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례 안식을 주심

 

1986. 11. 4. 새벽(화)

 

본문:히브리서 4장 1절∼2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뒤에 오시면 빨리빨리 달음질을 해요. 뭐, 느릿느릿하고 시간 다 가도, 왜 또 저 뒤에 따로 앉아? 이 앞에 와서 앉아요. 될 수 있는 대로 보이는 데 앉고 가까이 앉고, 안 보이는 데 앉는 그 숨어 앉는 그거는, 숨어 앉고, 숨어 먹고, 숨어 말하고, 숨어 배우고 하는 것 다 좋지 못한 것입니다. 어짜든지 다 확 펴서, 대낮에 벌거벗은 거와 같이 드러날 터이니까 아예 그래 지금 살고 준비를 해야지.

히브리 4장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뭣 때문에 두려워하느냐 하면은 안식에 들어갈 준비가 완성되지 못할까 두려워함이라. 미치지 못할까 하는 것은 거게 도달이 돼야 되지 도달 안 되면 헛일입니다.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안식에 들어갈 준비.

안식에 들어갈 준비하는 날이 주일날인데 그만 사람들은 자꾸 강퍅하고 완패하고 어두워지고 자기 주관대로 하기 때문에 자기 주관에게 가리워 어두워져서 이 안식은 완전히 외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복음 전함 받은 것은 내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영원 무궁 안식 세계를 우리 세계로 유업 받고 거게서 영원히 영생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이런 것이 복음입니다, 요 복음.

로마인서 1장에도 보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이랬는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인데 이 대속을 공짜배기로 받으니까 은혜요 복음입니다.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들은 바의 이 복음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듣는 자가 믿음과 합해, 믿음과 화합이 돼야 될 터인데 믿음과 조화가 돼야 될 터인데 이 복음뿐이지, 복음뿐이지 믿음이 거게 화합하지 안했기 때문에, 믿음이 합해지지 안했기 때문에 다 헛일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합해지지 안했다 그말은 믿음은 아는 것과 믿는 것과 그대로 행하는 거 이 세 가지가 합해서 믿음인데, 믿음과 화합지 안했다.

어제도 간단하게 말했는데, 인류시조 아담 하와에게는 일차 안식일을 주셔서 일차 안식 세계에 들어갈 약속을 그들이 받았지마는 그 약속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왜 얻지 못했느냐? 얻지 못한 것은 간단하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 이 네 가지 지키면 영원한 안식 세계를 주시마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지마는 이 네 가지 중에 세 가지를 어겼습니다. 세 가지를 어겨서 안식 세계를 그들이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때는 마귀도 없고, 사망도 없고, 죄도 없는 때인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셔 가지고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약속하셨지마는 그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타락하기 전 잠깐 동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이름을 지으라고 할 때에 그 말하는 대로 이름이 된 그것은 통치가 됐고 그때는 다 복종을 했지마는 선악과 먹기 전 마귀로 더불어 벌써 침노를 받을 때에는 동산에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거는 동산에 있기는 있었지마는 다스리는 일을 벌써 그가 온전히 하지를 못했고, 지키는 일도 하지를 못했고, 먹지 말라는 것을 안 먹는 그 일도 하지 못해 가지고 그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1장 끝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다스리는 그런 권세를 주시마” 이렇게 했지마는 못 받았습니다. 어데 아담 하와가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그거 못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해당됐는데 못 받았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고 마귀가 없고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속할 필요가 없는고로 대속 없는 안식을 줬다가 안식을, 안식에 들어가는 에덴동산 생활은 했지마는 들어갈 수 있는 그 실력인, 네 가지 하나님이 실력을 말씀하신 그 실력을 기르지를 못했습니다.

영원한 이 우주라는 넓은 세계의 모든 것을 함축시켜 축소해 놓은 것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으로 그들에게 주셨고, 에덴동산의 전생활을 축소해서 함축되어 있는 그 씨종자로 주신 것이 안식일입니다.

