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지식

 

1986. 2. 12. 밤

 

본문:에베소서 1장 3절∼14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두 주일을 가르쳐서 모든 학생들이, 뭐 뜻을 반사 선생님들은 알아야 되지마는 학생들에게는 알리기가 좀 힘듭니다. 그러니까, 반사 선생님들이 뜻을 똑똑히 알고 가르치면 그 학생들도 성신의 감동으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반사 선생님이 뜻을 모르고 가르치면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주간을 가르쳐 이를 어짜든지 외우도록 해 가지고 이것이 저희들 속에 주입돼 있으면 때가 되면 이 말씀이 그들을 붙들고 구원 역사를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제목은, 하나님을 향한 지식. 하나님을 우리가 향해 바라보는 하나님의 지식을 여게 말씀한 것입니다.

요절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장 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대해서, 열 세 가지인데 하나씩 읽으면서 그저 간단하게 해석을 하겠읍니다.

‘영원 자존하신’ 영원 자존하시다. 영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언제부터 계셨다는 계신 그 시작의 때가 없음을 말하고, 또 하나님의 끝마치는 때가 없읍니다. 영원히 계시는, 시간의 과거로서나 미래로서나 영원하심을 나타내서 ‘영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시다 말은 모든 존재는 다 원인이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읍니다. 어떤 것이든지 다 원인이 있어 가지고서 그것이 생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인이 없이 스스로 계셨읍니다. 그래서,하나님은 모든 천상 천하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그런 것들의 존재 원인이 됩니다.

존재 원인이 돼 가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늘도 생겼고 땅도 생겼고 모든 만물도 다 생겼지마는 하나님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지 안하고 그분이 모든 것의 제일 원인되는 것을 가리켜서 자존하신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자존하신 분은 한 분뿐이지 한 분 외에 또 딴것이 없기 때문에 자존하신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리켜서 ‘자존하신 하나님’ 이랬읍니다. 하나님이라 말은 하나뿐인 분이시라 그말입니다.

또, ‘우리 아버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것은 `나의 아버지’ 하면 안 됩니다. ‘내 아버지' 이라면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 해야 됩니다. 왜? 내 아버지 하면은 내라는 것이 단수가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의 아버지가 되는데, 나 혼자의 아버지는 안 됩니다. 나 혼자는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나아가면 당장 전멸이 돼 버립니다.

