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1987. 7. 8. 새벽 <수>

 

본문:에베소서 1장 3절∼14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도합시다.

유한한 저희들이 사탄으로 인하여 심히 유한의 옥 속에 들어 있던 저희들을 주께서 대속으로 해방하사 자유의 생명을 주시고 계속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소망을 우리들에게 약속으로 선포하시고 이루어 나아가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이 이 사랑의 구속을 인하여 역사하시는 그 구속의 광대하심을 누가 측량하며 누가 알아서 다 높일 대로 높이며 진정 찬양할 대로 하며 경외할 대로 할 자가 있겠습니까? 이는 영원한 우리의 소망이요 자라갈 우리들의 소망인 것을 저희들이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주께서 주님을 향한 주께서 선포하신 대로의 열세 가지 지식을 저희들이 생각하고자 하오니 우리 각자들에게 무한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감동시켜 비롯 첫 아담에게 속한 한없는 제한자이지마는 무한하신 주님의 은혜의 역사로 바로 이해하고 믿어 능력에 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공과가 없는 분은 공과모음에 187페이지에 있습니다. 다음 하기아동 성경학교 공과로 삼았다고 그 책임자가 말씀을 해서 여게 대한 것을 한번 뒤에 만날 기회가 없고 이래서 지금 간단하게 설명을 할라고 합니다.

제목에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이 말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선포하신 대로 이 열세 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신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 공과에는 ‘지식'뿐이지마는 그 `13가지'를 바로 괄호를 열지 말고 그냥 붙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첫째,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여게다가 예를 들면은 점을 찍듯이 거게서 끊어야 됩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은 영원 전에 계셨다 영원 후에 계셨다 이렇게, 태초라는 것보다도 영원이라는 것은 더 범위가 넓고 길고 깊음을 말하고 또 ‘영원 전’ 말하는 것은 일면이 국한되나 영원이라고 이래 말하는 것은 그는 과거 현재,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과거 현재인데 이 과거 현재에 과거에 무한, 미래에 무한, 그 전체의 범위를 다 가리켜서 ‘영원’ 말했고, ‘영원 자존하신’ 자존이라 말은 무엇이든지 다 원인이 있어 가지고 생겨지는 것인데 하나님은 당신이 스스로 계셨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인이 되지 아니하시고 당신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계심의 시작이 없는 것을 말하고 계심의 끝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영원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이라 말은 한 분뿐이시라 그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하나님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한울님, 큰 둥그란 그런 울이 있는데 그 큰 울을 가지신 하나님 이는, 한울님 하는 것도 하나님의 그 인격 존재를 인정치 못한 그런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또 한을님이라 말은 하나님은 크신 분이라는 뜻으로서 을자를 붙여서 큰 을자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새 을자는 큰 을자로 부릅니다.

그 하나님인데 이런 한 분이신 하나님인데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우리 단독이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될 수 없는데 예수님의 이 중보자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렇게 우리 아버지가 됐다는 그 표현입니다. 이래서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이 복수의 아버지는 뭐 성도들이 여러 성도들이 합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중보자 예수님과 우리와의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예수님과 끊어진 자에게는 하나님은 그의 창조적인 하나님이시지 그의 구원의 하나님은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 ‘영원 자존 불변 사랑 하나님’ 여기도 ‘사랑 하나님' 여게 끊어야 됩니다. `사랑 하나님' ‘영원 자존 불변’ 그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완전한 사랑인 하나님. 그러면 이 사랑도 하나님이라 말입니다. 요거 조금 아마 교계에 나가면은 말썽들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요게 맞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독자성을 가졌습니다, 어데에 소속한 게 아니고. 이 사랑이 완전한 완전성을 가졌고 영원성을 가졌고 불변성을 가졌고 독자성을 가졌고 이런데 하나님은 또 단일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그러면 독자성 가진 그 성이 많으니까 하나님은 종합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쉬우나 하나님은 또 단일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나 일체시요 그는 또 세 하나님이 아니시면서 격위는 셋이라 하는 그런 뜻과 같은 뜻입니다. 거게도 우리 아버지는 꼭 같은 뜻입니다. 또 영원 자존도 이제 다 알았고, 영원 자존도.