이런데, 안식일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준비를 온전히 이루었으면, 안식일에 준비를 온전히 이루었으면 에덴동산인 자유 준비 세계를 완전히 자기 것 삼게 되고, 에덴동산을 완전히 자기 것 삼으면 때가 되면 우주는 전부 다 자기 것이 되어지는데 알맹이 네 가지 지키는 건 지키지 안하고 외식으로 껍데기 안식일날 그저 에덴동산에 있는 동산 생활만 했지 알맹이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외식으로 망했다 우리가 그렇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안식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실 때는 그때 벌써 마귀가 있는 때요, 죄가 있는 때요, 사망이 벌써 있는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둘째 안식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이 대속하시는 이 대속의 이 길을 주시지 안하고는 사람들이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대속하는 그 길을 하나님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베풀어 주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힌 그것이 벌써 그때 실지로 하나님이 하신 역사고,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으로 배암의 후손을 싸워서 언제든지 싸워 가지고 이긴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라고 하나님께서 그때에 무슨 속건제니 속죄제니 화목제니 번제니 하는 것이 없었지마는, 성경에 기록되지 안했지마는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물리쳤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뭘 가지고 왜 아벨의 제사는 받았는가? 그것이 성경에 우리에게 영감받은 자들이, 또 양심을 쓰는 자들이, 또 실행을 하는 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해 주셨고 그 이상 복잡한 것을 기록해 주시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 하나님이 이 대속의 방편을 세밀히 가르쳐 주신 것을 다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거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때에 가인을 내어쫓을라 할 때에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입니다’ 걱정을 하니까 너를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주시리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가인과 아벨 밖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거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많이 있은 걸 표시하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만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다른 인간은 다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가공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 그 외에 있는 모든 아담 하와의 자녀는 불택자로서 그것은 들지 안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 가인, 아벨 이는 택자의 계보이고 그래 가지고 그 뒤에 하나님이 다시 셋이라는 아들을 낳아 가지고서 이제 계보를 해서 이었습니다.

그들도 다만 예약과 완성과 이것이 다르지 그들은 오히려 이 신약 교회보다도 대속의 공로를, 예약 예표와 완성된 실상과 다른 점이 있지마는 오히려 이 대속의 공로를 입는 데에는 더 신약 교회보다 용이하도록 됐습니다.

왜? 자기가, 죄값은 사망이니까 조그만한 죄라도 있으면은 그 죄를 자기가 ‘내가 이 죄를 지었다’ 하는 것을 생각하면 벌써 양으로써 자기 생명을 대신해서 양이 죽어야 자기 죄가 그것이 도말되고 사해지지 그전에는 사해지지 않는, 양이 대신 죽어야 되고 벌은 양이 대신 받아야 되고 이렇게, 또 양이 대신 완전히 자기 전신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를 드려야 자기를 드린 것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네가 죄가 없어야 되고, 또 하나님과 화친이 돼야 되고, 하나님에게 완전히 너를 바쳐서 너는 하나님의 것이 돼야 된다. 그러면, 네 대속인 그 양은 네것이 된다. 그 죄의 값으로서 양은 죽고 너는 살고, 또 불목을 인해서 양은 죽고 너는 살고, 또 하나님의 모든 요구하시는 완전 율법을 범함으로 양은 번제물이 돼 가지고서 그렇게 해서 되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지켜 행하면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가리라 이렇게 약속을 하신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데 그것을, 구약 성도들이 이 번제 드리는 것을 단단히 그대로 지켜 드려서 자기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 죄에 대해서나 혹은 하나님의 모든 당신의 율법을, 그때는 약간의 율법이 있었고, 또 육체의 이스라엘에게는 벌써 구약 성경이 다 하나님이 마련해 주셔 가지고 있었고, 또 그전에는 아주 더러워지기를 그렇게 많이 더러워지지 안한 환경이 그런 때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양심이 있는 그런 양심 시대가 있었고 이래서 그들이 알 만한 것이 있는데, 이차 안식을 받은 사람들이 안식의 그 알맹이인, 안식의 알맹이인, 자기가 이 세 가지로 죽어야 되는, 죽어야 되는 이 약속을, 대속 약속을 하나님이 하셨는데 이 일을 자기네들이 믿고 신실히 듣고 순종함으로써 하나하나에게 대속 생활을 했더라면 거게서 깨달음이 있어 가지고 ‘이는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데에는 이 대속이 바로 돼야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대속이 바로 되기 전에는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안식일날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거는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그 능력과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에 준비를 하고, 또 엿새 동안에 일주간 동안 준비하는 그것이 온전해지면 그것은 온 세상살이의 전준비가 바로 되고, 세상에 신앙 생활에 대속 받는 자의 생활이 바로 되면 이것은 영원 무궁한 그 안식 세계를 하나님 앞에 얻어서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 하는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사람은 깨달았는데 하지 안한 사람은 깨닫지를 못해서 다 외식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안식을 일하지 안하는 그것으로만 생각해서 일하지 안하는 데만 전심 전력을 기울였고, 일하지 안하는 것은 소극적으로, 이 일일랑 하지 말고 대속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그것은 등한히 여기고 그만 일하지 안하는 거게다만 주력을 했습니다.