지금 하나님이 이 모든 우주에 있는 만물에게는 하나님이 직접 접촉을 안 하고 계십니다. 왜? 이 모든 우주가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접촉하면 소멸돼 버립니다. 마치 어두움이 있는 데에 빛이 나타나면 그 어두움이 다 녹아져 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더럽거나 불의한 것 잘못된 것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나면 소멸돼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으로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안 됩니다. 내 아버지라, ‘하나님 내 아버지’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답하지시 안하시고 우리를 피하십니다. 왜? 내 아버지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하시면 우리는 소멸해 죽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는 우리를 피하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면은 하나님은 대답하시고 우리를 친밀히 사귀어 주십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하고 나하고 합해서 복수가 됐는가? 이것은, 우리를 대속하신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과 나와의 하나가 되어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목으로 화친의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가 힘입어서만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고, 또 예수님과 나와의 하나가 됨으로서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 할 때에는 나하고 누하고 하나 되는가? 나와 또 신인 양성 일위이신, 지금도 신인 양성 일위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무궁토록 신앙 양성 일위의 예수님이십니다. 요것도 여러분들이 지금 들을 때에는 쉽지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지금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신성과 인성, 신인 양성 일위로 계시나 혹은 예수님은 신성으로만 계시나 하는 거게 대해서도 많은 학자들의 논단이 많은데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알려 주셔서 쉽게 아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하는 데는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과 또 성령님과 또 나와 이 셋이 합해 가지고 우리가 되는데 이 셋이 합할 때는, 합할 때는 뮐로 합했는가? 우리 셋을 똘똘 뭉친 밧줄은 뭐인가? 밧줄은 곧 진리입니다. 진리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과 성령님과 우리와의 이 진리로 결합돼서 하나가 된 우리로서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라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니까 아버지는 나와 이렇게 친밀해지지마는 예수님과는 관계가 어찌되는가 이것을 혹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 할 때, `우리' 할 때에 예수님과 성령님과 진리와 나와 이 넷은 벌써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우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도 신격과 인격을 가지신 인격 존재요, 성령님도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지신 인격 존재요, 또 우리도 인격 존재요, 진리는 인격이 없는 진리의 이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두 신격과 한 인격이 이 진리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에 우리라 이랍니다. 우리가 됐읍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됐읍니다. 고것을 기억하시고, 그래서, 벌써 ‘우리 아버지’ 하면은 성령님과 나를 위해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이 대속의 공로를 가지신 주님과 진리와 나는 하나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레 부를 필요가 없읍니다. 벌써 하나가 돼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멀리 피해 가지고 있다가 이제 이다음에 구름 타고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 그때 죄악이 있는 거는 다 불에 타서 다 소멸돼지고 그다음에는 공심판에서 다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영원 자존 불변 사랑 하나님 우리 아버지’ 불변의 사랑의, 요 토를 달면 좋을 줄 알지마는 토를 달면 안 됩니다. 영원 자존 불변 사랑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요 사랑도, 사랑도 하나님이 가지신 사랑이 아니고 사랑도 자존한 사랑입니다. 사랑도 자존한 사랑이요, 스스로 있는 사랑이요, 이 사랑도 어데서 생겨 나온 사랑이 아니고 이 사랑도 자존 존재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사랑도 하나님, 또 전지 전능도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몇 분이나 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는 이 모든 그 속성이 다 이렇게 합하나 하나님은 단일성이십니다. 사랑과 진리, 진실, 거룩 이게 하나님의 속성이지마는, 이게 다 하나님이신데,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내나 한 분의 신격을 가지신 한 분이시요, 그런데 한 분이신데 사랑도 하나님이요, 전지도 하나님이요, 전능도 하나님이요 내나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시요.

그래서, ‘영원 자존 불변 사랑’ 불변 사랑으로 되어 있는 하나님이라 그말이오.

변치 않는 사랑으로 되어 있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하나님의 그 사랑은, 그 사랑이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이 생겨진 게 아니고, 그러면 그 사랑의 원인이 하나님이 그 사랑의 원인이 아니고 그 사랑도 자존 사랑입니다. 자존 사랑, 그것도 사랑도 하나님이십니다. 내나 한 하나님이시요.

그러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것에게 피동이 돼 가지고서 생겨진 사랑 같으면 그 사랑이 또 변할 수 있읍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의 사랑은 돈으로 인해서 생긴 사람은 돈이 변해지면 사랑이 변해집니다. 또 서로 정을 가지고서 사랑이 생겨진 것이면 그 정이 변동되면 변동됩니다. 또, 무슨 서로 이런 인연 저런 인연으로 가지고서 사랑한 사랑이라고 하면은 그 인연이 변해지면 변해집니다.

그러기에,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랑은 다 원인이 있고, 그 사랑의 원인이 있어서 원인이 있을 때는 그 사랑이 있지마는 원인이 변해지면 그 사랑이 변해집니다.

그러나, 사랑 하나님의 이 사랑은 원인이 없읍니다. 원인이 없고 스스로 계신 사랑입니다. 스스로 계신 사랑이기 때문에 뭐 천지가 모든 게 변한다 해도 그거는 변할 수 없는, 스스로 자존한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변할 수 없는 사랑이요, 어떤 것에게 피동되는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 하나님이라. 사랑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사랑 그 자체가 하나님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안하고 ‘의’ 자를 빼 버리고 사랑 하나님. 그런데 그분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 아버지. 사랑 하나님 우리 아버지.