‘전지 전능 하나님’ 이 전지 전능도 하나님의 이 완전성인데, 이 전지 전능은 완전성이요 영원 불변성이요 다 자존성이요, 자존을 가졌고, 자존성을 가졌고 독자성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 이 하나님이 또 우리 아버지 됐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 아버지 됐다 하는 그 뜻입니다.

여게 예를 들면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거와 ‘영원 자존 전지 전능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거와 뜻이 다릅니다. 이래서 여기 하나님을 위로 붙이고 아래로 붙이지 말고, 그런 하나님인데 우리 아버지 됐다는 뜻입니다.

또 넷째로,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하나님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귀하게 아름답게 만드시기로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그러면 이 의지도, 의지도 하나님과 같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의지인데 이 의지도 자존 의지입니다.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 하나님 의지도 영원 자존 의지입니다.

‘자존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존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성자를 말하는데 ‘의지가 그리스도 안에서’ 여게서부터 역사하시기를 이제 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이 일을 역사하시는 이제 합동 역사가 여게서부터 나옵니다.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하나님의 목적을 말합니다. ‘꼭 같은 사람'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이라 말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사람,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도 갖추어 가진 사람이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속성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를, 열두 가지입니까? 열두 가지 속성인데 우리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성 있는 속성은 여덟 가지고 공통성 없는 속성은 네 가지라 이렇게 보는데 우리가 회고적으로, 앞으로 보는 데는 우리는 이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가 여덟 가지밖에 못 가졌지마는 뒤로 돌아보면 열두 가지를 다 가졌습니다.

열두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다 갖추어 가진 것이 하늘나라 갑니다.

우리의 이 영뿐 아니고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의 열두 가지 속성으로 된 그것이 갑니다. 그러면 영육은 첫째 아담에게 속해서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영육이지마는 영육 이것이 마치 베쪼가리를 흰 베쪼가리를 푸른 물 들이면 완전히 푸른 베쪼가리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감염됐습니다. 하나님으로 감화됐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히 화해졌기 때문에 이것을 중보자 예수님을 떼놓으면 이는 다시 완전한 첫째 아담의 소속으로 되어지지마는 이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될 때에는 이는 속으로 보면, 속으로 내면을 보면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그 구별이 있고 또 이 속성도 네 가지 속성, 자존성 영원성 완전성 단일성 이거는 없는 것이지마는 중보자로 말미암아 성화된 것은 다 열두 가지 속성이 다 있습니다.

왜? 열두 가지 속성이 있으나 그거는 우리의 것이라 있는 것이 아니고 중보자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이 내 완전이 되고, 하나님의 그 사랑이 내 사랑되고, 전지 전능이 내것 돼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중보자로 인해서 있는 것이지 중보자를 만일 떼놓으면 다시 옛날 아담 하와로 돌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얻은 구원은 억만 년 가도 중보자와 그 관계가 끊어질 수 없습니마는 논리적으로 말하면 끊어진다고 하면은 아무것도 우리에게는 없고 첫째 아담의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중보자로 더불어 연결됐을 때에 하나님의 그 형상을 갖추어 가지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다섯째로,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영계와 우주와 또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의 영원을 주권 의지로 예정하신’ 그러면 영원을, 주권 의지로 영원을 예정했다.

영원을 예정했다 그말은 하나님께서 단번에 예정하신 그 예정에서 ‘어떻게 그 영원을 예정할 수가 있겠는가? 어느 정도 예정하고 또 그것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 어느 정도 새로 계획이 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사람들이 유한한 사람을 근거해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예정은 앞으로 영원 무궁, 그러니까 영원이니까 끝이 없습니다. 영원히 끝이 없는 그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이라, 단번에 예정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완전성과 단일성을 가진 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예정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런 하나님인데, 이것을 역사하시는 하나님인데 곧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됐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예정은, 이 예정은 어떻습니까? 이 예정은 언제 예정이 됐습니까? 영원 전에 예정됐습니다. 이거 그러면 이 예정은 자존성을 가졌습니까 못 가졌습니까? 이 예정은 자존성을 가졌습니까 못 가졌습니까? 자존성을 못 가졌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고 자존성이 아닙니다. 위에서 그 자존성에 대해서 몇 가지를 말했으니까 그와 좀 구별하면 됩니다.