구약에 안식 지키는 것이 일하지 안하는 그것이 안식을 바로 지키는 것 아닙니다.

일하지 않는 건 그거 전부 우리 마음과 성품과 뜻과 그 모든 것을 이제 그런 데에 하나도 뺏기지 말고 전부 이 예약하는 대속 생활, 이 대속 생활을 이것을 온전히 하라는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는데 그것을 하지 아니하니까 함으로 깨달을 수 있는 그 깨달음을 그들이 가지지 못했고 함으로 깨달아진 사람은 함으로 깨달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구약 성도들을 여러군데서 이렇게 살펴 보면 그분들은 죄라 하는 것을 그대로 묵인하고 말지를 안했습니다. 죄라 하는 것을 ‘아이구 내가 잘못됐다’ 하는 후회하는 것으로나 하나님 앞에 ‘이 죄 지어 잘못했습니다’ 이 말로 하지 안했습니다. 반드시 ‘죄' 하면은 꼭 양이 죽었습니다.

‘죄’ 하면 양이 죽었고 사람과나 하나님 앞에서나 그 불목이 자기가 양심상 불목이 있다 하는 것을 생각하면은 반드시 양을 죽여야만 거게서 이제는 해결받고 안심을 하고, 또 자기는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다 들어야 되는 것으로서 자기는 자기의 것을 전부 다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서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야 된다는 요거 살아야 된다는 걸 자기들이 깨닫고,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 것으로 살지 못한 그런 한 순간이나 토막이라도 한 사건이라도 있을 때에는 그들은 다시 번제를 드렸습니다. 양을 잡아 가지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로 드리는 것은, 다른 제사는 거게서 부분적의 헌제지마는 번제는 뭐 터러기까지 똥까지 전부 다 태워서, 싹 태워서 드리는 것이 그게 번제입니다.

번제를 드려서 그렇게 철저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산 사람들은 다 이차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4장 10절에 보면은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안식일, 여기도 또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안식일에 하던 일을 다 끝내고 쉬셨다 이라니까 하나님은 이제 피곤하니까 쉬시는가? 아니오.

하나님이 여게 쉬었다 말은 창조의 일이 마쳐졌다, 이제 창조의 일을 다 끝냈다, 창조의 일을 마쳐졌다 끝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여게 쉬셨다 이렇게 한, 끝냈다는 그런 뜻인데 이거 그만 일하지 안하고 쉬는 것으로만 이래 봤고, 또 사람들에게 또 안식일 주는 것은 이 안식은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하는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그때는 안식하라 안식하라 이렇게만 말했지마는 이 히브리서에 보면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너희는 들어오지 못한다,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 제칠일에서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자꾸, 들어가니까 안식 세계가 현재에 있는 게 아니라 안식 세계가 미래에 소망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여게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들도 외식하다가 실패를 했고 실패하지 안한 사람들의 생활, 구약에 모든 철두 철미한 그런 신앙 생활 한 사람들을 보면 자타가 아는 대로 죄라 하는 것을 절대 두고 그냥 ‘내가 잘못 했다’ 하나님 앞에 사과나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반드시 자타가 인정하는 죄가 있을 때에는 그 죄를 양에게 전가시켜서, 양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양은 그 죄를 책임을 전가맡고 이래 가지고 양이 죽어야, 죄는 생명이 죽어야 해결되는 줄 알고 죽어야 해결되는 것으로서 죽고야 해결을 삼았고, 불목도 그랬고, 또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는 것은 자기의 전부 생명까지 다 바쳐야 그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의 그 율법을 지켜서 바치는 것이지 생명까지 바치지 안하면 바치는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을 그들이 인식했기 때문에 생명을 바친 번제를 드려서 양이 대신 생명을 바침으로 번제가 됐던 것입니다.