또, 셋째로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그러면 전지라 하는 것은 알지 못하심이 없는 모든 것을 아시는 완전 지혜를 말하고, 또 전능이라 말은 완전 능력으로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완전 능력을 말하는데 이 세상에는 어떤 지혜든지 능력이든지 그것은 다 원인이 있읍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아주 유력한, 세계에 제일 높은 지식을 가진 학자라 하면은 그 학자가 어데서 나왔는고 학자가 생겨 나온 원인이 있읍니다. 그 지식의 원인이 있읍니다. 또 능력의 원인이 있읍니다. ‘저 미국이 뭘 저렇츰 능력 있다 하는가?’ 미국이 능력 있는 것은 무슨 자연 재원이 그 원인이 됐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과학이 원인이 됐다든지 뭣이든지 그 능력이 원인이 있지마는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우리 아버지는 그 능력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지지 안했고 스스로 생겨진 것을 가리켜서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자꾸 새기면 차차 은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지금,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 지혜가 있고 뭐 참 좋은 지혜가 있읍니다.

온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지혜가 있고, 온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능력이 있고 지혜와 능력이 있는데 그 지혜와 능력이 원인이 있는 지혜와 능력이라고 하면은 우리가 그 지혜와 능력을 만일 믿고 의지하고 거기에 연관성을 가지고 이렇게 결합을 가져 있다 할지라도 결합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됩니까 안 되겠읍니까? 원인이 있는 전지 전능과 우리가 결합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결합이 됐다고 하면은 우리는 안심하고 담대할 수가 있읍니까 없읍니까? 어떻습니까? 예? 예? 있읍니까?예? 있읍니까 없읍니까? 녜, 없읍니다. 왜?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 원인하고나 손을 잡았으면 몰라도 원인이 있는 그 결과의 이 지능 있는 거 가지고서 내가 결합했다 할지라도 그 원인이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인 있는 결과인 그 지능과 결합이 됐다 할지라도 그 원인과 나와의 언제 삐뚤어질지 알지 못하고, 원인 그거하고 나하고 결합을 했다 할지라도 원인 그것이 또 그 위에 원인이 있다고 하면은 안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 하는 그말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전지 전능자신데 전지 전능이 누구로 말미암아 전지 전능이 아니고 스스로 자존하신 전지 전능이기 때문에 아무데도 속한 것이 없고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가 시작이요 전부입니다.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우리 아버지.

또, 네째로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의지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의지가’ 하나님 의지라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귀하고 아름답게 만드시기로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렇게 했는데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그러면 하나님 의지라는 이 의지가, 하나님 의지가 무엇이 그것도 원인이 있어 가지고, 의지라면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이 그 뜻이 원인이 있는 뜻이라면은 그 뜻으로 가지고서 우리를 택한 목적을 정했다 할지라도 목적을 정한 그 의지의 원인이 있으면 우리를 하나님의 목적으로 택해 주신 이 택함이 변동될 수가 있읍니까 없읍니까? 변동될 수가 있읍니까 없읍니까? 변동될 수가 있읍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고, 그게 근본이 아니고 그 위에 대가리가 있으니까, 그 원인인 대가리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그 의지로 우리를 택했다 할지라도 그 위에 대가리가 변동될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나,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그 의지는 자존 의지라 말이요, 자존 의지.

자존 의지인데 자존 의지 그 의지도 하나님입니다. 자존 의지 하나님.

‘자존 의지 하나님’ `자존 사랑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여럿인가? 한 분이 이런 속성으로도 하나님 저런 속성으로도 하나님 한 분이 그 속성을 가지셨는데 그 속성을 여럿을 가졌으나 단일성이라 그말이오. 단일성.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의지는, 우리가 불쌍해서 택했으면 그 택한 것이 원인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우리가 불쌍해서 택했으면 원인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원인이 있지요. 또 우리가 아주 잘나고 아름답고 아주귀해서 우리에게 가치가 있어서 하나님이 택했으면 그 택함이 원인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원인이 있지요. 우리 택한 것은 원인이 없읍니다. 영원 자존하신 의지가 우리를 택했기 때문에 뭘로 말미암아 택한 것 아니고 영원 자존한 이 의지가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기뻐해서 택한 것이지 어떤 것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우리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이 자존한 의지 불변의 의지가 우리를 택했으니까 이 택함에 대해서 혹 천 년이나 억만 년이나 가면은 혹 변동이 있을 수가 있겠읍니까 없겠읍니까? 변동이 있을 수 있읍니까 없읍니까? 변동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자존 의지요 완전 의지요 불변 의지, 자존의지인데 완전 의지기 때문에 그 완전 의지는 변하면 완전 의지가 되겠읍니까 불완전 의지가 되겠읍니까? 어떻습니까? 변하는 것은 완전입니까 불완전입니까? 불완전입니다.