여섯째로 또 ‘목적을 위해서 예정대로 주권 능력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창조가, 지금 이 창조는 시공 창조, 시공 안에 있는 거 이거 일차 창조가 있고 또 이차적으로는 신령한 창조가 있고, 일차 창조에는, 모든 창조를 가지고 가공하시는 그런 창조는 늘 재림 때까지 있지마는 그다음에는 그거는 끝나버립니다.

또 우리의 신령한 창조라는 것은 예수님이 신인양성으로 오셔 가지고 대속으로서 우리 구원을 완성시킨 이 대속으로 완성한 이 대속 구원은 신령한 창조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로 다 완성하고 완성해 놓은 그 구원을 우리에게 각자에게 나눠 줘 가지고 각자들이 이 구원을 가지고 영원히 누리도록 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도 섭리하시는 것도 이것도 하나님이 먼저 있는 예정대로만 창조하시고 예정대로만 섭리하지 그 예정 범위를 벗어나서 창조나 역사나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거 이해가 됩니까? 녜, 믿으십시오. 우리가 그저 믿는 것뿐입니다.

또 일곱째로, ‘우주와 영계의 전부를 홀로 보존, 관리’ 그러면 우주라고 하면은 이 물질계를 가리켜서 우주라고 말하고 또 영계라고 말하면 지옥 천국 그 신령한 영계, 세계는 두 세계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우주라는 이 물질계 또 물질계의 그 상대인 신령한 영계, 이 세상과, 이 세상이라고 하면은 범위 좁게 요렇게 우리 지구상에 인간이 활동하고 사는 이것만이 세상이 아니고 이 우주가 이게 말하자면 넓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구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우리와의 관련은 우리가 아는 것만 관련 있는 게 아니라 모르는 이 우주에 수많은 그 존재, 그 존재들과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관계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다 통합해서 우주입니다.

그런데 그것들도 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불로 한번 소멸됩니다. 소멸되는 그것은 그거 성경에 말한 것은 다 없어진다는 것은 형체 없어지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물론 그것 뭐 항성이니 위성이니 유성이니 그렇게 그 별들 이름을 모두 사람들이 짓기를 그랬는데 뭐 항성이든지 유성이든지 위성이든지 그 모든 것도 다 그 형체가 없어집니다. 원소로 다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그런 것이 다 존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생겨진 것을 지금 보존하는 것도 그분 혼자 보존하고 계시고, 또 그것을 관리하는 것도 혼자 관리하시고, 또 섭리하신다 말은 그런 것을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조화를 붙여 가지고 역사하시는 걸 가리켜서 섭리라 하는데 섭리도 그분 혼자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인데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이래서 요것도 쉬운 것 같지마는 ‘우주와 영계의 전부를 홀로 보존, 관리,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요것을 알면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우리가 힘써 노력을 해야 된다, 힘을 써야 된다, 더욱 힘쓰라 이라니까, 힘쓰라 하니까 혹 사람이 능동이 되고, 힘쓰는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니까 하나님은 피동이 되고 인간은 능동이 되는 것으로 요렇게 보이나 그것은 범위를 좁혀서 인간의 활동 범위 내에서 그렇게 말씀할 때 그래 말씀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전부 하나님의 한 분의 예정대로 또 당신의 주권 창조대로 그렇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어데 달리 무슨 인간이 어떻게 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그 모든 것에 일원론이요 이원론이 아니라. 원인이 하나지 둘은 아니라 하는 그 일원론을 자기가 좀 밝히 알면은 요런 것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뭐, 아직까지 참고를 안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교리와 신조 뭐 조직신학은 모순 투성이입니다. 그저 이 면으로 모순 저 면으로 모순, 모든 다 완전히 통달한 그 과정에 도달하지 못한 그런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여덟째로, 이 여덟째까지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게 대해서 말씀을 했고 아홉째로부터는 좀 다릅니다. 여덟째, ‘독생하신 하나님을’ 독생하신 하나님이라 말은 하나님만이 원인이 됐지 다른 거는 하나도 원인이 되지 안했다는 그런 뜻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을’ 하나님만이 원인이 돼 가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신인양성일위가 나왔지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을’ 이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람의 형상으로 보내사’ 이거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낸 것은 사람의 영육의 완전 인성을 가지신 신성, 그러기 때문에 신성도 완전 인성도 완전, 신인양성이 다 완전을 말합니다.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을 말해서 말합니다.