아벨도 보면, 아벨은 올바른 준비를 해 가지고 들어갔는데, 아벨도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는 그 일을 지켜서, 하나님이 준비하게 하는, 예약 예표인 대속의 도리를 그가 지킬라 하니까 지키지 못하게 그 형제간에서 대립이 돼 가지고 얼마나 그뭐 성경에 간단하게, 지키지 안해서 늘 조금 완력이 있는 것을 약간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빈들판에 가 가지고 그를 죽였다는 걸 이거 보면은 늘 완력이 있어 가지고 대립이 됐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에 위험한 그런 대립이 됐고 혈육의 정실 그런 것이 있었지마는 그런 걸 다 초월한 이 대속 방법을 그들이 믿었고 생명을 바쳐서 이 대속을 지켜서 했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분들이 죄되는 그게 있으면은 양이 안 되면 비둘기 잡아서라도 이렇게 대속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이 제사를 그들이 자기 생명이 끊어져도 그 제사를 드린 것을 보면은 그들이, 자기가 아는 대로의 뭐 잘못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대속 제물로 가지고라야 속죄 받는다, 대속 제물이 아니면 받지 못한다 하는 것을 그들이 확고하게 인식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아벨 제사에서 똑똑히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그 다음 성도들도 다 그렇게 한 것을 봅니다. 뭐 조금 거석했으면, 그러면 안 되면 제사를 드렸고, 제사 안 드리면 죽기도 했고 이러니까 뭐 조금 있으면, 빨리 시간을 지체 안 하고 어서 대속 양을 잡아 가지고 사 가지고 와 가지고 머리에다 안수해서 그 죄를 양에게 전가시키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 양은 죽임으로써 자기는 속죄 된다는 이것을 꼭 그들이 명심하고, 이 일을 그저 더디하거나 또 지체하거나 하지 안하고 즉각즉각 이렇게 그들이 제사드려 나온 것을 구약의 신실한 성도들의 이 사람에게서도 이 부분의 제사를 볼 수 있고 저 사람에게서 그 제사의 부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들도 꼭, 외식으로서 안식일날 일하지 안하면 된다. 일하지 안하면 된다는 사람들은 다 실패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찾아봐요. 일하지 안하면 된다는 사람이 실패를 다 한 것이 뭐 실패를 다 한 것이냐 하면은 일하지 안한다는 것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자기네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를 일 때문에 죽였습니다.

일 안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의가 됐다면은 일 안 하는 거 가지고 그들이 결과가 좋아지지 일 안 하는 그거 가지고 결과가 좋아지지 못하고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그런 결과가 되어졌겠습니까? 안 되어집니다.

그랬는데, 삼차 지금 안식일 닥친, 안식일을 만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난번 공과의 제목은 삼차 안식일을, 안식일을 변개해 가지고 주일로 변개한 안식일, 주일로 변개한, 그 제목이 뭐라 했던고?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이랬습니다,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이라는 것은 그 4장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그러면 다시 어느 날을 정했으니까 그 아래 위에 전부 안식일을 말했으니까 다시 어느 날을 정했으니까 안식일을 정했다 말입니다. 다시 정했다 말이오.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이라,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이라. 그렇게 해서 공과를 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그러니까 일차 안식과 이차 안식은 날짜가 같은 날짜이고 셋째로 다시 정한, 일차 이차 안식이 아니고 다시 정한 안식일은 주일로 정했는데 이 날은 날짜가 다릅니다. 날짜가 다른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써 이 날이 확정이 됐고 확성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만 가지고는 무궁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하는, 구원 준비하는 안식 제도가, 안식 방편이 완료가 되지 안했고 죽으심과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되어서 다시 정한 안식일인 이 주일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그 밤에, 부활하신 날, 거게다 자꾸 말 늘 했습니다. 이레 중 첫날이라. 이레 중 마지막 날이 안식일인데 이레 중 첫날이라. 이레 중 첫날 새벽에, 이레 중 첫날 어두울 때, 밤에, 이렇게 이레 중 첫날이라 하는 것을 많이 말해서 날짜 변경된 것을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주일은, 그러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그 제도는 바꾸어지지를 안했습니다. 일하지 말라는 금하는 것도 바꾸어지지 안하고 그때에도 반드시 안식일날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번제.

