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

 

1981. 2. 17. 새벽 (화)

 

본문:베드로후서 1장 1절∼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편집한 자료임)  선지자라고 하면 구약 시대에 아무도 모르는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 준 사람을 가리켜서 선지자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역사를 알려주고, 하나님의 진노도 알려주고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전달해 주는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선지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먼저 선(先)자, 알 지(知)자이니까 무슨 미래사를 아는 것같이  그렇게만 생각하지마는 미래사나 과거사나 하나님과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인간들보다 먼저 알고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선지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도라고 이름한 것은, 구약 시대는 사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  사도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사도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서 예수님의  사명을 전하고 맡기신 그 사람을 가리켜서 사도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름을 입어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마는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사자로, 당신의  심부름꾼으로 당신이 직접 불러서 특별한 약속을 맺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사도라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열두 사람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열두 사람 가운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사도직을 벗었기 때문에 가룟 유다 대신에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실  그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해서 예루살렘에 집사 스데반이 제일 열심 있게  믿으니까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그 운동을 한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 운동을 해서 스데반을 죽이고, 또 다메섹에 있는 열심 있는 신자들을 죽이러  가다가 주님이 나타나셔서 부를 때에 바울이 비로소 주님을 참 보고  깨달았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뇌성벽력을 하는가 이랬는데 사울은 바로  깨닫고 그때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울의 눈이 어두워져서 평생  눈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때 사울이 회개를 하고 주님을 자기 구주로 믿고 그때부터 3년 동안 아라비아  가서 회개를 하고 그 뒤에 여생을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성경 기록할 권세가 있고 사도들도 성경을 기록할 권세가  있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할 권세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 있으나 그것은 사도들이 그를 시켜서 기록하고 사도들이 마지막에  인을 쳤습니다. 이것이 사도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나 사도 되는 것 아닙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잘 믿었다고 사도 되는  것 아니고, 한상동목사님이 잘 믿었다고 사도 되는 것 아니고, 주남선목사님이 잘  믿었다고 사도 되는 것 아닙니다. 사도는 인간을 통해서 부르지 않고 주님이 직접  부르셔서 주님의 일꾼으로 세우시고 성경 기록할 그런 권세까지 받은 사람이  사도입니다. 사도는 열두 사람으로 하나님이 정하시고 그 외에는 사도가  없습니다.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시몬은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 되기 전 옛날  이름이고 또 제자가 되고 난 다음에도 실수를 했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라고 부르지 아니하셨고 언제든지 시몬이라고 불렀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알기 전, 믿기 전 이름이요 실수할 때는 주님께서 '시몬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시몬 베드로라고 이렇게 기록한 것은 자기가 주님 믿기 전에 어떤  자였으며 예수님을 따르고 난 다음에도 자기가 어떻게 실수했다는 그것을 늘  기억하면서 주님을 몰랐을 때에 자기는 어떤 자라는 것과 주님을 알고 난  다음에도 주님을 배반한 의롭지 못했던 그 자기를 생각하면서 시몬이라 이렇게  이름한 것입니다.

 또 베드로라 한 것은 자기가 옳은 신앙생활 했을 때에, 하나님이 만족히  여기시는 그런 인물이 되었을 때를 생각한 것입니다. 주님이 '네 이름을  이제부터는 베드로라 하라. 네 이름을 반석이라 하라. 네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고 천국 열쇠를 네게 맡긴다'고 하는 완전 무결한 그 사람으로 되었을 그때에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시몬 베드로는' 하는 것은 주님과 거리 멀고 배반했던 그것을 평생  자기는 마음에 명심하고 깊이 생각해서 '나는 시몬이라' 시몬이라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또 자기가 시몬이라는 주님 앞에 잘못된 그것만 자꾸  생각하지 않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완전 무결한 자가 된 그때를 늘 생각하면서,  그것을 사모하고 갈급하면서 '베드로라' 이렇게 이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이름을 말할 때에도 시몬이라, 베드로라 이렇게 해서 평생 자기가  주님 앞에 거리꼈던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특색입니다.