그러기에, 완전 의지로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한 것은 영원히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온 천지 아니라 어떤 것이 변해도 이것은 그런 것들이 원인이 됐으면 변하지마는, 우리를 택하심은 원인이 뭐이 원인이냐? 자존한 그 의지, 불변 의지 그 의지가 좋아서 택했기 때문에 아무것에게도 충격이나 침노나 그뭐 피동이나 그런 것이 될 수가 없는 완전 자존 의지가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래서,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라 하는 요것도 여러분들이 잘 깨달아서 자꾸 이렇게, 요것을 깨닫고 또 자기가 눈 감고 명상해서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라’ 우리를 택한 것이 이런 것이라' 자꾸 이렇게 자꾸 묵상하고 새김질을 하면은 ‘하나님이 나를 택한 것은 영원히 변치 않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에게 나는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이 하나로서 만고에 못 할 게 없고 영원히 가도 이 택함이 변하지 안할 것이기 때문에 내 환경과 주위가 어떻게 변해져도 하나님이 나를 택하심과 나를 사랑하심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변성을 믿음으로써 자기의 신앙이 변치 않는 신앙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그런 신앙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말은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인데, 하나님을 그리스도라 이렇게 하는데 이 그리스도는 제이위 성자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말은 우리가 그때는 몰랐지마는 그후에 성경을 기록해 가지고서 알려 줘서 우리가 알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말은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이라는 뜻인데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제사장, 선지, 왕으로 장립시킬 때에 기름을 붓읍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말은 우리를 제사장 선지 왕으로 만드실 책임을 짊어지신 이 기름 부음의 하나님 안에서 그말이오. 기름 부음의 하나님 안에서.

그말이니까 그거는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를 목적을 정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것은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택했다 그말입니다. 우리 택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기 때문에 기름 부음 받도록 하기 위해서 택했다. 기름 부음을 받도록 하기 위해 택하다니? 제사장 선지 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안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다 말은 `하나님의 신성과 꼭 같은’ 말이니, 하나님의 신성은 속성으로 말하면 십 이 속성으로 나타났읍니다. 십 이 속성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자존성, 완전성, 영원 불변성, 단일성 그 네 가지 속성과 하나님의 지식성, 지혜성, 또 사랑성, 선성, 진실성, 거룩성, 의성, 주권성 이렇게 하나님의 속성으로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격과 꼭 같은 인격으로, 하나님의 모형으로 하나님이 완전하면 우리도 완전, 하나님이 거룩하면 우리도 거룩, 하나님이 전지면 우리도 전지, 전능이면 우리도 전능, 하나님의 전지 전능 모든 지능이나 모든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그런 속성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격과 꼭 같은 인격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택한 것입니다.