번제는 속죄제, 화목제 그 제사가 다 지내고 난 다음에, 속죄제의 완료, 화목제의 완료,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번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속죄제 안 지내고 번제 못 지냅니다. 번제를 하나님이 받습니까? 화목제 안 지내고 번제 못 지냅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그 다음에 이제, 죄가 없고 하나님과 불목이 없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완전히 헌신하는 그 번제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다 그대로 있었는데 일차에서 외식으로 망했고, 이차에서 외식으로 다대수가 망했고, 삼차 이 안식일을 변개해서 주일로 우리에게 정해 주셨고 날짜도 이레 중 마지막날이 아니고 이레 중 첫날로 이렇게 바꾸어서 이래 해 주셨는데 이 신약 교회도 이 준비를 외식으로 망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일차 이차 삼차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이 구원의 날을 주셨다. 주셨는데 일차 안식의 이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외식해서 껍데기만 지키고 알맹이는 지키지 안해서 실패했다. 요게서 확실히 깨달아서 느껴지면, 깨달아지면, 믿어지면 이차 안식 그들도 왜 어떤 사람은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들어가지 안했느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안식일날 일을 했느냐? 안식일날 일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강권하기 위해서 구약에 있는 모든 구약 성도들이 이 안식일 지키는 것이 차차 차차 엄격해 가지고 안식일에 일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일을 안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도자들의 가르친 이 모든 교훈까지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어데 안식일날 일해 가지고 이 안식에 안 들어갔습니까? 이랬는데, 분명히 말하기는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믿음과 화합하지 못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가 성경을 이래 다 전체를 보고 있는데, 그러면 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화합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순종하지 아니함으로써 들어가지 못했다 하는 걸, 순종하지 안한 것을 찾아보십시오.

무엇을? 그날 그들이 밥을 해 먹었나 일을 했나 무슨 뭐 이런 무슨 오락을 했나? 아무것도 아니오. 그거 안 했어. 그들은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더 이상 안식일날 일하지 말라는 그 계명은 다 지켰습니다. 그들이 흠없이 지켰어.

지켰는데 왜 들어가지 못했는가? 그들은 그것만 지키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였지 그 속에 예약적인 대속으로 죄에는 죽어야 된다, 대신 죽지 안하면 네가 죽어야 된다, 대신 죽지 안하면 네가 죽어야 된다, 불목의 죄에서도 대신 죽지 안하면 네가 죽어야 된다,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지지 안한 것은 다 죽는다, 그러면 대신 바쳐도 바쳐야 되지 안 된다 하는 이것을 그들이 지킨 것은 아주 희박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참된 성도들을 볼 때는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이런고로, 오늘도 이 신약 교회도 이름을 변개해 가지고 주일날로, 또 날짜를 변경해서 이레 중 첫날로 이랬는데 이 첫날은 뭘로 됐느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의 대속,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써의 대속, 이 사활의 대속으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이 약속이 됐는데, 이 안식 세계라고 하면은, 안식 세계라 말은 그때는 평안하게 노는 세계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거게는 일이 바쁩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히 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한 것이 하늘나라라.

하늘나라는 노는 나라 아니오. 노는 나라 아닌 것을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씀대로 이렇게 신앙 생활 하면은 갈수록 바쁩니다. 자기 몸이 아파서 다리가, 걸음을 못 걸으면 질질 끌어도 가야 되는 것이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자기 생명이 끊어지는 그 시간까지는 뭐 몸이 피곤하다 할 게 아니라 생명이 끊어지는 그 시간까지는 자꾸 이와같이 걸어가게 되는 것이, 일하는 것이 하늘나라라 말이오. 이것이 하늘나라.

이 세상 성도의 생활 이 교회는 무궁세계의 하늘나라의 모형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움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궁세계, 영원 무궁세계를 축소해 놓은 움싹되어 있는 것이 이 성도의 세상 생활 교회 생활이요, 교회 생활 전생활을 축소해 놓은 것이 일주일 동안 엿새 생활이요, 엿새 생활을 축소해 놓은 것이 주일 생활이요, 주일 생활을 축소해 놓은 것이 바로 예배 시간 그 시간의 생활인 것입니다.

이런데, 신약 교회에서 일차에서 외식으로 실패했다. 이차에서 외식자들은 다 실패했고 하나님이 예약하신 그 예약을 지킨 사람들은 실패하지 안했다.

