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3차 죽음


1989년 2월 19일 주전

 

본문: 로마서 6장 1절∼11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  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예수 믿는 구원은 다 은혜로 받는 구원입니다. 은혜로 받는다 말은 이 구원은 다  거저 받는다는 말이요 댓가 없이 공으로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교 구원은 다  은혜로 받습니다.

 기독자의 구원은 두 단계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기본구원이요.

그다음에는 건설구원 곧 행위구원 곧 성화구원입니다. 성경에는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도 있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도 있고 건설 구원에 관한 계시 말씀도  있습니다.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은 그 양이 매우 적고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의  양은 심히 많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구원은 다 은혜로 하나님이 주셨고 은혜로 받는 것이라, 거저  받는 것이라, 공으로 받는 것이라, 아무런 댓가 없이, 공으로 받는 것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하셨고 또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게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다  공짜배기로 얻는 구원이요 아무 댓가를 내지 아니하고 거저 주시고 거저 받는  구원이니 이 구원은 그렇게 그 가치가 큰 것이 아니고 가치가 적은 것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인간 생각이요 성경에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이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이요 또 이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서는 이를 수 없는  지극히 어려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이 인간으로서 절대 털끝만치도 이를 수 없는  구원이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받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 구원은 거저 주시는 것 보니까 아주 그 구원을 이루는 것은 매우 힘들지  아니하기 때문에 거저 주셨는가 또 이렇게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구원은  이루기가 어려워서 전지 전능자와 완전자가 아니면 이 구원에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이룰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어려움의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님께서 거저 주셔야 되지 사람들에게 네가 내가 거저 줄 터이니까  천분의 일만 네가 담당해라 만분의 일만 담당해라 억만분의 일만 담당에라  한다면 우리는 이 구원은 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은 다 은혜로 받는  구원입니다. 이래서, 쉽고 가치가 없어 그런 것이 아니고 가치가 지극히 크고  어려워서 그러합니다. 여게 대해서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또 두번째는, 이 구원은 은혜로 주시는 것이니까 공으로 주시는 것이니까  그것이야 뭐 아무나따나 해도 공으로 주는 것이니까 그거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공으로 주시는 것이니까 힘 안 들고 쉽게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  오해로써 마귀가 대수입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크게 지금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순전히 은혜로 주시는 구원인데 너무 우리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우리가 받으려고 할 때에는 공으로 주시지마는 받는  것이 힘이 듭니다. 너무도 큰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로서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우리가 받는 것만 해도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하지 안하면 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우리가 받으려고 할 때에 얼마나 힘이  드느냐? 간단하게 말해서 내 전부를 다 해야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도 다하고 목숨도 다하고 힘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공짜배기로 주는 이 구원을 받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자기의 마음과 생명과 힘과 뜻을 다했다고 해서  이것이 이 구원에 댓가가 된다든지 이 구원에 어떤 요소의 일부를 대충함이  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구원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다해도 그것은  은혜로 주시는 그 구원을 받는 노력뿐입니다. 받는 노력에 선천 후천으로 그  사람이 유력하든지 무력하든지 어떤 사람이든 있는 걸 다해야 공으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성경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받는 것도 받는 그 자체의 가치나 실력에 대해서 하나님이 너는  이 받는 데에 둘을 바쳤고 셋을 바쳤고 너는 하나 바쳤고 이것에 그 양에나 그  실력에나 그것에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지극히 큰 구원이기 때문에 이 구원을  받는 데에 천하에 제일 잘난 사람의 어떤 실력을 다 바쳤다 할지라도 그것이  댓가가 되지 안하기 때문에 내나 공으로 받는 것입니다. 또 천하에 제일 못난  사람이 이 구원을 받는 것도 댓가를 내고 받는 것이 아니고 다 공으로 받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어데서 평가하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은 데에  충성된 것은 큰 데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데에 불의한 것은 큰 데도 불의하다'  충성 불의로 그렇게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에 인간의 노력은 그 노력의 실력의 다소가 아니고 다만 자기에게  충성을 하나님이 가치로 봅니다.

 하나만 가진 것이 하나 다했으면 하나님이 너는 이 은혜를 받는 데에 더 할래야  더 할 수 없이 다했으니 너는, 다한 그것이 어떤 부요한 자의 한 데다 비해서  백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러나 너는 있는 대로 다했고 다했으니 그것으로 다해서  충성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으로써 만족히 여기시고 은혜를 다 주십니다.