‘형상과 꼭 같은 사람’ `형상과 꼭 같은 사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말은 우리를 만든 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말은 그걸 뭘로 가지고서 그렇게 말을 해야 할란지, 예를 들면은 어떤 사람이 그 동리에는, 그 동리에는 강물이 흘러가 가지고서 이리저리 그만 홍수가 내려오면 다 쓸어서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다 그만 다, 그러니까 흉년이 들어서 거기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사람이많고, 그 넓은 데에 그 큰 강이 그만 비가 오면 이리 한번 쓸고 저리 한번 쓸고 그만 전부 다 곡식 다 죽어 버리니까 사람이 모두 굶어 죽는 사람이 많고 땅은 넓으니까 많이 모였다가 또 굶어 죽고 굶어 죽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만일 그 강물에 방축을 쌓아 가지고서, 그 방축을 든든히 이래 쌓아 가지고서 이제는 홍수가 내려와도 그 물이 꼼짝 못 하고 조르르르 흘러 내려가니까 그 부근에 토지가 여러 수천만 평이 생겨져 가지고서 그 지방에 사람들이 참 살기가 좋고 애굽의 나일 강과 마찬가지로 그래 살기 좋고 이러면, 강둑을 메운 것을 그 뒤에 다른 사람이 ‘여게가 역사적으로 여러 수천 년 동안 사람이 여기서 막 굶어 죽고 이런 곳인데 어떻게 이 방축을 쌓아 가지고서 이렇게 사람이 이렇게 잘 살고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됐을까?’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무것이라는 그 사람이 이렇게 방축을 쌓았다 이라면 그 사람을 보지 못한 사람도 그 방축을 보고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돌린다 말이고, 그 방축 쌓은 그것이 그만 그 사람의 영광이라. 하도 잘 쌓으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 방축이 그 사람의 영광이라. 그 사람 모르는 사람도 ‘아무것이라는 사람이 유명한데 그 사람이 뭐이 그래 유명한가?’ `와 봐라.’ 방축 이걸 보고서 ‘아, 사람이 참 수천만이 죽는 것을 살려냈구나. 이 방축 쌓은 것 보니까 그분은 참 위대한 분이요 세상에 왔다 큰일을 하고 갔다.’ 그러니까 그 방축 쌓은 것이 그 사람의 영광이 된다 그말이오. 알겠읍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로 만든다 그말은 우리를 하도 잘 만들어 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만들어진 우리를 보고서 모든 피조물들이 ‘아, 저 만들어진 것 보니 하나님 참 저렇게, 저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냈다. 성도를 만들어 놨다.’ 이렇게 우리 만든 그것으로서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아가서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그렇게까지 우리를 잘 만드실려고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셨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요것은 그저 내가 이제 해석을 하니까 그런 걸로 여러분들이 요것도 딱 들어맞지를 안해요. 이러니까, 자꾸 눈을 감고 해석하면은 말로는 발표를 못 해도 ‘아, 하나님이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우리를 만드신다. 하나님의 그 완전자의 형상과같이 우리를 만드신다.’ 그러면 우리를 얼마나 잘 만드신다 하는 것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잘 만드실려고 애를 쓴다’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귀하게 아름답게 만드시기로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대해서 이렇게 귀하게 아름답게 만드실려고 그 정한 것이 목적이라 그말이오. 그게 목적이요 우리의 선택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목적을 정하신 데 대해서, 내가 선택을 받은 데 대해서도 우리가 깊이 느껴서 참 감사를 영원히 무한히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택 받은 것, 이 선택 받은 것을 우리가 무슨 힘을 써 가지고 한다고 하면은 만일 우리 한국 사람이 다 달라들어서 힘을 합심하면은 하나님의 선택에 들어갈 수가 있겠읍니까? 하나님의 선택에 들어갈 수 있읍니까? 그러면, 이제 지금 이십세기의 온 세계 전 인류가 똘똘 뭉쳐 가지고, 단합을 해 가지고서 한 사람을 하나님의 선택 속에 넣을라고 하면은 넣을 수가 있겠읍니까 없겠읍니까? 있읍니까 없읍니까? 천하 인간이 다 달라 들어 가지고 그 한 사람을 선택 속에다 넣을려고 하면은 넣을 수가 있소 없소? 못 넣는다 말이오. 이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 가지고 이 선택 속에 우리가 들었는지 이걸 생각할 때에 참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이걸 가지고서 뭐 어떤 사람은 여러 달 아니라 여러 해를 우는 사람 많습니다. 우리 심령은 강퍅하고 둔해 그렇지 이걸 생각해 볼수록이 어떻게 내가 택함 받았다는 이게 기쁜지.