그러면, 우리가 그날은, “복 주어 거룩하게 한다” 그 말씀은 변하지 안했습니다.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 하는 것은 변하지 안했는데 그 복을 주신 것이 뭐인가? 무슨 복인가? 일차에는 우주를 주셨는데 우주를 주시는 것이 이 안식일날 우주를 갖다 줍니다.

우주를 갖다 주는데 안식일날 우주를 받은 사람은 이제 이 넓은 우주가 저의 것입니다. 안식일날 받지 못한 사람은 그게 제것 아니오. 알겠습니까? 이 세상살이, 몇십 년밖에 안 되는 이 세상살이에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되는 그 세계를 이 세상살이에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세상살이에서, 짧은 세상살이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영계와 물질계가 통일된 그 나라를 유업으로 이 세상살이에서 받지 못한 사람은 그 나라에 못 받습니다. 여게서 받은 것을 거게서 받습니다.

이 세상살이 가운데에 이레 중 첫날인 주일, 곧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주일, 이 주일은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는 날이 주일날이요 사활의 대속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무궁세계의 구원을 책임지고 나선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날이라 했어.

그러면, 주의 날에 무슨 일 하느냐? 주의 날에 일한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안식일을 당신이 지키기는 지켰지마는 신약 교회에 이루어질 일은 전부 이 주일날 했습니다. 그분이 나귀 타고 입성하신 것도, 변화산에 올라가신 것도, 세례 받으신 것도, 또 성령 강림도 그것은 전부 신약 교회에 소속한 일들인데 이 일은 전부 제팔일에 했지, 내나 제팔일이 칠일 지나면 팔일 되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이제 이 주일은, 이래서 통일된 그 나라를 축소해 가지고 씨종자로 주신 것이 이 교회 생활이요, 세상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이요, 교회 생활의 씨종자가 이것이 엿새, “엿새 동안에 네 모든 일을 힘써 하라” 엿새요, 엿새 동안의 씨종자가 그것이 주일날이라. 주일날 씨종자가 예배 시간이라. 예배 시간은 예수님이 이 세 가지 대속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것을 함축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까 그 시간에 받았으면 다 받는 이 오묘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래서, 주일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외식을 하는가? 주일날 외식은 어떤 것이 외식이냐? 주일날 일만 안 하고 예배나 보고 실상으로 바꾸지 못하면 외식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해방시켜 자유를 설정해 주셨으니 설정해 주신 자유는 내것 됐고 예수님이 설정해 주신 이 자유를 내것 삼은 자유를 가진 나는 주님의 것 되는 것이 요게 주일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풀어 놓으신 자유는 내것 됐고 자유 입은 나는 주의 것 되고, 주의 자유는 내것 됐고 이 자유를 입은, 이 자유를 가진 나는 주님의 것 됐고, 또, 주님께서 하나님의 공심판, 하나님의 공심판은 죄, 또 의, 화목 이 세 가지가 완전히 돼야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할 수 있는데 예수님의 이 공심판 통과의 세 가지 이 완성을 우리 대신 해 주셨기 때문에 이것은 내것입니다. 세 가지 완성해 주신 공심판 통과의, 공심판을 이긴, 공심판을 이기신 이 대속의 승리 공로 설정은 내것 됐고, 나는 공심판을 이긴 자이고 공심판을 이긴 나는 예수님의 것 되고, 예수님께서 다시 인성으로 부활하셔 가지고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사는데, 영감과 진리로 사는 우리는 암만 살아봤자 전지하신 당신이 볼 때에는 영감과 진리로 산 것이 그거 뭐 때묻은 옷이 아니라 세마포 옷으로 말하면 이 밧줄 여게 한 줄 갖다놓고 백 리 끝에 한 줄 갖다놓고 이렇게 늘여놓고 이게 베라 하는 거와 마찬가지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가 그 철저하게 지킵니까? 예수님이 이것 때문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영감을 지키셨고 진리를 지키시는데 이거는 언제까지 지키시느냐? 영원히 지키십니다. 영원히 지키셔야 내가 지킨 것이, 내가 영원히 지킨 게 되지 지키는 게 끝나 버리면 나는 그때부터 그만 그 지키는 거 끝나 버리고 맙니다. 영원히 내 대신 당신이 영감과 진리 생활 하는, 내 대신 한 완전 영감과 진리 생활은 내것 됐고, 완전한 영감과 진리 생활을 가진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요것이, 세 가지 대속은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되는 요것이 요 주일날 완전히 요 바꾸는 요것이 되어지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요것 된 자에게는 정죄를 못 합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했는데 누가 정죄를 하겠습니까? 죄를 멸해서 사망과 죄와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시켜 자유를 줬는데 누가 이제 우리를 해하겠습니까? 완전히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대신 사는 게 내것인데 이거 사는 자를 누가 정죄하고 누가 해하겠습니까?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주와 영계는 내것 될 수밖에 없고 통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것인데 이 내부의 그 실상을 힘쓰지는 안하고 그때 사람들이 전부 외식으로 뻐드러져 나가고 한 것은 뭣 때문이냐? 지키지 안했기 때문에 이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아십시오.