 그러나 너는, 저 사람은 저만큼 가지고서 은혜받았으니까 나는, 그 사람은  새벽마다 예배당에 가고 나는 일 년에 한 번만 가도 내가 한 번 간 것이  깨달음이나 느낌이나 또 내 시간적 가치나 모든 지위적 가치나 다른 사람에  인정적 가치나 나 하루 새벽 나간 것이 저 사람 평생 나간 것보다 가치가 낫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는 '너는 백의 백을 다  바치지 안하고 백의 일을 바쳤으니 구십구는 네가 내가 준 것을 네가 도적했다.

너는 구십구를 바쳤으니 백을 준 걸 일을 도적했다. 이 못나고 제일 천한 인간은  내가 준 대로 하나도 남김 없이 다해서 이 은혜 받기 위해서 충성했다.' 이래서,  과부의 적은 연보가 많은 사람들의 연보 전부보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한 것이  이런 것을 두고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는 노력에 있어서  그 노력의 중량이 높고 작은 그것이 아니고 다만 다했느냐 덜했느냐? 백분지  일을 네가 바쳐서 이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백분의 일을  바쳤느냐 백의 구십구를 바쳤느냐 백의 백을 다 바쳤느냐? 이제 자기에게 있는  그것을 다 바쳤느냐 몇분의 일을 바쳤느냐 이거 가지고 하나님이 계산을 하시는  것을 성경에 여러 군데 똑똑히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똑똑히 배워서, 우리 구원은 진리대로 된 구원이기 때문에 진리에 어겨서는 우리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또 은혜로 주신 것도 받지 못합니다. 은혜로 주시는,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방편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것도  진리인데, 그것도 정확무오요 영원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래서 이 시간에 둘을  배웠습니다. 우리 기독자의 받는 구원은 전적 은혜라, 은혜에 인간의 것을 다문  얼마라도 섞여 있으면 그것 가지고 대충할라 하면은 그 구원은 다 부숴져 버리고  헛일입니다. 이 전적 은혜에 인간의 행함을 털끝만치 그만침은 보태야 구원이  된다 이렇게 하면은 이 구원을 받는 방편에서는 틀려서 이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전적 은혜의 구원인데 우리가 은혜로 받는 것이라 고거 하나 배웠고,  은혜로 받는데 받는 그것도 어떻게 힘이 드는지 심히 힘이 든다. 은혜로 주시는  구원이니까 그것이야 뭐 받기도 공짜배기니까 받기도 쉬울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이 공으로 받는 것이지마는 받기가 힘듭니다.

또 힘이 들기도 하지만 또 쉽기도 합니다. 왜? 잘났든지 못났든지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자기 것을, 자기와 자기 것을 다 기울이면 아무리 못나도  만점입니다. 또 은혜로 주신 이 구원을 받는 데에 천하에 제가 모든 것이  구비하고 제일 부강한 자라 할지라도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들이지 안하면,  다해서 받을라고 애쓰지 안하면 은혜로 주시는 것은 못 받습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이래서, 믿는다 하고 다 하나 왜 기독교와 이종교가 다를 게 뭐이냐? 기독교나  이종교나 다 같다. 시작은 다르나 마지막 결국은 다 같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마귀란 놈들이, 그 집 이름을 뭐라더라? 미국에 큰 집인데 그 집에는  들어가는 입문이 뭐 여섯 개인가 되고 속에 들어가면 한 통살이랍니다. 이래서  이거는 기독교 들어가는 문, 이거는 불교 들어가는 문, 이거는 또 힌두교 들어가는  문, 이거는 마호메트 들어가는 문, 이거는 뭐 유교 들어가는 문 이래 가지고서  집을 지어 놨다 하는데 그것이 마귀의 큰 유혹의 건물입니다. 이래서 종교  통일이라.

 지금 종교 통일을 할라고 애를 쓰고 있고 기독교 통일을 할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다 하나가 돼야 된다 기독교 통일을 첫째 애쓰는 것이 칼측,  에큐메니칼 칼측은 우주 통일이라는 뜻으로서 기독교 통일을 말했고 그다음에  종교는 다 한 가지다 종교 통일을 말한 것이 문선명씨가 종교 통일을 말을 했고  요새는 온 세계는 어린 양과 어린 양에게 속한 진실한 자 빼놓고는 전부 세계가  다 통일된다하는 것이 현대에 와 가지고 역사하고 있는 역사 진행의 단계입니다.