우리 교회에 ○○○집사님이라고 있었는데 그 집사님 의학 박사입니다. 그분이 내가 한번 가니까 ‘목사님, 저는 이 택함을 받은 것이 이것이 의심이 나서 이거 참 내가 그렇지 택함 받은 줄만 알면ㅡ보니까ㅡ받은 줄만 확실히 안다면은 아까울 것이 뭐 있으며 무엇을 아껴서 못 믿겠읍니까? 소유와 몸과 생명 다 기울여서 믿을 수 있지요. 나는 택함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그게 참 궁금해서 지금 고민입니다.’ 늘 이라더니마는, 그분이 그뒤에 얼마 동안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에 택함을 받은 것을 자기가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가운데에서 자기 또 성신의 감동이 알려 주고, 또 우리도 가르쳐 주고 그라는 가운데에서 택함 받은 것을 알았다 그말이오. 알고 난 다음에는 그분이 그다음부터는 의학 박사노릇 하는 것도 다 집어 치워 버렸고 전부 믿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지금 장로됐읍니다. 장로됐는데, 혹 가끔 가다 오면은 저기 와 앉습니다. 앉으면, 그 뚱뚱하이 크고 입도 큰데, 그뭐 찬송을 부르면 똑 대구 입만한 그 입을 막 쩍쩍 벌리면서 막 좋아서 아주 기쁨이 충만해 가지고 늘 찬송을 합니다.

○○○장로님이, 그분은 고 택함에 대해서 걱정을 하다 보니까 택함 받은 데 대해서 일반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도 더 깊이 느껴서 감사해요.

그런데, 이 택함에 대해서 느끼는 사람들은 뭐 여러 달 참, 평생 이 택함에 대해서는, 생각하면은 참 너무 감격한 눈물이 나오고, 어떻게 뭐, 이 택함을 공을 들여 가지고 되겠소, 돈을 들여 가지고 되겠소, 많은 사람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되겠소, 우리가 막 지사로 애를 쓴다고 되겠소, 생명 내놓으면 되겠소? 아무래도 안 돼. 이거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서 택함에 내가 들어갔다는 것이 이게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행복 됩니까? 이것만 생각해도, 온 천하 다 뺏기고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고생을 한다 해도 택함 이것만 하나 해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넘칩니다. 딴거 그까짓 거 없으면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

다섯째로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영계와’ 영계라 말은 신령한 세계, 영계와, ‘우주와’ 우주라는 것은 이 공간 말입니다. 이 물질계 이 공간 말이오. 저 하늘 모든 거 다 이런 걸 가리켜 우주라 하는데 우주와, ‘또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의’ 그 가운데 있는 거 모두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짐승이든지 땅이든지.

많은 게 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 모든 것의 영원을 주권 의지로’ `영원을 주권 의지로' 그러면, 하나님이 예정하는 데에, 예정하는 것이 이거 집 지을라 하면 설계하는 거와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설계하실 때에 천 년을 설계 했는가 만 년을 설계했는가? 천 년 만 년을 설계한 게 아니라 영원까지의 그 설계를 단번에 하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 의지, 주권 의지라 말은, 여게 ‘주권 의지로’ 했는데, 주권 의지라 말은 다른 데에 간섭을 받지 않는 그 의지, 그러면 이 의지가, 이 의지도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뭣에 속한 것도 아니고 어떤 것에게 침노를 받는 것도 아니고 이 의지는 이 의지 단독 의지, 이 의지도 영원 자존 의지인데, 이 영원 자존 의지가 아무데도 간섭을 받지 안하고 침노를 받지 안하고 상관을 하지 안하고 독단으로서, 자존 하나님 의지가 우주와 영계의 영원 무궁한 그 모든 것을 단번에 다 예정을 해 설계를 해 놨어. 예정해 놓고 그대로 딱딱 이루십니다.