주님 앞에 거리꼈던 그 옛날 것, 닭 울기 전에 자기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그것을 평생 견딜 수가 없는 그런 마음 졸임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분이 순교당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다 십자가에 '너희 주가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까 너도 십자가 사형으로 사형 주겠다.' 해서, 예수님에게 충성한다고  십자가에 사형을 줄 때에 베드로는 '나는 십자가에 이대로 사형을 당할 수 없는  자이니까 나를 이미 사형시킬진대 거꾸로 사형을 시켜 달라' 해서 거꾸로  달리기를 원해서 그렇게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다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그것이 마음에 평생 그래서  자기는 다른 사람과 같이 주를 위해서 죽되 바로 십자가에 박힐 수 없는 그런  자라는 것을 느끼는 데에서 그와 같이 된 것이라고들 다 생각합니다.

 그 위에는 종이 되었다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종이라는  것은 주님의 도구와 같이, 또 주님의 짐승같이 죽고 살고, 잘 쓰이고 못 쓰이는  것이 상관없이 어느 때에 어떻게 쓰여지든지 주님의 뜻대로 다 쓰는 자기가 된  그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를 쓰지 못하고 주님만이 자기를 쓸 수  있는 자기가 되어진 것을 자기가 느끼고 하는 말입니다.

 종이라고 이렇게 한 것은 얼마나 자기에게 자신 있고, 아무리 죽음이 와서 '네가  안 죽으려면 이렇게 해라' 해도 안 죽기 위해서 죽음에게 복종을 하지 않는,  죽음이 이래 하라면 이래 하고 저래 하라면 저래 하고 그렇게 죽음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다만 주님에게만 복종해서 주님만이 자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죽음도 그 사람은 이리저리 할 수 없고, 돈을 준대도, 세상 권세를 준대도, 어떤  향락을 준대도, 무엇을 준대도 그것들이 그를 도무지 자유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피로 구속하신 예수님만이 자기를 마음대로 하시고,  예수님에게만 종이 됐고, 예수님에게만 복종하고, 예수님만이 자기를 쓸 수 있는  이것을 자기가 느껴서 '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사도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직접 불러서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자기는 주님의 심부름하는, 주님을 나타내는 이 외에 딴 것은 할 수 없는 자요  이것만 하는 자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종노릇이나 사도 직을 하루 한 번만 해도 우쭐해서 굉장할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한 번 한 것도 평생 팔아먹습니다. '주님이 이럴  때 내가 이렇게 순종했다.' 평생에 한 번 종노릇 한 것도 크게 우려먹는데 이렇게  종으로, 사도로 생활을 했으면 참 교만해질 것이고 우쭐해질 것인데 베드로는  교만하거나 우쭐하거나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그 다음에 보면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시몬  베드로는' 시몬을 생각하는 요것이 그 한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요것이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베드로는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 보면 '주장된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세부리는 것, 권세를 가졌으면 그 권세를 쓰는 우쭐거리는  것이 있기 쉬운데 그것을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에 자세부리는 그런 일 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시몬이라는 것이 있었고, 시몬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 그후에는 실족함이 없었습니다. 실수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자기의 단점, 자기의 불의의 점은 잊어버리고, 그것은 파묻어  버리고 자기의 장점만 가지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죽고 망하는  일로의 길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 다음은 바로 넘어질 사람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제 눈에 티를 발견하거든, 남에게 티만한 잘못이  있거든 티만한 그 잘못 보고 '네게는 이런 잘못이 있다. 그것 회개해라.' 할 것이  아니고, 그 티와 같은 것이 네게 있는가 그것부터 살펴라. 살피면 남에게 있는  티를 인해서 네게는 들보 만한 것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발견하면 남의 눈에 티 빼려고 하던 네가 네 눈에 들보 만한 것을 발견했으니까  그것을 회개하기를 힘을 써서 회개하고 난 뒤에, 네 눈에 들보를 발견해서 그  들보를 빼고 난 다음에 형제를 자세히 보고 눈에 있는 티를 빼 줘라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깨끗해지는 그 방편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그와 같은 종류의 것을  회개를 하고 난 다음이라야 다른 사람을 회개시킬 수가 있지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회개시킬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자기가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그 진상을 회개시킬 만큼 자기는 권능도 없고 바로  알지도 못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이 베드로는 자기가 종이 됐고 사도 됐고 했으니까 시몬이라는 것은 벌써  옛날이니까 잊어버리고 감감할 터인데 요것을 한가운데 말했습니다. '종이요  사도인 베드로는' 이랬으면 실수할 터인데 '종이요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요  시몬을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후에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어떤 향기를 맡으려고 하시느냐? 우리가 의로운 일한  것, 옳은 일, 바른 일, 선한 일, 사랑의 일, 봉사의 일,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살리는 일 하는 이런 의로운 일의 향기도 좋아하시지마는 그것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자기의 불의를 찾은 것, 자기의 죄인  됨을 찾는 이 향기를 더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죄 지었던 그것을 깊이 마음 아피 느끼면서 거기 대해서 원통히  여기고, 그것을 다시 마음 아피 여겨 다시 그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그  범하였던 죄가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고 모든 이웃에게 해를 끼친 거기 대해서  마음 아피 느끼는 그 향기를 주님이 더 좋아하시고 죄인 된 죄인의 그 향기를 더  좋아하셔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의원은  병든 자에게 쓸데 있지 성한 자에게는 쓸데가 없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의를 행한 것에 대해서도 물론 그 말을 듣고 볼  때에는 감동이 되어지고 좋지마는, 그 사람이 참 자기의 죄와 불의의 일을  생각하고 죄인 되고 불의한 그 자기인 것을 입술로 말하지 아니해도 자기는 그런  자이었다는 그것을 느끼고 그 사람으로 있을 때에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을  아름답게 봅니다. 귀하게 봅니다.