‘보내사 우리의 죄, 불의, 원수’ 원수는 이거는 창조주와 원수되고 피조물끼리 원수된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원수라 말합니다. ‘불의, 원수 이 모든 것을 담당시켜’ 예수님에게 담당시켜 `십자가 죽으심으로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설정하사’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예수님이 설정했다 말은 화친의 해결을 해서 완성했다 그말입니다. 설정했다 말은 그 공로를 베풀었다,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하는 그런 뜻으로 말합니다.

‘설정하사 우리 대속이 되게 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죽으심으로 했는데, 사죄로 죽으시고, 칭의로 죽으시고, 화친으로 죽으셔서 우리의 대속을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해 주셔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순전히 피동돼 가지고 우리의 대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요것도 혼돈되면 아주 좀 구별하기 좀 힘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독자성이 어찌 되며 또 주관성이 어찌 되며 이렇게 나가서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순전히 하나님이시라는 이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으로 되어졌지 독자적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완전히 하나님에게 피동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빌립보 2장에 5절 이하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제 아홉째로는, ‘대형의 사죄’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셔서 우리에게 죄에서 해방을 시키셨습니다. ‘대형의 사죄’ 형벌을 대신 받으셔서 우리의 죄를 없애 주셨고, ‘대행의 칭의’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완전히 우리 대신 행해서 우리는 전지의 입법을 완전히 행했기 때문에 전지의 법을 가지고 심판을 베풀고 계시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완전 통과한 자로서 거게 통과됐습니다. ‘칭의’ ‘대화친의 영생’ `대화친의' 대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화친하게 되니까 모든 피조물과 우리와 화친하게 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화친해 가지고 ‘대속으로 주신’ 우리를 대속해 가지고 주신 ‘은혜의 주님’ 그러면 이것을, 은혜의 주님이라 말은 공짜배기로 이 모든 것을 하셔 가지고 공짜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공짜로 주신 주님, 여게서부터 주님이라 말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그 안에는 다 아버지와 관련됐고 요게 아홉째부터는 이제 주님과 우리와의 직접 관련된 것을 말합니다.

또 열째로는,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사’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면 혹 신성으로만 부활했는가 인성으로만 부활했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신인양성일위를, 우리를 십자가에서 대속할 때와 꼭 같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부활하고 계시는 건 신인양성일위요 영원히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해서 우리의 중보자로 역할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역할합니다.

‘부활하사 현재, 미래, 영원까지 신인’ 요 ‘친'자가 요게 잘못됐습니다. 친할 친자, 니은이라야 되는데 이응을 해 놨습니다. `친합' `신인 친합’ 화친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됐다는 것을 가리켜서 ‘신인 친합 일행이라' 일행이라 말은 함께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이,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이 하나된 것과 우리가 신성인 하나님과 우리와 하나된 것이 다른 것을 여게 표시해서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한 격위를 이루어서 일위가 됐고 우리는 한 격위는 이루지 못하고 다만 움직이기만 같이 움직입니다. 일행하는 것만 같이 일행합니다. 일행에는 같이 움직이기는 움직이지마는 신성과 우리와의 한 격위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표시해 말했습니다.