 이래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데 대해서 은혜로 하는 것 보니까  가치가 적은갑다 하는 그 오해에서 오늘 세계에 기독교는 크게 손해를 보고 있고  또 은혜로 받는 것이니까 이것은 뭐 쉽게 받을 수 있지 않는가? 은혜로 받는  데에 받을 자의 그 모든 대비 준비, 은혜로 주시는 그 은혜를 받는 그 실력,  은혜로 받는 그 은혜를 받는 그 실력에 대해서 마귀란 놈의 유혹으로 오해를 해  가지고 다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그 실력을 인간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고 할 만치  이렇게 모든 면에 실력 차이가 있으니까 이 실력 차이의 그 실력을 가지고 받는  줄로 아는 데에서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천 명 만 명이 뭉쳐도 한 사람의 실력을  당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그 많은 사람은 저 지저분한 거 저런 것 천 명을 다  뚜드려 뭉쳐서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데에 노력하는 것보다 나 한 사람의  것이 더 양적으로 그 실력적으로 많으니까 내야 그 구원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  이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인적 요소의 실력으로 그 은혜를 받는다 요렇게 하는  데에서 세계 교회가 다 넘어지고 다 쓰러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총공회도 지금  얼마 전에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것이 이것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실력은 인적 요소의 실력의 양이 아니고, 실력의  양이 아니고, 인적 실력 요소의 양이 아니고 뭐입니까? 인적 실력 요소의 양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데에 받아지는 그 실력은 무엇입니까? 요거  알면, 요거 알면 장로 돼. O OO집사님. 예? 충성이라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해석은 했지마는. 다른 말로 한번 해 보시오. 녜, 다.

 따라합시다. 다! (다) 다! (다) 전부! (전부) 전부! (전부) 내 전부! (내 전부) 내  전부! (내 전부)  이것만이가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받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유일한 방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다하는 것만이 그 은혜를 받는 유일의 가치요  법칙으로 은혜로 구원 주시는 이분이 그렇게 결정을 하고 계약에 선포를 해  놨으니 다하고도, 으례히 다해야 이 은혜는 받을 줄 알고 다하고도 내가 보기에는  다했지마는 남은 게 없나 빠진 게 없나,다하지 못한 것이 없나 이렇게 발발  떨면서 이 지극히 큰 은혜를 받을라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은혜로  받는 구원의 유일한 방편인데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지 행함을 자꾸 강조하면  믿음이 삭감된다. 은혜로 받는 것이지, 그러니까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은혜로  받는 것이지 마귀란 놈이 요렇게 꾀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 사실을 바로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은혜로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이 구원을 이루어 주셨는데, 이루어 놨는데, 이  구원을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데 은혜로 주시는 그 구원을 받는 데에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하는 것만이 자본이요 합격이요 유일로 선포해 놓은  하나님의 계약의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라' '네가 다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연약한  힘이지마는 네가 다해서 충성했기 때문에 너에게 열린 문을 주었다' 이렇게  말씀했었는데 이 오산과 착각에서 바꿔서 '우리가 너무 힘쓰면 율법주의 된다.

은혜인데 힘을 쓰면은 믿음이 없어진다.'  힘쓰는 것은 구별이 있습니다. 힘쓰는 것은 우리 구원을 만들라고 힘쓰는 것  아닙니다. 힘쓰는 것은 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내가 받는 데에 마음을 다하라고  했는데 마음 다할라고 하는 그 힘 쓰는 것이오. 마음 다하는 데 힘쓰는 것이오.

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목숨도 다 바쳐야 되는 여게 대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내가 이 구원을 받다가 내 목숨에 지장이 있다고 내가 목숨을 아껴서 이 구원을  내놓을라? 목숨을 다해서 받으라 했기 때문에 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목숨을  아끼지 안하고 목숨을 다해서 받아야 되겠다.' 목숨을 다하는 데에 힘쓰는  것입니다. 또 이 구원 받는 데 내 힘을 있는 대로 다 쓰는 데에 그 힘쓰는  것이오. 내 뜻이라 하는 것 내 계획 내 생각을 다 말하는 것인데 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다 받기 위해서 내 생각 내 뜻 딴 데 쓰지 못하고 이 구원 받는  데에, 이 구원 주실 그분이 이 구원 받을라면 네가 이렇게 해야 된다 시키시는  그대로 내 뜻을 거게 다 기울여서 이렇게 하는 데에 힘쓰는 것입니다.