기독교는 이 세상에 온 천하에 둬도, 세상에 둬도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양을 이걸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축소하고 축소해 가지고 육십육 권이라는 조그만한 속에 함축시켜 놨습니다. 함축한 이 속에는 영감이, 영감 의지가 내주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둬서만 둘 게 아니라, 세상에 못 두지요. 이 세상에 우주에 가득 차고도 남지요. 무한한 이 진리를, 이 함축한 영감 진리를 얼마든지 요걸 통해서 그리 들어가서 잡을 수가 있도록 요렇게 해 놓은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이는 달리는 알 수가 없고, 육십육 권을 암만 외워서 ‘나는 다 외웠다, 다 외웠으니까 나는 육십육 권의 성경은 다 안다.’ 네가 다 안다고 하면은 모르는 게 분명하다. ‘나는 다 이제 하나님의 도리를 다 알고 있다. 다 가졌다.’ 가졌다 하는 것 보니까 못 가졌다. 안다 하니까 못 알았다.

그것은 무한함이요 영원함이라. 또 알고 보니까 또 부족하고 부족하고 자꾸 이러니까, 자꾸,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것입니다.

이 천국은 무한을 내가 얻어가기 때문에, 무한을 얻어가니까, 얻고 보니 내가 조금 눈이 밝아지고, 밝아지니까 얻고 보니 못 얻은 거 더 많고, 더 얻고 보니까 못 얻은 거 더 많고, 되고 보니 못 된 거 더 많고, 주님과 가까워지고 보니까 먼 게 더 많고 이것이 천국의 이 비밀인 것입니다.

이런데,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네가 성화되고, 또 “진리를 알지니” 네가 이 말씀대로 행하고 나면은 네가 변화되고 변화됨으로 말미암아 또 새로 알게 된다. 알고 행하고, 행함으로 변화되고, 변화됨으로 네가 행한 그 진리를 새로 알게 된다. 이 진리는 너를 자유케 한다. 이 진리는 피조물이 막지 못한다.

이렇게 했는데, 행하지 못하는 이 강퍅하고 패역한 데에서 다 가루어져 버려서 오늘도 삼차로 안식에 들어가는 날을 줬는데 외식으로 주일날 놀기만 되면 된다는 걸로 했지 요 바꿔야 된다는 요것을 지금 우리가 하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요게 외식으로 우리는 다 멸망 가운데 지금 머물고 있습니다.

바꿔야 됩니다. 바꾼 것만치, 주일날 바꾼 그것을, 바꿔 가지고, 주일날 바꾼 것을, 주일날 재료적으로 원료적으로 종자 씨종자적으로 바꾼 것을 엿새 동안에 이 연습합니다. 엿새 동안에 연습하는 것이 우리 할일이오.

뭐 회사 가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무슨 공무원 생활 하든지 엿새 동안에 연습하니까, 연습하다 보니까 또 실패했습니다. 그게 뭐이요? 연단입니다.

연습하니까 하나님께서 자꾸, 힘써 가지고 연습하니까 연습했는데 처음에는 됐는데 둘째번에는 안 되도록 자꾸 조금 안 되도록 이래 환경에서 자꾸 어렵게 만드니까 어떻게 자기 정도로서는 최고로 자기 정도로서는 어렵게 될 대로 다 돼도 이것을 연성하는 가운데서, 연단하는 가운데에서 어렵게 돼도 이것을 완전히 이행하는 그 과정을 가리켜서 연단받는다.