‘일행이 이루어지게 기도와 역사로 힘써 이루시는 주님’ 지금은 주님은 이 일을 이루시는 데에 당신의 대속을 베푸시고만 계시는 게 아니라 대속을 베푸시고 그 대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도록 적응하시기 위해서 기도도 하시고 또 친히 역사도 하셔 가지고 이 일을 이루십니다.

열한째로, ‘대속 하신’ 대속 하신이라 말은 예수님이 대신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은혜로 받은 것을 가리켜서 전부 대속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죽으심의 대속은 대속이라고 모두 다 인정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살으심의 대속은 대속이란 말을 별로이 하지를 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활이 우리 다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따져 들어가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우리 대속이 아니면 우리는, 우리가 중생한 거게서부터는 우리는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대속하신 공로로 성령과’ 그러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아니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부적으로 보면은 성령이 예수님을 믿도록 만듭니다. 우리의 중보자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도록 만드는 것이 누가 만드는가? 성령이 만듭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성령이 우리에게 먼저 역사했는가보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실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역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속하신 공로로 성령과 진리로 함께 역사하사’ 그러면 신인양성일위의 이 공로를 가지신 주님과 성령과 진리가 함께 역사하셔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킵니다.

우리 중생은 영 중생이고 우리의 이 육체의 중생은 아닙니다. “영으로 난 자는 영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영 중생이요 우리 육체는 다만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공심판에서 입었습니다. 공심판에서 입었기 때문에, 공심판에만 입었고 또 사심판을 한번 더 받는데 사심판에서 주님이 아노라 하면은 되고 모르노라 하면은 그 공로가 그에게는 입혀 주시고 안 입혀 주는 그것이 당신의 주권에 매였다는 것을 지금 표시하고 있습니다.

‘중생, 성화’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이것은 우리의 건설구원 우리 성화구원을 말합니다. ‘성화’ 영화라 말은, 영화라 말은 이 성화된 것들도 다 이 시공의 제한을 받고 있는 것들인데 벌써 영화라 하는 것은 이 시공에 아무 그런 제한된 모든 그 제한을 벗어버리는 걸 말합니다. 그 제한을 벗어버리는 존재를 가리켜서 영화라고 말합니다.

‘영화로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하나님같이 온전하다 말은 하나님 된다 말은 아니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온전함을 받아 가지고 누리고 쓸 수 있습니다.

또 ‘거룩하고’ 하나님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하나님의 성전과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지체로도 살 수가 있는데 우리가 또 이것을 벗을 수 있습니다. 입고 벗는데 입고 살 때에는 구원이 되고 벗고 살 때에는 구원이 안 됩니다.

우리의 이 현실을 당할 때에 우리의 이 심신의 정력이라는 것은, 심신의 정력이 그 현실마다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정력이 있어 가지고 그 현실을 지내버리면 그 정력은 끝나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그 정력이 현실에서 어떻게 역사하든지 다시 그것이 변화를 받습니다.

이러면 한 시간 심신의 정력이 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 정력은 없어져 버리고 어학으로 바꿔 가지고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기능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그 현실을 통과해서 그 정력이 기능화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기능화되는데 그 기능화되는 것이 땅에 속한 기능화도 되고 하늘에 속한 기능화도 되고 있는 것은 하늘에 속한 기능화는 뭐이냐? 진리대로 행하고 영감대로 행하고 예수님의 구속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속성으로 이래 행하니까 없어지지 아니할 그 기능으로 화해지는 것도 있고 땅에 있는 기능으로 화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났지마는 한 사람은 체육을 하고 한 사람은 체육을 안 하니까 체육 한 사람은 뭐 사람을 집어던질 수가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를 들지도 못하는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 자기의 정력을 육체의 연습으로 기능화시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래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영원히 영생할 수 있는 기능으로 화한 것도 있고 땅위에서 있다가서 없어질 그런 기능화한 것도 있으니 마지막에 세상에서 떠날 때에는 그 기능은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그 기능은 땅에 속한 기능은 땅에 속한 기능으로 하늘에 속한 기능은 하늘에 속한 기능으로 둘이 나눠서 땅에 속한 기능은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 가서 음부에서 가슴치면서 이를 갈면서 울고 있습니다.