 제가 어떤 청년에게 중매를 했는데, 그 청년이 자기는 얼마 전에 교도소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기 범죄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아니해도  자기는 그 사람이라는 것을 혼자 마음 아피 느끼면서 사니까 그 사람 하는  행동이 내 눈에는 어떻게 아름다워 보이는지 그만 그 사람에게 내가 반했어요. 그  사람의 행동에 그만 반했어요.

 '참 저 청년은 귀한 사람이다. 저 총각은 참 쓸모 있는 총각이다.' 이래서 당장  내가 그 총각에게 중매를 시켰다 그 말이오. 좋은 처녀를 중매시켜 줬어요.

어떻게 아름답게 보이든지  그런데 결혼을 시켜놓고 나중에 보니까 그때와 좀 다른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내가 알아보니까 그때는 막 나왔을 때인데, 그러니까 자기가 참 죄인으로  범죄자로 그렇게 남이 모르게 자기만은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내 눈에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는데, 그 다음에 그 사람이 그것을 잊어버리는 데 따라서 내  눈에는 눈에 났더라 그거요. 그 뒤에 보니까 행동이 달라지고 사람이 그래요.

 그러기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이것을, 죄지었던 자라는 이것을 깨달아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꾸 그런 간판을 말하면, 그 죄지은 걸  말하면 냄새 나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자기는 그렇던 자이요 그런  자이었던 것을 자기가 느낄 때에 거기에서 하나님도 사람들도 맡을 만한  아름다운 향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 깨끗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불러서 왕을 세웠습니다. 왕을 세웠는데 그  뒤에 그만 우리야를 죽이고 우리야의 아내를 차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야를 죽인 후에 자기의 과거에 죄인된 것을 찾아서,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범죄했던 그것까지를 찾아서 냈을 때에 하나님은 그 향기를 가장  만족히 여겨서 그 전보다 그 후에 다윗에게 대한 하나님의 기쁨은 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후에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게 합당한 자를 만났으니 내가  이를 인해서 내 모든 뜻을 이루겠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 말을 주님이 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다윗이라,  다윗이라.'  왜? 다윗이 무엇이 좋아서, 다윗에게 주님이 무엇이 그렇게 쏠려져서 그랬을까?  다윗이 '나는 죄악 중에 잉태했다.' 죄악 중에 잉태했다, 잉태될 그때부터의  자기에게 있는 모든 단점, 아닌 점 그 점을 찾아서 빠짐없이 그것을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서 겸손해졌을 때 그는  실족하지 아니할 사람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여겼고, 또 그 사람은 참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바로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종이요, 사도요, 시몬, 베드로' 이것을 기억합시다.

베드로의 신앙은 참 종의 신앙이요, 사도의 신앙이요, 반석 같은 베드로의  신앙인데 그 속에는 시몬이라는 것이 항상 그 마음을 졸여서 교만을 줄 수가  없고, 우쭐해질 수가 없고, 자기는 주님 앞에 낯을 들 수가 없고, 사람 앞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를 올릴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지낸 그것이 그의 지혜요,  넘어지지 않은 견고성이요, 하나님이 향기롭게 맡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기의 것은 모르고 남의 것만 보는 것은 그것이 막바로 망하는 그 길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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