못하니까 그저 오늘 아침에는 그래만 알아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 해석을 자꾸 그래 안 하면, 단절적인 해석 안 해 주면  바깥에 나가면 또 미혹을 받게 되지 자기도 생각할 때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건 연보하는 것만 이래 하늘에 쌓아두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된다.' 여게서 이해를 못 하고 나가면은 이해 못 하게 한  마귀란 놈이 휘떡 둘러씌워 버린다 그거요.

 이러니까 실은 예를 들면은 우리 소유 말이요, 물질 이것을 자기가 취득할 때,  취득할 때에 하나님의, 믿음으로 취득하라 그말은 요 믿음으로 취득하는 요것도  또 알아야 돼, 단어를 알아야 될 터인데 알기 어렵다 그거요.

 믿음으로 취급하라 그말은 하나님께 순종으로 취급하라 그말입니다. 물질을  취득할 때도 믿음으로 취득하라 그말은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취득하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취득하라는 것만 취득하고 취득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라 그말이오.

 취득하라는 것 어떤 게 취득하라는 것인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데 오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취득 하는 것이라 말이오.

 또 자기가 그것을 바쳐 쓰는 것, 이 지불하는 것, 지불하는 것도 믿음으로 그  취급하면은 하늘에 쌓인 게 되고,  자기가 쓰지 안하고, 쓰지 안하고 보관해 가지고 있어도, 보관해 가지고 있어도  믿음으로, 믿음으로 보면은 자기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맡긴 것이요,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하나님이 쓰라 소리 안 하는데 자꾸 제 맘대로  남용을 해도 이것도 죄, 또 하나님이 보관하라는데 보관하고 있으면 이것이 벌써  하늘에 쌓아두는 거라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이것을 쓰지 안하고 보관하고 있는 그것이 다 하늘에  소유가 되는 그것도 믿지 안하기 때문에, 이다음에 가면 하나도 쓰지 안하고 딱  보관만 해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나라 가 보니까 보화가 하늘에서 상급 많은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라 말이오. 다른 사람은 안 믿는데 그 사람은 믿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걸 믿기 때문에.

 그러니까 수입이나 보관이나 지불이나 그것은 자기가 주관성이 있고, 자기  주관성이 있는 것이라. 주관성이 있지마는 이거 해서 하라 할 때에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뺏기는 게 있다 말이오. 이것 참 억지로 뺏기는 것 이거 내 주기도  싫고 이렇지만 억지로 뺏기는 것, 뺏길 때에 그때에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뺏기는 그것은 '하나님께 바칠 연보나 할 걸' 연보하는 그것이나 내가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손해를 보는 그것이나 꼭 같이 하늘나라에 쌓여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오.

 그중에 제일 어려운 것은 뭐이 어려운 것이냐? 믿음으로 수입하는 그것도 자기  있는 것을 쓰는 것보다는 어렵고, 또 보관하는 것도 쓰는 것보다, 믿음으로 쓰는  것보다 더 어렵고, 제일 쉬운 것이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가  이렇게 바쳐서 활용하는 그게 제일 쉽다 말이오. 그건 자기 주관이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 소원대로 제 주장이 들었기 때문에 요놈이 들었기 때문에 쉽다  그말이오. 그래 나중에 분석해 보면은 그게 결국은 자기가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몇분지 일이 하나님을 위해서고 몇분지 일은 자기를 위함이라는 그것  분석이 된다 말이오.

 그러나 뺏기는 이것은 순전히 뺏기기가 싫어서, 참 자기는 뺏기기가 싫어서  원통하고 이러니 뺏기기 싫지마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위해서 이걸 안  뺏기면 하나님에게 욕이 되어지겠고 영광이 가루어 지겠고 진리가 가루어질  때에는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서 내놓는 것,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친척을 뻐앗긴 자는' '빼앗긴 자는' 말해. 뺏긴 자, 그걸 제일 높여서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자기 있는 것을 이래 척척 바쳐서 쓰기는  쉬운데 그 억울하게 애매하게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나한테 들어붙어 가지고  시비를 하는데 그 사람하고 그걸 시비하려면은 복음도 가리워지겠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워지겠고, 그때 한 토지가 한 천 평 되는 그런 토지인데. 그래  가지고서 그것을 그러기 때문에, 모든 동리 사람들 다 알기를 '그 사람이  무례하다.' 도저히 그거 무례합니다. 무례한 일이지만 그것을 안 주려면 안 줄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나한테 말하기를 '이거 내가 뭐 꼭 달라 할 것도 없고 이거  이렇지마는 이것 내가 이래서 하겠습니다.' 하고 이래 말 하는데 타타인 남인데,  그것을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그만 그 사람에게 줘 버렸어.