그 기능은, 그거 그러면 그 기능은 어떤 존재로 생겨졌느냐? 그 기능은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안 믿을 때와 같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때 갈 때는 악령도 같이 가고 악습도 같이 가고 악성도 같이 가고, 악습이라 하는 그거는 만들어진 기능을 말하는 것인데 그런 것이 다 같이 가서 지옥에서 가슴치고 울고 있습니다.

혹 어떤 사람들이 ‘그때 그라면 한 인격이 나누어지는, 어찌 나누어질 수 있는가?’ 한 인격이 나누어지는 게 아니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의 영이 있으니 그 영이 있고 영이 있는 동시에 악령 악성으로 되어 있는 그 옛사람이 한테 붙어 있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고 한 사람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한 사람 속에 들어서 이 교체되는 것이 빨라서 금방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금방 육체로 돌아가 버려. 육체로 돌아간다 말은 내나 악령 악성 악습으로 돌아갔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악령 악성 악습이 그것이, 오늘 안 믿는 사람들의 전부 인격은 다 그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도 희로애락 지정의를 다 가지고 날뛰는 것이 전부 악령 악성으로 날뛰고 있는데 그자가 지옥 가서 울 수가 없는 것 아니고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이 해결이 잘 안 되면 참 문제입니다.

이래서 지난번에 공부한 대로 마태복음 13장에 말한 건 전부 행위구원에 대해서 말한 것이냐 이것이 기본구원에 대해 말한 것이냐 요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제가 아무리 해석해 봤자 헛일입니다. 그것부터 구별해서 그것을 행위구원에 관한 것인 것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거게 대해 정상적인 해석이 이해가 될 것이고 그게 안 믿어지는 사람은 정상의 해석이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열 처녀 비유라든지 뭐 그런 것 많습니다. 성경에는 악령 악성 악습, 옛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행위에 대해서 말씀한 것이 양이 많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와 그리스도의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게 계속 힘써 만드신다’ 그러면 우리의 기업은 뭣이 우리의 기업이냐?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했다고서 이렇게 말했고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다 했는데 그 기업은 뭐이 기업인가? 제사장직이 우리 기업이요 선지직이 우리 기업이요 왕직이 우리 기업이요,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 중보직이 이것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열둘째로, ‘만물 안에서’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만물 안에서라 말하면 또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안의 것이 큽니까 밖의 것이 큽니까? 밖의 것이 큽니까 안의 것이 큽니까? 뭐이 커요? 안의 것이 커요 밖의 것이 커요? 녜, 그것은 이 물형을 가지고 있는 이 물질로서는 밖의 것이 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방 안보다는 방 밖의 모든 집이 크지 않습니까? 그것 또 집보다는 집 밖에 있는 뜰이 크지 않습니까? 또 자기 정원보다는 정원 밖에 있는 모든 그 밖에 있는 것들이 더 크지 않습니까? 그러나, 또 물형이 아니고 그 인격이라든지 권위라든지 지위라든지 하는 그런 것은 밖의 것보다 안의 것이 큽니다.

여기 그라면 이 밖에 지금 이 동에 동장이 밖입니까 구청장이 밖입니까? 뭐이 밖이요? 구청장이 밖에 있습니까 동장이 밖에 있습니까? 똑똑히 말해 봐. 말해봐.

틀려도 괜찮애? 동장? 구청장? 구청이 밖에 있어? 동장 안에 구청장입니다. 또 구청장 안에는 뭐 있습니까? 시장. 또 시장 안에는 뭐 있겠소? 시장 안에는 대통령이지, 뭐. 그렇지 안해요? 시장은 장관급이니까.

이렇게 그런 것으로 말하면 또 점점 안이 다르니까 잘못하면 이걸 이 물형으로 이래 보고서 하기 쉬운데, ‘만물 안에서’ 만물 안에라 말은 만물 위라 말이오.