엿새 동안 연습하고 연단받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는 어떤, 자기 정도의 어떤 환경이 와도 그것을 요동치 안하고 그대로 이 바꾸는 일을 그대로 한 것을 가리켜서 연성이라.

이거 믿음의 연단 연성 했지만 우리는 껍데기로, 자꾸 뭐 알맹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알맹이를 헤치지 못했어. 알맹이를 헤치지 못하고. 이거는 뭐이냐? 행하지 안한, 강퍅하고 마음을 완패케 하지 말라 했는데 완패케 했기 때문에 이거 속을 알맹이를 알지를 못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에 대해서 외식하는 죄를 우리가 버리고, 엿새 동안은 그 연습 해야 됩니다.

엿새 동안은 주님이 설정한 자유는 내것, 주님이 주신 주님의 자유에 팔린 나는, 자유 가진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이 설정한 자유는 내것, 자유에게 팔린 자유 가진 나는 주님의 것, 주님이 공심판을 설정하여서 나에게 주신 이 설정하신 공심판은 내것, 공심판을 승리한 나는 주님의 것, 영감과 진리로 내 대신 살아서 완전 영감 진리 생활 하신 것은 내것, 이것을 설정해 내게 주셨으니 나는 이것에게 팔렸다.

주님이 완전 영감 진리 생활 하신 이것을 나는 받아서 내것 삼고 나는 이것에게 팔린 주님의 것.

이것 되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것은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됐다, 주님의 것은 내것 됐다, 주님이 세 가지 주신 거는 나는 내가 가졌다, 세 가지 주신 것은 나는 가진 자다, 가진 자니 이 가진 자로서 나는 주님의 것이다.

요것이 하루 몇 번이든지 몇백 번이든지 몇천 번이든지 반복해 가지고 요것이 확고하게 이루어진 것만치 안식 세계는 들어갑니다.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안식에는 일하지 안하는 세계가 아니요 일하는 세계라고만 말했습니다. 안식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여러분들이 가서 보면 성경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안식 세계는, 이제 안식 세계는 죄가 없는 세계요, 멸망이 없는 세계, 근심 걱정 고통이 없는 세계요, 이 전투가 없는 세계요, 원수가 없는 세계요, 거게는 실패가 없는 세계요, 모든 좋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세계인데 세상에서는 좋지 못한 게 있기 때문에 이걸 정리하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전투 세계요, 준비 세계요, 어지러워 있으니까 정리 세계요, 정돈 세계요, 준비 세계요, 이런 게 다 됐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아무 불안이 없는 평안을 가지신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 세계에서, 안식 세계라 말은 이런 모든 불의의 죄악의 이 모든 고통들이 없는 세계라 그말입니다. 일하지 않는 세계라 말 아니라. 이걸 안식 세계라는 걸 일하지 않는 세계로만 자꾸,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다른 일을 할 여가가 없이 제일, 이레 중에 제일 되고 힘들고 이레 중에 제일 많은 일을 하는, 이레 중에 제일 바쁘고 일 많이 하고 되게 하고 어려운 일 하고 이레 동안에 제일 일을 많이 하는 날이 어느 날입니까? 주일날입니다. 제일 일 많이 하는 날이 주일날이오.

주일날인데, 왜 일하지 말라 했는가? 썩은 일, 땅에 속한 없어질 그일 하지말고 이 중요한 일 하기 위해서 그거 하지 말라는데 하지 말라는 이것만 자꾸 힘을 쓰고 하라는 거 하지 안했기 때문에 외식이 돼서 실패를 한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깨닫고, 나는 이 깨달은 것이 과거에 말했지만 나는 새로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깨달은 요것에 대해서 확고한 진리인 걸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뉘가 뭐라고 한다 해도 요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실 대로 세계에 반드시 요 진리를 쓰리라 하는 것을 확신하고 지금 바라고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매일 삼십분 준비 기도 잃지 맙시다. 하루 삼십 분씩이면 이틀이면 한 시간입니다. 한 달이면 열다섯 시간입니다. 한 달이면 열다섯 시간이면 일 년에는 백팔십이삼 시간이 됩니다. 백팔십이삼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이 되는데 그만치 많이 할 수 있습니까? 못 하요. 매일 삼십분 기도를 놓치면 안 됩니다.

 


선지자선교회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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