 주니까 저거 가족들은 그때 그 시비가 있었습니다. 그것 준다고 시비가 있었어.

그래도 그것 주는 것이 쓰는 것보다, 바쳐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말이오.

바쳐 쓰기는 쉬운데 그거는 어려워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것, 천국 소망 때문에  손해보는 그것이 하늘나라 다 쌓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천국 소망  때문에 자기가 사용하는 것, 뭐 연보로 바치든지 뭐이든지 사용하는 것 그것도  하늘에 쌓인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또 천국 소망 때문에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보관하고 있는 그것도 다 하늘에 벌써 하나님께 바쳐버렸다 말이오.

 자기가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것으로써 보관하고 있지 자기에 소유권이  하나도 없다는 걸 똑똑히 하나님 보실 때 이것이 분리돼서 구별이 돼 가지고  있다고 하면은 하늘에 쌓은 게 된다 말이오. 수입할 때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사용할 때, 우리는 아주 너무 어두워서, 사용할 때에 자기가  잘못하면 십일조도, 자기가 십일조를 뭐 이런 것 사용할 때나 또 연보를 사용할  때에 자기가 들어 가지고 있어서, 사용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연보를 하고 사용을  하지마는 실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 사용하기도 쉽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기도 쉽고, 자기 주관이라는 자기 사욕이, 사욕이 꺼풀만 달리 입어  가지고서 내나 속에 그거는 변동 없는 그 사욕이 들어서 이렇게 사용하고 저렇게  사용하기가 쉽기 때문에 차라리 이것은 어떤 기관에다 바쳐 가지고서 자기의  사복을 다 떠나서 그만 그 기관을 믿을 수 있으면 거기다 일단 바쳐 가지고  사용하는 그것이 오히려 결말적으로 결론적으로는 낫다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자꾸 이 아는 게 쉽소. 아는 것이 쉬운데  무엇이 모르게 하느냐 하면은 옛사람 이게 들어 모르게 하고 사욕이 들어서  주관이 들어서 모르게 하니까 자기를 부인하면은 그만 성경 배울 것도 없어.

 자기를 부인하면 성경 배울 것도 없고 행복을 구할 것도 없고 저절로 행복이 다  되는 것이고 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이래 되어지는 것이니까,  하나 하나를 자꾸 믿음으로 받아라 하는 요 믿음으로 받아라 그말은 요  믿음으로 네가 지식해라, 믿음으로 알아라. 믿음으로 아는 것이- 요거 하나만  알면 다른 것 다 알아요, 그만. 거기 대해서는.

 '믿음으로 알아라' 하는 것은 믿음으로 아는 것은 어떤 것이 믿음으로 아는  것인가 ? 믿음으로 아는 것은 그게 어떤 게 믿음으로 아는 것인가? 하나님이  '콩이라' 할 때에 콩으로 아는 그게 믿음으로 아는 겁니다. 하나님이 '팥이라'  할 때 팥으로 아는 것이 그게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거는 하면  안 된다'할 때 그래 알기를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치시기 때문에 가르치신 그대로  내가 아는 것이 믿음으로 아는 것이오. 또, 그런고로 공부도 믿음으로 해라. 또  그러면 이 세상 일은 안 할 건가? 믿음으로 하라.믿음으로 하니까 그 세상 일이  전부 천국이 되고 맙니다.

 '오늘은, 이 시간에는 누워자거라' 하나님이 누워자라 할 때 누워 자니까 그게  천국 생활이라. 하나님이 또 '오늘 너는 무슨 일 하라' 할 때에 그 일 하면은  천국 생활이라.

 하나님에게 복종으로 하는 그것이 다 믿음으로 하는 것이요 그 믿음으로 하지  안한 건 다 죄라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좀 복잡하지마는 간단하게,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러면 세상과 하늘나라가 바꾸어진다. 그러면 네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은 그다음 순서, 물질과 하나님과 바꾸는 것이 그다음입니다.

물질과 하나님과 바꾸는 것이.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주인을 바꾸게 된다. 주인을 네가  하나님으로서 주인을 하느냐? 물질로 주인을 하느냐? 네가 주인 바꾸게 된다.

 세상과 하늘나라를 바꾸고, 이차적으로는 주인을 바꾸고, 삼차적으로는 뭘  바꾼다 했지요? 자기와 하나님과 바꾸고. 이러면 이제 자유고 평안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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