 뭐 구원을 만들라고 힘쓰는 것 아니오. 하나님에게 잘보일라고 힘쓰는 것  아니오.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은 내게 있는 것을 다해야 된다고 당신이 법으로  딱 정해 놨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할라 하니까 내 살아 있는 생애의 전부를 다 이 구원 얻기 위해서 다 기울여야  되니 이 일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에 보면은 얼마나 힘을 써야 된다는 것을 당신이 말씀을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알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이것 피할라 하니까 힘듭니다. 이거 피할라 하니까 힘드요.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하나님같이 살아야 될  모양이니까 이게 힘듭니다. 이렇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같이 우리가 산다고 이  구원을 만드는 것 아니오. 천하에 제일된 성자로 살아도 그 성자로 산 그것이  자기 구원 만드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으로 주시는 그 구원을 공짜배기로  받는 노력이요, 받는 노력.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힘써 믿음 지키고 힘써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라니까 이 일이 얼마나 힘 드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힘써 다해라 다해라. 여게 이 번역에는 이게 없습니다. '믿음에 덕을' 이래  놨지마는 구역에 번역할 때에 이래 안 해 놨어.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할지니라' 더 힘쓰라 말이요,  더해서. 또 힘씀에 더더 더더 더 힘쓰고 더 힘쓰고, 위에 힘쓰는 것에 대해서 더를  말했기 때문에 더 힘쓰고 더 힘쓰고 갈수록 자꾸 더 힘씁니다.

 이러니까 사도 바울은 그 힘쓰는 것을 표현해서 무거운 짐진 것 같다. 짐을  무거운 짐진 것은 갈수록 힘이 덜 쥐입니까 힘이 점점 더 많이 쥐입니까? 힘이  점점 더 많이 쥐입니다. 이렇다고 해서 이 힘쓰는 것이 구원을 만드는 것 아니오.

털끝만치도 만드는 것 아닙니다. 인적 요소로서는 절대 불가능입니다.

 전지 전능의 완전자만이 만들 수 있는 이 구원인데 이 구원을 우리가 공으로  받는데 공으로 받는 데에는 자기를 다해서 받아야 이 성의가 옳지 이렇게 큰  구원을 주셨는데 뭐 공으로 주시니까 '내 손가락 하나만 해도 된다.' '두 손 가지고  받아라.' '두 손? 한 손가락만 하면 된다. 하나님을 속되게 여기고 이 대속을  천대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의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네가 힘써 받고 그뿐  아니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해라. 그래야 영생이 된다.

 우리의 이루는 구원은, 받아 가지는 구원은 영생 구원이오. 기본구원은 나기  전부터 벌써 우리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데 건설구원을 공짜배기로  주시는 이걸 우리가 받아야 되는데 이거 받는 데는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오전에는 제가 이 설교를 할라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오후에  계속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차 죽음이 있습니다. 일차 죽음 또 이차 죽음이  있습니다. 또 삼차 죽음이 있습니다. 일차 죽음 이차 죽음 삼차 죽음 그 너머는  영생입니다. 이래서, 그것을 일차 죽음은 어떻다 하는 것을 여러 수십 번 증거했고  이차 죽음도 삼차 죽음도 말했지마는 이것을 연결시켜서 이래 가르치는 것이 좀  알아듣기 쉬울까 해서 일차 죽음, 이차 죽음, 삼차 죽음, 너머 사차적으로 영생이  있는 것을 오늘 오전에 증거할라고 제가 이 설교의 초안을 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요 간단하지마는 요거 다 해 가지고 나왔습니다. 해 가지고 나왔는데 오늘은 시간  없어서 안 되겠고 오후에 증거를 하겠습니다.

 이래서 오늘 오전에는 두 가지 배운 것 천하의 기독자들이 다 속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내가 다 이거 속고 있습니다. 이것을 꼭 회개해야 됩니다. 입술은  하나님의 은혜라 말을 하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라 말하는 자는 이 은혜를 아주  천해서, 공짜배기니까, '공으로 주니까 그렇츰 좋은 걸 공으로 주겠느냐?'  공짜배기로 은혜라 하는 자는 이 은혜의 가치를 멸시하는 거기에서 은혜라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 은혜로 주시기 때문에, 은혜로 주시는 것이니까 받는  데도 뭐 공짜배기 받는 것이니까 그거야 뭐 놀며 받아도 되고 또 뒤에 가 받아도  되고 내 마음대로 받고 싶으면 받고 말고 싶으면 말고, 공짜배기 주는 것이니까.

 이 은혜로 받는데 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받는 데는 천하에 부강자라도 제것  다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못난 자라도 제것만 다 하면  됩니다. 이래서 이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구원이라. 이  구원을 받는 방법은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해야 된다. 자기를 다해, 자기를 다해야  된다. 있는 것도 다하고 자기도 다해야 됩니다. 안 그라면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이 자기를 바꾸는 것이 구원인데 자기를 내놓지 안하니까 자기가 바꿔집니까?  자기를 부인해야 되어지는 것인데.