그러면, ‘예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것을 누가 예정했느냐? 하나님 아버지가 이 예정하셨다 말이오. 그 예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인데 우리는 몇이 합해 가지고서 우리가 됩니까?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봅시다. 몇이? 녜, 넷. 그러면,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 또 성령님, 또 진리, 또 이 택한 자들, 나와 모든 택한 자들, 나, 내가 넷이 합하면 우리가 되고, 또 모든 성도들이 다 합해도, 인류 택한 자들 전부 다 합해 가지고서 내나 넷입니다. 택한 자 하나와 합해도 우리되고, 택한 자 억만 명을 합해도 우리되고, 이래서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양성 일위와 성령님과 진리와 택한 사람과 합한 것이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아버지라 말은 교회의 아버지라 그말입니다. 교회 아버지. 우리가 교회가 돼야 아버지가 되지 그리 안 하면 아버지가 안 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돼요.

그러면, 이 세상에 어떤 그 일들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전개되는, 이 세상에는 뭐 시간 시간마다 새로운 사건들이 전개되지 않습니까? 새로운 일들이 나타나지 안해요? 나타나는데, 그러면 오늘 내게 대해서 나타나는 요 현실 이 온 세계 우주에 영계에 나타나는 이 모든 나타나는 그것은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읍니까? 하나님이 미리 딱 정해 놓은 고대로 나타납니까 어떻습니까? 돌발적으로 그때그때 푹푹 나타납니까 영원 전 하나님께서 딱 예정한 고 순서대로 고대로 호리도 변동 없이 고 예정한 고대로 나타납니까 어떻습니까? 돌발적으로 나타납니까 예정한 고대로 나타납니까? 예정한 고대로 나타난다고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녜, 잘 압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아는 현실 모르는 현실, 온 세계에 이 일 저 일 모든 것이, 어제 있던 것 또 지나가 버리고, 오늘 또, 오늘 새로 한시에 또 이런 일이 있고, 두시에 이런 일이 있고 자꾸 뭐 온 세계에서 이렇게 새로운 모든 순서들이 나타나는데 그 나타나는 그 모든 순서는 뭣대로 됩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예정하신 고대로 됩니다. 알겠읍니까? 예정하신 고대로 되는데 그 예정한 것은 뭐할라고 예정했읍니까? 우리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예정했읍니다. 그러면, 그 예정이 누구를 위해 있읍니까? 그러면 무슨 사건이 나타났을 때에 나타난 그 예정은 누구를 위해 있읍니까? 우리 구원 위해서 있읍니다. 우리 구원 위해서.우리 구원이라면 몇을 합해서 우리라 하는가? 이렇게, 인격으로는 셋이고 또 진리까지 합하면 넷이라 말이오. 넷이 합해서 우리인데 이 운동을 위해서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다섯째 요것만 하고 맙시다.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하다 말은 우리를 택하신 우리 구원을 이루기에 필요한 말이오. 택함을 입은 우리 구원을 이루기에 필요한,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의 영원을 주권 의지로 예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우리 택한 구원을 위해서 영계 것도 이 우주의 것도 다 하나님이 다 예정하셨읍니다. 예정한 고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예정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무엇이든지 믿으십시오. 예정된 대로 나타나는데 그 예정대로 그러면 이루어지면은 뭐 잘믿고 못믿고 할 게 뭐 있는가? 또 그래 놓고 하나님이 예정한 대로 된다고 하면은 잘믿고 못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못믿는다고 벌을 주고 뭐 그랄 수가 있겠는가? 고 모순돼서 이해를 못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믿음이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먼저, 공부하러 간 학생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율 행위와 그 조화가 어찌되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말을 해서 제가 전화 요금은 이쪽에서 하기로 하고 그래 가지고 그것을 전화로서 통해 가지고 간단하게 좀 해석을 해 줬더니마는서도 이해를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합디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예정을 꼭 믿으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다.’ 이해 못 하나 예정입니다. 예정이기 때문에, ‘예정이니 이 예정은 내 구원 위해서 있는 예정이다’ 요걸 믿으십시오. 그러면, 예정이라면은 예정대로 되는데 뭐 잘 믿는다 못 믿는다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 잘 믿도록 예정된 자가 잘 믿지 예정되지 안한 자는 잘 못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사람이 힘을 씀으로써 잘 믿게 된 그 잘 믿는 그것이 권위가 있읍니까 사람이 아무리 힘을 쓰고 애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대로 잘믿는 사람 못 믿는 사람이 예정대로 된다고 하면은 그게 권세가 더 큽니까? 어떻습니까? 예? 예정대로 된 그게 권세가 더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말하자면, 그러면 예정대로 돼 놓고 예정대로 되는데 나 잘못 믿는 거 하나님이 예정해서 잘못 믿는데 그래 잘못 믿는 걸 나한테 책임을 지우는가? 이래 가지고 불평을 품는 사람있어요. 불평을 품습니다.