만물보다 존귀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우리 믿는 자의 이 구원이 교회인데 “만물 안에서” 그말은 만물 권위 위에서, 그러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그뭐 속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합니까? 뭐 중앙청이라 하더나? 중앙청이, 이 밖에 이 모두 군이니 면이니 이런 것이 속에 있습니까 중앙청이 속에 있습니까? 중앙청이 속에 있지 안해요? 내나 그런 걸 말해. 그런 거는 뭐 알기 쉬워. 그래도 이걸 모르면 확정을 못 지우면 자꾸 착각을 한다 그말이오.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하나님이 만물에게 베푸실 은혜는 영원히 충만한데 베푸실 영원한 그 충만한 은혜를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베푸시는 그 충만한 은혜를 교회에게 위임을 시켜 가지고 교회가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는 ‘하나님의 충만을 영원 기업으로 주신 주님’ 그러면 이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그 모든 은혜를 우리 교회에게 위임시켜 가지고 교회가 모든 만물들에게 중보자 되어 가지고 충만케 해 주십니다.

이거는 하나님 은혜가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와 가지고 교회로 말미암아 이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은혜의 충만이 이렇게 역사하도록 이것이 영원 불변의 조직의 통일된 하늘나라입니다.

열두 가지 그렇고 열셋째로는 ‘겨자씨 믿음의 계속으로’ 겨자씨 믿음의 계속으로 하는 이 말은 현실에서 영감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것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 ‘성신의 감동에 따라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의 계속으로 이 구원을 이루게 하여 주시는 주님’ 그러면 우리 구원은 이 현실에서 영감에게 피동되는 이것으로써만 이 구원이 이루어지지 다른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그 껍데기만 같으면 같은 줄 알지마는 속에 알맹이를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아주 판이해서 영감이 아니면 다 소용 없어. 제가 설교도 암만 하고 뭐 아무리 개혁을 하고 뭐라고 쌓아도 영감 안 된 건 다 불타버립니다. 그런고로 요런 걸 확정을 지우십시오. 이러면 자꾸 좁아지고 자꾸 이것이 정확해지는데 그만 자꾸 넓어지게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광고합니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 13가지라 하는 그 말과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라 말이 다릅니다. 이것을 잘 읽고, 읽으면 그냥 외울라고 하다 보면은 삐뚤어지기 쉬우니까 눈으로 보고 똑똑히 읽어서 틀림 없이, 그 한 자만 틀려도 안 되니까 똑똑히 읽고 그래 가지고 또 외우도록 노력하고 그래 가지고 그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그렇게 합시다.

이 진리의 해석은 해 주지 말고, 그거 해석은 하면 복잡해서 안 되니까, 선생이 알면 됩니다. 선생이 알면 돼요. 아이에게, 아이에게 채소를 뭐 ‘채소 아이에게 먹여야 되겠다’ 하고서 뭐 무슨 시금치나 그런 것 젖먹이 어린아이에게 입에 넣으면 아이 죽습니다. 그만 모가지 막혀 죽어. 그러나 어머니가 그 시금치를 먹고 젖을 먹이면 시금치의 그게 그 영양이 돼 가지고 아이가 놉니다. 그전에 나는 아이를 키울 때 봤는데 아이가 아주 용변해 놓은 것이 새파란 용변해 놓습니다. 그거 푸른 똥 누면 아이 병들었기 때문에. ‘이 아이가 용변이 지금 푸른데 이거 왜 이러노?’ 하면 그거 어머니가 있다가 ‘내가 무슨 채소 푸른 채소를 먹어서 지금 그리 됐다’ 어머니가 푸른 채소 먹었는데 젖은 꼭 같이 희지마는 아이가 똥 눠 놓으면 새파란 똥이 나온다 말이오. 그것도 그거 증거야.

그와같이 이제 그 반사가 요게 대한 도리를 알고 가르치면 반사가 알아서 먹었기 자꾸 이라면 ‘이거 뭐 자꾸, 백 목사 밑에는 괴로와서 안 된다고 지금 다 자유가 없고 괴롭다고 딴데로 도망쳐. 도망치는 사람은 어짤 수 없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삼십 분 기도 꼭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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