 그것은 단절적으로 과거에 해석을 많이 했는데 첫째 죽음, 둘째 죽음, 셋째 죽음,  넷째로 영생하는 이 영생에 대해서 오후에 순서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오전에는  벌써 시간이 다 갔고 다른 행사도 있는데 오전에 여러분들이 배운 거 요 두  가지를 놓지 마십시오. 놓지 마십시오.

 세계에 대신학자들, 대목사들, 대부흥사들, 나도 부흥사 중에 한 사람이오. 다  우리가 요 두 가지에 대한 지식을 확고히 가지지 못한 데서 지금 어른어른거리고  우리가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 총공회서도 다 하라는 이 받는 방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해야 되는 이것만이 유일의 방편인데 여게 대해서 에누리해서 지금  두 갈래로 갈라졌고 하나는 여게 붙어 있기는 있어도 '그래, 너무 과격해. 총공회  예수 믿을라 하니까 시간이 없어. 총공회 예수 믿을라 하니까 자유가 없어.

총공회 예수 믿을라 하니까 관광 갈 시간이 없어. 총공회 예수 믿을라 하니까  서로 앉아서 얘기하고 놀 시간이 없어.' 이라면 총공회는 다 된 줄 압니까?  아니오. 지금 은혜로 주시는 이 받는 방편에 대해서 안 기울입니다. 다하는 것만  유일의 법칙이라 하는 요걸 아는 것이 우주와 영계를 차지하는 것보다도 더  큽니다. 요것만 하면 돼.

 이러기 때문에 행한 대로 갚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보니까 어떤 사람은 십분지  일, 백분지 일, 백의 구십구, 백의 백, 네게 있는 몇 할을 바쳤나 하는 그 할 수로  따지지 양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왜? 인간의 실력은 하나님이 다 주신 것이오.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있고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있지 제것이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많이 준 자도 많은 것 다 바치고 적게 준 자도 적은 것 다 바치라 했는데  제것인 줄 알고 에누리를 해서 나는 백분지 일만 바쳐도 된다 했기 때문에  그자에게 하나님이 그것 다 찾고 보니까 저는 바친 게 없어.

 이래서 오전에 이 큰 진리 둘을 굳게 잡고 놓지 마십시오. 잘났든지 못났든지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는 방법은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해야 됩니다. 자기도  다하고 자기의 지능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계획도 욕망도 다하고 자기의 꿈도  다하고 자기의 희망도 다하고 자기의 정력도 시간도 다하고 생명도 다해서,  다해서 바치고도 무익한 종인 줄 알고 '혹 내가 다 바치지 못한 게 있습니까?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고 주님 앞에 발발 떨어서 이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은 너무 교만합니다! 너무 교만한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너무 멸시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 십분지 일만 바치고도 '내가 이것만 바쳐도 너무 많이  바치는데' 하느냐? 너는 어떤 자이기에 두고 에누리하고 네가 조절해서 얼마만  바치고 얼마는 남겨 두고 그거 뭐이냐? 그거 옛사람이오.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이 구원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 주님, 바로 아는 것이 첫째 힘이 되겠사옵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안  후에 인정하고 그대로 사는 것이 이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을 아옵니다.

 오늘 두 가지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주신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이라 피조물로서는 그 털끝만한 것도 이룰 수 없는 순전히 완전자이신  하나님이 전부를 기울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요 이 구원을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데 은혜로 주시는 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우리에게 있는 거 전부를  다하여서 받을라고 노력하는 데에서만 받아지고 줄 수 있는 이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진리를 굳게 잡고 교만하지 말고 어누리하지 말고  망령되지 말고 겸손히 전부를 다 기울여서 충성으로 이 구원을 상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 어두움에  들어 있다가 빛이 되신 아버지를 찾아서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주님의 나래 안에 품으시고 장중에 잡으셔서 어떤 어려움의 가시밭을  지날지라도 평강으로 지내고 주님의 능력의 보호로써 염려 없는 평안하고 안정된  가운데서 날마다 영생을 뿍뿍 이루어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이렇게 인도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심정이 그  속에 더욱 불붙게 하여 주셔서 앞으로 형제를 사랑함에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이되 목숨까지 바치는 이것으로써 주님의 친구의 위치에 올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음 시간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제 나온 저희들을 시험에 들지 안하도록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모든 것 맡겨 놓고 주님에게 순종으로만 사는 슬기로운  영생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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