불평을 품는데, 그때 아는 사람이 말하면 그래 말합니다. 네가 불평 품는 것도 너는 불평 품고 또 옆에 한 사람 있다가서, ‘아이구, 나는 이러니까 잘못 믿도록 예정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어짤꼬?’ 우는 사람이 있고, 세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불평을 품고, 하나는 ‘나는 잘못 믿도록 예정돼 가지고 이래 잘못 믿게 됐으니 나는 어떻게 이 비참하고 가련한 자이니까 어짤꼬’ 근심 걱정으로 우는 자 있고, 또 한 사람은 옆에 있다가서 이제,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렇게 요 순서로 지내가도 반드시 나에게 요런 걸 경험을 통해 가지고 좋은 구원을 주실 것이라’ 그래 가지고서 감사하며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요 셋 종류가 있읍니다.

이 셋 종류 있는 그것이 예정대로입니다.

‘너는 예정하기를 그런, 지금 내가 너한테 말하는 것도 예정대로 말하는 것이고 예정하는 말을 듣고서 너는 불만 불평을 품으면서 그렇게 강퍅하게 하는 그것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이 고대로 됐기 때문에 고렇게 한다. 조 사람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겼으니까 좋은 구원 앞으로 주실 것이다 그라면서 소망하고 기뻐하는 고것도 예정대로 그래 된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강퍅해서 제 행동으로 그와같이 지금 그런 강퍅을 부리고 있는 그것이 더 불행스럽습니까 하나님의 에정대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돼서 그래 된 것이 불행스럽습니까 어느 게 더 불행스럽습니까? 자기의 행동으로 해서 불행스러운 것이 더 불행스럽습니까 예정이 돼서 그렇게 하는 것이 불행스럽습니까 어느 불행이 더 큽니까? 예? 행동으로? 예정으로? 예정으로지요.

행동으로하는 것은 그 불행이 사람의 행동만치 불행입니다. 알겠읍니까? 사람의 행동만치 불행입니다. 그 불행의 강도가 사람 행동만치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면 완전자, 전능자, 영원자의 그 정해 놓은 불행이기 때문에 그 불행은 억억억억만배도 더 큽니다. 예정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많이 생각해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정에 대해서 이것을 좀 깨닫기가 어렵고 믿지 못하기 쉬운데, 예정을 못 믿는 신앙은 그거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 신앙은 언제 떨어져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다섯째까지만 하고 이제 시간이 지나갔으니까, 그걸 자꾸 외우십시오, 어쨌든지 이것을 외워야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이 도리를 간추려서 이래 놨는데 거게 얼핏 보면은 말이 안 됐읍니다. ‘의’자 하나만 토 하나만 넣으면 말이 잘되지 싶지마는 말을 한 마디 ‘의’자 하나만 넣으면 아주 딴 말이 돼 버리고 그만 영 그만 백 팔십도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만침, 한 자를 위로 붙여도 안 되고 아래로 붙여도 안 되는 고렇게 아주 간격 없는 그런 교리와 신조이기 때문에 요것을 다 외우도록 합시다.

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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